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한 발만 뒤로 갔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에 온 뒤로 가장 확실히 느껴지는 것은 시민질서 수준입니다. 중국이 물질적으로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시민질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모두가 무단횡단"을 하는 중국에 비하여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횡단보도를 무단으로 건너지는 않지만, 아직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 보입니다. 횡단보도에서 인도와 도로의 분리선에 발을 올려놓고서 파란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이 됩니다. 한 발자국 앞에 있다고 얼마나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겠습니까? 오히려 상당히 위험할 뿐입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한 발만 뒤로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지하철에서는 10명이 있으면 10명 모두가 책이나 신문을 보고 있다. 타이완에서는 10명중에 6명이 책이나 신문을 보고 있다. 홍콩에서는 10명 중에서 4명이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지하철에서는 10명이 타고 있으면 보통 10명 중에 4명은 큰 소리로 떠들고 있고, 나머지 6명은 4명의 대화를 듣고 있다.

在日本地铁里,5个人就有5个人读书看报;在台湾,5个人就有3个人读书看报;在香港,5个人中有两个人读书看报;而在中国的地铁里,5个人中往往有两个人在讲话,另外3个人在听他们讲话。

중국지하철은 상당히 시끄럽답니다. 전화통화는 기본이고 큰 소리로 떠들다보니 시끄러울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조금 민감한 내용도 그냥 대놓고 떠드는 경우가 많은지라 듣고 있으면 사실 많이 즐겁답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적나라한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을 알수도 있어서 즐겁고요.

그에 반하여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휴대폰에 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책이 아니라 오락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차피 책은 보라고 권유한다고 볼 성질의 물건은 아닙니다. 다만 나중에 책을 볼 일이 생겼을 때 후회하지 마시고 평소에 조금조금씩이라고 읽어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책도 안보다가 보면 소화불량이 된답니다.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분들이 있다. 중국을 이기고 싶은가? 그것보다 더욱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러니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헛소리는 그만 했으면 한다. 그래서 본 내용은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적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일수도...)


1. 공자는 한국 사람인가?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공자가 태어났던 산동성 곡부는 당시에 동이(东夷)라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한민족은 동이(东夷)의 후손이다. 고로 공자는 우리의 조상이다.

말이 되는 것 같은가? 미안하지만 위의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명확하게 틀린 말이다.

1) 공자는 동이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시의 산동성이 동이들이 모여살던 곳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말이지만, 정확하게는 당시의 동이와 화하족들이 같이 모여 살던 곳이다. 고로 동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물론 화하족이었어도 동이라는 민족그룹의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자는 공자의 족보를 따지며, 공자의 조상은 원래 은나라사람이었고, 송나라로 갔다가 다시 노라나로 왔기 때문에 공자가 동이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 의견을 채택해서 공자가 당시의 동이였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2) 당시의 동이와 나중의 동이는 다르다.
춘추전국시대의 동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폭넓은 개념이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보면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의 중국이라는 개념은 지역적으로는 매우 좁은 곳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산동성부터 시작해서 동북쪽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동이라고 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혹자는 동북쪽까지 가지도 않고, 잘해봐야 요서라고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동이의 개념은 변한다. 산동성의 경우 진시황의 진나라 통일 이후에 동이가 아닌 중국의 개념에 포함이 된다.

원래 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의 동쪽에 있는 이민족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었기에, 중국이라는 것이 확장됨에 따라서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고조선을 운운하면서 한반도로 동이가 유입되었다고 말한다면, 중국으로도 그정도의 동이는 충분히 녹아들었다고 반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 동이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었다.
지금은 보통 동이(东夷)라고 하지만 사실 동이는 구이(九夷)라고 불리기도 했다. 9종류의 동이(东夷)라고도 할 수 있고, 구의 뜻은 단순히 "9"가 아닌 "수 많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경우더라도 당시의 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었다. 산동쪽의 동이와 동북쪽의 동이가 달랐던 것이다. 단순히 당시에 동쪽에 있다고 하여서 문화적으로도 연결점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냥 동쪽의 이민족(东夷)으로 불렀던 것이다.

(참고로 전국시대의 초나라도 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 남부지역에 위치한 초나라에는 도가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노자도 있었다. 만약 공자가 동이라면 노자도 동이인가? 너무 거리가 머니까 왠지 거부감이 생기는가?)


4) 동이만이 한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한국은 동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 많은 민족들의 융합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는 정리가 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족주의적 세뇌에 의해서 아직도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벌어진 코메디인 것이다. 한국은 동이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수 많은 민족의 후손인 것이다.

고로 "공자가 동이임으로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코메디일 뿐이다.



2. 중국인들을 누르고 싶은가?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을 입닥치게 하고 싶은가? 공자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럼 쓸데 없이 공자가 한국인의 조상이니 머니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확실하고 중국인들이 반박도 하지 못하는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주겠다. 중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 된다.

"공자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과거의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한국은 아직도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자에 대한 제사(석전대제) 역시 중국에서는 이미 그 방법을 몰라서 한국의 성균관(대)[각주:1]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으며 인의예지를 높게 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야 말로 진정한 공자의 후손입니다."

조용히 위와 같이 말을 한다면 배웠다는 중국인일 수록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어떤 중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열폭해서 헛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논리적인 대답이 나올 수는 없다. 위에서 말한 것에서는 한마디 거짓이나 복잡함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자가 한국인과 핏줄로 이어졌는지가 아니다. 비록 예수에게는 자식이 없으나, 만약 예수의 자식이라도 살인을 하면 그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고, 살인자의 자식이라도 선한 일을 행하면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이다.

단! 위의 말을 중국인들에게 한다면 당장은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점차 늘어간다면 과거의 것을 어떻게 지켜야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타이완쪽에 남아있는 과거의 것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당장의 날카로운 칼이지만, 중국인에게 깨닭음을 주는 말이다. 본인이야 한국이든 중국이든 옛것을 지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진해가기를 원하기에 위와 같은 말을 해주지만, 당신들이 그러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3. 핏줄보다는 정신을 중요시 하여야 할 때.
본인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고 있다. 예수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부처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공자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노자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따라서 행동을 한다면, 종교를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균관대 유학 동양학부쪽의 몇몇 분들은 공자를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려고 힘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자의 말씀을 배웠다는 분들이니 만큼 더욱 한심하게 생각한다. 공자가 주공을 꿈에서 만난 것은 주공이 그의 조상이어서 그랬던 것인가? 공자가 주공의 뜻을 이어받으려 한다고 말한 것은 조상이었기 때문인가?

중요한 것은 핏줄이 아닌 정신을 제대로 이어 받아서 제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다.

* 참고로 본인은 공자가 한국에서 제대로 살아나던지. 아니면 완전히 죽어버려야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공자의 말을 이어받는 인간이 없이 이상하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은 공자의 부활이 필요하다.을 참고.



공자에 대한 이야기이니 만큼 공자의 한마디 말로 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공자가 말씀하시길 : 주나라는 하와 상 두 왕조를 거울 삼으니, 그 문화는 매우 찬란하구나!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이를 본인이 현대적으로 바꾼다면. "한국인은 공자나 예수 혹은 다른 훌륭한 사람을 거울로 삼으니, 그 마음이 매우 찬란하구나."



추가--
잡담 : 이 글이 얼마나 무서운 중국현실 비판인지 아실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중국은 현재 무형유형의 전통자산을 잃어버렸고, 제대로 회복하려 노력도 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 글이 얼마나 한국의 현재를 칭찬하고 있는 것인지 알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잡담2 : 한국이나 중국이나 옛것에 대한 쓸데 없는 집착을 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며, 미래라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되었냐 혹은 우리 조상이 얼마나 위대하였느냐가 아니라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하면 위대해 질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입니다.


  1. 추가 : 석전대제를 관장하는 기관은 성균관대가 아닌 성균관입니다. 그럼으로 성균관이라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균관대쪽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많은 유교부분에서 성균관대의 역할이 컸기에 () 안에 대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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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나오는 소리가 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나오던 말인데, 솔직히 들으면서도 웃었던 말이다. 尊老爱幼是中华民族的传统美德 (노인을 존경하고 아이를 아끼는 것은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이다.) 들을 때마다 이 소리를 했다. "웃기시네"

중국은 특히 문화대혁명을 통하면서 소위 말하는 전통미덕과는 완전한 이별을 했다고 보아도 된다.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면 단절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이에 대한 부활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이 무조건 잘못 된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동안의 단절은 그리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올림픽 전까지는 자리 양보같은 것은 상당히 보기 힘들었고, 본인이 양보를 하면 저새끼는 머야? 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올림픽이 지난 이후에 나름 상당히 개선되었다.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벌어지기 까지 했다.

중국 칭다오에서 20세 정도의 여자가 노약자석에 앉아 있으면서 노인에게 양보를 해주지 않자. 옆에 있던 한 중년 남자가 자리를 양보하라고 했다가 싸우게 되었다.. "이 버스에 이렇게 자리가 많은데, 대체 왜 나한테 자리를 양보하라는 거야?" 남자가 대답하길 :" 그 자리는 노약자 전용이고, 노인이 당신 앞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자가 무시했다고 한다.


결국 열받은 남자는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돈을 꺼내서 여자의 얼굴을 치면서 말했다. "자리 좀 비키지? 비키면 100원 줄게. 비킬거야 말거야?" 그래서 결국 마구잡이로 싸우게 되고, 남자는 힘으로 여자를 밀어낸다. 주위에서는 잘한다라는 소리들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제로 올림픽 이후에 베이징과 연안의 발전된 도시를 중심으로 상당히 괜찮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칭다오도 그런 도시중에 하나이다.(칭다오는 특히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제 중국 친구 한명은 : 사실 몇몇 도시에 한정되어있을 뿐, 중국 전체적으로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낸다.

 사실 한국에서는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미치지 않았으면 감히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아니 한국은 미칠듯히 위험한 모습이 보여집니다. 이번 겨울에 한국에 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없는 지하철이지만, 한국에 계신 분들은 지하철 만원 상태에서도 노약자석은 비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는 상당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뭐냐고요? 노약자석이  왜 무조건 비어 있어야 될까? 노약자 석은 어디까지나 노약자들을 위한 자리이지, 노약자가 아니면 아예 앉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저 곳에 함부로 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혹은 어떤 눈빛을 받게 될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 한다는 뜻이다. 중국이 전체적으로 조금 더 개선된 노약자석 문화가 이루어져야 된다면, 한국은 조금은 완화되고 융통성 있는 노약자석 문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 도쿄는 복잡한 열차로 묶여 있습니다. 아니 엉켜있습니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도 평소에 가지 않는 곳을 갈때에는 길을 잘 못 찾을 정도라는 이런 도쿄의 지하철에서도 모두가 알고 있고, 모르면 이상한 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야마노테선 山手線(やまのてせん)입니다. JR에서 운영하는 해당 노선은 한국으로 따지면 2호선과 거의 비슷한 역활을 하는 도쿄 중심부의 순환선입니다.

 

일본어 학교가 신쥬쿠에 있다보니 매일 이 야마노테선을 타게 되는데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나 익숙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딴딴 따따따딴~~~ 따따딴딴 따따따따~~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면서 이게 대체 무슨 노래인지 2일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네. 제가 바보였습니다.

 

그 실체는 바로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 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익숙할 수 밖에요. 어릴 때 그렇게 보던 애니매이션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일본이 다시금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가까운 나라라지만,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성장한 제가! 무엇보다 일본이라면 일단 대 놓고 쪽발이라고 욕부터 하는 나라에서 성장한 제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너무나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그 노래를 들으면서 친숙한 느낌과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겠죠. 아무리 일본을 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이런 문화산업의 모습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일본의 독특한 문화에서 이러한 문화들이 배양되었고, 그것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시키기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에서 잘나간다는 온라인 게임의 대부분의 제작자와 관련 직원들이 즐거워서 밤을 새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밤샘을 하는 현실에서 과연 이렇게 강력한 문화적 토양이 만들어 질 수 있는지 매우 의심이 됩니다. 사실 제가 아는 개발자들은 다 미련하기 그지 없습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미련스럽게 텍스트큐브를 계속 작업하시는 분들도 있고, 매일 밤샘을 하면서 투덜투덜되면서 msn으로 퇴근 안하냐고 물어보면 안돼! 이거 마무리 해야된다면서 즐겁게 말하는 친구녀석들.

 

이런 미련한 것들은 냅두면 알아서들 미련하게 근무합니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계만 보장해 준다면 말이죠. 어차피 그런 족속들은 취미도 그쪽이고 결국 일과 연관되는 물건들은 자기 월급으로 지릅니다. 그런 미련한 족속들을 어떻게 배려하는냐가 앞으로 한국의 문화 산업이 발전하는 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예를 IT 쪽으로만 들었지만, 만화나 애니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웹툰이라는 돈이라고는 되지 않는 것을 미련하게 죽어라 그려대는 사람들... 적지만 몇몇의 그 미련한 것들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기쁘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나이를 먹어도 계속 그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입니다. 돈과 생활. 그리고 가정이라는 현실 앞에서 열정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기만 하죠. 그들에 대한 배려. 한국에서는 언제쯤이나 이루어질까요?

 

하긴 저도 제목으로도 적었지만, "문화 산업"이라는 말을 쓰는 것부터가 자유로운 창작보다는 찍어내기식 상업성을 추구한다는 말이 은근히 내포되어있을지도요. 문화가 산업이 되는 이 아름다운 사회에서 문화를 그냥 즐기는 바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국의 젊은층의 소비문화가 문제시 된 것은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급속도로 시장경제를 향하여 도약하고 있는 중국는 어떨까요? 중국 북경시 조양구 통계청이 100만명의 대학생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하여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매달 8만원 이하의 돈을 쓰는 경우가 15%이며, 8만원에서 15만원사이가 60%로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15만원에서 25만원이 20%을 차지하였고, 매달 25만원이상이 5.5%에 달하였습니다. 중국의 물가가 한국에 비하여 약 1/4임을 생각한다면 현재 중국학생들이 받는 돈은 한국 대학생들이 받는 돈에 비하여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아도 약 60만원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중국이 낙후되었고, 못 산다는 편견을 버려야 될 때가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한달에 매우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학생도 15%에 달하여서, 중국의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줍니다.

대학생들은 매달 식비로 약 7만원을 쓰며, 이는 매달 생활비의 60%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용돈은 주로 참고서나 옷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저금 습관에 대해서는 단지 20%의 학생만이 저금을 하고 있으며, 30%에 달하는 학생들은 한번도 저금을 해 본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25%의 학생들은 여유돈이 없어서 저금을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현재 중국이 급속도로 시장경제체계로 나아가면서 많은 사회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소비지향문화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대다수들은 "절약"을 미덕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 60%의 학생들이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고 있고, 20%의 학생들이 절약을 중시해야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약의 대표적인 행동인 저금이 거의 없는 것과 절약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혹은 일반적인 한국인이 생각하는 절약과는 조금 다른 절약이 아닐런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니까! 얼마나 비싸더라고 꼭 사고 말겠어!"라는 생각은 중국학생의 60%가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머지 40%는 이러한 소비형태를 찬성하지만 말입니다.

그 외에도 "옷이 날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80%을 넘어서, 현재 중국 대학생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가를 주변으로 점차 옷을 잘 입기 시작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옷으로 한중일 삼국을 알아맞추기는 힘들어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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