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子曰:凡用兵之法,馳車千駟,革車千乘,帶甲十萬,千里饋糧,則內外之費,賓客之用,膠漆之材,車甲之奉,日費千金,然后十萬之師舉矣。

손자 가라사대 :
군대를 운용하게 되면 경전차 1000대와 중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이 필요할뿐더러 그들을 위한 천리길의 먹거리 수송이 필요하다. 이렇게 밖으로 소비되는 돈 이외에도 외교전과 전차와 갑옷의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10만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1. 차
장기에서 차를 빼앗기면 게임에 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춘추시대에는 전차는 전쟁의 핵심중에 핵심이었다. 전차는 현대전의 탱크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 무게와 돌격력으로 적진을 밀어버리는 무기이다. 전차의 시작은 당연히 말을 사육하게 된 이후에나 가능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4000년전부터 말과 같이 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기원전 2000년전에는 마차도 만들어졌으리라 생각되고 있다. 말의 사육과 마차의 발명은 전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상나라시대의 군사책임자는 말马이라고 불렀고, 주나라에서는 군사책임자를 사마司马라고 불렀을 정도로 말을 중시하였다. 고대에 전쟁과 관련된 제사의 이름도 마제祃祭로서 말과 관련이 되어 있다.

현재 우리는 말이라고 하면 유럽의 기사들이 두꺼운 철갑을 두르고 말을 타는 것을 연상하고는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영화 벤허에 나오는 것처럼 말로 수레를 끄는 전차를 위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세계 각 지역의 전차의 모습은 각기 조금씩 달랐다. 서아이사형 전차는 바퀴살의 숫자가 적었고, 가마가 바퀴의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스-로마의 전차는 바퀴와 가마가 수직으로 되어 있지만, 바퀴가 작았고 가마가 낮았으며 서아시형처럼 바퀴살의 숫자가 적었다. 중국의 전차는 바퀴살이 많았으며, 바퀴와 가마가 수직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전차는 중앙아시아 전통의 마차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소가 말보다 먼저 언제 사람에 의하여 가축으로 키워졌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확한 시기나 바퀴가 언제 발명되었는지등은 아직까지도 고고학계의 뜨거운 화두이다. 라틴어계열에서는 일반적인 수레는 cart라고 불렀으며, 소가 끄는 말을 ox cart로 불렀다. 전쟁에 사용되는 마차에 대해서는 chariot라고 불러서 중시하였다. 마차의 기동력과 돌파력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하였다.

중국에서 전차는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병기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전차는 넓은 평지를 제외한 지형에서는 기동성과 돌파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마궁병을 통한 빠른 이탈공격방식이 생겨나면서 전차의 지형적 제한성으로 인하여 진한시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었갔다.


1.1. 경전차와 중전차 (벌쳐와 시즈탱크)
손자는 전차를 치거(馳車) 혁거(革車)로 나누었다. 치거는 경전차로서 스타크레프트의 벌쳐라고 생각하면된다. 혁거는 반대로 중전차로서 스타크레프트의 시즈탱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경전차는 춘추전국시대의 서적에서는 그리 자주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중전차는 많은 고서에서 나오게 된다. 중전차가 경전차보다 먼저 탄생을 하였는데, 중전차가 혁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전차을 피혁으로 감쌓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전차는 경전차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탄생했으나 한대부터는 오히려 거의 출현하지 않게 된다. 송대 이후에다시 부활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이름만 딴 것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경전차는 기존의 중전차를 개조한 신형 전차로서 기동성이 훨씬 더 뛰어나서 공격용으로 좋았다. 그에 반하여 중전차는 움직임이 둔하여 방어용도로 효과적이었다. 마치 스타크레프트의 벌쳐와 시즈탱크을 연상하면 거의 다르지 않다.

조조는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면서 경전차와 중전차를 각각 전차와 보급차(치중차 辎重車)라고 해석하였다. 조조의 이런 해석은 사마법일문(司馬法逸文)에서 유래하였다. 사마법에서는 치거를 전차로 해석였고, 혁거를 사람이 인력으로 끄는 병기, 의류, 양식등을 운반하는 치중차로 해석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사료상에서 보이는 치거와 혁거 모두가 말이 끄는 차로서 사람이 탑승하였다.


1.2. 전차와 보급차 (말과 소의 차이)
고대의 수레는 동력에 따라서 마차와 우차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말이 끄는 수레이며, 후자는 소가 끄는 수레이다. 마차는 보통 4필의 말이 끄는 수레였으며 사람이 탑승할 뿐 화물을 운반하지는 않았으며 속도가 빨랐다. 위에서 말한 경전차와 중전차 모두가 마차에 속한다. 그에 반하여 우차는 한 두의 소가 끌었으며 사람을 태우지 않고 화물을 운반하고는 했으며 속도가 느렸다. 다음 구절에서 나오는 구우대차(丘牛大車)가 바로 소가 끄는 마차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작은 차小車와 큰 차大車로 이를 구별하였다.

논어에는 "큰 수레에 끌채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 끝이 없다[각주:1]"라고 하였다. 포함(包咸)은 주을 통해서 큰 차는 소가 끄는 차이며, 작은 차는 말이 끄는 차라고 해석하였다. 이를 형병(邢昺)은 고공기考工記을 인용하며 말이 끄는 수레는 단순히 전차만이 아니었고, 사냥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되던 수레도 작은 수레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현재까지의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마차는 상대 말기에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우차의 상황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상나라 시대의 성인 언사상성(偃師商城) 유적에서 발견된 바퀴자국을 가지고 어떤 이는 마차에 의한 자국이라고 말을 하고 어떤 이는 우차에 의한 자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의 청동기 기물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바로 서주시대 말기의 사동정師同鼎이다. 사동정에는 주나라와 유목민족간의 싸우미 서술되어 있다. 주나라의 군사장관을 사동師同이라고 불렀는데 이 글에서는 그가 획득한 물건들이 적혀 있다. 그 중에서 마차와 우차 모두가 눈에 띄인다. 이것은 당시에 전쟁에 마차와 우차가 모두 동원되었다는 중요한 근거이다.


1.3.전차부대의 수량과 전쟁의 규모.
"경전차 1000대와 중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이 필요[각주:2]"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전쟁에 동원된 전차와 병력의 수량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국력에 따라서 시기에 따라서 다르기는 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에 중요시 하던 병력은 경전차, 중전차 그리고 병사 순서였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핵무기의 보유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미사일의 숫자, 전투기의 숫자등으로 전쟁 수행시 중요도를 고려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무왕은 상나라를 정벌하면서 전차 300량과 전사 3000명을 동원하였다고 한다[각주:3]. 지금 전쟁을 생각하면 상당히 조그마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춘추시대 제후국들은 각자 1000량의 전차만를 보유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노나라가 처음 곡부曲阜에 봉해진 이후 전차(革車) 천 대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제齊나라, 진秦나라, 진晉나라, 초楚나라등은 모두가 10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러하여 "전차 천대의 국가千乘之國"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하였다[각주:4]. 그러나 실제 전쟁에 출동했던 전차는 몇 백대에 불과하였다고 생각된며, 800대가 동원된 전쟁이 최고 동원 수량이었다.예를 들어서 성복전쟁(城濮之戰)에서 진晉나라는 700대의 전차를 내보냈으며[각주:5] 안전쟁(鞍之戰)에서는 800대를 동원하였다.  애릉전쟁(艾陵之戰)에서는 제齊나라가 800대를 동원하였다[각주:6].자산子產이 진陳나라를 공격할 때에는 정鄭나라는 700대의 전차를 동원하였다.[각주:7]

당시에는 전차와 사병이 같이 다녔으며, 보통 10명을 단위로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한 대의 전차와 전사 10명이 같이 다니는 것이다. 당시의 강국에게 붙여졌던 "전차 천대의 국가"에서조차 전사 1만명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마법일문(司馬法逸文)에서 규정한 것과 동일하다. 설사 평민병사(徒)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3만에 불과하였다. 

서주의 군사제도에서 사(帥)가 군대내 최고위 관직이었다. 춘추시대에는 군軍이 최고위관직이었는데 주례에 따르면 왕은 6군을 거느리고, 대국은 3군을 거느리며 차국은 2군을 거느리고 소국은 1군을 거느린다고 되었다[각주:8]. 이를 통해서 우리는 "천대의 전차"와 "3군"이 대략적으로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춘추시대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주 진晉나라의 예시를 들고는 한다. 기원전 678년 진무공晉武公은 1군만을 거느리고 있었다[각주:9]. 기원전 661년에는 진헌공晉獻公이 상하 2군을 만들었다[각주:10].  기원전 632년에는 진문공晉文公은 이미 상중하 3군을 거느리고 있었고, 진경공晉景公은 6군을 거느렸다[각주:11]. 그 밖에 진나라에서는 성복전쟁(城濮之戰)이전에도 독립보병부대가 나타났었고, 성복전쟁(城濮之戰)이후에는 상중하 3행(三行)으로 증가하였다. 전차 3부대와 보병 3부대를 합치면 6군이 되며, 이는 천자의 군사제도와 비슷하다. 만약 주례周禮에 따라서 1군을 12500명이라고 한다면, 6군은 75000명이 된다. 그렇기에 춘추시대의 전쟁규모는 몇 만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전쟁의 규모는 날로 커져간다. 예를 들어서 진晉나라는 총 49개현縣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매 현에서 100대의 전차를 징발하여 총 4900대을 운용하였다[각주:12]. 초楚나라는 단지 진陳, 채蔡, 동불갱東不羹, 서불갱西不羹의 변두리 4개 현에서만 각각 1000대의 천자를 징발하여 총 4000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막강한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사항을 통해서 손자가 말한 "전투전차 1000대와 수비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은 춘추시대 말기의 전쟁 규모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일부 학자들은 손자의 시기에 전차 2천대나 전사 10만명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당시의 수준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 들어나고 있다. 손자는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던 것이다.

전쟁의 규모가 나왔으니 몇 가지 부언을 하고자 한다. 중국 고대 전쟁사 연구에서 전쟁 규모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8세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10만명 이상이 참여간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대륙에서는 춘추시대부터 10만명이 동원된 전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시간이 흐를 수록 전쟁의 규모는 커져갔다. 당시에 쓰여진 다양한 서적에서는 "전차 만대의 황제과 전차 천대의 군주[각주:13]"이라는 기록되어 있어서 이를 증명한다. 전국초기의 상황은 아직 분명하지는 않으나, 춘추시대 후기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당시의 병력은 10만명 이하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진晉나라가 분리되어 성립된 위魏나라는 전국시대 초기의 최강국이었다. 명장 오기吳起는 위문후魏文侯와 위무후魏武侯을 모시며 그의 이상이 5만의 군사를 모아서 적을 멸망시키겠다[각주:14]"라고 했던 일을 보면 당시의 전쟁 규모가 비교적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국시대 중기를 넘어서 후기로 갈 수록 상황은 완전히 변한다. 기원전 303년부터 기원전 301년 제齊나라와 위魏나라 그리고 한韓나라가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패배시키고,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전 296년 사이에 조趙나라는 중산中山국을 공격하여 멸말시킨다. 이 두차례의 전쟁 모두 20만명이 동원되었다. 당시에 7대국들은 몇 십만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진秦나라는 심지어 백만명이 넘는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293년 이궐伊闕전쟁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는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의 군대 24만명을 물리쳤다. 기원전 279년에는 언鄢전쟁에서 백기는 수공으로 성을 공격하여 물에 빠져 죽은 초楚나라 병사와 백성이 수십만이었다.  기원전 273년의 화양華陽전쟁에서 백기는 조趙나라와 위魏나라 군사 15만명을 죽였고, 기원전 260년의 장평長平전쟁에서는 항복한 조趙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하였다. 언급한 4번의 전쟁만으로도 근 몇 백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산동지방의 6개국의 병력은 진나라에 미치지 못하였고 약 50만정도의 병력만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전부를 합치면 약 400만명인 것이다. 당시의 인구는 지금만 하지 못하였지만 거대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사상자의 숫자도 거대하여 세계대전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병법이 발달했던 원인이 된다.

병법이란 수 많은 피의 경험으로 얻어진 것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제가 번역하면서 제일 짜증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략해도 되는 출처와 원문들을 당연히 해야된다고 생각하면서 적어넣고, 그 뿐만이 아니라 지명과 인명과 같은 고유명사에 저도 모르게 한자를 다 넣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이것만 안해도 절반 이하의 시간이 걸리겠지만......전 이미 세뇌되어서 별 수 없습니다. ㅠㅠ 그나마 최대한도로 줄인 것이 이정도랍니다.

다음에 해야되는 병사관련 부분도 좀 복잡한데..그래도 전차만 하리오~~~!
제일 짜증나는 것은 넘겼다~~~!!!





  1. 大車無輗,小車無軏(論語 為政) [본문으로]
  2. 馳車千駟,革車千乘,帶甲十萬 [본문으로]
  3. 革車三百兩,虎賁三千人<孟子 盡心下> [본문으로]
  4. 左傳 哀公十四年) [본문으로]
  5. 左傳 成公二年 [본문으로]
  6. 左傳 哀公十一年 [본문으로]
  7. 左傳 哀公二十五年 [본문으로]
  8. 王六軍,大國三軍,次國二軍,小國一軍 周禮·夏官·司馬 [본문으로]
  9. 左傳 莊公十六年 [본문으로]
  10. 左傳 閔公元年 [본문으로]
  11. 左傳 成公三年 [본문으로]
  12. 左傳 昭公五年 [본문으로]
  13. 萬乘之主,千乘之君(莊子,韓非子) [본문으로]
  14. 以五萬之眾,而為一死賊(吳子) [본문으로]
孫子曰:凡用兵之法,馳車千駟,革車千乘,帶甲十萬,千里饋糧,則內外之費,賓客之用,膠漆之材,車甲之奉,日費千金,然后十萬之師舉矣。

손자 가라사대 :
군대를 운용하게 되면 경전차 1000대와 중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이 필요할뿐더러 그들을 위한 천리길의 먹거리 수송이 필요하다. 이렇게 밖으로 소비되는 돈 이외에도 외교전과 전차와 갑옷의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10만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장은 전쟁비용을 통해서 전쟁의 해악을 말하기 시작한다. <작전>편은 전쟁동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전쟁동원, 즉 전쟁준비과정이 곧 작전이다.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는 군대를 이동하고 보급망을 점검하는 등의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국전쟁에서도 북한은 소련과 중국과의 막후협상뿐만이 아니라 병력이동등의 일련의 움직임을 보였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한국과 미국의 분석관들이 잘못 판단하여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까지 밀려나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0. 병법과 군법의 차이
초기 병법과 군법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병법과 군법을 같이 묶어서 병서兵书라고 말하고는 하였다. 전국시대 이후에는 군법(군령)과 병법으로 분리되게 된다. 군법은 편제시스템을 말하게 되었고, 병법은 군법에서 벗어나서 대규모의 군대운영법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군법에서 말하는 것은 군대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며, 병법은 군대를 운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병법의 핵심은 악비岳飞조차 언급하였다 싶이 "운용"에 있다. (运用之妙,存乎一心《宋史岳飞传》그렇기에 전국시대 이후의 병서들은 비록 군법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모략이 그 내용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제 고대의 실전병법의 세계로 떠나게 된다.  그 전에 당시의 군사지식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에 대해서는 사료와 유물을 통해서 모호하게 추정을 할 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또한 지금과 같이 총과 비행기도 없었기에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장기라는 전통놀이를 통해서 당시의 군대에 대해서 알아보록 해보겠다.

1. 장기의 역사
장기의 시초에 대해서는 중국설과 인도설 그리고 한국설이 존재한다.  일단 한국설은 북부여 이전에 한국에서 만들어졌으나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 장의 모양이 초와 한으로 변하여 한국전통의 민속놀이가 중국놀이로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인도설의 경우 기원전 2000년전 무렵에 인도에서 시작이 되어서 동양에서는 장기로 변하였고, 서양에서는 체스가 되었다는 설로 있다. 중국설의 경우 춘추전국시대의 사료에도 장기가 언급이 되며 북주北周의 장기유물이 남아 있은 것으로 보아서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현대와 같은 방식의 장기는 송나라시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장기에는 고대전쟁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현재의 장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왕이다. 왕이 잡히면 승패가 나누어지게 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차车이다. 4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차를 잃게되면 이기기 힘들 정도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포炮로서 장거리 무기를 뜻한다. 그리고 말马은 독특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사士은 왕의 주변에서 왕을 호위한다. 그리고 가장 많지만 쉽게 버려지는 졸卒과 병兵은 보병을 상징한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원문의 설명이 너무 난잡하고 길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쓰려고 시도했다가 이런저런 일로 막혀 있습니다. 일단 해놓은 부분까지만 공개해봅니다. 이러면서 스스로에게 압력을!!! 꾸욱!!꾸욱!!!!

      팡신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최초로 학생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의 학자로서 그는 얼마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더구나 그의 연구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미지의 영역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 자기린 전설은 들어본 적이 없다네. 시간이 있다면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자기린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지 않겠나? 자기린은 어떤 개인가? 티베트 마스티프 계열인가? 내가 알기로 티베트 마스티프에는 자색이 없네만…”

   조우무챵바는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사주신다니 저야 감사하죠.”

      조우무챵바는 식당에서 팡신교수에게 자기린에 대한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그는 담담하게 티베트 불교 교의부터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티베트인은 우매하고, 그 성질이 난폭했다. 싸움을 잘했다. 대대로 전쟁이 많았다.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관세음보살이 강림하기 전까지 말이다. 교의를 선민에게 퍼트렸다. 서기 629년, 33세 잔푸(赞普)가 즉위했다. 급속히 중앙 집권했다. 팔합(八合)을 정화하고, 교의를 받들고, 불교를 숭상하고, 백성을 선화시키고…”

      팡신은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잠깐만, 자네가 말하는 것은 나도 다 알고 있네. 33세 잔푸는 티베트왕 송찬간부(松赞干布)가 아니던가? 토번(吐蕃)왕조를 건립하고 분열된 티베트를 통일했으며, 불교를 받아들여서 백성을 교화 시켰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이것과 자기린이 대체 무슨 관계인가?”

      조우무챵바는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티베트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 경문의 내용을 현대 중국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린의 이야기는 경문에 적혀 있고요.”

      팡신은 고개를 끄덕이면 계속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조우무챵바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역사상 서기 641년에 티베트. 매우 놀라운 일이 발생. 네팔의 척존(尺尊)공주가 티베트로 왔다. 석가모니 8세의 등신금상(等身金像)을 가지고 왔다. 훗날. 당의 문성(文成)공주가 티베트로 왔다. 불교에서 가장 명성이 높다. 석가모니 12세의 등신금상(等身金像)을 가지고 왔다. 이 때부터 티베트 불교가 흥하기 시작하였다…..” 조우무챵바는 마치 번역에 익숙하지 않는 듯이 매 단락마다 멈추어서 생각을 했다.

   팡신 교수는 답답함에 다시 한 번 말을 끊고 말하였다. “굳이 번역할 필요는 없네.   고대 티베트어와 푸띠(伏地) 사투리를 알고 있으니 그냥 경문을 말해주면 되네. 예전에 티베트 불교의 홍교, 화교(花教), 백교, 황교, 복지(伏地)등의 큰 계열은 이미 연구해 보았네.”

   조오무챵바는 매우 기뻐하면 말했다. “교수님은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셨군요. 그럼 곧장 경문을 말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유창한 티베트어로 경문을 읊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제석궁의 문이 열리듯 거대한 문이 열려 그 안에서 세상의 이치가 담긴 묘과(妙果)을 취하시니, 이는 곧 법(法), 재(财), 욕(欲), 해탈(解脱)이라…”

   팡신 교수는 이 경문의 대략적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경문은 송찬간부가 티베트를 통일하고 전쟁이 끝난 뒤 전국민들에게 불교를 신봉하게 하였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훗날 송찬간부는 사묘법(四妙法)을 받들어, 스스로가 티베트 지역 최초의 대법왕(大法王)이 되었다. 그리고 사수인(四守人)을 티베트 동서남북으로 파견을 하여 지키게 하는 동시에 불법을 퍼트리게 하였다. 사수인은 법능을 지니고 황량한 변방에서 불법을 지키는 동시에 티베트에서 높은 지위를 영유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수인들은 티베트왕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몇 년마다 한번씩 티베트의 역사 기록을 티베트 왕으로부터 전수 받았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수인들은 변방의 황야에서 전란과 왕조교체의 혼란 피해 대승불법과 티베트사료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조우무챵바의 조상도 이러한 사수인 중에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의 가문은 티베트 최남단인 구웨이에서 이 완전한 티베트 경전을 대대손손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우무챵바는 자랑스러운 빛이 없이 시종 평상심을 유지하며 경전의 유래에 대해서 오래 동안 이야기 하였다. 팡신은 그가 경전의 진실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자기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조우무챵바는 담담하게 말했다. “대 티베트 왕 랑달모(朗达姆)는 수렵을 즐겼다. 황야에서 늑대를 쫓는 것을 즐겨하였다. 그가 제위에 오르자 불법을 폐할 것을 명하여 승려로 하여금 법복을 벗고 수렵에 참가하게 강요하였다. 또한 불상의 머리를 모두 파괴하니 하늘이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왕은 전투 마스티프 십승과 기병 오백, 궁노수 삼백을 거느리고 남평(南坪)에서 사냥을 하려 했다. 동쪽으로 100미를 갔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보수(辅首) 바종(巴宗)이 간언하였다. “동쪽에 구름이 있어 불길하니 가지 마시옵소서.” 왕은 듣지 않고 계속 전진하였다. 양을 쫓아 말의 박차를 가해 산악평지를 건넜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 들어서자 말들은 갑자기 멈추며 고개를 숙이고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앞의 초목이 움직였으나 어떤 동물인지 보이지 아니하였다. 왕은 놀라 전투 마스티프을 풀어놓기를 명하였다.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십여두의 전투 마스티프는  앞다리를 숙이며 부복하였다.  그들은 채찍질에도 꿈적하지 않고 눈에 하염없는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갑자기 조그마한 울부짖음이 들려오자 천지가 진동하였고, 전투 마스티프는 모두가 일어나더니 평정을 되 찾았다. 전투말들은 모두가 광분을 하며 울부짖어 왕이 낙마하였다. 궁수에게 명하여 화살을 쏘게 했으나, 궁수는 두려움에 감히 활시위를 당길 수조차 없었다.

   팡신 교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 많은 의혹이 떠올랐다. 티베트 왕 랑달모는 토번 최후의 티베트 왕이다. 랑달마(朗达玛)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적조덕찬(赤祖德赞)이 과도하게 불교를 숭상하였기에 대신들의 불만을 샀다. 그들은 비밀리에 현정권을 몰아내고 불교를 제제할 정치운동을 책동하게 된다. 그들은 우선 종교대신 발전포패길영단(钵阐布贝吉永丹)을 암살하고 적조덕찬의 신임하는 형이며 불법을 숭상하는 장마(臧玛)을 모해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찬보(赞普) 적조덕찬(赤祖德赞)을 모살하였다. 그 뒤에는 불법을 혐오하던 적조덕잔의 형 랑달마를 토벌의 찬보(赞普)로 옹립하였다. 이렇게 옹립된 랑달마에 대한 전설은 매우 다양하였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불교 밀종의 대사인 라용패길다걸(拉隆贝吉多杰)을 암살했고, 그 뒤 티베트가 100년의 혼란기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랑달마는 불법을 혐오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어찌 불경 속에 자신의 일을 기록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또한 랑달마의 사망 이후의 각 종 전설들은 신화적인 색채를 많이 띄우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 경문의 사실성 여부는 조우무챵바가 말하는 것보다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팡신 교수는 사색을 하는 동시에 조우무챵바의 말을 계속 들었다. “왕이 노하여 직접 활을 들고 우거진 숲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 때 번개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하늘의 빛이 변하며 무엇인가가 나왔다. 그것은 망아지와 같은 크기에 온 몸은 자금색을 띄고 있었다. 머리는 말과 같았고, 눈은 구리방울 같았으며, 네 발은 기둥과도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말들은 넘어졌다. 전투 마스티프는 설설 기며 공경스럽게 조용히 울부짖었다. 보좌(辅座) 바종(巴宗)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금표안수(紫金豹眼兽)로다!” 그 동물은 온통 자색이었고, 눈동자는 금빛을 품고 있었다. 발은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있는 듯 하였다. 오직 꼬리만이 개와 같았다. 짐승이 왕과 마주보았다. 왕은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견신이여!”라며 활을 버렸다. 모든 전사들은 부복하며 절을 올렸다. 모두가 신의 강림이라며 찬양하였다. 삼배하고 구복하자 짐승은 비로서 사라졌다.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오자 왕은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였다.  병에 걸려 수십일이 지나자, 명을 내려 “자기린은 불존의 사도이로다. 이번에 강림을 하심은 나의 죄를 묻는 것이다. 이에 선을 쌓아 불도로 돌아가야 비로서 근심이 해결되리라.” 몇 일 뒤 대조사(大昭寺) 간마과(羯摩科)에 다시 갔을 때 비석 앞에서 살해 당했다.

      팡신 교수가 기억에는 당시에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었다. 또한 그 날 이후에 조우무챵바와 이 전설의 진실성에 대해서 많은 논쟁을 벌렸었다. 그러나 조우무챵바은 언제나 이 전설의 진실성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자기린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은 마치 공룡의 존재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어떠한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팡신은 당연히 그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조우무챵바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였다. 그의 마을에 자기린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백 년에 한 번씩 한 두명의 승려가 자기린의 현령을 목격 했다고 증언한다는 것이다. 그 마을에서는 어릴 적부터 관세음보살이 자기린을 타고 현세에 내려온 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의 마을은 티베트의 무인지역이기에 삶이 힘들어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선량한 사람이 간절히 원한다면 자기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렬하였다.

   훗날 조우무챵바는 팡신 교수에게 티베트 마스티프의 특이한 변종이 아닐까라는 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팡신 교수는 만약 정말로 그런 거대한 체형과 독특한 신체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면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이미 오래전에 발견되어 보고 되었을 것이라는 이유로 부정하였다. 또한 자기린의 전설은 조우무챵바가 살았던 촌락에만 전해져 내려올 뿐 다른 사료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사람도 자기린의 종적을 발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서 조우무챵바는 팡신이 최근에 연구하는 이론인 “격세유전”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격세유전은 생물의 신체의 어떠한 특징이 그 다음 대에 표출되지 않고, 수 대나 수십 대를 거쳐서야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유전학의 발달과 함께 발견된 사실로서 열성유전자가 우성인자의 조합되어 항상 열성으로 나타나기에 외부에는 어떠한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른 열성유전자를 만나서 합쳐지게 되면 우성유전자로 돌변하게 된다. 이는 좋은 면이 있을 수도 있고, 나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팡신 교수의 격세 대유전이론은 어떤 생물의 유전자가 최고의 조합을 갖추게 되면 어떠한 진화결과물을 내놓을 지에 대한 가설이다. 사실상 이러한 조합이 이루어질 확률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격세유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은 계속 견과 동물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격세대유전이론의 적용도 자연스럽게 개에 맞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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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쓸데 없이 힘이 들어가서 직역도 아니고 의역도 아닌 글이 되고 말았군요. 반성반성--

아쉬워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출판사에 보냈던 샘플은 여기까지 입니다. 또 다른 샘플이 있기는 하지만, 곧장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올리지는 못하겠군요. 한국에 제 정도가 아닌 제대로 된 번역가의 손에서 빨리 번역되기를 기대해 보셔요^^::


      팡신교수는 백발을 훑으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깨닭았다. 그래! 그 날이 일들을 어찌 있겠는가!

      학기 첫 수업 시간이었다. 1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교실에 겨우 50명도 안 되는 학생들만이 앉아 있었다. 듬성듬성 학생들이 앉아 있었기에 커다란 교실은 더욱 크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팡신 교수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수업을 듣는 전공학생은 원래부터 적었고, 그들조차 이 학문의 가치와 의의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수업자료를 정리하고 독특한 익살로 수업을 시작했다. “와야 될 학생은 다 왔고…” 그는 뒤쪽에서 자고 있는 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지 말아야 될 학생도 왔군요. 이미 제 예상치를 뛰어넘었습니다. 제가 그리 잘 생긴 것은 아니니 절 보러 오신 건 아닐겁니다. 듣자하니 어제 생물을 가르친 미스 랑이 좀 많이 빵빵했던지 교실이 꽉 찼다고 하더군요.”

      교실의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팡신은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이 과목이 너무 단편적이고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개를 연구한다고? 개가 머 연구할 것이 있나? 길바닥에 넘쳐 흐르는 개?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어떤 건 왈왈 거리고 어떤 건 사람을 물고 말야. 혹시 자신이 개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공부를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나요? 있다면 손을 들어보세요”

      학생들 사이에서 잠시의 웅얼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이 개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팡신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제가 여러분들을 시험해 보겠어요. 먼저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죠. 이 사진을 보고, 여러분들이 개의 이름을 말해보세요.”

      열 몇 장의 사진들이 지나갔지만, 어떤 이도 개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생각하기에 개는 개일 뿐, 이름이 무엇이고 어떻게 구별 해야 되는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팡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이 문제는 너무 어려운 것 같군요. 그럼 간단한 문제를 내볼까요? 세상에서 가장 흉맹한 개는 어떤 개 일까요?”

      교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올았다. 어떤 사람들은 셰퍼드(Shepherd)라고 하고, 하운드(hound, 猎犬)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불독이나 시베리아견, 에스키모견등 온갖 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교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덩치 큰 학생의 입가에 경멸의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이 팡신 교수의 눈에 들어왔다. 이 때 팡신은 처음으로 조우무챵바를 보았다.

      팡신은 학생들의 이야기가 잠잠해지자 티베트 마스티프의 사진을 꺼냈다. 그것은 순종의 사자머리형 티에빠오진(铁包金)이었다. 그러자 몇몇 학생들은 그건 사자라고 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마스티프는 아직 유명하지 않았기에 티베트 마스티프를 아는 사람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팡신 교수가 좌중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 개야 말로 세계가 공인한 가장 흉맹한 개입니다. 국제적으로는 마스티프라고 하고 국내에서는 아오(獒)라고 합니다.” 그는 몸을 돌려 칠판에 “마스티프 아오(獒)”라고 크게 적으며 말했다. “이 종의 개는 티베트 지역이 원산지입니다. 가장 훌륭한 체형의 마스티프는 황하의 첫 번째 굽이, 보통 흐어취(河曲)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랍니다. 이 개는 표준적인 체형의 흐어취 마스티프입니다. 그리고 가장 흉맹하고 가장 주인을 따르는 마스티프는 티베트 다마현 근처에 있습니다. 그곳의 고원은 다른 곳보다 높아서 지리여건이 매우 열악합니다. 마스티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희대자전(康熙大字典)에 따르면 “아오(獒)라 함은 4척 이상의 개만을 아오(獒)라 한다. 성격은 흉폭하고 주인을 지키며 맹수와도 싸울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보통 체형이 크고 흉맹하며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를 아오(獒)라고 했습니다. 특히 티베트는 거주 인구가 적고, 맹수들이 많아서 티베트인들은 아오(獒)을 길러서 고원의 융폭하고 교활한 늑대들에게서 양들을 지켰습니다. 티베트에서는 한 마리의 아오(獒)가 세 마리의 늑대를 막고, 한 마리의 훌륭한 아오(獒)가 홀로 3~4마리의 흉폭한 늑대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팡신 교수가 마스티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학생들은 세계에 그러한 개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팡신 교수가 즐거움을 느끼며 이야기를 계속 하려던 때 중간에 앉아 있던 거구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이 전문적으로 개를 연구하신다니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럼 마스티프 중에 가장 흉맹한 것은 무엇입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스티프 안에서도 등급이고, 어떤 개는 더 대단하단 말인가? 팡신 역시 학생이 자신을 시험할 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팡신은 당연히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바로 대답하였다. “이 학생이 매우 좋은 질문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마스티프 안에서도 종속간의 차이와 혈통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마스티프류는 티베트부터 동유럽뿐만이 아니라 북유럽까지 퍼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초적인 통계에 따르면 총 3종5속11대계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체력이 비교적 완벽한 개는 방금 전에 이미 말했다 싶이 히어취아오(獒)입니다. 그리고 싸움에 가장 적합한 체형을 가진 마스티프는 탕샹아오(党项獒)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혈통상 근접해 있어서, 속도나 체격 혹은 전투능력에서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티베트 지역에서…오직 티베트 지역에서만 다른 마스티프보다 강력한 마스티프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훈련되어진 것입니다. 티베트인들은 이 개를 “아홉 마리 개 중 한 마리 아오(九狗一獒)”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며 팡신 교수의 말에 집중하였다. 대체 무엇이 “아홉 마리 개 중 한 마리 아오”라는 걸까?  “이것은 참혹한 경쟁을 통해서 가장 우수한 마스티프를 얻는 것입니다.  10마리의 같은 나이의 어린 마스티프를 구덩이에 던져 놓고 어떠한 음식도 주지 않거나 혹은 한 마리만 겨우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주게 됩니다. 그러면 열 마리의 개는 어쩔 수 없이 참혹한 경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음식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마스티프를 잡아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야생늑대의 경우도 살아 있을 때에는 식구이지만, 일단 죽으면 식량이 된답니다. 특히 한랭 지역에서 늑대는 야생의 특징을 더욱 강하게 띄게 됩니다. 그래서 시베리아 늑대가 가장 흉맹하고 강력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강력하고 두려운 생존욕구가 있기에 열악한 자연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마스티프는 가장 강력한 생존욕구와 완강한 육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팡신 교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설득력이 있었으니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말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러나 질문을 한 학생은 아직도 경멸의 웃음을 뜨고 있었다. 그 웃음은 팡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 그렇다. 팡신은 다른 유래가 생각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티베트에서도 몇몇 지역에서만 비밀스럽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이 이야기는 티베트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사실 “아홉 마리 개 중 한마리 아오”는 다른 유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경쟁입니다. 이 유래는 더욱 비밀스럽고 더욱 참혹하며....그리고 더욱 오래되었습니다. 티베트 마스티프 역시 개입니다. 개도 다른 포유동물과 같이 한번에 4마리에서 6마리를 임신합니다. 정말 가끔씩 7마리를 임신할 때도 있습니다. 8마리를 동시에 임신을 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의 어미 마스티프가 9마리를 동시에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중에 한 마리는 마스티프의 신이 됩니다. 어미 마스티프는 아무리 많아도 8개밖에 젖꼭지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마리의 강아지는 어떻게 해도 모유을 먹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공적인 “아홉 마리 중 한 마리 아오”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마스티프는 그 형제들을 먹을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에는 그 어미까지 먹어 버립니다. 그리고 마스티프 중에 마스티프가 됩니다. 이 전설 속의 마스티프는 성격이 매우 흉폭하여서 성견이 된 이후에는 회색곰을 사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원늑대와 극지호랑이를 제치고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전설은 몇몇 지역에 한정되어서만 존재하고 있고, 아직 고증을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로만 남아 있고,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참혹한 전설보다는 인공적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습니다.”

      전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나서야 팡신 교수는 질문을 한 학생이 자신의 지식에 대해서 놀라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다시 질문을 했다. “교수님. 그럼 “아홉 마리 중 한 마리 아오”보다 강력한 것은 무엇이죠?”

      교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어떤 학생는 질문을 한 학생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교수님과 끝을 보려고 한다고 하였고, 어떤 학생은 생각을 굽힐 줄 모르는 고집불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티프 내에만 이렇게 많은 종이 있고 수 많은 전살과 비밀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들은 팡신 교수가 또 다시 답을 할 것이라고 믿으며 바라보았다.

      팡신 교수는 처음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는 질문한 학생이 이렇게 까지나 티베트 마스티프에 대해서 자세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 건장한 학생의 얼굴은 고원 특유의 붉은 색을 띄고 있었고, 거칠고 딱딱한 피부와 똑 부러진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질문을 한 학생은 분명히 티베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설사 티베트인이 아니더라도 장기간 고원에서 생활한 한족일 것이다. 티베트인 앞에서 마스티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꼴이었다. 그러나 팡신은 분명히 교수였고, 학생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자신의 수업에 처음 참가한 학생이 아니던가!

      팡신 교수는 안경을 밀어 올렸다. 어떤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거나 깊이 생각했을 때 언제나 안경을 밀어 올리고는 하였다. 학생들은 두 고수의 대결에 감히 참가하지 못하고 조용히 그 둘을 바라보았다. 팡신 교수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처음에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질문을 한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말하기 싫다는 듯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렇습니다. 사실 “아홉 마리 개 중 한 마리 아오”보다 더 강한 것이 있습니다. 티베트 지역에서 가장 숭배 받는 마스티프이며 “전투 마스티프(战獒)”라고 부릅니다.”

      팡신의 말이 끝나자 몇몇 학생들은 꾹 참은 숨은 내쉬었다. 팡신은 계속 전투 마스티프에 대해서 말했다. “소위 전투 마스티프라고 부르는 것은 이름을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전투에 쓰이는 마스티프 입니다. 티베트 지역에서 전투 마스티프는 우리나라 고대 신화전설 중의 부처의 의자와 비슷하고, 신분은 태국의 신성한 코끼리와 같습니다. 전투 마스티프는 티베트 지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사람들만이 기를 수 있으며, 일반 백성들은 감히 기를 수 없습니다. 사실 전투 마스티프도 “아홉 마리 개 중 한 마리 아오”의 일종입니다. 단지 엄격하게 선발된 마스티프를 대대로 마스티프를 훈련시켜 온 최고의 조련사가 가장 현명하고 가장 충직하고 가장 막강한 공격력을 가진 최강 전투력의 마스티프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퍼트는 여러분들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경찰견으로 이 세퍼트를 많이 쓰는데 보통의 세퍼트와 경찰견 세퍼트가 싸우게 되면 체형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경찰견이 이기는 확률이 월등히 높습니다. 왜냐하면 경찰견들은 엄격한 훈련으로 어떻게 공격을 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지만, 운동선수와 일반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예를 들어서 역기 선수와 시합을 하게 된다면 3명이 힘을 합쳐도 역도선수를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아홉 마리 중 한마리 아오”는 야성이 강해서 훈련을 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세계 3대 동물 중에 하나입니다. 이 녀석은 매우 오만하여서 굴복 시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시켜서 전투 마스티프가 된다면 다른 개에 비하여 몇 배나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합니다. 심지어 우리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보다 더욱 감동스럽습니다. 제가 티베트 지역에서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을 말해드리지요. 사냥꾼인 아왕푸차이는 전문적으로 티베트 투스(土司)들의 전투 마스티프를 훈련시키는 사냥꾼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사냥부대 대장이 되었지요.  그에게는 뚜어지라는 전투 마스티프가 있었습니다. 제가 티베트에 갔던 그 해에 아왕푸차이가 사냥 중에 안타깝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대원들이 그의 시체를 집으로 옮겨 왔습니다. 그런데 두꺼운 쇠사슬로 바위에 묶여 있던 뚜어지가 갑자기 발광을 하며 쇠사슬을 끊어 버렸습니다. 당시에 우수한 사냥꾼들 6~7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 녀석의 기세에 눌려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녀석은 차가운 시체에서 죽음이 무엇인지 느끼는 듯이 주인의 코와 이마를 핥았습니다. 뚜어지는 어떤 사람도 주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동상처럼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누군가 접근하려 하면 털을 세우면서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는 주인을 끌고서 입구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음식과 물도 먹지 않고 계속 슬프게 짖어대었습니다. 마치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 보였습니다. 그는 5일 동안 밤낮으로 주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용감한 사냥꾼이 접근했을 때에는 이미 주인 곁 앉아 하늘을 보며 죽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몇 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가 없군요.” 팡신 교수의 목소리는 살포시 젖어 들었고,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때 종료벨이 울렸다. 팡신 교수는 손을 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더 많은 티베트 마스티프에 대한 전설이 있지만, 오늘은 이미 시간이 다 지나갔군요. 이런 슬픈 이야기로 끝낼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자. 재미가 있었으면 내일 또 오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이 교실을 쓸 학생들이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시간을 원망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들이 나가고 있을 때, 팡신은 질문을 한 학생을 불렀다. “거기 질문한 학생 기다려 보게. 이름이 무엇인가?”

      그 학생은 얼굴을 들며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조우무챵바라고 합니다.”

      팡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티베트인이었군. 티베트 어디에서 왔나?”

      조우무챵바는 살포시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구웨이(古维)사람입니다. 다와누쳐(达瓦奴措)촌에서  왔습니다.”

      팡신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역시! 어쩐지 마스티프에 대해서 잘 알더니만, 마스티프의 고향에서 왔구만!” 구웨이는 티베트에서도 가장 깊은 한 곳에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편벽한 곳이어야만 순종의 마스티프가 남아 있었고, 그래서 마스티프의 고향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와누쳐촌이라는 곳은 팡신도 들어 본적이 없었다. 티베트의 전 면적은 120.2만평방KM임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채 300만명이 되지 않아서, 한 촌락의 면적이 소형도시보다 큰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조우무챵바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교수님의 마스티프 연구는 정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군요. 그런데 제가 원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팡교수님은 자기린 전설을 들어보셨나요? 안 들어보신듯 하더군요.”

      팡신은 이마를 찌푸리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자기린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팡신은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한 번 들은 이야기는 분명히 인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기린이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해당 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티베트코드는 어떤 책인가?을 참고하십시오.


오늘은 손자병법의 두번째 편인 "작전作战"편을 보도록 합시다. 전에 말했다 싶이 고대 전쟁은 전쟁계획 - 야전 - 공선전으로 이루어집니다. 지난 시간의 전쟁계획에 이어서 이번에는 야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우선 이번 편의 제목인 작전作战 의 뜻부터 알아보도록 합시다. 작作은 시작한다는 의미이며, 전战는 고대에 두가지 뜻이 있었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전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야전,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서로 대열을 정비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야전을 말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국야国野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국国은 도시이고 야野는 농촌입니다. 당시에는 도시와 농촌간에는 엄격한 분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말하는 야전野战은 도시 외부의 시골이나 황야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말합니다. 도시를 공략하는 공선전 전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춘추시대의 야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양측의 변방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될 것이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명확한 국경"선"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기술이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으로서 국경을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흘러가는 물이나 산맥을 기준으로 국경"면"을 나눌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한반도의 휴전선을 보통 38선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면적의 지역이 포함되는 지역임을 생각해보시면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시리라 봅니다.

그리고 양 국가의 군사들은 이러한 국경면에 모여서 서로 완전한 진형을 갖추고 난 뒤에야 전쟁이 시작됩니다.”皆阵曰战“ 만약 어느 한쪽이 진형을 다 갖추지 못하고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쟁이 아닌 치사하고 더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양족의 진형이 완전히 갖추어지고 싸움이 벌어지다보니 변수가 있을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전쟁은 한번의 맞붙음으로 끝나고는 했습니다. 실제로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식사전에 적을 무찔렀다[각주:1]"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전쟁이 길어진다고 해봐야 하루를 넘지 않았습니다. 길어봐야 하루를 넘지 않아서 해가 지면 철수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짦게 이루어지다 보니 설령 이동하는 시간을 합쳐도 한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모든 전쟁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춘추시대에 황하일대의 국가에게 있어서 야전이란 전차를 앞세운 전쟁을 말하였습니다. 보병은 전차부대에 포함되어 있었던 부속부대였습니다. 물론 전차전만이 당시의 모든 야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춘추시대는 기본적으로 전차전이 핵심 중에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다 춘추시대 말기가 되면서 점차 보병부대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시대 말기가 되면 기병까지 출연하여 전차와 기병 그리고 보병이 혼합되어 싸우는 야전방식이 성립되게 됩니다.

란용위이蓝永玮선생님은 <춘추시대의 보병[각주:2]>을 통해서 보병이 어떻게 중국의 전쟁방식에 혁명을 가지고 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은 수렵행위와 동물사육 그리고 육식습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중국병법의 발전은 주변민족들의 동물사육이 발전한 덕택에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말과 전차 그리고 청동검등은 모두가 북방 초원지역에서 발명되어 전파된 것입니다. 전차나 기병 외에도 보병의 발전 역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산지에서 유격전을 하는 이민족戎狄의 보병을 상대하기 위해서 독립보병부대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각주:3]. 수군 역시 오나라吴와 초나라楚에서 배워온 것입니다. 적은 최고의 스승인 것입니다.

중국초기의 전차전은 중전차전이었습니다. 전차의 속도가 빠른 점과 기동성이 강한 점 그리고 돌파력을 강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차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을 정확하게 컨트롤 하기 어려워 전차가 뒤짚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형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산지나 습지에서는 제대로 진군이 어려웠습니다. 어디까지나 넓게 펼쳐진 지역에서만 운용이 가능하였습니다.

야전과 공성전은 고대의 서적에서 같이 출현합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의 발음습관으로 인하여 공성전-야전의 순서로 쓰여져 있습니다[각주:4]. 사실 시간 순서로 놓고 보았을 때에는 분명 야전이 먼저이며 그 뒤에야 공선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야전에서 패배한 측은 성으로 철수를 하게 되고, 승리한 측은 성을 공략하게 되는 것은 상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행동입니다. 이것이 야전과 공성전의 관계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야전을 위주로 설명을 하며, 다음 편에서 공선전이 등장하게 됩니다.

현대 군사용어에서 야전은 영어의 Field Operation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중국고문을 참고한 것입니다. 영어의 Field army는 야전군으로 Fieldwork는 야전공사로 Fieldpiece는 야전포로 Field hospital은 야전병원으로 각각 번역되었습니다. Field는 영어에서 숲과 건축물 이외의 빈 영역을 말하는 것임으로 중국 고어의 야전과 대략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작전>편을 다섯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4.1. 전쟁비용
4.2. 정쟁손실
4.3. 적의 것으로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
4.4. 속전속결
4.5. 장수는 스스로의 책임이 무거움을 알아야 된다.

처음 두 장은 전쟁의 해로움을 말하였고, 그 뒤의 두 장은 전쟁의 해로움을 벗어나는 대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종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다리신 분 혹시 있으신가요? -0-;;;..........
.......이 도입부야 짦습니다. 다음 것을 하기 싫어서 밍기적밍기적.....핵심은 응원과 격려?!;;;

...사실 이 부분은 예전에 했지만...이 다음부분이..다음부분이.....ㅠㅠ

  1. 灭此而朝食《左传》成公二年 [본문으로]
  2. (蓝永玮《春秋时期的步兵》北京:中华书局 1979年) [본문으로]
  3. 晋侯作三行《左传》毁车而为行《左传》 [본문으로]
  4. 攻城野战《墨子 兼爱》 [본문으로]

      조우무챵바는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손 안에 있는 사진을 응시하였다. 사진 속의 영상은 순식간에 그의 영혼을 지배하며 그의 마음을 지배하여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평생을 공룡화석 연구에 바친 연구자가 바로 눈 앞에 당장이라도 만질 수 있는 희귀 공룡을 본 것과 같은 기쁨에 몸서리쳤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머나먼 과거로부터의 함성이 너무나 진실되게 그리고 친근하게 들려왔다. “가! 가서 그 녀석을 찾아! 너의 영혼과 신앙 그리고 존재이유가 바로 이것이야! 바로 이 녀석의 존재를 직접 보는 거야!” 그리고는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여기서 어처구니가 없는 강연을 하고 있구나. 이 사진의 주인은 얼마나 너를 비웃고 있을까? 너는 진정한 마스티프가 무엇인지 몰라! 넌 마스티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그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이 사진을 보내온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진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어떠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연단에서 뛰어내렸다. 아까 출입구에 서 있던 그 사람이 바로 사진의 주인이라고 확신했다. 또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마스티프에 대해서 알 수 없으리라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강연장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조우무챵바가 어렵게 강연장을 빠져 나왔을 때에는 사진의 주인은 물론 사진을 전달해준 소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조우무챵바는 미친 사람처럼 모든 이에게 물었다. 길을 가는 아주머니에게도 묻고, 벤치에 앉아 밀담을 나누는 연인에게도 물었다. 지나가는 차의 기사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떤 이도 외투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170cm정도의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했다. 아무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했다.

      조우무챵바는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육체의 생기를 잃어갔다. 그는 이미 마스티프 대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노력을 해서 만들어낸 대회였지만, 그의 머리에는 이미 사진 속의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상사병을 앓는 환자처럼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이루지 못하며 두 장의 사진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비록 사진은 모호했지만 조우무챵바는 사진 속의 마스티프의 털 하나 하나가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사진 속의 마스티프는 오른쪽 뒷발 3번째 발가락의 2센치 위쪽의 앞에서부터 36번째 체모가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왼쪽 앞발의 첫 번째 발톱의 끄트머리에는 자그마한 상처가 있었다. 그에게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두 장의 사진은 그의 모든 사고능력을 박탈했다. 만약 그 전화가 없었다면 조우무챵바는 남은 평생을 그렇게 정신병자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 전화벨은 한참 동안이나 울려 퍼졌지만, 조우무챵바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서와 영업과장이 있었기에 아주 가까운 친구의 전화만을 직접 받았다.

      하우그 비서가 가볍게 문을 열고 조용히 말했다. “조우회장님을 찾는 전화입니다.”

      조우무챵바는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냉담하게 말했다. “없다고 하세요. 그리고 당분간 어떤 전화가 오든지 없다고 하세요.”

      하우그는 고개를 숙이고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전화를 하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 사진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우무챵바는 방을 뛰쳐나가서 전화기를 들었다.

      조우무챵바는 전화기를 꽉 움켜잡고 딱딱한 영어로 이야기 하였다. “당신이 사진을 준 사람입니까? 절대 전화를 끊지 마세요. 어떤 요구를 해도 꼭 들어드리겠습니다. “

      전화기의 저편에서는 잠시의 정적이 울려 퍼졌다. 조우무챵바는 사형 언도를 받기 직전의 사형수와 같이 그 정적이 끝나기만을 원하고 또 원했다. 전화기의 저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기…그 사진에 있는 건 개 맞죠?? 개죠?” 전화기에서는 의외로 젊은이의 중국말이 들려왔다.

      조우무챵바는 바로 대답하였다. “네! 맞습니다! 최고의 개입니다. 지금 어디 계시죠?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전화기의 목소리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진을 드린 건 그냥 확인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굳이 만날 필요는 없는데요.”

      주우무챵바는 익사직전에 구명정을 발견한 사람처럼 끈질기게 매달렸다. “꼭 만나야 됩니다. 반드시 만나야 됩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신가요? 어떤 요구든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 해야 됩니다. 제가 지금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전화기의 목소리는 여전히 주저하며 “멀 이렇게까지 해요. 칫…” 그 사람은 상당히 의외라는 듯 코웃음을 터트렸다.

      5분 뒤 조우무챵바는 엔드리스 병원에 입구에서 결국 전화기의 목소리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십대후반으로 보이는 조금 건방진 중국 소년이었다. 자신을 탕밍이라고 소개하였다.

      조우무챵바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말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시죠? 설마 사진이 출처를 모르시나요?”

      탕밍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사진이 어디서 왔는지 알죠. 전 그냥 이 사진에 있는 것이 마스티프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조우무챵바가 대답했다. “당연히 마스티프입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티베트 마스티프입니다. 마스티프 중에 마스티프입니다!”

      탕민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요. 이 마스티프는 진짜 존재하는 건가요? 환상이 아니고요??”

      “환상이라고요?!” 조우무챵바가 말했다. “어떻게 환상일 수 있겠습니까? 혹시 촬영자에게 물어보지 않았나요? 이 사진은 대체 어디서 구한 겁니까?”

      탕밍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도…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거든요. 마스티프를 키우는 전문가들이라는데 다들 가짜래요. 컴퓨터로 합성한 거라고 하던데요?”

      조우무챵바는 탕밍의 어깨를 잡으며 초조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사진 찍은 사람은요? 그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분명하지 않습니까?”

      탕밍은 어깨에 아픔을 느끼면서 조우무챵바의 손을 피했다. 그는 서생처럼 보이는 교수의 강한 힘에 놀라며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사진은 제 형이 찍은 건데, 이젠 물어볼 수가 없어요.”

      조우무챵바는 흥분해서 다시 탕밍를 잡으려고 했다. 탕밍이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자, 그는 급하게 물었다. “형은 대체 어디 있지요? 지금 당장 만나야 합니다!”

      탕밍은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기괴하다는 눈빛으로 조우무챵바를 쳐다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엔드리스 병원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엔드리스 병원은 미국의 유명한 정신병원이다. 조우무챵바는 병실에서 탕밍의 형과 벽에 붙어 있는 수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탕밍의 형은 조우무챵바가 처음 사진을 볼 때와 같은 표정으로 침상에 누워서 멍하니 사진들이 붙어 있는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생소한 사람이 들어오자 두려움에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탕밍은 형의 몸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위로하자 겨우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탕밍은 그보다 5살이 많으며 이름은 탕타오라고 소개했다.

      탕타오와 탕민의 키는 거의 비슷했으나 탕타오가 훨씬 건장하였다. 피부는 강철처럼 튼튼해 보였고, 머리카락은 매우 짧아서 바늘처럼 날카로워 보였으나 외모만은 매우 준수했다. 조우무챵바는 탕타오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지만,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먼저 그를 잡아 끌었다. 벽에는 세계 각지의 풍경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어떤 사진은 조우무챵바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런 사진들은 분명히 프로사진작가가 찍은 것으로 보였고, 어떠한 사진 잡지에 투고하여도 무조건 커버사진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감탄을 하며 물어보았다.  “이 사진들이 다 형이 찍은 겁니까?”

      탕밍은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당연하죠!”

      조우무챵바는 주위의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의 촬영 위치 선정이나 선명함 그리고 예술성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탕타오는 오직 그의 앞에 있는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탕타오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 벽에 있는 사진은 다른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몇 십장의 모호한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호한 사진 모두가 바로 그 신비한 마스티프였다. 조우무챵바는 그제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장의 사진은 여기 붙어 있는 사진 중에서 가장 선명한 사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벽에 있는 사진 중에 가장 모호한 것은 녹색 구름에 검은 구름이 박혀 있는 것처럼 상당히 불분명하였다. 조우무챵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분은 어떻게 된 겁니까?”

      탕밍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이번에 돌아오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의사들은 강한 충격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국내에서 치료를 받다가 미국의 의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이쪽으로 와서 심리암시요법을 받고 있어요. 신문에서 최근 마스티프 대회가 근처에서 개최된다고 하기에 참가해서 사진을 건내 드려 본 것이에요.”

      조우무챵바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보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만…”

      탕밍은 천장의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암흑공포증이래요.” 조우무챵바는 그 때서야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방안의 모든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수 많은 의혹이 쏟아 올랐다.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탕밍이 말했다. “저도 이 사진이 진짜라고 믿어요. 형은 조작 같은 것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도대체 이 사진을어디서 찍었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어떻게 몇 십장의 사진 중에 선명한 것이 하나도 없는 건지…”

      조우무챵바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형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데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까?”

      탕밍이 대답했다. “작년 6월에 커커시리 산악순찰부대에서 발견했어요. 발견했을 때 형은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달리고 있었대요. 그 때 이미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던 거죠. 만약 순찰부대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죽을 때까지 달렸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순찰대 요원이 말해주었는데, 형을 발견하고 겨우겨우 제지하자 갑자가 쓰러져서 혼수상태가 되었대요. 나중에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이런 상태였고요. 단지 계속 두 말만 반복했대요. “멍허의 미친넘의 말이 사실이었어. 지옥의 문이야.” “왔어! 그들이 왔어! 도망쳐!”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순찰대가 형을 발견한 지점에서 300KM 떨어진 곳에서 형의 지프를 발견했대요. 지프에는 기름이 남아 있지 않았고요.”

      조오무챵바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만약 그의 형이 기름이 떨어진 뒤, 차를 포기하고 달렸다면, 그는 300KM나 달리고도 멈추지 않으려 한 것이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까지 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너무나 즐거웠다. 남들이 모르는 그 두 마디를 그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어떤 이름이 생각났다. 그는 탕밍에게 물었다. “독행협?! 형이 독행협 탕타오인겁니까?”

      탕밍은 이제야 생각났냐는 표정으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우무챵바가 어디서 본 것 같았던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그는 국내에서 대단히 유명한 탐험가 독행협 탕타오였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 탕밍후이는 중국 유제품산업의 3대 거상 중 하나였지만 40이 채 되지 않아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에게 몇 억 위엔의 유산을 남겼던 것이다. 그의 큰아들 탕타오가 언제부터 탐험을 좋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혼자서 탕구라산을 넘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는 홀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홀로 초모랑마 정상을 정복하고, 홀로 황하와 장강 그리고 야로장포강를 배를 타고 내려왔다. 또 혼자서 발해해협을 수영으로 건너기까지 하였다. 그 뒤에 그의 활동무대는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산과 가장 무서운 급류 그리고 공포스러운 사망계곡을 향하여 떠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에 그는 언제나 홀로 뛰어들어갔다.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죽음의 행진 속에서 그는 언제나 기적적으로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왔다. 과거 어떤 이는 그에게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진에도 조예가 깊었다. 역시 홀로 여행을 하면서 생겨난 취미였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사진을 팔아본 적이 없었다. 많은 잡지사에서 상당한 액수를 불렀으나, 단 한 장의 사진도 얻을 수가 없었다.

      팡신 교수에게 사진을 어떻게 구했는지 모두 말한 뒤, 조우무챵바는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지도교수님! 독행협 탕타오가 찍은 사진입니다. 어떻게 가짜일 수 있습니까?”

      팡신이 말했다. “이미 결심을 한 것 같구나. 나의 아들아. 그래 가거라. 꼭 성공을 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그의 지도교수를 설득할 수 없자 풀이 죽어버렸다. 그는 최고의 도우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원망스러워하며 사진을 챙겨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문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는 별안간 몸을 돌리며 물었다. “지도교수님. 아직 저희에게 처음 수업하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해당 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티베트코드는 어떤 책인가?을 참고하십시오.


   정확하게 말해서 궤 안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었다. 첫 장은 망망한 초원을 배경으로 낮은 관목들이 별처럼 여기저기 수풀 속에 서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고, 초원의 중앙에는 검은 색의 허리케인이 불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결코 바람이 아니었다. 어떤 동물의 모습과 같았다. 사진 자체가 모호한 것이 아마도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 손을 떨었던 것으로 보이나 동물의 털을 판별할 수 있는 정도의 선명도였다. 두 번째 사진 역시 같은 초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만 세심히 본다면 촬영한 장소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산들과 같은 관목들이었다. 심지어 우거진 풀 조차 같은 위치에 찍혀 있었다. 단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하늘은 이미 어두운 밤으로 변해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촬영자는 낮부터 밤까지 같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검은색 형체도 거의 어둠 속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진은 형체와의 거리가 더욱 가까웠고 촬영자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첫 번째 사진보다 더욱 선명하였다.

   두 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모호한 얼굴은 아프리카의 숫사자와 같았다. 목의 주름은 갈기와 엉켜서 해바라기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숫사자와는 전혀 달랐다. 아프리카의 숫사자는 지리기후적 요인으로 인하여 머리 주변과 무릎 뒤에만 갈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전신이 두텁고 긴 담요처럼 되어 있어서 아크와 같이 튼튼하고 단단하게 보였다.

   팡신교수는 두 장의 사진을 손에 들고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야크와 같은 체격과 사자와 같은 머리 그리고 표범과 같은 곡선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사진 속에서 검은 색 털로 뒤 덮여 있는 이 녀석은 아름답고 무한한 힘을 간직한 듯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화살과 같은 그 모습은 고양이과의 동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생물은 분명히 견과 동물이었다. 그것도 사각의 조그마한 귀와 피부에 긴 털이 매달려 있고, 작고 갈라져 넓게 갈라져 있는 입, 그리고 몸체는 직선의 등과 들어가 있는 배 및 기둥과 같은 다리를 보았을 때 분명히 티베트 마스티프였다. 모든 모습이 티베트 마스티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생물은 결코 보통의 티베트 마스티프가 아니었다. 보통의 티베트 마스티프는 이렇게 크지 않고, 이렇게 단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렇게 강맹하고 용맹해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은 사진 속에서 왕족의 패기를 들어내며 철인처럼 서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야성은 천지를 비웃으며 위풍당당히 초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팡신교수는 30분 동안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조우무챵바는 웃음을 띄우며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교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 잘 알았다. 교수의 머리는 자신이 그 사진을 보았을 때처럼 백지상태일 것이다. 사진 속의 생물은 분명 진정한 티베트 마스티프였다. 사진 속의 맑고 푸르른 하늘과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구름은 고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각 가지의 전나무, 낮은 마황, 딱딱한 잎의 버드나무 관목들은 고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식물이며, 몇몇 종은 특히나 티베트 고원에서만 볼 수 있는 종류였다. 무엇보다 사진 속의 마스티프는 조우무챵바나 팡신과 같은 이 방면의 원로급 인물들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최고급 마스티프였다. 가장 아름다운 체형과 가장 아름다운 기질, 무엇보다 다른 마스티프에게는 없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최고의 마스티프였다. 조우무챵바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리를 가볍게 꼬집었다. 그는 매번 이 사진을 볼 때 마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흔들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미 몇 번이나 보았지만, 볼 때마다 자신의 두 손을 어찌 할 바를 못했다. 지금도 그의 온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서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팡신은 자신의 돋보기를 벗었다 썼다는 반복하며 계속 사진을 바라보더니, 마침내 사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불가능하네. 이것은 가짜야. 컴퓨터로 만들어낸 사진이라고!”

   조우무챵바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서는 손가락으로 팡신교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팡신교수가 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고서도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지는 생각도 못했다. 만약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주먹을 휘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팡신교수는 평온을 되찾고 다시 사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먼저 이 사진을 보게. 낮에 촬영한 이 사진은 비록 배경이 상당히 모호하지만, 사진 속의 식물은 알아 볼 수 있지. 자네도 알다 싶이, 촨시-가문비 나무가 다 자란다면 대략 10미터에서 15미터 정도이네. 그리고 촬영자는 같은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네. 그럼 우리는 목격된 이 녀석과 두 나무 사이의 거리를 추측할 수 있지. 만약 같은 평면상에 있다고 가정할 시에 비율을 따져서 생각해보면 이 녀석의 크기를 추정할 수 있네. 만약 이 녀석이 진짜라면 대략 계산을 하여도 지상으로부터 어깨까지 1.2미터에서 1.4미터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네. 만약 그렇다면 이 녀석의 전체 크기는 최소 2.5미터를 넘어갈 걸세. 이미 개가 아니라 조그마한 송아지라고 할 수 있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떠한 개도 지상으로부터 어깨까지의 거리가 1.05미터를 넘지 못하였네. 그리고 최근 보고의 가장 큰 개도 2.1미터일 뿐이라네. 마스티프의 크기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것일세. 지상으로부터 어깨까지의 거리는 0.8미터를 넘지 못하고, 전체 크기도 1.5미터를 넘지 않는다네. 자네는 이렇게 커다란 개를 본 적이 있나?”

      조우무챵바는 격분해서 말했다. “그러나! 마스티프과 견 속은 개 중에서도 가장 큰 개입니다. 마스티프의 중국이름인 아오(獒)의 원래 뜻은 체격이 크고 싸움을 잘하는 개를 말하지 않습니까? 독일의 유목견이나 덴마크견 그리고 스위스의 세인트버나드와 같이 세계가 공인한 커다란 체격의 견 류가 모두 마스티프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마스티프가 특별히 큰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큰 것?” 팡신 교수는 냉소를 품고 말했다. “분명 그렇지. 그런데 자네도 이 녀석이 생존하고 있는 환경을 알지 않나? 고원일세. 그것도 세계 상에서 가장 높은 고원인 티베트 고원일세.”

   조우무챵바는 흥분을 억누르며 웅얼거렸다. “그래서……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그의 전문지식은 분명 지도교수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팡신이 말했다. “고원은 매우 특수한 생존환경일세. 공기가 매우 희박해서 그 안에 있는 생물은 모두 저산소 환경에 적응해야되네. 그래서 그 체형은 지세가 높아 질수록 점차 작아지게 되지. 대부분의 티베트 고원 동물들은 체격이 작고, 피부가 두껍고 털이 길며 사지가 작고 굵지. 신체 내 혈액이 정상적으로 산소를 공급하여 뇌의 상태를 맑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어. 자네도 배웠을 터인데 말이야. 결론적으로 고원의 모든 생물은 저지대의 같은 종류의 생물에 비해서 체격이 작지. 이 사진 속에는 티베트 고원 중에서도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작은-고사리가 있네. 다시 말해서 사진 속의 마스티프는 다른 마스티프 보다 더욱 더 고지대에 있다는 것일세. 그런데 어떻게 다른 마스티프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것인가?” 팡신은 말을 하면서 탁자의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계속 천천히 말했다.  “우리 컴퓨터로 분석을 해보겠네. 이 사진의 해상도와 풀의 모호한 상태를 보면 대략 24%정도일세. 촬영자의 손이 떨려서 일어난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 그러나 이 녀석의 모호한 정도는 67%에 이른다네. 일반적인 카메라로 촬영을 할 경우, 플레쉬 발광에 필요한 시간은 0.005에서 0.01초 정도일세. 그럼 200분이 1초의 시간 동안 이 녀석은 사진 속에서 20센티미터나 그 이상을 움직였다고 할 수 있네. 이를 바탕으로 추론을 해보면 이 녀석의 속도는 초속 40미터에 이르네, 시속으로 따지면 140KM정도이지. 그런데 현재 지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표범이네. 표범의 최고속도도 시속 120KM을 넘지 못하는데, 자네가 생각하기에 이 마스티프가 표범보다 빠르다는 건가?”

      조우무챵바는 조금은 실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지도교수님. 선명도는 그리 정확하지 않습니다. 만약 수치를 100분의 1로 놓고 본다면 이 녀석의 속도는 시속 80KM정도입니다. 일반적인 마스티프의 순간 속도를 생각하면 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팡신이 말하였다. “그렇다고 하세. 속도로는 합당하다고 생각해보세. 그렇다면 우리는 이 녀석의 혈통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걸세. 지금 현재 세계 상의 마스티프의 원산지는 거의 모두 티베트에 있네. 총 3종7속16과이지. 털의 색은 순흑, 순백, 적갈색, 회색, 금색 발과 흑색등 및 순금색의 마스티프가 있네. 물론 희귀종인 붉은 색 마스티프도 있고, 하얀 눈의 사자머리도 있고, 동공이 두 개가 있는 표범 마스티프도 있지. 그런데 자네가 볼 때 이 개는 어떠한가? 그의 전체적인 털색은 자네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검은색이 아니네, 그렇다고 적갈색도 아니지. 만약 이 녀석이 진짜 존재한다면, 한번도 출연한 적이 없는 마스티프 종이지. 그의 털 색은 자주색이야. 그것도 매우 짙은 자홍색이지. “ 팡신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이런 동물의 존재는 그의 전문 지식에 대한 도전이며, 그에 대한 무시였기에 얼굴이 자연스럽게 준엄해졌다.

      조우무챵바는 계속 혼잣말을 하면서 어떻게든 반론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술적인 영역에서 그는 팡신의 학생이었을 뿐이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록 마스티프 양육에 있어서는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학술적인 지식에 있어서는 팡신교수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수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는 그에게 사진을 준 이도 모를 것이다. 이 사진은 어디서 왔을까?

      팡신은 또 다른 증거를 말했다. “이런 털의 색과 체형 및 속도를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이 컴퓨터를 통해서 이상적인 마스티프를 재현하려고 했을 걸세. 그런데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32비트의 색 분별도로서는 화학분광에 미치지 못하지. 그래서 합성한 검은색은 쉽게 짙은 자홍색이 되어버려. 두 색은 컴퓨터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니 말이야. 이 사진을 합성한 사람은 분명 전문적으로 마스티프를 연구해봤을 거야. 그래서 마스티프의 특징들을 알고 있었지. 그런데 너무 심하게 과장해서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다가 이런 실수를 하고 만 거야.”

      팡신은 조우무챵바의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을 보며 이번에는 그를 타일렀다. “됐네. 나도 자네가 세계 최고의 마스티프를 계속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이렇게 우수해 보이는 마스티프를 보고 잠시 혼동을 한 것일 테지. 괜찮네. 괜찮아. 일생을 몸바쳐 연구를 한 전문 골동품 수집가들도 잘못 볼 때가 있는 법인데, 자네 같이 전문적으로 마스티프을 연구하지 않은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

   “아닙니다!” 조우무챵바는 꿋꿋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지도교수님. 저는 이것이 진짜 마스티프라고 믿습니다. 이 녀석이 분명히 티베트에서 생활하고, 지금도 저 곳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저는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 녀석을 찾으러 갈 것입니다. 이번에 지도교수님을 뵈러 온 것은 본래 지도교수님이 조언을 해주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이 녀석의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시니, 저 혼자서라도 찾으러 갈 수 밖에 없군요.”

      팡신은 과거 자신의 최고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파트너를 바라보며 온화하게 질문을 던졌다. “사랑하는 챵바라. 무엇이 너를 이리도 고집스럽게 만들었니? 이렇게 큰 결정을 내린 것은 설마 존재하지도 않는 컴퓨터로 합성된 마스티프를 찾기 위해서니?”

      조우무챵바는 팡신교수의 손에 있던 사진을 잡고 두 번째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교수님. 이 녀석의 눈빛을 보세요. 저는 처음 이 눈을 보았을 때 느낌이 왔습니다. 이 두 눈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 녀석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팡신은 다시 두 번째 사진을 살펴보았다. 사진기가 마스티프의 얼굴을 향하고 있기에 다른 부분은 모호해도, 두 눈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팡신교수는 그 두 눈을 보면서 놀라고 말았다. 그윽한 두 눈이 어두운 밤의 별처럼 사람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마력을 발산하면서 독특한 맹렬함과 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선언하듯이 외쳤다. “컴퓨터로 합성한 사진이 어떻게 이런 눈빛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제가 본 것 중 가장 맑고 가장 사람을 끄는 눈빛입니다. 지도교수님은 이 눈빛을 보았을 때 어떠셨습니까? 저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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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신은 이미 온갖 세상의 풍파를 거쳐왔기에 이제는 어떠한 물건도 그를 동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조우무챵바가 가지고 온 물건이 다시금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조우무챵바가 저리도 중요시 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조우무챵바는 머뭇거리며 상자를 열지 않았다가 팡신이 상자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조우무챵바는 상자를 팡신의 앞에 가져다 두면서 존경심을 담아서 말했다. “지도교수님이 열어보십시오.”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조우무챵바는 백팔십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와 곰 같은 허리, 그리고 산발한 머리와 딱딱한 표정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용맹스러움이 묻어져 나왔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양복을 입고 뿔태 안경을 쓴 그는 언제나 입에 미소를 뜨고 있어 온화해 보인다. 어떤 이는 그를 조우회장님이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그를 교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들은 챵바라라고 불렀다.

   42세의 티베트인인 조우무챵바는 티엔슬 명견훈련센타의 총재이자 상하이 푸단대학 생물학과에서 세계명견연구로 명예교수 자리를 얻었다. 티베트 고원의 무인지역에 가까운 변두리 다와누츄에서 태어난 조우무챵바라의 이름은 바다를 싸워 이긴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대로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고, 현재 수십억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회장이며, 유명 대학의 교수로 명예와 부귀를 모두 얻었다.  그의 명예와 부는 모두 개로부터 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몇 천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공인되었다 싶이, 체형이 가장 크고 흉맹한 개는 마스티프입니다. 그리고 이 마스티프는 바로 우리 티베트지역의 특산품입니다. 마스티프는 이미 약 2000년 전에 그리스로 흘러 들어가서 훗날 로마제국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또 동유럽의 슬라브족에 의해서 유럽의 각국에 퍼져나가서 현재는 세계의 명견이 모두 DNA안에 티베트 마스티프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사 뿐만이 아니라 티베트 지역의 독특한 개는 모두가 티베트 마스티프에 속하며…” 조우무챵바는 화려한 강연단에서 강직한 모습으로 강연회에 참가한 손님들에게 티베트 마스티프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 행사는 그의 회사가 자금을 지원해서 조직된 제 1차 세계 마스티프견 대회의 개막식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티베트 마스티프을 알리고, 세계의 마스티프 애호가들에게 자신들의 훈련소를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진정한 마스티프가 무엇인지 보여주려 하였다.

   홀에는 세계 각 국의 기자 100여명과 이 대회를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날라온 마스티프 애호가들 8000여명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현재 순혈의 마스티프 강아지의 가격은 10만달러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마스티프를 기르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마스티프의 가치를 알아보는 분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감히 이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순혈의 마스티프는 바로 저희 기지에 있습니다. 설오(雪獒)와 철포금(铁包金, Berchemia lineate)그리고 홍오(红獒) 모두가 저희 센터의 것이 가장 우수합니다. 또한…”

   홀을 매 우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참가자들은 이미 조우회장이 운영하는 센터의 마스티프가 가장 희귀하고 가장 순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자신의 개가 순위권에 드는 것을 원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개가 티베트 마스티프의 대가로 알려진 조우회장의 눈에 띄어서 티엔슬 명견훈련센타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곳의 개와 교배를 하면 더욱 순종의 티베트 마스티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티베트 마스티프가 티베트를 벗어난다며, 그 개를 마스티프라고 할 수 있나요?”

   보통 조우회장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모두가 조우회장의 강연 속에서 마스티프 양육법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하여 경건하게 듣고만 있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돌발적인 질문으로 인하여 강연의 흐름은 끊어지게 되었으니 모두가 분개할 수 밖에 없었고, 몇몇의 마스티프 애호가들은 곧장 반박을 하였다.

   “어떻게 마스티프라고 할 수 없는가?”

   “니가 옷을 벗는다면, 너는 사람이냐?”

   “이 무슨 쓰레기 같은 말이야!!”

   질문을 한 사람도 대중의 분노를 받고 싶지 않은지 침묵하였고 조우무챵바는 웃으면서 사람들은 제지하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마스티프는 분명히 티베트에 있어야만 흉폭한 체형과 독특한 패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어떻게 저희 센터의 마스티프가 어떻게 그리도 용맹하냐고 묻습니다. 사실 그 이유는 저희 센터의 마스티프는 언제나 티베트에서 고르고 티베트에서 기르고 티베트에서 훈련시킨 진정한 티베트 마스티프이기 때문입니다.” 조우무챵바의 말이 시작되자 대중들은 비로서 안정을 되 찾고 그의 신성한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사람들은 방금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조우무챵바는 문가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두터운 조끼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

   조우무챵바는 계속 자신감이 충만한 연설을 이어갔다. 그가 그의 센터에서 가장 우수한 마스티프의 사진을 화면에 비출 때에는 군중들 속에서 경탄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조우무챵바의 마음에는 무엇과도 비견하지 못할 만족감을 주었다. 그는 화려한 등 아래서 가벼운 흥분감을 느끼며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에 살며시 핏줄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때, 한 남자 아이가 어떤 물건을 들고 사람들을 밀치며 강단으로 다가왔다. 강단에 가까워질 무렵 몇몇의 건강한 사나이들이 소년을 막아 섰다. 조우무챵바는 그 아이가 어떠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단지 손에 편지와 같은 물건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보드가드들에게 눈빛을 보내었다. 보디가드들은 소년이 조우무챵바에게 전해주려는 물건을 받아서, 잠시 검사를 한 뒤에 조우무챵바에게 건내주었다. 소년은 물건을 전해 주고는 부탁 받은 일을 끝냈다는 듯이 돌아갔다.

   조우무챵바는 그의 뒤의 펼쳐진 화면을 가리키며, 그의 센터에서 기르고 있는 마스티프의 우수함과 혈통을 계속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편지를 뜯었다.

   편지를 뜯는 그 찰나의 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달려 있을 듯한 웃음이 사라졌다. 밝은 조명 아래의 강연단에서 마치 미라처럼 굳어져 서 있었다.

   조우무챵바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멈추자 모두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단지 반입을 허가 받은 몇몇 카메라의 셔터만이 찰칵 찰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체 어찌하여 갑자기 연설을 멈추었는지 모두의 눈빛이 조우무챵바의 몸에 집중되었지만, 그의 눈은 사진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치 영혼이 사라진 육체처럼 살짝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은 이미 창백하기 그지 없었다. 조우무챵바가 자기도 모르게 한 손으로 들고 있던 편지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의 손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청중들은 조우무챵바의 눈이 떨리는 것을 보며, 분명히 어떠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민감한 기자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 모든 사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고 있었다.

   일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조우무챵바는 갑자기 정신이 든 것처럼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애야..기다려!” 목소리는 이미 메마르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고, 마치 기자나 다른 모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소년만은 노려보며 물었다. “이 물건은 대체 누가 너한테 준거야?”

   그 소년은 조우무챵바의 표정에 겁을 먹은 듯 단지 출입구 방향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리고 대답 없이 사람들의 틈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조우무챵바는 소년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방금 전의 “외투에 선글라스 낀 사람”은 어느 사이에 사라져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연단에서 뛰어내려서 출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장내는 곧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기자들은 특종의 냄새를 맡고 그에게 접근하려고 하였고, 보디가드들은 조우무챵바를 위해서 길을 터주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앞으로 나서려 하고, 어떤 이는 물러서려 하니 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조우무챵바는 홀연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소년이 조우무챵바에게 대체 어떤 물건을 주었는지 궁금해 하였다. 어떤 물건이기에 이 많은 카메라 앞에서 이런 중요한 개막식을 내팽개치고 쫓아 간단 말인가? 더욱이 조우무챵바가 난리가 난 개막식 이후, 다른 세계최고급 마스티프 대회일정에 한번도 모습을 들어내지 않자 이러한 의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편지봉투에 들어있었던 것이 사진이었다고 증언하였다. 많은 기자들은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이 사건에 대해서 온갖 추측 기사들을 쏟아내었다. 조우무챵바의 이름은 순식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기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취재를 하고 있을 때, 조우무챵바는 이미 상하이의 팡신교수의 집에 있었다. 조우무챵바는 사실 명예교수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팡신이야 말로 진정한 견류동물학교수이다. 현재 65세로 이전에 조우무챵바가 견류 생물연구를 할 때의 지도교수였다. 그들은 한 때 티베트 마스티프 연구 파트너였다. 그런데 팡신교수는 학술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만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마스티프를 돈 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길을 달리하였다. 훗날 조우무챵바가 마스티프 사육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을 때에도 팡신교수는 여전히 이름 없는 연구가였다. 그러나 팡신교수가 조우무챵바를 이 길로 이끌었던 은혜가 있고, 팡신 교수의 깊은 학술적인 지식을 높이 사서, 조우무챵바는 여전히 팡신교수의 학술활동을 계속적으로 지원하였다. 현재 팡신교수는 견류학술계에서 이미 일가를 형성하였다. 만약 세계적인 명견이 되고자 한다면, 팡신교수의 증명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정도였다. 최근 그는 전세계 티베트 마스티프에 대한 족보를 만드는 티베트 마시티프 혈통 논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논문만 완성이 된다면, 앞으로 세계의 유명한 마스티프는 그의 논문 안에서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논문은 이번에 팡신 교수에게 푸리터상을 수여할 예정인 마시우리야생물논단에 발표하기 위하여 쓰여지고 있었다. 푸리터상은 동물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학자들의 꿈이었다.

   팡신은 이미 백발이 되었지만, 그러나 정신은 언제나 맑고 또렸하였다. 그는 두 눈을 빛내며 습관적으로 중화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나는 다음주에 독일의 마시우리아 생물논단에 참가할 예정일세.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왔다지? 대체 무슨 물건이 미국 마스티프대회에서 자신을 알릴 기회를 포기하고 상하이로 돌아오게 했는지 궁금하구만……”

   조우무챵바는 언제나 그렇듯이 존경을 담아서 말했다. “지도교수님. 이것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말을 하면서 손에 있던 가방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철갑으로 만들어진 도난방지용 운송가방이었다. 팡신은 그 때서야 조우무챵바가 수갑으로 자신의 손과 가방을 묶어놓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팡신은 놀라고 말았다. 조우무챵바는 과거 티베트 쿠바이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찰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예전에 2000만 달러의 다이아몬드를 옮겨야 될 때도 대충 헝겊 주머니에 담아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을 뿐이었다. 비싼 다이아몬드조차 조심스럽게 운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조우무챵바가 가방을 열었을 때, 팡신은 더욱 더 놀라고 말았다. 가방 안에는 한 척 크기의 황금궤가 들어있었다. 황금궤의 위에는 불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화려한 묘안석이 박혀 있었다. 가장 작은 묘안석도 최소 13개 이상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팡신은 이 황금궤가 감히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는 조우무챵바의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보물궤는 원래 불경을 담아두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우무챵바의 아버지가 티베트에서 가장 완전한 닝마선경을 포탈랍궁에 헌납한 뒤에는 계속 비어있던 것이었다. 조우무챵바는 농담으로 본인의 일생에서 이 궤에 들어갈 물건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냉소하며 말하고는 하였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물건을 넣어 가지고 왔다는 것인가?

   팡신은 이미 온갖 세상의 풍파를 거쳐왔기에 이제는 어떠한 물건도 그를 동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조우무챵바가 가지고 온 물건이 다시금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조우무챵바가 저리도 중요시 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조우무챵바는 머뭇거리며 상자를 열지 않았다가 팡신이 상자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조우무챵바는 상자를 팡신의 앞에 가져다 두면서 존경심을 담아서 말했다. “지도교수님이 열어보십시오.”
   팡신은 하얀 장갑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궤를 열었다. 궤의 안에는 오직 사진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팡신의 표정은 조우무챵바가 처음 그 물건을 보았을 때처럼 순식간 돌처럼 굳어졌다.


해당 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티베트코드는 어떤 책인가?을 참고하십시오.

티베트코드는 2008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중국의 인터넷 소설이다. 처음 연재를 시작한지 5일만에 중국의 네이버인 바이두에서 17만회의 검색량을 보였다. 그 뒤로 수 많은 출판사들이 판권을 얻기 위해서 난리를 쳤다.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서 상당히 좋은 출판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본 티베트 코드는 티베트의 전설의 사원을 두고서 벌어지는 모험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인 허마何马는 스스로가 커커시리 고원평야나 시솽반나의 원시밀림을 혼자 횡단하는 모험가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험에서 얻은 경험과 풍문들이 이 책에 녹아들어 있다. 핵심이 되는 티베트에 대한 많은 전설들은 비록 과장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료로서 이야기해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다만 본인이 출판사와 해당 글의 번역여부를 이야기하며 샘플번역을 만들었을 때 느낀 점은 문체가 거지 같다는 점이었다. 번역을 하게 되면 작가 이상으로 그 작가의 문장을 이해하고 분석해야된다. 루쉰鲁迅의 훌륭한 문장의 경우 이 미묘한 표현을 한국어로 어떻게 가장 가깝게 옮겨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문장은 그런 수준에 가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주어와 동사가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너무 빈번하게 발생을 하여서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내용 자체는 티베트 전문가들도 박수을 줄 정도로 이런저런 티베트에 대한 온갖 지식들이 들어가 있다. 티베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을 읽어볼 만은 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영어로 번역되서도 괜찮은 판매량을 보였던 것이다. 문장은 별로이지만 내용 자체가 좋기에 말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한족이기에 기본적으로 티베트 독립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 아래서의 티베트를 그리고 있으니 그에 대한 반감이 있는 분은 자제하시는 것이 좋다.

해당 책의 번역은 본인이 시간도 없고, 스스로의 번역 능력에 대한 자괴감이 생겨서 다른 이에게 넘겼지만, 만들어놓은 샘플이 아까워서 한 번 올려보고자 한다. 본인이 알기로 아직 해당 글은 출판되지 않았다. 또한 출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번역한 부분은 일부분에 불과하기에 오히려 티베트 코드를 광고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럼 예전에 번역해 둔 것을 올리는 날로 먹기 시작한다. 참고로 가면 갈수록 원문에 충실한 번역보다는 제가 "스스로 알아서 번역이라기보다는 창작"한 부분이 많이 있다. 또한 저는 해당 소설을 다 번역할 생각은 없다. 그럴 것이었으면 출판사와 계약을 했을 것이다. 그냥 맛보기로 즐겨주시기 바란다.


夫未戰而廟算[각주:1]勝者,得算多也﹔未戰而廟算不勝者,得算少也。多算勝,少算不勝,而況無算乎!吾以此觀之,勝負見矣。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전쟁시뮬레이션을 하여서 승산이 더 많은 자가  승리할 확율이 더 높다.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전쟁시뮬레이션을 하여서 승산이 없는 자가 승리할 확율은 적다. 하물며 전쟁시뮬레이션을 아예 하지 않으면 어떠하겠는가! 군주는 이를 살피면 승패가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1. 전쟁전에 해야될 일
원문에서는 전쟁계획을 전쟁 전에 해야될 것으로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작전을 짜고 전쟁을 발동해야한다.(先計而后戰)

1.1. 전쟁을 대비하며
국가는 언제나 전쟁을 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해야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첫번째로 군사시스템을 만들어야 된다. 병사를 모집하고 무기와 군량을 모아야 한다. 이런 군사시스템을 두고 고대에는 군부軍賦라고 하였다. 두번째로 군사편재을 확립하여야 한다. 모집한 병사에게 합당한 위치를 부여하여야 한다. 그러하여야만 장군부터 군단장, 여단장, 중대장으로 내려가는 명령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다. 세번째로 군사를 유지하여야 한다. 병사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야 될 뿐만이 아니라 퇴역병사에 대한 보장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네번째로 명령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무선시스템이 없었던 과거에는 깃발과 북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렇기에 병사들이 깃발과 북소리의 명령에 익숙해지도록 충분한 훈련을 하여야 했다. 고대의 군사훈련은 보통 사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사냥은 일정한 목표물에 대해서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하기에 고대의 군사훈련으로는 매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고대 유목민들의 전투력이 강했던 이유로 말의 보편적 사용을 거론하지만, 그 이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조직적인 사냥으로 만들어진 최적화된 명령시스템을 꼽고는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전쟁에 대비하여 일상적으로 하여야 하는 일이다.

1.2. 전쟁이 전야에 해야할 일
전쟁이 곧 발생할 무렵에는 우선 전쟁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아군과 적군을 비교하여 승패를 예측하고 최적의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로 승패에 대한 점을 보아야 한다. 거북이 등껍질등의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전쟁의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은 지금으로 보면 미신숭배로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군대의 사기를 올릴 수 있는 일종의 심리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로 장수를 임명하고 전쟁계획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무기고에서 고급군사장비를 꺼내어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실제로 필요하지만 이 문장에서는 전쟁시뮬레이션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2. 묘산(廟筭)
묘산은 전쟁시뮬레이션이며 동시에 군사전략이다. 고대의 계책은 여러 계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에서 정치와 군사을 혼합한 계책을 최고로 친다. 예를 들어서 육도六韜에서는 정치와 군사를 한꺼번에 고려하는 계책을 음모陰謀아고 하였다. 그 다음이 군사전략만을 고려하는 것으로서 이를 권모權謀라고 하였다. 이 권모가 바로 묘산인 것이다. 그리고 실전에서의 군사운용인 전술에 대해서는 형세形式라고 하였다. <손자>의 모공謀攻편에도 보면 먼저 전략을 세우고, 외교전을 펼치고, 야전을 펼치고 그 다음에 공선전을 펼친다.(上兵伐謀,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라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에도 팬타곤에서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외교전을 펼쳐서 연합국의 지지를 얻는 순서를 따르고 있다.

고대인들은 전쟁시뮬레이션에서 승리하는 것은 묘승廟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묘승은 당연히 장군을 임명하고, 국경을 넘어서기 전에 이루어진다. 누구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모든 승리는 조그마한 승리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묘승은 바로 이상적인 대승리이며 첫걸음이다. 묘승이 있고나서야 그 다음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계획計편의 주제는 묘산이다. 전쟁계획을 세우는 것이 묘산의 본질이며, 전쟁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은 묘산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다. 손자는 계획편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번 묘산의 중요 성을 강조하고 있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짦다. 만쉐!! -0- 하지만 다음은 극악이라는 거.....-_-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이 없으면 다음편이 언제나 올라올지는 저도 모릅니다. -_-;;;


  1. 묘산廟算이란 곧 묘산廟筭이며 전쟁계획 혹은 전쟁시뮬레이션을 말한다. [본문으로]
計利以聽,乃為之勢,以佐其外[각주:1]。勢者,因利而制權也。

위와 같이 계획상의 우세를 장수가 실현하면 이를 가지고 형세를 만들어서 원정에서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勢란 계획된 우세를 바탕으로 적의 대응에 따라서 기민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兵者,詭道也。故能而示之不能,用而示之不用,近而示之遠,遠而示之近。利而誘之,亂而取之,實而備之,強而避之,怒而撓之,卑而驕之,佚而勞之,親而離之,攻其不備,出其不意。

병법이란 사기술이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하고,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고,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도 먼 곳을 노리는듯 하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을 노리는듯 한다. 적이 이익을 노리면 유혹을 하고, 적의 내부가 혼란하면 공격한다. 적의 대비가 충실하면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적이 강력하면 피한다. 적이 불같은 성격이면 짜증나게 만들어 이성을 잃게 하고, 적이 신중한 성격이라면 오만하게 만든다. 적이 쉬려하면 피로하게 하고, 적이 단합 되어 있으면 분열시킨다.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은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此兵家之勝,不可先傳也。

이러한 실전 병법은 너무 복잡하고 오묘하여 미리 결정하거나 가르칠수가 없다.

1. 세勢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세"란 무엇인가? 뒤쪽의 "세勢“편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이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손자>안에서 형形와 세勢은 군사상의 형세形勢에 대한 중요한 개념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르면서도 그 구분이 모호하다. 형세는 병력의 배치로 인하여 생겨난다. 그러나 손자에서는 형세를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형形은 고정된 상태고, 세勢는 움직이는 상태이다. 형은 볼 수 있고, 세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볼 수 없다는 말은 "정해놓은 틀이 없다"는 뜻이다. 형과 세의 관계는 악보와 음악연주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우리가 바둑을 둘 때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형으로서는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마가 잡혀버리는 적의 함정이 있다면 결코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세이다. 스타크레프트에서 저그가 럴커를 잔뜩 심어두고서는 강제정지해 있다. 형으로는 그곳에서의 위험을 감지할 수 없다. 만약 사이언스베슬로 럴커가 심어져 있는 것을 모른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세이다.  이처럼 볼 수 있는 것은 형이고 볼 수 없는 것이 세이다. 작전계획은 형이고, 실전운용은 세인 것이다.

조금만 더 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본문에 나오는 "세勢란 계획된 우세를 바탕으로 적의 대응에 따라서 기민하게 조절하는 것이다.(勢者,因利而制權也)"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利(이익)이란 전에 말한 계획된 우세을 말한다. 權은 지금은 권력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고 있지만, 과거에는 "저울질을 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권이란 저울질을 하여 힘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행동으로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임기응변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적의 행동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게 되며, 고정된 내용이 있을 수가 없다. 마치 스타크레프트에서 상대방의 테크트리에 따라서 전략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정된 형과는 다른 가변적인 세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2. 병법은 속임수이다.(兵者,詭道也。)
속임수는 세勢의 특징일 뿐만이 아니라 병법兵의 특징이다. 병법에서는 속이는 것을 절대 기피하지 않는다兵不厭詐. 이 말을 중국전통군사사상의 정수이지만, 결코 중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이라는 말의 시초가 "속임수"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다.

2.1. 귀족전쟁의 시대.
서방의 군사전통은 동양보다 귀족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귀족간의 결투처럼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고야한 행동이 아니다. 현재 미국등의 정치가들은 테러리스트들이 겁쟁이라고 비난을 한다. 왜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전쟁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자살테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겁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도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로 투석기를 사용하였지 결코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았다.

사실 병법의 시작 자체가 "병법이 속임수"라는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약자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생존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전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도덕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병법이란 항우가 배우고자 했던 만인적萬人敵였다. 만인적이란 결투도 아니고 패싸움도 아니다. 정치집단끼리의 목숨을 건 격렬한 투쟁이다. 이러한 예술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귀족전쟁의 전통이 없어져야만 한다. 도덕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사용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전쟁의 미학이 완성된다.

2.2. 귀족전쟁에서 진정한 전쟁으로..
중국의 귀족전쟁 전통은 비교적 일찍 붕괴된다. 기본적으로는 2000여년이 훌쩍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병법들은 바로 이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좌전左傳>에서는 "양 측이 모두 진형을 갖추어야 전쟁이라고 한다.(皆陳曰戰)"라고 하고 있다. 만약 적이 진형을 다 갖추지 않았다면 "누구를 패배시켰다敗某師"이라고 할 뿐 전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시대의 전쟁이란 양 측이 모두 진형을 완전히 갖추고 어떠한 속임수도 사용하지 않고, 서로간의 마음의 힘으로 승부를 가르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귀족전쟁이다.

특히 송양공(宋襄公)의 이야기는 귀족전쟁의 모범을 보여준다. 송양공은 상왕商王의 후예로서 오래된 귀족이었다. 당시 송宋과 초楚은홍수(泓水)(河南柘城西北)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다. 초나라의 병사가 송나라에 비하여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초나라 병사들은 홍수를 건너고 있었다. 사마자어司馬子魚는 소양공에게 적이 강을 건너고 있을 때 공격을 하여야 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초나라 병사는 비록 강을 건넜지만 아직 진형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자어는 다시 소양공에게 공격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소양공은 초나라의 군사가 완전한 진형을 만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 결과 소양공은 다리가 짤려나가 죽었고, 송나라 군대는 완전히 흩어지고 말았다. 송양공이 사마자어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군자는 다친자를 다시 다치게 하지 아니하고, 반백의 노인은 사로잡지 아니한다. 고대의 귀족전쟁에서는 적군을 험한 곳에서 괴롭히지 아니했다. 과인은 비록 망국의 후손이나 진격의 북도 치지 않았을 뿐더러 대열조차 정비하지 못한 적군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각주:2]. 고대의 귀족전쟁의 규칙은 이처럼 상대방이 준비가 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았고, 나이가 많거나 너무 어린 사람은 돌려보내고, 장사를 만나도 적의를 가지고 마주하면 안되며, 적이 만약 다쳤다면 치료를 해주고 돌려보냈던 것이다[각주:3]. 문학자들은 이를 두고 "중국의 돈키호테"라고하며, 모택동毛澤東은 이를 두고 "바보 돼지식의 인의도덕"이라고 풍자하였다.

사실 송양공과 사마자어는 논쟁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귀족전쟁에서 전쟁예술로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2.3. 순자와 한비자
순자荀子는 임무군臨武君에서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에게 같은 문제로 호소한다. 순자가 생각하는 이상은 우순시대의 왕의 군대(王者之兵)이었고, 그 다음이 춘추시대의 제환공이나 진문공으로 대변되는 패자의 군대(霸者之兵)였다. 이것들은 모두 귀족전쟁을 대표하고 있다. 그렇기에 순자는 전국시대의 제나라齐国의 엘리트기병(技击)이나 위나라魏国의 엘리트보병武卒 혹은 진나라秦国의 엘리트 병사(锐士 엘리트 보병이자 엘리트 기병임)등과 같은 것들은 "깡패 군대盗兵“라고 생각하였다. 순자가 깡패군대를 강력하게 비판한 것은 오히려 당시에 점차 귀족전쟁에서 도덕을 던져버린 진정한 전쟁예술로의 변화를 말해준다.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다. 그러나 순자와는 정반대로 깡패군대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성복전투를 거론하며 전쟁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성복전쟁(城濮之戰)은 기원전 632년에 일어난 진나라晉國와 초나라出國간의 대격전이다. 이 격전에서 진나라의 구범舅犯은 속임수를 쓸 것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옹계雍季는 정정당당한 전투를 주장한다. 진문공은 구범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열악했던 상황에서 초나라을 이기게 된다. 그런데 논공행상에서는 오히려 옹계가 구범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는다. 이에 대해서 구범은 평상시에는 예의에 충실한 군자로서 충성을 다하여야 하지만, 전쟁에서는 끊임없이 정당하지 않은 속임수를 써야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춘추전국시대에는 기존에 내려오던 귀족전쟁의 규칙이 붕괴되고 있었다. 스스로 귀족전통을 무너트린 진시황에게 진승陈胜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각주:4] "라며 귀족전통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귀족 항우를 깡패출신 유방이 해하垓下에서 이기고 한汉나라의 황제가 됨으로서 귀족전통은 완전히 마침표를 찍게 된다.


3. 구체적인 실전용 사기술
<손자>에서는 속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군쟁軍爭편에서도 병법은 속이는 것으로 성립한다.(兵以詐立)라며 속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송양공이 반대한 강을 건너고 있는 적을 공격하는 행위도 손자에서는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행동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병법에서도 기본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사기술을 기본으로 한 군사전략은 군사학상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기술詭道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도록 하자.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분리되어 서로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형은 앞에 있는 것이고 세는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형이 있기에 세가 있고, 형 속에 세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하고,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고,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도 먼 곳을 노리는듯 하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을 노리는듯 한다."에 대해서 모택동은 보여지는 형태示形이라고 하였다. 보여지는 형태는 가짜이지만 세를 내포하고 있다.

3.1. 속이고 또 속여라.
적이 이익을 노리면 유혹을 하고, 적의 내부가 혼란하면 공격한다. 적의 대비가 충실하면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적이 강력하면 피한다. 적이 불같은 성격이면 짜증나게 만들어 이성을 잃게 하고, 적이 신중한 성격이라면 오만하게 만든다. 적이 쉬려하면 피로하게 하고, 적이 단합 되어 있으면 분열시킨다.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은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이 말은 모택동의 16자구결을 연상하게 한다. 모택동은 국민당이라는 강적을 열악한 공산당으로 상대하면서 16자구결을 널리 알린다. 적이 공격하면 후퇴한다. 적이 주둔하면 괴롭힌다.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 적이 후퇴하면 쫒느다[각주:5]" 사실 모택동의 이런 전략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있었습니다. 오나라吳國는 초나라楚國을 상대하면서 "적이 대비하지 못했을 때 계속 소란스럽게 하여 적으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만든다[각주:6]" 라고 하여 게릴라전의 기본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오나라는 전력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초나라를 무너트리게 된다. 마치 조그마한 모기가 끊임 없이 괴롭히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3.2. 예상을 넘어서라.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은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攻其不備,出其不意). 곳곳에서 상대방이 생각하지 방식을 선택하고 변화시키면서 상대방을 흔드는 것이다. 전쟁이란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이다. 적이 불편해지는 모든 행동을 해주어야 한다. 그 핵심은 적이 생각하지 못하는 곳과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비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4. 계산과 실전은 다르다.
손자는 마지막에 "이러한 실전 병법은 너무 복잡하고 오묘하여 미리 결정하거나 가르칠수가 없다.(此兵家之勝,不可先傳也。)"라고 하여서 구체적인 실전전술변화을 알려줄 수 없는 경험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시뮬레이션은 어디까지나 계산일 뿐이다. 실전에서는 온갖 다양한 변수들이 등장하게 되며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중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임기응변을 가르칠 수 없는 존재이다. 전쟁은 힘, 지례 그리고 의지의 종합격투기이며, 전장은 시시각각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한 순간의 생각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축구에 공은 둥글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전쟁 역시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도박으로 비유하였다. 모택동도 전장에 스면 모든 볍먹을 잊어버린다라고 하였다.

군사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실전과는 떨어져 있는 전략일 뿐이다. 진정 유용한 것은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 오직 지도 위에서의 병사들의 움직임으로 일정한 원칙을 배울 뿐인 것이다. 설사 실전변화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몇가지 일정한 실전변화일 뿐이다.그렇기에 전략은 확정적이지만 실전은 불확정적이다. 우리가 무엇을 확정할 수 있을지는 다음 문장에서 나오게 된다. <손자>라는 책은 이처럼 예상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하는 것들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우선 확실한 이론을 알려주고 그 다음에 실전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다음 문장에서는 이번 편의 본질인 전략의 본질로 돌아와서 확실히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만든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학학!! 길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은 점차 발번역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타나 오역 혹은 엉터리 문장이나 이해가 안되는 문장들을 왕창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올리고 여러분들의 비판을 기대하겠습니다...절대 번역한 문장 다시 보면서 수정하기 귀찮은건 아닙니다...-_;; 설마...

다음 편은 짦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편은 무조건 나누어야 할 정도로 무지막지 깁니다. 고대의 병종들을 완전히 해부해 버립니다. 대충 2만자는 나올 듯 합니다.......에휴............ -_-;;

  1. 計利以聽이란 이 전에 나왔던 내용을 한번에 묶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계산상의 우세을 가질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조건이 있어야지만 뒤쪽의 결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 뒤쪽의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기세势이다. 우리는 기세를 통해서 원정에서의 작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밖外"는 "안内"와 비교되는 말이다. 안은 국내이며, 밖은 국외이다. 전쟁계획은 국내에서 수립되며, 전쟁은 국외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관자는 "계획을 반드시 안에서 결정하고, 그 다음에야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計必先定于內,然後兵出乎境)라고 말한 것이다. 군대가 일단 국경을 넘으면 자연적으로 실전에 투입되게 된다. 이럴 때에는 계획된 우세뿐만이 아니라 "기세"에도 의지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2. 君子不重傷 不擒二毛 古之爲軍也 不以阻隘也 寡人雖亡國之餘 不鼓不成列 [본문으로]
  3. 見其老幼, 奉歸勿傷。 雖遇壯者,不校勿敵。 敵若傷之, 醫藥歸之 [본문으로]
  4. 王侯将相,宁有种乎 [본문으로]
  5. 敵進我退,敵駐我擾,敵疲我打,敵退我追 (해당 발언에 대해서는 모택동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주덕朱德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문화대혁명으로 전통문화를 괴멸상태로 만든 모택동이 워낙에 고전을 좋아하였기에 모택동일 가능성도 충분히 높기에 그냥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6. 亟肆以罷之,多方以誤之 [본문으로]
故經之以五事,校之以計,而索其情[각주:1]:一曰道,二曰天,三曰地,四曰將,五曰法。道者,令民于上同意者也,可與之死,可與之生,而不詭也[각주:2];天者,陰陽、寒暑、時制也;地者,高下、遠近、險易、廣狹、死生也[각주:3];將者,智、信、仁、勇、嚴也;法者,曲制、官道、主用也。凡此五者,將莫不聞,知之者勝,不知之者不勝。

그러하기에 5가지 비교항목을 검토하고 7가지 실질비교내용을 헤아려서 적과 자신들의 현황을 파악하여야 한다. 5가지 비교항목은 각각 도리, 하늘, 땅, 장군, 법이다. 도리라는 것은 백성과 같이 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같이 죽고 같이 살며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늘은 음양의 변화와 기후의 영향 그리고 시기을 말한다. 땅은 높이, 거리, 기울기, 넓이 그리고 전술적위치치를 말한다. 장군은 지략, 믿음, 어질음, 용맹, 엄격함을 말한다. 법은 편제, 계급, 보급를 말한다. 무릇 위의 5가지 비교항목은 장수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를 아는 자는 승리할 것이오. 모르는 자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故校之以計,而索其情。曰:主孰有道?將孰有能?天地孰得?法令孰行?兵眾孰強?士卒孰練?賞罰孰明?吾以此知勝負矣。

7가지 실질비교내용을 헤아려서 적과 자신들의 현황을 파악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어느쪽의 도리가 더 마땅한가?","하늘과 땅의 상황은 어느 쪽에 더 유리한가?","어느 쪽 장군이 더 유능한가?","법령은 어느 쪽이 더 정비되어있나?","병졸은 어느 쪽은 더 강한가?","사병은 어느 쪽이 더 잘 훈련되어 있나?""신상필벌은 어느 쪽이 더 명확하게 행해지고 있는가?" 이며, 이것들을 통해 승패를 알 수 있다.

將聽吾計,用之必勝,留之;將不聽吾計,用之必敗,去之。
만약 장수가 임금의 계획대로 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에 계속 임용 할 것이고, 장수가 임금의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패할 것이기에 자를 것이다.

0. 요약
이 번 편은 전략계획을 수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개념인 "다섯가지 비교항목과 일곱가지 실질비교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5가지 비교항목(5事) 7가지 실질비교내용(7計)
 도리道 어느쪽의 도리가 더 마땅한가?
 하늘天 하늘과 땅의 상황은 어느 쪽에 더 유리한가?
 땅地 어느 쪽 장군이 더 유능한가?
 장군將 법령은 어느 쪽이 더 정비되어있나?
 법法 병졸은 어느 쪽은 더 강한가? 사병은 어느 쪽이 더 잘 훈련되어 있나? 신상필벌은 어느 쪽이 더 명확하게 행해지고 있는가?

1. 도리(道)
5가지 비교항목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도리이다. 도리란 민심을 얻는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고,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 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치의 핵심이다.


2.하늘과 땅
도리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하늘과 땅이다. 제갈량에 대해서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고 있다(上知天文,下知地理)"라고 묘사되고는 한다. 제갈량은 하늘을 알고 딸을 알았기에 환상적인 전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하늘과 땅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군사음양학(兵阴阳)을 안다는 것이다. 군사음양학은 수학을 군사학에 응용을 한 것이다. 현대의 군사학에서의 군사기상학과 군사지리학이 바로 고대의 군사음양학이다. <손자>에도 군사음양학이 등장하는데, 하늘에 대한 이야기는 <화공편>밖에 나오지 않는다. 땅에 대한 이야기는 <행군>, <지형>, <아홉가지 지형>등에서 자주 출현한다. 손자가 있었던 시대에는 아직 공군이 없었으며, 정확한 기상예보도 불가능하였다. 클라우제비츠시대에도 그러하였기에 이 둘 모두 땅을 중심으로 전략을 논하고 있다.

2.1. 하늘(天)
군사음양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복술(式法)이었다. 점복술을 통해서 길흉을 점쳤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역법에 의한 기일 선택이었다. 지금도 결혼과 같은 행사에서 기일을 선택하는 것처럼 고대에도 전쟁을 일으키는 날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 외에도 별관측观星, 구름관측望云, 자연관찰省气, 바람관찰风角, 소리관찰五音, 새관찰鸟情등등을 통해서 점을 보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강조를 하는 것은 "음양의 변화와 기후의 영향 그리고 계절"이었다. 죽간버젼에서는 "자연스러움과 군사오행(顺逆, 兵胜也)"라는 말이 있다. 이것 역시 군사음양학에 속한다. 자연스러움은 음양의 흐름에 적합한지를 알아보는 것이고, 군사오행은 오행의 상성상극을 군사학에 도입한 것이다.

2.1.1. 음양 陰陽
그렇다면 음양이란 무엇인가? 음양이란 어떤 구체적인 개념은 아니다. 흐리고 맑고, 춥고 따뜻한것과 같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다. 음양은 일종의 이분법적 표현이다. 중국의 수학, 계산 및 다양한 과학기술은 모두가 음양오행이론의 뼈대에서 나온 것으로서 서로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에는 바이블이라고 할 만한 서적은 있지 않다[각주:4].

중국고대에는 장군들은 반드시 군사음양학을 배워야했다. 점복술은 전국시대부터 명청까지도 장군들의 필수과목이었다. 이러한 군사음양학에는 과학적인 면도 있고 미신적인 부분도 있다. 과거의 철학사나 사상사 연구자들은 손자를 보며 위대한 유물주의唯物主義자[각주:5]이며 미신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고는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자는 비교적 현실적이어서 미신에 대해서는 비교적 조금 말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2.1.2. 시기時令
여기서 말하는 시기時令은 천지가 기운이 분리되어 계절로 나누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기는 두가지 방법으로 각기 세분화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일년을 각기 90일로 나누고 그것을 더욱 세분화하여 24절기로 변화하는 방법은 지금도 자주 쓰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오행(금속, 나무, 물, 불, 땅)으로 일년을 각기 72일씩 나누고 그것을 더욱 세분화하여 30절기로 변화하는 방법이 있다.    

2.2. 땅(地)
땅은 "사람이 없는  땅"과 "사람이 있는 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람이 없는 땅"은 객관적인 지형을 뜻하고, "사람이 있는 땅"은 전세에 따라서 변화하는 인문학적 지형을 뜻한다. 땅은 3차원으로 되어 있기에 멀고 가깝고, 넓고 좁고, 높고 낮을 뿐만이 아니라 기울기까지 있다. 전세는 여러 가지 분류가 있으나 크게는 "안전지역生地"과 "위험지역死地"으로 나눌 수 있다. <아홉가지 지형>에 따르면 위험구역은 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아남고,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죽는 곳이다. (疾戰則存, 不疾戰則亡)

하늘과 땅의 뒤쪽에는 사람의 일인 장군과 법이 설명된다.


4. 장군(将)
장군은 다섯가지 소질(오덕五德)로 비교하게 된다. 우선 지략智가 있어야 되며, 그 다음 믿음信이 있어야 되며, 그 다음에야 어질음仁이 필요하다. 병법은 서로의 지략을 겨루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략이다. 믿음도 중요하다. 믿음이 없으면 명령을 내려도 부하가 따르지 않게 된다. 장군과 부하간의 믿음이 있어야만 병법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마천도 이광李廣을 변호하면서 "그의 충실한 마음이 사대부들에게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다.(彼其忠實心 誠信於士大夫也)라고 하면서 좋은 장수의 그릇으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어질음仁과 용맹勇이다. 공자는 어진자는 반드시 용맹하지만 용맹한 사람은 반드시 어질지는 못하다.(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나 용맹하나 무례하면 난폭할뿐이다(勇而無禮則亂)라고 하여 용맹보다 어질음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할머니 어머니 혹은 부인들의 어짐은 진정한 어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들이대는 양아치의 용기도 진정한 용기라고 할 수 없다. 어짐이란 병사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병사들이 따르게 하는 것이다. 용맹은 적을 죽인 뒤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적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영晏嬰이 사마양저司馬穰苴을 평가하면서 "문文으로는 사람들이 따르게 하고, 무武로는 적을 두렵게 하였다(文能附眾,武能威敵). 이 바로 어짐과 용맹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이다. 엄격함은 아래에서 설명할 법法와 관계가 있으며,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신상필벌을 정확하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5. 법(法)
법이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법률이 아니라 군대를 관리하는 방법을 묶어서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고대에 군법軍法라고 불렸다.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다양한 군법들이 존재해왔다. 예를 들어서 <사마법司馬法>와 같은 제나라의 오래된 군법이 존재했다. 군법은 매우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병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천일이 필요하지만, 병사를 사용하는 것은 순간이다.(養兵千日,用兵一時)이라고 하였다싶이,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복잡한 일이다. 그렇기에 조직, 보급, 장비, 훈련등의 일체가 시스템적으로 정립이 되어야 하며, 이런 시스템을 군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렇기에 군법이라고 하면 잘못한 병사에게 "목을 베라"라고 하는 신상필벌이나 규율적 요소외에도 다양한 군대시스템을 연상하여야 한다.

5.1. 편제 曲制
과거의 군대편제는 곡제(曲制)이라고 불렸다. 곡제는 관자와 같은 곳에서는 곡정曲政이라고도 하였고, 고대의 설명집에는 부곡部曲라고 설명되고는 하였다. 왜냐하면 한대의 군제가 부곡部曲로 이루어졌기 대문이었다. 곡은 200명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이고, 부는 400명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여단과 사단과의 차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그리고 이 부곡은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군사용어인 곡제曲制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곡제는 곡저曲折라고도 불렸는데, 진법의 요구대로 디자인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5.2 계급 官道
관도官道는 편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개념으로서 계급제도를 말한다. 소대장이 소대를 이끌고, 중대장이 중대를 이끌고, 사단장이 사단을 이끄는 것과 같이 각 편제에 합당한 관직을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5.3. 보급 主用
주용( 主用)은 무기, 의류, 음식과 같은 것을 모두 포괄하는 말로서 지금으로 보면 보급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의 실질내용은 모두 3가지로서 "병졸은 어느 쪽은 더 강한가?", "사병은 어느 쪽이 더 잘 훈련되어 있나?", "신상필벌은 어느 쪽이 더 명확하게 행해지고 있는가?"이다. 군대의 실력은 명확한 편제와 계급를 통한 명확하고 빠른 명령전달과 그런 명령을 확실히 이행하기 위한 병사들의 훈련 및 보급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모든 시스템을 군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6. 이것들을 통해 승패를 알 수 있다.  吾以此知勝負矣。
지금까지 여기서 말한 5가지 비교항목을 통해서 7가지 실질비교내용은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략요소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위에서 언급한 비교항목과 실질비교항목을 통해서 "승패를 알 수 있다" 이것이 전쟁계획이다. 그러나 전쟁계획은 단지 "이길 것을 아는 것 뿐"이며, 실질적인 승리라고 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승리를 하려면 전장에 가서 "직접 전투에 참가를 해야지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각주:6]"

승리할 것을 아는 것에서 실제로 승리로 가려면 우선 좋은 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선 우리편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계획대로 자신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각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계획은 종이에 불과한 것이다. 두번째로 적이 계획대로 움직여주는가이다. 열심히 땅을 파서 대규모 함정을 만들어놓아도 적이 그곳을 지나가지 않으면 말짱도루묵인 것이다. 실제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군과 적군 모두 "전쟁의 미학"대로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7. 만약 장수가 임금의 계획대로 한다면 將聽吾計
7.1. 將聽吾計에 대한 다양한 해석
將聽吾計의 해석은 고대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정해지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의 吾(나)와 將(장군)이 누군지에 대한 수 많은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7.1.1. 오왕吳王이 손자(나)의 계획을 듣는다면?!
첫번째 해석에서는 나는 손자이며 듣는 상대는 오왕이다. 그럼 將(장수)는 누구인가?  여기서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일을 말하는 "~한다면"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손자(나)의 계획을 오왕이 따른다면 나는 이곳에 남아서 군대를 지휘할 것이고, 만약 나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이다.

7.1.2. 장수가 임금의 계획을 듣는다면?!
두번째 해석은 吾(나)는 군주이고, 將(장군)는 수하 장군이다. 군주의 계획을 장군이 따른다면 승리할 것이기에 계속 그 장군을 쓸 것이고, 만약 계획을 따르지 않는다면 패배할 것이기에 짤라버린다는 것이다.

7.1.3. 적 장군이 계획대로 행동한다면?!
세번째 해석에서는 將(장군)을 적장군으로 본다. 적 장군이 계획대로 움직여준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에 남아서 적과 싸우지만, 만약 적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빠르게 철수해야된다는 소리이다.

이 세 가지 해석은 모두 계획의 실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중간의 "장수가 임금의 계획을 듣는다면"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전쟁계획이 군사회의를 통해서 결정이 된 이후에 장군을 임명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 장군이 군사회의를 통해서 결정된 전쟁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7.2. 계획에서 실전으로의 이행
이 말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계획에서 실전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 있다. 종이 위에서 전략을 논하는 것과 실전에서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연결점은 "이익계산"뿐만이 아니라 "명령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말했다 싶이 계획의 실현은 아군이 받아들여야 할 뿐만이 아니라, 적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익계산은 단순히 계산상의 우세를 나타낼 뿐이며, 이러한 우세가 반드시 승리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서 미국은 온갖 최신식 무기로 도배가 되어있다. 그리고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미국무기들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2차대전시의 미국은 대규모 폭격과 핵무기 위협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독일에 대해서는 대규모 폭격을 하였고, 일본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폭파시켰다. 이러한 방식이 성공을 함에 따라서 2차대전후 미국은 더욱 더 강력한 힘만을 믿었다. 그러나 전쟁을 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들이다. 전쟁은 살아있는 인간과 인간이 싸우는 것이기에 단순한 힘뿐만이 아니라 의지와 지혜를 서로 다투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힘만을 믿었던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하게 된다.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베트남인처럼 죽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며 괴롭힌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 대국들은 지구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전쟁계획만을 의지할 수는 없다. 만약 전쟁이 단순한 계획과 숫자만의 싸움이라면 전쟁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결과를 보고,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여서 그 결과를 알려주면 모든 일들이 처리가 되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은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전쟁은 계산놀이가 아니기에 숫자를 늘어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 내내 수 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 중에서는 실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긴 경우가 많다.  그것은 삼국총사령관을 빼앗을 수 있어도, 한 병사의 전투의지를 뺏을 수는 없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라는 말과 통한다. 물론 의지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계속 전투를 하게 되면 실력으로 상대방의 의지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지는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음으로 패배를 인정하게 하여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머...어떻게든 완성했습니다. 오탈자를 잘 봐주시고 덧글로 이야기해주십시오. (아마 좀 많을듯-_) 이것만 6000자군요. 다음 분량도 이정도 입니다. 그럼으로....귀찮아서 진짜 안해버릴지 모릅니다. 적절한 당근과 채찍 부탁드려요. -0-

그리고 원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철저한 의역을 추구합니다. 리링 선생님이 짦게 설명하고 말았지만 그대로 설명하면 일반독자들이 알아듣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상세히 늘여서 설명을 해놓았고, 일반인들이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은 주석으로 처리해버렸습니다. 처음에 이런것까지 일반인 수준으로 쉽게 설명하려고 온갖 삽질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솔직히 쓸데도 없어 보이고 말이죠. 무엇보다 적절한 한국형 예시를 생각하느라...더 힘들기도 하답니다. .....................예쁘게 봐주셔요.ㅠㅠ

  1. 다섯가지 비교 항목(五事)은 죽간에는 “비교항목事”이라는 한자가 없다. 그러나 현대버젼에서는 “비교항목事”이라는 한자를 넣어서 더욱 분명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을 통해서经之"이라는 말은 5가지 비교항목을 가지고 비교를 진행한다는 말이다. 7가지 실질비교내용을 校之以計부분은 죽간본에서는 效之以計라고 되어있다. 校과 效은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通假字) 예를 들어서 상추와 상치중에 상추가 맞지만 상치라고 해도 뜻은 전달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본문으로]
  2. 현대까지 내려오는 버젼을 보면 不畏危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 " 어떠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도록"이라고 해석하고는 한다. 그러나 발견된 죽간본을 보면 不詭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베신 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보다 정확해 보인다. 왜냐하면 공자도 자고로 사람은 모두 죽지만, 백성의 믿지 않으면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自古皆有死,民无信不立)라고 하였고, 맹자도 하늘의 때는 땅의 이점보다 못하고, 땅의 이점은 사람들의 사람의 화목함만 못하다(天时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라고 하여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백성이 어떠한 위험에도 두렵지 않도록"보다는 "백성이 등을 돌리지 않도록"인 편이 합당하다. [본문으로]
  3. 현재 버젼에는 "높고 낮음高下"가 없지만 죽간본에는 있으며, 이부분에서는 죽간본이 더욱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지금 현재로서는 隋나라 萧吉의 <五行大义>가 가장 참고할만하다고 본다 [본문으로]
  5. 유물론(唯物論)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는 이론이다. 유물론에서는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이해한다. [본문으로]
  6. (나폴레옹) [본문으로]
孫子曰:
兵者,國之大事,死生之地,存亡之道,不可不察也。

손무孙武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군사(군대 또는 전쟁에 관련된 모든 일들)는 국가의 중대사이다. 병사들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며, 국가의 존망까지도 결정되기에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3.1.1. "손자 가라사대 孫子曰"
손자는 모든 편은 "손자 가라사대孫子曰"로 시작하고 있다. 이 부분은 보통 무시되기는 한다. 손자 말고도 공자, 노자, 순자등등의 이름을 보면 당시의 사람들은 "자"로 끝나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자子는 성인남성을 뜻하는 접미사였다. 지금의 "님"과 같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붙이는 말이었던 것이다. 자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춘추전국시대나 그리스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에 완벽한 직접적인 민주주의을 실시했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철처한 신분제의 사회였다. 국인国人이라고 불리는 일반 사람들의 아래에는 평생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층민 혹은 노예들이 있었다. 일반사람들은 제한적으로 국왕에게도 직접적으로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지만 하층민과 노예들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었다. 자子는 그런 국인들이라는 권력층에 붙이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子는 단순히 일반사람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마치 "아줌마"라는 말이 처음에는 결혼을 한 여성을 뜻하였지만, 지금은 악착같고 철면피 같은 결혼한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과 반대로 자子는 점차 "선생님"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을 담아서 붙이는 칭호가 되었다. 손자 가라사대라는 말은 "손무孙武 선생님이 말씀하시길"라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대부분의 언행을 기록한 문헌들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수업시간에 노트필기를 하는 것처럼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면 학생들이 열심히 필기를 했던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필기를 할 수 있는 종이가 희귀하였기에 학생들은 필기를 하지 못하고 머리로 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다음 학생들이 모여서 서로가 기억하는 것을 억지로 떠올리면서 선생님을 추모하며 글을 정리한 것이다.


3.1.2. 군사(군대 또는 전쟁에 관련된 모든 일들)는 국가의 중대사이다. 兵者,國之大事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군사(군대 또는 전쟁에 관련된 모든 일들)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전쟁은 아이들의 소꼽놀이가 아니며 사람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병兵은 본래 병기兵器을 말했다. 무기는 쓰는 사람은 병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사을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기를 들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에 전쟁을 뜻하게도 되었다.

국가의 대사國之大事라는 말을 살펴보자. 춘추전국시대의 사람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는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와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군사이다.(国之大事,在祀与戎《左传》成公十三年) 제사는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의 가호를 받아서 혈맥이 더욱 발전하기 바라는 것이기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는 국가의 안전을 지켜야 되는 일이기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비록 군사를 공부하지 않았지만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먹거리를 풍족하게 하고 튼튼한 군대를 양성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足食,足兵,民信之矣《论语·颜渊》)이라고 하였다.(이런 의미에서 2009년 광우병사건은 바로 먹거리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절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조도 <손자간략해설孙子略解>의 시작부분에 공자의 이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사실 조금 달랐다. 공자는 자공子贡과의 대화를 통해서 정치3대 항목중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먹거리이고, 마지막이 군사라고 말하고 있다.  군대가 없으면 상대방의 침략에 죽을 수 밖에 없다. 먹거리가 없다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군대나 먹거리가 없어도 단지 죽을 뿐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사람의 죽음은 너무나 자주 발생하는 일이었고, 누구나 결국은 죽게 된다. 그렇기에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런 생각은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강조된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모두들 부국강병富国强兵을 부르짖었다. 부국이란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고, 강병이란 군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특히 당시의 사람들은 군사문제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였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강력한 군대를 건설해야된다고 굳게 믿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비극이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싶이 춘추전국시대는 언제나 전쟁중이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내 손에 무기가 없으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전국시대 말기로 갈 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렇기에 갈관자에서는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이 있는데, 하늘과 땅은 멀고 사람은 가깝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 중에서도 군사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하였다(人道先兵《鹖冠子·近迭》).
 

 3.1.3. 병사들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며, 국가의 존망까지도 결정되기에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死生之地,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이 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다만 나는 과거와는 조금 다른 해석을 했다.  삶과 죽음의 지역死生之地은 사는 지역과 죽음의 지역의 혼합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인 전장에서의 생사가 결정이 되고, 그 결과가 국가의 존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구조라고 생각한다. 모든 군사행동은 정치의 연장선상이며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에 당연히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不可不察也. "<손자>에서는 사령관은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신(司命)이라고 말한다. 사령관은 아군의 생사를 결정할 뿐만이 아니라, 적의 생사조차 결정을 한다. 그렇기에 사령관은 조심 또 조심 할 수 밖에 없다.

<손자>의 처음은 이처럼 강력한 경고로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에 대한 다양한 경고는 <손자>에서 끊이지 않고 나오는 특징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 분량은 그마나 적다. 이 다음은 무지막지 길다. 그래서 아예 손대기 싫어질 정도로....
과연....다음 편은 언제쯤 올라올까?.....핵심은 여러분들의 관심? -0-;;

문자를 보내고 기다린다. 대답이 없으면 저도 모르게 계속 휴대폰을 확인한다. 혹시 휴대폰이 연체가 되서 끊긴 것일까? 다시 한번 "문자 받았어?"라고 보내본다. 그래도 대답이 없고 도무지 기다릴 수 없으면 전화를 걸어서 휴대폰을 두 번만 울리고 끊는다. 드디어 답장이 오면 조심조심 신중하게 대답을 준비한다. 너무 차가워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너무 적극적이어서도 안된다.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센스있는 문장을 떠올려야 된다. 마지막 말을 의문문으로 하여야만 상대가 대답하기 편할 것이다. 고민고민 끝에 드디어 문자를 보낸다. "문자를 발송하였습니다"라는 말이 뜨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사이에 서로 연락하는 시간이 정해진다. 그러나 기다림은 멈추지 않는다. 연락하던 시간에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혹시 핸드폰 신호가 없는 것일까? 지금 일이 바쁜 것일까? 문자가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계속 홀로 고민한다.

어느날 문자가 도착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문자가 오지 않는다. 마음은 너무 갑갑하지만 먼저 문자를 보낼 수는 없다. 참고 또 참으며 기다린다. 기다리면 기다릴 수록 답답해진다. 화가 나서 휴대폰을 꺼버리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전원을 다시 키고 만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좀 바빳어. 미안"이라는 짦은 문자가 오면 눈 녹듯이 모든 짜증이 사그라진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어떤 문자를 보내야될지 고민을 한다. 물론 일부러 별 일 아닌듯이 "응. 그래? 나도 좀 바빠서.."라고 보낼 수도 있다. 정말 한심하다. 방금 전에 문자가 오더라도 절대 답장 안할 것이라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또 어떤 날은 아예 문자가 오지 않는다. 그래도 문자를 기다리지만 이미 숨을 몰아쉴 정도로 화가 난 상태이다. 침대에 누워서는 전에 주고 받았던 문자를 살펴본다. 전체 삭제 해버리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문자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도무지 삭제버튼이 눌리지 않는다. 가끔은 정말 화가 나서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리고는 한다. 그러나 이미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번호인데 지워도 소용이 없다.

또또 어느날에는 서로가 점차 서먹해지기 시작한다. 서로 간의 일로 둘 간의 연락도 점차 줄어들게 된다. 어느 사이에 처음의 긴장과 흥분 대신에 익숨함이 자리 잡는다. 시간의 흐름이란 너무나 무섭다고 하겠다.

또또또 어느날은 보관함이 가득 차게 된다. 고민 고민 끝에 한개 한개씩 보관함에 가득차 있는 문자를 지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설령 삭제를 하더라도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또또또또 어느날에는 아예 휴대폰을 일부러 잃어버린다. 그냥 속편하게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머리도 짦게 짜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상대의 휴대폰 번호도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새 휴대폰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어느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내가 너한테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넌 잠을 못 잘까?" 라고 물어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어! 예전 문자를 보는데 말야."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그래도 상관없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걸!" 그들은 예전에 너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출처 : 你等过一个人的短信吗?


바로의 중얼중얼 :
꽤 많은 관심을 받길래 대충 번역해봤습니다. 사실 전 문자 보내는 것을 무지막지 귀찮아 합니다. 문자 받으면 그냥 상대에게 전화를 해버립니다. 전화를 못 할 상황에서는 "지금 불편해서 나중에 전화할게"라고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타자 속도가 그리 늦지는 않지만, 그래도 키보드에 비하면 너무나 늦기에 귀찮아서 그냥 전화해버립니다. 사실 전화도 하기 귀찮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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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손자병법(이하 《손자》)》13편을 하나 하나 읽어보도록 합시다.

우선 《손자》의 구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자》의 특성은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구절과 논리적으로 분할 되어 있는 문단구성입니다. 위무제 조조는 "수 많은 병서를 보았지만 《손자》만큰 깊이가 있는 책은 보지 못하였다"라고 말하였고, 송나라의 구양수欧阳修도 "순서가 질서정연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의 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라서 마디 마디가 단절되어있고, 앞뒤 문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치 교장선생님의 정신없는 훈화나 지금 제가 하는 강의처럼 말이지요. 그렇게 춘추시대의 고문은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고, 그리 뛰어난 논리구조를 내포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글쓰기는 지금의 우리처럼 생각하고 쓰고 다시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필휘지로 한 숨에 써내려간 것입니다.

《손자》의 고대버젼인 은작산한간銀雀山汉简과 지금 현재 내려오는 버젼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은작산한간은 사마천이 언급한 대로 지금과 같은 13편입니다. 그러나 은작산한묘에서 출토된 죽간버젼은 송이후에 내려오는 현재의 버젼과는 순서가 다릅니다. 그리고 편집이 잘 되어 있다는 현재의 버젼은 아마 중간에 일정한 정리작업을 거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조가 정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의 버젼의 가장 초기 모델이 바로 조조曹操의 《손자》해설버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조조의 《손자》 해설버젼 이전에도 여러가지 편집방식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순서의 편집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손자》와 죽간버젼의 《손자》는 그 순서가 다릅니다. 어떤 것이 더 오래되었을까요? 당연히 죽간버젼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더 논리적이냐고 한다면 현재의 버젼입니다. 과거에 교감학자들이 말하는 좋은 버젼은 수 많은 버젼을 모아서 다름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하는 것은 문장에 논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더 오래되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논리로 따지면 현재의 버젼이 고대의 버젼보다 훨신 더 좋습니다.

우리는 이 수업에서 현재 버젼을 중심으로 손자를 살펴볼 것입니다. 당연히 현재 버젼의 순서로 살펴볼 것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현재 버젼의 순서가 은작산한간보다 훨신 더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은작산한간은 본래 상하로 나누어져있었습니다. 그 목자로 보았을 때 앞의 6편이 한 그룹을 이루고, 뒤의 7편이 한 그룹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순서는 제가 분석하기로는 "계획计","야전作战","세势","형形","공성전谋攻,"행군行军",으로 된 1그룹과 "군사军事","허실虚实","아홉가지 변화九变","지형地形","아홉가지 지역九地","스파이 사용법用间","화공火攻"으로 된 2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조조의 손자병법버젼은 한권, 두권, 세권버젼이 모두 있습니다. 한권버젼은 그룹을 나누지 않았고, 두권버젼은 두 그룹으로 나누었으며, 세권버젼은 3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다른 《손자》 주석서들도 모두 비슷합니다. 은작산한간버젼은 아마도 두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3대 《손자》버젼은 모두 세권으로 되어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의 편집자체에는 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내편内篇이라고 하였고, 그 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외편外篇 혹은 잡편杂篇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손자를 내외편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그 다음 각각의 편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1.내편 - 전략전술이론
1.1. 권모그룹 : 계획, 야전, 공성전
1.2. 형세그룹 : 형, 세, 허실
2. 외편 - 응용편
2.1. 실무그룹 : 군사,  아홉가지 변화, 행군, 지형, 아홉가지 지역
2.2. 기타 : 화공, 스파이 사용법

이러한 분류는 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양으로 나눈다면 전술편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내편은 전략과 전술의 이론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권모그룹은 전략이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형세그룹은 전술이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편의 실무그룹은 구체적인 전략전술 응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화공과 스파이등과 같이 분류하기 힘든 것은 기타로 모아놓았습니다.

먼저 권모그룹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권모는 현대적인 말로 간단히 말하자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대국을 읽고 군사를 움직일 것을 생각하는 거대 이론입니다. 이 그룹의 순서는 계획-야전-공성전의 순서로 전쟁의 3단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계획을 세워서 군사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야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공성전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고대 전쟁의 기본이었습니다. 이른바 "전쟁의 3단계"입니다.

그럼 우선 권모의 개념부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합시아. 반고班固(汉志兵书略)는 다양한 방식으로 권모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1) 나라는 다스리는 것은 바른 방법으로 하고, 군사를 사용하는 것은 삐뚜른 방법으로 한다. (以正治国,以奇用兵《老子》第五十七章) : 이 말의 의미는 나라는 다르시는 것은 정상적인 수단으로 하여야 하며, 음모나 간계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떤 일에 비상수단을 사용하여야 할까요? 바로 군사행동입니다. 노자는 전쟁의 본질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습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고 하였습니다.(전쟁론) 전쟁은 정치를 전제로 합니다. 정치는 "바르고" 전쟁은 "삐뚜릅니다."  삐뚜른 것은 바른 것을 전재로 합니다. 바른 것이 그 뜻을 얻지 못했을 때 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正正不获意則權權出於戰司马法-仁本) 여기서의 권이 바로 비뚜름이다. 전쟁의 뒷면에는 정치가 있고, 그 의지가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지를 타자에게 강요하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 상대방의 군대를 굴복시키던지, 전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군대를 굴복시키든지 모두가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굴복은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온갖 아부와 협박을 다 하고, 당근과 채찍을 들이밀어도 상대방이 듣지 않는다면 군대를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2) 우선 계획을 세우고 전쟁을 한다.(先记而后战) : 이 말은 바로 《손자병법》에서 왔습니다. 《손자》의 첫번째 분류 그룹은 대전략입니다. 우선 계획을 세워야 야전을 거쳐서 공성전을 하게됩니다. 병서략에서는 권모류의 책을 최우선으로 나누었고, 권묘류의 책중에서 손자를 최 우선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손자는 바로 계획을 처음으로 놔두었습니다. 계획이 있고 나서나 야전과 공선전이 있는 것입니다.

3) 형세을 가지고 음양을 포관하여 기술을 사용하는 자를 말한다. (兼形势,包阴阳,用技巧者也): 권모류에는 종합성이 있고, 《손자》 역시도 이러한 특징이 있습니다. 병서에서는 권모를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모는 단순히 대전략뿐만이 아니라 전술응용과 군사기술도 포함합니다. 권모란 이론과 종합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형세나 음양 및 기술은 손자에도 모두 있습니다. 손자의 13편중에서 계획과 야전 공성전은 권모이며, 형과 세 그리고 허실은 형세를 말합니다. 군사들의 나머지 부분은 지형을 이야기하며, 화공에서는 음양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지汉志의 병서 중에서 권모류의 서적이 가장 많이 있고, 그 외의 분류에 속한 내용은 거의 전해져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손자는 권모류의 대표로서 권모를 배우기 위해서는 손자를 반드시 읽어야만 했을 뿐만이 아니라 형세와 음약 및 기술까지 손자에 모두 있었기에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습니다.

권모그룹에서 가장 처음에 있는 계획计이야 말로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계획이 바로 권모이며, "나라는 다스리는 것은 바른 방법으로 하고, 군사를 사용하는 것은 삐뚜른 방법으로 한다. "의 체현입니다.

계획은 전체이며 일부입니다. 계획은 시작이며 끝입니다. 계획은 이론이며 응용입니다. 계획은 전쟁의 모든 과정을 관통합니다. 손자의 모든 문장은 모두가 계획 위에 있는 것입니다.

권모와 형세는 다릅니다.. 양자는 모두가 군사계획이며 권모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계획에 큰 계획과 작은 계획이 있듯이 권모 역시 큰 권모가 있고, 작은 권모가 있습니다. 전자를 전략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전술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갈량诸葛亮이 제시한 천하를 3등분하여 서로 견제한다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计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적벽대전에서 화공으로 조조를 물리친 것은 전술입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계획计를 구성하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계획计라는 이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 서적의 소제목은 두가지 종류가 있스니다. 하나는 문장의 처음 몇 단어를 제목으로 하는 것입니다. 소제목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편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내용의 정수를 제목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손자》의 경우는 내용의 정수를 소제목으로 하였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오늘날 남아 있는 《손자》는 크게 두가지 시스템과 세가지 버젼이 있습니다. 위무제주손자(影宋本《魏武帝注孙子》)와 무경칠서(宋本《武经七书》)가 하나의 시스템이며 십일가주손자(宋本《十一家注孙子》)가 또다른 시스템입니다. 저는 첫번째 버젼을 기본으로 하여서 분명한 틀린글자들을 수정할 것입니다. 중화서국中华书局의 24사 표점본이 채택하고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을 통해서 틀린 글자의 원래 글자를 조그마하게 적어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고친 글자나 보충한 글자는 [] 안에 넣어서 원문글자의 뒷쪽에 위치시킬 것입니다. 다만 저는 ()안의 글자를 작은 글자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손자》의 처음 3편인 계획计, 형形, 세势는 현재 남아 있는 세가지 버젼 모두 조금씩 다릅니다. 십일가주석버젼은 한자씩으로 하여서 원래 고문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버젼은 계획计을 시계始计라고 하였고, 형形을 병형兵形이라고 하였으며 세势을 병세兵势라고 하였습니다. 앞부분의 한자는 모두가 후세사람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계획计의 한자 그대로의 의미는 계산입니다. 계산하는 과정 자체를 말하는 동사이기도 하고, 계산의 결과인 모략을 말하는 명사이기도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여서 계획은 본편의 끝에서 등장하는 묘산廟筭이니다. 묘산은 지금으로 말하면 전쟁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묘廟는 사당이라는 의미로서 아홉가지 지역九地에 등장하는 랑묘廊庙와 같습니다. 묘라는 것은 조상들을 모시는 곳이기도 하며, 과거에는 국가대사를 회의하는 곳이었습니다. 산筭는 사당에서 계산을 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계산을 하는 도구를 말합니다. 산筭은 대나무나 뼈를 이용하여 계산을 위하여 만든 조그마한 막대기입니다. 이 조그마한 막대기는 책策이나 주筹라고도 불렸습니다. 한서(汉书-律历志)을 보면 산주筭筹는 길이가 육촌에 넓이가 1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도량형으로 계산을 하면 13.8CM의 길이와 0.23CM정도였습니다.

과거에 쓰이던 산주입니다. 막대기처럼 생긴것을 아래 그림과 같이 배결을 하여서 계산을 한 것입니다.


위의 막대기를 아래와 같이 배열을 해서 계산을 한 것입니다. 특히 1부터 3까지의 숫자를 보시면 한자의 1,2,3과도 같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대에 산筭은 산수의 산算와 사실상 혼용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산수算术도 여기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지금 현재 사용하는 계획计划, 책략策略의 계计와 책策 역시 비슷하게 전래되어왔습니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본문 번역...다음 주쯤에나 올라오려나-_-;;;


"손자병법"은 병서입니다. 그러나 "손자병법"은 단순한 병서가 아닙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지혜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실제로 손자병법은 서양권에서 "노자"와 "주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번역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 천년간 유교문화권에서 숭배받던 "논어"는 그 다음일 뿐입니다.

한국과 중국 모두 손자병법을 철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풍유란冯友兰이 쓴 "중국철학사中国哲学史"도 처음에는 손자병법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수 천년간 숭배받아왔던 유교에서 자행되었던 문화폭력의 결과였습니다. 1982년 리저호우李泽厚에 의해서 손자병법은 노자에 영향을 준 책으로 생각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명작으로 대접받았다고까지 말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과거 춘추전국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무한 경쟁사회로 인하여 손자병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제대로 된 해설서가 아닌 문장자체를 번역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리링이 저술한 손자병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링의 손자병법은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우면서도 학문적인 깊이가 있습니다. 리링의 손자병법에서 춘추전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살아있는 철학의 정수를 느껴보시기 않겠습니까?

작가 : 리링李零
ISBN:7-101-05134-0
출판일 : 2006년8월
출판사: 중화서국中华书局
가격:39위엔

책을 빌려주신 정용형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실 빌려줬다기 보다는 제가 그냥 덥썩 들고 왔;;;;)






임시 목차 : 쓰는대로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0. 들어가는 말(생략)
1. 손자병법은 어떤 책인가요?(생략)
2. 어떻게 손자병법을 읽어야 할까요?(생략)

3. 계획 计
3.0 계획 计
3.1 군사는 국가의 중대사다. - 리링의 손자병법
3.2. 전략요소 - 리링의 손자병법
3.3. 병법은 속임수이다. - 리링의 손자병법
3.4. 전쟁계획부터 시작하라. - 리링의 손자병법

4. 작전 作战
5. 공성전 谋攻
6. 군형 形
7. 병세 势
8. 허실 虚实
9. 군쟁 军争
10. 행군 行军
11. 지형 地形
12. 아홉가지 지역 九地
13. 아홉가지 변화 九变
14. 화공 火攻
15. 스파이 用间


작가 소개 : 리링 李零
1948년생. 산서성 무향현(山西武乡县)출신. 현 북경대학교 중문과 교수. 1977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에서 금문자료 정리 및 연구에 참가. 1979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과에 연구생으로 입학하여 쟝쩡랑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주동기(周铜器)연구를 함. 1982년 역사학석사로 졸업. 1982년부터 1982년까지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리시팀(澧西队)에서 고고학발굴작업을 함. 1982년부터 1985년 사이에는 중국사회과학원 농업경제연구소에서 선진시대 상지제도(上地制度)에 관한 연구를 함. 1985년에 북경대학교 중문과에서 강의를 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음. 리링은 고고학과 고문자 및 고문헌을 연구해왔으면 그 동안의 저술로는 《长沙子弹库战国楚帛书研究》、《放虎归山》、《中国方术(正)考》、《中国方术绩考》、《(孙子)古 本研究》、《吴孙子发微》、《郭店札简校读记》、《上博楚简三篇校读记》、《简帛文献兴学的术源流》、《花间一壶酒》등이 있음.


번역에 대한 이야기
본 내용은 원문에만 충실히 직역번역이 아닙니다. 리링선생님의 강의법은 편안하고 간단한 말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저도 원문의 내용을 최대한 한국인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허용한도 안에서 의역을 할 생각입니다.

본 내용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번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재미있는 글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덧글로 힘을 주지 않으시면 귀차니즘으로 번역 때려칠지 모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반응 없어서 때려친 것이 좀 있습니다.

본 내용은 원저작권은 리링 선생님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번역할 생각이 없기에 아직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추후 본 서적이 정식으로 출판이 되면 이 시리즈를 비공개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번역물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당 번역물을 가지고 가시려면 명확한 출처표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표기 예 : 리링의 손자병법이란?

본 내용은 Tianya 一个婚登员的酸甜苦辣登记史~~~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 중국은 한국과는 달리 혼인신고와 이혼신고등을 하는 혼인신고사무실이 따로 있습니다.

혼인신고 사무실이라고 하면 모두가 옛날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이 연상될거예요.

탁자에 나이가 있어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고,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나이가 있는 사람은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엄숙하게 물어보지요.

"신고를 하시러 오셨습니까?"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저도 그런 장면을 연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보통의 서비스업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답니다. 아직 몇 년 일 하지도 않았지만 온갖 사람들과 만나다보니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일을 도와준다는 생각들은 모두가 없어졌답니다. 이곳은 결코 기쁨만이 있지 않답니다. 온갖 희노애락이 모두 함께 있는 그런 곳이예요.

그럼 중국의 혼인신고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야기들을 시작할게요.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 솔직히 이 소스는 옴니부스식의 만화로 만들어도 상당히 재미있을 듯 합니다.
* 이 이야기들은 단편들이 모아져 있는 형식입니다. 글쓴이는 겸사겸사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알려주는데...사실 한국인들에게는 필요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단지 한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석박사 유학생은 중국인과의 결혼이 가능하지만, 대학교 유학생은 중국인과 국제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리고 결혼과정...심히 복잡합니다. 아는 형님이 결혼한 이야기를 정말 조금 들었는데도 머리가 아파지더군요.-_

* 원래는 "내가 욱이다"을 먼저 하려고 했느나....요즘 그쪽에 새로운 일이 있어서 좀 기다려 봐야될듯 합니다.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의 원작가가 나타나서 둘이서 한참 싸우는 중이라서...좀 기다려주셔요.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보기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 - 너 나 좋아했지?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LSY, 너 나 좋아했던건 아니지?"

나는 순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누가 좋아하냐!"와 같은 말 조차 꺼내지 못했다. 침묵은 긍정을 의미할 뿐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놀랐으나 점차 두려워졌다. 지금 말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를 돌렸다. 

그 날 밤의 모든 것을 꿈과 같았다. 그녀는 차를 몰아서 한 호텔로 갔다. 그리고 나를 끌어서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나는 계속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숫자만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 그녀는 나를 한 방에 데려가더니 문을 잠갔다.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침대로 가면서 옷을 벗었다.  나는 너무 몰라서 외쳤다.

"대체 머하는거야!"
"처음에는 강제로 키스를 했고, 그 다음에는 강간을 했잖아. 너가 원하는 것이 이거 아냐? 이런걸 하지 못해서 정신 빠진 것 같으면 지금 해. 그리고 그런 욕심을 가지고 설이와 결혼하지 마!"

소리는 온힘을 다하여 외쳤다. 나는 그 모든 부끄러운 일들이 바로 소리의 입에서 적나라하게 나오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같은 남자 정말 많이 봤어. 얻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최고잖아. 대체 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생각을 해봤어?"

소리는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냉담하면서도 매력이 있는 특별한 여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그녀만큼 나를 지적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욕을 했을까? 소리는 바닥에 주저 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지 어깨가 훤히 보이는 탑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는 구미호가 아냐.....구미호가 아니라고..."

가슴 아픈 것 자체가 후안무치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따. 그러나 그 순간에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소리는 거의 옷을 걸치지 않고 있었지만 어떠한 성적인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꼬옥 안으며 말했다.

"나도 아닌거 알아"

그리고 그녀를 무엇인가를 쏟아내듯이 말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유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둘은 매일 같이 붙어다니면서 친자매처럼 지냈다. 그런데 유이의 남자친구가 소리를 좋아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유이의 남자친구는 전학년을 대상으로 자신이 소리를 좋아한다고 선포를 하고 유이와 헤어져버렸다.

상처를 받은 유이는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보고 친구의 남자를 꼬득이는 구미호라고 외쳐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그녀의 이름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닌 구미호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친구을 잃고 왕따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내가 강간을 했을 때 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설이을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던 것이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나 좋아했던 적은 있어?"

그녀의 대답은 나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욱이는 처음 우리가 같이 밥을 먹을 때부터 너를 좋아햇어. 난.....내가 너는 이루어질 수 없어."

만약 욱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소리에게 고백을 했다면? 욱이가 소리의 유일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러나 만약은 없었다. 소리는 나를 밀어내고서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그러다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하냐? LSY. 이제 가. 결혼식 축의금은 보내도록 할게. 너와 설이가 미국에 오면 한 번 보자. 하지만 나는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거야. 잘 살아."

그녀는 조용히 담배를 피우다가 다시 말하였다.

"이제부터 나를 떠올리면서 몸과 마음을 모두 가졌었으니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천천히 잊어."

그녀는 다시 담배 한모금을 머금고서는 애매한 말을 덧붙였다.

"근데 너 약 안먹어도 되겠어? 설이가 행복했으면 하는데 말이야..."

넣자마자 사정했던 그 때를 생각하니 스스로도 웃음이 나와버렸다. 창피하면서도 왠지 화가 났다. 나는 그녀를 안으며 반쯤 농담으로 이야기했다.

"난 너를 6년이나 짝사랑했어. 나한테 한번 안겨보는 건 어떄?"

소리는 조용히 머리를 나의 가슴에 묻었다. 6년이 흘렀다. 지금 이 순간이 나와 가장 가까워진 때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랑과 미움들은 다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소리는 나의 가슴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새해을 맞이하는 휘황찬란한 등들을 보면서 기쁨과 상실감을 동시에 밀어올라왔다.


소리는 내 인생의 한 송이 꽃이 아니다. 나의 젊은 시절의 거대한 화원이다. 나는 그녀의 남자경험에서 거론할 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소리가 과연 나를 사랑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비록 그녀는 "마음과 몸을 모두 가졌었다."라고 하였고, 그 말에 행복했었다. 그러나 소리는 단지 내가 그녀를 잊게 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닐까? 물론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날 밤 이후 우리는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소리가 연구생이 되어 바빠졌기에 설이도 그녀와의 연락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였다.

09년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하였다.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를 하던 그 날 아버지는 나를 방에 불러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놀라게 하는 말을 하셨다.

"설이가 너를 좋아하는만큼 너가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한 남자나 하는 짓이다. 조금은 절제를 해"

나는 모든 사람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만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조상에게 무릎을 꿇고 영원히 가정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도록 하였다. 조금은 바보같았지만 나는 정말 엄숙하게 임하였다.

소리는 설이에게 국제우편으로 향수와 내복같은 것을 보내왔다. 포장은 예전에 소리가 사용하던 것 같았지만 냄새는 완전히 달랐다. 설이는 정말정말 좋아하였다. 몇 일 전에 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축의금을 보내고 싶으니 통장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든 알려고 하였고 어쩔 수 없이 통장번호를 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행복을 빌었고, 나는 예의상 고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소리가 전화를 끊은 것인지 아니면 접속이 끊어진 것인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영원히 우리들의 세계를 떠났다는 것은 알고 있다. 혼인과 연애는 분명히 다르다. 나의 부모님과 누나의 결혼 생활을 모두가 행복하기 그지 없다. 나도 설이에게 그러한 생활을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이가 불쌍하다고 했다. 사실 인생은 반드시 흑색이거나 백색이지는 않다. 대부분 그 둘이 모두 진흙처럼 엉켜있다. 그러나 물은 물이고 흙은 흙이다. 언제가는 이 둘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서 진흙물을 퍼올리고 만다. 자기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 글을 끝낼 시간이다. 전통에 따르면 결혼식 전날에는 신랑과 신부가 만날 수 없다. 설이는 지금 가족들과 친구들과 같이 호텔에 머물고 있고 내일 그녀를 맞이하러 가야된다. 오늘은 우리들의 마지막으로 솔로로 보내는 밤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들을 축복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을 더욱 더 축복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하지 못한 말을 하겠다. 
소리야. 널 사랑해. 너가 이것을 볼 것이라는 것을 알아.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날것 같죠? 그런데 아닙니다. 지금 Tianya는 난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설이라며 나선 사람부터 온갖 등장인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학교와 자신의 아버지가 감찰관인 것을 밝힌 것 부터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정도의 정보면 사람 하나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실제 인물이라고 나서는 사람중에 스스로를 "욱이"라고 밝히는 사람의 내용은 오래 인터넷에서 구른 저의 판단으로는 사실인듯 합니다.

번역할거냐고요?....사실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는 연재를 시작하기전에 모두 번역해두었습니다. 그냥 매일 매일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하지만 그 다음것은 아직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반응에 따라서 Tianya을 달구고 있는 또다른 핫이슈 "엽기적인 그녀 적수를 만나다.” 나 예전에 나왔던 것이지만 "나는 혼인신고 접수인"을 할까도 생각중입니다. 그래서...

자! 선택!!! -  처음 3명의 의견만으로 결정합니다^^ (덧글이 고파요-0-)
1) 내가 바로 욱이다!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을 깨부수는 글.
2) 엽기적인 그녀 적수를 만나다 - tianya 주간 1위에 빗나는 이야기.
3) 나는 혼인신고 접수인 - 혼인신고 관리소에서 벌어지는 희노애락의 실화.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보기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 - 마법에 빠지다.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돌아오는 밤기차에서 모두들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 소리는 나와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욱이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어폰을 빼서 무슨 노래를 듣나 들어보았다. 타오저(陶喆)의 "황량한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다.[각주:1]"이라는 가사의 노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마법에 빠져버렸다. 그 날 밤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나의 왼쪽에는 설이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소리가 잇었다. 그러나 설이는 나에게 기대어 있었고, 소리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영원히 넘지 못할 장벽이 있었다.

창샤에 돌아왔을 때 소리는 기차역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검은 색의 치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비록 발톱에 매니큐어는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그녀가 마중나온 차를 향해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소년의 꿈에서 깨어났다.

저녁에 마지막 모임을 하였을 때 소리는 참석하지 않았다. 얼큰이는 술에 취해서 대학교 4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한풀이를 하였다. 나는 녀석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번 깨닭게 되었다. 직장도 찾았고 마누라도 찾았다. 그러나 마음은 계속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소리와 대학교 일학년 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녀는 모자를 벗으며 나의 인생에 들어왔고 그녀는 천천히 나의 인생에서 멀어져 갔다. 우리가 그 동안 한 말은 다 합쳐도 100마디가 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그 중에 반 이상은 싸움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장 친밀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단 한 순간도 가져 본 적이 없다. 이것이 나의 4년동안의 사랑인가?


졸업 후 서로 일이 바빠서 친구들과 거의 연락을 하지 못하였다.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전화기를 붙잡고 살지는 않는다. 다만 가끔 메일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설이는 욱이와 소리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잇었다. 설이는 가끔 소리가 미국에서 남자친구도 사귀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소리가 좋아하는 조니뎁보다 잘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소리집이 미국으로 이민을 갈 예정이어서 아마 귀국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리는 나의 평범한 생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었다. 나는 꿈에서 자주 그녀를 만났다. 자욱한 안개에 쌓인 욕실에서 하얀 손이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언제나 그녀는 나의 정복대상이었다. 그러나 한 번은 아름다운 호수가 옆의 나무에서 나의 품에 안겨 있었따. 그녀는 무섭다고 하였다. 왜 무섭냐고 해도 계속 떨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단지 그녀를 꼬옥 끌어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배에게는 눈문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08년 구정이었다. 대학교 동기들과 창샤에서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나 비싸게만 느껴졌던 고급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소리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해외에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그녀는 더욱 성숙하게 보였다. 머리에는 살짝 웨이브를 주었으며 어깨에는 솔을 걸치고 자신의 눈보다 더 큰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그녀가 나타나자 모두들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녀 역시 흥분해 있는듯 했다. 그녀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눈가가 젖어들었다. 나의 마음 속에서는 한가지 생각만으로 덮여 있었다.

"그녀가 돌아왔다!"

소리는 이미 예전과는 달랐다. 그녀는 돌아다니면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나에게 돌아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결혼한다며?"
"너는?"
"미국에서 내 나이면 아직 어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와 건배를 하고는 욱이에게 돌아갔다.그러나 나의 눈은 계속 소리를 따라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미국 재미있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난 캘리포니아에 있어서 별 재미있는 것이 없어"

캘리포니아는 햇빛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소리는 아직도 하얀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너 백인하고 비슷하지 않아?"

그녀는 잠시 멈칫 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비부색이야 비슷하지. 그런데 다른 곳이 좀 많이 달라."

그녀가 말을 할 때 어깨에 있는 솔이 미묘하게 흔들렸기에 매우 섹시하였다.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였다. 그러나 곧 그녀의 몸매가 떠올랐다.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녀의 알몸이 다시 떠올라서 순간 숨이 꽉 막혀 버렸다.


식사가 끝나자 창샤가 집인 설이는 돌아가려고 하였다. 원래는 같이 돌아가려고 했으나 얼큰이가 나를 잡고 놔주지를 않았기에 설이는 혼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근처의 노래방에 갔다. 소리도 욱이도 같이 왔다. 그런데 얼큰이 녀석이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곧 우리의 방은 토사물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도무지 그 역겨운 냄새를 참을 수 없어서 곧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소리는 운전을 해서 우리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마지막에는 나와 소리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설이의 고향집 주소를 말해주었다. 원래라면 곧 도착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차사고가 나서 움직이지 못했고 우리는 더욱더 어색해져만 갔다.

"그냥 내려서 걸어갈게."

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가 내리려고 하자 나를 말렸다.

"됐어. 다른 길로 가지 머..."

그녀는 다른 길로 돌아가면서 언제 설이와 결혼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직 멀었지 머....중국의 결혼 연령은 국제기준하고 그렇게 다를 것 같아?"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충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LSY, 너 나 좋아했던건 아니지?"

나는 순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누가 좋아하냐!"와 같은 말 조차 꺼내지 못했다. 침묵은 긍정을 의미할 뿐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놀랐으나 점차 두려워졌다. 지금 말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를 돌렸다.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점차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다음이 마지막!


  1. 荒芜的心不要别人懂 她是我不想醒来的梦 [본문으로]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보기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 - 강간인가?!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그녀는 나를 욕하고 나를 밀고 나를 때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미쳐있었다. 나는 계속 벗겼다. 나의 옷과 그녀의 옷 모두를 벗겼다. 소리의 힘은 계속 약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소리를 치면서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속에서는 그녀를 안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차 있었다.

정말 미쳤었던것 같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누나까지 있었으니 강간에 거부감이 얼마나 강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명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인간이지만 
여자에 대해서는 자상하게 대했다. 비록 말로는 좀 심할지 모르지만 행동으로는 결코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런 일은 내 평생의 단 한번, 그리고 마지막이었다[각주:1].

이 글을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남자라면 처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몸을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인지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첫경험은 고등학교때의 첫사랑이었다. 그 다음은 설이였다. 사실 설이의 몸매는 뭇 남성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또 나와 얼큰이는 자주 "성교육 교재"을 나누어 보았으니 비록 21살에 불과하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 소리를 눕히고 완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새하얗게 눈부시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었다. 여러분은 어떤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리는 바로 내가 꿈꾸던 그런 타입의 여자였다. 일본 AV에 나오는 여자따위는 상대도 되지 못하였다. 문제는 너무나 좋았고, 그녀의 그곳은 사막과 같이 매말라 있었기에 삽입을 하자마자 싸버렸다.

나는 흥분되고 부끄러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했다. 소리는 이 때 나를 노려보며 따귀를 날렸다.  그 당시 얼마나 민망하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소리가 그 당시에 신고를 하였다면 나는 지금 차가운 방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는 옷을 입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때 현관문이 울렸다. 나는 대충 침대를 정리하고 서둘러 옷을 입고서 문을 열었다. 욱이였다. 욱이는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머 나쁜짓이라도 했냐? 소리는 어디 가고 너 혼자 땀을 이렇게 흘리고 있냐?"
"땀은 무슨 땀이야. 아까 창문을 닫다가 비가 들이쳤을 뿐이야."
"소리는? 머야? 우리 공주님은 아직도 씻고 있는거야?"

나는 적당히 그녀를 말을 받았을 뿐이다. 소리가 나와서 어떤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았다. 그러나 소리는 평소와 같이 냉담하게 물건을 챙기고 다시 머리를 말리고서는 말했다.

"이제 가자"

욱이는 게임 좀 하다가 가자면서 30분정도만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리는 아무 말 없이 우산을 들고 나가버렸다. 욱이는 짜증을 내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였다.

"신경 쓰지마. 공주님이 원래 그렇지 머~"

그 당시에 소리의 남자친구는 우리보다 한 학년이 높은 킹카였다. 집도 챵사(长沙)에서 상당히 유명한 실력가였다. 나는 비굴하고 한심하게도 소리가 남자친구에게 나를 죽여버리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가슴에 모든 것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나는 설이와 한바탕 크게 싸우고 헤어지려고 했었다. 스스로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도무지 설이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이는 도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따져 물었다.

"나는 아마 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이니야."

한심하게도 이런 모호한 말을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설이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었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나에게 의지하는 것 같았지만, 한 번 결정한 일은 결코 바꾸지 않았다. 또한 게임을 하거나 땡땡이를 치는 나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하였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녀와 나는 싸움을 벌이고는 하였다. 물론 그녀가 나를 위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가끔은 지치고는 하였다. 사실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나는 개자식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설이를 볼 낯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너는 첫남자야. 책임을 다하길 바래."

그제서야 설이나 나를 위해서 한 모든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닭았다.  소리는 언제까지나 나의 것이 될 수 없었고 나는 설이를 평생 책임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내가 좀 더 솔직했더라면 상황이 조금은 변했을까? 최소한 소리를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설사 거절을 당했더라도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심지어 소리까지 다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한심한 자조심때문에 그녀의 매력에 솔직하게 굴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어느사이에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직장을 찾았다. 설이는 챵샤(长沙)인이었지만 나를 위해서 나의 고향으로 와서 직장을 찾았고, 나는 그녀를 부모님에게 인사시켰다. 부모님들은 그녀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던 날들 속에 욱이로부터 소리가 출국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이나 캐나다로 갈 것 같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비록 오래전부터 소리가 나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불안하였다.

6월이 되자 졸업생들은 학교로 돌아와서 졸업수속을 하였다. 나는 굳이 사무실에서 죽치면서 일을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그녀를 보려고 했다. 그녀는 아직 서류에 싸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후 늦게서야 소리가 왔다. 그날 그녀가 입은 옷은 더운 여름에 딱 어울리는 청색과 백색으로 이루어진 원피스였다. 청순하면서도 도도하였고, 원피스는 매우 짦아서 하얀 두 다리가 모두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면서 조금 놀라는 듯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거칠게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 대학 4년 동안 한번도 약속 시간에 온 적이 있기는 하냐?"

소리는 아무말 없이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는 듯이 가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한 서류를 건내주면서 참고하라고 하였다. 
소리는 서류를 다 작성하고 갔다.  그녀는 그 동안 단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졸업사진을 찍고 우리 반은 졸업여행을 계획하였다. 원래 소리는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욱이와 설이의 협박과 회유에 밀려서 같이 가게 되었다. 졸업여행은 즐겁고 슬펐다. 가는 기차에서는 모두가 크게 떠들고 웃었지만, 돌아오는 기차에서 모든 여학생들은 울고 있었고, 남학생들은 씁쓸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돌아오는 밤기차에서 모두들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 소리는 나와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욱이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어폰을 빼서 무슨 노래를 듣나 들어보았다. 타오저(陶喆)의 "황량한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다."[각주:2]이라는 가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마법에 빠져버렸다. 그 날 밤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나의 왼쪽에는 설이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소리가 잇었다. 그러나 설이는 나에게 기대어 있었고, 소리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영원히 넘지 못할 장벽이 있었다.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전체글에서 논란이 되는 가장 큰 부분들이라고나 할까? 이것만큼 논란이 되는 곳이 있기는 하다만 강간이라는 것이 워낙에 강력하기에....

  1. 이건 본인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남자에게는 단 한번이지만, 여자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씨발아-_- [본문으로]
  2. 荒芜的心不要别人懂 她是我不想醒来的梦 [본문으로]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보기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 -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욱이는 소리가 뒷골목의 고기롤이 먹고 싶다며 갑자기 비 속을 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 이렇게 흠뻑 젖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분명 만화속에 나오는 어이없는 표정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소리는 크게 웃이며 말했다.

"아~~ 나 정말 바보같아~"

욱이는 눈을 부릅뜨고서는 소리에게 온갖 잔소리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여자는 그렇게 생각나는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먹고 싶다고 비속에 달려가는 건 머냐고! 이런 철부지 공주님 같으니라고!!"

욱이와 설이는 자주 그녀를 철부지 공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겨울 비를 잔득 맞은 그녀는 얼굴이 종이처럼 하얗다 못해 새파랐게 질려 있었다.

"빨리 돌아가서 목욕이나 해. 아님 감기 걸리겠네."

하지만 욱이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하는데....학교 목욕탕은 이미 닫았어....니네 집 욕탕 좀 사용해도 되겠지?"

나는 그녀를 욕실로 안내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욱이는 소리의 말대로 욱이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설이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내가 하루 종일 오락을 하는 것을 알고 짜증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욱이는 별 수 없이 소리와 설이를 욕하며 옷을 가지러 갔다. 그녀는 십분만에 물건들을 챙겨서 돌아왔다. 욱이는 아직도 꿍시렁 거리며 온갖 병들을 욕실에 배달하였다. 설이가 목욕할 때도 온갖 물건들이 있어서 이미 익숙했지만 소리는 어떤 제품으로 목욕을 하는지 그 냄새가 객실로 흘러나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욱이와 같이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돌연 과사에서 전화가 왔다. 욱이는 당시 반장이었는데 과사에서 무슨 말을 했는데 곧장 일어나서 나가려는 것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놔두고 가도 괜찮아?"
"우리 소리를 너무 괴롭히지 마. 제발 좀 친절하게 대해줘라."

욱이는 나의 마음이 떨리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채 일을 처리하러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더욱 더 어쩔지 몰라하고 있었다. 억지로 게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어이없게 죽을 뿐이었다.

소리는 30분쯤 샤워를 하더니 욱이에게 옷을 가져와 달라고 말하였다. 나는 옷이 담긴 가방을 들고 욕실에 밀어넣었다. 그 이후 나는 언제나 잠들기 전에 그 당시 문을 열고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고는 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환상일 뿐이며 청춘의 추억일 뿐이었다.

소리는 옷을 모두 갖추어 입고 나왔다.

"욱이는 어디 갔어?"

나는 그녀를 보지 못하며 대답했다.

"과사에서 불러서 갔어. 기다려봐"

소리는 드라이기를 꺼내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때 그녀는 단발머리였기에 몇 번 빗질을 하지 않고서는 쇼파에 적당이 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발가락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병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예쁜 발을 그 동안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소리는 정말 기묘했다.그녀는 맑은 피부에 동안이었기에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남자들이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얼큰이는 그녀의 그런 매력을 "갇혀있는 천박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녀는 천박한 것은 아니었다. 천박하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유혹과도 같은 것이었다.

옷을 입는 것도 타른 사람과 달랐다. 지금 유럽에서 디자인일을 하고 있는 누나가 있었기에 어려서부터 여자들이 얼마나 옷에 신경을 쓰고 어떻게 스타일을 만드는지 잘 알고 잇었다. 소리는 톡톡 튀는 옷을 결코 입지 않았지만 언제나 특별했다. 그녀는 체육시간 외에는 거의 하이힐을 신었다. 그러나 체육시간에 신는 운동화마져 무엇인가 특별하였다. 한번은 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었었다. 그 슬리퍼는 엄지와 검지사이로 고정끈이 지나가며 다른 부분은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새하얀 발톱에 칠해진 빨간 매니큐어는 정말 나의 눈을 한참이나 잡아 끌었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간듯 하다.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좀 바보같은 이야기였지만 이런 마음을 알아주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소리는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서는 양말과 신발을 신었다[각주:1]. 그리고는 조용히 TV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냄새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 둘이 있다는 것 때문인지 매우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몇 걸음을 걷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물 마실래?"

당시의 자기 자신도 알아차릴 정도로 목소리가 매우 떨리고 있었다.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긴장했던 것일까? 어찌되었든 매우 어색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
더니 대답하였다.

"왜 그래?"
"아니 아니것도 아냐. 그냥...."

나는 침실로 가서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하였다. 사실 하얀것은 종이였고 검은 것은 글이었다. 그렇기에 소리가 하이힐 소리가 침실로 다가왔을 때 긴장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손을 모으고 문가에 섰다.

"LSY. 너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어. 나도 불편하고 말야. 우산을 빌려주면 지금 갈게."

어떤 말을 해야될지 몰랐다. 정말 불쾌했다. 나는 그녀때문에 3년이나 힘들었는데 그녀는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 나 너 싫어. 어쩌라고? 이런 씨발. 너가 먼데 욱이랑 사귀라 마라야?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왜? 내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해보시지?"

소리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이었지만 입가는 조금 떨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싫은 거였어? 그럼 너는? 욱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매일 죽이 맞아서 같이 있는건데! 지금 장난쳐? 욱이가 겨우 너에 대한 것을 정리하려고 하니 설이랑 사겨? 대체 
머냐고! 욱이가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아?"

"너랑 먼 상관인데? 욱이가 니 조상이야 머야?"

"당시에 난 너가 욱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를 욱이와 연결시키려고 했고, 그런데 그 날 저녁에는 갑자기 키스를 하면서 날 가지고 놀았잖아. 그 때서야 너가 오해한 걸 안거야 . 넌 자기 자신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 안해?"

소리는 매우 화를 내며 점점 목소리가 커져갔다. 나도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서 미쳐버리는듯 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욱이를 좋아하고, 욱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고서는 자기 자신은 상관 없다는 듯이 저 멀리 있었다.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욕정이었을까? 나는 문가로 달려가서 소리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침대에 내던져 버렸다.

"그래. 제대로 가지고 놀아주지."

이따위 소리를 해대면서 모든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하는 행동을 시작하였다. 소리는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마른 체형이었다. 체육특기생이었던 나의 힘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를 욕하고 나를 밀고 나를 때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미쳐있었다. 나는 계속 벗겼다. 나의 옷과 그녀의 옷 모두를 벗겼다. 소리의 힘은 계속 약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소리를 치면서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속에서는 그녀를 안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차 있었다.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이제 터집니다.......끊기 신공 소리를 들으려나;;; 억울하면 중국어 배우셔요. 쿨럭;;;;
...그대로 별 반응 없는 이 시리즈...흑.ㅠㅠ


  1. 중국에서는 집안에서도 보통 신발을 신습니다. [본문으로]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보기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 - 키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뭐?"
"개자식아! 연애 할거면 나랑 욱이 중에서 고르라고 했잖아! 잊어버린거야?!"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그녀가 감히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단 말인가!

"니가 무슨 상관인데?! 자기는 남자친구를 만들었으면서 무슨 상관인데?"

소리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침묵 속에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더욱 설이와 같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설이는 나를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설이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는만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영원히 너와 함께 할게. 이래도 되겠지?"
"이미 충분해"

설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밝게 말했다.  나의 이런 태도에 설이는 많이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들은 그 당시에는 왜 하는 것일까?

그 다음의 진행은 매우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설이와 사귄 이후로 욱이는 나와 멀어졌다.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소리와 리도 헤어졌다. 왜 헤어졌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리의 말 속에서 소리가 아직도 처녀라는 사실만은 알게 되었다.  쓸데 없이 궁금해하고 있다.  그리고 소리와 욱이는 다시 레즈비언처럼 생각될 정도로 같이 붙어 다녔다.  한번은 설이에게 진지하게 물어봤지만, 욱이는 분명히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했다.

바보스러운 나는 대학교 3학년이 되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원래 욱이는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소리는 욱이와 나를 엮어주기 위해서 그런 고백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리와 갑작스럽게 사귄 것 역시 내가 욱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우정을 그렇게나 중요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 우정의 희생품이 되었고 좌절했고 허무했고 쓸쓸했다. 사실 다 개소리이다. 나는 화가 났을 뿐이다. 대학교 3학년때까지 소리는 두 명의 남친을 사귀었었다. 두 명 모두 학교내에서는 유명인이었기에 구체적인 사실을 잘 몰랐지만, 온갖 가쉽들이 떠돌아 다녔다.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기숙사 이동이 있었다. 그 동안 6명이서 한 방을 사용하였는데, 이제는 4명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이와 욱이 그리고 소리가 같은 방에 배정을 받았다.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 베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욱이는 다시 나의 좋은 형제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녀도 시간이 지나자 그 당시에 얼마나 유치했었는지 깨닭았던 것 같다. 소리는 여전히 장식물처럼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우리들과는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다. 나는 설이에게 몇 번이나 욱이만 데리고 오라고  당부를 하였다.

"소리가 오면 분위기 다 망치잖아. 매일 그런 무표정한 얼굴을 하면 어쩌라고. 다음에는 데리고 오지 마라."
"대체 누가 분위기를 망친다는 거야. 소리 상당히 사교적이고 친절해. 단지 잘 표현을 못할 뿐이야. 나도 룸매가 아닐 때에는 공주님같아서 싫었는데, 같이 살아보니까 상당히 귀여워. 나를 위해서 그런 이야기 그만 하면 안돼?"

지금까지도 설이는 내가 소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욱이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매번 소리와 같이 있게 되면 그녀들은 나를 다독이며 같이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소리에게는 욱이와 설이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그래서 더욱 더 욱이와 설이가 대체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옛말처럼 소녀의 마음은 절대 추측해서는 안된다. 추측하면 할 수록 그녀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리에게는 수 많은 의문들이 보였고, 그것을 알아낼 수 없었기에 더욱 더 그
녀를 알고 싶었다.


대학교 3학년 2학기에 학교 밖에 집을 구해서 살게 되었다. 설이와 동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룸메이트의 코골이에 항복했을 뿐이었다. 대학교 주변은 거의 대부분이 고시원들이었다.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 방 두개에 거실 하나가 있는 집을 빌렸다[각주:1].  설이는 보수적인 여자여서 이미 깊은 관계였지만 어떻게 말해도 동거는 반대하였다. 욱이와 설이는 자주 우리집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목욕을 하였다[각주:2]. 그러나 소리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한번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물어봤다.

"너희랑 같이 붙어 다니는 기생충은?"

욱이와 설이는 애매한 미소를 띄우며 연애하러 갔다고 했다. 나는 내가 소리를 보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 잘 몰랐다. 매번 그녀가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났지만, 그녀가 없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소리는 외지인이었다 그녀의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몰랐지만 집에 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학이 끝나면 벤츠을 타고 학교로 돌아왔던 것이다. 또 그녀에게는 독특한 부자집딸의 기질이 있었다.

설이에 말에 따르면 우리 학교는 여자목욕탕을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심지어 가끔 겨울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듣자 소리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떠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았다. 사실 매번 욱이와 설이가 온갖 짐보따리를 들고 목욕과 빨래를 하러 올 때마다 다음에는 소리를 데려 오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해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하늘이 깨진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을 하다가 너무 배고파서 간단하게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겨울인데다 비까지 내려서 너무나 추웠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욱이와 소리가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 욱이는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소리는 온몸이 푹 적어 있었다. 나는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욱이는 소리가 뒷골목의 고기롤이 먹고 싶다며 갑자기 비 속을 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 이렇게 흠뻑 젖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분명 만화속에 나오는 어이없는 표정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소리는 크게 웃이며 말했다.

"아~~ 나 정말 바보같아~"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별거 없죠? ^^::: 이제부터 제대로 된 사건이 벌어집니다.....라도 해도....ㅠㅠ

  1. 여기서 남자주인공의 집이 어느 정도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2. 중국의 경우 아직 학교내의 목욕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불편하다. [본문으로]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보기 : 너을 잊고 내일 결혼한다 - 우리들의 그 때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나한테 한가지만 약속해줄래?"
"먼데?"
"만약 연애를 하게 되면 나와 욱이 중에서 골라줘."

당시 그녀는 긴 생머리에 흰 옷을 입고 한 손으로는 머리 끝을 매만지면서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순결하면서 천했다. 나는 당혹삼을 숨기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멍하다고 느겼지만 나의 머리는 이미 기절상태였다.

직감적으로 소리가 나를 좋아한다고 느꼈다. 그녀의 말들은 변형된 고백처럼 다가왔다. 욱이는 좋은 형제일 뿐이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고르겠는가?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의 앞에서 결코 자신의 병신같은 직감을 믿어서는 안된다. 그 결과는 심히 처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뒤에 일어날 일들을 몰랐던 나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식당이 아니었으면 당장 그녀를 안았을 것이다.  밥을 다 먹은 뒤에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나는 이미 행복에 푹 잠겨 있었다. 가정 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기쁘고 슬픔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날만은 룸메이트들은 모두 발정한 돼지같다고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욱이가 중간에 전화를 했을 때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매우 자상하게 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가 그녀와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걱정에 조금은 일찍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스스럼 없이 약속 장소로 나왔고, 행동도 평소와 같이 냉담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가 부끄러워 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을 했다. 어차피 그녀가 냉담한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그 날 저녁의 달빛은 오늘과 같이 춥고 몽롱하였다. 우리는 학교식당에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하였다. 그 당시에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나를 보며 웃은 것만 떠오를 뿐이다.  사실 소리는 특별한 미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만의 세가지 보물이 있었다.

여자에 대해서 가장 많은 수련을 한 원숭이녀석의 녀석에 따르면 우선 그녀의 피부가 좋다고 한다. 강남여자 중에 피부미인들은 많으나[각주:1], 그녀의 하얗고 부드럽게 영롱한 피부는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한다. 그리고 얼굴도 동글동글 조막만하며 그 위의 조그마한 눈코입이 매우 예쁘게 보였다. 원숭이 녀석의 표현에 따르면 상대적 비례가 선명하다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치아가 좋다. 하얗고 예쁜 치아는 그녀의 웃음을 달콤하게 바꾸어 놓는다.

갑자기 그녀의 외모를 이야기한 것은 단지 외모만으로 그녀를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당시에 나는 19살이었고 깊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밝혔지만 정작 용기는 없었다. 사실 그 당시의 대화가 생각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하면 그녀와 키스를 해서 사귀는 것을 못 박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하나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키스가 그녀가 내 것이라는 증명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그녀와 함께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는 언제나처럼 냉담하게 말했다.

"춥다. 돌아가자."

그러나 나의 귀에는 이것조차 애교로 들렸다. 나는 누가 있던 말던 그녀를 낚아채서 꼬옥 안고는 키스를 하였다. 소녀들이 보는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종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키스를 하고 눈을 떳을 때 그녀는 너무나 평온하였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 입술을 딱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가버렸다. 나는 바보처럼 그녀도 분명히 좋은데 부끄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기숙사로 달려가 큰 소리로 나의 것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30분 정도 되었을 때 리가 돌아왔다. 나는 침대에서 번쩍 뛰어오르며 외쳤다.

"형제여~ 좋은 일을 알려주마~!"
"나도 좋은 일이 있는데!!"

리는 나보다 더욱 흥분된 상태였다.

"소리가 나랑 사귀기로 했어!"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벼락에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리에게 축하한다고 할 때도 공허한 눈으로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몇 시간만에 천하제일 바보천치가 되었다. 다행히도 나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리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마 말하지 않았던듯 싶다. 당시에 나는 그녀를 미워하며 꽁짜로 키스를 하지 않았냐고 자위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욱이는 솔로가 되었다. 욱이는 소리와 리의 번개에 콩 구워먹는듯한 연예가 불만이어서 하루 종일 나에게 짜증을 내었다. 어느 날 결국 짜증을 내고서야 더 이상 그 둘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나와 리는 여전히 좋은 친구였다.  다만 남자기숙사의 여성토론회를 주도하면서 소리와 리의 진도에 대해서 은근히 조사를 했다. 그러나 리의 입은 무거웠기에 별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조금 실망을 하며 동시에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하였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듣게 되면 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얼큰이는 사귀던 외국어과 여학생과 헤어지고 다음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처음에 지목했던 바로 지금 나의 약혼자인 설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얼큰이는 화를 내며 나에게 밥을 쏘라고 했다. 알고보니 설이가 나를 좋아하여서 차였다고 했다.

설이와는 군사훈련할 때 본 것 이외에는 특별히 주의하지 않았기에 매우 이상한 기분이 들었따. 그 다음날 수업을 들으면서 그녀을 살펴봤다. 군사훈련을 한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그때만큼 피부가 검지 않았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며 피하였다.

그날도 같이 식사를 한 욱이에게 설이와 연애를 할 것같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날 밤 소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하는 거야?"

나는 생각하지 못한 그녀의 전화에 기쁘다고 했지만 화도 났다. 그러나 소리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어버린거야?"
"뭐?"
"개자식아! 연애 할거면 나랑 욱이 중에서 고르라고 했잖아! 잊어버린거야?!"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무시당하고 있어...흑.....필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알지만..이렇게까지 무시을..ㅠㅠ
  1. 실제로 중국강남는 피부미인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중국의 기후를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북방은 너무나 건조해서 피부미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강남은 주변에 강이 많아서 습기가 많기에 피부가 좋습니다. [본문으로]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전편 보기 : [번역 프로젝트/중국인 그리고 이야기] - 너를 잊고 내일 결혼한다. - 시작

이해를 돕기 위한 등장인물 간략 소개 :
LSY(남) : 남자주인공.
소리(여) : LSY가 마음 속에 담아둔 여인.
욱이(여) : 친한 여자친구
설이(여) : 7년간 사귀고 내일 결혼하는 부인
얼큰이(남) : 남자주인공과 베스트이며 룸메이트.
리(남) : 얼큰이에 이어서 두번째 베스트이자 룸메이트.

2002년 나는 후베이의 한 대학교의 경제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도 누구나 하는 그리 아프지도 않고 그리 행복하지도 않은 연애를 했었다. 호르몬 과다의 대학 이전에 겪은 조그마한 에티파이져라고 할 수 있다.

대학교시절 베스트는 얼큰이였다. 얼큰이는 처음 같은 방으로 배정 받은 그 날 부터 금방 가까워졌다[각주:1]. 사실 남자 사이의 우정은 같이 땀을 흘리고 담배 한 대면 피우면 충분하다. 그리고 얼큰이는 군사훈련[각주:2]을 하는 내내 여학생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얼큰이는 "흠이 있는 보석들"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반은 특별한 미녀는 없었다. 그러나 욕지기가 나오는 외모도 없어서 그럭저럭 평균은 한다고 할 수 있었다.  얼큰이는 흠이 있는 보석들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보석을 목표로 삼았다. 그녀가 바로 지금 나의 약혼자인 설이다. 얼큰이에 의해 나도 설이를 관찰했다. 그녀는 우리반 여자 중에서 가장 키가 컸을 뿐만이 아니라 눈도 컸다. 그러나 피부가 너무 검었기 때문에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

군사훈련 첫날은 두 명의 여학생이 쓰러지는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얼큰이는 두 명의 여학생을 데리고 왔다. 한명은 임시반장 욱이였다. 다른 한 명은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는 사투리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욱이는 후베이 사람으로 어느 반에나 있는 활발하고 외향적이며 남자와 같은 여자였다.

배식을 받고 돌아와 보니 그 여학생은 아직도 통화중이었다. 그러나 이미 모자를 벗고 조그마한 얼굴과 새하얀 피부에 군사훈련으로 붉어진 뺨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 그녀를 좋아한 것 같다.

욱이는 그녀를 소리라고 불렀다. 나와 얼큰이는 남성의 본능으로 그녀와 친근한 척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우리를 투명 인간 취급을 할 뿐이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여도 간단하게 대답할 뿐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오직 욱이와 대화를 할 뿐이었다. 나와 얼큰이는 서로를 보며 "이런 씨발. 니가 먼데 이래."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자 얼큰이는 욱이의 식기를 대신 치워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소리는 무시하였다. 고의로 그녀를 냉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연한 듯이 자신의 식기를 나의 식판에 올려놓고서는 욱이와 같이 가버렸다. 정말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그녀를 공주병으로 확정지었다.

다만 우리는 소리와 같은 사람과 욱이가 왜 친구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욱이는 소리는 단지 우한에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에 남자와 멀리할 뿐이지 자신과는 잘 지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속으로 씨발을 외치고 있었다. 어쩐지 어떻게 해도 작업이 안되더라니 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남자친구와는 예전에 헤어졌다고 한다. 단지 연애를 하지 않으려는 방패막이었다.

욱이와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욱이와 소리는 마치 샴쌍둥이와 같이 언제나 함께였다. 그렇기에 우리 넷은 자주 같이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소리는 매번 무표정한 얼굴로 따라와서는 욱이와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비록 우리는 4명이 만나고 있지만 사실 3명이서 만나고 있었다. 소리는 단지 장식품이었을 뿐이었다.

비극적인 것은 얼큰이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시 여러 군데에 미끼를 던져 놓은 것이 효과가 있었다. 그는 외국어과 여학생을 낚았다.  얼큰이의 표현에 따르면 몸매가 작살이었다. 그렇게 우리 4인조는 3인조가 되었다. 그리고 소리는 어차피 장식품이었기에 사실상 나와 욱이만의 세계가 되었다. 다만 남자같은 욱이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고, 야한 농담도 스스럼 없이 주고 받았다.  그리고 욱이와 내가 야한 농담을 주고 받고 있으면 소리는 옆에서 조금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녀도 청순한 소녀는 아닐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다. 주말이어서 집에 돌아갔던 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결에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소리 점심 꼭 챙겨야돼."
"내가 너희들 가정부냐? 안 챙겨"

그러나 욱이의 채찍과 당근을 동원한 설득에 넘어갔기에 약속하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 뿐만이 아니라 반의 남학생들은 그녀가 너무 오만하고 차갑다며 싫어하였다. 그러나 매일 저녁 숙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비록 좋은 말들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관심을 받고 있었다. 자신이 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며 분명히 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 심리였다.

비록 약속을 했지만 소리의 평소 행동을 보아서는 분명히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도 거절당할 것 같았다. 후회가 물 밀듯이 밀려왔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밥 먹었어?"

예상 밖으로 그녀는 빠르게 답장을 보내왔다.

"이미 먹었어."

그 문자를 보며 나는 실망감과 편암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아직 그녀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넌 밥 먹었어? 어디야?"

나는 그녀가 어떤 덫을 놓는지도 모르고 우리들이 자주 가던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식사가 나올 때 쯤에야 도착을 했다. 이 때가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졌던 때였다. 나는 최대한 호방하게 물어봤다.

"먹을 꺼야? 말꺼야?"
"이미 먹었다니까."
"그럼 왜 왔냐?"
"우리 언제나 같이 밥 먹었잖아?"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하며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비록 욱이를 통해서 담배를 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근데 너 이미 밥 먹었다며?"
"응. 그냥 너 밥 먹을 때 같이 있어주는거야."

나는 이 4차원적인 생각에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조용히 밥을 먹다가 이상한 것이 생각나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너 혼자 밥 먹은 거야?"
"리가 사줬어."

리는 농구를 잘하는 또 다른 룸메이트다[각주:3]. 얼큰이 다음으로 베스트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다. 우리가 방에서 소리에 대해서 이 야기를 나눌 때도 말을 아끼더니 원래 그녀에게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디서 먹었어?"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며 별 것 아니라는듯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소리는 무겁지도 가볍기도 않은 어조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넌 왜 여자를 안 사겨?"

지금까지도 그 날의 대화는 모두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녀와 이미 3개월을 알고 지냈지만 그 날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한 날이었기 대문이다. 무엇보다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다정한 태도와 이런 애매모호한 말들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의 표정은 얼마나 멍하고 바보스러웠을까?

"그런건 왜 물어보냐?"
"나한테 한가지만 약속해줄래?"
"먼데?"
"만약 연애를 하게 되면 나와 욱이 중에서 골라줘."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 발번역을 다 끝냈습니다. 하루에 약 2500자내외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전체 자수는 17000자정도 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번역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그렇기에 Tian에서도 난리지요.

* Sen님이 다른 일로 언급을 하셔서야 떠올랐는데 사실 가쉽 자체는 Tianya 보다 MOP을 1순위로 꼽습니다. 문제는 전 MOP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쪽에 자주 가지 않습니다. 고로 그쪽 이야기는 별로 번역할 생각은 일단 없습니다. 사실 그쪽이 더 간략하고 번역하기 쉽고...무엇보다 화제성은 훨씬 더 강하기는 하지만....그래도 MOP이 싫은걸 어쩌겠습니까?

  1. 중국의 경우 대학교는 기본적으로 기숙사제입니다. [본문으로]
  2. 중국은 한국과 같은 의무병제는 아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일정기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한다. 유학생은 면제다. [본문으로]
  3. 글의 뒤쪽에서 언급되지만 중국의 기숙사는 보통 4명에서 6명이 같은 방을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본 내용은 Tianya 后天要结婚了,答应老头婚后身心绝对忠诚,把你忘在天涯吧의 내용을 번역하여 각색한 것입니다.  Tianya(天涯)는 한국의 DC나 일본의 2CH와 비견될 수 있는 중국최대의 BBS입니다.  이제 진정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약혼을 하는 날 아버지는 나에게 수 많은 당부를 하셨다. 처음 출근을 했던 그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다. 아마도 아버지에게는 결혼이야 말로 자식이 한 명의 성인이 되는 때인듯 하다. 일평생을 감찰관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날 밤 나는 조상에게 절을 하며 결혼 후에 마음과 몸 모두 충실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너를 잊어야만 한다. 이 곳에서 너를 잊고자 한다.

이 이야기가 끝난 뒤에 나는 너를 잊을 것이다. 결혼한 이후 더 이상 너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꿈에서 만난다면 우리가 만난다면 그것은 기억의 파편일 뿐이다. 이것이 나를 위해서 7년을 헌신한 장래의 아내에 대한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목차
(확정)
0- 시작
1- 우리들의 그 때
2- 키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3-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4- 강간인가?!
5- 마법에 빠지다.
6- 너 나 좋아했지?
7- 사랑해. 사랑했다.


일본 2CH에 올라오는 글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많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커피 한 잔전파만세 - 리라하우스 제 3별관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리고 한국분들은 그곳에서 일본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ianya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한중 양국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원색적인 내용을 부분적으로 번역할 뿐입니다. 조금은 변했으면 합니다. 

Tianya 번역에 동참하실 분 있으신가요? 시간과 능력에 맞추어서 작품추천을 하겠습니다.

* 한편은 얼마정도의 길이로 뽑는 것이 좋을까요? 대충 2500자로 정했습니다.
* 덧글은 저의 힘! 관심 없으시면 번역 계속 안할겁니다. (협박이냣;;;)

  1. 저 개인적으로 팬입니다. 특히 커피한잔님의 번역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죽을 것 같을텐데.... [본문으로]
제 5장 : 친척의 덕을 보다.

-- 사촌지간의 정

618년 수나라는 멸망하였다.

이때 왕박(王薄)이라고 부르는 한 농민은 <무향요동랑사가 无向辽东浪死歌>를 만들었고 대히트하였다. 마치 예전에 "DJ.DOC와 함께 춤을"을 할아버지부터 미취학아동까지 모두가 불렀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슨 뜻이냐고? "요동으로 가면 쳐 죽으니까 가지 마라"라는 아주 단순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사였다. 그 당시의 온갖 농민운동이나 그 외의 잡다한 난리들이 모두가 이놈의 무향요동랑사가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난리부르스 속에서 강도(江都), 그러니까 지금의 양조우(扬州)에 있었던 황제를 호위해야될 금위군(禁卫军)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양제(隋炀帝)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허리띠를 풀러서 심복에게 주고, 목 졸라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혼자 죽을 용기는 없었나 보다.

그런데 수도가 장안인데 수양제는 왜 양주라는 중국의 남방에서 죽었을까? 사실 수양제 제위 18년 중에 13년을 양주에서 지냈었다. 아마 중국의 통일 왕조 중에서 남방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황제일 것이다. 수양제가 자주 양주에 있었기에, 어떤 이는 대운하가 어디까지나 수양제가 양주에서 놀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건 아니다. 막말도 적당히 해야된다. 대운하는 기본적으로 남북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조역통로로서 필요했었다.

어찌되었든 수나라는 581-618년이라는 딸랑 39년만에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당나라의 개국황제 이원(李渊)은 진양(晋阳)에서 군대를 일으켜서 618년에는 스스로 황제라고 선언한다. 그가 바로 당고조(唐高祖)이다. 그는 국호를 당(唐)으로 정했다. 또한 수도를 장안으로 지정하였다. 이원은 수양제의 사촌동생이다.  그 둘의 어머니가 서로 친자매로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독고(独孤)씨였다. 이원은 수나라 시대에 당국공(唐国公)으로 진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군대를 거병해서 관중의 장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수양제의 손자를 황제로 세우고 수공제(隋恭帝)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양제를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하였다. 그리고는 모두가 예상했듯이 섭정을 하면서 실권을 다 장악해버린다. 왜 황제가 되지 않고 귀찮게 섭정을 했냐고? 당시 이원의 거병 이유는 어디까지나 살해된 사촌형 수양제를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수양제의 장례를 성대하여 치루었다. 또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도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 친형제의 난

626년 이세민(李世民)이 즉위하였다. 당태종(唐太宗)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놈의 이세님의 즉위과정은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로 유명한 이씨왕조의 태종이 떠오른다. 친형제간의 피가 튀기는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권력 앞에서는 어떤 확실한 것도 없다는 것을 세삼 깨닭게 된다. 이세민은 현무문지변(玄武门之变)이라는 친형제살육전을 벌인다.

이세민은 현무문지변을 통해서 친형인 이건성(李建成)과 친동생인 제왕(齐王) 이원길(李元吉)을 살포시 죽여버린다. 그리고 친아버지를 협박해서 황제의 자리에서 물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런 짓을 해놓고서는 역사서를 고쳐버린 것이다. 현재 당시의 역사에서는 이세민이 죽여버린 이건성과 이원길을 천하의 호로자식으로 써놓고 있다. 그런데 병신에 바보같은 녀석들이 어떻게 수 많은 전공을 세울 수 있었을까? 또한 어떻게 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을 기본 사상으로 간직한 동양의 역사책 서술에 대해서 알아보자. 황제가 무슨 말을 하던 옆에 있는 사관(史官)은 그것을 모두 기록을 한다. 당시에는 비록 지금의 녹음기나 카메라 같은 것이 없었지만, 사관은 조정에서 황제가 하는 모든 말을 기록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황제의 실록(实录)이 된다. 조선왕조실록도 바로 이러한 기록들의 모음이다.

그러나 황제 자신은 결코 실록을 볼 수가 없다. 명(明)나라와 청(清)나라는 강력한 왕권국가였지만 어떠한 황제도 실록을 보지 않았고, 볼 수도 없었다. 사실 어차피 실록이라는 것 자체가 그 자신의 기록이었으니 굳이 볼 필요가 있겠는가? 아! 물론 어디까지나 조정에서 대신과 말하는 것들의 기록이다. 황제도 사생활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본다고 하더라도 결코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이넘의 이세민은 실록을 보았을 뿐만이 아니라, 바꾸기까지 했던 것이다. 황제가 직접 나서서 "이건 별로야. 지워버려. 안 지워? 너 죽을래?" 라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종종 발생하고는 했었다.

유명한 일이 "최저가 제장공을 시해한 사건 - 崔杼擅弑齐庄公"이다. 최저가 제환공을 죽이고 사관에게 "아파서 죽었다"라고 기록하라고 했지만, 사관은 사실대로 "최저가 제환공을 시해하였다"라고 적어버린다. 최저가 열받아서 사관을 죽여버리지만, 그에게는 3명의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3명의 동생 모두 차례대로 사관에 임명되어서 사실대로 쓰고서는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만이 "사실대로 쓰는 것은 사관의 의무입니다. 만약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목숨만을 바란다면 죽느니만 못합니다. 또한 제가 쓰지 않아도 누군가는 쓸 것입니다. 설사 다른 이가 쓰지 않아도 당신의 죄는 결코 덮어지지 않으면 천하인들이 모두 욕할 것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결국 최저는 역사조작을 포기하였던 일화가 있다.

그런데 이세민 때의 사관은 누구인지 바꾸어버리고 만다. 사관으로서의 의무는 어디 갔냐? 븅.


이렇게 이세민의 등극은 친형제를 죽이고 일어났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는 말아야 될 역사조작까지 감행하였지만! 그는 단순한 악인은 아니었다. 그 뛰어난 능력을 좋은 곳에 쓰기도 한다.

수양제는 당태종(이세민)의 오촌 아저씨였다. 또한 그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당태종의 한 첩이 수양제의 딸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촌 아저씨이자 장인 어른인 사람이 어떻게 망했는지 두 눈 똑똑히 지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태종은 수나라 멸망의 교훈을 깊이 새기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그래서 역대 최강의 부자 정부였다는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3번째의 통일을 이룩하고는 38년만에 망하고 말았다. 그나마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딸랑 15년이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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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먼가 전의 글과 문체가 상당히 다른 느낌이....끙...
이 글만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문제가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다.
아니;; 어차피 문체를 떠나서 글 내용 자체가 원문하고 점차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핵심이나 뼈대야 어차피 역사가 그게 그거니 같다만....음;;;;;;;
................................................
어차피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닌걸.....
................
...
무엇보다 별로 덧글도 없고.....계속 해야되나...;;;
(라면서 덧글 유도+_+)




제 4절 : 영웅 아버지와 병신아들(2)
(지난회는영웅 아버지와 병신 아들(1) - 중국사는 장난감이다.)


수나라의 양식은 얼마나 풍부했었던 것일까? 천하를 50~60년동안 먹일 수 있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수나라가 38년만에 망했으니, 당나라는 날로 20년분의 양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헌통고(文献通考)에서는 이러한 수나라의 부를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어떤 나라도 수나라만큼 국고가 넘쳐흐르지 않았다(古今称国计之富者莫如隋)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나라도 수나라 정부만큼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수나라와 맞짱을 뜨지 못한다. 수나라야 말로 막강 돈지랄을 할 수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3. 운하를 뚫었다.
수양제는 대운하를 뚫었다. 용제거(永济渠), 통제거(通济渠), 한구(邗沟), 강남하(江南河)로 분리해서 삽질을 시작했다. 낙양(洛阳)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탁군(涿郡)을 연결하고, 아래쪽으로는 여항(余杭)까지 도달한다. 참고로 미치도록 길다.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이니 말 다한 거 아닌가? 파나마 운하의 38배이고, 스위스운하의 20배에 달한다. 현존하는 최대길이의 운하를 수나라때 포크레인도 없이 만들었다. 지금 현대의 기술로도 한반도에 운하를 뚫는 것은 환경파괴는 둘째 치고 돈을 몇 조씩 넣어야 되는 상황에서 당시에는 어떠하였을까?



4. 도로 재정비....
이쯤 되면 우리는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떠오른다. 진나라도 만리장성 만들고[각주:1], 길을 새로 설비하면서 사람들을 부려먹다가 2대만에 망했었다. 수나라 역시 딸랑 2대만에 망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수양제를 욕만 해서는 안된다.


수양제는 분명히 폭군이지만, 멍청한 임금은 아니었다. 그가 한 일이 나쁘기만은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무지막지 부려먹었던 운하공사를 보자. 대운하는 진시황의 만리장성과는 전혀 다르다. 만리장성은 지금이야 관광자원이 되어서 이민족들의 돈을 긁어 모으는 곳이며, 중화민족의 상징이니 머니 하고 있지만, 역대 대대로 만리장성이 제대로 북방민족을 막았던 적은 사실상 없다. 돈과 인력은 무지막지 투자를 해놓고 정작 방어능력은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다. 스타크레프트로 비유를 하면, 열심히 벙커를 지었지만, 정작 미사일터렛을 만들지 않아서 다크템플러가 은신해서 유유히 들어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대운하는 전혀 다르다. 중국의 지형을 보면 대부분의 강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래서 강을 이용하면 동서간의 교류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남북간의 교류이다. 열심히 말을 타고 다각다각다각 갈 수밖에 없다. 머? 그냥 말타고 교류하면 안되냐고?

말을 타거나 짐마차를 끌고서 가지고 갈 수 있는 양은 매우 적다. 당신은 어디 이사갈 때 맨 몸으로 터덜터덜 가는가? 가구부터 시작해서 온갖 물품을 챙겨서 가야되는데, 육지로 이것들을 옮기려면 죽어나간다. 그런데 배로는 매우 쉽다. 특히 당시에 핵심적인 세금이었던 양식인 "쌀"은 부피도 부피지만, 무게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배를 통해서 운반하지 않으면 죽어난다. 못 믿겠으면 쌀 한가마를 지고 100KM만 가봐라[각주:2].


문제는 수양제가 돈지랄을 너무 했다는 것이다. 10권짜리 장편 소설을 쓴다고 보자. 그럼 자료수집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도 이런저런 구상과 수정에 몇 달은 충분히 걸린다. 그런데 이런 장편소설을 일주일만에 써내라고 한 것이다. 아무리 1억을 준다고 해도 하면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수양제가 딱 이꼬라지 였다.

수양제는 제위를 하고 나서 고구려을 3번 원정해서 대패하고, 수도를 옮기고, 법령을 강화하는 등등등 온갖 일들을 다 벌리고 다닌다. 문화사업이라던지 풍류따위는 즐기지 않는다. 과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멍청한 상관이 아니고,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3차례의 고구려 공격을 보자. 고구려는 중국 동북의 지방정권이다[각주:3]. 지금 북한의 북부에 있었다. 이녀석은 700년동안이나 계속 반항하였는데, 처음 300년은 지금의 길림(吉林)에 있었고, 그 다음 300년은 평양(平壤)에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중국의 정권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의 정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 됐고, 어찌되었든 한국인은 머든 뻇는다.[각주:4]

수양제의 3차 고구려 공격에 100여만의 대군을 투입했지만, 딸랑 2700명만이 돌아왔다.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한 전략은 러시아가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상대한 전략이었다. 하늘은 드럽게 많고, 땅은 넓은데 다 귀찮고 그냥 튀어!!!! 땅을 뻇으려면 뻇어라~~ 나는 튀련다의 정신으로 겨울까지 계속 후퇴만 한다. 승리의 기분도 처음뿐이지. 몇 달 동안 계속 걷기만 하고, 점점 겨울을 다가와서 추워지는데, 고향에 놔두고온 설미는 보고 싶고......근데 왜 이리 졸리지.....

이렇게 알아서 얼어 죽어주는 거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제 쫒아가면서 사뿐히 즈려밟아주면 되는 것이다. 열받은 수양제이지만 나름 황제가 아니었던가? 육군만으로 안되면 수군까지 동원해주지! 그래서 쌈 싸먹겠다의 작전으로 나간다.

그러나 이때쯤 되면 말도 안되는 짓거리들에 동원된 백성들의 분노로 의한 봉기가 온갖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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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처음부터 쓸까...-_- 이미 원문과는 상당한 거리가........
아무리 의역이라지만...이래도 되는걸까나;;;; 뼈대야 그대로 가고 있다만....



  1. 정확하게는 만리장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진시황이 밟아 버린 나라들의 장성(연나라, 조나라등)과 자신의 장성을 이어서 만든 것이 만리장성이다. 한마디로 새로 만든게 아니라 좀 대규모의 보수공사라는 거... [본문으로]
  2. 한반도는 전혀 다르다. 한반도는 3면이 바다이다. 초등학생도 알 이 상식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대운하 필요 없다. 그냥 바다을 통해도 전국 어디든지 간다. 그런데 굳이 대운하 삽질을 하시겠다는 그 분은....후.... [본문으로]
  3. 본인의 생각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원문 그대로 하였다. 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본인에게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마라. 본인도 지방정권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아두라고 그대로 번역한다. [본문으로]
  4. 다시 말하지만 원문 그대로 번역했다. -_-;; 하지만 이것이 유머로서 작용을 한다는 것은 중국을 분석하고자 하는 분들은 유심해서 볼 부분이다. [본문으로]
제 3절 : 영웅 아버지와 병신 아들
2. 영웅 아버지와 병신 아들

* 모범 근로자 수문제(隋文帝)

수문제의 위대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중국 역사상의 황제들은 대부분 수 많은 첩들에게 둘러쌓여 있었지요.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수는 천왕(天王) 홍수전(洪秀全)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 명이 넘어서 이름이 아닌 번호만이 있었다고 하지요. 오늘은 001번에서 007번까지~ 내일은 230번부터 250번까지~[각주:1] 이런 복이 넘쳐흐르는 황제들 중에서 오직 2명의 황제만이 첩이 없었답니다. 바로 수문제(隋文帝)와 명효종(明孝宗)이죠.


명효종은 그가 태자였을 때부터 장황후와 사이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래서 즉위를 하고서는 첩을 받지 않았던 것이지요[각주:2]. 그에 비해서 수문제가 첩들이 없었던 이유는 그가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일벌래의 극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언제나 정사를 생각하고, 매일매일 조회에 참석하거나 날을 세우고는 하였다"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황제가 매일 매일 조회에 참석한다면 아마 과로사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매우 근면했다는 청나라 황제들도 10일에 한번씩만 조회를 했을 뿐입니다. 물론 황제에게는 매일 매일 처리해야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군기대신(军机大臣)을 만나서 처리하였지요. 군기대신을 만나는 것은 지금으로 따지면 선생님이 학급반장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매일 학급회의를 할 수는 없으니 일주일에 한번씩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선생님은 학급반장을 만나서 일처리를 부탁하고 중요한 일들을 전달 받는 것이지요.

청나라때 조정의 조회는 궁전안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수 많은 대신을 궁전 안에 들여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궁전이 아닌 건청문(乾清门)과 어문(御门)에서 조회를 했습니다.  황제야 건청문의 굴 속에서 앉아 있으면 되지만, 대신들은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광장에서 대기를 해야했지요. 황제야 추우면 손난로나 모피를 입어서 곰탱이 같았고, 영상 30도의 더위에서는 햇빛 가리개와 부채가 동원이 되었지요.

사극을 보고 있으면 대신들이 궁전 안에 들어와서 조회를 합니다. 청나라 황제들의 정사는 모두가 양심전(养心殿)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좁은 장소에는 몇 명밖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잘해봐야 몇 명이 되지 않는 군기대신들이나 들어올 수 있었지요. 그래서 건륭(乾隆), 용정(雍正), 강희(康熙)들의 영명한 군주라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조회를 보고, 매일 밤샘을 하면서 조정의 일들을 처리하였지요. 또한 책을 보다가 밤을 새는 것도 부지기수이고, 그러면서도 다음날 곧장 조회를 보고는 했습니다. 참 대단하죠?


보통 황제가 조회에 나오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던, 4시면 기상을 하고는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클럽도 없었습니다. 그냥 어두워지면 잤으니 저녁 8시 반이나 9시면 잠을 잤기 때문이지요. 황제 역시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었습니다. 새벽 4~5시면 어둠을 헤지고 조회에 참석을 하여서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시간까지, 하루 종일 일처리를 했습니다.


"오품이상은 부름을 받으면 국정에 대해서 논하여야 한다. 五品以上,引之论事" 다시 말해서 오품 이상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자는 황제가 부르면 달려와서 국정에 대해서 의견을 발표해야된다는 소리입니다. 청나라에서는 4품 이상만이 황제를 볼 수 잇었습니다. 당시 중앙정부의 관원은 모두가 4품이상이었고, 지방에 있는 사람은 3품 이상이어야지만 황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5품의 지부(知府)와 같은 지방관리는 황제를 못 만나는 것이지요. 3품의 보정사(布政司)나 안찰사(按察司)급은 되야지 만날 수 잇었습니다. 그런데 수문제는 그 당시 오품이상의 사람들을 불러서 국정에 대해서 논하게 하였습니다. 아마 청나라의 저글링때와 같은 관원숫자보다 적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당직을 서는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宿卫之士,传餐而食" 수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보통 황제들은 밥을 무조건 혼자 먹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과 같이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밥 먹는 틈에 독살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황제가 황후를 불러서 같이 저녁을 먹는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둘은 결코 같은 방에서 먹지 않습니다. 황제가 건청궁 서원각(乾清宫西暖阁)에 있다면 황후는 동원각(东暖阁)에 있게 됩니다. 이럴 때 만약 황제가 개고기찜을 먹고 맛있다고 생각되면, 황후에게 한 그릇을 보냅니다. 황후는 토 쏠리는 것 같아도 황제의 성은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고기 자체를 먹고 싶지 않아도 황제폐하의 성은에 감동의 도가니가 되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수문제는 여러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이 먹었습니다. 이 얼마나 효율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수문제의 황후인 독고(独孤)씨도 역시 현명하다고 칭송되는데, 그를 더욱 더 열심히 일하도록 계속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이런 수문제의 모습은 극도로 부패했던 남조의 진(陈)나라와 비교하면 더욱 놀랍습니다. 진나라의 군주 진숙보(陈叔宝)는 중국의 역사상 유명한 망국의 군주입니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두목(杜牧)의 박진회(泊秦淮[각주:3])에서 나오는 후정화(后庭花)가 바로 진숙보가 즐겨 부르던 노래로 망국의 노래로 등극하였습니다.

수나라 군대가 진나라의 황궁으로 돌입할 때, 진숙보는 우물에 몸을 숨깁니다. 수나라 병사들은 그를 찾다가 우물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서는 말합니다. "지금 당장 안나오면 돌을 던지겠다고" 그러자 안쪽에서 "던지지 마요. 던지지 마. 우리 좀 끌어올려줘요." 그들을 끌어올리자 진숙보와 황후 그리고 귀비까지 3명이 엉켜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양광(杨广)이 그 귀비를 보고서는 자신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군의 대자 한금호(韩擒虎" "이년 때문에 진나라가 망한거야. 근데 이 년을 원한다고?" 단칼에 양광을 두동강 내버립니다. 괜히 여자 밝히다 죽은 양광에게 애도를....


수나라는 진나라를 명말시킨 이후에 공사를 시작합니다.

1. 장안과 낙양을 재건합니다.
수문제는 장안에 대흥성(大兴城)을 만들고, 수양제(隋炀帝)는 낙양에 동쪽 수도를 만듭니다. 이 둘을 합쳐서 양경(두 수도 两京)라고 하고, 서쪽 수도는 장안이며, 동쪽 수도는 낙양입니다.

2. 전국에 창고를 건설합니다.
이 창고가 무식했냐면은 수나라의 한 양식창고는 함가창(含嘉仓)이라고 불리는데, 고고학자들이 이 함가창을 발굴하면서 대략적인 통계를 내었습니다. 함가창에는 총 259개의 식량 저장고가  있었는데, 한 저장고 안에서 이미 탄화된 곡식 약 300만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식량저장고가 259개가 있으니 얼마나 무식하게 곡식을 쌓아놓았는지 아시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함가창 말고도 낙구창(洛口仓)이니 경낙창(京洛仓)등과 같은 곳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수나라의 양식 비축량은 무시무시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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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제 의자왕의 3000궁녀가 있지요. 하지만 해당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조에 실려 있고 정확한 숫자는 없습니다. 이후 조선 초의 문신 김흔(金訢)이 〈낙화암〉이란 시에서 “삼천의 가무 모래에 몸을 맡겨 / 꽃 지고 옥 부서지듯 물 따라 가버렸네(三千歌舞委沙塵 / 紅殘玉碎隨水逝)”라고 읊은 것이 “3천”이라는 수효에 대한 첫 언급이니 실제로 3000명은 아닐것입니다. [본문으로]
  2. 사실 황제에게는 첩을 받아야되는 "의무"가 있습니다. 황제는 그 자손을 번창시켜야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3. 烟笼寒水月笼沙,夜泊秦淮近酒家,商女不知亡国恨,隔江犹唱后庭花; 중국인들에게는 워낙 유명한 것인데 한국인들에게는 좀 어색할듯 합니다. 두목이 당 말기 귀족들의 퇴폐적인 모습을 비판한 시입니다. [본문으로]
그리고 북쪽에서 남쪽을 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중국고대의 모든 통일전쟁은 거의 대부분이 북방에 의한 남방통일이었다. 오직 명태조(明太祖)의 북벌만이 예외일 뿐이고, 이것 역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 결과 몽골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소멸할 수가 없었고, 이후 명나라 역사에서 계속 골치거리로 남아 있게 되었다. 칭기즈칸의 자손들은 황태극(皇太极)에 의해서 마지막 몽골제국의 황제인 임단칸(林丹汗)이 패배하기 전까지 계속 칸의 자리에 있었다.

칭기즈칸에서 임단칸까지 482년, 35대의 칸을 배출하여 사실상 명나라와 계속 대치 상태에 있었고, 훗날 청나라가 된 후금(后金)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명조는 결국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멸망시키지 못한 것이다.

중국근대의 해방전쟁(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간의 전쟁)에서도 북쪽에서 시작하여 송화강(松花江)에서 해남도(海南岛)로 계속 내려오는 도강전투(渡江战役)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역사상의 중국통일전쟁은 모두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이는 고대에는 북방의 경제가 발달하여서 남쪽의 야만인(남만 南蛮)을 공격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훗날 남쪽도 발전을 하게 되지만, 북방인들은 기마에 능하고, 전쟁수행능력이 뛰어난 반면에, 남방인들은 유들유들한 학자분위기였기에 승패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또한 남방의 지형은 구릉지형[각주:1]으로서 쉽게 서로 간에 분리되어 독립하기 쉬웠다. 그에 비해서 북방의 지형은 평원으로서 쉽게 통일 될 수 있었고, 통일이 된 이후에는 내부을 결집하여 외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북쪽에서 남쪽으로 공격하는 것이 쉬웠기에 수나라의 통일은 더욱 더 쉬웠고, 너무나 당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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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분량은 짦다.^^;;; 아싸리~ 아싸~~~~


  1. 남방의 지형은 한국의 산이 많은 지형이다. 그래서 산으로 숨어들어서 방어에 주력하면, 상대방을 공략할 수는 없지만, 방어를 하면서 스스로를 유지해갈 수는 있었다. [본문으로]
제 4장. 화려했던 당(唐)나라를 기리며...
1. 수(隋)의 위밍업

* 외할아버지 외손자의 황위를 빼앗다.

여러분들. 이제부터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대했던 시기인 수당시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중화민족은 모두 56개이며, 한(汉)족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족이 해외에서 모여 사는 곳인 ChinaTown은 "당나라 사람의 거리(당인가 唐人街)라고 불립니다. 다시 말해서 한(汉)나라와 당(唐)나라로 아직도 불려지고 있을 정도로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두 왕조입니다. 한나라의 강력함은 이미 설명했었습니다. 그럼 당의 번영은 누가 그 기초를 만들었을까요? 바로 수나라입니다.

서기 581년 북주(北周)의 외척 양견(杨坚)은 나라 이름을 수(隋)로 하고 년호을 개황(开皇)이라고 하여 장안(长安 지금의 서안)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양견은 곧 수문제(隋文帝)입니다. 수문제는 북주의 외척이었지요. 외척이라는 것은 황제의 어머니나 아내의 가문, 혹은 태후나 황후의 가문을 말합니다. 양견은 북주 정제(静帝)의 외할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외손자를 몰아내고 자신이 스스로 황제가 된 것이지요.

황제를 빼앗긴 정제(静帝)의 할아버지인 북주의 선제(宣帝)는 아마도 양견의 딸과 억지로 결혼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척에 의한 찬탈은 대부분 이런 식이죠.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도 황제의 외할아버지였었죠. 삼국연희로 유명한 조조(曹操)도 황제의 장인(아내의 아버지)이었지요. 비록 그는 황제자리를 뺏지 않지만, 그의 아들 조비(曹丕)에 의해서 매형의 자리를 뺏어서 황제가 됩니다. 북주의 선제와 같이 한헌제(献帝)도 원래의 황후를 없애버렸기에 억지로 조조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죠.

앙견은 북주에서 수국공(隋国公)이었답니다. 그래서 나중에 수(隋)라고 이름을 붙이고 년호를 개황(号隋)이라 하며, 장안(长安)을 수도로 한 것이지요. 서기 589년, 앙견은 그의 둘째 아들을 진왕(晋王) 양광(杨广)에게 총병력 50여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중국 남부에 있던 진(陈)나라를 멸망시키게 하고 남북통일을 이루어냅니다. 진나라는 이름바 남북조시대에 송(宋)-제(齐)-양(梁)-진(陈)으로 넘어가는 남쪽 왕조의 마지막입니다. 남조의 천자는 풍류(风流)를 사랑했고, 단지 자강산을 굳게 지킬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조의 정권의 황제는 자주 변하였고, 무력이 약한 서생들이었으니 결국 망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수나라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1. 여러 민족의 융합.
역사상 북방에서 남방을 통합하려고 노렸던 적은 몇 번이나 됩니다. 삼국시대에도 그랬고, 진나라때도 그랬고, 남북조시대에도 그러하였습니다. 가장 강력했던 것은 383년의 비수지전(淝水之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북방의 16국중에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苻坚)이 9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만도 안되는 동진에게 발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민족간에 첨여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의 원래 북방에서 쫒겨온 사람들은 오랑캐들에게 통치 당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또 전진(前秦)은 저족(氐族)이 만든 국가인데 90여만 대군의 대부분은 한족(汉族)이었습니다. 저족의 전체 인구는 단지 몇십만에 불과했으니 말이죠. 한족들의 입장에서는 동진을 자신의 조국과 같이 보았으니, 누가 조국을 치기 원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비록 군대로 동원되었지만 그리 싸울 마음이 없었고 결국은 전쟁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각주:1]

그런데 수나라가 천하통일을 할 쯤이 되면 상황이 변합니다. 수나라나 당나라 모두 비록 선비(鲜卑)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남방쪽 사람들도 더이상 그들을 이민족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별 신경은 안 쓴 것이죠. 민족이 이미 융화가 된 것이지요. 북방은 이미 완전히 한화(한족에 동화됨 汉化)가 되어서 기존의 중원 왕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각주:2].

이렇게 남쪽 사람들이 수나라를 이민족으로 보지 않았기에 양견은 날로 천하를 먹게 됩니다.


2. 북방 농업의 회복과 발전으로 경제적인 기반을 쌓음.
북방은 원래 남방보다 훨씬 더 농업이 발전해있었습니다. 비록 계속 되는 전쟁으로 황폐하게 되었지만, 수나라의 천하통일쯤이 되면 충분히 회복하고 발전해 있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오래된 말처럼 병력이 움직이기 전에 양식이 먼저 움직여야 됩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돈싸움인 것이지요. 미국이 이렇게 죽이게 강력한 이유와 같은 것이랍니다. 전쟁에는 튼튼한 경제적 기초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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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모든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환영합니다. 
본 글은 의역식 번역입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깊이가 없다는 것이야 이미 소개했지만, 좀 문제가 많은 내용들이 있군요. 이건 머...제가 다시 쓰는게 더 속편하다고 느껴지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렇게 분석해서 안될 것도 없기에 그냥 냅두고 주석으로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건 어떻게 수정하지도 못할 만큼 긴데, 좀 문제가 많아서 주석을 달겠습니다. 일반 백성에게 누가 통치하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시의 비수지전의 패인으로 민족모순은 별로 언급이 안됩니다. 그것보다는 당시 전진의 전략-전술상의 문제와 동진의 방어전략 및 군사훈련이 좋았다고 평가합니다. [본문으로]
  2. 라는 것이 교과서급의 역사책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화보다는 오히려 중국 전체가 북방이민족들의 문화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동화가 된 것이 아닌! 서로서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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