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기댈만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나 천방지축이어서 쉬이 잡히지 않는다. 만약 마음만을 생각하여 말을 하자면, 인생은 폭포처럼 매 순간 순간이 빠르게 변할 것이고, 쉬임이 없을 것이다. 당장 눈 앞만을 본다면,  모든 것이 별안간 지나가고, 컨트롤 할 수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어떤 사람도 지금 눈 앞에 최선을 다하게 되면 이러한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당신의 마음이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얾매여 있다. 만약 당신이 전자를 희망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기억이다. 인생의 급류는 마치 희망과 기억의 팽팽한 대결과도 같다. 당신이 만약 모든 기억을 없애버린다면, 당신 모든 인생을 없애는 것과 같다. 그러나 결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인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이 둘 사이에서는 분명히 약간의 편중된 쪽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것은 기억이 희망보다 강하고, 어떤 것은 희망이 기억을 지배한다. 이 둘 사이에서 중용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이 둘 간의 편중됨으로 인하여 다양한 인생들의 차이들이 만들어진다.

우리 잠시 이렇게 말해보도록 하자. 인생이은 앞으로(미래의 희망이 많음) 가는 것과 뒤로(과거의 기억을 중시) 가는 것이 있다. 뒤로가는 형의 특징은 역사를 좋아한 다는 것이다. 역사는 전부 인생을 기록한 것이다. 앞으로 가는 형은 역사를 매우 조급해 하며, 급하게 앞으로 갈려고 한다. 급하게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로 내달린다. 그들은 현실이 아닌 이상을 원한다. 역사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이상을 만든다. 그에 반하여 미래로 급히 가려는 사람들은 이상 속에서 현실을 만든다. 문학중에 소설이나 극본은 바로 이러한 요구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인생을 묘사하고 있는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상적인 미래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인생이 어찌 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만약 계속 그러한 방향으로 내달린다면, 운명이라고 부르는 어떤 힘을 만나게 된다. 당신을 밖으로 내쫒고, 당신을 놀린다. 그는 그렇게나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나 냉정하고 슬프다. 당신이 만약 과거는 전부 지나간 일일 뿐이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미래는 얼마나 요원하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가. 미래라는 것은 당신이 결정할 수 없고, 당신에 속해 있지도 않다. 당신의 미래가 점차 다가올 수록, 당신의 이상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거나 점차 변질되어 갈 것이다. 당신이 만약 개인의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계속 앞만을 바라보며 달려간다면, 대부분의 비극으로 이어질 뿐이다. 모든 소설과 극본의 최고 경지도 반드시 비극이다.

쉽게 물이 넘치는 장강 강변에서 뽕나무를 심는 것처럼 너무나 불안정하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 인생은 소설과 극본에서 종교로 빠져들기 쉽다. 종교나 소설의 인생은 모두가 미래의 희망을 기둥으로 삼는다. 단지 종교는 미래의 희망을 더 길게 늘려서 하느님과 천국이라는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세계의 일 자체가 아닌 것을 당신의 미래의 희망으로 삼는다면 당신은 더욱 현재에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종교 역시 비극이다. 단지 최후의 무대가 무한대로 뒤로 가는 것이다. 종교의 인생 역시 연극과 소설의 인생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희망을 품고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돌격하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앞으로 가는 사람들의 열정의 표시이다.

역사의 인생은 이와 같지 않다. 그는 과거를 회상함으로, 미래을 억측하고는 한다. 과거는 과거이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어떤 기억을 남기지 아니하였는가? 이런 흔적들을 당신이 가지고 있겠다는데 어느 누가 뺏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진실한 소득이다. 영원히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고,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 인생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당신의 희망으로는 가지 않고, 당신의 희망과 심지어 점점 더 멀어진다. 희망은 점차 사글어들지만, 기억은 점차 늘어나서 계속 풍부해진다. 인생에서 얻는 것이라고는 기억 뿐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생활이 인생에 주는 진정한 선물이다. 당신은 이를 소중히 생각해야된다!

중국의 국민성은 대체적으로 뒤로가는 형이다. 그래서 역사가 발전이 문학의 발전을 뛰어넘었다. 문학 중에 소설과 연극은 가장 발달하지 않은 두 항목이다. 중국의 관념에서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은 욕망(欲)이고, 과거를 그리워 하는 것은 정(情)이다. 부부지간에는 정이 욕망을 이긴다. 중국의 문학에서 남녀는 그리 미래를 향해서 열애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대해서 깊은 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관념에서 이것이  덕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온화하고 후덕함이 시의 목표라 함(温柔敦厚诗教也)이다. 또한  부모뿐만이 아니라 조상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함으로 사람들의 덕이 돈독하게 된다(慎终追远,民德归厚矣)라고도 하였으며, 다시 한번을 죽고 한번을 살아야 정의 깊음을 알 수 있다.(一死一生乃见交情)라 하였다. 당신이 과거를 잊지만 않으면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과 같이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감정 역시 매우 뜨거울 수 있고, 낭만적일 수 있다. 단지 문학이 아니고 논리와 도덕이 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서양 사람들의 사랑은  미래의 행복을 중시한다. 중국인들의 사랑은 과거의 정(情)과 의리(义)를 중시한다. 서방인들은 죽은 사람을 하나님에게 보내지만, 중국인들은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한다. 중국인들은 개인이 운명과 싸우는 것을 자주 무시하고는 한다. 편안히 운명에 맞추어 살라(安命)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단지 과거의 것을 보고만 할 뿐이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이다. 그의 기억 속에 어떤 것이 새겨지기만 한다면 온 힘을 다해서 보호하여 결코 모호해지거나 변색되거나 소멸되지 않게 한다. 이것은 또 다른 강력하고 힘 있는 인생이다. 모든 힘을 당신의 마음의 깊은 곳에 쓰게 된다. 그가 미래에 대해서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희망은 과거를 꽉 움켜잡고 그의 미래 생활의 기초로 삼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다. 만약 당신이 그의 기억에 침입 한다면, 그는 당신을 생명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충성이여! 효도여! 모두가 이 도리(道理)이다. 처음 이를 보면 너무나 한 곳에 얾매여 있다고 ㅅ보인다. 사실 아무곳으로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얻지 않을 수 있다. 그가 앞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가 한걸음을 간다면 그 한걸음만큼의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는 미래를 과거에 쌓아가고, 자신을 타인으로 전환한다. 죽은자와 산자 그리고 나도 모두가 하나가 된다.  그러나 개인의 미래의 행복에 대해서는 별로 특별한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

뒤로 가는 형의 문화가 발달해 감에 따라서 종교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가는 형과는 다르다. 앞으로 가는 형은 희망을 중시하고,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뒤로 가는 형은 회상을 중시하고 보답을 중시한다. 중국의 종교나 문학 역시 이러하다. 중국인의 관념안에서 정은 언제나 욕망을 이긴다.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언제나 행복을 기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가는 형에서는 현실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 앞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앞에 있고, 그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쉽게 자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악론이 발전하게 되었다. 뒤로 가는 형은 현재의 현실에 대해서 만족한다. 마치 하느님이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준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은혜에 보답하기만 하고, 단지 나 지신이 여기서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마치 더 이상 하느님에게 기원할 게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의 자아의 지위를 높아지게 되었고, 성선론이 생겨났다. 우리는 전자의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후자의 하느님은 내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마음 속의 앞으로 가는 것과 뒤로 가는 것은 각 자가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결국은 각자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원망을 하던지, 부러워 하던지, 모두가 인성(人性)의 장엄인가? 어느 누가 자신의 인생을 장중하고 엄숙하지 않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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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그는 앞으로 가는 것을 상당히 반대하고 있다. 여기서 쳔무의 사상을 옅볼 수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일단 당시의 시대 배경을 알아야된다. 당시에 많은 중국의 지식층은 서방의 것이 모두 옳다고 하면서 무조건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 중에 쳔무는 중국의 문화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중국자체를 중시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위의 글 같이 조금은 극단적인 글이 나왔던듯 싶다.

아마 쳔무 본인도 알 것이다. 과거로 가는 형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그는 이를 한 문장으로 처리하고 말았지만, 그 걸음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발걸음이다. 또한 쳔무는 어디까지나 상당히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서 이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인류의 마음 속의 미래과 기억은 항상 똑같지 않고, 언제나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특히 젊을 때에는 미래로, 늙어서는 기억으로 향하는 경향을 말이다. 인생의 시간에 따라서 희망과 기억의 비율은 계속 달라지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의 수필에서 그의 한계 또한 명심해야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양의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좀 명심해야될듯 하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1. Favicon of http://hitme.kr BlogIcon 최면 2009.04.09 14:25

    맞습니다 맞고요~ 절대적인 것은 없지요~

    정욕이라.. --;; 생각해보니 심각해지는 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4.09 17:14 신고

      제가 번역했지만...저도 확실히 원문을 이해했다고 하기가 머하군요. 정말......번역하기가 애매한 구절이 많이 있었습니다 .음하하하..ㅠㅠ

  2. 시골 2009.04.10 01:04

    情 欲의 시간 선상에 두고 대비시킨다라..흥미롭군요.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2009.04.10 01:43 신고

      어찌보면 망상일지도요. 어차피 한가로운 생각이니..그냥 한가롭게 망상에 세계로~~~

  3. 소동파 2010.09.09 02:14

    다시 한번 경탄을 금치 못하겠네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欲과 뒤를 회상하고자 하는 情을 대비하여 중국인의 성격과 문화를 情의 문화로 정의하고 종교와 투쟁의 서양문화와 대비되는 인문과 화합의 중국문화를 설명해 냅니다.
    왜 중국은 역사 대국이고, 소설보다 시가 발달하고 연극이 부진한지. 그리고 서양의 서사가 왜 비극으로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기독교로서 귀결되는지.

    "그가 앞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가 한걸음을 간다면 그 한걸음만큼의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는 미래를 과거에 쌓아가고, 자신을 타인으로 전환한다. 죽은자와 산자 그리고 나도 모두가 하나가 된다. "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강한 힘을 느낌니다. 아울러 현대 중국의 '대약진'이 위의 글에서 읽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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