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참고서가 한국 출판시장을 먹여 살린다는 소리가 있다. 사실 "쓰잘데기 없는" 시집이나 소설책은 사지 않더라도, 내 자식 볼 책은 어떻게든 사야되는 것이 한국의 교육열이다. 이런 점은 중국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교과서의 출판에는 어마어마한 이익이 걸려 있다. 그런데 이런 교과서의 출판에 문제가 있다면 어떨까?

너무나 중국다운 문제여서 무엇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마치 예전에 한국에 각 지방별로 소주가 있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듯 하다. 그런 면에서 아래글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나갈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방화를 풀어버리면 한 회사의 독점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방주말다운 세세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글이다. 중국 출판계를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설명되어있는 글이다. 이러니까 남방주말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는 믿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잡지가 나올 것인가? 본인은 그나마 "말"을 좋아하지만, 정치적 편향성이 없다고 하면 웃긴 말이겠지?



谁动了教材出版的奶酪?
——多家出版社联合反对发改委强制中小学教材租型招标


□本报记者 张英 实习生 林怡静 发自北京
多家出版社在义务教育教材的出版上投入了几十亿元人民币,而现在面临血本无归的风险。他们联合起来,把矛头指向了教材租型招标政策:你主编教材,却必须把印刷、发行和销售的利益转让给他人
2008年,由国家发改委主导、新闻出版署、教育部参与的中小学教材出版发行施行招投标的方案将在全国推行。这个已经试点试行4年的方案,却遭到了众多出版中小学义务教育教材的出版社的坚决反对。
一家出版社的老总在给南方周末记者的报料电话里说,“我们已经到了生死存亡的关头,这个荒唐的租型招标将把几年来义务教育教材多元化改革成果毁掉,可能导致人教版教材几十年一家垄断教材出版的局面重现。”
目前,这些出版社正以会议、上书中央领导的方式,反对国家发改委系统主导的这次全国范围内的教材租型招标。他们在义务教育教材的出版上投入了几十亿元人民币,而现在却面临血本无归的风险。

人教版教材垄断被打破了
在北京师范大学出版社副总编叶子眼里,2001年是一个美好的开始。和另外几十家出版社一样,北师大出版社从这一年开始介入教材出版。此前,作为惟一的教材出版社,人民教育出版社的中小学教材已经在全国范围内使用了三十多年。
2001年6月7日,当时的教育部部长陈至立下发了11号部长令,颁布《中小学教材编写审定管理暂行办法》。该办法打破了教材出版垄断,全国所有的出版单位、个人、团体都可以参与中小学教材的编写,获得教育部全国中小学教材审定委员会审定通过以后,即可以出版投入使用。
据统计,近几年全国教材和教辅的出版产值达三百多亿。因此,所有的出版社都把眼睛盯住了有近2亿名中小学学生的教材出版。不管是国有的北师大出版社还是民营出版策划人赵勇,他们无一例外地把组织教材编写当作一个难得的机遇。
和其它图书不同,教材的编写、出版不容易。根据教育部的规定,中小学教材的编写、出版必须经过立项审批、编写、审定、实验、试用、修订这样几道关。
在教育部规定的时间里,赵勇的北京仁爱教育研究所迅速聘请了300人完成了立项表的填写和样章编写。“立项表的填写就两部分:一是投标单位资格审查——有没有能力和资格编教材;二是投标教材内容审查——教材特点特色和体系结构说明。”
因为担心民营企业受歧视,赵勇在48小时内把3000万元人民币存到银行,拿着存折找到教育部负责教材编写审定的官员,表示愿意把钱作为押金存在教育部,希望获得教材编写资格。他的行动感动了教育部的负责官员,最后,他成了一百多家出版社里惟一获得教材编写资格的民营机构。

钱砸出来的教材
在第一次申报立项时,所有的出版社都看着人教社。人教社申报了中小学各个学科的教材编写方案。赵勇申报了中小学19个学科的教材编写,3个月后,只有化学(9年级)和地理(7、8年级)两科被通过。北师大出版社5门课获得立项通过。
“整个立项淘汰率相当高,但审批程序相当公正。”赵勇回忆。2002年3月,是教育部规定的第二次申报时间。这回他报了16个学科教材编写方案,最后只过了一门《英语》(7至9年级)。北师大出版社也有两门课程获得通过。
赵勇在朋友的帮助下组建了教材编写组,通常,写作组主编一般都是大学里的著名教授,副主编是教委系统里的优秀教研员,再加上一些有着丰富教学经验的优秀教师。
获得立项,编写完毕,还未必能获得全国中小学教材审定委员会的审定通过。审定通常是出版社最担心的时刻:有的教材直接通过;有的教材没能通过,需要按照审读专家的意见修改;有的教材就直接写明“不予再审查”,被当场“枪毙”。
通过改革,教材编写、选用多元化局面形成。目前,已有82家出版社获准参与中小学教材编写,2400种小学教材、1200多种初中教材进入教育部全国九年义务教育阶段“用书目录”。
对出版社来说,教材完全是用钱砸出来的。“每科教材的启动经费在30到40万左右,编写经费按册数算,每册教材编写经费在30万左右;比如小学语文一共 12册,编写经费就得360万,加上启动经费60万,投入420万;在教材投入使用时,北师大还将支付2%的版税给编写者;最后是后期培训费,每年都是千万以上。”叶子给南方周末记者算了笔账。
和赵勇出版的其它书不同,国家对教科书成本进行了详细核算,设置了定价上限,只准在核定价格内下浮,不得上涨。这样特殊的严格准入,是赵勇们所没有想到的。但无论如何,相比那些花了上千万重金最后却没有任何教材通过的出版社,赵勇已经够幸运了。


冲着新华书店来的改革
通过的教材被统一列入教育部的《教学用书目录》。这意味着,凡是被列入该名录的教材都可以出版、印刷、发行。就在赵勇组织140人的销售和服务队伍时,一场由国家体改委和原国家计委主导教育部、新闻出版总署参与的中小学教材的出版发行改革也拉开了帷幕。
2001年6月4日,国务院办公厅转发原国务院体改办、原国家计委、教育部和新闻出版总署《关于降低中小学教材价格深化教材管理体制改革的意见的通知》,打破中小学教材发行由新华书店一家垄断的局面,决定于2002年9月-2004年9月在福建、安徽和重庆三省市进行第一轮教材出版发行招投标试点,教材出版发行要实行“招投标”,教材的出版发行机构由竞标方式产生。
四部委通知的下发,在出版行业内引发了一场大地震。《中国图书商报》副总编张维特对南方周末记者介绍,此前我国的中小学教材出版、发行都是行政垄断的——教育部委托人民教育出版社出版,新闻出版署委托各地新华书店发行。因为垄断,教材品种单一,教材价格虚高不下,加重了家长和学生的经济负担。打破行政垄断是必要的。
另一方面,教材发行招标也有让主要依靠教材发行利润过日子的新华书店系统进行深度变革的意图。一项调查表明,各地省级新华书店70%以上的利润来自教材发行,在很多县级的基层新华书店,这一比例甚至高达90%以上。
2003年,因国务院机构调整,国务院体改办和国家计委被撤销,有关职能并入国家发改委。教材招投标试点工作由国家发改委牵头,新闻出版总署和教育部参加,具体工作由发改委体改司负责。
当时负责这项工作的国家发改委体改司官员公开表示,发改委在教材出版发行上没有部门利益和利害关系,作为牵头改革的负责部门更合适。
2005年3月14日,国务院批复同意三部委扩大教材招投标试点,并明确了“试点工作最迟从2006年春季开始”的要求;从2008年秋季开始“面向全国进行”。


被利益扭曲的招投标
“这个招投标把教材发行搞复杂了。”北师大出版社负责发行的经理马朝阳说。在发改委的招标改革之前,原创出版社在研发、出版教材之后,由各地教育部门选定使用教材,再由新华书店代为发行销售,通过进入学校试用、反馈、修订。
改革之后,根据招标规定,凡是参与了投标手里有教材的出版社,在自己没有中标以后,必须把自己的教材出版胶片交给那些中标的当地出版社,由他们负责印制生产,再交由当地中标的发行机构面向学校发行。作为回报,当地出版社按照教材定价的3%,向北师大出版社支付“租型”的使用费。
所谓 “租型”,指的是中小学教材租型,这个出版界的特有说法起源于2001年以前。那时全国只有人民教育出版社一家出版社受国家投资委托指定编写出版中小学教材。由于我国地域辽阔,地处北京的人教社无法在同一时间内满足全国各地的教材需要。为了保证每年全国中小学学生在开学前拿到教材,人教社索性把教材的印刷胶片分给各地方的省新闻出版局,地方新闻出版局再指定当地出版总社或者人民出版社出版、印刷,新华书店独家发行销售。地方人民出版社按照教材总定价的3%-4%付“租型”费用给人教社。
对人教社来说,它的教材是国家经费投入的,它只承担编写和出版,每年可以在全国几十个省份收取租型费;地方出版集团也欢迎这样的合作——通过教材租型取得的收入成为它们赖以生存的经济支柱。因此,出于地方利益考虑,地方新闻出版局和出版集团千方百计想保留计划经济时代的“租型”。
于是,就出现了马朝阳不理解的怪现象。教育部[2005]15号文件明文规定各省级教育行政部门要完整转发教育部《教学用书目录》,不得删减或增加,并严格规定全国各地市要在教育部《教学用书目录》内选用教材。
但在实际招标过程中,一些省市的教育厅为保证地方利益,对教育部《教学用书目录》进行了大量的删减,有些省市教育厅做出了不给本省市出版集团租型的出版社教材就不准列入本省《教学用书目录》,不准进入本省教材市场的荒谬规定,从而把那些不愿意被租型的出版社教材拒之门外。
为保证自己的既得利益,一些试点省份在制定招投标政策和评分标准时设置了一些特殊要求。比如四川的招标要求,中标出版社,要与该省印制单位有三年以上稳定印制业务关系,要在该省有三年以上的教材发行供货经验,甚至要在该省实现纳税等等。
“像这些荒唐的要求我们根本不可能达到,这就意味着我们不可能参与这个省的投标。”这让叶子觉得这些试点省份根本就不想让外地的出版社中标。招标结果也证实了她的判断:凡是参与投标、手里有教材的外地出版社,没有一个中标。中标的都是当地的出版社,但他们手里并没有教育部批准使用的教材。
对这些原创出版社来说,如果按照人教社与地方社的合作模式,它将面临高额投入血本无归的可能。为维护自己的利益,绝大多数原创出版社拒绝向中标的当地出版社提供教材租型胶片,结果这场招标以流产告终。僵持到最后,四川省只得与北师大这些没有中标的出版社重新谈判,由他们在当地直接印制,交由新华书店发行销售。
“地方实际上想保留与人教社合作获得的经济利益。”一家出版社的发行经理对南方周末记者说,他向记者提供了一份广西教育厅去年 4月25日颁发的(2007年8号)文件。该文件里称:“根据自治区领导的指示,要使人民教育出版社出版的新课标实验教材在广西的市场份额接近或达到 50%,以确保广西出版总社继续获得人教版教材租型权。”
在文件后的附录版本调整情况也显示,从2007年秋季起,在广西境内使用的江苏教育、北师大、四川、仁爱等近十家出版社的教材被全部调整为人教版教材。

我的教材是我的吗?
“电脑生产商可以自己设计、生产、销售电脑,我自己主编、被教育部认可的教材,却不能自由地印刷、发行和销售,这是不是变相剥夺搞出版最基本的权利?”华东一家出版社的副总编辑张非对南方周末记者感叹说。
这样的疑问,从国家发改委2001年的教材招投标试点时就有了。只不过那次在福建、安徽和重庆招标试点只占上述3省学生总人数的10%,人数不多,涉及的利益不大,出版社能够在全国大部分地区实现直接供货新华书店实现销售,因此无人出来抗议。
到了2005年,11省开始招标试点,让各出版社感到了巨大的压力,“强制租型”导致出版社的利润大幅度下降。而到了2008年,这个让他们活不下去的教材招投标即将在全国范围内推广。面对可能的灭顶之灾,本来不愿意站出来面对政府部门的出版社,选择了呐喊和抗议。
“招投标侵犯了我们的著作权。因为教材是我们投资编写的,版权是我的,你凭什么强制我租型?不经过我同意就拿我的教材去招投标?为了打破教材编写出版垄断,教育部已经搞过一次教材编写招标了。如果发改委这个制度在旨在打破发行垄断,可以直接搞发行权招标,为什么还要出版社参加印制权的招标呢?”马朝阳对南方周末记者说。
经过8年市场开发,北师大教材全国市场占有率为25%,仅次于人教版教材。最让他们气恼的是,自己的教材被强制租型后,他们只拿到3%的租型费,而他们还要给编写人员2%的版税,而剩下1%,根本就不够支付被租型的地区教材的维护、修订、培训费用。“如果被租型,我们一分钱不赚还要赔钱。所以我们宁愿停租。”叶子说。
一些小出版社没有北师大这样硬气。“胳膊怎么扭得动大腿呢?如果我不租型,等于我就退出教材市场。我拿着教材又有什么用呢?”西部某出版社的发行经理说。
张维特对南方周末记者说,打破行政垄断,降低教材价格,招标的动机是好的,但这几年实施效果不佳。
江苏教育出版社教材部主任杨九诠经过调查发现,非试点地区教材价格降幅反倒比试点地区高——在11个试点地区,通过招标方式教材平均降幅8%,只有江西省降幅高达16%以上。而在非试点地区,教材平均降幅为11%,北京、天津地区降幅为13%至15%。
作为图书出版和发行的主管部门,新闻出版署面临两难处境:如果彻底打破教材出版和发行垄断,整个出版行业和新华书店系统的经济收入将锐减,没有人敢对此负责。因此,地方政府在教材招标程序上采用各种办法,维护自己的既得利益,千方百计试图保留租型制和教材发行垄断的现实。
一直试图染指教材发行的中国邮政报刊发行公司很失望。早在发改委推动的教材招投标试点工作刚启动时,邮政报刊发行公司就跃跃欲试,但在第二轮发行招标试点中,各地邮政企业虽然参与了投标,但多数地方未能中标。个中原因和教材招标相似,他们被一些地方的招标细则挡在了门外。
而制定招标方案的国家发改委也容忍了这个现实。对这个程序不完美的招标,国家发改委体改司副司长王强在2007年11月的一次会议上表示,发改委将坚定不移地推动全国范围内的招标。
而更早的时候,王强在接受《财经》杂志采访时解释:“试点之所以没有一步到位,是考虑到教材出版市场的现有格局和实际情况,避免给地区经济发展和社会稳定带来更大冲击。但有一点应该明确:行政性的租型出版迟早会被取消。”
但是,这些出版社已经等不及了,他们甚至怀疑,自己能否看到那一天。
(在发稿前夕,南方周末记者获悉,因为众多出版社的反对和上书,在高层领导的批示下,原拟于2月底进行的全国中小学教材招标工作已被中止。但“租型”制度和发行垄断的问题却依然存在,针对这一问题,本报将继续保持关注。)

全国有两亿多名中小学生,教材教辅产值三百多亿,改革后原垄断单位如何生存,是一个现实问题 张莉/图


http://www.nanfangdaily.com.cn/zm/20080306/wh/200803060050.asp


<중국기본고적고 中国基本古籍库>는 북경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교들이 참가해서 만들어낸 중국 중점 전자출판 사업중에 하나입니다. 선진시대부터 중화민국시대까지 (기원전 11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의 역대 서적 1만여종, 총합 16만여권을 전산화시켰습니다. 사실상 현재 나온 모든 고적의 전문과 1~2개의 영인을 제공합니다. 총 합쳐서 17억이 넘는 자이고, 판본이 1만2천여개, 영인이 1천여만항목에 이르며, 용량만 320G에 달합니다. 이 분량은 <사고전서 四库全书>의 3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입니다. 다양한 검색으로 편안하고 쉽게 원하는 항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image 기존의 사고전서와 또다른 점은 한국어를 지원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에서 한국어 지원이라고 해도 메뉴 몇개 한국어로 만든것 뿐이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그냥 중국어판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은 안해봤습니다.) 앞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서양권에 판매할 목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중국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필수라고 해도 될 프로그램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용해본 느낌은 기존의 사고전서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데이타량만 늘린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팍팍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래 사고전서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졌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물론 문제점이 있습니다. 실제 사고전사든 전자 사고전서든 오탈자의 천국이라는 명성을 휘날렸다싶이, 이런 방대한 분량은 아무리 감수를 하여도 분명히 수 많은 오탈자가 존재합니다. 정확한 학술논문에서는 무조건 제대로 된 원문을 찾아보아야합니다. (이거 귀찮다고 안했다가  딱 걸려서 죽어라 욕먹은 어떤 사람도 있습니다.-_) 하지만 너무나 방대한 중국 고적들에서 원하는 항목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 북경대 내부에서는 접속이 되며, 몇몇 wn대학교에서도 서비스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절대 결코 접속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불법 해적판이 생겨날듯 합니다. 하지만 320기가라는 놀라운 용량이 해적판을 막는 가장 큰 변수가 될듯 합니다. 왠만한 하드디스크로는 설치도 못하겠군요. DVD로 설치하다가는 어느 세월에나 설치가 될런지....

 

개인적으로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현대 한국어의 번역 버젼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도 전자화되지 못한 수많은 한국의 고적들도 위와 같이 일단 데이타화하고 천천히 번역작업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수 많은 고적을 체계적으로 정리는 해놓았지만 데이타 작업 소식이 안 들리는 일본. 일단 밀어붙여서 오탈자가 많지만 데이타화해버린 중국. 그리고 천천히 데이타화하고 있지만 진척이 느린 한국. 하지만 일본처럼 기존의 고적들도 제대로 발굴이 안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데이타화하랴 고적 발굴하랴 많이 힘드실듯 합니다.

아래글을 심심풀이로 씹으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점점 취미가 이상해져가는 것은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졸저 『신시본토기』의 378쪽 원문에서 인용.
(원문)
桓公問管子曰, 吾聞海玉幣七莢
可得以問乎, 管子對曰 陰山之유혼一莢也
燕之紫山白金一莢也, 發朝鮮之文皮一莢也

(풀이)
환공(桓公)이 관자(管子)에게 물었다. "나는 천하에 일곱 군데의 보물이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보물을 어디서 구할수 있겠습니까? 그 위치를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관자가 대답하기를, "첫번째 보물의 위치는 월색(月色)의 보물이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이요 두번째는 은이 나는 자산산맥입니다. 그리고 발조선에서는 반점(斑點)이 있는 모피를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세번째 보물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항 외에도 같은 책 속의 경중갑(輕重甲)이라는 항목을 통해서 조선과의 거리가 8천리라느니 조선의 문피를 교역하는 일에 말을 잘 듣지 않으니 많은 돈으로 잘 대접하면 표범가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원문에서 보다시피 호피(虎皮)라는 단어는 찾을 수가 없는데도 호랑이 가죽이란 해설이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말로 호(虎)를 범이라고 하고 표(豹)를 표범이라고 하며 바다에 사는 해표(海豹)를 물범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원문에서 볼 수가 있는 "문피(文皮)"라는 단어의 뜻은 무늬있는 가죽을 통틀어서 한 말이므로 확실히 구분이 되지 않지만 경중갑에는 "豹之皮容金而金也"라는 말이 등장하므로 문피는 표범가죽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豹는 海豹, 즉 물범을 가르키는 말이라는 것이 정답이었다. 호랑이 가죽이란 말을 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선 가죽과 털옷이라면 추운 지방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백두산을 위시한 만주대륙을 연상하게 되고 따라서 고구려의 수렵도를 상상하게 되면 물범 생각은 아예 달아나고 만다.
그러나 호피를 주요한 수출품으로 다룰만큼 많은 양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호랑이를 산신으로 모시는 풍속이 있어 두려워하며 당시의 사냥술로는 포획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 물범이라는 짐승이 우리 조상들의 귀중한 옷감이 되고 또 수출품으로서 외화를 흭득하는 효자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뒷날 발해국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품목 중에는 약간의 호피도 있었다는 것을 참고할 수도 있다.
본래 이 물범이라는 짐승은 북위 42도 이상의 추운 지방인 추코트해나 베링해협에서나 볼 수 있는데 북위 38도 근방인 발해연안에 둥지를 마련하고 서식하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였다고 한다. 같은 물범 중에도 이곳 발해연안 묘도군도에서 서식하는 종류는 얼룩무늬 물범으로써 베링해의 물범과는 차원이 다르다. 큰놈은 크기가 1.3m 정도이며 몸무게는 160kg으로써 근래에는 백령도 근해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대략 3,000마리 정도가 묘도군도를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다.
그러니까 물범 이야기만 가지고도 고조선은 발해해협의 묘도군도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물범이라는 짐승이 평양이나 갈석산 근처에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물범의 활동한계는 요동만에서 백령도까지라고 KBS는 밝힌 바 있다.

출처 : 누르시면 날라갑니다~



토론 준비 때문에 글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문장이다. 얼핏 들어보면 말이 되는듯 하지만 솔직히 원문부터 엉터리로 해석한 부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문에 유혼은 礝碈이며 옥과 비슷한 류의 보석이다. 월색의 보물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모르겠다. 본인이 미숙한 탓인지 출처를 모르겠다. 그외의 해석도....왠 산맥이 튀어나오는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반쯤 기분풀이로 하는것이니 패스--


일단 표豹를 물범으로 해석한것.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로 표범이 당시 아시아에 특히 동북지방에 많이 생존했었다는 것은 사료에서도 증명되는 것이다. 표가 호랑이 가죽이 아니라 표범 가죽일 가능성은 배제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물범의 가죽보다는 표범의 가죽이 반점이 있는 가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다표범도 가죽에 줄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반점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또한 열심히 발해만에서만 나는 물범으로 고증을 했지만, 가장 간단하게 명대에 쓰여진 <朝鲜国治>을 보면 "鴨綠江爲大產, 金銀銅鐵水晶鹽細苧布細花布龍文簾席白硾紙狼尾筆紫花硯果下馬長尾雞貂豽海豹皮八稍魚昆布秔黍麻榛松人參茯苓薏苡,其餘不能殫載云." (표점 무시. 알아서 찍으시길--) 물범가죽을 이씨조선의 특산으로 소개해놓고 있다. 고대 전국시대야 정확하게 고증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이씨조선시대에는 분명히 한국의 영역이 발해만에 미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물범가죽이 특산품이 될 수 있을까? 분명히 한반도 내, 당시 이씨조선왕조 범위안에서 물범이 잡혔다는 말이 된다.


이로서 위의 주장은 대충 깨진듯 하다.

아....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런 쓸데 없는 글이나 적고 있으니...후..이제 즐거운?! 자치통감의 세계로 출발-_-! 이제 슬슬 前秦전진의 천하통일이구나! 전진! 전진하라!!! (...차라리 한국에서 이주일에 한단락 나가고 싶어.ㅠㅠ 무서븐 중국애들 속도로 읽어내려가야되다니.....가능할리가 없잖아!!! )

北京大学历史学系2008年硕士生拟录取名单公示

一、内地考生(共计19人)

丁 浩、邓 阳、刘玉群、刘乳滨、刘崇锤、何存金、余奕珠、张 寒、张曜光、李华程、罗 志、郑启芬、胡 宁、栗河冰、袁 鹏、高俊杰、韩 飞、韩 澍、韩基奭

二、推免生(共计21人,其中含学工选留1人,不占招生计划):

于  娜、丹筱彤、王  月、王  倩、王梦婕、冯  佳、冯立冰、吕  超、张心远、张宁芳、张成晗、李坤睿、李怡文、李梦岚、杜  乐、陈  捷、陈冠华、陈博翼、胡  珂、胡晓丽、聂溦萌

三、留学生(2 人)

马  硕、王  林


北京大学历史学系

    2008年4月9日


없다. 없다. 없다. 유학생은 2명인데, 이름으로 보아서는 화교이거나 서양애들이다.

최소한 한국 사람의 이름은 아니다. 없다. 없다. 없다.

(2차 시험에서 떨어지신 한국분이라고 추측되는 한 분. 애도를 표한다. 후....)


기대했었다. 본인보다 나이 어린 후배 한명 안 들어오나 말이다. 사실 현재 본과에 다니는 한녀석이 들어왔어야 되었는데, 나보다 훨씬 더 역사 공부에 어울리는 녀석인데 말이다. 결국 본과 출신의 석사인생 2명의 모습을 보고 살포시 포기해주시더라. 좋은 모습 보여주러 그리 노력했는데 말이다. 큭....

내년을 기대해 보리라. 한 녀석 있다. 그나마 살아있을 한명의 생존자가...

그녀석 이름에는 아예 석사의 석자도 있다!! 자!! 와라!! "원래 석사여!"


왜 굳이 한국인이냐고? 외국에 있으면서 중국애들하고 안 노냐고? ...지도교수님이 소수정예(본인 빼고) 주의라서 현재 박사생 2명에 석사생 1명(이게 본인)만 있다. 맨날 3명이서 노는데도 지쳤다. 좀 데리고 놀?! 후배가 있어야되는데 말이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 없다. 아...새로 한명이 들어오긴 한다. 본과에서 박사로 점프해서 말이다. 후....


없다. 없다. 없다. 그래서...

외롭다....이것이 소위 인문학의 위기인가? (........)




자기 얼굴에 침 뱉기 : 올해 전공과목 시험이 생겼더라.작년에는 연구생 시험 개혁한다고 딸랑 면접만 보았는데 말이다. 으음...지금까지 시험운이라고는 개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험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역사가 나를 부른다라는 폼나는 말도 있겠지만...안 불렀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새벽이다. 자치통감. 사마광님아~ 조금 짦게 쓰지 그러셨어요? ㅠㅠ



외국땅에 있어서 투표권이 생긴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한번도 투표를 참가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나 원통하고 가슴 아팠었다. 한국에 가서 투표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것이다. 핑계이고 변명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그리 큰 감흥이 없다. 그 뜨거운 한표를 행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직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투표율에서 결과는 이미 나와있다. 언제나 60%가 넘는 투표를 보여주는 정치에 미친게 아니냐는 한국에서 50%도 넘지 못하는 투표율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내가 한국을 버렸다. 국민이 한국을 버렸다.

정치꾼들은 기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정치가라면 지금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국민은 한국을 버렸다. 희망을 버렸다.

이제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접어들었다.

내가 한국을 버렸다. 대한민국 만세다!




지역주의 타파나 한나라당 집권과 같은 것은 부수적인 사항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의 참여가 있을 때 바꾸어나가야 될 문제들이다. 국민의 참여자체가 없는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대한민국 만세다! 음하하하....


해당 코너는 중국어로 된 좋은 문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국어와 중국을 배우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처음 중국어와 중국을 배우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방대하게 쏟아져나오는 많은 글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읽어야 될지가 문제라고 생각하여 이런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3月中旬以来发生在拉萨、甘肃和四川等地的暴力事件令全球瞩目,其所激起的政治效应依然在发酵,而该事件对全球华人来说,所激起的愤怒,远超以往。
    3月28日,达赖喇嘛通过西方多家媒体发表“致中国兄弟姐妹的公开信”,同时他还声明:决不分裂,支持北京奥运。
    两天之后,正在老挝访问的中国总理温家宝受访时表示:“只要达赖喇嘛放弃独立的主张,特别是施加他的影响,停止西藏当前出现的暴力活动,承认西藏和台湾是中国领土不可分割的组成部分,我们就可以和他恢复对话。”
    之前的3月27日,国家主席胡锦涛在和布什总统的电话通话中也表示:“只要达赖真正放弃‘西藏独立’的主张,停止分裂祖国的活动,特别是停止目前在西藏等 地煽动策划暴力犯罪活动和破坏北京奥运会的活动,承认西藏和台湾是中国领土不可分割的一部分,我们愿意同他继续进行接触商谈。”
    中国两位领导人的表态反映了这样一个事实:藏传佛教在藏族民众中的影响,是现实存在的;达赖喇嘛作为宗教领袖在藏传佛教信徒中的影响力,也是事实。
    基于上述基本事实,一些现实的政策操作可能需要考虑。
    首先要把广大藏族信教群众和官方语境中的“达赖集团”区别开。由于藏传佛教事实上除达赖喇嘛以外再无其他为绝大多数信徒接受的宗教领袖,因此信徒们对达赖 在宗教上的信仰和膜拜,不能被理解为政治上必然的服从,更不能被理解为主张分裂国家,这是在实行民族区域自治的藏区必须坚持的一条底线。
    其次要把流亡国外的普通藏人和“达赖集团”上层区别开来。1959年追随达赖流亡国外的藏人成分复杂,半个世纪即将过去,应抱着“相逢一笑泯恩仇”的态度,只要他们不再主张分裂国家,就应翻过那不愉快的一页,向他们伸出欢迎之手。
    即便在“达赖集团”内,也必须要把主张“非暴力”手段的人和热衷于暴力手段的极端主义分子区别开来。不论何人,只要他不主张西藏独立,不主张暴力手段,中央政府就应把他和极端分子相区隔。
    据一位长期在西藏工作的中央驻藏机构官员介绍,北京市长、西藏自治区前任党委书记郭金龙在主持西藏工作时,曾提出并执行过这样的政策:在宗教信仰上,要把 中共党员和非中共党员区分开来,共产党员不得信仰宗教,而非中共党员则有信教自由;把正常的民族、宗教活动和利用宗教从事分裂国家的活动区别开来;一旦触 犯刑律,不管什么民族,一律依法办理。据不少在西藏工作过的人士反映,这些政策相当成功。
    事实上,国内不少专家都认为,藏传佛教和个别宗教极端主义有很大不同,它基本上表达温和诉求,对于今天中国要建立和谐社会来说,它事实上存在着合理的、积 极的成分。正因为如此,藏区的情况不同于其他民族自治区,别的民族自治区域的经验,也不能完全适用于西藏,民族区域自治政策,具备解决上述问题的制度基 础。
    一位欧洲大国驻华使馆的参赞几天前曾经私下对本观察员坦陈心迹:达赖喇嘛建立大藏区的想法在今天未免太不现实,但是同他(达赖)对话,我们欧盟都赞成,对话,无论如何总是好的和正面的。
    就今天来说,不分裂中国,以实际行动支持北京奥运,可能是双方对话的起点。


(责任编辑 林楚方 李小鸣




来自于 : http://www.infzm.com/enews/20080403/pol/200804/t20080402_41813.htm



해당 뉴스는 南方周末(난팡조우모 nanfangzhoumo)의 글입니다. 중국에 계신 분들은 반드시 해당 신문을 구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중국 신문들중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할말 하는 신문입니다.


이번 내용은 티베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이번에 티베트에서 폭동이 일어났지만, 티베트 종교의 특성상 대화로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티베트의 무조건적인 독립을 말하지만, 실제 티베트인들의 생활을 생각한다면, 종교와 문화만 "제대로 보전" 된다면 중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같이 공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입니다.




 

중국정부는 작년말 공휴일을 변동하면서, 청명절과 같은 전통 명절을 국가 공휴일로 바꾸고, 기존의 노동절의 장기 휴일을 단축 시켰다. 이런 정책의 목적에는 점차 사라져 가는 전통을 지키고자고 하는 노력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도 청명절은 기본적으로 조상의 묘에 가서 묘정리를 하는 명절이다. 그리고 정부는 모든 매체를 통해서 이러한 전통에 대한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과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명절의 내용보다는 그냥 하루의 휴일이 생겼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아싸! 노는날 생겼다! 놀자! 청명절은 먹는건가?"

 

우리가 주의해야될 점은 이번 중국이 청명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대문화(상층문화)가 소문화(하층문화 혹은 민간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러한 대문화의 시도가 그동안 좌절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대문화의 시도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일정정도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소문화는 어디까지나 민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지는 문화이다. 전통문화라고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되는가? 어차피 소문화도, 전통문화도 계속 변해가는 현실의 반영일뿐인데 말이다. 과거의 일정 시점을 잡아매어서 억지로 유지하는게 과연 필요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2일전에 올렸어야 되는데 다 써놓고서는 올리는 것을 까먹어서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역시 바로는 건망증의 황제라고 할까?!

김용덕 : 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동양사 교수, 하버드대학교 석박사, 일본근현대사 전공.

 

김용덕 교수님은 한국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몇가지 역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분명히 존재했던 조선조의 사대주의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서울대 교수가 북경대에서 강의를 한다는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이해는 할 수 있다.

그가 보는 현재 한국의 4대 문제는 한중, 한일, 그리고 남북한 관계가 있다. 더욱이 중일간의 역사적 문제를 중간에서 어떻게 처리하는냐도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기에 말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기준으로 상대방의 국가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인의 역사적 사실은 매우 좁은 범위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타자가 되어서 바라보아야 진정한 실체를 알 수 있다. 그는 임진왜란과 임오군란을 예로 들어서 한국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역사관의 정립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소중화의식은 민족의 독립성을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기본은 사대주의가 아니던가? 흐음...

 

전근대에서는 동북아의 기본적인 가치가 유교(성리학)였지만, 근대부터는 서양의 가치가 중심적인 기준이 된다.

 

교수님은 한국의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점을 사람들이 잘 알것이라는 이유로 건너 뛰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강의의 가장 핵심이 되어야될 부분을 건너뛰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듣는 한국의 중국과 한국에 대한 관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까?

교수님은 조공책봉제(朝贡册封体制)을 현재 미국과 다른 나라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현재 역사전쟁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1)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본인의 생각으로 이론적으로, 이상적으로는 무조건 맞는 소리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교수님도 분명히 알지 않은가? 그래서 본인이 고대사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동북공정과 같은 몇가지 문제는 있지만 사실상 모든 문제가 정치와 연결되는 근대사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다.

 

2) 서로의 "역사주권"을 존중하여야 한다.

마치 영토와 같이 역사도 그 나라 범위안에서 보호되어야된다는 소리인데, 솔직히 이상하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학술교류는 왜 하며, 국제적인 주류 역사해석은 어떻게 해야되는것인가? 무엇보다 이것 역시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는 현실의 한 모습에 불과하지 않은가?

 

** 열린 민족주의 开放的民族主义(Internationalized Nationalism)

재미있는 개념이다.

 

3) 동아시아 공동체

교수님는 중국의 파워가 홀로 너무 강하여서 이런 공동체의 실현이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실력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군사력으로보아도 일본은 중국에 그리 떨어지지 않으며, 그 중간에서 한국이 충분한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수님은 공동체의 실현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매우 모호한 개념으로만 설명하고 있다. (싸가지 없게 말하면, 이런 내용은 나도 예전부터 주구장창 이야기해놓았던 이유다. 구체적인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일까...?)

 

동아시아안의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공통의 가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가치(East Asian Value)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로 만들면, 이런 가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는 정치 군사 문화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기보다는 세계를 평화적으로 모두 함께 발전하는 길을 열어야 될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이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간의 문화를 존중한다면 자동적으로 해소될 것이다라니...;;

 

 

** 유럽공동체가 생겨난 이유는 그동안 죽어라 서로 전쟁을 해서 이제 합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아시아 공동체가 생겨날려면 동아시아도 죽어라 전쟁해야 된다!!! 당연히 교수님도 농담으로 한말이다.

 

 

문답 :

역사 주권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학술상에서는 기본적인 주권중에서는 하나로 포함된다. 전통적인 주권에서는 국토, 국민, 지배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역사라는 것은 빠져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일제시대와 같이 전통적인 주권을 모두 상실한 가운데, 역사주권만은 남아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Q :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뒤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서 역사를 이용해야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모순 아닌가요?

그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위해서 먼저 역사전쟁을 해결해야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동북아시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동북아시아 역사연구센터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영향력을 보면 한국은 영향을 행사하기보다는 받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너무 치열한 역사 전쟁상태를 생각하면 한국이 그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없을까?

 

 

그 외 잡상 :

한국과 일본의 지배자는 같은 민족에서 나온 사람들이지만, 중국의 지배자는 다른 민족에서도 나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물론 이런 다른 민족지배자들도 중화사상에 빠져들지만 말이다. ---> 일단 한국과 일본은 단일민족도 아니고 한나라나 몽고와 같은 외부세력도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예전의 민족관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사람 모두가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고 있다.  --> ....솔직히 반대파가 예전에 비해서 많이지지 않았나?

 

 

통역자에 대해서 :

북경대학교 한국어과 연구생이라고 한다. 중국인이다. 이번에 역사과 박사시험을 보고 면접만 남았다고 한다. 그럼 머...들어오겠지. 현재까지는 한->중 번역만 하고 있음으로 정확한 실력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원래 말에서 어려운 말들을 조금씩 빼놓고 있다. (예를 들어서 역사적 구체적인 사실이나 속담같은 말은 번역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빨간옷을 입은 한국분. 박사생으로 알고 있는데, 죄송하지만 중국어 실력이 부족한듯 하다. 더 열심히 하셔야 될듯...

 

 

牛大勇

동북아시아의 통합

 

1) 강력한 초거대국가

내부 집단들이 공통적으로 합쳐야겠다는 인식 -- 적대할 국가

 

2) 현재 복작한 정치외교 상황 - 분리주의문제

조선, 한국, 타이완, 중국, 일본이 서로 너무 얽혀 있다. 일단 조선과 한국 그리고 중국과 타이완간의 문제가 해결되야지 동북아의 통합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3) 전쟁책임과 역사책임

일본과 반일본간의 일제시대의 전쟁 책임과 역사책임을 포함한 문제. 다시 말해서 일본을 믿을 수 있으냐는 점.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과 서술에서 반박할 것이 몇개 있었음.


중국 포털 서비스 시나왕의 보도에 따르면, 3월 23일 "3개의 세력"이라는 단체가 신장 희어티엔에서 반국가적인 폭동을 일으키었다고 한다. 4월 1일, 현지 자치단체는 해당 독립운동을 빠르게 진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3월 23일 극소수의 "3개 단체" 독립분자들이 따바자라고 하는 희어티엔시의 최대시장에서 10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소란을 일으키었다고 한다. 독립분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시장의 정상적인 운영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희어티엔시는 매우 조용하며, 시민들은 평안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 중국 시나왕


1) 중국 우루무치 폭탄테러는 낭설이다?? 라는 뉴스를 발표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해당 소식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독립운동이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졌으며 뉴스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3월 23일 발생한 일은 4월 1일에 정식으로 발표했다는 점은 중국정부가 사실상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식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듯하다.


2) 중국정부는 요즘 티베트 사태를 각각의 포털에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과거에 일단 숨기고 보자는 식에서 탈피해서, 반대로 적극적인 여론조작에 나오고 있다. 티베트 사태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들은 해당 사실이 거의 대부분 사실과는 다르며, 서양 언론기관들이 확대 및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는 쪽으로 맞추어지고 있다. 단지 언론 통제부분에서 보면 과거에 비하여 분명히 발전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제는 아예 안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중국정부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3) 해당 희어티엔 신장 독립사태는 사실상 이미 진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도저히 소문을 막아두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을수도 있다.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을듯 하다. 하지만 본인도 몇번을 이야기 하듯이 위구르의 독립운동은 티베트에 비하여 국제적인 인지도는 없지만, 더욱 강력하고 더욱 폭력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비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위구르의 독립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앞으로 베이징 올림픽 전까지 이런 운동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짦은 기간의 관심으로는 독립을 이루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티베트와 위구르의 독립을 원한다면 천천히 그들의 역사와 현재를 천천히 파악하고 조용히 움직였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저는 글이나 덧글로 "티베트의 자유를!"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티베트 독립 가능성 검토와 같이 독립에 대한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그리고 냉정하게 이야기 해서,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티베트와 위구르의 독립은 요원한 일이다. 이 점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현재 더욱 가속화가 붙어버린 민족동질화 과정으로 형성될 티베트족1), 위구르족2), 한족간에 어떠한 결과가 벌어질지 두고봐야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에서 이러한 민족공동체간의 충돌은, 특히 새로 떠오르는 민족 공동체 간의 충돌은 언제나 폭력적이었다. 후...


1) 혹자는 캄족을 티베트족으로 포함시키는데, 현재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30년전만해도 캄족과 라사의 티베트족은 서로 경멸하는 사이였다. 그 사이에 민족동질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2) 위구르 역시 하미파, 투루판파 그리고 카쉬미르파로 나누어서 서로 원수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민족 동질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Pre-modern Polyethnicity and Ethnic Homogeneity - William H. Mcneill

저자는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을 쓴 서양에서도 보기 드문 포괄적인 역사연구가이다. 해당 논문도 역시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역사체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저자는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글의 전반적으로 서술한 이야기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읽어내릴 수 있다. 주의해야될 점은 저자는 특정 역사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연구된 내용을 이용하여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본인이 눈여겨서 본 부분은 중국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중국은 1000년(송대)전까지는 비교적 개방적인 사회였고 그래서 송대에 눈부신 발전을 이우러냈지만 그 뒤로 점차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반대로 고대에는 개방적이었던 일본은 점차 폐쇄적으로 되어가지만 나중에 서양의 압박으로 개방을 하고 발전을 이룩해 낸 부분이다.


해당 사항을 정리해보면, 개방을 하면 발전을 하게 되고, 그 발전의 정도가 일정 이상이 되면(아마 주변국에 비해서 높은 발전 정도), 반대로 점차 폐쇄적이 되어가고 발전의 속도도 줄어들어서 상대적으로 쇄락해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폐쇄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집단 내부의 기준으로 발전의 정도를 인식했을 때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2차세계대전 전까지, 아니 버블경제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외국인에게 개방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누구보다 갇혀 살고, 이기적으로 자신들만 챙긴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물론 쇄락이 먼저인가 폐쇄적이 되는 것이 먼저인가라는 닭과 달걀의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위의 말을 바꾸어 보면 아직 개방적일 때에는 아직 일정 수준의 발전을 이룩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폐쇄적인 한국은 이미 일정 수준이상 발전한 것인가? 그렇다. 한국인의 대다수가 현재의 발전 수준에 만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 한국의 발전에 불만인 자들이여. 세계화를 외쳐라. 하지만 더욱 중요한건 다른 한국 사람들을 욕구불만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직 욕구불만이 부족하니 외국인을 외계인처럼 보는 한국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욕구불만인 본인부터 이야기 하겠다.

한국 발전하기는 개뿔!
제발 소원이다 욕심을 좀 가지자!
더 발전해야될거 아니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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