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 친척의 덕을 보다.

-- 사촌지간의 정

618년 수나라는 멸망하였다.

이때 왕박(王薄)이라고 부르는 한 농민은 <무향요동랑사가 无向辽东浪死歌>를 만들었고 대히트하였다. 마치 예전에 "DJ.DOC와 함께 춤을"을 할아버지부터 미취학아동까지 모두가 불렀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슨 뜻이냐고? "요동으로 가면 쳐 죽으니까 가지 마라"라는 아주 단순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사였다. 그 당시의 온갖 농민운동이나 그 외의 잡다한 난리들이 모두가 이놈의 무향요동랑사가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난리부르스 속에서 강도(江都), 그러니까 지금의 양조우(扬州)에 있었던 황제를 호위해야될 금위군(禁卫军)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양제(隋炀帝)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허리띠를 풀러서 심복에게 주고, 목 졸라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혼자 죽을 용기는 없었나 보다.

그런데 수도가 장안인데 수양제는 왜 양주라는 중국의 남방에서 죽었을까? 사실 수양제 제위 18년 중에 13년을 양주에서 지냈었다. 아마 중국의 통일 왕조 중에서 남방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황제일 것이다. 수양제가 자주 양주에 있었기에, 어떤 이는 대운하가 어디까지나 수양제가 양주에서 놀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건 아니다. 막말도 적당히 해야된다. 대운하는 기본적으로 남북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조역통로로서 필요했었다.

어찌되었든 수나라는 581-618년이라는 딸랑 39년만에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당나라의 개국황제 이원(李渊)은 진양(晋阳)에서 군대를 일으켜서 618년에는 스스로 황제라고 선언한다. 그가 바로 당고조(唐高祖)이다. 그는 국호를 당(唐)으로 정했다. 또한 수도를 장안으로 지정하였다. 이원은 수양제의 사촌동생이다.  그 둘의 어머니가 서로 친자매로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독고(独孤)씨였다. 이원은 수나라 시대에 당국공(唐国公)으로 진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군대를 거병해서 관중의 장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수양제의 손자를 황제로 세우고 수공제(隋恭帝)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양제를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하였다. 그리고는 모두가 예상했듯이 섭정을 하면서 실권을 다 장악해버린다. 왜 황제가 되지 않고 귀찮게 섭정을 했냐고? 당시 이원의 거병 이유는 어디까지나 살해된 사촌형 수양제를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수양제의 장례를 성대하여 치루었다. 또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도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 친형제의 난

626년 이세민(李世民)이 즉위하였다. 당태종(唐太宗)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놈의 이세님의 즉위과정은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로 유명한 이씨왕조의 태종이 떠오른다. 친형제간의 피가 튀기는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권력 앞에서는 어떤 확실한 것도 없다는 것을 세삼 깨닭게 된다. 이세민은 현무문지변(玄武门之变)이라는 친형제살육전을 벌인다.

이세민은 현무문지변을 통해서 친형인 이건성(李建成)과 친동생인 제왕(齐王) 이원길(李元吉)을 살포시 죽여버린다. 그리고 친아버지를 협박해서 황제의 자리에서 물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런 짓을 해놓고서는 역사서를 고쳐버린 것이다. 현재 당시의 역사에서는 이세민이 죽여버린 이건성과 이원길을 천하의 호로자식으로 써놓고 있다. 그런데 병신에 바보같은 녀석들이 어떻게 수 많은 전공을 세울 수 있었을까? 또한 어떻게 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을 기본 사상으로 간직한 동양의 역사책 서술에 대해서 알아보자. 황제가 무슨 말을 하던 옆에 있는 사관(史官)은 그것을 모두 기록을 한다. 당시에는 비록 지금의 녹음기나 카메라 같은 것이 없었지만, 사관은 조정에서 황제가 하는 모든 말을 기록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황제의 실록(实录)이 된다. 조선왕조실록도 바로 이러한 기록들의 모음이다.

그러나 황제 자신은 결코 실록을 볼 수가 없다. 명(明)나라와 청(清)나라는 강력한 왕권국가였지만 어떠한 황제도 실록을 보지 않았고, 볼 수도 없었다. 사실 어차피 실록이라는 것 자체가 그 자신의 기록이었으니 굳이 볼 필요가 있겠는가? 아! 물론 어디까지나 조정에서 대신과 말하는 것들의 기록이다. 황제도 사생활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본다고 하더라도 결코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이넘의 이세민은 실록을 보았을 뿐만이 아니라, 바꾸기까지 했던 것이다. 황제가 직접 나서서 "이건 별로야. 지워버려. 안 지워? 너 죽을래?" 라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종종 발생하고는 했었다.

유명한 일이 "최저가 제장공을 시해한 사건 - 崔杼擅弑齐庄公"이다. 최저가 제환공을 죽이고 사관에게 "아파서 죽었다"라고 기록하라고 했지만, 사관은 사실대로 "최저가 제환공을 시해하였다"라고 적어버린다. 최저가 열받아서 사관을 죽여버리지만, 그에게는 3명의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3명의 동생 모두 차례대로 사관에 임명되어서 사실대로 쓰고서는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만이 "사실대로 쓰는 것은 사관의 의무입니다. 만약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목숨만을 바란다면 죽느니만 못합니다. 또한 제가 쓰지 않아도 누군가는 쓸 것입니다. 설사 다른 이가 쓰지 않아도 당신의 죄는 결코 덮어지지 않으면 천하인들이 모두 욕할 것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결국 최저는 역사조작을 포기하였던 일화가 있다.

그런데 이세민 때의 사관은 누구인지 바꾸어버리고 만다. 사관으로서의 의무는 어디 갔냐? 븅.


이렇게 이세민의 등극은 친형제를 죽이고 일어났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는 말아야 될 역사조작까지 감행하였지만! 그는 단순한 악인은 아니었다. 그 뛰어난 능력을 좋은 곳에 쓰기도 한다.

수양제는 당태종(이세민)의 오촌 아저씨였다. 또한 그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당태종의 한 첩이 수양제의 딸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촌 아저씨이자 장인 어른인 사람이 어떻게 망했는지 두 눈 똑똑히 지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태종은 수나라 멸망의 교훈을 깊이 새기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그래서 역대 최강의 부자 정부였다는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3번째의 통일을 이룩하고는 38년만에 망하고 말았다. 그나마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딸랑 15년이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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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모든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환영합니다. 
본 글은 의역식 번역입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응??;; 먼가 전의 글과 문체가 상당히 다른 느낌이....끙...
이 글만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문제가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다.
아니;; 어차피 문체를 떠나서 글 내용 자체가 원문하고 점차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핵심이나 뼈대야 어차피 역사가 그게 그거니 같다만....음;;;;;;;
................................................
어차피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닌걸.....
................
...
무엇보다 별로 덧글도 없고.....계속 해야되나...;;;
(라면서 덧글 유도+_+)




  1. 잘봤습니다. 2009.09.22 22:29

    ㅋ 무임승차좀 해보려 했더니...

    권력을 탐하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게 세상이치인데 당태종도 어지간히 자신이 부끄러웠나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폐위만 시키고 죽이지는 않았나 보군요.

  2. 시골 2009.09.25 18:19

    아마 친족들도 친이세민과 반이세민으로 갈등을 겪었겠죠..

    골육상잔의 이야기와 한편으로, 패밀리 비지니스로 환상의 팀플레이 보여주는 이야기 양쪽을 보면..

    참 이해관계라는 것이 여러가지로 작용하게 되는구나 싶습니다.

    전에 이세민 이야기의 후속으로도 느껴지 잘 보았습니다. ^^

  3. Favicon of http://www BlogIcon 킹파르사 2009.09.25 22:40

    원문도 재밎지만 번역또한 구수하게 잘 번역하셨네요 .
    이책은 번역해서 출판하면 베스트셀러가 될듯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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