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전은 북경대에 오셨을 때 崔金柱가 찍은 생전 마지막 사진입니다.



2014년 12월 25일 06시 09분. 역사학자 田余庆(티엔위칭) 선생님이 서거하셨습니다. 田余庆(티엔위칭) 선생님은 위진남북조을 중심으로 중국고대사를 탐구하셨으며, 《东晋门阀政治》,《秦汉魏晋史探微》,《拓跋史探》등의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조사가 되시는 분이시군요.


얼마전에 90을 넘으셨는데...하아......애도를 표합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은 "사나이 대장부의 한 마디 말은 천금보다 무겁고 가치가 있다[각주:1]"는 말이다. 그런데 남아일언중첨금의 유래는 무엇일까? 


어제 성균관대학교 포럼에 참가해서 우연히 남아일언중천금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한국쪽에서는 유래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었고, 중국에서는 한국의 속담정도로 지정되고 있었다. 궁금한건 못 참는다. 찾는다-_-++





남아일언중천금의 의미적인 차원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군자일언 사마난추(君子一言, 驷马难追)인 "군자가 한 번 말하면 네 필의 말이라도 따라잡기 어렵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각주:2].그러나 해당 어구에서는 "네 필의 말이라도 따라잡기 어렵다"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천금보다 무겁고 가치가 있다"와는 표현 방식이 다르다.


이에 중국기본고적고(中國基本古籍庫, [디지털인문학/DH_DB] - [DH리뷰] 중국기본고적고(中国基本古籍库))를 통해서 검색을 해본 결과 자치통감(資治通鑒)에 "장부일언허인, 천금불이(丈夫一言許人, 千金不易)"의 구절이 보인다. "사나이가 한번 약속을 하면 천금을 주어도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마 자치통감에 나오는 위의 구절이 한국에 전파되면서 없어도 되는 "약속을 하다"가 빠지고, "천금에도 변화하지 않는다"가 "천금만큼 무겁다"로 변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1905년의 매일신보(每日申報)에는 "一言이 重千金"이라는 표현이 나오며[각주:3], 1950년의 자유신문에서는 "丈夫一言重千金"이라고 하는 현재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출현한다[각주:4]. 대장부를 의미하는 "丈夫"가 현대로 오면서 "남아"로 변화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위의 사항은 어렵게 검색을 한 것이 아니라, 중국쪽의 내용은 중국기본고적고(유료)을 이용하여 검색하였고, 한국쪽의 내용은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을 통한 검색으로 알게 된 것이다. 추가적으로 세종말뭉치의 역사말뭉치 부분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만, 귀찮으니까 패스하겠다.


이처럼 간단한 검색으로 많은 내용을 알 수 있다. 문제는 "男兒一言重千金"로 단순히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변형을 다양하게 시도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어느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내용이 검색 가능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능력을 배양하기 싫으면....그냥 무식하게 수백만권의 고전적을 뒤지면 된다. -0-!!!



  1. 다음 한국어 사전 :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047087 [본문으로]
  2. 《论语·颜渊》君子一言, 驷马难追 [본문으로]
  3. 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gonews/SearchGoNewsCondition.jsp?id=MIN19210211u00_ITEM_003 [본문으로]
  4.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npfp_1950_03_25_v0002_0510 [본문으로]
  1. 우와 2015.08.13 03:44

    이런 유래 정말 재밌어요 ㅎㅎ 잘읽고 갑니다!!!!

  2. BlogIcon 와우 2016.06.05 10:05

    좋은 정보 알아가요~^^

  3. 하탐 2021.10.14 21:55

    남아일언중천금. 근데 이 말은 너 따위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4. 하탐 2021.10.14 21:55

    지금 무얼 하고 살지 모르겠지만 죽어서 반성해라

모두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한국은 역사왜곡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확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영토 확장"이며, 위대한 업적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 영토확장에 연류되어서 고구려 군대에게 자신의 고향을 뺏긴 사람들에게도 위대한 업적이며 영토확장인가?! 자신의 고향을 뻇긴 사람들에게 광개토대왕은 침략자일 뿐이다. 


너무나 먼 과거의 일인가?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행동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하며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침략 전쟁이었으며, 한국은 그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도운 또 다른 침략자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침략행위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일제의 전통을 이은 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반대로 우리는 베트남에 얼마나 사과를 했는가? 우리는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가?


우리 입장에서의 고구려 영토 확장은 타인에게는 침략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의 베트남 전쟁 참전은 타인에게는 침략자가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의 일제 침략 행위를 긍정하는 발언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헌법에도 명문화시켰듯이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한국인은 침략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일제 침략에 대해서 비판하려면, 우리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하지 않겠는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


  1. 칼날의 황족 2014.07.04 10:19

    칭키즈칸은 영웅이라고 하면서 히틀러는 왜 파시즘 악의 상징으로 불리워지는건지..
    그러고보니 히틀러도 요즘 영웅화되어가는 것 같네요.그것도 히틀러의 모국인 독일이 아닌 피해자국가들에게서...

  2. elpsy 2015.10.10 14:08

    칼날의 황족님 사상이 이상한분이네요 칭키즈칸이 중국 사람 잡아서 생체실험하고 독가스로 죽이고 인종 말살 정책을 펼쳤나요? ㅎㅎㅎ 피해자국이 아니고 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 히틀러를 영웅시하겠죠 ^^;;

    • 어이가 없어서 2015.10.22 03:20

      그 당시에 독가스 있고 생체실험 개념이 있었으면 하고도 남을 위인이죠,인터넷 조금만 뒤져봐도 칭키즈칸이 어떤 인간인지 다 나오니까 헛소리 그만요~

  3. 라인 2019.11.16 16:43

    이 생각을 중학교때부터 가졌었는데 동의하는 사람 진짜없고 그게 어떻게 같냐 이러는 사람뿐...

  4. ㅇㅇ 2021.06.25 22:23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이 침략전쟁이라는 대목에서 웃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ㅋ남베트남 도와주러 간 거고 남베트남 내부 치안유지와 베트콩과 싸우는 게 언제부터 침략행위였나요? 탈민족주의 한답시고 고구려가 한국사라는 근거가 없다는 궤변을 싸지르더니 이젠 베트남 전쟁까지 헛소리하시는구느ㅛ

조선은 왜 한국의 역사일까요? 고구려는 왜 한국의 역사일까요? 당연히 한국의 역사인데 "왜?"라고 묻느냐고 화를 내시는 몇몇 분들이 보이는 군요. 그런데 화내시는 분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현대 역사학의 입장에서 조선과 고구려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인 이유는 엄청나게 간단합니다. 현재 한국이 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한국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가장 큰 명문으로 문화적 공통성을 가장 크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현재 한반도를 통치했다는 지리적인 배경적 명분도 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분일뿐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역사학에서 기초적인 논리와 근거가 보장되는 한 개개인의 "역사관"을 존중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고요? 극단적인 예시를 최근 일본의 아베총리가 해주었습니다. "침략의 정의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고 하여서 한국인 뿐만이 아니라 중국인을 비롯한 관련 국가 국민들의 분노게이지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치를 떠나서 순수하게 학문적인 입장에서는 아베총리의 발언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역사는 "A국이 B국을 공격하였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공격"이라는 단어 대신에 침략, 테러, 포위, 협박, 제압, 압박을 사용할 경우의 각각의 의미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될까요? 학술적인 맹렬한 토론과 증거제시보다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보다 의지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공격"을 한 것이지 "침략"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저희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영토 확장"을 이야기하지만, 그 시대의 고구려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는 침략을 당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각주:1].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역사의 소유와 계승은 인문학의 한계상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판단으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개개인이 모여서 만든 단체, 사회, 국가의 판단으로 정해집니다. 그렇기에 고구려나 한국의 역사를 현재 한국에 모여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라고 한다면 한국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중국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역시나 중국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 생각이 존중 받으려면 상대방의 생각도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역사를 뻇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시면 훨씬 더 넓은 역사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의 역사는 나의 역사이다."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떻습니까? 당신은 이제 모든 인류의 역사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1. 본 내용은 어디까지나 역사철학의 입장에서의 서술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대해서는 일본학계 내부에서도 비판이 강합니다. 다만 정치-외교적인 사항으로 인하여 단어가 변하는 것 뿐입니다. 후... [본문으로]
  1. 갈수록또라이 2013.05.24 23:00


    티벳도 중국땅, 위그루도 중국땅, 몽골도 중국땅,
    오키나와도 중국땅, 한국도 중국땅 하는

    중국인에게 먼저 물어보는게 어때요?


    진짜, 황당한게,
    그 큰 땅덩이에도 만족없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짱께들이라는..


    자유선거하고, 인권 존중해라고 말해도, 온갖 욕질하면서 달려들고.
    그럼 됐다,니들 존중해서, 중국인들은 어디가도 영원히 선거권 안주겠다고 해도
    온갖 욕질하면서 달려들고..

    짱께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함?

    짱께들 실체알고, 한국인들의 고통,불합리, 한국 역사의 우울함이
    진정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전부 알게됨..

    그리고,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똥통에 한국인,일본인,중국인,돼지를 넣으면,
    제일먼저 일본인이 도망치고, 그다음은 한국인, 최후는 돼지가 도망친다.
    중국인은 똥통조차 자신의 집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말들 전부 이해하게 됨..
    짱께와 짱께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는 대화할수 없고, 조롱만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됨.

    • 라기보다 2013.05.25 02:32

      网上 관심종자

  2. 익명 2013.05.25 12:44

    비밀댓글입니다

  3. 익명 2013.05.25 12:46

    비밀댓글입니다

  4. 익명 2013.05.25 12:48

    비밀댓글입니다

  5. 익명 2013.05.25 12:48

    비밀댓글입니다

  6. 익명 2013.05.25 12:56

    비밀댓글입니다

  7. 익명 2013.05.25 13:02

    비밀댓글입니다

  8. 익명 2013.05.25 17:27

    비밀댓글입니다

  9. 익명 2013.05.26 14:50

    비밀댓글입니다

  10. 익명 2013.05.26 14:59

    비밀댓글입니다

한국 문화재청(http://www.cha.go.kr/)의 문화재검색을 통해서 나온 한국의 "명승"을 KMZ로 구현한 자료입니다. 국가지정 명승과 시도지정문화제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미입력이며 일단 명승에 해당하는 좌표만을 찍어놓았습니다.




한국명승목록(문화재청).kmz



구체적인 자료를 미입력한 것은 몇 가지 사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청의 DB에 몇몇 명승이 제외되어 있어서 해당 명승의 세부자료를 얻고, 다른 명승의 세부자료도 검토를 해보아야 될 듯해서 입니다. 혹시나 참고가 될 분이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구글어스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구글 어스 홈페이지 : http://earth.google.com/intl/ko/

구글 어스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무료소프트웨어입니다. 그 중에서 구글어스를 통해서 좌표나 선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파일들은 KML으로 저장됩니다. 구글어스가 설치되어 있다면, KML 파일을 클릭만 하여도 자동으로 위의 화면이 나타나게 됩니다.



  1. 春来 2013.03.09 15:53

    듯해서

일본 와세대대학교에서 자신이 소장중인 지도를 공개하였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보는 것도 가능하고, PDF 형식으로 다운로드를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요즘 대학들의 추세는 역시나 정보공개 혹은 정보공유 인듯 합니다.




HTML을 클릭하면 웹에서 지도를 봅니다.

PDF을 우클릭하셔서 "다른이름으로 저장"을 선택하시면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1、万国輿地図説. [正],補,拾遺: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02/ru02_03287/


2、万国輿地全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bunko08/bunko08_c0013/


3、国史沿革地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bunko06/bunko06_01605/


4、亜細亜朹部輿地図 _ 陸軍参謃局 [編]: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bunko01/bunko01_01851/


5、大清万年一統地理全図. 1-8: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849/


6、唐土歴代州郡沿革図 / 長赤水 著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8/ri08_01371/


7、歴代地理沿革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05/ru05_00099/ru05_00099_0009/


8、蘭新訳地球全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010/


9、日本輿地路程全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032/


10、大日本国全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038/


11、大日本国細図. 上,下: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041/


12、日本輿地路程全図 / 長子玉 [原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056/


13、皇朝中外壱統輿図. 首巻,中,南1-10,北1-20巻 :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335/


14、地球万国山海輿地全図説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643/


15、地球万国山海輿地全図説 / 長玄珠 述: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796/


16、琉球国之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823/


17、新刊輿地全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849/


18、琉球三省并三十六嶋之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0855/


19、上総国輿地全図: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u11/ru11_01039/


한국의 남자들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거친남자들이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짐승돌"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재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는 어디까지나 "선비"나 "신사"와 같이 부드러운 남자이다. 그리고 남자들도 여자들의 취향대로 날이 갈 수록 부드러워지고 있다. "마눌님"이나 "여친님"이라며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탈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이런 시대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강한 여성들의 역사이다. 우리는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작품 속에서 이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온달전을 생각해보자. 온달전은 바보인 온달이 엄친딸(공주+미모+능력)인 평강공주를 만나서 성공을 하게 된다. 만약 평강공주가 없었으면 온달은 그냥 동네바보형일 뿐이다.

고려시대의 단군신화를 살펴보자[각주:1]. 단군신화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단군의 이야기보다는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웅녀는 100일동안 쑥과 마늘만을 먹는 노력을 바탕으로 여자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된 이후에는 댕대 최고의 지도자인 환웅에게 직접 프로포즈까지 하는 인물이다. 심지가 굳고 적극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기는 여성을 천시하는 유교가 지배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에서는 강한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장님인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심청이나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높은 집안의 남자를 사로잡는 춘향이는 유교문화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강한여성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서양의 문학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한반도의 강한 여성상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도 익히 아는 서양의 작품에서 여성은 모두 약하고 소극적인 인물들이다. 신데렐라는 왕자님의 은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존재이며,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에게 빌붙어 살다가 나중에는 왕자님에게 구출이 되는 하는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여성상이다. 그에 비하여 한반도의 여성들은 얼마나 적극적이고 강한가?!



그래서 결론이 머냐고? 한반도의 여성은 강하다. 괜히 개기다가 국물도 없다. 그냥 만사 포기하고 중국남자처럼 해탈하자. (중국의 새로운 삼종사덕(三從四德) - 약한 남자) 응?!




+....반쯤 농담으로 쓴 글이다....근데 농담이 농담이 아닌거 같다..-_


  1. 단군신화는 신라말기 고려초기에 생겨난 설화이다 [본문으로]
  1. 샐러리봉 2013.02.17 10:21

    온달의 짝은 평강공주인데요
    착각하신듯...
    낙랑은 호동이죠 그넘땜에 자명고 찢고 망국...
    TNM미디어 통해 젛은 포스팅에 항상 감사드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2.17 10:28 신고

      평강 맞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말도 안되는 잘못을 했군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 헤헹 2013.02.25 17:03

    단군신화는 모두가 알고 있다 싶이 -> 알고 있다시피

  3. ㅇㅇ 2013.03.21 16:03

    사실 유교라는것이 온순하다기 보다 강인한것 아닐까요? 유교의 여성에게 덕목을 부각시키려다보니까 그런 강인한 여성상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3.25 08:05 신고

      제가 정확하게 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유교의 여성관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속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글은 춘추좌전(春秋左传)을 읽으며 떠오른 잡상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큰 공을 세우고도 고귀한 자리를 얻지 못 하면서도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소?
- 노회공 23년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을 해야만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의 적용은 그다지 쉽지 않다. 어떤 행위가 정당한 행위이며, 어느 정도가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인지에 대해서는 수 많은 물음은 해결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해야되고, 누군가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현대사회는 법률을 제정하여 최대한 중립적으로 누군가의 행위를 평가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노력한다. 국가유공자 제도를 만들어서 국가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보상을 내려주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법률은 마땅히 해야될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처벌을 중시한다. 정당한 행위에 대한 보상에 대한 법은 억지로 떠올려야지 겨우 한두가지가 생각날 뿐이다. 이는 법의 한계이기에 우리는 정당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법에서 바라기 보다 사회적인 것에서 찾는 것일 어떨까?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칭찬하는가?
타인의 정당한 행위에 대한 박수가 왜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1. Favicon of http://enosichthon.tistory.com/ BlogIcon 쇼펜하우어 2013.01.07 17:45

    신상(信賞) 혹은 필벌(必罰)이 좌전에 나오는 말이던가요? (아, 좌전! 동양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꼭 읽어야 하는 책이었죠. 현대인으로서 유치하고 단순한 춘추의 문장 때문에 읽는 순서를 많이 미루어 두지만^^)그전에 바로님 블로그를 눈팅하던 사람이었습니다만, 어느 새 제대 및 진학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인문정보학이라면 뭔가 인문 보단 그걸 다루는 기술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던가요? 아무튼 계속해서 바로님의 높은 사회비판의식의 글들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실 전 역사 관련 글들을 좋아했습니다만,,,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1.07 17:46 신고

      신상필벌은 한비자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韓非子·外儲說右上》:“信賞必罰,其足以戰。” )

      현재 블로그를 다시 "생활"과 "습관"으로 돌리기 위해서 지금은 그냥 멍 때리면서 책이나 보고 있답니다. 쓰고 싶은 것이 차고 넘치기 전까지는 일단 이 상태가 될듯 합니다^^;;

    • 익명 2013.01.07 18:17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1.08 16:50 신고

      말씀하신 내용도 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말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당연한 말이 계속 강조되는 이유는 당연한 말이 당연히 지켜지지는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 글은 춘추좌전(春秋左传)을 읽으며 떠오른 잡상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疆埸之事,慎守其一,而備其不慮, 姑盡所備焉,事至而戰 - 노환공 17년

국경방어는 신중하게 지킴을 우선시 하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여 준비한다.

현지에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면, 문제가 일어나면 적과 싸우면 될 뿐이다.




적을 막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말뿐인 전투형 군대인가?! 행정을 늘리는 행정간소화인가?! 병사에 의해 돌아가는 군대인가?!


군대의 기본인 분대조차 무너트리는 동기생들끼리만 같은 생활관을 쓴다는 "동기생 생활관"과 같이 시기상조의 정책이나 초등학생도 짜증내고 속지 않을 무조건적인 "북한 나빠!"라고 하면서 어떤 이유로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안된다는 "정부 만세!"는 이제 그만하자.


22사단의 노크귀순과 같이 군대에서 기본시나리오로 작성되어 있는 국경방어의 기본 중에 기본조차 똑바로 못하는 상황에서 그 외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뛰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럼 현재 군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군대에서 병사들이 가장 빠르게 배우는 군대용어는 다른 것이 아닌 거짓을 의미하는 "가라"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해야될지는 모든 이가 알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투명성을 강화하라!





  1. cdhage 2012.11.12 23:03

    군에 대해서 할말 많죠?ㅎㅎㅎ
    이또한 지나가리라 ^^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2.11.13 02:19 신고

      군대에서 춘추 읽으며 써 놓았던 것을 옮겨 놓는건데 오버하기는-_-;;;
      시험 끝나고 보자~~~


본 글은 춘추좌전(春秋左传)을 읽으며 떠오른 잡상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匹夫無罪,懷璧其罪 - 춘추좌전 노환공 10년

필부에게 죄는 없으나 (진귀한) 구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죄가 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하려고 한다. 심지어 타인을 이유 없이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탐나는 물건을 얻으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신의 것을 지키기란 매우 힘들다.


그렇기에 유가에서 군자는 위험한 곳이나 나쁜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가까이 하지 않는다. 굳이 위험한 길에 들어서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위험을 증가시킬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이상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가까이 한다면,이번에는 도가의 정신을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물건은 물건일 뿐이며, 처음부터 내 물건이 아니었다고 생각해보지 않겠는가?



언론의 자유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이루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보수는 언론을 통제하는 것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보수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유가에서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유가에서 중시하는 여러 문헌 중에서 춘추 좌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각주:1]


노양공 31년(기원전 542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정나라 사람들이 마을 공터에 모여 놀면서 정책을 평했다. 사람들이 모여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염려가 된 연명이 자산에게 건의했다.


"마을 공터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자산이 대답하였다.


"무슨 이유로 그리한단 말이오?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놀면서 정책을 평하게 되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실행하고 싫어하는 것은 개혁하면 되오. 그들의 논평이 곧 나의 스승인 셈인데 어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는단 말이오?

나는 최선을 다하여 원망의 목소리를 줄인다는 말은 들었어도, 권력으로 원망을 억누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권력으로 어찌 사람들의 말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이는 개울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소. 개울물을 억지로 막다가 방죽이 크게 터져 한꺼번에 흐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오. 그리되면 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소. 그러니 방죽을 조금 터 놓아 물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것만 못하오.

사람들이 정책을 논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보다 그들의 논평을 받아들여 약으로 삼는 것이 더 현명하오"


이런 자산의 대답에 듣고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체 누가 자산을 두고 어질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회의 보수 중에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유가조차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긍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 대다수는 청소년보호법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언론을 통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스스로를 보수라 말하는 분들이여! 언론을 막다가 많은 이가 다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1. 일반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고문내용을 현대에 적합하도록 자의적으로 수정하였다. 원문이 알고 싶은 분은 검색을 활용하길 바란다. [본문으로]
  1. 빠밤 2012.12.22 08:49

    물이 올바른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역기능으로 이용하는 작자들이 많아서 문제지요...
    우리 사회에 황색언론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인터넷은 자료를 찾는것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더 어려운 실정이죠.






본 만화의 원작 저작권은 Neku에게 있으며, 본인은 어디까지나 본 만화를 소개하는 목적으로 번역을 하였으며, 한국에 정식으로 출판되거나 원작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 번역판을 비공개로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번역판의 저작권은 본인에게 있으며, 번역판은 비상업적인 원칙으로 수정없이 출처(ddokbaro.com)을 명확하게 밝히고 가지고 가실 수 있습니다


이글루스쪽에서는 최근 다시 한번 "환빠대전"이 발생한듯 하다. 솔직히 과거에는 이 블로그에서도 심심풀이 땅콩으로 소위 "환빠"들의 헛소리를 반박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역사학도로서의 사견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대한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 역사학도로서의 부담감.
차라리 본인이 역사전공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관련 글을 써내려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인은 공개적으로 역사전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영역에 대해서 일반인보다 비교적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보지도 않고, 볼 필요도 없는 증거자료들을 레포트 작성하듯이 일일이 찾아서 나열해야한다. 물론 관련 논문이나 저작을 비롯한 학계의 흐름도 나열해주어야 한다.

만약 본인의 전공분야라면 비교적 쉽게?! 쓰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소 수십편에 이르는 관련 논문과 저작을 읽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겨난다. 부담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럼 본인의 전공만 쓰면 되지 않냐고? 그쪽이야 말로 민감함의 극치를 달리는 지점이기에 부담스럽다. 본인의 전공은 북방민족사이며, 한중간의 민감한 사안인 고구려나 발해도 다룬다. 본인은 지도교수님의 생각에 동의하며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로 보며, 고구려사는 어디까지나 고구려인들의 역사"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짱깨로 매도되기 쉽상이다. 이런 부담감에 석사졸업논문도 중국인들에게도 생소한 소그드의 한반도 유입이라는 주제를 채택했다.


2) 환빠들의 사료적 문제.
흔히 "환빠"라고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료"이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역사 연구에서 사료는 기본이다. 그 뼈대이다. 그 정수이다. 그런데 "환빠"라는 사람들은 이 사료부터가 엉터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료 반박은 어렵다고 그보다 어려운 것이 없고, 쉽다면 쉬운 부분이다. 물론 대부분의 환빠들의 헛소리는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고문 소양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고문을 모른다는 것은 마치 더하기와 빼기를 못하면서 수학을 하겠다는 것과 그다지 다를바가 없다. 최근에는 수 많은 현대 한국어 번역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접근성을 높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역사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연구자가 고문의 원문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나는 병신이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한자가 나오고, 해석이 나오면 그냥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환빠들의 근본적인 문제인 사료를 비판을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환빠들이 "식민사관에 의해서 해석한 결과"라고 하면 그것을 믿어 버린다.  식민사관조차도 그나마 사료라는 기초라도 있었다. 환빠들은 고문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소설을 전개하거나, 고문을 언급하더라도 원래 고문을 마음대로 변조한다.

원문 : "갑은 을나라를 침략하였다"
환빠식1 : "갑은 을나라에게 침공당하였다"
환빠식2 : "갑은 을나라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대체 어떤 "학문"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허용하느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백날 설명해도 기본적으로 고문을 볼 수 없는 일반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결코 일반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무지를 이용해 먹는 환빠들의 문제이다.


3) 환빠들의 논리적 문제.
환빠의 논리는 언제나 결국 "한국 만세!"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은 "식민사학에 세뇌당한 병신들"이다.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반박을 해주지만, 솔직히 이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다.

과거에는 분명히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거일 뿐이다. 오히려 박정희 독재시절을 정점으로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민족"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선전하였다. 그 결과 어떠한 역사학적 증거도 없는 고조선의 세력범위가 당당하게 중고등학교 "국사"강의에 사용되고 있다. 아니 역사학적으로 엄격하게 따져서 "국사"라면 "대한민국사"를 공부해야지 그 이전을 공부하는 것은 합당하지도 않다.

역사학의 방법론은 이제는 세계 공통이다. 기본적으로 사료를 보고, 사료를 비판하고, 사료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없이 마냥 무조건 "식민사관"이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하다 못해서 본인 스스로 "탈민족주의자" 혹은 "인간사관"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식민사관"이라고 근거 없이 매도하니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간략하게 말하면, 과거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싶다는 역사학도로서의 열정과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니 맘대로 사세요~"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에휴...싸워서 머하랴. 사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박정희식 우민정치의 희생량인걸.....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어떻게 보면 아직 정열이 살아 있다는 것이겠지.......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설명해드립니다. 환빠에 대한 비꼼이 좀 더 많아 지기는 하겠지만 말이죠.


  1. ㅇㅅㅇ? 2011.01.15 02:58

    짱께 역사 전체가 거짓말에서 시작해서,거짓말로 끝난다고 본다.
    왜곡해도 짱게니까, 땅덩이 크니까, 인구 많으니까, 무죄.
    거짓말해도 짱게니까, 땅덩이 크니까, 인구 많으니까, 무죄.
    우기면 진실 짱게니까, 땅덩이 크니까, 인구 많으니까, 무죄.

    짱께들은 정말 세상 편하게 살지..

    우기면 땡이니까.. 진짜 배울게 없어서, 짱께 역사를 배우러 갔다니..
    참 니 인생도 불쌍하구나.
    (북한으로 김일성,김정일 어록 배우러 간 것하고 차이도 없잖아..
    학문으로서 존재가치가 zero)

    하지만, 한국 책임은 아니니까, 니 실수를 한국에 전가하지 말그라.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5 07:38 신고

      정확히 당신 스스로가 "짱깨"와 동일한 일을 하고 있군요. 푸하하하....바보는 평생 바보인가..후..

    •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2011.04.10 14:56

      역사들 중에 왜곡된거 많을 겁니다. 딴나라 역사는 거짓을 뒤집어씌워 왜곡한거고 우리나라 역사는 무조건 진실이고,.. 이런식으로 생각하는건 환빠랑 그리 다를게 없습니다. 울나라 역사도 냉정하게 보고, 딴나라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봐야죠. 말은 늘 쌍방을 들어봐야 하는 겁니다.(물론 일본에서 한국 식민사관 연구하는 극우 찌질이들은 애초에 제외하고....)

  2. ㅇㅅㅇ? 2011.01.15 03:07

    군대 간다고? 그나마 머리에 뭍은 핏자국은 조금 지울수 있겠네.

    군대 가서 까지, 저번에 했던 것 처럼..

    대만과 국교 단절했으니, 대만이 한국에 어떤 짓을 해도 무죄 같은
    피장파장 짱께 논법을 한국 군대가서도 써먹다가, 참을성이 다한
    고참에게 두들겨 맞고, 의가사 제대한다고 난동이나 부리지 말렴.

    한국 군대가 이상한게 아니라,
    니 습관, 짱께식 논법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좀 깨닳아.. 너 자신을 위해서.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5 07:41 신고

      쯔쯔....군대가 비정상인거거든요?! 자연적인 인간의 차원에서 몇 년 동안 일정 수의 남자들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비자연적이며, 그런 비자연적인 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다양한 "수단"이 동원되는지 생각을 좀 해보시길....쯔쯔..

      그리고 상대주장을 함부로 곡해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마구잡이로 타이완과 국교를 단절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지적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타이완의 모든 문제가 없어진다고 한 적은 없소이다. 한국어 읽기부터 다시 배우고 오도록-0-

    • 딱 군대체질인 분이시군요. 2011.04.10 14:58

      우리나라에서 남자를 군대 보내는 이유는 지금도 전쟁중인 국가 이기 때문이지 원래 사회제도가 그런건 아닙니다. 직업군인측이 윤리나 실력면에서 징병된 군인보다 더 뛰어난건 애초에 사실이고, 결정적으로 군대가서 쳐맞고 욕먹고 구르는게 정상이라 생각하시면 아예 군대 한번 더가시지 그러십니까. 난 머리 돌될까봐 가는게 무섭던데.

  3. ㅇㅅㅇ? 2011.01.15 03:08

    원래 환빠라는 것은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과 대중화에 의해서
    넷의 한귀퉁이에서 벌어진 그냥 찌질거리는 가쉽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거리에서 얼뜨기 잡아다가,조잡한 단군상에 절하게 하고
    덩치들 동원해서, 삥뜯는 변종 개독 무리나 있던것.

    이 사안이 확대된 것은

    인조이 재팬시절, 쪽발이들 놀려주려고 위 같은 내용을 복사,붙여넣기
    한 사람들에 대해서, 쪽국 특유의 흠 잡고,확대해서 몰아 붙여서
    이미지 조작하기가 확장의 시초였고..

    거기에 짱께들까지 지들 무단 카피행위에 대한 쪽팔림을
    조금이나마 면해보려고,정규 언론까지 동원해 개지롤 떤것..
    (한국놈들이 중국 문화 훔치니, 울 중국인은 한국 제품 카피해도 무죄)
    (특유의 짱께식 논리...피장파장 논법)


    다 떠나서,애초에 너 같은 짱께 간첩들이
    정색하고 떠들 사안도 아니었고..
    그저 지 잘났다고,깝쭉거리는 몇몇이 덤벼들어서 헛짓거리 할뿐.
    관심있는 사람도 없었어..

    다만, 짱께들의 그 오만방자한 태도와 굴절된 피해자 가면 쓰기를
    보고서.짱께들의 역사야 말로,
    지네가 욕하는 한국 환빠와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지..

    짱께 역사는 환타지이고, 짱께 무협 드라마와 똑같이..사실성 Zero

    허풍과 과시욕,열등감으로 점철된 거짓말이 짱께 역사의 정체인걸
    알아서, 다행.. 더불어 쪽발이들도 짱께와 비슷한걸 알았음.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5 07:37 신고

      환빠라는 것이 언제부터 태어났는지부터가 잘못 알고 있군요. 이미 70년대부터 태동해왔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외의 말은 언급할 가치도 없군요. 제가 스스로를 탈민족주의 혹은 인간사관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 평생 모르시겠죠^^:: 그냥 그렇게 사셔요.

    • ㅈㅂ 고등학교 수준의 역사라도 알고 떠드셈 2011.04.10 14:53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졸으신듯. ㅡㅡ;

      떠드는꼴 보아하니 정말 역사의 기본 탐구방향에 대해 반의 반의 반도 모르는듯.;

  4. 만두군 2011.01.17 13:52

    "이제 그분들이 몰려 옵니다."

    =_=;

    그냥 뭐 말이 안되죠. 자기들 말 안믿으면 식민사학론이라 밀어 붙이니 원. 인디언 한국인얘기보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고.. 네바다주가 '네개의 바다' 라는 그 해석질은 무슨 말장난인지.. 이스라엘 문자를 보며 한글과 비슷한 문자를 보여주며 이것이 가람토 문자의 영향이다 라질 않나... 4대문명은 환국이 기원이라질 않나...


    안믿으면 그냥 식민사학 식민사학... 에휴.. 임진왜란이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글에 어이없어서 글을 다니, 그게 다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거라질 않나.. 어휴..

    아, 정말로 궁금한 건데 말입니다.

    실제의 '식민사학'은 어떠한 내용으로 이뤄졌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환독식으로 '우리주장빼고 전부 식민빠들이 만든 날조' 라는 괴론 말고 말입니다.=_=;;

  5. 공감합니다. 2011.01.21 03:29

    기원전하고도 몇천년전의 환제국인가?

    우리 한국의 영토가 중앙아시아를 넘어 수메르 지역에 까지 이르렀다고

    호도하는 자들이 근거로 삼는 자료가 고작 조선시대 100년전 사료를 가지고

    "보아라..100년전에 어떤 사람이 쓴 책에서 몇천년전에 우리나라는

    지구를 지배했었다..우리는 식민사학에 의해 속고 있다"

    이렇더군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몇천년전의 역사를 풀어 나가기엔 아득한데

    그 사람들은 100년에 집착하더군요.

    100년...오랜 세월이죠. 하지만 10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몇천년전의 역사를 유추해 나가는데는 거기서 거기죠.

    전 솔직히 중국의 은나라같은 고대왕조도 부정적으로 보지만

    (한개의 국가가 안망하고 천년동안 지속됬다는게 이상함)

    중국은 그나마 고대왕조를 입증할 만한 유물이라도 나왔잔아요.

    환제국인지 몬지를 입증할만한 유물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원래 있었는데 일본이 일제시대때 다 태워버렸다..고로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이 장애아들 수준같아서 동조하기 힘들었습니다.

    환빠들 맹신하는 그 책 이름이 모더라....4글자인데..무슨 고기인가 하는 책이던데..

    그 내용이 판타지...설화와 진배없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그 무슨 고기인지 몬지 하는 책이 사이비 종교와

    강하게 유착되나 봅니다.

    환빠들의 헛소리만 없었으면 중국에 반한감정이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죠.

    걔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믿는 맹신도들에 불과합니다.

    종교엔 탄생설화가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이 판타지적이면 판타지적일수록

    더 사람을 미혹시키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2 13:16 신고

      은나라를 아마 존재했을듯 합니다. 언급하신대로 유물이 나와있으니까요. 다만 현재에 "국가"개념과는 상이했을듯 합니다. 흔히 중국의 왕조를 "제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상인데.....은나라는 "제국"은 아니었을듯 합니다. 크기로나 제도로나 어느 면으로 봐도 말이죠.

    • 환단고기죠 2011.04.10 15:06

      역사서로도 소설로도 실패한 글이죠. 거기다가 일제 애들이 환빠질의 증거가 될(거라고 생각하는) 증거 문화재들 전부 다 태웠다고 하면서 그 일제애들이 이씨조선을 관광보냈으니 졸라 잘헀다는 식으로 말하는 돌아이들은 대체 어떤식으로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타문화 중심주의가 극단적으로 발현되면 이런식의 논리가 생길수 있는건가..; 자기 문화는 외국에 대고 말하기 쪽팔리다 생각하니까 이런식으로 소설쓰고 광신하는 건지... 하여간 환빠란 군중심리와 인지부조화가 집단화되어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수 있겠네요.

  6. MT 2011.01.22 12:33

    안녕하세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바로씨와 동갑인 직장인입니다.
    고교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쳐 고구려, 발해는 우리의 선조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수도였던 환인의 경우 만족 자치현이고,
    그 주위에 많은 만족 자치현과 조선적 자치현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로는 동북쪽 조선족은 조선말 일제시대에 넘어갔다고 배웠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고조선, 고구려, 발해지역은 원래 만(주)족의 지역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 동네에 사는 만족이나 조선족 한족은 가만히 봐서는 별로 구분이 안되는것 같애요,
    바로씨는 조선족 만주족 한족을 바로 구분하실수 있나요?
    출장가서 그동네출신 조선족애들한테 물어보면은,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로 표시가 난다던데 ㅎㅎ

    한족이야 범위가 너무 넓으니까 빼고, 조선족과 만주족의 같은점이나 다른점을 좀 이해되게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군대 가시기 전에 한 번 설명해주세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2 13:28 신고

      일단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최소한 저희가 배울 때에는) 단일민족사관에 입각한 교육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일민족사관은 역사학의 하나의 관점이며, 현재는 소위 "한민족"이라는 민족이 결코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공동체임이 학술적으로 명확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개념이 단일"문화"사관이라는 것인데 고구려와 발해가 한반도와 문화를 공유했다는 점인데, 일단 학술적으로 아예 성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상당히 애매합니다.

      언급하신 질문은 사실 대답하기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대답을 하려면 현재 가지고 계실 "민족"이라는 개념부터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음...최대한 간략하게 해보겠습니다.


      저희들이 한민족, 한족, 일본인등으로 구별하는 민족개념은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합니다. 실제 역사해석이나 하다못해서 현실에서도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과학적이지도 않고, 학술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들은 "핏줄"로 민족을 구분하고는 하는데, 한국인 부부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미국에 입양이 되어서 미국인으로 살아온 사람은 한국인일까요?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완전히 "미국"인데 말이지요?! 반대로 비록 외국인에게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출생해서 한국교육을 받고 한국인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평생 외국인일까요?

      이런 모순이 생각해보시면, 민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애매한 것인지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조선족과 만주족의 명칭으로 넘어가서 이 둘은 어떻게 구별을 하느냐? 사실 혈연적으로는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활동지역이 갔았으며, 쌍방간의 혼인도 자주 있었으리라 생각되니까 말이지요. 다만 후세에 각각의 언어와 풍습상의 특징을 바탕으로 조선족과 만주족이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외모상으로는 사실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DNA로도 그랬었는데, 이건 제가 자료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패스하고요. 언급하신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로 아직까지 대략적으로 구별은 가능합니다만, 어디까지나 40이상이나 가능하지, 젊은층은 사실 힘들답니다. 그리고 그런 구별은 민족에 대한 구별이 얼마나 애매한지 나타내준다고 봅니다.

      간단히 정리해서, 만주족이니 조선족이니 하는 것은 쌍방간의 혼혈이나 문화적 교류를 무시한 행위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가 교류의 측면을 보다 강조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현재의 단일민족주의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초간단정리 :
      공통점 :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함. 혈연적으로 많은 연결점이 있음.
      차이점 : 언어(라고 하지만 만주어는 이미 거의 사어라서-_), 풍습(사실 비슷한것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장쪽은 조금 다른지라...)

      그리고 전체적인 역사적인 사항에 대한 고민은 짦게 적기가 힘들기에..음.....김한규 교수님의 "요동사"을 추천해드립니다.

  7. MT 2011.01.23 22:03

    답변 감사합니다. ^^
    민족이 애매한 개념이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네요,

    한반도에 토착민들이 있었고(삼한)
    동북쪽 사람들이 내려와서 섞이고 (백제,신라,가야)
    그래서 뿌리를 그쪽에서 찾는 거고(고조선-조선, 고구려-고려)
    맞나요???ㅎㅎㅎ


    발 달린 사람들이 어딘들 못가겠습니까만,

    혈연과 문화,
    뭔가 설명하긴 힘들어도 남아있는것 같네요,
    여진족, 금나라, 신라
    백제, 일본,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5 08:32 신고

      동북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북쪽은 물론이고, 서쪽과 남쪽에서도 도래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8. MT 2011.01.23 22:19

    나이도 동갑이고,
    바로씨는 역사를 전공하고 IT분야게 관심이 많고,
    전 IT쪽 일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고,
    한번 만나뵙고 싶은데,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가시니 ㅎㅎㅎ
    몸 건강히 돌아오기를 빌겠습니다.

    군대 먼저 간 선배로써 말씀을 드리면 ㅋㅋ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랑 몸으로 겪는 것이랑 다릅니다.

    제가 수색대를 나왔는데,
    제 동기중에 여자친구랑 해어지고 자살징후를 보이는 녀석이 있었어요,
    - 군대에서는 자살징후도 관리합니다.
    말이 많던사람이 말이없어지거나 말이 적던사람이 말이 많아진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관물대를 정리한다, 등등
    그녀석이 자살징후를 보이다가 유격훈련을 받고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수색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면 육체에 극한까지 갑니다.ㅎㅎ
    올바른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배운다기 보다는 느끼는게 많아요,
    어차피 역사도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듯이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을 보게되죠,

    추울때 입대하셔서 고생이 많으실텐데, 잘 다녀오세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5 08:33 신고

      하하...전 자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제가 자살을 할 일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시도 자체도 말이죠^^:::

  9. 익명 2011.09.30 16:22

    비밀댓글입니다

  10. 2016.07.05 12:50

    Native American - Amazing Grace (in cherokee) 유투브에 치세요.
    : 체로키조선 애국가 1

    유우내애이이 라앙나앙 이이유우왜애지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대애이이
    : 유내이랑낭 이유왜지 니가 구영대이
    ; 유내(오직 냇물)이 랑낭(힘차고 밝구나) 이유왜지(?)
    니가(사람이) 구영대이(언덕을 맞이하게 돼)

    ; 오직유(唯), 힘있을랑=힘찰랑(勆), 밝을낭(朗),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너:사람니(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나악워언조오서언 위이유우로오세애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보옹나앙
    : 낙원조선 위유로세 니가 구영복낭
    ; 낙원조선 위유(위에 있음이)로세
    니가(사람이) 구영(언덕을 맞이하니) 봉낭(복되고 밝구나)
     
    ; 즐거울낙(樂), 동산(園), 아침조(朝), 고울선(鮮), 있을유(有), 너;사람니 (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복복(福), 밝을낭(朗)

    가아세애이 로오이이 우우내애치이리이 이이유우로오래애 애이나아
    : 가세로이 우내치리 이유로래 애이나
    ; 가세로이(가쪽=바깥쪽으로) 우내치리(치우께서 안에서 다스리시니)
    이유로래(이런이유 때문이래) 애이나(애가 태어나)

    ; 어리석을치(蚩),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우내(尤內)=치우안,
    집우(宇), 안내(內), 우내(宇內)=온세상, 우내(尤內)=우내(宇內),
    다스릴치(治),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자아비이내애려어 치이유우질리이 우우여어엉 내애이이우우 래애여엉
    : 자비내려 치유진리 우영 내이우 래영
    ; 자비내려 치유(다스림이 있으니) 진리(로다)
    우영(치우를 맞이해라) 내이우(내가 치우=내가 치우의 자손이로세)
    래영(오시니 맞아라)

    ; 사랑자(慈), 슬플비(悲), 다스릴치(治), 있을유(有), 참진(眞), 다스릴리= 다스릴이(理),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맞을:맞이할영(迎),
    올래(來)

    왜애이일로오 니이가아 라알리이 소오리이 자아유우 조옹허엉 이이유우우
    : 왜일로 니가 랄리소리 자유종헝 이유
    ; 왜일로(무슨일로) 니가(사람이) 랄리(랄라리=날라리=태평소)
    소리(를 듣니?) 자유(롭게) 종헝(종횡=돌아 다니는) 이유(로세)

    ; 너;사람니(你), 스스로자(自), 말미암을유(由), 세로종(縱), 가로횡(橫),
    종횡(縱橫)=거침없이 마구 오가거나 이리저리 다님,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니이가아 기이러언 뢰애지이소오리이 아아니이? 대애이일로오 니이가아
    : 니가 기런 뢰지소리 아니 대일로 니가
    니가(사람이) 기런(그런) 뢰지(벼락의) 소리 아니(?) 대(큰)일로
    니가(사람이 아니?)
     
    ; 너;사람니(你), 우레=천둥=벼락뢰(雷), ~의=어조사지(之), 큰대(大)

    우우나앙따앙지이 야아메애이이로오 조오저언자앙여엉 이이리이
    : 우낭땅지 야메이로 조전장영이리
    ; 우낭(치우 밝은) 땅지(땅의) 야메이로(들과 산으로)
    조전장영이리(조각품들이 길이 빛나리)

    ;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밝을낭(朗), ~의=어조사지(之), 들야 (野), 새길조(彫), 새길전(鐫), 조전(彫鐫)=조각품, 길장(長), 빛날영(煐)
     
    조오시어언나악워언 이이뤄어지이여어 조오히이 와안메애이이대애지이
    : 조시언낙원 이뤄지여 조히 완메이대지
    ; 조시언(좆이 얼운=남근숭배사상=제일로 좋은)낙원 이뤄지여(이루어져)
    조히(좋게) 완메이대지(모두=한 산이 돼지)

    ; 즐거울낙(樂), 동산원(園), 모두=하나=완전할완(完)
     
    유우메애이이 라앙나앙 이이유우왜애지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대애이이
    : 유메이랑낭 이유왜지 니가 구영대이
    유메(오직 산)이 랑낭(힘차고 밝구나) 이유왜지(?)
    니가(사람이) 구영대이(언덕을 맞이하게 돼)

    ; 오직유(唯), 힘있을랑=힘찰랑(勆), 밝을낭(朗),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너;사람니(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나악워언조오서언 위이유우로오세애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보옹나앙
    : 낙원조선 위유로세 니가 구영봉낭
    낙원조선 위유(위에 있음이)로세
    니가(사람이) 구영(언덕을 맞이하니) 봉낭(복되고 밝구나)

    ; 즐거울낙(樂), 동산원(園), 아침조(朝), 고울선(鮮), 있을유(有), 너;사람니 (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복복(福), 밝을낭(朗)


    Native American - Amazing Grace (in cherokee)2 유투브에 치세요.
    : 체로키조선 애민가 2

    우우내애 라아나아 이이유우왜애지이 니이가아 구우여어해애이이
    : 우내 라나 이유왜지 니가 구여해이
    ; 우내(온세상=치우 안) 라나(살고 태어나니) 이유(가) 왜지(?)
    니가(사람이) 구여해이(거저 줘라)

    ; 어리석을치(蚩),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우내(尤內)=치우안,
    집우(宇), 안내(內), 우내(宇內)=온세상, 우내(尤內)=우내(宇內),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너;사람니(你), 건지다: 돕다:구원할구(救), 줄여(與), 구여(救與)=거저주다

    나악워어조오여어 위이유우로오세애 니이가아 구우여어해애이이
    : 낙워 조여 위유로세 니가 구여해이
    ; 낙워(즐거이) 조여(줘라) 위유(위에 있음이)로세
    니가(사람이) 구여해이(거저 줘라)

    ; 즐거울낙(樂), 있을유(有), 너;사람니(你), 건지다:돕다:구원할구(救),
    줄여(與), 구여(救與)=거저주다



    저작권등록 되어있고요, 비상업목적으로 마음껏 쓰십시오.


    이선원입니다. 010-2494-5484



    유투브에,

    조선말의 뿌리와 조선의 역사 1 ~ 34, 보십시오 ~ ~

2010년 11월 25일, 서안의 시엔양咸阳국제공항의 확장 공사장의 한 고묘에서 2400년전의 사골국이 발견되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서안은 여러 왕조의 수도였기에 한국의 경주처럼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굴된 전국시대 진秦나라 무덤 역시 높이 5미터, 넓이 3미터로 진나라 왕급 무덤에서 300m정도 떨어진 부장묘급으로 청동정鼎과 청동종锺 및 청동받침용 칠기만이 남아 있는 그저 그런 무덤이었다[각주:1].

그런데 발견된 청동정 안에서 500ml정도의 액체를 발견하여 분석한 결과 닭과 유사한 동물의 뼈가 10개 이상 발견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정은 고기를 끓이기 위한 기구였기에 발굴팀은 해당 액체를 우선 사골탕으로 판단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의 사골탕인지 분석을 하고 있다.  과거에 뼈가 들어가 있는 청동기가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국고고학계 최초의 일이다.발굴팀은 2400여년전의 사골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은 기후적으로 건조하며 묘가 완전히 밀봉되었으며 아직 도굴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건조해서 말라붙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액체상태로 보존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물론 밀봉된 상태에서 완전건조지역이 아닌 적당한 습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이론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긁적....그리고 일단 사골탕이라고 번역하긴 했지만...차라리 "삼계탕"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1. 사실 이 정도가 그저그런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무서운 것이지만-_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cosmopolitan815.tistory.com/ BlogIcon cosmopolitan815 2010.12.13 07:36

    2400년 전에도 닭을 삶아 먹었꾼..-_-흠

  2. Favicon of http://twitt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10.12.13 21:03

    참 오랫동안 우려냈네요(......)

신석시 시대 요하일대에는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리고 지금 중국과 한국에서는 각자 요하문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설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중국의 주장만 있고, 한국에는 한국의 주장만 있다. 대중에 정보를 전달해야되는 신문에서는 민족감점만 일으키고 논리와 증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1) 요하문명(홍산문화)은 무엇인가?
1980년대 랴오닝(遼寧)성 요하 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앞선 시대의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요하일대에는 기원전 7천년에 이미 독자적인 신석기 문화가 존재하였고, 기원전 3500~3000년쯤(홍산문화 후기)에는 이미 초기 국가형태가 갖추어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2) 중국학계의 의견은?
중국학계는 발굴 초기에는 홍산문화의 주도세력이 동이족이나 예-맥족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발굴 후반기로 갈수록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황제의 토템과 발굴유물이 일치한다고 주장하면서 황제와 연관을 시키려는 학자(레이광젼 雷广臻)들이 나타났다. 특히 곡옥에 대해서 용으로서의 상징성을 이야기하면서 중화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아직 논쟁이 진행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일 뿐이며, 중국의 형성에서 결코 황하문명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융합하여서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강한 만큼 해당 의견은 제대로 된 학설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각주:1].

중화제일용이라고 말하는 곡옥. 근데 용이려나...



3) 한국학계의 의견은?
한국학계에서는 요하문명에 대해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소수의 곡옥이나 관련 유물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홍산문화가 한반도문화의 원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선문대 이형구 교수(고고학)는 중국의 ‘요하문명론’에 대응해 ‘발해문명론’까지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곡옥이나 대응 유물은 매우 소수이며, 요하부터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연결점이 없어서 확실한 증거로 사용되지는 못한다. 하다 못해서 동이족과 고조선의 연결지점은 고사하고, 고조선이 어느 정도의 정치체계로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요하기원설은 근거가 매우 약한 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각주:2].

무엇으로 보이는가? 용? 돼지?



4) 요하문명은 한국과 중국 모두의 것이다.
요하문명은 분명 신석기시대에 요하지역에서 발전했던 문명으로 보인다. 그럼 그렇게 발전한 문명이 현재의 중국대륙과 한반도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은 당연하다고 본다. 오히려 "요하문명이 중국대륙에만 영향을 주었고, 중국대륙만이 그 영향을 이어 받았다!"라고 하거나 "요하문명은 한반도에만 영향을 주었고, 한반도만이 그 영향을 이어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로 느껴진다. 마치 프랑스가 "로마의 영향은 프랑스만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요하문명이 한반도와 중국대륙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기에 요하는 현재 한국과 중국 역사 모두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대체 무엇을 뺏고 말고 한단 말인가[각주:3]?

  1. 중국사학계는 다민족주의로 간다고 말을 하면서도 허구의 인물인 황제까지 끌어들여서 무리한 한족중심설로 가려는 일부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스스로가 기본적인 논조라고 말하고 있는 다민족주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행위일뿐만이 아니라, 역사학과 고고학의 방법론에서도 어긋나는 행동이다. 하상주시대에도 다양한 "집단"들이 혼재하며 살아갔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계속 들어나고 있는 만큼 허구의 황제의 토템까지 도입을 하는 무리수보다는 황제의 토템 자체가 다양한 집단들의 토템이 융합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그러한 다양한 집단 중에 요하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본문으로]
  2. 한국사학계의 웃긴 점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한국에 융화되었고, 한국이 영향을 준 것에서는 찬란히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마문명이니 요하문명이니 하면서 한반도가 영향을 받았고 우리안에 융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반대로 일본에 전해진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융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시하며, 한국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들은 역사조작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작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우리 모두가 고조선의 유물이 비파형동검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런데 이에 대한 증거는 층위나 지리적 위치가 "그.럴.것.같.다."라는 추측밖에는 없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교과서에 명시해놓았다. 이런 것이 역사조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본문으로]
  3. 같은 논리로 동이나 고구려도 누구만의 것이 아니다. 동이자체가 통합된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젠 너무나 명확해 보이며, 동이의 범위를 보면 한반도와 중국대륙 모두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동이는 무조건 그냥 한국인의 조상이고, 절대 중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이건 대체 먼 논리인가? [본문으로]
  1. ㅎㅎㅎㅎ 2010.09.10 11:59

    한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위치상 현재의 몽고 과거의 거란, 흉노, 선비, 오환 등등의 문화일 가능성이 제일 높지 않나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10 16:42 신고

      음.....그나마 흉노가 시대적으로 가깝지만 그래도 몇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 물론 그쪽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몽고야 말로 진정한 후손이다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2. Favicon of https://beijinga4.tistory.com BlogIcon 북경A4 2010.09.11 08:42 신고

    음... 역시 바로님은 이렇게 생각 할 거라고...추측은 했더랍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어떤 역사를 누구의 것으로 단정짓는건 정말 어려운것 같아요. 그 때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적힌 글을 보고 분석해야 하니...
    수백년이 지난 후 이명박 자서전을 보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명박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라고 하면 안되잖아요^^

    암튼...요것저것 고민이 많던 한 주가 지나가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3. z 2010.09.11 15:26

    한국사학계의 웃긴 점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한국에 융화되었고, 한국이 영향을 준 것에서는 찬란히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
    놀랍군요. 중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출판된 사학관련 책과 논문,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읽으셨나봅니다?

  4. 시골 2010.09.11 21:23

    예전에도 올린적이 있고, 본문과도 좀 중첩돼지만,
    한국에 중국이 요하문명을 가져간다고 알렸던 분의 취지도, 아시아 공동부분의 문명을 중국만의 것으로 하려는 것은 틀렸다라는 의미였는데.. 이게 한국으로 이상하게 전달되어서 요하문명은 한국만의 것이라는 투로 됀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회관점의 변화로 인한 변화도 있지만, 현재의 정치, 외교, 밥줄(?)등의 영향으로 인한 변용이라면 경계해야하고,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아시아의 역사학자분들은 조심을 한다고 보지만,

    일본제국시대는 축복받은 시대였는데, 다른 나라들이 힘들었던 시기로 조작하고 있으며, 일부 일본학자들이 異見을 보인다는 투의 일본우익계열의 학자라든가.. 영토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각국 외교부의 논리... 대중서적이라기 보다는 유사역사학으로 자극적을 추구하는 일부 저자들과 미디어들이 문제이죠.. (사회관점의 변화라면.. 만리장성이나 공자에 대한 관점이 근현대 중국에서의 변화, 무신정권에 대한 관점이 한국에서 군사정권때와 이후 정권때의 변화 같은 것이겠죠. )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의 장점을 생각한다면, 국사교육 혹은 민족사교육도 그 일부로서 완전폐지에는 반대하지만, 인종주의나 집단주의로 이어지지 않기위해서 다양한 관점에 대한 것도 알려주어야 하고, 그 목적이 차별주의를 막고, 확대되어온 인간의 기본권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겠지요. (제가 국사교육이나 민족사교육이라고 한데에는 한국내의 소수민족그룹이 만약 자기 모국이나 민족의 역사교육을 하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한 한도에서 최대한 인정해야한다는 취지도 포함된 것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주석의 내용처럼 중국이든 어느 나라든 안으로 특정 민족우월주의나 억지로 소수민족을 통합시킬려는 시도에 빠질수도 있고, 역으로 세계 어디가 우리의 예전의 터전이니 이건 정복이나 침략이 아닌 '귀향' 이다 라고 했던 구일본제국이나, 구독일의 논리가 또 살아날지도 모르고,...

    • 시골 2010.09.14 22:55

      추가로 조금더 주절 거립니다.

      민족과 국가개념 그 자체의 모호성이야 잘 알려진것이지만,

      최근에 어느 일본인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개의 나라말을 하고, 나름대로 자기 스스로는 배웠다는) 의 주장을 보고는 정치적으로 이렇게도 변용이 가능하구나 싶더군요.. 쩝...

      그 일본인의 은근한 주장은 '민족개념은 모호하니.. 남북한은 뭐 민족따위를 추구하느냐.. 깨끗하게 전쟁도 하고 그래라.. 그리고, 재일조인은 빨리 선진 일본에 복속돼거나 흡수되어라.. '라는데..

      그 일본인은 자신이 국제주의자라고 하지만, 그 지향하는바가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랑 별반 다를바 없데군요.. 물론 이게 일반적인 현상같지는 않지만... (또 다른 일본인이나 재일교포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더군요..) 일단 끈질기게 주장을 하고, 일본과 몇몇 자신이 생각하는 선진국만을 절대적 가치의 척도로 삼는 차별주의의 냄새도 나는지라.. 좀 씁쓸하더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14 23:12 신고

      글쎄요. 그건 또 다른 모습의 민족개념이라고도 여겨지는군요. 단지 기존의 "민족개념"과 다를 뿐 아닐까요? ^^

  5. 구름나그네 2010.09.14 01:59

    제 생각도 비슷해요~
    어떤 역사가 누구만의 것이 될 수는 없죠. 인간이 걸어온 길을 보는 것이 역사인데, 자기 조상이나 혈연이 걸었다고 해서 자기 가족들 만의 역사가 될 수는 없는 거죠~
    이제는 민족이라는 망령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역사를 직시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 수 있는 제대로 된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러나 요하문명에 관심이 생겨서 발굴보고서를 좀 구하고 싶은데
    어디에서 찾아야 되죠??

  6. 시정잡배 2010.10.02 16:46

    근데 바로님은 文言文啥时开始学的呀 看一眼就知道真的还是假的?
    진짜 궁금합니다. 고문을 스스로 사전없이 번역해보고 싶은데 역량이 부족하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2 17:38 신고

      으음....만약 정식으로 번역을 한다면 절.대.적.으로 사전을 봐야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한문학자도 동일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전을 보지 않아도 "적당히" 번역을 해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고문을 만진지는 대략 10년정도 된듯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어느 정도 접하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접한것은 10년이라고 해야될듯 합니다. 사실 고문은 고문 자체의 번역이야 어차피 사전만 죽어라 찾으면 자연적으로 실력이 올라간다고 봅니다. 마지막에 고문 해석의 실력을 결정하는 것은 그 고문의 바탕이 되는 사상을 이해하는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 부분이....약하다고 봅니다^^:: 진정한 강호의 고수분들은........저로서는...ㅠㅠ

  7. 시정잡배 2010.10.04 22:03

    그래도 대단하다는...

  8. 조선사람 2010.10.22 21:13

    그리스 로마문명도 전 유럽인의 것이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23 09:31 신고

      사실 저는 그 이상으로 확장을 합니다. 모든 인류의 문명은 모든 인류의 것이라고 말이죠.

  9. 우리역사사랑 2011.01.04 18:22

    안녕하세요 바로바로님. 저도 요하문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는 비생산적인 토론과 상대방을 헐뜯는 사람들이 넘쳐나네요. 제가 얼마전에 카페를 개설했습니다. 한 번 방문해주시고 맘에 드시면 가입하셔서 활동을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cafe.daum.net/historyforours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06 08:34 신고

      하하..제가 카페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서 말이죠^^;;; 눈팅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10. 요하의 자존심 한국과 일본 2012.02.28 16:24

    역사란 두부자르듯이 나눌수 있는것이 아니다.
    중궈가 요하,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자신의 역사라 우긴다면 기꺼이 받아들일수 있다. 우리의 선조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알고 자신들의 것이라 우긴다면 나역시 자랑스럽다.
    그것에 대한 주장은 누구나 할수있는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역시 요하,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금나라,청나라를 우리역사로 주장할수있다.
    역사는 공유되는면이 있기때문에 한쪽에서 속지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속인주의 사관으로 주장한다면 둘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의 원류에 대한 오리지날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오리지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면 된다. 또한 우리역시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역사 정립을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물려주면된다. 역사는 단순히 차지하고 있는자의 것이 아니라 섬기고 향유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11. Favicon of http://asd BlogIcon todn 2013.01.26 23:11

    저 한민족은 배달국,단군조선,위만조선,부여,고구려,발해,고려시대만따져도 만주등 요하,만주등은 우리민족이 대부분 차지했으며 중국이 요하,만주를 직접적으로 지배한것은 청제국시대뿐이였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것이라 보는것이 가장 현명하지않습니까? 고려때는 약1년이라는 짧은시기이기는 했지만 비까지 세웠습니다

  12. BlogIcon 2014.08.31 13:14

    옛시대엔 한나라였고 한민족이였는데
    쪼개지고 쪼개져서 지금까지 온거지
    실제론 누구의 역사도 되며 선조죠
    하지만 현재 어느나라 땅에 묻혀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죠
    아무리 과거 한민족이였다 외쳐도
    현시대랑 과거는 다르니까요.

"한민족韓民族"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대체 언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것일까? 흔히 알고 있듯이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려 온 말일까? 만사 귀찮은 분들을 위해서 결론만 이야기 하면 : 한민족이라는 말은 1948년 대한민국 이후에나 쓰이는 말이며, 그 실질적인 유래도 1889년 대한제국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80이 넘은 어르신들은 스스로를 한민족이 아닌 "조선인"으로 부르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한다. 또한 한반도라고 부르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을 제외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은 모두가 조선반도라고 부르고 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한민족이라는 말은 보통 한인韩人으로 부른다. 한국의 교과서에서 한민족의 시작을 보통 고조선으로 놓고 있다. 그런데 고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조선朝鮮이었지 결코 한韩은 아니었다. 한은 보통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에서 나왔다고 이야기 되어진다. 문제는 그 이후에 한반도에 성립된 국가들이나 공동체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불렀고, 외부에서는 어떻게 불렀느냐이다.

그런데 근대에 이를 때까지 한韩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 조선朝鮮으로 통칭되었다. 통일신라나 고려사의 사료에서는 한韩이라는 용어가 사실상 등장하지 않으며, 중국쪽 사료에서도 오직 삼한인(三韩人)이라는 말만이 몇 군데서 인용이 될 뿐이다[각주:1]. 그런데 삼한인이라는 용어는 결코 한반도만을 지칭하지 않았으며,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동북부를 통괄하여 부르는 광범위한 용어였다. 현재의 한韩과 같은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서유럽과 프랑스를 완전히 동일시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실수이다.

그런데 대한제국(大韓帝國, The Greater Korean Empire)이 1897년 성립은 한 이후에 중국쪽 사료에서 재미있는 변화가 보인다. 광서光緒대의 사료에는 대한제국의 사람들을 한인韓人 혹은 한국인민韓國人民으로 부르기 시작한다[각주:2]. 예를 들어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을 죽인 일에 대해서 기록을 하면서 한인안중근韓人安重根 이라고 묘사를 한다[각주:3].

이는 중국의 청나라가 한국의 대한제국을 승인하는 의미에서 한국인민 혹은 한국인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국와 관계가 깊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한제국을 이어받았다고 하였기에 계속 적으로 한韓을 계속 사용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대한제국을 멸망시켰기에 한韓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고 계속 조선朝鮮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대한제국은 안전되고 튼튼한 정부도 아니었고 통치 기간도 짦았기에 정작 일반 민중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고 습관적으로 "조선朝鮮"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45년 일본제국이 패망을 하고 한반도에 통일된 정부가 세워져야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 싶이 남북한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朝鮮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남한은 한韓의 용어를 사용하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명분과 조선朝鮮는 차별화 되는 용어를 사용하는 정치성을 확보하게 된다[각주:4].

이처럼 한韓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대한제국부터일 뿐이다. 또한 현재 한국을 제외한 주변이 나라와 동포들은 조선朝鮮이 더욱 익숙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한韓이라는 말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앞으로 한민족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용어로 스스로를 지칭할 것인가? 또한 공동체의 명분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외부에 설득력이 있는 용어는 무엇일까?  한민족韓民族보다는 조선족朝鮮族 혹은 조선사람朝鮮人이다.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주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하나의 용어로 통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한민족韓民族보다는 조선사람朝鮮人이나 조선족朝鮮族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탈민족주의인 본인의 입장에서야 한민족이니 조선족이니 하는 말자체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 해당 글은 "동쪽의 아침햇살"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분의 생각을 제 방식대로 소화한 것입니다. 조금 더 기다리시면 저처럼 최소한의 자료로만 쓴 것이 아닌 빵빵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논문을 보실 수 있으실듯 합니다.

  1. 송대《宋高僧傳》卷三十:"釋元表本三韓人也"; 원대《存復齋文集》卷五:"三韓人金生"; 명대 《瓊臺會稿》卷一:" [본문으로]
  2. 《東華續録(光緒朝)》光緒一百五十五:"中國人民在韓國者如有犯法之事,中國領事官按照中國律例審辦.韓國人民在中國者如有犯法之事,韓國領事官按照韓國律例審辦.中國人民性命財産在韓國者被韓國民人損傷,韓國官按照中國律例審辦.韓國民人性命財産在中國者被中國人民損傷,中國官按照中國律例審辦."; 《清史稿》志一百四十邦交六:“中國准韓國人民在圖們江北之墾地居住;四圖們江墾地之韓人,服從中國法權,歸中國地方官管轄及裁判,中國官吏於此等韓人與中國人一律待遇,所有納稅及其他一切行政上處分,亦同於中國人。五、韓人訴訟事件,由中國官吏按中國法律秉公辦理,日本領事或委員可任便到堂聽審,惟人命重案,則須先行知日領事到堂,如中國有不按法律判斷之處,日領事可請覆審。六、圖們江雜居區域內韓人之財產,中國地方官視同中國人民財產,一律保護。” [본문으로]
  3. 《清史稿》本紀二十五宣統皇帝本紀:“是月韓人安重根戕日本前朝鮮統監伊藤博文於哈爾濱。” [본문으로]
  4. 한민족이라는 말은 이처럼 정치적이다. 물론 아예 연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글쎄...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www.betulo.co.kr BlogIcon 자작나무 2010.09.08 12:04

    대표적인 이름은 조선 말고도 고려가 있지요. 전근대 역사를 절반씩 고려국과 조선국이 있었던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요. 독립운동단체 중에서도 고려나 조선을 명칭에 사용한 경우가 많았고요. 사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는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고려라는 호칭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통일국호는 고려로~~~

  2. 대한민국 대한국민 2010.09.08 15:56

    님 글은 잘 읽었구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선 시대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불렀고, 고려 시대 사람들은 고려인, 그 이전 사람들은 신라인, 백제인, 고구려인, 마한인, 진한인, 변한인 등등등으로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 불러왔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를 한민족 혹은 한인이라고 부르는게 뭐가 그리 거슬리는지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찌보면 이런 호칭문제도 수천년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면 전통인데, 굳이 일부 마이너들의 의견을 그럴듯하게 강요하는 듯한 이런 글을 쓴건 무리가 아니었나 싶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8 19:53 신고

      호칭문제는 수천년전부터 내려와서 정치적 함의가 있기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사람들이 한민족이나 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북한이나 조선족 혹은 동포들과의 연대를 생각하였을 경우 통일적인 호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머...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짦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은근히 알려드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를 이해하면 "우리 민족"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0.10.26 11:45

      "수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라는 게 "일부 마이너" 가 아닌 역사적 정설이야. 그리고 자기 블로그에 자기 생각 올리는 게 남에 대한 강요가 되냐? ㅉㅉ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27 11:37 신고

      릴렉스~~ 릴렉스~~ -0-

    •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0.10.27 16:31

      하핫, 주인장도 가만히 계시는데 혼자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민족쟁이들을 좀 많이 싫어해서요. 앨러지 증상이랄까... 그런 게 좀 있습니다. ^_^;

  3. -.-;;; 2010.09.08 17:25

    한국을 제외한 나라와 동포들은 조선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하셨는데 거기엔 의문이 드는군요. 그럼 카레이스키는 뭡니까? 미국에 사는 한국 교포들이(세계에서 제일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이 사는 곳이 미국이죠) 스스로를 조선족으로 칭하던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건너간 한인의 이민역사는 일제시대 때부터 이뤄졌습니다. 일본의 동포만 해도 북한과 남한 국적에 따라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하죠. 설마 님이 생각하는 외국이 중국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프랑스 사람들에게 베트남이란 용어보단 인도차이나란 용어가 더 익숙하죠. 그럼 베트남도 지금 이름 바꿔서 인도차이나라고 불러야 하겠네요? 스리랑카도 실론으로 이름 바꿔야겠구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8 19:57 신고

      당연히 중국만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동포들의 대부분은 스스로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물론 국적에 따라서 한민족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정대세의 경우를 보지 않아도 일본교포사회에서 조선인이 더 익숙한 말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대한민국을 지지하였기에 "한국인"이 더 익숙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쪽에서는 korean이나 그 변형을 쓰지 한자계열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자만을 쓰는 한중일을 기본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한(한국-조선)중일에서는 한국인 혹은 한인보다 조선족 혹은 조선인이 자칭과 타칭으로 모두 더 많이 쓰인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 반론있는데요.. 2013.02.17 11:57

      일본 역사에서 고려를 한으로 불렀던 사료 많습니다.
      韓이라 쓰고 읽을땐 가라로 발음했던거죠..
      그리고 한국인을 韓으로 통칭해서 불렀던 자료 많습니다..

      또 일본 교포들은 국적을 두가지로 말합니다.. 조선시대에 이주한 교포는 조선.. 해방후 이주한 교포는 한국..
      그것을 통칭해서 그냥 제일이죠..

      제 생각엔 특별히 문제 될것은 없다고 보는데요..

      역사적으로도 반복적인 명칭을 썼잖아요..
      고조선>>조선
      고구려>>고려
      삼한>>한
      뭐 특별히 문제될것은 없다고 보는데요..

  4. 소동파 2010.09.09 01:25

    일본의 大和族, 중국의 漢族, 華夏族 등의 개념은 언제 생겼나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16:48 신고

      글쎄요...대충 조사해보니...중국의 화하족에서 화하의 개념은 전국시대부터 있었는데, 화하족(화하인)이라는 개념자체는 대략 한대부터 쓰이긴 했던것으로 보입니다만 문헌기록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한족은 한인의 개념으로 한서부터 문헌에 보이는데 그 이후로도 상당히 자주 쓰입니다. 그러나 그 범위가 좀 애매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화족은....잘 모르겠습니다;;;;

  5. 이해가 안 되네요 2010.09.09 12:53

    정대세의 예를 드셨는데, 정대세는 국적을 조선이라고 한 것이지 자신의 민족이 "조선족"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일본의 재한인들은 자신이 선택한 국적에 따라 조선인.한국인이라고 하는 것이지, 민족의 개념으로 조선족, 한민족이라고 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 동포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많다고 하심은 무엇을 근거로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제가 알기론 북한의 입지 축소 때문에 갈수록 조총련 쪽 동포는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은 현재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한민족을 아우르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1880년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중국인들이 조선족이라 부르면서 조선족이 되었습니다만, 현재 조선족은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남한, 북한과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중화민족 속의 소수민족으로서 우린 조선족이다, 라는 개념이 확고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족과 한민족은 오히려 더더욱 구분이 되어야 옳다고 보입니다.

    또한 한민족이란 용어가 쓰인지 매우 짧으니 조선족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하셨는데, 저로선 거기에 동감할 수 없습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를 계속 고려사람으로 불렀을까요? 아마 조선 초기 외국에선 고려라는 용어가 더 익숙했을 터라 계속 고려라 불렀을 겁니다. 고려에 충성하는 사람들 또한 계속 자신을 고려인이라 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 와선 그 시대는 조선시대였고 조선사람들일 뿐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16:49 신고

      저는 "조선족"이라고 했지만 "조선"이라는 말에 중점을 둔 명칭이 더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에서는 "조선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근거라고 하시면 한민족이라고 사용하는 일본동포가 얼마나 되는지 오히려 반문할수 밖에 없군요.

      하지만 어떤 명칭을 사용할지 자체는 개인의 판단이며 님과 제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봐야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이 부분은 정치적인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것은 다 무시하더라도 북한과의 앞으로의 통합을 생각해서라도 "조선"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고려"도 괜찮은 선택이겠지요. 그러나 "한"은 유래도 짦고 그다지 포괄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도 이건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문제이니 역시나 더이상 논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이 글을 왜 썼느냐? 명칭의 개념이나 범위는 너무나 쉽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님이 말하는 전세계 동포들이 공감한다는(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한민족"은 위에서 말한대로 100년이 살짝 넘은 용어일 뿐입니다. 대 놓고 말해서 한민족이 님의 주장대로 전세계 동포의 공감을 얻고 있다면, 어떤 명칭이든 3세대만에 실제로 오래동안 사용된 개념처럼 변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민족을 다른 용어로 바꾸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는 소리가 됩니다.^^

  6. 이해가 안 되네요 2010.09.09 13:12

    하나 더 부연하자면..
    한자만을 쓰는 한중일을 기본으로 말한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또한 이해가 안 됩니다.
    민족을 아우르는 용어는 영어든 한자든 세계에 퍼진 모든 한인이 공감하는 단어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설마 한자를 한중일만 사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미국교포도, 독일교포도 공감할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7. 4... 2010.09.09 20:19

    한국인들을 너무 졸로 보시는 군요...


    님의 글들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중화주의의 파편을 보면..

    화교에 대해서,

    정말, 편견이 안생길려고 해도 안생기기가 힘들군요..


    한국은 쪼그만 국가죠..
    님들이 스트레스 받으며, 살 필요 없어요..
    위대한 중국과, 화교가 장악한 동남아,필리핀,
    당신의 고향인 대만등, 갈데 많잖아요?

    왜? 굳이 쪼그만 한국까지 먹어치우려고 하는지..
    정말,그 무한 중화 확장주의에 토 나오네요.

    2천년간 그렇게 괴롭히고,속국으로 못살게 굴었어도 만족을 모르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20:41 신고

      일단 저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실 "순혈의 한국인"임을 알려드립니다. 또 중화주의의 파편이라..대체 위 본문을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석이 되죠? 오히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위의 내용을 잘만 이용하면 중국내의 조선족까지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서 중국 동북에 분열을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조선사람 확장주의"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님처럼 정반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당신 같이 한국인이면서 한국말로 된 글의 독해도 못해내는 사람때문에 한국인이 졸로 보이는 겁니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을 화교로 단정해버리는 것도 역시 졸로 보이게 하는 짓이고요^^

  8. 4... 2010.09.09 21:19

    4. 바로와 타이완
    일단 저 자신은 타이완에서 3년간 살았습니다^^:::
    살았다고 해도 1살때부터 4살사이의 3년이었으니 제 기억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대만의 풍경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저보다는 저희 부모님이 대만과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아버지는 대만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대만교육대였던가?(죄송--;;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에서 박사과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머니와 결혼에 성공하셔서 이렇게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 뒤, 제 동생은 아예 대만에서 태어났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대만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넘이었죠. 웃긴건 집안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어 못하는 넘이 제 동생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처음 중국어를 접하게 해준 형은 타이완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정말 귀여운 딸이 있습니다^^ 한국어, 중국어 두개언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진짜로 예쁜 꼬마아가씨랍니다. 이번에 한국가면 꼭 아저씨 대신 오빠라고 부르게 하리라!! 이래저래 타이완과 연결되는 것이 많군요^^


    5. 마치며...
    간단하게 적는 다는 것이 꽤나 길어졌습니다. 국제 질서의 냉정함 속에서 한국의 국가적 이익를 생각하더라도, 중국에 반대항이자 대항항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완의 독립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하느냐가 문제겠지요. 미국과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중국의 주장대로 타이완의 독립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당한 특혜를 주는 것도 이런 포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이딴 건 다 필요없고!
    http://www.ddokbaro.com/271


    아 네~ "순혈의 한국인"이 다 얼어 죽었군요...
    언제부터, 섬짱께와 혼혈이 "순혈의 한국인"이 됬는지 몰겠네요.

    조선족은 그냥 변종짱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수 없음.

    누가 조선족을 민족 확장 차원에서 받아 들이자고?
    그런데, 같은 민족으로 받아 들이고,
    그 조선족을 이용해서, 중국 동부의 분열?

    딱 생각하는 차원이 섬짱께 이면서, 무슨 "순혈의 한국인"?

    님이 원하는 것은 "대만의 독립" "대만의 중국 정복" 아닌가요?

    그러면, 대만군에 입대해서, 노력하던가..

    왜? 애꿎은 한국인을 이용해서 그것을 이루려 하죠?


    한국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영토 확장도, 중국,일본 멸망도 아닙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신경 끄고,
    그만 전부 자신들의 위대한 중국으로 돌아가 달라는 것.
    변종 짱께 조선족들도 데리고..

    이미 몇몇 노땅 망상주의자를 빼고는,
    한국인 대다수는 북한 흡수도, 통일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미 너무 늦어서,한국과 북한은 다른 민족이 되어 버렸기 때문 입니다.

    한국이 피만으로 한국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짱께,쪽발의 착각일뿐.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23:35 신고

      푸하하하..방문자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독설 좀 하겠습니다. 왠만하면 참는데 이 쯤되면 어이가 없군요.

      1) 제 어머니가 타이완인이었어요? ㅋㅋㅋ
      한국인인지 정말 의심되는 한국어 독해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대체 어디에 저희 어머니가 타이완인이라고 적어놨나요? 아버지가 중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사이에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고 어머니를 타이완인으로 만드는 상상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킥킥.....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저의 어머니는 한국인 맞습니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도 한국인 맞습니다. 그것도 전주이씨입니다.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아! 상상력 뿐만이 아니라 제 오래된 글을 찾는 노력도 대단하십니다. 그 정성으로 책이나 한 줄 더 보시죠? ^^


      2) 타이완 만세라고요?
      제 글이 그렇게 보였나요? 전체 글은 제대로 보시긴 했나요? 하긴 저희 어머니를 타이완인으로 생각하는 독해력과 상상력이니 제대로 봤을리가 없죠.

      하다 못해서 님이 인용한 글만 보아도 한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글을 보면 기본적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대로 하라는 생각입니다. 푸하하하....


      3) 통일문제
      통일이 왜 되어야 되냐고요? 당장은 경제상으로 문제가 있지만, 북한에 있는 싼 인력자원과 광산자원을 고려해서 장기적으로 계산하면 통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안됩니까?

      물론 당신처럼 통일무용론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야기하는 건 논지도 아니고 그냥 감정을 토해내는 것일 뿐입니다. 논리가 먼지는 아십니까? 모르시겠지요.

      통일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그 동안 정치적인 필요성에 의하여 통일이 주장되어 왔지만, 현재의 한국과 북한의 문화-사회-경제적 격차로 인하여 어떤 식의 통일이 되었던 건 간에 한국에 큰 타격이 있기에 더이상 우리 모두의 꿈은 통일이라는 식의 강압식 접근이 아닌 정확한 자료와 판단을 근거로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당신 처럼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통일반대을 통일무용론이라고 한다면 통일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할 뿐입니다.


      4) 한국인!
      한국이 피만으로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죠. 당신 같이 한국인을 욕먹이는 대가리 없는 사람들은 한국인으로 인정해서는 안되겠지요. 존중을 받으려면 상대방을 먼저 존중해야된다는 도리도 모르고 있고, 한국어 독해도 제대로 못하고, 논리는 우주 저편으로 날려보내버리고 감정을 토해내는데...정말 한국인으로서 당신을 한국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군요.

      정신 좀 차리셔요. 당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건 너무나 아깝군요.그래도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ㅋㅋㅋ

  9. 소동파 2010.09.10 02:35

    글쎄요... 이 문제에 나름 어떤 주장을 펼만한 지식은 없지만, 제가 옛날에 읽은 시바 료따로 (일본 우익 소설가)의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일본 민족의 (한반도를 거친) 북방 도래설을 주장하며 '단일 민족' '박달나무 운운 배달민족', '기마민족' 심지어는 '백의 민족' 등등의 언급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제국주의 일본 시절 일본이 자국민의 단일 민족설 등을 '학문적'으로 주장하면서 자국민들의 단결과 우월성등을 주장하며 여러가지 학설을 만들어 내면서 제국주의 팽창을 뒷받침했으리라는 추측을 하였지요. 아울러 당시 약소국 조선(한국)도 그에 대응하여 나름 논리와 '학문적' 근거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일본의 학설들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하였읍니다. 최소한 제가 만나 본 일본 친구들은 혈통적으로 단일 민족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양했거든요. 거의 중국 남북방 사람들 차이만큼이나 달랐읍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이 스스로 '화족', '대화족'으로 부른 것은 메이지 유신 전후 아니면 그 이후 제국주의 시대부터로 알고 있읍니다. 그전에 일본은 스스로에 대해 '천하'로 여겨 그냥 자신들을 스스로 지칭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한민족', '조선민족'이란 각성은 일본 침략이후 만들어진 일종의 민족적 각성이란 점에서 크게 보아 바로님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10. 소동파 2010.09.10 02:56

    그리고 얼핏 읽어본 중국 역사책과 중국 보통 백성들의 관념을 보며 조선이라 하면 보통 한반도의 북부(대체로 대동강 경계)의 사람들을 일컷고, '한'이라하면 그 아랫지방 사람들을 일컷는 것 같습니다. 삼한이란 기록도 조선이란 기록도 모두 중국사서에서 사기이래 나오는 말들이고 그들이 그렇게 나누어서 남북의 한반도의 사람들을 지칭해 불러온 것 같고, 교묘하게도 현재의 남, 북 분단 상황하의 국호하고도 맞아 떨어지지요. 그리고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 사기에 나오는 조선의 개념은 모두 중국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들에 대한 언급이고 제 개인적 느낌은 '삼한'은 거의 '팽개친'야만인들이고 '조선'은 화하족의 영향속에서 어느정도 개화된 족속들이다라는 느낌입니다. 논쟁과 관계없이 제 느낌을 써 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10 16:44 신고

      위에서 언급하였던 삼한인의 범위가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삼성을 합치는 넓은 범위였으니 한이라고 남반부 사람이라고 할수는 없을듯 합니다.

      삼한과 조선의 느낌차라....따로 신경써 본적은 없군요. 나중에 심심하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저는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거든요. 흐음...

  11.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0.10.26 11:48

    하하, 오늘도 민족쟁이들의 어그로를 열심히 끌고 계시는군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_^;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27 11:37 신고

      끌고 싶어서 끄는 것이 아닌걸요.ㅠㅠ
      그러고 보니 저의 석사전공은 다름이 아닌 "민족사" 루루루...

  12. ssam 2011.01.15 14:06

    조선일보가 있어 조선인이라는 말이 거슬릴뿐이고...

    본문중에 오타가 있네요..1889년 아닌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7 15:30 신고

      하하;;;;; 그..그렇군요. 말도 안되는 오타입니다;;;;
      지적감사힙니다. 꾸벅--

  13. 길을 가다가 2011.05.02 00:47

    여태껏 2년 정도인가 싶는데 시간이 날적마다 바로님의 글을 조금씩 읽어왔습니다.
    재미있는것은 댓글이 더더욱 재미 있다는 겁니다. 댓글 다시는 분들이 중국에 관한 이야기에서만 이러쿵 저러쿵 많은 시비가 오가는 같은데 바로님의 글이 바로바로로 전형적인 한국인들의 맹목적 애국주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생각합니다. 옳던 그르던 정확하던간에 상관없이 자기중심의 의사에 털끗만큼이나 건드린다면 시비를 걸어오는데 하여튼 바로바로 소화를 하는 바로바로님 대단합니다. 고려인 조선인 한국인 조선족 모두 동일 민족인데 다만 살아가는 환경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나 자빠지듯이 시비거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한민국을 망신주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원참...처음 댓글 답니다.

  14. 짧게 담 2011.05.25 05:03

    한민족과 조선족.

    일단 대화를 이끌어보려면 각각의 나라에서 보는 통칭적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선 자신들을 한민족이라 부르며, 북한을 북한사람이라 부르지, 절대 조선 사람이라곤 안한다. 일단 조선이란 사라진 나라의 개념이며, 북한은 정확히 지칭하면,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다. 이것은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와의 차별을 위해 자신들을 과거 조선의 북쪽을 차지하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
    또한 우리의 입장에서 조선족이란, 멀리 중앙아시아를 비롯해(고려인이라고 표현도 하지만), 현재 과거 간도 지방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선족이라 부른다.
    우리의 개념에선 '~인'으로 부르는 것이 매우 익숙하기에, 우리를 한민족이라고 대내적으로 민족적 자긍감과, 단일민족적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표현으로 쓰고 있으며, 일반적으론 그냥 한국인이라고 부른다.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북한인(북한 사람), 혹은 북한 주민이라 부르며, 현재 간도에 있으며 민족적, 문화적, 언어적으론 과거 한민족의 민족이나, 현재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우리의 입장에선 이들을 과거의 '조선'과 연결시켜 조선족이라 통칭한다.

    의미 해석은 이쯤에서 하고, 현재 가장 크게 다투고 있는 부분이 아무래도 필자는 분명 한국인임에도 주변의 정세와 장기간 역사적 사용, 지칭의 타당성적 부분에서 '조선'을 택하는 게 옳지 않냐고 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크게 반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눈엔 "대체 왜 주변 상황이니 뭐니 하는 중요하지도 않은 걸 가져다 붙여 한민족을 조선이라 칭하게 하는 게 옳다는 것이며, 그딴것으로 왜 이런 같잖은 글을 걸어 올리냐."는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개인적으론 한민족이란 것에 동의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민족에겐 남들이 어떻게 부르건 자신들이 사용하고자 하는 것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이란은 스스로를 페르시아의 후예들이라 칭한다. 페르시아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한 나라이며, 과거 페르시아의 영토는 현재의 이란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뭐랄까..많은 사람들은 민족적 자긍심, 뭔가 위대한 업보 혹은, 대승리를 거뒀을시 모두를 결속시키고, 아우를 수 있는 통칭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 또한 이런 의미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기에 우리 스스로를 한민족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 한은 발음 상 '1'과도 연결되기에 이 말 자체에 세계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그것도 900여 번의 침략 과정을 거쳤음에도 적어도 단일민족적 문화와, 인종, 그 체계를 이어가고 있는 민족적 자긍심의 표출로 보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관념엔 이것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을 지언정, 누군가가 이것에 재를 뿌리거나, 이것을 해체한다 싶으면 평소 그리 중요치 여기지 않던 것도, 하나 둘 발끈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로 약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결론을 말하자면, 현재 우리는 남북 대치적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우리'로 통칭하긴 힘들다. '아군'으로도 칭하기 힘든 마당에 어떻게 북한과 관련된 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어찌보면 '조선' 그 자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 이 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이다. 가만히 보면 바로 옆나라인 '중화 인민 공화국'과 대조적으로, 국이란 말 자체가 이미 나라 이름 그 자체에 붙고 있으며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의 '국'자를 뒤의 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칭하고 있다. 공식 명칭에서 '중화 인민 공화국'의 '국'사용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우리한텐 '한'이란 표현과 대한민국이란 표현은 익숙하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개인적으로 이 글의 문제점을 고르라면 아직 통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와 언어적 상용화에 사로잡혀 '조선'이란 것이 어울리지 않나하며 속단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럼 현재 북한이 내세우는 훗날 통일한국의 국호를 '고려 연방 공화국'으로 하자는 것에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멸망한지 어언 600년도 훌쩍 지난 고려를 내세우는 것이 뭔가 어설프고, 시대 착오적으론 보이지 않는가. 또한 통일도 되지 않았는데, 뭐가 낫다라고 섣부르게 단정짓는 것도 남들의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하다. 또한 제시한 이유들도 뭔가 미래적, 민족적이기 보단, 그저 역사성, 주변의 정세성에 연관을 두는 듯 해보인다. 물론 필자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음은 안다. 단지 개인적 견해의 차이일 뿐이란 것을..

    이는 훗날 통일한국이나 되어서야 통칭되는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미 반세기 가깝게 한민족이란 것에 익숙해져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왔는데, 거기에다 대고 대뜸 조선이 아무래도 적절하니 조선이 어떠냐, 라고 묻는 것은 서울을 대뜸 경성으로 부르라고 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인'과 같은 것은 어느 통일이나, 혁신적 변화의 시점 이후에나 쓰이는 것이지, 그 전에 무슨 일이나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래의 무엇을 결정하자, 특히 '~인'을 벌써부터 결정하자는 것은 매우 불완전한 제안이라 생각된다. 위의 예대로 조선인이란 것이, 고려가 망하고부터 바로 쓰였겠나? 조선이란 나라에 익숙해지며, 세상이 조선으로 보일 때부터 가능했던 것이고, 그 말이 오랜 세월 통용되다 보니 그렇게 변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나라를 조선 반도라 부르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 한반도라 부르는 것은 韓을 거의 한국이란 나라를 대표하는 단일적 언어로 주로 사용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만 그렇게 쓸 뿐, 한반도라 표현하는 나라는 우리를 제외하곤, 단 한나라도 없다. 헌데 어떻게 보면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닌 것이, 기록상 인정된 이 반도 최초의 국가는 다름아닌 '조선'이며, 어떻게 보면 우리가 부르는 조선은 과거의 조선에 이은 2번째의 조선이며, 지칭을 다르게 하기 위해 조선에 옛 '고' 자를 붙여 고조선이라 칭하게 된 것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반도는 조선반도라 하여, 그들 스스로도 이 땅의 최초 주인이었던 옛조선의 반도라 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도 있으며, 조선의 원형인 단군의 옛조선, 그 조선의 반도라는 의미로도 충분히 인용될 수 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물론 단순히 말로는 같지만 의미상 언제든 좋아질 수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난 나를 표현할 때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한국인, 한민족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필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대뜸 반발하는 것이었나가 자연스럽게 해석될 것이라 믿는다. -이상.

  15. 연재 2013.02.26 05:09

    드라마 근초고왕
    에서 예,맥,한
    일통
    이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옵니다.

    내부적으로 대한제국은 안전되고->안정?^^

  16. 정말 웃기네 2015.03.15 01:52

    제일 다민족국가로 정치적인 종족이 바로 중국 한족이며.. 그 다음이 일본인들..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순혈을 유지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정치적인 종족으로 치면 중국인은 꾸준히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이민족의 유전자가 유입된 종족이 바로 중국입니다..
    지금도 중국은 소수민족이 한족에 등록하면 바로바로 받아주는데가 중국이고요..
    환타지 소설 같은 중국 역사를 철저히 믿고 중국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님이 대단하다고 봅니다..
    그냥 내가 볼땐 중국인으로 보임..
    우리의 역사서도 없이 중국 일본의 역사서로 증명시키는 한국역사가 가장 환타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청나라의 정사 흠정만주원류고를 왜 중국인들이 인정하기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한족입장에서 쓰여지지 않았다는거죠..
    환타지를 만들기 힘든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청나라 기록들을 보면 조선국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로 시작된 나라이고 그게 고려가 되고 조선이 된 나라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고구려는 조선과 관계 없는 나라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소리나 하고..
    그럼 고구려 수도 평양은 뭐가 되는건지 참 황당한 소리들 하고 있죠.. ㅋ
    아님 지금 분단 됐으니까 같은 민족인 북한을 반으로 나눠서 다른 민족인것처럼 이야기 하고...
    한반도 전체 해봤자 흑룡강성 하나 크기보다 작은데..
    중국의 성을 반으로 나눠서 니들은 다른 민족들이다 이러면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진짜 중국은 환타지로 역사를 만들어서 대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는중이죠..
    그래서 정치적인 종족 한족을 만들어내서 정치적 민족주의를 만들고 분열이 안되게 막을수 있으니까요..
    그 정치적 역사수정작업이 중국 내부단속을 위한 작업이지만..
    거기에 가장 큰 희생양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란거죠..

  17. 한韓에 대해서.. 2015.06.20 02:31

    韓은 중국의 시경에 처음 나옵니다..한후라는 이름이 최초로 나옵니다..
    예맥족의 왕이라고 나옵니다.
    또 중국의 한씨 성에 대한 기록을 보면..
    중국의 잠부론을 보면
    연나라 동쪽에 있는 나라가 있다,. 그들은 한후의 후손들이다..
    또 그들은 위만에게 망해서 바다를 건넜다는 기록이 나오죠..
    즉 갈석산동쪽에 있던 나라..북경동쪽에 있던 나라..
    요하의 나라를 말하는거죠..
    또 기자조선을 보면 위만에게 망해서 배를 타고 동쪽의 한의 땅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죠..
    북경 동쪽에서 한반도로 왔다는 기록입니다.
    기록상의 韓은 환국의 환과 같은 말입니다.

최근 민홍규 전 4대 국새제작단장의 600년 비전이 날조로 밝혀지면서 국새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혹자는 한국의 무형문화재관리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고, 혹자는 국새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최재천의 시사큐비즘 :: 국새는 왜 필요할까) 그에 대해서 본인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과 같은 어새를 국새의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금으로 만든 어새는 극소수이다.


어새는 옥이 기본이다.


국새의 원형이 되는 황제가 사용하는 어새(御璽 혹은 보새寶璽)의 대부분은 결코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절대 다수의 어새는 옥玉으로 만들어졌다. 진시황의 진秦나라 이후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어새의 이름 자체가 전국옥새(傳國玉璽[각주:1])로서 옥으로 만들어진 어새였고, 현재 중국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인 청대의 25개의 보새중에서 23개가 옥새이고, 단 한개만이 금으로 만든 보새라는 점[각주:2]을 인지하면 옥새가 보새의 기본임은 너무나 명확하다. 사실 어새나 보새를 검색해보면 "옥새의 높임말"이라고 나온다.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가 있는가?

왜 대부분의 보새는 옥으로 만들었을까? 그 대답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나와 있다. ‘옥의 아름다움은 다섯 가지 德(덕)을 갖추었다. 윤기가 흘러 온화한 것은 仁(인)의 덕이요. 무늬가 밖으로 흘러나와 속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義 (의)의 덕이요. 소리가 낭랑하여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은 智(지)의 덕이요. 끊길지언정 굽혀지지 않는 것은 勇(용)의 덕이요. 날카로우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潔 (결)의 덕이다.[각주:3]” 설문해자뿐만이 아니라 수 없이 발견되는 다양한 옥으로 만든 고고학유물들은 전국시대 이전부터 얼마나 오래동안 옥이 사랑받아왔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왜 국새를 금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본인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도 본인이 기억하기로 기본은 어디까지나 옥새였고, 고종황제의 보새도 어디까지나 은을 기본으로 한 금도금이었는데 말이다. 금으로 하면 삐까뻔쩍 있어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전통만 생각하면 은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옥새야 말로 국새의 기본이다.



어차피 현대기술은 이미 과거의 기술을 넘어섰다.

우리는 흔히 "현대 기술로는 재현해 낼 수 없는 고려 청자의 빛깔"이라는 소리를 언론을 통해서 자주 듣는다. 그러나 사실 현대의 기술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빛깔을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학자나 관련인사들도 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전통기술을 이어받고 있는 사람들의 밥그릇을 건드린다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전통기술을 보호해야된다는 추상적인 문제들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각주:4].

그러나 국새의 경우 이번 사태로 인하여 전통기술이 사실상 없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 금으로 만드는 어새에 대한 전통기술은 사실상 단절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밥그릇을 걱정하며, 어떤 전통기술을 보호한단 말인가? 차라리 현대기술을 총동원해서 국새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보인다.

아니면 나무로 만드는 건 어떤가? 단향목檀香木으로도 국새를 만들수도 있다.



다음 국새는 옥으로 만들자.

본인과 같은 보수주의에게[각주:5] 국새를 없애고 싸인으로 대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심정적인 거부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통령령은 아직 국새규정을 두고 있으며, 중요한 임명장에나 외교문서 등에 국새를 사용하게 되어 있고 국새의 사용에 문제 자체는 없지 않았는가? 그러나 깨지거나 전수된 전통기술이 없는 금으로 만든 국새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국새를 새로 만든다면 전통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옥으로 만든 국새로 만들었으면 한다. 옥 세공 기술은 본인이 알기로 아직 한국에 전통기술 전수자가 있으며, 옥새야 말로 국새의 기본이기 때문이다[각주:6].




바로의 중얼중얼 : 본문의 전개와는 큰 상관없어서 놔두었던 문제를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렵니다. 국새의 종주국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정작 국새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건 와전된 이야기로서 현재 중국은 국새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단지 전통식으로 글자가 쓰여진 국새가 아니라 중국휘장(国徽)이 새겨진 도장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완전한 전통식 국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도장형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새를 사용 안한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또한 타이완도 중화민국시절의 옥으로 만들어진 국새를 계속 사용 중에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한국에 비하여서는 도장의 역할이 비교적 적지만 여전히 중시되고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중국휘장~~ (사실 이건 도장형식으로 찍혀 나오는 효과를 보여주기 위함이고, 좀 더 화려하다-_)



흐음..오랜만에 그럭저럭 역사 관련 포스팅이었군요.(으응?;;;) 역시 이런 글은 괜히 이래저래 거의 많은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는 짜잘한 것에 저도 모르게 신경을 쓰다보니 적당히 유머 번역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속편합니다. 그래도 역사관련으로 궁금한 것은 물어봐주셔요......특히 환빠님들의 주옥같은 황당무계 글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 분들의 글들은 저를 즐겁게 해주거든요^^

  1. 전국옥새(傳國玉璽)은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화씨지벽(和氏之璧)으로 만든 옥새이다.전국새(傳國璽)라고도 한다. 화씨지벽은 천하의 명옥(名玉)으로, 진나라 시황제가 이것을 손에 넣어 재상인 이사(李斯)로 하여금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하늘에서 받은 명이여, 그 수명이 길이 번창하리라)'이라는 문구를 전서(篆書)로 새겨 도장을 만들게 하였다.전설에 따르면, 시황제가 배를 타고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뻔하였다. 시황제가 황급히 옥새를 호수에 던지고는 신령께 빌자 물결이 잠잠해졌다. 8년 뒤 시황제의 사신이 밤에 화음(華陰)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돌연히 어떤 사람이 나타나 사신의 길을 가로막고는 용왕이 돌아가셨기에 돌려준다며 옥새를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고 한다.이 옥새는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이 함양(咸陽)을 함락시킨 유방(劉邦)에게 바쳤으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뒤 한(漢)나라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졌다.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이 잠시 이 옥새를 빼앗았으나,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되찾았다.옥새는 후한 말년의 혼란기에 유실되었다가 손견(孫堅)과 원술(元述)을 거쳐 조조(曹操)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위진남북조를 거쳐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후량(後梁)과 후당(後唐)까지 전해지다가 후당의 마지막 황제가 분신할 때 사라진 것으로 전한다. 이후 몇 차례 전국옥새를 찾았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모두 진품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와 같이 전국옥새는 진시황제 이후로 천하를 제패하는 사람이 소유함으로써 황제나 황권(皇權)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으며, 이를 차지하는 사람이 곧 천하를 차지하는 것으로 여겼다. -- 위키 [본문으로]
  2. 청나라가 돈이 없어서 옥으로 만들었겠는가?! 옥이 더욱 중요하였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더 정확한 통계는 타이완고궁박물관에 소장중인 다른 보새도 합쳐야 겠지만, 안타깝게도 중국대륙에서는 타이완고궁박물관에 접속이 불가능하기에 정확한 수치는 미루어두겠다. 다만 타이완고궁박물관쪽을 합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본문으로]
  3. 石之美。有五德:潤澤以溫,仁之方也;䚡理自外,可以知中,義之方也;其聲舒揚,尃以遠聞,智之方也;不橈而折,勇之方也;銳廉而不技,絜之方也。象三玉之連。丨,其貫也。凡玉之屬皆从玉。 [본문으로]
  4. 못 믿겠으면 주변의 복원쪽이나 고미술전공하는 "친.한."사람에게 진지하게 사적으로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본문으로]
  5. 제가 보수주의라고 하면 제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담하냐는 반응이긴 합니다. 그러나 전 분명히 보수주의입니다. 오히려 스스로 분명히 보수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보수주의적인 생각으로 보수주의적인 행동을 했는데 진보주의로 보는 이넘의 한국사회가 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본문으로]
  6. 금값이 하늘 높이 솓아오른 지금에 비용적으로 그마나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다. [본문으로]
  1. 사월 2010.09.03 16:33

    중국 역사 관련 자료들 가끔 올리시지만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앞서 조조 무덤 건 같은 경우 일반 언론에는 거의 6개월 후 쯤에나 나오더군요(!@@##).

  2. Favicon of https://beijinga4.tistory.com BlogIcon 북경A4 2010.09.03 18:39 신고

    잘은 모르지만..
    옥새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금새라는 말은 못 들어봤다는 것 정도입니다. ^^

    최근 중국 역사를 수정한다는 말이 있던데... 황허가 아니라 요하문명을 기원으로 변경하면 한국이 중국의 후예가 된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고요..그거에 관한 글도 한번 올려주세요.. 궁금해서요.^^

중국에서 한국인들이 주원장을 고려인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을 발견하였다. 본인 처음에는 또 한국에 관련된 루머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방송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 주원장 고려인설이 뭔지 한 번 보자. 처음부터 결론을 내자면 "어이없음" 이다.

* 본 내용은 아쉽게도 "조선기문朝鮮紀聞"직접 보지 못하고 쓴 글이다[각주:1].





3월 7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실체를 놓고 한국과 중국의 학자간의 대립을 다뤘다.

1368년 명나라를 세운 초대황제 주원장은 이민족을 몰아내고 한족 중심의 문화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미천한 거름뱅이에서 시작해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인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일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역사학자 백린은 '조선기문'에 기록된 설화를 근거로 들었다. '조선기문'에는 명태조 주원장과 이름이 같은 남자가 등장한다. 주원장은 경상도 웅천의 주씨 노부부의 아들로 5살이 되던 해 고승을 따라 절에 들어갔다가 15세에 하산했으며 총명하고 민첩했다고 적혀있다. 또 한국 민간 전설집에는 주원장이 중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적혀있어 더욱 신빙성을 더했다.

반면 중국학자들은 역사학자 오함이 쓴 주원장의 전기 '주원장전'을 들어 이를 터무니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기는 주원장이 중국 안휘성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또한 중국인으로 적고 있다.

이를 반박하는 학자들은 주원장전은 조선기문에 실린 탄생 설화를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주원장전의 발행시기는 조선기문이 발행된 뒤다. 두 책을 비교해 볼 때 주원장의 어린시절 매우 가난했다는 점과 주원장이 절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주원장이 걸식하며 돌아다닌 시기가 비슷하다.

또 주원장의 주변에는 유독 고려인이 많았고 주원장의 심복인 주유도 고려인이어서 각별히 신임했다는 주장까지 더해져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또 다른 학자는 주원장의 아들 영락제의 친모가 고려인일 가능성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은 이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출처 :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고려인 논란, 韓中 역사학자 대립 논쟁


1) 대체 어디를 봐서 학자들의 공방이지?
조선기문朝鮮紀聞은 잘해봐야 2차사료이다. 1885년 일본인 鈴木信仁에 의하여 쓰여진 조선의 일들을 모아놓은 책[각주:2]이다. 주원장전朱元璋传는 2차사료조차 어림없다. 중국의 역사학자 吴晗[각주:3]에 의하여 1948년에 쓰여진 책이다. 이건 연구서라로 해야된다.

대체 어떤 "미친" 학자들이 2차사료도 안되는 것을 기본으로 공방을 펼친다는 것인가?[각주:4] 솔직히 이 부분부터가 벌써 어이없음이다. 역사학 관련 사람들은 본인이 위에서 적은 조선기문과 주원장전의 간략내용만 보아도 어이없어 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가장 간단히 말해서 명사明史를 보면 주원장의 아버지가  钟离로 이동했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钟离는 현재 중국 안후이펑양安徽凤阳이다[각주:5]. 그리고 명사는 1739년에 완성되었다. 정식사료인 명사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명사보다도 100년이상 늦게 기록되었던 전설을 믿을 것인가? [각주:6]


2) 설화는 가치있는 사료이지만 믿을 수 없는 사료이다.
설화의 가치는 상당히 뛰어나다. 오히려 정사에서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일이 설화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설화만을 가지고 논문을 쓰는 학자는 없다. 왜냐하면 설화 그 자체는 많은 시간동안 온갖 변형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곳에서 뽑아내어서 "간접 증명"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직접 증거로 사용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딱이다.

조선기문은 무려 일본인이 1885년에 출판한 책이다. 이미 주원장과 상당한 시기적인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인 자신이 아닌 일본인에 의해서 적혀진 내용이기에 그 정확성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부분에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잘해봐야 2차사료일 뿐인 것이다. 그 외에 출처를 아직도 모르겠는 "민간설화집" 역시 동일하다.

논란이 된다는 말 자체가 어이가 없다. 논란이 되려면 1차사료정도는 있어야되는 것 아닌가?


3) 설사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래 원하는대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해보자. 그럼 주원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개같은 한반도"을 떠나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중국"으로 간 것이 된다. 이 점은 생각해보았는지 모르겠다. 무조건 "한국인" "한국인" "한국인"만을 말하다보니 이런 조그마한 것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하자. 그래서? 조상이 당신 밥 먹여 주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분명히 이야기를 하겠다. 정체성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역사에 기대지마라. 설령 조상이 아무리 위대했어도 지금 현재 빌어먹는 거지꼴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라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를 냉철하게 살피고 미래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하자. 그래서??? 우리 모두 중국정령하자?!
정신 차려라. 이 내용 덕분에 중국에서의 반한정서가 왕창 상승하였다.


추가 : 혹시 주변에 중국인에게 말하고 싶은데 중국어가 안되는 경우 아래를 참고하셔요.

我身为在中国学古代史的的韩国人,向中国朋友道歉。

朱元璋为韩国人是由于不可靠的史料(朝鲜纪文)来推测的垃圾理论,是韩国的一部分极端民族主义者和国家主义者引起的一场大误 会,我已经通过博客向韩国朋友解释了,并且韩国历史学界不会依靠这些不可靠的史料来推定历史事实。再说这些都是一部分人造成的祸,世界上任何地方都存在着一些疯子,希望不要通过疯子来判断一个民族或者一个国家。

只是借这个机会向大家提醒一件事。民族主义和国家主义总是内涵着这些问题,而且这个问题不仅仅在韩国,中国跟日本也确实是存 在着。比如说,意大利面是中国发明或者把历代边疆的各个民族政权统统被列为地方政权等等的事情。

我希望大家尽量理性的摆脱这些民族主义和国家主义的束缚,不要老是纠缠着过去,要重视现实和未来。历史经验可以值得学习,只 是不要忘记学习历史经验的的目的。

  1. 직접 구해서 볼 수 있었으면 더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본문으로]
  2. 제목; 朝鮮紀聞 바로가기 (새창). 저자; 鈴木信仁 編. 발행일; 1885. 발행기관; 愛善社.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본문으로]
  3. 심히 정치적인 사람이었고, 이 책을 연구서 수준도 안되게 보는 사람도 많다. 吴晗은 나중에 심히 유명해진다. 문화대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海瑞罢官》이라는 명작을 내놓는다. [본문으로]
  4. 조금 과장하긴 했고, 본인이 1차사료를 통한 공방을 구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그래도 어이없어!!! [본문으로]
  5. 《明史》第一卷 本纪第一 太祖一 太祖开天行道肇纪立极大圣至神仁文义武俊德成功高皇帝,讳元璋,字国瑞,姓硃 氏。先世家沛,徙句容,再徙泗州。父世珍,始徙濠州之 钟离 。生四子,太祖其季也。 [본문으로]
  6. 위의 것만 적어놓으니 혼동하시는 분이 있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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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골 2010.03.27 11:56

    吴晗이 또 이렇게 연관된다니 재미있군요. ^^

    뭐 학문과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당시 북경 부시장 (읔 맞나?)으로서.. 등소평의 따님이 쓰신 전기에는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더군요.. 여러가지 측면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3.27 15:11 신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연관을 못 시키고 있었다가 나중에야 생각났습니다.머..해당 책의 집필시기는 나중에 정치권에서 샤바샤바할 때보다는 훨씬 이르답니다.

    • BlogIcon 철림 2021.02.15 13:19

      등소평 따님? 이 새끼 짱개네

  3. 지나가는 한국인 2010.03.28 22:34

    아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중국어 번역본..중국인 친구에게 보여주라고 한 저 부분 정말 감사하게 잘 활용했습니다 ㅠㅠ

    일본에서 중국인 여자친구 만나서 사귀고있는데, 오늘 갑자기 한국 무슨 언론사가 주원장이 한국인이라며 왜 한국은 전부 중국의 발명품, 위인들을 자기네들껄로 둔갑시키냐고 화를내더군요..

    에혀 ㅠㅠ 어쨋던 한중....(한일도 그렇고)은 바로 옆나라 이웃국가입니다.. 서로 같이 잘 발전하면 좋을텐데.. 자꾸 마찰만 일어나는거 같아 안타깝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3.29 00:34 신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사실 좀 열받아서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하지는 못했는데 말이죠;;;;

  4. Paul 2010.04.04 23:37

    明太祖朱元璋本来就是个乞丐出身,当了皇帝之后,灭绝人性,杀人无数,几乎所有开国元老都给他杀害的,是中国历史上数一数二的大暴君。朱元璋得过天花,满脸大麻子,难看死了,根本不是上边韩国人看到的那种照片,而且个大字不识几个,昏庸无能,残暴至极的这么个东西。有什么好抢的?

    况且就算你不抢在中国到处都是反韩的帖子,反韩的情绪高涨,你这么真来抢那还了得啊?
    在中国各大论坛,甚至门户网站都说:韩国人抢,孔子,孙中山,现在连恶名昭著的乞丐都要抢,那岂不是更加证明了之前那么多有的没的网上的流传的帖子都是真的了吗?能对韩国有什么好处吗?

    中韩两国现在误会太大,你这种两边都懂,比较客观,理性的人太少,民间民族主义太凶了,早晚会来个大爆发。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4.05 03:55 신고

      早就爆发了吧。实话实说,以前为了消灭假新闻,在中国论文上活动过,不过我不太喜欢BBS本身,况且怎么反驳或者解释也不相信的人太多了,终于放弃了。现在只针对周边的中国同学问相关问题的时候告诉他们“事实”罢了(幸好我周边是算是有理性的人)

      最后我想说几句话。不知道你故意选择“抢”这个词。不过在我的观念上不管是孔子或者孙中山都不是什么“抢”“不抢”的问题。在这事件上用了“抢”字意味着你也有点熏陶于民族主义的臭味。我只是建议你力求彻底摆脱民族主义。。。但是这件事本身就是个人的自由了。所以我只能建议,无能勉强了。


      啊。 关于孔子的事情我在博客上写过。简单地说,虽然孔子在学术上基本上无法证明“韩国血脉”(是笑话),不过在精神继承上算是可以自傲了,比如说在曲阜进行的孔祭(向孔子的祭祀)是只在韩国的儒家指导中国的相关学者以及人员的。(不过我是讨厌儒家)孙中山是纯属于假新闻类。

  5. Paul 2010.04.05 03:01

    是故意用的抢字,你说的我也明白,其实我跟你一样,对两边都太清楚了,也试图去影响周围的小范围的人,希望消除误解。中国其实以前不这样,跟日本80年代也好着呢,跟韩国就更没什么矛盾,我是指民间。可是最近比较厉害,我也不知道为什么,可能是韩剧?可能是足球?可能是假的新闻? 问题是这些假的为什么会出现呢???

    因为我接触的好多韩国人我觉得不错,可能我运气好,可我的好多同学朋友都在韩国,回来就抱怨,还有好多汉族现在去韩国,他们可是哈韩的铁杆粉丝,可却受到了冷遇,歧视,回国就变成反韩急先锋,这一点上我觉得韩国需要反思,因为在韩国也确实客观存在,小看中国,歧视中国的现象。我也很讨厌中国人的某些坏习惯,可韩国也是这么一步一步走过来的,我觉得韩国需要大度一些,中国门刚开,需要很长时间,以前大家语言不通不知道,现在网络这么发达,所以韩国人想什么第2天可能中国人就知道了,而且是添油加醋的。

    中国是个独裁国家,所以媒体是国家控制的,韩国是开放的,至少看起来如此,所以可能更具隐蔽性,却在某些方面诱导韩国人,中国是审查的国家所以可能反而对韩国更好,我相信完全开放的中国,在没有互相解除误解之前,会对韩国更加不利。唯一的办法就是你这样的人多一些。呵呵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4.05 13:53 신고

      我个人觉得交流才导致了现状。正确的说,这是交流初期自然发生的误会。还有民族主义和国家主义因素。这些不用多说了。

      我也基本上赞同你的想法。韩国需要更开放和宽容的心态,不过因为中国政府控制着媒体,所以有时故意鼓励反韩情绪来诱导中国人的。问题是中国政府的这种行为很难阻止,因为所谓正义公正的中国网民也沉浸在民族主义的洗礼里。

      我也还不能确定如何解决此问题。我相信误会是扩展交流过程当中越来越消失的。问题是民族主义和国家主义,因为韩中日三国为了维持国家统治过于强调了民族主义和国家主义,而且现在和未来也需要此观念。所以对个人来说很难揭破此观念。

  6. 익명 2010.04.10 14:39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4.10 15:23 신고

      1) 중국을 곱게 보지 않으시는 것은 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본 글의 내용은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2) 북한여성이 한족에게 팔려간다?
      그럼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성들은 한국에 팔려오는 것인가요? 그럼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의 긍지를 한국은 깔아뭉개는 것이군요.

      무엇보다 북한여성이 한족에게 팔려간다는 발언은 명확한 통계자료가 없고 조사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최소한 저는 관련 자료를 본 적이 없군요. 관련 자료의 출처를 발히고 언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조선사람 2010.10.06 01:07

      어린애같은 대답이겠지만 뉴스에서 몇번본적은 있더군요.그리고 예비군 훈련정신교육때도 본것같습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전체는 몰라도 베트남인들의 긍지를 깔아뭉개는것은 맞느것같군요.이걸로 욕먹도 할말은없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6 04:13 신고

      사실 돈과 안정된 장소가 필요한 탈북자 여성들이나 그 가족들이 중국인과 결혼한 뒤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사실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북한의 "가족주의"는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어이가 없는 것은 "팔려간다"라는 식의 발언과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우행이었습니다.

    • 조선사람 2010.10.12 05:35

      생각보다 많지않다..뭐 꼬투리 잡느건 아닌데 님께서 정보의 출처를 요구하셨으니 저도 여쭙느겁니다만 이런 뒷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확히 어떤 통계로 환산해내는 경우도 꽤 많을것같은데요..확실히 북한여성들이 좋아서 끌려가느것같지는않고 뭔가 모종의 거래는 있을것같습니다.어차피 이것도 다 추측이겠지만 님께서도 확실히 믿을만한정보를 얻으셨다면 그에 대한 출처를 여쭙는겁니다..

  7. 중국유학생 2010.09.13 21:06

    글몇개를 봤는데 불로거께서 많은 부분에서 저랑 생각이 일치하신것 같음
    몇몇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2차사료를 믿고 말도 되지 않는 사실을 조작해서
    반한정서를 조장시키는게 진짜 맘에 안들어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6 04:13 신고

      양쪽 다 그따위 짓 하고 있는 꼴이 재미있으면서도 짜증난다고 할까요?

  8. 차돌바위 2011.06.17 04:47

    제가 아는 얘기는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주원장 설화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예전에 어떤 할아버지에게 들은 것인데 구한말까지도 황해도에서 전해져 왔던 얘기입니다. 주원장은 황해도 해주 태생이고 그 집안은 대대로 거지로 생활했답니다. 황해도 연백평야 가운데 면압산이 있는데 산은 낮아도 황해도의 정기가 모두 모인 천하명당자리라고 합니다. 거기에 주원장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렇게 3대의 묘가 있어 거기 사람들은 주천자 3대 묘라고 불렀습니다. 거지로 몇 대를 빌어먹으며 고생을 많이 해서 후손 중에 귀한 자손이 나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집안도 그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매우 가난하여 거지로 생활했었답니다. 어쨋든 고려말에 매우 혼란하고 살기가 어려울 때 주원장이 거지떼를 이끌고 떠돌아 다니다가 중국까지 가서 홍건적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무리들 사이에서 매우 명망이 높아지자 결국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나중에는 명나라를 세워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권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자기 고향에 있는 선친과 조상들의 성묘를 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여 면압산에 있는 산소를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조선조정은 그 소식을 듣고 만일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 행차하게 되면 막대한 경비를 부담해야 하고 그에 따른 백성들의 민폐가 극심할 것을 염려하여 관리를 황해도에 보내 산소를 찾아 봉분을 없애고 평토작업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사신에게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산소는 없다고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그 지방 사람들은 거기에 주천자의 조상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랬동안 그 지방에서 그 얘기가 전해왔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조선초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얘기들은 현재로서는 중국과 역사문제로 논란만 불러일으키니 우리가 통일이 되고 국력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이 사실도 알려지게 되고 산소를 다시 발굴하던지 유전자 DNA검사를 해서 중국에 있는 주원장의 것과 서로 맞는지 대조를 하면 확실히 밝힐 수 있습니다.

    • 신한주씨 2015.03.20 04:09

      성리학(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는 주자의 후손인 신안주씨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양반에게 부여된 부역의 의무를 신안주씨에게는 면제해 주었다고 합니다. 거지는 아니죠.. 양반가만 피해 갔다는 호포법을 면제해 주었으니 말이죠..

  9. 당신말이 맞다쳐도 2011.08.30 15:19

    [주원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개같은 한반도"을 떠나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중국"으로 간 것이 된다] 라는 당신의 표현은 아무리 주원장의 입장에서 보았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으로서는 결코 할수 없는 표현이며 해서는 안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건 자유지만 같은 한국인으로써 분개하지 않을수 없네요. 개같은 한반도라니.....솔직히 심하게 욕해주고 싶지만 참습니다.

    • ㅇㅁㅎ 2012.12.02 15:05

      김치맨 종특...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는데 누군가에겐 개같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천국같을 수도 있지.

  10. Favicon of http://daehan8816 BlogIcon 주창보 2012.01.12 07:03

    조선기문은 사실이다
    사대주의자들이 삼국사기 를 통해
    김부식에 게 벼슬을주어우리 역사를
    왜곡시킨것이다 고구려 주몽도 고구려국호인 고를붙여 주몽을왜 곡 시 킨것이다주원장은 주몽의 후손 이다

    중국의 금나라를 세운 큐렐랑도

  11. 지나가다 2012.01.12 18:50

    역사학도 이면서 너무 사료에만 집착하는것 같은 편협적인 시각을 보이네요. 폴리네시아쪽 원주민은 문자가 없습니다. 구술역사가 있죠. 그리고 일정부분 구술 역사가 21세기에와서 어느정도 맞다는것이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즉 자기네 선조는 대륙에서 살다가 땅이 갈라지는 천지 개벽으로 섬이 되었다느것인데, 원주민이 만든 석상성분이 안데스 쪽의 석상 성분이 똑같다는것이니다. 필자의 경우는 사료가 없어 인정하지는 않겠지만요.

  12. 나그네 2013.02.15 00:36

    근데 사실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쳐도;
    애초에 신안 주씨의 시조는 송나라에서 건너온 사람으로
    핏줄로 따지면 대륙인이 맞죠;

  13. 음흠 2013.09.28 12:06

    주원장이 고려인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거 그리고 과거가 조상이 어쨌건 지금이 중요하다는 거 역사가 반성어쩌네 다~ 공감가는데
    한가지 븅신 같은 점이 있는데
    무슨 중국인들 반한정서 일으킨다 개소리는~~~
    그게 그리 신경쓰여?

    • BlogIcon 신라인 2015.02.05 21:00

      ㅋㅋ니래놓고선 백날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마래가없다 ㅈㄹㅈㄹ ㅋㅋㅋ 대체 어쩌라는거지 ?ㅋㅋ

  14. ㅉㅉㅉ 2014.04.30 11:43

    난 이 글 쓴 사람이 어이없네.. 그깟 중국넘들의 반한감정이 뭐가 그리도 대단하다고 호들갑 떨어대는지... 2차사료?? 1차사료?? 풉~ 그럼 당신이 말하는 명사라는 1차사료는 모든 게 사실과 진실에 근거해서 쓰였다고 보시나? 역사란 어차피 권력을 쥔 자들의 시각에서 쓰여지게 되어있고.. 그 또한 얼마든지 조작과 편집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군.. 더더군다나 역사왜곡이라면 왜놈과 더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 한족놈들이건만.. 그 놈들 주장만 넙죽넙죽 받아들이는 당신이야말로 정신 좀 차리슈~ 아직까지도 시덥잖은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으로 밖에 안보이니까....

  15. 칼날의 황족 2014.07.04 10:20

    중국인들 반한정서보다 중화파시즘정서 걱정하는게 더 이득일것 같네요.일개방송사에서 헛소리한것 가지고 별 호들갑을 다 떠네요

  16. BlogIcon 신라인 2015.02.05 20:57

    미친소리. 금나라 시조를 신라인이라 허질않나 청나라 성씨를 김씨라 허질않나 이번엔 명나라 태조를 고려인?? ㅋㅋ 아예 그냥 중원 역사를 한국꺼라해라 ㅋㅋ 정신병자도 아니고 ㅋㅋ 단 한번도 해외침략원정을 해보지 못한 한반도 소국민들의 자괴감의 표상 ㅉㅉ 하두 조상새기들이 병싱같으니깐 후손들이 내세울 자랑스런 역사가 없어 헛된 망상을함 ㅋㅋ

    • 이런 2015.03.15 16:41

      아니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는건 중국도 인정하는 사료입니다만..
      금사에서도 금나라 태조는 고려에서 왔고 형은 고려에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송막기문에서도 여진추장은 신라출신이라고 기록하고..
      고려사에서도 여진추장은 고려인이라고 기록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신라의 후예라고 하는데 왜 그걸 억지부려서 만든것처럼 말하는지 참 웃기네요..

  17. 신한주씨 2015.03.20 03:55

    저는 신한주씨 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었죠... 그것보다 서프라이즈에 안나온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원자장자님께서는 왼손잡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이유는 오른손 손금이 정확히 王자가 있어 손바닥을 보이면 자신이 죽을까봐 개국을 하고 처음으로 오른손을 폈다고 합니다.

  18. 신한주씨 2015.03.20 04:07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것이 저희 가보를 보시면 위키백과에서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원래 朱씨는 주자의 후손들이고 고려와 조선시대 고려에 와서는 전라도 능성 등에 터를 잡고 전주이씨 집안과 통혼하는 등 각별히 지내다가 전주이씨가 함경도로 이주할 때 같이 이주하였고, 그 인연으로 고려말 조선초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3개 파로 갈립니다.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섬길 수 없다고 한 첫째 분은 두문동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굶어 죽은 72현 중의 한 분이 되었고("두문불출"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지리적 저희 가문의 설화로써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사료라고 생각 됩니다.


  19. BlogIcon 문화사대주의 2016.03.13 15:20

    그래서 모 어쩌자는건지?? 주원장이 고련인이건 청나라가 신라인이건 ㅋㅋㅋㅋ 결국 현실은 일본 .미국 노예 ㅋㅋ 중국은 모 가서돈주고살으세요 해도 안산다 더럽다

  20. 아마추어 2018.11.23 01:23

    님도 그닥 전문가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와 역사를 아주 깔아 뭉개시네요? 훈계도 적당히 해야 효과가 있지 님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을 무슨 과대망상에 걸린 정신병자처럼 취급하는건 오히려 과도한 컴플렉스이고 자학이라고 생각해요. 묻겠습니다. 짱께들이 동북공정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쓴 사서의 기록들까지 오류라고 부정하면서 우리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마 옳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죠?

  21. 환국후예 2018.12.22 15:16

    우리 동이족은 천손민족으로 지도자의 기질을 타고났습니다 그리고 씨가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정신문명을이끌 윤리도덕을지니고 영통한지도자들이 나옵니다
    그러기위해서 남한테 원한을사면 그 기운을풀기란 너무어렵기때문에 외국에 원한을 짓지않기위해 외침도않하고 인의로 이 나라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당연히 매국노,금수같은이들도 많지요,
    하지만 제대로 정통성과 정신을 지키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해온 이땅의 숨은 인재들이 많다는걸 아셔야합니다
    남이야 욕을하든 스스로 하늘의 뜻을 알고 지키고 제대로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us해당 내용은 정말 컴맹도 그림 그대로 따라하면 디지탈 문연각 사고전서(文渊阁四库全书)을 설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내용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지만, 온갖 삽질을 해야되는 나름 힘든 글이었답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각주:1].

* 사진들을 클릭을 하면 큰 사진이 됩니다!!
* 전 중문판 원도우 XP을 사용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보시기에 문제는 없습니다.
* 완성하고 다시보니 정말 스크롤의 압박이군요. 그만큼 상세하게 만들었습니다. -0-!


1. 사고전서四库全书
1.1. 사고전서란?
사고전서(四庫全書)는 1773년(건륭 38년) 중국 청조 건륭제의 명(命)에 의해 1781년(건륭 46년)에 편찬, 완성되어진 중국 최대의 총서이다. 전 3,503부 79,337권에 달한다. 전체 구성이 당(唐) 조 때 집현서원(集賢書院)에서 황실의 장서를 4서고로 나눈 것에 유래한다. 4고서에 의해 분류정리되어 있으므로, 사고(四庫) 전서라고 한다. 그리고 사부의 책의 표지는 각각 경부(녹색), 사부(적색), 자부(청색), 집부(회색)로 색깔로 구분되어져 있다. 광범위한 자료를 망라하고 있으며, 자료의 보존은 막대한 공헌을 했다. 아편전쟁, 영/불 연합군의 북경 침공(제2차 아편전쟁인 애로호 사건), 태평천국의 난등으로 소실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것은 북경도서관(문진각), 대만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원(문연각), 간쑤성도서관(문소각), 저장 성도서관(문란원)의 4부가 전한다. (출처 : 위키)


1.2. 사고전서 디지털버젼은?
사고전서는 1999년 문연각文渊阁을 기초로 처음 나온 이후에 부단한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2007년에 3.0버전까지 발표된 상태이다. 문연각 디지털 사고전서는 북경대나 청화대와 같은 중국내 대학뿐만이 아니라 하버드, 예일등의 세계 각 국 대학교 및 연구기관에서 사용중에 있다. 한국에서도 서울대, 고려대등에서 사용중에 있다.

그런데 디지털 사고전서는 학교 내부망에 먼저 접속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인터넷이 반드시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해킹된 개인판 디지털 사고전서”이다. 개이판 사고전서는 모든 원문을 제공하여 사용자가 편안하게 검색하여 관련 사료를 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연결이 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다만 해킹된 사고전서는 원문스캔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디지털 사고전서가 비록 수 많은 교정을 거쳤지만 방대한 분량 덕분에 수 많은 오탈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요한 문장의 경우 반드시 원문대조를 하여야만 한다.

현재는 사고전서보다 약 3배가 많은 방대한 용량을 자랑하는 중국기본고적고(中国基本古籍库)가 시중에 출시되었다. 그러나 텍스트만 1테라라고 전해지는 중국기본고적고는 아직 개인용 해킹버젼이 유포되고 있지 않다.

1.3. 사고전서 다운로드.
해당 프로그램의 사용법까지 설명을 해놓으면 설명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게 된다. 핵심은 다운로드 주소이고, 전체 용량이 근 7G에 달하기에 다운로드 프로그램 설명까지는 하지 않겠다. 보통의 경우 프로그램은 있지만 정작 인스톨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하신 분은 덧글을 통해서 요청해주시면 추가하도록 하겠다.

1.3.1 eMule계열(프루나, 이뮬, 당나귀, 이통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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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BT 계열






2. Demon Tool(가상씨디)
2.1. 데몬툴이란?
데몬툴은 가상으로 씨디롬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과거에 씨디롬은 600M을 저장할 수 있는 대용량 저장매체였다. 그러나 요즘은 100G가 기본인 시대가 왔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속도가 매우 빨라져서 1G을 다운 받는데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과거에 씨디의 "이미지"을 그대로 만들어주고 서로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씨디 이미지"을 씨디처럼 컴퓨터를 속여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데몬툴이다.

2.2. 데몬툴 다운로드
2.2.1. 완전 컴맹을 위한 데몬툴 다운로드


그냥 위에 있는 파일을 다운 받고 아래의 설치법을 참고하면 된다.

2.2.2 최신버젼 데몬툴 다운로드 - http://www.daemon-tools.cc/kor/home

데몬툴 홈페이지로 간다. 메뉴에서 다운로드를 선택한다.


다양한 버젼의 데몬툴이 마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다 필요 없고 DAEMON Tools Lite 면 개인사용자에게는 충분하다고 본다.



해당소프트는 20일동안만 사용이 가능하다. 사고전서는 인스톨을 한 이후에 데몬툴이 필요가 없기에 사고전서만 설치하실 것이라면 데몬툴 시험판만 사용하셔도 무방하다. 만약 계속 데몬툴을 사용하실 생각이라면 구매하셔도 된다. 암흑루트는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사항이기에 자제하도록 하겠다.

다운로드로 가시면 여러 버젼의 데몬툴을 제공하는데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DAEMON Tools Lite 이상이 필요 자체가 없다고 본다. DAEMON Tools Lite 을 다운받으시고 20일 동안만 사용하셔도 사고전서 설치에는 문제는 전혀 없다. 다만 프로그램이 더욱 발전하길 원하신다면 구매를 하셔도 무방하다. 아니 구매를 적극 추천한다. 여러분의 작은 힘이 프로그램 개발에 큰 힘이 된다. 적당히 하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외치는 것이다.!!


2.3. 데몬툴 인스톨방법

바탕화면에 데몬툴이 있다. 더블클릭을 해서 실행한다.

실행을 하면 혹자는 이런 경고화면이 나온다. 그냥 무시하고 "진행"을 택한다. 취소하면 안된다!!!

언어를 설정하는 화면이다. 초기에는 XP 언에에 맞추어서 세팅이 되어있다. 본인에게 편한 언어를 선택한다.

이제 한글투성이다. 별 말 아니다 그냥 "다음"을 눌러준다.

라이센스 동의서이다. 심심하면 읽어보셔도 된다. 사실 필요 없고, 그냥 "동의"을 누르면 된다.

정식으로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면 "트라이얼 라이센스"을 선택하고 "다음"을 누른다.

아무거나 해도 된다. 기본으로 하나 고급으로 하나 다른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본인은 "기본 standard 에디션"으로 설치했다.

설치항목 선택이다. 그냥 곧장 "다음"을 눌러주어도 된다. 고급사용자라면 알아서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설치위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설치"버튼을 누르면 된다.

설치가 끝나면 컴퓨터를 재시작하여야 한다. "지금 재시작"을 선택하고 "마침"을 꼬옥~ 클릭해주자.




2.4. 데몬툴 사용방법

데몬툴이라고 적힌 아이콘을 더블클릭한다.

그러면 조그마한 아이콘 뜨는 곳에 "상자에 갇힌 번개모양"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데몬툴이다. (본인의 경우 바를 왼쪽에 위치시켜놓았다. 신경쓰지 말도록-_-)

번개모양을 마우스 왼쪽으로 클릭을 하면 이와 같이 나온다. 위쪽의 Unmout all drives는 씨디를 빼는것이고, Device.....는 씨디를 선택하는 것이다. 씨디를 선택해보자.

그리고 익스플로우에서 "가상씨디"을 찾으면 된다. 드디어 이제부터가 본론인 사고전서!!!




3. 사고전서 인스톨

사고전서를 바탕화면에 놔둔다. 그럼 조금 편안하게 설치를 할 수 있다. 파일은 총 18개로 6.9GB이다.

번개모양을 마우스 왼쪽으로 클릭을 하면 이와 같이 나온다. 위쪽의 Unmout all drives는 씨디를 빼는것이고, Device.....는 씨디를 선택하는 것이다. 씨디를 선택해보자.

그리고 익스플로우에서 "가상씨디"을 찾으면 된다. 드디어 이제부터가 본론인 사고전서!!!

사고전서가 있는 곳으로 간다. 바탕화면에 놔두게 되면 왼쪽에 "바탕화면"표시가 있다. 그것을 클릭하여 보다 빠르게 갈 수 있다.

[文渊阁四库全书文本数据光盘].SKQS.[DownCD.com].iso 라는 파일을 선택해서 더블클릭한다. (파일이름은 미묘하게 다를 수 있지만 201, 202, 301과 같은 숫자가 없는 파일을 선택하면 된다.)

클릭을 하고 "내컴퓨터"로 가면 이처럼 skqs라는 씨디롬이 보일 것이다.

씨디를 클릭하고 들어가서 Install.exe 이라는 파일을 더블클릭해서 실행한다.

그럼 위와 같은 화면이 나온다. 설치하는 위치를 지정한느 것이지만 신경 쓰지 말고 표시해둔 곳을 클릭한다. "설치시작"이라는 뜻이다.

이런 화면이 나오면서 알아서 설치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설치가 끝나면 위와 같은 화면이 나온다. 설치가 완료되었다는 뜻으로 표시해둔 곳을 누르면 된다. "확인"이라는 뜻이다.


이제 사고전서 프로그램은 설치를 끝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어떤 데이타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데이타를 넣어줄 시간이다. 이 부분을 특히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겁먹지 마라. 그림을 보고 그대로만 따라하면 된다.


4. 데이타인스톨

설치를 끝내고 "시작"-"프로그램"으로 가보면 "文淵閣四庫全書電子版 - 全文版"라는 폴더를 볼 수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Ⅲ數據盤安裝嚮導"이라는 녀석이 있다. 이녀석이 핵심이다.

Ⅲ數據盤安裝嚮導" 이녀석을 마우스 우클릭한다. 그럼 메뉴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보내기"에 마우스를 올리면 다시 또 다른 메뉴가 나온다. 그 중에서 "바탕화면으로 바로가기 보내기"항목을 선택한다.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하면 설치가 엄청 편해진다.

제대로 했으면 바탕화면에 Ⅲ數據盤安裝嚮導"라는 아이콘이 보인다.

Ⅲ數據盤安裝嚮導라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빨간표시를 클릭하면 된다. 데이타를 설치하겠다는 의미이다.

위의 빨간색을 클릭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위쪽의 데이타들은 스캔데이타로 여기서는 제공해주지 않는다. 주욱~~ 스크롤을 내려서 [CD201]을 찾는다.

201을 마우스로 한번 클릭한 뒤, 빨간 표시를 한 确定을 눌러준다.

이제 가상씨디에 201데이타파일을 넣어주어야 한다. 프로그램을 인스톨 했을 때처럼 조그마한 번개아이콘을 마우스 왼쪽버튼으로 클릭하고 표시한 부분을 클릭한다.

데이타 파일들에서 "[文渊阁四库全书文本数据光盘].CD.201.[DownCD.com].iso"이라고 쓰여진 파일을 선택하고 확인한다. 파일이름은 다를 수도 있지만 "201"이라는 숫자가 들어가 있으면 100%다.

201데이타를 설치하겠냐는 질문이다. 빨간색 표시를 한 确定을 눌러준다.

설치위치를 묻는 것이지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빨간색 确定확인을 누른다.

역시 확인하는 것이다 그냥 빨간색 是(네)을 선택한다.

데이타가 설치되고 있다. 그냥 가만히 있자.

이런 표시가 나오면 데이타가 설치가 다 된 것이다. 이제 확인确定을 누른다.



위와 같은 방식을 데이타 201에서 308까지 모두 설치를 하면 이제 편안하게 사고전서를 사용할 수 있다. 사고전서의 구체적인 사용법은 사고전서를 사용할 사람들이라면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되어서 일단 생략하도록 하겠다. 혹시 필요한 분이 있으면 덧글로 요청해주시기 바란다.



바로의 중얼중얼
....힘...힘들었다.............중얼거릴 힘도 없어...헥헥.......음...이것만 주의했으면 한다. 사고전서는 영인본이든 디지탈버젼이든 오탈자가 존재한다. 사고전서는 기본적으로 어디까지나 공구서로서 활용을 해야된다. 귀찮다고 원문대조 안하면 나중에 피눈물이 흐를 것이다. -0-!







  1. (...라고 해도...필요한 분이 있기는 하려나..ㅠ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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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명 2010.05.26 02:04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5.28 18:30 신고

      죄송합니다. 용량이 몇 백메가를 넘어서 몇 기가랍니다..^^::: 직접 알아서 잘;;

  3. 이정은 2010.07.08 10:21

    저도 사고전서 설치 파일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201~308까지의 데이터는 데몬으로 잡히지 않던데요. 그래서 ODD가 없으면 설치가 안되었습니다. 님의 글을 보고 데몬 버전의 문제인가 싶어 최신으로 업댓하고 다시 사고전서를 설치해봤는데 여전히 안되네요. 흠.. 사고전서설치파일의 버전이 다른 걸까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7.08 10:34 신고

      잡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데이타파일들이 문제가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군요. 왠만한 데몬으로도 데이타는 문제없이 잡힙니다....흐음..유일한 경우의 수가 씨디롬의 경로(보통 d: )가 데몬의 경로(보통 E: )일 경우 문제가 되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 경우 씨디롬의 경로를 F: 정도로 해주어서 데몬의 경로보다 하위로 하면 됩니다.

  4. 이정은 2010.07.08 11:07

    아! 감사합니다. 데몬과 cd룸 드라이브를 말씀해주신대로 바꿔봤더니 깔리네요.
    데몬은 인식했었지만 사고전서에서 읽어내지 못했었거든요. 이제 굳이 cd로 구울 필요없겠어요. 참 피곤한 일이었는데. ㅋ odd가 없는 지인이 사고전서를 설치하고 싶다고 하셔서 고민했었거든요. 덕분에 간편히 해결할 수 있겠습니다. ^^

  5. 익명 2010.07.12 20:55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7.12 16:11 신고

      으음...인터넷에서 "씨디롬 경로 바꾸기"로 검색해서 바로 위에서 제가 설명한대로 씨디롬 경로를 D: 에서 z: 정도로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6. 연리지 2010.07.15 10:19

    바로님께서 올려주신거 보고 찬찬히 따라 했더니 잘되요^^
    3. 사고전서 인스톨 부분에서 몇번의 실패가 있었는데
    전 앞서 말씀하신 드라이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c드라이브에 깔리다만 4KBrowser 폴더를 지워주고 다시 첨부터 하니까 그때부터 잘되던걸요
    아무튼 너무너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 자료를 다른 곳에서 구해놓고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ㅋㅋ
    저 그리고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러니 사용법도 같이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부탁드립니다.^^v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7.15 13:05 신고

      설명이라......글쎄요;;; 특별히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던가요?;;;;; 어떤 설명이 필요하신지?? 검색되고 글을 볼 수 있고, 글을 따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7. 크리스프 2010.07.21 01:17

    일단 친절한 설명 감사드리고 ㅋ

    제가 자부 의가류만 따로 보려고 하거든요
    경, 사 등 나머지 부분 제외하고 제가 보려는 곳만 간편하게 볼 수 있나요?ㅠ

    가상이미지파일용량이 너무 많고 또 다 깔기엔 시간도 좀 그렇고 해서요 ㅠ

    알려주세요 ㅋㅋ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7.21 12:30 신고

      무슨 소리이신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그냥 읽는 용의 파일은 왠만한 대학도서관이나....하다못해서 인터넷에도 쉽게 구할 수 있지 않나요?? 검색까지 필요하신건가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8. lee 2010.09.26 15:45

    사고전서를 애타게 구하고 있었는데, 다운 링크 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당나귀에서 ed2k서버가 죽은 것 같다고 나옵니다. ㅠㅠ 다시 살려주시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26 17:38 신고

      사실 링크를 거는 것 자체가 조금 문제가 있는 행동입니다. 또한 다른 주소를 올려놓을 수도 있긴 하지만....끙....그런곳은 대부분이 회원등록이어서....쩝..............끙..;;;;;

  9. lee 2010.09.27 18:49

    ㅠㅠ 다운을 받고 있는데, 거의 연결이 안됩니다. ㅠㅠ 어제 오후부터 1번 파일을 걸어두었는데 지금까지 3.16mb 전송되었습니다. 아! 어떡해야 할런지.. 죄송한 부탁을 드려도 될런지요. 네이버 N드라이브에 올려주실수 있을까요? 제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네이버 N드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용량은 10기가 입니다. 부탁 좀 드립니다. 원문대조해야 할 것이 많은데 국회도서관가서 사고전서 책을 일일히 찾아가며 할려니 엄두가 안나서 그렇습니다. 해주실 수 있다면 제 네이버 아이디와 비번을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27 19:34 신고

      토렌토 시드로 skqu2010 이라는 새로운 파일 본문에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굳이 국회도서관 가지 않아도..제가 알기로 왠만한 대학교에서는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만-_- 절대 사고전서 전자버젼으로 원문대조를 하시면 안됩니다. 안 걸리면 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전자버젼은 분명히 한계가 있고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직접 가서 대조해보는 것입니다.

  10. lee 2010.09.28 01:07

    저는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도 나오지 않아 대학교로의 접근도 어려운데다, 그리고 서너개 대학교에서 사고전서 전자판 로그인이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성균관대의 경우 한번에 2명만 로그인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용시간도 30분인가(?)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고전서 cd판을 구하면서 처음에는 원문을 스캔한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니더군요. 원문 스캔본이 아니라면 당연히 책으로 출간된 원문본과 대조를 할 생각입니다. 토렌토를 몰랐는데 님의 파일을 보면서 검색해서 토렌토 클라이언트 파일을 설치해 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28 01:11 신고

      원판의 경우 타이완 소장의 문연각 사고전서를 스캔한 버젼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킹된 버젼에는 용량상의 문제로 텍스트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설령 스캔버젼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여러 판본으로 비교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만사 귀찮고 다행히도 중화서국이나 상해고적쪽에서 나온 판본이 있으면 그것만 참고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고전서본만으로 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자버젼이 아닌 원래 사고전서 자체에도 오탈자가 난무한답니다-0-

      파일의 사용법은 토렌토(Torrent)로 검색해보시면 나올겁니다. 가장 간단하게 말해서 uTorrent 프로그램을 다운 받으셔서 설치한 뒤에 그 프로그램에 드래그를 하면 다운을 받아줄 겁니다^^

  11. Favicon of http://www.xingxingchina.com BlogIcon 싱싱차이나 2010.09.28 14:53

    일단 토렌토로 걸어놨습니다.^^ 바로님 덕분에 앞으로 좀더 쉬운 고전 접근이 가능하겠네요~ㅎㅎㅎ 아니지~이 해킹판을 만든 수많은 온라인 레지스탕스 분들의 덕택에^^

    어쨌든 사고전서의 문익점이십니다.ㅎㅎㅎ

    받아서 잘 사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lee 2010.09.29 14:38

    자꾸 문의만 드려 죄송합니다. 토렌토에는 제대로 걸렸는데, 파일명과 '다운 중'이라는 표시만 뜨고 전혀 다운이 되지 않네요. 아래 전송 표시줄에도 다운속도가 계속 '0'으로 되어 있습니다. 배포도 '0'으로 되어 있습니다. 혹시 몰라 이틀 내내 걸어두었는데도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휴... 어떻게 해야 할런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30 21:41 신고

      으음... 요즘 중국 저작권감독이 좀 심해서...
      ............그렇다고 몇 기가 되는 것을 어떻게 드릴 수도 없고,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정도선까지의 "불법행위"는 할 생각이 없답니다^^::

  13. Please 2011.04.03 13:38

    저는 지금 데이터씨디는 16장 있습니다만,

    설치 이미지가 없습니다 ㅠㅠ 저기 죄송한데 설치이미지만 메일로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설치이미지 하나라면 가능한 용량이라고 생각되는데 ... 부탁을 이렇게 드려도 될런지요,...
    주소는 a18cbda@nate.com 입니다.
    전공이 동양사학과라서 사고전서가 있으면 무척 도움이 됩니다. 학술적인 목적으로 활용코자 하는데 어떻게 좀 안될까요 ㅠㅠ

  14. 익명 2011.05.12 14:27

    비밀댓글입니다

  15. 김형규 2012.01.30 10:38

    설치까지 다 했고 skqs인스털까지 했는데 cd201, 202 등을 데이터 인스톨하는데서 막히는군요. 데몬툴로 가상시디 설정하고 설치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봐서 예라고 눌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16. 이수복 2012.10.11 20:15

    사고전서를 받고 싶은데 토렌트의 시더가 없어서 못받고 있습니다.
    시더 유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니면 제 네이버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nqhr2100@naver.com

  17.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1.08 16:52 신고

    사고전서를 보내달라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저는 불법행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18. 김미미 2013.08.26 16:03

    안녕하세요?
    사고전서 설치건으로 문의합니다.
    cd로 가지고 있던 사고전서를 씨드롬이 없는 노트북에 설치하려고 파일을 전부 복사해서 c드라이브에 넣었는데요. 데몬툴이 씨디를 인식하지 못하네요. 데몬툴에 삽입하고 내컴퓨터에서 찾아서 열려고 하면 열리지 않아요. 무엇때문인이죠? 오늘 공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깔아보려고 하다가 아직도 못깔고 있네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ㅠ.ㅠ

    • 사고전서 2013.09.24 14:09

      http://zhixing.bjtu.edu.cn/thread-344690-1-1.html

      여기는 사고전서 스캔본 151기가바이트를 받을 수 있는 사이트라는데요.
      한번 되는가 보세요. 회사라 방화벽이 막혀 있어서 못하고 있네요.

  19. 바람의 언덕 2014.03.26 11:14

    skqs.ios 메일로 받을 수 있나요 ?

    다른건 다 다운이 되는데 이것만 안되네요 ^^
    나이들어 공부하려니 여러가지로 정보가 부족하네요 ...

    부탁드립니다.
    oldjappa@naver.com

  20. ssc0625 2014.05.11 11:19

    저도 부탁드립니다...0.2% 부족하는데 하필이면 skqs가 부족합니다
    skqs.ios 메일로 받을 수 있나요 ?
    ssc0625@naver.com

  21. 궁금함 2015.06.22 19:46

    사고전서 한글판 윈도우7에서 한자입력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잘쓰지 않는 한자는 ?로 깨져서 표시가 되는데 어떻게 입력해야하나요??

    그리고 검색속도가 이렇게 느리나요 계속 읽는 표시만 나오는데

현대적 의미의 출입국관리소는 국가기관에 의해서 국경에서의 출입행위를 감독관리하는 기관이다. 이 말은 출입국관리소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성립과 안정적인 유지 및 국가간의 무역을 위한 기본적인 경제조건과 교통조건이 선결 조건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을 갖춘 시기는 과연 언제쯤일까? 서양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에 중국대륙사를 중심을 이야기해보겠다.
 
무역을 하려면 무역이 가능할 정도의 경제력이 필요하다. 상나라에는 여유자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갑골문등에서는 "납공 纳贡"(제후가 왕에게 바치는 제물)이 나온다. 납공을 했다는 것은 일정한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행정기관의 존재여부는 명확하지 않다[각주:1].

관련된 실질적인 행정기관으로서의 존재는 주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주례(周礼-地官篇)에 따르면 关(관문할때의 관)이라는 기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사관(司关)으로 간략하게는 문지기이다. 장절(掌节)은 비자발급해주는 사람이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이 시기야 말로 출입국관리소의 출범이다. 실제로 중국학계에서도 이 시기를 출입국관리소의 시초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서 주나라는 어디까지나 봉건제를 행하던 "하나의 국가"였고, 어디까지나 제후와 왕 사이에 벌어졌던 내부물자이동이기에 출입국관리소의 시작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한다. 아예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국(国)의 유래를 생각하면 조금 황당한 반론이다. 왜냐하면 국은 성단위의 행정단위를 이야기한다. 더 간단하게는 그리스와 같은 도시국가였던 것이다.  비록 명목상으로 주왕이라는 최고통치자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통치권은 매우 약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나 현재 중국정부의 "하나의 중국"의 정신에 너무 영향을 받은듯 하다[각주:2].

혹자는 당시에 관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막은 것이지 물자를 막았다고 보기 힘들기에 출입국관리소라고 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물자가 발이 달려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사람의 손을 통해야했기에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곧 물자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떠나서 고대사의 수 많은 기간동안 사람이 곧 재산이었다. 사람의 통행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곧 물자유통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각주:3].

춘추전국시대에 오면 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출입관리제도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 예를 들어서 춘추시대에는 관중은 "관세를 낮추고 상인을 대접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전략"이라는 지금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략을 실제로 실행하여 대박이 난다[각주:4].  전국시대로 오면 상앙은 관세를 무겁게 하여 농업을 발전시켜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 당시 상황에서 농업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농산물이라는 먹거리차원만이 아니라 농민들자체가 병사였던 시대이기에 농업의 발전은 곧 부국강병과 동일하였고, 이런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상업을 막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상업을 억제는 경제원칙은 중국고대사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법칙이 된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을 하고 농민이 곧 군사력이라는 법칙이 붕괴될수록 사회적 모순은 점차 커져만 가게 되었다.

핵심은 춘추전국시대에 다양한 출입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무역이 어느 정도 성숙했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어떠한 제도도 기본 없이 순식간에 성숙할 수는 없다. 다만 중국 출입국관리 발전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대로 넘어오면서 중국대륙은 통일체계를 이룬다. 그러나 초기에 국력은 매우 약하여 내부적인 통치력도 약하였고, 외부적으로는 흉노에게 처참하게 밀리고 불평등조약을 맺게 된다. 주기적인 흉노에 대한 조공을 하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변방에 호시(胡市 북방계열과의 무역시장)을 정식으로 만들게 된다. 그 전에도 북방과의 무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 시기에 정식으로 사료에 나타나게 된다[각주:5].  한무제때가 되면 북방공략에 나서게 되며 장건(张骞)의 노력으로 서역으로의 무역노선도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대외무역이 활발한 시기는 매우 짦았으며  무역권한도 기본적으로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위진남북국시대는 매우 혼란한 시기로 북방민족이 대거 중국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며 자연스럽게 국제무역이 번성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주목할 것은 "조공-책봉 朝贡-册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외교시스템적인 국제무역이다. 유교의 국제질서시스템을 명목상으로 이어가며, 겉으로 보기에는 조공을 바치면 일정한 벼슬을 내리고 있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외교전략으로서 조공이라는 명목상의 물품을 바치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을 내어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대륙이 혼란스러운 상황마다 벌어졌을 뿐만이 아니라, 평화시대에도 이른바 "평화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로 기본적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 바로 중국어 
중국어로 출입국 관리소는 海关(hai guan)입니다. 여기서 海는 바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해(四海)는 구이(九夷), 팔적(八狄), 칠융(七戎), 육만(六蛮)과 같은 중국외부의 지역을 지칭합니다. 사실 사해의 밖에도 사황(四荒)이라던지 사극(四极)과 같은 지역 범위가 있지만, 지금은 중국외의 모든 지역을 가르킵니다[각주:6]. 관(关)은 위에서도 나왔지만 관문의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중국어의 海关은 중국외 지역과의 교류를 관리하는 관문이라는 의미입니다.

* 모종의 이유로 최대한 쉽고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입니다. 문헌인용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귀찮아서 넘겼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에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아마도? 루루루루...머...읽는 분이 있기는 할런지~~

  1. 혹자는 孟子-梁惠王편에서 나오는 고사를 인용하고는 하지만 맹자 자체가 만들어진 시간이 늦기에 그리 신빙성은 없어보인다. [본문으로]
  2. 막말로 어용이라는 소리지요~ [본문으로]
  3.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는데 노예제도가 폐지된지는 몇 백년도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 전까지 사람도 "문건"였다. [본문으로]
  4. 공자도 역시 관세를 낮추는 정책을 이야기 했었다. [본문으로]
  5. 중국사에서는 몇몇은 이것을 가지고 화평을 맺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조약내용을 보면 누가봐도 한나라가 무릎을 꿇은 거다. [본문으로]
  6. 《尔雅·释地》 [본문으로]
저는 명확하게 말해서 한국학계 소속이 아닙니다. 대학교도 대학원도 해외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학계와는 계속적인 연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자이나 내부자로서 느끼는 한국학계는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한국학계에는 골동품상과 보따리상만이 있다. 시대가 지나가버린 골동품을 계속 우려먹거나 해외의 지식을 보따리로 싸들고 와서 풀어버릴 뿐이다."

어느 분[각주:1]이 말씀하신 한국학계의 현주소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동안 한국의 학계도 대학교통폐합을 비롯하여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새끼" 시스템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학문 수준의 변화도 모르겠습니다[각주:2].

본인이 이 모든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실력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학문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는듯도 합니다. 석박사를 졸업하고 눈물겨운 삽질을 하고 있는 형-누나들을 보면서 열망이 생기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각주:3].


  1. 혹시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 말은 아닙니다. 누구인지는 일단 비밀로 하겠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것이라고 봅니다. [본문으로]
  2.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누군가의 사례를 골라서 비판을 해야되기에...그냥 넘기겠습니다. [본문으로]
  3. 현재 교수된 사람도 별로 없고, 교수가 되어도 자신의 전공과 일치되는 수업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습니다. [본문으로]
  1. 비전공자 2010.01.10 16:59

    바로님! 저도 보따리상 골동품상 처럼 주로 한국에서 나온 역사책을 뭉뚱거려 고대사에 관한 블로깅 질을 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하는 짓이랑 한국 학자들이 하는 짓이랑 별반 차이가 없다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비전공자로 관련 학자가 아니거든요. 뭐 어떤 나라든 어용과 정치의 문제가 없기는 하겠느냐만-일본 중국도 이런 점은 무시 못할 정도지만-제 보기엔 한국학자들 처럼 괴상한 삽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들이 연구는 하지 않고 일본,중국 학자들이 하는 연구만 번역하는 사람들이었음 좋겠어요. 이것만 되도 소위 식민사학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합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0 21:59 신고

      제가 좀 비판을 하긴 했지만,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모습을 이야기한 것 뿐이랍니다. 물론 언급하신대로 보따리상과 골동품상정도의 분들도 쫌 많이 있지요. 하하;;;;

      그런데 블로그를 운영하시는듯 한데, 주소를 안 적어주셨네요. 고대사에 관한 블로깅이라...어느 블로그이신지요????

  2. 비전공자 2010.01.10 17:01

    한가지 더! 혹시 중국학자들은 한국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어떻게 평하는지 궁금하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0 22:02 신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힘들군요. 학문에서는 사실 국적을 통한 연구사보다는 한 개인에 대한 연구평가를 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평가를 보자면...동양사쪽을 보면 아무래도 일본학계보다 실력을 떨어진다는 평가가 대다수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떨어지긴 합니다.-_) 좀 비꼬아서 평가하면 일본학계의 아류수준이죠.^^::: 어디까지나 비꼬아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0-;;

  3. 비전공자 2010.01.11 02:32

    바로님! 무엇보다 바로님이 전공분야에 대해 이렇듯 명쾌하게 설명하시니 제가 이 분야를 새롭게 볼 수가 있는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적 환경에 익숙하고 한국만 잘못 된 줄 알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한중일 모두 제 각기 특징들이 있군요. 한국의 경우 여러가지 원초적 열악성이 있지만 결과적으론 양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질 수 밖에 없군요.

    "사실 한국으로뿐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많이 수입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동양사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연구방법론입니다. "--> 이 문장에 이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군요.

    그 외에는 좀 입장이 다르네요. 물론 동북아재단 책 수준이 예전보다 업된 것은 맞습니다만, 이덕일씨 말대로 식민사관을 완전히 씻었다고 보여지진 않습니다. 위의 바로님이 적용한 기준에는 한참 미흡할 텐데요...뭘.

    그리고 입장을 바꾸놓고 생각을 못하시는 점이 아쉽군요. 한글 자치통감 따위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략 중국사에 대한 개론서 들은 좀 더 컴팩트한 판으로 여기저기 찾아볼 수가 있을 걸요. 아마 자치통감의 방대한 지식을 필요로하는 사람이라면 ... 아마 다른 책을 읽는게 나을 겁니다. 자치통감은 일종의 "복기"정도로 활용하는 것. 한마디로 애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래도 바로님이 비전공자의 입장을 잘 이해 못하심이... 어쨌든 담에 뵙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1 11:58 신고

      저도 몇 번이나 사용한 표현이지만 명쾌라기 보다는 거칠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결과에는 수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고, 그 원인간의 상관관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 그냥 싹뚝 짤라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나만을 들어내놓는 것이랍니다.


      책의 추천은 제가 전공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이덕일씨는 이른바 환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분을 만리장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최근 이덕일씨가 이병도의 설을 왜곡하여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주장"라고 비판했었습니다. 제 기억에 이덕일씨가 동북아역사재단이 식민사관이라는 것을 간략하게 보면

      1) 한사군의 한반도내 존재가능성인데 이것을 현재의 사료와 문물로는 한반도내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더 정확한것은 북한에 대한 신빙성 있는 발굴 후에나 알 수 있을듯 합니다.

      2)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불신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타당합니다. 삼국사기는 "통일신라"에 이르러서 겨우 만들어졌고, 초기 기록은 일차사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참고로 일본학계에서도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임하냐 마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마냥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한다고 식민사관이라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초기기록을 왜 못믿느냐면, 사람의 기억은 먼 과거에 대해서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내에서 후기 조선과 같은 명확한 사관시스템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비록 초기기록은 당시까지 내려왔지만 지금은 실전된 책의 기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2차사료로서 역시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만약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그냥 믿는다면 같은 방법론으로 "일본서기"의 초기기록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소리이며 그럼 임나일본설도 합당하다고 보아야 됩니다. 이덕일씨는 이에 대해서 마치 임나일본설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병도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했다고 말을 하는데;;; 이병도는 오히려 임나일본설을 부정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죠?


      현재까지의 방법론으로는 이덕일씨가 잘못된 말을 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기본적으로 타인의 발언을 왜곡하는 것부터가 학문정신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학계를 비판하면서 이미 과거의 인물인 이병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 어이가 없습니다. 이병도씨가 한국사학계에 미친 영향은 분명히 크지만, 이미 그 시대를 벗어난지 오래되었습니다. 오히려 민족주의사관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부풀리는 행위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조선을 별 증거도 없이 마음대로 추정하는 행위-_)


      한글 자치통감...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방대하지도 않으며, 원문이 아니기에 고문에 대해서 약한 분들도 읽을 수 있고, 내용도 편년체(시간의 흐름대로 적어놓은 책)이기에 시대의 순서대로 소설 읽듯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한번 시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의외로 재미있음에 놀라실 겁니다....라고 해도 전공자만의 재미려나...흐음..아닌데;;;;

      그 외에 컴팩트판은 워낙에 많이 있고, 그 중에서 "이것이야 말로 대중을 위한 역사책이다"라는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4. 비전공자 2010.01.11 13:14

    그러고 보니 바로님도 넓은 의미의 "환까"라고 할 수 있겠군요. 참고로 전 환빠-환까 다 안좋아합니다. 그런 점을 미리 염두했다면 바로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요점만 생각하면 좀 우습게 되었지요. 번지수를 잘못찾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도움은 많이 됐습니다.

    1)의 경우 바로님이 신중하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2)의 경우 물론 일부 학문적으로 타당하죠. "일부". 문제는 학적으로 완전히 근거가 없다고 완전히 판명된 사안에 대해서 한한다는 점이죠. 그렇다고 명백히 증명되지 않은 사안(기사)에 대해서는 이 말을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는 것이죠. 엄밀히 "불신론"을 식민사학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속설로서의 불신론을 말함입니다. 대체로 그것은 무리한 일반론의 오류와 같죠. 그래서 그들이 식민사학이니 환까니 욕을 먹는 이유죠. 반면 환빠나 식민사학에 대해 열내기 좋아하는 분들중에 그냥 국내기록을 믿어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죠. 어차피 환까-환빠들은 엄밀한 학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속설적인 의미에서 불신론"이란 허수아비를 들고 신(信)이니 불신(不信)이니 하는 것이죠. 그러나 삼국사기는 국내기록이라 한반도 그 부근의 역사를 다룰 때 당연히 다른 사료보단 중요성이 높다는 것이 제 상식입니다. 물론 바로님은 소위 동양사전공이시니 입장이 다르시겠지만요.

    저는 이덕일씨 이야기도 가려서 듣는 편입니다. 이 점은 뭐 관점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솔직히 근데 동북아 역사재단의 글도 나름 정리는 잘 되어 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중국쪽 연구들에 많이 의존하는 듯 싶더군요.

    그리고, 한글판 자치통감 솔직히 나온건 그 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번역한 분 정말 대단한 일 하셨다고 봅니다. 저도 예전에 재미 좀 붙이려고 삼국지, 열국지도 읽고 (십팔사략도 읽을라다 말았습니다) 한 세로줄로 된 4권짜리 중국 개론서를 다 읽어 보았습니다만 문제는 기억력의 한계로 다 잊어 먹더군요. 결론적으로, 결국 자치통감을 한글로 읽으나 한문으로 읽으나 남는 것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혹 한문으로라면 모를까 한글로 읽을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전 종이 두께가 어느 정도 이상되는 책 무조건 X입니다. 시간도 없고 말씀드렸듯 한문도 그리 잘하진 못하죠. 사실상 능력 밖에 일일지도 모른다능. 바로님은 바로님대로 한글 자치통감이 그럼에도 이래서 좋다고 주장하신다면 저 역시 수용하겠습니다. 솔직히 무엇보다 시간이 없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1 14:57 신고

      굳이 따지면 환까겠지요. 하지만 환단고기계열들은 솔직히 좀 문제가 심각합니다. 학문이라고 절대 부를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 불신론??
      기본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은 사료가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당연히 그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은 이상 그것을 믿는 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증명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단 "불신"하는 것은 역사학 외의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

      핵심은 증명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소위 환빠라고 말해지는 부류들은 원문의 한자를 마음대로 넣고-빼고-수정하는데 멈추지 않고, 가짜 사료까지 동원해서 증명하는 것처럼 하니 비판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듯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조차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인 것입니다. 소위 재야라도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하면 믿겠습니다. 그런데 그런것 없이 사학의 가장 기본인 사료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으니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습니다.




      * 혹시 일본어가 되시면 일본쪽 책을 구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일본쪽에서는 대중을 위한 책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얇기도 하고요. 거기에 만화! -0-;;; 일본어가 안되신다면;;;;;; 머;;; 어쩔 수 없는;;;;

  5. 익명 2010.01.13 14:40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1 01:08 신고

      자기 전에 잠시 확인하려는데 이런 글이...간략하게 대답하겠습니다.

      1. 골동품상과 보따리상.
      언급하신대로 분명히 스스로만의 독창적인 연구는 없이 해외의 논문을 가지고 와서는 자신의 것마냥 포장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 수준을 뛰어넘어서 제대로 된 연구논문을 주기적으로 발표하지도 않고, 학회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모든 한국의 학자들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일반화의 오류입니다.하지만 대다수가 과연 얼마나 창의적인 연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2. 한중간의 인터넷과 언론의 자유.
      제가 글에서 잘못 묘사를 해서 오해를 만든듯 하군요. 저는 중국의 인터넷이나 언론의 자유가 상당히 참담한 수준이고, 한국인들은 모두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한국의 사정이라고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에 비해서야 한국의 사정이 더 좋습니다. 이 부분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다만 실명제만큼은 확실히 한국이 중국에 비해서 앞서고 있습니다. 만쉐~)

      3.한국 고대사연구의 문제.
      상당히 복잡적인 문제라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군요. 거칠게 묘사만 하겠습니다.

      3.1. 학문적 자유.
      한국에서의 학문적 자유는 일정이상 있습니다.님이 언급하신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하다못해서 중국만해도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학문적 자유보다는 학문적 엄격함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듯 합니다. 그렇기에 제자 논문 뺏기, 다른 논문 배끼기, 전에 발표한 논문 살짝 수정해서 다른 곳에 발표하기등등의 일련의 삽질도 모자라서 그것이 관행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죠. 이는 학문적 기초의 문제로 보입니다.


      3.2. 학문적 기초의 문제
      고대사 연구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한가지입니다. 사료입니다. 문제는 한국고대사에 관한 사료는 매우 희박합니다. 그러다보니 연구자체를 하기 힘들고, 중국과 일본사료에 있는 내용을 참고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올 수 밖에 없습니다.(삼국유사는 사실 2차사료정도로 봐야되는데 한국에서는 1차사료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희박한 사료도 제대로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문해독능력의 문제입니다. 실질적으로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면 석사단계에 올라가서야 고문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자에 익숙한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기초가 부족할건 당연합니다.(첨언하자면 이것을 위해서 한자을 부활하겠다는 것은 코메디입니다. 전국민을 역사학자로 만들것도 아니고-_) 그 외에도 수 많은 곁가지 문제가 있지만 결국 사학에서의 핵심인 사료장악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4. 일본의 아류라는 것은..
      식민사관이나 배끼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학문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학계에서 신민사관은 이미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다만 일본의 사학연구의 방법론등은 한국으로 많이 수입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으로뿐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많이 수입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동양사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연구방법론입니다.

      간략하게 일본의 연구방법론을 이야기하면, "더 깊게 더 작게"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문 한문장을 가지고 한달 이상 토론을 하는 "미친짓"을 보여주며, 중국 베이징 후통(胡同) 앞에 있는 장식문향비교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합니다. 중국의 경우 처음부터 고문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일본과 같은 방식보다는 "더 넓게, 더 크게"로 요약된다고 봅니다.간단하게 전 일주일마다 자치통감 3卷씩 읽고 문제 찾기를 했습니다 어느 쪽의 방법론이 특별히 맞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일본의 학풍을 가지고 왔기에 기본적으로 정밀함과 세밀함을 중시합니다. 실제 한국에서의 고문 수업도 이와 같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뛰어넘는 학문적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한참 뒤쳐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첨언하자면 역사관련 책의 경우 스스로도 이해 못하고 쓴 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특히 번역서의 경우 사실상 해외의 책이나 "네이버 지식인"수준의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번역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경우도 꽤 봤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동북공정으로 고구려광풍이 불고 그에 상응해서 프로젝트비를 타려고 전공도 아니면서 휘갈겨 쓴 엉터리 책들도 꽤 보았군요...)

      또 이른바 환빠계열의 악의적인 사료조작의 책도 많이 있습니다.(그래도 이 계열이 재미와 흥미는 최고입니다. 존경스러울 지경입니다. 그 작명센스부터 악의적으로 사료를 조작하는 솜씨는-_)

      학문적인 깊이가 있는 책은 대부분이 일반인들에게는 개뿔도 재미 없습니다.(일반인들이 지정조격을 볼 이유도 없고, 출판되는 책은 쉽게 쓴다고 노력하여도 습관대로 전문용어가 나와서 비전공자들에게는 먼소리인지 모르고...)

      이렇게 재미와 깊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책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다만 조심 또 조심해서 책을 고르시고 읽어야 된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굳이 한국의 역사계에서 일반인이 재미를 찾는다면....제가 가끔 노는 것인데...

      환빠계열을 보고 그럴듯한 문장을 보고(99.99% 구라) 그것을 논리적으로 격파하는 놀이랄까요? 사실 이건 초록불님이 왠만한건 정리해놓으셨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떡밥을 만들어주시는 노력파가 한국의 환빠계열분들이시기에 언제나 나름 신선하답니다.......써놓고 보니 비전공자가 할 놀이는 아니군요.-_-;;;;


      흐음...그냥 몇 권 추천해드리겠습니다.-_-;; 자치통감 한국어버젼이 있습니다. 소설수준의 재미는 없지만, 나름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오는 책들은 구매해도 후회는 없을 정도의 수준입니다.조금 더 깊이 있는 것을 원하시면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동향 - 한국고대사학회 20년"으로 개략적인 부분을 보시고 관심이 있는 부분에서 인용된 논문이나 책을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그럼 자러-_-;;;; 졸립니다. 졸려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타자를 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쓸데 없는 말은 알아서 무시하시고 적당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삼국시대의 조조는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조조가 대단한 도굴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조조는 따로 "도굴부대[각주:1]"을 만들어서 전문적으로 도굴행위[각주:2]를 하였습니다. 도굴을 통해서 상당한 자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도굴경험을 가진 조조이기에 자신의 무덤은 철저한 보안과 통제을 합니다.

조조는 자신의 관이 무덤으로 옮겨지[각주:3]는 날 성내의 모든 문을 열고 72개의 관을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움직이게 하였습니다[각주:4]. 그러다 보니 당대의 사람들도 대체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고,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알아낼 수 없는 비밀이었습니다.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조조의 무덤은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조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2009년 12월 27일에 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덤의 위치는 업성(邺城)의 서쪽으로 멀지 않은 지점[각주:5]에 있었습니다. 무려 조조의 무덤치고는 매우 조그마한 형태의 와석묘실입니다. 묘실은 전실과 후실로 나누어져 있으며 중간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실에는 동서로 이실이 존재하였습니다. 묘지는 최대 16미터의 깊이로 비교적 깊이 파여져 있었고, 묘도는 35미터, 폭은 9.6미터였습니다. 해당 묘는 몇 번의 도굴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물품은 아직 남아 있어서 출토유물이 200여개를 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조의 당시 위치를 생각하였을 때에는 오히려 적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른쪽 가운데가 업성유적임.



이쯤에서 전문가들이 왜 이 묘를 조조의 묘라고 확정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1) 묘장의 규격이 한말 위진시기의 왕후급 묘장이며 이는 조조의 사망당시의 신분인 위왕(魏王)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봉토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각주:6], 이 무덤 역시 봉토(封土)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조조의 무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대 묘라고 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크기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상당히 조그마합니다. 진시황묘는 어디까지나 예외-_


2) 무덤내 기물과 벽화등이 당시의 년대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조조의 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그냥 시대가 일치한다는 것뿐입니다.

3) 묘지의 위치가 사료나 노잠(鲁潜) 기록과 일치[각주:7]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확한 위치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훗날 추정되는 위치이며, 상당히 넓은 지역이기에 정확한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4) 조조 스스로 박장[각주:8]을 명한 기록[각주:9]이 있습니다. 해당 무덤의 기물 역시 왕급이라고 하기에는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조조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한 증거가 아닙니다.

5) 무덤내 남성유골을 분석해본 결과 60세전후였습니다. 조조의 사망시 나이가 66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조조의 무덤이 맞다면 이 유골은 바로 그 "조조"!! 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도 정확한 증거는 아닙니다.

드디어 가장 정확한 증거입니다. 이것을 반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입니다.

6) 무덤내에서 위무왕(魏武王)이라고 쓰여진[각주:10] 돌위패(石牌)와 돌배게(石枕)을 발견했습니다.조조의 생전에는 우선 위공(魏公)으로 봉해졌다 다시 위왕(魏王)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 시호(谥号)로 무왕(武王)에 봉해집니다. 그리고 이후 조조의 아들인 조비(曹丕)가 황제가 되면서 조조을 무황제(武皇帝)로 높이게 됩니다. 그런데 석비에 쓰여진 것은 바로 조조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불리던 무왕(武王)인 것입니다.

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 (이것으로 사실상 게임끝-0-)



어디까지나 소설인 삼국연의로 인하여[각주:11] 조조에 대한 이미지는 간웅이라는 느낌이 강하였습니다. 농담을 조금 넣어서 이야기하면, 조조의 능력치는 간웅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강력합니다. 전략-전술이야 조조까인 삼국연의를 통해서도 들어나고, 손자병법의 주석도 집필[각주:12]합니다. 그리고 당대의 시풍을 만드는 등의 문학쪽에도 뛰어났습니다. 물론 여자를 좀 많이 밝히긴 하였지만 그건 유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최근 한중일을 막론하고 점차 조조의 본모습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노력과 성과들이 대부분이 일본에서는 창천항로, 한국에서는 고우영의 "삼국지"라는 만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 구체적인 사항은 관련 전공자들에게나 필요할 것이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역사팬들이나 역사매니아들분에게는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더 정확한 내용은 관련 보고서를 직접 봐야지 알 수 있을 듯 합니다[각주:13].


* 사실 작년 가을에 통역알바로 업성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발견이 있었다니 조금은 두근거리는군요. 그래도 해당 일은 어디까지나 고고학계열의 일이며, 역사계가 흥분할 만한 특별한 사료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삼국연의의 팬들이 널려있으니 관광자원으로 사용하기에는 정말 좋겠군요.

* 다음뷰 추천 좀 많이 눌러주셔요. 근 몇 달 동안 단 한번도 메인은 고사하고 베스트에도 못 갔군요. 아..베스트는 몇 개 갔군요. 죄송;;; 그래도 왠지 다음뷰로부터 버림 받은 기분이랄까요? ㅠㅠ 물론 다음뷰만으로 저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단지 최근에 쓴 글 중에 나름 메인감이 다른 포털에는 올라가기도 하는데, 다음뷰는 감감무소식이어서 말이죠^^:::  추가 : 역시나 버림받았지는도 모르겠습니다. 방문자수 대비 추천수나 추천수 자체가 얼마인데 베스트도 안되는군요. 진짜로 버림받은건가;;;;

* 루리웹에서 들어오는 링크가 있어서 가봤다가 완전 빵! 터졌습니다. "대륙의 툼레이더" - "암벽타다 막 떨어지는 조조." 센스 정말 최고이십니다!!!

해당 덧글에서 72총에 대한 이야기가 논란이 되더군요. 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曹操殁后恐人发其冢,乃设疑冢七十二。”(南宋《舆地纪胜》) "조조는 죽은 뒤에 그 무덤을 다른이가 발견할 것을 두려워 하여서 72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 그대로라면 72총은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출처를 보시면 남송대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가 상당히 차이가 나니 왜곡이 되거나 과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가짜 무덤을 만들고 여러개의 관을 내보내는 "페이크"을 사용했을 가능성 자체는 조조의 이력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서술하고 주석에서만 해당 사실이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 글은 되도록 일반분들을 위해서 쉽고 간단하게 쓰여졌습니다. 이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래도 관련 사료는 주석으로 처리해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루리웹에서는 로그인해야 덧글을 달 수 있어서 그냥 여기다가 적어놓습니다....귀차니즘-_)

* 루리웹에서 이 무덤이 가짜 아니냐는 분들......할 말이 없습니다. 글자가 최근에 쓰는 한자가 아니냐는 부분에서는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가짜 만들어내는 기술에서 시대에 맞는 한자를 만드는 것은 껌입니다. 재질까지도 어떻게든 처리 가능합니다. 최후에 문제가 되는 것은오히려 내용 그 자체인 것입니다[각주:14]. 대놓고 말해서 설령 가짜를 만들어도 일반인이 알아볼 수준의 것은 아닙니다[각주:15]. 그리고 해당 글씨체는 기본적으로 당대에 쓰던거 맞습니다.

가짜 조조 무덤  만들어서 뭐합니까? 관광자원이요? 그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다 걸리면 개쪽박 나게 됩니다. 안양시만의 문제가 아닌 중국전체 고고학계가 쪽박납니다. 조조무덤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가짜를 만들어낼 정도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증거들은 어디까지나 정식보고서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정확한 판단은 역시나 보류이긴 합니다[각주:16]. 그러나 발굴자나 관련 인사들의 이력을 보아서는 미치지 않고서는 가짜 만들어내지 않을 것입니다.


조조에 관한 속담 한마디

중국에서 현재 사용되는 속담 중에 조조와 관련된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说曹操,曹操到(조조를말하니 조조가 왔다 shuocaocao, caocaodao)입니다. 한국 속담으로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직책까지 있어서 총대장 发丘中郎将, 발굴대장 摸金校尉. [본문으로]
  2. “操别入砀,发梁孝王冢,破棺,收金宝数万斤,天子闻之哀泣” (唐欧阳询等撰《艺文类聚·宝玉部上》(卷八十三),转引《曹操别传》) [본문으로]
  3. 출빈(出殡) [본문으로]
  4. “曹操殁后恐人发其冢,乃设疑冢七十二。”(南宋《舆地纪胜》) - 해당 일에 대해서는 혹자는 후대에 만들어낸 일이라고도 합니다. 남송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사료이긴 합니다. 그러나 일정한 진실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분명 페이크는 사용했을 거라고 충분히 추측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72는 그냥 숫자일 뿐입니다. [본문으로]
  5. 현재의 河南安阳县安丰乡西高穴村 [본문으로]
  6. "不封不树”《三国志·魏书》 [본문으로]
  7. “西门豹祠西原上”(《三国志·魏书·武帝纪》) [본문으로]
  8. 薄葬 금은보화를 많이 넣지 않고 검소하게 치루는 장례. [본문으로]
  9. “殓以时服”、“无藏金玉珍宝”《遗令》 [본문으로]
  10. 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 [본문으로]
  11. 삼국연의는 기본적으로 소설이며 유비빠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비의 적인 조조에 대해서는 당연히 조조까가 되었지요. [본문으로]
  12. 이에 관한 보고서을 쓴 친구녀석의 말에 따르면 간결하면서도 실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주석이라고 하는군요. [본문으로]
  13. 정식 보고서는 언제쯤 출판되려나....흐음.... [본문으로]
  14. 그래서 청화대에 있는 고문이 계속 가짜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한자나 재질 자체가 다 확실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_-;; [본문으로]
  15. 요즘 제대로 된 가짜는 전문가들도 알아보기 힘듭니다. 만약 이것이 가짜라면 한 성급 관련 인사들이 동원된 것인데 왠만해서는 "트릭"을 뚫기 어려울 것입니다. [본문으로]
  16. 중국네티즌쪽에서도 가짜가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미치지 않고서는... [본문으로]
  1. 충굴 2009.12.28 15:19

    리더기로 읽다보니, 다음뷰 춧천 누르기가 쉽지 않네요..ㅎㅎ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8 18:06 신고

      그냥 패스하셔요. 중국에 거주하는 분들이야..압니다. 그 맘--

  2. 화디에 2009.12.28 15:24

    모처럼 신나서 글쓰신게 느껴져오네요 저도 신납니다. 그 조조라니 그 조조...
    흠 도굴꾼이 였다니 쓰읍 ㅡㅡ;;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8 18:06 신고

      하하;; 그리 신나지는;;; 어차피 번역일뿐이랍니다. 중간중간 제가 편집하고 좀 더 쉽게 읽게 하기 위해서 몇가지 집어넣기는 했지만....기본적으로야 번역이죠.

  3. Favicon of http://jayb4show.egloos.com BlogIcon 반재봉 2009.12.28 15:41

    역시 올려주셨군요 +_ + 안 그래도 야후에 올라와 있던 기사를 번역하고 있었는데,

    퍼가겠습니다 +_ + / 티스토리를 안 쓰다보니 트랙백을 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하게 링크로 대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Favicon of http://nslog.wo.tc BlogIcon 2009.12.28 15:46

    어휴 저는 또 도굴꾼이 조조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ㅋㅋ
    중의적 제목이네요ㅋ

  5. Favicon of http://jayb4show.egloos.com BlogIcon 반재봉 2009.12.28 16:15

    우홋... 한 마디 더 덧붙이고 가자면 AP 통신에도 소개 되었네요 ;; 뷁킹 뉴스로_

    링크 적어두고 갑니다
    http://hosted.ap.org/dynamic/stories/A/AS_CHINA_GENERALS_TOMB?SITE=TXHOU&SECTION=HOME&TEMPLATE=DEFAULT

    대강 읽어본 바로는, 여타 언론과 비슷해 보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8 16:29 신고

      기사 보고 중국속담하나 추가해놓았습니다. 겸사겸사 중국어 공부하실 분들은 하시라고요^^::::

  6. 곰소문 2009.12.28 16:34

    멋진일이네요.

    혹시나 예전 단군 무덤과 같은 억지가 아닐까 우려했는데, 확실하다니 추후 유물을 통해 밝혀질 연구 결과들도 기대가 되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8 16:55 신고

      단군무덤이라면 북한에서 발굴되었다던 그 것을 말씀하시나요?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고고학계의 국제적 신뢰가 최악이라는 점이지요. 중국 고고학계야 나름 잘 나가고 있고요.

  7. 조조 2009.12.28 16:47

    비단 조조 뿐만 아니라 원소, 손권, 동탁. 이런 부류들도 왕의 무덤을 도굴했지요. (조조는 모르겠지만 손권은 확실히 도굴꾼 맞습니다.)
    유비를 제외한 나머지 군웅들은 전부 도굴 기록이 있습니다. (희안하게도 유비는 없는. ㄷㄷ ; )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8 18:08 신고

      손권 도굴 사료가 있었던가요? 기억이 안나는군요. 동탁은 있었고....흐음...조조도 확실합니다. 유비가 없었던가요? 흐음...기억이...

  8. 허걱 2009.12.28 18:02

    글이 루리웹과 실시간으로 대응하여 수정 업데이트 되고 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8 18:05 신고

      정확히는 수정이 아니라 추가죠. 그쪽에서는 덧글을 달 수가 없어서 말이죠. 아마 더 이상의 추가는 없을듯 합니다. 그 아래쪽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 정치사상쪽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저 개인적으로 한나라 이후 정치사상은 기본적으로 유가의 탈을 쓴 법가라고 여기기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12.28 18:11

    The Ancient Adventure of Cao Cao the Tomb Raider... (읭?! )

  10. 시골 2009.12.28 21:07

    흠.. 이정도면 조조의 계략대로 도굴로부터 성공적으로 버틴건가요?

    위무왕 만세.... ^^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9 04:45 신고

      나름 오래 버텼죠. 어차피 안에는 조금의 도굴 흔적은 있다고 합니다.-0-;;

  11. 가짜만들자면 만드는데 2009.12.28 22:14

    우리도 대충 어디무덤 만들고

    대한민국 대통령 뭐시기 라고하면

    그 믿어야죠

    고서도 오기는 있고 비석도 오기는 있는데

    문자 그대로 믿기는 어렵죠

    뭐 그건 그렇고 나머지 글자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는데

    虎자 어떻게 해서 호 자인지 잘 모르겠네요

    당연히 정자(예서체)아닌건 아는데
    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
    위무왕상소?용?격? 호! 대극
    4자가 잘 안보여 겨우 이해 했는데
    특히 호 자는 雨?도 아니고 아무튼
    글씨도 잘 안보네요
    虎의 古字인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9 07:12 신고

      1) 위조
      가짜를 만들겠다면 현재의 과학기술로 못 만들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고학은 엄연히 학문이고 장난이 아닙니다. 교차분석은 기본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계속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의 유적을 생각하면 조조무덤은 그리 큰 발견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二里头쪽 현장에 가면 한국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기물들이 그냥 무더기로 쌓여 있습니다. 수량과 크기에서 중국의 유적은 무시무시합니다.


      2) 한자
      언급하신 호자는 판독하기가 어렵습니다. 해당 그림으로도 사실 판독하기가 어렵습니다. 虎의 이체자(모양이 다른 한자)와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실물을 직접보거나 고해상도로 보기전에는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당 위패에서의 핵심은 위무왕이기에 해당 한자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3) 오기의 가능성
      아무리 오기가 난립을 해도 위무왕을 오기할 확율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대량의 사료에서는 오기가 출연하지 묘지명같은 곳에서는 오기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특히 인명이나 관직에서의 오기는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그 외에 묘사에서 가끔 오기가 나오지만 별 문제 없는 수준입니다.

  12. 묘현 2009.12.28 22:49

    담아갑니다!!

  13. nomadism 2009.12.29 08:42

    안 그래도 바로님이 이거 관련해서 포스팅 한 번 쯤 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보았습니다 ^^ 가짜 일 가능성도 분명히 있겠지만, 말씀하신 증거들이 사실 일리가 있고, 또 무엇보다 정식보고서를 볼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조조 자신이 자신의 가짜 무덤에 가짜 위패를 넣었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9 09:09 신고

      정식보고서는 따로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진짜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식보고서를 따로 봐야겠지만 하남성급으로 발표회를 한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을듯도 합니다.

      가짜 무덤에 가짜 위패까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남아 있는 유골에 대한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알기로 가짜무덤에는 유골자체가 안치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죠. 조조가 유골까지 페이크로 사용했을지도요...하지만 이정도 되면 오히려 가짜론이 더 어거지처럼 보입니다.

    • 레아 2010.05.15 17:37

      근데요. 조조의 부인인 변씨 왕후가 70세 전후로 죽었다고 하는데 무덤에서는 50세 전후로 보이는 여인있었으며 또한 20살 전후의 여인은 누구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네요.

  14.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09.12.29 14:2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전문가 분은 다르시군요 :) 언젠가 중국 삼국시대나 전국시대 관련해서 여행을 할 생각이었는데, 조조의 무덤도 꼭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ps) "한 순간만 쓴 것" 이 유용한 지표로 사용되는 것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동전의 경우 동서양에 걸쳐 많이 쓰이더군요. 신나라 동전이라던가.
    ps2) 고대 이집트에서도 체계적인 도굴이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난세가 계속되고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돈이 필요해지면 비싼 부장품은 꽤나 유혹적인 물건이 되나 봅니다. 정사에서 동탁에 대해 도굴 운운하면서 비난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흔한 행동이었을지도.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9 15:08 신고

      그냥 번역하고 적당히 주석을 달았을 뿐입니다. 전공자로서의 수준의 글은 결코 아닙니다....오히려 부끄러운걸요..ㅠㅠ

      업성이나 조조무덤이나 직접 가시면 실망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솔직히...위치나 내용이나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답니다. 업성의 경우 찾아가는 것 자체도 힘드실...;;;


      고고학적으로 분명 하나의 지표가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시대 자료가 이미 꽤나 있답니다. 그러니 그리 시대의 발굴적인 요소는 별로 없답니다. 다만 조조라는 이름값이 좀 있죠^^::

      도굴은 영원한 로망..쿨럭...그런 의미에서 진시황묘가 아직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지만, 만약 도굴되지 않았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현재 전시되고 있는 것은 진시황묘의 전실일뿐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의견으로 알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09.12.29 16:46

      개인적으로는 이번 발굴에서도 조조의 칼과 창을 보고 싶네요. 진시황의 병마용갱도 비슷한 의미에서 가보고 싶구요.

      저 또한 진시황릉은 아직 100% 발굴된 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진짜 수은으로 만든 바다가 있으면 정말 근사할지도 :D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30 01:43 신고

      킥킥..상상은 거기까지요^^::: 나중에 기술이 발전해서 파보면 알겠죠. 솔직히 제가 죽기 전에 파보았으면 하는군요.

  15. 디시 삼갤에서 보니까 2009.12.29 18:26

    72의총은 거짓이라고 하던데요
    정사에는 장례는 간단히 하라고 나와있다는 증거를 들면서요
    고증 좀 해주세영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30 02:02 신고

      말씀하신 모든 내용은 이미 본문에 작성이 되어 있습니다.....제발 본문부터 제대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曹操殁后恐人发其冢,乃设疑冢七十二。”(南宋《舆地纪胜》) "조조는 죽은 뒤에 그 무덤을 다른이가 발견할 것을 두려워 하여서 72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 그대로라면 72총은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출처를 보시면 남송대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가 상당히 차이가 나니 왜곡이 되거나 과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박장과 가짜무덤을 만드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박장은 장례와 무덤의 부장품등을 간소화하는 것이지만, 가짜무덤을 만드는 것은 도굴꾼을 상대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언급하신 장례를 간단히 하라는 말은 조조유서에 나오는 “殓以时服”、“无藏金玉珍宝”《遗令》입니다)

      그럼으로 가짜 무덤을 만들고 여러개의 관을 내보내는 "페이크"을 사용했을 가능성 자체는 조조의 이력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72개 자체는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페이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삼갤이 먼지 모르겠군요. 삼국지갤러리인가요? 아님 삼국연의갤러리인가요?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 둘이 제대로 분리가 되지를 않아서...어이없는 인간이 한국과 중국에서 삼국시대 전문가로 불리지 않나...

  16. 좋은 글 2015.03.26 20:08

    역사를 좋아하는 한 학생입니다
    조조 유골이라는 부분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네요
    저도 그 유골을 한번만 만져보고 싶어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감히 한국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미 소위 글로벌 시대여서 세계와 같이 숨쉬는 와중에도 많은 한국분들이 아직도 자기중심적인면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역사관에 대한 부분은 한번 디벼 볼까 합니다. 이 글은 어느 한 분을 특정지어 비판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인용한 글은 한 분의 것이지만, 이런 생각은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시더군요.


1. 한국의 자기중심적인 역사관 대입[각주:1]의 결과물
한국에서 많이 퍼져있는 논리중에서 중국은 영토중심의 역사서술이며, 중국의 역사에서는 다양한 이민족의 역사가 있기에 민족중심으로는 역사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해서 요, 금, 몽원, 청은 중국의 역사가 아니며 중국의 역사에서 빠져야 된다는 소리입니다.

중국이 왜 민족 중심으로 역사를 쓸수 없는지에 대한 모순이 여기서 발생한다.

1. 한족에 대한 역사 기술은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
2. China 는 "지나" 즉, 진나라인 이라는 뜻으로 "한족"은 "진"을 계승한 한의 후예라는 뜻이다. 즉, 한족의 역사기술은 동쪽으로는 만리장성에 영토가 제한된다.

다시말해 중국은 현재의 중국을 통합하여 관리할 수 있는 역사개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접근이 공교롭게도 주변국과 문제를 일으킬수 밖에 없는 현재의 영토중심 역사관이다. 그러나 더 큰문제는 영토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기존의 고서들과 역사적 충돌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중화" 사고방식으로는 만리장성 밖에 어떠한 문명도 없어야 한다.

다시말해 오랑캐 부족국가만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오른편에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이 뚜렷한 문명의 족적을 남겨버렸다.

출처 : 중국과 만리장성에 대한 잡설중에서...


2. "수, 당, 남북조의 북조의 대부분 및 오대십국의 대부분 역시 기술을 할 수 없다"
한국의 자기중심적인 역사관 대입으로 논리를 전개하여도 기본적인 사실 자체가 틀렸습니다. 시작부터가 문제가 있는 논리이지만 그래도 서술하려면 제대로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남북조시대의 대부분의 북조왕조[각주:2]와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 그리고 대부분의 오대십국[각주:3]은 기본적으로 북방민족을 주축으로 구성된 왕조이며, 왕실 역시 북방민족계열이라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들 역시 중국사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하여야 합니다[각주:4]. 다시 말해서 :

"북조" "수나라" 당나라" "오대십국"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

하지만 위의 논리는 그 시작부터가 틀렸기에 참이 될 수가 없습니다.


3. 중국의 역사관은 다민족역사관이다.
중국의 역사관은 다양한 민족의 역사가 모여서 현재의 중국의 역사를 구성한다는 "다민족 역사관"입니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영토적역사관이라고 하면 순간 정신이 멍해집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자기중심적으로 한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도입하는 짓이 여기서 일어납니다.

중국의 역사관은 다민족역사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의 단일민족역사관을 그대로 도입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이다. 그리고 한족의 역사을 서술하자면 ""대부분의 북조" "수나라" 당나라" "대부분의 오대십국"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따위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관은 그 역사관으로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중국이 자신의 역사관으로 한국사를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충격을 더하기 위해서 위의 틀린 이론대로 중국의 역사관은 영토중심역사관이라고 합시다.

중국역사관을 영토중심사관이라고 보고 한국에 대입하면, 한국의 역사는 38선 이남으로 무조건적으로 한정이 됩니다. 대충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절대 한국사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하는 짓이냐고요? 먼 개소리냐고요?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라고 말했던 행동을 그대로 적용해본 것입니다.


4. 그럼 한국의 역사관이 틀렸는가?
역사관은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한국의 단일민족 역사관은 현재까지 밝혀진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관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맞고 틀리고의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를 보고 잘생겼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릅니다. 저의 여친님은 저를 보고 잘생겼다라고 하시지만[각주:5], 어떤 분은 저를 보고 못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각주:6].

역사관은 이처럼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역사관이 합당한 바탕아래서 현재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면 그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존중받습니다. 중국의 다민족역사관도 한국의 단일민족역사관도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역사를 해석하는데 유용한 "도구"이기에 모두 존중받아야됩니다.


5. 그래도 한국의 단일민족역사관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편적인 단일민족역사관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합당한 바탕도 없고 현재의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소위 말하는 "한민족"은 다양한 혈연적인 요소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일민족사관에서 강조하는 혈연적인 관계는 부정당했습니다.

다만 현재 단일민족역사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혈연이 아닌 "문화"적으로 순수하게 내려온 단일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다양한 문명교류와 접촉 그리고 변형의 예로서 문화 역시 계속 변했다는 몇가지 사례들로 그 근거가 약해집니다. 예를 들어서 한반도에 유입된 다양한 북방민족의 문화도 있겠고, 중국대륙에서 전해진 문화와 문명도 있겠고 일본과의 교류중에 역수입된 것들도 있겠고 사례들은 넘쳐납니다.

또한 현실문제에서 점차 세계화가 되어가면서 한국에 수 많은 "타민족"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기존의 단일민족사관으로 형성된 민족주의[각주:7]는 심각한 배타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해외인력확보문제부터 시작하여서 2세들의 정체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과 문제를 토대로 앞으로 "다민족역사관"을 채택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혹은 미국이 다민족역사관이니 그것을 그대로 채택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역사 분석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다민족 역사관을 도입한 국가들에게 생겨나는 문제점들도 신중히 관찰하고 같은 잘못를 반복하지는 말아야될 것입니다.


6. 그럼 중국의 다민족역사관은 문제가 없는가?
개인적으로 이론의 차원에서는 중국의 다민족역사관 자체는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현실의 차원입니다. 다민족 역사관과 모순되는 "그래서 현재의 중화민족을 이루게 되었다"따위나 말로만의 "다민족"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민족역사관의 문제라기 보다는 중국정부 자체의 문제입니다.

물론 다민족역사관도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민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각주:8]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국가체계를 뛰어넘어있는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까지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각주:9]. 다만 제 생각에 현재까지는 가장 쓸만한 역사관이라는 것일뿐입니다.



* 최대한 쉽고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근거를 많이 제시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충분하게 제시했다고 봅니다. 제 블로그 자주 오는 분들이 민감한 글 쓰지 말라고 했.........

  1. 정확히는 일부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역사관 대입이라고 해야됩니다. [본문으로]
  2. 개인적으로는 모든 북조왕조라고 서술하고 싶으나, 몇몇 논쟁이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서....대부분으로 그냥 넘기기~ [본문으로]
  3. 이 역시 앞서의 북조왕조와 동일한 이유임. 개인적으로는 오호십육국의 [본문으로]
  4. 위에서 필자가 주장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진나라 이후의 "한족" 개념이었기에 그 전은 무시하였다. 하지만 은을 동이로 설정하고 타민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본문으로]
  5. ...사실 맨날 못생겼다고...흑. [본문으로]
  6. 사실 학술적으로 이따위로 이야기했다가는 돌림빵맞기 딱 좋습니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분들에게는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7. 단일민족사관과 민족주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움이라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단 사관을 우선시 했습니다. [본문으로]
  8. 혈연? 종교? 문화? 지역? 언어? 무엇으로 민족을 구분할까요? "종합적"이라는 말은 수 많은 분류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모호한 말입니다. [본문으로]
  9.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체인 국가체계와 다민족간의 융화문제입니다. [본문으로]
  1. cosmopolitan 2009.12.22 23:16

    평소에 궁금했는데..
    중국에서 역사 공부하는 입장에서..
    동북공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1:16 신고

      몇 번 언급하기는 했군요. 지금은 좀 정신이 없고, 나중에 동북공정만 모아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쫌^^::

  2. Viviane Bak 2009.12.23 00:36

    다민족 역사관이 한국에서 대우 받지 못하는 가장 큰이유는 이쪽 저쪽 다 섞였다면서 국가의 정체성이 사라지는다고 생각 한다는 것이겠지요. 일반적으로 아시아계 국가에서는 그런경향이 있고, 한국은 좀더 심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북한도 중국거냐라는 말을 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을겁니다.

    기본적으로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고립되어서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발전되었다면 혈연적인 단일민족관이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뭐 그냥 상상속의 일이겠지요. 이견도 없이 이건 점점 사라져야할 역사관일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영토중심의 다민족 역사관을 받아들여야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 입니다. 역사는 고정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가 깊숙히 결부되어 있기도 하죠.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는것이고,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역사는 전체적으로 혈연적인 교류를 포함 하더라도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눠지기도하고 합쳐지기도 하죠. 역사의 큰 흐름으로 지금 여러나라들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남아 있는 역사서도 보통 이러한 흐름의 관점에서 쓰여져 있구요. 국가란게 이러한 흐름의 결과물이지요. 대한민국도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관을 접근해나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관점에서의 역사관에서는 다민족/단일민족의 구분이 크게 의미가 없지요.

    국가의 정체성도 찾을 수 있을테고 중국과 같은 큰나라에 대항 할 수 있는 명분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1:29 신고

      현재의 단일민족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서는 일단 일치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인데..

      1) 저는 본문에서도 분명히 밝혔다 싶이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왜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제 말을 인식하셨는지 의문이군요.전 그런말 한 적 없습니다.

      본문을 내용을 그대로 다시 붙여봅니다. "이러한 현상과 문제를 토대로 앞으로 "다민족역사관"을 채택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혹은 미국이 다민족역사관이니 그것을 그대로 채택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역사 분석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다민족 역사관을 도입한 국가들에게 생겨나는 문제점들도 신중히 관찰하고 같은 잘못를 반복하지는 말아야될 것입니다."


      2) 다민족역사관의 이론과 실제는 구분하셨으면 합니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역시 다민족 역사관입니다. 그리고 미국도 그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미국에서 실질적인 다민족역사관의 도입과 다민족역사관 본연의 이론은 어느 정도 분리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이미 본문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대체 왜 중국을 "영토중심의 다민족 역사관"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로 영토중심이라고 하는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왜 중국이 영토중심인것입니까?


      3) 흐름의 관점에서의 역사관.
      역사 자체가 시간의 흐름이고, 시간의 흐름이 곧 역사이기에 일단 흐름의 관점자체는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님이 말씀하신 것은 역사학의 기본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 다음에 현실 연구로 들어와서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사를 어느 범위까지 설정하느냐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도 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의 관점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흐름의 문제라면 고대 한반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일본으로도 넘어갔습니다. 그럼 "흐름"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는 이들의 역사도 한국사에 포함되어야 될까요?

      물론 다민족역사관도 제가 본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리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흐름의 역사관"이라는 것은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만 보이는군요. 이와 관련된 괜찮은 논문이나 책이 있으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4) 국가 정체성 및 대국에 대한 대항
      죄송합니다. 전 이런 인식 없습니다. 한국의 국가정체성이 어떻게 되느냐는 저에게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닙니다. 단지 그 구성원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인가가 저어게 가장 큰 숙제이며 고민입니다. 국가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봅니다.그리고 최대한 "국가"나 다른 공동체와 벗어나고, 최소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야지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Viviane Bak 2009.12.23 01:44

    글쓴분에 대한 글에 대해서 글을 쓴게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셨네요. 글에 대한게 아닙니다. 그냥 몇가지 것을 언급한 것일 뿐입니다. 2)에 대한 걸로 중국이 영토중심의 다민족 역사관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 의문입니다. 실제로 영토중심이란 증거는 중국이 소수민족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에서도 드러나는거라서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3) 역사학은 순수과학처럼 규정지을수 있는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 갔다라는게 왜 한국사에 포함되지 않는 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사실 아닙니까? 하지만 역사의 흐름상으로는 일본사의 흐름에 포함되었을 뿐입니다. 새로운 분기이죠. 4) 한가지 의문으로는 국가가 필수적이 아니라면 왜 국가에 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것과는 다른 탈국가를 외치며 국가에 남아있는건 오류라고봅니다.

    • Viviane Bak 2009.12.23 02:03

      4)번은 빠른 글로 인해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어서 새롭게 적어봅니다.학문이 객관적이어야하는 것은 학문이 사실을 오도 할때의 이야기 입니다. 정답이 없는 부분에서 역사관의 부분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객관적인것 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뿐입니다. 역사학에서 정확한 역사를 밝혀내는 것과 역사관을 정립하는것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을 바탕으로한 인문학에 가깝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2:21 신고

      제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시라니 그 부분은 넘어가겠습니다. 제 글에 덧글로 달으셔서 제 본문에 대한 의견을 적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 중국 스스로가 말하는 역사관은 다민족역사관입니다. 그런데 님은 영토중심의 다민족역사관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적합한 증거를 제출하시는게 맞다고 봅니다. 소수민족에게 취하는 정책에서 영토중심이 들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언급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은 "겉모습"은 정말 꽤 괜찮은 다민족정책이지만, 그 실제 실행에서 상당한 문제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왜 영토중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 역사의 흐름상으로 일본사의 흐름에 포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그 흐름에 포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언급하신 "흐름의 역사관"은 기준점이 모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흐름의 역사관"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있으면 추천부탁드립니다. 흐름의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너무 모호해보입니다. 실제로 그런 학설이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4) 전 국가에 특별히 속해있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이나 중국 혹은 미국이라는 언급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것이라면 편의상의 분류로 활용될 뿐입니다. 마치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다른 특징을 보이는 남녀를 구별하기 위해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제가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기 위해서 위의 글을 쓰셨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글을 작성했을 뿐입니다. 제가 말하는 탈국가는 국가의 소속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절대우선이 되는 국가중심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한 사람" "한사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오류인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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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 추가 부분에 대해서 :
      핵심만 말하면 전 글에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객관성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다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지요.

      물론 역사에도 사실은 있습니다. A국이 B국을 공격했다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오는 해석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해석의 단계가 역사관이 들어서는 단계입니다. 어떤 역사관의 틀로 분석하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 A국이 B국을 약탈, 침략, 공격, 모독, 멸망, 패망등등의 다양한 용어사용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그렇기에 역사는 분명 완전한 객관성을 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유용한 도구적인 "역사관"을 도입하여 연구를 하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연구와 역사관은 서로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역사 연구자체가 역사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역사관이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하냐의 문제입니다. 님도 언급하신대로 단일민족사관은 현재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데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단일민족사관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체는 주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최대한 객관성에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인문학인 이상 언급하신대로 주관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강력히 자리잡고 있는 현재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최대한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학문"임을 포기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함에 최대한의 객관성을 위하여 모든 개념들을 배우면서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4. Viviane Bak 2009.12.23 02:21

    2) 일단 제가 올린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다면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3) 흐름을 모호한 대상이라고 보시는데 역사 그자체가 흐름입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치하를 건너 대한민국이 되었듯이 사실이 바로 흐름이죠.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겁니다. 이어져온 역사에서 단일민족중심 사상을 제외한 것, 굳이 학설이나 학문을 들먹일것도 없죠.
    4) 진지하게 물어보는건데 그럼 왜 국가에 속해계신가요? 국가와 개인을 평등한 선상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국가가 그저 단순한 구분점이라면 국가가 병합되던, 침략을 받던 아무렇지도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원초적인 질문이긴하지만 정말 의문입니다.

    • Viviane Bak 2009.12.23 02:26

      추가로 역사관에서 객관성은 어떤 관점으로 본 객관성인지 궁금합니다. 역사관에서 객관성은 실제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역사적 사실을 추론하는 것은 최대한 객관화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역사관화한다는것은 최대한의 객관적인 사실을 해석자의 입장에서 주관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2:36 신고

      2) 영토중심?
      제가 볼때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어디까지나 다민족주의의 잘못된 발현이 초래한 것입니다. 또한 중국 자체도 다민족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는데 왜 굳이 여기에 "영토중심의 다민족역사관"이라고 하는지 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봐도 영토중심이라고 굳이 덧붙여야될 정도가 아니고, 중국 자체도 영토중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리 주장하신다면 왜 영토중심이냐는 것에 대한 근거부터 이야기를 하시는게 맞다고 봅니다.


      3) 흐름 사관.
      모든 역사가 흐름이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과정이라고도 언급했습니다. 네. 모든 역사가 흐름입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 연구에서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야되나요? 제가 언급한 "한국사를 어느 범위까지 설정하느냐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도 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의 관점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을 흐름의 사관으로 한번 이야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님이 어떤 발언을 하던 저는 "제가 보는 흐름과는 다릅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개인마다 흐름을 보는 관점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흐름은 그냥 역사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역사연구는 그 흐름을 어떤 역사관을 분석틀로 하여 해석하느냐입니다.

      정말 죄송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님은 역사학쪽을 공부하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4) 원초적 질문.
      일단 저도 질문 하나. "사람이 없어지면 국가는 없다. 하지만 국가가 없어도 사람은 있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가 병합이 되던 침략을 받던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 느낌 없습니다. 병합이 되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일제식민지도 맞냐고 하실터인데, 일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생각일 뿐이며, 님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역사를 계속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저의 생각은 더욱 더 국가체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이 되며, 그보다는 한 개인 개인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추가하신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위쪽 덧글에서 이미 추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도 역사학의 객관성 문제로 역사학도를 때려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최대의 객관성"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최대의 객관성을 얻기 위한 방법이 저로서는 하기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능력 부족이죠-0-

  5. Viviane Bak 2009.12.23 02:52

    네 맞습니다. 전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지요. 공과대학 출신으로 인문학을 현재 공부하고 있고, 역사쪽으로는 책을 주로 보는 편이라 단편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견교환하는 입장으로 자격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네요.

    2) 영토중심이 아니라면 과거에는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던 소수민족 자치구나 지역에 대해 중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일은 없겠지요. 무리하게 조상으로 숭배했던 악비조차 영토중심으로 역사관을 바꾸기위해 내치지 않았습니까.

    3) 제가 말하는 흐름이란것은 다민족/단일민족을 제외하고 역사를 그자체로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논쟁이 있긴합니다만, 고조선 -> %&^%%& -> 대한민국의 커다란 중심 흐름을 보자는 것이지요. 그중간에 다른 민족이나 혈통이 섞이는건 당연하구요. 이렇게 되면 두가지관점에서 둘다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단일민족으로보면 그냥 역사의 흐름상에서 큰 흐름을 이어오는 민족의 관점으로(혈통상으로의 민족은 아닙니다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거리가 있긴하지만 인체적특성같은 부분의 지역화는 존제합니다.) 다민족으로도 보면 민족이란것이 역사상에서 서로 합해진 다민족으로 구성된 다른 관점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단이 별의미가 없는 것이죠.

    4)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자생할 수있는 오지가 아니라면 인간의 관점에서 국가가 없는 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현실론적인 이야기죠. 국가 체계를 무엇인가 쳐부수어야할 대상으로 보는거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것 같네요. 국가도 가정의 확대일뿐입니다. 단지 대규모화 되어 감으로서 생기는 문제가 발생할 뿐이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3:40 신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사교환이나 소통을 못한 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님이 전공이 아니시라면 제가 보다 간략하고 쉽게 설명을 해야되기에 언급한 것입니다.(사실 전공자가 아니시면 간략해지기 어렵습니다.)


      2) 다민족사관이란 한족뿐만이 아니라 많은 소수민족이 현재의 중국을 형성했기에 그들 모두 역사가 현재 중국을 형성하는 역사라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영토중심과 그리 관계가 없습니다. 다민족사관자체가 원래 그런것입니다.

      그리고 악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악비 역시 다민족사관에서는 당연히 그 의미가 변해야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민족사관을 제대로 반영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악비는 그동안 "민족"의 영웅으로 대접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다민족사관에서 악비는 민족의 영웅이 아닙니다. 악비의 적이었던 북방계열에게는 악비가 영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악비를 내치지는 않았습니다. 악비는 "충신"이자 "명장"이 된 것입니다.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말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합쳐진다고 가정해봅니다(침략이나 그런 것이 아니고 평화적입니다.) 서로 같이 공존하려고 하는데 이순신이 계속 "민족의 영웅"이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할까요? 이순신의 업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순신에게 "민족의 영웅"이라는 문제 있는 개념을 없애고, 민족의 영웅이라는 감정적인 요소가 많은 내용 대신 위대한 장군이나 충신으로 서술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제가 본문에서 지적했던 한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중국사에 투명하여 생긴 오류라는 점입니다. 중국사는 단일민족사가 아닙니다. 한족의 역사로는 분명 님의 주장이 맞습니다. 그래서 악비가 왜 민족이 영웅이 아니냐는 한족들의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민족역사관에서 악비는 영웅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다민족역사관입니다.


      3) 님이 말씀하신 흐름의 역사는 결국 아무런 역사연구도 하지 말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고조선에서 그 다음의 흐름으로 넘어오지 않았다고 제가 부정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그 흐름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면요? 제가 만약 고조선 실체를 기자조선으로 보고 사실상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흐름이었기에 중국과 한국은 서로 흐름상으로 같으니 같은 역사라고 주장한다면요?

      흐름이라는 말이 이렇게 모호합니다. 분석틀로서의 가치가 사실상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은...공과 출신이시니 이렇게 비유해드리겠습니다.

      전류는 흐른다. 참이지요? 그런데 전류가 어떻게 흘러가나요? 그에 대해서는 키르히호프의법칙이나 옴의 법칙 등등이 있지 않습니까?(제 전공이 아니라서 기초지식밖에 없지만 대충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님이 언급하시는 흐름은 전류가 흐른다는 말과 다를바 없는 모호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 것입니다.



      4) 국가관.
      이것은 서로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부분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저의 생각에서 국가는 분명 공동체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는 그 공동체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공동체의 구성원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시는 것은 님의 자유이며,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6. Viviane Bak 2009.12.23 03:47

    밤이 많이 늦었네요. 새벽 4시가까지 되어가고 현실생활이 있어서 다음기회에 해야하겠네요.
    중국도 1시간인가 늦은지 빠른지 모르겠지만 좋은 밤되시구요.

    마지막으로 다민족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알고 있지만 중국에서 단순히 다민족으로 넘어가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좀 이해불가능한 것이 있는거 같습니다.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멶이 많구요.
    흐름을 너무 확대해석하시는 것같은점도 있는거 같지만 이것도 다음기회에...국가관이야뭐 사람마다 다르니까 패스 해보렵니다.

  7. Favicon of http://studior.egloos.com BlogIcon toRoad 2009.12.23 10:32

    과연... 읽고 보니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12.23 14:15

    왠지 어렵네요. -ㅁ-;;

  9. 너구리 2010.01.20 21:10

    읽다가 국가관 부분에서...아무리 생각해도 공동체 국가를 따로 떼어내서 개인의 행복척도를 잰다는건지 이해가 안가는.. 저도 인문학 소양은 없습니다만 인간특성중에 동질감이나 소속감등이 있고 혈육에 대한 애정이나 무언가에 자신을 동일시하는게 본능 아닙니까? 후천적 학습이 아닌다음에야 어떻게 따로 그런감정을 거세해서 국가(공동체)는 망하든 말든 개인이 평균적으로 행복해질수있다는 모순된 논리가 있을수 있는지..

    어떤식으로 사뿐히 망해야 모두가 좋아질수 있는지요?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만 만나도 반가워하던 나로선 ...이해가 안가는...

    참고로 저는 금이야 중국역사라고 봐도 몽원은 몽고의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얘길 하실텐데 우리가 이토히로부미를 우리역사속 인물로 중국이 징기스칸을 자국영웅으로 삼듯이 하는건 아니잖습니까?

    세상을 저혼자만이 아니고 가족,혈육 내나라의문화 말씨등등으로 동질감을 찾는 사람으로선 정말 이해안갑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20 23:23 신고

      인간의 특성에 대한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님이 제시한것은 넓은 범위의 성선설인데, 그 외에 성악설이아 백지설로 시작되는 다양한 인간에 대한 토론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분명히 후천적인 학습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며 이는 부모-자식과의 관계와는 다르게 거의 논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라는 것은 만들어진 허구의 산물이며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멉니다.그렇기에 국가가 존폐여부와 개인의 평균적인 행복은 사실 거리가 상당히 있습니다.

      물론 현재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민족를 절대적으로 숭배하도록 세뇌받아왔기에 국가가 없어진다면 일정한 정신적인 고통이 실질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뇌"로서 벌어진 일로서 이러한 글로 그런 "세뇌"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풀릴 문제라고 봅니다.(물론 세뇌이기에 이 정도의 글로 풀리기는 힘듭니다.-_)


      그리고 동질감의 문제는 간단합니다. 같은 인류라는 동질감을 가지면 됩니다. 현재까지 인류는 초기 가족부터 시작하여서 그 공동체의 범위를 가족-부족-부락-도시-국가로 점차 늘려왔고, 지금은 국가라는 공동체을 자연스럽게 구축할 정도에 왔습니다.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10. 자바 2010.02.24 14:23

    눈만 안아프다면 쭉 읽어보고 싶군요; 잘 봤습니다

  11. .... 2010.05.16 01:03

    다민족 역사관이 한족 입장에선 대단히 쓸만한 역사관이겠지요. 중국내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대체로 변경지역이고, 그것도 자원이 대량 매장되어 있는 지역... 안보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요. 이들 민족이 독립하게 되면 중국은 땅, 인구(노동력), 자원 등을 많이 잃어버리죠.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다민족 역사관. 그러나 그 실질적인 핵심은 경제논리를 밑바탕에 깐 소수민족의 한족 융화정책 아닐까 하는데요. 지금도 위구르와 티벳의 독립문제는 중국에서 민감해하는 것이고... 또 반대로 많은 소수민족들이 한족화되어 가고 있고... 또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땅에서는 실질적인 상권은 한족이 거의 차지하고 있고 소수민족은 밀려나고... 국가 통폐합이란 측면에서 다민족 역사관은 쓸만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다민족을 진짜로 인정한다기 보다는 다민족을 단일민족(중화민족)으로 통폐합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12. ..... 2010.10.18 02:50

    ㅉㅉ 참 알량하게 떠드시네. 중국이 만든 통일적다민족사관은 1970~1980년대에 나온걸로 알고 있다. 그 전까지 중국은 한족 중심을 철저히 외치고 있었고 문화혁명때 통합에 방해가 된다고 몽골인을 100만명 넘게 사살했다. 현재 중국의 저 "따위" 사관은 몽골, 러시아 학자들의 반대 서명도 있었고 중국 내외의 한족과 다른 민족들의 철저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댁은 상대성을 인정하고자 악을 인정하는 거다.

  13. 정답 2013.02.05 14:01

    우에 점 세개동무가 말을 잘했습꾸마.
    조선족으로써 솔직말하문사,,중국은 한족세상이꾸마

    <다민족을 단일민족(중화민족)으로 통폐합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14. Favicon of http://11 BlogIcon 칼날의 황족 2014.07.04 10:25

    중화민족이 다민족 역사관인가요?다민족역사관을 가장한 단일민족 역사관이겠죠.존재하지도 않은 중화민족 탄생시킨게 중국인데요.중국이 다민족역사관이라면 대동아 공영권이나 내선일체 사상으로 새로운 민족 만들어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도 다민족역사관을 가지고있다고 봐야죠.한국이나 중국이나 이용방법이 다르지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진 단일민족 역사관은 똑같다고 봅니다.,

송대의 시인 범성대(范成大)의 여행시집인 참란록(骖鸾录)의 노선을 복원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한 고증을 참고로 복원을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범성대는 자신의 고향인 소주(오군)에서 현재의 계림으로 부임을 하게 되고, 그 길에서 있었던 일을 시로 만들게 됩니다.




범성대는 일반분들은 그리 알지 못하는 시인이겠지만, 나름 농촌생활을 그린 전원시로 유명하며, 동시에 여행시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여행시의 경우 역사지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구글어스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구글 어스 홈페이지 : http://earth.google.com/intl/ko/

구글 어스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무료소프트웨어입니다. 그 중에서 구글어스를 통해서 좌표나 선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파일들은 KML으로 저장됩니다. 구글어스가 설치되어 있다면, KML 파일을 클릭만 하여도 자동으로 위의 화면이 나타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강력추천하는 소프트입니다. 특히 저 같은 비전공자?!가 아닌 한국에서 교통사나 역사지리 하는 분들이 구글어스를 이용해서 다양한 KML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중국의 복단대와 미국의 하버드대는 현재 청대의 역사지도를 거의 완성하였고, 계속 앞시대로 나갈 계획입니다. 한국도 조선시대와 고려시대까지는 현재의 문헌으로도 나름 정확하게 복원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이 복원을 하게 된 이유는 갑자기 수업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는....四库全书수업.....아....흑.......PPT로 못 쓰니까 거의 쓸모도 없겠지만, 刘浦江 선생님이 좀 까다로운 분인지라 대체 어떻게 태클이 들어올지 모르니;;; 온갖 것을 다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본인이 맡은 부분은 문제가 없어서 짜증난다. 문제가 없다!!! 어쩌라는 건가!!! 사실 본인 스스로의 논문에 문제가 없는 사료라면 참 좋겠지만, 이 수업은 문제를 발견하는 수업인 것이다. 물론 조그마한 문제는 무조건 있기는 하지만....쓸만한 큰 문제가 없다. 큭..ㅠ.ㅠ

심심한 분을 위해서..그리고 저의 자료보관 겸사겸사..지금까지 대충한 교감을 올려봅니다. 보실분은 "더보기"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참고로...재미 있을리가 없습니다. 음하하-_;;;; 재미있으시면 당신은 변태입니다.-_-!


胡新生《乡饮酒礼与食犬风俗 - 《仪礼》酒会用牲制度的地域特征和文化渊源》《文史哲》2009年第5期。

후신셩(胡新生)은 현재 산동대학교 역사문화학원교수로 계시는 나름 유명하신 학자분. 그런데 이런 민속학이나 인류학적인 논문을 쓰실 줄이야…^^:::

내용 요약 : <의례-향음주례>와 관련 사료에서 나오는 개고기를 먹는 연회는 춘추전국시대를 포함한 주나라의 예가 아니며, 산동지역에서 행해졌던 상나라의 예를 이어받은 특수한 예법이다.

1-  향음주례의 처음에만 딱딱한 예법이 있을 뿐, 뒤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것은 향음주례가 예법으로 다듬어지기 전의 원형을 나타내준다.

2-  주나라의 6대 희생품은 중요도순으로 말, 소, 양, 돼지, 개, 닭이고, 사계급이 먹었던 것이 개였던 만큼 그리 중요한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흔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의례에는 개고기를 중요시한다.

3-  춘추시대에 노나라에서만 두 가지 장례풍속이 함께 있으며, 사료적으로 은나라의 후손이 노나라로 흘러들어왔다고 볼 수 있고, 주나라의 보편적인 희생품과는 다르며, 의례가 노나라를 본거지로 하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집필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향례에서 개고기가 예로까지 승격된 것은 노나라 및 인근지역의 특수한 모습이다.


솔직히 전공하고 그리 상관없는데 심심풀이로 읽은 글이라서 특별히 문제를 찾아가면서 읽지 않았다. 위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 않은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은 직접 찾아서 보시기를….재미있다^^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역사학도로서의 즐거움은 아닐는지 살짝 고민;;)



  1. hojai 2009.10.02 23:59

    혹시 상나라-제나라/노나라 와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 지요. 제가 산동을 살짝 다녀와본 느낌으로는 제나라의 동이족은 우리나라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이런 점에 대한 글이 많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아닌가요? 혹은 너무 자료가 많은 편일까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04 04:53 신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억지로 말을 하면...관계가 있기는 할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한국에서 말하는 동이니 머니 하면서 같은 민족으로 놓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한국에는 그런글이 넘쳐흐른답니다^^:::: 자료도 그럭저럭 많다고 해야되려나요...제가 볼때는 억지로 연결시키는 면이 많지만요.)

      저로서는 문화적으로 같은 원류라고 할 수 있지만, 이후의 일은 문화의 전파로 해석해야된다고 봅니다. 나중에 이에 대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 hojai 2009.10.05 21:00

    국내 재야 사학꼐도 동이족에 대한 얘기는 적지 않았는데, 예를들어 제나라 환공(강태공)을 한국인들이 자신의 선조이자 씨족의 뿌리로 여기는 점도 꽤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전 처음에 그것을 소중화사상으로 폄훼했었는데, 직접 제나라를 구경하고 오니 그것이 아니더군요. 진시황이 가장 나중에 복속했다던지, 제나라의 뿌리가 중국과 꽤 다르다는 것도 그렇고요. 실제 당시 황해와 발해를 중심으로 적잖은 사람 이동이 있었다는게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제나라가 망하고 진시황이 통일 제국을 세운 이후...짧은 공백 뒤에 백제가 한반도에 세워지고, 훗날 산동과 요서 지방에 진출하기도 하는데..이는 이른바 산동과 한반도간의 특수 관계가 아니면 해석되지 않는 대목으로 비쳐집니다.

    특히 산동지방 동이족들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짝수가 아닌 홀수를 좋아한다던지, 삼족오 신화나 태양신 신화를 갖고 있는 모습도 흥미롭고, 심지어는 중국인들이 제나라를 무시하고 노나라를 산동지방의 대표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점도 제-한반도 연계설에 제 상상력의 나래를 달아주더군요.

    쓰다보니 무슨 환빠 처럼 썼는데...^^; 발해의 요동반도 산동반도 그리고 평양을 품고 있는 해주가 바닷길로 멀지 않다는 점에서 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요령을 중심으로 한 홍산문화도 뜨고 있으니까요. 당시 중국의 중심은 시안 쪽이 아니었나 생각하더군요. 아무쪼록 좋은, 날카로운 글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08 21:50 신고

      흐음....해당 사항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연관성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같은 민족이나 전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동이족이라는 것이 복잡한것이라서....나중에 한번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 선진(先秦) 2009.10.12 16:00

    상나라가 동이족에 의해 건설되었고, 산동, 회하 지역에 많은 동이족이 진출해 살았고, 고대 중국의 여러 영웅들이 동이족이라는 말을 할 때, 중국인들은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선진 시대의 동이족은 다른 시대의 동이족과는 다르다느니 하도 해괴한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던데, 그 선진이 요 선진이었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12 22:16 신고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님에게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선진시대의 동이와 그 이후의 동이의 개념이 상당히 다른 것이 사실이고, 굳이 다르지 않다고 가정하더라도 선진시대의 동이 내부의 차이가 얼마 남지 않은 사료에도 보일 정도로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상나라 동이족설은 중국학계내에서도 많은 수가 긍정하고 있습니다.(물론 동이족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말하는 "조상으로서의 동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동 회화 지역에 많은 동이족이 "진출"해 살았다는 것은 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군요. 이 부분은 추후 따로 쉽게 풀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2009.10.13 12:28

      틀린 말은 아니죠,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마치 몽골의 식민지배 이전의 중국인과 그 이후의 중국인은 다르다는 소리와도 같구요, 마치 중화민족이라는 짝퉁종족 개념을 만들어 놓구는 중화민족 이전의 중국인과 중화민족 이후의 중국인은 다르다고 하는 소리와도 같죠.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보아 선진시대 동이 나부랭이는 동이족이 자신들을 식민지배한 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중국인의 망상에서 나온 허구일 뿐입니다.

      마치 몽골의 중국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원나라 역사를 훔치기 위해 쿠빌라이칸 이전의 몽골 제국과 쿠빌라이 칸이 국호를 원나라로 정한 이후의 몽골 제국은 다르다고 하는 헛소리와 일치하는 맥락이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13 17:30 신고

      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틀린 말입니다. 하다못해서 제 덧글조차 제대로 읽지 않으신듯 하군요.

      중국학계는 상나라 동이설을 일정정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상나라에 대한 사료자체가 많이 부족하기에 단정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동이족이 자신들을 식민지배를 하였다는 진실을 숨기려고 한다는 말 자체는 헛소리입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상나라 동이설 자체가 중국학계에서 먼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숨기려 한다라...-_-;;


      역사관의 차이
      님은 한국의 역사관 그대로 중국의 역사를 분석하기에 님이 볼때에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과는 한국의 역사관과 다릅니다. 이 부분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역사관에서는 무엇이 맞고 틀린 것이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님이 거론하신 원나라의 역사문제만 해도, 중국의 역사관이 다민족역사관인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민족중에서는 몽골족이 있으며, 이러한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논리적인 모순은 없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한국인들은 한국사의 단일민족사관 혹은 한민족사관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학계에서 이미 끝장난 허구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다보니 쉽게 모순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실제로 님이 언급하신 동이를 굳이 현대의 민족개념으로 나누면 최소 9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들입니다. 서양권에서 그냥 동양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국, 중국, 북한, 일본, 인도네시아등등 다양한 국가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 일부의 동이가 한반도에 영향을 주었긴 합니다만, 그것을 전체 동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서양권 사람들이 동양=중국 혹은 동양=일본이라고만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또한 반대로 중국의 역사관으로 보면 한국의 역사을 살펴보는 문제행위를 하면, 분명한 사실로서 외부에서 들어온 (중국대륙에서 온 사람, 동북쪽에서 온 사람, 일본에서 흘러온 사람, 중앙아시아 평원에서 흘러온 사람등) 사람들이 한국사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관에 우열은 없으며 서로 다른 각도로 보는 것입니다. 단지 님이 행한 자신만의 역사관으로 상대방의 역사관을 바라보는 행동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 행동인지를 말씀드리려고 예시를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어떤 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판은 혼자만의 말로 끝날 뿐입니다.

  4. 카멜레온 같은 중국의 역사관 2009.10.13 23:40

    머, 중국의 역사관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건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자꾸 왜곡하기 위해 만든 논리가 기존의 정통 역사관과 다르기 때문일 뿐일 뿐인 것 같구요. 뭐 중화민족이라는 짝퉁민족 만들어 남의 민족 역사 훔치려고 하구, 탐원공정 등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관을 자기들 정치적인 목적에 맞게 이리저리 고치는걸 보면, 소위 '중국의 역사관'이라는게 중화민족 만큼이나 허상이라는 걸 개념인들이라면 충분히 비추어 알 수 있죠.

    그리고 제가 중국이 무얼 숨기려고 한다고 식의 언급을 했던 기억이 없구요, 단지 자신들이 당한 역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당하게 만든 주체의 역사를 훔치려고 한다고 한 기억은 있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14 00:15 신고

      님의 말을 그대로 한국 역사관에 도입해보겠습니다.

      한국의 역사관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건 한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자꾸 왜곡하기 위해 만든 논리가 기존의 정통 역사관과 다르기 때문일 뿐일듯 하군요. 뭐 한민족이라는 짝퉁민족을 만들어 남의 민족 역사 훔치려고 하고, 동북공정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역사관을 자기들의 정치적인 목적에 맞게 이리저리 고치는 걸 보면, 소위 "한국의 역사관"이라는게 한민족 만큼이나 허상일는 걸 개념인들이라면 충분히 비추어 알 수 있죠.

      중화민족이 허구라면, 한민족은 허구가 아닐까라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한 사고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전 중화민족도 허구고 한민족도 허구라고 봅니다. 또한 한국은 과연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리저리 고치는 것이 없을까라고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아야됩니다.

      그런것을 다 떠나서 님의 말 그대로 제가 반박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관을 서로 건드릴 수는 없다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고 그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 자체는 기본적인 학문의 규칙도 지키지 못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맞고 틀리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해석에서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면 맞고 틀리고가 아닌, 같거나 다르고 입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분명히 말했지요? 중국의 주류역사학계에서도 은나라의 지배민족이 동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며, 한국학계보다 몇 십년은 빨리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쩐다라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군요. 그리고 당하고 말고라고 판단을 하시는데, 교류에는 적대적인 관계만(보통 동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융화라는 요즘말로는 WIN-WIN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5. 중국단오절과 강릉단오제 2009.10.14 07:46

    문제는 어떤가요 한쪽은 중국의 것을 한국이 등록했다. 한국쪽에서는 한국 고유의 단오제와는 다르다. 제가 알기로는 중국의 단오절도 이번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한다는 것은 중국의 괜한 오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 그와 더불어 조선족의 전통무용도 같이 등록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선족의 전통무용은 한국의 전통무용 분명 겹치는 바가 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점점 늘어나는 중국계 한국인,다른 아시아계 한국인의 문화유산등록은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해 궁금합니다. 역사학도로서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14 08:10 신고

      단오제에 대한 글도 이미 과거에 구체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말해서 단오제와 단오절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이 둘을 등록하는 것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고로 서로 충돌할 것도 아니고, 각자의 특색이 있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과거 중국에서 단오제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번역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단오제를 단오절로 본 것이지요. 번역자가 제대로 이해도 못한 것이지요-_-;;

      강릉 단오제는 중국의 단오절이 한반도로 유입해서 강릉에 정착하여서 강릉 현지의 민속문화와 융합하여서 만들어진 독특한 일련의 행사를 지칭합니다. 이것과 중국에서 말하는 단오절이 충돌할 일은 없다고 보는군요. 단오절은 어디까지나 동양권의 절기개념이니까 말입니다.


      또 다른 문제가 고구려 고분군등록입니다. 북한과 중국이 공동등재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과 중국에 고분들이 남아 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것으로 해서 누구것이다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예시기이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핵심은 위에서 등록한 문화유산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세계유산이며, 세계인들이 같이 보호하고 지켜나가야될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단일민족 역사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며, 다민족 역사관에서나 긍정받을 수 있는 이념입니다. 그리고 전 그 이념을 긍정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세계문화유산에 몇 개를 등록했다고 하면, 그 문화유산 자체야 세계인들이 같이 유지 보호해야될 것이고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니 특별히 자긍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자긍심을 느끼는 부분은 그렇게 잘 유지 보호해온 한국의 문화유산 보호 시스템인 것입니다.

  6. 질문이 있습니다. 2009.10.14 07:48

    중국이 다민족 역사관이 이기때문에 원나라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중국에도 몽골소수 민족이 있기때문에 원나라를 계승한) 그럼 중국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조선족이 있는데 최소한 해방되기전(조선족이 한반도를 떠나기전의 역사)의 역사도 중국 역사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석사학위 준비중이시니 아시는 바가 많을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도 소수민족인 귀화한 중국계 한국인들이 있습니다.(결혼이민과 화교귀화자로 인해 수 만명에 달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다 민족역사관을 가지게 되면 중국의 역사를 공유할 수 있는건가요)
    청나라와 원나라(몽골이라는 계승한 나라가 있는)는 다르다고 생각이 되어서 질문드립니다.
    예전 중국 네티즌들이 원나라의 역사가 중국역사라는 말을 듣고 말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수 보았습니다. (젊은층은 아니고 나이가 상당히 많더군요) 한족을 그렇게 핏박햇던 나라가 어떻게 중국의 역사냐고. 한국의 역사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오히려 이 의견이 와 닿더군요
    한국의 역사인식과 중국의 역사인식을 모두 겪어 보신 바로바로님이 명쾌하게 설명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고구려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다민족역사관이라면 분명 중국의 말이 틀린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전부터 쭉 궁금했었던 겁니다. 블러그님이 생각할때 말도 안되는 글 일 수도 있겠지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다민족 역사관 어디까지 확대되어야 되는지 그리고 그 문화를 어디까지 공유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네요 지금 이것이 세계적으로 주류 역사관인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14 08:02 신고

      간단한 문제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1) 원나라나 청나라문제
      악비 문제가 바로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이냐에서 결정적으로 들어났던 단일민족 역사관과 다민족 역사관의 차이였습니다.

      악비는 남송의 장군으로서 원나라의 대륙진출을 막는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민족 역사관에서는 몽골 역시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기에 한족만의 민족의 영웅일뿐인 악비는 민족의 영웅이 아닌 송나라의 명장으로만 불리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몇몇 중국네티즌이 반발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중국정부에 제대로된 판단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명확하게 나옵니다.

      악비를 계속 민족의 영웅으로 놔두면, 몽골족은 민족의 영웅과 싸운 "적"이 됩니다. 또한 몽골족도 같은 교과서로 교육을 받는데, 그들은 중국의 역사에서 자신들이 "적"이었다고 배우게 됩니다.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조그마하게 보이지만 나름 큰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몽골족과 한족이 서로 싸우라는 말로밖에 안들리는군요.

      그리고 한국에서 바로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좀 극단적이지만, 두 외국인이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와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한국의 문화를 태어나면서부터 "느끼면서" 한국의 교육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역사관에서는 같은 "민족"이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이방인일 뿐입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문화가정이 늘어가면서 점차 이러한 이방인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계속 단일민족 역사관을 유지하면 그들은 평생 이방인일뿐입니다. 또 다른 문제로 한국에서는 조선족들이 3D 업종에서 일하는데, 사실 조선족 중에서는 상당한 인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한국에 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선족을 "이방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서 고소득을 올리며 편히 살 수 있는데 모멸과 멸시를 당하는 한국에 오고 싶을리가 없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관과 현실의 충돌문제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중국 정부의 민족정책이 말만 아름답고, 실질정책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역사관과는 상관 없는 문제이니 패스)


      2) 다민족역사관
      현재 중국이 채택하고 있는 다민족역사관을 도입하면 현재 한국에 있는 화교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중국대륙에서 유입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사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님은 이것을 "우리 역사에 포함시킨다"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상을 바라보아야된다고 봅니다.

      역사라는 것을 왜 공부하느냐? 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봅니다. 저희는 역사를 왜 공부할까요?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과거의 경험을 배워서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사"뿐만이 아니라 중국사 그리고 서양사에서도 다양한 과거의 경험을 배울 수 있고, 배우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민족역사관이 발전하면 우리는 더 이상 "국사"가 아닌 "세계사"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는 현실정치를 최대한 배재한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