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호수 위의 한가로운 생각"을 쓰게 된 것은 올해 봄부터 시작된 한 친구의 종용 때문이었다. 그래서 약 4개월 간 만지작 거려 30편의 문장을 책으로 엮었다. 사실 본인의 생활을 그렇게 한가롭지만은 않다. 그래도 언제나 태호(太湖)에서 유유히 자연과 하나됨이니, 어느 정도의 한가로움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사상들은 이러한 한가로움 중에서 싹이 트고 자라났던 것이다. 사실 본인의 생각은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다. 이는 지금 현재의 실제 인생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도움을 줄 생각도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본인에게 현재의 실제 인생 속의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나 능력이 있다고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이렇게 방관자처럼 한 구석에 서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한가로운 사유들을 펼칠 뿐이다. 본인은 이 20편의 문장으로 본인의 잡상이 모두 쓰여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이 잡상을 3~4개월간의 한가로운 생활에서 만들어 한가롭게 기록한 것 뿐이다. 본인이 볼 때,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3~4일 혹은 3~4시간내로 서둘러서 볼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본인이 원고들을 오래 동안 발표하지 않고, 오래 동안 쌓아올려서 발표한다면, 독자들이 너무나 급하게 나의 <한가로운 생각>을 읽을까 두렵다.

속독은 "한가로운 생각"의 맛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먼저 30편의 문장을 발표하여 독자들의 급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앞으로 또 다시 한가로운 시간들이 주어진다면, 얇은 한 권 또 한권을 출판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한가로이 독서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본인은 이 <한가로운 생각>을 통하여 고대의 선진제가들(유가,묵가, 도가, 법가)처럼 일가를 이루어서 세상에 뜻을 펼치고자 함이 아니다. 또한 송명의 이학자선생님들(정호, 정이, 주희, 육유, 왕양명)처럼 절학을 계승하거나 하나의 학파(道统)을 만들고자 함이 아니다. 본인은 결코 서방 유럽의 철학자들처럼 계통적이며 조직적일 뿐 만이 아니라 엄격하고 정밀하게 논리적인 진행을 통해서 하나의 객관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우주와 인생의 비밀을 계시받기 위함이 아니다. 본인은 어디까지나 한가로운 생각을 한 것일 뿐이다. 본인은 첫 문장을 쓰고 있을 때, 결코 그 다음 문장을 생각하지 않았고, 두번째 문장을 쓰고 있을 때에는 처음 문장을 생각하거나 보충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한가로운 시간에 내키는대로 생각하고 쓴 것일 뿐이다. 어떻게 하리라는 것도 없으며, 단지 자연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본인은 이 <한가한 생각>을 쓰기 전에 본인을 종용한 친구는 이미 일정한 제한을 걸어왔다. 장편의 연속적인 글보다는 한 문장이 2~3천자를 넘지 않기를 원했다. 그리고 본인은 계속 그렇게 써내려갔다. 본인이 느끼기에 일정한 글자 수의 제한이 있는 것이 오히려 번잡하게 만들지 아니하였다. 마음 속에 무엇을 써야겠다고 미리 생각을 해버리면, 처음 펜을 잡을 때의 한가로움이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2~3000자는 불현듯 흐르듯이 써버린다. 또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동상처럼 반드시 어떠한 이론을 만들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어떤 때에는 위에서 길게 말하고, 아래쪽에서는 조금만 말한다. 또 어떤 때에는 위에서 조금 말하더니 아래쪽에서 길게 써버린다.

그리고 본인이 글을 적을 때에는 미리 어떤 제목을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복잡하고 심도있는 것도 3~4000자안에 있고, 간단하고 평범한 것도 3~4000자 안에 있다. 글을 다 쓰고 난 뒤, 문장 속 한두자를 뽑아 제목으로 걸어놓는 것이다. 어떤 내용은 앞의 글에서 다 말하지 못한 것을 다음 글에서 보충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중복하기도 한다. 어떤 글은 다른 글의 예시일 뿐일때도 있고, 어떤 것은 두 글 간에 모순이 있고,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것은 더 많은 말을 해야되나 귀찮아 그대로 펜을 멈추어 버린 것도 있다.

이 문장들의 순서는 모두 쓰여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고, 다시 재배치 하지 않았다. 중간의 한두편은 예전에 쓴 글도 있는데, 고문체여서 간략하게 고쳐 썼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은 본인 한 사람에 의하여 4개월동안 쓰여진 것이니 만큼 분명히 어떠한 체계가 있다. 이 체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단지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한가로이 만들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럼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될 것이다.

본인을 종용하여 이 책을 쓰게 한 사람은 씨에요우위이(谢幼伟)이다. 그는 션 신문(申报)의 부간(副刊)인 쉬에진(学津)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는데, 본인이 원고를 시작하자 폐간되고 말았다. 본인이 흥미을 이끌어 내어서 결국 이 조그마한 책을 있게 한, 씨에선생의 종용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올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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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머...어떻게 보면 이 한가로운 생각중에서 가장 한가롭지 않고, 가장 어려운 문장들이라고 해도 될 듯 하다. 큭....사실 지금에야 말하지만 中国思想通俗讲话가 번역하기에는 더 쉽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연집이고, 또한 본인의 전공은 아니지만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내용인지라....그런데 여친님의 최종 결정에서 이 글로 선택되었다. 흑...앞날이 끔찍해라.

번역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아시리오. 문학작품의 번역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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