胡锦涛:人民币汇率改革不屈从外部压力

후진타오: 위안화환율 개혁은 외부압력에 굴하지 않는다.

내눈에만 "우리 체면을 좀 살려줘! 우리가 알아서 할꺼야! 니들이 하라고 해서 하면 쪽팔리잖아!"라고 하는것 같은건가? 어차피 중국도 세계와 전쟁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최근 보도를 보니까 위안화절상을 해도 한국원도 자동적으로 절상이 되서 별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피해가 날 수도 있다는데...머...이미 준비중이겠지만.....요즘 달러값 너무 떨어지지 않았나??;;;


国内汽柴油价格明起每吨提高320

중국 국내 기름가격 내일부터 매 톤당 320위엔이 오름.

...택시 기사들 또 난리 나겠는데....안정된 것이 몇 달이나 지났다고...또....그 뿐만이 아니라 공장들에도 상당한 타격이 가겠는걸...흐음.....경제에 별 영향이 없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거야 마냥 똑같은 소리를 하는 기사이니 어차피 믿을 수 없고 말야.


미·중 환율 공방…중국이 승기 잡나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위안화 환율 문제가 집중 논의될 전망이었던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이 ...

문제는 소위 중국에 유리하다는 숫자들이 다 중국쪽 숫자라는 점. 그리고 중국의 통계는 중국인들도 안 믿는다는 점. 대체 머가 유리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은 살짝 중국의 체면을 세워준것 같은데?


중국 은행권 건전성·자본부족 잇따라 경고

이데일리 - ‎10 hours ago‎
[이데일리 양미영 기자] 중국 은행들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은행 규제당국은 최근 은행들에 리스크 재평가를 요구한데 이어 5대 ...

중국인들 중에 이쪽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중국은행들의 부채율은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방재정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처리가 더 골치아프다. 지방재정을 튼튼히 하면서 은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지방재정을 튼튼히 해야되지만 지역 편차가 너무 심하고 부동산억제정책을 쓰려는 타이밍이니 부동산 매매가 재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지방정부 재정이 안정적이 되는건 무리고 남은 방법은 은행을 강하게 하는 방법뿐...머...벌어둔 돈이 있으니 처음 몇 번까지는 잘 매꿀 수 있을듯....??


중국 텐센트 '이젠 해외로'

중국 최대의 인터넷 검색 및 게임 퍼블리싱 업체 텐센트가 '중국 시장도 좁다'며 해외를 겨냥하고 나섰다. 러시아의 투자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한편, 미국 포털업체 ...

腾讯의 러시아진출? 이미 다 망해버린 ICQ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텅쉰의 성공을 만들어준 QQ의 원형인 ICQ을 얻어온다는 의미외에 얼마나 있을까? 머...현금은 두둑하니 투자로 해서 잘 진출해보라고 하셔요. 하지만 본인으로서는....부정적. 그리고 기사에서는 인터넷 검색과 게임 퍼블리싱으로 벌어들인 돈이 18억달러라고 했는데...내 기억에 인터넷 검색은 1억도 안되는데?? 5000만이나 되던가? 대부분이 게임 퍼블리싱이었지. 던젼앤파이터 대박쳤거든...그 외에도 한국게임 퍼블리싱한것이 넘치고 넘치거든~~ 검색은.......[중국이야기/중국 IT 대해부] - 텅쉰(tencent 腾讯) 대해부



강력한 투기억제책 약발 안들어!... 중국 부동산은 뜨겁다

(베이징=박영서 특파원)부동산 투기를 차단하는 강력한 정부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식지않고 있다. 13일 홍콩 밍바오(明報)는 중국 정부가 ...

그러니까 말야. 효과가 있을리가 없다니까...지방재정의 대부분이 부동산인데 중앙에서 아무리 그래봐야 변하긴 개뿔. 투지억제책은 중앙에서 내리지만, 그것을 실행해야될 지방이 실행을 안하는데 효과가 있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이러다가 일본 부동산 버블사태가 발생하겠지. [중국이야기/중국 경제] - 중국 부동산붕괴 시간표 대유행!!!


치엔시앙(Oak Pacific Interactive 千橡互动集团)는 중국의 종합인터넷그룹이며 2002년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다수의 Web 2.0싸이트를 모아서 중국최대의 SNS 그룹으로 성장하였다. 산하에는 猫扑网(mop.com)、人人网(renren.com)、uume.com、donews.com、中国软件社区(banma.com)和魔兽世界中国(wowar.com)등이 있으면 투자자로는   Accel Partners、DCM、Itochu Technology Venture、레노보(联想投资)和Softbank등이 있다.

2004년 猫扑网(mop.com) 인수
2006년 校内网(Xiaonei.COM)인수
2009년 校内网(Xiaonei.COM)을 人人网(renren.com)으로 개명

[중국이야기/중국 IT 대해부] - 몹(MOP 猫扑网) 대해부
[중국이야기/중국 IT 대해부] - 런런왕(renrenwang 人人网) 대해부


바로의 중얼중얼 :
1) 한국에서는 특히 소프트뱅크의 투자 이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 짝퉁 카이신왕등 상당히 비열한 수법을 사용한다.
3) SNS가 향후 5년내로 밀려나지 않을 것이기에 일단은 안정적이다.


千橡互动集团



애플은 화려하게 iAd을 내놓으며 구글의 광고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풍문에 의하며 구글의 CEO 슈미트(Eric Schmidt)는 미국정부 관련인사와 만나서 iAd의 예를 들면서 FTC가 Google의 AdMob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슈미트는 "구글의 iAd는 광고시장을 공격하려는 계획이고, 이는 이 시장이 구글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명"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애플이 iAd을 내놓은 것은 오히려 구글의 AdMob 인수를 돕는 행동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애플의 발표회 전인 3월 말, 애플의 잡스와 구글의 슈미트가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이 포착이 되었다. 음모론적으로 생각한다면, 슈미트는 잡스에서 iAd을 빠르게 발표하여서 AdMob의 인수를 돕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음모론은 음모론일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상상의 자유가 있다^^


카이신왕(kaixin001.com 开心网)은 런런왕과 치열하게 경쟁중인 SNS 싸이트이다. 2008년 3월 페이스북을 모방하여 직장인을 대상으로 공개된 이후 페이스북의 인기 플로그인인 Friends for sale(好友买卖)와 Parking Wars(抢车位)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2009년에는 오분(Five Minutes 五分钟)이 개발한 SNG게임을 마음대로 도용하여 해피농장开心农场으로 대박을 치면서 더욱 빠르게 발전하였다.

2009년 12월초 카이신왕의 등록사용자수는 근 7000만명이며, 매일 로그인하는 사용자도 2000만명에 매일 20억회의 이상의 페이지뷰를 보이고 있으며 매일 20여만명이 가입하고 있다. 이로서 카이신왕은 사실상 런런왕을 추월하며 중국 최대 SNS으로 등극하였다.

경쟁회사인 런런왕을 만든 치엔시앙千橡은 2008년 10월 카이신왕의 도메인과 비슷한 kaixin.com 도메인을 구입하고 짝퉁카이신을 개설한다. 이에 카이신왕은 2009년 5월 치엔시앙을 고소하고 서비스 중지와 1000만위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였다.

다만 카이신왕 사용자의 충성도는 런런와에 비하여 약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훌륭한 SNG 게임을 내놓지 못한다면 몰락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바로의 중얼중얼 :
1) 솔직히 카이신도 페이스북을 배낀 짝퉁아니냐? 짝퉁끼리 잘들 논다.
2) 역시 페이스북이 중국정부에 막히지만 않았어도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서비스

kaixin001.com
애플은 한 때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다는 지금으로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생각으로 빠르게 발전하였다. 애플은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그 독특한 자존심으로 시장을 독점하는듯도 보였다. 그러나 자존심은 오만함이 되었고 잡스가 돌아오기 전에 최악의 길을 걸었다. 잡스가 돌아오며 애플은 그 독특한 자존심을 살리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제품들을 쏟아내며 부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지금 애플은 다시 오만한 자존심을 세우며 몰락의 길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초기 성장요건이었던 폐쇄적인 시스템을 버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분명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성공하였지만, 그것을 버려야 할 때는 또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


1) IT 업체 : 너희들과 협조따위는 없어.
애플은 이번에 제한적인 멀티테스킹을 선보이며 아직 멀티테스킹을 지원하지 않는 MS 진영을 공격하였습니다[각주:1]. 대부분의 이익을 광고에서 얻는 구글을 겨냥하여 iAd라는 광고시스템을 만들어서 앞으로 휴대폰에서는 구글식의 광고가 아닌 APP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했을 뿐만이 아니라, 애플이 아닌 그 누구도 Iphone으로 비즈니스를 하지말라는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New iPhone Developer Agreement Bans the Use of Third-Party Analytics and Services) 플레쉬 진영에 대해서는 조롱하는 정도가 아닌 플레쉬를 이용한 개발 자체를 모두 금지시켜버렸다. 너희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제조상 : 우리가 만들라는 것만 만들어.
애플은 제조상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폰과 원도우폰을 생산해오던 HTC을 저작권위반으로 고소를 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미래 휴대폰 시장을 점령할 곳은 분명히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 거대한 떡을 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구글과 MS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제조상들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이기에 제조상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비록 외주를 주기는 하지만 제조상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비교적 적습니다.

여러분들이 제조상이라면 자신들에 맞추어 최적화 할 수 있고 이익이 많은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고르시겠습니까? 아니면 단순히 제작공장으로서 이익도 적은 애플의 아이폰을 선택하시겠습니까?


3) 개발자 : 너희들은 내 말만 들어.
애플은 개발자 라이센스 3.3.1 항목을 수정하였습니다. iPhone App목록에 등록하려면 Object-C,  C++, JavaScript(WebKit engine내 javascript만 인정)로만 무조건 개발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일반사람들은 프로그래을 개발하는 것은 한가지 도구로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문서를 작성할 때 메모북, 워드, 한글등이 있듯이 다양한 프로그램툴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플은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는 언어로 작성하라고 개발자들에게 강제하고 있습니다.(왜 iphone 4.0에 대해 개발자들이 분노하는가?)
 
개발자들 사이에서 분노가 폭발을 하자 잡스가 직접 나서서 "우리는 이미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시스템과 개발자들 사이의 중간층은 결국 적합하지 않은 소프트를 만들어냈으며, 시스템의 진보를 막고 있다."라고 하며 해당 조항을 변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 많은 개발자들은 iPhone 소프트에 대한 개발을 중단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자들 사이에서 반애플 분위기가 분명히 형성되고 있습니다. 애플은 개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을 이끌어내어 애플스토어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개발자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4) 사용자 : 나는 너희들의 신이다. 믿고 따르라.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강제적으로 아이튠을 이용해서만 컴퓨터와 연결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애플은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부를 하며 우리를 따르는 사용자 역시 최고라는 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애플의 이런 태도는 분명히 시장을 확대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아이폰의 점유율 확대는 점차 그 속도가 느려져서 정체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미국 스마트폰시장에서 iPhone 성장 끝.)  패션의 선두라는 이미지의 아이폰이 점차 늘어나게 됨에 따라서 모두가 아이폰을 가지게 되자, 자신만의 개성이 없어졌습니다. 패션의 선두라는 마케팅이 양날의 검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구글와 MS의 시스템은 다양한 디자인의 휴대폰을 통해서 나오고 있으며, 사용자들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애플은 시스템 최적화라는 이유로 다양한 불안정한 기능들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자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이 애플의 특색입니다. 그러나 아이폰을 해킹하면 애플이 막아놓은 수 많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플은 너무나 확실한 시스템을 위하여 사용자들의 자유를 막아놓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애플의 오만은 그들만의 특색입니다. 자존심으로 성공하였으며, 오만함으로 몰락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존심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오만함으로 다시 실패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존심이 지나치면 오만함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저는 애플이 10년전의 애플 몰락을 다시 떠올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다만 저의 마음은 이미 안드로이드로 갔군요. 다음 휴대폰은 아이폰이 아닌 안드로이드로 마음 속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앞으로 발전성을 생각하면 역시나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다시 매니아들의 매니아를 위한 회사로 몰락하리라 생각됩니다. 안녕..아이폰~

  1. 그러나 사실 안드로이드에서는 이미 멀티테스킹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MB "韓·中 FTA 먼저 할수도"…美에 조기비준 압박

이 대통령은 12일자로 보도된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통상 규모에서) 한국은 일본과 미국과의 그것을 합쳐도 중국과의 통상 규모에 못 미친다. ...

틀린 소리는 아니고 괜찮은 발언이라고 본다. 하지만 어느 덧글을 통해서 밝혔지만, 한중간의 FTA는 근시일내로 체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한중 학자들 모두 주류는 찬성이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빨라야 2020년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장 “위안화 절상 임박설 사실무근”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이 위안화 절상 및 금리인상 단행 전망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저우 행장은 지난 11일 폐막한 보아오포럼 기자회견에서 위안화 절상 ...

몰라~~ 알 수가 없어~~~ 한쪽에서는 절상할듯~~~ 다른 쪽에서는 절상 안할듯~~~
정말 알수가 없어~~~


중국은 북한 버릇 안고치고 모하나?

더욱 심각한 일은 중국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투로 금강산 관광 사업자를 바꾸겠다고 위협한 대목이다. 북한경제가 중국경제 종속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이유다. ...

버릇을 고친다라...어떻게? 굶어죽일까? 그럼 북한이 에이씨! 하면서 전쟁이라도 벌리면 어쩌려고? 참고로 중국과 북한간에는 "비상사태"시 군대를 투입할 수 있는 조약이 체결되어 있는데? 그리고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은 골치아파지는데? 자기의 우물안에서 자기 좋을대로만 생각하는 불쌍한 사람들...쯔쯔...


'중국 경제에 대한 5가지 신화'…희생양 만들기用?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주목받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정책 보고서가 15일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었으나, 중국의 협상을 위해 연기됐다. ...

1) 하지만 중국의 내수시장은 미국의 내수시장에 비하여 훨씬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왜 무시하는데? 2) 인질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은행이 된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어도, 미국을 위협할 수는 있다. 3) 최소한 위안화 절상이 무역흑자를 줄이게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물론 부속조치도 있어야 겠지만 그건 다른 문제이고.... 4) 몇몇 특별한 예로 중국이 환경문제 대해서 미국보다 좋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법률로도 아직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은 중국이 미국보다 못하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의 효율이 좋다? 미국에는 석탄을 이용한 발전소가 얼마나 남았는데? 그리고 중국은? 참고로 여기 왠만한 겨울공동난방은 아직도 석탄을 사용하는데?? 5) 정확한 비율이 생각이 안나는데 지난 10년사이 중국 하층민 임금상승률이 5%도 안되었지? 중국통계청의 자료는 고수익자도 다 포함하는 통계이며, 중국의 빈부격차는 상당히 심각하다.  전체적으로 아예 틀린말이 있는 기사는 아니지만...조금 중국감싸주기식 내용인듯 하다.

중 서부내륙 대변신…'신실크로드' 꿈꾼다

박민희 기자 중국 서부 산시(섬서)성 시안 시내를 벗어나 동북쪽으로 16㎞, 진시황 병마용에 가까운 농촌 지역이 거대한 '물없는 항구' 열기에 휩싸여 있다. ...

실크로드라.....전체 역사에서 지금의 신쟝지방이 중국정부의 직접통치을 받았던 시절은 얼마나 될까나~~~ 불안불안한 신쟝에서 얼마나 안정적인 교통로를 만들 수 있을까? 본인이 신쟝 독립주의자라면 이제 철도를 노리겠사와요~~~


* 조금 더 평소 말하듯?! 해보았다. 이게 더 좋은가요?;;;


孫子曰:凡用兵之法,馳車千駟,革車千乘,帶甲十萬,千里饋糧,則內外之費,賓客之用,膠漆之材,車甲之奉,日費千金,然后十萬之師舉矣。

손자 가라사대 :
군대를 운용하게 되면 경전차 1000대와 중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이 필요할뿐더러 그들을 위한 천리길의 먹거리 수송이 필요하다. 이렇게 밖으로 소비되는 돈 이외에도 외교전과 전차와 갑옷의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10만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1. 차
장기에서 차를 빼앗기면 게임에 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춘추시대에는 전차는 전쟁의 핵심중에 핵심이었다. 전차는 현대전의 탱크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 무게와 돌격력으로 적진을 밀어버리는 무기이다. 전차의 시작은 당연히 말을 사육하게 된 이후에나 가능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4000년전부터 말과 같이 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기원전 2000년전에는 마차도 만들어졌으리라 생각되고 있다. 말의 사육과 마차의 발명은 전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상나라시대의 군사책임자는 말马이라고 불렀고, 주나라에서는 군사책임자를 사마司马라고 불렀을 정도로 말을 중시하였다. 고대에 전쟁과 관련된 제사의 이름도 마제祃祭로서 말과 관련이 되어 있다.

현재 우리는 말이라고 하면 유럽의 기사들이 두꺼운 철갑을 두르고 말을 타는 것을 연상하고는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영화 벤허에 나오는 것처럼 말로 수레를 끄는 전차를 위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세계 각 지역의 전차의 모습은 각기 조금씩 달랐다. 서아이사형 전차는 바퀴살의 숫자가 적었고, 가마가 바퀴의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스-로마의 전차는 바퀴와 가마가 수직으로 되어 있지만, 바퀴가 작았고 가마가 낮았으며 서아시형처럼 바퀴살의 숫자가 적었다. 중국의 전차는 바퀴살이 많았으며, 바퀴와 가마가 수직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전차는 중앙아시아 전통의 마차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소가 말보다 먼저 언제 사람에 의하여 가축으로 키워졌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확한 시기나 바퀴가 언제 발명되었는지등은 아직까지도 고고학계의 뜨거운 화두이다. 라틴어계열에서는 일반적인 수레는 cart라고 불렀으며, 소가 끄는 말을 ox cart로 불렀다. 전쟁에 사용되는 마차에 대해서는 chariot라고 불러서 중시하였다. 마차의 기동력과 돌파력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하였다.

중국에서 전차는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병기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전차는 넓은 평지를 제외한 지형에서는 기동성과 돌파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마궁병을 통한 빠른 이탈공격방식이 생겨나면서 전차의 지형적 제한성으로 인하여 진한시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었갔다.


1.1. 경전차와 중전차 (벌쳐와 시즈탱크)
손자는 전차를 치거(馳車) 혁거(革車)로 나누었다. 치거는 경전차로서 스타크레프트의 벌쳐라고 생각하면된다. 혁거는 반대로 중전차로서 스타크레프트의 시즈탱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경전차는 춘추전국시대의 서적에서는 그리 자주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중전차는 많은 고서에서 나오게 된다. 중전차가 경전차보다 먼저 탄생을 하였는데, 중전차가 혁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전차을 피혁으로 감쌓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전차는 경전차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탄생했으나 한대부터는 오히려 거의 출현하지 않게 된다. 송대 이후에다시 부활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이름만 딴 것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경전차는 기존의 중전차를 개조한 신형 전차로서 기동성이 훨씬 더 뛰어나서 공격용으로 좋았다. 그에 반하여 중전차는 움직임이 둔하여 방어용도로 효과적이었다. 마치 스타크레프트의 벌쳐와 시즈탱크을 연상하면 거의 다르지 않다.

조조는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면서 경전차와 중전차를 각각 전차와 보급차(치중차 辎重車)라고 해석하였다. 조조의 이런 해석은 사마법일문(司馬法逸文)에서 유래하였다. 사마법에서는 치거를 전차로 해석였고, 혁거를 사람이 인력으로 끄는 병기, 의류, 양식등을 운반하는 치중차로 해석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사료상에서 보이는 치거와 혁거 모두가 말이 끄는 차로서 사람이 탑승하였다.


1.2. 전차와 보급차 (말과 소의 차이)
고대의 수레는 동력에 따라서 마차와 우차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말이 끄는 수레이며, 후자는 소가 끄는 수레이다. 마차는 보통 4필의 말이 끄는 수레였으며 사람이 탑승할 뿐 화물을 운반하지는 않았으며 속도가 빨랐다. 위에서 말한 경전차와 중전차 모두가 마차에 속한다. 그에 반하여 우차는 한 두의 소가 끌었으며 사람을 태우지 않고 화물을 운반하고는 했으며 속도가 느렸다. 다음 구절에서 나오는 구우대차(丘牛大車)가 바로 소가 끄는 마차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작은 차小車와 큰 차大車로 이를 구별하였다.

논어에는 "큰 수레에 끌채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 끝이 없다[각주:1]"라고 하였다. 포함(包咸)은 주을 통해서 큰 차는 소가 끄는 차이며, 작은 차는 말이 끄는 차라고 해석하였다. 이를 형병(邢昺)은 고공기考工記을 인용하며 말이 끄는 수레는 단순히 전차만이 아니었고, 사냥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되던 수레도 작은 수레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현재까지의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마차는 상대 말기에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우차의 상황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상나라 시대의 성인 언사상성(偃師商城) 유적에서 발견된 바퀴자국을 가지고 어떤 이는 마차에 의한 자국이라고 말을 하고 어떤 이는 우차에 의한 자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의 청동기 기물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바로 서주시대 말기의 사동정師同鼎이다. 사동정에는 주나라와 유목민족간의 싸우미 서술되어 있다. 주나라의 군사장관을 사동師同이라고 불렀는데 이 글에서는 그가 획득한 물건들이 적혀 있다. 그 중에서 마차와 우차 모두가 눈에 띄인다. 이것은 당시에 전쟁에 마차와 우차가 모두 동원되었다는 중요한 근거이다.


1.3.전차부대의 수량과 전쟁의 규모.
"경전차 1000대와 중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이 필요[각주:2]"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전쟁에 동원된 전차와 병력의 수량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국력에 따라서 시기에 따라서 다르기는 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에 중요시 하던 병력은 경전차, 중전차 그리고 병사 순서였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핵무기의 보유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미사일의 숫자, 전투기의 숫자등으로 전쟁 수행시 중요도를 고려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무왕은 상나라를 정벌하면서 전차 300량과 전사 3000명을 동원하였다고 한다[각주:3]. 지금 전쟁을 생각하면 상당히 조그마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춘추시대 제후국들은 각자 1000량의 전차만를 보유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노나라가 처음 곡부曲阜에 봉해진 이후 전차(革車) 천 대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제齊나라, 진秦나라, 진晉나라, 초楚나라등은 모두가 10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러하여 "전차 천대의 국가千乘之國"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하였다[각주:4]. 그러나 실제 전쟁에 출동했던 전차는 몇 백대에 불과하였다고 생각된며, 800대가 동원된 전쟁이 최고 동원 수량이었다.예를 들어서 성복전쟁(城濮之戰)에서 진晉나라는 700대의 전차를 내보냈으며[각주:5] 안전쟁(鞍之戰)에서는 800대를 동원하였다.  애릉전쟁(艾陵之戰)에서는 제齊나라가 800대를 동원하였다[각주:6].자산子產이 진陳나라를 공격할 때에는 정鄭나라는 700대의 전차를 동원하였다.[각주:7]

당시에는 전차와 사병이 같이 다녔으며, 보통 10명을 단위로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한 대의 전차와 전사 10명이 같이 다니는 것이다. 당시의 강국에게 붙여졌던 "전차 천대의 국가"에서조차 전사 1만명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사마법일문(司馬法逸文)에서 규정한 것과 동일하다. 설사 평민병사(徒)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3만에 불과하였다. 

서주의 군사제도에서 사(帥)가 군대내 최고위 관직이었다. 춘추시대에는 군軍이 최고위관직이었는데 주례에 따르면 왕은 6군을 거느리고, 대국은 3군을 거느리며 차국은 2군을 거느리고 소국은 1군을 거느린다고 되었다[각주:8]. 이를 통해서 우리는 "천대의 전차"와 "3군"이 대략적으로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춘추시대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주 진晉나라의 예시를 들고는 한다. 기원전 678년 진무공晉武公은 1군만을 거느리고 있었다[각주:9]. 기원전 661년에는 진헌공晉獻公이 상하 2군을 만들었다[각주:10].  기원전 632년에는 진문공晉文公은 이미 상중하 3군을 거느리고 있었고, 진경공晉景公은 6군을 거느렸다[각주:11]. 그 밖에 진나라에서는 성복전쟁(城濮之戰)이전에도 독립보병부대가 나타났었고, 성복전쟁(城濮之戰)이후에는 상중하 3행(三行)으로 증가하였다. 전차 3부대와 보병 3부대를 합치면 6군이 되며, 이는 천자의 군사제도와 비슷하다. 만약 주례周禮에 따라서 1군을 12500명이라고 한다면, 6군은 75000명이 된다. 그렇기에 춘추시대의 전쟁규모는 몇 만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전쟁의 규모는 날로 커져간다. 예를 들어서 진晉나라는 총 49개현縣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매 현에서 100대의 전차를 징발하여 총 4900대을 운용하였다[각주:12]. 초楚나라는 단지 진陳, 채蔡, 동불갱東不羹, 서불갱西不羹의 변두리 4개 현에서만 각각 1000대의 천자를 징발하여 총 4000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막강한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사항을 통해서 손자가 말한 "전투전차 1000대와 수비전차 1000대 그리고 병사 십만"은 춘추시대 말기의 전쟁 규모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일부 학자들은 손자의 시기에 전차 2천대나 전사 10만명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당시의 수준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 들어나고 있다. 손자는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던 것이다.

전쟁의 규모가 나왔으니 몇 가지 부언을 하고자 한다. 중국 고대 전쟁사 연구에서 전쟁 규모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8세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10만명 이상이 참여간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대륙에서는 춘추시대부터 10만명이 동원된 전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시간이 흐를 수록 전쟁의 규모는 커져갔다. 당시에 쓰여진 다양한 서적에서는 "전차 만대의 황제과 전차 천대의 군주[각주:13]"이라는 기록되어 있어서 이를 증명한다. 전국초기의 상황은 아직 분명하지는 않으나, 춘추시대 후기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당시의 병력은 10만명 이하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진晉나라가 분리되어 성립된 위魏나라는 전국시대 초기의 최강국이었다. 명장 오기吳起는 위문후魏文侯와 위무후魏武侯을 모시며 그의 이상이 5만의 군사를 모아서 적을 멸망시키겠다[각주:14]"라고 했던 일을 보면 당시의 전쟁 규모가 비교적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국시대 중기를 넘어서 후기로 갈 수록 상황은 완전히 변한다. 기원전 303년부터 기원전 301년 제齊나라와 위魏나라 그리고 한韓나라가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패배시키고,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전 296년 사이에 조趙나라는 중산中山국을 공격하여 멸말시킨다. 이 두차례의 전쟁 모두 20만명이 동원되었다. 당시에 7대국들은 몇 십만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진秦나라는 심지어 백만명이 넘는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293년 이궐伊闕전쟁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는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의 군대 24만명을 물리쳤다. 기원전 279년에는 언鄢전쟁에서 백기는 수공으로 성을 공격하여 물에 빠져 죽은 초楚나라 병사와 백성이 수십만이었다.  기원전 273년의 화양華陽전쟁에서 백기는 조趙나라와 위魏나라 군사 15만명을 죽였고, 기원전 260년의 장평長平전쟁에서는 항복한 조趙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하였다. 언급한 4번의 전쟁만으로도 근 몇 백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산동지방의 6개국의 병력은 진나라에 미치지 못하였고 약 50만정도의 병력만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전부를 합치면 약 400만명인 것이다. 당시의 인구는 지금만 하지 못하였지만 거대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사상자의 숫자도 거대하여 세계대전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병법이 발달했던 원인이 된다.

병법이란 수 많은 피의 경험으로 얻어진 것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리링의 손자병법이란?을 참고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관심으로 번역을 한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제가 번역하면서 제일 짜증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략해도 되는 출처와 원문들을 당연히 해야된다고 생각하면서 적어넣고, 그 뿐만이 아니라 지명과 인명과 같은 고유명사에 저도 모르게 한자를 다 넣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이것만 안해도 절반 이하의 시간이 걸리겠지만......전 이미 세뇌되어서 별 수 없습니다. ㅠㅠ 그나마 최대한도로 줄인 것이 이정도랍니다.

다음에 해야되는 병사관련 부분도 좀 복잡한데..그래도 전차만 하리오~~~!
제일 짜증나는 것은 넘겼다~~~!!!





  1. 大車無輗,小車無軏(論語 為政) [본문으로]
  2. 馳車千駟,革車千乘,帶甲十萬 [본문으로]
  3. 革車三百兩,虎賁三千人<孟子 盡心下> [본문으로]
  4. 左傳 哀公十四年) [본문으로]
  5. 左傳 成公二年 [본문으로]
  6. 左傳 哀公十一年 [본문으로]
  7. 左傳 哀公二十五年 [본문으로]
  8. 王六軍,大國三軍,次國二軍,小國一軍 周禮·夏官·司馬 [본문으로]
  9. 左傳 莊公十六年 [본문으로]
  10. 左傳 閔公元年 [본문으로]
  11. 左傳 成公三年 [본문으로]
  12. 左傳 昭公五年 [본문으로]
  13. 萬乘之主,千乘之君(莊子,韓非子) [본문으로]
  14. 以五萬之眾,而為一死賊(吳子) [본문으로]
런런왕(renrenwang 人人网)은 중국최대의 SNS싸이트다. 런런왕은 2005년 12월 청화대학교와 티엔진대학교의 학생들이 Facebook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SNS 싸이트로서  2006년 10월 치엔시앙千橡에 팔린 뒤 치엔시앙의 5Q학교망과 합쳐진 시아오내이왕校内网에서 시작한다. 시아오내이왕은 대학교의 특정 IP와 이메일을 통해서만 사용자 등록을 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교내에서 거주하는 중국의 특성과 맞아 떨어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중국내 32000개 대학교와 국외 29개국의 1500여개 대학교 및 56000개 고등학교와 85000여개 회사에서 사용중에 있었다.

시아오내이왕은 2008년 4월 30일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으면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런런왕의 기본적인 모델은 Facebook과 동일하게 API을 통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 2009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Facebook모델을 선보이며 빠르게 발전한 카이신왕(kaixinwang 开心网)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카이신왕이 기존에 사용하고 있었던 www.kaixin001.com과 비슷한 www.kaixin.com을 구매하여 카이신왕의 짝퉁을 만들었다. 네티즌들은 짝퉁 카이신이라고 불리는 치엔시앙 카이신왕千橡开心은 2009년 9월 22일 런런왕과의 사용자 아이디 공유하게 되었다.

 2009년 8월 4일 학교망을 상징하는 시아오내이왕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3대 ISP중 하나인 교육망教育网과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유와 학생그룹만이 아닌 일반인들도 같이 공략한다는 의미로 "사람-사람"이라는 뜻의 런런왕人人网으로 개명하였다. 최근 텅쉰의 QQ가 막대한 메신져 사용자를 바탕으로 SNS 서비스(QQ校友)을 실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 위협이 되고 있으나, 충성도면에서 런런왕이 더욱 강한 상태다.


바로의 중얼중얼 :
1) 사실 이 서비스도 페이스북이 중국정부에 차단만 안 당했어도 성공 못했다.
2) 페이스북이 있기에 국제화전략은 애시당초 글렀다. 그래도 중국내 자체수요가 워낙에 크니 국제화안해도 잘만 먹고 살 수 있다. 바이두는 중국내만 대상으로도 세계 3대 검색싸이트로 등극하지 않았는가?!
3) 페이스북 모방이기에 페이스북처럼 서비스금지 당하지 않으려고 "민감한 단어"에 대한 검열이 최강이다.


관련 싸이트 :
人人网
千橡开心网




몹(MOP 猫扑网)은 티엔야을 위협하고 있는 막강한 BBS 커뮤니티이다. 몹은 1997년 한국의 루리웹과 비슷한 성향의 게임전문커뮤니티로 시작하였다. 2004년 치엔시앙(千橡互动集团 China InterActive Corp)에 매각이 된 이후 가쉽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DC와 비슷한 성향의 싸이트로 발전했다. 현재 등록사용자는 5000만명이며 그 중 대부분이 18세에서 35세사이의 신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몹은 특히 2007년 인터넷에서 몇가지 정보만으로 사람을 찾아내는 한국에서는 네티즌CSI 수사라고 불리우는 중국의 인육검색人肉搜索을 시스템으로 정착을 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다. 몹의 사용자 성향은 가쉽을 즐기며, 화제가 되는 이야기도 폭력과 미녀 그리고 섹스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몹의 성향을 사용자들은 스스로 BT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BT는 변태의 인터넷식 표기이다.

확장읽기 :
[중국이야기/중국 누리꾼] - [중국인터넷용어] 人肉搜索 = 인육검색
[중국이야기/중국 시사] - 마녀사냥식 '인육수색' 중국대륙이 떨고 있다


몹의 영향력은 점차 강해지고 있으며 현재 중국최대 BBS 커뮤니티인 티엔야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내용이 가쉽적인 부분에 머물고 있으며, 충성도면에서 티엔야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몹이 속해 있는 치엔시앙그룹은 몹이라는 BBS 커뮤니티 이외에도 런런왕人人网이라는 중국최대의 SNS 싸이트를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 몹과 런런왕의 합체가 막강한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리라 생각되고 있다.


바로의 중얼중얼 :
1) 개인적으로 너무 가쉽들만 많아서 좋아하지 않는다.
2) 몹의 인기는 중국정부의 인터넷 우민정책의 핵심을 보여준다. 시사보다는 가쉽에 집중해가는 중국네티즌을 볼 수 있다.

猫扑网


중국의 미디어를 통괄하는 광전총국广电总局는 중국의 방송 상에서 앵커의 발언이나 기자의 인터뷰 및 자막중에서 NBA, GDP, WTO, CPI등의 모든 외래어 사용을 금지하였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여 이번 금지는 모든 외국어와 그 약자들의 사용을 금지한 것으로 앞으로 대량의 영어약자들이 중국어로 변화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각주:1].

광전총국은 그 이유로 외래어로 인하여 혼란스러워진 중국어를 보호하여야 될 필요성이 있으며, 많은 농촌지역에서는 NBA와 같은 외래어를 이해할 수 없기에 이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럼 중국중앙방송국의 약자인 CCTV부터 바꾸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의 화장실에서도 자주 쓰이고 있는 WC도 다 없애야되는 것이 아니냐면서 광전총국의 정책은 문화보호가 아닌 문화쇄국으로서 중국문화를 말려죽이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문화를 훌륭히 계승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은 언제나 교류를 통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 역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현재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사용되는 "사회", "정치", "군사"와 같은 단어들은 일본어에서 흘러왔으며 그것은 현재 우리의 생활에서 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단어들이 되었다.

문화는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썩어서 악취를 풍기게 된다.


  1. CPU”(中央处理单元)、“GPS”(全球定位系统)、“MBA”(工商管理学硕士)、“MSN”(微软网络服务)、“USB”(通用串行总线)、 “DVD”(数字多功能光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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