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제국주의에 충성해야 된다.
2) 천황폐하의 말씀을 따라라.
3) 너희는 모자란 백성들이니 우리를 따라야 한다.
4) 이제부터 모든 한국식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다.
5) 이제 너희는 일본 사람이다.

1) 개신교가 절대적인 진리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라.
3) 그들은 지금 많이 힘든 상황이니 우리가 도와주어야 된다.
4) 이제부터 이슬람을 믿지 말고, 기독교를 믿어라.
5) 이제 너는 하나님의 자식이니라.

....아무 생각 없이 써 내려갔는데....참....하하하...웃어야죠.....
더 이상 말 안하겠습니다. 설마 가능할까?라면서 써내려간건데 나름 재미있네요.
...가능했다는 점에서 한숨이 나옵니다...후...



예수천국불신지옥을 머리에 얹으셔서 유명스타가 되신 두타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죠. "상대가 원할 때 해주는 것이 베푸는 일이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도와주겠다는 것은 내 욕심을 채우는 일이다."



개신교 분들. 지금 현재의 정복형 선교는 어떻게 보아도 문제가 있습니다. 선교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개신교외의 다른 진리를 추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주시겠습니까?

최소한 이슬람은 개신교와 같은 신을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그 교리와 성경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원론적으로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좀 이해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비록 저는 무교이지만, 지금까지 행한 개신교의 "꾸밈없고 깨끗한" 봉사활동을 알고, 그것에 참가해봤기에 드리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라고 하지만 마시고 조금은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조언까지 무시하신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포고는 무자비하고, 강압적이다. 그들은 반드시 하느님을 믿어야만 세상이 구원이 되고, 자신이 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의 자유가 있고, 믿을 권리 만큼의 믿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들은 하느님에 나라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서 설득하고, 협박한다. 그래도 믿지 아니한다면 포기해도 좋으련만, 그네들 식의 표현으로는 “그들도 같이 하느님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계속 된 회유를 한다.

 

미안하지만,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교회라는 곳을 좋아할 없다. 친가는 기독교에서 장로를 맡고 계신 분이 명이나 있고, 외가는 비구니 스님에 불교회화를 하시는 이모까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철학교수인 아버지의 철학과 도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온 나에게 하나의 종교를 믿으라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라는 소리와 같다. 나에게는 이미 너무나 자연스러운 종교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말은 이런 이야기를 때마다 인용하게 되는 아버지의 명언으로 요약된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좋다고 생각하고, 부처님의 말씀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믿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서, 이성적으로 나를 설득시켜주었으면 한다. 내가 교회보다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 뿐이다. 교회에는 무조건적으로 비이성적으로 한가지 원리를 먼저 세뇌시키려 한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라는 절대적인 말이다.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것을 증명하려는 어떠한 행위조차 없다. 단지 말일뿐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묻는다.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아라. 그리고 그를 믿는 자들이 행복한지 증명해 보아라. 무엇보다 영원히 평안한 천국이라는 곳을 증명해 보아라 말에 제대로 대답해 기독교 관계자는 아직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뿐이다. 믿어라! 그래서 나는 교회보다 불교가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스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다. “나도 몰라서 알려고 한다.”. 자신의 모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와 모름을 긍정하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불교 중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할 밖에 없는지는 너무나 간단하다.

 

만약 이성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감정으로 받아 들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겠다. 내가 싫은 것을 어떻게 하나? 싫다. 싫다. 무조건 싫다. 감정적으로 전혀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받는 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생활하고 생각하는 모습에 이미 지쳐있다. 아닌 사람들도 있다고?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너무나 따르는 사람도 있다. 어디까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혹은 말씀을 인도하는 목사들의 대부분이 제대로 하는 모습부터 보여라. 그럼 믿고 따라 줄지도 모른다. 개판을 치면서 무슨 할말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어찌 보면 쓸데 없을지도 모르는 이런 말들을 계속 줄줄 늘어놓는 나로서는, 종교를 믿는 다는 것은 맹신밖에 되지 않으며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는 바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행복하게 웃기만 하는 데에도 인생은 짦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너무나 힘들다.

 

교회는 나에게 감옥이다. 속에서 나는 고문을 받고 있다. 그들은 계속 외친다. “믿어라. 믿어라. 믿어라.” 하지만 죽이는 것이 빠를 것이다. 나는 믿지 아니한다.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믿지 않는다. 맹신하지 않는다. 그것을 만들고 행하는 자,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무엇보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고 하느님에게 빌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시험에 들고, 고뇌에 빠져서 속에서 웃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야 말로 현실이고 지옥이며, 천국인 것을

그네들의 말을 돌려주어야 겠다. "믿음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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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서 어디로 가는가? 곡차를 배부르게 마시는 중은 땡중 인가? 아니면 도를 쌓고 있는 것인가? 불교 기독교를 떠나서, 모든 종교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일까? 네 앞의 부처를 죽이고, 네 안에 예수를 죽여야 그 어떤 것이 웃을까?

 고시와 술을 먹는 땡중은 나를 북경이라 부르며 혼을 낸다. 예수든 부처든 땡중이건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물론 나도 어떤 것을, 닿지 않을 수평선의 끝을 향해 방황하는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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