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위엔(勺园)은 북경대학교 외국인 기숙사로 쓰이고 있으며, 현재 북경대학교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온갖 추억이 새겨져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정작 샤오위엔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 모든 사진은 저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마음대로 퍼가실 수는 있으나 출처명시는 꼭 해주시기 바랍니다.

봄의 샤오위엔, 올림픽이라고 하얀칠을 했다.



샤오위엔은 명말의 저명한 화가였던 미만종(米万钟1570~1631)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명말청초의 북방의 유명한 원림(园林)중에 하나였다. 샤오위엔이라는 이름은 "淀水滥觞一勺"에서 왔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억지로 번역을 한다면 "연못의 물이 술잔에 넘치도록 한 술(勺)을 뜨다" 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경대학교가 있는

《勺园修禊图》

곳의 환경을 알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했지만, 사실 현재 북경대학교가 있는 하이디엔취(海淀区)는 연못들이 곳곳에 있는 물천지였다.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 곳에 별장을 지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 최초로 온 서방사절단이 바로 이 샤오위엔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건륭(乾隆)58년, 영국 조지2세가 보낸 마카트니(Macartney)는 처음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나오는 열하(热河)에 있다가 원명원으로 돌아온 건륭제를 따라서 와서 바로 이 샤오위엔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뒤로 집현원(集贤院)으로 개명하고 고관대신들의 휴식처나 외국 사절들을 접대하는 장소 혹은 고위급외국포로를 가두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이 샤오위엔은 1868년 원명원이 팔국연합군에 의해서 불태워질 때 같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 《勺园修禊图》을 기본으로하여 복원을 하였다. 북경대학교 차동차전용 서문에서 들어오면 왼쪽에 보이는 곳이 바로 복원된 샤오위엔이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오토바이등을 놔두거나 연인들의 비밀데이트 장소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샤오위엔은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져서 북경대학교로 오는 외국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각주:1]. 현재까지도 대외한어교육의 대부분은 샤오위엔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유학생사무실도 샤오위엔에 남아 있다.

샤오위엔은 공공욕실로서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뜨거운 물이 나온다. 화장실도 공공화장실이며 매일 청소를 하고 있으나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빨래는 공용세탁기가 있으나 이미 오래되어서 너무 드럽고, 보통은 다른 학생들이 개인으로 혹은 공동으로 구입한 세탁기를 몰래 빌려쓰고는 한다. 물론 그런 세탁기들도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상당히 더럽다.

방은 2인 1실이 기본이며, 관리 선생님과 잘 말하면 혼자서 방을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2명분의 방값을 내야하며, 현재 기숙사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왠만한 친분으로는 이렇게 하기 힘들다.무엇보다 현재 샤오위엔의 유학생 중에서 70%가 한국인이다. 그러다보니 샤오위엔 뒤쪽에 있는 식당도 한국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그 동안 몇 번 주인이 변했지만 말이다.

샤오위엔 정문에 앉보지 않았던 북대생은 손~~!


샤오위엔의 정취라고 한다면 정문 입구일 것이다. 이 곳에서 자유롭게 앉아서 서로 이야기했던 기억들은 북경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있는 추억이다.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서 새로운 기숙사가 들어왔고(북경대 新유학생기숙사 완전해부), 새로운 기숙사가 완전히 만들어지면 유학생들이 샤오위엔을 떠나야된다는 소리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경대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샤오위엔은 언제나 고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올림픽이라고 하얀칠 하기 전의 사진이다.


눈 내리는 어느 날의 샤오위엔.

2008년 9월 신입생


2009년 9월 신입생



잡담 : ....약속한 날이어서 쓰기 싫은거 적당히 썻습니다. 사진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짜증나는군요-_-;;;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 사진 넣는 것을 극도록 싫어합니다. 이제 다음은 一塔湖图인데...이 부분의 사진은 최대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1. 혹자는 과거에 샤오위엔이 중국석박사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본인의 조사 결과 그런 일은 없었다. [본문으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었습니다. 역사과인것이 조금은 후회스러웠습니다. 책을 놔둘 곳이 없어서 침대에 쌓아두고 웅크리고 자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습니다. 쌓여 있는 책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을 깊게 잘 수 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다참다 결국 책장 3개를 들여놨습니다.



책은 일단 밀어넣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 정리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백배는 좋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과거의 난장판을 보여드리는 것이겠지만...안타깝게도 그 난장판 사진이 없군요. 그 때의 제 방을 아시는 분은 정말 "깔끔해"졌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혹은 "그나마 사람이 살만해 졌다"라고 표현하는 분도 있군요. 그 당시의 방은 그냥 여기저기 책들이 널려 있었고, 룸메이트의 책장까지 제 책들이 침투해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어찌되었든 이제는 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 있는 책들은 계속 그쪽에 있어야 될 듯 하군요. 여유공간이 좀 생겨서 그쪽에서 몇십권정도는 가지고 올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이런 책들의 난립을 보고도 제 방에 들어오고 싶다는 녀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녀석은 그나마 정리된 지금의 방이 아닌, 난장판의 과거의 방도 보았는데 말이지요. 음;;; 이해가 안됩니다;;;;;;




유학생 기숙사에 들어가기가 워낙 힘이 든답니다.
그러나 드디어 해냈습니다. 운땡입니다!


사실 이미 학교 밖에 집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학교까지는 1시간거리...대학교때는 매일매일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투잡이 대세인 시대에 투홈으로 가자!! (이건 아닌가--)

학교 기숙사 금액은 한달에 약 900원. 한국돈으로 12만원정도입니다.
이제 석사도 되었는데 그정도 사치는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매달 교통비만 600원정도인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음하하하!!!! 투홈 생활 고고!!!


작원 2호동 323호...후후후...-_-+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