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때문에 필요해서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笔耕)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압권인 말이 적혀 있다. 이 말은 외국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님들이 꼭 기억해 두셔야 될 말로 생각된다. 최치원은 12살에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갔다. 그리고 그 당시 최치원의 아버지 최견일(肩逸)이 한다는 소리가....

臣自年十二离家西泛,当乘桴之际,亡父诚之曰:「十年不第进士,则勿谓吾儿,吾亦不谓有儿。住矣勤哉,无隳乃力。」
- 桂苑笔耕序

신이 12살에 집을 떠나 뗏목을 타고 서쪽으로 건너갈 때, 돌아가신 아버님이 진심으로 말하기를 : "10년내로 진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 하지 마라. 나도 아들이 있다 말하지 않겠다. 가거든 열심히 하거나.  망가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 계원필경 서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조기유학을 보내면서는 확실한 목표를 세워줄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면 중국으로 가는 녀석에게는 북경대나 청화대(혹은 기타), 미국이면 하버드나 MIT같은 것이다. 혹은 목표를 세분화해서 일년내로 8급정도도 있을 것이다.(참고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면 중국에서 유학하면서 일년내로 8급은 기본이다. 어린 연령은 어휘상의 한계로 8급이 나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경우는 적당히 조절해야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는 보내놓고 신경 끄셔야 될 뿐이 아니라, 확실한 경고를 해야된다는 것이다. 자식을 버릴 각오를 하자. 목표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밀어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식을 버릴 각오를 해야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의 경우.. 잘 썩던데?! ^^::


우주는 크다. 이는 몇 권의 근대 천문학 책을 대충 봐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당신이 밤에 하늘을 올려다 본다면 몇 천, 몇 만의 별자리와 온 하늘을 채우고 있는 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놀라울 정도로 광활하다. 별들은 우주에서 대해에 떠 있는 몇 개의 범선이나 몇 마리의 비둘기와 비슷하다. 우리는 우주간에서 공허가 실제보다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여러 별들이 그 빛을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우리는 우주간의 어두움이 밝음보다 앞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주 속에는 태양이 있고, 태양 계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 위에는 만물중에는 생명이 있고, 생명 중에는 인류가 있다.  모든 우주속에서 인류의 너무나 작기만 하다. 예를 들어서 어두운 밤의 끝이 없는 광야에 조그마한 불빛이 있다. 그 불빛은 그의 주변 몇 미터만을 비출 뿐이고, 조금만 멀어지면 칠흑만이 있다. 어떤 것도 알 수가 없다. 인류의 모든 역사의 이 조그만 불꽃은 비유하자면 반딧불이다. 비록 반딧불은 천천히 앞으로 가고 있지만, 그의 불빛은 그의 좁은 뒤편을 비추고 있다. 인류의 시직은 단지 이미 있었던 것을 알 뿐이다. 몇몇 이미 있었던 일의 지식과 기억들로 앞으로 달려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래로 달려간다.

당신이 만약 너무 자연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마치 마치 어두움 밤에 광야를 가는 사람처럼, 계속 끝 없는 암흑을 바라보는 것이고, 곧 공포와 불안이 올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생명에 너무 관심을 기울인다. 한 사람의 생명도 자연이고,  공허가 실제을 이기고, 암흑이 광명을 이기는 것처럼 광활한 암흑 속에 있게 된다. 인류의 지혜는 굳이 공허에서 실제을 구하려 하고, 암흑 속에서 광명을 구한다. 이는 인류군체가 쌓아온 역사문화 속에서 찾는 것이다. 이러한 인류군체의 역사를 통해서 쌓인 문화유산을 우리는 인문(人文)이라 하며, 자연(自然)과 대립시킨다. 이것인 실제이고 광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반딧불의 조그마한 불빛에 불과하다.

인류의 원래 생활중에서 쌓여진 어떤 역사문화유산은 어떻게 거대한 대자연인 우주와 맞서고 병립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럴수 밖에 없고, 이것이 소위 “인본주의”라고 불리는 생각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견해는 자연계는 하늘(天)이고, 인문계는 사람(人)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한 편으로는 인문으로 자연에 맞섰다. 인문을 높게 쳐서 자연과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하늘과 사람이 하나임(天人合一 천일합일)을 말하면서 서로 통한다고 주장하였다. 바로 자연이 인문을 없애지 못하게 하고, 인문을 이용하여 자연을 이기게 할 생각이 없었다.

도가에도 하늘과 땅이 서로 이기지 못한다(天人不相勝)는 이론이 있다.(장자(莊子)를 참고) 그러나 도가는 역사문화의 군체가 이룬 일을 너무 무시했다. 하나 하나의 개인을 이야기 하면서 하늘은 많고, 인간은 적다. 한쪽은 높고 크고, 다른 쪽은 낮고 작은데 어떻게 하늘과 인간이 서로 이기지 못함인가! 그래서 순자는 장자가 하늘이 있음만을 알고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순자는 인류의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이것 역시 인류의 역사문화군체가 이룬 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한사람 한사람씩 분석을 한다면, 인류에게는 분명히 다양한 단점과 죄악들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나 하나의 사람은 단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인류 전체의 역사문화 전체로 생각해 본다면, 인간 세상의 모든 선함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의 심성이 악하다고만 할 수 있는가? 서방의 기독교 역시 이처럼 하나 하나의 개인만을 중시하여, 역사문화가 쌓아온 것들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악하다고 하고, 또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여 인생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아버린다. 불교 역시 같은 경향성을 보인다. 역사문화가 쌓아온 것을 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해서 비관적일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열반만을 말할 뿐이고, 인류전체의 역사문화의 무한한 쌓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근세 서방 사상은 중세 기독교의 속박에서 풀려나서 다시 고대의 그리스 관념을 회박하였다. 그리하여 인생을 긍정하게 되었지만, 너무나 개인을 중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문학은 자연학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고, 유물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다시 중세의 종교로 돌아가서 지금의 고통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사람의 일을 말해보자면, 앞으로의 나아갈 길은 개인주의를 희석시키고, 역사문화의 업적으로 눈을 돌려서 다시 한번 중국전통의 “하늘과 사람은 하나다”라는 오래된 전통을 이야기 해야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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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모든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환영합니다.  본 글은 의역식 번역입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유물론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그리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인간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심론이 맞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내 놓은 천일합일. 자연과의 화합. 지금은 모두가 중시하는 것이 되었지만,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말로만 이야기 하지만...그는 약 50년전에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단지 앞으로 50년 뒤에도 인류가 나아갈 길도 자연과의 화합일까? 어리석은 나로서는 그것이 현재까지는 최선의 길로 여겨진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뿐이고, 대자연은 인류에게 결코 패하지 않는다. 역사문화가 앞으로도 한참이 쌓이면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쳔무의 생각처럼 반딧불일 뿐이다. 솔직히 반딧불도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사료를 읽다가 제일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만약 이것이 자주 나오지 않는다면, 본인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븅신~ 화가 난다고 병이 되서 죽냐? 물론 화병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1) 자존심 만빵의 인간들.
자존심을 무지막지 가지고 있어서, 그 자존심 때문에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화병을 일으키는 경우.
쉽게 말해서 진짜로 화병때문에 죽은 경우.

2) 다른 죽음의 이유가 있는데, 필법으로 화병이라고 하는 경우.
이 경우라면 조금 조사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혹시 어떤 필법에서는 화병이 어떤 다른 상황을 상징하는지 아시는가? 본인도 모르겠다. 끙..

...이것도 잘 쓰면 논문 되겠는걸?;;
........최근 자신이 바보같음에 미치고 환장하는 바보였습니다. -_-


+ 홧병이 아니고, 화병이란다. 왜냐하면 火病이라는 한자음에서 온 것이라서, 아래쪽에 홧이라고 붙이지 않고, 그냥 화병이다. 우리는 짜장면이라고 말하는데, 자장면으로 표준철자법이 규정된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해도 무방할듯 하다.
유연(刘渊)은 서진시대 흉노의 대선우(大單于 - 흉노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는  유총(刘聪)이라는 아들을 두었고, 유선(刘宣)의 아들이였다. 그는 아마 서진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듯 싶다.

그는 당시 사마영(司马颖)에게 부족을 모아서 선비와 오환을 막겠다고 하는데, 사마영이 상당히 안 좋은 상황에 몰리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그의 조부인 유선은 "서진쉡들 우리를 노예로 부려먹었는데, 지들끼리 박터지게 싸워서 하늘도 버렸는데, 어째서 호한야(呼韓邪)의 업적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며 선비와 오환은 같은 동족이니 구태여 공격할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참고로 호한야는 북방유목민족을 통합하였다.

그에 대한 유연의 대답이 걸작이다.
"사내 대장부가 태어나서 한고조(유방)나 위무제(조조)가 되어야지. 호한야로 어찌 만족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유선등은 머리를 조아리며, "미쳐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한다.

본인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연이 유학생활을 오래하더니 미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권력 기반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저런 말을 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걸작은 유선등도 이에 동조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치통감이 장난치는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유연은 호한야와 같은 북방 통일만이 아닌,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까짓 호한야가 한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고, 대장부면 천하통일이 아니냐는 아주 호방한 말이다. 젠장...유연...니 뿡이다.-_-

그리고 나중에 흉노와 한(汉)이 형제라며(실제로 형제의 조약을 맺기는 했다만...나중에 흉노는 자기들의 성이 한나라와 같은 유(刘)씨라고까지 한다. 니들 짱이다-_-;;) 한(汉)이라는 국가를 세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이 지배자 맘대로 엿바꾸듯이 하는 것이라지만...니들은 정말....

관련 원문 :
晉人奴隶御我 今其骨肉相殘 是天棄彼 而使我復呼韓邪之業也 鮮卑烏桓我之氣類 可以為援 柰何擊之 淵曰 善大丈夫當為漢高魏武 呼韓邪何足効哉 宣等稽首曰 非所及也
资治通鉴 卷八十五 晋卷

보통 "종교"라고 불리는 것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진다. 1) 숭배대상, 2) 교리(바이블), 3) 신자 및 교단, 4) 교단의 의식, 5) 행복조건과 충족에 대한 믿음이 있을 경우 이를 종교 혹은 종교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1) 숭배할 대상은 불교의 부처, 기독교의 예수, 유교의 공자. 2) 교리로서는 불교의 불경, 기독교의 성경, 유교의 사서삼경. 2) 신자 및 교단은 불교의 스님과 보살, 기독교의 목사와 신도, 유교의 양반과 양민 4) 교단 의식은 불교의 예불과 법회, 기독교의 예배, 유교의 제사 5) 행복의 충족에 대한 믿음이나 내세관은 불교는 해탈과 윤회, 기독교의 영혼구제와 천국, 유교의 정명 혹은 군자 및 "조상신"이 있다. (유교의 경우 내세관이 약한 것이 특히 문제가 되기는 한다.)

부끄럽게도 얼마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가"도 "종교"잖아?!

1) 국가는 국가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가가 어디까지나 국민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불과한 것임에도 말이다.

2) 국가는 헌법과 다양한 법률 및 세뇌교육을 통하여서 자신만의 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그 교리 속에 있는 것이다. 진정한 모태신앙인 것이다. 국가를 바꿀 수 있다고? 물론이다. 종교도 바꿀 수 있다.

3) 국가는 국민이라는 신자와 정부라는 교단을 운영한다. 신자들은 정부의 통치체계에 지배받는다. 공무원들은 목사나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처럼 신자(양)을 이끄는 양치기 노릇을 한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양치기는 별로 없다.

4) 국가는 국기에 대한 의례라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주민등록발급등과 같은 일련의 의식을 진행한다. 국민은 그 신도로 남아 있기 위하여 위에서 규정하는 의식을 충실히 따라야 하며,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신도로 남아 있을 수 없다.

5) 국가는 역사를 이용하여 행복을 충족시킨다. 그들은 과거 국가를 지킨 인물들을 부곽시키면서, 당신도 이리 하면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가 칭송할 것이라고 암묵적인 암시를 걸고 있다.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된다는 달콤한 유혹을 누가 그리 쉽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국가도 종교다. 지금 현재의 국민국가와 중세유럽의 천주교는 기본적으로 같은 성질의 것이다. 언제인가 국가체계가 사라진다면, 그 때의 역사가들은 지금의 국민국가 체계에 대해서 어떠한 평가를 내릴까? 혹시 우리가 지금 중세유럽을 평가하듯이 암흑기라고 하지는 않을까?

올해 JLPT가 두번 있는거 다들 아시죠? 그 동안 귀찮다고 시험 안 보고 있었는데, 내년부터는 시험이 변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볼려고 했습니다. 저의 일본어가 참 야시꾸리 해서, 듣기나 보기는 나름 편안하게 하는데, 말하기와 쓰기는 좀 개꽝입니다. 시험이 변한다면 말하기와 쓰기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험을 볼려고 했습니다.

사실 2급까지는 놀면서도 딸 자신이 나름 있고, 석사 논문 준비도 해야되는지라 2급을 볼까 했는데, 일본 어학연수때 만났던 동생넘이 닥치고 1급!이라고 하길래. 시험을 볼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외국인도 JLPT를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추가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진 수정했습니다. 이유는.....비밀....ㅠㅠ)

이런!! 시험 볼 자리가 없다......하루도 안 지났는데 자리가 없다. 젠장;;;
이렇게 되면 자리가 나올때까지 끊임없는 "새로고침"밖에는...ㅠ.ㅠ

이건 엉터리로 대충 JLPT을 보지 말라는 계시인가?!;;;

사실 중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브로커를 통해서 미리 윗돈을 주고 접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본인처럼 정상적으로 등록하는 사람은 등록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이것은 JLPT 말고 토플이나 토익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근데 내가 당할 줄이야...ㅠㅠ

안 그래도 감기 걸려서 몸 상태 안 좋은데...흑..ㅠㅠ
티스토리가 중국에서 곧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여 티스토리에 북경대학교 팀블로그를 만들었지만, 반년이 훌쩍 넘도록 풀리지 않는지라, 텍스트큐브닷컴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텍스트큐브닷컴쪽에서 조만간 스킨위자드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 점 역시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이제 pkupaper.net 으로 접속하시면 북경대학교 팀블로그를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꾸벅--


현재 중국에서 티스토리는 정상적으로 접속할 수 없습니다. 저도 텍스트큐브닷컴으로 이사하고 싶지만, 제 ddokbaro.com은 여전히 중국정부에 "화합 당해 있습니다" 그런지라....제가 이사하면 텍스트큐브닷컴도 닫힐 가능성이 있어서, 그냥 조용히 티스토리에 있겠습니다. (텍큐닷컴으로 이미 예전에 도망가신 아는 분들이 오면 죽인다고 협박하는군요-_;;; )

근데....현재 네이버 블로그가 독립도메인을 지원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한번 그쪽으로 도메인만 옮겨보려고 합니다. 혹시나 네이버 블로그가 막혀 버린다면?!...그럼 네이버가 힘 좀 써주겠지요.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좀 큰 이슈가 되겠고요. 하하하;;; 그리고 전 네이버 블로거들. 특히 중국쪽 블로거들의 공적이 될......음;;; 그냥 조용히 티스토리에 있어야 될듯 합니다.

북경대학교 팀블로그 관련 이야기 :
[중얼중얼/블로그통사] - 제 꿈을 펼치겠습니다. - 블로그 산업협회 공모당선
[중국유학/바로 북경대] - 북경대학교 팀블로그를 주목하라! -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 중간점검

정책공감에서 국가브랜드 전략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그 내용들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국의 국가이미지는 분명히 상당히 낮으며, 이를 향상시킬 필요성은 언제나 제기되어왔던 일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우리나라 브랜드 가치는 중국보다 높다? 낮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획 보다는 실천이다. 말로는 뻔질나게 해 놓고 뒤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결국 사람에서 나오고, 사람이 행하는 것이다. 결코 이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 지금 이와 관련해서 몇가지 부글부글 거리는 것이 있으나....일단 참는다....제발...우리 잘하자고요? 네? ㅠㅠ 겉과 속이 같은 모습을 제발 보여주셔요. ㅠㅠ)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탄테와 신곡을 논하다(与但丁讨论神曲)라는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있는 사진이 인기이다. 당 사진은 중국의 현대화가 3명의 작품으로서 중국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포진해 있다. (화가 3명은 오른쪽 상단에 있는 3명임)

그 외의 설명은 밖으로 취재 안다니시고 집에만 있으시는듯한(비꼬는 것 맞다.) 한겨레의 유강문 베이징 특파원의 "세계 위인 불러모은 짝퉁 ‘아테네 학당’ 화제" 보시기 바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국 웹에 올라온 내용을 사실상 거의 그대로 번역해주시고 계시다^^ 유강문 기자님. 직접 발로 뛰어주셔요. 집에 앉아서 기사 검색하고 번역하는 건 기자의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보시면 겸사 겸사 중국의 08인권헌장은 없다. - 한겨레의 오도?한겨레여. 중국 08 헌장은 그냥 쓰레기다.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소설 쓰지 마시라고 드리는 말입니다. )


각설하고! 원판을 올리는바이다. 큰 화면으로 누가 누가 있나 한번 알아보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반한 어쩌고 하는 분들은 도조 히데키(일제의 전범)이 진시황에서 무릎꿇고 있는 장면을 보기 바란다. 반한?! 반일에 비하면 태양 앞의 양초다. 또한 왼쪽 상단에 보면 조선족 기타리스트 최건이 있는데, 본인도 얻어 듣기만 했던, 추이찌엔(崔健 최건)의 현재 중국 예술인들 사이에서의 영향력과 위치를 알 수 있다.

아래쪽은 중국어로 적혀 있는 답이다. 심심하시면 직접 답안을 한국어로 작성해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 본인은 귀찮아서리...^^;;

본 글은 초한 소열제 유비와 후주 유선 이라는 글을 보고 덧글로 단 내용입니다. 참고로 그냥 잡설입니다. 제대로 원문도 인용하지 않은;;; 다른 일도 바쁜데 하나하나 다 인용하기에는...전 날나리 역사학도라서 말이죠. 음하하하;;;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인물을 통해서 역사를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촉의 멸망은 다른 면으로 분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일단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서술하면 :

1) 정치적인 면.
촉은 "한"의 부흥이라는 절대적인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비가 처음 촉땅을 차지한 것의 명분도 한의 부흥이었으며, 나중에 스스로 황제가 된 것도 한을 이어가서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다못해서 그 유명한 제갈량의 출사표에서도 한의 정신을 이어서 천하통일을 하겠다는 명분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런 명분의 이유는 외부인과 내부인의 충돌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촉의 구성맴버는 당시 사천땅의 사람들이 아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권력을 일정정도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분명히 일정한 분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간단한 정치적인 처리 방법은 외부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고, 이는 위나라라는 공적을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2) 경제적인 면
사천 분지는 매우 좋은 땅입니다. 훗날 촉땅에서 웅기하는 이특 역시 촉땅을 처음 보고서 "이런 좋은 땅을 가지고 말아먹다니 븅~"라고 했다지요. 그만큼 촉땅은 농산품이 풍족한 땅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명분은 천하통일이고, 내부적으로 안정만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모순되는 듯한 이 내용은 사실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천하를 통일함으로서 그 이익을 당시 원주민들에게 나누어줄 가능성이 높았고, 이는 정치적인 명분과 더불어서 외부인과 원주민을 가까이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게 됩니다.

3) 지리적 이유
무엇보다 사천지방은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병구멍처럼 되었습니다. 양쪽의 넓은 평야가 있는데, 가운데는 아주 좁은 통로로 되어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좁은 통로를 막아버리면 매우 쉽게 수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천땅에 세워진 정권은 내부적인 반란이나 혼란이 아닌 이상, 왠만해서는 외부적인 공격에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반대로 하면, 외부적으로 공격해나가기도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갈량이라는 당대의 천재도 결국 수 차례의 원정을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정리하면 :
당시의 촉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자원을 계속 소비해가면서 외부로 공격성향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갈량이 죽고서, 전략을 바꾸어서 내부에서 안정을 찾게 되는 순간부터, 외부인과 내부인간의 갈등이 표면화 되었고, 내부 분열로 인하여 촉이 멸망했다라고도 서술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서로 다른 각도로 분석할 수 있겠지요. 전공이다 보니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잡설을 많이 적었군요.^^:: (원문들은 귀찮아서 인용안 했습니다. 음하하하;;; 나는 제대로 된 역사학도가 아닌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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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중얼중얼 :

해당 사실은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군사 무기의 발달로 사천으로의 공격은 나름 쉬워졌지만, 티벳의 지형은 아직도 매우 곤란한 지형임이 분명하다. 티벳을 중국이 잡고 있는 이유는 티벳에 있는 자원도 한 이유이지만, 인도와의 전쟁을 고려했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 분석에서는 우리는 영웅주의에 의하여 인물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영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도 당시의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음으로 일정한 제약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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