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뛰어난 인재도 아니다. 쿨하고 멋진 삶도 아니다.그러나 그냥 웃으며 살아갈 뿐이다. 앞으로 10년 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나는 웃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을 즐기며 달려갈 뿐이다.

 

처음 북경대에 온 것은 98년 여름이었다.  그 해 여름, 아버지가 베이징에 계셨던 덕분에 가족 모두가 중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아버지의 숙소는 지금은 유학생 기숙사를 위하여 허물어져버린 허름한 북경대 숙사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북경대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북경대는 단지 조금 유명한 대학교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북경대 동문 바로 밖에서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북경대는 딱 한번만 둘러봤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보고 싶은 책만 보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다. 그나마 독서는 나에게 즐거운 취미였기에 책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고 언어영역이나 사탐영역은 좋은 점수를 받았었다. 특히 역사가 왜 암기 과목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재미있는 소설과 같은 이야기였었다. 하지만 수학과 같은 과목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학교 성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만화 스토리 작가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이 스토리를 공부하던 형들과 누나들. 그리고 선생님은 대학교는 나오는게 나중을 위해서 더 좋다는 조언을 해주셔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내내 마음대로 행동했던지라 아버지의 분노는 하늘까지 솟아 있었고, 일단 베이징으로 떠나기로 했다.

 

베이징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300달러. 그것도 160달러는 숙소비로 지불하면 140달러로 3달을 버텨내야되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빛이 있었다면 지영이 누나였다. 단지 우리 아버지와 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뒷바라지를 해야했던 누나.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감사할 뿐이다. 어차피 놀 돈도 없었던 나는 죽어라 공부만 했다. 3개월만에 6급을 얻었다. 그리고 북경대 시험을 볼 것을 결심했다. 하지만 북경대에 갈 생각은 아니었다. 북경대라는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일본에 갈 생각이었다. 공부를 못해서 안하는게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다른 꿈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죽도록 공부했지만 북경대는 떨어지고 말았다. 고등학교때 너무 놀아서 아무래도 기본기가 부족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보같이 오기밖에 없는 바로는 다시 한번 북경대에 도전하게 된다. 솔직히 북경대에 입학 후의 전망이나, 혹은 북경대에 합격을 하고 일본에 간다는 계획은 이미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단지 오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역사과에 합격을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북경대 역사과를 졸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덧 시간은 빨리도 흘러서 지금은 북경대 역사과를 졸업하고도 민족사 석사과정으로 계속 북경대에 머물러 있다. 원래 나에게 북경대는 나의 꿈의 방해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꿈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있다.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자신이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해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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