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은 "사나이 대장부의 한 마디 말은 천금보다 무겁고 가치가 있다[각주:1]"는 말이다. 그런데 남아일언중첨금의 유래는 무엇일까? 


어제 성균관대학교 포럼에 참가해서 우연히 남아일언중천금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한국쪽에서는 유래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었고, 중국에서는 한국의 속담정도로 지정되고 있었다. 궁금한건 못 참는다. 찾는다-_-++





남아일언중천금의 의미적인 차원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군자일언 사마난추(君子一言, 驷马难追)인 "군자가 한 번 말하면 네 필의 말이라도 따라잡기 어렵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각주:2].그러나 해당 어구에서는 "네 필의 말이라도 따라잡기 어렵다"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천금보다 무겁고 가치가 있다"와는 표현 방식이 다르다.


이에 중국기본고적고(中國基本古籍庫, [디지털인문학/DH_DB] - [DH리뷰] 중국기본고적고(中国基本古籍库))를 통해서 검색을 해본 결과 자치통감(資治通鑒)에 "장부일언허인, 천금불이(丈夫一言許人, 千金不易)"의 구절이 보인다. "사나이가 한번 약속을 하면 천금을 주어도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마 자치통감에 나오는 위의 구절이 한국에 전파되면서 없어도 되는 "약속을 하다"가 빠지고, "천금에도 변화하지 않는다"가 "천금만큼 무겁다"로 변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1905년의 매일신보(每日申報)에는 "一言이 重千金"이라는 표현이 나오며[각주:3], 1950년의 자유신문에서는 "丈夫一言重千金"이라고 하는 현재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출현한다[각주:4]. 대장부를 의미하는 "丈夫"가 현대로 오면서 "남아"로 변화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위의 사항은 어렵게 검색을 한 것이 아니라, 중국쪽의 내용은 중국기본고적고(유료)을 이용하여 검색하였고, 한국쪽의 내용은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을 통한 검색으로 알게 된 것이다. 추가적으로 세종말뭉치의 역사말뭉치 부분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만, 귀찮으니까 패스하겠다.


이처럼 간단한 검색으로 많은 내용을 알 수 있다. 문제는 "男兒一言重千金"로 단순히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변형을 다양하게 시도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어느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내용이 검색 가능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능력을 배양하기 싫으면....그냥 무식하게 수백만권의 고전적을 뒤지면 된다. -0-!!!



  1. 다음 한국어 사전 :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047087 [본문으로]
  2. 《论语·颜渊》君子一言, 驷马难追 [본문으로]
  3. 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gonews/SearchGoNewsCondition.jsp?id=MIN19210211u00_ITEM_003 [본문으로]
  4.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npfp_1950_03_25_v0002_0510 [본문으로]
  1. 우와 2015.08.13 03:44

    이런 유래 정말 재밌어요 ㅎㅎ 잘읽고 갑니다!!!!

  2. BlogIcon 와우 2016.06.05 10:05

    좋은 정보 알아가요~^^

  3. 하탐 2021.10.14 21:55

    남아일언중천금. 근데 이 말은 너 따위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4. 하탐 2021.10.14 21:55

    지금 무얼 하고 살지 모르겠지만 죽어서 반성해라

모두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한국은 역사왜곡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확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영토 확장"이며, 위대한 업적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 영토확장에 연류되어서 고구려 군대에게 자신의 고향을 뺏긴 사람들에게도 위대한 업적이며 영토확장인가?! 자신의 고향을 뻇긴 사람들에게 광개토대왕은 침략자일 뿐이다. 


너무나 먼 과거의 일인가?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행동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하며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침략 전쟁이었으며, 한국은 그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도운 또 다른 침략자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침략행위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일제의 전통을 이은 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반대로 우리는 베트남에 얼마나 사과를 했는가? 우리는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가?


우리 입장에서의 고구려 영토 확장은 타인에게는 침략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의 베트남 전쟁 참전은 타인에게는 침략자가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의 일제 침략 행위를 긍정하는 발언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헌법에도 명문화시켰듯이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한국인은 침략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일제 침략에 대해서 비판하려면, 우리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하지 않겠는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


  1. 칼날의 황족 2014.07.04 10:19

    칭키즈칸은 영웅이라고 하면서 히틀러는 왜 파시즘 악의 상징으로 불리워지는건지..
    그러고보니 히틀러도 요즘 영웅화되어가는 것 같네요.그것도 히틀러의 모국인 독일이 아닌 피해자국가들에게서...

  2. elpsy 2015.10.10 14:08

    칼날의 황족님 사상이 이상한분이네요 칭키즈칸이 중국 사람 잡아서 생체실험하고 독가스로 죽이고 인종 말살 정책을 펼쳤나요? ㅎㅎㅎ 피해자국이 아니고 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 히틀러를 영웅시하겠죠 ^^;;

    • 어이가 없어서 2015.10.22 03:20

      그 당시에 독가스 있고 생체실험 개념이 있었으면 하고도 남을 위인이죠,인터넷 조금만 뒤져봐도 칭키즈칸이 어떤 인간인지 다 나오니까 헛소리 그만요~

  3. 라인 2019.11.16 16:43

    이 생각을 중학교때부터 가졌었는데 동의하는 사람 진짜없고 그게 어떻게 같냐 이러는 사람뿐...

  4. ㅇㅇ 2021.06.25 22:23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이 침략전쟁이라는 대목에서 웃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ㅋ남베트남 도와주러 간 거고 남베트남 내부 치안유지와 베트콩과 싸우는 게 언제부터 침략행위였나요? 탈민족주의 한답시고 고구려가 한국사라는 근거가 없다는 궤변을 싸지르더니 이젠 베트남 전쟁까지 헛소리하시는구느ㅛ

조선은 왜 한국의 역사일까요? 고구려는 왜 한국의 역사일까요? 당연히 한국의 역사인데 "왜?"라고 묻느냐고 화를 내시는 몇몇 분들이 보이는 군요. 그런데 화내시는 분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현대 역사학의 입장에서 조선과 고구려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인 이유는 엄청나게 간단합니다. 현재 한국이 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한국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가장 큰 명문으로 문화적 공통성을 가장 크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현재 한반도를 통치했다는 지리적인 배경적 명분도 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분일뿐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역사학에서 기초적인 논리와 근거가 보장되는 한 개개인의 "역사관"을 존중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고요? 극단적인 예시를 최근 일본의 아베총리가 해주었습니다. "침략의 정의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고 하여서 한국인 뿐만이 아니라 중국인을 비롯한 관련 국가 국민들의 분노게이지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치를 떠나서 순수하게 학문적인 입장에서는 아베총리의 발언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역사는 "A국이 B국을 공격하였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공격"이라는 단어 대신에 침략, 테러, 포위, 협박, 제압, 압박을 사용할 경우의 각각의 의미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될까요? 학술적인 맹렬한 토론과 증거제시보다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보다 의지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공격"을 한 것이지 "침략"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저희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영토 확장"을 이야기하지만, 그 시대의 고구려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는 침략을 당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각주:1].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역사의 소유와 계승은 인문학의 한계상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판단으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개개인이 모여서 만든 단체, 사회, 국가의 판단으로 정해집니다. 그렇기에 고구려나 한국의 역사를 현재 한국에 모여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라고 한다면 한국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중국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역시나 중국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 생각이 존중 받으려면 상대방의 생각도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역사를 뻇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시면 훨씬 더 넓은 역사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의 역사는 나의 역사이다."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떻습니까? 당신은 이제 모든 인류의 역사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1. 본 내용은 어디까지나 역사철학의 입장에서의 서술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대해서는 일본학계 내부에서도 비판이 강합니다. 다만 정치-외교적인 사항으로 인하여 단어가 변하는 것 뿐입니다. 후... [본문으로]
  1. 갈수록또라이 2013.05.24 23:00


    티벳도 중국땅, 위그루도 중국땅, 몽골도 중국땅,
    오키나와도 중국땅, 한국도 중국땅 하는

    중국인에게 먼저 물어보는게 어때요?


    진짜, 황당한게,
    그 큰 땅덩이에도 만족없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짱께들이라는..


    자유선거하고, 인권 존중해라고 말해도, 온갖 욕질하면서 달려들고.
    그럼 됐다,니들 존중해서, 중국인들은 어디가도 영원히 선거권 안주겠다고 해도
    온갖 욕질하면서 달려들고..

    짱께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함?

    짱께들 실체알고, 한국인들의 고통,불합리, 한국 역사의 우울함이
    진정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전부 알게됨..

    그리고,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똥통에 한국인,일본인,중국인,돼지를 넣으면,
    제일먼저 일본인이 도망치고, 그다음은 한국인, 최후는 돼지가 도망친다.
    중국인은 똥통조차 자신의 집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말들 전부 이해하게 됨..
    짱께와 짱께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는 대화할수 없고, 조롱만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됨.

    • 라기보다 2013.05.25 02:32

      网上 관심종자

  2. 익명 2013.05.25 12:44

    비밀댓글입니다

  3. 익명 2013.05.25 12:46

    비밀댓글입니다

  4. 익명 2013.05.25 12:48

    비밀댓글입니다

  5. 익명 2013.05.25 12:48

    비밀댓글입니다

  6. 익명 2013.05.25 12:56

    비밀댓글입니다

  7. 익명 2013.05.25 13:02

    비밀댓글입니다

  8. 익명 2013.05.25 17:27

    비밀댓글입니다

  9. 익명 2013.05.26 14:50

    비밀댓글입니다

  10. 익명 2013.05.26 14:59

    비밀댓글입니다

한국의 남자들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거친남자들이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짐승돌"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재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는 어디까지나 "선비"나 "신사"와 같이 부드러운 남자이다. 그리고 남자들도 여자들의 취향대로 날이 갈 수록 부드러워지고 있다. "마눌님"이나 "여친님"이라며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탈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이런 시대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강한 여성들의 역사이다. 우리는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작품 속에서 이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온달전을 생각해보자. 온달전은 바보인 온달이 엄친딸(공주+미모+능력)인 평강공주를 만나서 성공을 하게 된다. 만약 평강공주가 없었으면 온달은 그냥 동네바보형일 뿐이다.

고려시대의 단군신화를 살펴보자[각주:1]. 단군신화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단군의 이야기보다는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웅녀는 100일동안 쑥과 마늘만을 먹는 노력을 바탕으로 여자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된 이후에는 댕대 최고의 지도자인 환웅에게 직접 프로포즈까지 하는 인물이다. 심지가 굳고 적극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기는 여성을 천시하는 유교가 지배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에서는 강한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장님인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심청이나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높은 집안의 남자를 사로잡는 춘향이는 유교문화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강한여성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서양의 문학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한반도의 강한 여성상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도 익히 아는 서양의 작품에서 여성은 모두 약하고 소극적인 인물들이다. 신데렐라는 왕자님의 은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존재이며,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에게 빌붙어 살다가 나중에는 왕자님에게 구출이 되는 하는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여성상이다. 그에 비하여 한반도의 여성들은 얼마나 적극적이고 강한가?!



그래서 결론이 머냐고? 한반도의 여성은 강하다. 괜히 개기다가 국물도 없다. 그냥 만사 포기하고 중국남자처럼 해탈하자. (중국의 새로운 삼종사덕(三從四德) - 약한 남자) 응?!




+....반쯤 농담으로 쓴 글이다....근데 농담이 농담이 아닌거 같다..-_


  1. 단군신화는 신라말기 고려초기에 생겨난 설화이다 [본문으로]
  1. 샐러리봉 2013.02.17 10:21

    온달의 짝은 평강공주인데요
    착각하신듯...
    낙랑은 호동이죠 그넘땜에 자명고 찢고 망국...
    TNM미디어 통해 젛은 포스팅에 항상 감사드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2.17 10:28 신고

      평강 맞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말도 안되는 잘못을 했군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 헤헹 2013.02.25 17:03

    단군신화는 모두가 알고 있다 싶이 -> 알고 있다시피

  3. ㅇㅇ 2013.03.21 16:03

    사실 유교라는것이 온순하다기 보다 강인한것 아닐까요? 유교의 여성에게 덕목을 부각시키려다보니까 그런 강인한 여성상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3.03.25 08:05 신고

      제가 정확하게 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유교의 여성관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속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글루스쪽에서는 최근 다시 한번 "환빠대전"이 발생한듯 하다. 솔직히 과거에는 이 블로그에서도 심심풀이 땅콩으로 소위 "환빠"들의 헛소리를 반박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역사학도로서의 사견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대한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 역사학도로서의 부담감.
차라리 본인이 역사전공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관련 글을 써내려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인은 공개적으로 역사전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영역에 대해서 일반인보다 비교적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보지도 않고, 볼 필요도 없는 증거자료들을 레포트 작성하듯이 일일이 찾아서 나열해야한다. 물론 관련 논문이나 저작을 비롯한 학계의 흐름도 나열해주어야 한다.

만약 본인의 전공분야라면 비교적 쉽게?! 쓰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소 수십편에 이르는 관련 논문과 저작을 읽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겨난다. 부담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럼 본인의 전공만 쓰면 되지 않냐고? 그쪽이야 말로 민감함의 극치를 달리는 지점이기에 부담스럽다. 본인의 전공은 북방민족사이며, 한중간의 민감한 사안인 고구려나 발해도 다룬다. 본인은 지도교수님의 생각에 동의하며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로 보며, 고구려사는 어디까지나 고구려인들의 역사"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짱깨로 매도되기 쉽상이다. 이런 부담감에 석사졸업논문도 중국인들에게도 생소한 소그드의 한반도 유입이라는 주제를 채택했다.


2) 환빠들의 사료적 문제.
흔히 "환빠"라고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료"이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역사 연구에서 사료는 기본이다. 그 뼈대이다. 그 정수이다. 그런데 "환빠"라는 사람들은 이 사료부터가 엉터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료 반박은 어렵다고 그보다 어려운 것이 없고, 쉽다면 쉬운 부분이다. 물론 대부분의 환빠들의 헛소리는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고문 소양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고문을 모른다는 것은 마치 더하기와 빼기를 못하면서 수학을 하겠다는 것과 그다지 다를바가 없다. 최근에는 수 많은 현대 한국어 번역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접근성을 높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역사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연구자가 고문의 원문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나는 병신이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한자가 나오고, 해석이 나오면 그냥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환빠들의 근본적인 문제인 사료를 비판을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환빠들이 "식민사관에 의해서 해석한 결과"라고 하면 그것을 믿어 버린다.  식민사관조차도 그나마 사료라는 기초라도 있었다. 환빠들은 고문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소설을 전개하거나, 고문을 언급하더라도 원래 고문을 마음대로 변조한다.

원문 : "갑은 을나라를 침략하였다"
환빠식1 : "갑은 을나라에게 침공당하였다"
환빠식2 : "갑은 을나라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대체 어떤 "학문"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허용하느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백날 설명해도 기본적으로 고문을 볼 수 없는 일반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결코 일반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무지를 이용해 먹는 환빠들의 문제이다.


3) 환빠들의 논리적 문제.
환빠의 논리는 언제나 결국 "한국 만세!"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은 "식민사학에 세뇌당한 병신들"이다.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반박을 해주지만, 솔직히 이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다.

과거에는 분명히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거일 뿐이다. 오히려 박정희 독재시절을 정점으로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민족"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선전하였다. 그 결과 어떠한 역사학적 증거도 없는 고조선의 세력범위가 당당하게 중고등학교 "국사"강의에 사용되고 있다. 아니 역사학적으로 엄격하게 따져서 "국사"라면 "대한민국사"를 공부해야지 그 이전을 공부하는 것은 합당하지도 않다.

역사학의 방법론은 이제는 세계 공통이다. 기본적으로 사료를 보고, 사료를 비판하고, 사료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없이 마냥 무조건 "식민사관"이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하다 못해서 본인 스스로 "탈민족주의자" 혹은 "인간사관"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식민사관"이라고 근거 없이 매도하니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간략하게 말하면, 과거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싶다는 역사학도로서의 열정과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니 맘대로 사세요~"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에휴...싸워서 머하랴. 사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박정희식 우민정치의 희생량인걸.....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어떻게 보면 아직 정열이 살아 있다는 것이겠지.......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설명해드립니다. 환빠에 대한 비꼼이 좀 더 많아 지기는 하겠지만 말이죠.


  1. ㅇㅅㅇ? 2011.01.15 02:58

    짱께 역사 전체가 거짓말에서 시작해서,거짓말로 끝난다고 본다.
    왜곡해도 짱게니까, 땅덩이 크니까, 인구 많으니까, 무죄.
    거짓말해도 짱게니까, 땅덩이 크니까, 인구 많으니까, 무죄.
    우기면 진실 짱게니까, 땅덩이 크니까, 인구 많으니까, 무죄.

    짱께들은 정말 세상 편하게 살지..

    우기면 땡이니까.. 진짜 배울게 없어서, 짱께 역사를 배우러 갔다니..
    참 니 인생도 불쌍하구나.
    (북한으로 김일성,김정일 어록 배우러 간 것하고 차이도 없잖아..
    학문으로서 존재가치가 zero)

    하지만, 한국 책임은 아니니까, 니 실수를 한국에 전가하지 말그라.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5 07:38 신고

      정확히 당신 스스로가 "짱깨"와 동일한 일을 하고 있군요. 푸하하하....바보는 평생 바보인가..후..

    •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2011.04.10 14:56

      역사들 중에 왜곡된거 많을 겁니다. 딴나라 역사는 거짓을 뒤집어씌워 왜곡한거고 우리나라 역사는 무조건 진실이고,.. 이런식으로 생각하는건 환빠랑 그리 다를게 없습니다. 울나라 역사도 냉정하게 보고, 딴나라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봐야죠. 말은 늘 쌍방을 들어봐야 하는 겁니다.(물론 일본에서 한국 식민사관 연구하는 극우 찌질이들은 애초에 제외하고....)

  2. ㅇㅅㅇ? 2011.01.15 03:07

    군대 간다고? 그나마 머리에 뭍은 핏자국은 조금 지울수 있겠네.

    군대 가서 까지, 저번에 했던 것 처럼..

    대만과 국교 단절했으니, 대만이 한국에 어떤 짓을 해도 무죄 같은
    피장파장 짱께 논법을 한국 군대가서도 써먹다가, 참을성이 다한
    고참에게 두들겨 맞고, 의가사 제대한다고 난동이나 부리지 말렴.

    한국 군대가 이상한게 아니라,
    니 습관, 짱께식 논법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좀 깨닳아.. 너 자신을 위해서.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5 07:41 신고

      쯔쯔....군대가 비정상인거거든요?! 자연적인 인간의 차원에서 몇 년 동안 일정 수의 남자들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비자연적이며, 그런 비자연적인 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다양한 "수단"이 동원되는지 생각을 좀 해보시길....쯔쯔..

      그리고 상대주장을 함부로 곡해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마구잡이로 타이완과 국교를 단절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지적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타이완의 모든 문제가 없어진다고 한 적은 없소이다. 한국어 읽기부터 다시 배우고 오도록-0-

    • 딱 군대체질인 분이시군요. 2011.04.10 14:58

      우리나라에서 남자를 군대 보내는 이유는 지금도 전쟁중인 국가 이기 때문이지 원래 사회제도가 그런건 아닙니다. 직업군인측이 윤리나 실력면에서 징병된 군인보다 더 뛰어난건 애초에 사실이고, 결정적으로 군대가서 쳐맞고 욕먹고 구르는게 정상이라 생각하시면 아예 군대 한번 더가시지 그러십니까. 난 머리 돌될까봐 가는게 무섭던데.

  3. ㅇㅅㅇ? 2011.01.15 03:08

    원래 환빠라는 것은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과 대중화에 의해서
    넷의 한귀퉁이에서 벌어진 그냥 찌질거리는 가쉽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거리에서 얼뜨기 잡아다가,조잡한 단군상에 절하게 하고
    덩치들 동원해서, 삥뜯는 변종 개독 무리나 있던것.

    이 사안이 확대된 것은

    인조이 재팬시절, 쪽발이들 놀려주려고 위 같은 내용을 복사,붙여넣기
    한 사람들에 대해서, 쪽국 특유의 흠 잡고,확대해서 몰아 붙여서
    이미지 조작하기가 확장의 시초였고..

    거기에 짱께들까지 지들 무단 카피행위에 대한 쪽팔림을
    조금이나마 면해보려고,정규 언론까지 동원해 개지롤 떤것..
    (한국놈들이 중국 문화 훔치니, 울 중국인은 한국 제품 카피해도 무죄)
    (특유의 짱께식 논리...피장파장 논법)


    다 떠나서,애초에 너 같은 짱께 간첩들이
    정색하고 떠들 사안도 아니었고..
    그저 지 잘났다고,깝쭉거리는 몇몇이 덤벼들어서 헛짓거리 할뿐.
    관심있는 사람도 없었어..

    다만, 짱께들의 그 오만방자한 태도와 굴절된 피해자 가면 쓰기를
    보고서.짱께들의 역사야 말로,
    지네가 욕하는 한국 환빠와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지..

    짱께 역사는 환타지이고, 짱께 무협 드라마와 똑같이..사실성 Zero

    허풍과 과시욕,열등감으로 점철된 거짓말이 짱께 역사의 정체인걸
    알아서, 다행.. 더불어 쪽발이들도 짱께와 비슷한걸 알았음.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5 07:37 신고

      환빠라는 것이 언제부터 태어났는지부터가 잘못 알고 있군요. 이미 70년대부터 태동해왔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외의 말은 언급할 가치도 없군요. 제가 스스로를 탈민족주의 혹은 인간사관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 평생 모르시겠죠^^:: 그냥 그렇게 사셔요.

    • ㅈㅂ 고등학교 수준의 역사라도 알고 떠드셈 2011.04.10 14:53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졸으신듯. ㅡㅡ;

      떠드는꼴 보아하니 정말 역사의 기본 탐구방향에 대해 반의 반의 반도 모르는듯.;

  4. 만두군 2011.01.17 13:52

    "이제 그분들이 몰려 옵니다."

    =_=;

    그냥 뭐 말이 안되죠. 자기들 말 안믿으면 식민사학론이라 밀어 붙이니 원. 인디언 한국인얘기보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고.. 네바다주가 '네개의 바다' 라는 그 해석질은 무슨 말장난인지.. 이스라엘 문자를 보며 한글과 비슷한 문자를 보여주며 이것이 가람토 문자의 영향이다 라질 않나... 4대문명은 환국이 기원이라질 않나...


    안믿으면 그냥 식민사학 식민사학... 에휴.. 임진왜란이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글에 어이없어서 글을 다니, 그게 다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거라질 않나.. 어휴..

    아, 정말로 궁금한 건데 말입니다.

    실제의 '식민사학'은 어떠한 내용으로 이뤄졌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환독식으로 '우리주장빼고 전부 식민빠들이 만든 날조' 라는 괴론 말고 말입니다.=_=;;

  5. 공감합니다. 2011.01.21 03:29

    기원전하고도 몇천년전의 환제국인가?

    우리 한국의 영토가 중앙아시아를 넘어 수메르 지역에 까지 이르렀다고

    호도하는 자들이 근거로 삼는 자료가 고작 조선시대 100년전 사료를 가지고

    "보아라..100년전에 어떤 사람이 쓴 책에서 몇천년전에 우리나라는

    지구를 지배했었다..우리는 식민사학에 의해 속고 있다"

    이렇더군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몇천년전의 역사를 풀어 나가기엔 아득한데

    그 사람들은 100년에 집착하더군요.

    100년...오랜 세월이죠. 하지만 10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몇천년전의 역사를 유추해 나가는데는 거기서 거기죠.

    전 솔직히 중국의 은나라같은 고대왕조도 부정적으로 보지만

    (한개의 국가가 안망하고 천년동안 지속됬다는게 이상함)

    중국은 그나마 고대왕조를 입증할 만한 유물이라도 나왔잔아요.

    환제국인지 몬지를 입증할만한 유물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원래 있었는데 일본이 일제시대때 다 태워버렸다..고로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이 장애아들 수준같아서 동조하기 힘들었습니다.

    환빠들 맹신하는 그 책 이름이 모더라....4글자인데..무슨 고기인가 하는 책이던데..

    그 내용이 판타지...설화와 진배없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그 무슨 고기인지 몬지 하는 책이 사이비 종교와

    강하게 유착되나 봅니다.

    환빠들의 헛소리만 없었으면 중국에 반한감정이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죠.

    걔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믿는 맹신도들에 불과합니다.

    종교엔 탄생설화가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이 판타지적이면 판타지적일수록

    더 사람을 미혹시키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2 13:16 신고

      은나라를 아마 존재했을듯 합니다. 언급하신대로 유물이 나와있으니까요. 다만 현재에 "국가"개념과는 상이했을듯 합니다. 흔히 중국의 왕조를 "제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상인데.....은나라는 "제국"은 아니었을듯 합니다. 크기로나 제도로나 어느 면으로 봐도 말이죠.

    • 환단고기죠 2011.04.10 15:06

      역사서로도 소설로도 실패한 글이죠. 거기다가 일제 애들이 환빠질의 증거가 될(거라고 생각하는) 증거 문화재들 전부 다 태웠다고 하면서 그 일제애들이 이씨조선을 관광보냈으니 졸라 잘헀다는 식으로 말하는 돌아이들은 대체 어떤식으로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타문화 중심주의가 극단적으로 발현되면 이런식의 논리가 생길수 있는건가..; 자기 문화는 외국에 대고 말하기 쪽팔리다 생각하니까 이런식으로 소설쓰고 광신하는 건지... 하여간 환빠란 군중심리와 인지부조화가 집단화되어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수 있겠네요.

  6. MT 2011.01.22 12:33

    안녕하세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바로씨와 동갑인 직장인입니다.
    고교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쳐 고구려, 발해는 우리의 선조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수도였던 환인의 경우 만족 자치현이고,
    그 주위에 많은 만족 자치현과 조선적 자치현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로는 동북쪽 조선족은 조선말 일제시대에 넘어갔다고 배웠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고조선, 고구려, 발해지역은 원래 만(주)족의 지역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 동네에 사는 만족이나 조선족 한족은 가만히 봐서는 별로 구분이 안되는것 같애요,
    바로씨는 조선족 만주족 한족을 바로 구분하실수 있나요?
    출장가서 그동네출신 조선족애들한테 물어보면은,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로 표시가 난다던데 ㅎㅎ

    한족이야 범위가 너무 넓으니까 빼고, 조선족과 만주족의 같은점이나 다른점을 좀 이해되게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군대 가시기 전에 한 번 설명해주세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2 13:28 신고

      일단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최소한 저희가 배울 때에는) 단일민족사관에 입각한 교육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일민족사관은 역사학의 하나의 관점이며, 현재는 소위 "한민족"이라는 민족이 결코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공동체임이 학술적으로 명확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개념이 단일"문화"사관이라는 것인데 고구려와 발해가 한반도와 문화를 공유했다는 점인데, 일단 학술적으로 아예 성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상당히 애매합니다.

      언급하신 질문은 사실 대답하기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대답을 하려면 현재 가지고 계실 "민족"이라는 개념부터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음...최대한 간략하게 해보겠습니다.


      저희들이 한민족, 한족, 일본인등으로 구별하는 민족개념은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합니다. 실제 역사해석이나 하다못해서 현실에서도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과학적이지도 않고, 학술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들은 "핏줄"로 민족을 구분하고는 하는데, 한국인 부부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미국에 입양이 되어서 미국인으로 살아온 사람은 한국인일까요?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완전히 "미국"인데 말이지요?! 반대로 비록 외국인에게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출생해서 한국교육을 받고 한국인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평생 외국인일까요?

      이런 모순이 생각해보시면, 민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애매한 것인지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조선족과 만주족의 명칭으로 넘어가서 이 둘은 어떻게 구별을 하느냐? 사실 혈연적으로는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활동지역이 갔았으며, 쌍방간의 혼인도 자주 있었으리라 생각되니까 말이지요. 다만 후세에 각각의 언어와 풍습상의 특징을 바탕으로 조선족과 만주족이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외모상으로는 사실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DNA로도 그랬었는데, 이건 제가 자료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패스하고요. 언급하신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로 아직까지 대략적으로 구별은 가능합니다만, 어디까지나 40이상이나 가능하지, 젊은층은 사실 힘들답니다. 그리고 그런 구별은 민족에 대한 구별이 얼마나 애매한지 나타내준다고 봅니다.

      간단히 정리해서, 만주족이니 조선족이니 하는 것은 쌍방간의 혼혈이나 문화적 교류를 무시한 행위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가 교류의 측면을 보다 강조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현재의 단일민족주의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초간단정리 :
      공통점 :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함. 혈연적으로 많은 연결점이 있음.
      차이점 : 언어(라고 하지만 만주어는 이미 거의 사어라서-_), 풍습(사실 비슷한것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장쪽은 조금 다른지라...)

      그리고 전체적인 역사적인 사항에 대한 고민은 짦게 적기가 힘들기에..음.....김한규 교수님의 "요동사"을 추천해드립니다.

  7. MT 2011.01.23 22:03

    답변 감사합니다. ^^
    민족이 애매한 개념이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네요,

    한반도에 토착민들이 있었고(삼한)
    동북쪽 사람들이 내려와서 섞이고 (백제,신라,가야)
    그래서 뿌리를 그쪽에서 찾는 거고(고조선-조선, 고구려-고려)
    맞나요???ㅎㅎㅎ


    발 달린 사람들이 어딘들 못가겠습니까만,

    혈연과 문화,
    뭔가 설명하긴 힘들어도 남아있는것 같네요,
    여진족, 금나라, 신라
    백제, 일본,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5 08:32 신고

      동북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북쪽은 물론이고, 서쪽과 남쪽에서도 도래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8. MT 2011.01.23 22:19

    나이도 동갑이고,
    바로씨는 역사를 전공하고 IT분야게 관심이 많고,
    전 IT쪽 일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고,
    한번 만나뵙고 싶은데,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가시니 ㅎㅎㅎ
    몸 건강히 돌아오기를 빌겠습니다.

    군대 먼저 간 선배로써 말씀을 드리면 ㅋㅋ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랑 몸으로 겪는 것이랑 다릅니다.

    제가 수색대를 나왔는데,
    제 동기중에 여자친구랑 해어지고 자살징후를 보이는 녀석이 있었어요,
    - 군대에서는 자살징후도 관리합니다.
    말이 많던사람이 말이없어지거나 말이 적던사람이 말이 많아진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관물대를 정리한다, 등등
    그녀석이 자살징후를 보이다가 유격훈련을 받고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수색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면 육체에 극한까지 갑니다.ㅎㅎ
    올바른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배운다기 보다는 느끼는게 많아요,
    어차피 역사도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듯이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을 보게되죠,

    추울때 입대하셔서 고생이 많으실텐데, 잘 다녀오세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25 08:33 신고

      하하...전 자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제가 자살을 할 일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시도 자체도 말이죠^^:::

  9. 익명 2011.09.30 16:22

    비밀댓글입니다

  10. 2016.07.05 12:50

    Native American - Amazing Grace (in cherokee) 유투브에 치세요.
    : 체로키조선 애국가 1

    유우내애이이 라앙나앙 이이유우왜애지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대애이이
    : 유내이랑낭 이유왜지 니가 구영대이
    ; 유내(오직 냇물)이 랑낭(힘차고 밝구나) 이유왜지(?)
    니가(사람이) 구영대이(언덕을 맞이하게 돼)

    ; 오직유(唯), 힘있을랑=힘찰랑(勆), 밝을낭(朗),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너:사람니(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나악워언조오서언 위이유우로오세애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보옹나앙
    : 낙원조선 위유로세 니가 구영복낭
    ; 낙원조선 위유(위에 있음이)로세
    니가(사람이) 구영(언덕을 맞이하니) 봉낭(복되고 밝구나)
     
    ; 즐거울낙(樂), 동산(園), 아침조(朝), 고울선(鮮), 있을유(有), 너;사람니 (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복복(福), 밝을낭(朗)

    가아세애이 로오이이 우우내애치이리이 이이유우로오래애 애이나아
    : 가세로이 우내치리 이유로래 애이나
    ; 가세로이(가쪽=바깥쪽으로) 우내치리(치우께서 안에서 다스리시니)
    이유로래(이런이유 때문이래) 애이나(애가 태어나)

    ; 어리석을치(蚩),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우내(尤內)=치우안,
    집우(宇), 안내(內), 우내(宇內)=온세상, 우내(尤內)=우내(宇內),
    다스릴치(治),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자아비이내애려어 치이유우질리이 우우여어엉 내애이이우우 래애여엉
    : 자비내려 치유진리 우영 내이우 래영
    ; 자비내려 치유(다스림이 있으니) 진리(로다)
    우영(치우를 맞이해라) 내이우(내가 치우=내가 치우의 자손이로세)
    래영(오시니 맞아라)

    ; 사랑자(慈), 슬플비(悲), 다스릴치(治), 있을유(有), 참진(眞), 다스릴리= 다스릴이(理),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맞을:맞이할영(迎),
    올래(來)

    왜애이일로오 니이가아 라알리이 소오리이 자아유우 조옹허엉 이이유우우
    : 왜일로 니가 랄리소리 자유종헝 이유
    ; 왜일로(무슨일로) 니가(사람이) 랄리(랄라리=날라리=태평소)
    소리(를 듣니?) 자유(롭게) 종헝(종횡=돌아 다니는) 이유(로세)

    ; 너;사람니(你), 스스로자(自), 말미암을유(由), 세로종(縱), 가로횡(橫),
    종횡(縱橫)=거침없이 마구 오가거나 이리저리 다님,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니이가아 기이러언 뢰애지이소오리이 아아니이? 대애이일로오 니이가아
    : 니가 기런 뢰지소리 아니 대일로 니가
    니가(사람이) 기런(그런) 뢰지(벼락의) 소리 아니(?) 대(큰)일로
    니가(사람이 아니?)
     
    ; 너;사람니(你), 우레=천둥=벼락뢰(雷), ~의=어조사지(之), 큰대(大)

    우우나앙따앙지이 야아메애이이로오 조오저언자앙여엉 이이리이
    : 우낭땅지 야메이로 조전장영이리
    ; 우낭(치우 밝은) 땅지(땅의) 야메이로(들과 산으로)
    조전장영이리(조각품들이 길이 빛나리)

    ;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밝을낭(朗), ~의=어조사지(之), 들야 (野), 새길조(彫), 새길전(鐫), 조전(彫鐫)=조각품, 길장(長), 빛날영(煐)
     
    조오시어언나악워언 이이뤄어지이여어 조오히이 와안메애이이대애지이
    : 조시언낙원 이뤄지여 조히 완메이대지
    ; 조시언(좆이 얼운=남근숭배사상=제일로 좋은)낙원 이뤄지여(이루어져)
    조히(좋게) 완메이대지(모두=한 산이 돼지)

    ; 즐거울낙(樂), 동산원(園), 모두=하나=완전할완(完)
     
    유우메애이이 라앙나앙 이이유우왜애지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대애이이
    : 유메이랑낭 이유왜지 니가 구영대이
    유메(오직 산)이 랑낭(힘차고 밝구나) 이유왜지(?)
    니가(사람이) 구영대이(언덕을 맞이하게 돼)

    ; 오직유(唯), 힘있을랑=힘찰랑(勆), 밝을낭(朗),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너;사람니(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나악워언조오서언 위이유우로오세애이 니이가아 구우여엉보옹나앙
    : 낙원조선 위유로세 니가 구영봉낭
    낙원조선 위유(위에 있음이)로세
    니가(사람이) 구영(언덕을 맞이하니) 봉낭(복되고 밝구나)

    ; 즐거울낙(樂), 동산원(園), 아침조(朝), 고울선(鮮), 있을유(有), 너;사람니 (你), 언덕구(丘), 맞을:맞이할영(迎), 복복(福), 밝을낭(朗)


    Native American - Amazing Grace (in cherokee)2 유투브에 치세요.
    : 체로키조선 애민가 2

    우우내애 라아나아 이이유우왜애지이 니이가아 구우여어해애이이
    : 우내 라나 이유왜지 니가 구여해이
    ; 우내(온세상=치우 안) 라나(살고 태어나니) 이유(가) 왜지(?)
    니가(사람이) 구여해이(거저 줘라)

    ; 어리석을치(蚩), 더욱우(尤)=치우(蚩尤)=치우천왕, 우내(尤內)=치우안,
    집우(宇), 안내(內), 우내(宇內)=온세상, 우내(尤內)=우내(宇內),
    다스릴이=다스릴리(理), 말미암을유(由), 너;사람니(你), 건지다: 돕다:구원할구(救), 줄여(與), 구여(救與)=거저주다

    나악워어조오여어 위이유우로오세애 니이가아 구우여어해애이이
    : 낙워 조여 위유로세 니가 구여해이
    ; 낙워(즐거이) 조여(줘라) 위유(위에 있음이)로세
    니가(사람이) 구여해이(거저 줘라)

    ; 즐거울낙(樂), 있을유(有), 너;사람니(你), 건지다:돕다:구원할구(救),
    줄여(與), 구여(救與)=거저주다



    저작권등록 되어있고요, 비상업목적으로 마음껏 쓰십시오.


    이선원입니다. 010-2494-5484



    유투브에,

    조선말의 뿌리와 조선의 역사 1 ~ 34, 보십시오 ~ ~

2010년 11월 25일, 서안의 시엔양咸阳국제공항의 확장 공사장의 한 고묘에서 2400년전의 사골국이 발견되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서안은 여러 왕조의 수도였기에 한국의 경주처럼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굴된 전국시대 진秦나라 무덤 역시 높이 5미터, 넓이 3미터로 진나라 왕급 무덤에서 300m정도 떨어진 부장묘급으로 청동정鼎과 청동종锺 및 청동받침용 칠기만이 남아 있는 그저 그런 무덤이었다[각주:1].

그런데 발견된 청동정 안에서 500ml정도의 액체를 발견하여 분석한 결과 닭과 유사한 동물의 뼈가 10개 이상 발견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정은 고기를 끓이기 위한 기구였기에 발굴팀은 해당 액체를 우선 사골탕으로 판단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의 사골탕인지 분석을 하고 있다.  과거에 뼈가 들어가 있는 청동기가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국고고학계 최초의 일이다.발굴팀은 2400여년전의 사골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은 기후적으로 건조하며 묘가 완전히 밀봉되었으며 아직 도굴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건조해서 말라붙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액체상태로 보존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물론 밀봉된 상태에서 완전건조지역이 아닌 적당한 습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이론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긁적....그리고 일단 사골탕이라고 번역하긴 했지만...차라리 "삼계탕"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1. 사실 이 정도가 그저그런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무서운 것이지만-_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cosmopolitan815.tistory.com/ BlogIcon cosmopolitan815 2010.12.13 07:36

    2400년 전에도 닭을 삶아 먹었꾼..-_-흠

  2. Favicon of http://twitt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10.12.13 21:03

    참 오랫동안 우려냈네요(......)

신석시 시대 요하일대에는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리고 지금 중국과 한국에서는 각자 요하문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설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중국의 주장만 있고, 한국에는 한국의 주장만 있다. 대중에 정보를 전달해야되는 신문에서는 민족감점만 일으키고 논리와 증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1) 요하문명(홍산문화)은 무엇인가?
1980년대 랴오닝(遼寧)성 요하 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앞선 시대의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요하일대에는 기원전 7천년에 이미 독자적인 신석기 문화가 존재하였고, 기원전 3500~3000년쯤(홍산문화 후기)에는 이미 초기 국가형태가 갖추어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2) 중국학계의 의견은?
중국학계는 발굴 초기에는 홍산문화의 주도세력이 동이족이나 예-맥족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발굴 후반기로 갈수록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황제의 토템과 발굴유물이 일치한다고 주장하면서 황제와 연관을 시키려는 학자(레이광젼 雷广臻)들이 나타났다. 특히 곡옥에 대해서 용으로서의 상징성을 이야기하면서 중화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아직 논쟁이 진행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일 뿐이며, 중국의 형성에서 결코 황하문명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융합하여서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강한 만큼 해당 의견은 제대로 된 학설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각주:1].

중화제일용이라고 말하는 곡옥. 근데 용이려나...



3) 한국학계의 의견은?
한국학계에서는 요하문명에 대해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소수의 곡옥이나 관련 유물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홍산문화가 한반도문화의 원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선문대 이형구 교수(고고학)는 중국의 ‘요하문명론’에 대응해 ‘발해문명론’까지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곡옥이나 대응 유물은 매우 소수이며, 요하부터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연결점이 없어서 확실한 증거로 사용되지는 못한다. 하다 못해서 동이족과 고조선의 연결지점은 고사하고, 고조선이 어느 정도의 정치체계로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요하기원설은 근거가 매우 약한 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각주:2].

무엇으로 보이는가? 용? 돼지?



4) 요하문명은 한국과 중국 모두의 것이다.
요하문명은 분명 신석기시대에 요하지역에서 발전했던 문명으로 보인다. 그럼 그렇게 발전한 문명이 현재의 중국대륙과 한반도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은 당연하다고 본다. 오히려 "요하문명이 중국대륙에만 영향을 주었고, 중국대륙만이 그 영향을 이어 받았다!"라고 하거나 "요하문명은 한반도에만 영향을 주었고, 한반도만이 그 영향을 이어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로 느껴진다. 마치 프랑스가 "로마의 영향은 프랑스만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요하문명이 한반도와 중국대륙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기에 요하는 현재 한국과 중국 역사 모두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대체 무엇을 뺏고 말고 한단 말인가[각주:3]?

  1. 중국사학계는 다민족주의로 간다고 말을 하면서도 허구의 인물인 황제까지 끌어들여서 무리한 한족중심설로 가려는 일부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스스로가 기본적인 논조라고 말하고 있는 다민족주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행위일뿐만이 아니라, 역사학과 고고학의 방법론에서도 어긋나는 행동이다. 하상주시대에도 다양한 "집단"들이 혼재하며 살아갔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계속 들어나고 있는 만큼 허구의 황제의 토템까지 도입을 하는 무리수보다는 황제의 토템 자체가 다양한 집단들의 토템이 융합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그러한 다양한 집단 중에 요하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본문으로]
  2. 한국사학계의 웃긴 점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한국에 융화되었고, 한국이 영향을 준 것에서는 찬란히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마문명이니 요하문명이니 하면서 한반도가 영향을 받았고 우리안에 융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반대로 일본에 전해진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융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시하며, 한국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들은 역사조작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작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우리 모두가 고조선의 유물이 비파형동검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런데 이에 대한 증거는 층위나 지리적 위치가 "그.럴.것.같.다."라는 추측밖에는 없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교과서에 명시해놓았다. 이런 것이 역사조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본문으로]
  3. 같은 논리로 동이나 고구려도 누구만의 것이 아니다. 동이자체가 통합된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젠 너무나 명확해 보이며, 동이의 범위를 보면 한반도와 중국대륙 모두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동이는 무조건 그냥 한국인의 조상이고, 절대 중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이건 대체 먼 논리인가? [본문으로]
  1. ㅎㅎㅎㅎ 2010.09.10 11:59

    한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위치상 현재의 몽고 과거의 거란, 흉노, 선비, 오환 등등의 문화일 가능성이 제일 높지 않나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10 16:42 신고

      음.....그나마 흉노가 시대적으로 가깝지만 그래도 몇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 물론 그쪽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몽고야 말로 진정한 후손이다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2. Favicon of https://beijinga4.tistory.com BlogIcon 북경A4 2010.09.11 08:42 신고

    음... 역시 바로님은 이렇게 생각 할 거라고...추측은 했더랍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어떤 역사를 누구의 것으로 단정짓는건 정말 어려운것 같아요. 그 때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적힌 글을 보고 분석해야 하니...
    수백년이 지난 후 이명박 자서전을 보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명박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라고 하면 안되잖아요^^

    암튼...요것저것 고민이 많던 한 주가 지나가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3. z 2010.09.11 15:26

    한국사학계의 웃긴 점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한국에 융화되었고, 한국이 영향을 준 것에서는 찬란히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
    놀랍군요. 중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출판된 사학관련 책과 논문,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읽으셨나봅니다?

  4. 시골 2010.09.11 21:23

    예전에도 올린적이 있고, 본문과도 좀 중첩돼지만,
    한국에 중국이 요하문명을 가져간다고 알렸던 분의 취지도, 아시아 공동부분의 문명을 중국만의 것으로 하려는 것은 틀렸다라는 의미였는데.. 이게 한국으로 이상하게 전달되어서 요하문명은 한국만의 것이라는 투로 됀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회관점의 변화로 인한 변화도 있지만, 현재의 정치, 외교, 밥줄(?)등의 영향으로 인한 변용이라면 경계해야하고,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아시아의 역사학자분들은 조심을 한다고 보지만,

    일본제국시대는 축복받은 시대였는데, 다른 나라들이 힘들었던 시기로 조작하고 있으며, 일부 일본학자들이 異見을 보인다는 투의 일본우익계열의 학자라든가.. 영토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각국 외교부의 논리... 대중서적이라기 보다는 유사역사학으로 자극적을 추구하는 일부 저자들과 미디어들이 문제이죠.. (사회관점의 변화라면.. 만리장성이나 공자에 대한 관점이 근현대 중국에서의 변화, 무신정권에 대한 관점이 한국에서 군사정권때와 이후 정권때의 변화 같은 것이겠죠. )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의 장점을 생각한다면, 국사교육 혹은 민족사교육도 그 일부로서 완전폐지에는 반대하지만, 인종주의나 집단주의로 이어지지 않기위해서 다양한 관점에 대한 것도 알려주어야 하고, 그 목적이 차별주의를 막고, 확대되어온 인간의 기본권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겠지요. (제가 국사교육이나 민족사교육이라고 한데에는 한국내의 소수민족그룹이 만약 자기 모국이나 민족의 역사교육을 하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한 한도에서 최대한 인정해야한다는 취지도 포함된 것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주석의 내용처럼 중국이든 어느 나라든 안으로 특정 민족우월주의나 억지로 소수민족을 통합시킬려는 시도에 빠질수도 있고, 역으로 세계 어디가 우리의 예전의 터전이니 이건 정복이나 침략이 아닌 '귀향' 이다 라고 했던 구일본제국이나, 구독일의 논리가 또 살아날지도 모르고,...

    • 시골 2010.09.14 22:55

      추가로 조금더 주절 거립니다.

      민족과 국가개념 그 자체의 모호성이야 잘 알려진것이지만,

      최근에 어느 일본인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개의 나라말을 하고, 나름대로 자기 스스로는 배웠다는) 의 주장을 보고는 정치적으로 이렇게도 변용이 가능하구나 싶더군요.. 쩝...

      그 일본인의 은근한 주장은 '민족개념은 모호하니.. 남북한은 뭐 민족따위를 추구하느냐.. 깨끗하게 전쟁도 하고 그래라.. 그리고, 재일조인은 빨리 선진 일본에 복속돼거나 흡수되어라.. '라는데..

      그 일본인은 자신이 국제주의자라고 하지만, 그 지향하는바가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랑 별반 다를바 없데군요.. 물론 이게 일반적인 현상같지는 않지만... (또 다른 일본인이나 재일교포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더군요..) 일단 끈질기게 주장을 하고, 일본과 몇몇 자신이 생각하는 선진국만을 절대적 가치의 척도로 삼는 차별주의의 냄새도 나는지라.. 좀 씁쓸하더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14 23:12 신고

      글쎄요. 그건 또 다른 모습의 민족개념이라고도 여겨지는군요. 단지 기존의 "민족개념"과 다를 뿐 아닐까요? ^^

  5. 구름나그네 2010.09.14 01:59

    제 생각도 비슷해요~
    어떤 역사가 누구만의 것이 될 수는 없죠. 인간이 걸어온 길을 보는 것이 역사인데, 자기 조상이나 혈연이 걸었다고 해서 자기 가족들 만의 역사가 될 수는 없는 거죠~
    이제는 민족이라는 망령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역사를 직시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 수 있는 제대로 된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러나 요하문명에 관심이 생겨서 발굴보고서를 좀 구하고 싶은데
    어디에서 찾아야 되죠??

  6. 시정잡배 2010.10.02 16:46

    근데 바로님은 文言文啥时开始学的呀 看一眼就知道真的还是假的?
    진짜 궁금합니다. 고문을 스스로 사전없이 번역해보고 싶은데 역량이 부족하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2 17:38 신고

      으음....만약 정식으로 번역을 한다면 절.대.적.으로 사전을 봐야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한문학자도 동일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전을 보지 않아도 "적당히" 번역을 해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고문을 만진지는 대략 10년정도 된듯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어느 정도 접하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접한것은 10년이라고 해야될듯 합니다. 사실 고문은 고문 자체의 번역이야 어차피 사전만 죽어라 찾으면 자연적으로 실력이 올라간다고 봅니다. 마지막에 고문 해석의 실력을 결정하는 것은 그 고문의 바탕이 되는 사상을 이해하는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 부분이....약하다고 봅니다^^:: 진정한 강호의 고수분들은........저로서는...ㅠㅠ

  7. 시정잡배 2010.10.04 22:03

    그래도 대단하다는...

  8. 조선사람 2010.10.22 21:13

    그리스 로마문명도 전 유럽인의 것이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23 09:31 신고

      사실 저는 그 이상으로 확장을 합니다. 모든 인류의 문명은 모든 인류의 것이라고 말이죠.

  9. 우리역사사랑 2011.01.04 18:22

    안녕하세요 바로바로님. 저도 요하문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는 비생산적인 토론과 상대방을 헐뜯는 사람들이 넘쳐나네요. 제가 얼마전에 카페를 개설했습니다. 한 번 방문해주시고 맘에 드시면 가입하셔서 활동을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cafe.daum.net/historyforours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06 08:34 신고

      하하..제가 카페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서 말이죠^^;;; 눈팅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10. 요하의 자존심 한국과 일본 2012.02.28 16:24

    역사란 두부자르듯이 나눌수 있는것이 아니다.
    중궈가 요하,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자신의 역사라 우긴다면 기꺼이 받아들일수 있다. 우리의 선조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알고 자신들의 것이라 우긴다면 나역시 자랑스럽다.
    그것에 대한 주장은 누구나 할수있는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역시 요하,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금나라,청나라를 우리역사로 주장할수있다.
    역사는 공유되는면이 있기때문에 한쪽에서 속지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속인주의 사관으로 주장한다면 둘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의 원류에 대한 오리지날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오리지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면 된다. 또한 우리역시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역사 정립을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물려주면된다. 역사는 단순히 차지하고 있는자의 것이 아니라 섬기고 향유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11. Favicon of http://asd BlogIcon todn 2013.01.26 23:11

    저 한민족은 배달국,단군조선,위만조선,부여,고구려,발해,고려시대만따져도 만주등 요하,만주등은 우리민족이 대부분 차지했으며 중국이 요하,만주를 직접적으로 지배한것은 청제국시대뿐이였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것이라 보는것이 가장 현명하지않습니까? 고려때는 약1년이라는 짧은시기이기는 했지만 비까지 세웠습니다

  12. BlogIcon 2014.08.31 13:14

    옛시대엔 한나라였고 한민족이였는데
    쪼개지고 쪼개져서 지금까지 온거지
    실제론 누구의 역사도 되며 선조죠
    하지만 현재 어느나라 땅에 묻혀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죠
    아무리 과거 한민족이였다 외쳐도
    현시대랑 과거는 다르니까요.

"한민족韓民族"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대체 언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것일까? 흔히 알고 있듯이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려 온 말일까? 만사 귀찮은 분들을 위해서 결론만 이야기 하면 : 한민족이라는 말은 1948년 대한민국 이후에나 쓰이는 말이며, 그 실질적인 유래도 1889년 대한제국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80이 넘은 어르신들은 스스로를 한민족이 아닌 "조선인"으로 부르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한다. 또한 한반도라고 부르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을 제외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은 모두가 조선반도라고 부르고 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한민족이라는 말은 보통 한인韩人으로 부른다. 한국의 교과서에서 한민족의 시작을 보통 고조선으로 놓고 있다. 그런데 고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조선朝鮮이었지 결코 한韩은 아니었다. 한은 보통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에서 나왔다고 이야기 되어진다. 문제는 그 이후에 한반도에 성립된 국가들이나 공동체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불렀고, 외부에서는 어떻게 불렀느냐이다.

그런데 근대에 이를 때까지 한韩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 조선朝鮮으로 통칭되었다. 통일신라나 고려사의 사료에서는 한韩이라는 용어가 사실상 등장하지 않으며, 중국쪽 사료에서도 오직 삼한인(三韩人)이라는 말만이 몇 군데서 인용이 될 뿐이다[각주:1]. 그런데 삼한인이라는 용어는 결코 한반도만을 지칭하지 않았으며,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동북부를 통괄하여 부르는 광범위한 용어였다. 현재의 한韩과 같은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서유럽과 프랑스를 완전히 동일시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실수이다.

그런데 대한제국(大韓帝國, The Greater Korean Empire)이 1897년 성립은 한 이후에 중국쪽 사료에서 재미있는 변화가 보인다. 광서光緒대의 사료에는 대한제국의 사람들을 한인韓人 혹은 한국인민韓國人民으로 부르기 시작한다[각주:2]. 예를 들어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을 죽인 일에 대해서 기록을 하면서 한인안중근韓人安重根 이라고 묘사를 한다[각주:3].

이는 중국의 청나라가 한국의 대한제국을 승인하는 의미에서 한국인민 혹은 한국인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국와 관계가 깊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대한제국을 이어받았다고 하였기에 계속 적으로 한韓을 계속 사용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대한제국을 멸망시켰기에 한韓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고 계속 조선朝鮮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대한제국은 안전되고 튼튼한 정부도 아니었고 통치 기간도 짦았기에 정작 일반 민중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고 습관적으로 "조선朝鮮"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45년 일본제국이 패망을 하고 한반도에 통일된 정부가 세워져야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 싶이 남북한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朝鮮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남한은 한韓의 용어를 사용하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명분과 조선朝鮮는 차별화 되는 용어를 사용하는 정치성을 확보하게 된다[각주:4].

이처럼 한韓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대한제국부터일 뿐이다. 또한 현재 한국을 제외한 주변이 나라와 동포들은 조선朝鮮이 더욱 익숙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한韓이라는 말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앞으로 한민족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용어로 스스로를 지칭할 것인가? 또한 공동체의 명분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외부에 설득력이 있는 용어는 무엇일까?  한민족韓民族보다는 조선족朝鮮族 혹은 조선사람朝鮮人이다.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주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하나의 용어로 통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한민족韓民族보다는 조선사람朝鮮人이나 조선족朝鮮族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탈민족주의인 본인의 입장에서야 한민족이니 조선족이니 하는 말자체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 해당 글은 "동쪽의 아침햇살"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분의 생각을 제 방식대로 소화한 것입니다. 조금 더 기다리시면 저처럼 최소한의 자료로만 쓴 것이 아닌 빵빵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논문을 보실 수 있으실듯 합니다.

  1. 송대《宋高僧傳》卷三十:"釋元表本三韓人也"; 원대《存復齋文集》卷五:"三韓人金生"; 명대 《瓊臺會稿》卷一:" [본문으로]
  2. 《東華續録(光緒朝)》光緒一百五十五:"中國人民在韓國者如有犯法之事,中國領事官按照中國律例審辦.韓國人民在中國者如有犯法之事,韓國領事官按照韓國律例審辦.中國人民性命財産在韓國者被韓國民人損傷,韓國官按照中國律例審辦.韓國民人性命財産在中國者被中國人民損傷,中國官按照中國律例審辦."; 《清史稿》志一百四十邦交六:“中國准韓國人民在圖們江北之墾地居住;四圖們江墾地之韓人,服從中國法權,歸中國地方官管轄及裁判,中國官吏於此等韓人與中國人一律待遇,所有納稅及其他一切行政上處分,亦同於中國人。五、韓人訴訟事件,由中國官吏按中國法律秉公辦理,日本領事或委員可任便到堂聽審,惟人命重案,則須先行知日領事到堂,如中國有不按法律判斷之處,日領事可請覆審。六、圖們江雜居區域內韓人之財產,中國地方官視同中國人民財產,一律保護。” [본문으로]
  3. 《清史稿》本紀二十五宣統皇帝本紀:“是月韓人安重根戕日本前朝鮮統監伊藤博文於哈爾濱。” [본문으로]
  4. 한민족이라는 말은 이처럼 정치적이다. 물론 아예 연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글쎄...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www.betulo.co.kr BlogIcon 자작나무 2010.09.08 12:04

    대표적인 이름은 조선 말고도 고려가 있지요. 전근대 역사를 절반씩 고려국과 조선국이 있었던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요. 독립운동단체 중에서도 고려나 조선을 명칭에 사용한 경우가 많았고요. 사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는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고려라는 호칭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통일국호는 고려로~~~

  2. 대한민국 대한국민 2010.09.08 15:56

    님 글은 잘 읽었구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선 시대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불렀고, 고려 시대 사람들은 고려인, 그 이전 사람들은 신라인, 백제인, 고구려인, 마한인, 진한인, 변한인 등등등으로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 불러왔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를 한민족 혹은 한인이라고 부르는게 뭐가 그리 거슬리는지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찌보면 이런 호칭문제도 수천년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면 전통인데, 굳이 일부 마이너들의 의견을 그럴듯하게 강요하는 듯한 이런 글을 쓴건 무리가 아니었나 싶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8 19:53 신고

      호칭문제는 수천년전부터 내려와서 정치적 함의가 있기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사람들이 한민족이나 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북한이나 조선족 혹은 동포들과의 연대를 생각하였을 경우 통일적인 호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머...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짦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은근히 알려드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를 이해하면 "우리 민족"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0.10.26 11:45

      "수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라는 게 "일부 마이너" 가 아닌 역사적 정설이야. 그리고 자기 블로그에 자기 생각 올리는 게 남에 대한 강요가 되냐? ㅉㅉ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27 11:37 신고

      릴렉스~~ 릴렉스~~ -0-

    •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0.10.27 16:31

      하핫, 주인장도 가만히 계시는데 혼자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민족쟁이들을 좀 많이 싫어해서요. 앨러지 증상이랄까... 그런 게 좀 있습니다. ^_^;

  3. -.-;;; 2010.09.08 17:25

    한국을 제외한 나라와 동포들은 조선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하셨는데 거기엔 의문이 드는군요. 그럼 카레이스키는 뭡니까? 미국에 사는 한국 교포들이(세계에서 제일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이 사는 곳이 미국이죠) 스스로를 조선족으로 칭하던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건너간 한인의 이민역사는 일제시대 때부터 이뤄졌습니다. 일본의 동포만 해도 북한과 남한 국적에 따라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하죠. 설마 님이 생각하는 외국이 중국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프랑스 사람들에게 베트남이란 용어보단 인도차이나란 용어가 더 익숙하죠. 그럼 베트남도 지금 이름 바꿔서 인도차이나라고 불러야 하겠네요? 스리랑카도 실론으로 이름 바꿔야겠구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8 19:57 신고

      당연히 중국만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동포들의 대부분은 스스로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물론 국적에 따라서 한민족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정대세의 경우를 보지 않아도 일본교포사회에서 조선인이 더 익숙한 말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대한민국을 지지하였기에 "한국인"이 더 익숙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쪽에서는 korean이나 그 변형을 쓰지 한자계열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자만을 쓰는 한중일을 기본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한(한국-조선)중일에서는 한국인 혹은 한인보다 조선족 혹은 조선인이 자칭과 타칭으로 모두 더 많이 쓰인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 반론있는데요.. 2013.02.17 11:57

      일본 역사에서 고려를 한으로 불렀던 사료 많습니다.
      韓이라 쓰고 읽을땐 가라로 발음했던거죠..
      그리고 한국인을 韓으로 통칭해서 불렀던 자료 많습니다..

      또 일본 교포들은 국적을 두가지로 말합니다.. 조선시대에 이주한 교포는 조선.. 해방후 이주한 교포는 한국..
      그것을 통칭해서 그냥 제일이죠..

      제 생각엔 특별히 문제 될것은 없다고 보는데요..

      역사적으로도 반복적인 명칭을 썼잖아요..
      고조선>>조선
      고구려>>고려
      삼한>>한
      뭐 특별히 문제될것은 없다고 보는데요..

  4. 소동파 2010.09.09 01:25

    일본의 大和族, 중국의 漢族, 華夏族 등의 개념은 언제 생겼나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16:48 신고

      글쎄요...대충 조사해보니...중국의 화하족에서 화하의 개념은 전국시대부터 있었는데, 화하족(화하인)이라는 개념자체는 대략 한대부터 쓰이긴 했던것으로 보입니다만 문헌기록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한족은 한인의 개념으로 한서부터 문헌에 보이는데 그 이후로도 상당히 자주 쓰입니다. 그러나 그 범위가 좀 애매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화족은....잘 모르겠습니다;;;;

  5. 이해가 안 되네요 2010.09.09 12:53

    정대세의 예를 드셨는데, 정대세는 국적을 조선이라고 한 것이지 자신의 민족이 "조선족"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일본의 재한인들은 자신이 선택한 국적에 따라 조선인.한국인이라고 하는 것이지, 민족의 개념으로 조선족, 한민족이라고 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 동포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많다고 하심은 무엇을 근거로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제가 알기론 북한의 입지 축소 때문에 갈수록 조총련 쪽 동포는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은 현재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한민족을 아우르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1880년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중국인들이 조선족이라 부르면서 조선족이 되었습니다만, 현재 조선족은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남한, 북한과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중화민족 속의 소수민족으로서 우린 조선족이다, 라는 개념이 확고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족과 한민족은 오히려 더더욱 구분이 되어야 옳다고 보입니다.

    또한 한민족이란 용어가 쓰인지 매우 짧으니 조선족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하셨는데, 저로선 거기에 동감할 수 없습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를 계속 고려사람으로 불렀을까요? 아마 조선 초기 외국에선 고려라는 용어가 더 익숙했을 터라 계속 고려라 불렀을 겁니다. 고려에 충성하는 사람들 또한 계속 자신을 고려인이라 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 와선 그 시대는 조선시대였고 조선사람들일 뿐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16:49 신고

      저는 "조선족"이라고 했지만 "조선"이라는 말에 중점을 둔 명칭이 더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에서는 "조선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근거라고 하시면 한민족이라고 사용하는 일본동포가 얼마나 되는지 오히려 반문할수 밖에 없군요.

      하지만 어떤 명칭을 사용할지 자체는 개인의 판단이며 님과 제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봐야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이 부분은 정치적인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것은 다 무시하더라도 북한과의 앞으로의 통합을 생각해서라도 "조선"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고려"도 괜찮은 선택이겠지요. 그러나 "한"은 유래도 짦고 그다지 포괄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도 이건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문제이니 역시나 더이상 논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이 글을 왜 썼느냐? 명칭의 개념이나 범위는 너무나 쉽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님이 말하는 전세계 동포들이 공감한다는(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한민족"은 위에서 말한대로 100년이 살짝 넘은 용어일 뿐입니다. 대 놓고 말해서 한민족이 님의 주장대로 전세계 동포의 공감을 얻고 있다면, 어떤 명칭이든 3세대만에 실제로 오래동안 사용된 개념처럼 변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민족을 다른 용어로 바꾸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는 소리가 됩니다.^^

  6. 이해가 안 되네요 2010.09.09 13:12

    하나 더 부연하자면..
    한자만을 쓰는 한중일을 기본으로 말한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또한 이해가 안 됩니다.
    민족을 아우르는 용어는 영어든 한자든 세계에 퍼진 모든 한인이 공감하는 단어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설마 한자를 한중일만 사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미국교포도, 독일교포도 공감할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7. 4... 2010.09.09 20:19

    한국인들을 너무 졸로 보시는 군요...


    님의 글들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중화주의의 파편을 보면..

    화교에 대해서,

    정말, 편견이 안생길려고 해도 안생기기가 힘들군요..


    한국은 쪼그만 국가죠..
    님들이 스트레스 받으며, 살 필요 없어요..
    위대한 중국과, 화교가 장악한 동남아,필리핀,
    당신의 고향인 대만등, 갈데 많잖아요?

    왜? 굳이 쪼그만 한국까지 먹어치우려고 하는지..
    정말,그 무한 중화 확장주의에 토 나오네요.

    2천년간 그렇게 괴롭히고,속국으로 못살게 굴었어도 만족을 모르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20:41 신고

      일단 저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실 "순혈의 한국인"임을 알려드립니다. 또 중화주의의 파편이라..대체 위 본문을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석이 되죠? 오히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위의 내용을 잘만 이용하면 중국내의 조선족까지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서 중국 동북에 분열을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조선사람 확장주의"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님처럼 정반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당신 같이 한국인이면서 한국말로 된 글의 독해도 못해내는 사람때문에 한국인이 졸로 보이는 겁니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을 화교로 단정해버리는 것도 역시 졸로 보이게 하는 짓이고요^^

  8. 4... 2010.09.09 21:19

    4. 바로와 타이완
    일단 저 자신은 타이완에서 3년간 살았습니다^^:::
    살았다고 해도 1살때부터 4살사이의 3년이었으니 제 기억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대만의 풍경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저보다는 저희 부모님이 대만과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아버지는 대만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대만교육대였던가?(죄송--;;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에서 박사과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머니와 결혼에 성공하셔서 이렇게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 뒤, 제 동생은 아예 대만에서 태어났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대만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넘이었죠. 웃긴건 집안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어 못하는 넘이 제 동생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처음 중국어를 접하게 해준 형은 타이완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정말 귀여운 딸이 있습니다^^ 한국어, 중국어 두개언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진짜로 예쁜 꼬마아가씨랍니다. 이번에 한국가면 꼭 아저씨 대신 오빠라고 부르게 하리라!! 이래저래 타이완과 연결되는 것이 많군요^^


    5. 마치며...
    간단하게 적는 다는 것이 꽤나 길어졌습니다. 국제 질서의 냉정함 속에서 한국의 국가적 이익를 생각하더라도, 중국에 반대항이자 대항항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완의 독립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하느냐가 문제겠지요. 미국과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중국의 주장대로 타이완의 독립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당한 특혜를 주는 것도 이런 포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이딴 건 다 필요없고!
    http://www.ddokbaro.com/271


    아 네~ "순혈의 한국인"이 다 얼어 죽었군요...
    언제부터, 섬짱께와 혼혈이 "순혈의 한국인"이 됬는지 몰겠네요.

    조선족은 그냥 변종짱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수 없음.

    누가 조선족을 민족 확장 차원에서 받아 들이자고?
    그런데, 같은 민족으로 받아 들이고,
    그 조선족을 이용해서, 중국 동부의 분열?

    딱 생각하는 차원이 섬짱께 이면서, 무슨 "순혈의 한국인"?

    님이 원하는 것은 "대만의 독립" "대만의 중국 정복" 아닌가요?

    그러면, 대만군에 입대해서, 노력하던가..

    왜? 애꿎은 한국인을 이용해서 그것을 이루려 하죠?


    한국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영토 확장도, 중국,일본 멸망도 아닙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신경 끄고,
    그만 전부 자신들의 위대한 중국으로 돌아가 달라는 것.
    변종 짱께 조선족들도 데리고..

    이미 몇몇 노땅 망상주의자를 빼고는,
    한국인 대다수는 북한 흡수도, 통일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미 너무 늦어서,한국과 북한은 다른 민족이 되어 버렸기 때문 입니다.

    한국이 피만으로 한국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짱께,쪽발의 착각일뿐.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09 23:35 신고

      푸하하하..방문자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독설 좀 하겠습니다. 왠만하면 참는데 이 쯤되면 어이가 없군요.

      1) 제 어머니가 타이완인이었어요? ㅋㅋㅋ
      한국인인지 정말 의심되는 한국어 독해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대체 어디에 저희 어머니가 타이완인이라고 적어놨나요? 아버지가 중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사이에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고 어머니를 타이완인으로 만드는 상상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킥킥.....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저의 어머니는 한국인 맞습니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도 한국인 맞습니다. 그것도 전주이씨입니다.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아! 상상력 뿐만이 아니라 제 오래된 글을 찾는 노력도 대단하십니다. 그 정성으로 책이나 한 줄 더 보시죠? ^^


      2) 타이완 만세라고요?
      제 글이 그렇게 보였나요? 전체 글은 제대로 보시긴 했나요? 하긴 저희 어머니를 타이완인으로 생각하는 독해력과 상상력이니 제대로 봤을리가 없죠.

      하다 못해서 님이 인용한 글만 보아도 한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글을 보면 기본적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대로 하라는 생각입니다. 푸하하하....


      3) 통일문제
      통일이 왜 되어야 되냐고요? 당장은 경제상으로 문제가 있지만, 북한에 있는 싼 인력자원과 광산자원을 고려해서 장기적으로 계산하면 통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안됩니까?

      물론 당신처럼 통일무용론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야기하는 건 논지도 아니고 그냥 감정을 토해내는 것일 뿐입니다. 논리가 먼지는 아십니까? 모르시겠지요.

      통일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그 동안 정치적인 필요성에 의하여 통일이 주장되어 왔지만, 현재의 한국과 북한의 문화-사회-경제적 격차로 인하여 어떤 식의 통일이 되었던 건 간에 한국에 큰 타격이 있기에 더이상 우리 모두의 꿈은 통일이라는 식의 강압식 접근이 아닌 정확한 자료와 판단을 근거로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당신 처럼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통일반대을 통일무용론이라고 한다면 통일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할 뿐입니다.


      4) 한국인!
      한국이 피만으로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죠. 당신 같이 한국인을 욕먹이는 대가리 없는 사람들은 한국인으로 인정해서는 안되겠지요. 존중을 받으려면 상대방을 먼저 존중해야된다는 도리도 모르고 있고, 한국어 독해도 제대로 못하고, 논리는 우주 저편으로 날려보내버리고 감정을 토해내는데...정말 한국인으로서 당신을 한국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군요.

      정신 좀 차리셔요. 당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건 너무나 아깝군요.그래도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ㅋㅋㅋ

  9. 소동파 2010.09.10 02:35

    글쎄요... 이 문제에 나름 어떤 주장을 펼만한 지식은 없지만, 제가 옛날에 읽은 시바 료따로 (일본 우익 소설가)의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일본 민족의 (한반도를 거친) 북방 도래설을 주장하며 '단일 민족' '박달나무 운운 배달민족', '기마민족' 심지어는 '백의 민족' 등등의 언급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제국주의 일본 시절 일본이 자국민의 단일 민족설 등을 '학문적'으로 주장하면서 자국민들의 단결과 우월성등을 주장하며 여러가지 학설을 만들어 내면서 제국주의 팽창을 뒷받침했으리라는 추측을 하였지요. 아울러 당시 약소국 조선(한국)도 그에 대응하여 나름 논리와 '학문적' 근거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일본의 학설들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하였읍니다. 최소한 제가 만나 본 일본 친구들은 혈통적으로 단일 민족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양했거든요. 거의 중국 남북방 사람들 차이만큼이나 달랐읍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이 스스로 '화족', '대화족'으로 부른 것은 메이지 유신 전후 아니면 그 이후 제국주의 시대부터로 알고 있읍니다. 그전에 일본은 스스로에 대해 '천하'로 여겨 그냥 자신들을 스스로 지칭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한민족', '조선민족'이란 각성은 일본 침략이후 만들어진 일종의 민족적 각성이란 점에서 크게 보아 바로님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10. 소동파 2010.09.10 02:56

    그리고 얼핏 읽어본 중국 역사책과 중국 보통 백성들의 관념을 보며 조선이라 하면 보통 한반도의 북부(대체로 대동강 경계)의 사람들을 일컷고, '한'이라하면 그 아랫지방 사람들을 일컷는 것 같습니다. 삼한이란 기록도 조선이란 기록도 모두 중국사서에서 사기이래 나오는 말들이고 그들이 그렇게 나누어서 남북의 한반도의 사람들을 지칭해 불러온 것 같고, 교묘하게도 현재의 남, 북 분단 상황하의 국호하고도 맞아 떨어지지요. 그리고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 사기에 나오는 조선의 개념은 모두 중국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들에 대한 언급이고 제 개인적 느낌은 '삼한'은 거의 '팽개친'야만인들이고 '조선'은 화하족의 영향속에서 어느정도 개화된 족속들이다라는 느낌입니다. 논쟁과 관계없이 제 느낌을 써 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9.10 16:44 신고

      위에서 언급하였던 삼한인의 범위가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삼성을 합치는 넓은 범위였으니 한이라고 남반부 사람이라고 할수는 없을듯 합니다.

      삼한과 조선의 느낌차라....따로 신경써 본적은 없군요. 나중에 심심하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저는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거든요. 흐음...

  11.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0.10.26 11:48

    하하, 오늘도 민족쟁이들의 어그로를 열심히 끌고 계시는군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_^;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27 11:37 신고

      끌고 싶어서 끄는 것이 아닌걸요.ㅠㅠ
      그러고 보니 저의 석사전공은 다름이 아닌 "민족사" 루루루...

  12. ssam 2011.01.15 14:06

    조선일보가 있어 조선인이라는 말이 거슬릴뿐이고...

    본문중에 오타가 있네요..1889년 아닌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1.01.17 15:30 신고

      하하;;;;; 그..그렇군요. 말도 안되는 오타입니다;;;;
      지적감사힙니다. 꾸벅--

  13. 길을 가다가 2011.05.02 00:47

    여태껏 2년 정도인가 싶는데 시간이 날적마다 바로님의 글을 조금씩 읽어왔습니다.
    재미있는것은 댓글이 더더욱 재미 있다는 겁니다. 댓글 다시는 분들이 중국에 관한 이야기에서만 이러쿵 저러쿵 많은 시비가 오가는 같은데 바로님의 글이 바로바로로 전형적인 한국인들의 맹목적 애국주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생각합니다. 옳던 그르던 정확하던간에 상관없이 자기중심의 의사에 털끗만큼이나 건드린다면 시비를 걸어오는데 하여튼 바로바로 소화를 하는 바로바로님 대단합니다. 고려인 조선인 한국인 조선족 모두 동일 민족인데 다만 살아가는 환경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나 자빠지듯이 시비거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한민국을 망신주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원참...처음 댓글 답니다.

  14. 짧게 담 2011.05.25 05:03

    한민족과 조선족.

    일단 대화를 이끌어보려면 각각의 나라에서 보는 통칭적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선 자신들을 한민족이라 부르며, 북한을 북한사람이라 부르지, 절대 조선 사람이라곤 안한다. 일단 조선이란 사라진 나라의 개념이며, 북한은 정확히 지칭하면,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다. 이것은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와의 차별을 위해 자신들을 과거 조선의 북쪽을 차지하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
    또한 우리의 입장에서 조선족이란, 멀리 중앙아시아를 비롯해(고려인이라고 표현도 하지만), 현재 과거 간도 지방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선족이라 부른다.
    우리의 개념에선 '~인'으로 부르는 것이 매우 익숙하기에, 우리를 한민족이라고 대내적으로 민족적 자긍감과, 단일민족적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표현으로 쓰고 있으며, 일반적으론 그냥 한국인이라고 부른다.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북한인(북한 사람), 혹은 북한 주민이라 부르며, 현재 간도에 있으며 민족적, 문화적, 언어적으론 과거 한민족의 민족이나, 현재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우리의 입장에선 이들을 과거의 '조선'과 연결시켜 조선족이라 통칭한다.

    의미 해석은 이쯤에서 하고, 현재 가장 크게 다투고 있는 부분이 아무래도 필자는 분명 한국인임에도 주변의 정세와 장기간 역사적 사용, 지칭의 타당성적 부분에서 '조선'을 택하는 게 옳지 않냐고 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크게 반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눈엔 "대체 왜 주변 상황이니 뭐니 하는 중요하지도 않은 걸 가져다 붙여 한민족을 조선이라 칭하게 하는 게 옳다는 것이며, 그딴것으로 왜 이런 같잖은 글을 걸어 올리냐."는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개인적으론 한민족이란 것에 동의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민족에겐 남들이 어떻게 부르건 자신들이 사용하고자 하는 것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이란은 스스로를 페르시아의 후예들이라 칭한다. 페르시아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한 나라이며, 과거 페르시아의 영토는 현재의 이란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뭐랄까..많은 사람들은 민족적 자긍심, 뭔가 위대한 업보 혹은, 대승리를 거뒀을시 모두를 결속시키고, 아우를 수 있는 통칭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 또한 이런 의미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기에 우리 스스로를 한민족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 한은 발음 상 '1'과도 연결되기에 이 말 자체에 세계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그것도 900여 번의 침략 과정을 거쳤음에도 적어도 단일민족적 문화와, 인종, 그 체계를 이어가고 있는 민족적 자긍심의 표출로 보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관념엔 이것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을 지언정, 누군가가 이것에 재를 뿌리거나, 이것을 해체한다 싶으면 평소 그리 중요치 여기지 않던 것도, 하나 둘 발끈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로 약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결론을 말하자면, 현재 우리는 남북 대치적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우리'로 통칭하긴 힘들다. '아군'으로도 칭하기 힘든 마당에 어떻게 북한과 관련된 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어찌보면 '조선' 그 자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 이 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이다. 가만히 보면 바로 옆나라인 '중화 인민 공화국'과 대조적으로, 국이란 말 자체가 이미 나라 이름 그 자체에 붙고 있으며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의 '국'자를 뒤의 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칭하고 있다. 공식 명칭에서 '중화 인민 공화국'의 '국'사용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우리한텐 '한'이란 표현과 대한민국이란 표현은 익숙하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개인적으로 이 글의 문제점을 고르라면 아직 통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와 언어적 상용화에 사로잡혀 '조선'이란 것이 어울리지 않나하며 속단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럼 현재 북한이 내세우는 훗날 통일한국의 국호를 '고려 연방 공화국'으로 하자는 것에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멸망한지 어언 600년도 훌쩍 지난 고려를 내세우는 것이 뭔가 어설프고, 시대 착오적으론 보이지 않는가. 또한 통일도 되지 않았는데, 뭐가 낫다라고 섣부르게 단정짓는 것도 남들의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하다. 또한 제시한 이유들도 뭔가 미래적, 민족적이기 보단, 그저 역사성, 주변의 정세성에 연관을 두는 듯 해보인다. 물론 필자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음은 안다. 단지 개인적 견해의 차이일 뿐이란 것을..

    이는 훗날 통일한국이나 되어서야 통칭되는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미 반세기 가깝게 한민족이란 것에 익숙해져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왔는데, 거기에다 대고 대뜸 조선이 아무래도 적절하니 조선이 어떠냐, 라고 묻는 것은 서울을 대뜸 경성으로 부르라고 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인'과 같은 것은 어느 통일이나, 혁신적 변화의 시점 이후에나 쓰이는 것이지, 그 전에 무슨 일이나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래의 무엇을 결정하자, 특히 '~인'을 벌써부터 결정하자는 것은 매우 불완전한 제안이라 생각된다. 위의 예대로 조선인이란 것이, 고려가 망하고부터 바로 쓰였겠나? 조선이란 나라에 익숙해지며, 세상이 조선으로 보일 때부터 가능했던 것이고, 그 말이 오랜 세월 통용되다 보니 그렇게 변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나라를 조선 반도라 부르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 한반도라 부르는 것은 韓을 거의 한국이란 나라를 대표하는 단일적 언어로 주로 사용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만 그렇게 쓸 뿐, 한반도라 표현하는 나라는 우리를 제외하곤, 단 한나라도 없다. 헌데 어떻게 보면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닌 것이, 기록상 인정된 이 반도 최초의 국가는 다름아닌 '조선'이며, 어떻게 보면 우리가 부르는 조선은 과거의 조선에 이은 2번째의 조선이며, 지칭을 다르게 하기 위해 조선에 옛 '고' 자를 붙여 고조선이라 칭하게 된 것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반도는 조선반도라 하여, 그들 스스로도 이 땅의 최초 주인이었던 옛조선의 반도라 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도 있으며, 조선의 원형인 단군의 옛조선, 그 조선의 반도라는 의미로도 충분히 인용될 수 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물론 단순히 말로는 같지만 의미상 언제든 좋아질 수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난 나를 표현할 때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한국인, 한민족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필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대뜸 반발하는 것이었나가 자연스럽게 해석될 것이라 믿는다. -이상.

  15. 연재 2013.02.26 05:09

    드라마 근초고왕
    에서 예,맥,한
    일통
    이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옵니다.

    내부적으로 대한제국은 안전되고->안정?^^

  16. 정말 웃기네 2015.03.15 01:52

    제일 다민족국가로 정치적인 종족이 바로 중국 한족이며.. 그 다음이 일본인들..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순혈을 유지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정치적인 종족으로 치면 중국인은 꾸준히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이민족의 유전자가 유입된 종족이 바로 중국입니다..
    지금도 중국은 소수민족이 한족에 등록하면 바로바로 받아주는데가 중국이고요..
    환타지 소설 같은 중국 역사를 철저히 믿고 중국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님이 대단하다고 봅니다..
    그냥 내가 볼땐 중국인으로 보임..
    우리의 역사서도 없이 중국 일본의 역사서로 증명시키는 한국역사가 가장 환타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청나라의 정사 흠정만주원류고를 왜 중국인들이 인정하기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한족입장에서 쓰여지지 않았다는거죠..
    환타지를 만들기 힘든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청나라 기록들을 보면 조선국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로 시작된 나라이고 그게 고려가 되고 조선이 된 나라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고구려는 조선과 관계 없는 나라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소리나 하고..
    그럼 고구려 수도 평양은 뭐가 되는건지 참 황당한 소리들 하고 있죠.. ㅋ
    아님 지금 분단 됐으니까 같은 민족인 북한을 반으로 나눠서 다른 민족인것처럼 이야기 하고...
    한반도 전체 해봤자 흑룡강성 하나 크기보다 작은데..
    중국의 성을 반으로 나눠서 니들은 다른 민족들이다 이러면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진짜 중국은 환타지로 역사를 만들어서 대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는중이죠..
    그래서 정치적인 종족 한족을 만들어내서 정치적 민족주의를 만들고 분열이 안되게 막을수 있으니까요..
    그 정치적 역사수정작업이 중국 내부단속을 위한 작업이지만..
    거기에 가장 큰 희생양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란거죠..

  17. 한韓에 대해서.. 2015.06.20 02:31

    韓은 중국의 시경에 처음 나옵니다..한후라는 이름이 최초로 나옵니다..
    예맥족의 왕이라고 나옵니다.
    또 중국의 한씨 성에 대한 기록을 보면..
    중국의 잠부론을 보면
    연나라 동쪽에 있는 나라가 있다,. 그들은 한후의 후손들이다..
    또 그들은 위만에게 망해서 바다를 건넜다는 기록이 나오죠..
    즉 갈석산동쪽에 있던 나라..북경동쪽에 있던 나라..
    요하의 나라를 말하는거죠..
    또 기자조선을 보면 위만에게 망해서 배를 타고 동쪽의 한의 땅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죠..
    북경 동쪽에서 한반도로 왔다는 기록입니다.
    기록상의 韓은 환국의 환과 같은 말입니다.

최근 민홍규 전 4대 국새제작단장의 600년 비전이 날조로 밝혀지면서 국새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혹자는 한국의 무형문화재관리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고, 혹자는 국새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최재천의 시사큐비즘 :: 국새는 왜 필요할까) 그에 대해서 본인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과 같은 어새를 국새의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금으로 만든 어새는 극소수이다.


어새는 옥이 기본이다.


국새의 원형이 되는 황제가 사용하는 어새(御璽 혹은 보새寶璽)의 대부분은 결코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절대 다수의 어새는 옥玉으로 만들어졌다. 진시황의 진秦나라 이후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어새의 이름 자체가 전국옥새(傳國玉璽[각주:1])로서 옥으로 만들어진 어새였고, 현재 중국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인 청대의 25개의 보새중에서 23개가 옥새이고, 단 한개만이 금으로 만든 보새라는 점[각주:2]을 인지하면 옥새가 보새의 기본임은 너무나 명확하다. 사실 어새나 보새를 검색해보면 "옥새의 높임말"이라고 나온다.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가 있는가?

왜 대부분의 보새는 옥으로 만들었을까? 그 대답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나와 있다. ‘옥의 아름다움은 다섯 가지 德(덕)을 갖추었다. 윤기가 흘러 온화한 것은 仁(인)의 덕이요. 무늬가 밖으로 흘러나와 속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義 (의)의 덕이요. 소리가 낭랑하여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은 智(지)의 덕이요. 끊길지언정 굽혀지지 않는 것은 勇(용)의 덕이요. 날카로우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潔 (결)의 덕이다.[각주:3]” 설문해자뿐만이 아니라 수 없이 발견되는 다양한 옥으로 만든 고고학유물들은 전국시대 이전부터 얼마나 오래동안 옥이 사랑받아왔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왜 국새를 금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본인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도 본인이 기억하기로 기본은 어디까지나 옥새였고, 고종황제의 보새도 어디까지나 은을 기본으로 한 금도금이었는데 말이다. 금으로 하면 삐까뻔쩍 있어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전통만 생각하면 은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옥새야 말로 국새의 기본이다.



어차피 현대기술은 이미 과거의 기술을 넘어섰다.

우리는 흔히 "현대 기술로는 재현해 낼 수 없는 고려 청자의 빛깔"이라는 소리를 언론을 통해서 자주 듣는다. 그러나 사실 현대의 기술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빛깔을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학자나 관련인사들도 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전통기술을 이어받고 있는 사람들의 밥그릇을 건드린다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전통기술을 보호해야된다는 추상적인 문제들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각주:4].

그러나 국새의 경우 이번 사태로 인하여 전통기술이 사실상 없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 금으로 만드는 어새에 대한 전통기술은 사실상 단절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밥그릇을 걱정하며, 어떤 전통기술을 보호한단 말인가? 차라리 현대기술을 총동원해서 국새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보인다.

아니면 나무로 만드는 건 어떤가? 단향목檀香木으로도 국새를 만들수도 있다.



다음 국새는 옥으로 만들자.

본인과 같은 보수주의에게[각주:5] 국새를 없애고 싸인으로 대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심정적인 거부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통령령은 아직 국새규정을 두고 있으며, 중요한 임명장에나 외교문서 등에 국새를 사용하게 되어 있고 국새의 사용에 문제 자체는 없지 않았는가? 그러나 깨지거나 전수된 전통기술이 없는 금으로 만든 국새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국새를 새로 만든다면 전통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옥으로 만든 국새로 만들었으면 한다. 옥 세공 기술은 본인이 알기로 아직 한국에 전통기술 전수자가 있으며, 옥새야 말로 국새의 기본이기 때문이다[각주:6].




바로의 중얼중얼 : 본문의 전개와는 큰 상관없어서 놔두었던 문제를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렵니다. 국새의 종주국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정작 국새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건 와전된 이야기로서 현재 중국은 국새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단지 전통식으로 글자가 쓰여진 국새가 아니라 중국휘장(国徽)이 새겨진 도장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완전한 전통식 국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도장형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새를 사용 안한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또한 타이완도 중화민국시절의 옥으로 만들어진 국새를 계속 사용 중에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한국에 비하여서는 도장의 역할이 비교적 적지만 여전히 중시되고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중국휘장~~ (사실 이건 도장형식으로 찍혀 나오는 효과를 보여주기 위함이고, 좀 더 화려하다-_)



흐음..오랜만에 그럭저럭 역사 관련 포스팅이었군요.(으응?;;;) 역시 이런 글은 괜히 이래저래 거의 많은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는 짜잘한 것에 저도 모르게 신경을 쓰다보니 적당히 유머 번역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속편합니다. 그래도 역사관련으로 궁금한 것은 물어봐주셔요......특히 환빠님들의 주옥같은 황당무계 글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 분들의 글들은 저를 즐겁게 해주거든요^^

  1. 전국옥새(傳國玉璽)은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화씨지벽(和氏之璧)으로 만든 옥새이다.전국새(傳國璽)라고도 한다. 화씨지벽은 천하의 명옥(名玉)으로, 진나라 시황제가 이것을 손에 넣어 재상인 이사(李斯)로 하여금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하늘에서 받은 명이여, 그 수명이 길이 번창하리라)'이라는 문구를 전서(篆書)로 새겨 도장을 만들게 하였다.전설에 따르면, 시황제가 배를 타고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뻔하였다. 시황제가 황급히 옥새를 호수에 던지고는 신령께 빌자 물결이 잠잠해졌다. 8년 뒤 시황제의 사신이 밤에 화음(華陰)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돌연히 어떤 사람이 나타나 사신의 길을 가로막고는 용왕이 돌아가셨기에 돌려준다며 옥새를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고 한다.이 옥새는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이 함양(咸陽)을 함락시킨 유방(劉邦)에게 바쳤으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뒤 한(漢)나라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졌다.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이 잠시 이 옥새를 빼앗았으나,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되찾았다.옥새는 후한 말년의 혼란기에 유실되었다가 손견(孫堅)과 원술(元述)을 거쳐 조조(曹操)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위진남북조를 거쳐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후량(後梁)과 후당(後唐)까지 전해지다가 후당의 마지막 황제가 분신할 때 사라진 것으로 전한다. 이후 몇 차례 전국옥새를 찾았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모두 진품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와 같이 전국옥새는 진시황제 이후로 천하를 제패하는 사람이 소유함으로써 황제나 황권(皇權)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으며, 이를 차지하는 사람이 곧 천하를 차지하는 것으로 여겼다. -- 위키 [본문으로]
  2. 청나라가 돈이 없어서 옥으로 만들었겠는가?! 옥이 더욱 중요하였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더 정확한 통계는 타이완고궁박물관에 소장중인 다른 보새도 합쳐야 겠지만, 안타깝게도 중국대륙에서는 타이완고궁박물관에 접속이 불가능하기에 정확한 수치는 미루어두겠다. 다만 타이완고궁박물관쪽을 합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본문으로]
  3. 石之美。有五德:潤澤以溫,仁之方也;䚡理自外,可以知中,義之方也;其聲舒揚,尃以遠聞,智之方也;不橈而折,勇之方也;銳廉而不技,絜之方也。象三玉之連。丨,其貫也。凡玉之屬皆从玉。 [본문으로]
  4. 못 믿겠으면 주변의 복원쪽이나 고미술전공하는 "친.한."사람에게 진지하게 사적으로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본문으로]
  5. 제가 보수주의라고 하면 제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담하냐는 반응이긴 합니다. 그러나 전 분명히 보수주의입니다. 오히려 스스로 분명히 보수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보수주의적인 생각으로 보수주의적인 행동을 했는데 진보주의로 보는 이넘의 한국사회가 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본문으로]
  6. 금값이 하늘 높이 솓아오른 지금에 비용적으로 그마나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다. [본문으로]
  1. 사월 2010.09.03 16:33

    중국 역사 관련 자료들 가끔 올리시지만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앞서 조조 무덤 건 같은 경우 일반 언론에는 거의 6개월 후 쯤에나 나오더군요(!@@##).

  2. Favicon of https://beijinga4.tistory.com BlogIcon 북경A4 2010.09.03 18:39 신고

    잘은 모르지만..
    옥새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금새라는 말은 못 들어봤다는 것 정도입니다. ^^

    최근 중국 역사를 수정한다는 말이 있던데... 황허가 아니라 요하문명을 기원으로 변경하면 한국이 중국의 후예가 된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고요..그거에 관한 글도 한번 올려주세요.. 궁금해서요.^^

중국에서 한국인들이 주원장을 고려인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을 발견하였다. 본인 처음에는 또 한국에 관련된 루머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방송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 주원장 고려인설이 뭔지 한 번 보자. 처음부터 결론을 내자면 "어이없음" 이다.

* 본 내용은 아쉽게도 "조선기문朝鮮紀聞"직접 보지 못하고 쓴 글이다[각주:1].





3월 7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실체를 놓고 한국과 중국의 학자간의 대립을 다뤘다.

1368년 명나라를 세운 초대황제 주원장은 이민족을 몰아내고 한족 중심의 문화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미천한 거름뱅이에서 시작해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인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일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역사학자 백린은 '조선기문'에 기록된 설화를 근거로 들었다. '조선기문'에는 명태조 주원장과 이름이 같은 남자가 등장한다. 주원장은 경상도 웅천의 주씨 노부부의 아들로 5살이 되던 해 고승을 따라 절에 들어갔다가 15세에 하산했으며 총명하고 민첩했다고 적혀있다. 또 한국 민간 전설집에는 주원장이 중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적혀있어 더욱 신빙성을 더했다.

반면 중국학자들은 역사학자 오함이 쓴 주원장의 전기 '주원장전'을 들어 이를 터무니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기는 주원장이 중국 안휘성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또한 중국인으로 적고 있다.

이를 반박하는 학자들은 주원장전은 조선기문에 실린 탄생 설화를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주원장전의 발행시기는 조선기문이 발행된 뒤다. 두 책을 비교해 볼 때 주원장의 어린시절 매우 가난했다는 점과 주원장이 절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주원장이 걸식하며 돌아다닌 시기가 비슷하다.

또 주원장의 주변에는 유독 고려인이 많았고 주원장의 심복인 주유도 고려인이어서 각별히 신임했다는 주장까지 더해져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또 다른 학자는 주원장의 아들 영락제의 친모가 고려인일 가능성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은 이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출처 :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고려인 논란, 韓中 역사학자 대립 논쟁


1) 대체 어디를 봐서 학자들의 공방이지?
조선기문朝鮮紀聞은 잘해봐야 2차사료이다. 1885년 일본인 鈴木信仁에 의하여 쓰여진 조선의 일들을 모아놓은 책[각주:2]이다. 주원장전朱元璋传는 2차사료조차 어림없다. 중국의 역사학자 吴晗[각주:3]에 의하여 1948년에 쓰여진 책이다. 이건 연구서라로 해야된다.

대체 어떤 "미친" 학자들이 2차사료도 안되는 것을 기본으로 공방을 펼친다는 것인가?[각주:4] 솔직히 이 부분부터가 벌써 어이없음이다. 역사학 관련 사람들은 본인이 위에서 적은 조선기문과 주원장전의 간략내용만 보아도 어이없어 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가장 간단히 말해서 명사明史를 보면 주원장의 아버지가  钟离로 이동했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钟离는 현재 중국 안후이펑양安徽凤阳이다[각주:5]. 그리고 명사는 1739년에 완성되었다. 정식사료인 명사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명사보다도 100년이상 늦게 기록되었던 전설을 믿을 것인가? [각주:6]


2) 설화는 가치있는 사료이지만 믿을 수 없는 사료이다.
설화의 가치는 상당히 뛰어나다. 오히려 정사에서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일이 설화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설화만을 가지고 논문을 쓰는 학자는 없다. 왜냐하면 설화 그 자체는 많은 시간동안 온갖 변형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곳에서 뽑아내어서 "간접 증명"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직접 증거로 사용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딱이다.

조선기문은 무려 일본인이 1885년에 출판한 책이다. 이미 주원장과 상당한 시기적인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인 자신이 아닌 일본인에 의해서 적혀진 내용이기에 그 정확성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부분에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잘해봐야 2차사료일 뿐인 것이다. 그 외에 출처를 아직도 모르겠는 "민간설화집" 역시 동일하다.

논란이 된다는 말 자체가 어이가 없다. 논란이 되려면 1차사료정도는 있어야되는 것 아닌가?


3) 설사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래 원하는대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해보자. 그럼 주원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개같은 한반도"을 떠나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중국"으로 간 것이 된다. 이 점은 생각해보았는지 모르겠다. 무조건 "한국인" "한국인" "한국인"만을 말하다보니 이런 조그마한 것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하자. 그래서? 조상이 당신 밥 먹여 주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분명히 이야기를 하겠다. 정체성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역사에 기대지마라. 설령 조상이 아무리 위대했어도 지금 현재 빌어먹는 거지꼴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라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를 냉철하게 살피고 미래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하자. 그래서??? 우리 모두 중국정령하자?!
정신 차려라. 이 내용 덕분에 중국에서의 반한정서가 왕창 상승하였다.


추가 : 혹시 주변에 중국인에게 말하고 싶은데 중국어가 안되는 경우 아래를 참고하셔요.

我身为在中国学古代史的的韩国人,向中国朋友道歉。

朱元璋为韩国人是由于不可靠的史料(朝鲜纪文)来推测的垃圾理论,是韩国的一部分极端民族主义者和国家主义者引起的一场大误 会,我已经通过博客向韩国朋友解释了,并且韩国历史学界不会依靠这些不可靠的史料来推定历史事实。再说这些都是一部分人造成的祸,世界上任何地方都存在着一些疯子,希望不要通过疯子来判断一个民族或者一个国家。

只是借这个机会向大家提醒一件事。民族主义和国家主义总是内涵着这些问题,而且这个问题不仅仅在韩国,中国跟日本也确实是存 在着。比如说,意大利面是中国发明或者把历代边疆的各个民族政权统统被列为地方政权等等的事情。

我希望大家尽量理性的摆脱这些民族主义和国家主义的束缚,不要老是纠缠着过去,要重视现实和未来。历史经验可以值得学习,只 是不要忘记学习历史经验的的目的。

  1. 직접 구해서 볼 수 있었으면 더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본문으로]
  2. 제목; 朝鮮紀聞 바로가기 (새창). 저자; 鈴木信仁 編. 발행일; 1885. 발행기관; 愛善社.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본문으로]
  3. 심히 정치적인 사람이었고, 이 책을 연구서 수준도 안되게 보는 사람도 많다. 吴晗은 나중에 심히 유명해진다. 문화대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海瑞罢官》이라는 명작을 내놓는다. [본문으로]
  4. 조금 과장하긴 했고, 본인이 1차사료를 통한 공방을 구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그래도 어이없어!!! [본문으로]
  5. 《明史》第一卷 本纪第一 太祖一 太祖开天行道肇纪立极大圣至神仁文义武俊德成功高皇帝,讳元璋,字国瑞,姓硃 氏。先世家沛,徙句容,再徙泗州。父世珍,始徙濠州之 钟离 。生四子,太祖其季也。 [본문으로]
  6. 위의 것만 적어놓으니 혼동하시는 분이 있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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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골 2010.03.27 11:56

    吴晗이 또 이렇게 연관된다니 재미있군요. ^^

    뭐 학문과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당시 북경 부시장 (읔 맞나?)으로서.. 등소평의 따님이 쓰신 전기에는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더군요.. 여러가지 측면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3.27 15:11 신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연관을 못 시키고 있었다가 나중에야 생각났습니다.머..해당 책의 집필시기는 나중에 정치권에서 샤바샤바할 때보다는 훨씬 이르답니다.

    • BlogIcon 철림 2021.02.15 13:19

      등소평 따님? 이 새끼 짱개네

  3. 지나가는 한국인 2010.03.28 22:34

    아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중국어 번역본..중국인 친구에게 보여주라고 한 저 부분 정말 감사하게 잘 활용했습니다 ㅠㅠ

    일본에서 중국인 여자친구 만나서 사귀고있는데, 오늘 갑자기 한국 무슨 언론사가 주원장이 한국인이라며 왜 한국은 전부 중국의 발명품, 위인들을 자기네들껄로 둔갑시키냐고 화를내더군요..

    에혀 ㅠㅠ 어쨋던 한중....(한일도 그렇고)은 바로 옆나라 이웃국가입니다.. 서로 같이 잘 발전하면 좋을텐데.. 자꾸 마찰만 일어나는거 같아 안타깝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3.29 00:34 신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사실 좀 열받아서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하지는 못했는데 말이죠;;;;

  4. Paul 2010.04.04 23:37

    明太祖朱元璋本来就是个乞丐出身,当了皇帝之后,灭绝人性,杀人无数,几乎所有开国元老都给他杀害的,是中国历史上数一数二的大暴君。朱元璋得过天花,满脸大麻子,难看死了,根本不是上边韩国人看到的那种照片,而且个大字不识几个,昏庸无能,残暴至极的这么个东西。有什么好抢的?

    况且就算你不抢在中国到处都是反韩的帖子,反韩的情绪高涨,你这么真来抢那还了得啊?
    在中国各大论坛,甚至门户网站都说:韩国人抢,孔子,孙中山,现在连恶名昭著的乞丐都要抢,那岂不是更加证明了之前那么多有的没的网上的流传的帖子都是真的了吗?能对韩国有什么好处吗?

    中韩两国现在误会太大,你这种两边都懂,比较客观,理性的人太少,民间民族主义太凶了,早晚会来个大爆发。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4.05 03:55 신고

      早就爆发了吧。实话实说,以前为了消灭假新闻,在中国论文上活动过,不过我不太喜欢BBS本身,况且怎么反驳或者解释也不相信的人太多了,终于放弃了。现在只针对周边的中国同学问相关问题的时候告诉他们“事实”罢了(幸好我周边是算是有理性的人)

      最后我想说几句话。不知道你故意选择“抢”这个词。不过在我的观念上不管是孔子或者孙中山都不是什么“抢”“不抢”的问题。在这事件上用了“抢”字意味着你也有点熏陶于民族主义的臭味。我只是建议你力求彻底摆脱民族主义。。。但是这件事本身就是个人的自由了。所以我只能建议,无能勉强了。


      啊。 关于孔子的事情我在博客上写过。简单地说,虽然孔子在学术上基本上无法证明“韩国血脉”(是笑话),不过在精神继承上算是可以自傲了,比如说在曲阜进行的孔祭(向孔子的祭祀)是只在韩国的儒家指导中国的相关学者以及人员的。(不过我是讨厌儒家)孙中山是纯属于假新闻类。

  5. Paul 2010.04.05 03:01

    是故意用的抢字,你说的我也明白,其实我跟你一样,对两边都太清楚了,也试图去影响周围的小范围的人,希望消除误解。中国其实以前不这样,跟日本80年代也好着呢,跟韩国就更没什么矛盾,我是指民间。可是最近比较厉害,我也不知道为什么,可能是韩剧?可能是足球?可能是假的新闻? 问题是这些假的为什么会出现呢???

    因为我接触的好多韩国人我觉得不错,可能我运气好,可我的好多同学朋友都在韩国,回来就抱怨,还有好多汉族现在去韩国,他们可是哈韩的铁杆粉丝,可却受到了冷遇,歧视,回国就变成反韩急先锋,这一点上我觉得韩国需要反思,因为在韩国也确实客观存在,小看中国,歧视中国的现象。我也很讨厌中国人的某些坏习惯,可韩国也是这么一步一步走过来的,我觉得韩国需要大度一些,中国门刚开,需要很长时间,以前大家语言不通不知道,现在网络这么发达,所以韩国人想什么第2天可能中国人就知道了,而且是添油加醋的。

    中国是个独裁国家,所以媒体是国家控制的,韩国是开放的,至少看起来如此,所以可能更具隐蔽性,却在某些方面诱导韩国人,中国是审查的国家所以可能反而对韩国更好,我相信完全开放的中国,在没有互相解除误解之前,会对韩国更加不利。唯一的办法就是你这样的人多一些。呵呵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4.05 13:53 신고

      我个人觉得交流才导致了现状。正确的说,这是交流初期自然发生的误会。还有民族主义和国家主义因素。这些不用多说了。

      我也基本上赞同你的想法。韩国需要更开放和宽容的心态,不过因为中国政府控制着媒体,所以有时故意鼓励反韩情绪来诱导中国人的。问题是中国政府的这种行为很难阻止,因为所谓正义公正的中国网民也沉浸在民族主义的洗礼里。

      我也还不能确定如何解决此问题。我相信误会是扩展交流过程当中越来越消失的。问题是民族主义和国家主义,因为韩中日三国为了维持国家统治过于强调了民族主义和国家主义,而且现在和未来也需要此观念。所以对个人来说很难揭破此观念。

  6. 익명 2010.04.10 14:39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4.10 15:23 신고

      1) 중국을 곱게 보지 않으시는 것은 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본 글의 내용은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2) 북한여성이 한족에게 팔려간다?
      그럼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성들은 한국에 팔려오는 것인가요? 그럼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의 긍지를 한국은 깔아뭉개는 것이군요.

      무엇보다 북한여성이 한족에게 팔려간다는 발언은 명확한 통계자료가 없고 조사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최소한 저는 관련 자료를 본 적이 없군요. 관련 자료의 출처를 발히고 언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조선사람 2010.10.06 01:07

      어린애같은 대답이겠지만 뉴스에서 몇번본적은 있더군요.그리고 예비군 훈련정신교육때도 본것같습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전체는 몰라도 베트남인들의 긍지를 깔아뭉개는것은 맞느것같군요.이걸로 욕먹도 할말은없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6 04:13 신고

      사실 돈과 안정된 장소가 필요한 탈북자 여성들이나 그 가족들이 중국인과 결혼한 뒤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사실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북한의 "가족주의"는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어이가 없는 것은 "팔려간다"라는 식의 발언과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우행이었습니다.

    • 조선사람 2010.10.12 05:35

      생각보다 많지않다..뭐 꼬투리 잡느건 아닌데 님께서 정보의 출처를 요구하셨으니 저도 여쭙느겁니다만 이런 뒷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확히 어떤 통계로 환산해내는 경우도 꽤 많을것같은데요..확실히 북한여성들이 좋아서 끌려가느것같지는않고 뭔가 모종의 거래는 있을것같습니다.어차피 이것도 다 추측이겠지만 님께서도 확실히 믿을만한정보를 얻으셨다면 그에 대한 출처를 여쭙는겁니다..

  7. 중국유학생 2010.09.13 21:06

    글몇개를 봤는데 불로거께서 많은 부분에서 저랑 생각이 일치하신것 같음
    몇몇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2차사료를 믿고 말도 되지 않는 사실을 조작해서
    반한정서를 조장시키는게 진짜 맘에 안들어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6 04:13 신고

      양쪽 다 그따위 짓 하고 있는 꼴이 재미있으면서도 짜증난다고 할까요?

  8. 차돌바위 2011.06.17 04:47

    제가 아는 얘기는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주원장 설화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예전에 어떤 할아버지에게 들은 것인데 구한말까지도 황해도에서 전해져 왔던 얘기입니다. 주원장은 황해도 해주 태생이고 그 집안은 대대로 거지로 생활했답니다. 황해도 연백평야 가운데 면압산이 있는데 산은 낮아도 황해도의 정기가 모두 모인 천하명당자리라고 합니다. 거기에 주원장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렇게 3대의 묘가 있어 거기 사람들은 주천자 3대 묘라고 불렀습니다. 거지로 몇 대를 빌어먹으며 고생을 많이 해서 후손 중에 귀한 자손이 나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집안도 그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매우 가난하여 거지로 생활했었답니다. 어쨋든 고려말에 매우 혼란하고 살기가 어려울 때 주원장이 거지떼를 이끌고 떠돌아 다니다가 중국까지 가서 홍건적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무리들 사이에서 매우 명망이 높아지자 결국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나중에는 명나라를 세워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권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자기 고향에 있는 선친과 조상들의 성묘를 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여 면압산에 있는 산소를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조선조정은 그 소식을 듣고 만일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 행차하게 되면 막대한 경비를 부담해야 하고 그에 따른 백성들의 민폐가 극심할 것을 염려하여 관리를 황해도에 보내 산소를 찾아 봉분을 없애고 평토작업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사신에게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산소는 없다고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그 지방 사람들은 거기에 주천자의 조상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랬동안 그 지방에서 그 얘기가 전해왔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조선초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얘기들은 현재로서는 중국과 역사문제로 논란만 불러일으키니 우리가 통일이 되고 국력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이 사실도 알려지게 되고 산소를 다시 발굴하던지 유전자 DNA검사를 해서 중국에 있는 주원장의 것과 서로 맞는지 대조를 하면 확실히 밝힐 수 있습니다.

    • 신한주씨 2015.03.20 04:09

      성리학(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는 주자의 후손인 신안주씨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양반에게 부여된 부역의 의무를 신안주씨에게는 면제해 주었다고 합니다. 거지는 아니죠.. 양반가만 피해 갔다는 호포법을 면제해 주었으니 말이죠..

  9. 당신말이 맞다쳐도 2011.08.30 15:19

    [주원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개같은 한반도"을 떠나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중국"으로 간 것이 된다] 라는 당신의 표현은 아무리 주원장의 입장에서 보았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으로서는 결코 할수 없는 표현이며 해서는 안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건 자유지만 같은 한국인으로써 분개하지 않을수 없네요. 개같은 한반도라니.....솔직히 심하게 욕해주고 싶지만 참습니다.

    • ㅇㅁㅎ 2012.12.02 15:05

      김치맨 종특...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는데 누군가에겐 개같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천국같을 수도 있지.

  10. Favicon of http://daehan8816 BlogIcon 주창보 2012.01.12 07:03

    조선기문은 사실이다
    사대주의자들이 삼국사기 를 통해
    김부식에 게 벼슬을주어우리 역사를
    왜곡시킨것이다 고구려 주몽도 고구려국호인 고를붙여 주몽을왜 곡 시 킨것이다주원장은 주몽의 후손 이다

    중국의 금나라를 세운 큐렐랑도

  11. 지나가다 2012.01.12 18:50

    역사학도 이면서 너무 사료에만 집착하는것 같은 편협적인 시각을 보이네요. 폴리네시아쪽 원주민은 문자가 없습니다. 구술역사가 있죠. 그리고 일정부분 구술 역사가 21세기에와서 어느정도 맞다는것이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즉 자기네 선조는 대륙에서 살다가 땅이 갈라지는 천지 개벽으로 섬이 되었다느것인데, 원주민이 만든 석상성분이 안데스 쪽의 석상 성분이 똑같다는것이니다. 필자의 경우는 사료가 없어 인정하지는 않겠지만요.

  12. 나그네 2013.02.15 00:36

    근데 사실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쳐도;
    애초에 신안 주씨의 시조는 송나라에서 건너온 사람으로
    핏줄로 따지면 대륙인이 맞죠;

  13. 음흠 2013.09.28 12:06

    주원장이 고려인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거 그리고 과거가 조상이 어쨌건 지금이 중요하다는 거 역사가 반성어쩌네 다~ 공감가는데
    한가지 븅신 같은 점이 있는데
    무슨 중국인들 반한정서 일으킨다 개소리는~~~
    그게 그리 신경쓰여?

    • BlogIcon 신라인 2015.02.05 21:00

      ㅋㅋ니래놓고선 백날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마래가없다 ㅈㄹㅈㄹ ㅋㅋㅋ 대체 어쩌라는거지 ?ㅋㅋ

  14. ㅉㅉㅉ 2014.04.30 11:43

    난 이 글 쓴 사람이 어이없네.. 그깟 중국넘들의 반한감정이 뭐가 그리도 대단하다고 호들갑 떨어대는지... 2차사료?? 1차사료?? 풉~ 그럼 당신이 말하는 명사라는 1차사료는 모든 게 사실과 진실에 근거해서 쓰였다고 보시나? 역사란 어차피 권력을 쥔 자들의 시각에서 쓰여지게 되어있고.. 그 또한 얼마든지 조작과 편집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군.. 더더군다나 역사왜곡이라면 왜놈과 더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 한족놈들이건만.. 그 놈들 주장만 넙죽넙죽 받아들이는 당신이야말로 정신 좀 차리슈~ 아직까지도 시덥잖은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으로 밖에 안보이니까....

  15. 칼날의 황족 2014.07.04 10:20

    중국인들 반한정서보다 중화파시즘정서 걱정하는게 더 이득일것 같네요.일개방송사에서 헛소리한것 가지고 별 호들갑을 다 떠네요

  16. BlogIcon 신라인 2015.02.05 20:57

    미친소리. 금나라 시조를 신라인이라 허질않나 청나라 성씨를 김씨라 허질않나 이번엔 명나라 태조를 고려인?? ㅋㅋ 아예 그냥 중원 역사를 한국꺼라해라 ㅋㅋ 정신병자도 아니고 ㅋㅋ 단 한번도 해외침략원정을 해보지 못한 한반도 소국민들의 자괴감의 표상 ㅉㅉ 하두 조상새기들이 병싱같으니깐 후손들이 내세울 자랑스런 역사가 없어 헛된 망상을함 ㅋㅋ

    • 이런 2015.03.15 16:41

      아니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는건 중국도 인정하는 사료입니다만..
      금사에서도 금나라 태조는 고려에서 왔고 형은 고려에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송막기문에서도 여진추장은 신라출신이라고 기록하고..
      고려사에서도 여진추장은 고려인이라고 기록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신라의 후예라고 하는데 왜 그걸 억지부려서 만든것처럼 말하는지 참 웃기네요..

  17. 신한주씨 2015.03.20 03:55

    저는 신한주씨 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었죠... 그것보다 서프라이즈에 안나온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원자장자님께서는 왼손잡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이유는 오른손 손금이 정확히 王자가 있어 손바닥을 보이면 자신이 죽을까봐 개국을 하고 처음으로 오른손을 폈다고 합니다.

  18. 신한주씨 2015.03.20 04:07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것이 저희 가보를 보시면 위키백과에서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원래 朱씨는 주자의 후손들이고 고려와 조선시대 고려에 와서는 전라도 능성 등에 터를 잡고 전주이씨 집안과 통혼하는 등 각별히 지내다가 전주이씨가 함경도로 이주할 때 같이 이주하였고, 그 인연으로 고려말 조선초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3개 파로 갈립니다.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섬길 수 없다고 한 첫째 분은 두문동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굶어 죽은 72현 중의 한 분이 되었고("두문불출"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지리적 저희 가문의 설화로써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사료라고 생각 됩니다.


  19. BlogIcon 문화사대주의 2016.03.13 15:20

    그래서 모 어쩌자는건지?? 주원장이 고련인이건 청나라가 신라인이건 ㅋㅋㅋㅋ 결국 현실은 일본 .미국 노예 ㅋㅋ 중국은 모 가서돈주고살으세요 해도 안산다 더럽다

  20. 아마추어 2018.11.23 01:23

    님도 그닥 전문가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와 역사를 아주 깔아 뭉개시네요? 훈계도 적당히 해야 효과가 있지 님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을 무슨 과대망상에 걸린 정신병자처럼 취급하는건 오히려 과도한 컴플렉스이고 자학이라고 생각해요. 묻겠습니다. 짱께들이 동북공정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쓴 사서의 기록들까지 오류라고 부정하면서 우리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마 옳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죠?

  21. 환국후예 2018.12.22 15:16

    우리 동이족은 천손민족으로 지도자의 기질을 타고났습니다 그리고 씨가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정신문명을이끌 윤리도덕을지니고 영통한지도자들이 나옵니다
    그러기위해서 남한테 원한을사면 그 기운을풀기란 너무어렵기때문에 외국에 원한을 짓지않기위해 외침도않하고 인의로 이 나라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당연히 매국노,금수같은이들도 많지요,
    하지만 제대로 정통성과 정신을 지키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해온 이땅의 숨은 인재들이 많다는걸 아셔야합니다
    남이야 욕을하든 스스로 하늘의 뜻을 알고 지키고 제대로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현대적 의미의 출입국관리소는 국가기관에 의해서 국경에서의 출입행위를 감독관리하는 기관이다. 이 말은 출입국관리소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성립과 안정적인 유지 및 국가간의 무역을 위한 기본적인 경제조건과 교통조건이 선결 조건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을 갖춘 시기는 과연 언제쯤일까? 서양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에 중국대륙사를 중심을 이야기해보겠다.
 
무역을 하려면 무역이 가능할 정도의 경제력이 필요하다. 상나라에는 여유자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갑골문등에서는 "납공 纳贡"(제후가 왕에게 바치는 제물)이 나온다. 납공을 했다는 것은 일정한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행정기관의 존재여부는 명확하지 않다[각주:1].

관련된 실질적인 행정기관으로서의 존재는 주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주례(周礼-地官篇)에 따르면 关(관문할때의 관)이라는 기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사관(司关)으로 간략하게는 문지기이다. 장절(掌节)은 비자발급해주는 사람이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이 시기야 말로 출입국관리소의 출범이다. 실제로 중국학계에서도 이 시기를 출입국관리소의 시초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서 주나라는 어디까지나 봉건제를 행하던 "하나의 국가"였고, 어디까지나 제후와 왕 사이에 벌어졌던 내부물자이동이기에 출입국관리소의 시작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한다. 아예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국(国)의 유래를 생각하면 조금 황당한 반론이다. 왜냐하면 국은 성단위의 행정단위를 이야기한다. 더 간단하게는 그리스와 같은 도시국가였던 것이다.  비록 명목상으로 주왕이라는 최고통치자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통치권은 매우 약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나 현재 중국정부의 "하나의 중국"의 정신에 너무 영향을 받은듯 하다[각주:2].

혹자는 당시에 관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막은 것이지 물자를 막았다고 보기 힘들기에 출입국관리소라고 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물자가 발이 달려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사람의 손을 통해야했기에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곧 물자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떠나서 고대사의 수 많은 기간동안 사람이 곧 재산이었다. 사람의 통행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곧 물자유통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각주:3].

춘추전국시대에 오면 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출입관리제도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 예를 들어서 춘추시대에는 관중은 "관세를 낮추고 상인을 대접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전략"이라는 지금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략을 실제로 실행하여 대박이 난다[각주:4].  전국시대로 오면 상앙은 관세를 무겁게 하여 농업을 발전시켜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 당시 상황에서 농업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농산물이라는 먹거리차원만이 아니라 농민들자체가 병사였던 시대이기에 농업의 발전은 곧 부국강병과 동일하였고, 이런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상업을 막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상업을 억제는 경제원칙은 중국고대사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법칙이 된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을 하고 농민이 곧 군사력이라는 법칙이 붕괴될수록 사회적 모순은 점차 커져만 가게 되었다.

핵심은 춘추전국시대에 다양한 출입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무역이 어느 정도 성숙했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어떠한 제도도 기본 없이 순식간에 성숙할 수는 없다. 다만 중국 출입국관리 발전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대로 넘어오면서 중국대륙은 통일체계를 이룬다. 그러나 초기에 국력은 매우 약하여 내부적인 통치력도 약하였고, 외부적으로는 흉노에게 처참하게 밀리고 불평등조약을 맺게 된다. 주기적인 흉노에 대한 조공을 하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변방에 호시(胡市 북방계열과의 무역시장)을 정식으로 만들게 된다. 그 전에도 북방과의 무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 시기에 정식으로 사료에 나타나게 된다[각주:5].  한무제때가 되면 북방공략에 나서게 되며 장건(张骞)의 노력으로 서역으로의 무역노선도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대외무역이 활발한 시기는 매우 짦았으며  무역권한도 기본적으로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위진남북국시대는 매우 혼란한 시기로 북방민족이 대거 중국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며 자연스럽게 국제무역이 번성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주목할 것은 "조공-책봉 朝贡-册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외교시스템적인 국제무역이다. 유교의 국제질서시스템을 명목상으로 이어가며, 겉으로 보기에는 조공을 바치면 일정한 벼슬을 내리고 있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외교전략으로서 조공이라는 명목상의 물품을 바치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을 내어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대륙이 혼란스러운 상황마다 벌어졌을 뿐만이 아니라, 평화시대에도 이른바 "평화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로 기본적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 바로 중국어 
중국어로 출입국 관리소는 海关(hai guan)입니다. 여기서 海는 바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해(四海)는 구이(九夷), 팔적(八狄), 칠융(七戎), 육만(六蛮)과 같은 중국외부의 지역을 지칭합니다. 사실 사해의 밖에도 사황(四荒)이라던지 사극(四极)과 같은 지역 범위가 있지만, 지금은 중국외의 모든 지역을 가르킵니다[각주:6]. 관(关)은 위에서도 나왔지만 관문의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중국어의 海关은 중국외 지역과의 교류를 관리하는 관문이라는 의미입니다.

* 모종의 이유로 최대한 쉽고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입니다. 문헌인용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귀찮아서 넘겼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에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아마도? 루루루루...머...읽는 분이 있기는 할런지~~

  1. 혹자는 孟子-梁惠王편에서 나오는 고사를 인용하고는 하지만 맹자 자체가 만들어진 시간이 늦기에 그리 신빙성은 없어보인다. [본문으로]
  2. 막말로 어용이라는 소리지요~ [본문으로]
  3.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는데 노예제도가 폐지된지는 몇 백년도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 전까지 사람도 "문건"였다. [본문으로]
  4. 공자도 역시 관세를 낮추는 정책을 이야기 했었다. [본문으로]
  5. 중국사에서는 몇몇은 이것을 가지고 화평을 맺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조약내용을 보면 누가봐도 한나라가 무릎을 꿇은 거다. [본문으로]
  6. 《尔雅·释地》 [본문으로]
저는 명확하게 말해서 한국학계 소속이 아닙니다. 대학교도 대학원도 해외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학계와는 계속적인 연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자이나 내부자로서 느끼는 한국학계는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한국학계에는 골동품상과 보따리상만이 있다. 시대가 지나가버린 골동품을 계속 우려먹거나 해외의 지식을 보따리로 싸들고 와서 풀어버릴 뿐이다."

어느 분[각주:1]이 말씀하신 한국학계의 현주소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동안 한국의 학계도 대학교통폐합을 비롯하여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새끼" 시스템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학문 수준의 변화도 모르겠습니다[각주:2].

본인이 이 모든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실력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학문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는듯도 합니다. 석박사를 졸업하고 눈물겨운 삽질을 하고 있는 형-누나들을 보면서 열망이 생기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각주:3].


  1. 혹시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 말은 아닙니다. 누구인지는 일단 비밀로 하겠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것이라고 봅니다. [본문으로]
  2.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누군가의 사례를 골라서 비판을 해야되기에...그냥 넘기겠습니다. [본문으로]
  3. 현재 교수된 사람도 별로 없고, 교수가 되어도 자신의 전공과 일치되는 수업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습니다. [본문으로]
  1. 비전공자 2010.01.10 16:59

    바로님! 저도 보따리상 골동품상 처럼 주로 한국에서 나온 역사책을 뭉뚱거려 고대사에 관한 블로깅 질을 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하는 짓이랑 한국 학자들이 하는 짓이랑 별반 차이가 없다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비전공자로 관련 학자가 아니거든요. 뭐 어떤 나라든 어용과 정치의 문제가 없기는 하겠느냐만-일본 중국도 이런 점은 무시 못할 정도지만-제 보기엔 한국학자들 처럼 괴상한 삽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들이 연구는 하지 않고 일본,중국 학자들이 하는 연구만 번역하는 사람들이었음 좋겠어요. 이것만 되도 소위 식민사학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합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0 21:59 신고

      제가 좀 비판을 하긴 했지만,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모습을 이야기한 것 뿐이랍니다. 물론 언급하신대로 보따리상과 골동품상정도의 분들도 쫌 많이 있지요. 하하;;;;

      그런데 블로그를 운영하시는듯 한데, 주소를 안 적어주셨네요. 고대사에 관한 블로깅이라...어느 블로그이신지요????

  2. 비전공자 2010.01.10 17:01

    한가지 더! 혹시 중국학자들은 한국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어떻게 평하는지 궁금하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0 22:02 신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힘들군요. 학문에서는 사실 국적을 통한 연구사보다는 한 개인에 대한 연구평가를 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평가를 보자면...동양사쪽을 보면 아무래도 일본학계보다 실력을 떨어진다는 평가가 대다수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떨어지긴 합니다.-_) 좀 비꼬아서 평가하면 일본학계의 아류수준이죠.^^::: 어디까지나 비꼬아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0-;;

  3. 비전공자 2010.01.11 02:32

    바로님! 무엇보다 바로님이 전공분야에 대해 이렇듯 명쾌하게 설명하시니 제가 이 분야를 새롭게 볼 수가 있는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적 환경에 익숙하고 한국만 잘못 된 줄 알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한중일 모두 제 각기 특징들이 있군요. 한국의 경우 여러가지 원초적 열악성이 있지만 결과적으론 양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질 수 밖에 없군요.

    "사실 한국으로뿐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많이 수입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동양사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연구방법론입니다. "--> 이 문장에 이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군요.

    그 외에는 좀 입장이 다르네요. 물론 동북아재단 책 수준이 예전보다 업된 것은 맞습니다만, 이덕일씨 말대로 식민사관을 완전히 씻었다고 보여지진 않습니다. 위의 바로님이 적용한 기준에는 한참 미흡할 텐데요...뭘.

    그리고 입장을 바꾸놓고 생각을 못하시는 점이 아쉽군요. 한글 자치통감 따위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략 중국사에 대한 개론서 들은 좀 더 컴팩트한 판으로 여기저기 찾아볼 수가 있을 걸요. 아마 자치통감의 방대한 지식을 필요로하는 사람이라면 ... 아마 다른 책을 읽는게 나을 겁니다. 자치통감은 일종의 "복기"정도로 활용하는 것. 한마디로 애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래도 바로님이 비전공자의 입장을 잘 이해 못하심이... 어쨌든 담에 뵙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1 11:58 신고

      저도 몇 번이나 사용한 표현이지만 명쾌라기 보다는 거칠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결과에는 수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고, 그 원인간의 상관관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 그냥 싹뚝 짤라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나만을 들어내놓는 것이랍니다.


      책의 추천은 제가 전공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이덕일씨는 이른바 환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분을 만리장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최근 이덕일씨가 이병도의 설을 왜곡하여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주장"라고 비판했었습니다. 제 기억에 이덕일씨가 동북아역사재단이 식민사관이라는 것을 간략하게 보면

      1) 한사군의 한반도내 존재가능성인데 이것을 현재의 사료와 문물로는 한반도내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더 정확한것은 북한에 대한 신빙성 있는 발굴 후에나 알 수 있을듯 합니다.

      2)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불신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타당합니다. 삼국사기는 "통일신라"에 이르러서 겨우 만들어졌고, 초기 기록은 일차사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참고로 일본학계에서도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임하냐 마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마냥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한다고 식민사관이라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초기기록을 왜 못믿느냐면, 사람의 기억은 먼 과거에 대해서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내에서 후기 조선과 같은 명확한 사관시스템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비록 초기기록은 당시까지 내려왔지만 지금은 실전된 책의 기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2차사료로서 역시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만약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그냥 믿는다면 같은 방법론으로 "일본서기"의 초기기록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소리이며 그럼 임나일본설도 합당하다고 보아야 됩니다. 이덕일씨는 이에 대해서 마치 임나일본설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병도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했다고 말을 하는데;;; 이병도는 오히려 임나일본설을 부정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죠?


      현재까지의 방법론으로는 이덕일씨가 잘못된 말을 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기본적으로 타인의 발언을 왜곡하는 것부터가 학문정신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학계를 비판하면서 이미 과거의 인물인 이병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 어이가 없습니다. 이병도씨가 한국사학계에 미친 영향은 분명히 크지만, 이미 그 시대를 벗어난지 오래되었습니다. 오히려 민족주의사관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부풀리는 행위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조선을 별 증거도 없이 마음대로 추정하는 행위-_)


      한글 자치통감...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방대하지도 않으며, 원문이 아니기에 고문에 대해서 약한 분들도 읽을 수 있고, 내용도 편년체(시간의 흐름대로 적어놓은 책)이기에 시대의 순서대로 소설 읽듯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한번 시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의외로 재미있음에 놀라실 겁니다....라고 해도 전공자만의 재미려나...흐음..아닌데;;;;

      그 외에 컴팩트판은 워낙에 많이 있고, 그 중에서 "이것이야 말로 대중을 위한 역사책이다"라는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4. 비전공자 2010.01.11 13:14

    그러고 보니 바로님도 넓은 의미의 "환까"라고 할 수 있겠군요. 참고로 전 환빠-환까 다 안좋아합니다. 그런 점을 미리 염두했다면 바로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요점만 생각하면 좀 우습게 되었지요. 번지수를 잘못찾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도움은 많이 됐습니다.

    1)의 경우 바로님이 신중하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2)의 경우 물론 일부 학문적으로 타당하죠. "일부". 문제는 학적으로 완전히 근거가 없다고 완전히 판명된 사안에 대해서 한한다는 점이죠. 그렇다고 명백히 증명되지 않은 사안(기사)에 대해서는 이 말을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는 것이죠. 엄밀히 "불신론"을 식민사학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속설로서의 불신론을 말함입니다. 대체로 그것은 무리한 일반론의 오류와 같죠. 그래서 그들이 식민사학이니 환까니 욕을 먹는 이유죠. 반면 환빠나 식민사학에 대해 열내기 좋아하는 분들중에 그냥 국내기록을 믿어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죠. 어차피 환까-환빠들은 엄밀한 학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속설적인 의미에서 불신론"이란 허수아비를 들고 신(信)이니 불신(不信)이니 하는 것이죠. 그러나 삼국사기는 국내기록이라 한반도 그 부근의 역사를 다룰 때 당연히 다른 사료보단 중요성이 높다는 것이 제 상식입니다. 물론 바로님은 소위 동양사전공이시니 입장이 다르시겠지만요.

    저는 이덕일씨 이야기도 가려서 듣는 편입니다. 이 점은 뭐 관점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솔직히 근데 동북아 역사재단의 글도 나름 정리는 잘 되어 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중국쪽 연구들에 많이 의존하는 듯 싶더군요.

    그리고, 한글판 자치통감 솔직히 나온건 그 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번역한 분 정말 대단한 일 하셨다고 봅니다. 저도 예전에 재미 좀 붙이려고 삼국지, 열국지도 읽고 (십팔사략도 읽을라다 말았습니다) 한 세로줄로 된 4권짜리 중국 개론서를 다 읽어 보았습니다만 문제는 기억력의 한계로 다 잊어 먹더군요. 결론적으로, 결국 자치통감을 한글로 읽으나 한문으로 읽으나 남는 것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혹 한문으로라면 모를까 한글로 읽을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전 종이 두께가 어느 정도 이상되는 책 무조건 X입니다. 시간도 없고 말씀드렸듯 한문도 그리 잘하진 못하죠. 사실상 능력 밖에 일일지도 모른다능. 바로님은 바로님대로 한글 자치통감이 그럼에도 이래서 좋다고 주장하신다면 저 역시 수용하겠습니다. 솔직히 무엇보다 시간이 없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1 14:57 신고

      굳이 따지면 환까겠지요. 하지만 환단고기계열들은 솔직히 좀 문제가 심각합니다. 학문이라고 절대 부를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 불신론??
      기본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은 사료가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당연히 그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은 이상 그것을 믿는 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증명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단 "불신"하는 것은 역사학 외의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

      핵심은 증명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소위 환빠라고 말해지는 부류들은 원문의 한자를 마음대로 넣고-빼고-수정하는데 멈추지 않고, 가짜 사료까지 동원해서 증명하는 것처럼 하니 비판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듯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조차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인 것입니다. 소위 재야라도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하면 믿겠습니다. 그런데 그런것 없이 사학의 가장 기본인 사료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으니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습니다.




      * 혹시 일본어가 되시면 일본쪽 책을 구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일본쪽에서는 대중을 위한 책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얇기도 하고요. 거기에 만화! -0-;;; 일본어가 안되신다면;;;;;; 머;;; 어쩔 수 없는;;;;

  5. 익명 2010.01.13 14:40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11 01:08 신고

      자기 전에 잠시 확인하려는데 이런 글이...간략하게 대답하겠습니다.

      1. 골동품상과 보따리상.
      언급하신대로 분명히 스스로만의 독창적인 연구는 없이 해외의 논문을 가지고 와서는 자신의 것마냥 포장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 수준을 뛰어넘어서 제대로 된 연구논문을 주기적으로 발표하지도 않고, 학회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모든 한국의 학자들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일반화의 오류입니다.하지만 대다수가 과연 얼마나 창의적인 연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2. 한중간의 인터넷과 언론의 자유.
      제가 글에서 잘못 묘사를 해서 오해를 만든듯 하군요. 저는 중국의 인터넷이나 언론의 자유가 상당히 참담한 수준이고, 한국인들은 모두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한국의 사정이라고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에 비해서야 한국의 사정이 더 좋습니다. 이 부분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다만 실명제만큼은 확실히 한국이 중국에 비해서 앞서고 있습니다. 만쉐~)

      3.한국 고대사연구의 문제.
      상당히 복잡적인 문제라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군요. 거칠게 묘사만 하겠습니다.

      3.1. 학문적 자유.
      한국에서의 학문적 자유는 일정이상 있습니다.님이 언급하신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하다못해서 중국만해도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학문적 자유보다는 학문적 엄격함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듯 합니다. 그렇기에 제자 논문 뺏기, 다른 논문 배끼기, 전에 발표한 논문 살짝 수정해서 다른 곳에 발표하기등등의 일련의 삽질도 모자라서 그것이 관행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죠. 이는 학문적 기초의 문제로 보입니다.


      3.2. 학문적 기초의 문제
      고대사 연구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한가지입니다. 사료입니다. 문제는 한국고대사에 관한 사료는 매우 희박합니다. 그러다보니 연구자체를 하기 힘들고, 중국과 일본사료에 있는 내용을 참고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올 수 밖에 없습니다.(삼국유사는 사실 2차사료정도로 봐야되는데 한국에서는 1차사료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희박한 사료도 제대로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문해독능력의 문제입니다. 실질적으로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면 석사단계에 올라가서야 고문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자에 익숙한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기초가 부족할건 당연합니다.(첨언하자면 이것을 위해서 한자을 부활하겠다는 것은 코메디입니다. 전국민을 역사학자로 만들것도 아니고-_) 그 외에도 수 많은 곁가지 문제가 있지만 결국 사학에서의 핵심인 사료장악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4. 일본의 아류라는 것은..
      식민사관이나 배끼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학문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학계에서 신민사관은 이미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다만 일본의 사학연구의 방법론등은 한국으로 많이 수입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으로뿐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많이 수입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동양사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연구방법론입니다.

      간략하게 일본의 연구방법론을 이야기하면, "더 깊게 더 작게"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문 한문장을 가지고 한달 이상 토론을 하는 "미친짓"을 보여주며, 중국 베이징 후통(胡同) 앞에 있는 장식문향비교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합니다. 중국의 경우 처음부터 고문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일본과 같은 방식보다는 "더 넓게, 더 크게"로 요약된다고 봅니다.간단하게 전 일주일마다 자치통감 3卷씩 읽고 문제 찾기를 했습니다 어느 쪽의 방법론이 특별히 맞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일본의 학풍을 가지고 왔기에 기본적으로 정밀함과 세밀함을 중시합니다. 실제 한국에서의 고문 수업도 이와 같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뛰어넘는 학문적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한참 뒤쳐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첨언하자면 역사관련 책의 경우 스스로도 이해 못하고 쓴 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특히 번역서의 경우 사실상 해외의 책이나 "네이버 지식인"수준의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번역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경우도 꽤 봤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동북공정으로 고구려광풍이 불고 그에 상응해서 프로젝트비를 타려고 전공도 아니면서 휘갈겨 쓴 엉터리 책들도 꽤 보았군요...)

      또 이른바 환빠계열의 악의적인 사료조작의 책도 많이 있습니다.(그래도 이 계열이 재미와 흥미는 최고입니다. 존경스러울 지경입니다. 그 작명센스부터 악의적으로 사료를 조작하는 솜씨는-_)

      학문적인 깊이가 있는 책은 대부분이 일반인들에게는 개뿔도 재미 없습니다.(일반인들이 지정조격을 볼 이유도 없고, 출판되는 책은 쉽게 쓴다고 노력하여도 습관대로 전문용어가 나와서 비전공자들에게는 먼소리인지 모르고...)

      이렇게 재미와 깊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책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다만 조심 또 조심해서 책을 고르시고 읽어야 된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굳이 한국의 역사계에서 일반인이 재미를 찾는다면....제가 가끔 노는 것인데...

      환빠계열을 보고 그럴듯한 문장을 보고(99.99% 구라) 그것을 논리적으로 격파하는 놀이랄까요? 사실 이건 초록불님이 왠만한건 정리해놓으셨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떡밥을 만들어주시는 노력파가 한국의 환빠계열분들이시기에 언제나 나름 신선하답니다.......써놓고 보니 비전공자가 할 놀이는 아니군요.-_-;;;;


      흐음...그냥 몇 권 추천해드리겠습니다.-_-;; 자치통감 한국어버젼이 있습니다. 소설수준의 재미는 없지만, 나름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오는 책들은 구매해도 후회는 없을 정도의 수준입니다.조금 더 깊이 있는 것을 원하시면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동향 - 한국고대사학회 20년"으로 개략적인 부분을 보시고 관심이 있는 부분에서 인용된 논문이나 책을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그럼 자러-_-;;;; 졸립니다. 졸려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타자를 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쓸데 없는 말은 알아서 무시하시고 적당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히 한국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미 소위 글로벌 시대여서 세계와 같이 숨쉬는 와중에도 많은 한국분들이 아직도 자기중심적인면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역사관에 대한 부분은 한번 디벼 볼까 합니다. 이 글은 어느 한 분을 특정지어 비판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인용한 글은 한 분의 것이지만, 이런 생각은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시더군요.


1. 한국의 자기중심적인 역사관 대입[각주:1]의 결과물
한국에서 많이 퍼져있는 논리중에서 중국은 영토중심의 역사서술이며, 중국의 역사에서는 다양한 이민족의 역사가 있기에 민족중심으로는 역사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해서 요, 금, 몽원, 청은 중국의 역사가 아니며 중국의 역사에서 빠져야 된다는 소리입니다.

중국이 왜 민족 중심으로 역사를 쓸수 없는지에 대한 모순이 여기서 발생한다.

1. 한족에 대한 역사 기술은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
2. China 는 "지나" 즉, 진나라인 이라는 뜻으로 "한족"은 "진"을 계승한 한의 후예라는 뜻이다. 즉, 한족의 역사기술은 동쪽으로는 만리장성에 영토가 제한된다.

다시말해 중국은 현재의 중국을 통합하여 관리할 수 있는 역사개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접근이 공교롭게도 주변국과 문제를 일으킬수 밖에 없는 현재의 영토중심 역사관이다. 그러나 더 큰문제는 영토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기존의 고서들과 역사적 충돌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중화" 사고방식으로는 만리장성 밖에 어떠한 문명도 없어야 한다.

다시말해 오랑캐 부족국가만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오른편에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이 뚜렷한 문명의 족적을 남겨버렸다.

출처 : 중국과 만리장성에 대한 잡설중에서...


2. "수, 당, 남북조의 북조의 대부분 및 오대십국의 대부분 역시 기술을 할 수 없다"
한국의 자기중심적인 역사관 대입으로 논리를 전개하여도 기본적인 사실 자체가 틀렸습니다. 시작부터가 문제가 있는 논리이지만 그래도 서술하려면 제대로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남북조시대의 대부분의 북조왕조[각주:2]와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 그리고 대부분의 오대십국[각주:3]은 기본적으로 북방민족을 주축으로 구성된 왕조이며, 왕실 역시 북방민족계열이라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들 역시 중국사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하여야 합니다[각주:4]. 다시 말해서 :

"북조" "수나라" 당나라" "오대십국"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

하지만 위의 논리는 그 시작부터가 틀렸기에 참이 될 수가 없습니다.


3. 중국의 역사관은 다민족역사관이다.
중국의 역사관은 다양한 민족의 역사가 모여서 현재의 중국의 역사를 구성한다는 "다민족 역사관"입니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영토적역사관이라고 하면 순간 정신이 멍해집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자기중심적으로 한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도입하는 짓이 여기서 일어납니다.

중국의 역사관은 다민족역사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의 단일민족역사관을 그대로 도입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이다. 그리고 한족의 역사을 서술하자면 ""대부분의 북조" "수나라" 당나라" "대부분의 오대십국"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따위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관은 그 역사관으로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중국이 자신의 역사관으로 한국사를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충격을 더하기 위해서 위의 틀린 이론대로 중국의 역사관은 영토중심역사관이라고 합시다.

중국역사관을 영토중심사관이라고 보고 한국에 대입하면, 한국의 역사는 38선 이남으로 무조건적으로 한정이 됩니다. 대충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절대 한국사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하는 짓이냐고요? 먼 개소리냐고요?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라고 말했던 행동을 그대로 적용해본 것입니다.


4. 그럼 한국의 역사관이 틀렸는가?
역사관은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한국의 단일민족 역사관은 현재까지 밝혀진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관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맞고 틀리고의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를 보고 잘생겼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릅니다. 저의 여친님은 저를 보고 잘생겼다라고 하시지만[각주:5], 어떤 분은 저를 보고 못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각주:6].

역사관은 이처럼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역사관이 합당한 바탕아래서 현재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면 그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존중받습니다. 중국의 다민족역사관도 한국의 단일민족역사관도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역사를 해석하는데 유용한 "도구"이기에 모두 존중받아야됩니다.


5. 그래도 한국의 단일민족역사관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편적인 단일민족역사관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합당한 바탕도 없고 현재의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소위 말하는 "한민족"은 다양한 혈연적인 요소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일민족사관에서 강조하는 혈연적인 관계는 부정당했습니다.

다만 현재 단일민족역사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혈연이 아닌 "문화"적으로 순수하게 내려온 단일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다양한 문명교류와 접촉 그리고 변형의 예로서 문화 역시 계속 변했다는 몇가지 사례들로 그 근거가 약해집니다. 예를 들어서 한반도에 유입된 다양한 북방민족의 문화도 있겠고, 중국대륙에서 전해진 문화와 문명도 있겠고 일본과의 교류중에 역수입된 것들도 있겠고 사례들은 넘쳐납니다.

또한 현실문제에서 점차 세계화가 되어가면서 한국에 수 많은 "타민족"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기존의 단일민족사관으로 형성된 민족주의[각주:7]는 심각한 배타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해외인력확보문제부터 시작하여서 2세들의 정체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과 문제를 토대로 앞으로 "다민족역사관"을 채택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혹은 미국이 다민족역사관이니 그것을 그대로 채택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역사 분석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다민족 역사관을 도입한 국가들에게 생겨나는 문제점들도 신중히 관찰하고 같은 잘못를 반복하지는 말아야될 것입니다.


6. 그럼 중국의 다민족역사관은 문제가 없는가?
개인적으로 이론의 차원에서는 중국의 다민족역사관 자체는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현실의 차원입니다. 다민족 역사관과 모순되는 "그래서 현재의 중화민족을 이루게 되었다"따위나 말로만의 "다민족"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민족역사관의 문제라기 보다는 중국정부 자체의 문제입니다.

물론 다민족역사관도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민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각주:8]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국가체계를 뛰어넘어있는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까지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각주:9]. 다만 제 생각에 현재까지는 가장 쓸만한 역사관이라는 것일뿐입니다.



* 최대한 쉽고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근거를 많이 제시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충분하게 제시했다고 봅니다. 제 블로그 자주 오는 분들이 민감한 글 쓰지 말라고 했.........

  1. 정확히는 일부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역사관 대입이라고 해야됩니다. [본문으로]
  2. 개인적으로는 모든 북조왕조라고 서술하고 싶으나, 몇몇 논쟁이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서....대부분으로 그냥 넘기기~ [본문으로]
  3. 이 역시 앞서의 북조왕조와 동일한 이유임. 개인적으로는 오호십육국의 [본문으로]
  4. 위에서 필자가 주장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진나라 이후의 "한족" 개념이었기에 그 전은 무시하였다. 하지만 은을 동이로 설정하고 타민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본문으로]
  5. ...사실 맨날 못생겼다고...흑. [본문으로]
  6. 사실 학술적으로 이따위로 이야기했다가는 돌림빵맞기 딱 좋습니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분들에게는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7. 단일민족사관과 민족주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움이라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단 사관을 우선시 했습니다. [본문으로]
  8. 혈연? 종교? 문화? 지역? 언어? 무엇으로 민족을 구분할까요? "종합적"이라는 말은 수 많은 분류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모호한 말입니다. [본문으로]
  9.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체인 국가체계와 다민족간의 융화문제입니다. [본문으로]
  1. cosmopolitan 2009.12.22 23:16

    평소에 궁금했는데..
    중국에서 역사 공부하는 입장에서..
    동북공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1:16 신고

      몇 번 언급하기는 했군요. 지금은 좀 정신이 없고, 나중에 동북공정만 모아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쫌^^::

  2. Viviane Bak 2009.12.23 00:36

    다민족 역사관이 한국에서 대우 받지 못하는 가장 큰이유는 이쪽 저쪽 다 섞였다면서 국가의 정체성이 사라지는다고 생각 한다는 것이겠지요. 일반적으로 아시아계 국가에서는 그런경향이 있고, 한국은 좀더 심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북한도 중국거냐라는 말을 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을겁니다.

    기본적으로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고립되어서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발전되었다면 혈연적인 단일민족관이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뭐 그냥 상상속의 일이겠지요. 이견도 없이 이건 점점 사라져야할 역사관일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영토중심의 다민족 역사관을 받아들여야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 입니다. 역사는 고정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가 깊숙히 결부되어 있기도 하죠.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는것이고,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역사는 전체적으로 혈연적인 교류를 포함 하더라도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눠지기도하고 합쳐지기도 하죠. 역사의 큰 흐름으로 지금 여러나라들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남아 있는 역사서도 보통 이러한 흐름의 관점에서 쓰여져 있구요. 국가란게 이러한 흐름의 결과물이지요. 대한민국도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관을 접근해나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관점에서의 역사관에서는 다민족/단일민족의 구분이 크게 의미가 없지요.

    국가의 정체성도 찾을 수 있을테고 중국과 같은 큰나라에 대항 할 수 있는 명분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1:29 신고

      현재의 단일민족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서는 일단 일치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인데..

      1) 저는 본문에서도 분명히 밝혔다 싶이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왜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제 말을 인식하셨는지 의문이군요.전 그런말 한 적 없습니다.

      본문을 내용을 그대로 다시 붙여봅니다. "이러한 현상과 문제를 토대로 앞으로 "다민족역사관"을 채택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혹은 미국이 다민족역사관이니 그것을 그대로 채택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역사 분석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다민족 역사관을 도입한 국가들에게 생겨나는 문제점들도 신중히 관찰하고 같은 잘못를 반복하지는 말아야될 것입니다."


      2) 다민족역사관의 이론과 실제는 구분하셨으면 합니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역시 다민족 역사관입니다. 그리고 미국도 그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미국에서 실질적인 다민족역사관의 도입과 다민족역사관 본연의 이론은 어느 정도 분리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이미 본문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대체 왜 중국을 "영토중심의 다민족 역사관"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로 영토중심이라고 하는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왜 중국이 영토중심인것입니까?


      3) 흐름의 관점에서의 역사관.
      역사 자체가 시간의 흐름이고, 시간의 흐름이 곧 역사이기에 일단 흐름의 관점자체는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님이 말씀하신 것은 역사학의 기본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 다음에 현실 연구로 들어와서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사를 어느 범위까지 설정하느냐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도 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의 관점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흐름의 문제라면 고대 한반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일본으로도 넘어갔습니다. 그럼 "흐름"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는 이들의 역사도 한국사에 포함되어야 될까요?

      물론 다민족역사관도 제가 본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리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흐름의 역사관"이라는 것은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만 보이는군요. 이와 관련된 괜찮은 논문이나 책이 있으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4) 국가 정체성 및 대국에 대한 대항
      죄송합니다. 전 이런 인식 없습니다. 한국의 국가정체성이 어떻게 되느냐는 저에게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닙니다. 단지 그 구성원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인가가 저어게 가장 큰 숙제이며 고민입니다. 국가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봅니다.그리고 최대한 "국가"나 다른 공동체와 벗어나고, 최소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야지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Viviane Bak 2009.12.23 01:44

    글쓴분에 대한 글에 대해서 글을 쓴게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셨네요. 글에 대한게 아닙니다. 그냥 몇가지 것을 언급한 것일 뿐입니다. 2)에 대한 걸로 중국이 영토중심의 다민족 역사관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 의문입니다. 실제로 영토중심이란 증거는 중국이 소수민족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에서도 드러나는거라서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3) 역사학은 순수과학처럼 규정지을수 있는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 갔다라는게 왜 한국사에 포함되지 않는 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사실 아닙니까? 하지만 역사의 흐름상으로는 일본사의 흐름에 포함되었을 뿐입니다. 새로운 분기이죠. 4) 한가지 의문으로는 국가가 필수적이 아니라면 왜 국가에 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것과는 다른 탈국가를 외치며 국가에 남아있는건 오류라고봅니다.

    • Viviane Bak 2009.12.23 02:03

      4)번은 빠른 글로 인해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어서 새롭게 적어봅니다.학문이 객관적이어야하는 것은 학문이 사실을 오도 할때의 이야기 입니다. 정답이 없는 부분에서 역사관의 부분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객관적인것 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뿐입니다. 역사학에서 정확한 역사를 밝혀내는 것과 역사관을 정립하는것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을 바탕으로한 인문학에 가깝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2:21 신고

      제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시라니 그 부분은 넘어가겠습니다. 제 글에 덧글로 달으셔서 제 본문에 대한 의견을 적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 중국 스스로가 말하는 역사관은 다민족역사관입니다. 그런데 님은 영토중심의 다민족역사관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적합한 증거를 제출하시는게 맞다고 봅니다. 소수민족에게 취하는 정책에서 영토중심이 들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언급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은 "겉모습"은 정말 꽤 괜찮은 다민족정책이지만, 그 실제 실행에서 상당한 문제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왜 영토중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 역사의 흐름상으로 일본사의 흐름에 포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그 흐름에 포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언급하신 "흐름의 역사관"은 기준점이 모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흐름의 역사관"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있으면 추천부탁드립니다. 흐름의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너무 모호해보입니다. 실제로 그런 학설이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4) 전 국가에 특별히 속해있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이나 중국 혹은 미국이라는 언급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것이라면 편의상의 분류로 활용될 뿐입니다. 마치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다른 특징을 보이는 남녀를 구별하기 위해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제가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기 위해서 위의 글을 쓰셨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글을 작성했을 뿐입니다. 제가 말하는 탈국가는 국가의 소속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절대우선이 되는 국가중심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한 사람" "한사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오류인지 궁금하군요.

      --------------------------------
      4)번 추가 부분에 대해서 :
      핵심만 말하면 전 글에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객관성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다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지요.

      물론 역사에도 사실은 있습니다. A국이 B국을 공격했다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오는 해석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해석의 단계가 역사관이 들어서는 단계입니다. 어떤 역사관의 틀로 분석하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 A국이 B국을 약탈, 침략, 공격, 모독, 멸망, 패망등등의 다양한 용어사용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그렇기에 역사는 분명 완전한 객관성을 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유용한 도구적인 "역사관"을 도입하여 연구를 하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연구와 역사관은 서로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역사 연구자체가 역사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역사관이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하냐의 문제입니다. 님도 언급하신대로 단일민족사관은 현재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데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단일민족사관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체는 주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최대한 객관성에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인문학인 이상 언급하신대로 주관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강력히 자리잡고 있는 현재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최대한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학문"임을 포기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함에 최대한의 객관성을 위하여 모든 개념들을 배우면서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4. Viviane Bak 2009.12.23 02:21

    2) 일단 제가 올린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다면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3) 흐름을 모호한 대상이라고 보시는데 역사 그자체가 흐름입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치하를 건너 대한민국이 되었듯이 사실이 바로 흐름이죠.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겁니다. 이어져온 역사에서 단일민족중심 사상을 제외한 것, 굳이 학설이나 학문을 들먹일것도 없죠.
    4) 진지하게 물어보는건데 그럼 왜 국가에 속해계신가요? 국가와 개인을 평등한 선상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국가가 그저 단순한 구분점이라면 국가가 병합되던, 침략을 받던 아무렇지도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원초적인 질문이긴하지만 정말 의문입니다.

    • Viviane Bak 2009.12.23 02:26

      추가로 역사관에서 객관성은 어떤 관점으로 본 객관성인지 궁금합니다. 역사관에서 객관성은 실제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역사적 사실을 추론하는 것은 최대한 객관화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역사관화한다는것은 최대한의 객관적인 사실을 해석자의 입장에서 주관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2:36 신고

      2) 영토중심?
      제가 볼때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어디까지나 다민족주의의 잘못된 발현이 초래한 것입니다. 또한 중국 자체도 다민족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는데 왜 굳이 여기에 "영토중심의 다민족역사관"이라고 하는지 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봐도 영토중심이라고 굳이 덧붙여야될 정도가 아니고, 중국 자체도 영토중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리 주장하신다면 왜 영토중심이냐는 것에 대한 근거부터 이야기를 하시는게 맞다고 봅니다.


      3) 흐름 사관.
      모든 역사가 흐름이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과정이라고도 언급했습니다. 네. 모든 역사가 흐름입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 연구에서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야되나요? 제가 언급한 "한국사를 어느 범위까지 설정하느냐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도 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의 관점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을 흐름의 사관으로 한번 이야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님이 어떤 발언을 하던 저는 "제가 보는 흐름과는 다릅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개인마다 흐름을 보는 관점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흐름은 그냥 역사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역사연구는 그 흐름을 어떤 역사관을 분석틀로 하여 해석하느냐입니다.

      정말 죄송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님은 역사학쪽을 공부하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4) 원초적 질문.
      일단 저도 질문 하나. "사람이 없어지면 국가는 없다. 하지만 국가가 없어도 사람은 있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가 병합이 되던 침략을 받던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 느낌 없습니다. 병합이 되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일제식민지도 맞냐고 하실터인데, 일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생각일 뿐이며, 님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역사를 계속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저의 생각은 더욱 더 국가체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이 되며, 그보다는 한 개인 개인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추가하신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위쪽 덧글에서 이미 추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도 역사학의 객관성 문제로 역사학도를 때려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최대의 객관성"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최대의 객관성을 얻기 위한 방법이 저로서는 하기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능력 부족이죠-0-

  5. Viviane Bak 2009.12.23 02:52

    네 맞습니다. 전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지요. 공과대학 출신으로 인문학을 현재 공부하고 있고, 역사쪽으로는 책을 주로 보는 편이라 단편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견교환하는 입장으로 자격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네요.

    2) 영토중심이 아니라면 과거에는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던 소수민족 자치구나 지역에 대해 중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일은 없겠지요. 무리하게 조상으로 숭배했던 악비조차 영토중심으로 역사관을 바꾸기위해 내치지 않았습니까.

    3) 제가 말하는 흐름이란것은 다민족/단일민족을 제외하고 역사를 그자체로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논쟁이 있긴합니다만, 고조선 -> %&^%%& -> 대한민국의 커다란 중심 흐름을 보자는 것이지요. 그중간에 다른 민족이나 혈통이 섞이는건 당연하구요. 이렇게 되면 두가지관점에서 둘다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단일민족으로보면 그냥 역사의 흐름상에서 큰 흐름을 이어오는 민족의 관점으로(혈통상으로의 민족은 아닙니다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거리가 있긴하지만 인체적특성같은 부분의 지역화는 존제합니다.) 다민족으로도 보면 민족이란것이 역사상에서 서로 합해진 다민족으로 구성된 다른 관점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단이 별의미가 없는 것이죠.

    4)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자생할 수있는 오지가 아니라면 인간의 관점에서 국가가 없는 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현실론적인 이야기죠. 국가 체계를 무엇인가 쳐부수어야할 대상으로 보는거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것 같네요. 국가도 가정의 확대일뿐입니다. 단지 대규모화 되어 감으로서 생기는 문제가 발생할 뿐이지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3 03:40 신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사교환이나 소통을 못한 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님이 전공이 아니시라면 제가 보다 간략하고 쉽게 설명을 해야되기에 언급한 것입니다.(사실 전공자가 아니시면 간략해지기 어렵습니다.)


      2) 다민족사관이란 한족뿐만이 아니라 많은 소수민족이 현재의 중국을 형성했기에 그들 모두 역사가 현재 중국을 형성하는 역사라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영토중심과 그리 관계가 없습니다. 다민족사관자체가 원래 그런것입니다.

      그리고 악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악비 역시 다민족사관에서는 당연히 그 의미가 변해야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민족사관을 제대로 반영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악비는 그동안 "민족"의 영웅으로 대접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다민족사관에서 악비는 민족의 영웅이 아닙니다. 악비의 적이었던 북방계열에게는 악비가 영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악비를 내치지는 않았습니다. 악비는 "충신"이자 "명장"이 된 것입니다.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말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합쳐진다고 가정해봅니다(침략이나 그런 것이 아니고 평화적입니다.) 서로 같이 공존하려고 하는데 이순신이 계속 "민족의 영웅"이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할까요? 이순신의 업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순신에게 "민족의 영웅"이라는 문제 있는 개념을 없애고, 민족의 영웅이라는 감정적인 요소가 많은 내용 대신 위대한 장군이나 충신으로 서술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제가 본문에서 지적했던 한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중국사에 투명하여 생긴 오류라는 점입니다. 중국사는 단일민족사가 아닙니다. 한족의 역사로는 분명 님의 주장이 맞습니다. 그래서 악비가 왜 민족이 영웅이 아니냐는 한족들의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민족역사관에서 악비는 영웅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다민족역사관입니다.


      3) 님이 말씀하신 흐름의 역사는 결국 아무런 역사연구도 하지 말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고조선에서 그 다음의 흐름으로 넘어오지 않았다고 제가 부정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그 흐름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면요? 제가 만약 고조선 실체를 기자조선으로 보고 사실상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흐름이었기에 중국과 한국은 서로 흐름상으로 같으니 같은 역사라고 주장한다면요?

      흐름이라는 말이 이렇게 모호합니다. 분석틀로서의 가치가 사실상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은...공과 출신이시니 이렇게 비유해드리겠습니다.

      전류는 흐른다. 참이지요? 그런데 전류가 어떻게 흘러가나요? 그에 대해서는 키르히호프의법칙이나 옴의 법칙 등등이 있지 않습니까?(제 전공이 아니라서 기초지식밖에 없지만 대충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님이 언급하시는 흐름은 전류가 흐른다는 말과 다를바 없는 모호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 것입니다.



      4) 국가관.
      이것은 서로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부분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저의 생각에서 국가는 분명 공동체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는 그 공동체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공동체의 구성원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시는 것은 님의 자유이며,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6. Viviane Bak 2009.12.23 03:47

    밤이 많이 늦었네요. 새벽 4시가까지 되어가고 현실생활이 있어서 다음기회에 해야하겠네요.
    중국도 1시간인가 늦은지 빠른지 모르겠지만 좋은 밤되시구요.

    마지막으로 다민족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알고 있지만 중국에서 단순히 다민족으로 넘어가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좀 이해불가능한 것이 있는거 같습니다.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멶이 많구요.
    흐름을 너무 확대해석하시는 것같은점도 있는거 같지만 이것도 다음기회에...국가관이야뭐 사람마다 다르니까 패스 해보렵니다.

  7. Favicon of http://studior.egloos.com BlogIcon toRoad 2009.12.23 10:32

    과연... 읽고 보니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12.23 14:15

    왠지 어렵네요. -ㅁ-;;

  9. 너구리 2010.01.20 21:10

    읽다가 국가관 부분에서...아무리 생각해도 공동체 국가를 따로 떼어내서 개인의 행복척도를 잰다는건지 이해가 안가는.. 저도 인문학 소양은 없습니다만 인간특성중에 동질감이나 소속감등이 있고 혈육에 대한 애정이나 무언가에 자신을 동일시하는게 본능 아닙니까? 후천적 학습이 아닌다음에야 어떻게 따로 그런감정을 거세해서 국가(공동체)는 망하든 말든 개인이 평균적으로 행복해질수있다는 모순된 논리가 있을수 있는지..

    어떤식으로 사뿐히 망해야 모두가 좋아질수 있는지요?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만 만나도 반가워하던 나로선 ...이해가 안가는...

    참고로 저는 금이야 중국역사라고 봐도 몽원은 몽고의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얘길 하실텐데 우리가 이토히로부미를 우리역사속 인물로 중국이 징기스칸을 자국영웅으로 삼듯이 하는건 아니잖습니까?

    세상을 저혼자만이 아니고 가족,혈육 내나라의문화 말씨등등으로 동질감을 찾는 사람으로선 정말 이해안갑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1.20 23:23 신고

      인간의 특성에 대한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님이 제시한것은 넓은 범위의 성선설인데, 그 외에 성악설이아 백지설로 시작되는 다양한 인간에 대한 토론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분명히 후천적인 학습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며 이는 부모-자식과의 관계와는 다르게 거의 논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라는 것은 만들어진 허구의 산물이며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멉니다.그렇기에 국가가 존폐여부와 개인의 평균적인 행복은 사실 거리가 상당히 있습니다.

      물론 현재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민족를 절대적으로 숭배하도록 세뇌받아왔기에 국가가 없어진다면 일정한 정신적인 고통이 실질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뇌"로서 벌어진 일로서 이러한 글로 그런 "세뇌"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풀릴 문제라고 봅니다.(물론 세뇌이기에 이 정도의 글로 풀리기는 힘듭니다.-_)


      그리고 동질감의 문제는 간단합니다. 같은 인류라는 동질감을 가지면 됩니다. 현재까지 인류는 초기 가족부터 시작하여서 그 공동체의 범위를 가족-부족-부락-도시-국가로 점차 늘려왔고, 지금은 국가라는 공동체을 자연스럽게 구축할 정도에 왔습니다.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10. 자바 2010.02.24 14:23

    눈만 안아프다면 쭉 읽어보고 싶군요; 잘 봤습니다

  11. .... 2010.05.16 01:03

    다민족 역사관이 한족 입장에선 대단히 쓸만한 역사관이겠지요. 중국내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대체로 변경지역이고, 그것도 자원이 대량 매장되어 있는 지역... 안보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요. 이들 민족이 독립하게 되면 중국은 땅, 인구(노동력), 자원 등을 많이 잃어버리죠.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다민족 역사관. 그러나 그 실질적인 핵심은 경제논리를 밑바탕에 깐 소수민족의 한족 융화정책 아닐까 하는데요. 지금도 위구르와 티벳의 독립문제는 중국에서 민감해하는 것이고... 또 반대로 많은 소수민족들이 한족화되어 가고 있고... 또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땅에서는 실질적인 상권은 한족이 거의 차지하고 있고 소수민족은 밀려나고... 국가 통폐합이란 측면에서 다민족 역사관은 쓸만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다민족을 진짜로 인정한다기 보다는 다민족을 단일민족(중화민족)으로 통폐합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12. ..... 2010.10.18 02:50

    ㅉㅉ 참 알량하게 떠드시네. 중국이 만든 통일적다민족사관은 1970~1980년대에 나온걸로 알고 있다. 그 전까지 중국은 한족 중심을 철저히 외치고 있었고 문화혁명때 통합에 방해가 된다고 몽골인을 100만명 넘게 사살했다. 현재 중국의 저 "따위" 사관은 몽골, 러시아 학자들의 반대 서명도 있었고 중국 내외의 한족과 다른 민족들의 철저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댁은 상대성을 인정하고자 악을 인정하는 거다.

  13. 정답 2013.02.05 14:01

    우에 점 세개동무가 말을 잘했습꾸마.
    조선족으로써 솔직말하문사,,중국은 한족세상이꾸마

    <다민족을 단일민족(중화민족)으로 통폐합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14. Favicon of http://11 BlogIcon 칼날의 황족 2014.07.04 10:25

    중화민족이 다민족 역사관인가요?다민족역사관을 가장한 단일민족 역사관이겠죠.존재하지도 않은 중화민족 탄생시킨게 중국인데요.중국이 다민족역사관이라면 대동아 공영권이나 내선일체 사상으로 새로운 민족 만들어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도 다민족역사관을 가지고있다고 봐야죠.한국이나 중국이나 이용방법이 다르지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진 단일민족 역사관은 똑같다고 봅니다.,

중국학계에서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있었다라는 보도가 한국에 올라오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전에도 간혈적으로 알려지고는 하였었다. 그러나 본인 전공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기에 그냥 넘기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드라큘라님의 요청이 있어서 간략하게??! 서술해보려고 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본인은 국적이나 민족은 개나 줘버리라고 말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학문은 어디까지나 최대한 객관적이 되어야된다고 굳게 믿으며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각주:1].

보나마나 긴 장문의 글이 될 터이니 귀차니즘을 위한 요약본을 알려드리겠다.
진(秦)장성이 한반도까지 왔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정하기가 힘들다. 몇 안되는 문헌자료는 쉽게 반론을 제시할 수 있으며, 비교적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북한에 남아 있다는 흔적도 어디까지나 북한의 발표만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한국의 어느 학자도 아직 실측을 했다는 말이 없다. 고로 아직 확실한 근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 고로 어느 쪽이든 증거부족이다.

조금만 더 자세한 것을 원하지만, 별 이상야시꾸리한 사료와 논문내용을 보고 싶지 않으신 분아래쪽의 5. 만리장성 논란을 가장 쉽게 풀어보자. 로 곧장 가시면 된다.


1. 어느 시대의 만리장성인가?
만리장성이라고 하면 진시황이 만들어서 계속 내려온 것으로 보통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러하지 않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하기 전에 조(趙)나라와 연(燕)나라에서 만들었던 성벽과 진(秦)나라의 장벽을 서로 연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에 있던 여러 성벽들을 연결시킨 것이다.

또한 진시황 이후 한무제 전까지는 장성이 유지되기는 하지만[각주:2], 한무제의 북방공략이나 그 뒤의 다양한 상황으로 인하여 장성은 사실상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리고 명(明)대에 와서야 다시 재축공되어서 청대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명대나 청대의 장성의 동쪽끝은 분명히 산해관(山海关)으로 되어있다. 고로 현재에 남아 있는 만리장성 단지 명청대의 장성이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만리장성이 아니다.

현재의 문제는
진(秦)나라의 장성인 것이다.[각주:3]

그 외에 만리장성의 역할에 대한 해석도 문제로 남아 있다. 보통 만리장성은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을 갈라놓는 분기점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외부의 세력을 막는 방벽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장성은 농경분기점 훨씬 위쪽에 존재하며, 만들어진 시기에도 커다란 목장울타리였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군사전략적으로 보아서 가느다란 선으로 방어하여 외부의 적을 막는 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것인지는 마지노선의 예[각주:4]를 볼 것도 없이, 중국대륙의 역사 내내 제대로 북방민족을 막은 적이 없다는 것으로 확실히 증명된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잡설은 The Origins of the Great Wall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중국의 진(秦)장성에 대한 이야기들.
1- 중국 교과서에서의 진(秦)장성

因地形,用制塞 ,起临洮,至辽东,延袤万余里[각주:5] : 지형에 따라 험준한 곳에 요새를 세워 임조(临洮)에서부터 요동(辽东)까지 이르렀는데, 그 길이가 만여리였다.

중국교과서에서 보이는 진장성지도



2- 진(秦)장성에 대한 사료들
(1)《史記•蒙恬列傳[각주:6]》 :始皇二十六年,使蒙恬將三十萬眾北逐戎、狄,收河南,築長城,因地形用險制塞,起臨洮至遼東,延袤萬余里。
진시황 26년, 몽염을 시켜 30만명을 이끌고 북쪽에서 융과 적을 내쫒고, 하남을 회복하게 하였으며, 장성을 축조하게 하였다. 지형을 따라 험준한 곳에 요새를 세워 임조에서 요동에 까지 이르렀으며, 전체 길이가 만여리였다.<사기-몽염열전>

(2)《〈水經•河水〉注[각주:7]》 :始皇令太子扶蘇與蒙恬築長城,起自臨洮,至於碣石。
진시황은 태자 부소와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축조하게 하였다. 임조에서 시작하여 갈석에 이르렀다. <수경-하수주>

(3) 《通典•高句麗傳[각주:8]》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長城起於此山。
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 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한다.<통전-고구려전>

(4) 《史記•朝鮮列傳》:漢興,為其逺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
한나라가 일어선 뒤 (조선?)이 멀고 지키기 어려웠음으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여 그 경계가 패수에 이르렀다.

(5) 《三國志•魏志•東夷傳[각주:9]》注 :“《魏略》曰:昔箕子之後朝鮮侯……。及秦並天下,使蒙恬築長城,到遼東。時朝鮮王否立,畏秦襲之,略服屬秦,不肯朝會。否死,其子準立。二十餘年而陳、項起,天下亂,燕、齊、趙民愁苦,稍稍亡往準,準乃置之於西方。及漢以盧綰為燕王,朝鮮與燕界于溴水。
<위략>에서 말하기를 :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는..........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고, 몽염으로 하여금 요동까지 장성을 쌓도록 하였다. 그 때 조선왕 부가 즉위하였는데, 진나라의 공격을 두려워 하여서, 전략적으로 진에 복속하는 척하였으나 조회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가 죽은 뒤 그 아들 준이 즉위하였다. 20여년에 진승과 항우의 난이 일어나서 천하가 혼란스러웠고, 연과 제 그리고 조의 백성들은 고난를 걱정하여 점점 준에게 도망쳤고, 준은 그들은 서쪽에 배치하였다. 한나라가 노관을 연왕으로 삼자 조선은 연나라와 패수로 경계를 삼게 되었다.


3- 중국학자의 분석
3.1 담기양(譚其驤[각주:10])
《秦郡界址考[각주:11]》 에서 위의 (4)와 (5)을 근거로 장성이 수성현(지금의 평양서남지역)에서 시작하였다고 비정하였다. 비록 해당 기록이 한나라 초기의 기록이지만, 진나라때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중국역사지도집의 진영토(2권 10쪽)

연의 장성위치 (중국역사지도집 2권 42쪽)



3.2. 왕국량(王國良), 고힐강(顧頡剛), 사념해(史念海)
1930년 왕국량이 집필한 《中國長城沿革考》을 기초로 고힐강가 시작하여 사념해가 완성한 《中国疆域沿革史[각주:12]》에서는 위의 (1)과 (2)을 근거로 장성이 갈석에 있으며, 갈석은 현재의 조선평양남족이라고 주장하였다.

전국시대지도 (中国疆域沿革考 56~47)


진통일 지도 中国疆域沿革考 60-61


사념해는 담기양의 설과는 다르게 연나라 장성이 압록강을 넘어 청천강(평양근처)에 이르지 않고, 압록강까지만 그리고 있다. 이는 다른것이 아니고 연나라 장성이 압록강을 넘어서 청천강에 이른다는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진나라의 장성이 기존의 연장성을 연장-수리한 것인 점을 생각하면 담기양의 설도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헌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념해는 담기양과 다르게 생각했다.

3.3. 현재의 연구상황[각주:13]
과거의 담기양이나 사념해는 어디까지나 문헌에 남아 있는 내용으로 추측을 하였지만, 그 뒤에 중국학자들은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과거의 연구를 보강하고 있다. 특히 阎忠의 경우 조선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朝鮮社會科學院考古研究所)와 역사연구와 문화보존연구소(歷史研究和文化保存研究所)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성벽유적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阎忠:《燕北长城考》,《社会科学战线》1995年第2期。


그는 북한의 보고서를 인용하여서 북한에 장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보고서에서는 진나라가 아닌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성의 아래쪽에서 진나라의 유물을 발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성벽의 기초 위에 훗날 다시 축공했음을 의미하며, 그 아래에 있는 진나라 유물은 기존의 성벽이 진나라의 장성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래쪽에서 다시 서술하도록 하겠다.

그 외의 고고학적 유물을 토대로한 연구로는 평양에서 출토되는 과(戈)[각주:14]와 동모(銅矛)을 근거로 해당 지역까지 장성이 뻗어있었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각주:15].


4. 한국의 진(秦)장성에 대한 이야기들.
1- 매체보도.
진나라의 장성인지 연나라의 장성인지 명나라의 장성인지도 구별하지 않고, 어떠한 근거가 있는지도 제대로 말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중국은 우리를 침범하는 나쁜넘이라고 규정하며, 신문기사의 객관성을 침해한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감정적인 어투로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바보스러운 신문이 대다수임. 정신 좀 차리지? ^^

2- 한국 학자들의 분석
2.1. 이병도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
遂安)으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수성현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맹랑한 설", 다시 말해서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일축하며 부정하고 있다[각주:16]. 잠시 우리의 위대한 환빠님들을 비웃어주자면... 최근 이덕일씨가 이병도의 설을 왜곡하여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주장한듯이 쓰고 있다[각주:17]. 자네들이 이병도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상대말을 이딴식으로 왜곡하냐? -_-

2.2. 윤내현[각주:18]
사료 (1)의 요동이 난하(灤河)의 동쪽이며, 사료 (2)의 갈석이 난하 하류의 창려현(昌黎縣)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결론적으로 한사군(漢四郡)가운데 낙랑군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게 된다. 이 의견은 중국의 이건재(
李健才)에 의해서 반박[각주:19]당한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일단 생략.

2.3. 그 외[각주:20].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음하하하;;; 혹시 그 외의 연구성과가 있으신 분은 알려주시기 바란다. 단. 환빠식의 원문사료나 고고학적 자료는 개무시하는 식의 논문은 무시하도록 하겠다.



5.
만리장성 논란을 가장 쉽게 풀어보자.
관련 전공자들은 위의 말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공자들이지 일반인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쉬운 말로 현재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리하도록 하겠다.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5.1.
碣石(갈석)은 어디인가?
중국학자들은 갈석을 평양근처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대륙에 남아 있는 갈석이라는 지명만 한군데가 아니다. 특히 현재의 하북성진황도시창려현(河北省秦皇岛市昌黎县)은 산해관과 근접한 지역인데 갈석이라고 불렸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갈석이 평양근처라고 말하기는 증거로서 합당하지 않으며, 현재에는 다만 방증으로 사용될 뿐이다.

쉽게 예를 들면 "산동"이라는 산의 동쪽에 있다는 지명이 한국에는 넘쳐흐른다. 전남에도 산동이라는 지명이 있고, 경북에도 있고, 경남에도 있다. 그런데 훗날 어떤 이가 산동이니 했으니 무조건 전남에 있는 산동이라고 하면 웃기지 않은가? 왜냐하면 경북이나 경남에 있는 산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상황이 그렇다.


5.2. 漢樂浪郡遂城縣(한 낙랑군 수성현)은 어디인가?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냐는 문제 자체부터가 아직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서로 제대로 된 증거가 불충분하여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낙랑의 중심지라고 불리우는 평양이 현재 양측 학자 모두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북한의 영토라는 점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낙랑군의 수성현이 어디인지는 더욱 더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고로 수성현을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며, 역시 방증으로만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위의 산동의 예보다 한 술 더 뜨는 문제이다.


5.3. 浿水(패수)는 어디인가?
중국이든 한국이든 논문싸이트에서 "패수"라고 입력하고 내용들을 살펴보면 당신을 놀라거나 짜증을 낼 것이라고 장담한다. 각각 패수라고 말하는 곳들이 천차만별이다. 한강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청천강, 압록강, 요수등등등.......사실상 베이징과 서울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하천을 패수라고 각기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패수가 청천강이라는 중국 만리장성설의 증거는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위의 산동의 예의 극대화라고 보면 된다.


5.4. 평양근처에서 발견되는 진나라 유물을 어떻게 해석해야되는가?
한반도에서는 서역의 유물까지 발견된다. 고대라고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활발한 무역활동 및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로 몇 조각의 유물만으로 장성을 비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유물에 "이곳에서 장성을 지었음"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유물로는 장성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역시 방증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이 하회탈을 들고서 이탈리아에 갔다. 그리고 이탈리아 친구에게 선물을 해 주었다. 나중에 발견한 하회탈을 보고 한국의 영토가 이탈리아까지 있었다고 확정하는게 말이 되는가? 혹은 한국의 무기는 지금 계속 수출되고 있는데, 이것이 남아프리카에 수출되었다고 하자. 나중에 남아프리카쪽에서 그 무기를 발견하면 한국의 영토가 남아프리카에 이르렀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와 같은 것이다.


5.5 북한에 남아 있는 성벽유적을 어떻게 해석해야되는가?
이 논쟁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북한에 남아 있는 성벽유적이다. 문제는 이넘의 성벽유적을 직접 시찰한 사람이 한국학자든 중국학자든 없.다.는.것.이.다[각주:21]. 단지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보고서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북한의 보고서는 그리 믿을 만한 수준이 아니다.

고고학적인 기술력 자체가 제대로 지표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수준이며, 단군묘를 비롯해서 체제유지를 위해서 누가봐도 "만들어낸 고고학적 자료"을 이야기하는 곳을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본인으로서는 못하겠다.

이렇게 불안정한 "성벽유적"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을 마냥 믿을 수는 없다.

쉽게 다시 설명하면 성벽유적 자체는 정말 강력한 유물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친구 중에 공부도 못하고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는 인간이 있다고 해보자. 그 녀석이 갑자기 "공룡의 화석"을 찾았다고 말을 한다. 그럼 일단 공룡이 먼지나 알런지 의심할 것이고, 설사 공룡의 화석을 안다고 생각하여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않고, "구라지? 뻥까지마!"라고 할 것이다.


6. 결론
본인으로서는 지금의 증거로는 어떠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단지 만약 북한에 정말 성벽유적이 남아 있다면, 만리장성의 평양시작설은 상당히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다. 반대로 북한에 성벽유적이 없다면 반대로 평양시작설은 대폭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아무도 북한의 성벽유적을 조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를 말하면서 "어디서 감히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왔느냐!"라고 하는 인간들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건지? 혹은 공부라는 것을 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여러 증거들이 평양까지 왔다고 입증이 되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도록~" 평양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여러 증거들이 평양까지 온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침 튀기면서 말하지 않아도 평양까지 오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정신 좀 차리라고요^^

이 글에 대해서 원문사료나 증거 없는 "비난"은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논리와 증거를 갖춘 "비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익명의 힘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익명의 강력한 힘을 악용하는 쓰레기들에게는 무시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자료협조를 해주신
劉表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그 분의 자료를 되도록 쉽게 풀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감사!!! 그리고 이 블로그에 오는 역사관련 분들이여. 괜히 조용히 보지만 말고 언제든지 어떤 주제로든 글을 써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블로그를 통해서 익명으로라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랑해요^^::::


끝난 줄 알았는데.....밥 먹기전 눈에 들어온 조선일보가 문제였다.....
7. 명나라 장성도 문제라고?
(조선일보)중(中) "만리장성, 압록강까지다" 선언(기존보다 2500㎞ 늘려… 고구려 세력권 편입 의도… 韓·中 역사분쟁 재연될듯) 이라고 우리의 베이징 특파원 최유식 기자님이 올려주셨다. 본인 최유식 기자님에 대해서 참고참고 언급 안할려고 했는데...제발 기사 좀 제대로 써주었으면 한다. 중국 뉴스에 뜬 것을 제대로 조사도 안해보고 무조건 번역질해서 기사쓰면 좋으신가?

위의 내용은 중국의 "명나라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닿았다고 중국에서 주장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의 최유식 기자님은 해당 단체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조사도 안한 것이 분명하며, 관련 논문들을 본 적도 없는 것이 거의 확실히 된다. 사실 여부에 대한 조사는 기자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아! 그리고 맨 처음에 언급했다싶이 연장성, 진장성, 한장성, 명장성, 청장성을 구별하지 않고 그냥 만리장성으로 해주고 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 넘기겠다^^

그리고 대체 명장성과 고구려가 먼 상관인가? 기사의 본분은 사실 전달이라는 것을 초년병시절에 배우기는 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명장성이 압록강까지 갔다는 것은 90년대부터 있던 이야기다. 단지 어이가 없을 뿐이어서 학계에서도 그냥 씹고 있었을 뿐이지. 물론 자료 조사 안했을 우리의 최.유.식. 기자님은 모르고 있으셨겠지...^^

가장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명장성이 압록강까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환빠와 거의 동일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다고 보면 된다. 어느 나라나 어떻게든 역사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부풀리고 축소하고 비틀어서 자위행위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왠만하면 무시해주자.

1. 장성학회(长城学会)
최유식 기자님이 배끼신 기사의 원문(万里长城东端起点圆桌会议召开)을 보면 너무나 쉽게 보이듯이, 일련의 행사들은 어디까지나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삽질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 이정도는 충분히 아셨을 텐데 깨끗이 무시해준 최유식 기자님 만세!

그런데 본인은 장성학회가 머하는 곳인지 궁금해졌다. 中国长城网에서 장성학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은가? 그리고 본인의 경험적으로 학술활동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화려한 홈페이지 못 만든다. 찾아봐라. 이렇게 화려한 학술적으로 유명한 곳이 있는지.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제대로 된 학술활동은 보이지 않고, 단지 만리장성과 연결된 지방과의 관광사업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런 장성학회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아시리라 본다.


2. 중국에서의 관련 논문

1.1. 《明长城东端起点——虎山关》[각주:22]나 《虎山长城》[각주:23]와 같은 사료없고, 논리도 없고, 증거도 없고, 인용도 없는 환빠들이 생각나는 놀라운 논문들이 산더미 -_-

1.2. 薛景平《辽宁境内明长城考察发掘的重大成果》《辽宁大学学报(哲学社会科学版》1995 : 무려 고고학 보고서이다. 그리고 건축복원도나 단면도 하나 없는 무려! 고고학 보고서이다. 본인 이따위 글을 무려 고고학 보고서로 인정해야되는 것으로 고민중이다. -_-;;;

1.3. 刁余文《长城虎山关》《上海集邮》1998/07 : 무려 사료인용이 있다. 그러나 주석따위는 가볍게 없고, 다 합쳐야 천자가 겨우 넘을 듯한 글이다. 그래도 그나마 "학술논문"으로 보인다...어디까지나 그나마이지만;;; 그래서 여기서 인용한 사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3. 사료로서의 명장성 동쪽끝[각주:24]
2.1.《明史卷九十一志第六十七 兵三 邊防》: 东起鸭绿,西抵嘉峪, 绵亘万里, 分地守御
동쪽으로는 압록강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가욕에 이르는 곳을 만리에 걸쳐 서로 이어지게 각 지역별로 수비하였다.

2.2. 《明宪宗实录》: 成化十五年六月修筑东路自开原抵鸭绿江边墙[각주:25]
성화15년 6월, 개원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동쪽길의 벽을 수리-축공하였다


4. 사료분석
2.2.는 인터넷에서 원문 대조를 할 수 없기에 일단 넘기겠다. 문제가 되는 것은 2.1.에 있는 구절이다. 저것만 놓고 보면 장성이 압록강에서 가욕관까지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원래 원문을 보면 살짝 어이가 없어진다.

元人北歸 屢謀興復 永樂遷都北平 三面近塞 正統以後 敵患日多 故終明之世 邊防甚重 東起鴨綠 西抵嘉峪 綿亙萬里 分地守禦

원사람들이 북쪽으로 돌아가고 여러차례 돌아올 것을 도모하였다. 연락은 북평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삼면이 변방과 가깝다 보니 정통 이후에는 방어에 고충이 심해졌다. 그래서 명나라가 망하기 전까지 변방의 방어를 매우 중시하였다. 동쪽으로는 압록강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가욕에 이르는 곳을 만리에 걸쳐 서로 이어지게 각 지역별로 수비하였다. (막번역임.)

해당 내용은 만리장성과 상관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명나라의 변경방어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 압록강에서 시작했다고 하는 것은 신빙성이 상당히 약하다고 하겠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명사의 다른 부분을 보면[각주:26], 비록 압록강부터 가욕관까지라고 수비범위를 지정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재의 베이징지역에 수비가 밀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명나라가 건국했지만, 몽원의 세력은 아직 몽골지역에 남아 있었으며, 명나라 중후반기까지 계속 골치거리가 된다. 또한 몽원은 어디까지나 청나라에 의해서 밀려나게 되고, 청나라의 세력이 요동을 중심으로 뻗어나가서 결국 명나라를 멸망시켜버리고 만다. 이 상황에서 요동지역에 명장성이 항시적으로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단지 간혈적으로 명의 세력이 요동에 이르렀을지는 모르지만, 장성과 같이 반영구적인 방어기지를 세울 정도의 확장은 정황상 불가능하였다.

최소한 현재 중국의 교과서에서는 명장성이 어디까지나 산해관까지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중국의 주류 의견이 아닌 것이다. 주변에 중국친구가 있다면 한 번 물어보라. 명장성의 동쪽 끝이 어디인지를....


양쪽에서도 비주류인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이야기를 한중 양국의 매체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소개하면서 쓸데 없이 양측 모두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될까? 미디어는 팔리는 화제성보다는 사실에 대한 집착을 해야되는 것이 이상이 아니었나? 아무리 현실이 시궁창이어도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다.


  1. 고로 이 글은 한국측이나 중국측이나 어느 쪽에서도 욕 먹기 딱 좋은 글일 것이다. 후-_ [본문으로]
  2. 실질적으로는 방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에 있는 링크를 참고. [본문으로]
  3. 의외로 이 것을 모르는 분들이 있어서^^:: [본문으로]
  4. 프랑스가 독일을 상대로 만들어두었지만 독일이 우회기동하여 마지노선자체를 상대하지 않아서 바보스러운 방어전략으로 이름을 날렸음. [본문으로]
  5. 人民教育出版社歷史室編著:《中國古代史》全一冊,人民教育出版社,2007年3月第2版。(p22~p23) [본문으로]
  6. 한대(BC 2세기 중엽) 사마천의 기록. [본문으로]
  7. 위진남북조의 酈道元의 [본문으로]
  8. 당나라 두우(杜佑)의 기록. 《太康三年地記》, 《晋書•地理志》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음. [본문으로]
  9. 위진남북조의 배송지(裴松之)이 위략을 인용한 [본문으로]
  10. 중국의 유명 역사지리학자. 중국역사지도의 주편자. [본문으로]
  11. 《长水集》上,北京:人民出版社,1987年7月,第16页 [본문으로]
  12. 《中国疆域沿革考》,北京:商务印书馆,1999年7月,第68~69页 [본문으로]
  13. 阎忠:《燕北长城考》,《社会科学战线》1995年第2期。冯永谦:《辽东地区燕秦汉文化与古长城考》,《辽宁省本溪、丹东地区考古学术讨论会文集》,1985年。王德柱:《鸭绿江畔发现燕秦汉长城东段遗迹》,《中国文物报》1991年5月19日。李文信:《中国北部长城沿革考》,《社会科学辑刊》1979年创刊号。李殿福:《东北境内燕秦长城考》,《黑龙江文物丛刊》1982年第1期。刘子敏:《战国秦汉时期辽东郡东部边界考》,《社会科学战线》1996年第5期。冯永谦:《东北古长城考辨》,《东北亚历史与文化》,辽沈书社,1992年。 [본문으로]
  14. 곽말약(郭沫若)의 《금문총고(金文叢考)》 [본문으로]
  15. 25년상군수과(二十五年上郡守戈)가 진시황25년 진나라 상군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을 들어 평양에 진주했었다는 근거로 사용. 또 三年相邦呂不韋造, 上郡守……라는 글이 세겨져 있는 동모를 통해서도 이야기된다. 그 외에도 문양이나 기타 출토유물이 이야기되어진다. [본문으로]
  16.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년. [본문으로]
  17. 이덕일,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역사의아침, 2006년. [본문으로]
  18. 윤내현, <漢四郡의 樂浪郡과 平壤의 樂浪>, <<韓國學報>>41, 1985년. [본문으로]
  19. 《评汉乐浪郡在今辽河以西说》 [본문으로]
  20. 이성규, <중국군현으로서의 낙랑>, <<낙랑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7년.이병두, <낙랑군현 위치고>, <<한국학보>>55, 1989년. [본문으로]
  21. 북한과의 교류가 중요한 이유도 이것이다. 막말로 지금 상황에서 직접가서 본 사람이 큰 소리 칠 수 있으리라 본다 -_-;;; [본문으로]
  22. 张安阳《明长城东端起点——虎山关》《民主》 [본문으로]
  23. 栾德君《虎山长城》《满族文学》08/03 [본문으로]
  24. 조사하면서 알았는데, 한국의 환빠들은 참 순진한 수준이라고 보인다. 이쪽은 본문에 분명히 있다. 단지 앞 뒤 문장을 꼭 봐야되지만... [본문으로]
  25. (해당책은 인터넷에서 원문을 찾을 수가 없었음, 확인해야되는데 귀찮아서 패스. 어차피 말도 안되는걸 굳이 찾으려 할 필요 자체가 없음. [본문으로]
  26. 《明史》卷一百十三志八十七 明幅員綿邈東起鴨綠西抵嘉峪為邊者九千餘里成祖即北平建都碣石冀北扆山負海塞垣聯絡據乎要險居庸為京北門隸于昌平密邇薊州薊昌俱畿内要地故不稱鎮薊之稱鎭自嘉靖庚戍昌之稱鎮自嘉靖庚申皆世宗所建置...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jinshiloh.tistory.com/ BlogIcon jinshiloh 2009.09.30 16:33

    허허. 정말 이런 글 쓰시는 것보면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30 18:04 신고

      ............반대입니다. 전공공부 제대로 안하고 빈둥대고 있는거죠. 음하하하하;;;;;;;;;;;;;;;;;

      ...어느 분의 말씀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논문은???? 논문은?? 논문은???"

  2. 아직하얀눈 2009.09.30 18:26

    그런데 논문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30 18:58 신고

      니가 아니거든요 -_-;;

      현재 大纲내고 허가 기다리고 있음..후..

  3. 시골 2009.10.01 03:58

    그리스철학은

    로마제국의 유적이 그리스에 있으니..

    별거아닌건가?

    그리고, 유표님과 바로님에게 감사를..

  4. Favicon of http://latinamericastory.com BlogIcon juanpsh 2009.10.01 05:34

    바로님, 정말 끄덕끄덕.... 긴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읽다가 뭔 말인지 좀 헷갈려서 조금 건너뛰고 읽었습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01 18:29 신고

      죄송합니다. 제가 최대한 쉽게 쓴다는 것이 내공이 부족하여 쉽게 쓰는건 고사하고 논리적으로 점프를 한 대목들이 많습니다......사실 너무 길어서 귀찮았습니다. 죄송;;;

  5. 만두군 2009.10.01 10:40

    만리장성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됬네요. 만리장성 = 진나라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01 18:29 신고

      넵. 보통 만리장성=진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에 와서 보통 관광하는 만리장성은 청나라 장성이라죠^^:::

  6. 만리장성 2009.10.05 10:26

    요동에 갈석이, 갈석은 낙랑군에? 진나라 때의 만리장성이 어디까지였는가 만큼이나 진나라 때의 요동이 어디였는가 라는 문제도 중요하겠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08 21:52 신고

      논란이 많이 있죠. 저 개인적으로 갈석 자체는 지금 산해관 근처에 있는 갈석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당시 진나라와 한나라의 최대영향권에는 평양에 위치한 낙랑이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10.06 14:33

    한반도에 조선만 있었던 게 아닌데
    한반도에 있었던 모든 국가를
    시대별, 지역별 구분 없이
    싸잡아 조선 하나로 정해놓고
    이야기하는 거랑 동급이려나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0.08 21:53 신고

      고조선을 말씀하시는거죠?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역사 가지고 장난질 하는 것으로는 그것이 그것이라고 봅니다.

  8. 익명 2010.09.10 12:37

    비밀댓글입니다

  9. 수성 2010.10.07 12:31

    아마 수성현이 봉성시로 전 추정합니다
    갈석이란 뜻 자체가 돌이 많은산이란 뜻인데 봉성시는 이런 돌산들이 많습니다(봉황산 같은)
    그리고 수성은 낙랑 서쪽지역이라고 했고 낙랑군위치도 평양이아니라 압록강유역일수도 잇습니다 왜 냐 평양지역은 대방군지역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이유는 대방은 대수남쪽에 잇엇다는데 낙랑토성이 대동강 남쪽에잇으며 대수는 함자현에서 대방군을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는데
    대동강상류에 한사군때 사용된 성인 봉화리고성이있죠 또 평양지역에서 중국유물로 확실하게 볼수잇는것들 대부분이 후한시대입니다 대방은 후한때 만들어졋으니 대방+평양의 근거가 될수잇겟조 또 평양에서 기원전 2세기이전유물은 중국보다는 고조선의 문화가 더크게 남아잇습니다 낙랑군의 치소엿다면 중국계가 더커야되는데 그렇지않죠 따라서 평양은 대방군으로 볼수있고 그러면 낙랑은 그 이북이된단소리입니다 평양이북이면 평북-요동동부이지역이죠 그래서 낙랑을 그곳으로 비정할수잇습니다 그리고 평북-요동지역의 서부라면 봉성시지역이니 수성은 봉성입니다 그리고 봉성은 한대의 성터가 있고 장성유적도 잇다고 들었습니다
    결론은 수성은 봉성시고 갈석은 옛봉황성일대이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10.07 15:44 신고

      그렇게 생각하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이나 사료가 너무나 부족하고, 가장 중요한 유물 지역이 북한이라는 폐쇄된 국가에 있기에 지금으로서는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도 사실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10. 김영준 2012.09.28 16:59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는 님의 글에 감동 받았습니다. 민족이니 국가니 들먹이며 자기들의 이기심을 채우고 사심을 가리는 학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님의 공부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러나 약간 걱정이 되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최대한 객관적인" 역사연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동북아 주민들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중국측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소중할 것으로 생각되네요. 그리고 공동체(그것이 민족이나 국가라는 배타적 개념이 아니라면)에 대한 건강한 고민 없는 역사 연구가 존재할 지도 의문이구여...

시작하기 전에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를 쓴 션양 연합뉴스의 박종국 특파원! 조금이라도 알아보시고 이 글을 작성한 것인지 심히 궁금합니다. 기사는 함부로 작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쓸 내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흥미위주로 검증도 안된 것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북방 역사학자 주쉐위안(朱學淵)은 대만에서 발행되는 '역사월간' 9월호 기고문을 통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중국 북방민족인 여진족의 후손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황하유역에 출현했던 '사오하오'족의 후예가 된다고 주장했다.

사르코지가 중국 북방민족의 후예? -在美 중국학자 "여진족 후손" 주장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면 어이가 없다. 엉터리 방법론에 엉터리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대충 봐도 엉터리인 것을 기자가 무려 번역을 해서 기사로 보냈고, 그것이 인터넷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1) 한국어부터 똑바로 쓰자!
"사오하오"는 한자로 少昊 이다. 한국어로는 "소호"라고 써야 옳다. 한국에서의 학술용어도 소호이며, 무엇보다 한국 외래어 표기 원칙에서 1919년 이전에는 한국 독음으로 읽어야 맞다. 기자라는 인간이 쓴 기사에서 기본적인 한국어 표현도 틀리고 있는 것이다. 소호씨라고 써주었으면 환빠분들이 출동해서 사르코지=소호=동이족=한국인의 웃기는 코메디를 완성해주었을지도 모르는데..쯔쯔...


2) 역사학자 주쉐위안???
해당 인물은 어디까지나 물리박사이다. 역사에 관련된 학문을 공부한 적이 없다. 물론 스스로 공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는 역사학자를 말을 붙여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채택하고 있는 방법론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국의 유사역사날조가(환빠들)이 연상된다. 근거도 없고, 증거도 없고, 적당히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더 문제일지도...


3) 헝가리인은 기본적으로 우랄인종이다.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무려 물리학자이면서 자칭 역사학자인 분이라서 인종학 혹은 유전학 또는 민족학이라고 불리는 쪽에 너무나 어두우신듯 하다.

소호족에서 분화되어 나온 여진족 후예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는 그냥 넘긴다. 대답할 기운도 없다. 참고로 이 분은 무려 진시황이 여진족의 후예라고 하시는 분이시다. 주석으로 그의 주장을 넣어놓을 터이니 심심하면 보도록 하자. 관련 전공자는 즐겁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각주:1].


4) 언어학이 장난감이냐?

위의 내용은 언어학, 특히 비교언어학이나 역사언어학의 기초과정만 들어봤어도 헛소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수 있는 엉터리 방법이다. 그런데 그런 엉터리 방법은 환빠들도 무지막지 잘 사용하는 것이다. 이 기회에 잠시 길게 설명해볼까 한다.

사르코지 대통령 부친인 팰 사르코지(Pal Sarkozy)는 헝가리 귀족 출신으로, 그의 헝가리식 풀 네임인 '나기-보차이 사르코지 팰(Nagy-Bocsay Sarkozy Pal)'을 해석해보면 그가 기원전 황하 일대 중원(中原)에 출현했던 사오하오족에서 분화돼 나온 여진족 후예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나기(Nagy)'는 헝가리어로 '다(大)'를 뜻하고 '보츠(Bocs)'는 여진족의 성씨(姓氏)인 '푸차(浦察)'를 지칭하기 때문에 '나기-보츠(Nagy-Bocs)'는 고대 여진족의 촌락이었던 '다푸차(大浦察)'를 가리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지 말이 되는 것 같지 않은가? 오오오!!! 진짜 이런가!!!! 라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언어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신 분이시다. 위와 같은 식의 용어를 언어학 관련 전공자에게 물어본다면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하거나 온갖 짜증을 다 내거나....당신을 팰 수도 있다 -_-

위와 같은 방식으로 유명한 것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중국어에서 包(bao)는 가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영어에서는 모두가 알다 싶이 bag이다. o는 쉽게 g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어와 영어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식의 논리가 전개되는데 기본적인 발상부터가 글러먹은 것이다. 가장 쉽게 말해서 宝(bao)는 treasure과 개뿔도 대입되지 않는다.

언어학에서는 기본적으로 한두개의 단어간의 관계조합만으로 언어간의 연관성을 설명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몇 십개, 몇 백개의 조합 속에서 규칙성과 연관관계를 찾아내는 것이다. 단! 문제가 되는 것은 "차용어"이다. 혼자만 발전하는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언제나 다른 언어와 교류를 하면서 발전해 간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다른 언어에 있는 단어나 문법등을 채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한국어의 70%가 한자어인 것도 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한국어가 발전해왔기 때문이다[각주:2]. 수 많은 차용어들이 유입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와 같이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경우에도 많은 단어들에 대한 고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사회라는 말은 흔히 중국대륙에서 왔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일본제국시대에 만들어져서 전해진 것이다. 처음 일본에서 영어의 society을 번역하기 위하여 고민을 하다가 중국대륙 고대문헌에 있는 사회라는 단어를 연상했고, 이를 이용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뒤에 한반도와 중국대륙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이처험 한-중-일 각 나라의 문헌에 언제 사회라는 단어가 언제쯤 출현을 하였는지부터 조사해가면서 논증을 해야되는 문제이다.

이처럼 차용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역사적인 증거를 제기해주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어의 가방과 영어의 가방의 발음이 같다고 해서 차용어라는 소리는 헛소리에 불과하며, 대단히 신중하고 꼼꼼한 논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꼼꼼하고 신중하게 논증한 사료자체가 없어서 왠만큼 인정 받는 차용어의 예시도 어디까지나 "설"로서 존재하며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언제든지 뒤짚어 질 수 있다.

그럼으로 위의 방법론 자체야 하나의 방법으로 존중할 수 있지만, 위의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간접증거로서 제시를 해야할 수준에 불과하며, 그것이 절대 핵심 증명이 될 수 없다.


5) 찌질될 골수 반중을 위해서...
참고로 해당 내용은 중국의 대부분의 네티즌에 의해서도 까이고 있다. 물론 저런 글을 믿는 인간도 의외로 많이 있지만 말이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한자를 문자로 채택하고 있는 만큼 한국보다 고문에 대한 접근이 더 쉬워서 개소리가 그나마 적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 옹호냐?"라고 할터인데,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해당 글에 대한 덧글에서 새로운 중국어 표현 하나를 발견하였다. "棒子病毒" 빵즈 바이러스이다. 빵즈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인에 대한 비하표현이다.....쓸데 없이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부풀리는 짓거리를 보며 "빵즈 바이러스"라고 하다니, 분명 문제가 있는 표현이고, 와전된 것이 많으니 이에 대한 교정이 필요하지만, 이런 생각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숨이 나온다. 후...




요즘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컴퓨터 2번 재설치 및 재세팅, 공증관련 업무?!들, 새학기 맞이 삽질등등)들로 바쁘기도 했고, 시간이 남는 틈틈히 새로 지른 아이폰(중국 아이폰 3G 구매 보고서)으로 삽질들을 하고 있었던지라 글을 올리지 않았더니 "유목민~~~"님이 위의 글을 추천해주셔서, 적당히 휘갈겨 보았습니다.(...다음부터는 직접 쓰셔서 보내주시면 익명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직접 쓰시지...절 시험하신 겁니까!!....훗..이젠 아셨죠? 비루한 실력인거..ㅠㅠ..) 당분간은 좀 바쁜지라;;; 하나 하루에 글 하나나 올릴 수 있을런지......"중국사는 장난감이다"나 하루에 한 번정도 올릴듯 하고요. 머..특별히 원하시는 것 없죠?;;;

아. 그리고 밀린 덧글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몰아쳐서 대답하겠습니다.
지금은 정신이 없군요.

  1.  很早就有人说“秦”是戎狄。但说第一次统一中国就是外族的武功,中原百姓会觉得脸上无光。因此,历史多的是在谴责秦始皇的专制,却很少有人谈论秦部落的种属。            西周时,“秦”是一个西戎部落;其他西戎部落作乱时,它总是站在周王室一边。公元前七七一年,周幽王无道,怨臣申侯引犬戎伐周,杀幽王骊山下;周平王是靠秦襄公的护送,去洛阳避祸,从此东周才起了头。东周王室感激这番效忠,才将秦部落封为诸侯国。然而,这个迟到的诸侯国却又很有作为,它不断吸取中原先进文化,引进了商鞅这样的变法人才,移风易俗,富国强兵,战国时成为七强中的最强,最后一举统一了中国。            秦是一个游牧的部落,《史记·秦本纪》两处说到它的一个祖先的事迹,一说:“大费拜受,佐舜调驯鸟兽,鸟兽多驯服,是为柏翳。舜赐姓嬴氏。”又说:“[周]孝王曰:‘昔伯翳为舜主畜,畜多息,故有土,赐姓嬴。今其后世亦为朕息马,朕其分土为附庸。’”看来,秦部落善长畜牧养马,曾受到夏、周两代王室的重视;至于“赐姓”之说,只能姑妄听之了。            《后汉书·西羌传》说:“及昭王立,义渠王朝秦,遂与昭王母宣太后通,生二子。至[东周]王赧四十三年(昭王三十五年),宣太后诱杀义渠王于甘泉宫,因起兵灭之,始置陇西、北地、上郡焉。”这说的是秦宣后主持并吞邻族,顺便扯出了她年轻放浪的轶事。原来是“武王”在位四年故世,其异母幼弟“昭王立”;相邻的义渠部落酋长“朝秦”,竟与昭王的寡母宣后连生二子。昭王是秦始皇的曾祖父,在位五十三年,他即位时母亲宣后还很年轻。三十几年后她所杀的义渠王,当不会是过去的情人。 [본문으로]
  2. 이렇게 말하면 사대주의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대주의가 아니고 반대로 대단하다는 칭찬이다. 에휴...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blog.gorek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09.09.17 11:33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런 식으로 찌질대는 건 우리나라(환빠)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군요.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만(?), 저런 찌질거림을 기사화해서 대중의 분노 + 클릭수를 유도하는 기자들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2. "빵즈(몽둥이놈)" 가 설마 "까오리빵즈(고려 몽둥이놈)" 의 약자인가요?;; 그런데 저런 방식으로 한국식이라고 하는 걸 보면 환독야말로 진정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문화인지도... OTL..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8 01:04 신고

      ......전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군요;;; 덕분에 빵즈 바이러스따위의 단어나 접하게 되고요. 환빠님들아. 당신들이 스스로 그렇게 사랑하시는 한국을 욕되게 하는 건 아시는지요?

      2. 高丽棒子의 약자인 棒子입니다. 보통은 그냥 빵즈라고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답니다. 까오리빵즈는 길잖아요^^:::

  2. 사르코지 2009.09.17 15:50

    아니 사르코지가 여진족이면 여진족이지, 언제부터 여진족이 중국인이었다고 - _-; 아무튼 재미있는 기사죠. 고이 간직해놓고 즐겨야 할 기사같네요. 그리고 빵즈 바이러스 어쩌고 하는 인간은 까오리빵즈로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려나.. 똥묻는 놈이 겨묻은 놈 나무랜다더니 누가 누구에게 지적질이신지. 아무튼 잘 읽었어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8 01:01 신고

      제가 볼 때, 오십보 백보들입니다. 이걸 쓰는 소위 역사학자나. 그것을 보도한 중국신문이나. 그걸 또 번역해서 올리는 한국신문이나...에휴........

  3. shiny 2009.09.17 16:47

    에궁 요짐 기자들은 어떻게 뽑는지 한숨만 나옵니다 기사들을 보노라면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8 00:03 신고

      머...고증을 했을리가 없지요.;;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막 번역한듯 합니다.

  4. Favicon of http://www.xingxingchina.com BlogIcon 싱싱차이나 2009.09.17 20:33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역사란 참 어려운거 같습니다.
    한정된 자료로 틀에 잡힌 각도 안에서 부분적 접근만 해야하니...

    내껀 내꺼 니꺼도 내꺼 이건 뭐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고
    중국의 대 한국 인식 수정은 글쎄요~ 어렵다고 보여지구여^^;;
    우리 기자님들 한글이나 제대로 쓰게 하는 것이 더 시급하겠네요~
    문제의식 가지고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여하튼 중국 땅에서 역사 공부 열심히 하고 계시는 바로바로님~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좋은 내용 많이 기대할께여~^^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8 00:02 신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쓸데 없는 것 가지고 잘도 싸우네라는 느낌입니다. 학문의 입장에서 고구려는 지금의 한국이나 중국에 모두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역사는 누구의 것도 아닌 어디까지나 고구려인 본인들의 역사이건만-_-;;

      지하에 있는 고구려인들이 웃겠습니다^^

    • Favicon of http://www.xingxingchina.com BlogIcon 싱싱차이나 2009.09.18 01:44

      네~그렇겠네요.

      당시 삼국이 하나라는 개념도 형성되어 있지도 않던 시기인데...
      물론 백제와 고구려야 부여에서 나뉘었다는 혈연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부족연맹적 생각이지 오늘날의 민족적 개념은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저희가 당시 사람들이 그런 개념조차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섣부른 착각, 오만일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역사를 당시의 역사로만 보지 못하고 나만의 역사로 보게 되는 점. 역사학자가 쉽지 않은 점이 바로 이점 같습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09.20 15:48

    사르코지가 여진족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니...

    나중에는 또 누굴 어디 끼워넣으려고... -_-;;;

    (근데 뻘소리지만, 전지현은 화교 맞더군요. 왜 아니라고 우겼던 걸까...)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21 01:09 신고

      저야 전지현이 화교든 말든 별 신경도 안 쓰인답니다. 하지만 몇몇 분들에게는 아니시겠죠^^::

    • 이사람 2009.09.21 12:09

      전지현이 자신의 배우의명예를걸고 절대화교가아니다
      자신의 부모 조부 증조부까지 화교와 관련없다
      자신은 순수한국인이라고 주장했던데
      그정도로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싶었던건지

    •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09.21 18:56

      ‘짱깨’ 취급을 받을까 봐 그랬다고 하기에는
      주현미나 하희라같은 케이스가 있어서
      변명이 먹히지 않겠고...

      아무튼 싸이더스는 이해하기 힘든 기획사입니다. -_-;;

    • 이사람 2009.09.22 15:02

      왕씨 본인 스스로 중국인을 거부한것으로 암니다 여러 인터뷰나 시사프로에 직접나와 자신은 절대 중국계가 아니며 순수한국인이다를 주장하고있고 중화권 인터뷰에서도 절대 순수한국인이라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아마 개성왕씨인듯하네요
      개성왕씨는 한국계 시조를 가지고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6. 전지현 2009.09.24 10:06

    전지현 본인이나 가족들이 모두 자신들은 화교가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증언하는 마당에, 제3자가 화교니 아니니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듯. 본인들이 화교임을 극구 부정하는 마당에, 너무 남의 가정에 대해 화교라고 몰어붙이는 것도 명예회손이 될 수 있을 듯.

  7. 안녕하세요 2015.04.23 16:29

    무슨 화교인게 죄라도 되나요? 참 웃기네요.. 그리고 설사 중국쪽 시조를 갖고 있다고 해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면 엄연히 한국인이라고 봐야겠죠..

从民族史的角度来看,汉民族本身就是历史上众多民族相互融合的产物。实事求是地说,“凡历史种族皆为杂种。汉种为历史种族,则吾人研究中国历史,有得下一个公例:汉种为杂种。[각주:1]”在汉民族这一大家庭中,就有中亚粟特民族的成分。今天,但凡姓氏为康、安、米、史等诸性之人,都极有可能为粟特人之后裔,但今天无可争议都已成为汉民族之一员。
陈海涛,刘惠琴《来自文明十字路口的民族--唐代入华粟特人研究》商务印书馆,2006年,pp.1

날림번역 :
민족사의 각도에서 보아서 한민족(汉民族)은 본래 역사상의 수 많은 민족들이 서로 융합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다. 사실만을 논한다면 "역사상의 모든 종족은 모두 잡종이다. 한종 역시 역사상의 종족이며, 우리가 중국역사를 연구한다고 하였을 때, 반드시 다음의 규칙이 있다. : 한종은 잡종이다." 한민족(汉民族)이라는 대가족 속에서 바로 중앙아시아 소그드(粟特 sogdian)의 부분도 있다. 오늘날 강(康),안(安), 미(米), 사(史)등의 성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소그드인들의 후예들이다. 물론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이 한민족의 일부분이다.


1. 이것이 "중국" 혹은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의 힘이다.
중국은 다양한 민족이 융합되어서 현재의 한민족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현재의 민족사 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역사관을 보았을 때 이는 참이다. 역사상의 어떠한 민족도 완전한 순수한 혹은 단일한 민족은 없다. 한국 사학계 역시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일민족의 신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도 염황자손(炎黄子孙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식으로 단일민족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하나, 현실적인 내부의 민족문제와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는 다민족역사관으로 일정한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에서는 순수를 아직도 강조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다민족 역사관은 상당한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소위 말하는 한화(汉化)가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리에 이루어져왔다고할 수도 있다. 다민족 역사관을 통하면 수 많은 탄력이 생긴다. 외부의 충격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내부적인 문제도 나름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다.


2. 한국도 다민족 역사관을 채택해야 될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그만 혈통민족사 혹은 문화민족사를 버리고, 다민족 역사관으로 가야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적으로는 그럼으로 인하여 한국인들이 보다 자유로운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이미 다문화가정과 한국 거주 외국인들이 많아 지고 있고, 2050년이 되면 10명 중에 한 명이 외국인이 된다. 지금처럼 단일민족 역사관으로 가면 한국의 순혈민족주의와 외국인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빨리 다민족 역사관을 채택하여야지만 지리적인 위치상으로 쉽게 침략을 당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원활하게 다자간 외교와 무역을 할 수 있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 있어서 유연한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활발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3. 지금 쓰고 있는....

민족사의 각도에서 보아서 한민족(韩民族)은 본래 역사상의 수 많은 민족들이 서로 융합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다. 사실만을 논한다면"역사상의 모든 종족은 모두 잡종이다. 한종 역시 역사상의 종족이며, 우리가 한국역사를 연구한다고 하였을 때, 반드시 다음의규칙이 있다. : 한종은 잡종이다." 한민족(韩民族)이라는 대가족 속에서 바로 중앙아시아 소그드(粟特 sogdian)의 부분도있다. 오늘날 강(康),안(安), 미(米), 사(史)등의 성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소그드인들의 후예들이다. 물론 지금이야말할 것도 없이 한민족의 일부분이다.

한(汉)을 한(韩)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이 간단해 보이는 것이...생각보다 힘들다....한국은 중국의 동시대에 비해서 사료가 너무 부족해!!! 크어어어어어!!!!! 머.그래도 몇몇 본적의 성씨는 빼도박도 못할 고증을 끝냈다만...역시 부족해...아직은 반박이나 증거부족이라고 할 가능성이...ㅠㅠ


  1. 冯承钧先生曾为《唐代华化蕃胡考》,原载《东方杂志《27卷17期,收入作者《西域南海史地考证论著汇辑》,中华书局1963年版,第133页。 [본문으로]
  1. 좋은글을 보고 갑니다만 ~ 현재 한국에서는 않통할거라 생각되네요...한국언론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이상 ~ 아직도 민족주의=애국주의로 몰고가는 이상은~ 그런데 이런 민족주의두 편협과 이익적으로 결합을 했으니 더 위험한것 같기두 하구요..요즘 떠드는 2pm의 이재범이나 미수다 베라 건두 보면 한국의 네티즌은 참 소름이 끼치네요...그들은 지독한 민족주의를 보이면서 그 민족주의에는 관용과 화합은 않보이고 오로지 한국만의 민족주의만 보여서 안타깝네요

    • 만두군 2009.09.11 14:24

      제 생각엔 해당 현상은 민족주의적 시각의 문제라기 보단 국가주의적 시각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근데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그 뜻 에는 별차이가 없네요.-.,-;)

      제가볼땐 민족이나 국가등 소속이란 개념속에 자신을 집어넣어 생각하다 보니 나라를 욕하면 꼭 나를 욕하는 것 같은 생각하에 그러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 국가적인 시각일수두있죠..하지만 그 국가에서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고수한다면 국가주의가 민족주의가 되는거죠... 중국두 몇천년을 내려오면서 여러민족이 융합되구 문화가 어울러져서 오늘의 중국문화 한족이 된건데...지금에 와서 중국하면 무조건 한족의 문화다 순수한족이다 말할수 없는거죠..이는 중국인들두 승인을 하는거구요..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한국에서 볼때는 (단일민족의 시각에서)이해가 않가는거죠..중국하면 무저건 한족이다 한족 문화라 생각는 경향이죠...그러구 이번 이재범이나 베라 사건 보면서 ....한국은 비난이나 비판하면 않되는 성스러운 존재인가 ? 하는 느낌이 들 정도죠..그런데 정작 한국의 네티즌들은 일본 중국 등 이웃나라뿐만아니라 동남아 파키스탄 미국 영국 프랑스 않욕하는 나라가 없는데...참~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2:54 신고

      일단 거칠게 용어 정리.
      국가주의는 국가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고, 민족주의는 민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국가와 민족이 같은 곳이 한국이나 일본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사실상 동일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국가주의는 점차 재한외국인의 수가 늘고, 이민의 숫자가 늘고, 세계와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붕괴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그에 반비례해서 커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만두군 2009.09.11 13:40

    글을 읽다가 생각난 거지만 저의 성씨는 빼도박도 못하게 '고려시대때 중국 원나라에서 넘어왔다'라고 되어 있씁죠.=ㅂ=ㅋ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2:54 신고

      어느 본적의 무슨 성인지 궁금하군요^^

    • 이사람 2009.09.12 11:54

      제주양씨는 한국계양씨인데요 남원양씨도 시조가 탐라인이고요 청주양씨는 분명히 중국계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화교라고 할수있죠 중국성씨분들은요
      하나 궁금한건 중국귀화성씨들은 한국인들이 짱개라고 중국인을 비하하거나 중국산 나쁘다고 뉴스때리는거보면 기분이 안좋나요?

    • 만두군 2009.09.12 16:52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랑 달라서 조금 햇갈렸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남원양씨(南原梁氏)와 제가 말하는 남원양씨(南原楊氏)는 둘다 본관을 남원으로 하곤 있으나 제가 말하는 남원양씨는 버들 양(楊)을 쓰며 청주양씨에서 분적을 하였고, 님이 말씀하시는 남원양씨는 들보 양(梁)을 쓰며 제주양씨에서 분적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에 답하자면 벌써 몇백년전에 넘어온 토착화한 성씨이고 귀화성씨를 쓴다고 자신을 화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당연히 한국인이라 생각하죠.물론 최근에 그 귀화시기가 짧거나 귀화 2,3세의 경우 좀 복잡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는 합니다만.. 대표적으로 주현미씨도 화교이고 하희라씨도 화교2세이죠. 하지만 저와 같이 그 시간이 오래되어 토착화한 성씨의 경우 뉴스나 인터넷 댓글을 봐도 별감흥이 없다는게 현실일 겁니다.=.,=

    • 만두군 2009.09.13 08:20

      청주 양씨(淸州 楊氏) 입니다.

      시조는 양기(楊起)이며 홍농양씨(弘農楊氏)의 후예로 원나라때 황제의 명을 받고 노국공주를 배종하고 들어와 정착하였다 라고 하네요.(근대 홍농양씨라면 그 유명한 양귀비의 성씨가 아닌가;;) 그 후 원나라와의 협상등의 활약을 하여 그 공을 인정받아 관적을 청주로 내리고 청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청주양씨에서 안악양씨,밀양양씨,남원양씨,중화양씨로 분적하였는데 6년전 까지만 해도 전 제가 남원양씨 인 줄 알았답니다.=ㅂ=ㅋ(어차피 뿌리는 같긴 하지만..)

      추가-
      http://www.chungjuyang.com/sijo/1.htm
      청주양씨 대종회 홈페이지 입니다. 있는 줄도 몰랐군요.ㅡㅡㅋ 읽어보다 대단한 기록을 발견 했습니다. 충헌공(양기의 시호)은 무려 92세까지 사셨다고 합니다.+ㅁ+;; 고려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에 저렇게 오래 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 생기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3 11:14 신고

      92세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죠^^::: 물론 오래살았을 가능성은 분명히 높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살았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당시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무리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족보에 있는 자료는 사실 아슬아슬하게 2차사료 세이프될까 말까하는 정도랍니다^^:::

  3. Favicon of http://eliot.tistory.com BlogIcon 상하이신 2009.09.11 14:03

    동감입니다. 글로벌시대에 자본도 국경이 없고 GNP보다 GDP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배타적 민족주의로 얻을수 있는것보다 잃을것이 더 많을겁니다. 그리고 단일민족이란것이 어쩜 신화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구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2:55 신고

      현실주의적으로 봐서 이미 단일민족주의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2PM 사건이나 기타 등등을 봐서 현실은 시궁창....--

  4. Favicon of http://timelesstime.net BlogIcon 오백이 2009.09.11 15:31

    외국에 나와서 살다보니 한국이 느껴지더라구요,
    한국은 외지인들에게 너무나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사회라는것이요^ㅡ^

    또한 각자의 공간을 타인이라는 숨막히는 투명한 이불로 덮혀 있다고해야하려나??

    외국에 나오니까 그냥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랄까요??
    요점 정리가 안되네요^ㅡ^ㅎㅎ 즐거운 주말되세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2:55 신고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입장에서도 앞으로 한국이 커지려면 님이 느끼는 배타성이 줄어들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현실성 제로 2009.09.11 22:00

    대한민국이 단일민족 사회인데, 다민족 하고싶다고 억지로 되는건 아니구요~ 중국이 다민족 사회인데, 단일민족 하고싶다고 중화민족 헛짓거리해봐야 단일민족이 되는건 불가능 하지요~ 저도 압니다. 대한민국에 외국인이 100만이 넘었다고 하죠. 그러나 그 정도로 대한민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었다고 떠드는건 좀 아닌것 같구요. 다만 이제 대한민국이 위상이 올라가는 만큼 외국인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되니, 다민족 사회와 여러 민족, 문화 등에 대한 교육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이 몰아치네 어쩌네 하지만, 우리 솔직해지자구요. 선진국 열풍, 영어 열풍이 세계화는 아니잖아요?

    우리에게 필요한건 절름발이 세계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 이웃 가족과 이웃 나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주는 게 아닐까요?

    현실은 다민족인데 중화민족 헛짓거리 하는 거나, 현실은 단일민족인데, 억지로 세계화니 다민족이니 끼워맞추는 건 쓸데없는 문제거리를 만드는 거라고 봐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3:02 신고

      한국은 일단 단일민족 사회 자체가 아닙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유입되어서 형성이 되었습니다. 혈연적으로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한국의 문화는 중국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근대화 이후로는 서방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한반도 고유 문화도 살아 있습니다. 그 결과 혼혈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문화로도 단일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단일하지 않습니다. 단지 "공동체 인식"적으로 단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동체 인식은 단지 허구적인 이념이기에 이념만 변화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물론 그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냉정시대의 이념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붕괴를 생각한다면 이것도 이념적인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만 보겠습니다. 최근 보고서로 2050년이 되면 전체 한국인 중에서 10%가 외국인이 됩니다. 지금 현재는 단지 1%가 조금 넘지만 앞으로 한세대만 지나면 이것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한반도가 마주치게 될 실질적인 다민족 사회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지금부터 하지 않을 경우, 프랑스와 같은 민족간의 대립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생각입니다. 님의 생각처럼 기존의 단일민족주의에 개방성을 추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는 민족이라는 것을 공부하면 할 수록 너무나 날카로운 흉기와 배타성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단일민족주의 혹은 순혈민족주의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기에 아예 다민족주의로 선회하자는 것입니다.

    • 글쎄요 2009.09.11 23:40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같은 경우는 민족이 단지 혈연적인 관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배웠구요... 100번 양보해서, 대한민족이 다양한 민족들이 유입되어서 형성이 되었다고 해도, 결국 단일민족 대한민족을 형성한 거지, 다민족 사회가 된건 아니죠. 다민족 사회란 물과 기름과 같이 서로 이질적인 문화가 어느 한쪽에도 동화되지 못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말하지 대한민족과 같이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 하나의 혈통을 수천년간 지켜온 경우는 다민족 사회라고 하지 않죠. 저는 그렇게 배웠고, 제가 배운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되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3:52 신고

      저는 문화적으로도 혼혈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님의 말씀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민족 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지요. 저와 같은 경우 다민족 사회를 꼭 물과 기름과 같은 상태로 보지 않고, 서로 서로 접촉을 하면서 상호간에 융화되어 가는 사회를 말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언급하자면, 한민족은 결몇 천년동안 내려온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이 부분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ddokbaro.tistory.com/2268 을 참고해주시고요.

      그리고 님의 논리를 확장하면 중국의 중화민족 역시 앞으로 몇 백년이면 하나의 민족으로서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

    • 그리고 2009.09.11 23:53

      단일민족이 가질 수 있는 문제들만 언급하셨는데, 다민족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무시해서는 안 되죠. 중국이 가장 좋은 예네요. 전혀 다민족 사회를 이해하지 못해서 민족간 갈등을 일으키고 있죠. 게다가 유럽 사회에서의 무슬림 문제도 그렇구요. 천하의 미국도 인종갈등은 어쩔 수 없지요. 이렇듯 단일민족이나 다민족이나 장단점을 고루 가지고 있으니, 제가 볼 때 우리는 스스로 가지지 못한 또 다른 것을 추구할 게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게 정도(正道)라고 보아지네요.

    • 듕귁 2009.09.11 23:55

      중국이 미래에 단일민족이 될지도 모르니, 제 생각이 문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중국이 영원히 다민족 사회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생각해 본 적도 없네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미리 걱정할 일도 아니죠. 문제는 현재 중국이 많은 민족 구성원들이 살고 있는 다민족 사회라는 점이 중요하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1 23:57 신고

      문제는 한국이 현실적으로 다민족 사회로 가고 있고, 만약 다민족 역사관이나 다민족에 대한 성찰이 없는 이상, 다민족 역사관을 택한 다민족 사회보다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이제는 한국도 다민족역사관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관련 글은 http://ddokbaro.tistory.com/2256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2 00:01 신고

      듕귁 //

      일단 한국은 앞으로 다민족 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생각해보셔야될 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국가 보고서가 나온 마당에 부정할 수는 없는 현실로 보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 이런 중화민족이라는 단일민족이론이 점차 받아들여져가고 있고, 그럼으로 인하여 다양한 문화가 묵살되고 있고, 앞으로 이 경향이 더욱 강화될 수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한국의 순혈주의가 이와 같은 문제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6. 대한민족 2009.09.12 00:04

    님 글 읽어 봤는데요, 머 소수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한민족은 혈연적으로 오랜 기간 단일민족을 유지해온 세계에서 손꼽히는 민족이며, 유전학적으로 그렇다고 보아진다." 이게 다수의견인 것 같네요. 머 돌도끼 들고 다니던 시절에 우가우가인들(호모 사피언스 사피언스 라던가 -_-;;)이 이주/혼혈 과정 겪은 것도 다민족 형성 과정이다 라고 말씀하시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족이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걸 봐서는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대한민족이 확실히 유구하긴 한 듯..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2 00:08 신고

      죄송하지만 혈연적으로는 이미 학계에서 철저하게 비판당했습니다. 결국 남아 있는 것은 문화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이 학계에서는 이미 80년대말부터 정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로는 제가 현재 쓰고 있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다량의 외부인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조선시대 이후로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 때도 상당한 수가 들어왔다는 것이 주류의견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문화면인데, 문화라는 것 자체가 쉽게 정의될 수 없는 것이라서 사람마다 해석이 너무 다릅니다. 그럼으로 어느 것이 맞다라고 하기 힘듭니다.

    • 대량유입 2009.09.12 00:19

      머 요즘도 다량의 외부인이 유입되었죠. 100만 이상

    • 만두군 2009.09.12 07:02

      제 생각에도 혈연적 단일민족관은 받아 들여지기기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려시대때 저의 선조를 포함하여 약 60여개의 중국성씨가 넘어왔고 신라때는 40여개, 그리고 임진왜란당시 20여개의 성씨가 넘어 왔다 합니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보면 도독 '진린'이 나오는데 그의 후손들도 조선에 넘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네요.그밖에 일본에서 귀하한 성씨들도 존재하구요. 국내 성씨중 130여개의 성씨가 외부에 들어온 성씨라고 하네요.

    • 단일민족 2009.09.12 12:42

      약 60여 개의 중국 성씨가 넘어왔고 신라 때는 40여개,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20여 개의 성씨가 넘어 왔다는 걸로 대한민족이 혈연적으로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왜냐면 그들 이민자들은 어디까지나 대한민족 사회의 소수자였으니깐요. 만일 프랑스가 단일민족 사회라고 했을 때, 프랑스에 대한민족 이민자 몇몇 살게 되었다고 프랑스를 혈연적으로 단일민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되죠.

    • 만두군 2009.09.12 16:38

      단일민족// 제가 이것이 사실이다 라고 명확하게 말하긴 뭐하군요.제 생각엔 과연 소수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국내성씨264개의 성씨중 130여개의 성씨가 귀화성씨라 하는데 성씨의 수만으로 판단하면 적지않은 수의 외부유입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말그대로 성씨만으로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기에 얼마만큼 외부유입이 있었는지는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요. 사료라도 있으면 좋으련만..ㅡㅡㅋ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3 01:08 신고

      님의 말씀은 이상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을 수치로 따지면 이미 소수자라고 하기 힘듭니다. 또한 님은 어디까지나 고구려계열의 성씨나 민족을 그냥 다 포함해서 원래 거주한 것처럼 이야기하시는데, 명확하게는 분리해야됩니다. 그럼 또 증가한답니다. 글쎄요.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최소한 혈연적으로는 이미 박살났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과거에도 단일민족이 아니었고, 지금은 더더욱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nationalism 이 국가주의이자 민족주의의 두 개념으로 번역되는 곳은 제가 알기로는 한국과 일본밖에는 없는 실정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문화적인 면에서입니다. 그 부분은 덧글 몇자로 압축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아니...제가 그렇게 압축시킬 능력이 없어서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그냥 부언이지만, 제 논문이 받아들여지면, 외국계 성씨가 4개 증가하겠군요. 그 외에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7. Favicon of http://www.alexnam.com BlogIcon 카이시이 2009.09.12 10:06

    아직도 배터리가 분리형이 아니지?
    한글, 중문 입출력은 그냥(아무 프로그램 설치 않해도) 되는 건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2 12:41 신고

      형;;; 왜 여기다가;;;;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당연히 분리형이 아닙니다.^^::: 애플의 오랜 전통이죠. 나쁜쉡들. 한글이나 중문 입출력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8. 이사람 2009.09.12 12:00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민족으로 쥔장이 생각한다면 동포라는 의미가 없지않나요?
    조선족도 그냥 중국인이죠 국적도 중국인데요 조선족중에서도 원래중국인이였던 중국성씨를 가진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들은 이젠 국적도 중국인데 아직까지도 자신들이 한국동포라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국성씨를 가진 조선족들은 원래자신의 나라로 돌아간거아님니까? 중국 - 한반도 -중국 이렇게요

    다민족국가이면 북한이 중국한테 먹혀도 그리 상관은 없을것같네요
    혈연(쥔장이말하는 다민족이니)도 문화도 틀린 북한이니까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2 12:44 신고

      몇 번을 말하지만, 님이 언급하신 조선동포에 대한 글은 처음부터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할일없이 굳이 "현실주의적인 입장"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민족사회가 되면 다 뺏기거나 없어진다는 식의 생각은 오히려 이해가 안되는군요. 반대로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확장이 중요한 것이고요. 쉽게 말해서 기존의 "한민족" 말고도 그 외의 것도 포함을 하면서 넓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9. 길손 2009.09.13 22:23

    단일민족인든 다민족이든 그냥 그때 그때 상황에맞춰서 정치적으로 변해가느거죠..딱히 뭐 어는쪽이 배타적이고 숭고하다는건 그냥 헛소리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단일민족론이 몽골의 고려침입이나 일제항쟁기쯤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알고있는데 그 당시 그런 이념은 절대배타적이거나 국수주의라기보다는 약자가 강자의 횡포에 휘둘러지지 않기위한 숭고한정신이었겠죠.다민족국가라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에게 마냥 관대하고 절대배타적이지않다고는 할수만은 없고요

  10. 길손 2009.09.13 22:24

    딱히 뭐 어는쪽이 이상이다라고만은 하기에는 애매한문제입니다.시대가 좀더 지나면 더욱더 새로운 개념이 생기겠죠..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18 01:16 신고

      히틀러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며 결국 유태인 대학살을 야기시킨 민족주의도 처음 시작은 약한 독일이 외부의 강자의 횡포에 휘둘러지지 않기 위한 숭고한 정신으로 선전하고 널리 퍼졌습니다. 그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배타성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 길손 2009.09.23 17:16

      어차피 국가개념에있어서는 어는정도는 배타적일수밖에없느겁니다.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중심주의적일수밖에없는거죠.다민족주의라고 배타적인것이 전혀없다고할수도없습니다.물론 단일민족주의보다야 낫겠지만 역시 최종목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죠.어차피 국가라는것 존재목적이 자신들의 이익을위해서 존재하느것인만큼 아무리 이상주의적인 개념이 생긴다해도 결국은 자국중심주의적인것을 완전히 떨쳐낼수가없는것이 한계입니다.그냥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해가는거겠죠.전 지금은 몰라도 그당시만큼은 약자에게있어서 민족주의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라고봅니다.그것이 히틀러같될지는 하기나름이죠.어차피 아무리 숭고한 이념이라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다 퇴색되고 변질되거나 악용이 되니까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23 18:29 신고

      님은 마치 민족주의가 숭고한 이념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먼저 구별하고 이야기하셨으면 합니다.

      민족주의만 놓고 보면, 단일민족주의보다 당연히 다민족주의가 더 개방적입니다. 이에 대한 부언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봅니다. 그 다음으로 나가는 것이 국가주의입니다. 그리고 국가주의는 국가주의의 차원에서 생각을 해야되며, 저는 현재의 단계가 바로 국가의 해체 단계이며, 점차 큰 연합체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님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별하지 않으시니, "국가개념로서의 한계"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님과 같은 식이면 중국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민족정책을 구사하라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님이 말씀하신 약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 몇 십년뒤에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의 입에서 그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나 봅니다.


      다시 대전재로 돌아와서. 어떤 이념도 숭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이나 이념...하다못해서 방향이 있습니다. 단일민족주의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국가주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다민족주의라는 새로운 방향이 있고, 국가주의도 지역공동체라는 새로운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이대로 있어야 될까요?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될까요?

    • 길손 2009.09.23 18:46

      어떤 이념도 숭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이나 이념...하다못해서 방향이 있습니다. 단일민족주의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국가주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다민족주의라는 새로운 방향이 있고, 국가주의도 지역공동체라는 새로운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이대로 있어야 될까요?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될까요?

      ,,,,,,제가 말하려는게 이겁니다만..저는 어는쪽도 일방적으로 숭고하다고말할려는의도가 아니었습니다만..다만 그당시로서는 어쩔수없었고 그것이 최선의선택인만큼 이해해줘야한다고했습니다.앞서 말했듯이 어는족도 절대적일수없다고제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형편자체가 다른 중국이나 그당시 독일이야기를 하시는데 한국은 상황이 매우다릅니다.국가의 생존자체가 위협당할는 나라에서 단지 타민족의 공격에게 자신을 지키고자하느 방어개념이지 여기에 대헤서 우리민족의 우수함을위해 타민족을 공격하자는 이야기는 없습니다.그것이 독립이되고현대에와서 그런개념이 맞지않고 한계가 온것뿐입니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구별하지않는다고하느데 어차피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다는점에서 공통됩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런이념이 시대에 맞게 변하느것일뿐이지 무조건 민족주의가 시대나 상황에 가리지않고 무조건 나쁘다고하느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려는것입니다.거기에 대헤서 무저건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필요는없습니다.마치 민족주의는 절대악이고 다민족주의는 절대선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하시려는게 아니라면 제가 말하는의도나 님께서 추구하는 이상향과 크게 충돌되는것은 없으리라고봅니다

  11. 강남제비 2009.12.19 12:19

    길손 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위 바로바로님께서는 이미 다민족국가나 사회로의 변화 주장이 정립되어 있고//이를 반론하면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자신의 논리만을 주장하는 듯 보여집니다.
    한국이 다민족 국가관을 채택하던 않하던, 그 선택은 시간이 해결할 것이지//인위적으로 선택할 상황은 아니지요..미국이 중국이 영토가 넓은 다민족 연합체 국가들 중 상당부가 과거 자신의 민족을 중시하며 타 민족을 탄압했었고,결국 지금은 그 민족이란 자체가 말살되거나 해체 된 상태입니다.미국의 인디언이 그랬고 중국의 만주족이 그랬고 제국의 지배하의 인디오 들이, 호주의 원주민이 그러했읍니다.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지금의 다른민족을 받아들인 어쩔 수 없는 나라도 많고요..지금의 지배층이 되고서야 사회통합이니 뭐니 하는 차원에서 다민족을 옹호하지만, 결국 길손님이 주장하신데로 국가라는 큰 틀의 이익을 위해 변화하는 정치적 용어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인디언들의 동화를 통해 사회 지배와 통치를 원활히 했고, 다민족국가체제를 표방 유수 인력을 받아들여 세계 절대 강국이 도달 아직도 강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죠..아마도 이러한 일부 과거 제국주의 들이 걸어왔던 길에서 보여진 사회 발전의 모습이 성공한 결과물로 비춰진것들에서 다민족 성공사례나 장점을 부각하는 내용이 아니길 바랍니다.
    민족주의란 언어가-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옹호되기도 배척되기도 합니다.한국이 다민족 국가라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사회의 자연스런 변화로 정착될 것입니다. 이런의미에서 서구의 과거 타민족의 배척이나 학살 따위의 그것과 구분되는 동시에 사회적 배경으로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 글을 읽어면서 특히 중국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경향을 여러 문장에서 느낄 수 있었읍니다. 논리적 근거나 증명이 필요한 부분이나 인용이 필요한 곳이 많았으며, 학술적 가치에서 확인된 자료가 부족한듯 보여지네요. 중국의 다민족정책이 옛 소련의 붕괴에서교훈을 얻은 듯하며,지금의 중국은 그때이후 중화라는 용어로 다 민족을 만세를 주장합니다. 중국의 내부 상황에서 다민족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금까지 이런 정책을 올바른 방법으로 취해 왔는지 알길이 없군요. 보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지금은 한족의 땅인 흑룡강,,그러나 내몽고의 일부땅을 강제 병합한것...티벳의 신안의 일부의 땅을 한족중심의 성에 귀속 해버리는 중앙의정치자들이 과연 올바른 다민족 국가 체제를 이끈다고 보시는지.. 바로님의 말 대로라면, 과거 냉전시대, 경제적 남북시대 등 이러한 말은 과거일 뿐 이젠 이러한 이념이나 용어는 먼 이야기///바로님의 주장대로 다민족의 지향이 올바른 인류관계로의 방향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사회체계를 묶어주는 큰단위 국가라는 안으로의 흡수를 요건으로 한다면, 그 큰 단위의 이익관계의 향방에 따라 배척 또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늘 중국어느 사이트에서 조선족 친구가 중화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쳤다는 글이 있군요...자신의 정체성에 문제를 느꼈는지 몰라도, 나는 조선족이지만 중국인이며 중국을 사랑한다.중국을 미워하는 한국을 증오한다.중화민족을 미워하면 죽음이다,,,라는 글귀에 많은 것들은 느끼게 합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19 17:19 신고

      본 글은 중국의 민족정책에 반대하는 글이면 글인데 오히려 찬성이며 중국식의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하니 재미있군요.

      다민족주의가 완벽하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다 더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님조차 현재의 상황에서는 결국 상호간의 이해를 기본으로 하는 다민족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아시리라 봅니다.

      다만 저의 기본 전체를 무시하시는듯 합니다. 전 국가주의자가 아닙니다. 국가를 최종적인 흡수자로 본 적이 없습니다. 님도 아시겠지만, 전 단계적인 통합을 지지하며 동북아시아통합 나아가서는 세계통합을 이야기합니다.한마디로 국가를 최종적인 흡수자로 보지 않습니다.





      + 후.....함부로 논리적 근거나 증명을 이야기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이해가 없이 함부로 상대방의 관점을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논문이 아니기에 최대한 근거와 증명을 줄인 것이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른 글을 통해서 학술적으로 확인된 자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위의 본문에서 어떤 구절이 학술적으로 부정되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군요 )또한 님이 말씀하시는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체의 위험도는 하다못해서 위의 글에서도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단지 님은 현재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님 나름대로는 근거라도 써놓으신거고, 본문의 주제에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다른 글에서 언급하였기에 넘어간 것 뿐입니다.

      이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저의 일기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인 일기라는 특성이기에 타인에게도 읽기 쉽게 쓰기는 하지만, 결코 논문은 아닙니다. 님은 마치 신문 사설을 보면서 왜 논문을 쓰지 않았냐고 말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딱 한마디로 정리하면 : 제 본문글에서 학술계에서 부정되는 것이나 객관적인 시선을 잃었다는 부분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부로 상대방의 사상을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국이니 중국이니 하는 관점자체로 이야기를 서술하지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혹은 한민족 한족등의 분류를 사용하지만, 그것에 속박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끊이 없는 자기 비판을 행하여서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본문글을 다시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저기에 중국정부의 관점은 사실상 없거나 있어도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_-;;;

  12. 강남제비 2009.12.22 15:22

    바로님 앞
    일단의 몇 가지 부분에서 오해가 있는 듯 보여 해명해 드리겠읍니다.
    1)다민족제도로의 변화는 시대적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취지며, 단지 이것을 어떤인위적인 발상이나 강제적 성격으로 사회의 가치를 바꿔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우연이던 필연이던 지금은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인듯 보여지는 것은 사실이기에 부정하지는 않치만 강제 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윗글 제목 1. 이것이 "중국" 혹은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의 힘이다, 라는 내용에서 분명 바로님의 생각인지 아니면 인용인지 알 수는 없으나, 우리 국내의 현실을 접어두고 서라도 이제목을 접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라면, 중국의 정치색깔을 추종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있읍니다.그것은 바로님도 잘 알고 계실것 같군요. 만약 바로님의 생각이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2)그리고 바로님의 일기 형식이라고 하시며 변론하셨는데, 바로님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이글에서만이 아닌 , 몇 몇 주장이나 댓글에서 내용을 확인했읍니다. 대체적으로 중국문화나 사회제도 등에서는 상이점을 찾을 수 없었으나, 중화민족.문화 역사 정치의 연관성에 있어 분명 중국의 중화주의 사상의 관점에서 주장되는 글귀가 보여지더군요. 바로님이 역사학도라고 말하신것으로 아는데, 한국의 역사과 중국의 그것과는 분명 차이나 있으나, 강한것이 약한것을 흡수하는 도미노식 중화사관우위가 아니길 바랍니다.

    중국이 다민족 국가로의 정책을 펴니까, 우리도 다민족 또는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해야한다는 뉘앙스로 느껴지는 것이 저만의 생각뿐일지 궁금합니다.

    모든 것을 중국에 비교해서 논하는 것이 아쉬움일지 모르겠읍니다.다문화 국가의 성공사례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고, 다민족국가의 형성에서 일었던 어두운 면은 알고 객관성을 말하자는 의견입니다.

    되돌아 와서, 중국의 다민족 국가주의(다민족 사회라고 하지는 않죠-용어상의 차이)사상에 중화 라는 용어가 있읍니다. 나도 중화의 내용에 무슨 뜻이 있는지 잘 몰라 모 때학교수의 중화론에 대해 뒤져보았읍니다. 우리가 아는 중화주의 또는 중화론에 결정체가 바로 중국의 문화이며, 이른 중국의 문화를 주도한 것이 한족(전신 화화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개념임을 접했읍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다민족을 통합하기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활용하는 지금의 중국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정치제도에서 다민족정책을 수용함으로써 긍정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부분도 많습니다. 하나 실상은 과연 그러합니까! 다민족이 아니라 중국의 순수한 중화론 또는 애국적 관점이 없으면 어떤 대우를 받고있는지...결국 (동화-同化主義 )가 1차 목적.. 바로님의 말한대로 다민족 사회 문화로의 발전된 긍정적인 모습을 보기엔 나름대로의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고난 뒤에라야 가능 하다는 제 생각입니다. 지금의 중국은 분명 국가주의적 괸점에서 통치이념이 중화주의가 정치를 활용하고 있읍니다. 우리의 현실에 비쳐볼때 다문화 다민족의 선택은 시간의 문제이지 결단의 문제는 아닙니다.중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모순이 있고, 우리와는 맞지않다는 얘기로 끝을 맺겠읍니다.

  13. 강남제비 2009.12.22 17:21

    첨부-어떤 대상이나 사회 국가 등의 주 테마를 지칭하고 논할 때는, 명제를 먼저 서술하고 그 명제에 따른 예(대상), 그리고 장점과 보완점을 함께 얘기해야 합니다.바로님의 생각이 그러하지 않는다 해도, 단순히 한 사회의 성공사례...우리의 변화...우리의 보완이나 모순으로 글이 어어진다면, 누가봐도 일방적 견해만을 주장하거나 추종하는 글로 오인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중국에 대한 객관적 사고와 생각을 가지려 합니다.그러나 중국정부의 관점이 아니라 해도, 중국의 정치적 집단에의해 지금도 일고있는 중화주의식 의식화정책은 분명 경계를 해야하며, 아울러 일부 또는 적지않은 사학자 정치가 등등이 이러한 의식화에 휩쓸려 마치 그것이 정의인양 외치고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중국과 밀접한 사상 이론 논리 주장 등은 설득력이 약해보일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있읍니다.바로님에게 일부의 글의 내용에서 올바르지 못한 단정적 용어를 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2.22 22:11 신고

      1. 분명 기본적으로는 모든 사상들은 그 시대적 흐름에 맡겨야됩니다. 하지만 시계바늘을 빨리 돌릴 수는 있고, 미리 흐름을 대비할 수도 있습니다. 전 그런 원칙으로 어떻게 보면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다민족"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2. 중국추종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라고 하십시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분명히 인용부호를 사용했는데 그 의미를 캐치못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것까지 다 챙기면서 살기에는 제 능력의 한계가 많이 있습니다.

      3. 전 그냥 중국의 좋은 점을 흡수하고 나쁜 점은 반성해야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뿐입니다. 중국의 "다민족역사관"이 한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가지고 와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별로 더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4. 중화민족
      중화민족은 님이 말씀대로 동화를 추구하는 방식이며, 다민족역사관과도 충돌하는 생각입니다. 저도 이에 대해서 충분히 비판을 했습니다. 다민족 역사관과 중화민족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입니다.

      다만 위의 덧글에서 언급했지만 중화민족이나 한국의 단일민족이나 감히 실질적으로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님이 언급하신 조선족의 말을 패러디하면 : "나는 세계인이지만 한국인이며, 한국을 사랑한다. 한민족을 미워하면 죽음이다..."

      5. 논술 과정.
      1)본문에서 중국의 다민족에 대한 논물글 인용.
      2)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에 대한 내용과 그 문제점 서술
      3) 한국의 다민족 역사관 도입에 대한 서술
      4) 그에 대한 현재 쓰고 있는 논문내용의 짦은 소개.

      만약 제가 중국 다민족 역사관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찬성을 이야기했다면 님의 말씀대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글은 그냥 짦게 쓴 글임에도 저는 중국의 실질적인 다민족 역사관의 현실화에서의 문제도 역시 서술하였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도 저의 논술 문제라고 하시면 저도 할말이 없습니다.

      6. 전 그냥 자유인입니다.
      전 중화주의식 의식화 정책도 물론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식 의식화에서 벗어나려고 계속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때 오히려 님은 "한국은 우리이며 지켜야될 것"이라는 한국식 의식화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시려는 듯 합니다. 이것 자체는 님의 자유이니 제가 무엇이라고 할 말은 없습니다.

      만약 저에게 님과 다른 관점이 있다면, 전 한국이든 중국이든, 중화민족이든 한민족이든 그 외의 일본이나 미국, 유럽, 중동등에서 만든 어떠한 의식과 사상을 배우기는 하지만,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14. YM 2010.07.18 01:14

    이거저거 읽다보면 왠지 전 "한국"이라는 이름을 잘못고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누구누구가 고구려사는 한국과는 관계없다"라고 되있는거 보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다니며 한국역사에 관한글을 읽어보니 韓이란 말이 나오는게 결국 삼한시대부터인듯 하더군요. 그 삼한을 통일하여 통일신라이고, 그 한민족이 함께사는 나라가 한국이며 그래서 우리가 한족이라고 한다면, 고구려(고려)의 역사는 한국과 관계없다고 하는 말이 맞을수 밖에 없을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남북의 한국/조선인민국 분단은 그저 한민족과 북방족의 분열로 볼 수 있을테고, 그럼 결국 남북도 하나가 아니니 남한이 북측에 관심가질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테고...하지만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며 북방을 한떄 지배했던 모든 민족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하니 한국에서 고구려사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는것 같구요. 뭐 그렇네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10.07.18 14:08 신고

      "한국"이라는 이름의 선정은 당시로서는 "조선"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부러 정해진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어느 정도 한반도 남부의 세력에서 따오는 것을 의도했을 수도 있습니다.(전공시대도 아니어서 관련사료를 잘 몰라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한국사에서 "통일신라"라고 부르면서 동시대의 발해를 억지로 한국사에 포함하는 어이없는 모습이 떠오른답니다. 다만 통일이 된다면 다시 합치는 것이 되겠지요....머.....그렇겠지요.....

    • 조선사람 2010.10.27 23:19

      민족이란게 참 복잡하군요.같은 슬라브계민족이라도 나라에 따라서 문화와 언어가 천차만별인데...그냥 인류는 다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게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정답일것같네요

  15. 안녕하세요 2015.04.23 16:11

    어찌보면 저도 함안조가로 선조가 당나라 사람이라하니 그런가보다 하는데 그렇게보면 저도 다민족이라 봐야 될지도 모르겠네요.(물론 전 저를 한국인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그렇다고 다민족 역사관(?)을 채택해야 한다곤 말못할것 같은데요.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잡종이 되는건 어느나라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단일민족의 영향이 큰 나라에서 순수혈통을 지키고 싶어하는건 당연한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쥔장님 주장도 이해는 하지만 강요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위에분 말대로 다민족이든 단일민족이든 문제점이 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차피 다민족사회가 점점 많아질거라고 봅니다. 쥔장님 말대로 미리 준비해야 될 필요성은 물론 있겠죠. 다민족 역사관(?)이라는 말이 좀 애매한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되는게 맞다고 봅니다. 한국도 요즘은 다문화가정이 많아졌죠..


위의 지도는 클릭하면 확대되어서 크게 나옵니다. 잘 보이지 않는 분은 클릭!

왼쪽의 지도는 한국의 환단고기빠들이 환국 혹은 대쥬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영역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지도는 중국의 중화빠들이 만든 대중국 영역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저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네요. "니들 대체 다른게 머냐? 웃기는 쉐리들 -_-"

둘 다 우리민족이 최고이고, 최고여야 된다는 발상에서 어떻게든 크게 만들려고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차이를 나눈다면, 중국의 중화빠들은 미래의 영토나 여기서는 소개를 안했으나 몽골의 원나라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한국의 환빠들은 증거도 하나 없이 상고시대에 자신들 마음대로 환국이니 대쥬신따위의 영역을 만든 것이다.

환빠들도 슬슬 "미래의 대쥬신" 지도나 그려보는 것은 어떠한가? 중화빠들도 "상고시대의 대중화"을 그려보고 말이다. 그리고 환빠와 중화빠가 손 잡고 그냥 세계는 우리꺼~ 라고 하지? 둘이서 참~~ 잘 어울리는데 말이야^^


정리 : 어느 나라에나 스스로의 자존심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외부의 것에 의지하려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환빠나 중화빠 같은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들은 저런 길로 절대 가서는 안될 것이고,

상대국의 저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만으로 상대국을 평가하지 말고 그냥 "미친개에 물렸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덧 : 너무 시니컬하게 적은 듯하다. 나름 유머러스하게 쓰려고 계획했었는데 쓰다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flacamo192 BlogIcon flacamo192 2009.09.07 19:43

    환빠들도 그들 이외의 누리꾼들에게 만만찮게 까이고 있긴 합니다. ^^;;;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07 21:08 신고

      중국네티즌쪽도 그렇습니다.킥킥.... 우리의 타오르는 양쪽의 애국자분들은 참으로 고난의 행진을 하시는군요. /애도~

    • abrasaurus 2014.01.13 15:35

      중화빠하고 환빠가 애국자였어? 난 매국노인 줄로만 알았는데.......

  2. 만두군 2009.09.08 06:07

    환빠가 까이긴 까이는 모양인데... 문젠 환빠적 주장을 하면서도 본인들은 환빠가 아니라며 부인을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게 먹혀듭니다. 따지고 보면 환빠를 싫어하는 일반인들도 실제로 환빠적 주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환빠가 아니구나. 그럼 백제가 중국에 있던게 사실이네?' '치우는 고대 우리의 왕' 라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이죠.

    또한 위와 같은 이유로 환단고기가 사실이라고 주장하여도 역시 저와 같은 일반인들은 대꾸를 못한다는 것이죠. 최근에 '환단고기가 인류기원사' 라는 댓글을 보고 뿜었지만 문젠 아무도 그 글에 제대로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ㅡㅡㅋ 환빠를 경멸하는 사람은 민족혼이 없다, 평생을 바쳐 우리역사찾기를 해온 사람들을 비하하는 건 화교거나 일본인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식민사학에 빠진 한국놈이다등등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일단 해당 내용을 안믿으면 식민사학에 물든 매국노나 짱개,짱골라, 쪽바리라고 몰아세우면 그만. 논리정연하에 근거를 대면 잘못된 자료, 날조된 자료라고 우기면 그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위에 flacamo192님과는 반대로 제가 볼땐 환빠적주장이 이미 정설로 자리를 잡은 느낌입니다.

    민족주의로 포장한 그들의 말에 토를 다는 건 매국노일 뿐이거든요.ㅡㅡ;;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9.08 11:37 신고

      음...전 매국노 인증이려나요....
      비록 출판 시장에서 환단고기계열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실제 사학계의 책은 파리 날리지만, 그래도....그들이 정설이라는 말은 최소한 학계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 한국의 "이성"이 그렇게까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그냥 어이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자체가 날조인데 멀 비판하고 말고 할게 있겠습니까 ㅠㅠ

  3. 미친소리 2009.11.19 19:21

    나도 환빠들 이야기는 답이 아나오는데... ㅋㅋㅋ 수메르문명까지 손대는...., 그거야 '허리잘린' 반도국의 애들의 피끓는 '넋두리' 정도로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데......,

    진짜 '차이니즈'애들은..... ㅍㅅㅅㅅ.. 글쎄.., 한국인이라고 하시니 한국인인 것으로 믿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일하고 발담구는 곳을 변호하려는 의지가 상당하신데..., 한국인의 외국인 혐오증이 물론 있고.., 어떠한 면에서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한국에서 안산의 원곡동과 가리봉동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신다면.... 특히 그러한 외국인 슬럼을 만드는데는 파키스탄 등지의 서남아의 범아랍과 '본투킬'의 베트남 쪽도 유명하지만...

    '조폭성'의 차이니즈도 만만치 않은... 아니.., 오히려 대표주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미 가리봉동이나 안산 원곡동의 한인 업주(이미 한국 땅이라고 하지만... '한인업주'라는 말이 나돈다)들은 방검복을 차고 다니는데.., 그것은 차이니즈 노동자들의 칼질 때문인 것은 주지의 사실....

    그것을 차이니즈들의 '근성'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어차피 인간의 근성이 뭉치면 담대하지고..., 탐욕스러우지는 것은 본성이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인구'의 위력으로..., 공산주의의 간판을 걸었지만...., 자본주의의 맹렬한 발걸음의 중궈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세계 최대의 시장을 무기로..., 각국의 기업으로 부터 각종의 기술들을 사실상 '강탈'하고... 해외의 기술들을 강탈하면서 일종의 '덤핑'국가로서 성장하는데.....,


    문제는 중궈가 만들어 놓은 중화민국이라는 일종의 신민족적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중궈의 '역사공정'은 계속될 것이고..., 그 결과는...,

    역사적으로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돌릴때 썼던 가장 흔한방법은 '전쟁'임을 가만하면.....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1.19 23:15 신고

      한국의 민족주의자나 중국의 민족주의자나 오십보백보입니다. 님이 넋두리로 듣는 소리때문에 죽어나가는 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전 제가 발담구는 곳이니 머니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전 어디까지나 세계주의자로서 무정부주의자에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니 님의 말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한 님의 제시하신 예시는 사실과 상당한 일정한 차이가 있고, 중국내에서 벌어지는 한국 조폭들의 삽질을 이해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아니 한국 자체 내에서 벌어지는 한국 조폭의 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미 신문보도로도 나왔었죠. 외국인들이 많은 곳에서의 범죄율이 한국인들이 있는 곳보다 낮습니다. 님이 말하는 것을 이미 예전에 정면으로 반박당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돌릴 때 가장 편한 방법은 분명히 전쟁입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의 국제적상황을 고려한다면, 중국이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나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국내부의 불만세력을 잠재우고자 나선 전쟁에서 승리했던 중국사는 사실상 없습니다. 반대로 내부의 불만이 더욱 커져서 중국이 붕괴되었던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반복한다면 님과 같은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이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4. 미친소리 2009.11.20 10:05

    ㅍㅅㅅㅅ.., 글쎄 당신이 화교인지..'친중' 한국인지.., 어떻든 간에 진짜 너무 친차이나적인 모습을 보이는군~!

    이봐요~!! 첫째, 통계를 말하는데.., 중궈애들의 통계는 공인된 '구라'라는 것은 왠만한 사람은 다아는 사실..., 사실 너무나 큰 시장으로서의 중궈이기 때문에 모두가 쉬쉬하지만.., 중국의 전력사용량으로 중궈의 경제성장률을 계산한 것으로 보면 절대로 중궈 정부의 경제성장률은 못나온다는 사실...,

    근데..., 사실 그것은 한쿡도 마찬가지로.., 범죄발생류에서 지금 외국애들 범죄자의 비율이 한쿡보다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뭐, 코스모폴리탄으로써.., 그것이 사해동포주의인지는 몰라도 한쿡에 있는 외국애들의 범죄가 과연 한국인처럼 잡힐 수 있는지..., 또한 신고의 문제까지 계산은 않하셨나~! 나도 신이 아니고, 당신도 신이 아니기에...,

    전수검상을 하지 않으면 진실은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다하는 지문날인(주민등록증, 주민등록증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도 전정권의 '춤꾼' 법무부장관이 폐지했고.., 그래서 불체자들이나 다른 외국인들에 대한 범죄데이터 자체가 부실한데다가.., 특히나 성범죄에 있어서는 한국 여자애들의 쉬쉬하는 성향 때문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점은 더욱 무섭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재 불체자까지 합쳐서 한국 인구대비에 비해서 수십분의 1에 불과한 마이너리티인 외국인 애들의 이러한 범죄율이 과연 단순한 절대치(순수하게 그것을 믿는다는 전제하에서) 비교가 가능할까나..., ㅋㅋㅋ

    그리고 여기에 갑자기 한국 조폭으로 '드립'을 치는것인지, 논점은 그것이 아닐텐데..., 누가 내가 차이나에서 조폭질하는 한국조폭 가지고 뭐라고 했나? 웃기네~! 차이나 정부가 알아서 발라버리든 말든 그것은 걔네이 일이고, 솔직히 '관시'의 나라 차이나에서 한국조폭애들이 맨땅에 헤딩할리는 없고, 중궈애들 끼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것이겠다는 것이고,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신문기사는 자기가 보고 싶은 기사만 읽으시는지, 외국 조폭이 아직은 서툰 언어와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자국애들 인신매매에서 머무는데, 한국 조폭과 연계되어서 한국인들을 노린다는 말이지..., 차이나에서 까부는 한국조폭이나 코리아에서 까부는 외국조폭이나 조질것은 조지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갑자기 외국애들 범죄에서 갑자기 "'Same~" 분위기로 가시는 것인지..,

    둘째,그리고 역사의 교훈....., 이봐요~! 그 교훈을 당신이 진짜로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의 교훈이지.., 중국의 주류나 공산당의 수뇌부의 마인드는 아니지..., 차이나의 순수 통일왕조라고 할만한 한-송-명을 본다면, 한나라도 고조 때에 묵특선우에게 발린 다음에 찌그러져 있다가 무제가 힘좀 쓰니 흉노치고.., 고조선 쳤고..., 송나라는 조광윤이가 절도사 공포증 때문에 문치로 찌그러졌고 명나라도 그야말로 역사상 발군의 혼군들의 집함소였으면서 그 중에서도 드물게 2번을 황제를 해'잡수신' 영종같이 오이라트 치다가 포로로 잡힌적이 있듯이 능력이 안되었기 때문인지, 의지가 업었던 적이 있나...,

    수나라, 당나라처럼 선비족의 피가 섞인 국가나 원나라와 청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이 실력이 안되서 찌그러진 적은 있어도, 의지거 없어서 해외원정을 하지 않은 적이 어디있다고...,

    그리고 맹자의 '일치일란'이 사실싱의 중국의 역사관을 관통하는 코드인 것은 중궈가 대만독립세력과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것은 이미 한국에서도 알려진 사실인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차이나가 지들 영토라고 찍으면 그것을 땡인지...,

    동북공정 등의 역사왜곡이 단지 변경의 '영토다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ㅍㅅㅅ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당신보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의 글을 봤지만, 당신처럼 '단정적'인 말을 구사하는 사람은 처음본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때는 그렇게 단정적인 어구는 구사안하는데, 어쩌면 가장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다는(진짜 역사학도라면) 인물이 이렇게 단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여기에 와서 ㅆ ㅂ리던 환빠들도 답이 없었지만..., 차이나에서 역사 좀 배웠다고 차이나에 대한 현제 세계의 두려움을 그렇게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로 치부하는 능력은 대단함을 느낀다.

    아마도 당신은 모르는 사이에 차이나 애들이 그렇게 ㅆ ㅂ리는 '중화주의'적인 모델을 보이는데..., 나 이외의 모든 것은 오랑캐라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1.20 15:00 신고

      말을 논리적으로 안하시면 다음번에는 아예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 저 자신이 탈민족주의자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저에게는 별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사실에 근접하게 말할 뿐입니다.이 말을 아예 이해를 못하시는듯 하군요.

      1) 통계??
      1.1. 저의 덧글 어디에 통계라는 말이 있습니까? 다른 덧글에서 언급한 통계를 언급하면 다른 분들이 혼동을 합니다. 덧글도 일정한 원칙이 있습니다.

      1.2. 한국에서의 범죄발생율에서 대체 왜 중국의 통계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한국의 통계이며, 인터넷에서 "통계청"만 검색해도 갈 수 있는 곳에 직접 가셔서 범죄율을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1.3. 외국인 밀집지역의 범죄율은 매우 낮습니다. 아무리 신고의 문제를 생각하여도 낮습니다. 또한 저는 현직 경찰로 외국인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정보까지 총합을 한 것입니다.

      1.4. 통계나 현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정보도 아니고 그냥 님의 경험치만 말씀을 하시면 누가 님의 말을 신용할까요?

      1.5. 님이 한국내 조폭의 활동을 언급하여서 반대로 한국의 조폭도 국제적으로 활동한다고 비교를 해드린 것입니다. 둘다 똑같다는 정확한 논점입니다. 그럼 반대로 중국조폭은 바보로서 아무런 인맥이나 협력 없이 한국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왜 굳이 이 둘을 분리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조폭조직은 사실상 국적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협력이든 불사합니다. 비꼬아서 이야기하면 이쪽이야말로 이미 탈국가이군요. 핵심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법 조직의 시스템과 그 구성원은 어느 나라에서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국사회에 그런 문제가 있으니 외국인들은 다 문제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논리오류입니다.


      2. 중국은 기본적으로 침략지상주의?
      님 스스로가 밝혔던 것처럼 중국 왕조에서 한을 제외하면 그 뒤에서는 사실상의 침략정책은 없었습니다. 그 외의 왕조들도 침략정책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할 이유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조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2.1. 역사을 관통해보면...
      당시는 현재와는 달랐습니다.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이며, 농지가 가장 큰 목적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과거의 중화통일왕조를 벗어나면 사실상 쓸만한 농지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조공책봉이라는 유가의 허울을 둘러쓴 외교시스템으로 위협을 제거하는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하다못해서 님이 언급한 한무제도 결국은 그런 공격행위가 국내를 어지럽히게되었다고 "사과"을 하게 됩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위구그 지방에 대한 문제인데, 이것은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왕조나 황제의 의도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기본적으로는 직접적인 군사력 투입이 아닌 간접적인 외교방식이 선호되었습니다.

      2.2. 동북공정
      또한 동북공정 역시 기본적으로 영토다지기에 불과한것이 맞습니다. 대체 동북공정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자체가 궁금할 뿐입니다. 관련 논문이라도 한 편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동북공정을 포함한 변경공정이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시나요? 그냥 적당히 남들이 하는 이야기로 주워서 이야기하면 딱 님과 같은 수준의 덧글이 나온다고 봅니다.(아직도 제가 써놓은 간략 프로필을 보지 못하셨을까봐 이야기를 해드리면, 전 북방민족사전공으로 석사공부중입니다.)

      역사에 대해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실만을 취합정리하면 님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저도 완전한 객관적인 입장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 좀 하십시오.


      3. 의견과 내용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단정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범죄율이 낮은 부분이나 제 자신의 현재 사상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군요.

      그 다음으로 제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있는 상태로 이렇게 분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님이야 말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거도 없이 마냥 "내 말이 맞다"라고 하시고 있습니다.그것이야 말로 님이 비꼬는 "자기 중심주의"이며, 어떤 타인도 설득할 수 없는 바보짓입니다.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대체 님의 말 중에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적당히 얻어 들은 지식으로 이야기하지 말고 직접 책을 보시기 바라니다.

  5. 미친소리 2009.11.20 10:18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떠한 나라가 그러한 '사해동포주의'를 성공시켰는지 있다면 대어보시구려~!

    톨레랑스니 뭐니 후까시 잡던 프랑스 ㅅ ㄲ 들, 온갖 휴머니즘에 박애주의니 뭐니 나불거리지만 남태평양에서 핵실험 하는 놈들 주제에 평화가 어떻고를 나불거리는 것들이면서 거위에베 튜부넣고 간 살지우는 것들이, 남의 나라 멍멍이 먹는 것 같고 지랄하는 것들로써, 진정한 '된장국가'의 면면을 보여주는 애들인데,

    얘들이 알제리 이민부터 해서 노동력부족을 이유로 외국애들 이민들여와서 지금 어떠한 꼴 되었는지, 똘레랑스라고 폼만 잡으면 다 되나...,


    나치가 최대의 욕이라면서 인종주의를 금기시한다는(일단은 겉으로는) 독일애들도, 터키 애들 들여와서 걔들이 지금 독일 사회에서 세금이나 축내면서 범죄율 증가에 대단한 업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떻할까나...

    ㅍㅅㅅㅅ, 다문화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시네, 차이나가 티베트 점령하고 한족 이주시키면서 한 것이 다문화일까 위구르는 또 어떻고.., 글자 그대로 '식민지' 백성을 이주시키는 땅이 필요한 것이지, 늘어나는 한족의 새로운 땅을 말이지...,

    다민족국가는 들어봤어도 '다문화'국가가 존재했다는 소리는 처음듯네~! 과연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도깨비 방망이로 태어나던 것일까나.., ㅋㅋㅋㅋ

    글쎄, 글쓴이 당신의 펜질 몇 번으로 그것이 가능할까나,...., 인종용합로인 남미를 지탱하는 것은 가톨릭문화와 축구고, 미국은 프로테스탄트와 애국심이라는 신기루인 것이고,


    중궈가 요즘 미는 것은 黃帝라는 신화 속의 인물이지.., 중궈가 다민족국가 일수는 있지마 다문화 국가일까나, 위구르 애들이나 티벳트 애들이 90%가 넘는 한족애들 한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미래 한반도에 그러한 일이 안 일어난닥 보장할 만한 위치나 능력이 글쓴이 당신에게 있을지 모르겠네~! ㅍㅅ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1.20 15:09 신고

      사해동포주의는 지금까지 사실상 성공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다만 그 원형이 될 수 있는 이념들과 몇몇 극소수의 생각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저의 몇번의 펜질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앞으로 계속 천천히 추구해야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처럼 만사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자비"나 예수의 "사랑" 혹은 공자의 "인"의 사상이 기본적으로 틀립니까? 그 모두가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될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것들이 지금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님의 경우는 지금 현재로서는 완전히 불가능하니 자비고 사랑이고 그냥 이기적으로 살자라는 말씀밖에 안됩니다. 그게 옳은 말입니까?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를 계속 해야되나요??


      중국에서 있는 말은 황제가 아닌 염황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일단 사실을 제대로 아시고요. 해당 사실은 현재 중국내의 불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잘못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겁니다. 굳이 할말도 없군요.


      하나만 덧 붙이자면 본 블로그는 중국정부에 의해서 차단이 되어있는 곳입니다.(티스토리가 차단되기 전에 이미 차단되었으면 제가 티스토리로 이사오자마자 티스토리도 차단되었습니다.) 또한 전 직접 티벳인과 위구르인들을 접하며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고 몇몇 사항은 블로그를 통해 올려서 많은 분들이 봐주시기도 했습니다. 님같은 분의 언급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환기시켜주는 것은 고마운 면이지만, 제대로 그들을 알지도 못하고, 알 생각도 없이 자신의 이익이나 스스로의 생각을 위해서 그들을 팔지 마십시오. 님의 생각보다 중국내 많은 티벳인들이 현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것은 알아서 제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 abrasaurus 2014.01.13 15:39

      뭐야, 이 '미친소리'는......? 보고 있으니까 되게 건방지네. 아, 바로바로님을 애기하는 것은 아니고요.

  6. 미친소리 2009.11.22 15:50

    이건 뭐지 ㅍㅎㅎㅎ 보니... 쭉 댓글 보니.., 까러 오는 환빠애들도 문제지만.., 그 쪽 만만치 않게 '차이나틱'하게 노네~!!! ㅍㅅㅅ....,

    그러니까.., 통계 문제는..., 당신이 역사학도(학자도 아니고 학도.., 그것도 중국에서 배웠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고 본다치고)로서 무슨 신도 아니고... 신고비율까지 당신이 감안한다는 것이지..,

    한국에서 특히 여자가 강간당할때 몇 %가 신고하는지 그것의 '통계'자체가 이미 없고..., 더구나 그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답은 말할 것도 없지..., 더구나 범죄율이라는 것은 주민등록 말소자를 뺀 한국인은 정확한 전체 수에서 %를 낼 수 있지만...,


    '피가 섞여야 한다고' 이죽이던 어떤 대통령의 '춤꾼'법무부 장관이 날인폐지해서 도대체 불체자에 대한 정보는 추정일 뿐이지...,

    즉, 정해진 한국인에서 밝혀진 범죄율과 추정치가 100만인지, 200만인지도 모르는 외국인의 범죄율..., 더구나 지문 등의 신상정보가 전혀 없는 외국애들에 대한 통계가 과연 의미가 있다고 보는지...,

    그것이 '메이드 인 차이나식'의 통계라면 할말은 없고..., ㅍㅅㅅ..., 대개 친중쪽이나 친북쪽이 미국의 군수산업을 비판했을때.., 전쟁부양론을 드는데..., 과연 중국이라고 예외일지...,

    중국도 1가구1자녀 정책을 시행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앉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일단은 개인의 근본적인 욕구인 자녀를 통제한다는.., 또한 일부 남아선호지역에서의 여아살해로 인한 여초.., 나아가서는

    고령화 사회..., 여러 문제가 앞으로 산더미처럼 기다릴텐데..., 과연 차이나가 그것을 성숙하게 풀 문제의식이나 능력이 있느냐가 문제지..., 물론

    한국이나 일본도 같은 문제를 앉고 있지만.., 솔직히 일부 극우파가 그것을 의지로 가지고 있어도..., 이미 개인주의와 자유의식이 뼈속까지 박힌 그들이 다시 군국주의로 들어가거나 한국이 군사국가가 될 확률은 없지..., 아니 설령 의지가 있다고 해도 그 때쯤 차이나의 힘을 생각한다면..., 될 일이 아니고..,

    하지만.., 언젠가는 차이나의 고도성장도 멈춘다면.., 지금이야 한국의 고도성장처럼 내일의 희망고문으로 인민들을 일끌지만,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거기에 대한 문제는 아무리 당신이나 당신의 스승인 차이니즈 교수들이 진정으로 평화적인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고 해도, 과연 그것을 시행할만한 힘이 있을지가 문제지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11.22 17:49 신고

      이제 상대 안하련다. 니는 떠들어라.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한 말을 하는지 스스로 언제인가는 깨닭게 될 거야. 쯔쯔...

      상대방의 단점만 보이고, 자신의 단점은 안보이지? 통계청에 있는 수치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그게 내 전공이랑 먼 상관이냐? 통계가 의미가 없다고? 신고기피도 감안하는 것이 통계라는 것이다. 통계관련 공부나 하고 오던지. 니가 말한 문제는 니가 지적하기 전에 몇 년전부터 다 하던 말이다. 물론 당신처럼 논리적이지도 않고 근거가 틀린 바보짓이 아니라, 명확한 근거로 이야기했단다. 쯔쯔...

      세상에 너 뿐인줄 알지? 본인은 따지자면 지중파일뿐, 친중도 반중도 아니란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너 같이 어설프게 인터넷에서나 주워먹은 지식으로는 이해 못할거다. 정신 차려라. 응??

  7. 미친소리 2009.11.22 16:35

    그리고 이보쇼~!!! 당신이 역사쪽으로 전공을 했다고 하니.... 나름 '아카데믹'적으로는 우월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나도 역사책을 본 사람으로써 말하는 것이오~!

    내가 너무 당신의 '사랑'이신 차이나를 깐 것 같지만, 사실상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고, 한때 '잠자는 사자'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가 '잠자는 돼지'가 되었든 차이나가 깨어나는 것이 어쩌면 역사의 순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갑자기 세계의 이른바 '성인'들은 왜 꺼내시는지..., 솔직히 그들 자신은 세계를 '구원'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들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것은 '핏자국'이었다는 것을 아시는지..,

    예수..., 신학적으로는 모르지만..., 역사적으로는 엄청난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고, 사실상 지금의 이른바 '기독교'의 교리이 대부분은 사도바울 등의 후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기독교'의 공인이나 로마에서의 국교채택도 모두가 정치가인 황제의
    정파적 이익에 관한 것이었소~!

    그리고 기 이후의 가톨릭이 '독과점'으로 유럽에서 마녀사냥, 이교도탄압이니, 르네상스의 퇴폐교황까지...., 어떠한 궤적을 보여왔는데.., ㅍㅅㅅㅅ


    이슬람교 자체는 종교자체가 정치권력과 합해진 형태이고..., 불교도 결국에는 왕권강화로 이어가면서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공자도 마찬가지....,

    그러니깐, 시쳇말로 '공자말씀'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러한 '거대한 그림' 얼마나 공염불인지는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한 것을 다시 재탕하라는 말인지...,

    그리고 '자신의 이익'이니, 뭐니 하면서 상당히 '폼'잡는데.., 그렇게 '거대한 말'을 하는 자들이 가장 '거대한 구라'도 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결국 내 이익과 내 삶과 내 가족을 제대로 위한 다음에 큰 민족이고.., 세계고 말하는 것이지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하는 인간치고...., 역사에 ' 발톱자국' 안남기는 인간을 못봤는데...,


    이봐요~!!! 당신이 여기서 환빠들 까거나, 중국 역사의 '빛남'을 말하는 것은 내가 알바가 아니고, 그랬다면 내가 여기 글도 안남겼을 것인데..,

    당신이 동북아 공동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거기에 한국이 들어가기에 한국에 사는 인간으로서 그 이해관계 때문에 한 소리를 한 것이요~!

    나도 어차피 고령화사회의 한국이 무조건 순혈주의나 외국인 추방이 될 것이라고 기대는 안하고.., 그것을 지지할 생각은 없지만..., 당신같은 친 외국주의자나 한국의 좌파들이 무조건적인 인도주의를 나부리면서 불체자 단속도 하지말고 무조건적인 외국이 유입하라는 소리에 오히려 제노포비아의 증가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좀 아시고...,


    결론은 내가 환빠도 아니고.., 당신이 중국쪽 역사 전공자라는데(뭐, 속는셈 치고 그렇다고 치고) 그 쪽과 역사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역성들고 싶은 이 나라의 역사도 아닌데...,

    만약에 이루어진다면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이 올 문제를 당신이 썼기에 글을 남긴 것 뿐이지..,

    그리고 단순히 역사 얘기가 아니라.., 동북아 공동체니 뭐니 이러한 '거대담론'을 아무리 개인적인 블러그라지만 얘기한다면..., 다른 어떠한 통계자료부터( 그것은 차이나 쪽 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등의 이해당사국의 책임있는 자료가 되어야겠지) 내놓고 말을 꺼내놓는 것이 순서가 아닐지..,

    역사전공자로서 아마추어 애들 제목으로 꼬여서 글로까는 것은 좋은데..., 동북아 공동체라는 말은 역사뿐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정치 등 온갖 요소가 다 합해할 것인데.., 그리고

    수천년간 다른 문화체제에 살던 사람들에게 말그대로 어떠한 공통적인 어떠한 기준규범을 만드는 일인데...,

    그것이 예수, 석가, 공자 찾으면 다 되는 일인지.., 이봐요 어차피 자칭 선진국들의 조합이라면서, 역겹지만 인권이니 뭐니 갖은 폼 잡는 유럽도 이번에 EU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온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1차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은 성속의 분리지만.., 어찌되었든 '기독교문명'과 인도유럽어족이라는 큰 눈으로 본 인종적인 동질성과 알파벳 문화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또한 여기까지 오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라는 것을 더구나..., 이번에 벨기에 총리가 유럽대통령이 된 것은 프랑스와 독일이 영국이라는 라이벌의 전총리 출신인 블레어를 견제하기 위해서 내민 카드라는 것을....,

    그에 반해서 한자문명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차이나는 간자체이고, 한국은 번자체.., 일본도 약자체라는 느슨한 연대.., 그마저도 이제 인터넷 시대에 한국은 한글전용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태에..,

    유럽처럼 역사적인 '자존심'문제를 건드림을 넘어설만한 공통주제인 것, 이를테면 '기독교'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용의 아들이라는 스스로 일컫는 차이나와 단군의 자손이라는 한국과 역시 일본도 나름의 문화가 있고...,

    경제적인 문제에서도 차이나라는 경제단위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을 두려워하는 한국과 일본...,


    뭐 하나 될만한 요소가 뭐가 있다는 것인지..., 유럽도 수십년 걸린 것을 이렇게 더욱 이해관계가 첨예한 동북아에서 과연 될 수나 있을지...,


    당신이 진정으로 이러한 의견을 책임있게 내려고 한다면 열심히 공부하셔서 최소한 경제나 사회문제에 어느 정도 책임있는 자리에 오를 정도의 위치에 오른 다음에 말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어차피 이 블러그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올것도 아니고.., 야마추어들 재미로 들리면 '제목'으로 낚든가 해서 까는 것은 재미느끼는 스타일이라면 할말은 없고...,



    어차피 지금 당신이 말한다고 해도 허공에 발길짓 하는 소리겠지만...., 동북아 공동체니 뭐니 하는 그런 소리 하려면 프로필 상에 보인 당신 사진 보면 너무 '비린내'나는 소리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