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에는 손해가 곧 행복이다.


과거 돈 있는 사람들의 생일연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것은 곽자의(郭子儀)의 이야기이다. 곽자의는 당(唐)황제들도 언제나 그를 공손히 대접하였다. 그는 관직이 높았을 뿐만이 아니라  그가 죽은 뒤에도 수 많은 자손들이 오랜 시간동안  부귀영화를 누렸다.

군주 곁에 있는 것은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는데 곽자의같은 수십만 대군을 이끈 무장이 황제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이런 행복을 누렸다는 것은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곽자의가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비록 곽자의가 일개 무장에 불과하지만 황제접대학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곽자의는 자주 자신의 부하의 승진을 황제에게 신청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그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는 했다. 곽자의의 아들들은 "곽가가 없었으면 황제의 성이 달랐을 것인데! 어찌 곽가의 체면을 이리도 무시하는가!!!"라며 화를 내었다.

그러나 곽자의만은 오히려 너무나 기뻐하였다. 황제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무장에 의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무장의 반란이 걱정이 된다면 그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곽가의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황제가 곽가의를 완전히 믿고 있다는 것이니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제는 권력은 어마어마하지만, 용기가 없는 졸장부이다. 비록 무한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주위에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능력이 있는 모든 신하들은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렇기에 곽자의가 자신의 추천이 통과되지 못할 것을 몰랐을까? 오히려 무리한 추천을 통하여 황제가 위엄을 발휘할 기회를 준 것이다.


당(唐)대의 대장군 혼감(渾瑊)도 황제에게 올린 보고서가 칭찬 일색이면 두려워하였고, 비평이 많으면 기뻐했다고 한다. 황제가 의심하고 말고는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어떨 때는 손해가 곧 행복인 것이다.


욕을 한다는 것은 당신을 어렵게 보지 않고 자신의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몇 마디의 지적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상사가 당신에게 언제나 예의를 지키고 마땅히 지적해야 될 곳도 넘어가 버린다면 당신은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도리를 알지 못하고 일말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진(陳)나라의 개국공신인 후안도(侯安都)는 체면을 위해서 억지로 황궁에서 가족연회를 열었다. 당시 황제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행동하였지만 기회를 잡아서 후안도를 죽여버렸다.


당현종(唐玄宗)의 심복인 대장군 왕모중(王毛仲) 역시 자신의 공로와 황제의 총신을 믿고서 어떠한 손해도 원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의 둘째 마누라가 아들을 낳자 100일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관직을 달라고 하였다. 황제가 5품관직을 내려주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내 아들인데 3품관직정도는 받아야되지 않는가?!"라고 계속 졸랐다. 그리고 어떤 아부꾼 신하는 황제가 아직 윤허를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3품관복을 벗어서 아이에게 덮어주었다. 황제도 "그 아이에게는 3품관리의 의복이 어울리는구나"라면서 결국 허락을 한다.


결국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그 뒤로 몇 달만에 왕씨가문은 몰락하고 왕모중 역시 자살을 강요당한다. 왕모중은 모반을 꿈꾸지도 않았고, 충성이 변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끝을 맞이하였다.



당신이 설령 대신이고 대장군일지라도 천하에서 가장 체면을 필요로 하는 황제의 체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자신의 체면은 어떻게 하냐고? 체면을 지키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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