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약점을 감춘다. 강자가 솔직히 밝히는 약점은 전시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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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간의 저작권법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추후 본 시리즈의 어떠한 사진도 저작권상의 문제가 있다면 ddokbaro@gmail.com 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확인 후 해당 사진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나라 건륭황제(乾隆帝)는 유용(刘墉)에게 그 공로를 치하하며 황제의 신발과 옷 등을 하사하였다. 유용은 성은이 망극하여 가문의 사당에 모시고서는 가보로 삼았다.

대대로 수 많은 대신들이 황제의 하사품을 받아왔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황제의 하사품을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전속 관리인까지 두면서 고이고이 모셨다. 만약 조금이라도 하사품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건륭황제는 서예와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때때로 대신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하였다. 대신들은 황제의 하사품을 전시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벌레라고 생길 것을 우려하여 조심히 보관할 뿐이었다. 강희제의 경우는 사냥을 좋아해서 대신들에게 자신이 잡은 동물들을 하사 하였다. 대신들은 황제가 하사한 동물을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썩어가게 놔두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였다.


당나라의 의종(懿宗)황제는 황실악사 이가급(李可及)의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이가급은 황제로부터 짐수레로 끌어야 될 정도의 하사품을 자주 받았다. 훗날 이가급이 황제의 눈 밖에 나서 하사품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되었을 때 내시들이 비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이가급은 황제의 하사품은 감히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 황제의 하사품을 이렇게까지 간직할 필요가 있을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바보짓이다.

황제가 하사품을 내린다는 것은 당신을 좋게 봤다는 것이거나 유용하게 쓰라는 의미이다. 만약 황제가 음식을 주는 것은 먹으라는 것이고, 돈을 주는 것은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런 하사품을 억지로 고이 모셔두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당태종(唐太宗)은 대장군 이적(李勣)이 병에 걸리자 치료약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이적은 성은에 감사하며 하사품을 고이 모셔두기만 할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바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다.



황제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황제에게 음식이 부족한가? 돈이 부족한가?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이 황제의 것인데 당신에게 하사한 것은 먼지 한 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무엇보다 당신이 하사품을 고이 간직하는 것은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데, 정작 황제는 자신이 하사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하였다시피 이가급은 임금에게 미움을 산 뒤에 자신이 받았던 모든 물건을 반환하여야 하였다. 당신이 황제의 하사품을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몇 십 년 동안 보호하고 아낀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은총이 더 해지는 것도 아니고 덜 해지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아무리 황제의 하사품을 아끼더라도 황제는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냥 황제가 음식을 하사하면 먹고, 돈을 주면 쓰고, 옷을 주면 입어라. 당신이 하사품으로 무엇을 하든지 황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의 소광(疏广)과 소수(疏受)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들은 퇴직축하로 황제에게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받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 돈을 성금으로 내기도 하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서 1년이 되기도 전에 모두 써버렸다. 이들이야 말로 황제 접대학의 고수들이다.



황제가 하사품을 내리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이 하사품을 받고 열심히 나를 위해서 국토를 넓히거나 나라를 평안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적처럼 하사받은 약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지 않고 고이 모셔두다가 죽어버리는 것이 대체 황제에게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황제가 원하는 것은 하사품을 경건하게 다루는 당신의 모습이 아니라, 황제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모습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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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와와와!! 이번주 끝이다!!!!!! 한 2일은 번역 안해도 되는구나~~~~ 우헤헤헹~ -_-;;;

자기 자신을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귀차니즘을 이기려고 노력중-_-;;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은 거짓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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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종결은 서진(西晋)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예(杜预)가 있었다. 그는 홀로 오나라 점령 전략을 구상하였을 뿐더러, 직접 원정군에 참여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오나라를 멸망시킨 서진의 원정대의 사령관은 두예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나라 점령계획을 끝까지 반대했던 가충(贾充)이었다.


가충은 이미 원정대가 출발 준비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에 반대하며 집에서 뭉그적거렸다. 결국 서진의 황제 사마염(司马炎)이 화가 나서 "계속 그러면 내가 직접 간다?!"라고 할 정도로 압박을 주자 어쩔 수 없이 원정군 사령관이 되긴 한다. 다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과는 몇 천리가 떨어져 있는 수도 근처에 사령부를 설치하고는 "지휘"을 한다.


이딴 사령관 아래서 짜증나서 어디 일하겠는가? 그런데 꼴 같지도 않은 사령관을 추천한 것은 다름이 아닌 두예 자신이었다. 두예는 자신의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하는 이런 사람을 왜 굳이 자신의 상관으로 모시려고 했던 것일까? 미친 걸까?


사실 두예는 가충을 자신의 안전모로 사용했던 것이다.



정치사는 언제나 배신과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 최고 권력자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군대를 통솔하는 사령관의 반란이었다. 그래서 사령관들은 자신의 가족을 인질로 잡히고는 하였다. 사실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도 그다지 합당하지 않다. 어차피 천하를 잡으려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깟 가족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렇기에 황제는 힘을 가진 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북위(北魏) 말년에 “그림자 황제”로까지 불릴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지방반란세력을 토벌해야했던 하발악(贺拔岳)은 자신의 처지를 "이겨도 안 되고 져도 안 되는 지경"으로 묘사하였다.


지게 된다면 당연히 문제이겠지만, 만약 설사 이기더라도 황제의 자신에 대한 의심과 의혹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발악은 자신의 정치적 맞수였던 이주천광(尔朱天光)을 사령관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자신은 부사령관의 자리를 맡는다.


결과적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이주천광은 사령관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포상을 얻게 된다. 하지만 하발악 역시 승진을 하였을 뿐더러 자신에게 집중되던 영광과 권력을 분산함으로서 황제의 의심을 줄일 수 있었다



다시 두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서진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하여 마지막 남은 오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었다. 서진의 수도에서 몇 천 리나 떨어진 곳으로 대군을 보내야 되는 황제의 입장에서 완전히 믿는 사람이라도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가충은 비록 병신 같고 계속 전쟁자체를 반대해왔지만, 황제의 총신일 뿐더러 황제 가문과 혼약으로 맺어진 사이였다. 이런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떠억 하니 모셔두면 황제라도 안심할 수 있게 될 뿐더러 그 후광을 이용하여 장군들을 조절하기도 쉽다. 무엇보다 사령부가 현장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오히려 방해를 받지 않고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사실 아무리 현명한 황제라고 하더라도 코드인사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연소왕(燕昭王)은 인재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유명하지만, 구름처럼 몰려온 인재들이 자신의 수도에서 음모를 꾸미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수도와는 떨어진 곳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오왕 합려(阖闾)는 오나라를 부흥시킨 명군이었지만, 초나라와의 전쟁을 결심하고서는 누가 봐도 최고의 인재이지만 초나라 출신인 오자서(伍子胥)와 백비(伯嚭)을 멀리하였다.


명군이라는 사람들도 코드인사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일반적인 지도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렇기에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닌 "안전모"이다.



물론 "안전모"도 괜찮은 것을 착용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당대의 명장 곽자의는 당숙종(唐肃宗)의 아들 광평왕 이숙(李俶)을 자신의 안전모로 사용하였다.


문제는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던 이숙이 갑자기 스스로가 천재군사전략가라고 된 것처럼 직접 나서서 지휘를 해버린다. 그 결과 천하의 곽자의라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몇 십만 명의 당군은 패망을 하고 만다. 안전모는 어디까지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방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전모가 자기가 명검이라도 되는 듯이 날뛰었으니 난장판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당신의 충분히 용감하다면 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司马穰苴)의 사례를 배울 수도 있다. 그는 군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황제가 하사한 표준형 안전모를 군법회의에 늦었다는 이유로 처형해 버린다. 황제가 특사를 파견해서 말리기까지 하였으나 "장군이 군중에 있을 때에는 비록 주공의 명령이라도 받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하였을 뿐이었다. 그 결과 황제의 총신도 군법 때문에 죽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군법과 사마양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게 된다.

하지만 안전모를 스스로 박살내는 행동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선택이다. 우선 안전모가 큰 잘못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황제도 당신을 이해해주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된다.


웬만하면 그냥 "자나 깨나 안전모"을 생활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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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귀찮아서 번역 안 할 뻔 했다...-_



기대수명과 안전 및 복지의 수준의 향상으로 어떤 사회의 발전을 논하지 말라.

동물원 안의 동물과 야생동물을 비교하는 것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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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前秦)의 부견(苻堅)은 소수의 저족(氐族)의 수령으로 왕국까지 세우게 된다. 그러나 저족의 갑작스러운 인구팽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저족을 국경지역에 분산 배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저족의 힘을 분산시키고, 타민족이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를 내세운 저족 대신들의 강력한 불만을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전진은 선비족과 강족의 반란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황제는 필히 자기 사람을 주변에 두어야 된다. 외부인들이 힘을 키우게 되면 반란이 일으킨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한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부견보다 조금 일찍 갈(羯)족 국가를 세운 후조(後趙)의 석씨 일가의 예를 살펴보자. 석씨 일가는 자신의 민족 이외에 다른 이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갈족들을 수도 부근에 밀집시키고, 두 명의 아들에게 각각 10만 가구씩 통솔하도록 하였다.


수도 주변을 "자기 사람"으로 채웠으니 안전할 것 같은가? 석호가 죽고 나자 수도 주변의 갈족끼리 내전이 벌어져서 몇 년 만에 나라는 물론 민족 자체가 사실상 없어지고 만다. 



누가 "내 사람"인가?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네가 성공하면 같이 성공하고, 네가 패망하면 같이 패망하는 사람이 "내 사람"인 것이다. 만약 단순히 가족, 같은 지역,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자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편협할 뿐더러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행동이다.


세계를 뒤흔든 몽골제국도 같은 이유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몽골인만을 "자기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 외의 민족은 차등을 두어서 대접하였다. 그 결과는 제국의 빠른 붕괴이지 않았는가?!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부견의 몰락은 단순히 "자기 사람"인 "자기 민족"을 분산 시켜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고 동진(東晉)과 전쟁을 벌여 패배한 것이 원인인 것이다.


본래 "외부인"인 사람들도 부견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해서 부견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부견이 처참하게 패배한 순간 상황은 변하고 만다. 부견 밑에 있어봤자 어떠한 이익도 있을 수 없는데 무엇하러 계속 충성을 바쳐야 하는가?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인" 뿐만이 아니라 "자기 사람"도 외부인으로 변해버리고는 한다. 실제로 부견과 동족이자 친구일 뿐만이 아니라 친척이기도 했던 여광(呂光)도 부견의 패배 소식을 듣고서는 반란을 일으켜서 후량(後涼)의 황제로 등극해버리지 않는가?




정리해보자. 황제에게 "자기 사람"은 형제도 아니고, 고향친구도 아니다. 황제에게 자기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능력이다.


만약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떤 사람이든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내 사람"이 될 것이고, 반대로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설령 친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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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마치 친구를 찾은 것과도 같다.

좋은 책을 다시 읽을 때는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과도 같다.



중국사진(촬영세계) 시리즈의 사진과 글은 중국의 유명 사진잡지 촬영세계(摄影世界)의 마이크로블로그(http://weibo.com/photoworld)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중국어를 모르고 중국사진계에 접근이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소개하는 차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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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국의 설날 기간은 1~2주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길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차로도 2~3일이 걸리는 것이 "보통"인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길다고 할 수도 없다. 특히 중국은 설날에는 반드시 고향집으로 내려가서 가족들을 봐야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남아 있기에 수억 명이 이 기간에 움직이는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이 연출된다. 


무섭기까지한 중국의 중국의 설날 귀향은 철도로 시작해서 철도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에 비하여 너무나 넓기에 버스로 이동하는 것보다 철도를 통하여 귀향하는 것이 비용이나 효율면에서 합리적이다. 물론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비행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비싼 운송수단이다.



2012년 1월 8일 산시성 태원시 철도역에서 한 노인이 천진에 있는 딸을 보러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표를 구매하기 위해서 필요한 신분증이 없었을 뿐더러 기차표값조차 부족하였다. 한 경찰이 이 사정을 알고 노인을 도와서 임시신분증 발급을 도와주고 철도표 사는데 부족한 돈을 보충해주었다. 노인은 고마움에 무릎을 꿇고 딸에게 주려고 한 가득 담아놓은 농산물을 주었다.


보통 설날 몇 주 전부터 예매 시작하는데 이 광경은 슬프기까지 하다. 예매기간에 2~3일은 기본으로 예매하는 곳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는 한다. 그런데 2013년에는 중국 철도부에서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여서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정책을 시행[각주:1]했다.  그리고 온갖 비판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3년 1월 19일 밤 합비의 기차역에서 농민공 부부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들은 12일부터 고된 육체 노동을 마치고 매일 저녁 기차역에 와서 고향에 돌아갈 표가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기적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중국 철도부는 인터넷 예매를 20일 전부터 시작하였고, 예매창구를 통한 예매를 18일전부터 시행하였다. 문제는 도시에 나와서 일을 하는 시골출신의 노동자(농민공) 중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있는 것은 몸 뿐이기에 아무리 열심히 예매창구에서 줄을 서도 똑똑한 사람들이 이미 2일 전에 인터넷으로 예매을 해버렸다. 농민공들은 1년에 단 한 번 가족을 볼 기회조차 무식하다는 이유로 박탈당해버린 것이다.



2012년 1월 10일 항조우 철도역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미 5일 밤낮을 표를 구하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었고, 이미 피곤에 지쳐서 서 있는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고향의 80이 넘은 어머니는 자신이 표를 구하려고 5일동안 철도역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인터넷예매도 조용하지는 않았다. iFish이라는 네티즌이 만든"자동예매 플로그인"을 만들었고, 이어서 안티바이러스와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찐샨(金山)을 비롯하여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왕(人民網) 및 다양한 네티즌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러자 중국철도부는 비공식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관련 서버를 차단해버린다[각주:2].



2013년 1월 9일 불산의 한 부부가 농민공을 위해서 10위안의 저렴한 돈을 받고 인터넷으로 대신 철도표를 예매하여 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수 많은 철도표 불법상인들을 놔두고 주변의 농민공을 도와주기 위해서 10위안의 수고료밖에 받지 않은 사람을 체포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쟁이 아닌 평범한 귀향이 중국에서 가능할 날이 언제쯤 올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2013년 중국의 설날 귀향 대작전은 이제 시작이며 더 많은 슬픈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이다.



  1. 12306订票 시스템 [본문으로]
  2. 공식적으로는 차단하지 않았다고 한다....하지만 중국에서 해당 싸이트 방문자체가 안되게 되었는걸-_-;;;; [본문으로]

중신왕(中新网)의 보도에 따르면, 1월 21일 오후 중국 무한(武漢)에서 농민공(농촌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선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설날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0여 명의 노동자들이 아직도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 말춤을 추었다고 한다.




....센...센스가 넘쳐 흐르시는데?! 특히 리더로 보이는 분의 표정이...표정이...살아있네....-_



2012년 안드로이드와 신비안의 신발견 바이러스 수량 대비(iOS는 통계수치가 없음)



2012년 텐센트 모바일보안보고에 따르면 2012년 17.7만여개의 새로운 모바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그 중 90%이상이 안드로이드OS였다. (턴센트의 APP은 iOS을 존재하지 않기에 iOS 상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는 없음)

또한 스팸메일의 수도 급증하여 사용자가 신고한 스팸메일이 3.04억개에 달하였다. 스팸메일 중에서는 광고류 스팸메일이 79.1%, 사기류 스팸메일이 10.8%였다.

중국의 경우 수 많은 불법 APP 다운로드 싸이트들에서 바이러스가 심어진 불법APP을 다운받아서 바이러스에 감연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한국도 중국을 경유한 불법APP이 유통되고 있기에 한국사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 2012년 중국 10대 모바일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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