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浩《民间信仰的屈服与融合-以魏晋南北朝为例》《民俗研究》2009.2,P97 : 본 논문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북방민족의 민간신앙을 서술한 이후, 북방왕조들이 점차 자신들의 민간신앙을 없애고, 한족의 신앙으로 대체해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일단 간단한 심정을 밝히면, 제목에는 융합이라고 해놓고, 정작 써놓은 내용은 싹다 한족의 문화에 굴복을 했다고 서술하는 행태에 대해서 냉소를 날리고 싶다. 맨 마지막에야 융합을 이야기하면서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융합의 기본적인 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1) 상층부의 정책과 실제 민간신앙의 전파는 구별이 필요.
본 논문은 상층부에서 본래 북방민족의 제사를 금지하였기에 한족의 신앙에 굴복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 많은 역사적인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상층부의 금지와 실제적인 민간신앙의 존폐와 융합여부는 그리 관련이 없다. 오히려 상층부에서 강력하게 막는 민간신앙일수록 실제로는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해당 내용에서 마치 대단하게 거론되는 위문제(魏文帝)의 조서도 본인이 볼 때에는 그만큼이나 강력하게 민간에서 한족 외의 제사가 범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2) 민간신앙은 민간신앙끼리의 내용변화에서 찾아야…
위진남북조. 정확히는 동한말부터 시작된 북방민족의 대거 남하로 중원문화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본인으로서 이번 일에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도교의 대유행이다. 현존하는 사료가 기본적으로 유가에 의해서 집필되었기에 많은 부분에서 무시당하지만, 실제로는 도교가 가장 강력한 종교집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고증까지는 해보지 못했지만, 아마 이 시기의 도교는 상당부분 북방민족의 샤마니즘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왜냐하면 위진남북조 도교의 사상이 기본적으로 샤마니즘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비롯하여 다양한 신령의 존재여부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닮아있다. 그런 면에서 북방민족의 샤마니즘과 중원의 도교가 자연스럽게 결합하였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또한 훗날 전파되어서 도교의 자리를 위협한 불교의 경우도 북방민족에 의해서 먼저 믿어지고, 중원지방으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융합의 개념을 좀 제대로 잡자.
문화끼리도 굴복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동북아시아에서 우리는 모두가 서양식 복장을 입고 있다. 한복을 입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상태이다. 그러나 완전한 굴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서양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는 동양철학에 대한 탐구는 바로 이러한 것을 대변한다. 고로 본 논문처럼 옷보다도 더욱 고차원적인 민간신앙에 있어서, 한족의 민간신앙이 북방민족의 민간신앙을 굴복시켰다는 식의 전개는 기본적인 개념이나 현상파악을 제대로 못했다고 혹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속이...죽을거 같아;;;;;;;;;;;;;;;;;;;;;; 아버지..ㅠㅠ 이 정도의 술은..아니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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