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표현에 대해서 수줍어하는 면이 심해서 상대를 따뜻하게 해주면서도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교제를 거듭해가는 사이에 점차적으로 과열되어 간다.
사랑의 성장은 접촉시간의 길이, 접촉 거리, 접촉 횟수 등에 비례하는 것 같다. 그 사랑의 발열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적으로는 더 길게 거리는 더 까깝게 만나는 횟수를 더욱 빈번하게 하려고 한다.
사랑의 중심은 접촉욕이다.
따라서 평소에는 게으른 B형도 접촉을 실현하기 위해 별안간 상대에게 봉사를 시작하기도 한다.조용한 사랑에서 불꽃같은 사랑으로 가는 과정중에 위에서 말한 과열의 단계가 있다.
사랑의 열을 적당히 발산하고 있는 동안은 괜찮지만 상대와의 접촉이 생각대로 잘 안될 때는 가슴속에만 끌어안고 있떤 욕구를 단번에 불꽃으로 뿜어내는 수도 있다.
이미 많은 한국분들이 중국을 방문하셔서, 그나마 많이 이미지가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이곳에서 인터넷할 수 있다고 하면 거의 경악의 오로라를 내뿜는 분들이 많습니다.(여기의 화장실 많이 괜찮아 졌습니다!! 문없는 화장실 몇개밖에ㅠㅠ 안 남았습니다.)
사실 이 곳에서 이른바 문화생활 하기란 참 힘이 들죠.
한국영화도 방송매체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굉장한 한류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인기가 있기에 이곳의 영화관에서도 상영이됩니다. 예를 들어서 전지현이 주연한 여친소같은 것은 동시개봉을 했습니다.여기에 있는 저희들은 보러 갔을까요?
죄송하지만 문화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_-;;
그러나 자신이 전지현마누라라고 우기는 어떤 인간이 영화관에 갔습니다. 그리고 울어버렸습니다. 전지현 입에서 중국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소리쳐 외치더군요.
"니들이 전지현 입에서 중국말이 흘러나오는 기분 알어?! 크어어어어!!!"
저넘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_ 그게 현실입니다.
일단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어느 나라의 영화든, 심지어 자국의 영화여도 무조건 자막은 일단 기본적으로 들어갑니다. 글자를 보는 것보다 듣는게 더 편하다는 것은 일단 기본적인 사실일테고, 이 중국이라는 나라가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는 죽어도 생각할 수 없고-_-;; 그럼 대체 왜 그러는지 저조차도 궁금합니다만, 무시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외국영화든 더빙을 해 버립니다. 한국에서 왠만한 이유로는 더빙을 하지 않는 것에 비하여, 이것들은 더빙이 필수입니다. 차라리 한국처럼 더빙능력이 좋으면 말도 안합니다.
일단 목소리와 화면이 따로 나오는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은 두가지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일단 더빙기술자체가 엄청나게 후졌습니다.ㅠㅠ 차라리 더빙할려면 더빙할것이지. 원음을 제대로 못 지워서 겹쳐들릴때의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성우들!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연기자라고 할 수 있는 그것들의 연기수준은 김희선이 울고가는 수준입니다. 책을 읽어도 저것보다는 딱딱하지 않을겁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매트릭스3가 개봉했을때, 원음상영과 중국어상영이 나누어져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인 영어라면 죽어라 싫어하지만 엉터리 중국어를 듣느니 영어듣기평가를 한다는 심정으로 봤습니다. 휴....
사실 퇴직서라고 해봐야, 대중에게 발표되는것이라 별 내용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 번역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혹시나 국제정치나 외교쪽에 관심있는 분은 참고하세요^^::
장저민동지 중공중앙군사위원회주석직무 퇴직 요청의 서신
(...일단 제목부터 공산당의 포스가 느껴집니다...지금 번역할려고 한거 무지하게 후회하는 중입니다.ㅠㅠ 내용은 쓰잘데기 없이?! 길기에 보고 싶은 분만 보세요. )
(원문은 찾기 귀찮아서 생략-_;; ....해석이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솔직히 아무생각없는 직역이긴 하지만....이해하고 보는데는 문제가 없을......-_)
장저민동지의 중공중앙군사위원회주석직무 퇴직 요청서신
중앙정치국 :
나는 중앙에 지금까지 맡고 있었던 중공중앙군사위원회주석직무의 퇴직을 요청하는 바이다.
당이 16대(중공16회 전국공산당회의)를 열기 전에, 당과 국가는 장기평안을 위하여, 현실적으로 당과 국가고급지도자의 신구교체의 제도화, 규범화, 프로그램화를 생각하였고, 나는 중앙에 중앙지도자직무와 중앙위원회의 직무를 맡지 않겠다고 한적이 있다. 당시, 중앙은 나의 요구를 승락하였지만, 동시에 중앙은 국제형세의 복잡다변과 국방과 군인건설임무의 중요함을 생각하여, 대국을 위하여, 내가 당에 남아있으며, 국가의 군위주석직무(중공중앙군사위원회주석직무)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 후, 나는 전심전력을 하다여 중앙이 내게준 나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언제나 중앙지도자집단의 활동에 존중과 지지를 보내었다. 당과 인민사업의 장기적인발전을 위하여, 나는 언제나 지도자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를 염원해왔었다.
단의 16대와 15회1중전회이후, 국제형세의 복잡다변화와 국내개혁발전임무가 매우 중대차한 형세하에서, 후진타오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중앙지도자집단은 끊임없이 전진해왔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개발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했으며, 당과 국자 각각의 방면의 사업에서 모두 신기원을 이룩하였으며, 수 많은 간부들의 지지와 신임을 얻었다. 실천으로 증명해낸, 당의 14대와 15회1중전회가 뽑아낸 중앙지도자그룹은 개혁개방과 복잡국면을 고려할 수 있는 인재들이다. 신중한 고려 뒤, 나는 현직직무에서 퇴직을 생각하였다. 이것은 당과 국가와 군인의 사업발전에 모두 이익이 될것이다. 중앙이 나의 요구를 받아줄것을 간절이 희망하는 바이다. 나는 앞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중화인민공화국중앙군사위원회주석직무의 퇴직을 요구할것이다.
여기서 나는 정중하게 , 후진타오동지가 중국공산당중앙군사위원회주석의 자리를 맡기를 중앙에 건의한다. 후진타오동지가 이 직무에 완전히 적합하며, 당의 군인에 대한 절대적인 지도의 근본원칙과 제도에도 도움이 된다.
내가 혁명에 참가한지 60년이래로, 언제나 당의 교육을 받았고, 당을 위하여 일하였다. 당과 인민데 대하여 나는 언제나 깊고 두터운 감정을 안고 있으며, 당과 인민의 사업은 곧 나의 생명이다. 나는 영원히 당과국가의 사업에 충성을 다할 것이며, 영원히 중국공산당의 충실한 당원이다. 우리당지도의 위대한 사업은 몇대의 사람들의 장기간의 노력으로 인한 세계가 놀라는 위대한 업적이지만, 우리의 앞날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저런 위험과 시련이 닫쳐올것이다. 하지만 난 믿는다, 우리당의 사업을 필승할 것이며, 오직 우리가 이상을 견지하며, 신념을 공고이하고, 기회를 잡으며, 중요한 일을 잡으며, 언제나 공공하게 전당을 합쳐 발전시키며, 당과 인민을 합친다면,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여러가지 문제에서 필승할것이며, 중국의 경제실력과 국방실력 그리고 민족의 응집력이 부단히 증가할 것이다. 우리의 당, 우리의 국가, 우리의 군대는 반드시 언제나 승리하여 승리할 것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어낼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 난 할만큼 했다.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잘해라. 정도입니다. 그가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지만, 그래도 이넘의 넓은 나라를 통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될거 같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중국인들의 현지 반응.
.......당연히 했어야지-_;;; 정도의 반응입니다. 나이도 많이 먹었고, 해 먹을만큼 했잖아?! 입니다. 왠지 장저민이 처량하다고 느껴지더군요. 쯔쯔쯔...막판에 잘했어야지....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얼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이 난다. "어학연수를 갈려면,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라!"
본인의 경우, 여행준비하고 뭐하고 하는 것을 상당히 귀찮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날라가는 무대포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냥 잠을 자거나 무작정 돌아다니는 여행을 한다. 그것도 여행이냐고?! 가기 전에 그곳에 관해서 사전조사를 하고, 어디갈지 계획을 세우고 해야된다고?!
미안하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여행의 최대 목표는 지금 나를 돌아보려 나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가는 도피이자 목욕제개라고 생각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고, 배워라지! 라고 호통을 치실 분들이 있을거 같다. 그런 분들에게는 어학연수를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중에서는 중국땅으로도 오셨던 분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른 나라에 비하여 여행경비가 싸다는 장점으로 인하여 돈없는 배낭여행객이나 싼 값을 추구하는 아주머니들이 특히 많이 오시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느끼고 돌아가는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면, 중국현지유학생들은 콧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겉모습만 바라보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 중국에 와서 이제 겨우 4년이지만, 그 동안 중국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달라져왔다. 점점 그들의 겉모습보다는 속모습을 볼 수 있게 변해가고 있다. 그들의 말을 알게 되고, 그들이 그들끼리 말하는 것도 옆에서 모른척 들으면서 그들의 생각체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여행하면서 이런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
어학연수의 최대목적은 그 문화속에서 살면서 그 문화자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특히 어학연수의 경우, 여행에서는 얻지 못하는 부수의 이익이 있다. 이른바 언어의 습득이다. 본인 한자라면 죽어라고 싫어하지만, 여기서는 생활이기에 어느정도 굶어죽지 않을정도는 하게 된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여행이 더 좋다는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여행이라는 것을 조금 무시하듯 적었지만, 사실 난 여행이 더 좋다.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의 참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행과 어학연수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차라리 여행을 가라! 라고 한다거나, 어학연수를 가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마법의 거울이다.
본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거나, 친구와의 진정함을 평가해보고 싶거나 연인과의 앞날을 생각해본다면 여행을 가라. 정말 생각보다 더욱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어학연수는 판도라의 상자이다.
어느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어학연수를 떠나라. 어느 문화가 생활이 된 순간에 그대는 느낄 수 있으리라. 다만 당신이 실망할지 행복해 할지는 책임질 수 없다.
본 글은 제가 감히 연구생과정을 듣는다면 반드시 그 밑으로 들어가고 싶은 엔부커선생님이 쓰신 글입니다.
일단 간략하게 엔부커선생님을 소개하자면, 26살까지 딴짓하다가^^:: 북대본과과정에 들어와서 10년만에 졸업하고, 그 뒤 10년만에 북대에서 정교수자리에 오른 황당한 인간입니다.(북대 역시 한국교수사회랑 비슷합니다.-_ 엔부커가 이상한겁니다.)
주전공분야는 위진남북조입니다. 기타외국어 구사가 8개국어였던가.-_-;;
같은 북대교수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를 정도로 완벽한 정통파학자입니다.
(..그의 오로라를 느껴보면-_ 그 말밖에 안 나옵니다.)
현재 본과생수업 3개. 청화대초청강의1개. 연구생수업 2개, 국가상임정치위원회 역사지도담당까지 이미 한계인텐데 논문을 죽어라 많이도 씁니다. 수준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 박사졸업한지 14년인데, 책이 4권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동북무슨학술제단-->북경대-->삼리엔서점-->중화서국 이라는 완벽코스를 밟아버렸습니다.(참고설명 : 중국에서 책을 살때, 어느책을 사야될지 모르겠다고 하면, 두개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사면 절.대. 후회없습니다. 중화서국과 상해고적. 그런데 상해고적은 역사문헌쪽을 주로 하기떄문에 학술적인것은 중화서국에서 거의 나옵니다. 오죽했으면, 중화서국에서 책 한권 나오면 학자인생에서 성공한거지-_; 따구의 말이 있겠습니까?!)
정말 슈퍼맨인 인간입니다. 단지 당뇨병이 있음에도 술을 작작마시고 담배도 죽어라 피는 인간이라는....쿨럭..-_;;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중국어원문만 올려놓으면 이상할거 같아서 서론부분과 결론부분만이라도 번역해볼렵니다.
(사실-_ 중간은 다 고증부분이어서, 학자아니면 쓸모도 없습니다.)
북위와 북제의 사료 중에서 우리는 “직인(职人)”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신분에 대해서 학자들은 유외관(流外官), 곧 당대의 직장인(职掌人)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로 보고 있다. 직인에 관한 사료는 매우 적고, 모두가 애매모호하다. 현재의 사료를 통해서는 직장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추론은 아직도 커다란 문제로 남아있다. 관련자료를 분석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일명 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산가(散阶),산관(散官) 혹은 무실관(无实官)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이 사람들은 직사백관(职事百官)과 같이,관원들 중에서 큰 두 파벌를 이루고 있었다. 동시에, 위진 관리들 중에는 왕궁(王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신분과 북조 직인의 차이는 많은 부분에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직인과 왕궁의 존재는 당시의 관원들 중에서, 후선자(候选者)와 현임자(现任者)의 2종류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직인과 왕궁의 고찰은 우리가 그 기간의 문관제도를 연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 확실하다.
(솔직히 대충번역할 수밖에 없군요. 역사에서 쓰이는 고유명사를 하나하나 쉽게 설명할 능력은 미천한 저에겐 없답니다. ㅠㅠ)
종합하자면, 위진의 왕궁과 북위북제의 직인의 대다수는 후보(候补)한 사람들이었으며, 그 기간의 문관체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구조로 보았을 때,위진 남북조의 관리들은 후보자(候补者)와 직사관(职事官)이 있었으며, 공능으로 보면, 후보자는 상판직(相番直)과 사자(差使)의 역할을 맡았으며, 왕조정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였다. 이런 제도는 한대의 양서숙위(郎署宿卫)까지 거슬러 올라갔 수 있고, 아래로는 당대의 문무산관후선판(文武散官候选)의 리부(吏部),병부(兵部)의 제도를 볼 수 있다. 이전의 학자들은 이에 대한 논술이 적었다. 이 글을 초보적인 탐색을 통하며 더욱 더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간단요약 : 직인이라는 인간들이 있다. 이것들은 이른바 예비행정관으로서 일단은 명예직만 주다가(단, 전시(혹은 평시)에 일정한 나라에 대한 공헌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예 : 말의 공급, 쌀의 공급, 임시직) 필요시 예전의 공헌에 따라 실제 행정에 임용하였다.
생각해 볼 점 : 그렇다면, 조공책봉관계를 형성했던 당시 동아시아정세에서 고구려를 비롯한 동아시아국가에 내렸던 것도 명목상으로는 직인이었는데, 그런면이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가?
....인데..-_; 졸업논문쓸때 한번 해볼까나..-_;; 위진쪽 자료가 워낙 없어서 무지막지하게 힘들텐데..ㅠㅠ)
엔부커 논문이 원래 그렇지만, 이건 역사용어?! 따로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뭐하고, 그냥 여기까지 읽은 분들에게 일단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