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西汉)의 성제(成帝)시대의 공광(孔光)은 황제의 전속비서까지 하면서 고위관직에 십여 년이 넘게 앉아 있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매일 황궁으로 출근을 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황궁은 신비로운 곳이 아니라 산책을 가는 뒷동산과 같이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그가 휴가를 얻어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것인지 마눌님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마눌님이 황궁에는 어떤 나무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공광은 매우 당황하며 좌불안석의 상태가 되었다가 한참의 정적이 지난 이후에나 "오늘 날씨가 좋지?!"라는 엉뚱한 말을 꺼낼 뿐이었다.


군사기밀도 아니고, 황궁의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 단지 황궁에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냐는 마눌님의 질문에 이렇게 긴장하고 대답을 회피할 필요가 있을까?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공광의 행동을 배워야 한다.



황제는 변태이다. 그는 신하의 온갖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신하의 발꼬랑내부터 여자취향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에 반하여 자신에 관한 사항은 그 어떤 것도 비밀로 하려고 한다.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황제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


황제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성스러운 존재이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서 천하를 운영하는 최고 권력자이다. 황제의 소소한 일들이 외부로 전해진다면 황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권위가 사라질 수도 있다. 권력 유지수단으로서의 황제라는 가면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황제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공간인 황궁의 출입을 금지한다. 하상주(夏商周) 시대에는 악사나 사관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을 고용해야 될 때에는 맹인만을 고용하였다. 역사가 흘러갈수록 황궁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 인력이 필요하였고, 환관이나 궁녀와 같이 평생을 궁에서 사는 사람들을 늘린다. 설령 어쩔 수 없이 출입을 해야 되는 고관들에게는 강도 높은 비밀유지를 강요하였다.


당조의 지방정권인 사천왕(四川王) 위고(韦皋)는 자신의 수족과 같은 수하들도 결코 중앙관직으로 불러오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접 지역을 담당하는 관직으로만 배정한다. 만약 더 이상 승진을 할 수 없다면, 명예퇴직을 시키고 원로로 대접을 할 뿐이었다.


당조의 만수공주(万寿公主)는 당대의 천재라는 정호(郑颢)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정호에게 자신이 데리고 온 궁녀들을 첩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였다. 이는 자신이 데리고 온 궁녀들이 다른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황실의 비밀이 새어나갈까 우려를 하였기 때문이다.



황제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황제의 자리는 속 편한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는 곧 천하를 빼앗기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하느냐로 정해진다.


만약 자신과 매우 가까운 신하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 암살과 같은 신변상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황제로서의 신성함도 사라져버리게 된다. 황궁에 심어진 나무가 무엇인지는 정말 조그마한 일이다. 그러나 설령 조그마한 일이라도 새어나간다는 것을 황제가 알게 된다면 그 외에 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하다고 생각되는가?! 남한(南汉)의 황제는 자신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환관과 궁녀만이 황궁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정한다. 태평천국(太平天国)의 천왕(天王) 홍수전(洪秀全)은 비밀 유지를 위하여 황궁화원을 고칠 때 오직 궁녀들로만 공사를 하도록 하였다.


황제에게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한 그루의 나무도 황실에 있는 나무라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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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것은 대신들에게는 필수능력이다. 문제는 황제는 세상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스토커이다.


황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하를 지키기 위해서 대신들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누가 자신의 천하를 가로채려고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청나라의 황제는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의심이라도 절대 3번을 넘어서 젓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조차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태종 시절 대신 방현령(房玄龄)은 조정으로 출근하는 길에 황궁 북문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황궁경비에게 무슨 건물을 건축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당태종은 분노하며 당장에 방현령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재상 위정(魏征)이 달려와서 구원을 했기 망정이지 그 자리에서 세상과 이별을 할 뻔하였다. 방현령은 감히 황제가 만들고 있는 황궁의 건물에 대해서 "스토킹"한 혐의인 것이다.


황제는 방현령이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황궁의 건물에 관심을 갖는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만큼 황제는 대신들 중에 반역을 꿈꾸는 야심가가 있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대신들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며, 운이 좋으면 부귀영화를 누리면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황제를 스토킹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황제를 스토킹 하는 방법으로는 자리보전은 고사하고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진나라의 재상 이사(李斯)는 진시황의 심기를 읽기 위해서 자신의 "눈"을 진시황 근처에 배치하였다. 한번은 진시황이 이사가 개선축제를 화려하게 여는 것을 보고서 몇 마디 욕을 하였다. 그리고 그 소식은 "귀"을 통해서 이사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사는 당장 개선축제의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여버린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진시황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누가 자신이 한 말을 유출하였는지 찾아다녔다. 누가 이사의 눈인지 찾아내지 못하자 자신이 그 말을 했을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여 버린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미움을 받게 된 이사도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만약 내가 이사였다면 결코 개선축제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진시황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변화하고 싶다면 어디까지나 매우 천천히 변화하여서 어디까지나 다른 이유로 변화한 것으로 위장하였을 것이다. 변화하는 속도조절에 자신이 없었다면 아예 변화하지 않고 다만 황제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황제의 주위에 사람을 심어놓은 증거를 결코 노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 접대학에서 "비밀유지"는 상당히 중요한 핵심이다. 당문종의 대신 송신석(宋申锡)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대신이었으나 비열한 환관의 음모에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이 환관의 음모는 다름이 아니라 "황제의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닌다는 무고였다.


용정제는 "쪽지"을 통해서 다양한 관리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지방부시장인 유곤(廖坤)은 "쪽지"을 황제에게 올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뒤에 동네방네 이를 자랑하고 다녔다. 그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곤의 "쪽지" 권한은 완전히 박탈되고 만다. 황제가 누구에게 "쪽지"을 쓰게 했는지는 황제의 비밀이다. 어디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우리는 "비밀유지"에 대해서 한나라의 부평후(富平侯) 장안세(张安世)을 배워야 한다. 대장군과 재상을 모두 역임했던 장안세는 자주 황제와 국가대사를 긴밀하게 상의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 자신이 황제와 같이 결정한 사항에 대한 공문이 내려와도 다른 대신들과 같이 처음 본다는 듯이 행동하였다. 장안세의 이런 처세론을 전수 받은 장안세의 가문은 서한이 무너지고, 왕망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다시 동한이 건국되는 과정에서도 무려 6대 동안 정부대신의 자리를 유지한다.



황제의 마음에 들겠다고 스토킹을 하다가 본전도 못 찾는 법이다. 그냥 편안하게 황제의 비밀을 지켜라. 그것이 부귀영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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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번역하는 시간과 업로드예정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


사람들이 흔히 오해를 하는 것이 있다.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은 현실적으로 중국에 속하는 한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을 한족으로 흡수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의 "단일민족 역사관"이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이유는 "이론"과 "실제"을 구별하지 않고 뭉퉁그려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론 실제는 엄격하게 다른 문제이며, 설령 학문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판단을 위해서 반드시 노력을 해서라도 구별능력을 키워야 한다.


북한은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명에서부터 북한이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북한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 않는다[각주:1]. 그런데 북한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론"의 문제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로 포장을 하고 실제로는 세계에서 손 꼽는 독재정치를 하는 "북한 기득권"의 문제인가? 


만약 여러분들이 이론과 실제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면 이론만 보고 북한을 "민주주의국가"라고 생각하거나, 실제만 보고 "민주주의"가 나쁜 이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제"에 대한 구별을 하며 중국의 역사관으로 넘어가보자. 중국의 다민족 역사관은 이론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모여서 중국의 역사를 형성하게 되었다"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반대로 중국이 "오직 한족만이 만들어낸 역사"라고 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분들이 우려하는대로 다민족 역사관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민족진흥정책"시스템[각주:2]이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한족 위주의 정책과 한족으로 흡수하도록 하는 문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이 된다[각주:3].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제"의 문제이며 "실제"가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이론"까지 나쁜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한국의 "단일민족 역사관"의 경우는 최악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단일민족 역사관은 허구일뿐이다. 한국인이 어디까지나 다양한 민족이 융화되어서 생겨난 다민족이다[각주:4]. 단일민족이라는 이론자체의 근거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


"실제"는 더욱 참담하다. "단일민족 역사관"의 장점은 서로가 "한국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감을 매우 긴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한국인"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완벽하게 배타적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화시대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현실적으로 현재 결혼, 유학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의 인권문제가 대두되고 있을 뿐더러, 고급 외국인 인재들의 한반도 유입을 무형적으로 막고 있다.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저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관은 개개인의 자유로 선택하는 문제이기에 한국의 국민으로서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야할 때이다. 이론과 실제에서 모두 문제를 안고 있는 "단일민족 역사관"을 계속 품고 갈 것인가?! 아니면 "다민족 역사관"을 통해서 불안한 발전을 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각주:5].






  1. 없지?? 설마 북한이 진정한 "민주주의"국가라고 말하는 사람 없지??? [본문으로]
  2.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시스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전반부터 생활영역까지 다양한 지원정책이 존재한다. (실제 구현이 아니라 시스템만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_-) [본문으로]
  3. 솔직히 비록 전공이 고대 민족사이지만...어디까지나 민족사전공으로서 웬만한 여러분들보다 제가 중국소수민족정책의 위험성을 더 잘 알고 대처하고 있다고 장담한다-_- [본문으로]
  4.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다가 그냥 넘기겠다. 최근 민족관련 논문이나 책을 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본문으로]
  5. 다만 본인의 생각은 제목으로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공자는 "귀신을 공경하지만 멀리해야한다.(敬鬼神而远之)"라고 말했다. 최소한 표면으로는 유가 논리가 지배하는 동양사회에서 황제의 대신으로서 신선이니 풍수와 같은 황당무계한 헛소리를 믿지 않는 것은 분명히 현명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런데 황제는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인 천자라고 하였다. 하늘과 뜻이 통하는 황제는 어떤 의미에서 미신의 최고봉이며, 미신의 최고 권위의 해석자이다. 수 많은 대신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미신의 최고 해석자에게 감히 도전하여 죽어나갔다.



당조의 사법부장(형법상서刑部尚书) 장량张亮은 취미생활로 점을 보았다. 문제는 심심풀이로 감히 어떤 이에게 황제가 될 수 있는 복이 있는지 점을 보았다가 목이 날아가고 만다. 어디서 감히 황제의 자리를 가지고 점을 치는가?! 남조의 대장군 장경측(张敬则)은 과거 꿈에서 어깨가 뜨거워진 덕분에 대장군이 될 수 있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제 꿈에 상반신이 모두 뜨거워졌으니 큰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함부로 지껄였다가 온 가족이 죽어나가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한무제의 태자 유거(刘据)나 양무제의 태자 소통(萧统)도 미신을 믿었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역시 미신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되는가?

하지만 미신을 믿어야 할 때도 있다.



강희제(康熙)는 중국에서는 세종대왕 급의 명군으로 손꼽힌다. 그는 중국전통학문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을 뿐만이 아니라 서양의 과학에도 정통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대신 연경요(年羹尧)에게 장님점술사를 데려오라고 한다. 연경요는 장님점술사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데리고 올 수 없다고 한다. 강희제는 장님점술사의 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의 점술 능력은 훌륭하다면서 은근히 화를 낸다.


명군이라고 불리우는 강희제가 미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데 감히 어디서 황제의 명령에 거부하는 것인가?!



사실 연경요(年羹尧)의 목숨까지는 뺏기지 않았으니 가벼웠다고 할 것이다.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刘秀)에게는 유가제일학자라고 하는 정흥(郑兴)이 있었다. 한번은 광무제가 점을 보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유가제일의 학자인 정흥은 당연히 유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그런 장난에 관심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광무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최대한 화를 참는 것이었다. 정흥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자신은 유가학문만을 공부하였기에 미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 미신은 미신전문가에게 물어보라고 서둘러 대답한다.


광무제 유수는 다른 것도 아니고 세상에 "유수의 천하가 올 것이다"라는 미신적인 유언비어를 바탕으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를 "장난"으로 취급하면 뭐가 되겠는가?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개경에서 한양(지금의 서울)로 천도를 할 때 내세운 이유가 풍수지리라는 미신적인 이유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대신들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였고, 피의 소나기가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성계는 단순히 미신적인 이유로 천도를 한 것이 아니라 문벌귀족들의 개경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었다. 그렇기에 유가가 사상적 기반 역할을 하였던 신흥사대부가 오히려 천도를 찬성하며 한양천도를 찬성하였던 것이다.




황제 접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이다. 미신에 대한 모든 판단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의도에 따라 정해진다. 당신이 아무리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미신을 거론하는 것에 어떤 이유가 있지 않는지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설령 단순한 황제의 취미생활 이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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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 이야기는 제가 마음대로 넣은 겁니다. 그 동안 원문을 "한국인에 적합하게 한다"면서 충분히 마음대로 변조하고 있었지만...그냥 심심해서 한국 이야기까지 넣어봤습니다. 원문도 보시는 분들은 점차 원문과 멀어지는 글에 경악하실지도....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인터넷 여론 조작을 통해 18대 대선에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대선투표 전부터 제기가 되었다. 그런데 경찰은 대선투표 전에 서둘러서 해당 사실이 없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진실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듯이, 경찰의 졸속 발표와는 다르게 점차 여론조작 행위가 있었다는 증거가 들어났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여직원 1명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개입했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국정원이 이 사건에 대해서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이는 국정원이 해당 직원의 행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국정원의 "공무수행"중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각주:1]. 다시 말해서 국정원이 2012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국정원법 9조 ‘정치 관여 금지’ 조항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실 굳이 국정원법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행동이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말을 통해서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인 투표보다 적대 세력에 대한 견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북한이나 중국과 다를 바가 없는 비민주적인 사고방식이며 행동이다. 국정원은 북한이나 중국의 정보기관이 부러워서 그들처럼 되고 싶은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2008년부터 사용중인 국정원의 모토이다. 모토에 주어가 없어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이 기회를 빌어서 분명히 하고 싶다. 국정원 모토의 주어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기득권"이 아니며, "국정원의 이익"은 더더욱 아니다.


정신차려라! 국정원!

너에게 찍혀 있는 안기부 시절의 낙인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싶은가?!


  1. 차라리 일개 직원의 개인적인 일이라며 꼬리를 짤라내는 편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황제는 보통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주인이고, 신하는 언제든지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쓰레기이다. 그러나 가끔은 신하가 모든 권력을 손에 넣고 황제를 단순한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한 방!"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빨리 세계를 통치하는 황제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방해되는 꼭두각시 인형은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그러나 북위(北魏)의 고환(高欢)은 꼭두각시 인형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낙양을 점령하고서는 황제를 갈아 치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 황제의 마누라를 자기 첩으로 만들어버린다.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환은 자신이 만든 가짜 황제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며 공송하게 대하였다. 심지어는 자신이 첩으로 만든 과거 황후에게조차 자기 자신을 낮추었다.


어쩔 수 없이 예전 황제를 몰아냈지만 천하가 혼란스러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이 상황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그의 적수 중에서 누군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꼭두각시에게 "황제"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꼭두각시가 쓸 데가 없을 뿐더러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의 꼭두각시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꼭두각시에게 있는 "황제"라는 이름을 통해서 당신은 자신이 명령하기 곤란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꼭두각시는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안전모인 것이다. 난세의 간웅 조조(曹操)나 당나라를 세운 이원(李渊)등도 모두가 꼭두각시 황제를 이용하였다.



물론 당신의 힘을 충분히 키워서 꼭두각시 황제가 없어도 세상을 통치 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꼭두각시 따위는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고 당신이 직접 "황제"가 되면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꼭두각시를 버린다는  점이다.


수(隋)나라 말기 왕세충(王世充)은 사실상 천하의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꼭두각시 황제를 모시기 귀찮아졌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주변에서는 힘이 충분하지 않으니 위험하다고 만류를 하였지만, 인생 한방의 정신으로 스스로 황제가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황제에 대한 연민을 등에 업고 힘을 키운 이세민(李世民)에게 천하를 빼앗기에 된다.



꼭두각시라는 것은 세상에서 인정하는 공통된 권위와 존엄이다. 당신에게 이를 대체할 만한 권위와 존엄이 없다면, 오히려 당신의 경쟁 상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천하가 혼란스러운 동주(东周)시대 초기 정장공(郑庄公)은 힘도 권력도 모두 읽어버린 황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심지어 황제의 어깨에 화살까지 맞추어버린다.


그러나 천하를 지배할 힘이 없었던 정나라는 천하 제후들의 공격을 받아서 처참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 그 뒤로 춘추오패를 비롯한 수많은 천하영웅들이 등장하고 결과적으로 진시황에 의해서 천하가 통일되지만 정나라는 약소국으로서 끊임없이 고통 받을 뿐이었다.



황제라는 꼭두각시는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세상은 비록 꼭두각시라도 "황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 100%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과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꼭두각시를 버리지 마라. 오히려 인형을 예쁘게 꾸며서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당신에게 훨씬 이득이 된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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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엄청나게 내렸군요. 이번 주중에 한 번 더 내린다고 합니다. 군대에 있었으면 하늘에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었을 듯하군요. "악마의 똥-_-+" 다들 조심하셔요~

북한이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중국의 대학생조차도 "그래도 북한보다는 좋잖아~!"라고 탁탁탁 자위행위를 하는 곳인데 말이다.


그런데 군대에 있다 보면  북한과 비슷할 정도의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군인의 시사발언을 제하는 것 때문에 그러냐고? 아니다.


아직 한국은 군인에게 시사발언을 하게 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다. 군대에 의한 쿠데타로 만들어져서 장기간 독재자로 군림해온 박정희와 그 뒤를 잇는 전두환-노태우가 있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군인에게 시사발언의 자유을 주는 것은 아직은 감정적으로 용납받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공무원으로서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함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적인 행동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의 적대적 감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시위"라는 것에 대해서 구시대적인 발상과 어이없는 논리로 "나쁜 것" 혹은 "빨갱이이나 하는 짓"으로 교육을 시킨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위경력이 있는 순간 "관심병사"로 낙인이 찍힌다. 한국의 남자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군대에서 시위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다보니 시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민 세뇌되어 사회로 나가게 된다.


시위는 나쁜 것이 아니냐고? 민주주의는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아니! 북한에서 살고 싶냐?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입 닥치고 살고 싶은가? 지금 우리가 북한보다 좋은 이유는 수 많은 "불법"시위들이 70~80년대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법시위"를 지금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더 악랄한 비유를 해줄까? 3.1운동도 불법시위였는데?!



물론 모든 불법시위가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시위를 중립적으로 바라봐야지 무조건 "나쁜짓"으로 보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이나 군대나 똑같은 명령-복종이 최우선인 집단이어서 그 모습이 너무나 유사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북한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 군대에 있을 때 쓴 잡글. 먼가 심히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_-;;;

몇몇 사람들은 "미국 제국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이는 제국주의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서 발생한 오류이다. 미국을 싫어하든 좋아하든과 하등 관계 없이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제국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큰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국의 정의는 차라리 "약자를 괴롭히는 힘 쎈 나라" 혹은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국가"라는 감정적인 해석이 오히려 더 사실에 가깝다. 한국어 사전에는 제국을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전의 오류이다.


아마 무대 위의 삐에로 같이 너무나 웃겨서 처연하게 보일 정도의 "대한제국"이 바로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제국"의 잘못된 해석에서 이름지어졌을 것이다.



제국은 "강한나라" 혹은 "약자를 괴롭히는 힘 쎈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한 국가가 종속된 어떠한 집단을 두고 "모국"과는 다른 통치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간단하게 영국-인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도는 영국에 종속된 집단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경우 비록 여왕이 존재하기는 하나 실질적인 권력은 국민들에게 있는 민주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는 식민지 총독이 파견되어 비민주적인 통치를 했었다. 인도의 국민들은 영국의 국민들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굳이 언급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의 모국과 식민지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로 인하여 독립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영국과 같은 "제국"으로 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미국의 경우 최초 독립 이후에 새로 확장된 하와이와 같은 곳은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리고는 하와이에 살던 원주민들도 기존의 미국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파나마나 필리핀과 같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경제-군사적 요충지이면서 미국령이 아닌 곳이었다. 파나마나 필리핀은 미국의 입장에서 자국 땅으로 편입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원칙상 식민지로 둘 수도 없기에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물론 단지 식민지 제도의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경제-문화적 혹은 그 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타국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는 국가도 "제국"이라고 정의해야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경우도 제국의 "원래 의미"는 숙지해두고 재정의를 시도하였으면 좋겠다.




* 군대시절 잡상처럼 써놨던 낙서......





청명절 혹은 한식은 보통 개자추(介子推)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자추는 진나라의 왕자 중이(重耳)가 망명 생활을 할 때 곁을 지켰던 충신이다. 한번은 양식이 떨어져서 모두 허기에 지쳐있을 때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서 중이(重耳)에게 바칠 정도였다. 훗날 중이는 진나라로 돌아가서 진문공(晋文公)이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부귀영화를 원하겠지만, 개자추는 모든 포상을 거부하고 면산(绵山)으로 숨어들어간다. 진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할 생각으로 불까지 지르지만, 개자추는 끝까지 산에서 나오지 않고 타 죽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개자추야 말로 청렴결백한 선비이며, 진문공의 행동이 과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문공이 온 산에 불을 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닌 "모든 포상을 거부한 청렴결백"때문이었다.



황제에게 있어서 천하의 문무백관은 필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명성을 원하고, 어떤 이는 돈을 원한다. 또 어떤 이는 여자를 원할 것이고 다른 어떤 이는 자식의 승진을 원할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만약 부귀영화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 된다.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이 제환공(齐桓公)에게 남긴 유언에도서 같은 이치를 찾아볼 수 있다. 관중은 위(卫)나라의 태자 자리를 벗어던지고 제나라로 와서 관직을 하고 있는 개방(开方)을 조심하라고 한다. 제환공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유를 물어보았다.


"에휴! 태자도 벗어던진 것이 문제입니다! 태자도 벗어던졌으니 분명 제환공에게서 더 큰 것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해가 되었는가?! 황제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대신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부귀나 여자 등을 원해야만 정상이며 안심을 할 수 있다.



양무제(梁武帝)을 원래 자신의 동생 소굉(萧宏)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였다. 그런데 한 번은 동생의 집에 공금횡령을 통하여 금은보화가 쌓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리고 양무제는 너무나 기뻐서 말춤이라도 출 기세가 된다. 동생이 공금횡령을 했는데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드디어 동생의 "탐욕"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하여 개자추는 진문공이 가장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공신이면서도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고 산으로 숨어버린다. 관직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다고?! 그럼 대체 뭐가 필요한데?! 19년이나 고난의 길을 걸어온 진문공에게 있어서 개자추의 "탐욕"은 결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렇기에 의심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생겨났던 것이다.



황제를 모실 때에는 결코 "욕망이 없는 고결함"만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당(唐)나라의 이필(李泌)은 당숙종, 당대종, 당덕종 3대를 모두 모신 왕가와 절친한 사이였다. 황제가문이야 그를 완전히 신임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에는 황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의 욕망이 있는 대신들도 국가시스템 안에 있었다. 원래 세상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도사가 되고자 했던 이필이지만, 고위 관직을 가지며 결혼까지 하며 "일반적인 사람"처럼 행동한다. 만약 이필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청렴결백의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국가 대신들과 같이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탐욕도 전략이다. 탐욕하지 않으면 당신은 의심받고 목숨까지도 위험하다.


전국시대 말기 진(秦)나라의 노장군 왕전(王翦)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楚)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에 극단적인 "탐욕"을 보여준다. 그는 출정을 가는 길에 심심하면 진시황에게 사람을 보내서 저 땅을 달라~ 이 땅을 달라~ 돈을 달라~ 집을 달라~ 심지어는 28세의 공주까지 새색시로 달라고 했다. 부장이 탐욕이 지나치지 않냐고 비웃자 왕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탐욕은 무슨… 어쩔 수 없다네. 진나라의 총병력이 78만인데 나 혼자 60만을 지휘하고 있다네.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황제의 의심을 받게 될 텐데 전쟁을 무슨 수로 하겠는가?!"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 어떻게든 이번 주 분량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로서 황제접대학의 반을 끝냈습니다. 박사 입학전에 마무리가 될 듯은 합니다. 저의 귀차니즘이 발동하지 않으면 말이지요......사실 귀차니즘보다 집문제부터 시작해서 이래저래 번잡한 일들이 쌓여있는지라.....~.~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정치가이다. 그는 복수를 맹세하고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를 떠나서 오나라로 떠나온다. 그 뒤로 그는 오왕 합려(阖闾)를 모시며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합려의 아들 부차가 등극한 이 후, 월나라의 위험을 몇 번이나 강력하게 경고하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죽게 된다. 그런데 정말 억울한 죽음이었을까?

 


정사와 야사를 막론하고 오자서가 오왕 합려의 아래에서 관직을 지낼 때에는 결코 합려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합려에게 아부를 하며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서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기로 했을 무렵, 원정군의 총사령으로 능력 면에서는 어디까지나 오자서가 최고였다. 그러나 오자서가 초나라 출신이었기에 일부러 손무(孙武)을 총사령관으로 추천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분명 제나라로부터 온 이민자인 손무(孙武)을 오나라의 전통귀족인 것처럼 열심히 포장한다.


오자서는 굳건한 믿음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초나라를 정복하고서는 원한을 이유로 초나라 왕의 묘를 파헤치고 시체에 300번이나 채찍질을 하였다. 그런데 오자서는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시대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만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도록 순종하고 조심했던 오자서는 사라지고 온갖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며 왕의 의견에 반대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자서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합려시대에는 그는 외부에서 유입된 지위가 낮은 선비에 불과했다. 합려에게 완전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었기에 언제 잘려도 신기하지 않은 계약직과 같이 불안정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합려는 사랑하는 딸의 장례를 위하여 수천 명을 생매장해버리기도 할 정도로 포악한 중년의 군주였다. 오자서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관직이나 부귀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차 시대에 오자서는 이미 오나라의 큰 기둥으로서 존재하였다. 그랬기에 어린놈의 부차 따위가 감히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설령 "어린놈"이라도 분명 제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대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황제인 것이다. 포악한 늙은 황제가 사람을 죽일 것 같으니 조심하고, 만만한 어린 황제라고 무시하는 행동은 죽으려고 환장을 한 행동이다. 오히려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제가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합려는 포악하기는 하였지만,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두뇌로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한다. 오자서가 설령 실수를 하였다고 해도 그의 능력을 아껴서 죽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제에게 경험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젊음의 혈기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당신이 누구이든 다 죽여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제는 오히려 일종의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황제인데! 감히 대들어?! 너 죽어!!!" 유아적인 자기증명의 유혹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의 곁에서 당신이 공신이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매일 매일 "아버지는 이랬는데...저랬는데..."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XXXX! 아버지가 그렇게 좋다면 아버지 곁으로 보내주지!!!"

 


핵심은 "늙은 황제""젊은 황제"을 동등하게 대접해야된다는 것이다. 남조 유송(刘宋)의 왕족 유의공(刘义恭)은 자신의 조카 유준(刘骏)이 황제가 되자 조심에 조심을 하면서 "나는 병신이요!!!"라면서 벌벌 떨었다. 그렇기에 유준도 유의공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행복한 반평생을 누리게 된다.


문제는 유준이 죽고 그의 아들인 유자업(刘子业)이 제위에 올랐을 때였다. 유의공이 보기에 유자업은 15살밖에 안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꼬맹이에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안심을 하고 매일 매일 연회를 베풀어서 즐겁게 놀았다. 결과는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

 


황제를 모실 때에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늙은 황제이든 어린 황제이든 능력이 뛰어난 황제이든 바보 같은 황제이든 모두가 황제이다. "황제 곁에 있는 것은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언제나 명심하라. 황제는 세계 최악의 초특급위험물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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