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의 한 호수에는 아주 유명한 누각이 있다. 바둑에서 이겼다는 의미인 승기(勝棋)라는 이름이 붙은 이 누각은 명조(明朝)의 대장군 허달(徐達)이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에게서 바둑을 이겨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노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야사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허달은 결코 주원장을 이기지 않았다. 오히려 주원장은 게임 내내 허달을 압도하였고, 게임도 일방적인 주원장의 승리였다. 다만 허달은 바둑판에 "만세(萬歲)"라는 글씨를 만들었고, 누각은 물론이고 주원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주원장이나 허달 모두가 시골출신인데 바둑과 같은 고급취미에 익숙할 리가 없다. 누가 이기든 신기할 것은 없는 것이다. 다만 고향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대장군 허달 따위가 황제 주원장을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허달이 주원장과의 바둑에서 정말로 "승리"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예술에 흥미가 있는 인간이다. 절대적인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기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예술에 시간을 쓰게 된다. 오케스트라를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를 부를 수 있고, 미술작품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모나리자를 가지고 와서 자기 방에 걸어둘 수 있다.

그러나 황제는 세계상에서 가장 성깔이 더러운 예술가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뮤지션이나 예술가들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은 어찌어찌 이해를 하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대신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은 결코 참지 못한다. 황제는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기에 자기가 최고인줄 알기 때문이다.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라고 알려진 등전(鄧展)을 이긴 것을 너무나 기뻐하며 역사서에 기록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당대 최고의 검객이었다는 등전이 전쟁에서 후방지휘나 하던 조비에게 지겠는가? 등전이 마음만 먹었다면 조비 따위는 한 칼에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조비가 누구인가! 당대 최고의 권력자 조조(曹操)의 후계자이지 않는가! 등전은 현명한 패배를 선택 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자. 황제도 아닌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당대 최고의 검객이 일부러 지는 판인데 황제랑 공평하게 경쟁을 하겠다고?! 그 따위 것은 올림픽 경기장에서나 해라.



수양제(隋煬帝)는 스스로 천제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설도형(薛道衡)이나 왕주(王胄)와 같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멍청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개뿔도 모르고 수양제 앞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고 만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쪼잔한 황제는 별 거지 같은 이유로 그들의 목을 댕강하고 날려버린다. 그리고서는 "또 그 잘난 시를 써보시지"라는 밴댕이 소갈딱지에 어울리는 명언을 남긴다.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권력자를 이기는 것은 자기 목숨을 날리는 짓이다. 뭐? 그럼 너의 능력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당신의 자존심이 중요한가? 아니면 목숨이 중요한가?



주의해야될 것은 이겨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쉽게 져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아슬아슬하게 지는 것이 중요하다. 황제나 당신이나 모두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황제가 당신보다 조금 더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황제는 기분이 좋고, 당신은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을 뿐더러 황제가 기쁨에 젖어 하사하는 선물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적당히 질 수 없을 것 같으면 아예 그 자리를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국시대의 진무왕(秦武王)은 지금으로 따지면 역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하루는 진나라 최고의 역사라는 오획(乌获)와 임비(任鄙)그리고 맹설(孟说)을 불러서 역기시합을 하자고 하였다.


오획과 임비는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참가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를 피했지만, 맹설은 겁도 없이 대왕과 역기시합을 진행했다. 문제는 진무왕이 역기 시합 도중 역기에 깔려서 죽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맹설은 자기 뿐만이 아니라 가족까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쯤하면 다들 이해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황제에게나 대신에게나 바둑이나 예술은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당신이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면 어디까지나 본업에서 능력을 보여주면 된다. 굳이 취미생활에서 목숨을 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냥 "참가에 의의"을 두어라.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막번역)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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