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논문으로 쓴 것이 솟대에 대해서다. 사실 솟대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패스하고, 중국의 고대에는 두가지 유형의 솟대가 있다. 한가지는 祭社라고 불리는, 유교의 전통아래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의 솟대와 개념이 유사한 솟대?!이다. 그리고 두가지는 외형적인 모습이 모두 나무에 대한 숭배여서 같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祭社는 땅에 대한 제사이고, 솟대는 하늘에 대한 제사이다. 그 본질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의 솟대와 개념이 유사한 솟대는 상나라때 유행했고(물론 한나라때 도교와 어울려서 변형된 모습으로 출현하지만 그건 너무 변형되서 패스) 祭社는 주나라때부터 그 사료나 유물들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본인이 사료를 모아서 결론을 낸 부분이다. 이 다음부터는 어디까지나 증거자료가 부족한 추론이다. 그러니 믿지 마라.그래서 논문에서도 적어 두지 않은 부분이다. 사실 논문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_-;;

 그런데 말이다. 이것을 잘 생각해보면, 상나라와 주나라의 중요한 풍습중에 하나였던 (샤머니즘적 숭배는 당시의 종교-정치 일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두가지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역사의 변천으로 변했다고 하기에는 주나라때의 楚에서 발견되는 솟대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솟대의 분포범위는 잘 보면 일부 사학자 들이 주장하는 동이족과 화하족의 구분선과도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새를 숭배하고 하늘을 숭배한 동이족이라는 문화와 땅을 숭배하고 뱀을 숭배했던 화하족을 솟대의 시대와 장소적 분포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상나라는 동이족의 주축이 되어서 세운 것이고, 주나라는 화하족이 주축이되어서 세워졌으면, 그 이후로 계속 화하족의 문화가 중국 문화의 주축으로서 내려왔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된다면 되고 안된다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우린 주의해야된다. 동이족은 한국에서는 자신의 조상으로 치지만, 중국에서도 자신의 역사에 포함시킨다. 중국의 역사관에서는 분명히 중국의 땅 위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 역사관에서는 분명한 진실이다.

우리는 동이족이 니꺼니 내꺼니라는 말보다는, 중국이 진정한 다민족 국가였음을 인식시키고, 현재 화하족 중심사상을 누그러트리는 것이 중국의 유교제국주의로 가지 않는 길임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상주변혁설은 당연하게 성립이 된다. 아예 완전히 다른 민족이 정치을 잡았는데 달라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국가는 아직 지방에 대한 통치력이 약하였고, 동이족이 중심이 되어서 세워졌던 국가에서는 이렇게 솟대를 숭배하였고,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 祭社와 솟대가 동시에 나온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솟대가 과연 동이족만의 전유물일까? 그렇게 말하기 힘들다. 이것은 북방민족계열 뿐만 아니라 남방민족 계열에서도 많이 나왔으니까 말이다. 이번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본인 미치지 않았다. 본과 졸업논문에서 아시아 전체의 솟대 사상을 다루는 정신 나간 짓을 하기 싫다. 어디까지나 한국 중국 북아시아로만 한정했다-_-) 남방쪽의 소수민족에게서도 솟대 사상이 발견된다. 이 남방민족은 무엇인가?

어떤 학자의 말대로, 동이족 중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한 갈래인가? 아니면 남방민족에게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인가? 고증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솟대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솟대의 사상은 우주나무와 신성한 새의 생각이 모여서 만들어졌고, 그것은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해서 퍼져나갔다기 보다는, 각각의 민족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편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현재의 남방민족이 동이족중에서 남쪽으로 온 갈래라면, 솟대는 한군데에서 발생해서 퍼져나갔다는 학설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상 이번 논문에 못 쓴 부분에 대한 중얼중얼이었다. 저것으로 석사논문을 쓰면 재미는 있겠으나, 안 할거다-_-;; 이번에 한번 하고 알았다. 짜증나서 죽는줄 알았다. 안해! 최소한 솟대는 안해!!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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