計利以聽,乃為之勢,以佐其外[각주:1]。勢者,因利而制權也。

위와 같이 계획상의 우세를 장수가 실현하면 이를 가지고 형세를 만들어서 원정에서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勢란 계획된 우세를 바탕으로 적의 대응에 따라서 기민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兵者,詭道也。故能而示之不能,用而示之不用,近而示之遠,遠而示之近。利而誘之,亂而取之,實而備之,強而避之,怒而撓之,卑而驕之,佚而勞之,親而離之,攻其不備,出其不意。

병법이란 사기술이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하고,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고,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도 먼 곳을 노리는듯 하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을 노리는듯 한다. 적이 이익을 노리면 유혹을 하고, 적의 내부가 혼란하면 공격한다. 적의 대비가 충실하면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적이 강력하면 피한다. 적이 불같은 성격이면 짜증나게 만들어 이성을 잃게 하고, 적이 신중한 성격이라면 오만하게 만든다. 적이 쉬려하면 피로하게 하고, 적이 단합 되어 있으면 분열시킨다.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은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此兵家之勝,不可先傳也。

이러한 실전 병법은 너무 복잡하고 오묘하여 미리 결정하거나 가르칠수가 없다.

1. 세勢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세"란 무엇인가? 뒤쪽의 "세勢“편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이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손자>안에서 형形와 세勢은 군사상의 형세形勢에 대한 중요한 개념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르면서도 그 구분이 모호하다. 형세는 병력의 배치로 인하여 생겨난다. 그러나 손자에서는 형세를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형形은 고정된 상태고, 세勢는 움직이는 상태이다. 형은 볼 수 있고, 세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볼 수 없다는 말은 "정해놓은 틀이 없다"는 뜻이다. 형과 세의 관계는 악보와 음악연주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우리가 바둑을 둘 때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형으로서는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마가 잡혀버리는 적의 함정이 있다면 결코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세이다. 스타크레프트에서 저그가 럴커를 잔뜩 심어두고서는 강제정지해 있다. 형으로는 그곳에서의 위험을 감지할 수 없다. 만약 사이언스베슬로 럴커가 심어져 있는 것을 모른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세이다.  이처럼 볼 수 있는 것은 형이고 볼 수 없는 것이 세이다. 작전계획은 형이고, 실전운용은 세인 것이다.

조금만 더 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본문에 나오는 "세勢란 계획된 우세를 바탕으로 적의 대응에 따라서 기민하게 조절하는 것이다.(勢者,因利而制權也)"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利(이익)이란 전에 말한 계획된 우세을 말한다. 權은 지금은 권력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고 있지만, 과거에는 "저울질을 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권이란 저울질을 하여 힘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행동으로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임기응변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적의 행동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게 되며, 고정된 내용이 있을 수가 없다. 마치 스타크레프트에서 상대방의 테크트리에 따라서 전략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정된 형과는 다른 가변적인 세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2. 병법은 속임수이다.(兵者,詭道也。)
속임수는 세勢의 특징일 뿐만이 아니라 병법兵의 특징이다. 병법에서는 속이는 것을 절대 기피하지 않는다兵不厭詐. 이 말을 중국전통군사사상의 정수이지만, 결코 중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이라는 말의 시초가 "속임수"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다.

2.1. 귀족전쟁의 시대.
서방의 군사전통은 동양보다 귀족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귀족간의 결투처럼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고야한 행동이 아니다. 현재 미국등의 정치가들은 테러리스트들이 겁쟁이라고 비난을 한다. 왜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전쟁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자살테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겁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도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로 투석기를 사용하였지 결코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았다.

사실 병법의 시작 자체가 "병법이 속임수"라는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약자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생존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전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도덕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병법이란 항우가 배우고자 했던 만인적萬人敵였다. 만인적이란 결투도 아니고 패싸움도 아니다. 정치집단끼리의 목숨을 건 격렬한 투쟁이다. 이러한 예술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귀족전쟁의 전통이 없어져야만 한다. 도덕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사용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전쟁의 미학이 완성된다.

2.2. 귀족전쟁에서 진정한 전쟁으로..
중국의 귀족전쟁 전통은 비교적 일찍 붕괴된다. 기본적으로는 2000여년이 훌쩍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병법들은 바로 이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좌전左傳>에서는 "양 측이 모두 진형을 갖추어야 전쟁이라고 한다.(皆陳曰戰)"라고 하고 있다. 만약 적이 진형을 다 갖추지 않았다면 "누구를 패배시켰다敗某師"이라고 할 뿐 전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시대의 전쟁이란 양 측이 모두 진형을 완전히 갖추고 어떠한 속임수도 사용하지 않고, 서로간의 마음의 힘으로 승부를 가르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귀족전쟁이다.

특히 송양공(宋襄公)의 이야기는 귀족전쟁의 모범을 보여준다. 송양공은 상왕商王의 후예로서 오래된 귀족이었다. 당시 송宋과 초楚은홍수(泓水)(河南柘城西北)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다. 초나라의 병사가 송나라에 비하여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초나라 병사들은 홍수를 건너고 있었다. 사마자어司馬子魚는 소양공에게 적이 강을 건너고 있을 때 공격을 하여야 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초나라 병사는 비록 강을 건넜지만 아직 진형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자어는 다시 소양공에게 공격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소양공은 초나라의 군사가 완전한 진형을 만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 결과 소양공은 다리가 짤려나가 죽었고, 송나라 군대는 완전히 흩어지고 말았다. 송양공이 사마자어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군자는 다친자를 다시 다치게 하지 아니하고, 반백의 노인은 사로잡지 아니한다. 고대의 귀족전쟁에서는 적군을 험한 곳에서 괴롭히지 아니했다. 과인은 비록 망국의 후손이나 진격의 북도 치지 않았을 뿐더러 대열조차 정비하지 못한 적군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각주:2]. 고대의 귀족전쟁의 규칙은 이처럼 상대방이 준비가 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았고, 나이가 많거나 너무 어린 사람은 돌려보내고, 장사를 만나도 적의를 가지고 마주하면 안되며, 적이 만약 다쳤다면 치료를 해주고 돌려보냈던 것이다[각주:3]. 문학자들은 이를 두고 "중국의 돈키호테"라고하며, 모택동毛澤東은 이를 두고 "바보 돼지식의 인의도덕"이라고 풍자하였다.

사실 송양공과 사마자어는 논쟁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귀족전쟁에서 전쟁예술로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2.3. 순자와 한비자
순자荀子는 임무군臨武君에서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에게 같은 문제로 호소한다. 순자가 생각하는 이상은 우순시대의 왕의 군대(王者之兵)이었고, 그 다음이 춘추시대의 제환공이나 진문공으로 대변되는 패자의 군대(霸者之兵)였다. 이것들은 모두 귀족전쟁을 대표하고 있다. 그렇기에 순자는 전국시대의 제나라齐国의 엘리트기병(技击)이나 위나라魏国의 엘리트보병武卒 혹은 진나라秦国의 엘리트 병사(锐士 엘리트 보병이자 엘리트 기병임)등과 같은 것들은 "깡패 군대盗兵“라고 생각하였다. 순자가 깡패군대를 강력하게 비판한 것은 오히려 당시에 점차 귀족전쟁에서 도덕을 던져버린 진정한 전쟁예술로의 변화를 말해준다.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다. 그러나 순자와는 정반대로 깡패군대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성복전투를 거론하며 전쟁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성복전쟁(城濮之戰)은 기원전 632년에 일어난 진나라晉國와 초나라出國간의 대격전이다. 이 격전에서 진나라의 구범舅犯은 속임수를 쓸 것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옹계雍季는 정정당당한 전투를 주장한다. 진문공은 구범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열악했던 상황에서 초나라을 이기게 된다. 그런데 논공행상에서는 오히려 옹계가 구범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는다. 이에 대해서 구범은 평상시에는 예의에 충실한 군자로서 충성을 다하여야 하지만, 전쟁에서는 끊임없이 정당하지 않은 속임수를 써야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춘추전국시대에는 기존에 내려오던 귀족전쟁의 규칙이 붕괴되고 있었다. 스스로 귀족전통을 무너트린 진시황에게 진승陈胜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각주:4] "라며 귀족전통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귀족 항우를 깡패출신 유방이 해하垓下에서 이기고 한汉나라의 황제가 됨으로서 귀족전통은 완전히 마침표를 찍게 된다.


3. 구체적인 실전용 사기술
<손자>에서는 속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군쟁軍爭편에서도 병법은 속이는 것으로 성립한다.(兵以詐立)라며 속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송양공이 반대한 강을 건너고 있는 적을 공격하는 행위도 손자에서는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행동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병법에서도 기본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사기술을 기본으로 한 군사전략은 군사학상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기술詭道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도록 하자.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분리되어 서로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형은 앞에 있는 것이고 세는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형이 있기에 세가 있고, 형 속에 세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하고,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고,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도 먼 곳을 노리는듯 하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을 노리는듯 한다."에 대해서 모택동은 보여지는 형태示形이라고 하였다. 보여지는 형태는 가짜이지만 세를 내포하고 있다.

3.1. 속이고 또 속여라.
적이 이익을 노리면 유혹을 하고, 적의 내부가 혼란하면 공격한다. 적의 대비가 충실하면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적이 강력하면 피한다. 적이 불같은 성격이면 짜증나게 만들어 이성을 잃게 하고, 적이 신중한 성격이라면 오만하게 만든다. 적이 쉬려하면 피로하게 하고, 적이 단합 되어 있으면 분열시킨다.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은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이 말은 모택동의 16자구결을 연상하게 한다. 모택동은 국민당이라는 강적을 열악한 공산당으로 상대하면서 16자구결을 널리 알린다. 적이 공격하면 후퇴한다. 적이 주둔하면 괴롭힌다.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 적이 후퇴하면 쫒느다[각주:5]" 사실 모택동의 이런 전략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있었습니다. 오나라吳國는 초나라楚國을 상대하면서 "적이 대비하지 못했을 때 계속 소란스럽게 하여 적으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만든다[각주:6]" 라고 하여 게릴라전의 기본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오나라는 전력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초나라를 무너트리게 된다. 마치 조그마한 모기가 끊임 없이 괴롭히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3.2. 예상을 넘어서라.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은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攻其不備,出其不意). 곳곳에서 상대방이 생각하지 방식을 선택하고 변화시키면서 상대방을 흔드는 것이다. 전쟁이란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이다. 적이 불편해지는 모든 행동을 해주어야 한다. 그 핵심은 적이 생각하지 못하는 곳과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비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4. 계산과 실전은 다르다.
손자는 마지막에 "이러한 실전 병법은 너무 복잡하고 오묘하여 미리 결정하거나 가르칠수가 없다.(此兵家之勝,不可先傳也。)"라고 하여서 구체적인 실전전술변화을 알려줄 수 없는 경험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시뮬레이션은 어디까지나 계산일 뿐이다. 실전에서는 온갖 다양한 변수들이 등장하게 되며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중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임기응변을 가르칠 수 없는 존재이다. 전쟁은 힘, 지례 그리고 의지의 종합격투기이며, 전장은 시시각각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한 순간의 생각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축구에 공은 둥글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전쟁 역시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도박으로 비유하였다. 모택동도 전장에 스면 모든 볍먹을 잊어버린다라고 하였다.

군사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실전과는 떨어져 있는 전략일 뿐이다. 진정 유용한 것은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 오직 지도 위에서의 병사들의 움직임으로 일정한 원칙을 배울 뿐인 것이다. 설사 실전변화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몇가지 일정한 실전변화일 뿐이다.그렇기에 전략은 확정적이지만 실전은 불확정적이다. 우리가 무엇을 확정할 수 있을지는 다음 문장에서 나오게 된다. <손자>라는 책은 이처럼 예상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하는 것들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우선 확실한 이론을 알려주고 그 다음에 실전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다음 문장에서는 이번 편의 본질인 전략의 본질로 돌아와서 확실히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만든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학학!! 길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은 점차 발번역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타나 오역 혹은 엉터리 문장이나 이해가 안되는 문장들을 왕창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올리고 여러분들의 비판을 기대하겠습니다...절대 번역한 문장 다시 보면서 수정하기 귀찮은건 아닙니다...-_;; 설마...

다음 편은 짦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편은 무조건 나누어야 할 정도로 무지막지 깁니다. 고대의 병종들을 완전히 해부해 버립니다. 대충 2만자는 나올 듯 합니다.......에휴............ -_-;;

  1. 計利以聽이란 이 전에 나왔던 내용을 한번에 묶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계산상의 우세을 가질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조건이 있어야지만 뒤쪽의 결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 뒤쪽의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기세势이다. 우리는 기세를 통해서 원정에서의 작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밖外"는 "안内"와 비교되는 말이다. 안은 국내이며, 밖은 국외이다. 전쟁계획은 국내에서 수립되며, 전쟁은 국외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관자는 "계획을 반드시 안에서 결정하고, 그 다음에야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計必先定于內,然後兵出乎境)라고 말한 것이다. 군대가 일단 국경을 넘으면 자연적으로 실전에 투입되게 된다. 이럴 때에는 계획된 우세뿐만이 아니라 "기세"에도 의지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2. 君子不重傷 不擒二毛 古之爲軍也 不以阻隘也 寡人雖亡國之餘 不鼓不成列 [본문으로]
  3. 見其老幼, 奉歸勿傷。 雖遇壯者,不校勿敵。 敵若傷之, 醫藥歸之 [본문으로]
  4. 王侯将相,宁有种乎 [본문으로]
  5. 敵進我退,敵駐我擾,敵疲我打,敵退我追 (해당 발언에 대해서는 모택동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주덕朱德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문화대혁명으로 전통문화를 괴멸상태로 만든 모택동이 워낙에 고전을 좋아하였기에 모택동일 가능성도 충분히 높기에 그냥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6. 亟肆以罷之,多方以誤之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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