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살다보면 쉽게 발견되는 재미있는 생각이 있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시작하여서 "대통령"에 대한 절대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보아도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최고지도자들은 절대적이다. 그들은 신성하기까지 하다.

중국인들에게 일반적인 경찰을 비롯하여서 지방관리나 성장급정도도 다 개새끼들이다. 다들 도둑넘들이고 부정부폐의 상징이다. 그런데 주석이나 총리 혹은 상무위원정도가 되면 갑자기 절대적인 존재로 변화한다. 그들은 욕하는 것은 마치 아버지를 욕하는 것과 같아진다.

그래서 최근 원쟈바오 중국 총리가 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손자가 보지 않았으면 하자, 나름 큰 네티즌들의 운동이 일어났고, 나름 반항의 본산지라는 북경대도 후진타오가 오자 열광을 하면서 후형! 후형님! 화이팅!을 외친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는 과거로부터 내려온다. 거칠게 말하여, 수당시대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관리는 성선론에 의거하였다. 다시 말해서 모든 관리는 군자이며, 그들은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수당시대부터는 리(吏)라고 불리는 실무종사자들에 대해서는 성악설을 대입한다. 그들은 부폐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지금 현재에는 사실상 모든 관리들은 문제가 있고, 부폐한 존재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단지 최고지도자들만이 아직도 과거의 성선설을 이어 받고 있다.

본인이 생각할 때, 중국의 정치 문화에서 완전히 성선설이 사라지는 날.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영역이 사라지는 날이 중국 민주화가 진정 꽃 피는 때라고 생각한다.


언어학을 하시는 분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은 지금 위의 화면에 황홀해 하리라 장담한다. 어차피 알 사람은 위의 화면만 보아도 알겠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 위의 싸이트는 자신이 알기를 원하는 한자, 위에서는 把을 입력하면 그에 관련된 중고 한자음이 통합적으로 나온다. 성모, 성조등등은 기본이고, 여러 학자들이 각자 비정한 음들까지 모두 나온다.

이것만 있으면 얼마나 인생이 편해지는지, 아는 분들은 아시리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중고음 검색 : http://www.eastling.org/tdfweb/midage.aspx
상고음 검색 : http://www.eastling.org/OC/oldage.aspx


저도 당연히 이번 유튜브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구글이 무조건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분명히 "타협"을 했으니까요. 물론 최근에는 중국에서 유튜브가 접속이 안되는 현상이 발생하긴 했습니다만 말이죠. (거참 위키는 풀어주고 유투브를 막는건 무슨 심뽀일까나..)

각설하고. 다들 실명제를 너무 욕하시길래. 이런 생각도 해보시라는 의미에서 올리겠습니다. 실명제를 과도하게 강요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분명히 타격을 줍니다. 어떤 싸이트에 가입을 하던지 자연스럽게 의심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한국인들의 이미 고정화된 의식도 분명히 문제입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를 생각하면 실명제가 나쁘기만 한것은 아닙니다. 판매자들이야 당연히 실명을 공개해야될 것이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은행과의 연동을 통해서 보다 편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로 인한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쇼핑 말고 전자결제 역시 같은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와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일부에서만 행해지면 될 일입니다. 전자상거래가 필요한 싸이트에서만 사용하면 될일이지요.....위에서도 말했지만...단지 실명제 자체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시라고 글을 써봅니다.

전자상거래등 특별한 경우가 아닌데 실명과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행동은 반대이며, 언론의 자유가 허락되어야되는 게시판을 비롯한 곳에서의 실명제는 단순히 언론탄압밖에 되지 않는다.....라는게 결론이랄까요? ^^::

어디까지나 꿍시렁꿍시렁....다들 너무 극단적으로만 가는건....무서워요^^::

인생에서 가장 기댈만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나 천방지축이어서 쉬이 잡히지 않는다. 만약 마음만을 생각하여 말을 하자면, 인생은 폭포처럼 매 순간 순간이 빠르게 변할 것이고, 쉬임이 없을 것이다. 당장 눈 앞만을 본다면,  모든 것이 별안간 지나가고, 컨트롤 할 수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어떤 사람도 지금 눈 앞에 최선을 다하게 되면 이러한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당신의 마음이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얾매여 있다. 만약 당신이 전자를 희망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기억이다. 인생의 급류는 마치 희망과 기억의 팽팽한 대결과도 같다. 당신이 만약 모든 기억을 없애버린다면, 당신 모든 인생을 없애는 것과 같다. 그러나 결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인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이 둘 사이에서는 분명히 약간의 편중된 쪽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것은 기억이 희망보다 강하고, 어떤 것은 희망이 기억을 지배한다. 이 둘 사이에서 중용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이 둘 간의 편중됨으로 인하여 다양한 인생들의 차이들이 만들어진다.

우리 잠시 이렇게 말해보도록 하자. 인생이은 앞으로(미래의 희망이 많음) 가는 것과 뒤로(과거의 기억을 중시) 가는 것이 있다. 뒤로가는 형의 특징은 역사를 좋아한 다는 것이다. 역사는 전부 인생을 기록한 것이다. 앞으로 가는 형은 역사를 매우 조급해 하며, 급하게 앞으로 갈려고 한다. 급하게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로 내달린다. 그들은 현실이 아닌 이상을 원한다. 역사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이상을 만든다. 그에 반하여 미래로 급히 가려는 사람들은 이상 속에서 현실을 만든다. 문학중에 소설이나 극본은 바로 이러한 요구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인생을 묘사하고 있는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상적인 미래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인생이 어찌 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만약 계속 그러한 방향으로 내달린다면, 운명이라고 부르는 어떤 힘을 만나게 된다. 당신을 밖으로 내쫒고, 당신을 놀린다. 그는 그렇게나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나 냉정하고 슬프다. 당신이 만약 과거는 전부 지나간 일일 뿐이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미래는 얼마나 요원하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가. 미래라는 것은 당신이 결정할 수 없고, 당신에 속해 있지도 않다. 당신의 미래가 점차 다가올 수록, 당신의 이상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거나 점차 변질되어 갈 것이다. 당신이 만약 개인의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계속 앞만을 바라보며 달려간다면, 대부분의 비극으로 이어질 뿐이다. 모든 소설과 극본의 최고 경지도 반드시 비극이다.

쉽게 물이 넘치는 장강 강변에서 뽕나무를 심는 것처럼 너무나 불안정하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 인생은 소설과 극본에서 종교로 빠져들기 쉽다. 종교나 소설의 인생은 모두가 미래의 희망을 기둥으로 삼는다. 단지 종교는 미래의 희망을 더 길게 늘려서 하느님과 천국이라는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세계의 일 자체가 아닌 것을 당신의 미래의 희망으로 삼는다면 당신은 더욱 현재에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종교 역시 비극이다. 단지 최후의 무대가 무한대로 뒤로 가는 것이다. 종교의 인생 역시 연극과 소설의 인생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희망을 품고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돌격하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앞으로 가는 사람들의 열정의 표시이다.

역사의 인생은 이와 같지 않다. 그는 과거를 회상함으로, 미래을 억측하고는 한다. 과거는 과거이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어떤 기억을 남기지 아니하였는가? 이런 흔적들을 당신이 가지고 있겠다는데 어느 누가 뺏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진실한 소득이다. 영원히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고,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 인생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당신의 희망으로는 가지 않고, 당신의 희망과 심지어 점점 더 멀어진다. 희망은 점차 사글어들지만, 기억은 점차 늘어나서 계속 풍부해진다. 인생에서 얻는 것이라고는 기억 뿐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생활이 인생에 주는 진정한 선물이다. 당신은 이를 소중히 생각해야된다!

중국의 국민성은 대체적으로 뒤로가는 형이다. 그래서 역사가 발전이 문학의 발전을 뛰어넘었다. 문학 중에 소설과 연극은 가장 발달하지 않은 두 항목이다. 중국의 관념에서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은 욕망(欲)이고, 과거를 그리워 하는 것은 정(情)이다. 부부지간에는 정이 욕망을 이긴다. 중국의 문학에서 남녀는 그리 미래를 향해서 열애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대해서 깊은 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관념에서 이것이  덕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온화하고 후덕함이 시의 목표라 함(温柔敦厚诗教也)이다. 또한  부모뿐만이 아니라 조상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함으로 사람들의 덕이 돈독하게 된다(慎终追远,民德归厚矣)라고도 하였으며, 다시 한번을 죽고 한번을 살아야 정의 깊음을 알 수 있다.(一死一生乃见交情)라 하였다. 당신이 과거를 잊지만 않으면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과 같이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감정 역시 매우 뜨거울 수 있고, 낭만적일 수 있다. 단지 문학이 아니고 논리와 도덕이 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서양 사람들의 사랑은  미래의 행복을 중시한다. 중국인들의 사랑은 과거의 정(情)과 의리(义)를 중시한다. 서방인들은 죽은 사람을 하나님에게 보내지만, 중국인들은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한다. 중국인들은 개인이 운명과 싸우는 것을 자주 무시하고는 한다. 편안히 운명에 맞추어 살라(安命)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단지 과거의 것을 보고만 할 뿐이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이다. 그의 기억 속에 어떤 것이 새겨지기만 한다면 온 힘을 다해서 보호하여 결코 모호해지거나 변색되거나 소멸되지 않게 한다. 이것은 또 다른 강력하고 힘 있는 인생이다. 모든 힘을 당신의 마음의 깊은 곳에 쓰게 된다. 그가 미래에 대해서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희망은 과거를 꽉 움켜잡고 그의 미래 생활의 기초로 삼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다. 만약 당신이 그의 기억에 침입 한다면, 그는 당신을 생명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충성이여! 효도여! 모두가 이 도리(道理)이다. 처음 이를 보면 너무나 한 곳에 얾매여 있다고 ㅅ보인다. 사실 아무곳으로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얻지 않을 수 있다. 그가 앞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가 한걸음을 간다면 그 한걸음만큼의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는 미래를 과거에 쌓아가고, 자신을 타인으로 전환한다. 죽은자와 산자 그리고 나도 모두가 하나가 된다.  그러나 개인의 미래의 행복에 대해서는 별로 특별한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

뒤로 가는 형의 문화가 발달해 감에 따라서 종교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 가는 형과는 다르다. 앞으로 가는 형은 희망을 중시하고,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뒤로 가는 형은 회상을 중시하고 보답을 중시한다. 중국의 종교나 문학 역시 이러하다. 중국인의 관념안에서 정은 언제나 욕망을 이긴다.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언제나 행복을 기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가는 형에서는 현실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 앞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앞에 있고, 그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쉽게 자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악론이 발전하게 되었다. 뒤로 가는 형은 현재의 현실에 대해서 만족한다. 마치 하느님이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준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은혜에 보답하기만 하고, 단지 나 지신이 여기서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마치 더 이상 하느님에게 기원할 게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의 자아의 지위를 높아지게 되었고, 성선론이 생겨났다. 우리는 전자의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후자의 하느님은 내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마음 속의 앞으로 가는 것과 뒤로 가는 것은 각 자가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결국은 각자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원망을 하던지, 부러워 하던지, 모두가 인성(人性)의 장엄인가? 어느 누가 자신의 인생을 장중하고 엄숙하지 않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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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쳔무(钱穆)에 대하여 궁금하신 분은 쳔무(钱穆)는 누구인가?
본 글은 모든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환영합니다.  본 글은 의역식 번역입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그는 앞으로 가는 것을 상당히 반대하고 있다. 여기서 쳔무의 사상을 옅볼 수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일단 당시의 시대 배경을 알아야된다. 당시에 많은 중국의 지식층은 서방의 것이 모두 옳다고 하면서 무조건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 중에 쳔무는 중국의 문화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중국자체를 중시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위의 글 같이 조금은 극단적인 글이 나왔던듯 싶다.

아마 쳔무 본인도 알 것이다. 과거로 가는 형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그는 이를 한 문장으로 처리하고 말았지만, 그 걸음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발걸음이다. 또한 쳔무는 어디까지나 상당히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서 이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인류의 마음 속의 미래과 기억은 항상 똑같지 않고, 언제나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특히 젊을 때에는 미래로, 늙어서는 기억으로 향하는 경향을 말이다. 인생의 시간에 따라서 희망과 기억의 비율은 계속 달라지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의 수필에서 그의 한계 또한 명심해야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양의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좀 명심해야될듯 하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지금 현재 법이 무엇인지?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혼란스럽다. 원래 뜻을 다시 되새김질 해보는것은 어떨까? 법이라는 한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도록 하자. (이 글은 동아대학교 이종길 교수님의 강의의 첫부분을 듣고 본인 식으로 바꾼 것이다.)

  요즘은 서양법의 영향으로 법의 여신인 미켈에서 법의 정신을 찾는 경우가 많다. 두 눈을 가리고,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미켈의 이미지를 우리는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법이라는 자는 원래 동양에도 있었던 개념이다.  왜 굳이 서방에서만 법의 정신을 찾는가? 우리 한번 동양에서의 법이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정의의 여신님은 잠시 냅두자고요^^


설문해자(说文解字)에 따르면 : ",刑也。平之如水。从水,廌所以触不直者去之,从去,会意. "이라고 했다. 이는 무슨 뜻인가?
廌은 해태이다. 해태(獬豸)는 동아시아에 동아시아 고대 전설 속의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로, 원래 해치가 원말이다. 사자와 비슷하나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있다고 정의되어 있는 ‘해태’는 그 형태적 특징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고, 여름에는 늪가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산다고 알려져 있다.

한자로는 해(獬)가 부정한 사람을 보면 뿔로 받는다는 신수(神獸), 신통한 양 등을 뜻하고, 치(豸)는 웅크리고 노려보다, 풀리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어로는 ‘the unicorn-lion(외뿔 달린 사자)’ 또는 ‘an omniscient mythical beast(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진 상상의 짐승)’이라고 풀이된다.(위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게 앞에 있는 물 수(水)변이다. 특히 설문해자에 나오듯이 마치 물처럼 평평해야되며, 물처럼 스스로 깨끗해져야 된다는 의미이다. 법(
灋)은 원래  물처럼 평평하고 깨끗하게 정의를 확실히 구현해낸다는 뜻이다. 냉정함을 위해서 눈을 가렸다는 미켈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음을 편히 하려고 노력하는 법의 원래 뜻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되지 않을까?

법이 점차 망가져가는 지금. 특히 법을 제정하고, 판단하고, 집행하는 곳들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선 법적 문제가 심각해지는 지금! 다시 한번 원래의 뜻을 생각해보자. 제발...



그냥 중얼중얼인데...중국의 신법가라는 법학자들의 싸이트의 메인에 이 해태가 서 있다. (해당 싸이트 주소는 http://www.xinfajia.net/ ) 한국에서는 중국의 법을 무시하고는 하는데, 사실 노동법이나 물권법은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더 발달했다고 한다.



취중진담의 노래가사는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다. 그런데  난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다.
난 취했다. 음하하하.....난 미쳤다...음하하하하.

씨벌..................................
난 미친놈이다.
............................
씨벌...
난 이렇다...음하하하..................
누구에게도 친구일뿐이다. 음하하하..


씨벌.......니들 다 잘났다. 그리고 난 못 났다...
음하하하하...
...................................................울고 싶은데 정작 눈물이 나지 않는 내 자신이 싫다.
.........................

음하하하하..........................진짜 울고 싶다.ㅎㅎ
웃어야지. 근데 내가 웃는데 웃는게 아닌걸....ㅠ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소하님이 제대로 생각을 말해주시거나 혹은 실수한 것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군서치요를 기준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하시는군요.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군요. 

1) 군서치요 자체의 문제
일단 군서치요 자체의 해석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언급하신 군서치요를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治要>作“還自遗咎”
그런데 소하님은 해석을 해석을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遺. "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잘못 쓰신 것이라고 하여서,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还." 라고 하여도 遗 자체가 해석이 없는 것은 동일합니다. 물론 의역이라시니 그럴 수 있다고 넘겨봅시다.

그런데 군서치요를 따를 생각이셨으면, 당연히 군서치요에 대한 언급을 해주셨어야 된다고 봅니다. 한글자...한 획을 가지고 목숨거는 것이 고문작업인데, 글자 하나가 빠지고, 다른 글자가 들어오는 상당히 큰 변동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점은 고문작업에서 기본적인 일을 빼놓으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2) 군서치요의 판본적합성 문제
군서치요는 중국 당나라 정관(貞觀) 5년(631)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이 문제냐? 보통 고문의 고증이나 해석할 때 가장 큰 문제가 판본문제이고, 조금이라도 과거에 가까운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후 학자들의 주석들도 중요하긴 합니다만...군서치요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예외 중에 예외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다른 판본을 보도록 하죠.

《老子》郭店楚簡甲本 : [ㄓ/木]而浧之,不不若已。湍而群之,不可長保也。金玉浧室,莫能獸也。貴福喬,自遺咎也。攻述身退,天之道也。

《老子》甲本 : [才直]而盈之,不●●●。●●●●,不可長葆(保)之。金玉盈室,莫之守也。貴富而〔馬高〕(驕),自遺咎也。功述(遂)身芮(退),天●●●。

《老子》乙本 : [才直]而盈之,不若亓已。[才短](揣)而兌(銳)之,不可長葆(保)也。金玉●室,莫之能守也。貴富而驕,自遺咎也。功遂身退,天之道也。

《老子想爾注》 : 持而滿之,不若其已;揣(ㄔㄨㄞˇ)而悅之,不可長寶。金玉滿室,莫之能守;富貴而驕,自遺咎。名成功遂身退,天之道。

기본적으로 "還"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군서치요가 정확하다고 하신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별 할말은 없습니다만(그것 자체야 개인의 해석문제이니..) 기본적인 주류의 생각 자체를 명기하지 않은 것은 기본적인 고문해석 원칙과 그리 부합한다고 보기는 힘들듯 합니다. 특히 해당 글이 고문해석의 원칙을 강조하고 제대로 원칙을 지키지 않는 글을 비판하는 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식의 해석과 설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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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북경대학교 역사과 석사과정의 김바로라고 합니다. 아마 저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 북경대학교 입학시험. 그 속의 부끄러운 한국인. 을 쓴 사람입니다. 그 때 명예훼손 이야기도 나왔었죠. 그런데 올해 또 한번 고소한다고 하셔야 될듯 합니다.

제가 아는 정보로는, 작년하고 다르게 이번에는 북경대 한국유학생회 차원에서 입시학원들과 유학원과 접속을 하였습니다. 자제를 촉구하는 것은 물론 해결 방안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어디 학생회가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냐"라고 하셨다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저를 언급하시면서 불러오라고 하셨다지요?

결론적으로 작년과 똑같이 제대로 허가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자리를 만들고, 마음대로 현수막을 걸어버릴 생각이라시지요? 좋습니다. 저도 제가 쓴 글의 책임을 짊어지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랬고, 뒤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습니다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올해 시험 보는 장소에 가서,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따위 일을 벌이냐고요? 전 북경대학교 본과 졸업생이자, 현재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굳이 보통 분들이 쉽게 받아들이실 이유를 말하자면, 기자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자"로서 사회적인 문제를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실 기사만 쓸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글을 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당일의 어처구니 없는 현장만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면 되겠지요. 하지만 전 그런 일 자체가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제발 지금 하려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경고합니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셔서, 여러 학원들이 북경대 한국유학생회의 아래에서 다 같이 순순하게 응원하시기를 바랍니다. 북경대 입학시험은 당신들의 세력싸움이나 기싸움의 장소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땀방울을 시험받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요즘 유학생들 참 힘들죠? 여행가기도 힘들죠? 환율의 고통을 겪으면서 그렇게 꿈꾸던 유학이나 여행. 그런데 정작 외국에 나가게 되면 가장 고민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옷이요? 어떤 곳이든 사람 사는 곳입니다. 음식이요? 먹어도 안 죽습니다.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외국인들에게 줄 선물입니다. 싸고 괜찮고, 그리고 겸사겸사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주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아래의 상품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인천공항에서 살 수 있는 기념품입니다. 제가 산 것은 핸드폰 고리입니다. 가격은 보시는대로 21달러입니다. 물론 5개에 21달러입니다. 대충 계산을 하면 3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입니다. 하나에 약 5천원 정도 하는군요.

외국인들에게는 저렇게 조그마하고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선물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한국 특유의 색과 실용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 한국어 학생들을 위해서 매 학기 말에 발표대회 선물이 필요해서 매번 한국에 갈 때 마다 10개씩 구매하고는 한답니다. 그리고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한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여친님 먼저 보내고 이동해서 비행기를 탑승하느라고 좀 허겁지겁 달리느라고 힘들었다. 특히 한국돈이 애매하게 모자라서 환전하러 갔다 오니까 수고했다고 음료수를 주신 직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성함도 모르는군요^^


그리고 겸사 겸사 외국나갈 때의 필수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권!!!! 
여권!!!!
여권!!!!

무조건 챙기십시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제발 좀 챙기십시오!!! 다른거 다 필요 없습니다. 돈이요? 송금하면 됩니다. 옷이요? 거기서 사면 됩니다. 하지만 여권은 결코 잃어버리시면 안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올 때, 인천공항에 가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 6시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살짝 피곤하다. 중국 가는 길이 지겨울 뿐이다. 그냥 텔레포트 하면 안되나? 그런데 뒤에서 여성분의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 속으로 혹시? 설마..라는 생각을 했다. 그 여성분 전화를 한다.

"저기.XXX 항공사죠?..여권 없으면 비행기 못타나요?"
역시나였다. 본인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반드시 이런 분들 만난다. 참고로 위의 질문은 당연히 안된다. 당연히 못탄다. 한국에서 어떻게 나갔다고 하자. 그런데 상대 국가에서는??? 그쪽에서 주민등록증을 믿어줄 것 같은가? 그냥 밀입국취급이나 당할 것이다.

제발 부탁이자. 다른거 다 안 챙겨도 된다. 여권!!!! (난 다르다라는 생각은 버려라-_- 차라리 본인처럼 평소에 덜렁거리는 분들이 여권은 반드시 챙기더라...)

自遺咎也. 자유구야. - 노자 9장.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기게遺 되니,  (임채우)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긴다遺.         (이현주)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길遺 뿐이다.  (김용옥)
스스로自 허물이咎 될 뿐이니(遺?), (이경숙)

  “咎(허물 구)”자를 모두 현대의 대표적인 훈(의미)인 “허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번역이 틀렸다고 크게외치던 사람들의 번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표적인 오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렇게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遺. 

   허신의 《설문해자》를 보면 “咎, 災也.- 구咎는 재앙災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咎”자를 후대에 파생된 의미(현재의 의미)인 “허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뜻이 통하지 않게 되는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어(어휘)”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의미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소하님의 고대한어1 사어詞語(어휘)의 개념.라는 글. 중의 일부이다.

개인적으로 그렇지! 이러다가... 마지막에 헉! 했다. 돌아오네遺라니??!!

遺:《說文》亡也。《集韻》餘也。《正韻》失也。 소하님이 언급한 설문은 亡이라고 하고 있다. 그럼 亡은 무엇인가? 우리도 잘 아는 없앨 망자이다. 기본적인 뜻은 "없다" "도망가다" "잃어버리다" "죽다" "멸망하다"등이며, 망자는 같은 설문에서는  逃也。라고 하여 "도망친다"는 의미가 강하다. 참고로 후대의 뜻인 집운은 "남음"이다. 정운은 "잃어버림" 대체 遺의 어디에 "돌아오네"라는 뜻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고문의 해석은 앞뒤도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문장의 앞부분은 貴富而驕 "부귀로 교만해지면"으로 해석이 된다. 그 뒷문장을 보면, 功述身芮,天之道也 (솔직히 여러가지 이유로;; 해석하기 곤란하지만, 억지로 해석을 하면) "지속적으로 수련을 하여서 몸에 양의 기운(芮)을 늘리는 것이 곧 하늘의 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경우 아래와 같이 해석할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면 재앙이니

스스로를 잃으면 재앙이니

혹 융통성있게 한다면 :

스스로 길을 잃어 재앙이 될지어니

이 문장 자체는 "포기하지 말라는 경고이다."전체문맥으로 연결을 해보면, "귀하고 부자가 되었다고 교만하게 되어서, 스스로 길을 잃으면 재앙이 있을지니. 열심히 계속 수련을 하여 양의 기운을 쌓는 것이 천하의 도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하님이 지적하신대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닌 해석 자체의 문제로 생각해보면 "遺"을 돌아오네라고 하는 것은 역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는 분의 제보에 따르면, 혹시 遺을 還과 혼동하신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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