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님이 제대로 생각을 말해주시거나 혹은 실수한 것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군서치요를 기준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하시는군요.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군요. 

1) 군서치요 자체의 문제
일단 군서치요 자체의 해석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언급하신 군서치요를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治要>作“還自遗咎”
그런데 소하님은 해석을 해석을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遺. "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잘못 쓰신 것이라고 하여서,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还." 라고 하여도 遗 자체가 해석이 없는 것은 동일합니다. 물론 의역이라시니 그럴 수 있다고 넘겨봅시다.

그런데 군서치요를 따를 생각이셨으면, 당연히 군서치요에 대한 언급을 해주셨어야 된다고 봅니다. 한글자...한 획을 가지고 목숨거는 것이 고문작업인데, 글자 하나가 빠지고, 다른 글자가 들어오는 상당히 큰 변동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점은 고문작업에서 기본적인 일을 빼놓으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2) 군서치요의 판본적합성 문제
군서치요는 중국 당나라 정관(貞觀) 5년(631)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이 문제냐? 보통 고문의 고증이나 해석할 때 가장 큰 문제가 판본문제이고, 조금이라도 과거에 가까운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후 학자들의 주석들도 중요하긴 합니다만...군서치요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예외 중에 예외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다른 판본을 보도록 하죠.

《老子》郭店楚簡甲本 : [ㄓ/木]而浧之,不不若已。湍而群之,不可長保也。金玉浧室,莫能獸也。貴福喬,自遺咎也。攻述身退,天之道也。

《老子》甲本 : [才直]而盈之,不●●●。●●●●,不可長葆(保)之。金玉盈室,莫之守也。貴富而〔馬高〕(驕),自遺咎也。功述(遂)身芮(退),天●●●。

《老子》乙本 : [才直]而盈之,不若亓已。[才短](揣)而兌(銳)之,不可長葆(保)也。金玉●室,莫之能守也。貴富而驕,自遺咎也。功遂身退,天之道也。

《老子想爾注》 : 持而滿之,不若其已;揣(ㄔㄨㄞˇ)而悅之,不可長寶。金玉滿室,莫之能守;富貴而驕,自遺咎。名成功遂身退,天之道。

기본적으로 "還"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군서치요가 정확하다고 하신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별 할말은 없습니다만(그것 자체야 개인의 해석문제이니..) 기본적인 주류의 생각 자체를 명기하지 않은 것은 기본적인 고문해석 원칙과 그리 부합한다고 보기는 힘들듯 합니다. 특히 해당 글이 고문해석의 원칙을 강조하고 제대로 원칙을 지키지 않는 글을 비판하는 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식의 해석과 설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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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느낌은 [취미생활/책이야기] - 그림자 자국 - 첫 독후감과의 큰 변화는 없다. 그의 필체는 분명히 마음에 들고, 여전했지만...단지 여전할 뿐이었다. 너무 큰 기대를 했기에 실망한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 글은 1차독후감을 쓰고 4번을 다시 읽고서 쓰는 글이다. 글에 대한 내용보다는 잡상 위주이다.)


1. 역시 도가 분위기로 가는 듯 하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는 비상도이다.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의 도가 분위기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 통치술 자체로서는 유가가 흥행했다고 하지만(솔직히 말해서 유가로 위장한 법가라는 것이 정확한 말이겠지만...) 특히 위진남북조시기에 선비들과 일반인들에게 도가가 널리 퍼지게 된다. 누가 한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유가의 덕으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도가의 수양으로..."

특히 도가는 그 특유의 현학성으로 인하여 예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영도의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나 도가적인 냄새가 많이 느껴진다. 그가 시골에 쳐 박혀서 있었기 때문일까? 사실 그 전에도 상당히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이번만큼은 아닌것 같다.

특히 중간중간에 나오는 "무"와 무에서 유가 되는 부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도덕경의 한 부분과도 같았다. 물론 이것은 그의 작품이 실망스럽다는 것의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이유일 것이다. 단지 한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조차도 쓰기 싫어했고, 쓰자마자 곧장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영도씨도 혹시..........안돼!! -0-!


2. 침버의 추리소설
초를 만드는 소년이 주인공인 이 추리소설....머....팬들에 의해서 조만간 만들어질듯하다. 혹은 본인이 모르는데 이미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혹시 관련 정보를 아시면 공유 좀~~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범인은 영주의 아들이다!" 일려나~~


3. 프림양......
나의 프림양이 이렇게 삭막하게 변하다니.....나의 프림양! 안돼!!! 펫시한테 물들은 거야? 그런거야? 그건 아닐거 같고...왜 그래?! 당신의 유쾌함은 누가 도둑질한거지? ㅠㅠ


4. 미리 말하지만 전 변태가 아닙니다만...
그러고 보니 그게 궁금했습니다. 드래곤은 인간이 아니지요. 하지만 변신하면 인간이 하는 짓도 대부분 다 할 수 있지요. 그럼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하면 섹스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종의 경계를 넘어서 후손을 볼 수 있을까요? 판타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겠지만...드레곤라자의 세계에는 아직 그런 경우는.....

무엇보다 만약 인간으로 변신한 드래곤이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인간을 강간한다면 그것은 수간일까요? 아니면 강간일까요? 혹은 종이 다르므로 아무런 문제도 안될까요?.....으음.....다시 말하지만 전 변태가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요.


이상. 오늘의 날씨였습니다 -0-;;


격물치지님이 좋은 블로거가 되는 방법, 맹자의 4단 을 보고 상당히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패러디 할려고 합니다. 유가쪽을 이야기 하셨으니 전 도가쪽으로 해보렵니다. 도덕경은 도가의 시초가 되는 경전입니다. 3000여자밖에 되지 않지만, 그 난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 제 멋대로 해보렵니다. 일단 원문을 보시죠^^ (원문 읽기 싫으시면 뛰어넘으셔도 무방합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며 둘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미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의 常은 영원불변이 아닌 변화의 지속인 영원일 뿐, 영원불변은 인간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의 도는 천도의 근원으로서 천지의 운행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킨다. 그래서 도는 천지보다도 먼저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imy.com.ne.kr/noja/noja1_10.html

 

해당 부분은 도덕경의 시작부분입니다.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라" 라는 유명한 문장이지요. 뜻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로 느껴지시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전혀 이해가 안됩니다. 해석이야 되지만 이해는 전혀 안됩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블로그에 도입시킬 수 있는 제 맘대로의 해석을 준비했습니다.

 

블로그를 블로그라고 한다면 그것은 블로그가 아니다.
블로그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사람은 세상의 처음이고 블로그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이 블로그에 투영되는 것이고,
글을 읽는 것은 블로그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다.

사람과 블로그는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며, 같은 도리이고,
도리 중의 도리이며, 진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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