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西汉)의 성제(成帝)시대의 공광(孔光)은 황제의 전속비서까지 하면서 고위관직에 십여 년이 넘게 앉아 있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매일 황궁으로 출근을 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황궁은 신비로운 곳이 아니라 산책을 가는 뒷동산과 같이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그가 휴가를 얻어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것인지 마눌님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마눌님이 황궁에는 어떤 나무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공광은 매우 당황하며 좌불안석의 상태가 되었다가 한참의 정적이 지난 이후에나 "오늘 날씨가 좋지?!"라는 엉뚱한 말을 꺼낼 뿐이었다.


군사기밀도 아니고, 황궁의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 단지 황궁에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냐는 마눌님의 질문에 이렇게 긴장하고 대답을 회피할 필요가 있을까?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공광의 행동을 배워야 한다.



황제는 변태이다. 그는 신하의 온갖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신하의 발꼬랑내부터 여자취향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에 반하여 자신에 관한 사항은 그 어떤 것도 비밀로 하려고 한다.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황제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


황제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성스러운 존재이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서 천하를 운영하는 최고 권력자이다. 황제의 소소한 일들이 외부로 전해진다면 황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권위가 사라질 수도 있다. 권력 유지수단으로서의 황제라는 가면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황제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공간인 황궁의 출입을 금지한다. 하상주(夏商周) 시대에는 악사나 사관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을 고용해야 될 때에는 맹인만을 고용하였다. 역사가 흘러갈수록 황궁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 인력이 필요하였고, 환관이나 궁녀와 같이 평생을 궁에서 사는 사람들을 늘린다. 설령 어쩔 수 없이 출입을 해야 되는 고관들에게는 강도 높은 비밀유지를 강요하였다.


당조의 지방정권인 사천왕(四川王) 위고(韦皋)는 자신의 수족과 같은 수하들도 결코 중앙관직으로 불러오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접 지역을 담당하는 관직으로만 배정한다. 만약 더 이상 승진을 할 수 없다면, 명예퇴직을 시키고 원로로 대접을 할 뿐이었다.


당조의 만수공주(万寿公主)는 당대의 천재라는 정호(郑颢)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정호에게 자신이 데리고 온 궁녀들을 첩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였다. 이는 자신이 데리고 온 궁녀들이 다른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황실의 비밀이 새어나갈까 우려를 하였기 때문이다.



황제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황제의 자리는 속 편한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는 곧 천하를 빼앗기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하느냐로 정해진다.


만약 자신과 매우 가까운 신하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 암살과 같은 신변상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황제로서의 신성함도 사라져버리게 된다. 황궁에 심어진 나무가 무엇인지는 정말 조그마한 일이다. 그러나 설령 조그마한 일이라도 새어나간다는 것을 황제가 알게 된다면 그 외에 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하다고 생각되는가?! 남한(南汉)의 황제는 자신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환관과 궁녀만이 황궁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정한다. 태평천국(太平天国)의 천왕(天王) 홍수전(洪秀全)은 비밀 유지를 위하여 황궁화원을 고칠 때 오직 궁녀들로만 공사를 하도록 하였다.


황제에게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한 그루의 나무도 황실에 있는 나무라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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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것은 대신들에게는 필수능력이다. 문제는 황제는 세상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스토커이다.


황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하를 지키기 위해서 대신들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누가 자신의 천하를 가로채려고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청나라의 황제는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의심이라도 절대 3번을 넘어서 젓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조차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태종 시절 대신 방현령(房玄龄)은 조정으로 출근하는 길에 황궁 북문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황궁경비에게 무슨 건물을 건축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당태종은 분노하며 당장에 방현령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재상 위정(魏征)이 달려와서 구원을 했기 망정이지 그 자리에서 세상과 이별을 할 뻔하였다. 방현령은 감히 황제가 만들고 있는 황궁의 건물에 대해서 "스토킹"한 혐의인 것이다.


황제는 방현령이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황궁의 건물에 관심을 갖는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만큼 황제는 대신들 중에 반역을 꿈꾸는 야심가가 있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대신들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며, 운이 좋으면 부귀영화를 누리면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황제를 스토킹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황제를 스토킹 하는 방법으로는 자리보전은 고사하고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진나라의 재상 이사(李斯)는 진시황의 심기를 읽기 위해서 자신의 "눈"을 진시황 근처에 배치하였다. 한번은 진시황이 이사가 개선축제를 화려하게 여는 것을 보고서 몇 마디 욕을 하였다. 그리고 그 소식은 "귀"을 통해서 이사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사는 당장 개선축제의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여버린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진시황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누가 자신이 한 말을 유출하였는지 찾아다녔다. 누가 이사의 눈인지 찾아내지 못하자 자신이 그 말을 했을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여 버린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미움을 받게 된 이사도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만약 내가 이사였다면 결코 개선축제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진시황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변화하고 싶다면 어디까지나 매우 천천히 변화하여서 어디까지나 다른 이유로 변화한 것으로 위장하였을 것이다. 변화하는 속도조절에 자신이 없었다면 아예 변화하지 않고 다만 황제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황제의 주위에 사람을 심어놓은 증거를 결코 노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 접대학에서 "비밀유지"는 상당히 중요한 핵심이다. 당문종의 대신 송신석(宋申锡)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대신이었으나 비열한 환관의 음모에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이 환관의 음모는 다름이 아니라 "황제의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닌다는 무고였다.


용정제는 "쪽지"을 통해서 다양한 관리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지방부시장인 유곤(廖坤)은 "쪽지"을 황제에게 올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뒤에 동네방네 이를 자랑하고 다녔다. 그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곤의 "쪽지" 권한은 완전히 박탈되고 만다. 황제가 누구에게 "쪽지"을 쓰게 했는지는 황제의 비밀이다. 어디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우리는 "비밀유지"에 대해서 한나라의 부평후(富平侯) 장안세(张安世)을 배워야 한다. 대장군과 재상을 모두 역임했던 장안세는 자주 황제와 국가대사를 긴밀하게 상의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 자신이 황제와 같이 결정한 사항에 대한 공문이 내려와도 다른 대신들과 같이 처음 본다는 듯이 행동하였다. 장안세의 이런 처세론을 전수 받은 장안세의 가문은 서한이 무너지고, 왕망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다시 동한이 건국되는 과정에서도 무려 6대 동안 정부대신의 자리를 유지한다.



황제의 마음에 들겠다고 스토킹을 하다가 본전도 못 찾는 법이다. 그냥 편안하게 황제의 비밀을 지켜라. 그것이 부귀영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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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번역하는 시간과 업로드예정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


사람들이 흔히 오해를 하는 것이 있다.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은 현실적으로 중국에 속하는 한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을 한족으로 흡수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의 "단일민족 역사관"이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이유는 "이론"과 "실제"을 구별하지 않고 뭉퉁그려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론 실제는 엄격하게 다른 문제이며, 설령 학문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판단을 위해서 반드시 노력을 해서라도 구별능력을 키워야 한다.


북한은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명에서부터 북한이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북한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 않는다[각주:1]. 그런데 북한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론"의 문제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로 포장을 하고 실제로는 세계에서 손 꼽는 독재정치를 하는 "북한 기득권"의 문제인가? 


만약 여러분들이 이론과 실제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면 이론만 보고 북한을 "민주주의국가"라고 생각하거나, 실제만 보고 "민주주의"가 나쁜 이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제"에 대한 구별을 하며 중국의 역사관으로 넘어가보자.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은 이론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모여서 중국의 역사를 형성하게 되었다"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반대로 중국이 "오직 한족만이 만들어낸 역사"라고 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분들이 우려하는대로 다민족 역사관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민족진흥정책"시스템[각주:2]이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한족 위주의 정책과 한족으로 흡수하도록 하는 문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이 된다[각주:3].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제"의 문제이며 "실제"가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이론"까지 나쁜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한국의 "단일민족 역사관"의 경우는 최악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단일민족 역사관은 허구일뿐이다. 한국인이 어디까지나 다양한 민족이 융화되어서 생겨난 다민족이다[각주:4]. 단일민족이라는 이론자체의 근거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


"실제"는 더욱 참담하다. "단일민족 역사관"의 장점은 서로가 "한국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감을 매우 긴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한국인"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완벽하게 배타적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화시대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현실적으로 현재 결혼, 유학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의 인권문제가 대두되고 있을 뿐더러, 고급 외국인 인재들의 한반도 유입을 무형적으로 막고 있다.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저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관은 개개인의 자유로 선택하는 문제이기에 한국의 국민으로서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야할 때이다. 이론과 실제에서 모두 문제를 안고 있는 "단일민족 역사관"을 계속 품고 갈 것인가?! 아니면 "다민족 역사관"을 통해서 불안한 발전을 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각주:5].






  1. 없지?? 설마 북한이 진정한 "민주주의"국가라고 말하는 사람 없지??? [본문으로]
  2.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시스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전반부터 생활영역까지 다양한 지원정책이 존재한다. (실제 구현이 아니라 시스템만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_-) [본문으로]
  3. 솔직히 비록 전공이 고대 민족사이지만...어디까지나 민족사전공으로서 웬만한 여러분들보다 제가 중국소수민족정책의 위험성을 더 잘 알고 대처하고 있다고 장담한다-_- [본문으로]
  4.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다가 그냥 넘기겠다. 최근 민족관련 논문이나 책을 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본문으로]
  5. 다만 본인의 생각은 제목으로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공자는 "귀신을 공경하지만 멀리해야한다.(敬鬼神而远之)"라고 말했다. 최소한 표면으로는 유가 논리가 지배하는 동양사회에서 황제의 대신으로서 신선이니 풍수와 같은 황당무계한 헛소리를 믿지 않는 것은 분명히 현명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런데 황제는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인 천자라고 하였다. 하늘과 뜻이 통하는 황제는 어떤 의미에서 미신의 최고봉이며, 미신의 최고 권위의 해석자이다. 수 많은 대신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미신의 최고 해석자에게 감히 도전하여 죽어나갔다.



당조의 사법부장(형법상서刑部尚书) 장량张亮은 취미생활로 점을 보았다. 문제는 심심풀이로 감히 어떤 이에게 황제가 될 수 있는 복이 있는지 점을 보았다가 목이 날아가고 만다. 어디서 감히 황제의 자리를 가지고 점을 치는가?! 남조의 대장군 장경측(张敬则)은 과거 꿈에서 어깨가 뜨거워진 덕분에 대장군이 될 수 있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제 꿈에 상반신이 모두 뜨거워졌으니 큰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함부로 지껄였다가 온 가족이 죽어나가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한무제의 태자 유거(刘据)나 양무제의 태자 소통(萧统)도 미신을 믿었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역시 미신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되는가?

하지만 미신을 믿어야 할 때도 있다.



강희제(康熙)는 중국에서는 세종대왕 급의 명군으로 손꼽힌다. 그는 중국전통학문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을 뿐만이 아니라 서양의 과학에도 정통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대신 연경요(年羹尧)에게 장님점술사를 데려오라고 한다. 연경요는 장님점술사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데리고 올 수 없다고 한다. 강희제는 장님점술사의 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의 점술 능력은 훌륭하다면서 은근히 화를 낸다.


명군이라고 불리우는 강희제가 미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데 감히 어디서 황제의 명령에 거부하는 것인가?!



사실 연경요(年羹尧)의 목숨까지는 뺏기지 않았으니 가벼웠다고 할 것이다.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刘秀)에게는 유가제일학자라고 하는 정흥(郑兴)이 있었다. 한번은 광무제가 점을 보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유가제일의 학자인 정흥은 당연히 유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그런 장난에 관심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광무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최대한 화를 참는 것이었다. 정흥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자신은 유가학문만을 공부하였기에 미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 미신은 미신전문가에게 물어보라고 서둘러 대답한다.


광무제 유수는 다른 것도 아니고 세상에 "유수의 천하가 올 것이다"라는 미신적인 유언비어를 바탕으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를 "장난"으로 취급하면 뭐가 되겠는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개경에서 한양(지금의 서울)로 천도를 할 때 내세운 이유가 풍수지리라는 미신적인 이유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대신들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였고, 피의 소나기가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성계는 단순히 미신적인 이유로 천도를 한 것이 아니라 문벌귀족들의 개경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었다. 그렇기에 유가가 사상적 기반 역할을 하였던 신흥사대부가 오히려 천도를 찬성하며 한양천도를 찬성하였던 것이다.




황제 접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이다. 미신에 대한 모든 판단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의도에 따라 정해진다. 당신이 아무리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미신을 거론하는 것에 어떤 이유가 있지 않는지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설령 단순한 황제의 취미생활 이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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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 이야기는 제가 마음대로 넣은 겁니다. 그 동안 원문을 "한국인에 적합하게 한다"면서 충분히 마음대로 변조하고 있었지만...그냥 심심해서 한국 이야기까지 넣어봤습니다. 원문도 보시는 분들은 점차 원문과 멀어지는 글에 경악하실지도....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인터넷 여론 조작을 통해 18대 대선에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대선투표 전부터 제기가 되었다. 그런데 경찰은 대선투표 전에 서둘러서 해당 사실이 없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진실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듯이, 경찰의 졸속 발표와는 다르게 점차 여론조작 행위가 있었다는 증거가 들어났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여직원 1명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개입했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국정원이 이 사건에 대해서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이는 국정원이 해당 직원의 행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국정원의 "공무수행"중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각주:1]. 다시 말해서 국정원이 2012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국정원법 9조 ‘정치 관여 금지’ 조항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실 굳이 국정원법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행동이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말을 통해서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인 투표보다 적대 세력에 대한 견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북한이나 중국과 다를 바가 없는 비민주적인 사고방식이며 행동이다. 국정원은 북한이나 중국의 정보기관이 부러워서 그들처럼 되고 싶은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2008년부터 사용중인 국정원의 모토이다. 모토에 주어가 없어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이 기회를 빌어서 분명히 하고 싶다. 국정원 모토의 주어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기득권"이 아니며, "국정원의 이익"은 더더욱 아니다.


정신차려라! 국정원!

너에게 찍혀 있는 안기부 시절의 낙인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싶은가?!


  1. 차라리 일개 직원의 개인적인 일이라며 꼬리를 짤라내는 편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황제는 보통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주인이고, 신하는 언제든지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쓰레기이다. 그러나 가끔은 신하가 모든 권력을 손에 넣고 황제를 단순한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한 방!"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빨리 세계를 통치하는 황제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방해되는 꼭두각시 인형은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그러나 북위(北魏)의 고환(高欢)은 꼭두각시 인형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낙양을 점령하고서는 황제를 갈아 치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 황제의 마누라를 자기 첩으로 만들어버린다.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환은 자신이 만든 가짜 황제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며 공송하게 대하였다. 심지어는 자신이 첩으로 만든 과거 황후에게조차 자기 자신을 낮추었다.


어쩔 수 없이 예전 황제를 몰아냈지만 천하가 혼란스러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이 상황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그의 적수 중에서 누군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꼭두각시에게 "황제"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꼭두각시가 쓸 데가 없을 뿐더러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의 꼭두각시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꼭두각시에게 있는 "황제"라는 이름을 통해서 당신은 자신이 명령하기 곤란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꼭두각시는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안전모인 것이다. 난세의 간웅 조조(曹操)나 당나라를 세운 이원(李渊)등도 모두가 꼭두각시 황제를 이용하였다.



물론 당신의 힘을 충분히 키워서 꼭두각시 황제가 없어도 세상을 통치 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꼭두각시 따위는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고 당신이 직접 "황제"가 되면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꼭두각시를 버린다는  점이다.


수(隋)나라 말기 왕세충(王世充)은 사실상 천하의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꼭두각시 황제를 모시기 귀찮아졌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주변에서는 힘이 충분하지 않으니 위험하다고 만류를 하였지만, 인생 한방의 정신으로 스스로 황제가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황제에 대한 연민을 등에 업고 힘을 키운 이세민(李世民)에게 천하를 빼앗기에 된다.



꼭두각시라는 것은 세상에서 인정하는 공통된 권위와 존엄이다. 당신에게 이를 대체할 만한 권위와 존엄이 없다면, 오히려 당신의 경쟁 상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천하가 혼란스러운 동주(东周)시대 초기 정장공(郑庄公)은 힘도 권력도 모두 읽어버린 황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심지어 황제의 어깨에 화살까지 맞추어버린다.


그러나 천하를 지배할 힘이 없었던 정나라는 천하 제후들의 공격을 받아서 처참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 그 뒤로 춘추오패를 비롯한 수많은 천하영웅들이 등장하고 결과적으로 진시황에 의해서 천하가 통일되지만 정나라는 약소국으로서 끊임없이 고통 받을 뿐이었다.



황제라는 꼭두각시는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세상은 비록 꼭두각시라도 "황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 100%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과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꼭두각시를 버리지 마라. 오히려 인형을 예쁘게 꾸며서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당신에게 훨씬 이득이 된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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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엄청나게 내렸군요. 이번 주중에 한 번 더 내린다고 합니다. 군대에 있었으면 하늘에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었을 듯하군요. "악마의 똥-_-+" 다들 조심하셔요~

북한이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중국의 대학생조차도 "그래도 북한보다는 좋잖아~!"라고 탁탁탁 자위행위를 하는 곳인데 말이다.


그런데 군대에 있다 보면  북한과 비슷할 정도의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군인의 시사발언을 제하는 것 때문에 그러냐고? 아니다.


아직 한국은 군인에게 시사발언을 하게 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다. 군대에 의한 쿠데타로 만들어져서 장기간 독재자로 군림해온 박정희와 그 뒤를 잇는 전두환-노태우가 있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군인에게 시사발언의 자유을 주는 것은 아직은 감정적으로 용납받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공무원으로서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함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적인 행동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의 적대적 감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시위"라는 것에 대해서 구시대적인 발상과 어이없는 논리로 "나쁜 것" 혹은 "빨갱이이나 하는 짓"으로 교육을 시킨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위경력이 있는 순간 "관심병사"로 낙인이 찍힌다. 한국의 남자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군대에서 시위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다보니 시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민 세뇌되어 사회로 나가게 된다.


시위는 나쁜 것이 아니냐고? 민주주의는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아니! 북한에서 살고 싶냐?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입 닥치고 살고 싶은가? 지금 우리가 북한보다 좋은 이유는 수 많은 "불법"시위들이 70~80년대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법시위"를 지금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더 악랄한 비유를 해줄까? 3.1운동도 불법시위였는데?!



물론 모든 불법시위가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시위를 중립적으로 바라봐야지 무조건 "나쁜짓"으로 보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이나 군대나 똑같은 명령-복종이 최우선인 집단이어서 그 모습이 너무나 유사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북한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 군대에 있을 때 쓴 잡글. 먼가 심히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_-;;;

몇몇 사람들은 "미국 제국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이는 제국주의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서 발생한 오류이다. 미국을 싫어하든 좋아하든과 하등 관계 없이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제국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큰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국의 정의는 차라리 "약자를 괴롭히는 힘 쎈 나라" 혹은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국가"라는 감정적인 해석이 오히려 더 사실에 가깝다. 한국어 사전에는 제국을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전의 오류이다.


아마 무대 위의 삐에로 같이 너무나 웃겨서 처연하게 보일 정도의 "대한제국"이 바로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제국"의 잘못된 해석에서 이름지어졌을 것이다.



제국은 "강한나라" 혹은 "약자를 괴롭히는 힘 쎈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한 국가가 종속된 어떠한 집단을 두고 "모국"과는 다른 통치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간단하게 영국-인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도는 영국에 종속된 집단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경우 비록 여왕이 존재하기는 하나 실질적인 권력은 국민들에게 있는 민주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는 식민지 총독이 파견되어 비민주적인 통치를 했었다. 인도의 국민들은 영국의 국민들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굳이 언급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의 모국과 식민지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로 인하여 독립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영국과 같은 "제국"으로 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미국의 경우 최초 독립 이후에 새로 확장된 하와이와 같은 곳은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리고는 하와이에 살던 원주민들도 기존의 미국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파나마나 필리핀과 같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경제-군사적 요충지이면서 미국령이 아닌 곳이었다. 파나마나 필리핀은 미국의 입장에서 자국 땅으로 편입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원칙상 식민지로 둘 수도 없기에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물론 단지 식민지 제도의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경제-문화적 혹은 그 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타국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는 국가도 "제국"이라고 정의해야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경우도 제국의 "원래 의미"는 숙지해두고 재정의를 시도하였으면 좋겠다.




* 군대시절 잡상처럼 써놨던 낙서......





청명절 혹은 한식은 보통 개자추(介子推)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자추는 진나라의 왕자 중이(重耳)가 망명 생활을 할 때 곁을 지켰던 충신이다. 한번은 양식이 떨어져서 모두 허기에 지쳐있을 때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서 중이(重耳)에게 바칠 정도였다. 훗날 중이는 진나라로 돌아가서 진문공(晋文公)이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부귀영화를 원하겠지만, 개자추는 모든 포상을 거부하고 면산(绵山)으로 숨어들어간다. 진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할 생각으로 불까지 지르지만, 개자추는 끝까지 산에서 나오지 않고 타 죽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개자추야 말로 청렴결백한 선비이며, 진문공의 행동이 과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문공이 온 산에 불을 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닌 "모든 포상을 거부한 청렴결백"때문이었다.



황제에게 있어서 천하의 문무백관은 필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명성을 원하고, 어떤 이는 돈을 원한다. 또 어떤 이는 여자를 원할 것이고 다른 어떤 이는 자식의 승진을 원할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만약 부귀영화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 된다.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이 제환공(齐桓公)에게 남긴 유언에도서 같은 이치를 찾아볼 수 있다. 관중은 위(卫)나라의 태자 자리를 벗어던지고 제나라로 와서 관직을 하고 있는 개방(开方)을 조심하라고 한다. 제환공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유를 물어보았다.


"에휴! 태자도 벗어던진 것이 문제입니다! 태자도 벗어던졌으니 분명 제환공에게서 더 큰 것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해가 되었는가?! 황제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대신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부귀나 여자 등을 원해야만 정상이며 안심을 할 수 있다.



양무제(梁武帝)을 원래 자신의 동생 소굉(萧宏)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였다. 그런데 한 번은 동생의 집에 공금횡령을 통하여 금은보화가 쌓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리고 양무제는 너무나 기뻐서 말춤이라도 출 기세가 된다. 동생이 공금횡령을 했는데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드디어 동생의 "탐욕"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하여 개자추는 진문공이 가장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공신이면서도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고 산으로 숨어버린다. 관직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다고?! 그럼 대체 뭐가 필요한데?! 19년이나 고난의 길을 걸어온 진문공에게 있어서 개자추의 "탐욕"은 결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렇기에 의심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생겨났던 것이다.



황제를 모실 때에는 결코 "욕망이 없는 고결함"만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당(唐)나라의 이필(李泌)은 당숙종, 당대종, 당덕종 3대를 모두 모신 왕가와 절친한 사이였다. 황제가문이야 그를 완전히 신임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에는 황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의 욕망이 있는 대신들도 국가시스템 안에 있었다. 원래 세상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도사가 되고자 했던 이필이지만, 고위 관직을 가지며 결혼까지 하며 "일반적인 사람"처럼 행동한다. 만약 이필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청렴결백의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국가 대신들과 같이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탐욕도 전략이다. 탐욕하지 않으면 당신은 의심받고 목숨까지도 위험하다.


전국시대 말기 진(秦)나라의 노장군 왕전(王翦)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楚)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에 극단적인 "탐욕"을 보여준다. 그는 출정을 가는 길에 심심하면 진시황에게 사람을 보내서 저 땅을 달라~ 이 땅을 달라~ 돈을 달라~ 집을 달라~ 심지어는 28세의 공주까지 새색시로 달라고 했다. 부장이 탐욕이 지나치지 않냐고 비웃자 왕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탐욕은 무슨… 어쩔 수 없다네. 진나라의 총병력이 78만인데 나 혼자 60만을 지휘하고 있다네.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황제의 의심을 받게 될 텐데 전쟁을 무슨 수로 하겠는가?!"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 어떻게든 이번 주 분량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로서 황제접대학의 반을 끝냈습니다. 박사 입학전에 마무리가 될 듯은 합니다. 저의 귀차니즘이 발동하지 않으면 말이지요......사실 귀차니즘보다 집문제부터 시작해서 이래저래 번잡한 일들이 쌓여있는지라.....~.~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정치가이다. 그는 복수를 맹세하고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를 떠나서 오나라로 떠나온다. 그 뒤로 그는 오왕 합려(阖闾)를 모시며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합려의 아들 부차가 등극한 이 후, 월나라의 위험을 몇 번이나 강력하게 경고하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죽게 된다. 그런데 정말 억울한 죽음이었을까?

 


정사와 야사를 막론하고 오자서가 오왕 합려의 아래에서 관직을 지낼 때에는 결코 합려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합려에게 아부를 하며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서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기로 했을 무렵, 원정군의 총사령으로 능력 면에서는 어디까지나 오자서가 최고였다. 그러나 오자서가 초나라 출신이었기에 일부러 손무(孙武)을 총사령관으로 추천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분명 제나라로부터 온 이민자인 손무(孙武)을 오나라의 전통귀족인 것처럼 열심히 포장한다.


오자서는 굳건한 믿음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초나라를 정복하고서는 원한을 이유로 초나라 왕의 묘를 파헤치고 시체에 300번이나 채찍질을 하였다. 그런데 오자서는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시대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만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도록 순종하고 조심했던 오자서는 사라지고 온갖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며 왕의 의견에 반대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자서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합려시대에는 그는 외부에서 유입된 지위가 낮은 선비에 불과했다. 합려에게 완전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었기에 언제 잘려도 신기하지 않은 계약직과 같이 불안정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합려는 사랑하는 딸의 장례를 위하여 수천 명을 생매장해버리기도 할 정도로 포악한 중년의 군주였다. 오자서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관직이나 부귀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차 시대에 오자서는 이미 오나라의 큰 기둥으로서 존재하였다. 그랬기에 어린놈의 부차 따위가 감히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설령 "어린놈"이라도 분명 제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대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황제인 것이다. 포악한 늙은 황제가 사람을 죽일 것 같으니 조심하고, 만만한 어린 황제라고 무시하는 행동은 죽으려고 환장을 한 행동이다. 오히려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제가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합려는 포악하기는 하였지만,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두뇌로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한다. 오자서가 설령 실수를 하였다고 해도 그의 능력을 아껴서 죽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제에게 경험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젊음의 혈기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당신이 누구이든 다 죽여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제는 오히려 일종의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황제인데! 감히 대들어?! 너 죽어!!!" 유아적인 자기증명의 유혹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의 곁에서 당신이 공신이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매일 매일 "아버지는 이랬는데...저랬는데..."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XXXX! 아버지가 그렇게 좋다면 아버지 곁으로 보내주지!!!"

 


핵심은 "늙은 황제""젊은 황제"을 동등하게 대접해야된다는 것이다. 남조 유송(刘宋)의 왕족 유의공(刘义恭)은 자신의 조카 유준(刘骏)이 황제가 되자 조심에 조심을 하면서 "나는 병신이요!!!"라면서 벌벌 떨었다. 그렇기에 유준도 유의공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행복한 반평생을 누리게 된다.


문제는 유준이 죽고 그의 아들인 유자업(刘子业)이 제위에 올랐을 때였다. 유의공이 보기에 유자업은 15살밖에 안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꼬맹이에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안심을 하고 매일 매일 연회를 베풀어서 즐겁게 놀았다. 결과는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

 


황제를 모실 때에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늙은 황제이든 어린 황제이든 능력이 뛰어난 황제이든 바보 같은 황제이든 모두가 황제이다. "황제 곁에 있는 것은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언제나 명심하라. 황제는 세계 최악의 초특급위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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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이상"과 "장래"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장래라는 것은 너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는 것이고, 이상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래이지 이상이 아니다.



중국사진(촬영세계) 시리즈의 사진과 글은 중국의 유명 사진잡지 촬영세계(摄影世界)의 마이크로블로그(http://weibo.com/photoworld)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중국어를 모르고 중국사진계에 접근이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소개하는 차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한중간의 저작권법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추후 본 시리즈의 어떠한 사진도 저작권상의 문제가 있다면 ddokbaro@gmail.com 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확인 후 해당 사진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북제(北齐)의 대신 조정(祖珽)은 흔히 말하는 좀도둑 같은 인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실제로 좀도둑질을 했을 뿐더러 관직에 올라서도 다른 집 잔치에 가서 금잔을 훔쳐오는 정신 나간 인간이었다. 초절정의 아부능력을 바탕으로 북제 세조(世祖)의 총애 아래 지금으로 따지면 국무총리라고 할 수 있는 재상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섭섭하지 않게 북제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장군 곡율광(斛律光)을 음해해서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행동도 해주었다. 간신배의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조정은 단순히 아부능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지금의 비서와 같은 일을 했을 때, 기억력만으로 수십 가지 명령을 한자도 빠짐없이 기억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몇 개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였고, 공문서 작성부터 군사전략까지 나름 천재류의 인물이었다.


말년에 눈이 거의 먼 상태에서 위험한 변경의 요지 서주 시장으로 좌천당했을 때의 이야기는 거의 기적과 같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병력으로는 적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제갈량의 공성계를 사용하여 적에게 후퇴를 강요하였다. 인간성에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을 것 같지 않은가?



문제는 이 천재류 아부꾼이 제상이 된 이후에 관직에서 몇 번이나 쫓겨나고, 공개적으로 엉덩이를 쳐 맞고, 황제가 “싸다귀”를 날려주시고, 눈까지 멀어서는 변방의 군사요지로 쫓겨나기까지 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영향이 아들에게까지 미쳐서 재상을 배출한 명문세가의 장남이 고작 마을이장 정도밖에 못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여러분들은 조정이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해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것이다. 하지만 조정은 재상이 되어서는 이전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가행정을 재정비하고, 자신이 이끌던 간신배들을 몰아내려고 했으며, 황제의 지시를 "바른 정치"을 이유로 반대하는 등 명재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는 간단하다. 조정이 간신배 캐릭터를 명재상 캐릭터로 변화시킨 것 자체가 문제이다. 절대 캐릭터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선비 캐릭터이면 끝까지 선비 캐릭터로 가야되고, 고집불통 캐릭터는 끝까지 고집불통 캐릭터로 가야된다. 간신배 캐릭터로 시작했다면 끝까지 간신배 캐릭터를 유지하여야 한다.



어째서 캐릭터를 바꾸면 안 될까?



황제에게 있어서 넘쳐나는 것이 인재이다. 황제의 주변에는 능력형, 오락형, 터프형, 고집불통형, 아부형 등등 모든 캐릭터기 존재하고 있다. 설령 자기 자신들은 모를지 몰라도 황제의 마음에서는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


황제가 어떤 이유로 조정을 재상으로 임명했을까? 설마 조정의 인간성이 좋아서? 어디까지나 조정이 자신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상으로 만들어놨더니 갑자기 자신의 뜻을 뻔히 알면서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지시에 반대를 해버렸다. 조정 스스로는 자신이 "좋게 변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는 "변한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또한 조정은 재상이 된 이후에 자신이 이끌던 간신배들을 몰아내고 현명한 재상이 되려고 하였다. 그 결과 그를 믿고 따르던 간신배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선비형의 사람들도 간신배들의 수령이 갑자기 착한 척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함정을 파고 있다고 생각하여 경계에 경계를 아끼지 않았다.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그와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캐릭터는 반드시 사수해야한다. 물론 캐릭터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마음만 변화해야하며, 결코 태도로 나타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서 진평(陈平) 역시 개망나니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고조(汉高祖) 유방(刘邦)에 의해서 관직에 오른 이후에도 결코 개망나니 같은 모습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큰 문제와 방향성에서만큼은 "좋은 인간"을 유지하였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몇 년의 시간에 걸쳐 천천히 자신의 캐릭터를 변화시켜서 마침내 개망나니에서 대정치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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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그냥그냥.......~.~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친철함이야 말로 진정한 친철함이며 배려이다.



중국사진(촬영세계) 시리즈의 사진과 글은 중국의 유명 사진잡지 촬영세계(摄影世界)의 마이크로블로그(http://weibo.com/photoworld)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중국어를 모르고 중국사진계에 접근이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소개하는 차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한중간의 저작권법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추후 본 시리즈의 어떠한 사진도 저작권상의 문제가 있다면 ddokbaro@gmail.com 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확인 후 해당 사진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제가 누구인가?! 당신을 고위관직에 오르게 할 수도 있고, 당신의 목숨줄을 끊어버릴 수도 있는 세계의 주인이다. 그런데 그런 주인에게 감히 말대꾸를 한다고?!그런데 실제로는 말대꾸로 목이 날아간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케이스가 의외로 많다



한고조(汉高祖) 유방(刘邦)는 말년에 정실부인인 여황후(吕后)을 버리고 탱글탱글한 첩 척부인(戚夫人)에게 빠져 있었다. 척부인을 과도하게 사랑한 나머지 척부인의 아들인 유여의(刘如意)을 태자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황제가 하겠다는데 감히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주창(周昌)이 겁도 없이 공개적으로 결사반대를 외쳐버렸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주창의 모가지가 날아갔을 것 같은가?


오히려 유방은 유언으로 주창이 유여의를 보좌하는 관직에 오르도록 한다. 유방의 입장에서는 감히 나에게 대들 정도면 유여의가 보좌에 오른 이후에 정실부인 여황후로부터 유여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록 주창이 최선을 다해서 막았으나 여황후는 유여의를 죽여 버리고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 정도의 권력을 손에 넣은 여황후가 주창을 죽여 버렸을 것 같은가?! 여황후는 과거 자신의 아들이 태자에서 쫓겨났던 것을 결사적으로 막았던 공을 치하하며 오히려 주창의 관직을 높여준다.


황제가문의 권력이동은 대신들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기로이다. 그러나 주창은 오히려 말대꾸 한 번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한 보호막을 얻게 되었다.



당태종에게는 지금으로 따지면 법무부장관정도가 되는 형부상서(刑部尚书) 장량(张亮)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장량은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매일 점이나 보면서 성공하기는 틀렸다고 한탄이나 하였다. 그러고서는 사병을 조직하지 못하게 되는 법을 정면으로 어기면서 몇 백 명이나 되는 "호위무사"을 만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당태종은 법을 수호해야하는 법무부장관이 법을 어기면서 사병을 육성하는 것은 반역행위와 다름이 없다면서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한다.


누가 봐도 장량의 행위가 잘못인 상황에서 절대 권력인 황제의 명령에 감히 말대꾸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 전속 수리공쯤 되는 이도유(李道裕)가 감히 "증거가 부족합니다! 주관적인 판단으로만 사형은 언도해서는 안 됩니다!"라면서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러나 당태종은 듣는 척도 하지 않으며 장량을 죽여 버린다.


그 뒤로 1년이 지났을 때 지금의 법무부 차관인 형부시랑(刑部侍郎)을 뽑을 때였다. 황제는 적당한 인재가 없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작년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지? 그 녀석 보고 법무부 차관을 하라고 해. 생각해보니 그 녀석 말도 일리가 있었지. 지금은 그 때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어."



황제도 사람인지라 아부를 듣기 좋아한다. 대체 누가 말대꾸를 듣기 좋아한단 말인가?! 그러나 황제는 분명 황제이다. 황제는 자신에게 말대꾸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이 명확하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말대꾸를 하는 사람들이 짜증나기는 하지만 천하를 경영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말대꾸를 하는 사람들이 경영에 유용하다는 것은 훌륭한 황제뿐만이 아니라 황제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조차 알고 있다. 동진의 왕돈(王敦)은 모반이 성공하기 직전에 갑자기 병사하고 만다. 이에 따라서 왕돈의 형인 왕함(王含)은 자신의 아들 왕응(王应)을 황제로 추대하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제 실패한 반란자가 된 부자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평소 자신의 비유를 잘 맞추어주었던 동생 왕서(王舒)와 모반에 반대하면 계속 말대꾸를 하던 동생 왕빈(王彬)이었다.


왕함이 왕서에게 가려고 하자 왕응은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왕서는 비록 평소에 저희의 비유를 맞추어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시대에 영합하는 사람이니 권력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목을 지금의 황제에게 받칠 겁니다. 오히려 비록 계속 저희를 반대하였지만 자신만의 식견과 강한 의지를 가진 왕빈은 위험을 무릅쓰고 저희를 지켜줄 것입니다." 그러나 왕함은 아들 왕응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아부꾼 왕서에게 갔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왕빈은 실제로 왕함과 왕응을 살리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말대꾸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초식이다. 황제도 말대꾸를 하는 사람이 국가경영에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인간인지라 감정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황제를 잘 살펴보고 말대꾸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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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정말 위험했습니다. 하기 귀찮아서........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어거지로......





책 읽기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교과서 이외의 것을 학교 밖에서 읽는 것은 일종의 생명에서 오는 신비한 동력이며, 현실의 이익과는 무관하다.



중국사진(촬영세계) 시리즈의 사진과 글은 중국의 유명 사진잡지 촬영세계(摄影世界)의 마이크로블로그(http://weibo.com/photoworld)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중국어를 모르고 중국사진계에 접근이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소개하는 차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한중간의 저작권법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추후 본 시리즈의 어떠한 사진도 저작권상의 문제가 있다면 ddokbaro@gmail.com 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확인 후 해당 사진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중 국 문화산업 관련 규정/법규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중국 ICT에 대해서 안다는 사람들도 정작 관련 법규에 대해서 미숙한 경우가 있다. 중국이 비록 법규와 실제가 미묘하게 따로 움직이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법규는 기본으로 숙지해야될 것이다.


다 만 본 자료는 2011년 1월까지 공포된 규정/법규로서 그 이후의 것은 추후 시간이 되는대로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다.(본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관련 법규-규제가 있다면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과 같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죠^^)



1. 방송분야 행정관리기관 및 관련 규정
「드라마 내용관리규정」(2010.7.1)
《电视剧内容管理规定》


「중외합자합작방송프로그램 제작경영기업 관리잠행임시규정」(2004. 11.)
《中外合资、合作广播电视节目制作经营企业管理暂行规定》

「중외해외 방송프로그램 수입 및․방송관리규정」(2004. 10. 23.)
《境外电视节目引进、播出管理规定》

 「TV드라마심사관리규정」(2004. 10. 20.)
《电视剧审查管理规定》

「방송프로그램교류활동관리규정」(2004. 10. 10.)
《广播影视节(展)及节目交流活动管理规定》

「방송프로그램제작경영관리규정」(2004. 8. 20.)
《广播电视节目制作经营管理规定》


「중외 합작제작 드라마 관리규정」(2004.8.1)
《中外合作制作电视剧管理规定》


 「해외기구의 중국설립 주재라디오/TV사무기구관리규정」(2004. 8. 1.)
《境外机构设立驻华广播电视办事机构管理规定》

「외국인참가방송프로그램제작활동관리규정」(1999.5.21, 2004. 6. 15.)
《外国人参加广播影视节目制作活动管理规定》


「해외기구의 중국설립 라디오/TV사무기구심사」
《境外机构设立驻华广播电视办事机构审批》


「해외 외주와 방송채널 및 방송국설립관리 임시규정 」 (2002.3.10)
《赴国外租买频道和设台管理暂行规定》


 「TV드라마관리규정」(2000. 6. 15.)
《电视剧管理规定》

 「방송관리조례」(1997. 9. 1.)
《广播电视管理条例》

「수입영상물관리방법」 (1981.10.13)
进口影片管理办法



2. 게임분야 행정기관 및 관련규정

「온라인게임관리임시방법」 (2010.8.1)
网络游戏管理暂行办法


「전자출판물출판관리규정」 (2008.4.15)
《电子出版物出版管理规定》


「인터넷문화관리잠행규정」(2003. 7. 1. – 2004.7.1일 수정)
互联网文化管理暂行规定

 「인터넷출판관리잠행규정」(2002. 8. 1.)
《互联网出版管理暂行规定》

 「인터넷정보서비스관리방법」(2000. 109. 251.)
《互联网信息服务管理办法》

 「수입온라인게임심의규정」(2000. 10. 1.) ???

 「전자출판물관리규정」(1997. 12. 30, 1998.1.1.)
电子出版物管理规定



3. 음반/DVD 분야 행정관리기관 및 관련 규정

 「음반영상제품 도매, 소매, 임대관리밥법」(2006.12.1, 2002. 4. 10.)
《音像制品批发、零售、出租管理办法》


「음반영상제품출판관리규정」(2004. 8. 1.)
《音像制品出版管理规定》

 「중외합작음반영상제품소매기업관리방법」(2004. 2. 9.)


 「음반영상제품수입관리방법」(2002. 6.1, 4. 17.)
《音像制品进口管理办法》


 「음반영상제품내용심사방법」(1996.2.1, 2002. 7. 25.)
《音像制品内容审查办法》


 「음반영상제품관리조례」(2002. 2. 1.)
《音像制品管理条例》



4. 그 밖의 관련 규정
<인터넷 시청서비스업무 분류목록(임시)>(IPTV, 인터넷TV, 휴대폰TV의 업무분류를 포함하지 않음) (2010.4.1)《互联网视听节目服务业务分类目录(试行)》(不含IP电视、互联网电视、手机电视的业务分类)


<민영문예시연단체를 고무장려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관한 몇가지 의견>
(2009.6.2, 2005. 11. 4 )
《文化部关于促进民营文艺表演团体发展的若干意见》


<문화산업발전을 지원하는 몇가지 세제정책문제에 관한 통지> (2009.3.27, 2005. 3. 29 )
《关于支持文化企业发展若干税收政策问题的通知》


<인터넷 프로그램 시청서비스 관리규정>(2008.1.31,광전총국)
《互联网视听节目服务管理规定》


<비공유자본의 문화산업진입에 관한 몇가지 결정> (2005. 8.4.)
《国务院关于非公有资本 进入文化产业的若干决定》


<문화상품수입관리 강화에 관한 방법> (2005. 8 . 2  4.28 )
《中共中央宣传部、文化部、国家广电总局等关于加强文化产品进口管理的办法》

<문화영역의 외국자본 도입에 관한 몇 가지약간 의견의 통지> (2005. 7.6., 8. 4 )
《关于文化领域引进外资的若干意见的通知》


5.  문화 산업 관리 규정

<문화상품수입관리 강화에 관한 방법> (2005년 8월2일)
《中共中央宣传部、文化部、国家广电总局等关于加强文化产品进口管理的办法》


<문화영역의 외국자본도입에 관한 약간 의견> (2005년 8. 4.) 


<문화영역의 외국자본 도입에 관한 몇 가지 의견의 통지> (2005.7.6.)
《关于文化领域引进外资的若干意见的通知》



6.    음악분야(신문출판총서, 문화부)

-<음상제품 도소매,대여 관리방법> 《音像制品批发、零售、出租管理办法》(2006.12.1)


- <중외합작 음상제품 유통판매기업 관리방법> 《中外合作音像制品分销企业管理办法》(2004.1.1)


- 중외합작 음상제품유통판매기업 심사비준은 <음상영상제품관리조례>《音像制品管理条例》(2002.2.1)


- <음상영상제품관리조례> 《音像制品管理条例》(2002.2.1)


 -  <해외음상제품 출판계약등록에 관한 통지>《关于对出版境外音像制品合同进行登记的通知》(1995.1.15)


중국 온라인게임관련 규정/법규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중국 ICT에 대해서 안다는 사람들도 정작 관련 법규에 대해서 미숙한 경우가 있다. 중국이 비록 법규와 실제가 미묘하게 따로 움직이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법규는 기본으로 숙지해야 될 것이다.


다만 본 자료는 2011년 1월까지 공포된 규정/법규로서 그 이후의 것은 추후 시간이 되는대로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다.(본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관련 법규-규제가 있다면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과 같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죠^^)



온라인 게임관리임시방법 (2010.8.1) <网络游戏管理暂行办法>(문화부)[각주:1]


온라인 게임의 심의권이 문화부에 있다고 공표하고 세칙을 명시한다. 기존의 규정과 달라진 부분은 청소년보호부문에서 보다 강화가 되었으며, 온라인게임경영단위가 게임내용세서 반드시 지켜야 될 규정이 생겼다. 온라인게임 중에서 사용자가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전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거나, 랜덤방식으로 상품이 나오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법정화폐나 온라인가상화폐를 사용하게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온라인가상화폐에 대해서 준수해야 할 규정을 두었다.

온라인게임의 가상화폐의 사용범위는 자신이 제공하는 온라인 게임 상품과 서비스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며, 결제나 실물구매 혹은 기타 단위의 상품 및 서비스로 바꿀 수 없다.

온라인게임 가상화폐의 발생은 악의적으로 사용자의 선불금액을 차지하려는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온라인게임사용자의 구매기록은 사용자가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받은 날로부터 180이상 보관하여야 한다.

온라인게임의 가상화폐의 발생종류와 가격 및 총량 등의 상황을 규정에 따라서 등록지의 성급 문화행정부문에 등록하여야 한다.

 


국무원의 "삼정"규정과 중앙기구위원회의 해석을 관철하고, 온라인게임의 사전검열과 수입온라인게임의 심사관리를 하기 위한 통지 (2009.9.28) <关于贯彻落实国务院(“三定规定)和中央编办有关解释进一步加强网络游戏前置审批和进口网络游戏审批管理的通知>(신문출판총서(판권국)) [각주:2]


온라인게임의 심의권이 신문출판총서(판권국)에 있다고 공표하고 세칙을 명시하였다. 신문출판총서에서 온라인 게임의 "텍스트"을 심사하여야 하며, 판권국에서는 저작권부문을 처리하기에 신문출판총서(판권국)이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고 해석하였다. 또한 외국자본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중국에서 온라인게임운영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중앙기구위원회사무실의 문화부, 광전총국, 신문출판총서의 "삼정"규정 중의 애니메이션, 인터넷게임 및 문화시장의 종합집행의 부분조문에 관한 해석(2009.9.7) <中央编办对文化部广电总局新闻出版总署<“三定规定>中有关动漫网络游戏和文化市场综合执法的部分条文的解释>

부처간 문제가 발생한 애니매이션, 인터넷 게임등의 문화시장에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중앙부처간의 행정집행권한을 조절하는 "삼정"규정에서의 구체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이하 동일)

 


전자출판물출판관리규정(2008.4.15) <电子出版物出版管理规定>[각주:3]

전자출판물의 심의권이 신문출판총서(판권국)에 있음을 공표하고 세칙을 명시하였다. 신문출판총서의 전자출판물은 데이터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식성, 사상성 내용물로서 사실상 컴퓨터에서 통용되는 모든 "텍스트"을 의미한다. 전자출판물출판단위는 아래의 조건을 구비하여야 한다.

전자출판물단위의 이름과 사칙이 있어야 함.

신문출판총서가 인정한 조건과 부합하는 주관단위나 주반단위가 있어야 함.

확정된 전자출판물 출판업무범위가 있어야 함.

200만위엔 이상의 등기자본이 있어야 함.

업무범위에 필요한 설비와 작업장소가 필요하며, 작업장소의 면적은 200평방미터보다 좁아서는 안된다.

업무범위가 필요로 하는 조직기구가 필요하며, 2명 이상의 중급이상 출판전문직업작업자가 필요하다.

법률과 행정법규가 규정하는 기타조건이 필요하다.


해외저작권자가 수권한 전자출판물의 출판신청은 다음과 같은 자료를 필요로 한다.

전자출판물 이름과 내용소개 및 수권측 이름과 수권측 기초 상황 소개 등이 포함된 신청서

신청단위의 심사보고서

양본과 필요한 내용자료.

신청단위가 소재한 성, 자치구, 직할시의 저작권행정관리부문의 저작권 계약 등기증명문건. 그리고 해외저작권자가 수권한 전자게임출판물의 경우 게임의 주요인물과 주요장소의 사진자료 및 대리기구의 영업증과 발행계약서 그리고 발행기구의 도매허가증 및 게임문자교본전문등의 자료가 필요하다.

 


<문화상품수입관리 강화에 관한 방법> (2005년 8월2일) 《中共中央宣传部、文化部、国家广电总局等关于加强文化产品进口管理的办法》
중앙선전부, 문화부, 국가광전총국, 신문출판총서, 상무부, 세관총서 등 6개부문 공동 발표 주요내용
- 저작권무역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
- 연간 저작권무역 교역 총량제 실시를 강화하고, 출판사의 저작권 수입량을 제한하며, 저작권 수출입규모가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문화상품수입에 관하여 특별허가경영제도를 실행하고, 문화상품수입경영단위에 문화상품수입경영허가증은 발급.
 각 세관부문이 문화상품수입 관련된 수속 등의 업무를 진행 시 허가증을 확인.


<문화영역의 외국자본 도입에 관한 몇 가지 의견의 통지> (2005.7.6.) 《关于文化领域引进外资的若干意见的通知》<문화영역의 외국자본도입에 관한 약간 의견> (2005년 8월 4일) 《关于文化领域引进外资的若干意见的通知》
가. 문화영역 외국자본 도입허가 가능분야
 - 외상이 독자 혹은 합자, 합작방식으로 포장장식인쇄, 책간행물 소매, 기록가능 음반생산, 예술품경영 등의 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허가한다.
 - 중국측에서 51%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중국측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조건하에서 외상이 합자, 합작의 방식으로 출판물인쇄와 기록가능음반복제 등의 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허가한다.
 - 중국의 음상제품내용심사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외상이 중국업체와 합자형태(중국이 주도적인 위치)로 영화 외의 음상제품소매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허가한다.
 - 중국측이 51%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중국측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조건 하에서 외상이 합작, 합자의 방식으로 공연장소, 영화관, 공연경기기구, 영화 기술 등의 기업을 설립하고 경영하는 것을 허가하며, 국유 책간행물, 음상제품발행기업의 지분제 기업개선에 참여하는 것을 허가한다.   
 나. 문화영역 외국자본 도입허가 금지분야
 - 외상이 신문기구, 라디오/TV방송국, 방송TV프로그램제작과 방영회사, 영화제작회사, 인터넷문화경영기구와 인터넷온라인 서비스영업장소(홍콩, 마카오 제외), 문예시연단체, 영화수입과 발행, 녹화방영회사 등을 설립하여 경영하는 것을 금지한다.
 - 외상이 도서, 간행물의 출판, 총발행과 수입업무, 음상제품과 전자출판물의 출판, 제작, 총발행과 수입업무, 정보인터넷을 이용하여 전개하는 시청프로그램서비스, 신문사이트와 인터넷출판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한다.
 - 외상은 출판물을 통하여 소매, 인쇄, 광고, 문화시설개조 등의 경영활동을 할 수 없으며, 변칙적으로 채널, 주파수, 페이지, 편집과 출판 등 홍보업무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다. 외국자본의 심사비준, 투자자측의 자격조건에 대해 관리강화


인터넷문화관리 임시규정의 시행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문화부의 통지 (2003.7.4) <互联网文化管理暂行规定 有关问题的通知>은 인터넷문화관리 임시규정(2003. 7. 1.2004.7.1일 수정)[각주:4]

인터넷출판관리 임시규정<互联网文化管理暂行规定>에 대한 문화부의 해석을 담고 있다. 문화는 인터넷문화관리잠행규정을 통해서 인터넷에서의 문화산업의 주도권이 문화부에 있다고 해석하였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경우 문화부에 아래의 문건을 제출하여 심의를 받아야 된다고 밝히고 있다.

수입게임상품내용심사심청서

영업증서

저작권무역 혹은 운영대리계약초안(중국어, 외국어문본), 원작저작권증명서, 저작권수권서

게임상품양본(중국어본, 외국어본, 클라이언트포함)

게임상품의 주제와 내용설명서(중국어본, 외국어본)

게임상품의 사용설명서(중국어본, 외국어본)

법률적으로 제공해야 되는 기타내용)

 


인터넷출판관리 임시규정(2002. 8. 1.) <互联网出版管理暂行规定>[각주:5]

인터넷출판물의 관리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는데, 전자출판물출판관리규정(2008.4.15) <电子出版物出版管理规定>이 나오고 안 뒤에 실질적으로 폐지되었다.

 


인터넷 정보 서비스 관리 조치 (2000.9.25) <互联网信息服务管理办法>[각주:6]

ICP(互联网信息服务增值电信业务经营许可证)는 아래 사항이 충족될 경우 취득할 수 있다.

업무발전계획 및 관련 기술방안

건강한 인터넷과 데이터의 안전 보장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인터넷안정보장조치와 데이터안전비밀관리제도, 사용자데이타안전관리제도를 포함한다.

서비스항목이 신문, 출판, 교육, 의료보건, 약품 및 의료기계등인 인터넷데이타서비스는 관련 법률과 행정볍규 및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서 관련 주관부문의 심사-동의 이후에만 ICP을 신청할 수 있다.


신문과 출판 및 전자공고등의 서비스를 하는인터넷데이타서비스 제공상은 응당 데이터의 내용과 발표시각, 인터넷주소을 기록하여야 하며, 인터넷접속서비스제공상은 사용자의 접속시간, 사용자ID, 인터넷주소 및 주요 연락 번호등의 정보를 기록하여야한다.


인터넷데이타서비스제공자는 아래 내용을 제작, 복제, 발표, 전파하지 않아야 한다.

헌법이 확정한 기본원칙에 반대하는 내용.

국가안전을 위협하고 국가기밀을 누설하며 국가정권의 전복하려 하고 국가통일을 파괴하는 내용.

국가의 명예와 이익을 훼손하는 경우.

민족원한과 민족멸시를 선동하고 민족단결을 파괴하는 내용.

국가종교정책을 파괴하고, 사교와 봉건미신을 선전하는 내용.

유언비어를 살포하고 사회질서를 혼란시키며 사회안정을 파괴하는 내용.

음란, 색정, 도박, 폭력, 흉악범죄, 공포을 살포하거나 범죄교사를 하는 내용.

타인을 모독하거나 비방하며, 타인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내용.

법률과 행정법규가 금지하는 기타 내용.


ICP을 취득하지 않고 인터넷정보서비스를 하거나 허가한 서비스항목을 벗어날 경우 기간내 개정 명령을 받게 되며, 불법적인 소득을 압수하며, 불법 소득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중국정부의 인터넷 관리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문건. 본 방법의 규정한 ICP 번호를 메인에 명시하지 않았을 경우 각급 관리기구의 개정명령과 5000위엔 이상 5만위엔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벌금보다는 해당 서비스에 대한 중국에서의 접속자체를 차단해버린다는 것이 규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더욱 큰 문제이다.

 


수입온라인게임심의규정(2000. 10. 1.)과 전자출판물관리규정(1998.1.1.) <电子出版物管理规定>은 실질적으로 폐지되었다.

  1. http://www.gov.cn/flfg/2010-06/22/content_1633935.htm [본문으로]
  2. http://www.gapp.gov.cn/cms/html/21/367/200910/466288.html [본문으로]
  3. http://www.gapp.gov.cn/cms/html/21/397/200803/456760.html [본문으로]
  4. http://www.gov.cn/gongbao/content/2003/content_62503.htm [본문으로]
  5. http://www.sbsm.gov.cn/article//ztzl/hlwdthjg/zcfg/200805/20080500035736.shtml [본문으로]
  6. http://www.gov.cn/zwgk/2005-06/06/content_4424.htm [본문으로]


 

황제의 아래에는 중정(中正), 사예(司隶), 이부(吏部)등 관리를 선발하고 평가하는 인사부문과 관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떠한 관직도 모두가 결과적으로는 황제에 의하여 결정된다.

 

현실적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힘들 일이기에 일반적인 관리들은 온갖 노력 끝에 겨우 겨우 승진을 하고는 한다. 설령 황제의 입맛에 맞는 정책으로 총애를 받고 싶어도, 황제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기에 역시 쉬운 방법은 아니다.

 

무엇보다 결과가 나쁘면 승진을 고사하고 퇴직을 강요받게 되지만, 반대로 결과가 너무 좋아도 동료들의 질투와 시기뿐만이 아니라 황제로부터 자신의 자리를 강탈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의심까지 받게 된다. 너무나 능력이 좋아도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망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단순한 아부꾼이 되는 것을 어떨까?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게 될 뿐만이 아니라, 아부를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황제의 총애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단순한 승진조차 이렇게 어려운데 황제를 협박해서 승진을 한다고?!

 

육법화(陆法和)는 남조 양원제(梁元帝)아래에서 지금으로 따지면 지방도시 시장정도가 되는 관직에 있었다. 그는 큰 명성도 없었고, 이렇다 할 능력조차 없었다. 특이할 것은 취미생활로 점을 본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하루는 지방관리주제에 황제에게 직접 보고서를 쓴다. 내용은 더 가관으로 자기를 "사도(司徒)"로 임명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사도(司徒)는 지금으로 따지면 국무총리 정도로 지방도시의 시장이 감히 노릴 자리가 아니었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육법화는 능지처참을 당하고 그 가족의 목이 날아가야 정상일 것 같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황제는 "육법화가 점을 볼 줄 아니까. 자신이 사도가 될 수 있는 복이 있다고 생각했나 보군."이라면서 지방도시의 시장을 곧장 국무총리로 임명해버린다.


 

그러나 육법화가 시골도시 시장에서 단숨에 국무총리가 된 이유는 결코 이상한 황제를 만나서가 아니다. 당시 양원제는 반란으로 혼란해진 사이에 군대를 일으켜서 황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육법화가 있던 곳은 매우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그렇기에 육법화에 대해서 황제는 채찍보다는 당근을 주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도라는 관직은 현재의 국무총리와 비견되는 고위관직이기는 하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는 돈 한 푼 들지 않고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까짓 사도 따위 그냥 육법화에게 던져준 것이다.

 



황제에게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을 자신이 쥐고 있다면 황제를 협박해서 고위 관직을 얻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원문에서 많은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필요 없어 보여서...결코 귀찮아서가 아닙니다.-_!!!

 




삶에서 후회를 남기기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모든 변화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중국사진(촬영세계) 시리즈의 사진과 글은 중국의 유명 사진잡지 촬영세계(摄影世界)의 마이크로블로그(http://weibo.com/photoworld)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중국어를 모르고 중국사진계에 접근이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소개하는 차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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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활을 사랑하지만 조용함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컴퓨터 앞에서 세계와 하나 되기보다는 발코니에 앉아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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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약점을 감춘다. 강자가 솔직히 밝히는 약점은 전시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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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건륭황제(乾隆帝)는 유용(刘墉)에게 그 공로를 치하하며 황제의 신발과 옷 등을 하사하였다. 유용은 성은이 망극하여 가문의 사당에 모시고서는 가보로 삼았다.

대대로 수 많은 대신들이 황제의 하사품을 받아왔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황제의 하사품을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전속 관리인까지 두면서 고이고이 모셨다. 만약 조금이라도 하사품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건륭황제는 서예와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때때로 대신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하였다. 대신들은 황제의 하사품을 전시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벌레라고 생길 것을 우려하여 조심히 보관할 뿐이었다. 강희제의 경우는 사냥을 좋아해서 대신들에게 자신이 잡은 동물들을 하사 하였다. 대신들은 황제가 하사한 동물을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썩어가게 놔두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였다.


당나라의 의종(懿宗)황제는 황실악사 이가급(李可及)의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이가급은 황제로부터 짐수레로 끌어야 될 정도의 하사품을 자주 받았다. 훗날 이가급이 황제의 눈 밖에 나서 하사품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되었을 때 내시들이 비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이가급은 황제의 하사품은 감히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 황제의 하사품을 이렇게까지 간직할 필요가 있을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바보짓이다.

황제가 하사품을 내린다는 것은 당신을 좋게 봤다는 것이거나 유용하게 쓰라는 의미이다. 만약 황제가 음식을 주는 것은 먹으라는 것이고, 돈을 주는 것은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런 하사품을 억지로 고이 모셔두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당태종(唐太宗)은 대장군 이적(李勣)이 병에 걸리자 치료약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이적은 성은에 감사하며 하사품을 고이 모셔두기만 할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바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다.



황제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황제에게 음식이 부족한가? 돈이 부족한가?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이 황제의 것인데 당신에게 하사한 것은 먼지 한 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무엇보다 당신이 하사품을 고이 간직하는 것은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데, 정작 황제는 자신이 하사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하였다시피 이가급은 임금에게 미움을 산 뒤에 자신이 받았던 모든 물건을 반환하여야 하였다. 당신이 황제의 하사품을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몇 십 년 동안 보호하고 아낀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은총이 더 해지는 것도 아니고 덜 해지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아무리 황제의 하사품을 아끼더라도 황제는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냥 황제가 음식을 하사하면 먹고, 돈을 주면 쓰고, 옷을 주면 입어라. 당신이 하사품으로 무엇을 하든지 황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의 소광(疏广)과 소수(疏受)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들은 퇴직축하로 황제에게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받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 돈을 성금으로 내기도 하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서 1년이 되기도 전에 모두 써버렸다. 이들이야 말로 황제 접대학의 고수들이다.



황제가 하사품을 내리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이 하사품을 받고 열심히 나를 위해서 국토를 넓히거나 나라를 평안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적처럼 하사받은 약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지 않고 고이 모셔두다가 죽어버리는 것이 대체 황제에게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황제가 원하는 것은 하사품을 경건하게 다루는 당신의 모습이 아니라, 황제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모습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와와와!! 이번주 끝이다!!!!!! 한 2일은 번역 안해도 되는구나~~~~ 우헤헤헹~ -_-;;;

자기 자신을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귀차니즘을 이기려고 노력중-_-;;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은 거짓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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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종결은 서진(西晋)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예(杜预)가 있었다. 그는 홀로 오나라 점령 전략을 구상하였을 뿐더러, 직접 원정군에 참여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오나라를 멸망시킨 서진의 원정대의 사령관은 두예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나라 점령계획을 끝까지 반대했던 가충(贾充)이었다.


가충은 이미 원정대가 출발 준비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에 반대하며 집에서 뭉그적거렸다. 결국 서진의 황제 사마염(司马炎)이 화가 나서 "계속 그러면 내가 직접 간다?!"라고 할 정도로 압박을 주자 어쩔 수 없이 원정군 사령관이 되긴 한다. 다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과는 몇 천리가 떨어져 있는 수도 근처에 사령부를 설치하고는 "지휘"을 한다.


이딴 사령관 아래서 짜증나서 어디 일하겠는가? 그런데 꼴 같지도 않은 사령관을 추천한 것은 다름이 아닌 두예 자신이었다. 두예는 자신의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하는 이런 사람을 왜 굳이 자신의 상관으로 모시려고 했던 것일까? 미친 걸까?


사실 두예는 가충을 자신의 안전모로 사용했던 것이다.



정치사는 언제나 배신과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 최고 권력자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군대를 통솔하는 사령관의 반란이었다. 그래서 사령관들은 자신의 가족을 인질로 잡히고는 하였다. 사실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도 그다지 합당하지 않다. 어차피 천하를 잡으려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깟 가족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렇기에 황제는 힘을 가진 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북위(北魏) 말년에 “그림자 황제”로까지 불릴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지방반란세력을 토벌해야했던 하발악(贺拔岳)은 자신의 처지를 "이겨도 안 되고 져도 안 되는 지경"으로 묘사하였다.


지게 된다면 당연히 문제이겠지만, 만약 설사 이기더라도 황제의 자신에 대한 의심과 의혹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발악은 자신의 정치적 맞수였던 이주천광(尔朱天光)을 사령관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자신은 부사령관의 자리를 맡는다.


결과적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이주천광은 사령관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포상을 얻게 된다. 하지만 하발악 역시 승진을 하였을 뿐더러 자신에게 집중되던 영광과 권력을 분산함으로서 황제의 의심을 줄일 수 있었다



다시 두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서진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하여 마지막 남은 오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었다. 서진의 수도에서 몇 천 리나 떨어진 곳으로 대군을 보내야 되는 황제의 입장에서 완전히 믿는 사람이라도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가충은 비록 병신 같고 계속 전쟁자체를 반대해왔지만, 황제의 총신일 뿐더러 황제 가문과 혼약으로 맺어진 사이였다. 이런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떠억 하니 모셔두면 황제라도 안심할 수 있게 될 뿐더러 그 후광을 이용하여 장군들을 조절하기도 쉽다. 무엇보다 사령부가 현장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오히려 방해를 받지 않고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사실 아무리 현명한 황제라고 하더라도 코드인사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연소왕(燕昭王)은 인재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유명하지만, 구름처럼 몰려온 인재들이 자신의 수도에서 음모를 꾸미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수도와는 떨어진 곳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오왕 합려(阖闾)는 오나라를 부흥시킨 명군이었지만, 초나라와의 전쟁을 결심하고서는 누가 봐도 최고의 인재이지만 초나라 출신인 오자서(伍子胥)와 백비(伯嚭)을 멀리하였다.


명군이라는 사람들도 코드인사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일반적인 지도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렇기에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닌 "안전모"이다.



물론 "안전모"도 괜찮은 것을 착용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당대의 명장 곽자의는 당숙종(唐肃宗)의 아들 광평왕 이숙(李俶)을 자신의 안전모로 사용하였다.


문제는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던 이숙이 갑자기 스스로가 천재군사전략가라고 된 것처럼 직접 나서서 지휘를 해버린다. 그 결과 천하의 곽자의라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몇 십만 명의 당군은 패망을 하고 만다. 안전모는 어디까지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방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전모가 자기가 명검이라도 되는 듯이 날뛰었으니 난장판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당신의 충분히 용감하다면 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司马穰苴)의 사례를 배울 수도 있다. 그는 군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황제가 하사한 표준형 안전모를 군법회의에 늦었다는 이유로 처형해 버린다. 황제가 특사를 파견해서 말리기까지 하였으나 "장군이 군중에 있을 때에는 비록 주공의 명령이라도 받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하였을 뿐이었다. 그 결과 황제의 총신도 군법 때문에 죽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군법과 사마양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게 된다.

하지만 안전모를 스스로 박살내는 행동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선택이다. 우선 안전모가 큰 잘못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황제도 당신을 이해해주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된다.


웬만하면 그냥 "자나 깨나 안전모"을 생활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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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귀찮아서 번역 안 할 뻔 했다...-_



기대수명과 안전 및 복지의 수준의 향상으로 어떤 사회의 발전을 논하지 말라.

동물원 안의 동물과 야생동물을 비교하는 것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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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前秦)의 부견(苻堅)은 소수의 저족(氐族)의 수령으로 왕국까지 세우게 된다. 그러나 저족의 갑작스러운 인구팽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저족을 국경지역에 분산 배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저족의 힘을 분산시키고, 타민족이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를 내세운 저족 대신들의 강력한 불만을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전진은 선비족과 강족의 반란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황제는 필히 자기 사람을 주변에 두어야 된다. 외부인들이 힘을 키우게 되면 반란이 일으킨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한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부견보다 조금 일찍 갈(羯)족 국가를 세운 후조(後趙)의 석씨 일가의 예를 살펴보자. 석씨 일가는 자신의 민족 이외에 다른 이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갈족들을 수도 부근에 밀집시키고, 두 명의 아들에게 각각 10만 가구씩 통솔하도록 하였다.


수도 주변을 "자기 사람"으로 채웠으니 안전할 것 같은가? 석호가 죽고 나자 수도 주변의 갈족끼리 내전이 벌어져서 몇 년 만에 나라는 물론 민족 자체가 사실상 없어지고 만다. 



누가 "내 사람"인가?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네가 성공하면 같이 성공하고, 네가 패망하면 같이 패망하는 사람이 "내 사람"인 것이다. 만약 단순히 가족, 같은 지역,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자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편협할 뿐더러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행동이다.


세계를 뒤흔든 몽골제국도 같은 이유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몽골인만을 "자기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 외의 민족은 차등을 두어서 대접하였다. 그 결과는 제국의 빠른 붕괴이지 않았는가?!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부견의 몰락은 단순히 "자기 사람"인 "자기 민족"을 분산 시켜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고 동진(東晉)과 전쟁을 벌여 패배한 것이 원인인 것이다.


본래 "외부인"인 사람들도 부견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해서 부견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부견이 처참하게 패배한 순간 상황은 변하고 만다. 부견 밑에 있어봤자 어떠한 이익도 있을 수 없는데 무엇하러 계속 충성을 바쳐야 하는가?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인" 뿐만이 아니라 "자기 사람"도 외부인으로 변해버리고는 한다. 실제로 부견과 동족이자 친구일 뿐만이 아니라 친척이기도 했던 여광(呂光)도 부견의 패배 소식을 듣고서는 반란을 일으켜서 후량(後涼)의 황제로 등극해버리지 않는가?




정리해보자. 황제에게 "자기 사람"은 형제도 아니고, 고향친구도 아니다. 황제에게 자기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능력이다.


만약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떤 사람이든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내 사람"이 될 것이고, 반대로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설령 친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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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마치 친구를 찾은 것과도 같다.

좋은 책을 다시 읽을 때는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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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국의 설날 기간은 1~2주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길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차로도 2~3일이 걸리는 것이 "보통"인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길다고 할 수도 없다. 특히 중국은 설날에는 반드시 고향집으로 내려가서 가족들을 봐야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남아 있기에 수억 명이 이 기간에 움직이는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이 연출된다. 


무섭기까지한 중국의 중국의 설날 귀향은 철도로 시작해서 철도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에 비하여 너무나 넓기에 버스로 이동하는 것보다 철도를 통하여 귀향하는 것이 비용이나 효율면에서 합리적이다. 물론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비행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비싼 운송수단이다.



2012년 1월 8일 산시성 태원시 철도역에서 한 노인이 천진에 있는 딸을 보러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표를 구매하기 위해서 필요한 신분증이 없었을 뿐더러 기차표값조차 부족하였다. 한 경찰이 이 사정을 알고 노인을 도와서 임시신분증 발급을 도와주고 철도표 사는데 부족한 돈을 보충해주었다. 노인은 고마움에 무릎을 꿇고 딸에게 주려고 한 가득 담아놓은 농산물을 주었다.


보통 설날 몇 주 전부터 예매 시작하는데 이 광경은 슬프기까지 하다. 예매기간에 2~3일은 기본으로 예매하는 곳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는 한다. 그런데 2013년에는 중국 철도부에서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여서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정책을 시행[각주:1]했다.  그리고 온갖 비판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3년 1월 19일 밤 합비의 기차역에서 농민공 부부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들은 12일부터 고된 육체 노동을 마치고 매일 저녁 기차역에 와서 고향에 돌아갈 표가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기적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중국 철도부는 인터넷 예매를 20일 전부터 시작하였고, 예매창구를 통한 예매를 18일전부터 시행하였다. 문제는 도시에 나와서 일을 하는 시골출신의 노동자(농민공) 중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있는 것은 몸 뿐이기에 아무리 열심히 예매창구에서 줄을 서도 똑똑한 사람들이 이미 2일 전에 인터넷으로 예매을 해버렸다. 농민공들은 1년에 단 한 번 가족을 볼 기회조차 무식하다는 이유로 박탈당해버린 것이다.



2012년 1월 10일 항조우 철도역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미 5일 밤낮을 표를 구하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었고, 이미 피곤에 지쳐서 서 있는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고향의 80이 넘은 어머니는 자신이 표를 구하려고 5일동안 철도역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인터넷예매도 조용하지는 않았다. iFish이라는 네티즌이 만든"자동예매 플로그인"을 만들었고, 이어서 안티바이러스와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찐샨(金山)을 비롯하여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왕(人民網) 및 다양한 네티즌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러자 중국철도부는 비공식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관련 서버를 차단해버린다[각주:2].



2013년 1월 9일 불산의 한 부부가 농민공을 위해서 10위안의 저렴한 돈을 받고 인터넷으로 대신 철도표를 예매하여 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수 많은 철도표 불법상인들을 놔두고 주변의 농민공을 도와주기 위해서 10위안의 수고료밖에 받지 않은 사람을 체포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쟁이 아닌 평범한 귀향이 중국에서 가능할 날이 언제쯤 올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2013년 중국의 설날 귀향 대작전은 이제 시작이며 더 많은 슬픈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이다.



  1. 12306订票 시스템 [본문으로]
  2. 공식적으로는 차단하지 않았다고 한다....하지만 중국에서 해당 싸이트 방문자체가 안되게 되었는걸-_-;;;; [본문으로]

중신왕(中新网)의 보도에 따르면, 1월 21일 오후 중국 무한(武漢)에서 농민공(농촌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선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설날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0여 명의 노동자들이 아직도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 말춤을 추었다고 한다.




....센...센스가 넘쳐 흐르시는데?! 특히 리더로 보이는 분의 표정이...표정이...살아있네....-_



2012년 안드로이드와 신비안의 신발견 바이러스 수량 대비(iOS는 통계수치가 없음)



2012년 텐센트 모바일보안보고에 따르면 2012년 17.7만여개의 새로운 모바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그 중 90%이상이 안드로이드OS였다. (턴센트의 APP은 iOS을 존재하지 않기에 iOS 상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는 없음)

또한 스팸메일의 수도 급증하여 사용자가 신고한 스팸메일이 3.04억개에 달하였다. 스팸메일 중에서는 광고류 스팸메일이 79.1%, 사기류 스팸메일이 10.8%였다.

중국의 경우 수 많은 불법 APP 다운로드 싸이트들에서 바이러스가 심어진 불법APP을 다운받아서 바이러스에 감연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한국도 중국을 경유한 불법APP이 유통되고 있기에 한국사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 2012년 중국 10대 모바일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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