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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연재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하루에 한편의 작품을 업뎃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못할지도 모릅니다.-_-;; 여러분들의 당근과 채찍을 기대하겠습니다.)
2. 내용은 한국어를 기본으로 하고, 클릭하면 중국어로 변하도록 합니다.
(이것때문에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갑니다. 솔직히 귀찮군요.-0-;;)
3.번역을 느낌을 살리려 최대한 직역을 하겠습니다. 조금 이상한 곳이 있어도 직역이니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너무 이상하다고 판단되면 의역방법을 사용하겠습니다.
(...엉터리 번역임을 감추려는 얄팍한 수작일듯...-_)
4. 언제든지 위의 작품의 정식출판 소식이 들리는 즉시! 연재 중단합니다.
(...그러나 과연 출판될 수나 있을런지 의심되긴 합니다.)
주더용의 작품은 현재 중국의 20대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일본만화에 점령당한 중국 만화시장에서 살아남아 있는 중화권 만화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4칸 만화라는 고전적인 구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중화권의 현실에 대한 위트와 유머가 넘쳐 흐른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涩女郎(독설여성) 酷流族(신세대) 酷流CITY(신세대 도시) 双响炮(쌍대포) 등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쌍대포를 좋아합니다. 유부들의 세계에 대한 위트가 넘친답니다. 하지만 순서대로 나가는 것이 좋을 듯 해서 일단은 독설여성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쌍대포는 맨 마지막이군요. 후훗... 쌍대포 번역작업할때 쯤이면 저도 유부의 세계에 있을까요? ^^::
(참고로 위의 작품을 하루에 하나를 연재한다고 할 시에도 독설여성은 180일, 신세대 200일, 신세대 도시는 240일이 걸린답니다. 그런데 제가 하루에 하나를 근 2년의 시간동안 계속 할 수 있을런지는 저도 의심스럽답니다.-_- 그래서 위의 시간의 2배인 4년.그럼 유부의 세계도 불가능한것은 아닐지도...)
독설여성(涩女郎) -- 그녀들만의 세계로 빠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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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 인도 간다고 작업 안하는것은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열심히 작업중에 있습니다. 현재 10편을 완성했군요. 최소 30편은 보관해 두어야 할텐데 말이죠. 사실 번역하는 시간 자체는 얼마 안 걸립니다. 문제는 그래픽 작업이랍니다. 귀찮고 짜증나고...괴롭습니다. 번역만 하고 그래픽은 다른 분이 담당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ㅠㅠ (솔직히 말하면 10편하는데 걸린 시간이 1시간입니다. 그러고 귀찮다고 이러는...-_)
본지의 무한의 원홍엔기자가 1월 10일날 보내온 기사에서 중국의 고등교육의 중심이 과정을 중심으로한 모델에서 내용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변해간다고 말하였다. 현재 교육부직속의 고등학교교육자문위원회의 15차전체회의에서 교육부 부장 조우치는 고등교육의 중심을 이동하는 사상변화를 말하였다.
目前,我国高等教育已步入大众化发展阶段,毛入学率达19%。
현재 중국의 고등교육은 이미 대중화발전단계로 넘어갔으며, 이미 입학률이 19%에 이른다. (참고로 중국에서 고등교육은 대학교 이상의 교육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고등학교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작년,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의 숫자가 2000만명에 달하여서 세계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였다. 조치가 말하기를, 고등교육의 빠른 발전으로 인민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2배가 증가하였으며, 고등교육의 규모도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실질적으로 증명되기를, 수량의 증가 없이는 현재의 고등교육의 대중화국면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질양을 높이자는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로 고등교육은 발전의 흐름에 따라서 계속적인 규모확대와 동시에, 핵심을 교육질양의 상승으로 이동하여야하며, 교육규모와 질량 구조와 효과를 모두 생각하여야 할것이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각지의 고등교육기관은 엄중한 기준에 따라서 학생을 선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중앙와 각성의 교육기관부문은 효과적인 정책으로 학생선출과 교육투자의 두가지 중점을 훌륭하게 처리하여 고등교육발전에 훌륭한 기폭제가 될 것이다.
《人民日报》 (2005年01月11日 第一版)
<인민일보> (2005년 01월 11일)
전국민의 딸랑 19%가 대학교를 다니는데, 그 규모가 세계 1위가 되어버리는군요. 한국은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들 생각하죠. 대학은 당연하게 졸업하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한국인들의 생각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겠죠. 더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19%가 고등교육으로, 물론 고등교육이라고 무조건 대학교 졸업도 아니고, 대학과 유사한 기관에서 수료증을 얻은 것도 고등교육에 포함시키지만, 규모에서 세계 1위라니......맨날 있는건 사람 숫자밖에 없지라고 비꼬는 것도 한계군요. 그 무식한 숫자로 인하여 이런 일도 가능한가 봅니다.
한국의 교육을 생각하면 그리 마음이 편하지도 않는군요. 대학교는 모르겠지만, 제가 경험했던 고등학교의 현실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옆에서 인구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에 뭐가 있습니까? 자원이 있습니까? 인구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돈이 많습니까? 좆도 없는 나라입니다. 그나마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 소 팔아서라도 자식 공부시키는 그 공부에 대한 지독한 집착이었건만, 그것도 이상하게 변질되어버린 현실이군요. 다른건 다 떠나서 비율로 따지면 세계 최고인 한국의 대학이 그 내실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군요.
막말로 나! 세계 17위하는 대학에 다닌다!
야! 잘난 서울대! 이딴 순위에 연연하는 한심한 넘이라고 불러도 좋다.
어이~ 거기 카이스트랑 포항대! 나를 도피 유학생이라고 불러도 좋다.
한국 대학이 1등하는 모습 보면 안되겠냐???
지금 현재 중국에서는 반분열법으로 인하여 정신이 없다. 여기서 반분열법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강조해도 모자라지만, 한국의 바로 옆에 있는 중국의 발걸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용어정리를 하겠다.
지금부터 중국이라고 지칠하는 곳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타이완이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가 대만이라고 부르는 독.립.국.가.이다.(대만이 왜 독립국가인지는 나중에 따로 포스트를 올리도록 하겠다.)
일단 반분열법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하여야하겠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이 자신들이 우기는 자기 나라에 대한 모든 분열행위를 법으로 강제적으로 막겠다는 소리다. 웃기고 자빠지고 있다고 외쳐주자.
구체적인 실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금 현재 타이완은 독립국이다. 자기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고 있고 그 국민이 그것에 찬성한다면 그 나라는 독립국가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여기서 주권이란 "행정권""사법권""외교권"등의 기본적인 국가주권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은 타이완을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타이완에서 타이완 독립을 외치는 모든 정치가와 시민들은 반분열법의 법죄자다.
우리는 여기서 웃기는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타이완 자체가 독립국인데 완전히 다른 나라인 중국에서 다른 나라의 국민이 자신의 영토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범죄자로 만들고 재판까지 해버리는 것이다.
몸으로 느낄 수 있게 예를 들자면, 일본이 "독도법"을 만들어서 독도는 일본땅임으로 독도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은 밀입국 범죄자라고 지들 맘대로 정하는 것이다. 열받는가?! 지금 타이완사람들이 열받고 있는 것도 비스무리하다.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 평소에 알고 지내는 DJ님에게 타이완의 한 국민으로서의 감삼을 들어볼까 하다가 나중으로 그 기회를 미루겠다.
대충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것 같은가?!
근데 이 법의 문제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적용범위가 홍콩과 마카오에도 미친다. 엉?! 홍콩하고 마카오는 이미 중국에 포함되었잖아! 갑자기 그게 뭔 헛소리야?! 라고 외치기 전에 잠시 이야기를 들어달라. 어련히 알아서 설명 안할까!!!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어서 지금 현재로서는 중국의 영토에 귀속되어있다. 하지만 중국이 시행하고 있는 것은 "일국양제", 곧 한나라에 두가지 제도라는 방침 속에서 귀속되어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록 홍콩은 중국 내부의 한 지방이지만, 외교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반분열법이 떠억~ 나타나부렸네~
지금 중국고위 정치층에서도 이 법은 절.대. 홍콩과 마카오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대만을 대상으로 한 법이라고 무지막지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법이 홍콩과 마카오쪽에서 얼마나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오는지 감이 오실것이다. 원래 문제 없으면 저런 강조도 하지 않는다.
이제 지금 당장은 관계가 없겠지만 미래에 이 법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예언을 해보겠다. 본인 타로카드, 집시카드로 대충 장난치기는 하지만 무당은 아니다. 그래도 뻔히 다음에 나올 일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법은 곧 확장되어서 한국의 국보법과 비스무리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그 적용은 한국과 다르지만 말이다. 중국넘들은 치사하게 국보법 만들어서 정치싸움같은거 할 넘들은 아니다. 다만, 현재 중국땅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딸랑 20%도 안되는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을 철처하게 파괴시킬 뿐이다. 그리고 그 소수민족중에는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될 것인가?
전에 어느 대학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2030년에는 수도가 만주에 있다는 대답이 나올것으로 기억한다. 나쁠 것은 없다. 만약 지금 현재 조선족자치구로 설정되어있는 부분이 한국의 영토가 된다면, 황금의 삼각무역지대가 되는 것은 꿈만도 아니다. 이해 안된다면 지금 세계지도까지는 아니어도 아시아 지도만 펼쳐봐도 알 것이다. 침략 당하기 좋은 지리적 환경은 다시 말하면 교통이 편리해서 중계무역하기도 좋은 곳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반분열법에 대해서 정리좀 할려고 적어놓은 것이다. 참고로 이 법은 지금 현재 의회(전국인민대회)에 상정되어있다. 거의 통과될 것 같다. 아직 이 법의 자세한 법조항은 안 나와있는데 그것이 나오면 제.대.로. 디벼주겠다. 아직 정확한 법조항 없이 무엇을 말하기가 힘들다. 이해해 주기 바란다.
뱀다리 : 사실 시험 하나 남았는데, 그 시험이란게--;;
---어느 중국학생의 질문
[求助]向李老师和助教老师问一下
最后的考试,如果现在想复习的话能不能给指条明路,实在是不知道老师想要怎么整啊?
难道我们这三天就混过去吗?怎么说您也得给点提示啊!
[질문]이선생님과 조교선생님에게 질문드립니다.
마지막 시험, 복습을 하고 싶은 어ㅤㄷㅓㅎ게 해야할까요? 전 선생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설마 저희들은 3일을 그냥 놀고 먹어야되나요? 선생님은 어떻게 일언반구도 없으싶니까?
-- 선생님의 답
如果沒有其他考試的話,就可以好好去玩啦。
沒什麽好準備的
만약 다른 시험 없으면 그냥 열심히 놀아요.
따로 뭐 준비할것도 없답니다.
최고인민법원이 인민배심원 제도의 출범 계획을 확정하였다. 내년 1월부터 2월사이에, 인민배심원의 1차 선발이 있을 예정이고, 3월과 4월 사이에 선발된 인민배심원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며, 현급의 인민대회 상무위원회의 임명이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5월 1일부터 인민배심원 제도가 출벌할 예정이다.
소식에 의하면, 최고인민법원은 이미 인민배심원 지도 모임을 만들었으면, 인민배심원 제도를 위한 모든 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다. 각각의 법원마다 문화소질이 높고, 특히 어느정도의 법률적 지식이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후보 선출작업에 들어갔다. 동시에 후보들에 대한 정치사상 및 도덕소양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으며, 특히 "품행과 공정"을 최고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최고인민법원부원장 지앙씽차앙은 12월 19일에 인민배심원의 독립적인 권리행사를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한쪽으로는 직업 법관은 반드시 인민배심원의 심판권을 존중하며, 심판활동중, 법관은 인민배신원들에게 법률적인 조언을 할 수 있으나, 법률을 이용해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암시를 할 수는 없다. 또한, 인민패심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 사건관계자와 만날 수 없고, 심판결과를 절대 공개하지 않음으로서 인민배심원 사건 심리의 공정성을 보장한다. 동시에 인민배심원관리 체계에 대한 충분한 개혁을 통하여 엄격한 관리를 통해, 인민배신원제도의 효과를 극대화 할 것이다.
본인은 노상 방료 몇 번하고 무단 횡단 몇번을 제외하면 그다지 법을 어긴적이 없기에-0-;; 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래서 여친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래도 법학과가 아니겠는가?!
바로 : 이게 대체 뭐냐 -_?
여친님 : 예전에는 법관 혼자서 그런 판결을 내렸어요. 인간인 이상은 실수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막강한 권력이 독점됨으로서 가끔은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배심원 제도가 시작되면 법원, 법관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판결을 내릴 수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란, 예전에는 일부 권력자들이었는데, 지금은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선출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법치의식이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 한국에서는 어떻까?
여친님 : 한국에서는 없어요 지금.
바로 : 아니아니...한국에서 도입되면 괜찮을까?
여친님 : 음..어떻게 될까 한국에 도입이 되면...중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이미 공개재판이기 때문에 그만큼 매스컴의 영향이나 일반 사람들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굳이 도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친님에게는 나중에 따로 맛난거 사줄거다-0-;;
뭐...그렇단다. 여친님도 대학생일 뿐인데 얼마나 알겠는가?! 법에 대해서 조금 아시는 분이 있으면 중국이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와 그 예상에 대해서 분석해주시겠지요^^
뱀한다리 : 오늘 북경대에 정동영장관이 와서 강좌를 한다는 군요. 10시 30분에 국제관계학원에서 한답니다. 어차피 수업도 없고, 할일도 없으니-0-;; 한번 놀러 갔다 와야겠습니다. (......교실에 모두 한국인으로 가득차 있는것은 아니겠지?! -0-;; )
요즘 중국쪽 싸이트들에서 "펌"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글입니다. 내용은 마오저동(모택동)의 집사가 적은 생전의 마오저동에 대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의심이 되며, 정확한 고증을 해보기 전에는 믿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글이 중국쪽 싸이트들에서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 번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중국 원문을 맨 처음 적겠습니다. 그냥 중국어로만 읽으실 분을 위하여 맨 아래쪽에 WORD문서를 첨부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어 번역을 적겠습니다. 당시 중국사회에서 사용되는 특수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관계로 수 많은 막가파 의역들이 등장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맨 마지막으로 회색으로 된 글자가 제가 주석을 단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환경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글을 이해하기가 힘든 관계로 관련 설명을 달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벌구이만 했습니다. 재벌구이를 해야지 매끄러운 문장이 되겠지만 저의 나태함은 재벌구이까지 할 정도는 안되는군요. 뜻은 전달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뜻만 전달 되면 되지 않을까요? (후훗-_ 이게 인생이여)
길이가 장난이 아닌 길이인지라. more과 less를 사용하겠습니다.
more를 살포시 눌러주시면 됩니다^^
저는 1964년부터 1976년 주석이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계속 주석님의 집에서 살림을 책임졌습니다. 주석님의 집의 가정살림을 챙기는 것은 쉽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석님은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저에게 어떻게 지출했냐고 물어보시지도 않으시죠. 만약 가정살림을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면, 돈을 써야 되는 곳에는 반드시 돈을 써야 된다는 것이지요. 주석님의 밥이나 연료 혹은 휴지등을 살때는 반드시 돈을 써야하며, 1원이라도 덜 내면 안되었다. 주석님이 밖에서 한잔의 차를 마셔도 저는 반드시 가서 계산을 해야했고, 이것은 대회당1)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석님의 직봉은 원래 610원이었고, 나중에는 전래에 없던 곤란을 겪으셨다.2)
1)인민대회당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거의 모든 정치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의 국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 610원이면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9만원정도 됩니다. 그런데 중국의 물가를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 뿐만 아니라 60~70년대에 600원이면 상당한 거액이었습니다. 현재 물가대비로 계산하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대충 몇 천만원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석님의 몇 가지 큰 지출이 있습니다. 식비, 100원정도이며, 그가 다른 사람를 대신해서 내는 돈(이른바 한턱 쏘는 돈)를 포함한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인사, 주석의 민주인사친구들이 아주 많이 있다. 황베이엔, 장슬쩐등에게 쏘는 비용은 모두 주석님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그 밖에 지출로는 담뱃값으로 매월 100원정도가 들어간다. 그리고 몇 십원의 차값이 있다. 그 당시 이민과 이나1)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 비용은 모두 제가 지불하였습니다. 원래 한명의 아이는 한달에 15원이었는데 물가 상승으로 인하여 30원이되었습니다. 자금이 매우 부족하여 이번 달에 돈을 많이 쓰면, 다음달 분을 가불받아야했다. 지앙칭은 리운루라는 누나가 있었는데 역시 30원를 지불하였다. 보통은 주석님이 지출하였고, 가끔 그녀가 주석님을 조금 도와주었다.
또다른 지출은 손님들이 오셨을 때, 그 분들의 경제보조금를 드리거나 병문안을 오셨다면, 교통비, 밥값등을 조금씩 드렸다. 그래서 자금 사정이 안좋았다. 집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돈이 모자라면 어떻게 해야될까? 별 수 없이 원고료에서 뽑아와야한다.1) 주석의 원고료는 스스로 관리하셨고, 내가 필요할 때는 반드시 보고를 한 뒤, 나중에 영수증을 올려서 한푼 한푼을 정확하게 계산한 뒤에야 주석님이 서명을 하셨다. 그때야 나는 중앙특별회경리부로 가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1)마오저동은 수 많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글을 잘 쓴다 못 쓴다는 떠나서 일단 정치가이자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책은 당연히 어느 정도의 매출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노무현이 책을 낸다면 그 내용의 훌륭함을 떠나서 베스트셀러수준의 매출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마오저동의 월급이 404.80원이었을지는 몰라도, 원고료같은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부유했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석님 집을 관리한 것이 12년이었다. 이 12년동안 주석은 책을 사는 돈으로 8000원을 지출하였다. 그래서 내 수중의 돈은 언제나 아슬 아슬 하였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석의 식사였다. 어르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였다. 주석은 한번도 간식을 드셔본 적이 없고, 귀한 음식도 드셔본 적이 없다. 오직 하루에 3끼만을 드실 뿐이었다. 그의 일생의 식사에서 그가 인민의 영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조그마한 식당이 있었다.1) 그는 그의 가족에게 말하였는데 “조그마한 식당은 인민이 나에게 안배한 것이니, 너희들에게는 이용할 권리가 없다” 그의 딸과 누나는 모두 우리와 같이 중난하이2)의 식당에서 줄을 서서 밥을 먹었다.3) 그들의 가족은 일주일에 한번 한자리에서 식사를 했는데 토요일 저녁이었다. 주석의 자식들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석은 그들에게 언제나 엄격한 요구를 하였다. 매번 밥을 먹을 때, 사회에서 들은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려주어야했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말을 해야했다. 만약 주석에게 무슨 생각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토론을 해야하였고, 곧 자식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서 다음 주에 이야기하라고 하였다. 이 저녁에 밥을 먹는 시간은 비교적 길었다.
1) 국가가 주석에게 따로 준비해준 식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따로 식당이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중국과 같은 경우 인민평등을 강력히 주장하므로 저것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조.그.마.한. 주방이라고 한 것입니다.
2)중난하이는 중국정치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천안문의 서쪽에 있으며 그 곳에는 공산당의 최고간부들이 밀집되어 사무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3) 전쟁영화필림이나 과거 소련의 기록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밥표를 내고 식사를 가지고 가는 장면이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 역시 똑같이 생각하시면 됩니다. 과거 중국은 (현재도 겉모양은 그렇지만)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배급제였죠. 고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석의 식사는 4가지 반찬에 1가지 탕이었다. 육류요리 하나와 생선은 필수였고, 한가지의 반육류 반야채요리와 야채요리로 이루어져있었다. 주석은 두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식사하기 어려웠고, 잠들기 어려웠다. 만약 그를 부르지 않으면 그는 문건을 다 읽기 전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 주석님, 식사하십시오””잠시만…”그는 당신과 거래를 할 것이다 “잠시만 더 기다려줘” 당신은 주석의 사고를 방해할 수 없고, 기다림은 얼마나 오래될지 모른다. 보통 반찬이 모두 식고 그렇다고 다시 데우지도 못한다. 나중에 우리는 특별히 자기를 맞추었다. 그릇과 접시에 뚜껑을 만들어서 보온효과와 위생효과를 주었다. 나중에 어떤 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주석이 전용으로 자기그릇을 쓴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그런 일이 아니었다.1) 우리가 그 그릇을 만들 때, 주석의 밥그릇을 가볍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는 매일 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손이 매우 피곤하기 때문이다. 주석이 원래 쓰던 그릇은 모두 경덕전에서 생산된 것이다. 한번은 그가 “ 우리 후남에는 리링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생산되는 자기그릇이 참 좋아” 우리는 빨리 리링의 자기그릇을 주문하였다. 그들은 최고의 장인으로 하여금 만들게 했고, 밥그릇의 중량은 124커였다. 매우 가볍고 얇았으며 투명하였다. 안과 밖에는 꽃이 있었는데 빨간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주석이 처음 이 그릇을 잡았을 때, 매우 기뻐하며”좋아!” 향수로구나! 주석은 그의 고향을 매우 사랑하였다. 주석의 식사는 국내외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매일 커다란 참고서를 살피며, 만약 큰일이 있다면 야채를 위주로 만들었다. 이 때는 주석은 밥 자체를 안 드실려고 했는데 육류라면 더욱 안되었기 때문이다.
1)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과거 대통령들이 특별히 쓰는 그릇들을 가지고 사치가 아니냐? 등의 말들이 있었습니다. 중국 역시 비슷한 일이 있었던 지라 그것에 대한 해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석은 생선머리부분을 좋아했고, 그 밖에 고기찌꺼기, 닭찌꺼기를 좋아했다. 만약 중난하이에서 큰 고기를 잡으면 우리를 곧장 가서 구매한뒤 머리부분만 짤라내고 나머지 부분은 식당에 가서 되팔면서 한푼의 돈도 낭비하지 못하게 관리하였다. 주석은 조그만 물고기와 조그마한 새우를 먹는 것을 좋아하였다. 고기껍질도 좋아하여서, 그의 식단은 철분을 보충하기에 매우 않좋았고 식사도 매우 간단하였다. 가끔씩 우리는 “주석님 반찬을 늘리시는게 어떻까요?”라고 말하면 “내가 먹는 것은 이미 충분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나 마오저동이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는데 만약 국가의 돈을 쓴다면 부장이나 성장이나 춘장들도 국가의 공금을 쓸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정치와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한잔의 차도 꽁짜로 먹은 적이 없으며 먹는 것이나 쓰는 것이다 모두 가격에 따라 돈을 지불하였다. 어려운 시기는 어떻게 넘길까? 국민들과 같다. 누가 주석님의 다리가 부울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한번은 고기를 조금 넣었는데, 주석은 매우 화를 내었다. 주석이 가지고 있는 물건표, 옷표, 석유표등은 북경시민이 분배받는 량과 주석이 분배받는 량이 같았다. 그의 양식정량은 17근이었고 만약 남는 것이 있다면 자식들에게 주었다. 어떻게 고난의 시가를 견대낼 수 있을것이가? 주석님은 이렇게 고난의 시기를 흘려보냈고, 이것이 진정한 인민의 영도자인 것이다.1)
1) ......따로 주석을 달것은 없지만, 뭔가 정치조작 혹은 정치선전의 냄새가 확~확~ 풍기는군요.
주석에게 오는 선물은 매우 많았다. 식용이든 생활품이든 모두 있었다. 이런 선물은 반드시 그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매일 저녁 산보를 나아가 바람을 쐬고 오는 동안 우리는 이런 선물들은 내어놓고 수량을 적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수량이 많은 식용물품들은 식당으로 보내었고 보낸이에게 돈으로 돌려보내었다. 수량이 적으면 기사들에게 주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었다. 한번도 이민이나 이나가 이것을 받았다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녹음기, 손목시계, 금손목시계, 덴마크산, 로마산등을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그 밖에 금은장신구는 누가 보아도 아름다웠다. 그의 자식들도 와서 구경하고는 했다. 하지만 절대로 가지지 않고 중요한 선물은 반드시 중난하이선물고로 보내었다. 선물을 쓸 필요가 있다면 반드시 허가증을 받아야했다.
한가지 선물대여에 대한 일을 말해보자면, 1945년이전에 주석은 시계가 없었다. 충칭단판1)시기때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꾸어모루어가 주석이 시계가 없는 것을 보고 주석이 단판시간을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이 차고 다니던 것을 주석에게 주었다. 이 시계는 1969년까지 사용하였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려지는 것이었다. 하루는 주석이 말씀하셨다. “이 시계를 수리가 필요한거 같아” 나는 왕똥씽에게 시계를 빌려오라고 하였고 주석이 임시로 이용하게 하였다. 왕똥싱은 선물창고중에서 금시계를 가지고 왔다. 주석님이 말씀하시기를 “물건을 빌리려면 반드시 대여증이 필요하다. 시계 수리가 끝나면 다시 돌려주고 와라” 이 빌린 시계는 2달간 사용된 뒤에 다시 회수되었다.
1) 충칭단판은 조그만 중국근대사에 관심이 있으면 아실거라고 생각되지만, 관심 없는 분도 많기에 ^^::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공산당과 국민당은 내전을 멈추고 공동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자는 협약을 맺은 사건이었습니다
주석의 창고안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그가 소련을 갔을 때의 모자와 외투다. 그 당시 그것들은 매우 귀중한 것들이었는데 그가 소련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한번도 입지 않았다. 20평의 창고안에는 5개의 장이 있었는데, 주석이 3개 지앙칭이 2개를 사용하였고 조그마한 장에는 마오엔잉의 물건을 담아주었다. 창고에는 다량의 오래된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의 내의는 모두 걸래같이 꼬맨 자국들이 많았다. 그의 창고안에는 면피가 없었는데 도시로 온 뒤로 그는 한번도 면피를 입지 않았다. 더운 날에는 하나의 침대보를 깔았고 가을 겨울에는 2장의 털침대보를 깔았고 겨울에는 3장을 깔았다. 너무 오래되어서 너무 딱딱했다. 그렇다고 새것도 안되었는데 두깨가 달랐던 것이다. 거의 모든 침대보는 기운자리들 투성이었다. 주석의 양말은 모두 우리가 기웠으며 우리가 쓰는 바늘은 조금 컸다. 우리가 새것을 준비해야했다 그러지 않았을 시에 손님이 오신다면 그가 다리를 조금만 펴도 바늘자국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석은 한번의 털외투가 있었는데 엔안에 있을 때 지앙칭이 만든것으로 소매가 조금 ㅤㅉㅏㄻ아서 다시 한 조각을 덧붙어여했다. 주석을 팔보산으로 보낼 당시에, 주석의 옷들을 보았다. 나는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모두가 오래된 옷들이었다. 이것이 국가행정당의 주석이었다.
주석의 침대에는 언제나 두개의 물건이 있었다. 한 개는 송칭링이 그에게 선물로준 오리털배게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장정1)시기에 가지고 다니던 담료였다. 주석의 침대는 나무로 만든 것이었으며, 그 중 정반을 책으로 덮혀 있었고, 그는 침대에 누워서 사무를 처리하였다. 등받이가 매우 딱딱하면 곧 담료를 받혔는데 그에게 매번 담료를 바꾸라고 해도 그는 바꾸지 않았다. 그는 혁명성공을 쉽게 잊지 못하고 있었다.
1) 장정은 중국공산단 만리대장정을 말하는 것으로 세계 전쟁사를 살펴보아도 한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대륙의 서남쪽으로 돌아서 북쪽으로 행진하며 국민당에 대항하여 게릴라성 전투를 감행했던 전략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떻게 생각해도 성공한게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군사전략을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니까 그 부분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석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하였는데, 하나의 대국이 하나의 마오저동을 부양하지 못할까? 그는 언제나 절약을 하였다. 그가 말하길 이렇게 큰 나라에서는 일절의 낭비도 없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펑저위엔은 매우 낡아서 벽 표면이 많이 떨어져나갔다. 한번은 그에게 수리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매우 화를 내며 “돈을 써야되는 부분이 많은데 왜 이런 곳에다가 낭비를 하느냐?” 주석은 담배를 필 때 성냥을 사용하였다. 내가 그와 보낸 12년동안 한번도 라이터를 사용한 것을 본적이 없다. 그는 예절을 따졌으며, 성냥은 언제나 자신의 방향으로 불을 붙였다.1) 또 반을 사용하고 다시 그 반을 사용했는데, 청소를 할 때 우리는 오래된 성냥을 버리면 그는 새로운 것을 보고 물어보았다.”오래된 것은 어디에 놔두었지? 그건 아직 쓸만 한데 말이야” 우리는 그의 말을 이해했고, 가서 낱개로 성량을 사서 담아놓았다. 그가 보더니 “ 와! 진짜 좋다!” 한 번은 그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밥이 식탁에 흘렀다. 그는 주어서 먹었는데, 이것은 내가 직접 본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현재 농민들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는 진정으로 인민의 영도자였다. 그가 70여살에 병이 들었을 때도 그는 광산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체크하며 그들의 폐병을 걱정하였다.
1) 담배를 피는 분들, 특히 오래전부터 담배를 피웠던 분들은 쉽게 이해를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라이터가 아니라 성냥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냥박스 밖에 성냥머리를 긁어서 불을 붙였습니다. 그 불을 붙일때 안으로 향했다는 의미입니다.
두번ㅤㅉㅒㅤ는 자녀들에 대한 엄격한 요구였다. 그의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야 하였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좋은 일을 하여야 하였다. 중난하이의 사람들은 마오저동주석의 자식들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다. 주석은 그의 자식들에게 언제나 말하였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의 동료들이며 너희들의 삼촌이자 이모들이다.” 현재 이나는 아직도 나를 보면 삼촌이라고 한다. 내가 그보다 더 어리므로 그러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러면 안됩니다. 이것은 저희 아버지의 정한 규칙입니다” 그녀들은 언제나 일반 시민들과 똑같이 행복하였다. 그 밖에 주석은 한번도 그들의 자녀들을 주방으로 불러서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의 자식은 얼마나 훌륭한가! 현재 그녀들은 모두 독립하였고, 관직에는 있지 않다.
마오저동주석은 중국의 미래를 설계하셨다. 훗날의 개혁개방은 사실, 마오저동주석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이다. 그는 1971년부터 1972년사이에 40여개의 국가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그의 후반기 임기중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포함한, 대외개방를 진전시켰다. 이 모든 것은 훗날의 개혁개방에 기초를 마련하였다.1)
1) 지금 현재 중국이 추친하고 있는 개혁개방을 위한 정치선전이자, 마오저동을 띄워주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오저동이 개혁개방이라는 중국의 미래 방향을 생각했었다라?! 상당한 의구심이 드는군요. 예를 들어서 대미관계 개선은 당시 소련의 공산주의국가에 대한 통제에 대하여 반대 의사를 밝힌 중국으로서 택한 국제외교행위였는데 그것을 개혁개방에 연결시키는 것은 야리꾸리하군요.
주석의 일생은 노력하며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생각하는 일생이었다. 회상해보자면 정말 많고 많은 일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그 당시 매일매일 주석님을 만았었고, 어떻게 보아도 그렇게 위대하실 수가 없었다. 현재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은 마오저동주석님이 없었다면 중국인민들의 오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타던 '적기(赤旗)' 슈퍼리무진이 전시되고 있다. 10.08m 길이의 이 리무진은 1970년대의 중국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을 위해 특별히 주문제작됐다. 문이 6개나 달린 리무진 내부에는 냉장고, 컬러TV, 에어콘, 전화, 책상, 2인용 소파침대 등 당시로서는 초호화 인테리어가 갖춰져 있다./ 로이터뉴시스
마지막 제가 내리는 평가는 비밀입니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생각해보세요.
갑자기 논리야 놀자가 생각하는군요.
(1) 이 글의 정치적 목적은 무엇일까요?
(2) 이 글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많이 읽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이 글에서 한국이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심심하면 생각해보세요^^:::
바로의 중얼중얼
막가파 의역 번역인데도 상당히 힘이 들었습니다. 역시 번역의 세계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오묘한 세계가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제가 주석에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나 또 다른 의문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점차 블로그가 유행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블로그에 대해서 잘 모든다면 내가 이전에 ㅤㅆㅓㅅ던 문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 블로그는 무엇인가?
자신의 계정과 도메인이 있는 사람이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블로그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된다. 만약 계정을 살 마음이 없다면, 지금부터 제가 소개하는 무료블로그를 추천한다.
1。블로그중국
블로그중국은 IT분석가(평론가) 방씽똥(方兴东)이 2002년 8월에 설립한 지식인사용자들의 싸이트다. 근 천명의 블로그전문 작가들과 만여명의 평론사용자들의 집합장소이며, 독자가 하루평균 50에서 60만명에 이르고 있다. 종사자들이 언제나 10여명이 있다. 현재, 꾸준히 증가하고 사용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내용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2。Blogbus
BlogBus.com는 국내 최초로 무료블로그를 제공한 곳이다. BlogBus는 간단, 쉬움, 개성화를 지향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서비스 내용이 충실하고 막강하여, 많은 블로거들이 자신의 주 활동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 특징은 :
글의 숫자를 제한하지 않는다.
전의 포스트를 보충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스킨수정이 가능하다(본인 창작이나 제공하는 것이나)
충분한 수량의 사진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손 쉽게 블로그의 내용을 이동할 수 있다.
이메일를 통한 새글알림 서비스를 하며, 새로운 글을 고칠 때, 지정된 이메일로 자동으로 통지된다.
3。중국블로그망
나는 아직 써보지는 않았지만 소개를 하자면, 위의 2개보다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미지블로그라는 것 외에는 다른 점이 없다.
4。중국 IT의 하루하루
Donews는 2000년 4월에 설립되었다. 반년이라는 시간만에 중국에서 가장 큰 IT관련 토론장이 되었다. 현재 그들은 3.2만명의 편짐자, 기자, 자유기고자 및 IT산업인력의 전문작가와 토론장 사용자가 존재한다.
5。블로그 동력 (추천)
블로그 동력은 대다수의 중문사용자를 위한 중문블로그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로그사용자싸이트다. 이것은 인터넷블로거들이 협력과 협조를 통해서 만들어진 블로그서비스이다. 중문블로거 사용자들에게 안정적이고 간편한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한다. 블로그동력은 2003년 8월에 만들어졌으며, Rever와suasalito가 공동으로 개발한, JAVA상에서 구동되는 중문블로그서비스의 싸이트다. 블로그동력의 개발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인재를 몰고와서, 계속되는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더욱 완벽해지고 있으며, 강력하고 안정적인 중문블로그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블로그동력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무료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다방면의 개인사용자싸이트(Personal Portal)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6。삼엽블로그(3가지 잎의 브로그)
새로 만들어진 블로그서비스싸이트다. 별로 알고 있는 바가 없다.
7。블로그수(블로그를 자수하다)
2004년 9월에 새로 생겨난 블로그서비스싸이트다. 세계의 몇 개 블로그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기술력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문학과 이미지블로거들이 특히 좋아하며, 서부계획지원자 가족들의 싸이트(www.wew.cn)에서 시작되었다. 개인이 스스로 관리하는 싸이트이며, 강력한 발전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blog.sh는 중문블로그를 위하여 강력한 기능과 2개의 독립적인 싸이트주소를 제공하며, 4.5G의 세계급의 서버는 안정적이며 간편한 블로그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강력하고 안정적인 중문블로그시스템을 만들었다. blog.sh는 사용자를 중심으로 무료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들의 다방면의 개인사용자 서비스(Personal Portal)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blog.sh의 독립적인 자원를 믿어도 좋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blog.sh/를 참고하기 바란다.
7。블로그 용(드레곤)
BlogLong2.0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NativeBlog를 핵심으로 채택하여, 더욱 안정적이고 간편하다. 새 BlogLong은 아직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더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래된 버전의 사용자들은 새로 등록하여 사용해야하며, 검사기가 조금 불편하다.(검사기가 뭔지는 저도 이것을 사용 안해서 모르겠군요?!)
8。중국교육블로그망
아마도 교육내용 중심이 많다.
더 자세한 소개는 http://www.liseng.com 를 참고하기 바란다.
출처 : Blog.S
바로의 중얼중얼
한국에서는 누가 이런 포스트 안 만들까나? 네이버 싸이(페이퍼-_;) 야후 등등의 비교분석말이다. 자신의 개정을 운영중이며, 포탈에 편입되기는 싫으니 어차피 나랑 상관없다라고 빡빡 우겨보는 바이다.^^
한국어는 한글이라는 뛰어난 도구가 있음으로 해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조합으로 손쉽게 타자를 칠 수 있습니다.한국인터넷 문화가 세계가 놀랄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중에서 이 한글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중국어는 어떻게 타자를 칠 것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어는 한국어처럼 표음문자가 아니고 한개의 한자가 하나의 뜻과 음을 가지고 있는 표의문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글처럼 조합하는 방식으로는 타자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중국인들은 어떤 방식을 쓰고 있을까요?
일단 쓰고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핀인입력법..
(예시는 XP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Microsoft Pinyin IME 3.0입니다.)
입력법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핀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것이 좋을거 같습니다. 중국어를 1주일이라도 배우신 분은 핀인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핀인이란, 한국어의 독음과 비슷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
한국어 : 金(쇠 김)
중국어 : 金(jin)
옆에 가로 안에 들어간 것이 중국어 발음입니다. 영어발음을 거의 그대로 읽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물론 조금 다르지만 중국어강좌가 아니므로 건너뛰겠습니다.) 한국말의 "김"은 중국말로 "찐"으로 발음되죠. 그런데 그 발음 기호를 영어를 빌려왔습니다. 이것은 1956년이었던가? 중국에서 표준어를 제정하면서 만든 발음표기법입니다.
(연도가 정확하게 생각이....생각나는 분..말씀해주세요ㅠㅠ)
중요한 것은 이런 방식을 이용하여 중국어 타자를 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멀티미디어?!로 스크린샷을 동원하겠습니다^^::
본인이 입력하고 싶은 한자의 핀인을 입력합니다. <br />
전 "金"를 입력하기 위하여 "jin"를 입력하였습니다
입력하면 한자가 뜨고 그 밑에 밑줄이 쳐져 있죠? <br />
근데 이 한자는 제가 원하는 한자가 아니군요. <br />
그럴때는 화살표키를 살포시 왼쪽으로 한칸 움직여주면!
네! 한자가 주르륵 나오죠?<br />
이제 주르륵 나온 것에서 자신이 원하는 한자를 찾아서 그 번호를 누르면 됩니다. <br />
제가 찾는 "金"자는 번호 (2)번이군요. 그럼 전 2번을 누르겠습니다.<br />
그런데! 원하는 한자가 없다면?! 페이지다운(pagedown)버튼을 누르시면 다른 한자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중국어를 입력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사용한 것은 XP기본중국어타자입력기라서 기본적인 기능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것말고도 여러가지 기능을 지원하는 여러가지 입력기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의 설치를 위해서는 중국판XP를 설치하여야하기에 전 귀찮아서 그냥 이거 쓰고 있습니다^^::
보통 확장된 입력기에서 제공하는 기능으로는...
1) 자주쓰는 단어나 한자를 빨리 찾는 기능.
2) 자주쓰는 단어나 한자를 따로 입력해놓는 기능
3) 한자 한자씩 입력하는 것이 아닌 한번에 쓰는 기능.
그러나 딱 봐도 귀찮아 보이시죠? 중국어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타자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이것으로 빨라야 130이 한계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방법이 붓글씨입력법(우비입력기)입니다.
2) 붓글씨(우비)입력법
이 방법은 보통 "五笔"라고 불리우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XP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서 멀티미디어수업?!은 무리입니다. 그럼 이론적으로만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어렸을때, 붓글씨를 배우셨을겁니다.(정말 왠만한 분들은 다 배우죠. 물론 한달내로 그만두지만...쿨럭...) 그 붓글씨를 쓰는 방법을 이용한 것입니다. 에? 이해가 안된다고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金"를 한번 살펴봅시다. 이 한자를 어떻게 쓰는 지는 다들 알고 계시죠? 그것을 재현하여 타자를 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살펴 볼까요?
왼쪽아래대각선
오른쪽아래대각선
평행선
평행선
수직선
오른쪽아래대각선
왼쪽아래대각선
평행선
일단 여기서 나온 붓글씨 방법은 총 4개입니다
(사실 이것보다는 더 많습니다만, 일단은 이렇다고 해두죠)
1)왼쪽아래대각선
2)오른쪽아래대각선
3)평행선
4)수직선
그렇다면 각각의 방법을 하나의 키로 정해두고 이들의 조합으로 글자를 입력하면 빠르고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金"은 1),2),3),3),4),2),1),3) 이라고 입력하면,이것과 중복되는 한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자의 입력속도가 향상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최대 200, 꼼수까지 이용하면 250까지도 나온다는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한글타자와 다르게, 우비의 경우 조금만 쓰지 않으면 곧 그 획지정번호를 까먹어서 반드시 꾸준히 써야됩니다.(그래서 전 포기-_;; )
3) 그외의 비주류입력법
물론 중국애들은 중국어 입력법이 느린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빨리 입력해볼려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실제로는 잘 안 쓰이는 방법을 적어보겠습니다.
잠시 뱀다리 : 얼마전부터는 중국어에서 한자를 아예 없애고, 핀인으로만 표시하자는 이론까지 있습니다. 그거 논문 검토했던 친구가(미국교포) 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봐서, "웃기네-_-;" 라고 한마디 해줬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친구도 같이 웃었습니다. 이 주장은 한국으로 따지면, 영어가 세계어니까 한국어 배우지 말고 이제부터 영어쓰자! 라고 말하는 거죠.
1. 4각법 : 한자의 모서리의 모양을 우비입력법과 같이 따로 지정해서 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이 검색법은 고대한자어색인에서 사용되던 방법을 컴퓨터로 이전한 것이죠.
2. 부수법 : 딱! 필이 오시죠? 한자부수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각각의 부수를 따로 지정해놓고 그것에서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3. 필기인식법 : 솔직히 지금은 잘 안 쓰이지만,(인식률이 너무 떨어져서...) 기술이 발전한다면 가장 많이 쓸지도 모를 방법입니다. 솔직히 중국어는 키보드로 입력하기에는 힘든 언어입니다.
바로의 중얼중얼
중요한 점은 저도 이제는 중국어타자에 익숙해져 있지만, 한글과는 언어적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최고타자속도가 빠를 수 없습니다. 물론 중국어는 한자의 표의문자여서 한국어에 비하면 압축언어이지만,(예를 들어서 중국어 100p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보통 300p 안밖이 나옵니다.) 그래도 타자속도는 차이가 심합니다.
중국어타자가 익숙한 중국인들도 한메타자기준으로 200정도 나오더군요. 한국어타자에서 600정도면 애들 장난인 것을 생각했을 때(심심하면 1000도 많더군요.) 한국어의 타자입력속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결론은? 우리 과학적인 한글을 사랑합니다^^
Wiki는 언제 최초로 중국어권에 들어왔을까? 이것은 여러분들이 아직 한번도 탐구해 보지 않았던 화제이다. 나는 다만 내가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의 중국내의 초기 Wiki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최초의 Wiki는 비밀탐색소프트웨어작업실(索秘软件工作室)(Softme Studio)의 WebPM프로젝트의 세부항목이었던 jWiki이다. WebPM프로젝트(Project Management On Web)는 중문프리소프트웨어의 개발자, 사용자와 보급자들이 인터넷상에서 개방식관리장치환경을 만들기를 주요목표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 Wiki세부프로젝트는 2001년 12월 27을 최초로 시작되었고, 2002년 01월 14일에 문을 닫았다. 듣기로는 이 단계에서 장호(浆糊)형님이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한다. 첫번째 단계가 끝난뒤 얼마되지 않아서, 그들은 다시 측정용 홈페이지 softme.org(현재 접속안됨)을 개발하여 그들의
Wiki시스템을 평가해보았다. 나는 전에 그 시스템에 등록했던 적이 있다. WebPM프로젝트는 개발그룹은 국내에서 비교적 초기의 XP사용자들이었다. jWiki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올해 7월 6일에 jWiki-v2.0.1-rc1판을 발표하였다.
내가 생각했을때 위의 경험자들과 교류를 통하여, 그들이 어떻게 Wiki를 생각하는지 들어보는것도 좋을거 같다.
내가 알기로 그 다음에 등장한 Wiki는 중루다잡원(中蟒大杂院)이었다. 그것은 2002년 5월달에 개통되었다. 중루다잡원은 비교적 재미있게도 중문타자프로그램을 구현하였다.
(이 부분에서 잠시 설명, 한국으로 예를 들면, 대충 완성형과 조합형에서 조합형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하는게 속편합니다.-_-; 사실 그것보다 복잡하지만..)
그 다음에는 중문위키백과사전(中文维基百科)이 2002년 10월 말에 개통되었고. 현재 제일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어권에서 가장 큰 Wiki페이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무대Wiki(贸大Wiki, 무역관련인듯..)로 대략 2002년 11월초에 개통되었다.
정확한 시간은 조금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대체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신분이 계십니까? 우리 한번 토론해 보자고요.
바로의 중얼중얼
근데...한국에는 위키가 언제 상륙했죠? 고수님들의 분석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위키라고는 "눈마새"밖에 없는지라...^^:::
그리고 한국최초의 블로그는.....좀 찾기 힘들겠죠? ^^:::
이미 많은 한국분들이 중국을 방문하셔서, 그나마 많이 이미지가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이곳에서 인터넷할 수 있다고 하면 거의 경악의 오로라를 내뿜는 분들이 많습니다.(여기의 화장실 많이 괜찮아 졌습니다!! 문없는 화장실 몇개밖에ㅠㅠ 안 남았습니다.)
사실 이 곳에서 이른바 문화생활 하기란 참 힘이 들죠.
한국영화도 방송매체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굉장한 한류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인기가 있기에 이곳의 영화관에서도 상영이됩니다. 예를 들어서 전지현이 주연한 여친소같은 것은 동시개봉을 했습니다.여기에 있는 저희들은 보러 갔을까요?
죄송하지만 문화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_-;;
그러나 자신이 전지현마누라라고 우기는 어떤 인간이 영화관에 갔습니다. 그리고 울어버렸습니다. 전지현 입에서 중국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소리쳐 외치더군요.
"니들이 전지현 입에서 중국말이 흘러나오는 기분 알어?! 크어어어어!!!"
저넘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_ 그게 현실입니다.
일단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어느 나라의 영화든, 심지어 자국의 영화여도 무조건 자막은 일단 기본적으로 들어갑니다. 글자를 보는 것보다 듣는게 더 편하다는 것은 일단 기본적인 사실일테고, 이 중국이라는 나라가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는 죽어도 생각할 수 없고-_-;; 그럼 대체 왜 그러는지 저조차도 궁금합니다만, 무시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외국영화든 더빙을 해 버립니다. 한국에서 왠만한 이유로는 더빙을 하지 않는 것에 비하여, 이것들은 더빙이 필수입니다. 차라리 한국처럼 더빙능력이 좋으면 말도 안합니다.
일단 목소리와 화면이 따로 나오는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은 두가지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일단 더빙기술자체가 엄청나게 후졌습니다.ㅠㅠ 차라리 더빙할려면 더빙할것이지. 원음을 제대로 못 지워서 겹쳐들릴때의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성우들!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연기자라고 할 수 있는 그것들의 연기수준은 김희선이 울고가는 수준입니다. 책을 읽어도 저것보다는 딱딱하지 않을겁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매트릭스3가 개봉했을때, 원음상영과 중국어상영이 나누어져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인 영어라면 죽어라 싫어하지만 엉터리 중국어를 듣느니 영어듣기평가를 한다는 심정으로 봤습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