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계획에 없던 유럽여행을 하는 바람에 만나야 될 넘들을 만나야 되는데, 문제는 중국에 돌아가야되는 리턴비자가 3일까지 라는 것이지요^^;;;

덕분에 초릴레이 인간 만남을 해야된다는 것이지요...크흑...
결과적으로 3일 1시 40분 아시아나가 되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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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과거의 글을 보았더니....이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어마어마한 민족주의자였군요. 2004년 이후에 6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를 비웃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글은 남겨두겠습니다.



검정색 글은 모두 원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제가 첨가한 글은 파란색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야 할거 같습니다. 짱꼴라가 저러면 왜 틀렸는지 설명해 줘야 하니까여.... 또 공부...-_-;;




원문 출처: http://www.snweb.com/gb/gnd/2004/07/02/0702p014d001.php




장기간 잘못 읽어진 역사, 오늘날에 와서 중시되는 유산

고구려, 잃어버린 고대문명(사진 4장포함) {음…… 무슨 내용일까? 한국이 고구려를 언제 버렸나? 잃어버려? }

본지기자 송념신 {염신아, 니 메일주소 불러 볼래?}


  학자들이 생각하기에 고대동아시아 국가체제와 현제 서방의 개념에 의해 형성된 국가 관계는 완전히 서로다른 개념으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다. 반드시 역사적, 과학적태도에 근거해서 고구려 고대문명을 다루어야 하며, 문제를 현대정치로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음.. 왜곡의 시작인가? 그래 현대정치로 끌어들이면 안되지… 짱꼴라들 중국이 힘세지고 있다고 그거 믿고 까부는 주제에… 이 문제를 보면서 중국이 대국이 되더라도 미국과 별반 다를게 없을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왤까?}

  7월1일, 중국 소주에서 거행된 제28회 세계유산위원회회의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성과 왕릉, 고분은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유산의 등록성공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 오랫동안 소실되었고, 잘못이해된 옛나라 고구려를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에 한것이다. {그래, 역사 왜곡하니 자랑스럽니?}



  중국동북지역과 한반도북부를 가로지르는 고대 변방정권. {고구려가 왜 변방정권이냐? 그냥 한국도 화교국가라고 해버리지.어? 웃기네..}

  오늘날 중국학자들은 보통 생각하기를, 고구려는 서한에서 수당대까지 존재하였던 중국도북지방의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변방민족 정권이다. 동북지방은 일찍부터 고대 중앙정권의 관할구역이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했을때 상나라의 후예 기자는 사랑들의 데리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오늘날의 평양지방에 “조선”을 건립하여, 주나라의 한 지방정권이 된다. 학계에서는 보통 “기자조선”이라 칭한다. 서한 초기 위만의 연인(卫满的燕人)이라 함은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중원의 사람을 모아 통치권을 장악한 사람을 말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위씨조선”이라 한다. 계속적으로 확장정책을 실행함에 기원전108년 위씨조선은 한무제에 통일되었고 서한이 관할지에 낙랑, 진번, 임둔, 현토4군을 설치하고 관리하였다. {웃기지마, 위씨조선이 중국이면 그냥 통일하면 끝이지 왜 사군을 설치하냐고… 사군이라고 해봤자 그냥 4개 작은 부락이었을 뿐이잔아.. 거봐 고조선이 중국이라는 말은 웃기지도 않는다… 참내..}

  기원전37년 동북변방민족 부여의 한 왕자는 사람들의 박해로 남쪽에서 현토군의 고구려현(지금 료녕성의 신빈현 동남부)으로 도피한다. 활을 잘 쏴 “주몽”으로 불리었던 왕은 이곳에서 초기의 고구려정권을 건립한다. 사서에는 “고려”라는 약자로 기록된다. <삼국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당시 고구려의 호적은 서한 현묘군 고구려현의 관리하에 있었다. 서기3년 고구려의 제2대 왕인 유리왕은 수도를 오늘날 길림성 집안시에있는 “국내성”으로 옮긴다. 이후 400여년간 고구려정권은 이곳을 수도로 삼는다.

  고구려는 한의 현토군, 요동군 관할에 놓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신하라 칭하며 조공을 바쳤다. 역사상 이 정권은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친다. 왕망시대 흉노정벌에 징집되어 참가함에 도망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고구려왕의 말탄 신하(驺)는 왕망에 의해 유인되어 죽음을 당한다. 동한의 건립후, 고구려의 통치자는 다시 왕으로 책봉되고 계속해어 주위의 변방정권을 통일해 점점 강력해 진다. 위진남북조 후기에 이르러 중원에 전쟁이 발생하고 이게 고구려는 더욱 발전한다. 그때 고구려는 중원의 각왕을 신하라 명하여 조위와 막용선비정권에게 두번의 단멸성 공격을 받는다. 이후 고구려는 정책을 바꾸어 서쪽으로의 확장을 중지하고, 남쪽으로의 경영을 시작하며 한반도의 다른 두정권 백제와 신라를 통제한다. 서기427년 고구려는 다시 평양으로 천도한다.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가 제일 번성했을 때, 그영역이 동서로 이천리였고 남북으로 천리였다. 남쪽으로는 한반도 중부에 이르렀고 북으로는 길림중부, 동으로는 연길 동서로 요하에 이르렀다. {짜증나는 짱꼴라들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저 중원이라는 말투와 아집에 짜증이난다. 그리고 정권이라는 애매한 용어로 고구려를 지칭하다니. 비겁한 자식들. 고구려는 엄연한 국가란 말이다. ㅋㅋㅋ 그리고 짱꼴라들 너희를 신하라 불렀다고? 그럼 너희 역사가 고구려 속국의 역사라는 말이네.}

  수당시기에 이르러 중원은 통일되어 가고 할거상태의 고구려를 수복하는 것이 두나라 황제의 공통된 바램이었다. 통일에 대한 요구로 당태종은 수문제와 양제의 여러차례의 실패후 무력으로 고구려를 통일하려 한다. 역사서는 기록하기를 당태종이 전쟁에 나가기전에 “이제 아홉바다가 평정되었고, 모퉁이 하나만 남았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고구려수복을 통일의 최후의 전쟁으로 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기644년부터 24년의 전쟁으로 고구려는 당나라와 한반도 남부의 신라정권의 연합에 의해 멸망하고,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다. 설인귀를 검교안동도호로 임명하여 군대를 통합하고 지키게 한다. 이때부터 705년동한의 고구려는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수복? 고구려를 수복해? 언제는 너희 나라였냐? 그리고 두나라의 황제? 황제가 둘이면 것두 황제라 부르냐? 그냥 두나라 왕이라고 적어. 그리고 고구려가 중국에 속하면 그냥 통일하면 되지 무슨 도호부를 설치하면서 군대를 주둔 시키고 지키라고 그래. 고구려 힘이 세니까 세력억제시키려고 도호부 설치한거 아니야. 통일의 완성이라고 한것도 고구려가 자꾸 침략하니까 세력억제를 해야 통일 완성이라고 본거구. 아씨 그리고 헛소리가 넘 많아서 다 대답하기도 귀찬네… }



  고구려 문화와 중원문화는 가까워서 구별하기 어렵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시려구 준비운동하시나?}

  길림성 고고학 연구소의 부가흔(傅佳欣) 연구원은 오랬동안 고구려 고고학연구를 했다. 그가 기자에게 소개하기를 고고학적 각도에서 볼때, 고구려의 문화는 낮은 수준에서 갑자기 발전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시기의 귀족무덤 안에서 많은 량의 도자기, 철기가 발견된다. 하지만 동시대 일반 백성의 무덤안에는 석기가 발견된다. 이것은 분명하게 외래문명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구려 고적의 2/3은 중국의 국경 안에 위치하는데 고구려 초기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천도후 문화특징은 더욱 중원화되어 가며 원래의 특징은 줄어든다. 이 모든 현상은 고구려의 문화는 중원문화의 빛 아래서 발전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또 헛소리를 하는군. 고구려 문화유적지 왜 개방 안하냐고. 역사왜곡 하기전에 들통나면 곤란하니까? 욕나와도 참자…}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방사지(中国边疆史地) 연구센터의 이대용연구원은 기자에게 말하길, “고구려 문화는 동북아시아 문화중에서 하나의 매우 찬란한 문화입니다. 벽화, 산성, 고분, 모두 대단합니다.” 그가 보기에 고구려와 중원의 각 왕조는 경제 문화적으로 밀접한 왕래를 유지했는데, 이것이 많은 부분에서 찬란한 고구려문화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인접 국가간의 문화교류는 당연한거 아니야? 일본이 한자쓴다고 중국 속국이라고는 왜 안하니?}

  이대용은 예를 들기를, 많은 고구려 무덤중 벽화무덤은 극히 진귀하다. 벽화의 내용으로 보면, 사회생활과 내가지 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장식도안등이 있는데 많은 것들이 중원의 건축물과 무덤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이밖에 고구려벽화는 중원지역보다 발생시기가 조금 늦다. 이는 중원에서 변두리로 전해진 과정이라 하겠다. 그리고 고구려 멸망후, 이지역의 벽화무덤의 수는 줄어든다. {문화유적지 공개해서 공개적으로 연구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해야지. 자기들끼리 골방에서 일방적으로 그렇다고 하면 그게 믿기냐}

  이와 같이 고구려민족과 중원민족의 교류는 빈번했다. 이대용은 이를 전면적교류라고 명했다. 예를 들자면, 고구려와 중앙왕조의 사자왕래는 매우 밀접했고, 쌍방문화교류의 중요한 전달자 중의 하나였다. 예절과 의식제도, 종교, 역법등 분야에서 넓게 교류하였다. 고구려민족은 자기만의 언어가 있었는데 이미 소실되에 찾기 어려우나 그들이 한자로 기록하였기에 오늘날 학자들이 그에대해 깊이 연구를 진행중이다. 고구려정권에는 많은 한인이 존재했다. 이와같이 당왕조안에도 적지않은 고구려인이 요직에 위치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안서절도사를 담당했던 고선지가 있다. {지금도 한국에 한인 많아. 음… 그렇담 지금 한국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중 일부게…. -_-;; 참자. 욕나온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사용했던 고구려말 말인데 알고시으면 영화 “황산벌”을 보라구. 고구려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테니까.}



  오랫동안 오해된 역사 {제목이 잘못 됐네.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이 맞지.}

  고구려 멸망후, 대부분의 후예들이 중원으로 옮겨져 중원민족과 융화되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주변 각민족에 융화되어 갔으며, 왕족은 멸망했다. 모든 영역은 당나라에의해 관할되었으며, 훗날 일부를 동북지방정권 발해에게 분할해 주었고, 일부는 한반도 남부 신라에게 분할해 주었다. 이후 점점 중원전통사학의 틀에서 벗어났다. 송대이후, 중원은 고구려역사를 인식함에 혼란이 생겼으며 잘못 이해하게 된다. 청대에 이르러 동북지방은 황실 “용흥의 땅”이라는 것에 의해, 청은 이지역에 “봉금정책”을 실행하고, 소수의 역사가만이 이에대해 고찰, 연구를 진행한다. 1877년에 이르러 고구려왕 고안(염덕이라고도 하고, 호태왕이라고도 칭함)사적이 기록된 “호태왕비”가 발견되어, 천여년간 소실되었던 옛나라가 다시 인식되기 시작한다. {다시 인식되는 건 너희 한족들한테겠지. 혹시 고구려의 발전된 문화가 중국에 퍼졌다는, 중국에 불리한 유적이 발견된거 아니야? 고구려 유적지 한국에 공개하라고!!}

  길림성 고고학연구소 연구원 부가흔은 “매우 긴 시간동안 우리가 고구려 역사를 외국사로 본것은 실제로 오해일뿐이다”라고 말했다. 서기918년 고구려 멸망250년 후, 한반도에 “고려”라는 정권이 들어선다. 통치자의 성이 왕씨여서 고구려의 약칭인 고려와 구별하기위해서 학계에서는 “왕씨고려”라고 부른다. 비록 같은 이름을 베껴 사용했지만, 왕씨고려와 고씨고려는 아무런 계승관계도 없다. 왕씨고려는 935년 신라를 대신했고, 뒤날 백제가 멸망하고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을 통일한다. 1392년 대신 이성계가 왕을 폐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으며, 1393년 “조선합영등호주청”을 명에게 청했고, 명은 이성계에게 조선왕을 하사했다. 결국 왕씨 고려가 조선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씨조선 또는 이조라고 부른다. {이씨조선? 이조? 왕씨고려? 왕위하사? 오호~~ 그럴싸한데.}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방사지 연구센터 연구원 이대용은 예를 들어 말하길, 중원지역 역사상 많은 정권들이 “송”이라는 이름으로 출현했었는데, 이 정권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왕씨고려와 고구려또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왕씨고려는 신라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이며, 고구려는 당나라에 통일된 것이다. 그러나 사료가 부족하고 오도되는 등의 원인에 의해서, 송대이후 사서는 왕씨고려와 고씨고려를 혼동하고 있으며, <명사(明史)>는 심지어 이성계 책봉이 합리적임을 해석하는데 기자조선, 위씨조선, 한사군, 고구려를 모두 (이씨)조선사에 넣어 버린다. {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해서 한국역사는 모두다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해버리지. 그리고 화교의 미국진출로 미국사도 중국사의 일부라고 해버리지 그러냐.}

  이대용이 생각하기에, 왕씨고려와 고씨고려는 창립년대가 아주 멀며, 주체민족도 다르며(왕씨고려의 주요민족은 신라, 백제의 “삼한(三韩)”인 일뿐, 고구려인이 아니다) 정권건립자또한 계승관계가 없고 통치지역도 다르다. 이 네가지는 이둘이 서로 계승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ㅋㅋㅋㅋㅋ. 말한번 잘했다. 그렇게 보면 중국사라는 것은 아예 없네. 몽골에 정복당했다가, 여진에 정복당했다가 고대국가는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잖아.}



  중국은 큰힘을 쏟아 고구려 유산보호에 노력한다. {공개가 우선이 아닐까?}

  광서3년, 금석학을 취미로하는 청나라 관원한명이 우연으로 풀밭에서 “호태왕비”를 발견하여 비문을 해석하는데 열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1941년까지 고구려역사를 계통연구작품 <동북통사(상편)>(金毓黻)한편만이 나타날 뿐이다. 건국후 중국은 고구려 유적에대한 발굴과 보호를 확대하고 있으며, 1961년 호태왕비등은 전국중점보호문물로 지정된다. {그만 훼손하고 공개해 주세요.}

  20세기 80년대 고구려역사에대한 연구가 점점 전개되었다. 2002년 국가문물국은 설계분야와 관계있는 조직을 만들어 일련의 보호규범계획 전문조항을 제작하고, 질서있고 효과있게 세계유산신청을 위한 필요기초를 닦았다. 그후 정부는 3억여원을 들여 환경정리, 문물보호, 발굴정리 업무를 시작했으며, 현대식 건물과 무덤조성에 대량의 기금을 사용하였다. 초기에 11개의 왕릉 유적을 정리하였으며, 2700여건의 문물을 출토하였고, 현재의 박물관도 보수하였다. 작년 기자가 집안을 방문할때 길림성과 통화지역에서 집안시까지 모두 협력하여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힘썼다. 집안시도 이미 여행업을 적극육성하여, 유산등록 성공후, 여행업을 인삼산업에 버금가는 둘째 중심산업으로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산 등록되었으니까 이제 돈벌어야지.}

  방문중 모든 학자들은 반드시 역사적, 과학적태도를 가지고 고구려 고대문명을 보아야 하며, 현대 정치로 문제를 가져와선 안된다고 하였다. 실지로 중화민족과 한민족의 역사는 반드시 강제로 구분하거나 나누어서는 안되고, 그러수도 없다.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의 우군교수는 생각하기를 고대 동아시아 국가체제와 현재 서방개념에 의한 국가관계는 서로다른 개념이기때문에 억지로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고대 조공제도에 의한 관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현제 국제법체계의 인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래 억지로 중국역사에 끼워 놓지 말라고.}



  세계유산에 등록된 항목 {중국이 등록한 한국의 문화유산 항목}

  고구려 도성3채: 오녀산성(요녕헝인), 국내성(길림집안), 완도산성(길림집안)
왕릉12채; 귀족무덤26채; 장군총1호부장무덤; 호태왕비1석.



사진 :


벽화&lt;진식도&gt; 고구려 귀족의 생활을 표현

장군총



호태왕비(20세기초 촬영)

호태왕비 탁본&lt;br /&gt;




  <환구시보> (2004-07-02 제14반)


<출처 : 지누 북경유학생의 모임 http://cafe.daum.net/studentinbejing )
많은분들이 저희학교 대외한어과의 편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듯한데 정확한 정보 신속히 올려드린점 사과드립니다

최소 인민대 대외한어과 2학년 2학기까지 편입이 가능합니다


1.최소hsk6급이상 필요로함

2.재학중인 학교에서으 모든성적(본과재학중)

3.인민대 대외한어학원에서의 편입시험(중국어)

4.등록은 어학연수신청시 같이 하시면 되리라 생각이듭니다!
고로 내년3월 편입예정이신분들은 올 11월부터 학교측에 연락해보시
는게 좋을듯....

5.북경외 타지역에서 편입해오시는거라면 그지역 공안국에서
전이(qian1 yi2)수속을 밟으신후 거류증에 전이도장을 찍어오셔야
합니다!그후 북경에서 다시 새로 거류증을 만들게 됩니다
이수속을 하지않으시게 되면 귀국하셔서 새로 x비자를 받아오셔야
합니다.그러리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족하실만한 답변이 되셨을련지 모르겠네요

항상 열심이하는 카페 운영진이 될것을 약속드리면서

또 궁금하신점이 있으시면 카페에 남겨주시거나

korkor7@hanmail.net으로 메일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싸늘해졌습니다 아침저녁 기온차이도 크고

옷 두껍게 입으셔서 감기걸리지 않으시도록 조심하세요^^ 꾸벅


제11대 인민대 한국유학생회 기획부


참고로 전이수속을 하실적에는 편입하시려는 학교의 입학통지서가 필요합니다^^


(출처 : 임하영 중국인민대이야기 http://cafe.daum.net/ruc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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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인민대학교에서는 유학생 본과 예과반을 2003년 9월 부터 본과 예과반을

모집 시작합니다. 본과 예과반에 재학중 성적우수하고, 출석상황이 좋고,

HSK6등급을 취득하면 본과 시험을 면제 받고 본과 입학이 가능합니다.

등록시기 - 2004년 3월1일 - 5월15일
개학시기 - 2004년 9월1일 (1년과정)
학비 - 21500元/년 (1년치 완납해야 합니다.)

HSK3등급이상 고등학교동등의 학력
(졸업장 성적표 영문으로 필요함,검정고시인정)

*등록시기및 개학시기는 학교내 사정에 의하여 변동될수도 있습니다


(출처 : 임하영 중국인민대이야기 http://cafe.daum.net/rucstory )
학교 유학생사무실(유학생 1호동 2층)에 서류가 구비되어 있으니

필요한 서류들을 가지고 오셔서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공통적인 서류들로는 여권 고등학교 졸업장 hsk를 보셨었따면 hsk증서

그리고 추천서 그리고 사진(약4~5장)

간단히 이정도입니다! 어학연수 하시는분들은 이것만 준비하시면 되고요

글엄 잘준비하셔서 학교 들어오시는데 별무리 없으시길 바랍니다*^^*

*강의과정
오전 기본한어과목 : 한어 읽기,말하기,쓰기
강의 후 선택과목: 월,화 오후시간에 개설

*학비:$1300/1학기(10,750元), $2600/1년(21,500元),

(출처 : 임하영 중국인민대이야기 http://cafe.daum.net/rucstory )
신청기간:매년 3월1일~4월30일

공통조건:보험(사스로 인해서 북경시교육국에서 요구함,유학생보험도 가능)

고등학교졸업의 동등학력(졸업장 고등3년성적표 모두 영문이여야함,검정고시인정)


*대외한어과를 제외한 모든과는 hsk6급이상이셔야 합니다

대외한어과도 경쟁율로 인하여 hsk4급이상이셔야 무난히 입학가능합니다

인민대에서 어학연수를 하신분들은 본과입학하실때 플러스요인이 있습니다



*공통시험과목 : 중국어(독해, 이해, 작문), 종합(중국개황, 지리, 역사), 면접

상경계열은 수학추가, 외국어계열은 영어추가

종합과목은 각각 4:3:3 비율로 나오며, 중국지리/역사

그리고 세계지리/역사가 모두 포함됩니다.

입학시험 일자:매년6월


*개설학과
철학과, 경제과, 국제경제와 무역과, 재정학과, 화폐금융과, 법학과, 사회학과, 사회복지과, 정치학과 행정학과, 국제정치학과, 중국중문학과, 언론학과, 방송학과, 광고학과, 역사학과, 통계학과, 정보관리과, 경영학과, 마케팅과, 회계학과, 인사관리학과, 부동산과, 문헌학과, 무역학과, 과학사회주의와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중국혁명사와 중국공산당사과, 영어학과, 러시아학과, 일어학과, 중국어학과


*비용
학비:$2600/년(21500元) <국제관계학원,신문학원,법학원:$2800/년>
빠오밍:50$(400元)


(출처 : 임하영 중국인민대이야기 http://cafe.daum.net/rucstory )
准考证号 国家 性别 出生日期 录取院系 录取专业 导师

04290453 美国 男 1961-8-4 法学院 经济法学 刘剑文

04240156 韩国 男 1971-2-28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牛军

04240144 韩国 男 1974-9-18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叶自成

04250051 韩国 男 1971-5-26 经济学院 政治经济学 刘伟

04220016 韩国 男 1968-3-17 考古文博院 考古学及博物馆学 刘绪

04210079 韩国 女 1976-11-26 历史学系 世界史 宋成有

04210081 韩国 男 1976-10-12 历史学系 世界史 宋成有

04210021 韩国 男 1968-7-29 历史学系 中国古代史 邓小南

04160014 美国 男 1935-1-1 心理学系 基础心理学 王登峰

04180018 韩国 女 1973-2-26 新闻与传播学院 政治学(国际传播) 龚文庠

04230043 韩国 男 1974-7-17 哲学系 中国哲学 陈来

04230064 韩国 女 1971-11-19 哲学系 中国哲学 楼宇烈

04200058 马来西亚 女 1969-3-8 中国语言文学系 汉语言文字学 耿振生

04200076 日本 男 1969-2-4 中国语言文学系 汉语言文字学 张双棣

04200094 韩国 男 1971-9-6 中国语言文学系 汉语言文字学 沈阳

04200067 韩国 男 1972-12-20 中国语言文学系 汉语言文字学 宋绍年

04200102 日本 男 1959-8-23 中国语言文学系 汉语言文字学 陆俭明

04200042 越南 男 1977-5-23 中国语言文学系 语言学及应用语言学 陈保亚

04200051 韩国 女 1969-4-5 中国语言文学系 语言学及应用语言学 王洪君

04200125 韩国 女 1975-8-19 中国语言文学系 中国古典文献学 董洪利

04200285 马来西亚 男 1973-1-30 中国语言文学系 中国现当代文学 陈晓明

04230156 韩国 男 1967-8-1 哲学系 宗教学 孙尚扬
北京大学2004年外国留学生硕士研究生录取名单


准考证号 性别 国籍 录取院系 录取专业

04440041 女 韩国 对外汉语教育学院 汉语言文字学

04440027 女 韩国 对外汉语教育学院 汉语言文字学

04240256 男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36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政治

04240261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53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04240265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07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55 男 韩国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04240252 男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政治

04240231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04240245 男 加拿大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04240218 女 日本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10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54 男 韩国 国际关系学院 外交学

04240223 男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66 男 日本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40247 女 韩国 国际关系学院 国际关系

04220022 女 韩国 考古文博学院 陶瓷考古

04220023 男 韩国 考古文博学院 陶瓷考古

04210061 女 韩国 历史学系 宋辽金史

04210055 男 日本 历史学系 近现代史

04390121 女 韩国 外国语学院 朝鲜语言文化

04180009 女 新加坡 新闻传播学院 新闻学

04180010 女 韩国 新闻传播学院 新闻学

04180014 女 委内瑞拉 新闻传播学院 广告学

04180292 男 韩国 新闻传播学院 新闻学

04230074 男 韩国 哲学系 中国哲学

04230089 女 韩国 哲学系 美学

04230090 男 韩国 哲学系 美学

04200194 男 日本 中国语言文学系 汉语言文字学

04200209 女 韩国 中国语言文学系 现代汉语

04020203 女 日本 中国语言文学系 中国现当代文学

04209028 女 新加坡 中国语言文学系 汉语史

04200197 女 泰国 中国语言文学系 对外汉语教学
시험 두달전, 푸다오반 한달전.준비 요령



.. 지금 대략 푸다오반 시작하기 한달 정도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과목별 준비 요령입니다.

어문:지금쯤이면 대략 hsk7급정도의 실력을 요합니다.
푸다오반에서 설명해주는 내용을 이해하고
시험준비 하기에 필요한 기본 실력이라고 해야되나,
나름대로 작문 주제를 정해 써보고 교정을 받아야 되고,
제 1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어느정도 숙지 하고 있어야 됩니다.
반의어,동의어,동음어 같은것들은 어느정도 정리나 암기가 되있어야 하고,
아직 시조 같은 것들은 암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독해 문제 같은것들은 꾸준히 풀어서 문제 푸는 요령같은것들을
몸에 익히는 편이 좋습니다.
푸다오 반이 시작 하면 그때 찍어주는 암기내용은 거희 그림그리듯
외우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때 독해 작문 같은 것들을 꾸준히 해서
감각을 유지 하는 편이 좋습니다.
학원을 다니는 것,개인 과외를 받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학원을 다니게 되면 학원 자체의 모의고사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볼수 있고, 아무래도 열심히 하는 학생을 보면서
긴장감을 유지시킬수 있으니깐요.또 학원에서 주는 푸다오반 수업 정리 자료도
꽤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 지금쯤이면 어느정도 역사의 전반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푸다오 반이 시작 하게 되면,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내용은 어떤 내용을 외워라
그정도를 설명해주지, 학교 수업시간 처럼 설명해 주진 않습니다.
역사 같은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토요일날 역사 푸다오가 있으면,
토요일날 저녁에 그날 푸다오 반에서 공부 했던것을 다~외우는것이 좋습니다.
특히 시험때 괄호 채워 넣기 같은 경우,굉장히 햇갈립니다.
만약에 학원에서 푸다오반에서 한 내용을 자체적으로 이건 나올수 없다,
이건 나온다...라고 범윌르 축소 시켜줄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지만, 학원이 결과를 책임질수 없습니다.
푸다오 반에서 찍어주는 내용, 굉장히 많습니다.하지만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모두 외우십시오.
서술형 문제 같은 경우에도 찍어주는 경우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방법 없습니다. 일단 그 내용을 파악한 후,외우 십시오.
이건 나올거 같다, 저건 안나올거 같다... 그런거 없습니다.
작년 푸다오반에서도 5가지 서술형을 찍어주고 거기서 한문제가 나왔는데,
저 아는 사람들 나름대로 이 문제는 안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나와서 피 봤습니다...
저같은 경우 작년 시험에서 세계사 부분의 많은 사람이름을 영어로
써 넣었습니다. 거기서 생각보다 많은 점수 를 땃는데 시험을 치르기 전에
만약을 위해 역사 선생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세계사 부분의 인물이름을 영어로 써도 되는지.
참고로 영어식 이름을 중국어로 외우기.....저는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역사 시험에서 다시 강조하지만 먼저 내용을 파악하십시오.
그 당시 시대 배경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암기하면 한결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문제집에 나오는 문제들 풀어 보십시오. 가끔씩 출제 됩니다.

영어: 영어 기본 실력들 어느 정도 있으시죠?^^;;;;
만약 영어 실력이 안된다고,영어를 잘한다고 놓지 마십시오.
작문도 가끔씩 써보는게 좋습니다. 어법부분도 계속적으로 준비하십시오.
독해부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솔직히 영어 푸다오.....시험에는 크게 도움안됩니다.
(이건 개인적 견해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문제를 풀고,감을 유지시켜야 합니다.

수학: 제 개인적 생각에는 수학못하시는분들, 미리 겁먹고 포기하는 경우 많은데
"절대"그러지 마십시오.
아마 지금쯤이면 수학 범위의 반정도의 개념을 이해 하시리라고 봅니다.
(아니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지금부터라도 시작해서 데미지를 줄이십시오.)
수학 푸다오 시간에 푸는 내용들, 미리 예습을 해 놓는 편이 편하실 것입니다.
일단 시험 2주전 까지 푸다오 시간에 준 프린트 내용을 다 이해하고
암기 하시는게 다른 과목 공부에도 좋습니다.

-푸다오 반에 수업을 들을때, 적어도 2명정도가 같이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난후, 서로 필기한 내용을 비교해 보는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듣다 보면 놓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의고사를 자주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알수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영어,수학을 포기하지 마십시오.꾸준히 공부해서 감을 살리십시오.
나중에 시험 2주전 부터 어문과 역사의 엄청나게 외워야되는 양 때문에
수학,영어를 손 놓는 경우 있습니다. 절대 그러지 마십시오.
미리 계획을 세워 놓고(자기 능력에 맞는) 그리고 공부하십시오.
시험앞두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란 참 어려운 일 입니다.
-만약 자신의 실력이 뒤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낙담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마십시오. 시험을 치루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열심히 준비하십시오. 공부도 안하면서 쟤는 붙을거 같다. 쟤는 떨어질것 같다.
그런짓들도 하지 마시구요. 자기보다 잘하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고
분발하십시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같은 경우 올해 몇과목을 시험 치루는지 어떤 내용을 보는지
잘 모릅니다. 심지어 시험을 언제 보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작년과 재 작년에 준비한 경험을 개인적인 바탕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시험 보시는 분들 모두 최선을 다하시기를 빌면서...


--Uguyz님을 대신해서 제가 올렸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인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참고해주십시오^^

덧붙이는 정보 : Uguyz군. 솔로입니다^^::
서류상에 기초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청자격 (1) 만 18세~30세, 고졸이상 학력, 고등학교 성적우수자이며, 품행단정
하고 신체건강한자
(2) 초보적인 중국어 기초가 있어야 함. 중국어를 1년이상 공부한 적이
있거나 초등HSK C급이상 증명서를 가진자

====== 실제로 예과반의 연령층은 다양합니다. 작년같은경우 저희반에 84년동생부터 77년형님까지 같이 공부를 했었죠.
HSK성적없이도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그에 상응하는 1년정도의 학습과정을 증명할수 있는 서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볼수있겠죠. 물론 유학원에 배분된 할당량이나 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것은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사실 잘 알지도 못합니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예과반의 경쟁률을 생각해봤을때 그래도기본적인HSK급수정도는 따놓는게 유리하겠죠.
하지만 이때 제출하는 HSK성적이 본과진학의 당락을 결정하는것은 아닙니다. 입학후에도 최고 3회의 HSK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입학시에 이미 8급이 있다면.... 당신은 예외입니다^^======

신청시간 : 2004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신청장소 : 북경대학 유학생사무실 예과부(샤오위엔 3호루)

신청방법 1.신청시에 고등학교졸업증명서 혹은 상응하는 학력증명서, 고등학교 3년
간 성적표, HSK초급한어수준인 C급 펴준증서 또는 일년 이상의 중국어
학습 성적증명서를 제출
2.제 1항의 성적표를 검토한 후에 모집조건에 부합하는 학생에게 '북경대
학예과유학생입학신청표','외국인신체검사서'를 발송한다
3.신청인은 2004년 5월 20일까지 '예과유학생입학신청표','외국인신체검
사서'등서류를 직접 제출하거나 등록우편으로 예과사무실에 송부해야
한다.

신청서류 1.예과유학생입학신청표(사진첨부)
2.고등학교졸업증명서, 성적표(영어/프랑스어/일어/중국원본 혹은 공증본)
3.외국인신체검사서(사진첨부), 공증한 복사본 1부
4.추천서 1부
5.경제담보인의 증명서류(담보인의 성명, 직업, 직장, 전화번호, 주소를
정확히 기재하여야 함
6.재중국사무담보인의 보증서(내용:성명, 직장, 전화번호, 연락주소포함)

신청비 : 인민폐 400원 혹은 50달러 (여행자수표 가능). 이 비용은 환불되지 않음

입학사정 : 신청서류가 완전히 구비되어야 하며, 합격자에게는 2004년 6월 30일
전에 학교에서 '외국유학인원 비자신청서(JW202)와 '북경대학합격통지
서'를 발송하며 임학요강에 부합되지 않으면 입학을 허용하지 않고 입
학서류는 돌려주지 않는다

등록시간 : 2004년 9월(구체적인 시간은 합격통지서에 준함)

학비 기숙사비 1.학비 : 1인당 매년 21,600원 인민폐 혹은 US$2,600(교과서값포함
하지 않음). 개학시 일시불로 납부해야 함
2.기숙사비 : 학교 책임하에 외국유학생들을 위한 아파트를 제공함
(북경대 서문밖 500미터 거리, 우전회의중심의 아파트)
2인1실 6.5달러/일, 1인1실 11달러/일

기숙사조건 : 아파트식 숙소로서 2인1실, 에어컨, 컬러TV, 공용전화, 공동화장실과
공동욕실 있음(주방없음), 청소서비스제공

======많은 분들께서 예과반숙소에 대해 여쭤보시곤 하시는데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이 숙소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우전회의중심에 들어오시면 보이시는 썩 괜찮아보이는건물..... 이 아닌 그뒤로 돌아가시면 5층짜리 건물이 있습니다. 겉에 보시고 혼동하지 마세요^^ 이 기숙사는 다시 4개로 구분되는데 이중 규정상 1문이 남자기숙사 2문이 여자기숙사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꽉찬경우는 3,4문에서도 거주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거주환경은 꽤나 괜찮습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청소도 이정도면 깔끔하게 잘 해주는 편이고 주변분위기도 조용한게 공부하기도 괜찮죠..(저녁에는 음산하기도...) 그리고 꽤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기숙사를 벗어나 외부에서 집을 빌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규정상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서 편법을 쓰게 됩니다. 보통은 2인실을 혼자쓰는 (가격은 물론 2인치를 혼자 지불합니다)친구의 명의를 빌려 그방의 룸메이트로 등록을 하죠. 이렇게 되면 사무실에서 직접 순찰을 나오지 않는 이상 들킬일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그래서 방을 혼자쓰는 사람은 꽤나 인기가 있습니다^^
기숙사의 열약한 환경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특히 학부모님들^^) 개인적으로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으며 사는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걸어서 5분거리에 큰 슈퍼마켓과 야채,과일을 파는 점포들이 있고 바로 위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교통상으로도 만족할만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확실한것은 본인이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겠죠. 기타 자세한 사항은 메일을 통해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 -통신주소- 中國北京市北京勺園3號樓(留學生办公室豫科部)
-우편번호- 100871
-연락인- 董本相先生, 周寶德先生
E-mail - YKLB@pku.edu.cn
-전화- (86_10)6275-2611, (86_10)6275-1232, (86-10)6276-2747,
(86-10)6275-9398
-팩스- (86-10)6276-5543
-홈페이지- http://www.oir.pku.edu.cn


이상이 서류상에 있는 내용들이죠. 그럼 다음은 합격한후에 반배치에서 본과 입학까지의 과정들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반배치 : 반배치는 반배치고사에 따라 결정됩니다. 물론 중국어학습시간이나 국적등의 다른 요소들도 완전배제할수는 없겠지만 순수하게 시험성적에 따라 분반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게 좋을듯합니다. 반배치고사는 HSK와 상당히 유사한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한어이외의 과목은 시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반은 1반에서 8반까지 나뉘게 됩니다(1급이 가장 기초반 8반이 제일 우수한반입니다) 2학기때에 다시 한번 반배치고사를 보지만 1학기때와 반이 달라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보게되는 반배치고사가 실질적으로 당락의 큰 기준이 되는거죠(당연히 윗반학생일수록 입학하기가, 자기가 희망하는 학과에 진학하기가 훨씬 용이합니다) 그러니 예과반 입학을 희망하시는 여러분들!! 분반고사를 잘보셔야합니다

반의 이동 : 반배치가 끝나고 나서 자신의 희망에 따라 반을 옮길수도 있습니다
반을 내릴수도 있고 올릴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반등급을 올리려고 하겠죠?? 하지만 각반당 적합한 인원수가 15인인지라 희망한다고 다 반을 바꿀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실력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시다면 한번 시도해보세요

예과반내에서의 내신성적 : 8반을 기준으로 설명을 드리면 1학기때는 북대출판사의 고급한어(상)과 고급구어(상), 열독, 서작등을 배웁니다 하지만 이는 대략적인 틀일뿐 한어와 구어등을 제외한 과목들은 바뀔가능성도 있습니다. 시험은 한학기당 두번을 보며 내신성적에는 시험성적뿐만 아니라 출결상황도 한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출결상황이 좋지않은 사람들은 경고를 받게 되며 심하면 시험자격박탈, 더 나아가서는 퇴학까지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결상황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그리고 2학기에는 법학이나 역사등의 전문지식에 대한 선결학습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7,8반을 위주로 하는게 사실이며 그렇게 깊은 지식을 습득할수는 없습니다. 단지 기초적인 관련지식과 단어들을 접하는게 의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나중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니 기회가 있을때 다 배워두는게 좋겠죠??

HSK성적관리 : 북대입학시험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는 당락의 모든것이 시험성적 하나로 좌우가 됩니다만 예과반의 경우는 HSK가 당락에 큰 영향력을 점유하기 때문에그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기울이게 되죠. 학기동안 이런저런 소문이 많이 돌겠지만 HSK는 입학전에 가지고 있던 급수와 입학후10월 달,12월달, 그리고 5월달의성적까지를 반영합니다. 8급은 안정권이라고 볼 수 있고 7급은 비교적안정권(입학은 가능하겠지만 1지망이 인기학과일 경우에는 밀리는 경우도 있어 비교적안정권이라 쓰겠습니다)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이하의 경우에는 선택한 과나 내신성적등의 요소로 선택되게 됩니다.일반적으로 국제관계학원과 법학과,그리고 광화관리학원등을 인기학과로 칩니다.
하지만 제가 꼭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북경대에 온 목적이 HSK성적이 아니라는거죠. HSK는 대학입시와 중국어 능력향상을 위한 과정일뿐 그 목적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십시오. 개인적으로 HSK보다는 학교수업에 더욱 치중하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HSK성적도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당연히 출결상황과 내신성적도 좋아지니 같은 급수라도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수가 있겠죠.

수학시험에 관해서 : 만약에 자신의 희망하는 과가 경제학과나 광화관리학원일 경우에는 수학시험에서의 합격은 필수조건입니다. 북대입학시험때 응시생들과 같이 입실을 하며 동일한 시험지를 풀게 됩니다. 합격점수는 60점이상이며 이때쯤 되면 북대에서 이에 관한 푸다오과정을 열게 되니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을듯 싶습니다
이 두학과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의 경우에는 수학시험을 반영하지 않는걸로 알고 있고 수학시험을 제외한 나머지과목들은 보지 않는다고 담당선생님이 말씀하셨으니 착오없으시길 바라며 이후에 혹시라고 이에관한 변경사항이 있다면 정정해 올리겠습니다.


제가 우선 말씀드릴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기타설명이 필요하다거나 궁금하신점은 게시판에 올려주시거나 개인적으로 메일을 주십시오. 만약에 필요하다면 다시 정리를 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북경대를 희망하시는 분들 공부 열심히 하시고 꼭 자신이 희망하는 학과에 합격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하얀눈은 녹아들어갑니다^^

( p.s :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질문하나하나에 항상 성의껏 답변해주시는 다른 운영자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바로형은 빼구요ㅋㅋ)

(출처 : 아직하얀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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