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교수라는 직업은 참 대단하다. 한국에서 사실상 명예직로만 따지면 최정점중에 하나이다. 유교사상의 여파일수도 있고, 그만큼 존경스러운 교수님들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교수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한수 접고 들어간다. 그것이 한국의 교수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참 한심한 작태들이 널려 있다.

본인 개인적인 사정으로 교수사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본인에게 있어서 교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 모순들의 결합이다. 너무나 존경해서 감히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가 하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적당히 시간과 돈 그리고 인맥으로 졸업장 따와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쓰레기 새끼들이라는 정반대의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 뒤쪽의 쓰레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인간들이 더 많다. 물론 현재는 사립대는 물론 국공립대까지 통폐합되고 있고, 교수에 대한 평가항목들도 늘어나서 능력 없는 교수는 점차 사라지고는 있지만...


사실 한국에서 교수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무리이다. 한국에서의 교수는 학자의 모습과 교사의 모습 모두가 완벽하기를 강요받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것은 무리에 가깝다. 왜냐하면 연구는 기본적으로 더 깊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강의는 가장 깊은 것을 넓게 할 수 있어야 된다. 먼 소리냐고? 연구는 무섭도록 논리적이어야 된다. 그러나 강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재능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본인이 직접 겪은 실례를 알려드리자면 쳔라이(陳來 질래)선생님이라는 중국 북경대 철학과의 유명한 교수님이 계시다. 중국철학...아니 중국학쪽을 하시는 분은 이름 한번 쯤은 들어봤을 분이시라고 장담한다. 본인도 대학생 시절 이 분이 수업을 개설한 것을 보고, 행복감에 젖어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리고 좌절했다. 당신이 쓰신 책을 토시 하나 안 빠트리고 읽고 계셨다. 당신이 쓰신 책이니 그 동안 변한 생각이라던지, 혹은 책에서는 말하지 못한 것이 있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2시간 내내 조용히 책만 읽고 계신다. 하지만 이 분의 연구는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고 관련 전공자들은 말하고는 한다. 본인도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감탄했었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쳔라이 선생님 님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형에게 이야기했더니 킥킥 웃으시면서 그 분 수업은 정말 못한다고 하셨다.


사실 이러한 연구자타입은 교수보다는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고 지내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그것이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문제점이 있다. 지금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연구원에 대한 대접과 교수에 대한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돈은 기본이고, 밖에서 받는 대접들도 말이다. 그런데 사실 연구원이나 교수나 학력이나 재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오히려 연구원의 재능이 뛰어난 경우도 상당히 자주 목격을 했다.

그러나 교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연구원들은 무시하는 풍조가 아직도 만연해 있다. 사실 교수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가장 쉽게 가장 짦게 학문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연구가가 아니라 기본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칠 것을 가장 열심히 깊게 연구하는 것이 연구원들인 것이다. 최소한 이 글을 여러분들이라도 연구원에 대한 개념을 조금 바꾸어 주셨으면 한다. 연구원들은 교수가 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결코 아니다.



-------
잡담-잡담--
자! 계속 이렇게 말도 안되는 잡담으로 질주해보는거야!

이상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본인이 생각했을 때....본인은 자체는 연구자 타입이 아니다. 그러기에는....너무 나댄다고 해야될려나...폼나게 말하면 현실을 사랑하는거고...냉정하게 평가를 하면 깊이 접근할 능력이 안되는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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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학교의 유학생 기숙사인 勺园(샤오위엔 shaoyuan) 2호동의 4층에는 열람실이 있습니다. 사실 저 자신은 열람실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침대에 들어누워서 책을 보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올해 베이징의 기온은 더위에 강한 저로서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기에, 에어콘이 빵빵 나오는 이곳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찍은 것입니다. 작업중의 자리는 지저분의 극치...)

비록 열람실이라도 저는 최적의 작업환경?!을 추구하기에 어느 사이에 아름다운?! 저만의 자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더위가 가시면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작업을 하겠지만, 그 전까지 있었던 추억의 자리로 이렇게 기록에 남겨둘까 합니다.


열람실로 들어오셔서 왼쪽 모서리에 저의 자리가 있습니다. 심심하면 음료수 들고 찾아오셔요.

반대쪽에서 보면 이렇게 배치가 되어있습니다. 나름 제 영역만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북경대 열람실에는 따로 전용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맨날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 저처럼 만들어놓은 각자만의 공간이 몇몇 군데 있답니다.

자세히 보시면 파란색 인터넷 선이 연결된 것이 보이시죠? 잘 기억해두십시오. 나중에 설명 들어갑니다^^


사실 작업중에는 보조 키보드를 꺼내서 작업을 합니다. 안 그러면 손목이 아파요-0-;; 또 제가 노트북을 끄지 않다보니...열에 녹았는지 노트북의 키보드의 몇몇 버튼이 잘 안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보조키보드도 좀 작고 키감도 좋지 않아서, 대형크기의 키보드를 살까 생각중에 있습니다.

지저분해보인다고요? 사실 책은 치워놓은 거랍니다. 책까지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시면 주위로 접근하기 싫으실지도....--


정면에서 찍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듀얼모니터를 강력추천합니다. 그러니까 노트북 화면과 확장모니터 화면이 같은 것이 아니라, 이어지듯이 연결되는 듀얼모니터를 추천합니다. 이렇게 되면 작업을 할 시에 자료를 보기가 좋습니다.


바로 오른쪽에 있는 캐비넷의 한 줄을 제 전용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실 여기 캐비넷은 슬슬 정리할때가 온것 같습니다. 이미 2년전에 졸업한 제 친구녀석의 책까지 아직 있더군요. 수북히 쌓여있는 포스트잇은 제가 이런저런 잡상이 떠올랐을때 적어두고, 일단 버려둔 거랍니다. 나중에 어떻게든 쓰이더군요--

요즘은 나름 몸도 생각해서 비타민에 홍삼정까지--



열람실 역사상 최초의 삽질입니다 음하하...기념으로 놔두기 위해서 따로 찍었습니다. 이 선은 인터넷 선입니다. 열람실에서는 유표형님이 가져다 둔 공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유기는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으며, 무선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택한 자리는 왼쪽 끝자리. 그래서 바닥을 통해서 인터넷 선을 연결해버렸습니다. 제가 알기로 열람실 역사상 저 같이 한 인간은 없습니다. 음하하하;;;; 삐질...



사실 열람실에서 이렇게 자리를 잡는 것은 그리 잘하는 짓은 아닙니다. 다른 분의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미안한 마음에 저도 몇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위에 사진에 있는 것은 음이온정화기. 나름 몇 만원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을 열람실에서 작동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기모기향 장비도 제가 가지고 온 것입니다. 쓰고 싶은 분은 마음대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잡담글이었군요. 요즘 저는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하하하^^:::

* 여친님께서는 이 글을 보시고는 포스팅할게 그리도 없었냐고.....방정맞게 왜 이런걸 자랑하냐고........하십니다....흑....자....자랑이라기 보다는.......나름 예쁘게 꾸며놔서 뿌듯함에 올린건데...올린건데......흐흑..방정 맞게...방정맞게...ㅠㅠ 미워!!!

최근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 본인이 가장 거슬리는 것이 "다르다"를 그냥 "틀리다"라고 말해버리는 일이다. 물론 언어는 살아있기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변형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러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도 인터넷 언어에 대해서 강력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같다 - 다르다
맞다 - 틀리다.

다르다는 것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다르고, 밥과 빵이 다르다. 그리고 틀리다는 어느 한 주장이 틀리다. 혹은 정답이 틀렸다로 쓰이는 말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이 두가지를 혼용하면서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식해버리고, 틀린 것을 그냥 다른 것이라고 주장해버리는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아래와 같이 사용되어야 한다.

다르다 : A라는 여성을 보고 나는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다르다.

틀리다 : 만약 A가 물고기를 보고 우주선이라고 하면 틀린 것이다. 물고기는 어디까지나 물고기이고, 우주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는 틀렸다


개인의 주관으로 변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 자체에 대한 문제라면 그것은 맞고-틀리고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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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MSN으로 "한국의 주류층은 민족주의인가요?"라는 질문을 해주셔서 그에 대한 답변으로 쓴 것입니다. 제가 논문관련 작업을 하다가 아무 생각없이 적당히 타자를 쳤는데, 솔직히 상당히 마음에 드는군요. 살짝 보충해서 올립니다. 역시 무의식의 힘은 강했습니다 ^^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완전한 주류라고 봅니다. 단지 중국과는 좀 다른것이. 중국은 처음부터 다양한 민족이어서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민족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매우 불안하고 실패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최소한 중화민족의 개념만 포기하면 기본적으로 다민족을 인정하였기에 의외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소수민족에 대한 명목상의 우혜보다는 실질적인 대우개선이 필요하지만 말이죠.

그에 비하여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로 단일민족만 강조하다가, 점차 외국인노동자는 물론 국제결혼까지 증가하기에 기존의 단일민족관이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되죠. 오히려 어떻게 보면 중국보다 더 나쁜 방식으로 민족끼리의 대결이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은 곳이라고 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민족끼리의 대결이라기 보다는 절대수가 "한민족"이 많으니 일방적인 억압과 탄압이 들어가겠고, 그에 반항으로 일어나는 폭력 그리고 파생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빨리 민족주의...아니 최소한 단일민족주의는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많이 불안하군요. 미국의 민족갈등이 한국에서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옛날 어떤 곳에 한 그루 교목(喬木)이 있었는데, 그 나무 아래에는 항상 천상의 선녀(仙女) 한 사람이 내려와 있었다. 선녀는 그 목신(木神)의 정기로 잉태하여 한 미남자를 낳았다. 목신의 아들이므로 그를 목(木) 도령이라고 불렀다.

 목 도령이 칠팔 세 되었을 때, 선녀가 천상으로 돌아가 버리자, 큰 비가 몇 달 동안 계속 내려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다. 교목이 넘어지면서 목 도령에게,

 "어서 내 등에 올라타거라."

하였다. 목 도령은 그 나무를 타고 정처 없이 표류(漂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목 도령은 목신에게 부탁하여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 떼와 모기의 떼를 구출해 주었다. 개미 떼와 모기 떼를 싣고 지향 없이 가는 교목을 향하여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 도령과 같은 연배의 남자였다. 목 도령이 이 사람을 구해 주려고 하였지만 교목은 반대하였다.

 "사람은 구하지 말아라."

고 하였다. 그러나 목 도령은 아버지인 교목에게 애원하여 그 남자를 구해 주었다. 그때에 교목은 말했다.

 "너의 애원을 못 이겨 구해 주었지만, 다음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으리라."

 교목은 마침내 어느 조그만 섬에 표착(漂着)하게 되었다. 홍수로 인하여 모든 세상이 물에 잠겼으나 오직 이 높은 봉우리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두 아이는 그 섬에 내렸다. 개미와 모기들은 목 도령에게 치사(致謝)하고 각각 제 갈 곳으로 가 버렸다.

두 아이는 그 섬에 단 하나 있는 일간 두옥(一間斗屋)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한 노파와 두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 처녀는 또한 두 아이와 동년배였는데, 한 처녀는 노파의 친딸이었고 다른 처녀는 그 집의 수양딸이었다.

 비가 그치고 홍수는 물러갔으나, 산 아래 세상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노파의 집에서 사는 동안 두 쌍의 소년 소녀는 성년기에 이르렀다. 노파는 이들을 부부로 하여 세상에 인종(人種)을 퍼뜨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두 청년이 서로 수양딸을 취함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파는 고심하였다.

 하루는 구조된 청년이 친딸을 차지하기 위한 모략으로 노파에게 가만히 말하였다.

 "목 도령은 한 섬의 좁쌀을 모래밭에 흘리더라도, 순식간에 그 좁쌀을 모래 하나 섞이지 않게 도로 주워 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주는 좀처럼 친한 사람이 아니면 보이지 아니합니다."

 노파는 그 신기한 재주를 보고 싶어 목 도령에게 청하였다. 목 도령은 그런 재주가 없다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다른 청년의 말을 믿고 목 도령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며 크게 노(怒)하였다. 그래서 그 재주를 보여 주지 않으면 딸을 주지 않겠다고 하였다.

목 도령은 할 수 없이 한 섬의 좁쌀을 모래밭에 흩어 놓고 그것을 들여다 보며 탄식만 하고 있었다. 그 때 난데없이 개미 떼가 와서 좁쌀을 하나씩 입에 물어다가 원래의 섬에 넣었다. 순식간에 좁쌀은 모래 한 알 섞이지 않고 원래의 한 섬이 되었다.

 개미 떼는 저희 갈 곳으로 가고 저녁때가 되어 노파는 다른 청년을 데리고 모래밭에 나타났다. 노파는 감탄하면서 친딸을 목 도령에게 시집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다른 청년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노파는 한 계책을 세웠다. 어느 어두운 밤에 노파는 두 청년을 밖으로 내보내고 두 처녀를 동쪽과 서쪽의 두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리고 두 청년에게 서로 들어가고 싶은 방에 들어가서 배필을 취하라고 하였다.

 그때 한 마리의 모기가 목 도령의 귀 옆으로 지나가면서, '동쪽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목 도령은 그 말대로 하여 노파의 친딸을 얻게 되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 두 쌍의 부부의 자손이라고 한다.

출처 : http://www.ojirap.com/technote/read.cgi?board=sulhwa&y_number=9


해당 이야기는 손진태(孙晋泰)의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 동경 東京 향토연구사 鄕土硏究社, 1930에 수록되어 있다 손진태의 연구에 따르면 해당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삼국시대 오나라 三国时代 吴】강증회 康僧会가 집필한  <육도집경六度集經>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이야기에서는 나무가 모체로 등장하지 앟는 것으로 보았을 때, 나무 숭배 사상이 한반도에 존재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일정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인다.

사실 본인도 본과졸업논문으로 솟대(神竿)에 대해서 쓴 것과 같이 한반도에는 오래전 부터 우주나무에 대한 숭배가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우주나무 숭배가 중국대륙에서 유입이 되었느냐. 아니면 북방계열을 통해서 유입이 되었느냐. 혹은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일단 나무도령(목도령)의 이야기는 육도집경의 이야기가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한국의 토착문화에 녹아든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해당 불경이 이야기가 오나라에서 먼저 나무숭배사상이 있어서 변형이 된 후에 유입되었을 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나라 사람이 집필을 하였다면 변형된 것을 집필했을 가능성이 높고, 중국대륙에서의 나무숭배는 하늘에 대한 숭배측면이 약하다는 것(본인 본과졸업논문에서 언급) 그러나 귀찮아서 구제적인 사례는 패스....어차피 이건 내 잡담인걸....하하하;;;)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솟대나 나무숭배가 북방민족을 통해서 전래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중앙아시아 일대에 더 오래된 나무숭배 사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유입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목도령(나무도령)설화는 북방유목민족의 나무숭배사상의 영향 속에 있었던 한반도에 육도집경에 포함되어 있는 인도계(혹은 중국계)설화가 전래되면서 기존의 나무숭배사상과 융합이 되어서 만들어진 설화이다.


사실 여기서 글이 끝나야 정상이지만...
위의 글로서 말하고 싶은 것을 대놓고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한반도의 문화는 중국대륙의 문화외에도 북방유목계열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한마디로 다문화라는 소리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에 쓸데 없는 단일민족주의로 외부의 문화에 대한 탄력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중국의 어떤 논문을 보다가 목도령 설화라는 것을 보고서야. 서둘러 위의 내용을 찾아보았다. 본인이 어릴 때에 저런 설화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혹시 어린 시절 목도령(나무도령) 설화를 들어보신분????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분들이 있다. 중국을 이기고 싶은가? 그것보다 더욱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러니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헛소리는 그만 했으면 한다. 그래서 본 내용은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적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일수도...)


1. 공자는 한국 사람인가?
공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공자가 태어났던 산동성 곡부는 당시에 동이(东夷)라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한민족은 동이(东夷)의 후손이다. 고로 공자는 우리의 조상이다.

말이 되는 것 같은가? 미안하지만 위의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명확하게 틀린 말이다.

1) 공자는 동이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시의 산동성이 동이들이 모여살던 곳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말이지만, 정확하게는 당시의 동이와 화하족들이 같이 모여 살던 곳이다. 고로 동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물론 화하족이었어도 동이라는 민족그룹의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자는 공자의 족보를 따지며, 공자의 조상은 원래 은나라사람이었고, 송나라로 갔다가 다시 노라나로 왔기 때문에 공자가 동이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 의견을 채택해서 공자가 당시의 동이였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2) 당시의 동이와 나중의 동이는 다르다.
춘추전국시대의 동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폭넓은 개념이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보면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의 중국이라는 개념은 지역적으로는 매우 좁은 곳에 한정이 되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산동성부터 시작해서 동북쪽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동이라고 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혹자는 동북쪽까지 가지도 않고, 잘해봐야 요서라고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동이의 개념은 변한다. 산동성의 경우 진시황의 진나라 통일 이후에 동이가 아닌 중국의 개념에 포함이 된다.

원래 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의 동쪽에 있는 이민족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었기에, 중국이라는 것이 확장됨에 따라서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고조선을 운운하면서 한반도로 동이가 유입되었다고 말한다면, 중국으로도 그정도의 동이는 충분히 녹아들었다고 반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 동이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었다.
지금은 보통 동이(东夷)라고 하지만 사실 동이는 구이(九夷)라고 불리기도 했다. 9종류의 동이(东夷)라고도 할 수 있고, 구의 뜻은 단순히 "9"가 아닌 "수 많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경우더라도 당시의 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었다. 산동쪽의 동이와 동북쪽의 동이가 달랐던 것이다. 단순히 당시에 동쪽에 있다고 하여서 문화적으로도 연결점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냥 동쪽의 이민족(东夷)으로 불렀던 것이다.

(참고로 전국시대의 초나라도 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 남부지역에 위치한 초나라에는 도가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노자도 있었다. 만약 공자가 동이라면 노자도 동이인가? 너무 거리가 머니까 왠지 거부감이 생기는가?)


4) 동이만이 한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한국은 동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 많은 민족들의 융합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는 정리가 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족주의적 세뇌에 의해서 아직도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벌어진 코메디인 것이다. 한국은 동이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수 많은 민족의 후손인 것이다.

고로 "공자가 동이임으로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코메디일 뿐이다.



2. 중국인들을 누르고 싶은가?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을 입닥치게 하고 싶은가? 공자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럼 쓸데 없이 공자가 한국인의 조상이니 머니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확실하고 중국인들이 반박도 하지 못하는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주겠다. 중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 된다.

"공자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과거의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한국은 아직도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자에 대한 제사(석전대제) 역시 중국에서는 이미 그 방법을 몰라서 한국의 성균관(대)[각주:1]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으며 인의예지를 높게 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야 말로 진정한 공자의 후손입니다."

조용히 위와 같이 말을 한다면 배웠다는 중국인일 수록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어떤 중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열폭해서 헛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논리적인 대답이 나올 수는 없다. 위에서 말한 것에서는 한마디 거짓이나 복잡함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자가 한국인과 핏줄로 이어졌는지가 아니다. 비록 예수에게는 자식이 없으나, 만약 예수의 자식이라도 살인을 하면 그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고, 살인자의 자식이라도 선한 일을 행하면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이다.

단! 위의 말을 중국인들에게 한다면 당장은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점차 늘어간다면 과거의 것을 어떻게 지켜야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타이완쪽에 남아있는 과거의 것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당장의 날카로운 칼이지만, 중국인에게 깨닭음을 주는 말이다. 본인이야 한국이든 중국이든 옛것을 지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진해가기를 원하기에 위와 같은 말을 해주지만, 당신들이 그러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3. 핏줄보다는 정신을 중요시 하여야 할 때.
본인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고 있다. 예수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부처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공자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고, 노자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따라서 행동을 한다면, 종교를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균관대 유학 동양학부쪽의 몇몇 분들은 공자를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려고 힘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자의 말씀을 배웠다는 분들이니 만큼 더욱 한심하게 생각한다. 공자가 주공을 꿈에서 만난 것은 주공이 그의 조상이어서 그랬던 것인가? 공자가 주공의 뜻을 이어받으려 한다고 말한 것은 조상이었기 때문인가?

중요한 것은 핏줄이 아닌 정신을 제대로 이어 받아서 제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다.

* 참고로 본인은 공자가 한국에서 제대로 살아나던지. 아니면 완전히 죽어버려야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공자의 말을 이어받는 인간이 없이 이상하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은 공자의 부활이 필요하다.을 참고.



공자에 대한 이야기이니 만큼 공자의 한마디 말로 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공자가 말씀하시길 : 주나라는 하와 상 두 왕조를 거울 삼으니, 그 문화는 매우 찬란하구나!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이를 본인이 현대적으로 바꾼다면. "한국인은 공자나 예수 혹은 다른 훌륭한 사람을 거울로 삼으니, 그 마음이 매우 찬란하구나."



추가--
잡담 : 이 글이 얼마나 무서운 중국현실 비판인지 아실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중국은 현재 무형유형의 전통자산을 잃어버렸고, 제대로 회복하려 노력도 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 글이 얼마나 한국의 현재를 칭찬하고 있는 것인지 알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잡담2 : 한국이나 중국이나 옛것에 대한 쓸데 없는 집착을 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며, 미래라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되었냐 혹은 우리 조상이 얼마나 위대하였느냐가 아니라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하면 위대해 질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입니다.


  1. 추가 : 석전대제를 관장하는 기관은 성균관대가 아닌 성균관입니다. 그럼으로 성균관이라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균관대쪽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많은 유교부분에서 성균관대의 역할이 컸기에 () 안에 대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비판과 비난은 분명히 다르다. 비판은 서로가 다음을 제대로 인정을 하고, 그 위에서 상대방의 생각의 기반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 정확한 근거와 증거를 인용해서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떄가 많다. 마냥 자신만의 느낌으로 "그건 아니다!" "그건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주관성이 들어 갈 수밖에 없는 수 많은 일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 그러나 주관적인 일에도 그 기반이 되는 근거나 증거가 제시된다.

단순하게 말해서 마냥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찌하여서 틀렸는지를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미디어법을 악법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어찌하여서 악법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에 불과할 뿐이다. (원래 이런 비판의 근거는 미디어에서 정리해서 보여주며,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해서 받아들이면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신문매체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 점차 없어지는 기분이다. 후...)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과 상대방의 논리나 근거가 틀렸다는 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렸다를 구별하지 못하는 세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맞춤법을 굳이 정확하게 해야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르다와 틀렸다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말이다. 영어로 하면 different와 wrong의 차이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왜 섞어 쓰는 건가?

비판은 소중한 것이다. 비판이 있기에 인류는 발전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비난은 99%의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같은 편까지 적으로 돌리는 바보짓에 불과하다. 제발 타인을 이해하고, 정확한 근거와 증거로 "비판"을 하자. 길게만 쓴다고 비판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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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안리양랑 님에게 문답릴레이 : 최근 생각하는 "번역"이라는 릴레이를 받았습니다. 요즘 제가 좀 정신이 없어서 짦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너의 기준에서의 짦게잖아!!! 흠흠..;;;)

1. 최근 생각하는 ~
2. 이런 ~ 감동!
3. 직감적으로 ~
4. 좋아하는 ~
5. 이런 ~ 싫어
6. 다음에 넘겨줄 7명

daewonyoon님이 넘겨주신 주제는 중국이었습니다. 차라리 번역이었으면 더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번역관련 분들 모아서 번역관련 릴레이? 킥킥;;;) 중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처음 드는 기분은 막막함이군요. 중국이라...


1. 최근 생각하는 중국
저는 국가개념을 떠나서 생각하도록 노력했기에 오히려 "중국"은 어떠어떠하다라고 최근에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를 알 수록 어떠어떠하다라고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결국 국가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인데, 중국에는 한국과 비교해서 너무나 다양한 스팩트럼(계층)이 존재합니다. 자연환경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민족의식적으로도 그렇고 어떻게 통합해서 중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과 중국인이라는 허구의 개념으로 이를 통합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작년의 티베트와 올해의 위구르를 보면 알 수 있다 싶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최근 제가 생각하는 중국은 물음표입니다.


2. 이런 중국 감동~
감정이 매마른 것인지 그리 감동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굳이 뽑자면 중국네티즌들의 국가에 대한 도전이 감동적입니다. 물론 한국도 수 많은 네티즌들이 정부에 대응하여 그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해서 수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잘못 말을 하다가는 한국의 미네르바를 뛰어넘는 구속이 "비공개적으로" 일어나는 곳입니다. 물론 용기 없이 분위기에 휩쓸리는 인간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함을 인지하고도 잘못 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동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국정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3. 직감적으로 중국
1번에서도 말했지만 모르겠습니다. 자칭 타칭의 중국전문가들이 중국은 이렇다라고 규정을 하지만 그것이 중국이라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억지로 직감적으로만 말을 하자면 "중국은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무식하게 통합적으로 녹여버리는 허구의 용광로일뿐입니다. 그 곳에서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4. 좋아하는 중국
저는 중국의 문화적 상위 10%을 좋아합니다. 중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 아직 질서의식이 부족하고, 더럽고, 시끄럽고, 짜증을 내게 합니다. 그러나 문화적 상위 10%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놀라운 것이 사실입니다. 엘리트 주의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머..극단적으로 제 취향으로 간다면 무협지나 사극물을 상당히 제대로 고증해서 만드는 중국이 좋습니다. 하하^^:: (물론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엉터리 고증에 비하면!!)


5. 이런 중국 싫어.
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하는 신보수주의 세력에 의한 강도높은 애국주의를 뿜어내는 중국이 가장 정말로 저주스럽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족이니 국가이니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이 정체성이 애매할 때에나 강도높게 말하는 약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 개인일 뿐이지. 그것을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허구적인 개념으로 포장하는 모습은 정말 싫습니다.


6. 다음에 넘겨줄 7인.
제가 지금 제 일로 바빠서 넘겨드리고 가서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힘들군요. 이 글을 보시고 참여하고 싶은 분은 알아서 트랙백을 날려드리면, 이 부분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좀 정신이 없어서^^::


어느 정치 개그맨이 있다. 과거에는 상당히 진지하였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최고의 웃음을 주는 인기스타가 된 어떤 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대선에서의 표로도 이어졌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 정치 개그맨 자체가 사실 한국의 정치적 성숙도를 알려준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이 정치개그맨을 좋아하고 심지어 표까지 던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그 자체가 인생은 한편의 비극과 희극이 뒤섞여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나타내준다.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정치의식에 한숨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본인도 그 사람의 이름은 결코 거론하지 않는다는 마지막 자존심을 남겨두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이들은 국민들이 아닌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무관심을 만들어낸 "당신들"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여. 정치 개그맨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인기영합(포퓰리즘)을 운운하면서 국민들을 비판하고 싶은가? 최소한 당신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현재의 정치는 정말 재미가 없을 뿐더러, 국민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본인 이 정치 개그맨이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현재의 정치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논문주제보고를 위해서 삽질중입니다. 저의 능력의 한계와 끊임없는 욕심들의 파도에 휘말려서 어디론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패턴도 참 아름답게 변해버렸습니다.

8시 기상 및 식사. 9시 공부. 11시 운동 및 샤워. 12시 공부. 2시 식사. 다시 공부. 8시 식사. 다시 공부. 11시 식사. 다시 공부. 2시 취침.

상당히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부만 죽도록 하니 미친 것이냐고요? 그것보다는 맨 처음 기상하는 8시가 저녁 8시인겁니다. 남들과는 정확하게 정 반대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도 정확하게 12시간을 말이죠.

사실 전 밤에 집중이 안되는 스타일이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생활은 폐인과 다를 바가 없기에, 20일에는 저녁까지 밤샘을 계획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녁 6시쯤에 너무 피곤해서 자버렸지만 말이죠. 그래도 나름 아침까지 잠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잠들기 전에 든든하게 밥도 먹었고 말이죠.(음....잠자는 것이 무슨 운동도 아니고-_)

그러나!! 7시 43분. 한국에서 A의 전화. 9시 25분 다시 한국에서 B의 전화.
11시 24분. 인터넷에 들어오라는 어떤 분의 연락을 받은 중국에 있는 녀석의 전화.

위의 저 사람들이 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다들 나름 복잡한 용건이었다면?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그 피곤한 와중에도 과거 어떤 누님 덕분에 길들여진 습관으로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전화를 받고, 용건 처리 후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점차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지금! 울음이 나올 것만 같다.
역시 나는 낮의 세계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밤의 나라 아그들아. 역시 나는 너희들을 떠날 수 없는가봐.ㅠㅠ



덧 : 논문주제보고서 진행사항.
참고서적목록 완성. 목차완성. 연구목적완성. 연구방법완성. 한반도쪽 연구성과...일단 완성(사실 한줄로 소그드 연구는 개뿔! 이라고 하고 싶었다. 한반도에 소그드가 도래했을 것이라고 정확하게 꼭 집어 쓴 논문 제로. 서역인과 소그드를 구별하고 있지도 않다. 동북쪽도 한국학계의 논문은 제로. 일본과 중국학자의 발해쪽 시론정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반도쪽은 억지로 서역교류쪽까지 밀어넣어서 써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역시나 다 지워버리고 개뿔도 없다라고 하고 싶다. )

 이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기존의 전체 소그드 연구정리만 하면 끝...이지만...어차피 본인 스스로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다 뜯어 고치고 어쩌고 하면서 다음주에나 완성되려나. (사실 논문주제보고서만 쓰는것도 아니고, 관련 사료도 계속 폭식하고 있다. 욕심을 버려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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