KBS와 MBC는 출구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50.3%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19일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6.0%를 득표할 것으로 나타났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13.5%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6.1%,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2.9%를 각각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출처 : http://news.media.daum.net/politics/others/200712/19/moneytoday/v19315329.html?_RIGHT_COMM=R1



개가 뽑히겠구나. 그리고 그 개를 뽑아준 국민들이여.

어찌되었든 그 국민중에 하나인 나.

우리 모두 개로구나.







그래. 그래도 좋은 점 하나는 있구나. 여친님의 말씀이시다....

"이제 명박이 맘대로 까도 되는거 아냐?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잖아. 그치?"




아직도 중국 최대의 포털을 유지하고 있는 시나왕의 뉴스 싸이트에서도 한국의 대선을 상당에 배치하여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대부분의 중국 네티즌들은 해당 일에 대한 반응이 사실상 거의 없는 현실이다. 저정도에 위치한 기사치고는 지금 현재 리플 수가 10개도 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대다수는 반응은 투표를 하지 못하는 중국 국내 사정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비판이라고 해야될지 자괴감이라고 해야될지는 조금 난감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全民投票好啊,有竞争

전국민이 투표는 좋구나. 경쟁이구나.

 

好羡慕韩国公民……

한국 국민들이 너무나 부럽다.

 

什么时候中国大陆人民才能象韩国等国的国民有民主权呀,祝福韩国人民。

중국 대륙에서는 언제나 한국등과 같은 국가의 국민같이 민주권리을 얻게 될까? 한국 인민을 축복한다.

 

我也想投票。。。。
俺活了几十年了 还不知道什么叫投票。。。。

나도 투표하고 싶다.

이미 몇 십년을 살아왔는데 투표를 해본적이 없다.

 

中国什么时候能举行大选........

중국은 언제쯤에나 대통령 선거을 할 수 있을까?

 

단지 딱 한 문장이 가슴에 확 와 닿는다. 이 사람은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더 쪽.팔.린.다."

真可怜的韩国民众啊,选一个说谎的人当总统。

불쌍한 한국 민중이여.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뽑겠구나.

아니. 정말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한국 민중은 전혀 불쌍하지 않다. 그 민중의 책임인 것이다.

 

 

여러분! 중국 네티즌은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을 너무나 부러워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투표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의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재미있는 점은 중국의 보도에서는 이명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고 하며, 정동영과 이회창이 경쟁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문국현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국현이 되면 어떤 반응일까요? 하다 못해서 지금은 거의 이명박이 되었다고 가정한 보도를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참고로 전 문국현 지지자가 아닙니다. 단지 그런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것입니다^^::

上海世博会吉祥物揭晓取名海宝(图)

2010년에 상하이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의 마스코트가 2007년 12월 18일에 발표되었다. 해당 마스코트의 이름은 海宝(hai bao, 하이바오)로서 바다의 보배이라는 뜻이다. 해당 마스코트는 한자 사람인(人)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되어서 중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리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본인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야시꾸리하다. 사람 인이라는 것은 형성문자이다. 쉽게 말하면 원래 있던 모습을 따서 만들어낸 문자라는 소리이다. 다시 말을 바꾸면 어차피 사람 인자 자체가 사람의 모습을 따온 글자라는 소리이다. 그럼! 저 마스코트는 사람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는 결론이다........장난하냐? -_

이건 조금 황당한 생각이긴 하지만...바보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바다의 보배이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서 저 마스코트는 바보라는 건가?! 라는 생각을 혼자 하면서 웃고 있는 내가 무섭다. 미쳐가는거다.

 

상하이 박람회가 잘 되기를 바란다. 단지 베이징에 살면서도 어떻게 하면 올림픽때 베이징에 없을까를 고민하는 본인으로서는 상하이에는 당연히 안 갈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다.

이번 대선 별거 아닙니다. 모든 후보들이 똥입니다.

1) 정동영 : 살짝 설사군요. 이명박이라는 식중독이 있어서 눈에 확 안들어오지만 차때기의 위명과 노무현대통령 선거인 등록이 뿌지직! 뿌지직! 거리는군요. 혹시나 사표심리로 당신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예뻐서 당선시킨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이명박 : 무슨 말이 필요있습니까? 식중독입니다.

3) 권영길 : 나름 우량똥입니다만...싸 놓은지가 오래되서 말라비틀어졌군요. 심상선씨가 나왔어야되었습니다.

4) 이인제 : .....정확하게 설사.

6) 문국현 : 똥 잘 싸다가 마지막에 뿌지직 거리고 있군요. 그마나 양질 똥이군요. 하지만 똥의 양이 별로 없어서 확실하게 똥이라고 하기가 너무 힘들군요.

8) 허경영 : 황금색 설사군요. 당신은 정말....-_;;

12) 이회창 : 역시 설사끼가 있는데 식중독 덕에 똥처럼 보이는군요.



똥들 속에서 그마나 우량 똥을 고르는 심정으로 한 표를...

...하지만 식중독(이명박)은 아무리 봐도 아닙니다. 후...




이국땅에서 투표에 참가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도 손에 안 잡히는 한 사람의 글이었습니다. 저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투표...한표를 행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여러분 드러워도 한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투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제목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몰라서 "고르는"을 "골라내는"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게 그거다라고 하셔도 할말 없습니다. 후...똥이나 설사나 식중독이나....후...

정말 투표하고 싶습니다.  이번이 2번째 투표 기회입니다. 2002년에도 중국에서 삽질을 하고 있어서 투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삽질을 하고 있군요. 중국은 학기가 1월 중순에나 끝나기에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투표가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가셔서 무효표를 내시는 것도 훌륭한 민주주의적인 의사 표현입니다!

 

정말 한국 가서 투표하고 싶습니다.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는게 한이지요.ㅠㅠ

264 休妻再和

安牘=提控暗渡

1) 이혼을 한 뒤에, 다시 결혼한 남자가 죽고, 원래의 남자와 다시 결혼하는 것을 금지

2) 里邊有服內問題,시간이 흘러서 별로 중시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단지 위의 규정을 위한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3) 당시대의 법률에서는 결혼한 뒤에 장애인이 된 부인과 이혼할 수 있었지만(惡疾很可能與廢癡), 원나라 시대에 들어와서 이 사항이 없어졌고, 이는 명대로 이어진다.

 

n 元史 刑法志

n 元典章 戶部四 離異買休妻例(通制條格校注 86)

至元四年以前的舊例肯定是金律

七出和三不去(除犯賤)

法司 : 법률문서 보관 관리

n 通制條格 卷四 戶令 嫁娶 第十八條(通制條格校注 85)

 

n 唐 妻無七出而出之(唐律疏議): 注意義絕的概念(比較狹義)

惡疾很可能與廢癡

無子的定義是妻到50歲

n 唐 義絕離之

n 明 岀妻 《大明令 戶令》

義絕 :《大清律輯注》與元代不同的概念

265 擅嫁匠妻

공인이 도망을 친 뒤에, 그 책임자가 공장의 아내를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결혼을 시켰지만 이것은 위법이다. 하지만 당시에 공인들은 나라에서 관리를 했고, 그 관리가 엄격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n 元史 刑法志

n 通制條格 卷四 戶令 擅配匠妻(通制條格校注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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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ge Khan monument


http://www.culture.mn/mongolia.php?recordID=bilge-khan-monument


The steles contained in the memorial complexes dedicated to Kul-Tegin and Bilge Khan, in the Orkhon Valley, are among the most significant monuments of the Central Asian Turkic Empire. The deciphering of their runic texts has permitted an important number of other inscriptions in the "Orkhon Script"to be translated. The translations below are drawn from Thomson's original French rendition (A. Heikel: Inscriptions de l'Orkhon recueillies par l'expedition finnoise, 1890. Helsingfors, 1892).

 

STELE DEDICATED TO BILGE KHAN

Eastern Face

I who resemble the sky and who was appointed by the sky, Bilge kagan of the the Turks, (here is) what I declare to you: [On the death of?] my father, Bilge kagan of the Turks, [. . . .] the valiant nobles and the people of the Nine-Ogouz . . [. . . . .] sky of the Turks [. . . . .] I became kagan of [. . . . . . . .]. On my arrival, the nobles and the people of the Turks, who were morose as though they were about to die, changed and rejoiced, and reassuredly(?) raised their eyes. After having myself risen to the throne, I gave so many important laws [. . . . . . among the peoples] of the four corners of the world.

(The text immediately following this section is identical to lines 1-20 of Monument I; see . and notes .concerning minor variations.)

In my twenty-seventh year, I made an expedition against the Tanguts. I devastated the Tangut people, and I took their sons, their men(?), their horses and their goods. In my twenty-eighth year, I made an expedition against the Alti-Tshoub (the Six-Tshoub) and the Sogdak, and I devastated the people. An army of fifty thousand (five divisions of) Ong-toutouk(?) Chinese came. I fought near the sacred mount(?), and I annihilated this army. In my twenty<-ninth> year, there was a people of my race with the sacred name of Basmil. As they were not sending any caravans (of tribute), I made an expedition [. . . . .] . . . I brought back [. . .]. In my thirty-second year, I made an exhibition against the Chinese. I fought there against Tshatsha-sengun and an army of eighty thousand (eight divisions); I killed his army there. In my thirty-sixth year, the Tshik people along with the Kirghiz became (our) enemies. Crossing the Kem (the Enissei) I made an expedition against the Tshik; I fought at Eurpen and I vanquished their army [and submitted the] small [people . . .]. In my thirty-seventh year, I made an expedition against the Kirghiz . Crossing snow as high as our lances, I marched in climbing the wooded mountains of the Keugmen and founded as victor over the Kirghiz people; I fought against their kagan in the forest beyond, and I killed their kagan and submitted their people. In the same year, I marched against the Turghes crossing the wooded mountains of Altoun and the Irtysh river. I founded [as victor over the Turghes people]. The army of the kagan of the Turghes came like fire and tempest, and we fought at Boltshou(?); there I killed their kagan, their yabgou and their shad, and I asserviated their people. In my thirtieth year, I made an expedition against Bishbalik. I fought six times [. . . .] I killed many of their troops. Saying to themselves: 'What people are there within?', [. . . .] was (were) lost [. . .] came to call(?) (them). Thanks to them, Bishbalik escaped. In my thirty-first year, the Karlouk people became a valliant enemy, living in freedom without worries. I fought near the sacred source(?) of the Tamag. I killed the Karlouk people and submitted them there. In my [. .] year(?) [. . .] the entire(?) Karlouk people [reunited . . . I] killed (them). The Nine-Ogouz were my own people. As there was bouleversement in the sky and on the earth and that jealousy had stirred up their bile, they became our enemies. In one year I fought four times. First I fought near the town of Togou . Having crossed by swimming the Togla (Tola) River, their army [. . . . . .]. The second time, I fought near Ourgou (? Or Andargou?) and vanquished their army. [. . . . . . . . The third time] I fought [near the source of the Tshoush(i?)]. The Turkic people was collapsing with fatigue and was losing morale. I therefore let their army go, which had pushed us back in dispersing (us); but many of them were joined in meeting their deaths. Coming to a hand battle during the funeral of Tonga-tegin, I cut down there a man of the Tongra race, named Yilpagou(?). The fourth time, I fought at Ezghendi kadaz. There I conquered and defeated their army. [. . . . . In my . . year] when I had spent the winter at Amghi kourgan, there was frost followed by famine. In the springtime, I began a campaign against the Ogouz. The first army had set off marching, the second(?) army was at home. Three Ogouz armies came to attack us. Saying: 'They have come without horses (literally on foot) and week', they came to take us. One of their invading armies went pillaging the houses and buildings; another(?) came fighting. We were few in number and we were week, but the enemy(?) og[ouz? . . . . . .] as [. . the sky] gave us strength, I vanquished them and dispersed them. By the grace of the sky and as I was working, the Turkic people [also?] work(ed). If at the beginning I had not worked (executed) so much, in concert with my younger brother, the Turkic people would have been dead, would have been lost. O! nobles and Turkic people, think of it and know! The Ogouz people [. . . . . . .] So as not to send (? abandon?) [. . . .] I entered a campaign and devastated their houses and their buildings. The [Ogouz] people allied itself with the Nine-Tatars, and they came. Near Agou, I delivered two great battles; I devastated their army and submitted their people there. Having executed so much [. . . . . .] by the grace of the sky [. . . .] in my thirty-th[ird year . . . . . . .] the kagan who had taken up [. . .] the force . . . [. . .] fell in error. Neither the sky above nor the holy spirits of the earth and the water nor the happiness of [my uncle?] the kagan were of help to him. The Nine-Ogouz people abandoned its land and its water, and went towards China. Counting on rising them [. . . . . . . . . .] people [. . .] faillit [. . .] to the south, in China, their name and their reputation were lost, in this land they became my slaves. Because I myself had become kagan, I did not [. . . . .] the Turkic people; [that is how much] I executed to the profit of the institutions [. . . . .] reuniting [. . . . . . . . . .] there I fought and I vanquished their army. Some of them re-entered and re-became a people, others died. Then I marched en aval of the Selenge, and there I devastated their homes and their buildings in reprimanding their pillages(?). [. . . . .] escaped to the mountains. The Uighur Eltebers [fled?] by the hundreds towards the east [. . . . . . . . . .]. The Turkic people was hungry. I rose it up in taking these herds of horses. In my thirty-fourth year, the Ogouz fled and entered China. Angry, I set out marching [. . . . .]; there I took their sons and their men(?). Two Elteber peoples [. . . . . . . . . .]. The Tatabi people was submitted to the Chinese kagan. Seeing that no good news nor good requests(?) were coming from his missionaries, I made an expedition in the summer; I devastated the people and took their herds of horses [. . . . .] the army of [. . .] came, after having reassembled itself. They (we?) made halt in the forest of Kadirkan [. . . . . . . . . .] established in ther land and their water. In saying: 'March towards the south, against the Karlouk people', I sent Toudoun Yam(a) tar, and he went. [. . . . . . . . . .] the karlouk Eltebers were annihilated; his (their?) younger brother(s) [. . . . . . . . . . . .] their (his?) caravans did not hurry. Saying 'I want to reclaim them(?)', I set off marching. By fear he (they?) fled with (by?) two or three men(?). But the tiny people [exalted?], saying: 'My kagan has arrived'. [. . . . . . . . . .] I gave [. . .] horses(?). The small number of cavalry [. . . . . . . . . .].

South-Eastern Face

[. . . . .] marching with the army en amont I crossed, in seven days and nights, the arid desert, and having arrived at Tshorak . . . [. . . . . . . .] as far as [. .] Ketshin [. . . . . . . . . .].

Southern Face

[- -] the first day, I killed the chinese cavalry (which numbered) seventeen thousand men; the second day, I killed a large amount of their infantry. [- - - -] I made expeditions [. .] times. In my thirty-eighth year, in winter, I set out marching against the Kitai [- - in my thirty ninth] year, in spring, I set out marching against the Tatabi [- - -], I killed [- - and I took?] their sons, their men(?), their herds of horses, their goods [- - -] I annihilated their men(?) [- - - - - I] fought [- - - - -]. Having killed their brave men, I made their funeral ceremonies be held. In my fiftieth year, the Tatabi people [. . .] in Kitai [- - -] at the mountain of [- -] an army of forty thousand men, led by Kou-sengun, arrived. Near the mountain of Teunkes , I attacked them and I beat them. I [killed] thirty thousand men, t[en thousand men escaped? - - - - -] the Tatabi [- -] killed(?). My eldest son having died of illness, I conducted mourning(?) at Kou-sengun. For twenty-nine years I was shad, for twenty-nine(!) years I was kagan and I governed the empire. [For?] thirty-one [years . .] I brought so much benefit to my Turks, to my people. - Having done so much [my father the kagan] died in the year of the dog, in the tenth month, the thirty-sixth day. In the year of the pig, in the fifth month, the thirty-seventh day, I held the funeral ceremony. . . . [. . .] Lisun tai-sengun came to me at the head of five hundred men. They brought an infinity of perfumes, of [. . . . .], of gold and of silver. They brought musk(?) for the funeral and placed it, and they brought sandalwood . . [. . .]. All these peoples cut their hair and slit their ears [and their cheeks?]; they brought their good particular horses, their black zibelines and their blue squirrels without number, and deposited there a great quantity.

I who resembly the sky and who was instituted by the sky, Bilge kagan of the Turks, here is what I declare to you: On the arrival of my father Bilge kagan of the Turks, the illustrious nobles of the Turks, behind (from the west) the nobles of the Tardoush, preceeded by Kul-tshour, followed by the shapadit nobles, to the front (from the east) the nobles of the Teules, preceded by Apa-tarkan, followed by the shadapit nobles [. . . . . . . .] Taman-tarkan and Tonyokuk Bouilabaga-tarkan, followed by officers [. . . .] officers preceeded by Seveg-kul-irkiz, followed by officers, all these illustrious nombles [paid] homage(?) to my father the kagan [. . . . . . .] he . . . his nobles and his Turkic people . . [. . . .] nobles and Turkic peoples [. . . . .]. To myself as many [- - -].

Northern Face

(For the first eight lines of this inscription, see lines 1-11 of the Kul-Tegin Monument, Southern Face.)

As many peoples from the four corners of the world [my father] the kagan and my uncle he kagan after their arrival [had organised and constituted, as many] peoples [in the four corners of the world] I myself organised and constituted following my arrival by the grace of the sky . [. . . . . . .]. To the kagan of the Turghes I gave my daughter with great honours, and I gave to my son with great honours the daughter [of the kagan of the] Tur[ghes], and I gave with great [honours . . . . . . . . . . . . . . . .]. I made them lower their heads and bend their knees. By the grace of the sky above and the land below [I led] my people, who had seen nothing of it with their eyes nor heard with their ears, to the front, towards the rising sun, to the right, [towards noon ,] behind [towards the setting sun, to the left, towards midnight - -]. I procured for my Turks, for my people [from the Chinese?] their [red gold?], their white silver, their pieces of silk(?), their isigti(?) grain, their special horses and stallions, their black zibelines and blue squirrels, and I arranged it. I rendered [my people?] without worry. The sky above(?) [. . . .] powerful [. . . . . . . . . . . . . . . . . . . .] the nobles(?) and the people, [. .] bring them up, do not let them suffer, do not torment them [. . .] the Turkic nobles, my Turkic people [. . . . . . . . . .] on the part of(?) your kagan, these nobles [. . . . . . . . . .] Turkic people, [. .] you will see [. . .], you will [. .] to your home, you will be without worry [. . . . . .]. Then, from the kagan of the Chinese I sent for many sculptors. He did not reject my invitation, but sent interior sculptors (i.e., attached to his house). With their assistance I had erected separately the building (the temple), [I had cut] separately the sculptures in the interior and the exterior, [and I had the stone cut. The message which I have on my heart . . . . .] as far as your well-loved sons and your descendants(?), in seeing it, know this: the eternal stone [- - -].

Western Face 

[My father] Bilge kagan [who reigned] over [the Turks, having died?], I will cry for him [again?], when the summer returns, when the bridge (the vault) of the sky above is . . [. . .], and when the cerf flees[?] to the mountain. The stone of my father the kagan, it is myself the kagan who [- - - -].

South-Western Face

[- -] it is I Yolig-tegin who wrote the inscription of he kagan. All this, the building, the sculptures, the paintings [. . . . . . . .]. It is I, Yolig-tegin, cousin of the kagan, who, staying here for a month and four days, wrote and had sculpted [- - -].

 

 

Name

毗伽可汗 Bilge Khan or Bilgä Khağan 빌게 칸  (683 or 684~734) mean by "wise chieftain"

 

call by "The Orkhon script", "Old Turkic script", "Göktürk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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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古代史文献阅读与研究(上)
中国古代史文献阅读与研究(下)

宋辽金史研究 张希清
周四7-9 文史110

唐宋妇女史研究  李志生
周三7-9 一教103  与邓小南合上

中国古代官僚等级制度研究  阎步克
周二3-4  二教510

学术规范与论文写作  荣新江
周四11-12  一教202  限70人

日本汉学名著研读   王  铿
周五3-4   一教113

唐代典志研读   王小甫
周二7-9  文史106

古器物与古代社会生活   薄小莹
周二11-12  文史107

 

我打算选个学术规范与论文写作日本汉学名著研读 。总算为15学分,只剩下10学分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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视频:杭州女大学生网上卖淫每次收入千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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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앙성 항조우시에서 인터넷 성매매에 행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하였다. 그 결과 많은 여자 대학생들이 이러한 성매매에 참가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자 대학생들의 성매매 행위는 현재 대학생들의 배금사상과 도덕의 몰락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한 싸이트를 통해서 성매매행위를 행하고 있었으며, 여자 대학생의 경우 매번 1000원(한국돈 15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인이 알기로 한국의 성매매는 8만원 수준인데, 그것보다 중국이 더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가장 싼 성매매는 100원(한국돈 만오천원)에 불과하다.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1000원이라는 거금을 받는 것이다.

역시...공부하고 봐야되는건가? 으음...그런데 말이다. 사실 이런 것 가지고 놀라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현실과 비슷한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참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것이면 공창제도와 같이 체계화 시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차피 인간의 모든 도덕과 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먹고 자고 "싸는"것으로 요약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법과 도덕이 있는 이유는 해당 사항을 지키기 그만큼이나 힘들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힘들다고 포기한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발상일 것이다.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해당 욕망을 사회에 문제가 되지 않을정도로 통제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처럼 무조건 다 막는다는 방식은 현실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다른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2008년 중국의 토플 시험의 응시자 수를 10만명으로 늘렸습니다. 작년에 비하여 80%나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토플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12월 3일 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신청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수시로 트래픽 폭주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더욱 큰 문제는 토플 시험 비용입니다. 토플 시험비용은 1370원(한국돈 약 18만원가량)으로서 중국의 물가를 생각하였을 때 매우 비싼 수준입니다. 왠만한 중산층 가정의 한달 월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랍니다. 이런 높은 가격의 토플 시험을 봐야되는지 의심이 될 뿐이군요. 하지만 지금 토플을 신청하면 내년 9월에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많은 중국인들이 계속 신청하고 있습니다.

 

전 영어를 못합니다. 고작해야 전공 논문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입니다. 발음은 최악의 극치이고요. 그렇다고 영어를 열심히 할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전 중국어니...일본어니...몽고어니...터키어니...러시아어니...이런 "변두리" 언어나 배우렵니다. 인간이 삐뚜러져 있군요. 음하하하;;;

 

组图:韩国国会大规模群殴 数人受伤

 

2007년 12월 15일 한국 국회에서 있었던 공성전이 중국에 보도된 모습입니다. 내용은 별것 없습니다. 간략하게 이명박 후보에 관한 문제로 검사에 대한 탄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네티즌의 리플도 아직 안보이는군요. 하지만 저의 이 쪽팔림을 어찌해야된단 말입니다.

 

중국네티즌들의 리플 정리 :

1) 지지파?! : 이러한 싸움이야 말로 "민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강력하게 싸우면서 나라가 발전되어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이 사건을 자세히 알면 무엇이라 할지....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왜 한숨이 나올까?

2) 반대파 : 한 마디로 이런 행위나 하고 참 한심하다고 하는 파입니다. 무엇을 더 설명하겠습니까....후... 의외로 지지파가 많이 있답니다. 이것을 행복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긴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건에서도 민주주의 만세를 불렀으니 이해할만 합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이죠.ㅠㅠ

 

3) 한글과 한자

사진을 보면 "의장"이라는 한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중국 네티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한글을 쓴다면서 왜 번체자가 있느냐는 것이죠. 몇몇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도 번체자를 쓴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 가장 맞는 대답은...

"한국은 이미 거의 모든 문자 사용을 한글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몇몇 바보같은 녀석들은 한자를 쓰면 폼이 나 보인다고 생각해서 한자를 아직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 중에서 한자가 더 폼나 보인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태클을 대비해서 방어용으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전 중국에서 유학중이니 당연히 한자를 쓸 줄 알고, 중국 고대사를 배우고 있으니 고대한어도 대충 끄적거립니다. 고로 한자도 못하니 위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사전에 막겠습니다. 저 자신이 한자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지만 한국어의 사용에서 한자는 사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新增国家一级重点学科名单

国家一级重点学科名单(2007.08)

 

해당 조사는 중국에서 학과별로 국가에서 지정한 연구기관입니다. 해당 자료를 근거로 몇가지 언급해 보겠습니다. (그 동안의 오해들을 싹 날려버려야겠습니다.)

 

1) 철학, 역사학, 중문학등의 순수인문

북경대 천하무적입니다. 누가 따라오겠습니까?! 주의하셔야 될 점은 역사학의 경우 북경대와 남개대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경대는 고대사로는 막강 무적이며 근현대사에서 남개대학과 비슷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고대사 쪽으로는 상대가 없는 막강 무적!

 

2) 이과는 청화대? 아닙니다.

청화대는 정확히 말해서 응용과학쪽 분야일뿐입니다. 수학, 물리, 화학과 같은 순수이과계열에서는 이제 막 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화학과 같은 경우 북경대가 목록에 있는 반면에 청화대는 이름이 안 올라와 있죠. 그리고 뒤쪽에 가면 어쩌고 저꺼고 땅파기 저쩌고 지찌고 벽돌쌓기는 청화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3) 종합대는 북경대

지금 현재 중국의 유명 대학들은 모두가 종합대학을 향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종합대라는 것은 한 분야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뻗어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경대는 순수인문과 순수이과를 대표로 하여서 다양한 응용사회학과 응용과학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청화대는 땅파고 벽돌쌓는 것이지요. 므흐흐흐흐...-_

 

중국 내부에서 대학능력 평가를 하면 청화대가 일등을 해서 어처구니가 없는 북경대생이었습니다. 크흠;;;(이거 청화대생이 보면 때찌 할거 같긴 하지만...아시잖아요. 자기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먼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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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〇〇年以来出土简帛一览

单育辰

来自 :http://www.bsm.org.cn/show_article.php?id=82

 

 

凡 例

一、本文收錄一九〇〇年至二〇〇五年十月間出土的隋之前有漢文文字的竹簡、木簡、竹牘、木牘、帛書,其他有漢文文字的木質出土材料如簽牌、削衣、謁、封泥匣等,亦酌情收入;
一、本文收錄出土簡帛按發現的時間先後排列,同時分開標明出土地點不同的簡帛;
一、本文收錄出土簡帛的體例爲:“出土時間”(出土時間不明者標明收繳或入藏時間)、“出土地點”(出土地點不明者標明收繳或入藏地點)、“出土簡帛的數量”、“出土簡帛的內容或名稱”、“發表出土簡帛材料的書、刊”;
一、簡牘出土時,多數已殘斷,本文多數情況下只能按出土簡牘時的考古編號標明,故“數量”後所附之“支”,絕大多數非指整簡之“支”;
一、本文“簡帛內容或名稱”系參考多家論著寫定,故有些名稱不能和發表出土簡帛材料的書、刊中論及的相一致;在名稱下標有     者表示出土簡帛原有篇題;
一、本文於“發表出土簡帛材料的書、刊”後無任何附加文字者,表明此書、刊已收錄了出土簡帛的全部釋文或圖版;若在“發表出土簡帛材料的書、刊”後標明“有介紹”或“有簡介”者,表明此書、刊未能收錄出土簡帛的全部釋文或圖版,或僅有出土簡帛情況的介紹性文字;
一、已公佈全部釋文或圖版的簡帛,本文只標明收錄出土簡帛全部釋文或圖版的書、刊,相關研究性著作概不收入;有些出土簡帛釋文或圖版爲多種書、刊完整收錄,本文儘量全面標明,因本文篇幅所限,不能全面標明的,選擇其中最重要的書、刊標明;
一、未公佈全部釋文或圖版的簡帛,本文儘量標明其出於何種考古發掘報告,若無考古發掘報告可引述,則擇要標明其出於何種論著、報紙、新聞;
一、本文的編成,參考了時賢的各種目錄、論著,限於篇幅及體例,恕不注明。

1901年 新疆古尼雅遺址(西晉)   50支   斯坦因第一次中亞考察獲
1、文書
Chinese documents from the sites of Dandan-Uilig, Niya and Endere, Ancient Khotan, 1vols, Oxford,1907(《古代和闐》第一卷後《丹丹烏裏克、尼雅、安得悅發現的漢文文書》);1985文物出版社《樓蘭尼雅出土文書》

1901年 新疆古樓蘭遺址(西域長史治所)(魏、西晉、前涼)   120支  斯文赫定第二次中亞考察獲
1、文書
Die Chinesischen Handschritfen und Sonstigen Kleinfunde Sven Hedin in Lou-lan, Stockholm, 1920(《斯文赫定在樓蘭發現的漢文寫本及零星物品》);1985文物出版社《樓蘭尼雅出土文書》;1999天地出版社《樓蘭漢文簡紙文書集成》

1906年 新疆古尼雅遺址(漢)  11支   斯坦因第二次中亞考察獲
1、文書
Les documents Chinois découverts par Aurel Stein dans les Sables du  Turkestan Oriental, Oxford,1913(《斯坦因在東突厥斯坦沙漠所獲漢文文書》);1985文物出版社《樓蘭尼雅出土文書》

1906年 新疆古樓蘭遺址(西域長史治所)(魏、西晉、前涼)  166支   斯坦因第二次中亞考察獲
1、文書
Les documents Chinois découverts par Aurel Stein dans les Sables du  Turkestan Oriental, Oxford,1913(《斯坦因在東突厥斯坦沙漠所獲漢文文書》);1931有正書局《漢晉西陲木簡彙編》,上海;1985文物出版社《樓蘭尼雅出土文書》;1999天地出版社《樓蘭漢文簡紙文書集成》

1907年 甘肅敦煌漢邊塞遺址(古敦煌郡玉門都尉、中部都尉、宜禾都尉)(兩漢)   709支(尚有近2000殘片未發表),帛書3件    斯坦因第二次中亞考察獲
1、文書
Les documents Chinois découverts par Aurel Stein dans les Sables du  Turkestan Oriental, Oxford,1913(《斯坦因在東突厥斯坦沙漠所獲漢文文書》);1931有正書局《漢晉西陲木簡彙編》,上海;1984文物出版社《疏勒河流域出土漢簡》;1990同朋舍《大英図書館蔵敦煌漢簡》,京都;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1中華書局《敦煌漢簡》

1909年 新疆古樓蘭遺址(西域長史治所)(魏、西晉、前涼)   4支   橘瑞超獲
1、文書
1915國華社《西域考古図譜》,東京;1985文物出版社《樓蘭尼雅出土文書》;1999天地出版社《樓蘭漢文簡紙文書集成》;1999學苑出版社《西域考古圖譜》

1914年 新疆古樓蘭遺址(西域長史治所)(魏、西晉、前涼)   60支  斯坦因第三次中亞考察獲
1、文書
1931有正書局《漢晉西陲木簡彙編》,上海;Les Documents Chinois de la troisième expédition de Sir Aurel Stein en Asie Centrale, London, 1953(《斯坦因第三次中亞考察所獲漢文文書》);1985文物出版社《樓蘭尼雅出土文書》;1993甘肅人民出版社《斯坦因第三次中亞探險所獲甘肅新疆出土漢文文書——未經馬斯伯樂刊佈的部分》又收入1支;1999天地出版社《樓蘭漢文簡紙文書集成》;2005上海辭書出版社《斯坦因第三次中亞考古所獲漢文文獻(非佛經部分)》

1915年 新疆吐魯番阿斯塔那六區一號前涼墓   木牘1枚  斯坦因第三次中亞考察獲
1、內容待考
Les Documents Chinois de la troisième expédition de Sir Aurel Stein en Asie Centrale, London, 1953(《斯坦因第三次中亞考察所獲漢文文書》);1997武漢大學出版社《斯坦因所獲吐魯番文書研究(修訂本)》;2005上海辭書出版社《斯坦因第三次中亞考古所獲漢文文獻(非佛經部分)》
1914~1915年 甘肅敦煌漢邊塞遺址(兩漢)(古敦煌郡中部都尉、宜禾都尉,酒泉郡西部都尉、北部都尉、東部都尉)   197支   斯坦因第三次中亞考察獲
1、文書
1931 有正書局《漢晉西陲木簡彙編》,上海;Les Documents Chinois de la troisième expédition de Sir Aurel Stein en Asie Centrale, London, 1953(《斯坦因第三次中亞考察所獲漢文文書》);1984文物出版社《疏勒河流域出土漢簡》;1990同朋舍《大英図書館蔵敦煌漢簡》,京都; 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1中華書局《敦煌漢簡》;1993甘肅人民出版社《斯坦因第三次中亞探險所獲甘肅新疆出土漢文文書—— 未經馬斯伯樂刊佈的部分》又收入4支;2005上海辭書出版社《斯坦因第三次中亞考古所獲漢文文獻(非佛經部分)》

1920年 甘肅敦煌漢邊塞小方盤城附近(兩漢)   17支     周炳南獲
1、文書
1990文物出版社《散見簡牘合集》;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1中華書局《敦煌漢簡》

1930年 新疆羅布泊默得沙爾漢邊塞遺址(兩漢)   71支    黃文弼獲
1、屯戍文書
1984文物出版社《疏勒河流域出土漢簡》;1989文物出版社《黃文弼歷史考古論集》;1998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九十九《居延漢簡補編》,臺北

1930~1931年 內蒙古額濟納河漢邊塞破城子A8、金關A32、地灣A33、大灣A35等地點(古居延都尉、肩水都尉)(兩漢)   10100支,帛書2件出於破城子,3件出於地灣
1、屯戍文書
1957 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二十一《居延漢簡·圖版之部》,臺北;1959科學出版社《居延漢簡甲編》;1960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四十《居延漢簡·考釋之部》,臺北;1980中華書局《居延漢簡甲乙編》;1987文物出版社《居延漢簡釋文合校》;1998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九十九《居延漢簡補編》,臺北,在《居延漢簡·圖版之部》、《居延漢簡·考釋之部》的基礎上,又收入1153支
附:裘善元舊藏居延漢簡歸屬:
(1)、臺北國家圖書館藏    30支    1959科學出版社《居延漢簡甲編》;1998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九十九《居延漢簡補編》,臺北
(2)、商承祚藏            6支     1959科學出版社《居延漢簡甲編》;1992《文物》第9期
(3)、中國國家博物館藏    6支     1959科學出版社《居延漢簡甲編》
(4)、南京博物院藏        1支     1959科學出版社《居延漢簡甲編》
(5)、上海博物院藏        1支     1959科學出版社《居延漢簡甲編》
(6)、香港金匱室藏        4支     1957《金匱論古綜合刊》第一期,香港
(7)、中國國家圖書館藏    2支     2005廣西師範大學出版社《簡帛研究二〇〇二、二〇〇三》

1931年 新疆古尼雅遺址(漢)   26支   斯坦因第四次中亞考察獲
1、文書
The British Library Journal, xxiv-1, Spring 1998(《大英圖書館館刊》);1998《敦煌吐魯番研究》第3卷;2001商務印書館《中國學術》第2輯

1931年 朝鮮平壤南井里東漢墓M116     1支
1、賵方
1934朝鮮古迹研究會《楽浪彩篋塚》,漢城;1972中央公論社《楽浪》,東京

1942年 湖南長沙子彈庫楚墓
1、楚帛書一件    1985中華書局《長沙子彈庫楚帛書研究》
2、商承祚舊藏十三殘片   1992《文物》第11期
3、其他帛書(美國賽克勒美術館藏)  1998廣西師範大學《李零自選集》有介紹

1944年 甘肅敦煌漢邊塞小方盤城附近(兩漢)   76支     夏鼐、閻文儒獲
1、屯戍文書
1948《歷史語言研究所集刊》第十九本;1961科學出版社《考古論文集》、1984文物出版社《疏勒河流域出土漢簡》;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8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九十九《居延漢簡補編》,臺北

1945年  甘肅武威南山剌麻灣(兩漢)    7支    夏鼐、閻文儒獲
1、屯戍文書
1998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專刊之九十九《居延漢簡補編》,臺北

1951年 湖南長沙五里牌楚墓M406   38支
1、遣策
1975《長沙發掘報告》;1995齊魯書社《戰國楚竹簡滙編》

1951~1952年 湖南長沙伍家嶺西漢墓M203   10支(僅1枚可識)
1、封泥匣
1975科學出版社《長沙發掘報告》

1951~1952年 湖南長沙徐家灣西漢(劉驕)墓M401   1支
1、有“被絝函”3字
1975科學出版社《長沙發掘報告》

1953年 湖南長沙仰天湖楚墓M167    42支
1、遣策  
1995齊魯書社《戰國楚竹簡滙編》;2000文物出版社《長沙楚墓》

1954年 湖南長沙楊家灣楚墓M569     72支
1、(內容待考)
1995齊魯書社《戰國楚竹簡滙編》;2000文物出版社《長沙楚墓》

1955年 湖北武昌任家灣六朝(鄭丑)墓     3支(僅一枚可識)
1、謁
1955《文物參考資料》第12期

1956年 河南陝縣劉家渠東漢墓M23    2枚
1、可見“□門一”三字
1957年《考古通訊》第4期

1957年 河南信陽長台關楚墓M1    148支
1、遣策
2、《墨子》佚篇或儒家著作
1986文物出版社《信陽楚墓》;1995齊魯書社《戰國楚竹簡彙編》

1957年 江蘇高郵邵家溝遺址(東漢) 1支
1、符簶
1960《考古》第10期

1959年 新疆巴楚縣脫庫孜沙來古城(漢?)
1959《文物》第7期有簡介

1959年 甘肅武威磨嘴子東漢墓M6 610支
1、《儀禮》(甲、乙、丙本)(或說爲慶氏或後氏本) 2、日忌雜占
1964文物出版社《武威漢簡》

1959年 甘肅武威磨嘴子東漢墓M15   1件帛書
1、鎮墓券
1964文物出版社《武威漢簡》

1959年 甘肅武威磨嘴子東漢墓M18 10支
1、王杖事例、詔書    
1960《考古》第9期;1964文物出版社《武威漢簡》

1962年 江蘇連雲港海州網疃莊焦山東漢墓   木牘2枚
1、衣物疏    
1963《考古》第6期有介紹

1963年 江蘇鹽城三羊墩東漢墓M1    木櫝1枚
1、衣物疏
1964《考古》第8期有介紹

1965年 湖北江陵望山楚(固)墓M1 207支
1、卜禱
1995中華書局《望山楚簡》;1995齊魯書社《戰國楚竹簡滙編》;1996文物出版社《江陵望山沙塚楚墓》

1965年 湖北江陵望山楚墓M2 66支
1、遣策
1995中華書局《望山楚簡》;1995齊魯書社《戰國楚竹簡滙編》;1996文物出版社《江陵望山沙塚楚墓》

1966—1969年 新疆吐魯番阿斯塔那西晉墓M53 1支
1、以練易棺交易文書
1972《文物》第1期

1971年 甘肅甘谷劉家坪東漢墓 23支
1、桓帝時有關宗室奏書、詔書
1984甘肅人民出版社《漢簡研究文集》

1972年 甘肅武威旱灘坡東漢墓 92支
1、醫藥書
1975文物出版社《武威漢代醫簡》

1972年 湖北雲夢大墳頭西漢墓M1 1支
1、衣物疏
1973《文物》第9期、1981文物出版社《文物資料叢刊》第4輯

1972年 山東臨沂銀雀山西漢墓M1 4942支及數千殘片
1、《孫子兵法》十三篇及五篇佚文(《吳問》、《四變》、《黃帝伐赤帝》、《地形二》、《見吳王》)197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線裝本);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精裝本)
2、《孫臏兵法》(附下篇,爲《十陣》、《十問》、《略甲》、《客主人分》、《善者》、《五名五恭》、《兵失》、《將義》、《將德》、《將敗》、《將失》、《雄牝城》、《五度九奪》、《積疏》、《奇正》, 75年本有,85年本無)  197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線裝本);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精裝本)
3、《尉繚子》  197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線裝本);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精裝本)
4、《晏子》  197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線裝本);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精裝本)
5、《六韜》  197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線裝本);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精裝本)
6、《守法守令等十三篇》(《守法》、《要言》、《庫法》、《王兵》、《市法》、《守令》、《李法》、《王法》、《委法》、《田法》、《兵令》、《上篇》、《下篇》)  197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線裝本);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墓竹簡》(壹)(精裝本)
7、《地典》
8、《唐勒》(《論馭賦》)
9、《十官》、《五議》、《務過》、《爲國之過》、《起師》等論政論兵類40餘篇
10、《曹氏陰陽》、《三十時》、《天地八風五行客主五音之居》等陰陽占候類10餘篇
11、算書、相狗方、作醬法等雜書
以上均見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簡釋文》,但此書所有竹簡皆未編綴

1972年 山東臨沂銀雀山西漢墓M2 32支
1、《漢元光元年曆譜》
1985文物出版社《銀雀山漢簡釋文》

1972年 湖南長沙馬王堆西漢(辛追)墓M1 361支
1、遣策
1973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一號漢墓》;1980中華書局《文史》第10輯

1972年 內蒙古額濟納河漢邊塞遺址(兩漢)    21支     採集簡(具體出土地點不明)
1、屯戍文書
1990文物出版社《居延漢簡——甲渠候關與第四燧》;1994中華書局《居延新簡——甲渠候關》

1972~1974年 內蒙古額濟納河漢邊塞遺址(兩漢) 19637支
1、屯戍文書
出土地點:
1、肩水金關A32     11000餘支
2、甲渠候關A8      7933支
3、甲渠塞第四燧P1     195支
1990文物出版社《居延漢簡——甲渠候關與第四燧》;1994中華書局《居延新簡——甲渠候關》收錄1972-1982年間獲居延漢簡,共8409枚

1973年 湖北江陵藤店楚墓M1     24支
1、遣策
1973《文物》第9期有介紹

1973年 河北定州八角廊西漢(中山懷王劉脩)墓M40      約2500支
1、《論語》 1997文物出版社《定州漢墓竹簡論語》
2、《文子》 1995《文物》第12期
3、《六韜》(原名《太公》)  2001《文物》第5期
4、《儒家者言》 1981《文物》第2期
5、《保傅傳》
6、《哀公問五義》
7、《日書》
8、蕭望之等人奏議
9、《六安王朝五鳳二年正月起居記》
其他1981《文物》第8期有介紹

1973年 江蘇連雲港海州西漢(霍賀)墓    7枚木牘(僅1枚有字)
1、衣物疏
1974《考古》第3期

1973年 江蘇連雲港海州西漢(侍其)墓     2枚木牘
1、衣物疏(另一支漶漫不清)
1975《考古》第3期

1973年 湖北老河口五座墳西漢墓M3    約30支(5枚可見字迹)
1、遣策
1976《考古學報》第2期

1973年 湖北江陵鳳凰山西漢墓M8     175支
1、隨葬物清單
1976《文物》第6期

1973年 湖北江陵鳳凰山西漢墓M9     83支
1、安陸守丞文書  共3枚木牘    1974《文物》第6期
2、遣策     1974《文物》第6期有介紹

1973年 湖北江陵鳳凰山西漢(張偃)墓M10    176支
1、記陪葬物的木牘(牘背爲告地策)  2、記出錢人名的木牘   3、中販共侍約   4、記算錢    5、記芻稿    6、記田租的大竹簡     7、記穀物的大竹簡    8、鄭里廩簿等
1974《文物》第7期;1992中華書局《古文字論集》

1973年 湖南長沙馬王堆西漢(軑侯利豨)墓M3 竹簡木櫝608支、楬54枚
1、遣策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
2、木櫝6枚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
(1)、衣物疏    1994《文物》第6期
(2)、隨葬驗對木牘   1994《文物》第6期
3、《十問》、《合陰陽方》、《雜禁方》、《天下至道談》     1985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肆)(精裝本)
帛書、帛圖     30件
1、《喪服圖》(《喪制圖》) 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
2、《城邑圖》(《園寢圖》)     1990文物出版社《中國古代地圖集(戰國—元)》
3、《卦象圖》(《符簶》、《雜占圖》) 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
4、《老子》(甲本)及卷後佚書(《五行》、《九主》、《明君》、《德聖》)  1980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壹)(精裝本)
5、《老子》(乙本)及卷前佚書(《經法》、《經》(《十六經》)、《稱》、《道原》) 1980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壹)(精裝本)
6、《周易》:
(1)、《易經》 1984《文物》第4期(名爲《六十四卦》);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1998四川大學出版社《易學集成》第3卷《馬王堆帛書周易經傳釋文》
(2)、《系辭》 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1995華夏出版社《國際易學研究》第1輯;1998四川大學出版社《易學集成》第3卷《馬王堆帛書周易經傳釋文》
(3)、《二三子問》、《衷》(《易之義》)、《要》 1993上海古籍出版社《道家文化研究》第3輯;1994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研究文集》中有《二三子問》;1995華夏出版社《國際易學研究》第1輯;1998四川大學出版社《易學集成》第3卷《馬王堆帛書周易經傳釋文》
(4)、《繆和》、《昭力》 1995上海古籍出版社《道家文化研究》第6輯;1995華夏出版社《國際易學研究》第1輯;1998四川大學出版社《易學集成》第3卷《馬王堆帛書周易經傳釋文》
7、《相馬經》  1977《文物》8期
8、《春秋事語》     1983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三)(精裝本)
9、《戰國縱橫家書》 1983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三)(精裝本)
10、《足臂十一脈灸經》、《陰陽十一脈灸經》甲本、《脈法》、《陰陽脈死候》(後三書即《脈書》)、《五十二病方》      1985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肆)(精裝本);1992湖南科技出版社《馬王堆古醫方考釋》;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 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
11、《卻榖食氣》、《陰陽十一脈灸經》乙本、《導引圖》      1985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肆)(精裝本);1992湖南科技出版社《馬王堆古醫方考釋》;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
12、《養生方》、《雜療方》、《胎産書》(前附《人字圖》、《禹藏圖》)    1985文物出版社《馬王堆漢墓帛書》(肆)(精裝本);1992湖南科技出版社《馬王堆古醫方考釋》;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
13、《刑德》(甲本)   2001臺灣古籍出版有限公司《馬王堆帛書<刑德>研究論稿》
14、《刑德》(乙本)   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2001臺灣古籍出版有限公司《馬王堆帛書<刑德>研究論稿》
15、《刑德》(丙本)   2001臺灣古籍出版有限公司《馬王堆帛書<刑德>研究論稿》
16、《隸書陰陽五行》    1996法律出版社《簡帛研究》第2輯有介紹
17、《篆書陰陽五行》(《式法》)  2000《文物》第7期有介紹
18、《長沙南部地形圖》  1977文物出版社《古地圖》;1990文物出版社《中國古代地圖集(戰國—元)》
19、《駐軍圖》  1977文物出版社《古地圖》;1990文物出版社《中國古代地圖集(戰國—元)》
20、《出行占》  2003湖北教育出版社《簡帛數術文獻探論》有介紹
21、《木人占》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有介紹
22、《辟兵圖》(《太一將行圖》、《神祗圖》)  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
23、《五星占》  1978科學出版社《中國天文學史文集》第1輯;1996上海書店《馬王堆帛書藝術》;2004中山大學出版社《馬王堆天文書考釋》
24、《天文氣象雜占》  1980文物出版社《中國文物》第1期;1992湖南出版社《馬王堆漢墓文物》;2004中山大學出版社《馬王堆天文書考釋》
25、《宅位草圖》(《築城圖》)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有介紹
26、《府宅圖》(《小城圖》)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有介紹
27、《物則有刑圖》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有介紹
28、《宅形宅位吉凶圖》   2004文物出版社《長沙馬王堆二、三號漢墓——第一卷:田野考古發掘報告》有介紹

1974年 北京大葆台西漢(燕王劉旦)墓        1支
1、有“樵中格吳子運”6字
1989文物出版社《北京大葆台漢墓》

1974年 江西南昌東湖東晉(吳應)墓M1    6支
1、刺 2、衣物疏
1974《考古》第6期

1974年 江蘇盱眙東陽西漢墓M7     1支
1、祈禱書
1979《考古》第5期

1975年 湖北鳳凰山西漢墓M167     79支
1、遣策
1976《文物》第10期

1975年 湖北江陵鳳凰山西漢墓M168    67支
1、告地策   1975《文物》第9期
2、遣策
1993《考古學報》第4期

1975年 湖北江陵鳳凰山西漢墓M169      83支
1、遣策
1987《文物》第5期有簡介;1982《農業考古》第1期有簡介

1975年 湖北雲夢睡虎地秦墓M4       2支
1、役卒黑與驚之信
1976《文物》第9期;1981文物出版社《雲夢睡虎地秦墓》

1975年 湖北雲夢睡虎地秦墓M11        1155支及80殘片
1、《語書》 2、《爲吏之道》(末附魏律二條) 3、《秦律十八種》 4、《效律》 5、《秦律雜抄》 6、《法律答問》 7、《封診式》 8、《日書》甲、乙種 9、《編年記》
1978年文物出版社《睡虎地秦墓竹簡》(未收入《日書》甲、乙種);1981文物出版社《雲夢睡虎地秦墓》;1990文物出版社《睡虎地秦墓竹簡》

1976年 廣西貴縣羅泊灣西漢墓M1      木簡9支、木牘5枚、封泥匣5枚
1、《從器志》 2、《東陽田器志》 3、封檢等
1978《文物》第9期;1988文物出版社《廣西貴縣羅泊灣漢墓》

1976年 江蘇連雲港海州小礁山漢(戴盛)墓     木方1支
1、衣物券
1982《考古》第5期有簡介

1976年 內蒙古額濟納旗居延都尉三十井塞次東燧(兩漢)   173支
1、屯戍文書
1990文物出版社《居延新簡——甲渠候關與第四燧》;1994中華書局《居延新簡——甲渠候關》

1977年 甘肅玉門花海漢邊塞遺址     91支
1、武帝遺詔 2、簿籍、書信
1984甘肅人民出版社《漢簡研究文集》;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1中華書局《敦煌漢簡》

1977年 安徽阜陽雙古堆西漢(汝陰侯夏侯竈)墓     6000余支
1、《倉頡》 1983《文物》第2期
2、《詩經》 1984《文物》第8期;1988上海古籍出版社《阜陽漢簡詩經研究》
3、《周易》(占卜家之易) 2000三聯書店《道家文化研究》第18輯;2004上海古籍出版社《阜陽漢簡周易研究》
4、《莊子》 2000三聯書店《道家文化研究》第18輯
5、《年表》 1991黃山書社《文物研究》第7期有介紹
6、《大事記》
7、《作務員程》
8、《行氣》
9、《萬物》(舊題《雜方》)  1988《文物》第4期
10、《呂氏春秋》
11、《天文曆占》
12、《算術書》
13、《相狗》
14、《楚辭》及佚辭賦
15、《儒家者言》章題木牘      2000北京大學出版社《國學研究》第7卷;2004上海古籍出版社《阜陽漢簡周易研究》
16、《春秋事語》章題木牘及相關竹簡   2004上海古籍出版社《阜陽漢簡周易研究》
1978《文物》第8期有介紹;1998中華書局《出土文獻研究》第4輯有介紹;2004湖北教育出版社《長江流域出土簡牘與研究》有介紹

1978年 湖北江陵天星觀楚(邸陽君潘勝)墓M1     70餘支
1、卜禱 2、遣策
1982《考古學報》第1期有介紹

1978年 湖北隨州擂鼓墩曾侯乙墓M1     240支
1、遣策
1989文物出版社《曾侯乙墓》;1997藝文印書館《曾侯乙墓竹簡文字編》,臺北

1978年 江蘇連雲港花果山雲台西漢墓      13支及17殘片
1、封診式類 2、曆譜 3、日書 4、商業文書
1982《考古》第5期

1978年 安徽南陵麻橋公社東風大隊東吳墓M2    1枚木牘
1、衣物疏
1984《考古》第11期

1978年 安徽南陵麻橋公社東風大隊東吳墓M3    2枚木牘
1、衣物疏
1984《考古》第11期

1979年 青海大通上孫家寨西漢(馬良)墓M115     240支
1、軍事操練、編制等文書
1981《文物》第2期;1987《考古學集刊》第5集;1993文物出版社《上孫家寨漢晉墓》

1979年 江西南昌陽明路吳(高榮)墓     23支
1、木刺 2、遣策
1980《考古》第3期

1979年 甘肅敦煌馬圈灣漢邊塞遺址(兩漢)   1217支,帛書1件
1、屯戍文書
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1中華書局《敦煌漢簡》

1979年 新疆吐魯番阿斯塔那北涼(武宣王沮渠蒙遜夫人彭氏)墓M383 帛書1件
1、衣物疏
1994《文物》第9期

1979~1980年 江蘇高郵神居山西漢(廣陵王劉胥夫婦)墓M1、M2    數量不詳
1、內容不詳
1980年7月18日《人民日報》有簡介;2000南京出版社《江蘇考古五十年》有簡介

1980年 江蘇邗江胡場西漢(王奉世)墓M5    26支
1、簶(神靈名位櫝) 2、日記櫝 3、文告櫝 4、喪祭物品櫝 5、木簽 6、木觚
1981《文物》第11期

1980年 四川青川郝家坪秦墓M50     2支
1、秦武王二年丞相甘茂爲田律   1982《文物》第1期
2、另一片文甚漶漫

1980年 湖南臨澧九里楚墓M1   100余支
1、遣策 2、占卜
1995湖北教育出版社《楚系簡帛文字編》有簡介;1999文物出版社《新中國考古五十年》有簡介

1980年 新疆古樓蘭遺址(魏晉)    63支
1、屯戍文書
1988《文物》第7期;1999天地出版社《樓蘭漢文簡紙文書集成》

1980年 湖北鄂城水泥廠吳(史綽)墓M1     6支
1、名刺
1982《考古》第3期

1980年 陝西西安西漢長安未央宮遺址前殿A區F26    115支
1、記錄新莽瑞應文書
1996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漢長安城未央宮:1980—1989年考古發掘報告》;2004上海古籍出版社《出土文獻研究》第6輯

1980年 江蘇連雲港唐莊高高頂西漢墓    木牘1枚
1、衣物疏
1995《東南文化》第4期有介紹

1981年 湖北江陵九店楚墓M56     205支
1、農作物數量 2、日書雜占 3、卜禱
1995科學出版社《江陵九店東周墓》;2001中華書局《九店楚簡》

1981年收繳  甘肅武威磨嘴子東漢墓    26支    村民袁德禮發現
1、王杖詔書令
1984甘肅人民出版社《漢簡研究文集》

1981年 甘肅敦煌酥油土漢邊塞遺址(西漢)     76支
1、屯戍類文書
1984甘肅人民出版社《漢簡研究文集》;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1991中華書局《敦煌漢簡》

1982年   湖北江陵馬山磚廠楚墓M1     1支
1、簽牌    
1982《文物》第10期;1985文物出版社《江陵馬山一號楚墓》

1982年 內蒙古額濟納河漢邊塞甲渠候關、甲渠第四燧遺址(兩漢)   87支
1、屯戍文書
1990文物出版社《居延新簡——甲渠候關與第四燧》;1994中華書局《居延新簡——甲渠候關》

1983~1984年 湖北江陵張家山西漢墓M247      1236支
1、《二年律令》
2、《奏讞書》 1993《文物》第8期(上)、1995《文物》第3期(下)
3、《蓋廬》
4、《脈書》 1989《文物》第7期
5、《引書》 1990《文物》第10期
6、《算數書》 2000《文物》第9期
7、曆譜
8、遣策
2001文物出版社《張家山漢墓竹簡(二四七號墓)》

1983~1984年 湖北江陵張家山西漢墓M249     約400支
1、日書
1985《文物》第1期有介紹

1983~1984年 湖北江陵張家山西漢墓M258     58支
1、曆譜
1985《文物》第1期有介紹

1983年 江蘇揚州平山養殖場西漢墓M3    3支
1、木楬題署
1987《文物》第1期

1983年 湖南常德德山夕陽坡楚墓M2     2支
1、賞賜歲祿文書
1987《求索》雜誌社《楚史與楚文化研究》;2001嶽麓書社《早期文明與楚文化研究》

1984年 甘肅武威五壩山西漢(田升寧)墓M3     1支
1、墓主冥告文書
1990文物出版社《散見簡牘合輯》;2004敦煌文藝出版社《簡牘(遙望星宿:甘肅考古文化叢書)》

1984年 安徽馬鞍山吳(朱然)墓    17支
1、刺 2、謁
1986《文物》第3期有介紹

1984年 江蘇儀征胥浦西漢(朱淩)墓M101    20支
1、先令券書 2、賻贈記錄 3、衣物券
1987《文物》第1期

1985年 甘肅武威旱灘坡前涼(姬瑜)墓M19     木牘5枚
1、拜官版    2003重慶出版社《河西簡牘》
2、衣物疏
1990文物出版社《散見簡牘合輯》

1985年 江蘇連雲港海州陶灣村西漢(西郭寶)墓    5支
1、衣物疏 2、謁
1988《東南文化》第2輯

1985年 湖北江陵毛家園西漢墓M1        74支
1、遣策 2、碟書(告地策)
1988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87》有介紹

1985年 湖北江陵張家山西漢墓M327      300餘支
1、日書
1988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87》有介紹;1992《文物》第9期有介紹

1986年 湖北江陵張家山西漢墓M336      829支
1、《功令》 2、《卻榖食氣》 3、《盜蹠》 4、宴享 5、七年質日 6、律令十五種 7、遣策
1988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87》有介紹;1992《文物》第9期有介紹

1986年 湖北江陵秦家嘴楚墓M1     7支
1、卜禱 
1988《江漢考古》第2期有介紹

1986年 湖北江陵秦家嘴楚墓M13    18支
1、卜禱 
1988《江漢考古》第2期有介紹

1986年 湖北江陵秦家嘴楚墓M99    16支
1、卜禱 
1988《江漢考古》第2期有介紹

1986年 甘肅天水放馬灘秦墓M1     464支
1、《日書甲種》   1989甘肅人民出版社《秦漢簡牘論文集》
2、古地圖7幅    1989《文物》第2期;1990文物出版社《中國古代地圖集(戰國—元)》
3、《墓主記》     1989《文物》第2期
4、《日書乙種》   1989《文物》第2期有介紹

1986年 湖北江陵岳山秦墓M36    木牘2支
1、日書
2000《考古學報》第4期

1986年 甘肅金塔地灣城(A33)肩水候關漢遺址    1000余支
1999文物出版社《文物考古工作十年1979—1989》有簡介

1986年 甘肅高臺晉(常封)墓      1支
1、內容待考
1990文物出版社《散見簡牘合輯》

1986~1988年 甘肅敦煌漢邊塞遺址(兩漢)      137支
1、屯戍文書
1991年甘肅人民出版社《敦煌漢簡釋文》; 1991中華書局《敦煌漢簡》;1991《文物》第8期(以上三書收錄1986-1988年間于敦煌後坑墩、敦煌馬圈灣墩、敦煌小方盤城、敦煌臭墩子墩、敦煌小方盤城南第一烽燧、敦煌小方盤城南第二烽燧、敦煌鹽池灣墩、敦煌小月牙湖東墩、敦煌懸泉遺址、敦煌大坡墩10個地點採集的137枚漢簡);1996 法律出版社《簡帛研究》第1輯(此書收錄1979-1989年間于敦煌鹽池灣烽燧、敦煌後坑烽燧、敦煌馬圈灣烽燧、敦煌小方盤城南第一烽燧、敦煌小方盤城外、敦煌臭墩子烽燧、敦煌蘆草井烽燧(即上三書所收之敦煌小方盤城南第二烽燧)、敦煌小月牙湖東墩烽燧、敦煌後坑墩烽燧、敦煌人頭疙瘩遺址、敦煌條湖坡烽燧、敦煌懸泉置遺址12個地點採集的147支簡)

1987年 湖北荆門包山楚(邵)墓M2       279支
1、文書 有:集書、集書言、受期、疋獄、貸金、案例、所投 2、卜筮祭禱 3、遣策
1991文物出版社《包山楚簡》;1991文物出版社《包山楚墓》

1987年 湖南張家界古人堤遺址(東漢)    90支
1、漢律 2、醫方 3、官府文書 4、書信及謁 5、曆日 6、九九乘法表
2003《中國歷史文物》第2期

1987年 湖南慈利石板村楚墓M36       4557支
有《國語·吳語》、《逸周書·大武》、《管子·霸形》、《寧越子》等
1990《文物》第10期有介紹;2004文物出版社《新出簡帛研究》有介紹

1987年 河北盧龍范莊西漢(蔡文)墓     數量不詳
1、內容不詳
1989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88》有介紹,1994年7月12日《中國文物報》有簡介

1989年 湖北江陵九店楚墓M621          127支
1、殘古書
1995科學出版社《江陵九店東周墓》;2001中華書局《九店楚簡》

1989年 湖北江陵雲夢龍崗秦墓M6     284支
1、秦律 2、木牘1枚 免辟死爲庶人文書(用於地下)
1994《考古學集刊》第8集;1995科學出版社《雲夢龍崗秦簡》;2001中華書局《龍崗秦簡》

1989年  甘肅武威旱灘坡東漢墓 16支
1、王杖令 2、關於盜、蟲災、火災之律令
1993《文物》第10期;2000敦煌文藝出版社《中國簡牘集成》第一輯

1990年 甘肅敦煌清水溝漢代烽燧遺址(西漢)     41支
1、地節元年曆譜 2、屯戍類簡   
1996法律出版社《簡帛研究》第2輯

1990年 湖北江陵高臺西漢墓M6     53支,14支有字
1、遣策
2000科學出版社《荊州高臺漢墓——宜黃公路荊州段田野考古報告之一》

1990年 湖北江陵高臺西漢墓M18          4支
1、封檢 2、告地書 3、名數 4、遣策
1993《文物》第8期;2000科學出版社《荊州高臺漢墓——宜黃公路荊州段田野考古報告之一》

1990年 湖北江陵揚家山西漢墓M135       75支
1、遣策
1993《文物》第8期有介紹

90年代初 江蘇連雲港海州南門磚廠新莽/東漢墓   1枚        項劍雲採集
1、謁
1996《文物》第8期

1990~1998年 甘肅安西長城烽燧遺址     近100枚
2004敦煌文藝出版社《簡牘(遙望星宿:甘肅考古文化叢書)》有簡介

1991年 湖北江陵雞公山楚墓M48     數量未詳
1、遣策
1992《江漢考古》第3期有簡介

1991年收繳 甘肅武威新華鄉(前涼)   木牘6枚
1991年12月22日《中國文物報》有簡介

1990~1992年 甘肅敦煌懸泉置遺址(兩漢)     23000余支,帛書10件
1、郵置、郵置道里、郵書 2、過所、乘傳 3、詔書、官府文書 4、律令、品、司法文書 5、簿籍 6、信劄 7、古籍
2000《文物》第5期有介紹、2001上海古籍出版社《敦煌懸泉漢簡釋粹》收入部份簡帛

1992年 湖北老河口戰國墓 兩座  10餘枚
1、遣策
1993法律出版社《簡帛研究》第1輯有簡介

1992年 湖北荊州沙市區蕭家草場西漢墓M26     35支
1、遣策
2001中華書局《關沮秦漢墓簡牘》

1992年 湖北江陵磚瓦廠楚墓M370        6支
1、司法文書
2001廣西師範大學出版社《簡帛研究二○○一》

1993年 新疆古尼雅遺址(漢)    2支
1、《倉頡》
1998《西域研究》第4期;2001商務印書館《中國學術》第2輯

1993年 湖北荊州沙市區關沮周家臺秦墓M30     382支
1、曆譜 其中一部分(《秦始皇三十四年曆譜》)見1999《文物》第6期
2、日書
3、《病方及其他》
2001中華書局《關沮秦漢墓簡牘》

1993年 湖北江陵王家臺秦墓M15   814支
1、《效律》 2、日書 3、《歸藏》
1995《文物》第1期有介紹;2004文物出版社《新出簡帛研究》有介紹

1993年 湖北黃岡黃州區曹家岡楚墓M5      7支
1、遣策
2000《考古學報》第2期

1993年 湖北鄂州濱湖西路東吳墓M1、M2   數量不詳
1、名刺 2、遣策
1997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94》有介紹

1993年 湖北荊門郭店楚墓       805支
1、《老子》甲、乙、丙本 2、《太一生水》 3、《窮達以時》 4、《唐虞之道》 5、《尊德義》 6、《忠信之道》 7、《成之聞之》 8、《六德》 9、《性自命出》 10、《緇衣》 11、《五行》 12、《魯穆公問子思》 13、《語叢》(一、二、三、四)
1998文物出版社《郭店楚墓竹簡》
14、《語叢三》遺簡1支   2002年5月3日《中國文物報》

1993年 湖北江陵范家坡楚墓M27       1支
1995湖北教育出版社《楚系簡帛文字編》有簡介

1993年 湖南長沙望城坡古墳垸西漢長沙王后墓   100餘枚
1、簽牌
1997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94》有介紹

1993年 江蘇東海尹灣東漢墓M2       1支
1、遣策
1997中華書局《尹灣漢墓簡牘》

1993年 江蘇東海尹灣東漢(師饒)墓M6        168支
1、《集簿》 2、《郡屬縣鄉吏員定簿》 3、《長吏遷除簿》 4、《吏員考績簿》 5、《武庫永始四年兵車器集薄》 6、《六甲陰陽書》 8、曆譜 9、遣策 11、謁 12、《元延二年起居記》 13、《行道吉凶》 14、《刑德行時》 15、《神烏賦》
1997中華書局《尹灣漢墓簡牘》

1994年入藏 上海博物館藏楚簡        1200餘支
其中 1、《孔子詩論》 2、《緇衣》 3、《性情論》(《性自命出》)    2001上海古籍出版社《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一)》;
4、《民之父母》(《孔子閒居》) 5、《子羔》 6、《魯邦大旱》 7、《從政》(甲、乙) 8、《昔者君老》 9、《容成氏》    2002上海古籍出版社《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二)》;
10、《周易》 11、《仲弓》 12、《恒先》 13、《彭祖》    2003上海古籍出版社《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三)》;
14、《采風曲目》 15、《逸詩》 16、《昭王毀室·昭王與龔之》 17、《柬大王泊旱》 18、《內禮》 19、《相邦之道》 20、《曹沫之陳》    2004上海古籍出版社《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四)》;
其他尚有《樂禮》、《武王踐阼》、《賦》、《子路》、《四帝二王》、《顔淵》、《樂書》等共80餘部書

1994年 河南新蔡葛陵楚(平夜君成)墓        1571支
1、祭禱 2、遣策
2003大象出版社《新蔡葛陵楚墓》

1996年 湖南長沙走馬樓平和堂吳井J22       140000餘支
1、其中2141支木簡    1999文物出版社《長沙走馬樓三國吳簡·嘉禾吏民田家莂》
2、其中10545支竹簡   2003文物出版社《長沙走馬樓三國吳簡·竹簡·壹》
其他1999《文物》第5期有介紹,內容大都爲券書、司法文書、長沙郡人名簿、名刺、官刺、賬簿

1996年 新疆古尼雅遺址(西晉)     9支     中日共同尼雅遺迹學術考察第八次調查
1、文書
1999《中日共同尼雅遺迹學術調查報告書》第二卷,京都

1997年 湖南長沙科文大廈古井J3、J4、J5、J18、J21、J25(東漢)   200餘支
1、官府文書 2、名刺 3、練字
2000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1998》有介紹

1997年 江西南昌火車站東晉(雷垓)墓M3      3支
1、衣物疏 2、名刺
2001《文物》第2期

1998年1月從英國收繳(據說入藏中國國家博物館) 2批漢簡
1998年8月26日《中國文物報》有簡介

1999年 湖南沅陵城關鎮虎溪山西漢(吳陽)墓M1   1336支
1、黃簿 2、日書(《閻氏五勝》) 3、《美食方》
2003《文物》第1期有介紹;2004文物出版社《新出簡帛研究》有介紹

1999年 甘肅敦煌小方盤城遺址    300餘枚
2004敦煌文藝出版社《簡牘(遙望星宿:甘肅考古文化叢書)》有簡介

1999~2002年 內蒙古額濟納旗居延遺址甲渠塞第7、9、14、16、17、18燧及察干川吉烽燧(漢)   500餘支
2005廣西師範大學出版社《額濟納漢簡》

2000年 湖北隨州孔家坡磚瓦廠西漢墓M8      785支
1、日書 2、曆譜 3、木牘(其中有告地策)
2001《文物》第9期有介紹;2004文物出版社《新出簡帛研究》有介紹

2000年 天津薊縣劉家壩鄉大安宅村古井(漢/魏)  木櫝1枚
1、道家方術文書
2000年9月24日《中國文物報》有簡介

2000年 甘肅武都琵琶鄉趙坪村漢簡    12枚
1、屯戍類簡
2003《文物》第4期

入藏年不詳 香港中文大學藏簡    共259支
1、書籍簡 楚 10支
2、日書簡 西漢 109支
3、奴婢廩食粟出入簿 西漢 69支
4、遣策 西漢
5、序寜簡 東漢 14支 1996《傳統文化與現代化》第6期
6、河堤簡 東漢 26支
7、松人解除木牘 前涼 1支
2001香港中文大學出版社《香港中文大學文物館藏簡牘》,香港

2001年 陝西西安南郊杜陵西漢墓M5   木櫝1枚
1、《日書·農事篇》  
2002《陝西歷史博物館館刊》第9輯,2005《收藏》第1期

2001年 甘肅高臺駱駝城前涼(胡運千)墓M5   木牘1枚
1、衣物疏
2003《考古》第6期

2002年 重慶雲陽舊縣坪漢遺址      20餘支,5支有字
1、記事等
2002年8月16日《中國文物報》有簡介

2002年 湖南龍山里耶鎮戰國古城J1   36000餘支
1、官署檔案
2003《文物》第1期有介紹

2002年 甘肅玉門花海畢家灘(前涼、西涼、後涼)墓    木牘9枚
1、衣物疏
2004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2003》有介紹

2002年 江蘇連雲港海州區雙龍村漢(淩惠平)墓         木牘1枚
1、衣物疏
2002年7月23日《新華每日電訊》有簡介

2002年 湖北棗陽九連墩楚墓M2      1000支
1、漆圖   
2003《考古》第7期有介紹

2002年 河南信陽長台關楚墓M7      數量未詳
1、遣策
2004《文物》3期有介紹

2002年 山東日照海曲西漢墓M106等墓      數量未詳
1、曆譜 2、遣策
2003年2月12日《中國文物報》有簡介;2003《文物世界》5期有簡介

2002年 江蘇泗陽大青墩西漢泗水王塚   數十枚木牘
1、遣策
2004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2003》有介紹

2002~2003年 湖北荊州岳橋岳家草場及印臺六座西漢墓    700餘支
1、文書 2、卒簿 3、曆譜 4、編年記等
2004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2003》有介紹

2003年 甘肅安西縣九墩灣漢代烽燧遺址        35支
2005文物出版社《中國考古學年鑒2004》有介紹

2003年 湖南長沙走馬樓湖南省供銷大廈西漢井J8    1萬餘支
2004年2月18日《中國文物報》有介紹

2003年 湖南郴州蘇仙橋下東門口龍門池古井J4(漢末三國)   500餘支,100餘支有字
2004年3月3日《光明日報》有簡介

2004年 湖南郴州蘇仙橋下東門口龍門池古井J10 (西晉)      700餘支
2004年3月3日《光明日報》有簡介

2004年 安徽天長安樂鎮漢墓    32枚木櫝
1、內容爲地理、醫藥、戶口、賬目
2005年6月15日《中國文物報》有介紹

2004年 江蘇南京皇冊庫遺址(吳~西晉)    40餘支
1、名刺、簽牌、米糧交納、道教符簶等
2005《書法叢刊》第3期有介紹

2004—2005年 廣東廣州南越國宮署遺址南越古井J264   100餘支
1、官署檔案
2005年7月20日《中國文物報》有介紹

此外,上海博物館(第二批楚簡)、湖北考古所、荊州博物館、甘肅考古所等單位亦有數量不詳藏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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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字迹無法辨識者

1975年 陝西咸陽馬泉西漢墓        3支
1979《考古》第2期有介紹

1978年 山東臨沂金雀山西漢(周寬等)墓M11、M13     8枚木牘
1、衣物疏
1984《文物》第11期有介紹

1983年 山東臨沂金雀山西漢墓M28     1枚木牘
1989《文物》第1期有介紹

1985年 江蘇儀征煙袋山西漢墓         26枚木牘
1、衣物疏
1987《考古學報》第4期有介紹

1989年 湖北江陵九店楚墓M411         2支
1995科學出版社《江陵九店東周墓》有介紹

1992年 河南洛陽淺井頭西漢墓CM1231    木牘1枚
1993《文物》第5期有介紹

위진남북조시대는 사대부들만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시작이 되는 조조때만 해도 사대부들을 오히려 무시하고 오직 재능만을 통해서 인물을 뽑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차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관직에 임명하게 된다. 왜 재능이 아닌 가문 중심으로 돌아왔을까?

다름이 아닌 부폐 문제 때문이었다. 명성이 있는 사대부 집안에서는 어릴 때부터 유교적인 사상을 교육(세뇌)시켰다. 그리고 유교적인 사상으로 인하여 도덕적인 관념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대부 가문에서 관직이 맡게 되면 거의 비리가 없는 반면에, 재능만으로 뽑혀온 하층 사대부나 평민들에게는 다양한 비리가 보인다. 물론 이러한 사대부 중심의 관직 임명은 나중에 엘리트 주의를 불러오게 되며, 나라가 약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모든 일은 어느 "적당히"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오른다.

 

지금 현재 한국에서는 모두가 돈을 이야기 한다. 모두가 능력을 이야기 한다. 도덕은 일단 뒤로 밀어두고 있다. 하지만 나라의 안정은 능력에서 오는 것보다 도덕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재능은 나라를 발전시킬지는 모르지만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나라의 발전일까? 아니면 나라의 안정일까?

물가가 오르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집값이 오르며, 일자리가 없는 것은 나라의 안정과 연관이 있는 사항이라고 여겨지지 아니한가? 한국! 그 크기에 비하여 정말 많이 발전하였다. 일단 그 동안 너무나 빠르게 달려오면서 남겨놓은 숙제들을 풀어야 할 때이다.

 

한 사람으로서 돈에 미쳐 있는 한국 사회가 "적당히"을 하기를 바라며 도덕을 소리 높여 말해 본다.

图文:嫦娥一号所摄的月球“万户撞击坑”

 

 

중국국가항천국은 오늘 창어1호의 위성 CCD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된 달 뒷변 사진을 공개하였다. 해당 지역은 뒷면 남위 9.8도 서경 138.8도의 지역을 직경 52KM의 크기로 촬영하였다. 해당 지역은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이로서 창어1호 사진에 대한 신빙성 논란이 없어질런지...혹은 더욱 가속화 될려는지를 지켜봐야겠다.

百度国学

http://guoxue.baidu.com/

 

바이두 국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얼마나 많은 고문들이 있습니까? 철학쪽으로는 도덕경, 논어, 시경...역사쪽으로는 25사로 시작되어서 다양하게 분화되는 여러가지 고문들. 이러한 고문들에서 무엇인가를 찾을때 너무 불편하지 않았나요? 이제는 쉽게 검색하세요^^

바이두 국학은 2006년 1월부터 공개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완벽한 정확도는 바랄 수 없습니다. 검색을 하다보면 고문들의 오타가 보입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번체자가 아닌 간자체로 되어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냥 번자체로 검색창에 입력해도 간자체로 자동 번역되니 간자체를 모르신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사고전서"와 같은 곳에 접속하기 상황이 힘든 분들은, 특히 한국에 계셔서 중국의 서비스를 사용하기 힘드신 분들에게는 방대한 중국의 한문서적에서 원하는 단어를 쉽게 찾아내는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보통 학교의 사고전서나 요즘 나온 중국기본고적을 이용하지만 학교 밖에서 이용이 힘들때에는 바이두 국학에서 찾고는 합니다.

 

해당 사항은 중국관련 학문을 하시는 분들에게 매우 유용한 싸이트가 되리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북경대학교에서 최근 개발한 "중국기본고적"이라는 사고전서 3배에 달하는 무식한 데이타베이스가 한국으로 수출이 되기 전까지 매우 유용한 싸이트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 중국기본고적의 인스톨과정에서 "한국어" 선택항목이 있더군요. 아마 수출할 마음이 있거나, 이미 수출 계약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중국기본고적은 이제 막 북경대학교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데이타베이스만 301G 였던가요-_ 상당히 괜찮은 시스템 같아 보이더군요.

 

网友贴图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 경기장!

网友贴图

그 앞에 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장 !

网友贴图

 

 

10일 눈이 내린 것은 좋았지만, 너무 날씨가 꾸질꾸질 해습니다 그러나 11일 날씨가 아주 맑았답니다. 단 어제 내렸던 눈은 이미 녹았더군요. 그리고 갑자기 너무나 추워졌습니다. 베이징에 계신 분들! 여러모로 고난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타지에서 감기 걸리지 말고 잘 버텨 보자고요!  한국에 계신 분들도 감기 조심하셔요^^

百度财经

 http://finance.baidu.com/

 

중국 검색의 최강자 바이두가 재정 전문 검색 주소를 열었습니다. 한마디로 저 곳에서 검색을 하게 되면 재정관련 사항들만이 나오게 됩니다. 재정관련분야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곳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谷歌拼音输入法升级,最新版本: 1.1.25.47

 

구글 핑인입력기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새로운 버젼은 더욱 빠른 입력속도를 자랑합니다. 또한 더욱 강력한 유행어와 정확한 중국어문구를 구성해줍니다. 또한 영어와 중국영어혼합이용시에 생기느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사실 쓸모가 없답니다. 구글 핑인입력기는 기본적으로 자동업데이트를 지원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저의 구글 입력기가 아직도 옛날 버젼이라는 것이죠. 일단 기다려봅니다. 수동으로 업데이트 하는 것은 귀찮기에^^::

# 구글 핑인 입력기에 대해서 더 자세하기 하시고 싶은 분은 제 블로그 검색창에 구글 혹은 입력기라고 적어주시면 됩니다. 몇개 중국어 입력기에 대한 정보와 구글 입력기에 대한 정보를 적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정확하게 12월 10일, 베이징에 눈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설경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북경대학교입니다. 위의 사진은 북경대학교의 상징?!인 보야타(博雅塔)의 모습입니다. 저도 찍기는 하였지만 날씨가 너무나 안 좋은 관계로 인터넷에서 찾아서 가지고 왔습니다.(참고로 올해 사진은 아닙니다. 올해는 저 앞에 흉물스러운것이...)  이상하게 막아놨더군요.-- 그냥 삭제해버렸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추후 보충하겠습니다.)

IMG_1091 

제가 수업을 자주 듣는 북경대학교 역사과 고대사연구센터입니다. 예전의 원림(园林)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경대학교에서 오래된 거의 대부분의 건물이 예전의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북경대학교를 다녔다는 사람들도 잘 모르거나, 와본적이 없는 변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흔히 북경대학교라고 하면 미명호(未名湖)까지만 오시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 북쪽으로 더 가시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좋은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자신이 길치라고 생각하시면 절대 오시 마십시오. 여기서 뱅뱅 돌면서 헤매시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IMG_1090

수업하는 가는 길입니다. 걸어서 대략 10분에서 15분이 걸리는 여정이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은 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의 자태를 뽑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북경대학교에서 본과를 나왔다는 중국학생이든 한국학생이든 이곳으로 와보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북경대학을 배낭여행 오시는 분들은 꼭 오셔서 한적한 한때를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북경대에 다시는 학우 여러분! 귀찮다고만 하지 마시고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 너무 귀차니즘에 중독됐어! -_-+


 IMG_1088

여름에 커플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을 장소가 눈이 내려 조금 슬퍼보입니다. 하지만 내년에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을 기약하며 살포시 눈이불을 덮어봅니다.



# 전 어디까지나 독립계정을 가지고 있어서...트랙픽 문제상 3장의 사진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 무지막지 싫은 걸요.

湖南出土距今30万年以上的石制砍砸器[组图]

30만년전의 석기 제작도구

제작도구의 발견 지점.

 

12월 5일, 고고학자들의 현장 검증을 거쳐 중국 후난성 시앙탄현(湘潭县杨嘉桥镇蛟托村)에서 3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제작도구(뗀석기 - 石制砍砸器)가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시앙강 유역의 인류 활동은 기존의 20만년전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부정되고, 30만년전에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떠오르게 되었다.

 

바로는 고고학을 잘 모른답니다. 石制砍砸器을 한국어로 뗀석기 제작도구라고 해야될거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네요. 어찌되었든 고석기 시대에 석기를 제작하는 도구입니다. 위에 보이는 단단한 돌에 다른 돌을 붙이쳐서 도구를 만드는 것이죠.


중국에는 거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퇴근"을 하면서 BMW를 모는 "거지?!"들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적선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들을 익혀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직업도 아닌 거지들도 노력을 해서 돈을 벌어야된다는 점에서 지금 현재의 세상의 각박함을 살짝 느껴보면서!!

머리에 붓을 매달아 놓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붓글씨를 쓰면서 구걸을 하는 방법은 중국에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저런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분필같은 것으로 보도블럭에 쓰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도 보고서 화들짝 놀란 기술이군요.

저희가 주목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저기 놓여져 있는 빨간 통입니다. 사람들은 저곳에 돈을 넣게 되는데요. 중국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통은 저렇게까지 큰 통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대체 저 "거지?!"분은 하루에 얼마를 벌까요? 왠지 1000원(10만원)은 그냥 넘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긴 제가 거지에게 적선을 하려고 할 때 여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너보다 거지가 훨신 더 잘 벌껄!"(젠장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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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사항은 위의 링크를 클릭해보시면 됩니다.


중국관련 뉴스가 있을런지 의문이군요. 하하하;;;
(하지만 이 방식은 너무 불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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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티즌들의 의혹!

아래쪽 사진은 미국이 찍은 달 사진입니다. 그리고 위쪽의 사진이 창어 1호가 찍은 달 사진입니다. 물론 같은 위치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달사진 오른쪽 운석충돌구가 하나인 반면에 창어 1호가 찍은 사진의 충돌구는 2개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보입니다! 레드썬!) 그렇다면 가능성은 세가지 입니다. 미국의 달 사진 촬영 이후에 운석이 충돌했을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창어 1호가 사진을 찍은 뒤, 해당 사진의 처리를 제대로 못 했을 경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어 1호는 아예 달 사진을 찍지 못했고, 마음대로 만들어낸 사진일 경우입니다.

 

창어 1호의 책임자 오우양찌위엔(欧阳自远)

 

중국 네티즌이 제기한 의혹에 대하여 이번 창어 1호의 책임자인 오우양찌위엔은 "말 할 가치도 없다" "달 사진의 진위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은 우리 국가에 대한 모욕이며, 17000명의 연구원들이 내 놓은 성과에 대한 부정이다"라는 강력한 발언을 했습니다. 창어 1호는 분명히 달 주변을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아직도 믿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오우양찌위엔의 발언에 대해서 매우 강도높은 비난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날린 위성에 대해서 왜 우리가 적당한 해명을 듣지 못하느냐!" "과학자라는 사람이 해당 의혹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다니! 기본적인 과학자로서의 소질이 없다" "중국 정부가 중국 인민을 한 두번 속였느냐? 어찌 믿으라는 것이냐! 가까운 예로 중국CPU 사건도 있지 않느냐!"

 

중국 CPU 사건

상대교통대 교수와 상대교통대 미전자학원원사, 그리고 상해 실리콘 저작권 무역 센터의 실질 책임자 천찐이 2002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서 10개의 MOTO-freescale“56800CPU”를 사와서 위에 적혀 있는 상표를 지우고, 그 위에 汉芯(중국 CPU)라고 적은 사건을 말합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국가적 프로젝트였고, 개발에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지만......

 

중국의 창어 1호는 과연 달에 갔을까요? 달에 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연구원들이 사진처리를 잘 못 한 걸까요? 혹은! 미국의 달 사진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거의 가능성이 없지만 미국의 달표면 촬영이후에 새로운 충돌구가 생긴 것일까요? 정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답니다.

단지 한국인들이 주의해서 보아야 될 점이 있다면, 국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물론 화난호랑이 사건이 얼마전에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모습과 그런 믿지 못한다는 말을 인터넷 덧글로 올리는 현실입니다. 참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두가지 모습입니다.

天津高校应届毕业生招聘会爆棚[组图]

12월 8일, 티엔진에서는 취업박람회가 열렸습니다. 해당 행사는 티엔진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졸업생과 연구생들을 위하여 티엔진시 교육센터에서 거행한 취업박람회였습니다. 총 7000개의 자리에 3만여명의 학생들이 몰렸습니다. 해당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중국도 취업난이 심해 보입니다. 하.지.만.

天津高校应届毕业生招聘会爆棚[组图]

한국에서 취업난이 심하다고 하여도 3D 업종에서는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보셔도 됩니다. 중국에서 대학생이나 연구생이 되었다는 것 자체로 이미 엘리트로 인정받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서 대략 40%만이 대학교로 올라가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월급과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이런 취업행사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북경대학의 경우...제 대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취직을 하지 않는 인간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자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군요. 월급이 짜다나요? 어차피 이 인간들 오라는 곳은 많이 있습니다. 명색이 북경대학이니까요. 단지 지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안가는 것이죠. 그리고 몇몇은 이미 회사를 만들거나 가계를 열더군요.

公司广告上让孔子老子穿西装当模特(图)

 

얼마전 중국 남창시의 양복브랜드 앞의 광고판에 양복을 입은 공자와 노자가 출현을 하여,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며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해당 회사는 현재까지 공자와 노자를 이용하여 양복을 선전한 것은 최초이며, 매우 창의적인 생각이라고 자평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많은 시민들이 해당 광고판에 대해서 상업 규울과 도덕을 지키지 않고, 중국의 전통문화를 파멸시키는 행위라고 소리 높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소성의 해당 관원도 중국 전통인물에 대한 이러한 행위는 아직 관련 법규가 없지만 규탄 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하여서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바로가 보기에 아이디어는 최고입니다. 양복을 입은 노자와 공자라...하하하....저희가 언제부터 양복이 품위있는 옷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결혼식장이나 면접을 보러 가면 당연히 양복을 입고는 합니다. 한복도 양복 만큼이나 품위있는 옷인데 일상생활에서는 접할 수도 없고, 명절때나 혹은 아직도 남아 있는 사대부가 어르신들이나 입고 있지요.

예전처럼 입기 불편하고 가격도 비싼 한복이 아니고, 이미 개량 한복이 많이 나온 와중에 이렇게 양복만을 숭배하는 현실에 대해서 살짝 고민해 봅니다. (저도 여름이면 개량 한복 입고 다니는데, 같은 한국분들에게는 미친넘 소리를 듣는 답니다. 음하하하하....개량한복 입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얼마나 편안한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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历史学系第四届研究生学术论坛

主办: 北京大学历史学系

承办: 北京大学历史学系研究生会

北京大学历史学系学生会

2007年12月9日

2007129

上午

800830 参加会议人员签到(静园二院历史学系)

830900 开幕式

主持人:历史学系研究生会主席王浩同学

历史学系学术委员会主席阎步克教授致辞

历史学系党委书记王春梅教授致辞

900945 李剑鸣教授主题学术报告:美国革命与民主问题

9451000 会议集体照(静园二院草坪),茶歇

10001200 第一时段分组报告与讨论

中午

12051330 午餐(吉野家工作餐)

下午

13301530 第二时段分组报告与讨论

15301545 茶歇

15451745 第三时段分组报告与讨论

17501810 闭幕式:

主持人:历史学系学生会主席谢婷同学

历史学系副系主任刘浦江教授总结发言

1830 晚宴(艺园二楼桌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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巴黎色情禁书办展览 大厦夜现

12월 4일부터 프랑스 국가 도서관에서는 "야설" 도서전이 열렸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가 도서관은 150여년동안 비밀리에 보관해오던 춘서작품과 야설금서등을 전지해서 프랑스의 야설 문화의 발전을 되돌아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해당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계속됩니다. 위의 사진은 어린이들에게 보여줄수 없다는 의미의 "X"라 표시가 국가 도서관 밖에 형상화되어있습니다.

 

사실 위의 정보는 해당 그림을 올리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무한도전 전에 유일하게 챙겨보던 X맨이 생각이 나더군요. 아.....엑스맨!!! 그립습니다. 개인적으로 앤디를 닯았다는 소리를 100만년에 한번씩 듣는 저로서는 앤디 짱! (먼소리인지;;)

 

12월 7일, 북경 모질라 회사에 의하면, 파이어폭스와 바이두(중국 최대의 검색서비스)가 협력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이제 모든 중국어판 파이어폭스에 바이두 검색이 내장됩니다.

 

사실 중국판 파이어폭스에는 이미 바이두 검색이 내장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협력관계가 됨으로 인하여 파이어폭스는 바이두의 협력을 얻어서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으며, 바이두의 입장에서도 구글을 견제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바이두와 정식으로 협력관계를 맺기 이전에 파이어폭스는 구글과 야후등의 여러 인터넷 싸이트와 공고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글과의 관계는 부부관계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구글은 파이어폭스를 통해서 에드센스를 홍보했으며, 또한 모질라 재단에 매년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 모질라재단 CEo는 구글과의 협력관계는 파이어폭스와 다른 회사와의 협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협력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바이두가 모질라재단에 기부금을 낼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하여 모질라의 자금은 더욱 공고해지고 다양화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파이어폭스에서는 아직도 구글이 기본 검색기로 등록이 되어있으며, 사용자는 검색기를 바이두로 변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직도 구글과의 협력이 더욱 공고함을 알려주는 표시같지만, 이번 바이두와의 협력으로 시장의 20%이상을 점유하는 파이어폭스의 앞날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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