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시대에 모두가 영어를 배운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에서는 영어를 통해서만 국제적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마다 소질과 적성이 있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하는 것이 바로 통역사이다. 사실 영어뿐만이 아니라 수 많은 언어의 통역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국제화시대에 종행무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통역사들의 자리가 점차 위협받고 있다.

현재 수 많은 신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 주목을 하는 것은 언어라는 장벽을 없애버릴 통번역 기술들이다. 특히 구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번역소프트는 인터넷에 있는 수 많은 텍스트를 이용하여 보다 정확한 번역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 품질은 영어나 중국어를 비롯한 텍스트량이 많은 쪽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번역결과를 제공해주지만 한국어나 태국어와 같은 소수 언어들에서는 아직 한계를 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늦어도 30년, 빠르면 10년 내로 비지니스수준의 번역은 사실상 완전해지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공문서나 계약서 번역을 위해서 번역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언어인식기술의 문제로 통역은 번역보다 발전이 느린 면이 있지만, 통역 역시 30년내로는 비지니스 수준의 통역에 문제가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물론 중요한 공문서에 대한 검토부분에서는 번역가를 찾아야 할 것이고, 중요한 미팅이나 회담에서도 통역가를 찾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수요에 비해서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오직 문학이라는 각 언어의 정수들을 번역하는 일만이 안정적인 시장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이 것 역시 100년 내로는 완전히 잠식 당할 것이다.

이렇게 통번역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통번역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면 국제화는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언어가 자유로워지게 됨에 따라서 민족의 해체또한 가속화될 것이다. 그 동안 언어간의 문제로 서로 간의 오해가 만들어졌던 수 많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어라는 힘을 독점함으로서 정보또한 독점했던 다국어 사용자들의 몰락도 예상이 된다.

그럼 우리는 지금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을까? 쉽게 공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자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언어을 배우게 되면 모국어와는 다른 사고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럼으로 인하여 한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사고과정을 거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생각은 넓어지게 된다. 물론 언어를 배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아직까지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언어의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 많은 기회와 위기를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될지 이제는 준비해야한다. 앞으로 길어봤자 30년 밖에 남지 않았다.



* 그냥 잡상입니다...그래도 헛소리는 안했습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은 분명 큰 영향력을 미치겠지만, 얼마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 하나는 확실하군요. 언어번역기 시장을 독점하면 대박 중에 대박이 나겠군요.


본 글은 서울신문에 기고된 이문형씨의 한중일 FTA 시대의 인터넷과 한자에 대한 비판글이다. 딱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실적인 기술과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문형씨는 중국인터넷을 이용하신다고 하는데, 정말 이용하시는지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 참고로 본인은 한중일 FTA을 지지하며, 동북아시아 통합공동체가 앞으로 나가야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자라는 도구로 이를 이루겠다는 이런 생각은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 전부터 몇 번 들었는데, 오늘 마침 이문형씨의 글을 보게 되었고, 시간 여유도 있어서 이렇게 글로 쓰게 되었다.


1) 한중일 한자호환문제.
한중일은 각기 다른 한자코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서 각기 다른 한자코드를 호환시킬 수 있다. 실제로 중국최대의 포털인 baidu에서는 이런 상호호환을 지원하고 있다. (이문형씨는 이에 대해서 모르시고 있는듯 하군요.)

한마디로 굳이 한중일의 한자코드를 통합할 필요가 없으며, 사업자측에서 기술적으로 호환을 시키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이다. 오히려 통합으로 벌어질 혼란과 비용을 생각하면 현재의 기술로도 구현가능한 호환기술이 훨씬 더 합당한 대안이다.


2) 젊은이들의 한자사용문제.

이문형씨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셔서 한자사용이 익숙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한자사용은 처참하다.(이런 글을 쓰면 꼭 너가 못하니까 그러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간단하게 제 전공은 간단하게 말해서 현대한어도 아닌 고문를 만지작거려야되는 곳입니다. 고로 저한테는 한자 모른다는 억측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인터넷세대라고 하는 젊은층으로 갈 수록 이 수치는 더욱 떨어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한글전용의 분위기로 이미 넘어갔으며, 일본의 경우도 젊은층의 한자능력이 대폭 하락함에 따라서 히라가나+카타나가전용으로 나가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자를 가교로 한중일을 연결시키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한자교육을 부활시키지는 것은 더 비현실적이며 더 비효율적이다. 그에 대해서는 아래서 논하도록 하겠다.


3) 한자만 알면 한중일이 소통이 되나?
흔히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곳들이다. 한자를 알면 중국어를 할 줄 알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가? 이문형씨가 스스로 이야기했다 싶이 한중일 각 국은 서로 다른 한자문화를 발전시켜왔다. 같거나 비슷한 한자도 많지만 쌩뚱맞은 한자도 널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제대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언어학의 기본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한자는 문자체계이다. 비록 중국어와 한국어 그리고 일본어에서 한자를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자체계로서 교차되는 것이다. 좀 어려운가? 간단히 말해서 문자체계가 같다고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서로 개성적인 문자체계로 발전된 현재에는 더욱 그렇다.

쉬운 예시로 알파벳이라는 문자체계가 있다. 영어 역시 이 알파벳을 사용한다. 그런데 러시아어 역시 알파벳을 사용한다. 러시아어의 알파벳은 영어와는 조금 다르나 기본은 같다. 영어의 단어와 러시어의 단어가 "비슷"한 것은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영어와 러시아어를 통합하거나 하기 쉽다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서 이문형씨는 "예를 들면 경제를 한국은 經濟, 일본은 経済, 중국은 经济로 표기한다."라는 예시를 제시한다. 기본적인 언어학공부를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자동차의 차(车)는 한국에서는 자동차(), 중국에서는 汽车(치쳐), 일본에서는 (지도샤)라고 한다. 이거 어쩔건가?[각주:1] 한국이야 일본식 단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교차되는 것이 많지만 중국은 꼭 그렇지 않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자동차조차 이꼬라지이다. 조금만 전문적인 곳으로 가면 상태는 더 심하다. 예전부터 있던 한자는 그렇다고 하고 외래어는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맥도날드의 경우 중국은 마이땅라오(麦当劳)이고 일본은 마구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라고 한다. 이런것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각주:2]?

그래서 한중일간의 한자를 통합해야된다고 하면 이 말을 해주겠다. 각 국의 정책간의 충돌을 떠나서 그 통합 비용이 얼마가 발생할런지 한 번만 계산하고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4) 한자 자체가 인터넷 경쟁력이 약하다.
한자 자체가 인터넷 시대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문자나 그 각각의 특징이 있지 우열을 가릴수는 없다. 하지만 장단점은 분명히 있다. 한자의 경우 뜻을 압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까지 효율적으로 한자를 빠르게 입력하는 방법은 없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한자타자속도도 일반적인 한글타자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서 언어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중국인터넷에서 한자를 폐기하고 핀인(중국어발음으로 알파벳으로 구성)을 사용해야된다는 소리까지 실제로 학계에서 강력하게 주장되었고, 지금도 살아 있을 정도이다.

인터넷의 빠른 속도에서 타자가 느린 한자는 일정한 손해를 받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 이 글을 다 쓴 속도는 약 7분정도이다. 만약 중국어로 같은 내용을 적는다면, 분량은 1/3로 줄어들겠지만, 시간은 15분은 충분히 넘어버릴 것이다.(본인 평균적인 중국인들과 비슷할 정도의 타자속도는 된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기술로도 서로 다른 코드의 한중일 한자들을 호환할 수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젊은층의 한자능력이 사실상 최악으로 내려가고 있는 현실과 한자를 알아도 한중일이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학의 기본을 모르는 생각이라는 점에 한자 자체가 속도를 중시하는 인터넷 시대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문자체계라는 점을 종합해보고....마지막으로 설사 이런 난관을 다 뛰어넘고 각 국의 한자정책간의 차이를 뛰어넘더라도 통합비용 자체가 기본적으로 조단위로 날아다닐 것이기에 이문형씨의 글은 현실성이 결여되었고 미래를 볼 줄도 모르는 글로 판단한다.



  1. 다른 예로 책의 경우 书(슈,중국)과 本(혼, 일본)은 어쩔 건데? -_-;; [본문으로]
  2. 같은 예시로 컴퓨터도 있다. [본문으로]
중국언어지도(中國言語地圖) 사회과학원.
다운로드 링크(누르면 다운됩니다^^)


中国语言地图集   目  录

        A1  中国语言图
        A2  中国汉语方言图
        A3  中国少数民族分布图
        A4  中国少数民族语言分布图
        A5  广西壮族自治区语言分布图
 
        B1  官话之一  黑龙江省  吉林省  辽宁省  内蒙古自治区东部
        B2  官话之二  北京市  天津市  河北省  山东省西部
        B3  官话之三  河南  山东  皖北  苏北
        B4  官话之四  陕西省甘肃省青海省宁夏回族自治区
        B5  官话之五  新疆维吾尔自治区
        B6  官话之六  四川省  云南省  贵州省  广西壮族自治区  湖北省西部
        B7  晋语  山西省及其附近地区
        B8  东南地区的汉语方言
        B9  吴语  浙江  上海  苏南
        Bl0  安徽南部汉语方言
        Bll  江西省与湖南省的汉语方言
        B12  闽语  福建  台湾  粤东  海南
        B13  广东省的汉语方言
        B14  广西壮族自治区汉语方言
        B15  客家话
        B16  海外汉语方言 (a)太平洋地区(b)其他地区
 
        C1  中国北方少数民族语言图
        C2  蒙古语族语言图
        C3  蒙古语方言图
        C4  突厥语族语言图
        C5  满通古斯语族语言图
        C6  中国南方少数民族语言图
        C7  壮侗语族语言图
        C8  苗瑶语族语言图
        C9  苗语方言图
        Cl0  藏缅语族语言图
        Cll  藏语方言图
        C12  广西壮族自治区少数民族语言图
        C13  云南省少数民族语言图
        Cl4  海南岛和台湾省少数民族语言图


인류가 자주 쓰는 말들 중에서는 그 뜻을 쉽게 말하기 곤란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정신(精神)이 그러하다.

정신은 물질(物質)과 대립된다. 먼저 물질의 뜻을 거칠게 표현해보자. 물질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피부와 손발로 만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정신은 물질과 반대개념이다. 그렇다면 정신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피부와 손발로 만질 수 없는, 오직 사람의 마음에 의한 감응과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단지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고 한다. 이는 감응 당하는 것도 비물질이고, 감응하는 것도 비물질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단지 인간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마음이란 사실 생각하는 것일 뿐이고, 사유하는 것은 사유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는 어떠한 물질적인 요소도 없다. 그리하여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아래쪽에서 다시 자세하게 말하도록 하겠다.

생명과 물질은 반대된다. 물질은 지각이 없는 것이고, 생명은 지각이 있는 것이다. 사실 풀과 나무들도 지각이 있다. 단지 그들의 지각은 마취된 상태에 있을 뿐이다. 동물의 지각은 풀과 나무보다 선명하다. 마비 상태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하지만 동물도 지각이 있을 뿐, 마음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인류만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각은 외부에서 온 인상들로 생겨난다. 그에 반하여 마음은 자신 스스로 생각하여 성장한다. 그래서 동물은 지각 속에는 물질계만 있을 뿐이고, 정신계는 없다. 정신은 인류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과 정신이라는 두 단어를 자주 혼용해서 쓰는 것이고,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인류의 마음은 어떻게 발달하는가? 인류 역시 최초에는 지각만이 있고, 마음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인류는 동물과 같았다. 단지 외부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물질계를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외부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이 사라지면, 그러한 물질에 대한 지각도 사라지게 된다. 반드시 다른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그의 귀와 눈과 몸에 내놓아야지 다시금 새로운 지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각은 대체적으로 피동적이고,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지각들이 인상이 되고 사라지지 않을 수 있어야 지각이 기억으로 전환 된다. 기억은 단지 그가 이전에 했던 지각을 지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외부에서 온 구체적인 물질로 인해서 생겨난 지각이 아니라, 이전의 지각을 다시 지각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의 기능은 인류 속에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인류의 기억이 발달함에 따라서 마음이 생겨났다. 묵경(墨經)에서는 "앎은 이어가는 것이다.(知,接也)"라고 하였다. 인간의 지각은 외부 물질계와의 접촉을 통해서 생겨났다. 그러나 지각은 인상이 되었고, 쌓여나갔다. 그리하여 마음의 지각은 점점 물질계와 떨어져서 독립하게 되었다. 이제는 물질계와의 접속 없이 스스로 지각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은 자기 자신을 지각할 수 있고, 지각은 남겨두었던 인상을 지각할 수 있었고, 이것이 곧 기억이다. 우리는 감히 인간정신현상의 시작이 바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는 또 어떻게 외부물질계의 지각이 만들어낸 인상을 남겨두어서 추억과 기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중요한 도구 하나가 있다. 바로 언어와 문자이다. 언어의 기능은 외부에서 온 인상을 더욱 정확하게 식별하여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다양하게 만든다. 몇몇 고등동물들은 추억과 기념이 있다. 단지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고,  뚜렷하지 않아서 단순하고, 확대하지 못하고, 다양하지 못하다. 왜 그러한가? 바로 그들은 언어가 없기 때문에 외부 접촉을 통해 얻은 인상을 분별하여 분리하고 구조화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신에게 수 많은 일들과 물건들이 있는데, 만약 따로 기록할 수 없다면, 끝내는 모호해지고 잊어버리게 된다. 인류는 언어를 만듬으로서 외부에서 온 모든 인상들을 분류하고 구조화하여 하나 하나를 정한 소리로 불러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물질의 이미지를 점차 지각 내부에 쌓아놓고 이미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점차 정신계로 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지가 소리를 통해서 객관화된다고 할 수 있다. 문자는 언어의 부호화이다. 여러가지 부호로 이루어진 문자가 있음으로 하여 마음은 더더욱 멀리 나가게 된다. 인류는 소리(언어)을 통해서 인상을 배치하고, 다시 부호(문자)을 이용하여 소리를 대신하였다. 언어는 마음을 외부에서 식별할 수 있게 해주었고, 문자는 마음을 외부에 기억하게 하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언어와 문자를 통해서 마음의 식별과 기억의 기능이 객관화되었다. 그래서 언어문자는 마음의 기능을 밖으로 폭로하고, 의지하게 하여 마음의 기능을 객관화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지각(마음의 기능의 초보단계)가 천천히 언어(문자 포함)를 만들게 되었고, 언어(문자 포함)로 인하여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하게 된다. 마음이 곧 정신이며, 마음의 기능 역시 곧 정신이다.

인류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기억도 없었을 것이다. 기억 자체는 동물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의 고급기억과는 다르다. 당신이 기억을 할 때에, 그것은 분명 당신 마음의 “소리 없는 말”이다. 기억이 있음으로해서 사상이 있을 수 있다. 기억은 사상(思想)의 재료이다. 만약 당신의 마음속에 아무런 기억이 없다면, 당신은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 사상을 만들 것인가? 인류의 사상 역시 일종의 마음속의 “소리 없는 말이다” . 만약 언어가 없다면, 사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상은 단지 “소리 없는 말”일 뿐이다. 다른 동물들은 말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말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마음 속에서 사상을 만들고, 사상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언어와 문자를 통해서 표현한다. 그러나 넓은 시야로 그 시작을 생각한다면, 인류는 언어가 있음으로 해서 사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상이 있음으로 해서 마음을 지각할 수 있게 되었다. 생리학에서의 마음은 단지 혈액의 움직임일 뿐이다. 생리학에서의 뇌는 지각과 기억의 중축이다. 이것은 모두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아니다. 생리학에서의 뇌는 진화하여 정신계의 마음을 만들었고, 이것의 최대 공로는 언어문자에 있다.

언어와 문자가 있음으로 해서, 인류는 지각은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창고가 되었다. 인류의 협소한 마음이 거대하고 영원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이미 그들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미 육체를 초월하여 외부에 존재한다. 가령 당신이 마음의 기능을 하늘에 있는 전기라고 한다면, 언어와 문자는 곧 전선과 축전기이다. 마음대로 돌아가니는 전기는 축전기와 전선이 있음으로 하여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의 마음이 이처럼 거대하고 영원하며, 육체를 초월하고, 모든 인문이 발달해가는 것은 모두가 이 마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정신계를 보아야 한다.

이 정신계의 마음은 개인을 초월하였고, 또한 비물질적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인류에게 언어와 문자가 생김으로 인하여, 한 사람이 외부의 다른 사람의 기억과 사상을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위에서 논한 것 처럼, 기억과 사상이 원래 언어와 문자에 기생하는 것이고, 언어와 문자가 발달함으로서 완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언어와 문자는 인류 공통의 것이다. 결코 내것 니것이라며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기억과 사상 역시 본질상 인류 공통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시 니 것 내 것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류의 뇌와 손은 생리방면의 것으로 물질에 속해있다. 그래서 너와 나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생리적인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본질상 예전부터 모두의 것이었고, 너와 나를 강제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마음은 여러가지 기억과 사상이 쌓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러 기억과 사상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함에 따라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와 문자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한데, 어찌하여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일 수 있겠는가? 단지 당신이 당신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문자를 안다면, 당신은 당신 사회의 다양한 기억과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두껍고 다양한 지식들은 역사가와 철학자들에 의해서 세심하게 다듬어 지는데 이는 일단 언급하지 않겠다. 글을 모르는 사람 역시 그가 말할 수만 있다면, 수 많은 그가 속한 사회의 다양한 기억들과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들은 자연적으로 그의 뇌 속에 가득차며, 그의 마음을 만든다. 만약 한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귀먹어리라서 결코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래서 그가 언어를 배울 수 없다면, 혹은 태어나자마자 장님이어서 인류가 발명한 다양한 문자와 부호들을 배울거나 사용할 수 없다고 하자. 이런 사람들은 단지 뇌만이 있을 뿐이다. 마음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는 단지 지각이 있을 뿐이지, 기억과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설사 기억과 사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고급동물과 같을 뿐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그는 단지 외부 물질계를 지각할 수 있을 뿐이며, 외부의 정신계와는 접촉할 수 없다. 인간의 영혼계와 접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여 그는 단지 뇌만 있고, 마음은 없는 사람이다. 단지 동물처럼 정신생활을 접촉할 수 없는 사람이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우리의 정신은 결코 자연계에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문사회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온 것이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정신에서는 나의 객관적인 존재는 너무나 미약하다. 다른 말로 하여, 정신은 선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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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모든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환영합니다.  본 글은 의역식 번역입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와우~ 죽어라 길더군요. 아마 그의 문장 중에서 제일 긴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충 40분 걸렸군요. 퇴고...일단 할 생각 없습니다. 모래 올릴 것을 미리 번역한 것인데, 과연 모래 올리기 전에 이 글을 퇴고할까요? 아님 그냥 올리려나요? 기대해 주셔요. (나름 퇴고했다 -_-;;)

인간의 모든 사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의 사상은 어떻게 해야되는가? 역시 우리 모두의 것이다. 왜냐하면 번역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해주는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언어를 배우려고 시작하는 한국 사람들의 목표는 언제나 현지인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가 과연 필요할까? 물론 현지인 수준으로 한 언어를 구사한다면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수준이 되기 위해서 투자해야되는 돈과 시간들이다. 유럽 여행하러 간다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터키어, 이탈리아어 등등을 모두 현지인 수준으로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언어를 시작할 때에는 자신만의 목표를 분명히 하자.

좀더 세분화된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언어는 크게 듣기와 말하기로 대변되는 회화와 독해, 그리고 작문로 구별된다. 언어학에서는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순으로 배우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회화에서는 모두 필요한 내용이기에 같이 묶어서 설정하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회화와 독해, 그리고 작문의 목표를 어느 정도 잡을 것인지 명확하게 하자. 해당 분류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 회화의 경우, 여행회화 - 생활회화 - 전문회화 - 통역사 수준이 있다. 그리고 읽기에는 만화책 - 전공서적 -  신문 - 문학소설 수준으로 구별한다. 여기서 왜 전공서적이 일반 서적보다 더 쉬운가라고 물어보실 분이 있을지도 몰라서 부언 설명을 하자면, 전공 서적의 경우 해당 전공의 특수 용어를 제외하면 문법에 어려운 것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해당 전공 용어를 어느 정도만 알고 있어도, 독해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누가 머라고 해도 문학 소설이다. 문학소설안에는 그 언어환경의 모든 역사와 문화가 스며들어 있기에 문학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독해실력은 이미 현지인 수준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것이다. 작문의 경우 일상수필 - 전공논문(회사서류) - 문학소설급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본인의 경우, 중국에서 공부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회화, 독해는 중국인 수준을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작문의 경우 전공논문 수준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해당 수준에 도달하려면 멀고도 멀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일본어의 경우, 생활회화 수준과 전공서적을 볼 수 있는 독해 실력만을 생각하고 있다. 작문의 경우 전공논문수준이면 좋겠지만, 일단은 일상 수필이 목표치이다. 영어의 경우 생활회화 - 전공서적이고, 전공논문수준까지 작문을 해야되겠지만 심히 힘들것 같다. 러시아어의 경우 여행회화 - 전공서적이고, 작문은 포기이다. 위의 본인의 예는 단지 하나의 예일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일정한 목표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쓸데 없는 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물론 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잘 하면 좋기는 하다. 하지만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욕심히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욕심을 줄여라. 그러면 더욱 즐겁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또한 오히려 이러한 정확한 목표가 있다면 더욱 빠르게 언어를 습득해나갈 수 있다. 특히 본인처럼 언어적 재능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사람들은 이 점을 꼭 명심하여야된다. 세상에는 언어적 천재들이 분명히 있다. 매우 쉽게 언어를 습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일뿐이다. 재능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목표를 세분화 하면 이렇게 공부할 수도 있다. 본인의 일본어 회화의 목표는 생활회화수준이다. 그렇다면 너무나 엄격하게 발음을 연습을 할 필요가 없다. 일상회화에서 어느 정도의 발음 문제는 커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해의 목표는 전공서적이고, 본인 전공에 나오는 일본 한자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그 곳에 나오는 한자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어의 경우, 본인은 중국인 수준으로 해야되는 상황인지라 정확한 발음과 정확한 언어구사, 그리고 그 외에 사자성어, 당시, 고전 및 여러가지 중국 특유의 유행하는 문장이나 단어도 알아야 된다.




정리하자면 :

목표 분류 : 회화, 독해, 작문

회화의 수준 분류 : 여행회화 - 일상회화 - 전문회화 - 통역사

독해의 수준 분류 : 만화책 - 전공서적 - 일반서적(신문) - 문학작품

작문의 수준 분류 : 일상수필 - 전공논문(회사서류) - 문학작품

* 해당 사항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마음대로 분류한 것이다. 더욱 세분화 시키는 분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스스로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그에 맞는 학습법을 스스로 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쓸데 없는 욕심은 해당 언어를 공부하는 의욕만 저하시킬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쉽.게. 터득할 수 있다면 이렇게 목표 분류하고 설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언어 천재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이다. 본인이 천재가 아니라면, 한계를 인정하라.


그래도 굳이 굳이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하겠다면 힘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멍청한 본인은 그냥 목표를 정하고 그정도로만 만족하고 다른 일을 할 것이다. 언어는 나를 다른 세계와 만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니까 말이다.


부언하자면, 목표를 정했으면 우둔하고 미련하게 그리고 집중적으로 그 언어를 공부하라. 한 문장을 100번을 쓰면 바보라도 그 문장을 기억할 수 있다. 한 문장을 1시간 내내 반복해서 말을 하면 그 문장이 입에 붙어 버릴 수 밖에 없다. 일견 미련해 보이지만, 이런 방법이야말로 언어의 왕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쉬지 마라. 집중적으로 몰아쳐서 언어를 공부해야된다. 한달 열심히 공부하고 일주일을 놀면, 그 동안 배웠던 것들을 까먹게 된다. 이 부분이 현지 유학의 좋은 점 중에 하나이다. 놀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 놀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언어를 쓰게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본인 정말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다. 설마 진짜로 저딴식으로 영어 교육을 시킬려나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하고 있었다. 만약 이명박이 개혁가라면 정말 시대를 앞서가는 개혁가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진보적이고 선진적이라는 자부하는 본인에게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개혁이 아니라 그냥 다 같이 죽자는 것으로만 생각된다. 이게 실용주의인가? 바보짓일뿐이다.

본인 지금까지 영어권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본적이 없다. 물론 중국이라는 외국땅에서 오래동안 생활하였지만, 여기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경우는 극소수의 상황밖에 없다. 물론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발음도 별로 안 좋다. 책도 문학소설을 읽을 엄두를 못 내며, 본인의 전공책만 본다. 하지만 본인에게 영어는 딱 그정도면 되는 "도구"이다. 그래서 크게 실망스럽지도 않다.


학부모를 대표해 나온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경자 운영위원은 “인수위 정책에 두 손 두발 다 들어서 환영하고 싶다”며 “대학을 졸업해도 외국인을 만나면 도망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 는 “이제 선생님들도 자세를 바꿔야 한다”며 “다들 개인적으로 자기 돈 들여서 하는데 나라에서 프로그램까지 세우고 하는데 그것만 기다리는 선생님이 있어선 안 된다. 지금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분들은 선생님들이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변화에 노력해 달라”고 교사들에게도 변화를 주문했다.

“에프(F)발음 표기 위해 국어도 바꾼다”… 영어공청회 ‘이모저모’


그런데 이경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 연대 소속분이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한다. 인간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건데, 사교육 보급 실천본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분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분들을 위해서 몇마디 해주겠다.

1) 외국인을 만나면 도망을 간다고?!
그건 외국어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용기가 부족하고, 낯선 것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문제이다. 본인 주위에 영어 정말 기똥차게 잘하는 녀석이 있다. 근데 외국인 앞에서는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말 못한다. 차라리 나는 말도 안되는 영어라도 그 외국인과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도망가지 마라. 본인도 한국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는다. 외국인과 의사소통정도는 할 수 있다. 발음? 엉터리다. 문법? 거지같다. 그래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 외국인이 당신을 잡아먹지 않는다. 영어 못한다고 그 외국인이 당신을 욕이라고 할 것 같은가?


2) 발음 가지고 찌질되는 분들.
본인의 발음이 안 좋으니 자격지심이니 어쩌고 할것 같은 분들이 있을 것 같지만, 한마디 해야겠다. 발음 신경 쓰지 마라. 혹시 동시통역사를 하실 것인가? 아니면 미.국.에.서. 로펌에 들어가실 분이신가? 그럼 신경 써야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언어의 목적은 의사소통이다. 누가 더 아름다운 말을 하느냐를 겨루는게 아니다. 발음이 이상하다고 말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웃기지 않는가?

한국 분들 정말 답답한 것이 있다.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말도 안한다. 장난하냐? 본인 중국에서 중국어 배웠고, 일본에서 지금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다. 그런데 어학연수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 라고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왜? 말도 안되는 말이면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라고 생각한다. 궁금하면 질문해라. 틀리면 어떠한가? 당신은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이다. 전문 통역사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발음이 좋으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발음만 좋다는 소리를 듣고, 외국인 앞에서 얼어붙는 것보다 말도 안되는 발음이라도 의사소통을 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되는것은 나뿐일까?


3) 당신은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사람들은 외국어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독특하다. 모든 외국어를 소위 네거티브 수준으로 익혀야 된다고 생각한다. 제발 참아라. 본인의 경우 정말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려면 최소한 해당 나라에서 10년동안 열심히 생활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언어라는 것은 발음이니 문법이니를 다 떠나서, 그 나라의 문화가 모두 녹아있다. 20살이 넘어서 해당 국가에 가서 10년동안 굴러도, 완전한 네이티브가 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간단하게 붉은 악마의 함성이었던 "대한민국"은 그냥 나라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수 많은 감정들을 생각해보라. 그런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네이티브가 되는 것이다.

흔히 이번 일을 비판하면서 나오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에 나오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이해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은가? 정말 간단하게 가보자. "으이구...마음에 한으로 남아있다"라는 말의 "한". 이거 외국인이 얼마만에 이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그 땅에서 태어나서, 그 땅의 물을 마시고, 그 땅에서 웃고 울어보지 않았으면 어디까지나 외국어이다. 제발 외국어를 외국어로 보았으면 좋겠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해당 언어권에서 어릴때부터 살거나 소수의 언어적 천재들 외에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네이티브가 되기가 사실상 힘들다. 포기해라. 제발...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이 앞장서서 사교육 현장으로 달려가야된단다. 이쯤되면 인터넷식 용어로 "막장 중에서도 개막장이다." 농담이 아니고 진지하게 고뇌해본다. 미국이 받아줄런지 모르지만, 미국의 새로운 주로 편입하자고 주장하는게 훨씬 좋을 것 같다.






본인 수구주의자도 아니고,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본인 세계가 모두 통일되어서 세계정부를 이루는 것을 소원하는 극단적인 세계주의자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본인도 사람들에게 외국어를 배우는게 좋다고 역설하는 편이다. 동생에게도 군대 제대하면 중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어디든지 가서 1년정도는 살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문화를 바라보면 한국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국어를 네거티브로 익히라고는 안한다. 제발 부탁이다. 껍데기를 버리고 그 속을 봐라. 언어가 왜 있는가?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네이티브의 환상을 버려라. 그냥 본인이 필요한 수준만큼만 공부해라.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문화풍토부터나 만들어라. 그게 외국인 앞에서 당당하게 외국어를 할 수 있게 하는 비결중에 비결일 것이다.

무엇보다. 명심해라. 언어는 의사 소통을 위한 도구일뿐이다.
그리고 혼동하지 말아라. 외국인도 결국 밥먹고 똥싸는 인간이다.
사람 사는거 거기서 거기다.



이 글을 적고 진중권씨의 인터뷰를 보았다. 진중권씨. 전 역시 당신 팬입니다. 하지만 표현의 강도는 조금 조절해주셔요. 솔직히 맞는 말이긴 하지만 공공매체 아니겠습니다. -_-! 그런데 말이죠. 지금의 인수위와 이명박이 빈라덴같은 원리주의자라고 하셨는데, 사실 진중권씨도 원리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방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쪽이긴 하지만 말이죠.





 

2008년 중국의 토플 시험의 응시자 수를 10만명으로 늘렸습니다. 작년에 비하여 80%나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토플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12월 3일 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신청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수시로 트래픽 폭주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더욱 큰 문제는 토플 시험 비용입니다. 토플 시험비용은 1370원(한국돈 약 18만원가량)으로서 중국의 물가를 생각하였을 때 매우 비싼 수준입니다. 왠만한 중산층 가정의 한달 월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랍니다. 이런 높은 가격의 토플 시험을 봐야되는지 의심이 될 뿐이군요. 하지만 지금 토플을 신청하면 내년 9월에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많은 중국인들이 계속 신청하고 있습니다.

 

전 영어를 못합니다. 고작해야 전공 논문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입니다. 발음은 최악의 극치이고요. 그렇다고 영어를 열심히 할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전 중국어니...일본어니...몽고어니...터키어니...러시아어니...이런 "변두리" 언어나 배우렵니다. 인간이 삐뚜러져 있군요. 음하하하;;;

레비-스트로스 안정남 <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2007년 1판 5쇄.
해당 중국어 번역판 : 列维-施特劳斯《图腾制度》世纪文景版, 2005



주술과 종교와의 관계를 종교라는 것은 자연법칙의 인간화이며 주술이라는 것은 인간활동의 자연화”- 자연의 의인화(종교의 성립 기초) 인간의 자연화(이것을 주술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항상 존재하는 두개의 구성 요소로서 구성비율이 변화한다.

--- 주술과 종교가 양극의 대칭 모델과 같지만, 지속적인 레빈-스트로스의 말대로 대칭-대립모델은 오히려 같은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럼 그 같은 속성은 무엇인가? 주술과 종교 공통의 속성은 무엇인가?

 

언어 음성을 통해 분해해서 추출되는 요소의 하나하나는 기호가 아니고 기호를 만드는 수단이다. 그것은 변별적 단위이며 다른 단위와 바꾸면 반드시 의미가 변화한다. 그러나 단위 자체는 의미의 속성을 포함하지 않고 다른 단위와의 결합이나 대립에 의해서 의미를 포함한다.

 --- 언어학도 해야되는구나. 후....

 

유사의 개념은 머리 속에 있는 것이지 지각의 문제는 아니다.

 --- 지각은 외부에서 느끼는 자극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짠 맛을 짠 맛이라고 느끼는 것은 혀를 통해서 전해지는 전기 신호를 머리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짠 맛이 소금맛이라고 생각한 것은 유사의 개념이다.......먼 차이냐구!!

 

역사없는 민족 외의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서투른 구별

차가운사회와 뜨거운" 사회를 구별하는 것이 유리

차가운 사회는 역사적 요인이 사회의 안정과 연속성에 끼치는 영향을, 스스로 만들어낸 제도를 통해서 거의 자동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뜨거운 사회 쪽은 역사적 생성을 내부로 끌어들여서 그것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토템 신화는 미미한 사건을 마치 대사건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특정 장소를 감상적으로 다루는 역사로 치면 야사라고 있는 것들.

---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본 부분. 전공이 역사여서 그런지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 스스로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후자의 뜨거운 사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것도 아니고 둘은 서로 섞여 있다.  


 

인문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용해하는

과학적 설명은 복잡에서 단순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난해한 복잡성을 이해 가능한 복잡성으로 바꾸어 놓는

--- .......하지만 용해가 가능할지는 정말 의문일 뿐이다.


 

역사는 항상 무엇인가를 위한 역사이다.

역사 인식의 변별적 특징은 부호의 결여라는 환상에 있지 않고, 부호의 특수성에 있다. 역사학의 부호는 연대이다. 

이해가능성 연구의 목적지가 역사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것이며 역사야말로 모든 이해가능성 탐구의 출발점이다. 역사학은 어디로나 통한다. 그로부터 탈출한다는 조건하에서이다.

 --- 살짝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역사의 특징이 부호의 결여가 아니라 연대가 부호라니...충격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 역사를 통해서 어딘가로 흘러가보자.    

 



중국어 타자치는 방법 에서 소개를 했지만, 중국어로 일반인이 1분에 100자를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중국어가 압축적인 언어여서, 중국어 100자를 한국어 300자로 계산하여야 할 것이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타자 속도가 500이 넘는 상황에서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 할 뿐이다.

하지만 위의 동영상에서는 (물론 오타가 나오기는 하지만) 1분에 520타...한국어로 치면 1분에 대략 1500자를 쳐 넣었다. 대단하다. 물론 본인이 알기로, 한국에서 속타를 치시는 분들은 2000자도 쳐 넣는다는 소리가 있지만 말이다 -_-;;

그리고 위의 것은 노력해도 될 것이 아닌것 같다. 전문적인 타자기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저렇게 칠 수 있을 듯 하니까 말이다. 하긴 한국의 전문적인 속타도 특별난 타자기를 써야 하지만 말이다 -0-;;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자. 한국이 인터넷에 글이 대량으로 올라오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본인 중국어 타자 연습 좀 해야겠다. 일분에 50타가 안되니 고민이다. 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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