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전은 북경대에 오셨을 때 崔金柱가 찍은 생전 마지막 사진입니다.



2014년 12월 25일 06시 09분. 역사학자 田余庆(티엔위칭) 선생님이 서거하셨습니다. 田余庆(티엔위칭) 선생님은 위진남북조을 중심으로 중국고대사를 탐구하셨으며, 《东晋门阀政治》,《秦汉魏晋史探微》,《拓跋史探》등의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조사가 되시는 분이시군요.


얼마전에 90을 넘으셨는데...하아......애도를 표합니다.











본 만화의 원작 저작권은 Neku에게 있으며, 본인은 어디까지나 본 만화를 소개하는 목적으로 번역을 하였으며, 한국에 정식으로 출판되거나 원작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 번역판을 비공개로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번역판의 저작권은 본인에게 있으며, 번역판은 비상업적인 원칙으로 수정없이 출처(ddokbaro.com)을 명확하게 밝히고 가지고 가실 수 있습니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论语·述而》
3명이 길을 가다보면, 그곳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 글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은 "3명이서 길을 가다보면 어떤이는 훌륭하여, 그것을 본받아서 자신을 발전시키니 나의 스승이고, 어떤 이는 쓰레기이니,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고치므로 나의 스승이다." 이다. 여기까지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모두가 아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최근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며 트위터에 위의 글을 올리자 @bujiwibuji 님이 완전히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문 번역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나, 기존의 해석각도을 완전히 반대로 해버린 이 해석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각주:1].


3인이 길을 가면, 한 명은 훌륭하고, 다른 이는 쓰레기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명은 무엇일까? 공자 자신일까? 그러나 해당 고문은 "3명이서 같이"와 "3명과 같이"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공자 자신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각주:2].

그렇다면 잘하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도 아닌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될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bujiwibuji님은 이에 대해서 "잘한다고 뻐기기에는 민망하고, 못한다고 빠지기에는 억울한... 그러니까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 이들은 본받기엔 만만하고, 개선하기에는 큰 하자가 없어서, 투명인간으로 처리."라고 해석하였다.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잘하지도 못하고, 못하지도 못한 언급되지 않은 존재와도 같다. 우리네들에게는 그렇게 잘난 사람도 없고, 그렇게 못난 사람도 없고, 그 중간에 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을 나눌 줄 알고, 타인과 기쁨을 같이한다. 비록 거창한 "배움"이나 "가르침"은 없지만, 그런 모습이야 말로 인생이며, 배워야될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공자 자신이 그런 사람들을 투명인간으로 처리했다기 보다는 그런 평범한 모습도 가능하다는 것을 후대의 해석자들이 무시한 것이 아닐까?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해석을 하자면 : "3명과 같이 길을 가다보면, 어떤 이는 훌륭하여, 그것을 본받아서 자신을 발전시키니 나의 스승이고, 어떤 이는 쓰레기여서,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고치므로 나의 스승이다. 또한 어떤 이는 그리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지만, 그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기며, 우리네 이웃이기에 나와 함께 해주는 친구와 같은 스승이다."



* 고문의 즐거움.
고문은 표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변하고, 단어 하나에도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고, 무엇보다 글자수를 최대한 압축을 해놓았기에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가 풍부하다. 그것이 고문의 매력이자 저주이다. (저주라고 여길때 고문이 고문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을 하고는 한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기존의 고문을 다르게 해석한 내용을 보면 참 재미있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문 독해능력이 없음을 생각하면, 변태스러운 자위행위라고도 생각된다. 쿨럭;;;

* 트위터의 즐거움.
평소에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와 더욱 쉽게 교류를 하며 자극을 줄 수가 있다. 비록 140자의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런 제약성은 최대 압축의 고문처럼 그 나름의 매력으로 다가오기에 자주는 못 올리지만, 생각의 단편들을 오늘도 트위터에 올리고 흘려보내어 다시 돌아온다.

* 焉 : 어조사 언을 뺴면 안돼요 -0-
가끔 마지막의 "焉"을 빼놓는 분이 있다. 고대한어에서 한자 한자는 결코 그냥 쓰이지 않는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컴퓨터 타자도 없었고, 인쇄도 불가능했고, 복사도 불가능했다.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 없는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焉은 한국에서 어조사 언이며 별 의미가 없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焉은 감정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 혹은 "이 곳에"(此地)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의 문장으로 예를 들면, 3명이서 길을 가는 (바로) "그곳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시기 바란다. 이는 철학논문이 아니다. -_-;;; [본문으로]
  2. 또한 공자 스스로가 이미 성인에 근접한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보다 훌륭해서 배울 자가 많아야 얼마나 많을까? 이 말을 주석 처리한 이유는 감정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하여^^;;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08.29 10:53

    앞으로 ‘焉’ 안 빠뜨리겠습니다;;; (잠시 반성의 묵념 중)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8.29 15:26 신고

      아니;; 머;;;;; 그러셨었군요;; 인터넷에서 빼놓는 분들을 자주봐서 넣어본건데;;; 다음부터 안그러면 되죠^^::

  2. Favicon of http://oosoom.org BlogIcon exedra 2009.08.29 14:22

    음. 전 고문등과 전혀 상관 없는 프로그래머이지만, 저 必자가 걸리네요. '반드시'라는 것이 '모두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전 3인의 동행에 반면교사까지 넣을 필요는 없어 보이고, 세 명 중 적어도 한 명은 나보다 뛰어난 이(師)가 있다로 해석하고 있어요~~~
    그 뛰어남이 내가 주로 하는 분야이든, 아니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8.29 15:28 신고

      고문 자체에 대한 번역은 단지 "3명이 길을 가다보면, 그곳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입니다. 그 다음의 해석은 개개인에게 있는 것이지요.

      님처럼 해석하실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님의 자유이고 생각이니까요^^

      님처럼 해석할 수도 있고, 그 다음에 유교를 연구해온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못하는 사람들도 반면교사로 삼으니 스승일수 있다고 했고, 거기에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을 추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부터가 "다른 해석"인 것이지요.

  3. Favicon of http://www BlogIcon 킹파르사 2009.08.29 15:25

    1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2己所不慾, 勿施于人, 3德不孤, 必有隣 ,4禮之用, 和爲貴 5三人行 必有我師  이다섯가지가 중국인이 가장사랑하는 공자의 가르침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 공자의가르침자체는 배울점이 많으며 공자도 성인에 가장접근한것도 동감입니다 .
    다만 공자의사상이 주나라의 예치를 표방한것과달리 맹자와순자를 거치며 차츰 유교로 변질화되며 봉건독재정권의 치세술로 변질된것이 중국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페헤도 분명히 있다고봅니다 . 희랍문명의 자유,민주 평등,권리 진보는 사회와사상의 진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것에 비해 유교는 忠충 孝효 信신 义의 礼례 는 국가와개인 군주와신하 부모와자식 스승과제자 등의 인간관계를 규범화하여 그것을 지킴을 강요한것은 사상의진보를 가로막는 가장큰 걸림돌이 됬죠 .. 아마도 백가쟁명 이후 휼륭한 철학가가 나오지 않은것도 유교사상이 빛어낸 결과이지 않을까요
    노자를 만나러 간 공자가 노자에게 비판받은것도 바로 공자가 자신의 가치관을 너무 타인에게 본받을것을 강요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
    전 틀을차리고 지킴을 원하는 공자의가르침보다는 치우침이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걸 제창한 노자를 숭상하는편입니다 ..
    노자야 말로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유일한 신적경지에 도달한분이라 말하고싶네요 .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8.29 15:31 신고

      저도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공자의 사상은 너무 딱딱하고 예보다는 법에 치우쳤다고 생각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얼마전에 올린 쳔무의 예와 법은 해석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러나 가르침에서 배울 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저 스스로 그냥 심심풀이 사유를 해본것이랍니다. 하하;;; 그런 의미에서 본문글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자도 괜찮기는 하지만, 쉽게 소극적이 되거나, 오히려 정치적 권모술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노자라고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고 해도 어린시절부터의 세뇌덕에...역시 도가 사상쪽이 더 좋다는;;;;

당(唐)조의 황제는 기존의 황제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특수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늘칸(天可汗)이라고 하늘 지배자로 불리었다. 당조의 황자는 여러가지 옥쇄를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 전문적으로 국외에 보내는 편지에 이용했던 도장에는 "하늘칸의 도장 天可汗之印" 이라고 쓰여 있다.

당조의 꿈은 바로 당고조(唐高祖) 이연(李渊)에게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정작 하늘칸을 얻지 못하였다.

수(隋)나라말기 고구려 공략으로 인하여 민심히 흉흉해지고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원은 그러한 수나라의 고위관리였을 뿐만이 아니라, 황제와 긴밀한 혈연관계을 맺고 있었다. 당시 아무도 당이 수나라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였고, 더군다나 이원이 반란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이연의 어머지는 수양제(隋炀帝)의 어머니와 친자매였다. 이연이 어려서 부모님을 잃자, 수양제의 어머니인 독고황후(独孤皇后)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이연은 아버지의 작위인 당국공(唐国公)을 어린나이게 이어받게 되었고, 그의 출세도 수문제(隋文帝)와 황후의 후광 속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 또한 수양제와 이연은 아마도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자주 같이 뛰어놀면서 친분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이연은 반란을 잃으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을 했을 것이다.

대체 이연은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일까? 이연은 제왕 운명을 타고 나서? 이씨가 양씨를 대체한다는 유언비어때문에? 주위의 심복들이 부추겨서?


614년 태원으로 돌아가보자.

수나라는 몇 백년동안 분리되었던 중국을 통일하였다. 하지만 더욱 강대하기를 바랬던 수나라는 고구려를 공략하였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의 거대 제국의 꿈은 날로 산산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617년의 중국은 수나라 붕괴의 전야였다. 전 국토의 산천이 불타고 민중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역사의 갈림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누가 역사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1. 꿈과 현실 - 이원

617년, 이연은 태원으로 파견을 나가서 잠시 머물렀었다. 당시의 관직은 태원지방의 제독(最高军政长官)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지방실력자로 성장한다. 그런데 이연이 속으로 가장 기뻐했던 것은 실제 권력이 아닌 어둠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미묘한 생각이었다. 태원은 고대 전설 속 당요(唐尧)가 관장했던 지역이었다. 요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천하를 다시르게 되었다. 천상천아 유아독존. 이연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작위도 당국공(唐国公)이었다. 당국공이 당요의 옛땅으로 온 것이다. 이것이 천명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아주아주 오래전, 어떤 사람이 이연의 관상을 본적이 있다. 그는 이연의 골상이 부귀하니 스스로를 아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이연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꿈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연이 태원에 도착한 뒤, 그 꿈에서 깨어난 것은 아닐까? 이제는 꿈만이 아닌 현실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꿈만으로 이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업구년(大业九年) 바로 수양제가 고구려로 친정을 나갔을 때, 예부상서(礼部尚书) 양현감(杨玄感)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연은 양현감이 친지들을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전선에서 돌아오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장 전선에 있는 황제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다. 수양제는 이연의 충성에 감사하며, 전방주력부대를 돌리고, 다른쪽으로는 이원에게 홍화군(弘化郡)의 군사를 맡게 하고, 지관우주군사(知关右诸军事)에 임명한다. 이는 장안(长安)의 북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연이 처음으로 군사력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양현감의 반란중에 이연이 보여준 충성은 매우 깊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두항(窦抗)은 이연 부인의 당형이었다. 또한 이연 본인과도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두항은 이연에게 이 기회를 이용하여 천하를 손에 넣으라고 조언을 한다. 그때 이연은 "문제를 일으킬 발언을 하지 마세요(无为祸始,何言之妄也。)"라고 대답한다. 당시의 법률을 생각하였을 때, 두항의 발언은 모반의 증거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이연은 이 사실을 보고해야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연은 비록 두항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정작 두항을 고발하지는 않는다.

이연은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이연이 태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조정세력의 대표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각지의 폭동을 진압하였다. 그는 심지어 70발의 화살을 연달아 발사해서 70명을 죽인 기록이 있었고, 조직적이지 않은 군중들이 군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의 야심과 꿈이 합쳐졌을까? 그가 진정 꿈을 위해서 노력을 시작했을까? 그의 일련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는 아직 웅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의 반란과 침입을 막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 됩니다.)



멍쉬엔슬(孟宪实)의 晋阳:梦开始的地方이 괜찮은 내용이어서, 직역식이 아닌 의역위주로 번역한 글입니다. 오역이나 오타에 대해서 강력한 비판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저의 "귀차니즘"을 생각하면 어차피 덧글도 달리지 않아서 압력도 별로 없는 이런 종류의 글의 업데이트는 조금 느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덧글을 달아달라는 말을 참 아름답게 돌렸군요! 우훗-_)

  1. 시골 2008.07.26 18:43

    이원인가요? 이연인가요? ^^

    ========================
    반란이면, 12.12 사태때 장군들의 전화내용이 떠오르네요.
    초반에 파악이 안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 배신자의 거짓말, 쿠테타에 대항하는 군인의 비통함등... 그리고, 신군부 장교의 작전(쿠테타)성공통보.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7.26 19:50

      한국식 발음은 이연이 맞습니다. 중국발음이 yuan이어서 저도 모르게 이원이라고 했네요. 실수했습니다.-0- (중국식 발음으로 하면 리위엔이 되는군요. 지금 현재 배우는 언어학에서는 저같은 이런 잘못을 중간언어문제라고 하더군요. --;; )

    • 시골 2008.07.26 20:13

      ^^;;;;;

      그러고 보니 저도.. 일어 공부할때는..
      hwp 에서 한자입력할때 井 자를 '이' 란에서 찾는 실수를 한적이 있죠..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7.26 20:29

      ㅠㅠ 흐흑..ㅠㅠ
      처음부터 오역을 해버렸으니 계속 연재하고 싶은 마음이 확 깍이는군요. 흐흑..ㅠㅠ

    • 시골 2008.07.26 20:36

      헉.. 그런 뜻이 아니였는데... ㅡㅡ;;;;;
      그냥 누구나 할수 있는 작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깎이지 마시고, 뜻하신 데로 하시길...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7.26 21:38

      네....ㅠㅠ

"연대기 작가라고 자칭할 때가 더 많지. 연대기 작가가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역사와 현실 중 현실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에선 야심가와 같지만, 관찰하고 해석할 뿐 참여할 수는 없다는 점에선 역사가와 같은 사람을 말하네."

"왜 참여하시지는 않습니까?"
바탈리언 남작은 잉크병을 열었다.
"관찰자로 우수한 이가 있고 행동가로 우수한 이가 있네. 난 전자야.내겐 재능과 행운이 있거든. 내 행운이야 오늘 일어난 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겠지. 이 굉장한 사건 속에 휩쓸리지는 않지만, 관찰하고 있네. 그리고 이렇게 기록도 남길 수 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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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님께서 죽은 과거보다 살아있는 현실을 더 사랑하시는 것은 짐작합니다. 역사가가 아니라 연대기 작가가 되시기로 결심하셨으니까요. 그리고 남작님께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하신 것도 압니다. 예. 언어는 말해진 순간부터 고정되겠지요. 어떻게든 이 아름다운 지금을 표현해 보려 해도, 그것은 표현된 순간부터 죽은 과거가 되겠지요."
남작은 졸음에 취하여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은 어쩌면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오스발의 목소리는 이제 산들바람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남작님은 훌륭한 연대기 작가이십니다."
"어째서-?"
"지금을 사랑하시니까요."

-- 이영도의 폴라리스 랩소디 중에서...


요즘 자주 생각나는 문장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한다. 관찰하고 해석할 뿐 과거에는 내가 참여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나는 "지금"을 너무나 사랑하나보다.  그렇다고 나는 행동하는데 필요한 능력이 없다. 그리고 용기도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아련하다.


관찰하자.
그리고 운이 좋으면 나의 조그마한 관찰로 현실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겠지.
관찰하는 능력부터 제대로 기르자.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니까! 괜히 공부가 안된다면서 이렇게 떠들지 말고 책이나 더 보자고!!!


  1. 풉풉풉 2008.05.05 21:57

    헙; 폴라리스 랩소디 1권 읽다 던졌는데; 다시 읽어봐야겟네;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5.05 23:19

      이영도씨의 다른 책보다 인기가 별로 없는 작품입니다만..저 개인적으로는 애호도 1~2위를 다투는 작품이랍니다.이런저런 생각할 껀덕지가 있죠^^::

  2. 흐미 2008.05.07 10:32

    역사는 공부해서 머해요 그거다 민족주의적으로 쓰여진구라들인데..전부 짬봉됐는데 국가가 왜 필요하고 민족이 왜 필요해요....한국이 어디있고 중국이 어디 있고 미국이 어디있고 유럽이어딨어요..다 헛소리지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5.07 11:59

      하하.....역사가 민족주의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님은 공부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물론 님이 말씀하시는 요소도 있고, 그래서 전 세계사를 하고 있고, 시기도 이러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문제가 별로 없는 고대쪽을 하고 있습니다.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北京大学历史学系2008年硕士生拟录取名单公示

一、内地考生(共计19人)

丁 浩、邓 阳、刘玉群、刘乳滨、刘崇锤、何存金、余奕珠、张 寒、张曜光、李华程、罗 志、郑启芬、胡 宁、栗河冰、袁 鹏、高俊杰、韩 飞、韩 澍、韩基奭

二、推免生(共计21人,其中含学工选留1人,不占招生计划):

于  娜、丹筱彤、王  月、王  倩、王梦婕、冯  佳、冯立冰、吕  超、张心远、张宁芳、张成晗、李坤睿、李怡文、李梦岚、杜  乐、陈  捷、陈冠华、陈博翼、胡  珂、胡晓丽、聂溦萌

三、留学生(2 人)

马  硕、王  林


北京大学历史学系

    2008年4月9日


없다. 없다. 없다. 유학생은 2명인데, 이름으로 보아서는 화교이거나 서양애들이다.

최소한 한국 사람의 이름은 아니다. 없다. 없다. 없다.

(2차 시험에서 떨어지신 한국분이라고 추측되는 한 분. 애도를 표한다. 후....)


기대했었다. 본인보다 나이 어린 후배 한명 안 들어오나 말이다. 사실 현재 본과에 다니는 한녀석이 들어왔어야 되었는데, 나보다 훨씬 더 역사 공부에 어울리는 녀석인데 말이다. 결국 본과 출신의 석사인생 2명의 모습을 보고 살포시 포기해주시더라. 좋은 모습 보여주러 그리 노력했는데 말이다. 큭....

내년을 기대해 보리라. 한 녀석 있다. 그나마 살아있을 한명의 생존자가...

그녀석 이름에는 아예 석사의 석자도 있다!! 자!! 와라!! "원래 석사여!"


왜 굳이 한국인이냐고? 외국에 있으면서 중국애들하고 안 노냐고? ...지도교수님이 소수정예(본인 빼고) 주의라서 현재 박사생 2명에 석사생 1명(이게 본인)만 있다. 맨날 3명이서 노는데도 지쳤다. 좀 데리고 놀?! 후배가 있어야되는데 말이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 없다. 아...새로 한명이 들어오긴 한다. 본과에서 박사로 점프해서 말이다. 후....


없다. 없다. 없다. 그래서...

외롭다....이것이 소위 인문학의 위기인가? (........)




자기 얼굴에 침 뱉기 : 올해 전공과목 시험이 생겼더라.작년에는 연구생 시험 개혁한다고 딸랑 면접만 보았는데 말이다. 으음...지금까지 시험운이라고는 개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험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역사가 나를 부른다라는 폼나는 말도 있겠지만...안 불렀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새벽이다. 자치통감. 사마광님아~ 조금 짦게 쓰지 그러셨어요? ㅠㅠ


  1. Favicon of http://www.wurifen.com BlogIcon 우리팬 2008.04.10 10:49

    저같은 경우엔, 지도교수가 아예 저를 낙동강 오리알 취급을 해서리, 중국인들과의 자리를 아예 만들어주지 않더군요.-_- 몇번 사적인 자리를 가졌습니다만, 중국생활에 대한 이야기, (X같은 경험을 듣더니만, 두어달 뒤 글 써서 발표를 해버렸다는-_-;) 그리고 한국 유학생 이야기, 일본 갈 때 준비하는 얘기 밖에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_-; 그러다, 한번은 "중국애랑 자리 좀 만들어 도!" 했었는데, 졸업 앞둔, 이미 취업된 본과 4학년들과의 자리를 연구실에서 만들더니, 단 한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지요.

    우째보면 양보단 질입니다. 특히, 한족이라는 종족들은.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4.10 16:19

      으음;;;;; 저야 본과때부터 알던 녀석들이 있는지라...조금 상황이 다른듯 합니다. 중국애들하고 자리는 스스로 개척하는 수밖에 없을듯 합니다. 저와같이 상황이 마련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0-;;

      머..그렇다고 해도, 숙사 자체가 분리되어있으니...으휴...

  2. Favicon of http://chanme87.tistory.com BlogIcon 요요 2008.04.10 22:07

    우리 조카님ㅋㅋㅋ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4.11 00:14

      난 누군지 말 안했어 -_-

김용덕 : 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동양사 교수, 하버드대학교 석박사, 일본근현대사 전공.

 

김용덕 교수님은 한국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몇가지 역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분명히 존재했던 조선조의 사대주의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서울대 교수가 북경대에서 강의를 한다는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이해는 할 수 있다.

그가 보는 현재 한국의 4대 문제는 한중, 한일, 그리고 남북한 관계가 있다. 더욱이 중일간의 역사적 문제를 중간에서 어떻게 처리하는냐도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기에 말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기준으로 상대방의 국가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인의 역사적 사실은 매우 좁은 범위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타자가 되어서 바라보아야 진정한 실체를 알 수 있다. 그는 임진왜란과 임오군란을 예로 들어서 한국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역사관의 정립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소중화의식은 민족의 독립성을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기본은 사대주의가 아니던가? 흐음...

 

전근대에서는 동북아의 기본적인 가치가 유교(성리학)였지만, 근대부터는 서양의 가치가 중심적인 기준이 된다.

 

교수님은 한국의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점을 사람들이 잘 알것이라는 이유로 건너 뛰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강의의 가장 핵심이 되어야될 부분을 건너뛰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듣는 한국의 중국과 한국에 대한 관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까?

교수님은 조공책봉제(朝贡册封体制)을 현재 미국과 다른 나라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현재 역사전쟁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1)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본인의 생각으로 이론적으로, 이상적으로는 무조건 맞는 소리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교수님도 분명히 알지 않은가? 그래서 본인이 고대사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동북공정과 같은 몇가지 문제는 있지만 사실상 모든 문제가 정치와 연결되는 근대사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다.

 

2) 서로의 "역사주권"을 존중하여야 한다.

마치 영토와 같이 역사도 그 나라 범위안에서 보호되어야된다는 소리인데, 솔직히 이상하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학술교류는 왜 하며, 국제적인 주류 역사해석은 어떻게 해야되는것인가? 무엇보다 이것 역시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는 현실의 한 모습에 불과하지 않은가?

 

** 열린 민족주의 开放的民族主义(Internationalized Nationalism)

재미있는 개념이다.

 

3) 동아시아 공동체

교수님는 중국의 파워가 홀로 너무 강하여서 이런 공동체의 실현이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실력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군사력으로보아도 일본은 중국에 그리 떨어지지 않으며, 그 중간에서 한국이 충분한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수님은 공동체의 실현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매우 모호한 개념으로만 설명하고 있다. (싸가지 없게 말하면, 이런 내용은 나도 예전부터 주구장창 이야기해놓았던 이유다. 구체적인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일까...?)

 

동아시아안의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공통의 가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가치(East Asian Value)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로 만들면, 이런 가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는 정치 군사 문화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기보다는 세계를 평화적으로 모두 함께 발전하는 길을 열어야 될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이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간의 문화를 존중한다면 자동적으로 해소될 것이다라니...;;

 

 

** 유럽공동체가 생겨난 이유는 그동안 죽어라 서로 전쟁을 해서 이제 합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 공동체가 생겨날려면 동아시아도 죽어라 전쟁해야 된다!!! 당연히 교수님도 농담으로 한말이다.

 

 

문답 :

역사 주권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학술상에서는 기본적인 주권중에서는 하나로 포함된다. 전통적인 주권에서는 국토, 국민, 지배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역사라는 것은 빠져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일제시대와 같이 전통적인 주권을 모두 상실한 가운데, 역사주권만은 남아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Q :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뒤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서 역사를 이용해야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모순 아닌가요?

그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위해서 먼저 역사전쟁을 해결해야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동북아시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동북아시아 역사연구센터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영향력을 보면 한국은 영향을 행사하기보다는 받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너무 치열한 역사 전쟁상태를 생각하면 한국이 그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없을까?

 

 

그 외 잡상 :

한국과 일본의 지배자는 같은 민족에서 나온 사람들이지만, 중국의 지배자는 다른 민족에서도 나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물론 이런 다른 민족지배자들도 중화사상에 빠져들지만 말이다. ---> 일단 한국과 일본은 단일민족도 아니고 한나라나 몽고와 같은 외부세력도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예전의 민족관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사람 모두가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고 있다.  --> ....솔직히 반대파가 예전에 비해서 많이지지 않았나?

 

 

통역자에 대해서 :

북경대학교 한국어과 연구생이라고 한다. 중국인이다. 이번에 역사과 박사시험을 보고 면접만 남았다고 한다. 그럼 머...들어오겠지. 현재까지는 한->중 번역만 하고 있음으로 정확한 실력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원래 말에서 어려운 말들을 조금씩 빼놓고 있다. (예를 들어서 역사적 구체적인 사실이나 속담같은 말은 번역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빨간옷을 입은 한국분. 박사생으로 알고 있는데, 죄송하지만 중국어 실력이 부족한듯 하다. 더 열심히 하셔야 될듯...

 

 

牛大勇

동북아시아의 통합

 

1) 강력한 초거대국가

내부 집단들이 공통적으로 합쳐야겠다는 인식 -- 적대할 국가

 

2) 현재 복작한 정치외교 상황 - 분리주의문제

조선, 한국, 타이완, 중국, 일본이 서로 너무 얽혀 있다. 일단 조선과 한국 그리고 중국과 타이완간의 문제가 해결되야지 동북아의 통합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3) 전쟁책임과 역사책임

일본과 반일본간의 일제시대의 전쟁 책임과 역사책임을 포함한 문제. 다시 말해서 일본을 믿을 수 있으냐는 점.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과 서술에서 반박할 것이 몇개 있었음.

어떤 사람을 한국인이라고 부르는가? 어떤 사람을 중국인이라고 부르는가? 일본인이라고 부르는가?  현재 한국, 중국, 일본의 국가 안에 사는 사람들을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라고 한다.

-- "The Peoples of Asia" - Science and Politics in the Classification of Ethnic Groups in Thailand, China, and Vietnam By CHARLES KEYES 중의 문장을 살짝 패러디한 것.


어마어마하게 단순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곰곰히 씹어보면 너무나 씁쓸한 문장.


 CHARLES KEYES는 민족이란 허구적인 개념에 불과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민족의 개념과 범위는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서 너무 쉽게도 변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다는 것 자체가 영원한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한민족이라고 하는 공동체의 틀은 과거 정신문화연구원이 피나게 만들어낸 역사관의 결정체일 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한민족이라는 자긍심이 누군가에 의해서 세뇌된 하나의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곰곰하게 되돌아보자. 그리고 "한민족 짱!" "한민족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짱깨는 드러워"나 "쪽발이는 키작은 병신"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 말고, 민족이나 국가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단지" 인간으로서 세계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없다.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1. 2008.05.06 18:33

    어느나라나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도 자기 문화가 최고라하고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자기가 최고라 생각 합니다
    자기 나라에서 자기들 문화가 최고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요?
    자기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게 더 문제 같지않은가요?..

    님 말대로 한 인간으로써 세상을 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 세계와 현실은 너무나도 큰 괴리감이 존재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주변국들이 그렇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고
    또 다시 침략 당해 유린 당하는 치욕을 당하겠죠..

    어느나라나 역사적인 민족 개념이든 정치적 민족 개념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한나라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방법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국가도 필요 없겠죠..

    문제는 독일 나치나 중국 일본처럼 국수주의 침략주의가 문제라 생각 합니다.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5.16 15:06

      그동안 덧글 달아주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smurf님이 덧글을 달아주셔서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답변이 늦은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은 현실적으로 방어적인 목적을 위한 민족주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님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독일 나치도 이러한 방어적인 민족주의로 시작하여서 국력의 성장과 동시에 공격적인 민족주의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주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이상을 위해서 계속 달려가고 싶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군요.

  2. smurf 2008.05.16 11:50

    음, 윗분댓글은 일리가 있지만, 다른각도에서 생각하면, 바로 민족이란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불화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이기도 합니다.
    각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지켜지고 또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민족의식이 너무 강하면 타민족을 멸시 내지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 싶습니다. 히틀러가 가장 대표적인 예겠지요.

    그외 코소보 내전이라든가, 터키의 쿠르드족 대학살,일본의 난징대학살,유고내전시 인종청소, 그외 아프리카 내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간 전쟁과 학살등등 인류역사에는 크고작은 수많은 인종혹은 민족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로사회처럼 하나로 뭉쳐서 이젠 민족이나 인종에 따른 선입감이나 차별등을 불식시키고 하나로 나가는 실험이 필요합니다.

    어쨋든 인류의 뿌리와 조상은 하나입니다.
    인종과 민족구분에 따른 갈등을 치유한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속의 전쟁과 반목을 절반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뿌리는 몽골리안이고 농경민족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그렇기에 생김새가 비슷하여 섞여 있으면 서로 구분을 잘 못합니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이 아니며 국가의식과 애국애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위정자들이 강조한 것 뿐입니다.

    세계 어느나라도 단일민족 운운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단일민족이 어떤 혼혈민족보다도 우수하다는 증거도 없으며 오히려 타민족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문제의 발단이 됩니다.
    우리도 어차피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가고 혼혈 2세가 증가하는 마당에 이젠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5.16 15:10

      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상을 현실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너무나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윗분의 말씀대로 아직은 분명히 현실적으로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느끼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상에서 현실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희생 쫌 하고...(후..) 피 좀 흘리면...(으휴..) 어떻게든 현실이 되겠지요. 하하하....--;;

본인 역사를 공부한다. 그리고 저 지도를 보는 순간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학문적인 가치는 0%에 가까운 쓰레기이다. 물론 한가지의 가설로서 존중 받을 수 있지만, 해당 가설의 증거가 너무나 부족하다.

 

고구려의 영토 표시가 지 마음대로다. 해당 영토 표기는 태왕사신기에서 봤던 그 영토 표기였다. 그것을 보면서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판타지" 드라마라는 생각에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이건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올려서 많은 외국사람들이 보는 지도인데 여기에다가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대충의 문제만 말해도...

 

1) 백제의 산동반도설 통치설은 한마디로 증거자료가 너무나 부족하다. 한마디로 학문적으로 인정 못 받는다.

2) 거란의 위치도 훨신 아래쪽이어야 한다. 아니 고구려의 위대함?!을 말하려면 차라리 거란이 고구려에 통합되어있어야 정상이다. 실제로 중국대륙의 왕조들과 고구려의 사이에서 방랑을 하며, 한때는 고구려에 통치를 받았고, 다른 때에는 중국대륙 정부의 통치를 받았다. 해당 위치도 요서쯤에 배치하는게 합리적이다. 물론 시대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3) 후연은 아무리 약해졌어도 최소한 요서정도까지는 지배했었다. 그런데 해당 지도에는 베이징(북경)도 점령 못한 것으로 되어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 홍보를 하면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증거를 갖추어야 되는데, 이것은 너무나 허무맹랑하다. 당장 위대한 고구려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중일을 제외하고는 고구려는 단지 타국의 역사일뿐이다. 우리가 로마의 문화가 유렵의 여러 국가에 내려온다고 간략하게 말하는 것처럼, 타국의 입장에서는 고구려가 명망한 뒤 현재 한중일 모두에게 일정정도의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서 이게 누구 역사란 말이 왜 나오는 것인가?

헛소리다. 민족주의에 사로 잡힌 오만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고구려의 역사일 뿐이다.

 

 

더 황당한 건 독도다. 대체 저 시기에 "독도"라는 지명이 어디있었냐?

기본적인 역사 지도의 역할도 못하는 쓰.레.기.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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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ubhumanrace 2008.07.10 11:55

    백제의 산동반도와 요서지방 지배에 대해서는 확실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서에만 나와있는게 아니라 중국역사서에 그대로 쓰여져 있는데 그걸 왜 부정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황하주변을 따라서 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있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는 요서와 진평 2군의 땅을 차지하였는데,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 subhumanrace 2008.07.10 11:59

    그리고 위 사진의 고구려 강역에 대해서 비판을 하시는데, 저것은 요하의 위치에대한 학설의 차이때문에 나타난것입니다. 중국역사서에 나오는 요하의 위치가 지금의 난하와 일치한다.. 라는 설이 바로 그거죠. 사실 난하를 요하라고 했을땐 동쪽의 연해주땅이 고구려의 강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즉 단지 동쪽과 서쪽으로 위치가 바뀔뿐이죠. 물론 저도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다면 요동성과 신성, 안시성의 위치는 어디여야하는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4. subhumanrace 2008.07.10 12:02

    현재의 요하가 고대의 요하와 같은 위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니 이것이 정설이죠? 정설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가 언제 시작했는지도 계속 바뀌고 있는 실정인데, 정설만 계속 믿다간 참된 역사가 어떤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끝날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가설이라고 무조건 배척할게 아니라, 그 가설이 타당성 있는지 더 생각해본 다음에 비판을 해도 늦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Baro 2008.07.10 21:07

      일단 정설은 언제 무너질지 몰라도, 아직까지 정설인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 이 가설이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청동기의 예는 명확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수정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다고 생각되는군요.)

      백제가 요서와 진평2군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설령 그러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가 단기적인 행동이었는지 장기적인 통치행위였는지 자체가 애매합니다. 그리고 전 아직까지 중국측 사료에 해당 내용을 본 적이 없군요. 정확한 사료 출처를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교과서는 사료가 아닙니다. 그리고 중국의 예를 통해서도 충분히 아시겠지만, 얼마든지 마음대로 조작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역사서도 많이 왜곡 조작되어있고 말이지요.

      무엇보다 제가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사료를 완전히 믿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특히 자신의 이론에만 맞는 사료만을 이용하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위진남북조시대에도 낙랑군(으음..대방이었던가요. 조금 가물)은 중국 사료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통치 영역은 남아 있지 않았고, 명목상일 뿐이지요. 하지만 사료만을 생각하면 낙랑군이 남아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이 외에도 다른 수 많은 예가 있겠군요.)

      제가 위의 학설을 인정하는 것은 백제가 요서지방을 장기지배를 했고(중계교역항구와 같은 임시 시설이나 조직을 제외한다는 의미입니다.), 해당 위치에 백제특유의 성축조나 대량의 백제계유물과 같은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나기 전에는 전 해당 학설을 부정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님이 하신 말은 주류 의견도 아니고, 명확한 근거자료도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것을 "팩트 사실"까지 강조하면서 광고하는 것에 대해서 저의 생각으로는 역시나 바보짓같습니다.

  5. 길손 2009.09.23 17:27

    그냥 개인광고일뿐이네요.예전 어는분이 동북공정은 한국에서알려진만큼 거대프로젝트도아니고 많은 한자들의의견중하나일뿐인데 도대체 한국은 왜이렇게 난리냐고 하신거에덧글을다셨는데 특별히 거기에 대헤 부정하는글을 단적도 없으신걸보면 여기에대헤서 이렇게 호들갑을 떠실필요는없는것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23 18:34 신고

      글쎄요. 전 호들갑을 떤 적이 없습니다. 단지 위의 지도는 분명히 틀렸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명히 말해서 해당 광고는 처음 시작은 개인광고이지만, 나중에는 대기업까지 프로모션에서 고구려와 독도를 이용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고, 기금 마련도 상당히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단지 개인 광고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있는 것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집중해서 보는 것이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 이 사건이 제가 블로그에 쓸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제가 주제를 선택하고 쓰는 것에 대해서 부정을 하시는군요. 님이 글의 내용의 사실에 대한 비판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지만, 이처럼 저의 글 쓸 자유 자체에 대한 공격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저는 님의 덧글을 보고, "내 본문과는 상관도 없고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덧글을 달고 있으니 삭제해도 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길손 2009.09.23 19:06

      이런게 글쓸자유자체에 대한공격이라면 앞으로저는 어딜가서든 글을 쓰지못할것같습니다.남의의견의 자유자체에 대한공격이라면 그쪽도 뭔가 좀문제가있는것같아요.기분나쁘시다면 글을 삭제하십시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23 20:20 신고

      남의 의견 자체의 논리적 기반이나 근거에 대한 비판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토론의 기초라고 봅니다.

      그런데 님은 제가 나름 블로그에 쓸만한 일이다라고 판단해서 쓴 내용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실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와 같이 제 글을 쓰는 자유 자체에 대해서 침해를 하신 것으로 봅니다.

  6. 엉? 2010.01.22 20:58

    국사 책 영토를 기준으로 판별하시는 건가?

    일본이 우리를 식민통치하기 위해 자료를 왜곡한 걸,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그대로 믿고있다.

    실제 영토가 저 지도 보다 컸던 작았던, 국사책 보다는 믿을 만 하다 이거다.

    백제가 산동반도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하는 자료는 어디 있나? 삼국사기에 그렇게 나와있던가?

    대륙백제에 대해 기록했던 최치원은 거짓말쟁이라 이 말인가?

    국내 기록 말고도 백제가 산동 지방 쪽에 영토를 확장했다는 중국 기록들도 많다.

    저번에 kbs 에서 다큐 하나를 방영 했었는데, 대륙백제설 에 대해 얘기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많은 증거와 자료를 보여주며 백제가 산동 지방에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독도의 명칭을 저렇게 표기한 건,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일 뿐인데,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뭔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22 21:32 신고

      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가 근거 없거나 희박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학계에서 근거와 논리로 반박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학계가 일본의 식민주의 사관을 계승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만약 식민지시대에 도입되어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본학계의 영향이 있다면, 현대적인 의미의 사학을 도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근거와 논리를 통한 역사연구입니다.

      현재 대륙백제설은 근거가 없거나 매우 부족한 설일뿐입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다만 "기록이 있다"뿐이지, 실제 기록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근거와 논리는 현대역사학, 아니 모든 학문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님은 근거가 없습니다. 만약 반박을 하고 싶으시면 님이 언급한 "기록들"을 원문으로 직접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토론이 됩니다.


      국사책의 내용이 축소되었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이것을 언급해야겠군요. 오히려 현재의 한국국사책은 "과장"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한가지 예시만 들겠습니다. 한국 국사책에 고조선의 영역이 표시되어있습니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파형동검등의 고고학유적의 분포입니다. 문제는 비파형동검과 고조선을 연결할 수 있는 어떠한 증거나 논리도 없습니다. 다만 "대충 그쯤에 있었을 것이고 그쯤에서 비파형동검이 나왔으니 가능성이 높다"정도일 뿐입니다. 논리가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전 근거와 논리로만 역사를 판단합니다. 애국이라던지 민족주의는 무시합니다. 근거와 논리입니다.


      님이 편하게 제시하셔야될 증거 목록을 드리겠습니다.
      * 최치원이 대륙백제를 기록했다? 최치원은 통일신라말기의 인물이니 1차사료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어찌되었든 제시해주십시오.(오히려 최치원을 친당파로 분석하는 와중에..무슨-_-)

      * 국사책이 믿지 못할 근거를 제시해주십시오. 물론 제가 언급한 "과장"된 것이 아닌, 원래보다 "축소"된 것을 제시해주셔야 합니다.

      * 백제가 산동반도에 진출한 기록은 없습니다. 증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일하게 논란이 되는 문제는 백제의 요서점령이론입니다. 그것도 장기간은 아닌 단기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산동반도는 없습니다.

      * KBS의 어떤 프로그램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역사스페셜이라면 정확하게 언제 방영된 것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를 보면 역사스페셜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서 비판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TV에 나왔다고 다 믿는 것은 심히 문제가 있는 행동입니다. 어디까지나 TV에 나온 내용을 분석하여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TV에 나왔다!" 라는 말은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TV에서 이런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이렇게 논증하였다"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7. 그래서 2011.08.30 11:07

    본인이 역사를 얼마나 알기에 잘못되었다 떠드는지 반성하시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서 살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나라 개로 말입니다.

  8. 당신이 역사학자라면 2011.08.30 11:13

    실증사학이라는 게 얼마나 웃긴 것인지 잘 알텐데요.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국사를 말아먹고 있다고 생각 안하나요?
    당신도 친일 사학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1인중 하나에 불과하군요.

  9. 역사가 2011.08.30 11:18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체계와 논리로만 설명된다는 자만은 어디서 부터 나오나요?
    역사라 부르지 말고 그냥 발굴학이라고 해야겠군요.
    경제학도가 마치 경제학적 효율만 부르짖어 경제가 탄생한 목적을 망각한체 인간을 자본의 덪으로 밀어 넣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역사 즉 지나간 과거사의 일을 제대로 규명할려면 문화 예술 언어 유물 인종 종교 심지어 천문학까지 실로 인간사와 관련된 엄청난정보를 아울러야 할텐데 만주를 비롯한 고토가 다 저들 중국땅으로 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료가 일제와 중국에 의해 왜곡 되어 있는 현실에서
    실증이라는 관점으로 얼마나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 지 본인 스스로 고찰 해보십시요.
    논리에 집착하는 게 아닌 진실에 접근하는 눈과 자세를 길러야 할 것입니다.

  10. 사랑 2011.08.30 11:19

    왜놈 총독이 한말 " 조선은 앞으로 백년동안은 일어서지 못한다! 왜냐, 역사를 모조리 없앴으니....조선인이 그들의 역사를 알게된다면 결단코 안된다"는 취지로 말한바 있지요. 한양에서 무려 일주일간 전국에서 빼앗아낸 역사서를 태워버리고 진본들은 모조리 일본으로 빼돌렸죠?ㅎㅎㅎ 우리의 고대사는 모조리 왜넘들 장롱안에서 숨쉬고 있으니...우리의 역사공부를 하려면 왜넘들 자료를 봐야하는게 어디 가당키나 한일인가? 헌데 쥐꼬리만한 왜넘들이 각색한 자료나부랭이 붙들고 역사가라고 큰소리치는 멍청한 학자님들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바.보지요.

  11. 딱 한마디만 하죠. 2011.08.30 11:27

    참 안타깝군요.
    한 개인의 정보의 오염을 떠나 이 나라 역사학계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네요.
    저 윗분이 한말이 딱 맞네요.
    중국과 일본의 개...

  12. 공부 2011.08.30 11:54

    이글을 작성하신 분은 공부가 부족하다는 말씀밖에 드릴것이 없네요. 세상의 모든 이론들을 다 알수는 없지만, 기존의 이론이 왜 생겨잇는지는 아셔야 할듯합니다.
    우리 역사서로 공부하시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중국의 역사서는 우리가 배운 내용과 다릅니다. 억지로 갖다붙인게 아니라 대륙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이미 신라까지도 대륙발생설이 있습니다. 알아보고 떠드셔요.

  13. 블로거 아님... 2011.08.30 13:02

    이곳에 올라온 글보다 댓글을 더 흥미롭게 보고 지나치기가 어려워 이렇게 몇자 남깁니다. 우선 저 또한 우리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 처음에 이 글을 읽을 때 거북한 감정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댓글들을 보고 글쓴 분의 댓글의 댓글을 읽으면서 한가지 느낀점이 있어 이렇게 남기고 갑니다.
    제 생각에 역사학자라는 이는 객관성과 주관성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우리것만을 생각하여 왜곡하는 사람들 또한 문제가 되지만 자신의 역사가 가지는 무궁한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면 그 또한 진정한 역사학자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쓴 분께서는 우리의 말을 쓰는 우리나라의 역사학을 공부하시는 분이신거 같습니다. 이러한 분께서 이곳에 댓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는 증거를 찾아와라. 그전에는 믿지 않겠다.'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시는 점이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역사학의 분야가 굉장히 넓어서 제가 알지 못하는 분야를 공부하시는 분일수도 있지만, 역사학자의 기본적인 사명은 과거를 우리에게 밝혀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자긍심있게 볼 수 있는 건 우리나라 역사학자만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글쓴 분께서는 지금의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잘못됬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누군가 밝히기 전까지 사실이라고만 믿지 마시고 본인 스스로 그 타당성을 연구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주제넘게 참견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만, 진정 우리나라의 역사학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조금이라도 맞서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런 쓸데없는 글을 올리기 이전에 좀 더 우리의 확실한 역사를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학자들이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리만 깨끗하자라고 주장하며 위에 제시된 모든 설을 부정하기보다는 그런 설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밝혀져 위와 같이 님의 주장대로 '어설픈' 지도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니까요.
    주장을 하시는 건 좋지만 보다 발전있는 삶을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참.. 저는 우연히 이곳에 들렸던 사람이라 이렇게 글 몇자 올리는 것으로 다음 방문을 기약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기분 나쁜 글이었다면 그저 삭제하시고 '뭐 이런 사람이 다있어.'라고 넘겨 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역사학의 발전을 기원하며 물러가겠습니다.

  14. 공부 2011.08.30 15:44

    걍..갈수가 없네...그럼요~퀴즈를 낼께요.인도남부에서나오는 우리말과 유사한 언어는 어떻게 해결하시렵니까? 요서와 요동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 한복판에서 고구려성이 그려진 벽화가 버젓이 나온다는 걸 아십니까?..비파형검이..싸움용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고조선때 박물관그림처럼 선사시대옷을입고 단군의 말을들었다고생각하세요? 부여는 어디에있었을까요?민족주의가뭐라고생각하나? 시오니즘을 아십니까?

  15. 계속 보다가 이해가 안되서 묻습니다 2011.08.30 16:21

    그래서 이 글쓴님이 말하고 있는게 도대체 뭡니까? 댓글을 읽었는대도 이해가 안되네요
    글쓴이님은 역사학을 얼마나 정통하게 배우셨기에 그렇게도 잘아십니까?
    그 시대에 살아본 사람처럼 말씀을 하시네요
    정작 자기는 중국역사자료는 찾아보지 않았다고 다른분들에게 가져오라고 하시면서
    뭔놈의 중국역사는 그리도 잘 아시는지 정말 신기하네요 ㅋㅋㅋ
    자기는 계속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서 역사적 근거를 대기는 커녕
    사람들말에 의미없는 말트집이나 잡으면서 자기합리화하는 모습이 영 보기않좋네요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전 근거와 논리로만 역사를 판단합니다. 애국이라던지 민족주의는 무시합니다. 근거와 논리입니다."

    이렇게 말씀했으면서도 증거와 논리를 대도 그것을 못믿겠다고 하시는꼴이 보기껄끄럽네요
    그냥 글쓴이 님은 관심받고 자기합리화에 바쁜인간입니다
    정 한국이 싫고 못믿으면 님 나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어서

  16. 사실관계를 떠나서 글의 어조가 2011.08.30 20:01

    사실관계를 떠나서 글의 어조가 우리역사에 대해 너무 자조적이네요
    백제의 대륙통치에 대해선 역사학계에서도 논란이 많기에 지적 안하고 넘어갑니다
    이제 글쓴님이 그토록 팩트 팩트 하시는 사실관계도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대개 한나라의 강역을 대표로 소개할때는 그 나라의 전성기 최대강역을 표시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면에서 광고에 고구려의 최대 강역으로 표시해도 무방합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 후연의 수도 용성을 함락시키고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일대까지 공격하여 후연을 압박했습니다
    평양부근의 덕흥리 고분에는 광개토태왕 시절 유주자사 진 이라는 직을 맡았던 신하의 무덤인입니다 그 무덤에는 자신의 아래에 있던 관리들 중에 어양태수 연군태수 상곡태수가 표기 되있습니다 어양 연군 상곡 이 어딥니까? 지금의 북경일대 지역입니다
    사대주의 역사학자들이 그토록 맹신하는 중국 측 역사서 진서에서도 고구려가 연군일대를 공격한것이 기록되있습니다
    또한 북경시에도 아직도 고려영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영이 무슨 말입니까 병영 영자 아닙니까?
    광개토 태왕시절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일대까지 진출한것은 이제 역사학계에서도 정설로 통하는 줄 아는데요?
    결과적으로 후연은 고구려와 잇단 전쟁의 패배로 내부분열하여 멸망합니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인 고운을 새로운 북연의 왕으로 즉위시키고 북연울 같은 민족의 나라로 여깁니다
    후연의 뒤를 이은 북연은 고구려의 우방이자 속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광고에 나왔던 고구려 강역은 결코 사실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로마의 전성기 시절 강역을 표기할때 로마와 속주만 표기합니까?
    로마의 패권아래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 않는 동맹국들도 사실상 속국을 취급하여
    로마의 강역으로 표기합니다
    광개토 태왕시절 거란을 비롯하여 북방유목 민족은 고구려의 패권아래 속국이나 다름없었고 고구려와 전쟁패배로 멸망한 후연의 뒤를 이은 북연도 고구려의 동맹국으로 고구려의 패권아래에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종합하면 이래도 위의 지도가 글쓴님에게 쓰레기라고 취급받아야할까요??
    물론 독도의 표기나 거란의 위치등 지적할부분도 있지만 광고를 냈던 분의 애국심으로 봐서 어느정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눈감아 줄수있다고 봅니다만??
    지금 중국의 대놓고 고구려 역사왜곡을 하는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민간인으로서 저렇게 제 3의 나라에 진실을 알리고 자는 하는 행동이 설사 지도가 사실에 틀리더라도 쓰.레.기라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글쓴님께서는 제 글을 읽고 한국인이라면 각성하기 바랍니다

    • 위의 글중 2011.08.30 20:13

      고구려가 북영의 제1대왕인 고운을 즉위시켰다는 내용은 수정합니다

  17. 뭐 다 그렇다치고... 2011.08.30 21:52

    현재 독도를 독도라고 적지 않는다면, 옛 명칭으로 적어야 한다는 건데... 우리 역사속에서 시대별 독도의 명칭을 익히자는 것도 아니고, 독도가 한국땅임을 적은 것까지 시비를 건다면, 도대체 이사람을 어떤 부류로 해석해야 하는지....
    재야사학자들이 하는 주장이 도대체 어디까지 맞느냐를 떠나, 저 그림의 고구려 영토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현재 독도라 불리는 섬의 과거의 명칭까지 들먹여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수가 없다...
    그럼 황해는 왜 시비를 안건건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재야사학, 민족사학자들의 주장이 모두 맞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실증실증하면서 실증은 내팽개처버린 매국노 이완용의 손자, 이병도의 제자들로 가득차있는 사대주의 사학계는 더 못믿겠으니, 역사학계가 빨리 자정작용으로 사대사학자들을 처내고 빨리 바른 역사논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난 역사학도가 아니라서, 누구만큼 역사를 논할 수는 없어겠지만,
    현재의 명칭 중 독도는 문제가 되고, 황해는 문제가 안되는 불일치와 일관적인지 못한 사고는 영 납득할 수가 없다~!

  18. 나야 2011.08.31 06:26

    글쓴놈 패배주의 사상에 사로잡힌 놈이네

  19. zzzz 2011.08.31 13:40

    너무 하다..
    동북공정에 몰매 맞아 눈을 뜨기 시작해 이리 안쓰럽게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고자함을 모르지않은 바일텐데 그런 식의 어조로 이를 질타한다면 누가 고구려를 우리의 역사라 하겟소?
    고구려는 고구려의 역사다.. 으음 배운게 좀 잇구만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라고 함은 우리와 비슷한 언어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민족을 일컫는데 역사적 사료의 조금의 그 부분이라도 이를 인정한다면 그것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이다. 이것을 부인하고 그대로 둔다면 중국에나 일본에나 빼앗길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외교와도 직결되기 때문이지.

  20. ㅇㅇ 2013.09.30 19:23

    중화중심주의인 중화사관에 세뇌당하면 안됩니다.

  21. 꿀돼지 2015.03.08 02:27

    병신새끼들이 조금만 민족주의 건드리면 지랄이네 ㅋㅋㅋㅋ 니들같은 애들은 죽었다 깨나도 과학이나 학문은 못해. 주관과 객관, 그리고 사실과 너네 희망을 구분을 못하니까. 애국심에 세뇌되가지고 ㅉㅉ 병신들아. 이 한반도에 명멸을 거쳐간 국가가 몇갠줄이나 아냐? 문화와 언어의 차이만 빼면 동양인 끼리는 사실 자신의 정체성 찾아 보기도 힘들다. 역사갖고 지랄하기는. 이 글쓴이는 딱 학문적으로 역사를 보는사람으로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진실을 파해치려고 하는 사람일 따름이다. 역사학라는건 정말 외부 압력도 많이 받고 너네같은 대다수 대가리 빈 꼴통들이 전세계 어느나라에나 퍼져있기때문에 공격의 대상이기도 하지. 그래서 나는 역사학이나 몇몇 의미없는 학문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었다. 너네같은 병신들이랑 토론도 성립이 안되고 대가리에 똥든새끼나 제대로 객관성을 유지한 학자든 결국 목소리 큰놈이나 말발 좋은놈, 힘센놈이 이기는거거든. 너네는 맨날 중국이나 일본 빼앗기고 어쩌고 개같은 소리나 지껄이니 객관적으로 역사를 연구할 학자가 될 자격조차 없는거다. 역사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할 생각이 가득하니 글쓴이가 곱게 보일리가 없지. 자기편 안든다고 ㅉㅉㅈ 에라이 영역싸움하는 원숭이새끼들.

    글고 글쓴이. 이런 병신들이랑 힘빠지게 대화를 시도해봐야 소용없어. 대양에 돌던진다고 티나 나겠냐? 그냥 하고싶은거 하고 이런새끼들은 무시하는게 최선이다. 역사는 뭐 제대로 안다고 뭐가 달라지는것도 아니고... 옛것에서 배운다? ㅋㅋㅋㅋ 그럴듯 한 개소리지. 그냥 될대로 흘러가는거다. 맘대로 미래를 조절할수 있으면 인간들이 왜 이렇게 지랄하면서 살고있겟냐?

야생의 사고을 구하는 방법의 역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인터넷에서의 검색원리를 야생의 사고의 역이라고 가정하면, 역에서 원래의 야생의 사고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인 예로 구글의 검색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서로간의 링크관계를 개념화 한 것이다. 그 외에 다양한 검색방법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검색법에 대해서 분석함으로 인하여 야생의 사고를 분석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레비는 야생의 사고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한 것이고, 지금의 용어로 하면, 인류 공통의 사유체계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읽으며 떠오른 잡상.


실제 연구 방법
1) 인터넷 검색 원리 수집
1. 구글
2. 네이버
3. 기타 등등

2) 검색 원리 간의 공통점 분석
3) 검색원리의 공통점을 통한 인간의 사유체계 구성
중국어와 한국어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6~70%의 한국어 어휘가 한자에서 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한국에서 쓰이는 한자를 기반으로 한 어휘들이 주로 고대 한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중국어에서 쓰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더 많은 어휘는 지금도 그대로 혹은 약간의 변화만을 거친 채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홍콩영화를

보 다 보면 한국어와 발음과 의미가 똑같은 어휘들이 자주 등장해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데요. 이는 북방유목민족의 남하와 관계가 있다고 하네요. 유목민족의 남하 전에 중원을 차지하고 한반도와 활발한 교역을 벌였던 한족 왕조에서 쓰이던 언어가 현재의 남쪽에서 통용되던 언어인 거죠. 허나 북방유목민족의 침입으로 중원을 상실하고 남쪽으로 밀려나면서 자연스레 한반도와의 직접적인 교류가 끊기고 그 후로 북방계통의 중국어가 표준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답니다. 그래서 고대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어는 현 남방계열의 중국어와 더 비슷한 점이 많게 된 거죠. ( 중국역사 전공하신 바로님이 확실하게 알려주시겠죠...ㅋㅋ  )

아직 하얀눈님이 글에서 맘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_
http://www.oh-bang.com/11?TSSESSION=3550d39959032ac9108c6dab3ed2d15b


적으라고 적고 있는 나도 문제이긴 하다.후....-_-
그런데 본인의 전공은 어디까지나 중국 고대사라는 말이다!!
이건 언어학적 문제인데!!! 잘 몰라! -_-!
그냥 여기 저기서 들을 이야기를 종합해 놓은거니까 알아서!!! -_-


일단 한글과 한국어의 언어체계는 기본적으로 알타이어족의 기본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이 한국어와 일본어가 알타이어족이 아니라고 부정하는데, 그 이유는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 속에서는 많은 "한자"요소가 포함되어있기 떄문이죠. 그래서 혹자는 알타이 어족에서 몽고계 언어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분류하지 않고, 독립적인 한국-일본어 계열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다음으로 북방 이민족의 유입과 한국과의 교역은 전.혀.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전부터 황해는 강력한 교역수단이 되었으며, 우리들에게 유명한 것은 신라방, 고려방, 표해록등을 참고로 할 수 있습니다. 더 궁금한 내용은 윤명철 교수님의 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황해를 환지중해로 설정하는 재미있는 책들이랍니다. 어찌 되었든, 한반도와 중국 남부는 지속적인 교류를 해 왔고, 현재 한국에 있는 화교들의 대부분이 중국 남부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남방계열이 한국어와 비슷하다기 보다는, 예전부터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활용해오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고대 한어의 단어들이 들어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언어를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데, 어법은 중국어와는 완벽하게 다른 알타이 어족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의 교류대상은 중국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방 민족들과도 빈번한 교류를 하여왔고, 고대 한국어와 현대 한국에서도 이런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아마 아직하얀눈님은 북방민족들은 낙후되고, 덜 떨어졌다는 생각으로 교류의 가능성을 조금 무시하지만, 사실상 북방 민족들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 유산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곳에 전해주었던 전달사의 역할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물론 그 방법이 가끔은 약탈과 침입이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문화 전파의 한 모습이죠) 이러한 예시로는 한국어에서 "강"이라고 말하는 단어를 예로 들 수 있겠군요. 강의 고대 한국어는 "가람"으로서(한가람 서점이 이것이죠^^ 한가람은 한강이라는 뜻이랍니다.), 표기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가람을 빨리 여러번 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강이나 가람이나-_-; 그게 그 발음입니다. 그리고 이 가람은 알타이어 계열에서 강을 의미하는 보편적인 발음으로 통용됩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어는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북방계열 언어체계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동안의 중국과의 교류로 인하여 많은 단어들이 흘러들어오게 되었고, 지금 현재의 한국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교류를 무시하고, 가장 순수한 한국어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이는데, 이는 분명한 오류입니다. 그것은 다양한 교류를 아예 무시하는 방식이기 떄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하나의 문화가 사멸되는 것이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긴 합니다만...이건-_ 별로 이야기 안해도 될 말이라서.....패스~

  1. Favicon of http://oh-bang.com BlogIcon 오방 2007.07.19 07:52

    북방유목민족이 낙후되고 덜 떨어졌다는 생각으로 교류의 가능성을 무시한게 아니라, 현 남방 중국어와의 비슷한 점을 설명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비교가능한 개념인 '북방'이라는 개념을 빌려쓴거죠. 본문중에 어폐가 있다면 남방과의 교류가 끊어졌다는 문구인데 이는 제 생각에도 잘못 서술한 것 같네요. 허나 고구려와 발해 역시 북방유목민족의 여러갈래가 연합하여 세운 국가라는 학설이 존재하는 가운데서 제가 굳이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을리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바로님께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 현재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화교들이 중국 남부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 나라의 화교들이 중국 남부, 즉 광동성과 복건성 출신이 많은데요, 광동과 복건성을 그 기원으로 하는 화교들은 전통적으로 상업과 무역에 강한 모습을 보여, 현재 세계적으로 유태세력권과 비교할 수 있다는 화교경제권은 대부분 이 지방 출신의 화교들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의 화교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합니다. 한국의 화교는 대부분 산동성 출신으로 조선 중기,말기부터 유입되었습니다. 상업보다는 농업을 위주로 하는 집단으로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화교들과는 뿌리가 다르죠. 1970년대 한국경제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화교들의 영향력을 감퇴시키고 부의 중앙집권화를 이룩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법으로 화교들의 경제생활과 무역을 제한하게 됩니다. 이에 견디지 못하고 많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는데, 이들 대부분은 현지의 차이나타운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코리안타운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합니다. 현지의 광동, 복건성의 화교들과 어울리지 못하는거죠.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제 의견은 고대한국어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당.시.에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판단되었던 한족왕조의 문화이고 언어이지, 그 이후에 중원을 지배한 북방유목민족의 영향력을 간과한 것은 아닙니다. 남송이후 한족왕조는 다시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남쪽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로인해 고대 한국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언어가 지금 중국 남부에 분포한다는 것이죠.

    쩝... 언어와 민족으로 들어가자면 복잡해져서 여기까지만~ 그리고 바로님 자세한 설명 매우 땡큐~~

    • Favicon of http://ddokbaro.com BlogIcon 바로(Baro) 2007.07.19 11:30

      고구려와 발해가 북방의 다양한 민족들이 연합했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는 정설입니다.(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려면 저처럼 북방의 다양한 민족이라고 해야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요동반도내에서는 유목이 아닌 수렵+농경이 복합된 경제 체계가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유목이라는 경제 체계를 채택한 요동쪽 국가는 전무합니다.)

      산동성도 많지만, 그 외에도 닝뽀(영포 宁波)을 중심으로하는 남방계도 많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상업을 위주로 하는 집단이라고 가정하는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산동과 닝뽀지역은 둘다 무역이 발달했던 곳이지 농업이 발달한 곳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방님이 적으신 글에도 명시되어있지만, 한국에서 박정희의 퇴치 정책 이전의 화교들은 분명히 대다수가 상업에 종사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의 기본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고, 고대 한어의 단어들을 가지고 오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 비교적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대 한어에서는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 몽고가 새운 원나라 시기의 한어입니다. 몽고는 당시 한반도의 고려 왕조 역시 그 아래에 두고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언어적 교류가 그 어떤 때보다 활발하였고, 그 당시 전해진 많은 고대 한어(더 정확히는 몽고화된 고대한어)가 있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 성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노기대에 대한 연구를 참고)

      그러므로 고대 한국어의 형성은 알타이 어족의 뼈대에 중국 대륙의 한나라 고대 한어와 원나라를 비롯한 북방민족의 중국 대륙내 국가등에서 전해진 고대 한어 어휘가 합쳐졌다고 할 수 있겠죠.그러므로 단순히 남방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조금은 친중화주의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답니다. -0-


      라고 하지만-_- 대체 왜 존대말을 써가면서 이 장문의 글을 써야되는 건지...아..내 전공은 어디까지나 역사인데..ㅠㅠ

  2. qp 2009.10.23 23:01

    음,,, 몇가지 지적드릴 점이 있는데요.
    현재 한국어 계통은 미정이고, <고립된 언어>로 분류합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알타이어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건 한자요소가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타이어족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까지 가설상의 어족분류이고, 한국어가 거기끼냐 아니냐를 확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어계통을 따질 때는 식별가능한 차용어는 모두 빼고 <고유어>만을 놓고 따지기 때문에 한자요소가 많아서 알타이어족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도 잘못알고 계신 것입니다. 게다가 그 고유어 가운데서도 특히 "기초어휘"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또, 그 기초어휘가 규칙적으로 대응하여야 비로소 같은 계통의 언어라고 "인정"됩니다.
    영어랑 독일어가 같은 어족 언어인 것은 Father-Vater Man-Mann one-ein같은 친족어,
    수사같은 기초어휘가 규칙적으로 대응하므로 성립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는 아무리 많아도 한국어 계통문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어 기초어휘는 중국어는 물론 다른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들과도 다르고, 문법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어랑도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하나 둘 셋같은 수사, 목,눈,귀,팔,다리 같은 신체어휘, 사내,계집,아버지,어머니,아우같은
    친족어휘등등이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립된 언어>라고 합니다.
    실제로 막연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몽골어,만주어,터키어같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언어들을 공부하시면 문법구조는 영어나 중국어보다 훨씬 친숙하지만, 기본 단어는 거의 닮은 구석이 없다는데 놀라시게 될 겁니다. 또, 한국어는 고대어를 적은 문헌이 부족하고 얼마 안되는 문헌에 남은 단어들은 음을 복원해내기 힘든 한자로 적혀 있는데다 고대 한반도에 여러 이질적인 집단이 있어서 이들이 뒤섞였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어 계통을 확정하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중국어 영향은 빌려온 말이 많고 그것들이 들어온 시기의 발음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중국 남방의 한자음이 우리나라 한자음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중심지보다 주변부의 언어변화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사투리에 중세국어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한자음은 당조 북방음이 기초를 이룹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중국어 영향을 받은 베트남의 한자음은 漢대 한자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江과 가람의 예시를 들어주셨는데, 한국어에서 river의 개념에 해당하는 가장 오래된 말-고유어는 "내"입니다. 고대발음은 na에 가까웠구요. 지금은 들어온 말 江때문에 의미가 줄어들어 작은 물줄기를 뜻하는 말이 되었고 심지어 한자어 川한테까지 밀렸으나 江이나 川이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뭍에 흐르는 물줄기란 개념을 두루 가르켰습니다.
    가람이 알타이어 계열에서 강을 가리키는 보편발음으로 통용된다 하셨으나, 강을 나타내는 말은 일본어 かわ(kawa)/ 몽골어 Гол(gol) 터키어 nehir 만주어 ula이니 모두 따로따로 입니다. 알타이어족설은 그래서 성립하는지 자체가 여러모로 논란거리이며, 일본어와 한국어는 보통 여기에 넣지 않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23 23:51 신고

      저도 처음 부분에 한국어계통을 다르게 분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현재 한국에서 주류로 주장되는 알타이어족설을 이야기하는 것이 간략한 대답이 되기에 그리 말을 한 것입니다. (해당 글이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한 대답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친족어휘의 경우 말씀하신대로 다른 부분도 있으나 같은 부분도 존재하며 저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몽골어, 터키어를 공부했으며, 기본 단어부분에서는 이질감을 느낀 부분이 있으나, 어법계열에서는 매우 유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기본단어를 현대어의 기본단어를 기본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북방민족의 다양한 융합과 이주를 생각하면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어디까지나 고음부분을 파고들어서 이야기를 하여야 합니다. 소위 기초어휘라고 불리는 부분도 북방민족에서는 너무나 이상하게도 타언어에서 유입되어서 쉽게 대치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하다 못해서 현재는 같은 어족으로 보는 한어-티벳어에서도 기초어휘에서 서로 같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어법만으로 친족어를 구성하는 것은 현재의 언어학적 주류에서는 합당한 증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어-티벳어의 경우도 기초어휘외의 다양한 어법부분과 동일성을 가지는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도 어법으로서의 유사하라고 말을 하고 있고, 어법이 이상하게도 너무 유사한 것은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님이 말씀대로 한국어를 알타이어족계통으로 확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친족어라는 가정하에 기초 어휘 이외의 다양한 비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저는 그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특히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영향을 한반도가 강력하게 받았다고 놓고 본다면, 저로서는 해당 국가가 북방계열의 민족이라고 보고 있기에, 일정한 영향을 받은 것은 정상이라고 봅니다.)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님의 말씀도 하나의 학설일 뿐이며, 현재까지 어떠한 정론도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자료자체가 없다보니 이것이 더 확실한 학문적인 분석이라고 봅니다.그런 의미에서 중국 한자발음의 영향을 반박하기 위해서 일부러 강력하게 반대예시를 제시하며 알타이어족이라고 확정지어버린듯 이야기한 저도 문제이지만, 님처럼 아예 알타이어족에 넣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아직 어디로도 확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확실한 답이라고 봅니다. 단지 각자가 더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하는 것을 믿을 뿐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한자음의 중국영향에 대한 문제는 님과 저의 생각이 동일하며, 본문에서도 이야기를 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굳이 쓰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다만 님과 제가 한국의 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이 좀 다른 것들이 있군요. 이 부분은 서로 믿는 학설의 차이라고 봅니다. (저는 당조가 아닌 원나라시기의 북방한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제가 지금 다른 곳에 있어서 다시 찾아볼 수는 없지만, "강"의 경우 현대음이 아닌 고음이 서로 통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다시 찾아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해당 글은 2007년에 작성된 글이며, 그 이후로 이미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해당글은 과거의 저를 대표하며 현재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이젠 아시겠지만..전 고대사전공입니다. 전공상의 특수성으로 언어학을 접하고 공부하고도 있는 상황이지만, 어쩌고 저쩌고 해도 전문적으로 언어학을 공부하는 분들보다는 모르는 것이 당연히 많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다만 님의 견해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학계의 내용을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을 제가 아는 부분도 있는데, 님은 님의 견해만을 이야기하시는듯한 느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혹시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꾸벅--

역사과 3학년 이상 선택 필수

출석 필수!

레포트 1개 :중화민국이전 시기에 대한 자유 주제 레포트

기말 오픈북 : 난이도 낮음 (논술문제 3문제 중 2문제 선택)

  1. 중화민국시기의 대일외교
  2.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의 3차례 수교 열풍
  3.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의 미국과 소련관계 변화

主要

颜声毅《代中外交》旦大出版社:按主题来

《中国当代外交史(1949-2001)》中国青年出版社 :按

위의 두 책이면 끝! 특히 당대 중국외교는 사건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어서 특히 유용!

주요 사건 정리:

1949- 1955

抗美援朝

会议 – 印度支那停战协议

和平共

会议

1965-1972 "反帝比反修"和反对两

支持越老柬三人民的抗美救国战争

莫斯科"三月会议"

"珍宝岛事件"

文化大革命 –

尼克松访华 《上海公

1972-1979 三世界的分和美反

越南行自卫还击

正式止"中同盟"

1979-1989 都不盟的政策

售台武器事件

中美"八·一七公"

勃列日涅夫的塔什干讲话

戈尔巴夫的海讲话

戈尔巴访华

"中导条约"

"一国两制"

钓鱼岛问题

南沙群岛争

만든 이유는? -_-

글세다. 인터넷 되는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짜증나서!

이 넘의 몽고사 완전 짜증~!! 대체 몽고의 형성까지 100년 사이에 큰 전쟁만 몇 개냐!!

머-_- 처음부터 만만히 보았던 중국근현대외교사. 정말 딸랑 30분의 독서와 정리로 끝!

유목사회의 구조 - 서울대학교동양학강의총서 10
하자노프 (지은이) / 김호동 (옮긴이) / 지식 산업사

출간일 : 1990-03-01 | ISBN : 8942329446
양장본 | 484쪽 | 210*148mm (A5)
정   가 : 15,000원


1. 서론:유목, 그 신화의 문제점
2. 식량생산 경제의 독특한 형태로서의 유목
3. 유목의 기원
4. 유목민과 외부세계와의 관계의 사회적 전제조건들
5. 외부세계에 대한 유목민의 적응양식
6. 유목민과 국가
7. 외부세계와 유목민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인류학자가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연구방법을 빌려서 만든 인류학책이다. 많은 부분에서 사료의 인용과 적용의 흔적이 보이지만 그 기본적인 개념은 인류학에 기인하였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역대 유목에 대한 저작들을 망라하고 그 주요 논점들을 설명 비교 해 주어서 유목에 대한 입문서로는 최고라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에반스 프릿차드가 말했다 싶이. "결국 인류학은 역사학이 되느냐 아니면 무가 되느냐는 선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명언이 새삼 생각이 난다. 인류학은 종합적인 학문이라고 스스로 자랑하지만 그 속에는 중심이 되는 연구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숨겨져 있다. 현지 조사라는 것 자체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그럼 역사학자는 현지 조사를 아예 안한다는 말인가?!

또한 역사학-인류학-민속학-사회학은 각기 너무나 중첩되는 부분들이 많다. 그 뿌리가 과거에 대한 분석를 통한 미래 제시라는 점이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는 듯하다. 이미 이 학문은 서로간의 연구 대상, 연구 방법, 연구 목표등에서 매우 유사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간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서로 모두 흡수하였다. 이제 앞으로 이 학문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스스로의 자리를 찾을 것인가는......나와는 상관없다. ㅋㅋㅋ -_-;;

그리고 이 책의 번역자인 김호동씨는 머랄까...한국 중앙아시아학에서 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나 유목사회에 대한 책을 구하고 싶다면 다 필요 없이 김호동이라고만 검색을 하여도 양질의 책들이 있다. 대단한 분+_+;;





책에 밑줄긋기

  1. 객진 2011.09.30 17:13

    저도 존경하는 분입니다>.< 저도 이 번역서 가지고 있는데
    읽다보면 졸린다는 것 말고는 내용 완전좋음!!!
    이 분은 중앙아시아보다는 몽골사에 치중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ㅋㅋㅋㅋ 처음에는 중앙아시아 개론이나 르네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책 등으로
    출판하셨는데 요즘은 모두 몽골책...라시드 웃 딘의 집사책 번역하시고등등등
    아! 전 서울대생 아닙니당ㅠ.ㅠ
    위대하신(?)더러운(응?)민족주의 윤내현의 고장 단국대 사학과 2학년입니다
    물론 윤님은 은퇴한지 오래돠었지만요....(이 분 때문에 정말...한국사가 망했습니다. 우리학교가 짜응나기 까지....지금도 민족주의가 잔존해 있지요ㅜ.ㅜ)

과거는 낯선 나라다.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1985)

데이비드 로웬덜 지음
김종원, 한명숙 옮김 
개마고원

출간일 : 2006-06-20 | ISBN : 8957690441
양장본 | 877쪽 | 223*152mm (A5신)

정   가 : 38,000원





역사는 더이상 진실이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해석일 뿐이다.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면 공부 할수록 마치 "오언절구"와 같이 일정한 규격속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는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해 질 수도 없다. 마치 지금의 우리 현재도 완전히 구현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로웬덜은 완벽한 역사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런것은 환상이며 오만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되도록 완벽한 역사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제시한다. 신이 죽고, 더이상 절대적인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시대에 영원히 닿지 않을 지평선을 향해서 나아가나는 것이 옮은 것일까?

또한 일반인이 역사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역사에 대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인 존재가치를 너무나 귀중하게 생각하는 로웬덜 자신도 말했던 역사학의 치명적인 단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야 된다는 말인가? 역사가 역사 이상의 것이 되었을 때, 민중을 선동하는 도구가 될 뿐인데 말이다.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서 접근을 금지하고 있는 듯한 책. 그러나 역사학도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우리의 애국적인 국민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환단고기를 즐겨 보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으나, 역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이론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다시 한번 환단고기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진실이라는것은 있긴 있는건가?




책에 밑줄 긋기

이 글은 칼리안님의 어째서 사학史學이 사회과학이 아닌 문과대학 소속이지? 라는 글을 읽고 답글을 달다가 너무 길어져서 트랙백으로 대신합니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전 지금 중국땅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선후가 반대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역사학이 사회학의 닮은 꼴이기 보다는 사회학이 역사학의 닮은 꼴이라고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론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사철
이른바 "문사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각 문학, 사학, 철학을 나타내며, 위의 3가지 학문의 문과의 기본이며 기초라는 것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며, 언어자체가 없으면 어떠한 학문도 존재할 수 없음으로 기초중에 기초이겠군요. 어떠한 학문도 발전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경과가 되죠. 그럼 시간의 경과와 함께, 현재가 과거가 되며, 모든 과거는 역사학의 대상입니다. 역사학이 없으면 학문은 발생한 상태로 고정이 되겠지요. 그리고 모든 인간들의 생각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우리는 철학이 없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으면 단지 생존을 할 뿐,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역사학이 문과에 있는 이유도 위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문과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응용문과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범주에 넣는 다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입니다. 다시 말해서 분류체계가 어지러워집니다.

님이 제시하신 국어국문학이나 중어중문학과 같이 말씀하시면 마치 역사와 국어 국문학이 따로 놀고 있는 듯 하지만, 한국어를 연구해야 한국 근대사를 알 수 있고, 중어중문학을 해야 중국 역사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 역사를 알아야 중어중문학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또 철학이 여기에 추가됩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회학이 없어도 중어중문학을 연구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사회학에서 방법론을 빌려올 수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2. 사회학은 없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사회학-인류학-민속학-문화지리학등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대체 역사학과 위의 사회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간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과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 같은 고민들 대충 2년넘게 했군요. 그러던 중 폴벤느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동안 고민하던 많은 문제가 풀려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사회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1. 사회학에는 대상이 없다.
모든 과학은 대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회학의 대상은 무엇인가요? 사회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나 역사의 한 단면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나름대로의 특수한 설명을 요구하는 무수한 사건들이 존재하는데 그 요소들의 집합의 설명을 과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표면 위에서 임의의 지역내에 매순간 일어나는 모든 장르의 엄청나게 많은 물리-화학적 사실들의 총체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2. 사회학은 여러 학문의 집대성?! 혹은 쓰래기 처리장...
사회학에서는 온갖 학문을 이용합니다. 경제, 역사, 문학, 심리학등등.. 그 방법론의 확장에는 한표를 던져주고 싶지만, 사회학만의 연구 방법은 무엇인가요? 이런 온갖 학문의 방법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말장난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은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이 정도로 하죠. 괜히 사회학과 친구한테 뭇매를 맞겠습니다.-0-;;



3. 중국에서는 역사학은 사회과학입니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역사학을 사회과학이라고 말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공산주의이고,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를 사회학에서는 사회학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마르크스는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등등.. 수많은 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또한 마르크스는 역사학에 대해서 그 당시 과학적인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했으며, 그 영향으로 지금 중국에서는 역사학이 사회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문과계열로 포함되어있습니다.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일뿐, 기본 속성은 문과계열로 만들어 놓았죠.



결론적으로 역사학은 문과계열임이 너무나 당연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문과계열이니, 응용문과라느니, 사회과학이라니, 그런 구분자체가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때문에 이런 구분이 생겼을 뿐. 그것에 얾매이는 것은 별로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1. Favicon of http://kallian.egloos.com BlogIcon kallian 2005.06.13 03:25

    이제서야 봤습니다. 설마 트랙백이 걸리리라곤 생각을 못해서(…;) 응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orz
    그나저나, 지금 레포트에 치여서 제정신이 아니라(;) 독해가 제대로 안 되는군요… 일단 하던 일부터 끝내놓고 나서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머엉)

    음, 다만- '문과니 사회과학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시스템 때문에 생긴 것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더더욱 사학과는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글의) 댓글에서도 말했지만, 사학과는 문과대학 소속인 것보다 사회과학대학 소속인 편이 서로간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 같으니… 대학은 최우선적으로 학문의 장이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과의 분류체계가 다소 혼란스럽다 해도 뭐 어떻겠습니까.
    …글 제목을 보면 이해하시겠지만, 저는 사학'과'가 사회과학'대학' 소속인 편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지, '사학이란 학문'이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2.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5.06.13 04:23

    kallian // 레포트때문에 바쁜신듯 하니 나중에 천천히 보십시오. ^^

    그리고 사학"과"가 사회과학"대학"소속이 되는 편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말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똑같은 표현으로 수학"과"가 응용과학"대학"에 소속되야합니다. 무엇인가 모순이 있군요. 수학이 응용과학의 기본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속성자체는 순수과학쪽에 속해 있습니다. 똑같은 말로 사학과는 그 속성상 순수인문계열이며, 그것을 무시하고 사회과학과로 간다는 것은 기본을 무시한 행위가 된다는 것이라고 할까요? 물론 응용학문과 같이 공부하면 시너지 효과는 있겠지만, 없어지는 것은 없을까요? 정체성의 문제가 재미있어지겠죠.

    또한 사회과학소속이 되여야되는 이유가 단지 서로간의 시너지 효과라면, 그부분은 서로간의 교차연구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어디 소속이라는 것은 이 점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본과 기초.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 무시되는 부분입니다. 수학이 없으면 모든 과학이 성립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가 없으면 모든 인문학은 성립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문학의 기초인 역사는 인문학은 또다른 2개의 기둥인, 문학과와 철학과와 같이 있는 편이 더욱 훌륭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를 튼튼히 해야 응용도 있는것이 아닐까요?

  3. Favicon of http://kallian.egloos.com BlogIcon kallian 2005.06.14 17:50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곤란하게도 '기초'가 무엇인지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고,) 한 가지만.
    교차'연구'등을 실행하고 거기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교수로, 일반 학생들은 교양과목으로 신청하거나 개인적으로 연구회를 결성하는 등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수단이 아니면 상대방의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영 없지요. '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랄까… 결국 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사회과학대 학생은 졸업하고 나서도 고등학교에서 배운 수준의 역사적 지식밖에 가질 수 없게 되지요. 정치인과 언론인이 사회과학대학에서 많이 나오는 - 애초에 과부터가 사회과학대 소속이니 -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곤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학과와 사회계열 간에 학생이 주가 될 수 있는 공식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어 달라고 대학에 건의라도 해야 할까요?(콜록)

  4.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5.06.15 04:41

    kallian // 반대로 생각하는것은 어떻겠습니까? 사실상 역사라던지 사회학이라던지 대학시절에 공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이며 대충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학문?!이라는 것은 석박사시절부터 시작해서 교수를 거쳐 죽을때까지 하는 것이죠. 앞으로 계속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학시절부터 교양으로 공부하고는 합니다.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수단을 통해서 말이죠.

    역사지상주의쪽으로 살짝 말하자면, 사회학부 뿐만 아니라 물리나 화학과 같은 이공계에서도 역사 수업은 중요하죠. 역사를 재미있게 해서 공부?! 라기 보다는 스스로 즐거이 느.끼.게. 해야된다고 생각되는군요.

    결론은 어차피 할넘은 알아서 한다가 되는군요. 이런-_;;

  5. Favicon of http://madelf.zice.net BlogIcon 미친엘프 2005.07.04 02:23

    간만에 들렀습니다.
    오래전에 게시된 글이지만 감히 글 답니다.
    문사철이 왜 한 패키지가 되어 있을까요. 이 세 녀석은 뗄레야 뗄 수 없거든요.
    우선 돈이 안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과대도 공무원 팔 생각부터 하긴 하지만.)
    문사철은 각각 지향점이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철학이 들어가 있습니다.
    (근래에 어문학에 어학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어문학의 근본은 언어와 문학에 관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 사는 문제에 있어 눈꼽만치도 철학 없는 것은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편향되지 않은 철학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이 셋입니다(바로 님 말씀대로 기초니까요.).
    사회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님께서 잘 이야기 하셨군요.

  6.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5.07.04 12:45

    미친엘프 // 흐음...뭐...고대에는 서방에서든 동방에서든.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수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시인이자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사람들이죠. 지금은 그것이 분업화되고 다시 세분화 되고 있지만 말이죠.^^

2003-2004学年第二学期《世界中古史》期末考试
考试形式:闭卷 命题人:黄春高
姓名: 学号: 班级:

一 名词解释(任选5,每个6分,共计30分)

赎罪券 《神曲》 贞德 蒂玛尔 《大宪章》
什叶派 黑死病


二 简答题(任选2,每题10分,共计20分)

1、简述罗斯国家的形成
2、简述日本幕府政治的形成
3、简述中古西欧大学的基本特征


三 论述题(任选2,每题25分,共计50分)

1、试论述西农奴制度。
2、试论述宗教改革对西欧各国政治的影响。
3、试论述阿拉伯帝国的解体。


세계중고사 기말고사시험문제였습니다. 예상한것이 나와서 행복하게 풀었던?! 기억이 있군요^^::
《世界中古史》期中考试试卷

姓名 学号 分数


一 名词解释(30分)

毁坏圣像运动 《末日审判书》
查理曼《古兰经》大化革新

二 简答题(20分)
1、封君封臣制度对西欧社会的影响
2、主教任职权之争

三 论述题(50分)
1、试论述中世纪早期日耳曼诸王国的基督教教化。
2、试论述法国卡佩王朝王权的发展。


조금 많이 어이없는 문제가 나왔던 중간고사였습니다. 어이없던 이유는 예상했던 문제가 하나도 안 나왔다는 것이죠. 그나마 이슬람과 기독교관련문제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거지같은 성적이었을듯...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cdhage BlogIcon cdhage 2004.12.11 13:57

    암울했던 시험이었져...후....

  2.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2.11 14:28

    아-0-;; 넌 더 암울했었구나;;; 미안...

2003~2004学年第二学期历史学系“中国古代史(下)”期末试卷

命题人:邓小南 张帆 分数(满分60分):
姓名: 学号:


一 名词解(任选6题,每题5分):
1.大索貌阅 2.律令格式 3.四时捺钵 4.濂洛关闽
5.诸色户计6.皇明祖训7.松山之战8.经营地主

二、问答题(每题15分):
1、请简要说明唐宋时期社会经济的发展有哪些主要表现。
2、试比较元朝和清朝民族政策的异同。


과락을 각오하고 시험에 임하였는데 예상외로 쉬워서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건 아니지만) 행복했던 기말고사였습니다.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cdhage BlogIcon cdhage 2004.12.08 00:56

    1.명사해석(암거나 6개 잡고 쓰시오. 최고점수는 개당 5점주리다)
    1번부터 8번은 적혀있는그대로~~~명사

    2.물음에 답하시오(개당 15점만점이오)
    1.당나라와 송나라 사회경제의 발전과정 중 나타난 특징을 간략하게 쓰시오(말이 간략하게지..중국애들 무지 많이 씀)
    2.원나라 청나라 민족정책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분석하시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cdhage BlogIcon cdhage 2004.12.08 00:57

    아그리고 하나더...번역은 내가 했으니...
    유사답안은 엉아가...부탁드려요~~~

  3.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2.08 03:53

    뭐하냐? 내가 번역 안했으면 처음부터 번역할 생각이 없는게 아닐까? -_-;;;
    이건 정말로 관련전공자들이나 상관할 거니까 번역할 가치도 필요도 없음-_-;;;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cdhage BlogIcon cdhage 2004.12.10 15:09

    울과 후배들을 위해 힘좀 씁시다...
    내가 문제 해석을 하고
    형이 답안 해석을 하고

    공평하게 나눠서 하자는거져 ㅎㅎㅎ

사학개론이라는 과목의 유명한 싸이코선생님이 이상야리꾸리한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주제도 자유. 쓰는 방법도 자유. 그렇다고 레포트도 아니고, 숙제 마감 기간까지 매 번 말이 변하는지라, 중국애들도 과연 이것을 어찌 해야되냐고 서로 물어보게 만들어 버리는 숙제입니다.

한루님이 낙랑에 대해서 자료를 찾으시길래, 저도 어차피 주제는 잡아야되니까 일단 도서관 가서 쓸어모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수업은 저녁 9시까지 있었는지라 지금 피곤해서 쓰러지고 싶군요.

일단 마주잡이로 관련 자료 다 복사해서 뭉그러진 낙랑관련 논문들만 올리겠습니다. 낙랑만을 연구한 연구논문은 거의 없군요. 그냥 낙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논문을 일단 다 끌어모아버렸습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정리해야겠군요.(정말 쓰러질 것 같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쉬지 않는 삽질...ㅠㅠ)






마음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이 어차피 자유주제라고 했겠다!!
그냥 막가파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였던가? 그것을 주제로 만들어 버릴까 생각중입니다. 뭐... 중국에서는 이런 이야기자체가 없으니까 이런 설화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도 있을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일단 자자...ㅠㅠ

일어나서 다시 목록을 보니까...아무거나 마구잡이로 긁어오면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 친다.ㅠㅠ

그나마 건질만한 건 이정도인가.ㅠㅠ
  1. Favicon of http://parhae.info BlogIcon 은신초 2004.10.13 01:01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설화도 없는 것들이 왜 지들 역사라고 주장한댑니까. 중국 실망 (글 내용와 전혀 연관성 없는 코멘트)

  2.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13 07:39

    낙랑군의 위치가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일단 중국쪽 사료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와 같은 설화가 있다는것은, 낙랑이라는 지방의 문화가 점차 한반도의 문화와 융합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뭐...일단 레포트부터 해야겠군요. 일단 논문자료 정리부터 해야겠습니다.ㅠㅠ

이우혁씨의 소설을 즐겨보았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들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우혁씨의 글 중에서 간과하고 있는 몇가지를 적어볼까 합니다. 글의 내용을 일단 읽고 제 글을 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중국은 어떻게 생겨먹었는가.. 퇴마록저자 씀







우선 고국가 개념인데, 간단히 말해 중국의 사관은 한마디로 유래가 없는 엉터리입니다. '현재의 중국 땅에 있었던 나라는 전부 중국이다' 가 그들의 개념입니다.그들의 근거인즉슨, '중국은 다수 민족이 섞여 혼화된 나라다. 그러므로 고대부터 어떤 부족이 어느땅에 살아왔다고 해도, 현재는 우리 중국에 섞여 있다. 그러므로 그곳에 전에 살던 사람도 중국인이라 볼 수 있고, 그 나라는 중국의 복속국이었다 볼 수 있다' 입니다.


이우혁님은 이 관념에 대해서 말도 안되는 비논리적 엉터리일뿐이다라고 일축하셨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단정을 지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만약 이것을 일방적으로 허황된 개념이라고 말하였다면, 현재 한국이 주장하고 있는, "현재 한국민족을 형성케 한 성분들은 모두 한국사의 주체이며 그들이 활동한 공간은 모두 한국사의 무대, 즉 한국"이라는 개념도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개념은 다민족국가론이라는 개념으로서 그것을 인정해주어야합니다. 논리가 아닌 가설이 논리적이다 비논리적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만큼 바보짓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역사론의 한국도 똑같은 이유로 비판받아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논리가 그렇다면 한국의 논리는 "한국은 단일 민족이다. 그러므로 고대부터 어떤 땅에서 어떤 문화를 배경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현재의 우리 한국에 섞여있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인을 이루는 모든 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한국사이다." 이것은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지금 한국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식의 주장입니다. 일단 한국이 단일민족이라는 가설부터가 논리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이 지금 한국인과 같은 공동체성격을 갖기 전의 역사까지 한국사로 가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고구려를 우리 민족사로 볼 수는 없다'라는 소리나 해대는 인간들을 교수라고 키우고, 그런 사람들이 목에 힘주고 다니는 세상입니다.


그런 교수라는 사람은 김한규교수님인거 같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이우혁씨가 김한규교수님의 논문이나 책을 정말 읽어보았나라는 것입니다. 김한규교수님이 주장하는 것을 신문기사에서 저렇게 왜곡한 것을 가지고 그 모든 논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입니다.

김한규교수님의 주요논지를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교수님은 요동지방을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독립시키는 가설아래에서 모든 논지를 설파합니다. 요동 지방이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독립한다는 의미는 "고구려가 우리 민족사로 볼 수 없다"라는 가설과 동시에 "고구려는 또 중국사도 아니다."입니다. 고구려는 다만 "요동사"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에 대한 논증을 제시합니다만, 그 부분은 직접 보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김한규교수님의 <한중관계사 1,2> 대우학술총서와 <요동사> 문학과 지성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한규교수님의 주장은, 본인도 인정했다싶이, 민족사학이 날립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무시당하고, 국립사학이 날뛰는 중국에서도 소외받는 어찌 보면 불우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전 이 책을 보면서 그 논리에서 상당한 공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반박을 당해야지, 단지 민족감정으로 인하여 박해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학자로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을 뿐입니다.
요동을 별개의 역사공동체로 보고 한중관계사를 한국이라는 역사공동체와 중국이라는 역사공동체가 요동이라는 제3의 역사공동체를 환절로 하여 서로 교섭하고 관계한 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한중관계사를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서술하기 위해 필자 나름의 시각과 관점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러한 시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과 중국학계의 많은 지식인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1994년 가을에 중국 상해에 체류하고 있던 중에, 중화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로부터 해남도에서 열리는 중국학국제학술회의에 발표자로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논문 한편의 발표를 준비하였다가, 회의참석 직전에 갑자기 해남도행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사전에 우송받은 발표 요약문을 검토한 주최측이 발표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그 떄 주최측이 밝힌 요청의 이유는 <그 논문이 회의장에서 발표되면 한중우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김한규교수님의 <한중관계사>의 머리말중...



학문적인 양심이나 그 기법을 적용하면 공염불만 하다가 결론을 못보게 만드는, 애초부터 조작된 논리적 함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막기 위해서는 (제잘난 맛에 사시는) 사학자 들의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이라 봅니다. 다행히 많은 움직임이 있는데, 이런 것을 크게 성토하고, 민중의 힘으로 대처하여 국가적 대처를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보입니다.


저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사학자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힘으로 대처하며 국가적으로 대응해야된다는 것에서는 찬성을 하지만, 이우혁님은 제 잘난 맛에 사는 사학자의 학문적 양심을 무시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학자에게 학문적 양심이 없다면, 지금 여러분이 욕하고 계시는 동북공정에 참가한 중국측 학자들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몇몇 학자들이 학문적 양심을 버린다고, 한국의 학자들이 학문적 양심을 버리고 정치를 위하여 진실을 왜곡해야 되는 것입니까?

학자가 학자이고,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놈의 학문적 양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현실적으로 당장 밥줄이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말해야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학자이고, 학문이 학문인 이유입니다.

물론 위에서도 말했지만, 국민적인 지지가 없다면, 상대의 정치적 역사공세인 동북공정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해야될 일은 무엇일까요? 다른 것이 아니라 역사를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이우혁님은 "순위권 놀이나 리플 놀이, 게임 들어가 사람죽이는 데에나 재미들리는 사이버 유*철같은 짓 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세상도 볼 겸,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눕시다."라고 하셨지만, 그 정보를 나누기 전에 본인이 어느정도 기본이 되어있어야합니다. 여러분들 매번 고구려이야기가 나오면 화를 내시고, 짱깨짱꺠 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그런 여러분들은 고구려에 관한 논문 단!한편이라도 읽어보셨나요? 전 중국에 있어서 동북공정에 관심이 많고, 중국인들에게 직접 몸으로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번 화를 내더군요. 그런데 그들이 중국인과 하는 이야기의 한계는 뉴스보도에서 나오는 정도입니다. 사료적 이야기나 논증적 논리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니 단지 감정적이 될 뿐이죠.

알아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이라면 괜히 거부감이 드시나요? 사실 논문이라는 것이야 말로 제일 읽기가 쉽습니다. 읽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잘 못 쓴 논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도 보통은 10p정도 밖에 안 합니다. 일단 공부하는것이 어떨까요?


바로의 중얼중얼
이 외에도 저 글에서 몇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이미 너무 길어져서 더 길어졌다가는 돌 날라올거 같습니다.^^::

논문을 따로 구하기 힘드시다면, 제 블로그 왼쪽에 메뉴를 보시면 역사비웃기라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시면 중국과 한국 논문이 있는데, 한국논문을 읽어보시는게 좋을거 같습니다.(중국논문은 그 요점만 제가 번역해 놓아서 본문의 논증부분은 중국어를 모르면 보시기가 애매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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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dhage 2004.10.06 14:43

    내 돌을 피하다니...역시 중국애들과 축구할때 오버래핑시도시때마다 고의적인 반칙을 하는 스피드군(형 스스로 말한거요..)
    그냥 난 중국의 태도를 말하는거져...터무니 없는 것을 믿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죠...내가 말한것은 현재 일반적인 정도를 말하는 거져..교과서에도 그렇고 아무리 저런 사람들이 날뛰어도 아직까지는 소수라는거져...(여기서 철학적으로 나가면 길어지져?)나름대로의 신빙성이라는 주장은 객기화(客氣話)이고 신빙성이 있다는 거져...형 한국인이 없어진다는 말...내 말과는 넘 지나치당....그래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1000년전의 중국을 생각해보져...그때랑 지금이랑 바꼈는데...저런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지구안의 나라들은 개판되져....난 그것이 이치에 안맞는 우기기라는거고...머...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게 아니니...ㅎㅎㅎ 나도 더이상은...안할라요...바위 받아용~~

  3.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07 12:50

    바위는 더 느리지..음하하하....퍼억~! (웃다가 맞았음.ㅠㅠ)
    지나치고 말고를 떠나서, 중국 주장대로라면 지구안 나라들이 왜 개판이 되는데?! 현재 민족국가들이 대세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한 나라 안에서 여러민족이 혼재해있는 나라도 많이 있어. 그런 나라에게는 오히려 중국이 추구하는 다민족국가론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냐? 물론 중국처럼 내부압제에 이런 논리가 동원된다면 문제겠지만, 이 다민족국가론자체는 국가 내부의 여러 민족들을 아울를 수 있는 장점이 있지. 그리고 앞으로 세계화가 되고, 언젠가 세계정부가 생겨난다면, 그&#46468;는 다민족국가론?! 혹은 그것의 발전형태인 세계론?!비스무리한것이 대세가 되겠지 않겠니? ~.~

  4. cdhage 2004.10.07 15:53

    안던졌는데...뭘 맞은겨...

  5. cdhage 2004.10.07 15:55

    나중에 중국이 영토를 넓혔다...그럼 그땅에 살았던 민족의 역사도 중국사가 되는건가요?음 말로 해야될꺼 같은데...글로 쓰기에는 먼가 힘든 그 먼가가 있네요...
    그나저나 형 요즘 많이 힘든가봐요...헛것이 다보이고...어쩜 좋아...내 맘이...내 가슴이...찌져져용~

  6.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07 16:11

    그건 그렇지만 그런식의 극단적인 예는 좀 삼가해주었으면 한다. 좋아. 지금 현재 중국이 토대로 하고 있는 다민족일국가론의 경우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하에 있는 모든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야. 이것은 곧 우리가 곧잘 생각하는 민족사라는 개념으로 보면는 절대 이해가 안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지금 현재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민족의 역사를 미국사라고 할까? 미국의 경우는 현재 미국이 생겨난 뒤에 현재 미국영토에서 일어난 일을 미국사라고 규정하고 있어. 이 이론과 중국의 이론이 다른 점은 중국의 경우는, 과거의 사실까지 현재 중국을 형성하고 있는 역사로 본다는 점이지. 그럼 중국이 잘못된거 아니냐고? 학술에서 잘못되고 그른것은 없어. 특히 이런 논증의 경우에는 특히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한국이 추구하는 민족사도 똑같은 의미로 비판받아야되는것이지.

    이제 현실적인 비유로 돌아가보자. 중국이 만약 한국을 지배하게 된다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논리로서 지금의 한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겠지. 그런데 그것에 잘 못 된것은 무엇이야? 직접 생각해봐. 그럼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을거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말고, 무엇을 추구해야되는지 생각을 해라-_++)

    또 다른 생각은, 오히려 지금의 다민족국가론을 잘만 다듬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어질 세계정부를 유지할 수 있는 역사학논리를 생각해보자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지금의 한국이 추구하는 민족사는 세계정부차원에서 생각하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지. 뭐..이거야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한 부분은 다민족국가론의 밝은 부분이지. 중국이 이 다민족국가론을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주지하고 있는 바이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다민족국가론을 비판해야되는 것이 아니고, 중국정부의 정책을 비판해야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논리는 논리일 뿐이야.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것이지.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서 다민족국가론이 이미 중국사학계의 대세인 이상, 그것에 대한 감정적인 비판보다는 위에서 말한 다민족국가론의 밝은 모습을 강조해서 어떻게 보면 중국을 이용해 먹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7. 준일 2004.10.07 16:23

    ㅡㅡ;;;
    아휴.. 다들 뭐라는 건지 모르겠구만 ㅎㅎ

  8. cdhage 2004.10.07 17:12

    ++ 한곳으로 몰아서 덧글을 정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형의 예도 충분히 극단적이라는것도 생각해주길...

    다시말하지만 중국이 다민족국가이고 다민족국가론을 채택한 것이 당연하지만 고구려사나..다른 문제들에서 중국의 태도가 잘못되었고...그거말한거고 그게 부당하다는걸 지적한거지 다민족국가론을 모라고 한건 아닌데.....과연 세계정부가 가능할까의 여부와 가능하다면 어느정도까지가 가능하고 언제가능할까도 문제죠..

    -중국이 만약 한국을 지배하게 된다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논리로서 지금의 한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겠지. 그런데 그것에 잘 못 된것은 무엇이야? 직접 생각해봐. 그럼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을거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말고, 무엇을 추구해야되는지 생각을 해라-_++)-
    기다렸소..ㅋㅋㅋ맞는말이죠...근데 만약 한국이 노다지땅이라 또 다른나라가 차지한다면 혹은 한국이 또다시 독립해서 영토를 넓힌다면?역사가 개판되죠? 내가 그거 말한거요..ㅡㅡ

    전부를 읽어보니 내가 형이 한말 내가 또 한것도 있네...그건 걍 넘어가고...내말을 형말대로 중국정부가 그걸 악용하고...난 그것을 비난(?)한거에요...다민족국가론의 멋진 껍질속에 이상한 짓거리하는것을...다민족국가론이 이상하고 우리나라의 단일민족국가론만이 진리라는 거이 아니라...

    마지막이라고 하고 계속 쓰네...그냥...진짜 마지막이에요...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거도 아니고 민족사니..다민족국가론이니..어쩌구 저쩌구에도 그다지 그냥 그렇소...다만 저렇게 말한것은 내가 있는 곳이 중국이고 내가 다니는 학교가 중국학교고 생활하는 곳이 중국이요...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잘못된점에 대해서 말한거에요...괜히 내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또는 민족사개념으로 다민족국가론을 비판한다고 가정하지 말고 생각해요..ㅡㅡ 맨날 이렇게 말할때마다 나는 이런거 뭐를꺼다..이런 고정관념 갖고있어서 이해못할꺼라고 생각하지말고...ㅡㅡ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을거에요 있더라도 흔하지 않죠..귀하고도 귀하겠죠...머 저런것들도 마찬가지 아니오...자기 입맛에 맛는거 고르는거고...다만 중국의 경우 우리꺼 날로 뺏어먹고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혈압을 올리는 이상한 말을 내뱉기 때문에 그거 말한거요...내 말이 틀렸다...하지만 그게 내 한계요....내가 생각하는 게 거기까지고..

  9.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07 17:25

    이젠 더이상 할말도 없다. 내 예시는 너가 제시한 조건으로 검토해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 아닐까? 문맥을 좀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만....에휴...

    역사가 개판이 된다는 소리를 하는게 아니야. 그래도 역사는 절대 개판이 안된다는 것이 정답이지.(물론 그렇게 하기 위하여 정책적배려를 비롯한 한문적연구가 있어야 된다는것이 전재이지만, 그것은 기본으로 간주했음) 왜냐하면 중국의 다민족국가론은 한국이 다시 독립한 순간 한국사가 중국사에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 다민족국가론이 "현재 중국영토내에 있는 민족들의....(생략)"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거다.

    마지막으로 전에도 너에게 이야기했지만, 대안 없는 비판만큼 쓸데 없는 것도 없어. 물론 우리가 직접 행정일선에서 뛸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도는 생각해야되지 않을까? 중국도 어느정도 투자를 통해서 고구려사에 접근하는 것이고, 그것을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가 소수라고 말하는 민족사관의 반영이고, 민족사관이 얼마나 뿌리깊게 한국 일반대중속에서 뿌리박혀 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지.

    조언 한마디 : 논문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때는 최소한의 논리구조와 형식을 갖추는게 어떨까? 그렇게 하면, 내가 니 덧글을 정리해서 한글로 묶을 필요가 없이, 하나의 덧글로로 너의 모든 논리를 대변할 수 있었을거 아니겠어?

  10. cdhage 2004.10.07 22:05

    하나의 덧글로도 할수 있었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46124;어여..ㅋㅋㅋ글이 길어서 함 대충읽고 쓰고 다시 읽어보니깐 아니고...마지막으로 또 생각나서 또쓰고...그러다보니깐.. 미얀해여 힘들게해서...그리고 형 예시는 본문 예시 말한거에요..ㅡㅡ

    짐 중국이 형말대로 다민족국가론이라는 틀 속에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말하고 비판하는거져...형이 말한 상황은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할 때 그렇지만...조금만 꼬아보면 그렇게 안될것 같은데요...예를 들면 이스라엘처럼 될수도 있고...저렇게 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결말이죠...더군다나 중국이...저런 깨끗한 플레이를...
    (대안없는 비판이 쓸모 없다...꼭 그렇지도 않은것이...정말 잘못된 것을 비판할 때는 대안이 꼭 있어야만 하는 필수 조건은 아니죠...비판을 하고 잘못된 점을 부각시키고 난 후에 여러가지 대안을 생각할 수도 있고, 예를 들면 형도 평소에 불평,비판 하는 것들이 모두 대안과 함께 하는것은 아니잖아요...비판을 통해서 시정을 요구하는 비판도 있고...사실을 알리기 위한 비판도 있을 수 있고....대안이 있는 비판은 당연히 최고겠죠...하지만 대안이 없는 비판이 꼭 쓸데없는 부스럼 만들기는 아니라는것...다만 형이 예전에 이 얘기를 했을때는 대안이 필요했었지만 아닌 것도 있다는 것..하나 덧붙여 내 얘기들 중 굳이 대안이라면 당연히 수정요구겠죠..어떻게? 그건 내가 제시한대로 해줄 정부도 아니고...중국정부 스스로...단,다른 나라에 피해안가게...이 말 자체도 좀 모호하기도하고 참 이상적인 말이죠.저런글에서 어떻게 해달라...쓰기도 넘 그렇게...그럼 또 길어지고...그래서 안썼구...)

  11. cdhage 2004.10.07 22:06

    이건 딴소린데..내가 국경절동안 간 사이트..내 블록,형 블록, 다운받는사이트 몇개...나 형 사이트에서 살았어영..나 이뻥? ㅋㅋㅋ

  12.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08 06:29

    니가 말하는 본문의 예시는 "한국의 학자들이 학문적 양심을 버리고 정치를 위하여 진실을 왜곡해야 되는 것입니까?"이것을 말하는거 맞지? 이우혁씨가 주장하는 바를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이 말이 되는거 맞어. 예시가 아니고 추론이지.

    그리고 그 아래쪽에 있는 논리는 아예 반박할 생각조차 안 들게 하는구나.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어야지. 단지 생각의 단편이 논리가 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그렇다면 논리의 근거를 제시하고, 최소한의 논리구조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저건 파편일 뿐이야.

  13. cdhage 2004.10.08 08:06

    대안(대책)없는 비판이 쓸데없는게 아니라는거져...진짜 쓸데 없는 것은 정당한 이유없는 비판(ex.개인의 감정에 의한)같은거고...형이 포스트 쓸때도 이것저것 불평불만 같은거 쓰면서 이렇게 해달라고 꼭 쓰는건 아니져...그것을 안 써도 읽는 사람은 형의 뜻이나 아님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고...혹은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그런 의미에서 말한거에요....모든 비판에 대안이 있어야만 한다...사람들이 학자도 아니고...학자들이라고해도...모든분야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져....모든 비판에 대안이 필수조건이라면...비판은 넘 어려운것이 되지 않나요? 넘 쉬운것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저렇게 넘 어렵게 되는것도 안되죠...
    사람들이 비평하고 비판하는것은 말그대로 옳고 나쁨을 판단하는 거져...그렇게 하면서 대안도 생각하게 하고...비판과 대안은 다른 것이고..아님 비판후의 과정이거나...
    단지 비판(비평)을 할 때 자기 감정에 이끌려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잘못된거고...그렇게 되면 역시 비판이 넘 쉬운것이 되어서 안되겠져..

  14. cdhage 2004.10.08 08:20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말한것은 "한국은 단일 민족이다. 그러므로 고대부터 어떤 땅에서 어떤 문화를 배경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현재의 우리 한국에 섞여있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인을 이루는 모든 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한국사이다" 이거 였는데...내가 말한거 더 극단적이긴 하오 ㅎㅎㅎㅎ..근데 저 문장 읽었을때 느낀게 좀 과장같았소..그래서 인상이 깊었던게 아닐까...
    내가 든 예시들은 하나의 가정같은거 아닐까요? 나중에 이렇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꼭 지금만 같을 수는 없잖아여..나중도 생각해봐야하고...생각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는 나쁜쪽으로 생각하는게 더 효과적이고

  15.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08 09:32

    내가 왜 위에 파편이라고 했는지 이해를 못했구나....에휴..
    만약 너가 너의 블로그에 이런 형식의 이야기를 적었다면, 내가 그 논리에 대해서 비판할지는 몰라도, 정확하게 말하면 난잡함에 대해서 쓴소리를 할지 몰라도, 너는 지금 내 글을 보고서 그것에 대해서 비판을 한것이지. 그래서 난 논리적으로 반박을 했는데, 위에 너의 글을 봐라. 점점 말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냐? 그리고 너의 글은 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내가 멍청해서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니가 직접 니 글을 보고, 그것의 주제가 뭔지를 생각해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비판할려면 그것에 대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고, 아니라면 쓸데 없이 타자를 치지 말고 해야되는거 아니겠니? 지금 너가 위에서 한 말들은 잡담 혹은 쓸데없는 말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니? 본인이 생각해봐라.

  16. cdhage 2004.10.08 11:06

    내 말은 계속 중국의 잘못된 방향(?)이었는데 중간중간에 형 답변과는 다른 내생각 적다보니 저기까지 간거져...여기저기 찌르기는 했지만 논리와 근거가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다 자기 입맛에 맞추려고 하죠...인간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이...우선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그 이익에 맞춰서 선택하는거구...중국은 다민족국가론이 적합하고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론이 적합하고...뭐 서로의 단점을 찌르자면 서로 피터지져...다만 중국의 태도가 이상하고...어찌보면 중국은 지금 자신들의 이론만을 우기고 다른것은 무시하고 있는거져...그러면서 우리나라랑 충돌이 생긴거고...이우혁이라는 사람이 고구려의 사관이 엉터리라고 한거나 중국이 저런식으로 지금 우리땅에 있었던 나라들 무조건 다 우리역사...하는거나 머가 다른가요?또 형이 중국의 개념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했지만...인정해줄수는 있지만 젤먼저 다른 국가에 피해는 안줘야져...티벳이고,우리나라고 이런저런이유로 저렇게 다 흡수하면 머가 남을까라는 생각도 들고...본문에서 형이 추론이라고 한것도 과장된 느낌이 들고...뭐 이우혁이라는 사람이 심하게 말해서 형도 심하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그런것들을 말하려고 했던거요...내 표현들이 극단적이라고 형이 했지만...불가능한것도 아니죠...위에서도 말했듯이 미래를 대비할 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것이 효과적 일 수도 있고....그리고 첨부터...계속....몇번씩이나 나는 중국의 태도를 말하는 거라고 강조했었어여....다만 중간중간의 말들 때문에 그게 아니다 그런 말하느라 이것저것 다 나온거져...

  17. 제4심상 2004.10.09 17:16

    동현이형이나 바로형이나 모두 일리있는 말이고 글 자체의 논리성을 떠나서
    글을 보면서 문득 느끼는 점은 바로형이나 동현이형이나 적어도 북대 생활동안은
    앞으로도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것 같다. 형들 모두 한가닥 하는 분들이라
    받은 영향이 작용까지 할지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두 의견이 지향하는 점이 달라서 논점이 흐트러진 점이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동현이형 의견에 찬성하는 바이다.

    푸하하하하하하하~~~~ 바로형~ 내 대답은 밑에~~~
    한번 읽어봐여~~~ 고구려 연구재단의 한 연구위원이 쓴 글임~~


    현재의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다. 이들 민족을 하나로 묶어 중국사를 설명하는 논리가 ‘통일다민족국가론’이다. 이 이론에 의해 과거에 역사를 달리했던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설명하고 고구려사도 중국사라는 논리를 성립시키고 있다. 고구려는 한족이 아닌 예맥(濊貊)족이 세운 나라이지만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중국을 구성하고 있거나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 있던 모든 민족의 역사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국학자들이 만능 무기로 활용하는 이 통일다민족국가론에는 3가지 착오가 있다.

    ▼인간-과거-공간 무시한 주장▼

    첫째, 주체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그것이 민족이든 계급이든 국가든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고 역사학은 인간이 과거에 행한 행위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그 영토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라고 하는 논리로, 땅을 기준으로 역사를 설명한다. 지금 중국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주체를 인간이 아니라 땅으로 잘못 인식하는 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시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라의 크기가 달라지기도 하고 민족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국사의 경우에도 만주족 의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하기 전에 만주는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고, 만주족도 중국인의 일부가 아니었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가 변화하는 것임에도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중국에 시간을 고정시켜 놓고 그 영토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시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고구려사의 경우 현재 중국 영토를 전제로 하면 평양 천도 이전, 즉 만주지역의 고구려사만 중국사이므로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까지 중국사에 포함시키기 위해 역사의 시간을 한사군이 설치된 기원전 107년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이는 통일다민족국가론의 논리적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꼴이다. 역사 시점을 기원전 107년으로 하면 현재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대부분이 중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공간의 착오를 범하고 있다. 통일다민족국가론은 현재의 영역을 기준으로 중국사를 설명함으로써 과거 중국 영토가 아니던 곳을 중국 땅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원에서 출발해 점차 영토를 확장해 온 중국의 역사 발전 과정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체중 150kg의 뚱보가 자기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컸다고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오늘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설명하다보니 중국과 주변국의 전쟁을 모두 내전이나 통일전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고조선과 한(漢), 고구려와 수(隋) 당(唐)의 전쟁은 국제 전쟁이지 중국의 내전이나 통일전쟁이 아니었다.

    통일다민족국가론은 이처럼 역사학의 기본마저 잘못 인식하게 하는 착오를 범하고 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이미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중국의 역사 재구성 작업에 대해서는 중국 내부에서조차 비판론이 제기된다. 최근 상하이의 문화평론가 주다커(朱大可)는 중국이 고대사 단대공정(斷代工程·시대 구분 작업)에 2000여명의 전문가를 동원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단대공정은 미리 설정된 한족 중심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역대 사관들이 황제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냈던 것의 새 옷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역사는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그 비판은 통일다민족국가론에도 적용된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의 역사를 하나로 통합해 중국사로 설명한다는 ‘미리 설정된 목표’에 부응하기 위한 억지 논리라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중국학자들은 이제 그만 이를 폐기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역사학 본연의 자세로 돌아 가야 한다.

    이인철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18. Favicon of http://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 2004.10.09 17:44

    어찌 되었든 위의 연구위원님의 논지에는 동의한다.(동현이가 이렇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했으면 말도 안한다.) 문제는 고구려사를 중국이 먹는다라는 것은 어느정도 민족사관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지. 위의 위원님은 그 부분을 이야기 안했는데, 위의 글은 고구려가 한국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지는 않어. 고구려사가 중국사일 수 없다. 라는 주장이 성립해도 고구려사가 한국사다. 라는 주장도 같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

    개인적인 의문점을 여기에 적어둬야지(아니면 까먹어서-_;;)
    1) 역사는 인간중심일까? 아니면 나라중심일까? 아니면 문화중심일까?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다른 것 중심일까? (요즘 김한규교수님의 역사공동체이론에 젖어 있음^^::)
    2) 중국사학이 관방사학이 것은 확실하고(전체적인 성향을 말하는것임)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을까? 단지 논리싸움이면 다른 상대방에서 무시하면 끝나는 것인데 말이야.

    뭐..동현이 주장에 일부러 반대급부쪽에 있었던 것은 인정하는 바이고..-_;;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국이 그런 것을 나는 모르겠니? 단지 그 반대급부에서도 생각해 보고 우리에게 뭐가 더 좋을까를 생각해보는것이지. 단지 중국측 논리를 반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역사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만들어내는거 같은걸 어쩌겠니. 정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한다따구의 말은 왜 나온 것일까?

    뱀다리 : 그나저나 나도 슬슬 학업?!에 복귀해야될텐데......흐음..복귀하기 전에 술이나 죽도록 마셔야겠다. 먼산~~~

  19. cdhage 2004.10.09 19:23

    왜 나 씹어여?? 나도 논리적으로 쓰면 쓸수 있어여...필링에 쓸때 다소 산만해지는거지..그리고 다시 말하지만...형이 국가론 얘기하고 대안없는 비판얘기하고 이것저것 얘기하니깐 거기에 대해서 내 생각말하다보니 내용이 길어지고 그래서 최대한 줄이려고 하다보니 이건 좀더 심해진거져...찐바루 화팅...따랑해요....복귀하면 내가 이뻐해줄께요 ㅋㅋ

  20. cdhage 2004.10.10 21:43

    한국은 단일 민족이다. 그러므로 고대부터 어떤 땅에서 어떤 문화를 배경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현재의 우리 한국에 섞여있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인을 이루는 모든 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한국사이다.

    내가 첨 덧글 단 이유는 저 문장과 그 앞에 중국의 역사관도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 때문이에요.개념으로 받아들여야는 하겠죠. 하지만 잘못된 것까지 우리도 저런식의 주장이니깐 받아들여줄 수는 없는거잖아요.잘못된 것은 서로 지적하고 고치려고 노력해도 고치기 힘든게 현실인데...우선 우리가 저런식으로 우기지 않고 있져(과장이라는 말)
    위에 덧글에서도 말했지만 형은 우리가 저런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저렇게 ‘어떤’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될 만큼은 아니죠. 우리가 우리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사료와 고고학적인 유물들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역사들이죠.형이 말한 것처럼 한단고기같은 사료로서 가치가 없는 책은 꺼내 들지도 않져.
    중국이 주장하는 것들도 사료나 고고학적 유물은 충분히 있지만 그 나라들이 중국의 역사인 이유는 지금의 중국 영토내에 존재했거나 중원지역에 영향을 끼쳤거나 혹은 받았던 나라들이라는 거져.우선 역사를 현재 영토에 의해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로인해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거져.예를 들면 몽고의 역사나 우리의 고구려사 등을 왜곡하는 것처럼.
    다민족국가론이 인류발전의 흐름에 맞춘 하나의 이론인듯 하지만 저런 식으로 역사를 규정하는 것이 잘못된거져.형이 언급했던 미국도 지금 자기네 역사를 자신들이 첨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했던 시기부터로 규정하지만 그 전에 살았던 인디언같은 부족들은?그들에게 자유를 줬다 어쨌다 할 지 몰라도 자국을 기준으로 싹 지워버린거져.
    미국은 어떤 국가가 자기 역사 뺏어갔다고 말하지 않지만 중국의 저런 태도들은 주변 여러 이웃나라들의 화만 돋구게 하고 있는 게 현실이져..인류가 발전을 겪으면서 여러 다민족국가가 생겨났고 그들에게도 역사가 필요했겠죠.하지만 저런 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위해 다른 이의 존재를 없애거나 빼앗는 태도를 첨부터 지적하고 싶었고, 다민족국가의 장점과 필연성을 봐서 다민족국가들을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지금 중국의 태도는 중화사상에 젖은 오만과 고집이라고 밖에 안느껴지는데요. 형도 안다고 했으니 자세히는 말안할께요.역사가 개판이 된다고 한 것도 형이 전제사항을 깔면서 그렇게 안된다고 했지만 그 전제사항이라는게 각국의 치열한 이익다툼 같은거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거 알고 있을텐데요. 그런 쉽지 않은 거 전제로 내 말 딱 막고...
    그리고 첨부터 중국의 역사관 혹은 다민족국가론이라는 것 전체를 문제삼은게 아니라 다민족국가론이란 멋진 이름 속에서 다른 짓하는 태도를 지적하는거라고 몇번 강조했고, 내 예시들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시나리오죠. 형이 대답했던것이 멋진 시나리오라면 내 예시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겠죠. 내 예시가 생각의 단편이라면 형의 예시도 단편인거구....
    첨부터 저 연구원처럼 지식에 의해서 생각하고 글 쓴게 아니라 상식에 의해서 쓴거에요.읽은 역사책이라곤 교과서가 전부인 나한테 그런 기대가 넘 큰거에요. 그리고 지금 현재 개인적인 생각에 상식이 저런 학술적인 것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데...

  21. cdhage 2004.10.10 21:44

    그리고”예를 들면 이스라엘처럼 될수도 있고...저렇게 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결말이죠...더군다나 중국이...저런 깨끗한 플레이를...”저게 왜 이해가 안되져?난 이해 안되는 형이 이해가 안되는데요.

    형은 동사없다고 했었는데 그때 화나서 몰랐는데 짐보니깐 2개나 있는데요 그리고 형이 말한거에 이어서 읽으면 뒤에 생략된말도 내가 쓴 단어의 어감 같은거 느끼면서라도 충분히 이해가고...

오랜만에 과거의 글을 보았더니....이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어마어마한 민족주의자였군요. 2004년 이후에 6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를 비웃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글은 남겨두겠습니다.



검정색 글은 모두 원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제가 첨가한 글은 파란색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야 할거 같습니다. 짱꼴라가 저러면 왜 틀렸는지 설명해 줘야 하니까여.... 또 공부...-_-;;




원문 출처: http://www.snweb.com/gb/gnd/2004/07/02/0702p014d001.php




장기간 잘못 읽어진 역사, 오늘날에 와서 중시되는 유산

고구려, 잃어버린 고대문명(사진 4장포함) {음…… 무슨 내용일까? 한국이 고구려를 언제 버렸나? 잃어버려? }

본지기자 송념신 {염신아, 니 메일주소 불러 볼래?}


  학자들이 생각하기에 고대동아시아 국가체제와 현제 서방의 개념에 의해 형성된 국가 관계는 완전히 서로다른 개념으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다. 반드시 역사적, 과학적태도에 근거해서 고구려 고대문명을 다루어야 하며, 문제를 현대정치로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음.. 왜곡의 시작인가? 그래 현대정치로 끌어들이면 안되지… 짱꼴라들 중국이 힘세지고 있다고 그거 믿고 까부는 주제에… 이 문제를 보면서 중국이 대국이 되더라도 미국과 별반 다를게 없을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왤까?}

  7월1일, 중국 소주에서 거행된 제28회 세계유산위원회회의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성과 왕릉, 고분은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유산의 등록성공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 오랫동안 소실되었고, 잘못이해된 옛나라 고구려를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에 한것이다. {그래, 역사 왜곡하니 자랑스럽니?}



  중국동북지역과 한반도북부를 가로지르는 고대 변방정권. {고구려가 왜 변방정권이냐? 그냥 한국도 화교국가라고 해버리지.어? 웃기네..}

  오늘날 중국학자들은 보통 생각하기를, 고구려는 서한에서 수당대까지 존재하였던 중국도북지방의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변방민족 정권이다. 동북지방은 일찍부터 고대 중앙정권의 관할구역이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했을때 상나라의 후예 기자는 사랑들의 데리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오늘날의 평양지방에 “조선”을 건립하여, 주나라의 한 지방정권이 된다. 학계에서는 보통 “기자조선”이라 칭한다. 서한 초기 위만의 연인(卫满的燕人)이라 함은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중원의 사람을 모아 통치권을 장악한 사람을 말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위씨조선”이라 한다. 계속적으로 확장정책을 실행함에 기원전108년 위씨조선은 한무제에 통일되었고 서한이 관할지에 낙랑, 진번, 임둔, 현토4군을 설치하고 관리하였다. {웃기지마, 위씨조선이 중국이면 그냥 통일하면 끝이지 왜 사군을 설치하냐고… 사군이라고 해봤자 그냥 4개 작은 부락이었을 뿐이잔아.. 거봐 고조선이 중국이라는 말은 웃기지도 않는다… 참내..}

  기원전37년 동북변방민족 부여의 한 왕자는 사람들의 박해로 남쪽에서 현토군의 고구려현(지금 료녕성의 신빈현 동남부)으로 도피한다. 활을 잘 쏴 “주몽”으로 불리었던 왕은 이곳에서 초기의 고구려정권을 건립한다. 사서에는 “고려”라는 약자로 기록된다. <삼국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당시 고구려의 호적은 서한 현묘군 고구려현의 관리하에 있었다. 서기3년 고구려의 제2대 왕인 유리왕은 수도를 오늘날 길림성 집안시에있는 “국내성”으로 옮긴다. 이후 400여년간 고구려정권은 이곳을 수도로 삼는다.

  고구려는 한의 현토군, 요동군 관할에 놓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신하라 칭하며 조공을 바쳤다. 역사상 이 정권은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친다. 왕망시대 흉노정벌에 징집되어 참가함에 도망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고구려왕의 말탄 신하(驺)는 왕망에 의해 유인되어 죽음을 당한다. 동한의 건립후, 고구려의 통치자는 다시 왕으로 책봉되고 계속해어 주위의 변방정권을 통일해 점점 강력해 진다. 위진남북조 후기에 이르러 중원에 전쟁이 발생하고 이게 고구려는 더욱 발전한다. 그때 고구려는 중원의 각왕을 신하라 명하여 조위와 막용선비정권에게 두번의 단멸성 공격을 받는다. 이후 고구려는 정책을 바꾸어 서쪽으로의 확장을 중지하고, 남쪽으로의 경영을 시작하며 한반도의 다른 두정권 백제와 신라를 통제한다. 서기427년 고구려는 다시 평양으로 천도한다.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가 제일 번성했을 때, 그영역이 동서로 이천리였고 남북으로 천리였다. 남쪽으로는 한반도 중부에 이르렀고 북으로는 길림중부, 동으로는 연길 동서로 요하에 이르렀다. {짜증나는 짱꼴라들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저 중원이라는 말투와 아집에 짜증이난다. 그리고 정권이라는 애매한 용어로 고구려를 지칭하다니. 비겁한 자식들. 고구려는 엄연한 국가란 말이다. ㅋㅋㅋ 그리고 짱꼴라들 너희를 신하라 불렀다고? 그럼 너희 역사가 고구려 속국의 역사라는 말이네.}

  수당시기에 이르러 중원은 통일되어 가고 할거상태의 고구려를 수복하는 것이 두나라 황제의 공통된 바램이었다. 통일에 대한 요구로 당태종은 수문제와 양제의 여러차례의 실패후 무력으로 고구려를 통일하려 한다. 역사서는 기록하기를 당태종이 전쟁에 나가기전에 “이제 아홉바다가 평정되었고, 모퉁이 하나만 남았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고구려수복을 통일의 최후의 전쟁으로 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기644년부터 24년의 전쟁으로 고구려는 당나라와 한반도 남부의 신라정권의 연합에 의해 멸망하고,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다. 설인귀를 검교안동도호로 임명하여 군대를 통합하고 지키게 한다. 이때부터 705년동한의 고구려는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수복? 고구려를 수복해? 언제는 너희 나라였냐? 그리고 두나라의 황제? 황제가 둘이면 것두 황제라 부르냐? 그냥 두나라 왕이라고 적어. 그리고 고구려가 중국에 속하면 그냥 통일하면 되지 무슨 도호부를 설치하면서 군대를 주둔 시키고 지키라고 그래. 고구려 힘이 세니까 세력억제시키려고 도호부 설치한거 아니야. 통일의 완성이라고 한것도 고구려가 자꾸 침략하니까 세력억제를 해야 통일 완성이라고 본거구. 아씨 그리고 헛소리가 넘 많아서 다 대답하기도 귀찬네… }



  고구려 문화와 중원문화는 가까워서 구별하기 어렵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시려구 준비운동하시나?}

  길림성 고고학 연구소의 부가흔(傅佳欣) 연구원은 오랬동안 고구려 고고학연구를 했다. 그가 기자에게 소개하기를 고고학적 각도에서 볼때, 고구려의 문화는 낮은 수준에서 갑자기 발전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시기의 귀족무덤 안에서 많은 량의 도자기, 철기가 발견된다. 하지만 동시대 일반 백성의 무덤안에는 석기가 발견된다. 이것은 분명하게 외래문명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구려 고적의 2/3은 중국의 국경 안에 위치하는데 고구려 초기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천도후 문화특징은 더욱 중원화되어 가며 원래의 특징은 줄어든다. 이 모든 현상은 고구려의 문화는 중원문화의 빛 아래서 발전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또 헛소리를 하는군. 고구려 문화유적지 왜 개방 안하냐고. 역사왜곡 하기전에 들통나면 곤란하니까? 욕나와도 참자…}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방사지(中国边疆史地) 연구센터의 이대용연구원은 기자에게 말하길, “고구려 문화는 동북아시아 문화중에서 하나의 매우 찬란한 문화입니다. 벽화, 산성, 고분, 모두 대단합니다.” 그가 보기에 고구려와 중원의 각 왕조는 경제 문화적으로 밀접한 왕래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많은 부분에서 찬란한 고구려문화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인접 국가간의 문화교류는 당연한거 아니야? 일본이 한자쓴다고 중국 속국이라고는 왜 안하니?}

  이대용은 예를 들기를, 많은 고구려 무덤중 벽화무덤은 극히 진귀하다. 벽화의 내용으로 보면, 사회생활과 내가지 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장식도안등이 있는데 많은 것들이 중원의 건축물과 무덤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이밖에 고구려벽화는 중원지역보다 발생시기가 조금 늦다. 이는 중원에서 변두리로 전해진 과정이라 하겠다. 그리고 고구려 멸망후, 이지역의 벽화무덤의 수는 줄어든다. {문화유적지 공개해서 공개적으로 연구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해야지. 자기들끼리 골방에서 일방적으로 그렇다고 하면 그게 믿기냐}

  이와 같이 고구려민족과 중원민족의 교류는 빈번했다. 이대용은 이를 전면적교류라고 명했다. 예를 들자면, 고구려와 중앙왕조의 사자왕래는 매우 밀접했고, 쌍방문화교류의 중요한 전달자 중의 하나였다. 예절과 의식제도, 종교, 역법등 분야에서 넓게 교류하였다. 고구려민족은 자기만의 언어가 있었는데 이미 소실되에 찾기 어려우나 그들이 한자로 기록하였기에 오늘날 학자들이 그에대해 깊이 연구를 진행중이다. 고구려정권에는 많은 한인이 존재했다. 이와같이 당왕조안에도 적지않은 고구려인이 요직에 위치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안서절도사를 담당했던 고선지가 있다. {지금도 한국에 한인 많아. 음… 그렇담 지금 한국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중 일부게…. -_-;; 참자. 욕나온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사용했던 고구려말 말인데 알고시으면 영화 “황산벌”을 보라구. 고구려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테니까.}



  오랫동안 오해된 역사 {제목이 잘못 됐네.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이 맞지.}

  고구려 멸망후, 대부분의 후예들이 중원으로 옮겨져 중원민족과 융화되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주변 각민족에 융화되어 갔으며, 왕족은 멸망했다. 모든 영역은 당나라에의해 관할되었으며, 훗날 일부를 동북지방정권 발해에게 분할해 주었고, 일부는 한반도 남부 신라에게 분할해 주었다. 이후 점점 중원전통사학의 틀에서 벗어났다. 송대이후, 중원은 고구려역사를 인식함에 혼란이 생겼으며 잘못 이해하게 된다. 청대에 이르러 동북지방은 황실 “용흥의 땅”이라는 것에 의해, 청은 이지역에 “봉금정책”을 실행하고, 소수의 역사가만이 이에대해 고찰, 연구를 진행한다. 1877년에 이르러 고구려왕 고안(염덕이라고도 하고, 호태왕이라고도 칭함)사적이 기록된 “호태왕비”가 발견되어, 천여년간 소실되었던 옛나라가 다시 인식되기 시작한다. {다시 인식되는 건 너희 한족들한테겠지. 혹시 고구려의 발전된 문화가 중국에 퍼졌다는, 중국에 불리한 유적이 발견된거 아니야? 고구려 유적지 한국에 공개하라고!!}

  길림성 고고학연구소 연구원 부가흔은 “매우 긴 시간동안 우리가 고구려 역사를 외국사로 본것은 실제로 오해일뿐이다”라고 말했다. 서기918년 고구려 멸망250년 후, 한반도에 “고려”라는 정권이 들어선다. 통치자의 성이 왕씨여서 고구려의 약칭인 고려와 구별하기위해서 학계에서는 “왕씨고려”라고 부른다. 비록 같은 이름을 베껴 사용했지만, 왕씨고려와 고씨고려는 아무런 계승관계도 없다. 왕씨고려는 935년 신라를 대신했고, 뒤날 백제가 멸망하고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을 통일한다. 1392년 대신 이성계가 왕을 폐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으며, 1393년 “조선합영등호주청”을 명에게 청했고, 명은 이성계에게 조선왕을 하사했다. 결국 왕씨 고려가 조선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씨조선 또는 이조라고 부른다. {이씨조선? 이조? 왕씨고려? 왕위하사? 오호~~ 그럴싸한데.}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방사지 연구센터 연구원 이대용은 예를 들어 말하길, 중원지역 역사상 많은 정권들이 “송”이라는 이름으로 출현했었는데, 이 정권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왕씨고려와 고구려또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왕씨고려는 신라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이며, 고구려는 당나라에 통일된 것이다. 그러나 사료가 부족하고 오도되는 등의 원인에 의해서, 송대이후 사서는 왕씨고려와 고씨고려를 혼동하고 있으며, <명사(明史)>는 심지어 이성계 책봉이 합리적임을 해석하는데 기자조선, 위씨조선, 한사군, 고구려를 모두 (이씨)조선사에 넣어 버린다. {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해서 한국역사는 모두다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해버리지. 그리고 화교의 미국진출로 미국사도 중국사의 일부라고 해버리지 그러냐.}

  이대용이 생각하기에, 왕씨고려와 고씨고려는 창립년대가 아주 멀며, 주체민족도 다르며(왕씨고려의 주요민족은 신라, 백제의 “삼한(三韩)”인 일뿐, 고구려인이 아니다) 정권건립자또한 계승관계가 없고 통치지역도 다르다. 이 네가지는 이둘이 서로 계승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ㅋㅋㅋㅋㅋ. 말한번 잘했다. 그렇게 보면 중국사라는 것은 아예 없네. 몽골에 정복당했다가, 여진에 정복당했다가 고대국가는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잖아.}



  중국은 큰힘을 쏟아 고구려 유산보호에 노력한다. {공개가 우선이 아닐까?}

  광서3년, 금석학을 취미로하는 청나라 관원한명이 우연으로 풀밭에서 “호태왕비”를 발견하여 비문을 해석하는데 열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1941년까지 고구려역사를 계통연구작품 <동북통사(상편)>(金毓黻)한편만이 나타날 뿐이다. 건국후 중국은 고구려 유적에대한 발굴과 보호를 확대하고 있으며, 1961년 호태왕비등은 전국중점보호문물로 지정된다. {그만 훼손하고 공개해 주세요.}

  20세기 80년대 고구려역사에대한 연구가 점점 전개되었다. 2002년 국가문물국은 설계분야와 관계있는 조직을 만들어 일련의 보호규범계획 전문조항을 제작하고, 질서있고 효과있게 세계유산신청을 위한 필요기초를 닦았다. 그후 정부는 3억여원을 들여 환경정리, 문물보호, 발굴정리 업무를 시작했으며, 현대식 건물과 무덤조성에 대량의 기금을 사용하였다. 초기에 11개의 왕릉 유적을 정리하였으며, 2700여건의 문물을 출토하였고, 현재의 박물관도 보수하였다. 작년 기자가 집안을 방문할때 길림성과 통화지역에서 집안시까지 모두 협력하여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힘썼다. 집안시도 이미 여행업을 적극육성하여, 유산등록 성공후, 여행업을 인삼산업에 버금가는 둘째 중심산업으로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산 등록되었으니까 이제 돈벌어야지.}

  방문중 모든 학자들은 반드시 역사적, 과학적태도를 가지고 고구려 고대문명을 보아야 하며, 현대 정치로 문제를 가져와선 안된다고 하였다. 실지로 중화민족과 한민족의 역사는 반드시 강제로 구분하거나 나누어서는 안되고, 그러수도 없다.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의 우군교수는 생각하기를 고대 동아시아 국가체제와 현재 서방개념에 의한 국가관계는 서로다른 개념이기때문에 억지로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고대 조공제도에 의한 관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현제 국제법체계의 인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래 억지로 중국역사에 끼워 놓지 말라고.}



  세계유산에 등록된 항목 {중국이 등록한 한국의 문화유산 항목}

  고구려 도성3채: 오녀산성(요녕헝인), 국내성(길림집안), 완도산성(길림집안)
왕릉12채; 귀족무덤26채; 장군총1호부장무덤; 호태왕비1석.



사진 :


벽화<진식도> 고구려 귀족의 생활을 표현

장군총



호태왕비(20세기초 촬영)

호태왕비 탁본<br />




  <환구시보> (2004-07-02 제14반)


<출처 : 지누 북경유학생의 모임 http://cafe.daum.net/studentinbej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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