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바이두와 북경대학교이 공동으로 설립한 중국인 검생행동 연구 센터에서는 <2007년 UCC 검색 행동 연구 보고>를 발표하였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네티즌들에게 가장 사랑받으며 가장 트래픽량은 많은 싸이트는 "감자왕"(혹은 투또우왕)으로 나타났다.

바이두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UCC을 다루는 싸이트들은 많이 있으나, 해당 싸이트들의 트래픽량을 분석한 결과 중국 최초로 UCC싸이트를 만든 감자왕이 거의 독점적으로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한 알렉스의 데이타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UCC 싸이트중에서 감자왕이 시장의 54%을 점유하고 있으며, 매일 5500만회의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다. 매일 감자왕은 4000만명의 네티즌을 수용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0억분의 재생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바이두에서 "UCC"로 검색하는 네티즌이 매일 4만명정도로, "블로그" 키워드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밖에 바이두의 데이타를 보면, 네티즌들은 지속적으로 감자왕, 아싸왕, 쿨왕등의 UCC 싸이트에 대한 관심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감자왕의 성장은 경의적이다. 비록 아싸왕이나, 쿨왕등의 성장률은 감자왕에 비하여 초라하지만 지속적인 ㅣ성장을 보이고 있다.

바이두의 검색 결과는 결국 네티즌들의 관심정도이며, 앞으로 더 많은 네티즌들이 UCC를 주목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감자왕은 현재 판도라와 같은 재생 전의 짦은 광고을 보여주는 식의 광고모델을 채택하고 있으며, 감자왕의 사장님은 트래픽이 너무 많다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후문이 있다. ...본인 IT는 어디까지나 취미로 남겨놓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저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욕심이 생기는 건 지금 내가 배고프기 때문일 것이다. 어무이...삶이 힘들어요.ㅠㅠ

浙江良渚发现4000年前古城价值直逼殷墟(图)

2007년 11월 29일 량주고성 북쪽 성벽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성벽의 절단면이다.

浙江良渚发现4000年前古城价值直逼殷墟(图)

2007年11月29日,량주고성의 북쪽성벽 절단면

浙江良渚发现4000年前古城价值直逼殷墟(图)

고대의 도로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돌들이다. 대략 40-60미터의 폭이어서 당시에 얼마나 거대한 도로가 있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浙江良渚发现4000年前古城价值直逼殷墟(图)

동쪽 성벽에 위치한 발굴지

 

절강성 고고학연구소를 어제 18개월 동안 발굴활동을 해오던 량주유적의 발굴보고를 하였다. 해당 량주 유적은 290만 평방미터의 4000년전의 최대크기의 성이다.(290만 정도면 대략 여의도 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지막지하게 큰 크기인 것이다.) 북경대학교 고고학과 언원밍 교수는 량주 유적을 보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지금 현재 중국에서 발견된 동시대 고성중에서 가장 큽니다. 저는 이 성을 "중화제일성 中华第一城" 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군요."

원래 학계에서는 량주문화는 그다지 발달 되지 못한 문화라고 알고 있었는데, 해당 유적이 발굴됨으로 인하여 매우 발달된 기술과 문화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 량주유적의 발견은 지난 세기의 하남 안양 은허 발견에 비견할 만한 중국 고고학 역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발견입니다.

 

해당 고성은 동서 1500-1700미터, 남북 1800-1900미터이며 남북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성벽의 남아 있는 부분은 대략 4미터정도의 높이이며, 폭이 40-60미터 정도 됩니다. 황토를 벽돌처럼 쌓아서 만들었으리라 생각되고 이습니다. 성벽에서 나온 도기 파편으로 고증해 보면 해당 고성은 량주문화 후기에 해당하는 약 4000년전에 만들어졌으리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궁전터로 보이는 곳들과 제사용으로 쓰였으리라 생각되는 여러 구덩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항은 발굴보고서가 나오고서야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현재 해당 고성으로 인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량주고성이 하나의 국가였냐 아니냐는 점입니다. 어제 엄원밍교수는 량주고성의 모습으로 보아서 이미 "국가" 시기에 돌입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량주고성이 사실은 "량주고국"으로 이름 불려야 하며, 또 다른 연구가들은 예전의 하상주에 량주를 추가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게 무엇이 중요하냐고 말하실 분들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역사관련 전공자들이 아니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닌듯 합니다만...해당 사항에 상상력을 붙이면 :

1)현재 환빠들이 주장하는 대쥬신같은것은 성립할 수 없게 되는 아주 간단한 반례가 될 수 있습니다.

2)홍산과 대비되는 중원 문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 문화의 시초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냐는 학설에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동시에...잘못 이용되면 중국의 중화주의에 불을 붙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3) 오히려 환빠들이 주장하는 대쥬신이 성립될 "상상의" 기초가 될지도 모르는군요. 홍산을 북방계열의 문화로 보고, 량주를 남방계열의 문화로 설정하면 가능하긴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일 뿐이고요^^::

 

奥运十要十不要

올림픽해서 해야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10가지.

 

要保护奥运知识产权 不要买卖盗版制造假冒

올림픽의 저작권을 보호하자. 가짜 상품을 팔거나 사지 말자.

(....한마디로 올림픽으로 나라 차원에서 돈 벌어야 되니 닥치라는거--)

要遵守奥村保护条例 不要滥用奥运旗徽歌标

올림픽 보호 조례를 지키자. 올림픽 상징물들을 남용하지 말자.

要牢记交通安全法规 不要翻越护栏闯灯猛跑

교통 법규를 지키자. 무단 횡단이나 신호 위반을 하지 말자.

要服从指挥顺序而行 不要违章抢行拒绝疏导

지휘에 따라서 순서를 지키자. 새치기 하지 말자.

要美化市容保护环境 不要随地吐痰摆摊占道

환경보호를 하자. 아무데서나 침 뱉지 말자.

要珍惜首都文物设施 不要污损刻划乱贴广告

베이징의 시설을 아끼자. 아무데나 광고를 붙이지 말자.

要爱护体育场馆设施 不要寻衅滋事无理取闹

체육관 시설을 아끼자. 소란을 피우며 난리치지 말자.

要维护赛场安全秩序 不要乱扔杂物自带饮料

경기장의 안전질서를 준수하자.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음료수를 가지고 오지 말자.

要争做文明守法观众 不要赌球倒票妨碍安保

문명적이고 준법적인 관중이 되자. 도박을 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자.

要提高奥运法律意识 不要违法违规影响全貌

올림픽 법률 의식을 높이자. 위법으로 인하여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게 하자.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구호를 정확하게 번역하는것이 더 이상한 것이겠죠. 그냥 거의 맘대로 뜻만 옮겨 적었습니다.  그 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하게 다듬은것은 귀.찮.습.니.다. -_)

 

원래 내용으로 돌아와서 사실 제 주위의 중국사람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저처럼 중국에서 몇년을 보내서 썩을 대로 썩은 준법의식을 가진 사람보다 훨신 괜찮아 보이는 중국인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어디까지나 중국 최고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북경대 학생과 교수들의 숫자는 전체 베이징 시민에 비하면 극소수들일뿐입니다.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은 아직도 한숨이 나오는 수준입니다.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가 목욕을 하지 않아서 나는 꼬랑내가 직격으로 코를 자극합니다. 길거리를 무단 횡단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며, 러시아워때 사거리는 서로 가려는 차들로 인하여 레고 조립을 합니다. 한심하고 한심해서,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은 세계로부터 드럽게 욕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모락모락 나옵니다.

한국은 88올림픽때 극적으로 시민의식이 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베이징이 변한다고 해서 전국으로 파급되기에는 너무나 땅이 넓고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베이징이만이라도 변하기를 기대해 봅니다만...중국에서 오래 되었다면 오래 썩은 사람으로서 회의적인 생각들이 너무 많이 드는군요.

 

그리고 저넘의 놀라운 구호 작성능력은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작년에는 "8가지 영광과 치욕"이라는 제목으로 초딩스러운 내용을 만들더니, 이제는 "올림픽 10가지 해야될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구호를 만드니 말입니다. 그것도 전국가적으로 이런 구호를 배포한다는 것에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군요. 아직 중국에서 덜 썩었나 봅니다. 혹시 모르죠. 한국 88 올림픽 전에도 저와 같은 구호가 있었는지도요. 단지 제가 어렸을 때라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금 저런 구호들을 20년뒤에 중국사람들이 다시 본다면, 지금 제 느낌하고 비슷하려나요?

日本利用月亮女神数据制成月球立体动画(组图)

달여신에 장착된 지형카메라로 촬영된 달표면 사진(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日本利用月亮女神数据制成月球立体动画(组图)

DYSON운화구의 3D화면. 줄들간의 거리는 1KM

日本利用月亮女神数据制成月球立体动画(组图)

日本利用月亮女神数据制成月球立体动画(组图)

 

일본 사람들도 중국 사람들의 달 사진 공개에 매우 자극을 받았나 봅니다.  일본의 우주 항공연구개발기구는 28일 홈페이지에 달 표면 "입체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해당 사진은 "달 여신"호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한 것입니다.

해당 사진은 달 표면 북위 60에서 66도 사이을 촬영한 것으로 16KM x 180KM 정도를 촬영한 것입니다. 주요 목표는 운석구덩이인 "DYSON"입니다. 사질을 통해서 해당 운석구덩이에 또 다른 소형 운석구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는 10미터의 분별력을 가진 지형카메라를 사용하여 촬영한 뒤에, 해당 데이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여서 내 놓은 자료라는 점입니다. 이 자료를 통해서 달표면의 형성과정과 달기지 위치 선정에 도움이 될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 우주항공국개발 기구의 인터넷 주소는 http://www.jaxa.jp/ 입니다.

 

문제는 중국의 카메라는 분별력 120미터밖에 되지 못하는 반면, 일본은 10미터의 분별력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이 하지 못한(혹은 안한) 입체 구성까지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중국 사용자들은 일본의 기술력을 인정하자는 쪽으로 나가고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중국 정부가 발표한 120미터보다 더 좋을 수 있다. 정보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라던지...혹은 일본의 기술은 외국의 것을 가지고 온 것 뿐이다라던지..같은 말을 하긴 합니다만...설득력이 좀 없어 보입니다.

 

역시 카메라는 일본과 독일입니다여! 으응?::::

캐논 G7 만세! -_-;;;

얼마나 중요하면 원쟈바오총리까지 올까요? ^^

중국인들에게는 매우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달표면 사진이랍니다.

역시 같은 사진이고요^^

 

해당 사진은 중국의 창어 1호 인공위성에 탑제된 CCD 입체 카메라가 보내온 사진입니다. 해당 사진은 달 면의 동경 83도에서 동경 57도 사이와, 남위 70도에서 남위 54도 사이를 촬영한 사진이며, 폭은 280km x 460km 입니다. 창어 1호 위성은 10월 24일 서창위설발사대에서 무사히 발사되었으며, 8번의 궤도 변경을 통해서 11월 7일 정식 달궤도에 돌입하였습니다. 11월 20일부터 탐색 자료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주 탐사의 불이 붙을지 궁금하며, 또 중국 사람들이 은근히 들어내놓고?! 이야기 하는 중국인들이 직접 달에 발을 내려보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달 착륙은 지금까지 미국사람들만이 하여서 음모론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이제 중국도 착륙을 하게 되면 이것도 음모론이라고 할지 궁금하군요.

 

개인적으로 밤에 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뜬구름 잡는 내용(저에게 궤도변경이니 어쩌고니는;; 외계어보다 더 심각한 외계어입니다.)은 별로 성격에 안 맞는군요. 이런 위성을 발사할 기술이면,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이나 만약  지구궤도 위성을 만드는 것이 데이타 회로 혹은 첩보용?!등등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현실성은 인정하지만...굳이굳이 화성이나 달나라니에 갈 필요가 있는 것인지 저 같은 문외한에게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위진남북조시대에 중서성이 군사권을 장악했던지 아님 미서성이 장악을 했는지가 현실세계에 그리 직접적으로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다 그런거겠죠...하하하;;;;

4세기의 거란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지금의 한반도 정세가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당시 거란은 아직 완전한 통일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소속된 여러 부족끼리 서로간에도 싸웠다.(남한과 북한) 또한 당시 서북쪽에서는 누란이 투룩을 밀어내고 강력한 힘을 구사했고, 남서쪽으로는 북위가 으르렁 거렸으며, 동남쪽으로는 고구려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마디로 강대한 3대 세력들의 완충지대로 활용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 정세가 딱 그렇지 아니한가?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 서로서로 한반도을 하나의 완충지대로 놓고 서로 세력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553년 투룩의 공격으로 거란인들은 고구려로 피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뒷날 수당군의 고구려 공격시 고구려의 총알받이가 되어서 4만명의 거란인이 죽고, 모두 흩어져 살게 된다. 개인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고구려는 어디까지나 거란을 총알받이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이 사실상 속해있는 미국-일본진영도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이 총알받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의 명말한 거란은 훗날 다양한 문화의 중간에 있었던 지리적인 장점을 활용하여서,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그 중에서 좋은 것을 취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구려의 유민, 중국지방에서 흘러온 유민, 그 외에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아?! 너 언제까지 자기 잘났다고 찌질될래? 이제 슬슬 자국민중심주의, 백의민족 쵝오!을 외치고 세계로 나오려므나...계속 그렇게 극단의 민족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계속 그런식으로 나아가면 앞으로 있을 것은 멸망밖에 없을 것이오. 만약 포용정책으로 전환을 하면 밝은 미래?!가 기다릴 것이외다.

 

자기 문화만 잘났다고 찌질거리는 문화 중에서 오래간 문화는 없.다.

 

2007년 11월 25일 오스트리아에 신임 총리가 된 라드는 중국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6년 오스트리아 국립대학에서 중국어와 중국역사를 공부한 뒤에, 외교부에 들어가서 80년대 중후반기에 오스트리아 주중국 대사관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올해 9월 6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였을때에도 유창을 중국어를 선보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은 지금 현재 중국 복단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아들은 오스트리아 화교와 결혼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중국통이며, 중국와 매우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는 라드가 총리가 됨으로 인하여, 앞으로 EU와 중국과의 관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뉴스는 중국의 대표적인 미디어와 포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중국도 앞으로 EU와의 관계개선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미국과 연관이 없으면 당선이 되기 힘들다는 소리가 있었을 정도로 미국통들이 정권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앞으로 중국통들이 점차 성장하게 될 것이고,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세력판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혹자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합니다. 물론 경계하기는 해야됩니다. 하지만 경계는 차선책일뿐입니다. 최선의 방법은 중국을 알고, 중국을 이.용.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일 수록 더욱 미국외의 국가을 이용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선 개화시기가 생각나고는 합니다. 중국파, 러시아파, 일본파가 서로 정권을 잡으려 싸우며 각자의 이상을 꿈꾸었던 그때와 지금과 그리 크게 차이가 없어보이는군요. 하긴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도 보이긴 합니다.

 

 

광개토대왕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이다.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줄여서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높이는 6.39m로 윗면과 아랫면은 약간 넓고 중간부분이 약간 좁다. 아랫부분의 너비는 제1면이 1.48m, 제2면이 1.35m, 제3면이 2m, 제4면이 1.46m이다. 아래에 화강암의 받침대를 만들었는데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4각형이고, 두께는 약 20cm이나 고르지 않다.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해 비면에 가로·세로의 선을 긋고 문자를 새겼다.

 

제1면 11행, 제2면 10행, 제3면 14행, 제4면 9행이고, 각 행이 41자(제1면만 39자)로 총 1,802자인 이 비문은 상고사(上古史), 특히 삼국의 정세와 일본과의 관계를 알려 주는 금석문이다.

 

 

 

 

 

 

-----원문------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而*]有聖□□□□□. □命駕,]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 浮龜. 應聲卽爲]連 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 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 , [履]]龍頁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大朱留王紹承基業. [遝]至十七世孫國 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二九登祚, 號爲永樂大王. 恩澤[洽]于皇天, 武威[振]被四海. 掃除□□,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 昊天不]弔, 有九, 寔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 其詞曰.]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稗麗不□□[人], 躬率往討. 過富山[負]山, 至鹽水上, 破其三部洛六七百營, 牛馬群]羊, 不可稱數. 於是旋駕, 因過襄平道, 東來□城, 力城, 北豊, 五備□, 遊觀土境, 田獵而還.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 古利城, □]利城, 雜珍城, 奧利城, 勾牟城, 古[模]耶羅城, [頁]□□□□城, □而耶羅[城 ], [ ]城, 於[利]城, □□城, 豆奴城, 沸□□]利城, 彌鄒城, 也利城, 太山韓城, 掃加城, 敦拔城, □□□城, 婁賣城, 散[那*]城, [那*]旦城, 細城, 牟婁城, 于婁城, 蘇灰]城, 燕婁城, 析支利城, 巖門□城, 林城, □□□□□□□[利]城, 就鄒城, □拔城, 古牟婁城, 閏奴城, 貫奴城, 穰]城, [曾]□[城], □□盧城, 仇天城, □□□□, □其國城. 殘不服義, 敢出百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刺迫城. □□][歸穴]□便[圍]城, 而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太王恩赦□]迷之愆, 錄其後順之誠. 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九年己亥, 百殘違誓與倭和]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恩慈], 矜其忠[誠],] □遣使還告以□計.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新[羅]城□城, 倭[寇大]潰.城□]#□□盡□□□安羅人戍兵[新]□□□□[其]□□□□□□□言]□□□□□□□□□□□□□□□□□□□□□□□□□□辭□□□□□□□□□□□□□潰]□□□□安羅人戍兵.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事], □[國 上廣]開土境好太王□□□□寐[錦]□□[僕]勾]□□□□朝貢.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石城□連船□□□, [王躬]率□□, [從]平穰]□□□鋒相遇. 王幢要截 刺, 倭寇潰敗. 斬煞無數.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師]□□合戰, 斬煞蕩盡. 所獲鎧鉀一萬餘領, 軍資器械不可稱數. 還破沙溝城, 婁城, □[住]城, □城, □□□□□]□城.卄年庚戌,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 中叛不貢. 王躬率往討. 軍到餘城, 而餘□國駭□□□□□□□]□□王恩普覆. 於是旋還. 又其慕化隨官來者, 味仇婁鴨盧, 卑斯麻鴨盧, 社婁鴨盧, 肅斯舍[鴨盧], □□□]鴨盧. 凡所攻破城六十四, 村一千四百.守墓人烟戶. 賣句余民國烟二看烟三, 東海賈國烟三看烟五, 敦城]民四家盡爲看烟, 于城一家爲看烟, 碑利城二家爲國烟, 平穰城民國烟一看烟十, 連二家爲看烟, 俳婁]人國烟一看烟 三, 梁谷二家爲看烟, 梁城二家爲看烟, 安夫連卄二家爲看烟, [改]谷三家爲看烟, 新城三]家爲看烟, 南蘇城一家爲國烟. 新來韓穢, 沙水城國烟一看烟一, 牟婁城二家爲看烟, 豆比鴨岑韓五家爲]看烟, 勾牟客頭二家爲看烟, 求底韓一家爲看烟, 舍城韓穢國烟三看烟卄一, 古[模]耶羅城一家爲看烟,] [炅]古城國烟一看烟三, 客賢韓一家爲看烟, 阿旦城, 雜珍城合十家爲看烟, 巴奴城韓九家爲看烟, 臼模盧]城四家爲看烟, 各模盧城二家爲看烟, 牟水城三家爲看烟, 幹 利城國烟一看烟三, 彌[鄒*]城國烟一看烟,]# 七 也利城三家爲看烟, 豆奴城國烟一看烟二, 奧利城國烟一看烟八, 須鄒城國烟二看烟五, 百]殘南居韓國烟一看烟五, 太山韓城六家爲看烟, 農賣城國烟一看烟七, 閏奴城國烟二看烟卄二, 古牟婁]城國烟二看烟八, 城國烟一看烟八, 味城六家爲看烟, 就咨城五家爲看烟, 穰城卄四家爲看烟, 散那]城一家爲國烟, 那旦城一家爲看烟, 勾牟城一家爲看烟, 於利城八家爲看烟, 比利城三家爲看烟, 細城三]家爲看烟.國 上廣開土境好太王, 存時敎言, 祖王先王, 但敎取遠近舊民, 守墓掃, 吾慮舊民轉當羸劣.]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 掃. 言敎如此, 是以如敎令, 取韓穢二百卄家. 慮]其不知法則, 復取舊民一百十家. 合新舊守墓戶, 國烟 看烟三百, 都合三百 家.自上祖先王以來, 墓上]不安石碑, 致使守墓人烟戶差錯. 唯國 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王, 墓上立碑, 銘其烟戶, 不令差錯.] 又制, 守墓人, 自今以後, 不得更相轉賣, 雖有富足之者, 亦不得擅買, 其有違令, 賣者刑之, 買人制令守墓之.

 

출처 : http://mtcha.com.ne.kr/korea-term/goguryo/term9-goanggaitodaoang.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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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鞑备录(몽달비록)  (0) 2007.11.13

 

블로그 버스는 한국으로 따지면 이글루스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 드는 중국의 블로그 서비스 제공 업체입니다. 해당 업체가 어느덧 5주년을 맞이하였군요. 사실 블로그 버스는 그 규모가 조금 작기는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매우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서로간의 교류도 많고 말이죠.

 

http://www.blogbus.com

 

재미있는 점은 5주년 기념 행사로 블로그 버스 이용자들 중에 10명만을 뽑아서 행사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해당 이용자들에게는 교통비와 식비 및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죠. 그 외의 분들은 참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 분들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롭게 참가하게 하면 될 것이지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이죠.

 

중국은 넓습니다. 드럽게 넓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도 3~4시간은 거의 기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같이 자유롭고 편하게 전국의 사용자들이여 모여라!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물론 각각의 성(이것만 해도 한국 크기보다 크답니다.)에서 번개가 모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전국 모임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행사 참가인원을 제한하다보니, 행사가 개최되는 지방에 있는 블로거들에게도 참가를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싶이 되어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교통비나 기타 비용을 지원해 줄 사용자를 뽑는 것은 좋지만, 자유롭게 자비로 참가할 사용자를 신청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돈이 많거나! 해당 지역에 사는 블로거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또한 반대로 한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것 고민 하지 않고, 번개다! 이러면 부산에서도 KTX 타고 올라가서 참가해도 되는 한국의 상황은 분명히 중국에 비하여 매우 훌륭한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당 사항으로 인하여 사용자들과 운영자들간의 거리를 쉽게 좁힐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미 몇몇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지만, 회사를 자유롭게 공개하고 사용자들이 올 수 있게 하는 방식은 한국과 같은 조건에서 행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장로 개념이 있습니다. 블로그 버스의 글들은 여러가지 카테고리로 분리되어있습니다. 그러한 각각의 카테고리에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뽑은 사용자 대표가 있습니다. 장로는 해당 채널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나 의견을 운영자에게 전달할 경우 그 중간자 역할을 합니다.  사용자들의 참여나 사용자들과의 교류, 또 운영의 자율성등등을 생각하면 매우 배울만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글루스나 티스토리와 같은 블로그 서비스 업체 이외에도, 올블로그나 블로그코리와 같은 블로그메타 싸이트들도 위와 같은 방식을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정치와 같은 민감한 분야에 대해서는 한명의 장로가 아닌 숫자를 늘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만...이것은 응용일뿐 해당 방식 자체의 장점을 잘 생각해보시고 적용해 보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상 원나라시기의 결혼제도에 대해서 수업을 들으면서 심심해서 주절주절해본 바로였습니다. (해당 시기에는 아버지의 첩이나 형의 마눌님을 제 마눌로 만들려는 일이 많았죠. 혹은 동생이나 아들의 여자를 취하기도 했답니다. 수집혼이라는 것인데... 물론 원래 한족의 전통으로는 생각도 하지 못할 문제이지만 몽고족의 영향으로 사회에서 많이 벌어진 일이랍니다......또한 원나라의 법도 이미 결혼을 해버리고 아들딸까지 낳아버리면 굳이 둘을 헤어지게 못하였답니다. 이건 거의 머...일단 먹고(으응?!) 싸지르면(음;;) 만사 ok!라는 소리군요....후후후...로망이군요-_-?!;;  으응?!::: )



QQ拼音输入法

직접 사용해 보실 분은 : http://im.qq.com/qqpinyin/

혹자가 본인에게 중국 인터넷 시장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기업이 어디냐고 한다면, 본인은 망설이지 않고 QQ을 일순위로 놓을 것이다. 바이두도 근 60%을 차지하는 검색 서비스이지만, 아무리 그리하여도 QQ의 90%이상의 점유율을 따라올 수는 없다. 또한 매일 매일 쓰는 메신져와 보통은 거의 쓰지 않는 검색 서비스간의 영향력은 당연히 QQ가 더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QQ에서 드.디.어. 중국어 입력기를 발표했다. 사실 그 동안 명색이 중국을 주름잡는 채팅 프로그램이면서 어째서 자기 만의 중국어 입력기가 없었는지 궁금하였는데 드디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기능은 보이지 않는다. 빠른 입력이라던지 인터넷과의 데이타교환따구는 이미 예전부터 나온 기능이다. 사실 속도나 완성도를 보려면 직접 사용해야겠지만, 본인 이것저것 많이도 까는 QQ와는 조금 멀리 떨어지고 싶은 사람인지라 곧 올라올 중국 유져의 리뷰를 기다려 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요즘 QQ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생전 처음 중국어 입력기를 내놓고, 조금 있으면 XXX도 서비스 하는 것들을 보아서는 QQ가 슬슬 마음을 독하게 먹고 기존의 채팅에 부속되어있었던 "포털"식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한국의 네이버와 비슷한 방향으로 갈 듯 하긴 한데...워낙에 중국의 어마어마한 사용자를 잡고 있는 QQ인지라 망하기도 어렵기는 하지만, 어설픈 네이버식 발전모델은 중국시장에서 그리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질듯 싶지 않다.

일단 지켜보자. 점유율 90%이상은 운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QQ의 다음 행보는 그 만큼이나 중국 IT의 현실을 보여주니까!
......근데 난 QQ가 네이버 만큼이나 싫다....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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