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이런 말들이 있다. “책을 고를 다른 것을 필요가 없고, 중화서국의 책을 사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혹은 명색이 중국 최고의 대학교 북경대학교의 역사학과 선생님이 중화서국으로 책을 권을 냈다라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중화서국.

 

예를 들어서 역사학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24사를 구매할 생각이라면, 무조건 중화서국이라고 적혀 있는 책을 사면 된다. 그것이 가장 좋은 판본이라고 인정 받는 것이고, 석박사 논문에서도 위의 책에서 인용한 것을 기본으로 한다.

 

중화서국이 최근 24사의 교주본을 다시 개편해서 놓을 생각이어서, 북대 역사과의 교수님들 중에서 몇분이 차출?!되서 일을 하고 있다. 중화서국의 원칙은 “校异同,不校是非”라는 원칙으로 최대한 원본의 모습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당대 최고의 해당 역사학자, 한학자등을 총동원하는 중화서국을 어찌 믿을 수 없지 않은가?

 

본인도 책을 고를 자기도 모르게 출판사를 보게 된다. 중화서국에서 출판을 했다면, 자금 문제로 끙끙 거리면서도, 일단 사고 본다. 최소한 후회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괜찮은 출판사가 없을까? 아니, 괜찮은 출판사는 있다. 하지만 출판사 이름만으로 독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믿고 책을 사게 만드는 출판사는 없는 것일까? 물론 중국은 거대한 인구로 인한 시장으로 인하여, 돈이 드럽게 안되는 전공 중에서도 전공 책을 출판하여도 기본적인 본전을 뽑는다지만, 왠지 모르게 많이 아쉽기만 하다.

 

본인에게 현재 한국의 괜찮은 출판사를 꼽으라면, 을유문화사와 대우학술총서시리즈밖에 거론할게 없다. 아쉽고도 아쉬운 일이다. 아마 본인의 지식이 짦은 이유일 것이다.

 

지정조격은  원나라를 공부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지금까지는 소실되었다고 알려져 왔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노력으로 사대문 가문에서 2002년 찾아내게 되었다. 원나라 관련 학자들이 이 책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질런지는 말을 안해도 아시리라.

그 리고 보존 작업으로 시간을 보낸 뒤, 한국 학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이 지정조격의 주석과 교정을 본다. 그리고 2007 8월 말에 국제 회의를 하면서 공개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 학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라는 사실이다.

아래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올려진 칼럼이다.

http://www.aks.ac.kr/aks_kor/Aks_News/Aks_NewsView.aspx?class=Press&id=357&p=0



본인은 북경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소수민족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장판 선생님의 몽고사를 듣는데, 바로 이 지정조격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장판 선생님도 위에 언급된 회의에 참가하셨고, 이번에 출판된 책을 가지고 오셨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해당 교주본에 대한 평가는 아예 없으셨다. 개인적으로 교주본의 평가가 몇일 만에 내려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회의때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고 하지만 진정한 모습은 돌아가서 연구해봐야지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 수업이 끝나면 장판 선생님의 모종의 평가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혹은 수업중에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만약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학계의 능력이 중국 학계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지정조격의 한국 학계 교주본은

중국 학계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


개인적으로 김호동 교수님 책의 팬으로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으면 한다...
(
이유 꼬라지 하고는-_;;)

여담으로 책을 주문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는데, 영풍이나 교보와 같은 대형 서점에 없어서, 출판사까지 연락하셨단다. 어머니!!!...... 최고!!! 그리고 아마 본인이 북대에서 재학중이라는 것을 말하셨나 보다. 출판사에서 중국에서 책에 대한 수요가 많냐고 물어봤단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지정조격 자체의 사료적 가치는 정말 대단하다. 몽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보물인 것이다. 당연히 수요가 있다. 하다 못해서 북경대에서만 이번에 몽고사 수업을 듣는 연구생이 20명이다. 중국 전국으로 따지면 대충 몇명의 학생일까? 아니 그냥 중국 대학 도서관에 각각 3개씩만 팔아도 그게 얼마인가?! 문제는 수요가 아니다. 현재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은 한국 학계의 교주본이다. 과연 교주본이 중국 학계에서 받아 들여질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복사본을 대충 보았지만, 중국어판으로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주석의 몇몇 한국어 부분만 번역하면 끝날 정도로 보인다. 사실 한국어 부분 번역 안해도 독해 자체에는 문제가 없긴 하다. -_-;; (그리고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이미 중국어 주석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어로의 번역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역시 교주본을 중국 학계가 받아 들일 것인가!!!

야생의 사고을 구하는 방법의 역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인터넷에서의 검색원리를 야생의 사고의 역이라고 가정하면, 역에서 원래의 야생의 사고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인 예로 구글의 검색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서로간의 링크관계를 개념화 한 것이다. 그 외에 다양한 검색방법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검색법에 대해서 분석함으로 인하여 야생의 사고를 분석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레비는 야생의 사고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한 것이고, 지금의 용어로 하면, 인류 공통의 사유체계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읽으며 떠오른 잡상.


실제 연구 방법
1) 인터넷 검색 원리 수집
1. 구글
2. 네이버
3. 기타 등등

2) 검색 원리 간의 공통점 분석
3) 검색원리의 공통점을 통한 인간의 사유체계 구성
중국어와 한국어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6~70%의 한국어 어휘가 한자에서 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한국에서 쓰이는 한자를 기반으로 한 어휘들이 주로 고대 한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중국어에서 쓰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더 많은 어휘는 지금도 그대로 혹은 약간의 변화만을 거친 채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홍콩영화를

보 다 보면 한국어와 발음과 의미가 똑같은 어휘들이 자주 등장해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데요. 이는 북방유목민족의 남하와 관계가 있다고 하네요. 유목민족의 남하 전에 중원을 차지하고 한반도와 활발한 교역을 벌였던 한족 왕조에서 쓰이던 언어가 현재의 남쪽에서 통용되던 언어인 거죠. 허나 북방유목민족의 침입으로 중원을 상실하고 남쪽으로 밀려나면서 자연스레 한반도와의 직접적인 교류가 끊기고 그 후로 북방계통의 중국어가 표준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답니다. 그래서 고대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어는 현 남방계열의 중국어와 더 비슷한 점이 많게 된 거죠. ( 중국역사 전공하신 바로님이 확실하게 알려주시겠죠...ㅋㅋ  )

아직 하얀눈님이 글에서 맘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_
http://www.oh-bang.com/11?TSSESSION=3550d39959032ac9108c6dab3ed2d15b


적으라고 적고 있는 나도 문제이긴 하다.후....-_-
그런데 본인의 전공은 어디까지나 중국 고대사라는 말이다!!
이건 언어학적 문제인데!!! 잘 몰라! -_-!
그냥 여기 저기서 들을 이야기를 종합해 놓은거니까 알아서!!! -_-


일단 한글과 한국어의 언어체계는 기본적으로 알타이어족의 기본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이 한국어와 일본어가 알타이어족이 아니라고 부정하는데, 그 이유는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 속에서는 많은 "한자"요소가 포함되어있기 떄문이죠. 그래서 혹자는 알타이 어족에서 몽고계 언어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분류하지 않고, 독립적인 한국-일본어 계열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다음으로 북방 이민족의 유입과 한국과의 교역은 전.혀.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전부터 황해는 강력한 교역수단이 되었으며, 우리들에게 유명한 것은 신라방, 고려방, 표해록등을 참고로 할 수 있습니다. 더 궁금한 내용은 윤명철 교수님의 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황해를 환지중해로 설정하는 재미있는 책들이랍니다. 어찌 되었든, 한반도와 중국 남부는 지속적인 교류를 해 왔고, 현재 한국에 있는 화교들의 대부분이 중국 남부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남방계열이 한국어와 비슷하다기 보다는, 예전부터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활용해오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고대 한어의 단어들이 들어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언어를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데, 어법은 중국어와는 완벽하게 다른 알타이 어족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의 교류대상은 중국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방 민족들과도 빈번한 교류를 하여왔고, 고대 한국어와 현대 한국에서도 이런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아마 아직하얀눈님은 북방민족들은 낙후되고, 덜 떨어졌다는 생각으로 교류의 가능성을 조금 무시하지만, 사실상 북방 민족들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 유산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곳에 전해주었던 전달사의 역할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물론 그 방법이 가끔은 약탈과 침입이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문화 전파의 한 모습이죠) 이러한 예시로는 한국어에서 "강"이라고 말하는 단어를 예로 들 수 있겠군요. 강의 고대 한국어는 "가람"으로서(한가람 서점이 이것이죠^^ 한가람은 한강이라는 뜻이랍니다.), 표기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가람을 빨리 여러번 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강이나 가람이나-_-; 그게 그 발음입니다. 그리고 이 가람은 알타이어 계열에서 강을 의미하는 보편적인 발음으로 통용됩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어는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북방계열 언어체계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동안의 중국과의 교류로 인하여 많은 단어들이 흘러들어오게 되었고, 지금 현재의 한국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교류를 무시하고, 가장 순수한 한국어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이는데, 이는 분명한 오류입니다. 그것은 다양한 교류를 아예 무시하는 방식이기 떄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하나의 문화가 사멸되는 것이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긴 합니다만...이건-_ 별로 이야기 안해도 될 말이라서.....패스~

선진시대와 그 뒤의 "동이족"개념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선진시대 혹은 시대를 조금 더 높여서 전국시대 전의 동이족은 현재 중국의 베이징과 산동반도에 있었던 동이족을 말하는 것이며, 그 뒤에는 요동반도 동쪽의 민족을 지칭하였습니다. 또 선진시대 전의 동이족은 진한시대를 걸치면서 모두 현재의 한족으로 포함되게 됩니다.

물 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선진시대전의 동이족은 산동반도와 현재의 한반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영역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오류가 있는데, 흔히 동이족이라고 말해지는 민족에게는 고서의 기록상에서도 9개의 분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진시대 이전의 이 분파끼리의 공통점은 매우 애매모호한 수준입니다. 단지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현재 중국의(당시의 서안과 장안일대)의 동쪽에 있기에 묶어서 같은 민족이라고 말을 한 것 뿐이죠.

예를 들어서 저희가 그냥 유럽이라는 지역적인 구별단위로 유럽사람이라고 하지만, 유럽사람중에서는 터키종부터 게르만종 아리안인종등등 수 많은 인종이 얽혀서 민족을 구성하고 있죠.



지역적인 구별과 인종/문화적인 구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실수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중국학자들도 동이족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자유롭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선진시대 이전의 동이족은 화하족과 융합하여 현재의 한족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주류니까요. -_- 이것을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중국의 학자들도 별 수 없이 동이족의 위대함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물론 선진시대 이전의 동이족의 개념에서 새 토템에 대한 숭배가 나옵니다. 그것을 보통 화하족과 구별하는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동이족의 실체를 밝혀 냈다고 합니다만....새 토템은 전세계에 매우 넓게 퍼져 있는 샤마니즘 신앙입니다. 심지어 아메리카의 잉카제국에서도 새토템(그것도 새토템의 전형인 태양 새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었죠.

또 이렇게 말하면 위대한 동이족이 이를 전파했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이것은 지금은 저물어 가는 이론체계인 전파론입니다. 어느 한 곳에서 문명과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현재 계속되는 인류학적 연구를 대표로 하는 다양한 비교연구를 통해서 허구성이 들어나고 있는 이론입니다.



...그냥 갑자기 어느 동이족 문명설을 토대로 전개시킨 글을 보고 써보았습니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의 후손으로 훗날 당나라의 장수가 되어서 지금 실크로드라 부르는 지역을 잠시나마 통치하였던 사람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http://blog.daum.net/hanatrue/12713962 으로 가보시면 되겠고,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고선지 장군에 대한 한중 양국의 역사관 차이이다.


고선지 장군은 사료상에서도 분명히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한민족의 후예로서 반드시 연구해야될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관이 민족중심주의 역사관을 고수하고, 혈통적 연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역사관이기에 고선지 장군을 한.국.의. 위.대.한. 선.조.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보통 중국 사람이 들으면 분명히 화를 낼 것이다. 왜 고선지 장군이 한국 사람이냐고 어처구니 없어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고선지 장군은 "중국의 국가인" 당나라에서 일을 하고, 중국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인이다. 다른 민족이다! 그는 한민족이다! 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중국의 역사관으로는 여러 민족이 모여서 중화민족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한민족 역시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일부분인 것이다.


이렇게 고선지 장군의 문제는 한중 양국이 2차 고구려 전쟁의 시발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계속 이대로 상대방의 역사관을 개무시하고, 자신의 말만이 맞다고 소리 높여 싸우는 한! 다음 역사 전쟁은 고선지 장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先秦史
丁一川老师  dingyc@vip.sina.com
考试时间 6月25日。 开卷

1. 试论中国文明起源的特征
2. 中国早期国体政体的演进
   1)从商周服制看中国早期国家形态
   2)春秋战国列国政体的演进
3.简述春秋战国商品经济的发展
4.举列说明出土资料与古史研究的关系(至少三例)

천두시우陈独秀라고 있다. 중국에서 공산당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지금 현재 중국 정치나 문화에서의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 중국 사람들에게 보고 배우라고 외치고, 안중근을 본받으라는 글을 사람이다.

그가 1 세계대전에서 중국의 참전과 관련하여 이야기 중에 “恶闻战声”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전쟁에 관련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천두시우도 전쟁을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만약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면필요성을 완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서 반감이 심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중국 한족이 지금까지 영토확장을 한적이 언제있던가? 거의 유일한 예가 한나라때 한무제가 흉노를 정복한 것이다. 물론 그것도 100년이 안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외에는 거의 모두가 북방에서 들어온 민족들이 벌인 전쟁들이었다. 의외로 한족들은 영토확장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_-;;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여기서 한국이 파병했던 두번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베트남과 중동. 두가지의 파병은…..최소한 베트남 전쟁은 한국에게 상당한 경제적 소득을 올리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의였나? 천두시우는 중국이 정의를 위해서 1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찬성하였지만, 한국이 베트남과 중동에 참전한 것은 정의를 위해서였나? 본인이 생각해도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명분이 없는 전쟁은 분명히 나중에 문제를 가지고 온다. 현재 베트남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참전과 참전과정에서의 여러 문제(고엽제는 기본이고, 한국병사의 베트남인 학살, 윤간등의 문제) 앞으로 어찌 것인가?

 

본인 한국이 전쟁에 참전하고 어쩌고 하는 자체에는 반감이 없다. 필요하면 참전 수도 있다. 하지만 명분이 없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당장의 앞으로는 이익일지는 모르지만…. 많은 상처가 남게 된다. 그것도 실제로 전쟁에 참전하는 없는 국민들의 상처만 남게 된다.(한국에서 있는 사람이 군대 가던가?)

 

갑자기 이런 쓰냐고? 그냥 천두시우 말을 수업시간에 듣고 생각이 나서하하하;;;;



무엇보다 그동안 졸업논문 쓴다고 노트 여기저기에 적어두고 정리하지 않은 잡상을 잊어버릴까봐 오늘 몰아쳐서 올려 놓는다........라고 하지만 다 재미없는 내용들이니;; 후;;  

우환乌桓과 같은 경우, 우환산乌桓山에서 시작하여 우군새외五军塞外, 연변십군沿边十郡(已经塞内), 사군(四郡)으로 점차 남쪽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점차 남쪽으로 가는 상황에서 문화와 정치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 특히나 우군새외에서 연변십군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급속적인 발전을 하게 한다. 그것은 기존의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 남쪽의 지식계층을 만나서 그들을 받아들이고 정비되는 과정을 통해서 발달한 것은 아닐까? 재미있는 것은 일정한 발전을 이루어냈음에도 지속적인 남하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우환의 행동은 다른 북방민족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흉노도 아래로 내려왔고, 몽고도 내려왔고, 청나라도 내려왔다. 더 좋은 땅을 원하는 것일까? 하긴 지금의 러시아도 부동항을 얻으려고 내려오고 싶어한다. 그리고! 고구려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고구려 역시 몇번의 수도 이전이 있었다.


그런데 이유가 애매하다. 정말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남하한것인가? 약탈을 위해서 남하한 것인가? 아니면 한군데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자 취향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좋은 땅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리고 고구려 문제에서도 생각해 것이, 다른 북방민족과는 다르게 축성(성을 쌓는 기술) 상당히 발전시켜놓았는데, 성이라는 것이 보따리에 싸서 이사할 수도 없는 물건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동을 했다라….수도를….그것도 몇번이나

 

나중에 생각해보자…….잡상 같아도나중에 고증해보면 좋은 주제가 될지도….하지만 지금은 아냐아냐저거 고증하면 인간이 죽어나갈거야~~~



음하하..그래그래! 난 졸업논문 초고를 끝냈어! 이젠 쌩~~ 고생은 당분간 사양이야. 음하하하;;


변방사라고 부르고 민족사라고 읽는 수업을 듣다가 선생이 말한 내용이다. 정확한 고증은 수업인 관계로 되어있지는 않다. 하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라서 적어본다.


1)      전쟁

죽어라 싸운다. 끝까지 싸운다. 이유를 유목민족의 경제체계는 자체적인 생산으로만은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지만 어찌하였든 싸운다!

2)      수렵

유목민족에게 수렵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몽고족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나 중국땅을 정복하고도 일정 기간에는 초원으로 돌아가서 수렵을 하였다. 또한 수렵이라는 행위가 사냥꾼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군사연습의 성격과 같은 지라. 결국 전쟁을 위한 준비라고 수도 있을 것이다.

3)      쿠리타이

후계자 문제를 비롯한 몽고의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던 쿠리타이는 사실상 전쟁회의였다고 있다. 전쟁이라고 달려가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회의와 정책 결정을 해야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몽고에게 중요했던 것은 전쟁전쟁전쟁이었다는 말인데 말이다..... 조금은 억측인듯 싶지만, 재미있는 의견이기도 하지 않나?


물론 이렇게 말하면 몽고의 문화무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는 하다. 물론 그건 아니다. 단지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인류가 사는 방식중에 북방 유목민들의 생활이야 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문명이라고 한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소박함을 간직하고 어쩌고 라면서 말이다. 머....그렇게 볼수도 있다.  끙;; 날이 갈수록 양비론쪽으로 변해가는 자신이 싫다.ㅠㅠ


흐음..王小甫 왕샤오푸가 신장 위구르쪽에서 와서 그런가? 다민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일부 중국인들이 한족을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니다. 흐음...



 

정확하게 말하면, 일신교중에서 가장 발달한 형태의 종교라고 한다. 사실 현재에 거대 종교중에서 가장 늦게 출현한 것이 이슬람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일신교라는 강력한 종교적 요소로 신도들에게 막강한 종교적 안도감을 주면서도, 신의 사도가 여러명이라는 것으로 다양한 다른 종교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다.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자면, 일신교가 다신교보다 좋고, 더욱 종교적으로 발달한 형태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욱 막강한 종교적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과 같은 경우 이 안도감이 역겨워서-_-;; 싫어하기는 하지만, 종교의 역할이 사람들을 선도하고 옳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인도의 과정중에서 그 사람에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보호해 준다는 막강한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다신교도 지켜봐주고 있다는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신교의 신들은 전지전능하다고 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또 이슬람은 과거 일신교와는 다르게 여러명의 신의 사도를 주창하였다. 한국에도 코란 한글판이 나와있으니 한번 보는 것이 좋겠지만, 코란은 예수를 신의 사도로 인정하고 있다(물론 기독교도들이 보면 열받을 것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며, 곧 신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예수의 사후 300년이 지나서야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론이라는 점은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명의 사도들이 나타난다. 물론 이슬람이 마지막 자유를 압박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무하마드가 곧 최후의 신의 사도이며, 그가 최후의 사도이니 당연히 그 다음에는 어떠한 신의 사도도 없다는 점이다. -_-;;

하긴 기독교와 비교해보면 위의 장점은 분명해 진다
......흐음......길게 쓰면 누군가에게 혼나서 패스-_-;;



머..개인적으로는 종교를 역겹게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불교나 힌두교같은 다신교쪽에 더 마음이 가는 지라 일신교에 대해서 그리 좋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단 일신교중에서는 가장 자유롭다는 이슬람이라는 말은.....어느정도 긍정해 볼 만 한듯하다.


졸업논문으로 쓴 것이 솟대에 대해서다. 사실 솟대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패스하고, 중국의 고대에는 두가지 유형의 솟대가 있다. 한가지는 祭社라고 불리는, 유교의 전통아래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의 솟대와 개념이 유사한 솟대?!이다. 그리고 두가지는 외형적인 모습이 모두 나무에 대한 숭배여서 같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祭社는 땅에 대한 제사이고, 솟대는 하늘에 대한 제사이다. 그 본질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의 솟대와 개념이 유사한 솟대는 상나라때 유행했고(물론 한나라때 도교와 어울려서 변형된 모습으로 출현하지만 그건 너무 변형되서 패스) 祭社는 주나라때부터 그 사료나 유물들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본인이 사료를 모아서 결론을 낸 부분이다. 이 다음부터는 어디까지나 증거자료가 부족한 추론이다. 그러니 믿지 마라.그래서 논문에서도 적어 두지 않은 부분이다. 사실 논문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_-;;

 그런데 말이다. 이것을 잘 생각해보면, 상나라와 주나라의 중요한 풍습중에 하나였던 (샤머니즘적 숭배는 당시의 종교-정치 일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두가지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역사의 변천으로 변했다고 하기에는 주나라때의 楚에서 발견되는 솟대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솟대의 분포범위는 잘 보면 일부 사학자 들이 주장하는 동이족과 화하족의 구분선과도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새를 숭배하고 하늘을 숭배한 동이족이라는 문화와 땅을 숭배하고 뱀을 숭배했던 화하족을 솟대의 시대와 장소적 분포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상나라는 동이족의 주축이 되어서 세운 것이고, 주나라는 화하족이 주축이되어서 세워졌으면, 그 이후로 계속 화하족의 문화가 중국 문화의 주축으로서 내려왔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된다면 되고 안된다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우린 주의해야된다. 동이족은 한국에서는 자신의 조상으로 치지만, 중국에서도 자신의 역사에 포함시킨다. 중국의 역사관에서는 분명히 중국의 땅 위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 역사관에서는 분명한 진실이다.

우리는 동이족이 니꺼니 내꺼니라는 말보다는, 중국이 진정한 다민족 국가였음을 인식시키고, 현재 화하족 중심사상을 누그러트리는 것이 중국의 유교제국주의로 가지 않는 길임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상주변혁설은 당연하게 성립이 된다. 아예 완전히 다른 민족이 정치을 잡았는데 달라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국가는 아직 지방에 대한 통치력이 약하였고, 동이족이 중심이 되어서 세워졌던 국가에서는 이렇게 솟대를 숭배하였고,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 祭社와 솟대가 동시에 나온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솟대가 과연 동이족만의 전유물일까? 그렇게 말하기 힘들다. 이것은 북방민족계열 뿐만 아니라 남방민족 계열에서도 많이 나왔으니까 말이다. 이번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본인 미치지 않았다. 본과 졸업논문에서 아시아 전체의 솟대 사상을 다루는 정신 나간 짓을 하기 싫다. 어디까지나 한국 중국 북아시아로만 한정했다-_-) 남방쪽의 소수민족에게서도 솟대 사상이 발견된다. 이 남방민족은 무엇인가?

어떤 학자의 말대로, 동이족 중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한 갈래인가? 아니면 남방민족에게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인가? 고증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솟대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솟대의 사상은 우주나무와 신성한 새의 생각이 모여서 만들어졌고, 그것은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해서 퍼져나갔다기 보다는, 각각의 민족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편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현재의 남방민족이 동이족중에서 남쪽으로 온 갈래라면, 솟대는 한군데에서 발생해서 퍼져나갔다는 학설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상 이번 논문에 못 쓴 부분에 대한 중얼중얼이었다. 저것으로 석사논문을 쓰면 재미는 있겠으나, 안 할거다-_-;; 이번에 한번 하고 알았다. 짜증나서 죽는줄 알았다. 안해! 최소한 솟대는 안해!! 안해;;;;
 


皇宫里是为了维护皇帝的权威和后宫的秩序才产生了所谓的性生活管理,但是这种管理是相当严苛的……

  皇宫内性生活的重要管理者之一:太监

  虽然从表面上看,皇帝的性生活决定于皇帝的意志,但是在名牌放置、准备工作、运送妃子、掌握时间、档案记录等具体环节上都可以钻空子,做手脚,妃子们如果得罪了敬事房太监就可能倒大霉,所以她们对敬事房太监都很巴结,常给太监们一些好处。


  皇宫内性生活的重要管理者之二:女官

  在内廷和宦官并列的是女官,她们的声势从表面上看虽然不如宦官,但是即使是身兼重职的宦官如果不和女官合作,也无法充分发挥其影响力,有许多坏事,都是女官和宦官勾结而形成的。

  明朝的公主下嫁后,就迁居宫内的十王府。

  这时,皇帝就会派给她一个贴身服侍的老女官,这个老女官被称为“管家婆”,对许多事有相当大的管理权。驸马如蒙公主召见,从皇城宅第前往宫中去叙夫妻之情时,面临的最大难关就是这个“管家婆”,必须重金贿赂。因为如果没有“管家婆”的传达,驸马就无法见到公主。

  这样,就出现了不少不幸事件。明神宗胞妹的丈夫就是因为对女官贿赂得不够,所以无法会见公主,最后患神 经衰弱症去世,公主也只好守寡一辈子。还有一次,神宗最宠爱的一位公主召驸马入宫,当时老女官正和她相爱的宦官饮酒作乐,驸马未经她的传达,就擅自入宫。 老女官知此事后,非常生气,便趁着醉意把驸马赶出宫外,又把公主狠狠地责骂了一顿。公主气愤难平,打算第二天去禀告母后,但想不到老女官已“恶人先告 状”,公主反被母后痛斥。被赶出宫的驸马想入朝替自己申辩时,那个和老女官相好的宦官和他的一伙人已守候在门外,把驸马打得浑身是血。这件事闹大了,最 后,驸马被冠以无礼之名,送入大学进修,并且罚他三个月内不准进入宫廷;老女官则转任他职;那个宦官却没有受到丝毫责备。从这件事也可以看到宦官与女官们 跋扈到了何种地步。

  皇宫内性生活的重要管理者之三:奶婆

  关于选养奶婆,明朝时北京东安门外稍北有礼仪房,是选养奶口以候内廷宣召之所,俗称“奶子府”,有提督司礼监太监管其事。每季选奶口40名,蓄养于内,称为“坐季奶口”;另选80名,仅注其籍,仍令其住在自己家中,称为“点卯奶口”。

  “点卯奶口”是候补人员,如果“坐季奶口”不够用了,即以“点卯奶口”补充。选奶口时,北京附近的宛平、大兴二县及各衙门广求军民家有夫之妇,年15以上、20以下,夫男俱全,形容端正,第三胎生男女仅3月者,作为候选人。

  奶婆对宫廷事务当然都有一定的作用,有作用就可能有一定的权势与影响。而且奶婆的作用则是较长期的,她 一旦哺皇子皇孙乳,皇子皇孙就会记她一辈子,所以奶婆一旦入宫,无有出理。如果奶婆所哺的皇子皇孙登基即位, 那么这个奶婆更是身价百倍,还会受爵册封。 例如,东汉安帝封奶妈王圣为“野王君”;顺帝封奶妈宋氏为“山阳君”;灵帝封奶妈赵娆为“平氏君”;唐中宗封奶妈干氏为“平恩郡夫人”,封奶妈高氏为“修 国夫人”;睿宗封其子(玄宗)的奶妈蒋氏为“吴国夫人”,封莫氏为“燕国夫人”;元朝时,世祖封皇子燕王的奶妈赵氏为“豳国夫人”,封奶妈的丈夫巩性禄为 “性育公”;成宗封奶妈的丈夫为“寿国公”;仁宗封奶妈的丈夫杨性荣为“云国公”;英宗封奶妈忽秃台为“定襄郡夫人”,封她的丈夫阿来为“定襄郡王”;明 朝时,成祖封奶妈冯氏为“保重贤顺夫人”;等等。

  皇帝所以待奶婆好,不仅由于从小吃她的乳汁而有感情,而且是为了符合封建礼教的规范需要,因为吃过奶婆 的奶,所以也要有一点孝敬之心。奶婆年纪轻轻就别夫别子而入宫,甚至终身不能再出,这实在是非常残忍的事;她们年纪轻(15岁至20岁),已有过性经验但 入宫后只能永远孤眠独宿,杜绝性生活,这也是十分残忍的事。但是,有的奶婆又会因所哺之皇子皇孙登基而权势倾人,能对皇帝施加种种影响,所以在中国历史上 奶婆在宫廷中与人私通、结党作乱的也非个别。例如汉安帝时,其乳母王圣母女和宦官江京、李闰等勾结在一起,诽谤太后,打击太后的家族,煽动内外,任性而 为,曾逼得宰相杨震服毒自杀,最后把太子也废了。

  皇宫内性生活的重要管理者之四:稳婆

  稳婆就是收生婆,平时也常叫“老娘”,按照蒋一葵《长安客话》卷二的说法,宫廷所需的稳婆都要在民间收 生婆里预选,然后把预选出来的稳婆的名字登记在册,以备需要时选用。被选进内廷的稳婆除了接生以及选奶口(乳娘)时看“乳汁厚薄,隐疾有无”之外,还在宫 廷 选美时起着重要作用,不仅要参预辨别妍媸,而且要对女性作裸体检查,如皮肤、乳房、阴部等,在贞节观十分盛行的明代,还要检查选入宫内的女子是否处 女。

  《汉杂事秘辛》中所讲的梁莹选后以前被吴姰裸体检查的事,则是一个比较著名的例子。

  稳婆也对政局和后宫权力产生一定的影响,但是其作用主要在选女入宫时和接生时,这些时机都比较短暂,事情过去了,一切就过去了。

  当时除宫廷外,官府也少不了稳婆,如办案时验女尸,常由稳婆出场以检验私处;对于女子遭人强奸,也总由稳婆进行探验。

  皇宫内性生活的重要管理者之五:医婆

  医婆就是卖药治病的女子。到了明代,由于贞操观念的影响,妇女有病不愿请男医治,如必要时,也只能隔帐 搭脉,观察病情,在这种情况下,医婆就应运而生。卖药治病本来无可非议,但在民间的医婆走家串巷,播弄是非;有时卖假药,卖春药,替一些妇女打胎;有的还 以揭露阴私相要挟而敲诈勒索。

  医婆被选入宫中的,一般素质较高,工作谨严,但以医术帮助有的嫔妃宫女治疗不可告人的隐疾,帮助她们压抑性欲、激发性欲以致打胎的也有。从历史上还没有发现医婆有什么参预政治、酿成大乱的事情。



http://dig.koogao.com/SrcShow.asp?Src_ID=341




자료정리용 포스트입니다. 신경 쓰지 마셔요. 우후~ -_-

솟대란 장대나 돌기둥 위에,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앉힌 신앙대상물을 일컫는다. 이런 솟대는 마을 사람들이 동계를 지낼 때에 마을의 안녕과 수호, 그리고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솟대는 마을 입구에 홀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장승, 선돌, 탑(돌무덤), 신목 등과 함께 어울려서, 마을의 하위신으로 모셔진다. 특히 장승 옆에 세워져, 장승과 함께 위함을 받는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라고 일컬어지며,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라고도 부른다. 그밖에 기러기, 갈매기 , 따오기, 까치등으로 관념되지만, 철새류의 물새인 오리가 솟대의 새로서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새는 한 마리에서 세 마리까지 안히는 것이 가장 흔하지만, 드물게는 다섯 마리도 앉힌다. 현재는 솟대를 구성하는 두요소, 곧 장대와 새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는 마을은 거의 없어서, 원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듯이 보인다. 그러나 솟대는 아마도 북아시아 샤마니즘의 문화권안에서, 세계나무와 물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매우 오랜 역사성을 갖는 신앙대상물로 생각된다.

이러한 솟대가, 안정된 농경마을을 사회구성의 기초단위로 했던 한국의 역사속에서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맡고, 농사의 성공을 보장하는 마을신의 하나로 변모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솟대는 풍수지리사상과 과거 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만연되어감에 따라서, 행주형 지세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화주대로도 분화 발전되어 갔던 것 같다.

물론 한국에는 솟대말고도, 여러 신앙상의 목적으로 높은 장대를 세우는 이른바 입간 민속이 있었왔다. 곧 서낭대, 영동대, 볏가리대 등이 있지만, 솟대와는 그 신아형태와 역할이 다른 것이다. 우선 솟대는 마을의 항구적인 신간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신앙생활과 긴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솟대를 구성하는 장대와 새가 쇠퇴되기는 했지만 일정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다른 입간 민속과 구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솟대는 전국적으로 매우 넓게 분포하며, 또한 북아시아 지역의 솟대신앙과도 그 관련성을 엿 볼 수 있어서, 솟대가 다만 근래의 한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아시아 샤마니즘 문화권의 공통된 문화요소로서 오랜 역사를 가졌음을 알 수 잇다. 특히 솟대는 문헌사료의 소도나 고고학 자료인 조식간두, 장대루겁등 과도 대비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일찌기 국사학이나 고고학의 학문적 관심을 끌기도 했었다.

솟대가 언제부터 농경 마을의 신으로 모셔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북아시아의 솟대와는 달리, 농경 문화에 적합한 여러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변모하면서, 농경 마을의 신앙체계에 통하보디어 갔던 것을 짐작할 뿐이다. 솟대의 장대에 왼새끼줄이나 묵선으로 용트림을 하거나, 장대 자체를 용트림한 나무나 물(시내나 개울)을 건넌 곳의 나무를 써서 우순풍조를 비는 것 등은 솟대와 농경문화와의 융합을 보여준다. 또한 철새류의 물새인 오리가 갖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이 마을의 사정과 관련한 간절한 의구에 따라서, 어떤 하나의 상징성만이 강조 확대되어 솟대의 기능 역시 다양해진 것으로 보인다. 곧 오리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다 준다거나 오리기가 물에서 놀며 잠수도 하는 새라서 홍수를 막기도 하고, 홍수속에서도 살아남게 한다든가, 또한 마을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되어 화마가 얼씬거리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등은, 오리가 갖는 종교적 상징성이 얼마나 다양하게 마을에 따라서 변이되는가에 대한 좋은 자료이다. 이밖에도 새의 모양이나 머리방향, 마리 수에 따라서도 많은 다양한 의미가 부여된다.

솟대는 원래 세계나무와 물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고대적인 신앙 대상물로 여겨진다. 바로 이점 때문에 솟대는 다른 마을의 신앙대상물보다 더욱 심한 소멸 현상을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 솟대가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존속되는 것은 위에서 본대로, 솟대를 구성하는 장대와 새가 모두 농경문화에 알맞고 다양하게 변형되어 농경 마을의 신앙체계에 통합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솟대는 마을 신앙의 한부분을 구성하는 신앙대상물이지만, 그것이 지니는 역사성과 북아시아 솟대 신앙과의 관련성, 전국적인 분포와 농경 문화와의 다양한 융합현상, 농경 마을에서의 액막이와 풍농의 기능, 급제 솟대와 행주형 지세의 솟대 문계, 새(특히 오리와 까마귀)신앙의 의미 등을 고려하면, 솟대의 전반적인 성격과 시능을 발기히는 일은 한국의 역사나 문화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국가 기구 동북아역사재단이 정식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더하면 상기 역사재단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연구회 주최 토론회에서 '요,금,원,청은 중국사가 아니며 여진,만주,한민족사로 보아야한다'는 주장이 큰 목소리로 불거져 나왔다는 것이다.

--- 다음 대한신보의 인문학의 위기중에서...
http://blog.daum.net/hanmauom/9966874

이 말은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말이다. 본인도 다음 대한신보의 글이 일정부분 옭다고 생각한다. 학자는 어디까지나 "참"으로 향하여야 한다. 설사 그 참이 지평선과 같이 다가가도 다가갈 수 없다 할지라도 끝까지 미친듯이 바보처럼 지평선으로 향해 가는 것이 학자라는 종자들이다.

본인도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고, 개인 사정으로 어릴때부터 한국 인문학의 꼬라지도 잘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에도 동감한다. (일자리 정말 없다. 후... )문제는 진정 참이라는 것을 추구하신다는 위의 글에서 위험한 편견과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이 말하는 동북공청, 간단히 말해서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라는 것은, 중국의 기본 역사관인 다민족 일국가설에 의하면 분명한 "참"이다. 참말로님도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현대 역사학은 각각의 역사관에 대해서 인정한다. 각각의 역사관 마다 각각의 이론과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고, 모든 역사는 이미 해석자(역사학자나 기타등등)의 역사관에 따라서 변하는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주류 역사관으로 보면, 곧 민족설으로 보면 고구려는 분명한 한국사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요,금,원,청은 중국사가 아니며 여진,만주,한민족사로 보아야한다'가 너무나 당연한 참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당한 문제가 된다. 그럼 중국은 자신의 역사관으로 한국의 역사는 "삼한, 신라, 백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다. 고조선! 고구려! 부여!는 한국사가 아니며 중국사! 중국사! 중국사!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해도 된다. 왜냐하면 똑같은 논리이기 때문이다.(이래서 현대 역사학이 서로의 역사관은 터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그 자체에만 터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냥 각각의 참을 인정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중국이 현재 전가의 보도인 역사관을 들이밀지 않고, 고구려는 속국이고 독립국이 아니었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중국의 역사관으로 보아도 분명한 오류이다. 그건 그렇게 대응하면 되는 문제일 뿐이다. 고구려가 독립국이어도 고구려가 중국사에 편입되는 것은 중국의 역사관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중국에 관한 것은 중국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금 이 글은 한국어로 적혀져 있고, 이 글을 보는 사람이 한국인이기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인이 동북동정에서 어떠한 애국심이나 적개심이 생긴다면,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세뇌교육, 반공사상을 통한 지도층에 대한 불만 완화와 수단 확보,이 아닌가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동북공정과 같은 문제가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하는 말이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자는 말이다. 살짝 빈정대면, 평소에 얼마나 역사책을 보시는지 궁금할 뿐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글의 쪼가리로 동북공정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문학의 위기다. 이 기회에 역사책 한권 사서 동북공정에 대해서 공부하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학자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고 성과일 것이며, 경제적인 지지도 될 것이다.

추천하는 책 : 김한규 <천하국가>
개인적으로 이 동북공정에 대해서 한국과 중국 양측의 생각을 중심을 잡고 조명하고 있다. 책이 좀 두꺼운데...만사 귀찮고 동북공정만 보실 분들은 서론부분만 읽어도 대략의 동북공정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실 수 있으리라 본다.

부언하면 김한규교수님의 <천하국가>의 역사공동체이론이 가장 나의 생각에 근접한 학설일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금의 동북지방에는 그 동안 하나의 역사적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던 (한국이나 중국과는 독립된) 역사 공동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석하면 양쪽에서 싸움이 날 일이 없겠지만...이 이론은 한국과 중국의 양측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그러니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공동체론 같은것은 먼 훗날의 꿈일 뿐이다. 예수님이 꿈꾸던 네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조차 멀어져 가는 마당에 세계 인류 모두의 역사는 개꿈일 뿐이겠지.


민족주의로 철저하게 뭉쳐서 외쳐대는 한국...
신중화주의로 달려가는 고집의 중국...



中国边疆地区史
A History of the Border Regions of China
北京大学历史系 王小甫
Wang Xiaofu, Peking University
  email:  xiaofuw@gmail.com, xiaofuw@pku.edu.cn


第一讲  中国历代疆域的变迁
第二讲  东北地区史
第三讲  北方地区史(上)  
第四讲  北方地区史(下)
第五讲  西北地区史(上,新疆)
第六讲  西北地区史(下,河西)
第七讲  西南地区史(上,西藏)
第八讲  西南地区史(下,云贵川边)
第九讲  华南地区史
第十讲  近代边疆民族问题


主要内容与演进线索:
第一讲 中国疆域变迁:“历史中国”——历代疆域变迁——近代失地

第二讲 东北:红山文化——肃慎靺鞨系:肃慎—挹娄—勿吉—靺鞨——渤海//——夫余濊貊系-高句丽//——【契丹-辽朝】——女真-金朝——【蒙古-元朝——明朝】——满族-清朝

第三、四讲 北方:匈奴突厥系/戎、东胡蒙古系/狄——匈奴——东胡:乌桓——鲜卑——柔然——突厥——唐朝(单于、安北都护)——〖回纥/回鹘〗——契丹-辽朝——蒙古-元朝——鞑靼-北元——俺答汗——清代蒙古(盟旗制度)

第五、六讲 西北-新疆:西域南北古今人群不同——汉唐之际南部绿洲:西域都护——西域长史——西戎校尉//北部草原:塞人——月氏——乌孙——高车——嚈哒//——西突厥——唐朝(安西、北庭都护)——吐蕃//回鹘——高昌回鹘//黑汗王朝——西辽——蒙古-察合台汗国——亦力把里——叶尔羌汗国——西蒙古(瓦剌/卫拉特/厄鲁特)-准噶尔汗国——清朝伊犁将军——新疆建省

第六讲 西北-河西:西羌——后秦——五凉——吐谷浑——党项-西夏——回回/东甘

第七讲 西南-西藏:吐蕃——古格/后弘期教派:宁玛、噶当、萨迦、噶举——蒙元时期:总制院/宣政院-萨迦法王——帕竹政权——格鲁派——明代:三大法王与五教王——活佛转世制度——明清之际蒙藏关系——五世达赖受册封——噶厦成立——驻藏大臣的权力和地位

第八讲 西南-云贵川边:西南夷——初郡——南中大姓和叟帅——两爨蛮(西爨白蛮、东爨乌蛮)——南诏——大理——元明清时代:建立行省,设置土司,改土归流

개인적으로 민족이라는 것은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구려 시대에 고구려인들은 백제인이나 신라인을 같은 민족으로 보았을까? 하지만 지금 한국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모두 한민족의 기원으로 놓고 서술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허구다.
민족은 없다. 나는 조선족이라고 특별히 우대하지도 비하하지도 않는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한국인을 특별히 우대하지도 비하하지도 않는다. 분류와 구별을 하면 말할 때 편하기 때문에 조선족이니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라고 말하지만, 더욱 많은 이른바 외국인들과 다른 민족들을 만날 때마다 민족이라는 포장지로 어떤 사람을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각 개인의 개별성이 너무나 눈에 띄는 것은 나만의 경험일까?



민족은 없다.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살아온 배경이 달라서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사람이나 똑같지 아니한가?!어차피 인간에게 다른 인간은 모두 타자일 뿐이다.


한민족이니, 양키니, 쪽발이니, 짱개니, 조선족이니 다 개나 줘버려라.
단지 사람일 뿐이다.







-- 한 조선족 분과 오해로 인하여 리플로 이야기 하던 중에 답답해서 이렇게 적어본다. 이 글은 되도록 표현의 수위를 낮추었으나, 또다시 무의미한 싸움의 시초가 될까 두렵기도 하다. 아니기를 소망할 수밖에...


역사과 3학년 이상 선택 필수

출석 필수!

레포트 1개 :중화민국이전 시기에 대한 자유 주제 레포트

기말 오픈북 : 난이도 낮음 (논술문제 3문제 중 2문제 선택)

  1. 중화민국시기의 대일외교
  2.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의 3차례 수교 열풍
  3.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의 미국과 소련관계 변화

主要

颜声毅《代中外交》旦大出版社:按主题来

《中国当代外交史(1949-2001)》中国青年出版社 :按

위의 두 책이면 끝! 특히 당대 중국외교는 사건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어서 특히 유용!

주요 사건 정리:

1949- 1955

抗美援朝

会议 – 印度支那停战协议

和平共

会议

1965-1972 "反帝比反修"和反对两

支持越老柬三人民的抗美救国战争

莫斯科"三月会议"

"珍宝岛事件"

文化大革命 –

尼克松访华 《上海公

1972-1979 三世界的分和美反

越南行自卫还击

正式止"中同盟"

1979-1989 都不盟的政策

售台武器事件

中美"八·一七公"

勃列日涅夫的塔什干讲话

戈尔巴夫的海讲话

戈尔巴访华

"中导条约"

"一国两制"

钓鱼岛问题

南沙群岛争

만든 이유는? -_-

글세다. 인터넷 되는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짜증나서!

이 넘의 몽고사 완전 짜증~!! 대체 몽고의 형성까지 100년 사이에 큰 전쟁만 몇 개냐!!

머-_- 처음부터 만만히 보았던 중국근현대외교사. 정말 딸랑 30분의 독서와 정리로 끝!

유목사회의 구조 - 서울대학교동양학강의총서 10
하자노프 (지은이) / 김호동 (옮긴이) / 지식 산업사

출간일 : 1990-03-01 | ISBN : 8942329446
양장본 | 484쪽 | 210*148mm (A5)
정   가 : 15,000원


1. 서론:유목, 그 신화의 문제점
2. 식량생산 경제의 독특한 형태로서의 유목
3. 유목의 기원
4. 유목민과 외부세계와의 관계의 사회적 전제조건들
5. 외부세계에 대한 유목민의 적응양식
6. 유목민과 국가
7. 외부세계와 유목민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인류학자가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연구방법을 빌려서 만든 인류학책이다. 많은 부분에서 사료의 인용과 적용의 흔적이 보이지만 그 기본적인 개념은 인류학에 기인하였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역대 유목에 대한 저작들을 망라하고 그 주요 논점들을 설명 비교 해 주어서 유목에 대한 입문서로는 최고라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에반스 프릿차드가 말했다 싶이. "결국 인류학은 역사학이 되느냐 아니면 무가 되느냐는 선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명언이 새삼 생각이 난다. 인류학은 종합적인 학문이라고 스스로 자랑하지만 그 속에는 중심이 되는 연구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숨겨져 있다. 현지 조사라는 것 자체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그럼 역사학자는 현지 조사를 아예 안한다는 말인가?!

또한 역사학-인류학-민속학-사회학은 각기 너무나 중첩되는 부분들이 많다. 그 뿌리가 과거에 대한 분석를 통한 미래 제시라는 점이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는 듯하다. 이미 이 학문은 서로간의 연구 대상, 연구 방법, 연구 목표등에서 매우 유사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간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서로 모두 흡수하였다. 이제 앞으로 이 학문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스스로의 자리를 찾을 것인가는......나와는 상관없다. ㅋㅋㅋ -_-;;

그리고 이 책의 번역자인 김호동씨는 머랄까...한국 중앙아시아학에서 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나 유목사회에 대한 책을 구하고 싶다면 다 필요 없이 김호동이라고만 검색을 하여도 양질의 책들이 있다. 대단한 분+_+;;





책에 밑줄긋기

과거는 낯선 나라다.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1985)

데이비드 로웬덜 지음
김종원, 한명숙 옮김 
개마고원

출간일 : 2006-06-20 | ISBN : 8957690441
양장본 | 877쪽 | 223*152mm (A5신)

정   가 : 38,000원





역사는 더이상 진실이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해석일 뿐이다.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면 공부 할수록 마치 "오언절구"와 같이 일정한 규격속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는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해 질 수도 없다. 마치 지금의 우리 현재도 완전히 구현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로웬덜은 완벽한 역사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런것은 환상이며 오만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되도록 완벽한 역사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제시한다. 신이 죽고, 더이상 절대적인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시대에 영원히 닿지 않을 지평선을 향해서 나아가나는 것이 옮은 것일까?

또한 일반인이 역사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역사에 대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인 존재가치를 너무나 귀중하게 생각하는 로웬덜 자신도 말했던 역사학의 치명적인 단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야 된다는 말인가? 역사가 역사 이상의 것이 되었을 때, 민중을 선동하는 도구가 될 뿐인데 말이다.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서 접근을 금지하고 있는 듯한 책. 그러나 역사학도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우리의 애국적인 국민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환단고기를 즐겨 보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으나, 역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이론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다시 한번 환단고기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진실이라는것은 있긴 있는건가?




책에 밑줄 긋기

우리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라. 중국이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던 장천산이라고 부르던 우리가 간섭하면 그 순간 내정 간섭이다. 모르겠는가? 우리에게는 단지 상징적인 영산일지는 모르겠지만, 실제적인 영토인가? 백두산이? 언제부터?

항의한다고 항의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열내고 화내고 하는 사람들은 머라고 할까? 자신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세상이 너희 애국자 맘대로 돌아가면 참 좋겠지? ^^

여기까지 화내는 애국자들은 그럴수도 있다. 후...근데 이것을 가지고 박통같은 꼴통 독재 정권이 다시 들어서야된다고 찌질거리는 바보는 먼가? 그 수많은 희생를 치루어서 겨우 민주화 이루어놓고 또 그딴 짓 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은 언제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우리를 지.휘.해야된다는 조선시대적인 발상과 군대말초주의적 발상를 혼합한 것인가?


제발 뻇기고 안 뻇기고 그딴 소리 하지마라. 민족감정에 사로 잡히지 마라.
백두산을 무엇인가 성스럽게 생각하니 그따구 생각을 하는 것이다.
백두산은 백두산이다. 단지 산일 뿐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남에게 강요하지마라.
보고 듣는 사람 짜증난다.


백두산은 중국거다. 중국이 멀 하든지 한국이 말한 권리는 없다.
직접 해결책을 생각해봐라. 방법이 있나?!  잘해봐야 권고정도일뿐이다.
백두산은 우리것이 아니다. 굳이 백두산을 가지고 싶다면...

너의 마음 속의 백두산을 영원히 간직해라. 가보지도 못한 백두산을 숭배하지 말고 말이다.


요즘 또 언론에서 중국이 역사 왜곡을 한다고 난리법썩을 떨고 있고, 여론에 편승하여 자신이 애국자임을 만방에 알리려는 열혈 애국 네티즌들은 더욱더 열기를 내뿜고 있는 와중에 한마디 해야겠다. 역사 왜곡이라는 말은 지금 현재 중국에게는 안 통한다. 역사 왜곡이 아니기 떄문이다.

본인 북경대학교 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두면 "짱꺠 새끼들한테 배웠다고 옹호하냐? 세뇌됐군"따구의 소리가 나올거 같지만 할건 확실히 해야되니까 언급해 둔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본인 민족주의적 역사관에 대해서 대단이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 자! 왜 역사 왜곡이 아닌지 썰을 풀어 보겠다. 재수없는 전문 용어 썡깐다.-_-


1. 역사관이 다른거다.

한국의 역사관은 무엇인지 아는가? 민족주의적 역사관이다. 지금 살고 있는 "한민족"이라고 불리우는 우리들의 조상이 세운 나라라고 여겨지는 것을 싹다 자신의 역사로 생각한다. 그래서 고조선, 고구려, 신라, 가야, 백제, 발해등등으로 내려오는 나라의 역사를 한국사라로 하고, 은주,춘추전국,진, 한으로 내려오는 역사를 중국역사로 정의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들 이해가 되리라 본다.

근데 중국은 아니다. 중국은 지금 현재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지들 중국의 역사로 본다. 예를 들어서 원나라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몽고족이 세운 나라지만, 중국의 역사관에서는 중국의 땅 위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중국의 역사다. 얼핏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틀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역사학에서 이거 틀린거 아니다-_- 정치 사회적인거 제외하고 엄격하게 역사 학문적인것으로만 따지면, 한국처럼 민족주의 역사관을 채택할 수 있는것이고, 중국처럼 지역주의 역사관을 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것도 맞고 틀린 것이 아니다. 같고 다를 뿐이다.

한국이 중국의 행위를 역사 왜곡이라고 한다면, 중국도 똑같이 역사 왜곡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둘다 학문의 영역을 떠나서 정치 외교의 구렁텅이에서 찌질대는 것이다.

정리. 중국 역사관으로 보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중국거 맞다.



2. 백두산이냐? 장백산이냐?
이것 가지고 열을 토해내는 사람들 때문에 굳이 뻔한 말을 한다. 중국정부가 백두산을 "천"두산이라고 부르던 "일"두산이라고 부르던 "장태백"산이라고 부르던 한국 정부가 뭐라고 할 권리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백두산은 북조선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경계선에 위치해서 양쪽 국가 모두에 속하는 영토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위의 사항에 해당됨이 전혀 없는 별계의 국가일 뿐이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백두산이라고 채택하느냐? 아니면 장백산이라고 채택하느냐다. 마치 "동해"로 읽으냐? "일본해"로 읽느냐와 같은 논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각 국어로 된 인터넷 싸이트를 만들어서 직접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홍보를 해라. 물론 대한민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면 가하고 말이다. 서명운동과 같은 것이 효과적일것이다.

웃기는 건, 그동안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에서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른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말을 했건만 그것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호응도 없다가 갑자기 난리를 치는 분들이여...후...좋다 난리쳐라! 하지만!!!

리플로 중국 욕하는 것이 압박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실제적인 해결책 두가지 다 말했고, 그것을 스스로 실행하라. 난 애국심이 거의 남지 않아서 못하겠다. 난 말뿐이고 싶지는 않기 떄문이다. 하지만 리플로만 열정적인 애국자분들은 안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잘해봐라.


3. 중국 학자와 한국 보도
한국 보도를 보다보면, 중국의 사학계가 합심을 해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웃기는 짜장짬뽕되겠다. 학자는 것들은 원래가 위에서 뭐라고 찌질되도 아닌건 아니라고 하는 것들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북경대만 봐도, 위에서 언급한 역사관의 차이로 인해서 발해를 중국사로 보는 선생님과 아닌 선생님이 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누가 틀리고 누가 맞고는 없다. 제발 착각하지 마라.

중국의 학자중에서도 역사관의 차이로 인하여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키지 않으려는 세력이 있다. 그러니까 생각없이 보도만 대충 보고서 중국 내부 사정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주전자의 뚜겅을 열어버리지 말자. 신문이나 뉴스도 상업적으로 돈 받아 먹으려고 어느정도 자극적으로 기사를 편집해서 100%공정성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라는거다. 후...



4. 민족주의...
물론 중국의 이런 역사적 노림수가 정치 외교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며 그에 대한 영향을 어떤 것일지는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내 현실이 싫다. 역사라는 학문은 왜 맨날 그 잘난 정치 외교에 이용당해 먹는가? 아니 마치 첩 처럼 따라다니면서 똥구녕을 핣아서 살아가는 건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잘난 민족주의다. 내 민족만 잘난거다. 그런 민족의 민족국가. 난 무섭다.

앞으로 인간은 얼마나 서로 죽이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시간이 올까?
지금의 민족주의가 없어지면 다음은 어떤 사상이 우리을 분리시킬까?
아니 작금의 민족주의가 없어지기나 할까? ....후....


중국의 역사왜곡은 없다. 만약 중국의 역사관을 부정한다면, 중국도 역시 한국의 역사관을 부정하면 끝나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관은 붕괴시킬 수 없는 건 아니다...후..하지만 학문적으로 존재한다면 둘 다 하나의 가치관이면 철학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존립의 근거는 모두가 있다. 단지 현실 정치와 외교가 끼어들기 시작하면 난리 부르스가 나기 시작하며, 역사라는 것을 역사 이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회상적인 사유와 감상으로 인하여 역사에 그 이상의 의의를 부여하고...후....더 이야기 하기도 싫다.

젠장할 역사학...정치 외교의 똥구녕이나 평생 핣아라...후...


문사철이라고 불리우는 문학, 역사,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다. 이것은 부정하는 놈은 병신이라고 해주마. 어떤 학문이든지 언어가 있어야되고, 그리고 학문의 발전이 시간에 따라서 축적되는 것이 역사이며, 학문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한 대갈통은 철학이 만든 거지. 왠만한 생각나는 학문에 역사든, 철학이든 붙여보면 돼. 하다 못해서 전혀 상관없을거 같은 과학의 기초 수학에도 수학의 역사라고 붙일 수 있고 말야.

그래서 툭하면 이 문사철이 불려나오는데, 특히 역사와 같은 경우 다난한 현대사의 한국에서는 많이도 초빙된다. 문제는 "역사는..."으로 시작되는 문장들이다. 그래. 나도 역사학도일뿐 역사학자라고 불리기에는 힘든 자질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최소한 심심하면 불려 나오는 역사를 볼 때마다, 나는 창녀랑 사랑하고 있다고 느껴진단 말이다.

....젠장 역사는 창녀가 아니라고!!


방금 다음만화의 달빛구두의 리플 싸움에서 본 구절이다.
플뢰브님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지 말라는거야말로 보편적 지식이고 너희 같이 흠만 찾는 녀석들 생각을 단편적 지식이라고 하는거다.

현재의관점에서 과거를 비추지말라? 붕우유신님
먼 역사학자들 자폭할소리를하는건지...
역사라는건 현재의관점에서 냉정하게 과거를 재조명해서 바람직한미래를 꾸며가기위해서 비쳐내는 거울인것을.

플뢰브님
과거를 비춰서 현재 상황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고치면 되는 것이지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인물을 비난하는건 안된다는거다.


둘이서 잘...논다...
참고로 둘다 맞으면서 둘다 틀렸다. 휴...


플뢰브라는 인간이 주장하는 역사관의 경우 지금도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 19세기 전에 유행하던 역사관이지. 역사를 당시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당시의 사람들의 눈을 통한 당시의 사람들의 역사를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꿈이었을 때가 있지. 물론 지금도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말야. 하지만 꿈은 꿈인거야.

이 논리는 20세기에 들어와서 거센 반대의 물결에 빠지지. 그 반대의 물결을 대변하는 말이 "역사는 소설이다"라는 말이야. 어떠한 역사든지 그 역사책이 쓰여질 당시의 사람들의 눈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거지. 이건 딱 봐도 붕우유신의 생각이지? 아! 근데 혼동하지 말라고 하는 건데, 역사는 소설이기는 한데, 엄격한 규격을 맞추어야만 하는 소실이지. 그래서 역사학자와 같은 그 규격과 규칙에 훈련받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말야.

이렇게 말하니까 둘 다 맞는 말인거 같지? 그럼 내가 왜 틀렸다고 했을까?

탈모더니즘 어쩌구 후현대주의 저쩌구 라고 시작하면 무지 재미없을거 같고, 그냥 간단히 요즘의 주류를 말하자면, "니 좆대로 해라" 아! 농담 아냐;;; 지금 현대인의 눈으로 과거의 역사를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과거인의 입장에서 보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는 거야. 한마디로 니 꼴리는데로-_-;; 하면 되는거지. 물론 역사라는 학문이 요구하는 규격과 규칙을 지키면서 말이야.

그런 입장에서 보면, 저 둘의 치명적인 것은 상대 입장을 생각 안한다는거지. 둘 다 다른 방식을 아예 인정을 안하는데, 그건 웃기는 짬뽕이라고 해줄게. 둘다 맞는 말이야.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면 내가 틀렸다고 하면, 역사가지고 지랄한다는 말은 안하겠지.

무엇보다 역사에 대해서 어느정도 공부하고 역사 어쩌고 했으면 좋겠어. 역사 공부라는거 역사 지식에 대해서 공부하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최소한의 역사에 대한 철학을 공부하라는 소리야. 역사관이라고 나름대로 폼나는 용어도 있고 말야.



이건 딴 소리이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현대인의 눈으로 과거의 역사를 보는 입장이야. 왜냐고? 안 그러면 역사가 별로 재미 없어지더라고... 물론 당시대의 눈으로 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지. 그리고 그 사람은 그렇게 역사를 볼 뿐이야.

그리고 이건 또 딴 이야기인데...
중국의 경우 일국가다민족역사이론 어쩌고 하는 무지 긴 역사의 눈이 주류거든?! 여기서 한국하고 고구려문제로 싸우는거야. 저 이론 무지 간단하게 하면, 지금 현재 중국의 영토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거야. 솔직히 지랄하네-_- 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것도 하나의 역사를 보는 눈이고, 이 이론에 따라서 논리전개가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할 말 없는거야. 다시 말해서 고구려사 가지고 열받아 해봤자. 재야역사학자들이 혹은 아마츄어역사학자들이 삽질을 해도 주류역사학계에서 쌩~~ 깔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지.

저거 반박할려면 철학을 동원해야되는 거고, 사실 반박이라는게 불가능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세상에 진리는 하나뿐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진리는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 있지. 그것에 반박을 한다라...... 다시 말해서 기독교 다니는 사람한테 하나님은 없다라고 반박하는거랑 별로 다를것이 없다는 말이야. 그 사람이 있다고 하면 반박이고 논리고 다 필요없는 걸;;;

그러니까 특히 중국에 유학와 있는 한국사람들이여. 고만 좀 싸워.
아니. 싸울려면 최소한 상대방의 논리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그 논리자체를 공격을 하던가, 아니면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고 한국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면서 한국인의 입장을 설명하던가. 중국애들보고 틀렸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는걸...--;;;


아함....계속되는 잡담. 그리고 멍함.
휴...공부해야되는데 공부하기도 싫다.

....반말 찍찍....하하하....이제 내 블로그는 낙서장이 되는 거다.-0-;;
이 글은 칼리안님의 어째서 사학史學이 사회과학이 아닌 문과대학 소속이지? 라는 글을 읽고 답글을 달다가 너무 길어져서 트랙백으로 대신합니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전 지금 중국땅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선후가 반대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역사학이 사회학의 닮은 꼴이기 보다는 사회학이 역사학의 닮은 꼴이라고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론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사철
이른바 "문사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각 문학, 사학, 철학을 나타내며, 위의 3가지 학문의 문과의 기본이며 기초라는 것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며, 언어자체가 없으면 어떠한 학문도 존재할 수 없음으로 기초중에 기초이겠군요. 어떠한 학문도 발전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경과가 되죠. 그럼 시간의 경과와 함께, 현재가 과거가 되며, 모든 과거는 역사학의 대상입니다. 역사학이 없으면 학문은 발생한 상태로 고정이 되겠지요. 그리고 모든 인간들의 생각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우리는 철학이 없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으면 단지 생존을 할 뿐,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역사학이 문과에 있는 이유도 위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문과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응용문과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범주에 넣는 다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입니다. 다시 말해서 분류체계가 어지러워집니다.

님이 제시하신 국어국문학이나 중어중문학과 같이 말씀하시면 마치 역사와 국어 국문학이 따로 놀고 있는 듯 하지만, 한국어를 연구해야 한국 근대사를 알 수 있고, 중어중문학을 해야 중국 역사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 역사를 알아야 중어중문학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또 철학이 여기에 추가됩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회학이 없어도 중어중문학을 연구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사회학에서 방법론을 빌려올 수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2. 사회학은 없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사회학-인류학-민속학-문화지리학등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대체 역사학과 위의 사회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간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과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 같은 고민들 대충 2년넘게 했군요. 그러던 중 폴벤느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동안 고민하던 많은 문제가 풀려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사회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1. 사회학에는 대상이 없다.
모든 과학은 대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회학의 대상은 무엇인가요? 사회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나 역사의 한 단면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나름대로의 특수한 설명을 요구하는 무수한 사건들이 존재하는데 그 요소들의 집합의 설명을 과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표면 위에서 임의의 지역내에 매순간 일어나는 모든 장르의 엄청나게 많은 물리-화학적 사실들의 총체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2. 사회학은 여러 학문의 집대성?! 혹은 쓰래기 처리장...
사회학에서는 온갖 학문을 이용합니다. 경제, 역사, 문학, 심리학등등.. 그 방법론의 확장에는 한표를 던져주고 싶지만, 사회학만의 연구 방법은 무엇인가요? 이런 온갖 학문의 방법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말장난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은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이 정도로 하죠. 괜히 사회학과 친구한테 뭇매를 맞겠습니다.-0-;;



3. 중국에서는 역사학은 사회과학입니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역사학을 사회과학이라고 말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공산주의이고,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를 사회학에서는 사회학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마르크스는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등등.. 수많은 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또한 마르크스는 역사학에 대해서 그 당시 과학적인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했으며, 그 영향으로 지금 중국에서는 역사학이 사회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문과계열로 포함되어있습니다.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일뿐, 기본 속성은 문과계열로 만들어 놓았죠.



결론적으로 역사학은 문과계열임이 너무나 당연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문과계열이니, 응용문과라느니, 사회과학이라니, 그런 구분자체가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때문에 이런 구분이 생겼을 뿐. 그것에 얾매이는 것은 별로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문 위원장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한 대학생의 질문에 "중국에 여러 번 가서 고위층과도 협의했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영토주권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간도 등을) 중국 영토로 인정하고, 조선족을 중국인으로 취급해 준다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국제적 학자들이 고증을 통해 고구려사가 '코리아'의 역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작업을 3~5년 정도 하면 중국에서 어떤 교과서 왜곡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중앙일보



1. 역사는 소설이다.
본인도 역사를 배워가면 배워갈 수록,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라는 말보다는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점점 가슴에 와 닿는다. 역사라는 자체가 이용의 소지가 많다. 특히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기에 딱 좋은 것이 역사다.

더 적으면 너무 냉소적이 될거 같다. 이 정도 적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리라 생각된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2. 간도를 중국영토로 왜 인정해야돼?
그거 인정해 버리지 마라. 끝까지 개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한국이 힘이 강해졌을 때, 그것을 핑계로 간도를 수.복.할 수 있다. 만약 간도가 원래 우리땅이 아니라면 수복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도라는 땅자체가 원래는 조선의 것이었건만, 일본의 강제침탈기에 중국에 대한 침략을 더 원활히 할려고 철도를 깔다가 "간도"를 중국에게 넘겨준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직도 국제법의 기준으로 영토분쟁이 충분히 가능한 지역이다. 그래서 중국도 저렇게 삽질해대고 있는 것이다. 자기 땅 뺏길까봐 말이다. 물론 현재 한국의 힘으로는 간도를 수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그 근거는 남겨두고 외교적인 카드로 주구장창 이용해 먹어야 한다.


3. 조선인은 중국인 맞어.
중국인은 중국인이다. 그들의 국적은 분명히 중국인이다. 하지만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들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감정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어와 중국말을 동시에 구사하는 훌륭한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마냥 중국인이라고 멸시하고 무시하지 말자.

한국이 누가 민족주의라고 하는가? 한국은 같은 민족을 정말 잘도 무시한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교포들은 미국에 있는 잘.난. 교포들이다. 이제 그 동포법도 슬슬 계정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마음속으로 조국이라고, 고향이라고 생각해왔던 조선적뿐만 아니라 재일동포들의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현실적으로도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왜 그들을 무시하려고 하는가?

이렇게 조선족을 중국인이라고 인정해달라고 생ㅤㄸㅒㅤ를 쓰는 중국은 어떤지 아시는가? 그네들은 "화교!""화교!" 하면서 무지막지하게 대접해 준다. 왜냐고? 동남아시아의 경제는 화교들의 손으로 움직인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 경제를 꽉 잡고 있을 뿐더러, 미국에서도 나름대로 먹어준다. 중국이 왜 이런 금덩이같은 화교들을 놓치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놓치고 있다. 동포법 좀 제대로 만들어봐라. 제발......



4. 왜곡을 못할까?

개인적인 예상이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아무리 비난이 쏟아져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끝까지 교과서 왜곡을 할 것이다. 중국을 맹물로 봐서는 안된다. 이 나라만큼 "역사 연구"가 "국가의 조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나라도 드물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소수의 학자적 양심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전체적인 대세는 국가적 프로젝트로서의 역사 연구이다.

솔직히 역사라는거 별로 쓸모가 없다. 본인 역시 역사를 하고 있지만, 역사라는 곳이 활용될 만한 곳이 그리 많지가 않아. 국제정치학이나 경제학같은것은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역사학은 마땅한 곳이 없다. 그런데 나라에서 먹고 살수 있게 해주는데 좋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3~5년동안 한국 정부에서 한국의 역사학자들에게 충분한 투자를 해 줄것이냐가 관건이다. 역사라는 것이 당장 이익이 나오지가 않는 거라서 무시받는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해서 정부가 계속적인 투자를 해줄 수 있느냐?!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공계가 무너진다고 하는데, 순수학문쪽은 더욱 심하다. 철학이나 역사 한다면 아직도 뭐 해먹고 살래? 라는 문제가 절실하게 현실로 다가온다.


5.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본인이야. 중국에서 그것도 역사학과에서 계속 있으니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도 맨날 스스로 욕하는 냄비근성을 뒤로하고 꾸준히 고구려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정치적인 고구려사 문제를 한국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큰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중국 사학계에서 비판하는 것중에, 한국에서는 역사는 국민들의 참여로 인하여 학문적이지 않고 너무 대중적으로 왜곡되어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을 돌려 생각하면 중국학자들 부러운 거다. 한국 국민들이 역사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것에 대해서 응원해 주는 것이 말이다. 계속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지 않겠는가? ^^::

생각해 보니, 내 블로그 계속 읽어달라는 소리 같다......뭐...그런거야~~-0-;;;
2003-2004学年第二学期《世界中古史》期末考试
考试形式:闭卷 命题人:黄春高
姓名: 学号: 班级:

一 名词解释(任选5,每个6分,共计30分)

赎罪券 《神曲》 贞德 蒂玛尔 《大宪章》
什叶派 黑死病


二 简答题(任选2,每题10分,共计20分)

1、简述罗斯国家的形成
2、简述日本幕府政治的形成
3、简述中古西欧大学的基本特征


三 论述题(任选2,每题25分,共计50分)

1、试论述西农奴制度。
2、试论述宗教改革对西欧各国政治的影响。
3、试论述阿拉伯帝国的解体。


세계중고사 기말고사시험문제였습니다. 예상한것이 나와서 행복하게 풀었던?! 기억이 있군요^^::
《世界中古史》期中考试试卷

姓名 学号 分数


一 名词解释(30分)

毁坏圣像运动 《末日审判书》
查理曼《古兰经》大化革新

二 简答题(20分)
1、封君封臣制度对西欧社会的影响
2、主教任职权之争

三 论述题(50分)
1、试论述中世纪早期日耳曼诸王国的基督教教化。
2、试论述法国卡佩王朝王权的发展。


조금 많이 어이없는 문제가 나왔던 중간고사였습니다. 어이없던 이유는 예상했던 문제가 하나도 안 나왔다는 것이죠. 그나마 이슬람과 기독교관련문제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거지같은 성적이었을듯...
2003~2004学年第二学期历史学系“中国古代史(下)”期末试卷

命题人:邓小南 张帆 分数(满分60分):
姓名: 学号:


一 名词解(任选6题,每题5分):
1.大索貌阅 2.律令格式 3.四时捺钵 4.濂洛关闽
5.诸色户计6.皇明祖训7.松山之战8.经营地主

二、问答题(每题15分):
1、请简要说明唐宋时期社会经济的发展有哪些主要表现。
2、试比较元朝和清朝民族政策的异同。


과락을 각오하고 시험에 임하였는데 예상외로 쉬워서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건 아니지만) 행복했던 기말고사였습니다.
비파형 동검이라고 하면 학교 다닐때 모두가 배웠던 것.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것. 그래서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중국고대장식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레포트 주제로 선택할 수 있었던 지금 현재 중국땅에 있는 장소에서도 발견되는 유물.

지금 현재 목요일까지 제출해야되는 레포트로 삽질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적는 것이면 1시간도 안 걸릴 내용이건만 중국어 타자도 느리고 내용도 조심해야될 것들이 예상외로 많아서,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한국의 중국속국문제까지 거론될 이야기여서 귀찮음에도 대충 안 적어가며 온갖 자료를 다 뒤지고 있습니다.

한국쪽에서는 시베리아의 북방형동검이나 중국내륙지방의 중국식동검과는 검몸체(검신)와 손잡이(검병)가 분리주조되었다에서 출발해서 다른 문명권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는데, 중국쪽에서는 여기까지는 인정하지만 결국 중화문화권으로 흡수되었다는 논리가 대다수여서 문제가 된다.


능력상의 한계도 있거니와 레포트 주제가 그것도 아니므로 저것까지 고증할 필요야 없겠지.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아도 비파형동검은 분명히 화사족의 내륙문명과 시베리아의 유목문명의 양쪽 영향을 모두 받았고 모든 문화와 기술이 그렇듯이 그것이 다시 내륙문명과 유목문명으로 재유입되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알수 없는 기분 나쁨은 이런 모든 현상의 끝맺음을 중화민족의 위대함으로 만들어 버릴려는 시도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쪽은 괜찮느냐? 고조선의 영역문제를 말하는 것은 좋은데 최강의 국가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군. 환상이다. 서로 교류되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모든 논리를 거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유아독존이라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됐다. 됐어. 쓸데 없는 생각들....


여기 시간으로 새벽 3시. 내일 수업이 없지만 적당히 하고 자야겠군요.




뱀다리 : 관련 자료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는 곳에 갔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더군.

"현재 한국인들은 왜 고구려만 자기 땅이라고 하냐? 다른 조상들도 있잖아. 원나라던지 청나라 같은 곳도 자기의 조상이라고 우겨서 중국이 그들의 속국이었다고 하지?"


상당히 비꼬는 말투였다. 그런데 저 사람이 아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모호하다. 원나라가 중국인가? 원나라의 전체 영토의 1/4만 중국영토였고 원나라는 송인들을 "남인"이라고 부르면서 천대했는데?? 청나라는 중국이었던가? 개네들은 만주족이지. 그렇게 따지면, 똑같이 만주에서 발원한 고구려를 조상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은 중국을 속국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 똑같은 논리로, 지금 중국인들이 꿈에 그리는 "당"나라와 같은 경우도 역시 북방이민족출신들의 후손들이라는 것이 정론이니 역시 한국은 중국을 지배했었구먼...(다 웃기는 헛소리들...)

그런데 본인은 역사공동체이론이 훨신 마음에 들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분류해야된다고나 할까? 김한규선생님은 이것을 가지고 요동쪽 역사를 아예 분리해서 중화와 한반도를 중계하는 제3의 역사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더 공감이 간다. 이것도 어떤 이는 "고구려가 한국 역사가 아니라니! 저런 xxx"라고 하겠지. 이런 이론도 있을 수 있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민족주의. 민족주의. 에휴~ 민족주의. 레포트 쓰다가 쓸데 없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냥 레포트나 써야지.

아~ 괜히 "한단고기"를 숭배하는 열혈파는 이 글을 안 보기를....
(피곤해지기 싫다. 레포트도 마져 써야되는데-_-;; )
이런 포스트는 사실 역사관련자만이 쓸모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많은 역사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을 위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분들중에서도 이런 싸이트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한국이 IT정보강국이라는 소리가 이런 싸이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싸이트] 역사 연구회 웹진



싸이트로 가자~~!!

한국역사연구회는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삼고, 이같은 목적의 달성을 위해 1.공동연구, 2.연구성과의 대중화, 3.회지 회보발간 및 대중을 위한 출판 보급활동, 4.기타 연구회의 목적에 맞는 사업 등을 전개하기로 정했다.

프레시안과 웹진의 글을 공유합니다. 프레시안에서도 읽은 수 있겠지만, 원래 홈피를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다른 설명은 안하겠습니다. 공개자료실을 가보면 숨겨진 보석들이 있답니다.^^


바로의 중얼중얼
역사관련의 웹진입니다. 한국사관련 내용으로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중국사쪽 자료를 구하지 못하니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역사도 모르면서 중국역사를 공부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알아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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