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언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우리민족 최초의 단일국가가 탄생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 신라는 또 하나의 전쟁을 치루고서야 비로소 완전한 통일국가가 되었는 바, 이는 동맹국이었던 당나라와의 전쟁이었던 것이었다.
나·당동맹 체결 당시 당 태종은“백제의 영토와 평양 이남의 고구려 땅은 신라에게 준다”라고 김춘추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을 저버리고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강대국의 위세로 멸망한 백제, 고구려와 같이 신라도 속국으로 삼고자 하는 당나라에 대하여 신라는 7년간의 대당전쟁에서 군사적 실력으로 당당하게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고서야 자주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신라는 지상군뿐만 아니라 수군의 효과적인 작전으로 당나라 군대를 곤경에 빠트려 결국은 군사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신라 수군이 이 전쟁에서 어떠한 활약을 통하여 전쟁의 승리에 기여했는가를 살펴보고, 현재의 우리 해군에게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하는 것이다.
2. 나·당연합군에 의한 백제, 고구려의 멸망
가. 정세
고구려, 백제 두 나라와 적대관계로 국운을 걸고 싸우기가 어려워진 신라는 김춘추와 김법민 부자를 당에 보내어 나·당 군사동맹을 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 수에 이어 고구려를 정복하는 데 실패를 거듭한 당의 고종은 고구려에 대한 정복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당 고종은 655년부터 고구려에 대한 침공을 시도하지만,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아무런 소득없이 회군하고 만다. 여기서 당은 신라의 요청에 따라 고구려보다 먼저 그 후방에 있는 백제를 공략하여 후방기지를 만들고 고립된 고구려를 전후에서 협공하자는 전략으로 변경하면서 신라와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고구려·백제·일본으로 이어지는 남·북연합세력과 신라·당으로 이루어진 동서세력의 대결 국면으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나. 백제의 멸망
당 고종은 660년에 소정방(蘇定方)을 총지휘관으로 임명하고 병력 13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정복할 것을 명령하였다. 소정방이 거느린 당군은 산동반도를 떠나 황해를 건넌 후 남하하여 6월에 아산만의 덕적도에 도착하여 신라의 왕자 법민이 인솔한 신라 전선 1백 척과 합류하였다. 나·당 양국의 지휘부는 여기서 백제 침공에 대한 연합작전 계획을 토의하여 결정하게 되었다. 즉 당군은 바다 길로 남하하여 백강(금강하류)으로 들어가고, 신라군은 육로로 백제의 동쪽 국경선을 돌파하여 사비성(부여)으로 진출하여 7월 10일 사비성에 대한 연합 공격전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소정방의 당군이 백강 입구인 기벌포(伎伐浦)에 이르렀으나, 의자왕은 그곳을 지키지 않고 수군으로 하여금 사비성 부근의 백강을 지키게 하고 육군에게는 그 강변에 진을 치게 하였다.
백제의 수군을 파하면서 백강을 거슬러 들어가 사비성 부근에 상륙한 소정방의 보병과 황산벌에서 개백의 5천 결사대를 격파하고 도착한 김유신의 5만 신라군이 도성에 육박함에 따라 백제군은 총력을 다하여 항전하 였으나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고 말았다. 13일
사비성을 지키고 있던 왕자 융이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고, 18일에는 웅진성에서 왕과 태자도 모두 항복하였다. 이리하여 678년의 사직을 이어온 백제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다. 고구려의 멸망
신라와 당이 백제를 집중 공격한 것은 그 목적이 단순히 백제의 격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동방의 강자인 고구려를 격멸하기 위한 예비작전이었던 만큼, 백제를 격멸시킨 후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에 대한 침공을 계획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661년 4월 백제를 정복한 소정방의 원정군은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향하여 출전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신라는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이 김유신 장군을 파견하여 당과 합동작전을 전개하게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조직적인 저항과 연합, 합동작전의 차질로 나·당 연
합군의 1차침공은 실패하고 말았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당 고종의 지시로 667년부터 당 수륙군의 본격적인 제2차 고구려 침략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신라의 김가실이 지휘하는 수군도 당의 수군과 같이 행동하였으며 또한 육상으로는 김인문 등이 신라 육군을 거느리고 북진하여 당의 이세적 군과 합류하여 연
합작전에 들어갔다. 이때 동원된 신라군은 총 20만 명이었다.
고구려군은 남·북으로 그리고 수·륙으로 우세한 나·당 연합군에게 제압 당한 후라 아무리 성이 견고한 도성이라 하지만 평양성 하나로는 버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양식과 무기가 떨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하니 성의 함락은 시간문제라고 본 고구려군은 백기를 들고 당에 항복함으로써 결국 668년 9월 12일에 평양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한반도와 만주일대를 호령하던 고구려는 28대 보장왕을 끝으로 705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3. 신라의 대당 해전
가. 배경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한반도내의 백제와 고구려의 고지를 놓고 당과 대결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당은 신라와 연합작전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다음에는 그 전공을 모두 자기네 것으로 돌리고 두 나라의 땅을 송두리채 자기들의 영지로 만들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라까지 자기들의 지배하려 하였다. 당은 백제 점령지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고, 고구려 점령지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왕을 계림도독(鷄林都督)으로 임명하여, 결국은 신라도 멸망한 백제 및 고구려와 동등한 위치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국을 통일하는 데 당을 이용하였을 뿐이었기 때문에 당의 이러한 처사를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라는 당에 대하여 부당성을 들어 항의하는 한편,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대당 저항운동을 사주하고 원조하였다. 그리고 당에서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많은 병력을 출동하여 침략자로서 야욕을 들어냄에 따라, 신라는 본격적으로 해륙상의 병력을 출동하여 당군에 대한 소탕전을 전개하니 이제는 신라의 대당 전면전이 한반도 내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나. 전쟁 경과
1) 초기 전투
우선 신라는 백제지역의 당군을 공격하여 671년에는 사비성을 함락시켜서 웅진도독부를 축출하고 대신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였다. 이로서 신라는 백제 고토를 당의 군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곳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당의 고종은 이를 문책하기 위하여 설인귀의 수군을 출동시켰는데, 신라의 수군과 백강 입구에서 조우하여 신라군에게 대패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 11년 10월 6일에 신라의 김당천 부대가 출동하여 당의 군량수송선 70여 척을 격파하고 적 수송부대 지휘관 랑장겸이대후를 비롯한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았는데, 이 때 물에 빠져 죽은 당 수군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옛 백제지역에서 고전중인 당군을 해상으로 지원하고자 한 설인귀의 계획은 큰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우세한 군사력으로 신라를 제압하기로 한 당에서는 고간, 이근행 등이 지휘하는 육상부대들의 수만의 병력으로 임진강선까지 밀고 내려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신라의 수군은 육군과 협력하여 당의 침략군을 분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즉, 673년 8월에는 대아찬 김철천이 왕명으로 병선 1백 척을 이끌고 서해에 수군 근거지를 설치함으로써 제해권을 장악하고 수륙병진을 기도하는 당 수군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 조치는 당의 수군이 서해안을 통해 당 육군에 보급을 지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2) 매소성 전투
이러는 동안 당은 신라에 대해 강·온양면의 방법으로 저항을 잠재우려 했으나, 신라 역시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가급적 정면충돌을 피하고 화전양면 정책으로 대응하면서 실질적인 영토 확장을 추구하였다. 674년 당 고종은 최종적으로 유인궤를 총지휘관으로 한 10만 명의 대병을 출동시켜 대규모적인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신라 장군 문훈은 수륙군을 지휘하여 한강 하구 일대에서 설인귀가 지휘하는 당 수군을 맞아 싸워 크게 개가를 올렸다. 이 싸움에서 신라군은 적 병선 40척과 군마 1천 필을 노획하고 적병 1,4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 렸다.
그리고 신라군은 계속된 육상전투인 매소성(買肖城)전투에서 이근행이 지휘하는 20만 당군과 싸워 수만 명 사살, 군마 3만 마리와 3만 명분의 무기와 장비를 노획하는 등 적의 주력을 격파하는 혁혁한 전과를 얻음으로써 지상전에서도 승기를 잡게 되었다. 이어 신라군은 임
진강 근처에서 18차례의 전투 끝에 육지에서 당군을 완전히 후퇴시켰다.
육상전투의 결정적인 승기를 장악한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십여 만의 당나라 대군에 필요로 하는 다량의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수군을 신라의 수군이 사전에 해전에서 격파함으로서 당군의 군수물자 결핍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즉 가장효과적인 수·륙합동작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675년 9월에는 백수성에 육전대를 상륙시키기 위해 침공한 설인귀부대에 대하여 신라는 수·륙양면으로 공격하여 이를 물리쳤다. 육상에서는 신라장군 문호가 적의 상륙군을 격퇴했으며, 해상에서는 적선 40여척을 나포하고 적병 1,4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3) 기벌포(伎伐浦) 해전
거듭되는 패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는 또다시 설인귀가 지휘하는 원정함대를 편성하여 676년 11월에 옛 백제지역으로 침공하였다. 침공 소식을 접한 신라는 사찬 김시득이 지휘하는 수군이 출동하였다.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설인귀가 지휘하는 당 수군과 조우하여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신라수군은 첫 교전에서는 패하였으나 곧 바로 전열을 가다듬고 기동전에 유리한 외해로 적을 유인하여 이후 무려 22회나 되는 끈질긴 접전을 치룬 끝에 대승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에 적병 4천 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기벌포 해전의 승리는 나당전쟁에서 정규수군 간의 교전으로서 그 규모와 치열성에 있어서 가장 의미가 있는 해전으로서 신라수군이 외해에서 기동전을 전개할 수 있는 전투력과 전술적, 기술적 우세를 시위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당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평양의 안동도호부를 요동의 신성으로 옮기게 된 것은 이 기벌포 해전에서 패전한 데 기인한 것이다.
신라는 청천강 이남의 지역을 확보한 이후 당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하여 당에게 사과하는 외교 적 조치를 취하여 당의 체면을 세워 주는 한편, 당이 한반도에 간섭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명실공히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4. 결언
삼국 중에 제일 소국인 신라가 강국인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고 나아가 실력으로 당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하여 삼국을 통일함으로서 우리의 역사가 한민족 단일 국가로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백제는 해상방어를 소홀히 한 결과로 소정방군이 바로 수도인 사비성을 지향한 것이 백제에게는 결정적이었다. 여기서 백제 수군이 당군을 금강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방어전략을 구사했으면 이후의 백제 부흥군 운동 등의 활동으로 보아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 또한 60여 년간에 걸처 수·당의 수륙병진의 피해를 번번히 겪으면서도 해상방위에 소홀히 한 결과, 국가 방어의 핵심인 수도 평양이 집중 공격을 당함에 따라 종국에는 나라를 잃는 데까지 이른다.
이에 비하여 신라는 당군과의 해륙상 연합작전을 가진 짧은 기간 중 수군의 활용에 대한 경험을 잘 살려 결국은 당의 수군을 물리치고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즉 대당전역에서 신라의 수군은 육군과 협력하여 당군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당의 수륙작전을 배워 이를 역이용함으로써 당군을 격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신라는 당의 상투수단인 상륙작전을 간파하고 또한 백제와 고구려의 실패를 교훈삼아 서해안의 해상방위 태세를 미리 강화하였으며, 또한 당의 군량수송선을 집중 차단함으로써 당의 육군이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었다. 또한 필요시는 육군을 지원하여 상륙작전을 전개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당군을 축출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종국에는 당의 정규수군과 해상 결전에서 당당히 이를 물리침으로서 전쟁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는 해상으로부터의 침공에 매우 취약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것이다 . 나당전쟁에서 강대국의 침공을 물리치는데 신라 수군의 활약이 지대했다는 사실은 주변국의 해상 위협이 증가되고 있는 현재의 한국해군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할 것이다.
바로의 중얼중얼
내용은 중학교 수준만 있으면 모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교양을 늘린다는 생각으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Amun-Re 라와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를 반쯤 섞어놓은 듯한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의 제작 군단이 뭉쳤다
1997년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를 발매하였던 Hans im Gluck 과 Reiner Knizia 가 다시 뭉쳤습니다. 이번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아닌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과연, Deutscher SpielePreis 를 수상한 경력이 있는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를 능가할 만한 게임이 나왔을 까요? 자세한 설명은 뒤에 하기로 하고 우선 구성물부터 살펴보죠.
멋진 이집트 배경의 게임
이집트와 Reiner 하면 바로 [라] 가 떠오르실 것입니다. [라]에서도 무척 깔끔한 구성물이 인상적이었는데요. Amun-Re 역시 깔끔한 구성물을 자랑합니다. 사실, 컴포넌트 얘기를 하면 아티스트를 빼놓을 수 없는데, Franz Vohwinkel, 이사람 저는 잘 몰랐는데,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더군요. Alea 박스 시리즈는 거의 대부분 했고 ([라] 도 했습니다.), [티칼], [토끼와 거북이], [사무라이], [푸에르토 리코] 등등 보시면 "아니 이게임도 이 사람이 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보드게임을 디자인 했습니다. 문제는 많이 했다는 것 뿐 아니라, 전부 멋있다는 점이겠죠. (^o^)
태양이 떠오르는 박스 디자인 부터 무척 인상적인데요. 카드 뒷면 디자인이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라서 태양에 대한 이집트 인들의 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게임판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고, 또, 게임판의 위아래로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로 나누고 있습니다. 총 15개의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지역별로 농경지 등의 자원을 나타내기 때문에, 약간 어수선한 구성이지만, 익숙해지면 게임판에 모든 정보를 나타내고 있는 [라] 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무척 귀여운 피라미드인데요.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게임판에 직접 놓고 보면, 마치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 굳건히 서있는 실제 피라미드를 보는 듯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벽돌의 경우, 한가지 색깔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약간 흰색을 섞어서 마치 실제 고대 벽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에 흰색이 섞여 있어서, 불량이 아닌가 의심했었지만 알고 봤더니, 일부러 섞은 것이었던 것이더군요. 작은 것까지 신경쓰는 아티스트의 열정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박스 일러스트부터 강렬하다!
간단하면서 직관적이며 전략적이다!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가 특유의 전략성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게임상을 놓친 이유를
저는 너무 게임이 딱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 게임 자체를 보면, 무척 훌륭하고 최고의 전략 게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나, 게임이 너무 딱딱하고 치열합니다. 테마는 문명 건설을 하고 있지만 실상 느낌은 체스나 바둑을 두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Amun-Re 는 티그리스의 그런 단점을 벗어나, 친절함과 윤기를 잃지 않으면서 전략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마치, [라] 와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 를 반반씩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 이후로 달라진 크니지아의 모습, [테마]를 충실히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 스바라시~~~)
게임은 고대 이집트의 왕이었던 파라오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각 파라오들은 이집트의 15개의 지역중 일부를 지배하고 농경과 피라미드를 건설해서 점수를 얻습니다. 게임은 고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로 2개로 나눠어집니다. 그리고 각 시대는 3개의 라운드로 구성됩니다. 3번의 라운드가 끝나면 고왕국이 끝나고 점수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다시 신왕국을 3번 라운드 하고 점수계산하면 게임이 끝납니다. 간단히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각 라운드에서 플레이어 수만큼 지역 카드를 펼칩니다. 그리고 펼쳐진 지역을 놓고 경매를 하죠. 이렇게 모든 플레이어가 한 지역씩 가져갈 때까지 경매를 한 다음에, 자신이 소유한 지역에 농부나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시대의 끝에 점수 계산을 하죠.
전체적인 흐름은 여러번의 경매가 끝난 뒤 점수를 계산하고, 또 일부 것들은 계산하고 사라진다는 점에서 [라] 와 비슷합니다. Amun-Re 의 경매 시스템은 어떤 게임과도 다른데요. 전 플레이어가 비딩한 값보다 높은 값으로 비딩해야 한다는 점에서 [라] 와 비슷하기도 하고, 경매가 끊임없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계점이 있다는 점에서 [New England] 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고 단순하다는 점과, 게임과 잘 어울리는 점이 역시 크니지아 답다는 탄성을 안할 수가 없죠. 그리고, 수입을 받는 시스템도 무척 독특합니다. 각 라운드 별로, 플레이어들은 금화를 사용해서 Amun-Re 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데요. 이 제물을 얼마큼 바치는 가에 따라서 그 라운드의 나일강의 범람의 양이 달라집니다. (^^) 범람을 많이 하면 그만큼 농사도 잘되죠. 그 경우, 농부들이 벌어오는 돈이 늘어납니다. 즉,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많이 바쳐야 하는 것이죠. 이때, 얼만큼 바치는 가는 비밀이기 때문에, 서로 얼마나 바치는지에 대한 신경전도 대단합니다. (^^) 전체적으로 보면, 돈을 벌어오는 것은 농부이고, 점수는 피라미드로 얻습니다. 피라미드는 돈으로 짓죠. (^^) 돈을 벌기위해서는 점수가 낮아지고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상관관계가 잘 어울려 있습니다.
문제는 고왕국 시대가 끝나고나면, 모든 것은 모래에 묻히지만 (모두 제거됩니다.) 피라미드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죠. 마치, 우리가 고대 이집트 왕국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유물인 피라미드만이 남아서 찬란한 옛시대를 상징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농부는 아무리 많이 뽑아봤자 점수도 안되고, 시대가 끝나면 모두 사라져 버린 다는 것이죠. 그러나, 돈을 벌려면 농부를 아니 뽑을 수 없게 됩니다. (^^)
텍스트가 전혀 없는 카드, 그림만 봐도 무슨 기능인지 단박에 알수 있다.
Amun-Re 는 마치 제가 처음 [라]를 했을 때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라] 는 군더더기 없이 무척 깔끔한 경매가 인상적이었죠. Amun-Re 는 [라] 하고는 다른 게임이지만 게임 시스템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흠잡을 곳이 없죠. 더군다나 [라]의 경우에는 "그래 게임은 좋다 이거야! 이게 이집트 문명이랑 무슨 관계냐고!" 라고 부르짓을 수 있었지만, Amun-Re 는 테마와도 너무나 잘어울립니다. 티그리스 처럼 지역을 차지하기도 하고, 또 다음 시대가 되면 앞서 지역을 차지했던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의 소유가 되기도 하면서, [라] 처럼 설명하기 편하고, 게임이 머리에 착착 들어오는 맛이 있습니다.
마치, [라] 의 좋은 점과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의 좋은 점만을 적절히 혼합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Amun-Re 분명, 올해 크니지아의 오랜 한을 풀어줄 대작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너무 좋은 말만 쓴 것 같지만, 정말 좋은 게임입니다. (^^)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플레이 해보고 싶군요.
아문레에 대한 고수의 토크?!
"" less="......별로..그리...야하지는...-_">
요 며칠간 비가 내렸다. 요즘같이 더운 날,
이렇게 간간히 내리는 비는, 나같이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 더할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다.
비가 그치고 내가 느끼는 그 정화감과,
서서히 내 머리에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얼마전에 만났던 태양같은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와의 첫경험은 어느 새벽이었다. 화려한 겉옷을 벗겨내자,
나는 그녀의 강렬한 겉모습속에 숨겨진, 살색의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녀의 언니들과
비교해볼때, 그녀는 너무나도 완벽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언니들과의 하룻밤들은 즐거웠지만, 평소 다른 여인들과
맛보았던 그 느낌과 다를바가 없어서 적잖게 실망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여지껏 상대해왔던 그녀의 언니들과는 다른
깊은 맛이 있었다. 약간은 까탈스러운 듯이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밤을 보낸다'라는 것에 너무 수줍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판을 벌였을 때, 나는 드러난 그녀의 나신에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부터 공략 할 것인가!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결한 백지장 앞에서의 그 주저함. 푸딩보다 섹시한 탱탱한 순두부를 차마 먹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이렇든 잠시 느낌표로 굳어 있는 나를 향해 그녀는 속살 깊숙히 숨겨두었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로는 노예를 부리는 악랄한 새디스트처럼, 때로는 자애로운 여신처럼... 나는 그녀의 발 아래 무릎꿇은 얌전한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수확을 위한 씨! 나는 그녀를 위해 열심히, 철저히 뿌려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낙타와 같은 느긋함을 보이기도 하고, 홍수같은 빠져나올
수 없는 격렬함도 보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얼마의 대가
를 지불했나에 따라 달라졌다.
그녀는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나는 그녀라는 신전앞에 선 보잘 것 없는 완벽한 노예였던 것이다.
점점 그녀의 살색에 우윳빛이 감돌기 시작했고, 우리는 격렬해
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도 높아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피와 살을 나눠가진 피라미드 같았고, 내가 그것을 가까스로 넘을 때 마다, 또 다른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나를 막아섰다.
이 때 그녀의 숨겨진 테크닉들이 나를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매 단계때마다, 그녀는 전혀 새로운
힘들을 나에게 선사했다. 다른 곳을 공략하려는 나를 끝까지
쫓아오며 끈질기게 물어지기도 하고, 더 이상 공략할 곳이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는 끝까지 남아서 요구하기도 했다. 그녀의 요구는 끝이 없었지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면 정확하게 3번의 비명을 질러댔다.
폭풍같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녀는 나에게 멈추지 않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그동안 비축했던 힘들을 마지막을 위해 몽땅
쏟아 부었고, 이번에는 그녀가 비명을 지를 차례였다.
위, 아래, 좌, 우, 때로는 꿀이 흐르는 강 주변을 공략할때마다
그녀는 3번씩 비명을 질러대며 이전과는 다르게 사정없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홍수처럼 모든 것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걸로는
1시간이 넘는 기나긴 사투를 설명할수는 없다. 그녀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너무나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내게 건낸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한 번 더?"
아...! 문례씨... 더 이상은.....
사족. 뒤늦게 접한 소식인데, 그녀가 2003년 독일 미녀 컨테스트에서
최종후보상에서 떨어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아마도 간단하면서도 쉽게 꼬실 수 있는 여인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단의 구미에 문례씨는 그다지 맞지 않았나 보다.
바로의 중얼중얼
솔직히 보드게임초보자들에게 권하기에는 조금은 문제가 있는 게임입니다. 잔잔한 조그마한 규칙틀이 많이 있어서 게임을 하기 전에 그것을 모두 이해시키기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을 친구들에게 반드시 설명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분이시라면, 한번 간단하게 "상이집트"만 돌려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조그마한 룰들의 효용은 그것을 직접 써보며 왜 그런 규칙이 생겼는지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단, 위의 리뷰에서는 파워카드가 쉽다고 나왔지만, 대부분의 처음 하시는 분들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어합니다. 이 부분은 따로 팁이 없이 열심히 설명하는 수 밖에......
조금은 어려운 게임일 수도 있지만, 큰 재미를 여러분에게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게임도 아닙니다. 한번만 게임을 돌리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뱀다리 : 보드게임을 전파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나중에 따로 포스트를 적겠지만 아예 처음부터 어렵다는 말 자체를 하지 말고 리코, 아문레, A&A따위를 가르치면 됩니다.(전 그런식이었다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각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설령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연인에게도 자신의 마지막 남은 가면은 벗지 못하고 본인의 모습을 감추는 겁쟁이들이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대리만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본연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가면벗기기를 소설, 영화, 연극등을 통해서 대리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었던 것은 아닐까?
1) 무한 카타리시스...
인터넷이라는 한 가지의 도구가 등장함으로서 우리의 대리만족의 범위가 극한으로 넓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가면벗기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서 가면벗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에 인간이 처음으로 접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가면벗기"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그 가면 벗기는 완전히 자신을 공개하고 행하는 가면 벗기가 아닌 익명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곧 다른 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관음증(다른 사람의 가면벗기를 관찰)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2) 아날로그로의 향수...
사람들은 이제 가면벗기를 시도하지만, 예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영웅과 바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며 거부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익명성과 반대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싸이월드의 일촌과 네이버 이웃이라는 개념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실명성제도이다. 간단히 생각하여, 싸이월드에서는 서로가 실제 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온라인에서 재접촉을 하게 된다. 즉, 이미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기에 그들은 결코 자신의 가면을 벗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면벗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전통의 편안함에 행복할 수 있다.
3) 민족의 가면...
민족성 논란만큼이나 복잡하고 애매하며 혼란스러운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국이라는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만을 가지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한국이라는 곳의 전통문화는 효도와 충성으로 구성되어있고, 군대와 같이 계층적통치구조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보조기구이다. 이런 전통문화 속에서 서민들은 "하회탈 마당"이라고 하는 놀이 형식으로 양반들의 부조리를 비웃으며 희화적으로 표현했었던 것이다.
물론 한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가면들도 어느 정도의 사회비판의 기능이 있었던 것들도 있지만, 서양의 가면은 스스로 즐기기 위함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중국의 가면도 그 사람으로 분장시킨다는 기능이 더 많을 뿐, 사회비판적 측면에서는 가면의 역활이 뛰어나게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가면이라고 함은 샤먼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귀신 혹은 영혼과의 대화를 위한 보조도구의 기능이 있으며, 우리는 가면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특수한 문화양태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동시에 하회탈과 같이 생활같이 익숙하게도 받아들이는 모순적인 부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도 인터넷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하회탈이 그러하였듯이 자신을 감춤으로 해서 더욱 강력하고 개방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비평하고 있다.
4) 자유와 책임의 경계에서...
문제는 익명성을 악용함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펌이라는 형식을 빌린 저작권 도단도용행위, 아무렇게나 내뱉은 욕설과 비방,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마구잡이의 행동들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다.
익명성을 발언의 자유를 극대화 시키는 도구라고 정의했을 때,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동등하게 지불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자유와 책임에 관한 오래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자유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 라는 애매모호한 정의로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익명성의 특성상 그에 따른 책임자를 색별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런 이유로 책임을 강조하기 전의 책임자의 색별자체가 상당히 힘들고, 각각의 사용자들의 스스로 익명성의 책임을 지키고, 다른 사용자에게 전파해야된다라는 애매모호하고 책임성이 없는 대안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대안은 네티켓을 지키라는 말로서 그 생명력을 얻어왔고, 그 네티켓의 책임범위는 각각의 사용자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현재에 이것에 대한 유일한 대안을 골라내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특히 인터넷처럼 성문법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공공적 처벌이 관습법(...)에 의해서 시행되는 곳에서는 대안을 찾아내기가 더욱 힘들다.그렇다고 성문화 된 법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처음 시도된 스스로에 의한 가면벗기에 반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기본 원칙 속에서 그 어두운 면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지금 현재로서는 필요악의 개념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5) 진정한 자유를 향해서...
인간은 인터넷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가면벗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행위의 결과로 인류가 더욱 안 좋은 쪽으로 향할지, 아니면 자신의 가면벗기를 완료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가 힘들다.
사람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자신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사람은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자신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자신과 대등한 상대를 죽여요.
- 이영도님의 <피를 마시는 새>중에서...
끝까지 확신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은 인간이 악의보다 선의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 조그마한 차이를 믿고 언젠가 대등한 존재를 자신처럼 받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필수요소이며, 가면 벗기를 그 과정의 일부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지막 부끄러움이자 방패인 가면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나 자신조차도 많이 의심스럽다. 지구의 시계에서 고작 4초만은 차지하고 있다는 인류는 아직은 변화를 위한 활기와 용기가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바로의 중얼중얼
익명성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정리했습니다. 조금 산만한 기운이 없지 않지만, 그냥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봐도 논리적인 헛점은 미루어두고, 일단 제대로 된 대안제시조차 못하고 얼버무린 것이 많군요. 죄송합니다.
이넘의 라틴어를 끝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집중해서 끝맺음을 하기 힘들군요. 다음주에는 삽질하러(알바하러) 가야 되서 조금은 괴롭습니다. 하루에 최소 한편은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30일까지는 다 적어놓았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아시아 안보뿐만이 아닌 세계안보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고,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안보전략에 있어 핵심 축(軸)이고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하여 지역 내 안정자 역할을 과거와 같이 미래에도 변함없이 수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이러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1년 9월 11일 미 본토 테러 공격이후 미국의 세계 안보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 사례가 미 군사력 해외주둔 및 해외기지 운용 개념 재설정이며, 이러한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국가는 아마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일 것이다. 실제 미국은 지역 내 기존의 양자간 동맹 범위를 동맹국 안보에만 국한하기 보다는 지역 또는 세계안보 차원으로 확대를 희망하고 있어 향후 지역 내 두 개의 안보 핵심
축인 한-미와 미-일 동맹 역할과 위상이 크게 변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미 2사단의 한강이남 이전(移轉)과 미 2사단 일부 병력의 이라크 전개 결정으로 한-미 동맹의 목표인 북한 군사위협 억제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이 미-일 동맹을 지역 내 안보 중심 Hub로 발전시키고 있어 향후 한-미 동맹 위상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미 행정부가 아시아 안보전략에 있어 한국이 일본보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를 고려한다면, 한-미 동맹 위상 변화에 대한 우려는 쓸데없는 기우에 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동맹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한국은 북한의 직접적인 대규모 위협에 직면해 있는 분단 국가로써 미국과 함께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함께 싸운 경험이 있다. 지금도 양국은 한반도 비무장지대에서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동맹국도 미국과 이러한 동맹 관계를 형성하는 국가는 없다. 반면,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시 미국과 싸운 부끄러운 과거와 전후 군사대국 부활을 꿈꾸는 국가로 지역 내 국가로부터 불신을 아직도 받
고 있다. 쉽게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은 미래지향적 역할 제시보다는 과거지향적인 자기 합리화를 통한 자국 역량 향상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과 함께 양국 공동이익을 위해 전선에서 혈맹으로 싸울 수 있는 파트너(partner)인 반면, 일본은 미국을 이용하여 자국 역량확대를 꾀하고 있는 협조자(collabrator)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미-일 동맹 신안보가이드라인
이 공개될 때 주변국의 우려가 대표적 사례이다. 일본 해자대의 미국의 대테러 전쟁 지원도 일본만이 작전에 적합한 이지스 대공방어체계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었고 작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 전면적 군사위협에 직면한 한국은 적합한 이지스 대공방어체계를 탑재한 구축함도 없었고, 만일 보유하고 있어도 한반도 전역에서의 동시적 작전 수행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한국 은 상륙함을 파견하여 미국의 대테러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중 어느 동맹이 지역안보 및 전 세계안보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쓸데없이 미국은 미-일 동맹에 비중을 두어 주변국의 오해를 초래할 필요가 없다.
둘째, 동맹 수준과 범위가 다르다.
북한 위협과 지역안보 안정을 위해 한국은 나토 최고사령부 형태와 유사한 연합군사령부 지휘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 및 무기체계는 물론, 작전 교리 및 전술 교범에 있어서도 상호 긴밀한 작전 운용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합훈련인 을지훈련(UFL)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마디로, 한국은“상호 방위동맹-연합사 체계-주한 미군”으로 연결되는 긴밀한 동맹체제를 이루고 있다. 반면, 미-일 동맹은 전후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평화헌법에 따른 방위분담 차원이다. 일본 평화헌법은 전후 일본이 지향해야 하는 국가목표와 지역 내 역할을 말해 주는 근거이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의 지역 내 역할 범위를 고려하다면, 미-일 동맹의 적용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상호보완적인 군사협력 관계 형성이 어려우며, “방위조약-양국 군사지휘체제-주일 미군”간 추구하는 의도와 목표가 각기 다르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포함한 지역 내 국가들은 미-일 동맹에 따른 일본 군국주의 부활 억제를 지역 내 안정자 역할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얼마나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 우려되면“자위대(self-defense force)”라고 정의했을까?
셋째, 한국이 일본보다 미국의 군사력 해외주둔 및 전진
배치에 비교적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다. 이미 한국은 안정적 주한 미국 주둔을 위해 적정규모의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 또한, 미 2사단 이전을 위한 기지용 토지 확보 및 예산에 있어서도 한국 정부의 역할은 매우 적극적이다. 최근 반미 감정이 표면화되고 있으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주한 미국의 안정적 여건이 마련되는 것에 대해서만은 이견이 없다. 지리적 환경 역시 한국이 일본보다 안정적이다. 과거 필리핀 슈빅 기지 철수 결정 원인 중 하나가 화산 폭발과 같은 주변 환경적 원인이 크게 작용했다. 사화산이 주류인 한반도에는 지진 및 화산의 위험이 거의 없으며, 이미 전략적 또는 작전 군사기반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어 경제적이다. 또한 한국은 주한 미군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훈련장을 제공함으로서 해외주둔 미 군사력 전투태세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산악지형에서 군단급 야전 훈련이 가능한 훈련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한-미 양군 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보화 첨단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야전 경험과 지식은 전쟁 승패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는 이라크 전쟁에서 증명되고 있다. 미국 해외 기지 중 이러한 기반체계가 갖추어진 실전적 야전 훈련장을
보유한 동맹국은 아마도 한국 이외는 없을 것이다.
넷째, 지정학적으로 한반도가 일본 열도 보다 가치가 높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이에, 과거 미국이 일본을 불침 항공모함 역할로 간주하고 군사전략적 비중을 두었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발상이었다. 과거 구소련 Mig-21기의 일본 망명 사건이 일본 열도의 지정학적 한계를 나타내어 준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 한반도는 유라시아로 연결되는 아시아 대륙의 가장 주변지역이며, 이러한 지정학적 여건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및 유라시아 전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북한 핵무기 보유 의혹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같은 북한의 지역 안보 위협 요인만을 고려하더라도 한반도가 일본 열도보다 지정학적 가치가 더 높다. 예를 들면, 아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유일한 군사적 요인이 북한 핵무기 보유라는 사실에서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크다. 아울러 향후 예상되는 분쟁지역에 미국이 군사력을 전개함에 있어서도 한국이 일본보다 전술적으로 유리하다. 일례로 오끼나와는 지리적으로 취약하고 태풍 등의 기후적 여건이 약하고 미 군사력을 분쟁지역에 신속히 전개하는데 있어 방어에 있어 제약점이 많다. 이런 점에서 일본 본토 역시 전술적으로 유리하지 못하다. 인구 밀집도 그리고 특유의 섬나라 폐쇄적 문화 등을 제약이 될 것 이다. 반면, 한반도는 신속한 군사력 전개에 있어 효율적이 고 해외기지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특히, 해외 미군기지를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또는 전술탄도미사일로부터의 방어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궁극적으로 아시아 안정과 평화 유지를 위한 미국 아시아 안보전략에 있어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씻어 버리지 못하는 섬나라 일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아시아 안보뿐만이 아닌 세계안보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고,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안보전략에 있어 핵심 축(軸)이고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하여 지역 내 안정자 역할을 과거와 같이 미래에도 변함없이 수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이러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의 중얼중얼
한-미 동맹이 중요하기는 합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한국은 약소국입니다. 우리 한국에게 요구되는 것은 냉정하게 세계정치구도를 보며 사다리 외교를 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솔직히 맨날) 한국이 외교를 엉터리로 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는 하지만 일단은 믿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건립된지 100년도 안 되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라이고, 아직은 많이 약합니다. 그래도 한반도 역대 국가들의 평균수명?!이 300년가량이었으니, 앞으로 100년뒤에 막강한 외교력과 군사력을 보유한 한국을 상상해 보는것은 어떨까요?
아는 녀석의 홈피에서 이 글을 보았습니다. 문득 든 생각이 "먼 생각이야! 이넘!"이었답니다.
중국어로만 적어놓으면 이미 중국에 대해서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들만 이 글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따로 이런 글을 안 봐도 생활인걸요. 정작 봐야될 사람들은 중국어를 못하고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번역 작업 들어갑니다^^::
뱀다리 :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름대로 바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어서(먼산-_) 뜻만 통하는 번역. 이른바 막가파입니다. 오타와 날림번역의 진수를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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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국민기질 비교서적 화제
중국의 30대 초반 작가가 한국 현지 취재를 통해 중국인과 한국인의 기질을 비교한 책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랴오닝성(遼寧省) 출신 소설가인 장훙제(張宏杰·32)는 중국의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무엇이 모자란가’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일간지 북경신보 등이 앞다퉈 책 내용을 발췌, 싣는가하면 서점가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특질에 대해 “한국은 하나의 큰 가정과 같다”며 “온 국민이 나라 일을 자신의 집안 일처럼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면서 이른바 ‘공한증’(恐韓症·역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단 한번도 한국대표팀을 이긴 적이 없음을 나타내는 단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목숨을 걸고 열심히 뛰는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을 중국 선수들이 도저히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한국인들이 국산 자동차를 애용하고 할리우드 영화에 빠지지 않는 모습에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들의 몸속에는 젊고, 뜨거운, 오염되지 않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 보호에 무심한 대다수 중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환경보호 의식이 높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고급 호텔도 녹말로 만든 녹색 이쑤시개를 사용하고 1회용 칫솔, 치약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중국이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충효인의(忠孝仁義)를 봉건 쓰레기로 취급한 반면 한국인들은 추석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정도로 공동체 의식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식당에서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차례대로 배식을 받거나 감시인도 없이 식권을 함에 넣는 모습, 공원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주었다.
왜!? 중국축구는 맨날 한국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일본정부는 한국에게는 사과하고 중국에게는 하지 않는 것일까?
왜?! 한국인은 외제차를 타지 않고 중국인은 외제차에 열광할까?
왜?! 코딱지만한 한국은 "한류"를 만들어내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수억가정의 TV를 점령했을까?
바로 : 한국인이 외제차에 열광하지 않았던가? 정말? 코딱지만해서 정말 미안하다. 솔직히 중국과 비교하면 조그마하긴 하다.일본에게 한국이 당한 것이 중국과 비교가 될까? 역사 공부 안해도 대답은 나온다. 아니다.
한중 양국의 문화는 상당히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의 발전은 중국에 비해서 빠르고 합리적이었을까? 중국인이 한국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중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물음표도 그 만큼 늘어만 간다.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하여 무엇이 부족할까?> 이 책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바로 : 한국이 더 빨랐던 건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 때, 문화대혁명하고 있었잖수?
작가 장훙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인과 중국인은 천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역사과 지리, 기후적인 이유로 한국인과 중국인의 성격은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문화의 발달과 성숙은 중국인을 넘치도록 원만하고 교활(총명)하게 만들었다. 조선사회의 경제는 장기적으로 낙후된 상태에 있었고, 조선인들은 장기간 소박한 본성을 간직하였다.
바로 : 여기서 화낼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명청시기에 한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발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내수시장의 규모자체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국의 경제는 분명 당시 중국경제보다 낙후되어있었습니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또 다른 점은 조급함과 침착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잘 사용하는 말은 "빨리빨리"입니다. 그것에 비하여 중국인은 느리고 느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가 생각했을 때, 이런 차이점이 생긴 것은 지리적요소인것같습니다. 면적이 작고 인구가 적은 한국은 반응은 상당히 빠르죠. 중국은 면적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유유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너무 크고, 상황은 너무 복잡하고, 한가지 계획에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지, 아니라면 망하기 딱 좋습니다. 이것은 한마리에 큰 코끼리여서, 아무리 민첩하여도 보기에는 바보입니다. 그래서 중국정치가들은 게으름의 방법을 선택하여 어떤 일이라도 단칼에 배고, 어떤 일도 모두 기간을 잡아서 시행합니다. 만약 모순된 부분이 있으면 제일 좋은 방법을 찾아서 한참을 심사숙도하며 함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이성의 발달이 중국처럼 커다란 국가에서 시작된것이 아니라 서유럽의 소국에서 시작되었던 것이고, 한국과 같은 소국은 금방 그것을 응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진시황이 중국통일을 한 위대한 일의 다른 모습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 "만만디"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중국를 보고 있으면 그런 천천히라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득이 없거나, 귀찮다면 무조건 만만디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경우는 무섭도록 빠릅니다.
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게, 나라가 커서 문제다! 라는 주장을 함부로 하다니, 죽고 싶은가 봅니다. 왜냐고요? 나라가 커서 문제다. 해결법 : 나라를 쪼개면 된다. 국가반응 : 죽여라~! (농담인거 아시죠? ^^::)
만약 이런 결론만 내린다면, 이 책은 "민족성""열등한 근본"에 대한 이야기를 중복할 뿐이다. 우리가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의 기민함이 이런 분석중에서 나온다. 예를 들자면, 민족성격의 다름이 한중양국사회발전 차이의 주요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반대로, 최근 몇 십년동안 한중양국사회발전방법이 다름으로 하여, 이런 양국국민성격의 다름이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 그게 그 말이다. 이런게 그렇게 놀라우더냐? 내가 책 써줄까? 나도 이런 책 써야지. 중국인은 절대 한국인을 못 이긴다.-_-
작가가 생각하기에, 100년이 넘는 동안 중국인의 "열등의 근본"을 지적한 것은 오해였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인들만이 아무곳에서나 침을 뱉는것은 아니다. 심지어 1731년 유럽에서는 아무곳에서나 대소변을 보았다. 중세유럽의<의례서>중에 "침을 책상에 뱉지 말라, 책상위를 넘겨서 뱉지도 말라"적어도 그 당시에는, 우리는 현재의 유럽백인들보다 앞선 문명을 향유하고 있었다.
바로 : 심히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16세기와 21세기를 비교해서 이렇게 말한 다면 헛소리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어떤 비교던지 동일한 조건하에서 실행해야된다. 물론 역사는 반복 실험의 대상이 아니어서 동일한 조건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16세기와 21세기의 문화를 비교해서 무엇이 더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생각일까?
혹시 같은 16세기 중국의 문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 때 중국인들도 그게 그거였라고 말해주마.
60년대이전에는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빈곤한 나라중에 하나였고, 한국인 역시 세계에서 제일 무시받는 민족이었다. 양치초<조선멸망의 원인>중에 심지어 조선멸망의 원인을 조선인의 국민성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조선인은 조그마한 밥그릇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중국보다 심각하며, 성격이 어둡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민족이다. 한국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민족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는 대통령취임사에서 한국인은 독립정신이 부족하고, 나태하고, 자기 이익만 알고, 협동심이 부족하며, 너무 끼리끼리 논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였다. 그는 한국인의 국민성을 개조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근 몇 십년 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결집을 잘하고,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고, 열심히 노력하며, 청결하고, 성실한 것을 이름을 날리고 있다.
바로 : 어디가서 한국을 연구했다고 하지 말아다오. 그넘의 한강의 기적이 나태하고 자기 이익만 알고 협동심이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자기 이익만 알고 독립정신이 부족한 인간들이 자기몸을 바쳐가며 폭탄테러하고 만주땅에서 끝까지 독립운동을 하더냐?(그때 중국인들이 뭘 했는지는 아냐?) 말이 꼭 박정희가 한국인을 개조했다고 들리는데, 원래 한국인 성격이 그랬다. 가서 "품앗이"가 뭔지 알아보았으면 좋겠는데...
한국인의 국민성의 변화을 통해서, 작가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반드시 다시 한번 "국민성"을 정의해야된다. 사실상, "열등한 근본"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전현대사회의 사회성격의 반영일 뿐이다. 협동 안되고 느려서, 그릇안에 퍼진 모래와 같은 것은 소농촌사회생활에 어울린다; 홀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전제사회의 배양을 통해서 나온 국민을 다스리는 품질이다. 자존심이 부족하고 동물처럼 산다는 것은 엄중한 생존조건으로 인한 인성의 외곡을 말한다.
바로 : 일단 가설 자체는 재미있다.
그래서 작가는 "열등한 근본" 혹은 소위 "중국국민성"이라는 이름은 "전현대화사회성격"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식이 없음을 비평하고 있고, 다시 말해 전현대사회의 사회제도는 많은 민중으로 하여근 충분히 개인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감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고, 원칙에 대한 충분한 신임도 가지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아의식은 아직도 수천년동안 정부에 피동적이었던 그대로다. 그래서 주인의 자신감, 책임감, 주동성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시정부의 광장에서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린다. 그들의 눈에는 이런 거대한 광장을 건설했을 때 그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고, 보통시민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관원들의 정책프로젝트일 뿐이라서, 별로 아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로 : 한국은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두 나라는 다르냐고 물어보면 또 민족성이 달라서라는 말이 나오겠군. 결국 민족성으로 모든 답안을 해결하는 거냐?
한사람이 자신의 문제점을 탄피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성격을 고치려 하는 것은 가능할 리가 없다. 같은 이유로 하나의 민족이 사회제도의 개력을 구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낙후된 민족성을 고치려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충분한 현대화사회가 있어야만 "현대성격"이 나올 수 있다. 그러지 아니한다면, 얼마나 많은 힘을 들여서 사상개조를 하고 선전운동을 하고, 전형적인 모델로 인도를 하더라도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다.
중국은 재난이 많은 국가이다. 중국인의 성격기질은 그래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 한국인과 같이 용기있게 힘을 다해서 사회제도구조를 변화시켜도 역시 많은 부분에서 문제는 남아있겠지만, 그래도 중국인의 성격기질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국민성을 반성하는 노력은 마지막에는 제도와 경험에 대한 반성이어야만 한다. 중국이 세계에서 떵떵거릴 때가 되어야, 어느정도 성공하고, 공평하고, 모든 사람이 침 뱉는 모습에 눈을 찌푸리는 사회안에서, 중국인은 다시금 춘추시대의 강성과 당나라의 자신감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빛나는 대국인민의 감각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 사회이론은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이론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발전하고 보자! 나머지는 어떻게든 알아서 될 것이다. 라는 것이데... 조금은 웃긴다. 한국을 연구했으면서 한국인들이 조금은 후회하는 것이 일단 발전하고 보자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한국인이 그나마 조금만 후회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노력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바로의 중얼중얼
일단 저로서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위의 글은 책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글에 불과하고 제대로 된 책은 읽어봐야 하겠지만 요즘 자금 사정이 사정인지라 무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뱀다리 : 길더군요. 어쩔 수 없이 more만 3개 삽입했습니다.
너무 길더군요. ㅜㅜ (번역하는데 무려 1시간) 이걸 번역한 나는 바보ㅠㅠ
올 해 북경대학교에서 주는 우수장학금의 모집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신청자격이 본과생 3학년과 연구생만이 가능합니다. 본과생 위주로 말하자면 딸랑 4000원(500달러)정도만 줍니다. 매년 3000불을 가져다 상납하는 것에 비하면 웃기는 금액일 수도 있지만, 일단 장학금이 아니겠습니까? 받으면 기분이야 좋습니다.
바로의 중얼중얼
받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아직 2학년이어서 내년에나 도전해봐야될텐데, 제가 여자친구를 사귀고(가능성 제로인 가정인듯...) 삽질만 안한다면 문제는 없을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저란 인간은 저도 못 믿는지라......^^::
이런 포스트는 사실 역사관련자만이 쓸모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많은 역사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을 위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분들중에서도 이런 싸이트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한국이 IT정보강국이라는 소리가 이런 싸이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과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학!
디지털한국학은 이에 대한 수준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유니텔이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만나게 될 커다란 만족이자 기쁨이 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학 전문 연구자들에게는 한국학 관련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한국학 포털사이트로 기능할 것입니다.
바로의 중얼중얼
이 싸이트는 전문적인 성격보다는 대중적인 성격이 훨씬 강한 싸이트입니다. 사실 전에 올렸던 두개의 싸이트는 어느정도 전문성을 띄고 있지만 이것은 대중성에 훨씬 가깝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한번 가보시면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쌓여있답니다^^
바로의 중얼중얼
북경대학교 05년도 석사시험모집통지가 나왔습니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군요.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석박사형들도 저 시험을 준비했었었죠. 저는 그런 형 누나들 틈에서 본과준비를 했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고, 저의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장래의 일이군요.
새로운 시도라면 새로운 시도이며, 이전의 아이디어를 조금 변형시킨 것이라면 변형시킨 것이겠지만, 그래도 저는 이런 방법을 도입하여볼까 합니다.
우리는 흔히 블로그를 1인미디어라고 쉽게 말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가 "1인"미디어라는 정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려 합니다. 저의 친구들 몇몇을 포섭하여서, 이 곳에 그들의 글들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다인미디어개념입니다.
지금 현재 포섭된 상대는 "xx"입니다. 자신에 대한 모든 사항을 비밀로 지켜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었기에 이제부터 그의 닉네임은 "로바로바"입니다. 저의 사상과 충돌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충돌의 실험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주로 다루게 될 내용은 정치에 관한 내용이 될거 같습니다.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시작일은 아직 미정입니다)
현재 제 2차로 포섭중인 상대는 "oo"입니다. 이 사람은 아직 닉네임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서로간에 이야기가 다 되면 닉네임 공개와 동시에 포스트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로 다루게 될 내용은 oo님이 직접 쓴 소설입니다.
"로바로바"란?
저의 닉네임인 "바로바로"의 반대항으로서 "로바로바"라고 작명하였습니다. 저와는 다른 존재가 한 블로그에서 충돌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의 중얼중얼
혼자 많이 고민해보았습니다. 블로그의 특성상, 글이 시간순서로 배치되는 것은, 여러사람이 동시에 사용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블로거들이 매일 포스트를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위에 분들은 매일 매일 새로운 포스트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양의 포스트를, 현재로서는 일주일에 한편, 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포스트의 질과 양쪽으로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밀리터리, 역사, 만화, 중국등의 다른 주제쪽도 포섭을 통해서 그 질과 양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될 것인지 저도 궁금해지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