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부활] 공자 부활과 중국의 앞날

▲'중 국의 새로운 유교'를 쓴 벨 교수는 개방 초기 중국이 채용한 외국인 교수다. 대니얼 A 벨(46) 교수는 『중 국의 새로운 유교』 등의 저서와 가디언·뉴스위크와 ...

분명 중국에서 유교의 부활움직임이 있다. 최근에 아바타를 강제적으로 영화관에서 내리게 하고 영화 "공자"을 밀어준 것은 분명히 이러한 움직이에 속한다. 영화 공자를 보면 애국사상부터 시작해서 국가공보영화로 느껴질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도 국민이 따라주어야 되는것이다. 영화 "공자"는 국가급으로 밀어준 것에 비하여 말도 안되게 초라한 성적을 보이며 막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있다. 중국 공자 부활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한국 유림이라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없어진 공자에 대한 제사를 중국에 전수해준 것도 바로 한국 유림이다.(유지해온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치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공자만쉐!가 더 걱정이다.


"구글, 중국 철수하고 한국 공략"

박지성 기자 구글의 중국 철수가 기정 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대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중국 ...

구글이 과연 한국을 노릴까? 유튜브가 왜 한국어 서비스를 하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결론이 나온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면, 한국정부에서 실명제(지들 말로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고 하지만 실명제와 다를바 없음)을 유튜브에 요구했고, 유튜브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그렇게 못한다면서 아예 한국어 서비스를 없애버렸다. 그러나 유튜브로 접속은 가능하고 어차피 메뉴가 간단하니 그냥 영어로 해놓고 사용한다. 인터넷 시대에 통제가 얼마나 불가능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

막말로 비유하자면 개짜증나는 중국정부의 통제에서 이제 막 벗어났는데 조금 덜 짜증난다고 한국으로 올까?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크니 올지도 모르지만....글쎄다. 시장도 좁고, 구글의 주수입원중 하나인 광고시장도 뺏긴 마당에 잘도 한국으로 오겠다.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아이폰 대박으로 인한 모바일 시장의 확대이지만 이것 역시 애플과의 갈등이 커지면 구글이 기본 검색이 아니게 될터인데? 만약 본인이 담당자라면 한국 안 간다. 일본으로 ㄱㄱㄱ!!


“위안화 절상 수혜주를 찾아라”

미국과 중국의 환율협상이 '초읽기'에 접어들면서 위안화 절상시 수혜가 기대되는 종목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중산 상무부 ...

잘들 놀고 있다. 본인 주식쪽은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도박하고 다른게 먼가?


장우혁, 中 세계관광엑스포 축하 공연...美 전 국무장관 라이스 극찬

고지연 기자 【서울=더데일리】고지연 기자 = 가수 장우혁이 지난 20일 중국 해남성 삼아시에서 열린 '제1회 세계관광엑스포' 개막식 공연에 귀빈으로 초청돼 축하 ...

역시 HOT라고 해야되나? 본인 10대시절의 아이돌이었으니 무지막지 삭은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그 파괴력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오히려 그 시절 사람들이 이제는 소비력을 갖춘 사람들로 성장해서 일까?


NHN, 대만서 철수…중국 법인 철수 가능성도

NHN타이완 법인의 청산작업을 진행 중인 김 사장의 손길이 중국 법인에까지 미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 되고 있다. 21일 NHN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NHN타이완이 청산 ...

네이버가 바보가 아닌 이상 중국법인 철수는 안한다. 물론 투자실수의 정석을 보여준 게임사업쪽은 철수하겠지만, 네이버를 유지하는 수동검색 인력은 중국 조선족이 싼 것이고, 나름 성공하고 있는 http://www.nciku.com/ 을 버릴 이유가 먼가? 그래도 철수한다면 네이버의 속사정이 너무나 나쁘거나 미래를 보지 못하는 바보이다. http://www.nciku.com/은 잘만하면 대박으로 이끌 수 있을터인데...


중국 황사 예보…한반도 영향 작을 듯"

중국 베이징 등에 강한 황사가 예보됐지만, 우리나라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전망입니다. 기상청은 현재 한반도에 강한 고기압이 버티고 있어, 당분간 중국에서 발생 ...

이럴때면 정말 한국에 있고 싶다. 흑.....피...피부때문에 죽을 거 같다.ㅠㅠ


中, 한일 사정권 중거리미사일 산둥성 배치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국과 일본을 사정권에 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산둥(山東)성에 배치하고 있다고 22일 연합뉴스가 캐나다 군사전문지 '칸와(漢和)국방평론(Kanwa ...

당연한 일을 가지고 멀 이리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어떤 국가에게든 자신의 이익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모든 상대는 적국이며,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그래야 서로서로 공격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휴전선 포대들이 서로 간의 요충지를 모두 조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동북아 배치가 무엇을 대비한 행동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된다. 국제정치는 한 손으로 무기를 겨누어 만약을 대비하면서도 다른 한손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고 말이다.

中 설탕·차등 농산물값 '껑충'

베이징= 이병관 특파원 광시성 등 중국 남서부의 극심한 가뭄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중국의 설탕, 차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농작물 가격이 ...

어차피 설탕과 차는 필수품까지는 아니다. 그것이 중국정부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고, 중국농산물을 다량 수입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도 다행인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의 차 소비량은 어마어마하고 운남은 최대의 차 생산지이긴 하다. 그러나 싸구려 차는 널리고 널렸다. 설탕이야 보유해놓은 것이 있으니 정부차원에서 알아서 잡을 것이다.


중국, 경제성장과 발전방식 전환 동시에 추진

중국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장평 주임은 22일 베이징에서 향후 중국은 경제의 평온하고 비교적 빠른 발전을 추진함과 동시에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도 다그칠 것이라고 ...

원쟈바오가 이미 발표한 내용이다. 핵심적인 부분은 결국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심히 부정적이다. 특히 인민패 절상압력까지 있는 마당에 과연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 변화가 가능할까? 그것도 관의 부패가 이미 경제계와 깊숙히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잘도-_-


[Around the World] 중국 호북성장(湖北省長) "어디 기자야" 했다가…

지난 7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장 밖에서 한 여기자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에 참석했던 리훙중(李鴻忠) 후베이(湖北) 성장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

언제적 이야기가 이제야 나오는지 모르겠다. 실제 기사를 보면 서양권 신문을 인용했다. 그럼 왜 중국에 있는 특파원이나 본인은 관련 글을 쓰지 않았냐고? 왜냐하면 확실한 증거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녹음되어있지도 않고, 당시 회장도 시끄러웠고 말이다. 재미있는 이슈이긴 해도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해외 언론사것을 인용한다고 면피가 되지는 않는다..조선일보야!

생각해보니 패러디는 가능하겠구나. 청와대 한 관계자가 어이없는 질문을 하자 대뜸 "어디 기자야!" "조선일보입니다만..." "다른 곳도 아니고 조선일보가 그런 이야기를 왜 물어봐!" ......조선일보야. 왜 니 무덤을 니가 파니?

"아바타 중국에서 상영하지 마! - 공자를 위하여..."에서 밝혔다 싶이 중국정부는 고의적으로 아바타의 상영중지를 감행하며 영화 "공자"에 촛점을 맞추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공자는 대체 어떤 내용일까요? 노이즈 마케팅에 걸리는 느낌이지만, 솔직히 궁금한 것이 사실입니다.


스토리를 말하기 전에 일단 중국정부가 밀어주는만큼이나 어이없을 정도의 스태프와 연기자 진영을 갖추었으니 소개를 안할 수는 없다. 최대한 짜르고 짤라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여기서의 조연은 다른 영화였으면 주연했을 사람들이다.

감독 : 후메이(胡玫)
상당한 수준의 역사극 한무대제汉武大帝의 총감독이었다. 본인으로서는 역사극을 보면 저도 모르게 고증작업을 하기에 아예 해당 작품을 피했지만, 본인이 아는 한 역사학 전공자는 한무대제의 팬이었고, 그의 평가에 의하면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촬영감독 : 바오더시(鲍德熹)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국인들도 잘아는 와호장용(卧虎藏龙)으로 오스카 촬영감독상을 받은 그 촬영감독이 2005년 무극无极 이후에 5년만에 카메라를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주제가제목 : 유란조(幽兰操) - 왕페이(왕비 王菲)
유란조는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조이다[각주:1]. 대략적인 내용은 공자가 각 국을 전전하지만 무시당하고 노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난을 보고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쓴 시이다. 그 시를 노래로 만들었는데 부른 사람은 무려 왕페이다. 더 설명이 필요 한가? 연예인에 대해서 잘 모르고, 느린템포의 노래를 꺼려하는 본인의 가슴을 떨리게한 주인공이 바로 왕페이였다.

주연 :
주윤발(조우룬파 周润发)공자(孔子)
공자에 대한 설명도 필요 없을 것이고, 주윤발에 대한 설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반응은 "윤발이 형님이 총이 아니라 붓이라니!!!"이었다. 그 분들에게는 이 말만은 해드리고 싶다. "윤발이 형님도 늙으셨습니다. 이제는 총을 놓고 붓을 들도록 해주십시오..."

하지만 사실 걱정 안해도 된다. 무슨넘의 공자가 붓이 아니라 칼과 활을 들고 있다. -_-;;

맨위가 무려 주윤발형님의 공자다......음;;;;;


조우쉰(周迅) - 남자南子
저우쉰은 천하절색의 미모는 아니지만 상당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예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본인으로서는 이름을 듣고서는 누구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그녀가 참여한 작품들을 보고서는 "아!"라는 말이 저절도 나왔다. 그녀는 지금까지 야연夜宴에서는 장쯔이에게 맞아가면서도 사랑을 포기 하지 않은 여성으로 나왔었고 화피画皮에도 참여를 했었다. 하지만 화피는 보지 않아서 패스. 그리고 리미의 추측李米的猜想의 주인공으로 나와왔었다. 개인적으로 여주인공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작품인데 조우쉰이었던 것이다.


남자는 춘추시대 위나라卫国 위령공卫灵公의 부인으로 위령공보다 30여세나 어리다고 한다. 원래는 송나라宋国 공주로 그 미모가 절색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위령공의 남총인 공자조公子朝와 사랑을 하게 되어 진나라晋国로 도망가게 된다.

논어에도 남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런데 이 부분이 심히 야시꾸리하다.  "공자가 남자를 만났다. (초간단 : 공자와 남자가 같이 섹스를 한 줄 알고, 길게 말하면 이미 음란한 것으로 유명한 아녀자와 만났으며 위령공에게 옮바른 길을 알려주어야 되는데 스스로 어긴 것이기에) 자로가 불쾌해하였다. 공자는 맹세하며 말하기를 "그것은 너가 잘못 안 것이다. 아니라면 하늘이 벌할 것이다. 하늘이 벌하고 것이다![각주:2] " 나름 공자의 섹스스캔들이라고 할까?

천지엔빈(陈建斌) - 계환자(季恒子)
천지엔빈이 누군지 모른다. 그가 연기한 작품들은 이것저것 많이 있는듯 한데, 본인이 볼 정도로 정말 유명했던 것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작품운이 없었던 것일뿐, 연기실력은 뛰어나다고 한다.

맹자에 의하면 계환자는 공자를 발굴해낸 인물이다[각주:3]. 계환자는 공자 생존당시 노나라鲁国의 3대 세력가 중에 하나 계손사季孫斯이다. 개인적으로는 계환자가 무려 주연중에 한명이라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있다. 나름 중요하긴 하다만 주연급까지는 아닌듯 싶은데....대체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한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스토리 :
아직 정확한 스토리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영회같은 곳에서 조금씩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기본적으로 공자세가孔子世家[각주:4]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공자세가의 전체 이야기을 말씀드려야 되는데 이것의 양이 장난 아니다. 영화나오는 것 보고서 그 부분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던 이야기는 공자가 노나라에서 집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천하를 주유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공자의 노나라 집정부터라고 하지만,계환자(李恒子)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공자 나이 47세정도부터 영화가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자와 스캔들이 난 것은 무려 57세정도로 추정된다. 대략적으로 65세정도면 끝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자세가는 엉터리 서술로 유명하다는 것[각주:5]이다. 아무리 분석을 해도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터져 나오니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사실 공자세가는 공자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여 더욱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를 더욱 비극적으로 묘사할 수록 역경을 딛고 일어났다는 것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정부가 공자세가의 공자로 부활시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에서 역대적으로 공자가 어떤 위치였는지 생각하면 된다. 공자는 겉으로는 위대한 스승으로 숭배받아왔다. 그러나 실제 정치에서 사용되는 것은 결코 유가가 아니었다. 보통 중국의 사상사는 유가가 지배했다고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은 기본적으로 유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통치자들이 사용한 것은 법가의 사상이었다.

그럼 왜 유가로 포장을 하느냐? 유가는 절대적으로 통치자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신하는 임금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여야 한다라고 세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자의 정신을 이어받자면서 중국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유가의 아리따운 충성이라는 포장지가 아닐까 싶다.



바로의 중얼중얼
아직 보지 않은 작품으로 무엇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다만 공자세가를 기본으로 쓴 영화같으니 본인도 공자세가에 나오는 말들을 이용해서 이 작품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화를 끝내고 공자가 가려고 할 때,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똑똑하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쉽게 죽임을 당한다. 왜냐하면 타인을 평론하는 것을 좋아하기 대문이다.  뛰어난 말솜씨로 타인의 문제를 잡아끄내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노릇을 하려면 자기 자신이 없어야 하며 신하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있어서는 안된다[각주:6]."

노자가 말했던 그대로 공자는 똑똑하고 통찰력이 있지만 제대로 된 처신술을 발휘하지 못하였기에 스스로를 말아먹은 사람이다. 다만 그 사상이 이 후에 백성들을 속이는데 좋았기에 포장지로 사용되어 높아졌을 뿐이다. 만약 실제 정치에서 공자의 사상을 그대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기울어가는 제나라齐国을 일으켜세운 재상 안영(晏婴)의 말을 상기해보면 된다.

"이 유가가 하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제사를 성대하게 치르면 나라는 점차 빈곤해지게 될 것이므로 기본문화로 삼을 수 없습니다. .....주나라가 몰락한 이후 예악은 이미 오래동안 없었습니다. 오늘날 공자가 그것을 화려하게 부활시켜 상하의 관계에 대한 엄격하고 복잡한 예의를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의를 연구하는 것은 몇 세대가 가도록 더욱 더 번잡하게 변해가서 어린아이가 늙은이가 되도록 그 예절의 다 익히지 못할 것입니다....[각주:7]"

실제로 유교가 끊임없이 세상과는 동떨어져서 쓸데 없는 것만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공자의 사상은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뿐이었다.

그럼 우리는 공자에게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글쎄....제자 잘키워서 마피아처럼 조직을 만들자?! 내것이 아니면 결코 인정하지 않는 정신을 키우자?! 과거의 글을 모아서 잘 다듬어서 자기것 처럼 하자[각주:8]? 미안.....본인이 너무 의도적으로 공자를 까버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다시 중용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어차피 한국에 널린 것이 공자찬양자이니 이런 생각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1. 《樂府詩集》樂府詩集卷第五十八 : "猗蘭操 孔子 一曰幽蘭操 <古今樂録>曰孔子自衛反魯 見香蘭而作此 <歌琴操>曰 猗蘭操孔子所作 孔子歴聘諸侯 諸侯莫能任 自衛反魯隱谷之中 見香蘭獨茂喟然 嘆曰蘭當為王者 香今乃獨茂 與衆草為伍 乃止車援琴之自傷不逢時 託辭於香蘭 <云琴集>曰幽蘭操孔子所作也  [본문으로]
  2. 《論語》卷四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予所否者,天厭之,天厭之。“ [본문으로]
  3. 《孟子》卷十: 於季桓子 見行可之仕也 [본문으로]
  4. 사마천의 사기(司马迁的史记) [본문으로]
  5. 宋 王若虚《史记辨惑》:“迁采经摭传,大抵皆舛驳 ,而二帝三王纪 ,齐鲁燕晋宋卫孔子世家 ,仲尼弟子传 ,尤不足观也。”; 清人林春溥《孔子世家补订序 》:“顾迁所采辑 ,不外《论语 》、《三传 》、《国语 》、《檀弓 》、《家语 》、《晏子 》诸书 ,而以己意牵合之 ,往往与《年表 》不相应。……伯玉之主,蔡之迁吴 ,皆前后两见 ,是其颠倒讹复 ,有待后人厘正者 ,盖不少矣。” [본문으로]
  6. 聪明深察而近于死者,好议人者也。博辩广大危其身者,发人之恶者也。为人子者毋以有己,为人臣者毋以有己。 [본문으로]
  7. 晏婴进曰:“夫儒者滑稽而不可轨法;倨傲自顺,不可以为下;崇丧遂哀,破产厚葬,不可以为俗;游说乞贷,不可以为国。自大贤之息,周室既衰,礼乐缺有间。今孔子盛容饰,繁登降之礼,趋详之节,累世不能殚其学,当年不能究其礼。君欲用之以移齐俗,非所以先细民也。 [본문으로]
  8. (이건 쫌 왜곡이다. 사실 공자는 스스로 과거의 것을 정리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그의 말처럼 그의 식대로 재가공했다. 그러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닐듯...) [본문으로]
중국에서는 아타바(2D)가 1월 22일까지만 상영한다. 중국에서는 1월 4일부터 상영하였으니 18일간만 상영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라면 결코 아타바를 내릴 필요는 없다. 오직 중국정부차원에서 밀어주는 공자(孔子)을 밀어주겠다는 생각임이 분명하다.


1) 아바타 중국상영기간은 단지 18일?
중국에서 아바타는 1월 4일에나 개봉되었다. 그리고 세계의 흐름과 같이 매일 사람들이 만든 긴 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19일(오늘) 아바타의 2D가 22일까지만 상영된다는 소식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비록 3D와 IMAX는 계속 상영을 한다고 하지만 흥행을 하고 있는 영화를 18일만에 내리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어차피 2D로 아바타를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중국시장에서 아직은 2D 시장이 더 크며, 수 많은 영화관들이 아직도 3D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바타에 대한 모종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중국정부차원의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아바타에 대한 중국의 의견들 - 강제철거에 대항하자!
아바타에 대한 가장 많은 의견은 "강제철거에 대항하는 이야기"라는 의견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러한 생각이 많이 없다. 그러나 아바타의 스토리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지구인들이 신성한 나무를 강력한 무기로 밀어버리며 강제철거를 하고 있고, 현지 거주인들은 처음에는 밀려났으나 나중에 협력을 하여서 반대로 지구인을 몰아낸다는 이야기는 강제철거를 연상시키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현재 아바타(2D)가 빠르게 종영되는 것을 보고서 중국네티즌들은 중국정부에 고의적으로 금지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작년에 중국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달팽이집(蜗居)가 방영금지된지라 더욱 그러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 영화 "공자"을 밀어주자!
작년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6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중국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건국대업 建国大业"은 중국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올 해 중국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공자"의 이야기를 받은 영화 "공자"이다.

원래 공자의 개봉일은 2010년 구정전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바타의 대폭풍으로 인하여 개봉일을 늦출 것이라는 예상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그 영향력을 발휘하여 아예 아바타를 중국극장에서 내려버리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그러자 오히려 네티즌들은 "원래 공자를 볼 생각이었는데, 내가 영화관 가서 보면 장을 지진다!"라고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에서 밀어주는 영화의 특징은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고 있을 때에는 절대 인터넷에 해적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로 해당 네티즌들은 공자가 일정정도 흥행에 성공하면 별 수 없이 영화관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국산영화에 대한 지원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상영을 금지하고, 정치적인 선전을 위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다.


* 영화 공자를 통해서 중국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듯하다. 어떤 영화가 나오려나...흠...무려 주윤발 주연이다...-0-;;


* 추가정보 : 이제는 갈데까지 가버리는 중국의 아바타죽이기-_-;;
 [중국이야기/중국 연예] - 中 아바타를 보면 죽는다.


胡新生《乡饮酒礼与食犬风俗 - 《仪礼》酒会用牲制度的地域特征和文化渊源》《文史哲》2009年第5期。

후신셩(胡新生)은 현재 산동대학교 역사문화학원교수로 계시는 나름 유명하신 학자분. 그런데 이런 민속학이나 인류학적인 논문을 쓰실 줄이야…^^:::

내용 요약 : <의례-향음주례>와 관련 사료에서 나오는 개고기를 먹는 연회는 춘추전국시대를 포함한 주나라의 예가 아니며, 산동지역에서 행해졌던 상나라의 예를 이어받은 특수한 예법이다.

1-  향음주례의 처음에만 딱딱한 예법이 있을 뿐, 뒤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것은 향음주례가 예법으로 다듬어지기 전의 원형을 나타내준다.

2-  주나라의 6대 희생품은 중요도순으로 말, 소, 양, 돼지, 개, 닭이고, 사계급이 먹었던 것이 개였던 만큼 그리 중요한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흔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의례에는 개고기를 중요시한다.

3-  춘추시대에 노나라에서만 두 가지 장례풍속이 함께 있으며, 사료적으로 은나라의 후손이 노나라로 흘러들어왔다고 볼 수 있고, 주나라의 보편적인 희생품과는 다르며, 의례가 노나라를 본거지로 하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집필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향례에서 개고기가 예로까지 승격된 것은 노나라 및 인근지역의 특수한 모습이다.


솔직히 전공하고 그리 상관없는데 심심풀이로 읽은 글이라서 특별히 문제를 찾아가면서 읽지 않았다. 위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 않은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은 직접 찾아서 보시기를….재미있다^^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역사학도로서의 즐거움은 아닐는지 살짝 고민;;)



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论语·述而》
3명이 길을 가다보면, 그곳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 글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은 "3명이서 길을 가다보면 어떤이는 훌륭하여, 그것을 본받아서 자신을 발전시키니 나의 스승이고, 어떤 이는 쓰레기이니,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고치므로 나의 스승이다." 이다. 여기까지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모두가 아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최근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며 트위터에 위의 글을 올리자 @bujiwibuji 님이 완전히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문 번역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나, 기존의 해석각도을 완전히 반대로 해버린 이 해석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각주:1].


3인이 길을 가면, 한 명은 훌륭하고, 다른 이는 쓰레기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명은 무엇일까? 공자 자신일까? 그러나 해당 고문은 "3명이서 같이"와 "3명과 같이"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공자 자신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각주:2].

그렇다면 잘하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도 아닌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될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bujiwibuji님은 이에 대해서 "잘한다고 뻐기기에는 민망하고, 못한다고 빠지기에는 억울한... 그러니까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 이들은 본받기엔 만만하고, 개선하기에는 큰 하자가 없어서, 투명인간으로 처리."라고 해석하였다.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잘하지도 못하고, 못하지도 못한 언급되지 않은 존재와도 같다. 우리네들에게는 그렇게 잘난 사람도 없고, 그렇게 못난 사람도 없고, 그 중간에 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을 나눌 줄 알고, 타인과 기쁨을 같이한다. 비록 거창한 "배움"이나 "가르침"은 없지만, 그런 모습이야 말로 인생이며, 배워야될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공자 자신이 그런 사람들을 투명인간으로 처리했다기 보다는 그런 평범한 모습도 가능하다는 것을 후대의 해석자들이 무시한 것이 아닐까?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해석을 하자면 : "3명과 같이 길을 가다보면, 어떤 이는 훌륭하여, 그것을 본받아서 자신을 발전시키니 나의 스승이고, 어떤 이는 쓰레기여서,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고치므로 나의 스승이다. 또한 어떤 이는 그리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지만, 그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기며, 우리네 이웃이기에 나와 함께 해주는 친구와 같은 스승이다."



* 고문의 즐거움.
고문은 표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변하고, 단어 하나에도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고, 무엇보다 글자수를 최대한 압축을 해놓았기에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가 풍부하다. 그것이 고문의 매력이자 저주이다. (저주라고 여길때 고문이 고문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을 하고는 한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기존의 고문을 다르게 해석한 내용을 보면 참 재미있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문 독해능력이 없음을 생각하면, 변태스러운 자위행위라고도 생각된다. 쿨럭;;;

* 트위터의 즐거움.
평소에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와 더욱 쉽게 교류를 하며 자극을 줄 수가 있다. 비록 140자의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런 제약성은 최대 압축의 고문처럼 그 나름의 매력으로 다가오기에 자주는 못 올리지만, 생각의 단편들을 오늘도 트위터에 올리고 흘려보내어 다시 돌아온다.

* 焉 : 어조사 언을 뺴면 안돼요 -0-
가끔 마지막의 "焉"을 빼놓는 분이 있다. 고대한어에서 한자 한자는 결코 그냥 쓰이지 않는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컴퓨터 타자도 없었고, 인쇄도 불가능했고, 복사도 불가능했다.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 없는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焉은 한국에서 어조사 언이며 별 의미가 없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焉은 감정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 혹은 "이 곳에"(此地)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의 문장으로 예를 들면, 3명이서 길을 가는 (바로) "그곳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시기 바란다. 이는 철학논문이 아니다. -_-;;; [본문으로]
  2. 또한 공자 스스로가 이미 성인에 근접한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보다 훌륭해서 배울 자가 많아야 얼마나 많을까? 이 말을 주석 처리한 이유는 감정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하여^^;; [본문으로]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분들이 있다. 중국을 이기고 싶은가? 그것보다 더욱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러니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헛소리는 그만 했으면 한다. 그래서 본 내용은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적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일수도...)


1. 공자는 한국 사람인가?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공자가 태어났던 산동성 곡부는 당시에 동이(东夷)라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한민족은 동이(东夷)의 후손이다. 고로 공자는 우리의 조상이다.

말이 되는 것 같은가? 미안하지만 위의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명확하게 틀린 말이다.

1) 공자는 동이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시의 산동성이 동이들이 모여살던 곳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말이지만, 정확하게는 당시의 동이와 화하족들이 같이 모여 살던 곳이다. 고로 동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물론 화하족이었어도 동이라는 민족그룹의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자는 공자의 족보를 따지며, 공자의 조상은 원래 은나라사람이었고, 송나라로 갔다가 다시 노라나로 왔기 때문에 공자가 동이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 의견을 채택해서 공자가 당시의 동이였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2) 당시의 동이와 나중의 동이는 다르다.
춘추전국시대의 동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폭넓은 개념이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보면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의 중국이라는 개념은 지역적으로는 매우 좁은 곳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산동성부터 시작해서 동북쪽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동이라고 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혹자는 동북쪽까지 가지도 않고, 잘해봐야 요서라고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동이의 개념은 변한다. 산동성의 경우 진시황의 진나라 통일 이후에 동이가 아닌 중국의 개념에 포함이 된다.

원래 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의 동쪽에 있는 이민족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었기에, 중국이라는 것이 확장됨에 따라서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고조선을 운운하면서 한반도로 동이가 유입되었다고 말한다면, 중국으로도 그정도의 동이는 충분히 녹아들었다고 반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 동이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었다.
지금은 보통 동이(东夷)라고 하지만 사실 동이는 구이(九夷)라고 불리기도 했다. 9종류의 동이(东夷)라고도 할 수 있고, 구의 뜻은 단순히 "9"가 아닌 "수 많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경우더라도 당시의 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었다. 산동쪽의 동이와 동북쪽의 동이가 달랐던 것이다. 단순히 당시에 동쪽에 있다고 하여서 문화적으로도 연결점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냥 동쪽의 이민족(东夷)으로 불렀던 것이다.

(참고로 전국시대의 초나라도 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 남부지역에 위치한 초나라에는 도가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노자도 있었다. 만약 공자가 동이라면 노자도 동이인가? 너무 거리가 머니까 왠지 거부감이 생기는가?)


4) 동이만이 한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한국은 동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 많은 민족들의 융합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는 정리가 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족주의적 세뇌에 의해서 아직도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벌어진 코메디인 것이다. 한국은 동이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수 많은 민족의 후손인 것이다.

고로 "공자가 동이임으로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코메디일 뿐이다.



2. 중국인들을 누르고 싶은가?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을 입닥치게 하고 싶은가? 공자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럼 쓸데 없이 공자가 한국인의 조상이니 머니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확실하고 중국인들이 반박도 하지 못하는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주겠다. 중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 된다.

"공자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과거의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한국은 아직도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자에 대한 제사(석전대제) 역시 중국에서는 이미 그 방법을 몰라서 한국의 성균관(대)[각주:1]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으며 인의예지를 높게 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야 말로 진정한 공자의 후손입니다."

조용히 위와 같이 말을 한다면 배웠다는 중국인일 수록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어떤 중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열폭해서 헛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논리적인 대답이 나올 수는 없다. 위에서 말한 것에서는 한마디 거짓이나 복잡함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자가 한국인과 핏줄로 이어졌는지가 아니다. 비록 예수에게는 자식이 없으나, 만약 예수의 자식이라도 살인을 하면 그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고, 살인자의 자식이라도 선한 일을 행하면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이다.

단! 위의 말을 중국인들에게 한다면 당장은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점차 늘어간다면 과거의 것을 어떻게 지켜야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타이완쪽에 남아있는 과거의 것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당장의 날카로운 칼이지만, 중국인에게 깨닭음을 주는 말이다. 본인이야 한국이든 중국이든 옛것을 지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진해가기를 원하기에 위와 같은 말을 해주지만, 당신들이 그러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3. 핏줄보다는 정신을 중요시 하여야 할 때.
본인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고 있다. 예수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부처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공자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노자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따라서 행동을 한다면, 종교를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균관대 유학 동양학부쪽의 몇몇 분들은 공자를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려고 힘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자의 말씀을 배웠다는 분들이니 만큼 더욱 한심하게 생각한다. 공자가 주공을 꿈에서 만난 것은 주공이 그의 조상이어서 그랬던 것인가? 공자가 주공의 뜻을 이어받으려 한다고 말한 것은 조상이었기 때문인가?

중요한 것은 핏줄이 아닌 정신을 제대로 이어 받아서 제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다.

* 참고로 본인은 공자가 한국에서 제대로 살아나던지. 아니면 완전히 죽어버려야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공자의 말을 이어받는 인간이 없이 이상하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은 공자의 부활이 필요하다.을 참고.



공자에 대한 이야기이니 만큼 공자의 한마디 말로 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공자가 말씀하시길 : 주나라는 하와 상 두 왕조를 거울 삼으니, 그 문화는 매우 찬란하구나!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이를 본인이 현대적으로 바꾼다면. "한국인은 공자나 예수 혹은 다른 훌륭한 사람을 거울로 삼으니, 그 마음이 매우 찬란하구나."



추가--
잡담 : 이 글이 얼마나 무서운 중국현실 비판인지 아실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중국은 현재 무형유형의 전통자산을 잃어버렸고, 제대로 회복하려 노력도 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 글이 얼마나 한국의 현재를 칭찬하고 있는 것인지 알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잡담2 : 한국이나 중국이나 옛것에 대한 쓸데 없는 집착을 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며, 미래라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되었냐 혹은 우리 조상이 얼마나 위대하였느냐가 아니라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하면 위대해 질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입니다.


  1. 추가 : 석전대제를 관장하는 기관은 성균관대가 아닌 성균관입니다. 그럼으로 성균관이라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균관대쪽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많은 유교부분에서 성균관대의 역할이 컸기에 () 안에 대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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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린것이 감히"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꼭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궁해지면 언제나 "어린것이" 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윗어른"을 공경하지 못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 하면 웃기지도 않는다. 나이로 어떤 사람을 존경하는가? 그렇다면 한국의 최장수노인이 대통령이 되면 참 좋겠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을 무한대로 존경할 수 있지 않겠는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는 것을 다들 아시리라 본다. 50살을 "쳐먹어 놓고" 인격이 엉터리인 사람도 있고, 20살도 안되었지만 품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 나이는 그냥 얼마나 살았느냐이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윗어른에 대한 개념이 강할까? 혹자는 유교때문이라고 한다. 유교에서 있는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자애롭게 대한다尊老爱幼“에서 파생된 개념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유교에서 정말로 나이로 사람을 가르는가? 아니다. 우선은 군자와 소인으로 가르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나이가 아닌 그 사람이 가진 덕으로서 정해지는 것이다.  덕이 있으면 황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수양이 중요한 것이지, 나이만 먹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횡횡하는 가치관은 제대로 된 유교정신조차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왜곡된 유교정신을 가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널려 있다. 본인은 한국이 발전하려면 공자를 죽여야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공자의 부활이 시급하다. 지금 한국에서 공자는 죽어서 그 시체가 마구잡이로 찢겨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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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좀 그런 일이 있어서 써보았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외치는 어느 분이 "윗어른"을 언급하면서 예의를 따지고 있어서 많이 답답했다. 본인은 나이를 가지고 어느 사람을 "공경"할 생각은 결코 없다. 단지 그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존경하고 공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이을 가지고 깔아 뭉개는 것이나 권력만을 가지고 깔아 뭉개는 것이나....대체 무엇이 다를까?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좋아하는 것은 나이에 대한 껍질을 많이 벗겨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린것이 감히"을 비롯해서 나이를 이용한 다양한 억압들이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논하고 싶으면 기존에 있는 문제있는 의식부터 버리는게 좋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지만 한국의 노동권이 지금의 "꼬라지"인 결정적인 이유도 새로운 의식을 받아들인다면서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머용으로 고문을 대충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엄격한 해석이 아니라는 점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치통감 96권

이수는 이기의 자리를 찬탈한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황제이 되라는 소리를 듣고서는 고민을 하다가 점을 보게 된다. 무당이 말하길 "몇년 동안은 천자를 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자

부하1은 "하루만으로도 족한데 몇년이나 해먹는다고?!"
부하 2는 "몇 년동안 천자를 하는것보다 백대동안 제후를 하는게 더 좋지 않습니까?"

그러자 우리의 이수가 한마디를 한다."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 라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국호를 "한"이라고 정한다.


罗恒、解思明、李弈等劝寿称镇西将军、益州牧、成都王,称籓于晋,送邛都公于建康;任调及司马蔡兴、侍中李艳等劝寿自称帝。寿命筮之,占者曰:“可数年天子。”调喜曰:“一日尚足,况数年乎!”思明曰:“数年天子,孰与百世诸侯?”寿曰:“朝闻道,夕死可矣。”遂即皇帝位,改国号曰汉,大赦,改元汉兴。


야~~~ 이수! 그래 인생을 짦고 굵게 사는거야. 인생한방이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그렇게 이용하는건 쫌 아니잖아. 킥킥... 하지만 니가 짦고 굵게 살아서 지금 내가 니 이름을 알고 공부하는거잖아. 근데 전에도 올렸던 글도 그렇고...안웃기면 말고...난 웃긴다고...


자제 해야될거 같아..........ㅠㅠ



북경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짱시앙롱(张祥龙)은 북경대학교 개교 110주년을 맞아서 공자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북경대에 받아들여지기 힘든지 아시는가? 북경대는 민주와 자유 그리고 자유로운 사상의 명분으로 공자를 배격한 대표적인 학교이다. 그런데 그런 북경대 77 학번으로 현재 철학과 교수를 하는 신세대(문혁다음에 학교를 들어간 세대)가 공자상을 세우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짱시앙롱교수는 어떤 이유로 공자상을 세우자고 하는 것일까? 우선  다른 수 많은 철학자들의 동상을 세우면서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로 당연히 이야기 되는 공자상을 세우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한다. 이 의견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솔직히 소크라테스의 동상이 있으면서 공자의 동상이 없는 건 코메디에 가깝다.

두번째로 북경대의 시초를 이야기 한다. 북경대학교는 청나라 말기에 조선의 "성균관"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래서 북경대의 인문학. 특히 고문에 대해서 강력한 힘을 아직도 발휘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현재 세계화의 과정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경대의 뿌리인 "경사대학당 京师大学堂" 그리고 그 시초인 2000년전의 "서한태학 西汉太学"을 확실히 하자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북경대가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고 비난을 받지만(공산당 비판하다가 짤린 선생님이 한분 계셔서 그런다-_) 속을 들여다 보면 유구히 내려오고 있는(북경대 교수중에서는 반공산당이 상당히 많다...반골정신이 정통비슷한것이라서...) "모두를 받아들이는 兼容并包" 정신을 이야기 한다.이 부분에서는 1번과 같은 이유로 동감을 한다. 모든것을 받아들이면서 공자는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이유를 들으면 북경대에 공자상을 세워야되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공자가 단지 이것으로 끝난다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유교의 상징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문제는 유교의 기본적인 외교방침은 중화주의이다. 자신만이 세상의 중심이고, 주위의 국가는 이민족 혹은 미개인으로 간주한다. 뻔한 소리라고?

그런데 이러한 유교가 현대에 적용이 되면 더도 말고 "패권주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유교패권주의"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어떤 한국 교수님은 중국의 학술대회에서 중국의 한 교수와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기도 했다.)


본인이 문제로 지적한 정치외교적인 이유을 최대한 줄일 수만 있다면 북경대학교에 공자상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찬성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애국과 민족"을 마음에 품고, 자긍심을 가득히 가지고 있는 북경대학교 학생들에게 공자상이 "유교패권주의"로의 방향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고민해보자. 중국이 유교패권주의로 달려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 아래쪽은 혹시 보고 싶은 분을 위한 원문기사이다.

无孔子之北大无灵魂

——北大校园立孔子像的建议

作者:张祥龙

编者按:

“国学热”的热点还在扩散,又出现“北大立孔子像”之争。就在5月4日北京大学110周年校庆日即将到来之际,北大哲学系教授张祥龙先生撰文《无孔子之北大无灵魂》,称北大是“中华文明教育的正脉嫡传”,因此建议北大立孔子像,并期望北大能“引领中华文艺复兴潮流”。

在曾提出过作为当时中国人民追求民主、自由和思想解放之号角的“打倒孔家店”的北大,现在有人提出“在北大立孔子像”的建议,也许会让很多人无法接受。而“无孔子之北大无灵魂”一说却让我们想到当今大学的灵魂问题。尤其是在经济飞速发展和全球化的今天,我们的大学在快速壮大的过程中,大学精神的流失有目共睹。梅贻崎先生曾说过:“大学者,非有大楼之谓,而是有大师之谓也”,而现在的大学却有越来越向“大楼”靠拢之嫌。

设立孔子像就能重塑北大之精神与灵魂吗?我们今天的大学当有怎样的精神与灵魂?本报今日发起关于“大学灵魂”的讨论,欢迎读者朋友参与。(陈美寿)

北大校园的塑像渐多了。以前有一些现代中国人的像,和外国人的像,如文学家塞万提斯像。近日散步,发现静园草坪边的一院中立了西方古代哲人苏格拉底的半身像,让我这个搞东西方哲学比较的人受到触动。既然立新像是可以的,立哲学家的像也可以,那为何不立我中华民族第一圣哲孔夫子的像?我以前在多个场合提议北大应该立孔子像,比如当着各位校领导的面,在“校园规划座谈”时提过,但马上有人说“要谨慎”,于是也就不了了之。今天实在是觉得不能不从情理上申诉一番了,希望在北大110周年校庆之前引起关注,特别欢迎持不同意见者来讨论。

为什么要在北大立孔子像?首先,孔子是塑造中华文明的最伟大哲人和至圣先师,也是历史上最有影响的教育家,在一所力求体现中华人文精神的中国最高学府中,立自己所从事事业的创立者和精神导师之像,可谓天经地义。

其次,北京大学不是一般的学府,她是传承中华古文明的最后一个王朝,为了应对西方侵略造成的文化危机,在其变法维新之际,采取的一个教育变革措施的成果。当时称她为“京师大学堂”,具全国最高学府和最高教育行政机关的功能,是古来“太学”、“国子监”的直接传承。可以说,北大是国子监的现代版,是中华文明通过教育来承接自家道统、赢得时代机遇的正脉嫡传。就此而言,北京大学的校史要比现在讲的长得多,今年要庆祝的不只区区110周年校庆,而应该上溯起码数百年(有清一代),乃至两千年(西汉太学),并追溯到孔子的杏坛施教及西周之辟雍设学。在此具有文化神圣历史性的地方,竖立使这个文化得以神圣、得以历时弥久的圣人之像,是绝对必要的正名之举,义不容辞之举。不然这个学府就会流于一所随全球化潮流漂泊的university。此大学非彼大学,这里除了要学习西方之外,更有“明明德,亲民,止于至善”的“大学之道”。

第三,北大素有宽容、多元的传统。为了让此宽容多元成为真实的、全面的,就绝不可搞反向宽容,也就是只对西方学术与文化宽容,而对自己的学术与文化缺少宽容;只对西方古人开放,而对自家的古人不开放。既然有了苏格拉底像、塞万提斯像,就没有任何理由不立孔子像。我们哲学系立了北大校园中可能唯一的中国古代圣人像,那就是治贝子园前的一尊老子像,但可怜他的手指已然尽断。有人曰:“这无指才是大指、道指。”自嘲一番也就罢了。但孔子像不但不可不立,亦不可草率而立,必选校园最中心和要害处,以最精当耐久之材料,嘱最有水准和儒心之雕塑家来立不可。西门华表之间东边的花坛,或许适宜。

因此,我作为一北大教师、北大校友,出自对北大深切挚爱之情,呼吁校方郑重筹备竖立孔子像。如若资金不足,可在校庆之际向千万校友募捐。我所在的七七级北大校友,八二年初毕业之际捐款塑了蔡元培像;今天全校历届校友,共同捐款来竖立中华民族暨我北京大学之至圣先师孔子像,正是继往开来的一大盛举,何乐而不为也?北京大学既可以推动新文化运动,又可以引领我中华文艺复兴的潮头,此所谓大学之为大者也!

(作者系北京大学哲学系教授、博士生导师)

http://news.sina.com.cn/pl/2008-04-15/133715360301.shtml

미리 언급해 둘 것은 해당 내용은 어디까지나 일.부. 중국 네티즌들의 반한정서입니다. 생각 없는 반한 글을 보면 비판하는 중국인도 있음을 반.드.시.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중국 민족주의자들의 일부분을 소개하며, 그를 통해서 한국의 민족주의를 되돌아보려는 목적입니다. 해당 글을 보시고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보일까 한번 되돌아서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中国统治朝鲜半岛长达1000年.

别以为把汉城改成首尔就可以摆脱中国的统治.

绝大多数韩国人体内都流着中国人的血.

可以说是MADE IN CHINA!!

 

중국은 1000년넘게 조선반도를 통치해왔다.

한성을 서울로 바꾸었다고 중국의 통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한국인들의 몸에는 중국인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

쉽게 말해서 MADE IN CHINA 다.

 

이런 글을 중국 인터넷에 있는 반한글 중에서 하나를 뽑아왔을뿐 그 외에 다른 글도 많이 있습니다. (저 글은 제가 UCC를 돌아다니다가 마침 보인 글이기에 뽑아온 것입니다.) 저는 현재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친한파 : 한국의 경제발전을 배워야된다는 파로서, 특히 한국 드라마가 유행한 뒤에 많이 생겨났습니다. 중국에서는 哈韩(하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해당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그리 강력한 글을 쓰지 않습니다. 단지 반한파들이 글을 쓰면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친한파는 지금 글의 목적이 아니기에 이정도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의 잠깐 중얼중얼 1

유일하게 반한파가 거의 없는 내용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축구죠. 혹시라도 반한파가 한국 축구를 욕하면...친한파가 아주 새콤하게 비꼬아 줍니다. "한번이라도 이기고서 이야기 하라고-_" 하지만 해당 일은 워낙에 중국 축구협회와 중국 대표선수들이 중국 축구팬들에게 욕을 먹어서 생기는 반사이익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 축협과 중국 대표선수들은 외국인인 제가 봐도 불쌍하게 욕 먹습니다.

 

 

2) 반한파 : 물론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원래부터 한국을 무시하는...아니 조선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이고, 조선인민공화국을 형제국가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은 그들에게 있어서 50년도 지나지 않은 한국전쟁에서 적이었던 존재입니다. 이 3가지 사항이 모여서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다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한파가 늘어나면서 더욱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저의 경험적 생각입니다. 현재 그들의 주요 까댐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까댐에 대한 대략의 내용을 적겠습니다.

 

바로의 잠깐 욕시간! (으응??::)

한국어에서 중국인은 짱깨, 일본인은 쪽바리 라고 욕합니다.

일본에서 한국인은 "조센징", 중국인은 "지나" 라고 욕합니다.

중국에서 일본인은 "소일본", 한국인은 "고려새끼" 라고 욕합니다.

 

 

(1) 고구려문제 : 사실 중국의 국사 교육으로는 고구려나 발해는 당연히 중국의 역사입니다. 물론 한국의 국사 교육으로는 한국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둘이 충돌을 했습니다. 사실 이것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욕의 근원이 된 것은 한국에서 난리가 일어나고, 해당 사실이 와전되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서로의 국사교육을 이해한다면 싸울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재 민족주의 교육이 벌어지는 양국가 모두에서 매우 힘든 일임은 분명합니다.

 

고구려 문제로 중국인들과 말할 일 있다면 제가 몇가지 조언을 드려도 될까요?

1. 왠만하면 이야기 안하시는게 좋습니다.

회피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그 중국인과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로 고구려 문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해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친한 사람의 나쁜말은 원래 하기 힘든 법입니다. 고구려는 한국땅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울컥 합니다. 이렇게 한번 울컥한 사람 다시 중립?!으로 되돌리기 힘들더군요. 그냥 밥이나 혹은 술이나 한잔 하면 된답니다. 그럼 다른 사람의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당신을 옹호하게 되죠.

 

2. 이야기 하시겠다면,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한국에서 고구려와 백제를 한국의 역사로 어릴때부터 배우듯이, 중국에서는 해당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배웁니다. 이것은 국사라는 것 자체의 문제이지만, 건너 뛰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한국인들처럼 당연히 우리 역사 아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앞에다 대고 고구려는 무조건 한국 것! 이라고 말하신다면 돌아오는 것은 분노뿐일 것입니다.

그냥 조용히 한국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투로 설명해 주시는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인들은 어릴때부터 고구려가 한국 역사라고 배워왔다. 한국인들은 고구려를 자신들의 선조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국은 어쩌고 저쩌고"가 등장하지 말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특별히 반발할 대상이 없고,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3. "고구려는 대한민국만의 것!" .......참아주셔요.

이렇게 해서 설득당한 중국인....제 미약한 경험으로는 본 적이 없군요. 반발을 하면 반발을 하죠. 정확하게 역사적인 배경으로 설명을 한다면 중국인의 것도 되고, 한국인의 것도 됩니다. 위의 말은 학술적이지도 않고, 단지 무지막지하게 감정적인 발언일 뿐이지요.

 

 

(2) 그 외 역사 문제 : 몇몇 한국 네티즌들이 얼마전에 스파게티는 중국이 원조다라는 기사에서 보인 반응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해당 사건때 한국 네티즌들은 "짱깨는 맨날 모든 것의 원조가 지네라고 지랄하네"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됩니다.(냉정하게 말해서 스파게티의 원조는 중국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면기술자체는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간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면기술을 이탈리아에서 독창적으로 응용하여서 스파게티를 만들었죠.) 그리고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의 목판인쇄(무구정광)같은 문제나 단오절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 무구정광과 같은 경우, 해당사항은 아직도 양국간에 논쟁거리입니다. 무구정관은 현재까지 발견된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입니다. 문제는 무구정관의 낙양에서 인쇄된 것인가? 아니면 한국에서 인쇄되었느냐 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도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705(혹은 706)년 낙양인쇄설과 한국의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751년 불국사 석가탑에 안치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해결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2. 단오절과 같은 경우 : 단오라는 단어자체의 유래는 보통 중국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단오절은 우리것인데 왜 한국이 마음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을 하느냐고 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한국이 등록한 것은 "강릉 단오"입니다. 강릉에서 단오날 벌어지는 제사를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한 것이지 단오절을 등록한 것이 아니랍니다.

중국인들에게는 단오제가 아닌 단오절을 등록한 것이라고 말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에서는 단오제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강릉지방에 단오제가 정착을 하여 자신들만의 단오절 풍습을 만들었고, 그것이 강릉 단오제로 불리면서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유라고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 공자의 경우 : 이유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1- 한국만큼 유교의 전통을 지키는 곳이 없다라는 말이 와전되어서 생겨난 말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유교의 전통...중국보다 한국이 더 많이 보존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2- 공자가 동이족이라는 분들입니다. 공자의 출생지가 노국이었고, 그곳은 환단고기을 믿는 분들에게는 동이족의 영역이었고, 그러므로 인하여 공자도 동이족이라는 이론에서 시작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은 중국분들에게 되물어보시면 됩니다. 어디서 나온 소리냐고? 왜 공자가 한국인이냐고 말이죠. 공자가 동이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제가 할말이 없습니다. 이유를 잘 설명해보셔요.

 

4) 한자의 경우 : 얼마전에 중국 신문에 보도된 사항입니다. 한국이 한자를 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는 사항입니다. 해당 사항은 완전한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열혈적인 국가 민족주의자들은 분명히 한자도 한국의 유산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증거나 논리가 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딴지를 거는 중국인이 있으면 오보였다고 말해주면 됩니다. 길게 설명하려면 "한국에도 중국처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해당 사항을 주장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목소리일뿐이다."라고 말해주어도 되겠죠.

 

5) 백두산 or 장백산 : 이 부분에 와서는 더이상 할말도 없어집니다. 한국의 경우 백두산이라고 교육을 받아왔고, 중국의 경우 장백산이라고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한국정부는 중국지도에 백두산이라고 명시할 것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정간섭이 되죠. 단지 자신들이 백두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문제이지요.

굳이 싸우고 싶으신 분들은 청나라 시기와 한국의 고대 문헌에는 분명히 백두산이라고 적혀 있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특히 청나라와 대한제국이 국가분계선을 그을 당시에 분명히 백두산이라고 명기해있습니다. 단! 다른 청나라 기록이나 다른 중국 고대 문헌에 장백산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로 같은 지역을 부르는 다른 지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이겠죠.

 

 

(3) 서울과 한성(首尔与汉城)

예전에는 서울은 한양이라고 불렸었죠. 중국에서는 汉城(한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앞자리의 한은 중국 한족할때 한입니다. 그러니 중국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해당 지명에 대해서 "원래 중국것이라서 그래"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는 여지는 남긴 것이죠.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한강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百濟)가 동진(東晋)과교류하여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쳐서 한수(漢水)라 불렀으며, 그 뒤부터는 옛 이름은 차츰 없어지고 마침내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으로만 불리워졌다. 한강(漢江)은 본래 우리말의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한"은 "크다,넓다,길다"는 의미이며, "가람"은 강의 고어(古語)로 크고 넓은 강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경강(京江)이라고도 불렀다"

한성의 유래는 조금 복잡합니다. 어떤 이는 한사군에서 왔다고도 하고, 또 다른 어떤이는 한강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저도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중국과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중국측에서 저런 오해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서울시가 바꾸어냈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바꾼 것인지 구체적인 과정은 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서울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맨 처음 번역한 중국네티즌의 글처럼 해당 일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중국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왜 서울이라고 불러야되느냐고 말이죠. 솔직히 저도 중국말을 할때는  汉城(한쳥)이 입에 붙어버려서 首尔(쇼우얼)이 아직 습관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냥 저런 말을 보면 그냥 웃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의 잠깐 중얼중얼 2

중국은 자기네 맘대로 지명 가져다 붙이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발음에 맞추어진 방식이죠. 그리고 현지 발음은 사실상 신경 쓰지 않습니다. 위싱턴을 화셩뚠이라고 부르거나 베를린을 보린이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속편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서울을 뺀) 모든 지명은 현재 중국어 한자 발음 그대로 지명을 읽습니다. 제가 궁금한건!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 담당자는 어떻게 한청을 서울로 바꾸었을까요? 혹시나도 인연이 되서 담당자분을 만나면 술 한잔 사드리면서 내부 사정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 드라마였을 것같은 느낌이 팍팍 들어서 말입니다. 밤 새도록 말할 내용이 넘쳐 흐를듯합니다. 어디까지나 제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죠.)

 

 

(4) 한글

한국이 자랑하는 문자 한글입니다. 저는 이제 할 줄아는 언어라고는 중국어밖에 없고, 그냥 문자와 발음만 아는 알파벳, 키릴문자, 일본 문자(히라가나+카타카나+일본식한자)를 놓고 보면 확실히 한글이 재미있는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과학적일지 모르지만 한국어는 별로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는 모든 발음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한글은 가능하나 한국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에는 권설음이라고 불리우는 영어로 따지면 "R" 발음이 없죠.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까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 조용히 한글과 한국어는 다른 것이라고 말해주면 된답니다.

 

바로의 잠깐 중얼중얼 3

얼마 전에 한글로 중국어 타자를 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합니다. 몇몇 한국 네티즌 분들은 중국을 점령해라고 하셨었지요. 그것도 중국 네티즌들에게 흘러들어가서 안 좋은 반응을 보인답니다. 그런 것을 응원하실려면 조용히 성공을 기원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욕 할 사람들은 어차피 어떻게해도 욕하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타자기를 한국식 한자와 독음을 다 아시는 어르신네들은 잘 사용하겠지만, 한국의 젊은 층과 중국 사용자들에게 다가가기에는 조금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실제로 사용해 보지 못해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비라는 중국 타자방식보다 빠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잘해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새로 입력법은 획기적으로 빨라야 하거나 쉬워야되는데 해당 타자기는 양쪽에 모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군요.

하지만 해당 자판기를 가지고 한국 문헌을 한국인이 입력한다면, 그 속도는 예전에 비해서 상당히 빠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되어있지만 조선왕조실록도 해당 입력기가 있었으면 훨신 빠르게 입력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입력해야되고 입력할 수 있는 한국 고전들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개발자분도 그것을 위해서 만드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왜 중국에 진출할 목표라는 홍보가 인터넷에서 되었는지 의문이군요.

 

 

(5) 그래도 반일정서 정도보다는...

위에서 몇가지 예시를 들었습니다. 저것 외에도 몇가지 더 있는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중국 네티즌들의 반한 정서가 예전에 비해서 조금 강력해 진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드라마의 유입으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감으로서 자동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안티도 인지도가 있어야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나름 긍정적인 면을 찾아봅니다.

사실 한국과 중국 네티즌의 감정의 골은 아직 그리 깊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둘 모두에게는 최고의 민족주의적 적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라는 목표가 그것입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엔돌핀이 급속도로 전신을 순환하나 봅니다.

 

바로의 잠깐 번역!

해당 글은 중국 인터넷에 많이 퍼져 있는 글입니다. 일단 보시죠.

一韩国留学生说:我和你们(中国学生)打赌,在中国随处可见日本电器、手机、汽车,而在韩国街上你转上几天也不会看到一辆日本车--这就是日本不敢轻视韩国的理由日本松下有一位高官说过:即使我们不去拜靖国神社,韩国人也不会买我们的产品,但不管我们再怎样的去拜靖国神社,中国人照样会买我们的产品。一句让中国人从头凉到脚的话。每买一百元日货就会给日本政府送去5元钱,让日自卫队多造10颗子弹,多印8页反历史教科书。如果你买日本汽车,将来开上中国街头的日本坦克就是你造的,如果你买日本橱具,将来射穿同胞头颅的子弹就是你造的,如果你买日本电视音响,将来就会在战地喇叭中听到同胞被杀的哀鸣!请传给20个人,支持中国,抵制日货,就算没有回报,这也是你的义务!

한국 유학생이 말했다. "나랑 도박해볼래? 중국에서는 어디서나 일본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볼 수 있어. 하지만 한국의 거리에서 몇일을 돌아다녀도 일본차는 절대 볼 수 없지" 이것이 일본이 한국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전에 파나소닉의 한 고관이 말하였습니다. "설사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아도, 한국인은 절대 일본 상품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야스쿠니를 가던 말던 중국인들은 우리 제품을 살 것이다." 참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번 100원의 일본제품을 사는 순간 일본 정부에는 5원이 세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자위대의 10개의 총탄을 제조할 비용이며, 8페이지의 역사 교과서를 인쇄할 비용입니다. 만약 당신이 일본 차를 산다면 미래에 중국 길거리에 있을 일본 탱크는 당신의 책임입니다. 만약 당신이 일본 주방제품을 산다면, 장래에 당신 동포의 머리를 뚫는 총탄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만약 일본 음향제품은 산다면, 미래의 전쟁터에서 동포들의 마지막 비명이 들을 것입니다! 해당 글을 20명에게 보여주십시오. 중국산을 지지하고, 일제를 몰라냈습니다. 어떠한 이익이 없을지라도, 이것은 당신의 의무입니다!

 

솔직히 위의 글을 보면 웃기기 그지 없습니다.  (자동차야 한국에서는 거의 국산차 쓰고 관세가 많아서 그렇지. 전자제품에서 일제가 널리고 널려있는데!) 하지만 지금도 저렇게 믿고 있는 중국인은 의외로 많답니다. 한국인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일본제품을 쓰지 않는 줄 말이죠. 그럴땐 저는 저의 디카를 살포시 보여준답니다. 나의 사랑 캐논 G7!!! 아...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미 자유시장경제인 상황에서 질이 더 좋다면 그것이 일본산이든 중국산이든 한국산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음음...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적의 적은 친구라던가요? ^^

한국의 반일 감정은 중국의 반일 감정보다 약하다고 자평합니다. 중국의 어떤 기사던지 간에 일본에 대한 욕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떨때 보면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도 있습니다. 나름 머리 좀 돌아간다는 북경대학의 친구들도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더군요. 그리고 가끔 이성으로 무장한 중국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는 합니다. 아마 어릴때부터 보던 반일영화와 드라마가 문제일 것이라고 말이죠.  중국은 항일전쟁 영상물가 매우 많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다른 영상물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 현재 80년대 생들이 어릴때부터 보아 온 것은 일제에 저항하자! 일본은 나쁜놈! 인데 일본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기도 힘들겠지요. 이것이 세뇌의 힘입니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희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세뇌가 아닌지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요?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이것을 보시고 모두 힘을 합쳐서 일본을 욕하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 능력껏 해당 사건의 원인과 와전 과정을 설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 과정도 말이죠. 이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의외로 이상하고 짜잘한 것이 와전되어서 이상하게 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한국에 있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위와 같은 이상한 와전의 결과는 아닐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모두가 하나의 분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보면 저희는 동양인일뿐이고, 동양인에서 보면 동북아에 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껑충 뛰어넘으면 저희는 한 명의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웃음 뿐입니다.

중국인을 만나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보셔요.

"니 하오!" 그 순간 또 하나의 사람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계획은 매일 매일 상세한 여행 일정을 올릴 생각이었습니다만, 몸 상태가 좀 안 좋군요. 하루 왠종일 추운데도 여기 저기 걸어다녔더니 죽을 거 같습니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상태이군요. 살짝 감기 기운이 있기도 하고요. 그냥 간단하게 지금까지의 일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참고로 제가 이용하는 것은 cdma 무선 인터넷입니다. 베이징 외의 지방에서도 한달에 3시간인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한 번 실험용으로 해봤는데 되더군요 -0-)

 

아버지가 오셔서 기말이라고...논문을 써야된다는 핑계따구는 필요 없습니다.

 

1) 북경 - 연주(兖州) k101 19일 23:30 에 출발해서 20일 07:30 도착

...일단 추운건 그렇다고 하죠. 신식이 아닌것도 아직 모든 열차를 바꿀 수 없었을테니 그렇다고 하죠. 밤에 코를 고는 많은 사람 중에 아버지가 있었던 것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저희층 사람들은 새벽 3시, 새벽 5시, 새벽 6시에 돌아가면서 내리는 것이죠? 그 때 마다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2) 연주에서 곡부(曲阜)로 버스로 30분 가량. 인당 5원.

잠을 못 자서 피폐해져 있는 상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따뜻하기만 해라라고 생각했지만, 버스 안도 춤더군요. 나 분명히 내복까지 입었는데...ㅠㅠ

 

3) 곡부

곡부의 삼공(三孔 :공묘(孔庙),공부(孔府),공림(孔林)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한마디로 공자와 그의 자식들의 생활공간과 무덤들)에 도착하기 전에 후쿠다 일본 총리의 방문으로 인하여 도로가 봉쇄당함. 덕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걸어갈 수밖에 없었음. 여기서부터 인생이 꼬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리고 도착한 삼공의 근처 경찰관들에게 문의한 결과 후쿠다는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온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시간에는 삼공에의 모든 접근이 거부된단다. 그래서 소호령(少昊陵)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후쿠다 덕분에 길은 교통 통제를 받고 있었고, 그래서 걸었다. 대략 한시간을 걸었다. 추워 죽겠는데 곧 나오겠지라면서 걸었다. 젠장..중간에 거의 다 도착할 쯤9시 15분 쯤에 일장기를 휘날리면 후쿠다 수상이 지나가시더군. 바주카포 한대 날려주고 싶었다.

소호령의 입장료는 10원. 하지만 그냥 안 받겠단다. 들어가서 보니 너무 어설프다. 그리고 설명 문구가 제일 재미있었는데 동양의 금자탑이란다. 차라리 장군총이 더 금자탑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옆으로 돌아서?! 10시 10분 정도에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봉쇄가 풀리더군요.

이제 삼공을 둘러보기 전에 간단하게 밥을 먹고(그러보 보니 아침도 안 먹고 아침부터 근 2시간을 찬 바람이 몰아치는데 걷고 있었군요. 후...) 삼공을 둘러보았습니다. 솔직히 전 추우면 아무것도 생각을 안하는 편이어서 잘 기억이 안납니다. 나중에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회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니 잘났다?! 라고 할까요?

 

4) 태안 (泰安)

곡부의 버스 정류장에서 태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왔습니다. 대략 1시간 반이 걸리더군요. 태안은 태산아래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전 버스 안 마져 추웠기에 이미 냉동모드였습니다. 지금은 조금 좋군요. 하지만 정말 춥습니다. 전 겨울이면 동면에 들어가야되는 타입이랍니다. 다른 것 다 없어도 춥지만 않으면 전 행복합니다.ㅠㅠ 그리고 여기에 오후 4시 반쯤에 도착해서 호텔을 잡았다가 방이 너무나 추워서 다른 방으로 바꾸는 일도 있었고, 지금 밥을 먹고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그래도 밥을 먹으니 좀 좋군요. 역시 밥이 쵝오!

 

아...참고로 요즘이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씨입니다. 제가 지금 있는 태안의 경우 내일 최하 -8도 에서 최고 2도 사이라네요. 내일 태산 정상으로 올라갈 것이데, 그 정상은 제일 더울 때에도 얼음이 얼어버리는 영하의 날씨겠군요. 얼어죽지 않기만을 빌어주셔요. 내일 저녁은 태산 정상에서 보낸답니다. 크하하하하...ㅠㅠ

 

오늘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아....일단 자고 보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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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司广告上让孔子老子穿西装当模特(图)

 

얼마전 중국 남창시의 양복브랜드 앞의 광고판에 양복을 입은 공자와 노자가 출현을 하여,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며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해당 회사는 현재까지 공자와 노자를 이용하여 양복을 선전한 것은 최초이며, 매우 창의적인 생각이라고 자평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많은 시민들이 해당 광고판에 대해서 상업 규울과 도덕을 지키지 않고, 중국의 전통문화를 파멸시키는 행위라고 소리 높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소성의 해당 관원도 중국 전통인물에 대한 이러한 행위는 아직 관련 법규가 없지만 규탄 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하여서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바로가 보기에 아이디어는 최고입니다. 양복을 입은 노자와 공자라...하하하....저희가 언제부터 양복이 품위있는 옷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결혼식장이나 면접을 보러 가면 당연히 양복을 입고는 합니다. 한복도 양복 만큼이나 품위있는 옷인데 일상생활에서는 접할 수도 없고, 명절때나 혹은 아직도 남아 있는 사대부가 어르신들이나 입고 있지요.

예전처럼 입기 불편하고 가격도 비싼 한복이 아니고, 이미 개량 한복이 많이 나온 와중에 이렇게 양복만을 숭배하는 현실에 대해서 살짝 고민해 봅니다. (저도 여름이면 개량 한복 입고 다니는데, 같은 한국분들에게는 미친넘 소리를 듣는 답니다. 음하하하하....개량한복 입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얼마나 편안한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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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55개의 민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전체 인구에 소수에 불과하면, 중국인구의 절대적인 다수는 한족汉族이라고 불리는 华夏族화시아족이 잡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단군을 시조로 추대하고 경배하듯이 화시아족은 황제皇帝를 시조로 추대하고 경배한다.

문제는 2007년 올해 4월 19일에 열리는 황제 숭배 행사를 CCTV라는 중국 최대의 공영방송에서 생방송으로 방송을 한다는 것이다. 황제는 화시아족의 시조로서 숭배됨으로 이것은 민족주의로의 회귀이며, 기타 소수민족을 무시하겠다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제는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중에 하나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생략하면, 이 행위는 유교의 화려한 복귀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교의 세계관은 간단하다. 우리 화시아족 말고는 모두가 이민족이고, 야만족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두렵기만 하다.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은 학문적으로 싸울 필요조차 없는 고구려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걸어가고 있는 유교 제국 주의이다. 고구려 문제도 이에 파생된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무를 보다가 숲을 못 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http://www.xinzheng.gov.cn/dhbz/sign.jsp/
직접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인터넷으로 싸인을 받는 싸이트이다. 하지만 제발 가서 난리 치지 말았으면 한다. 냉정한 시각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보자. 그리고 저기 가서 난리 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나쁘게 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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