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구라쟁이다. 나는 마약도 해봤고, 창녀랑도 자보았다.”

범죄자의 자기 고백도 아니고, 소설의 내용도 아니다. 왕쓔어라는 중국의 유명한 작가가 펑황TV 프로그램에서 내뱉는 말들이다. 이른바 문화 지식인이라고 평가 받는 작가가 TV라는 공공성이 강한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발언을 해도 되는 것일까? 그것도 한두번도 아니고 번의 방송이 폭탄과 같다면 어떻게 생각해야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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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是一个浑身恶习的人,我知道这些人是怎么回事,我不感到自豪,我不光荣,我受过公安机关处理,我小时候进过公安局。吸毒也别跟我吹牛!你以为能寒碜得了我!我也嫖过娼!接触过性工作者,都是最好的人,都比小知识分子要好,内心要干净的多、善良得多!

나는 내가 어떤 개새끼인지 안다. 나는 자신이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다. 어렸을 때는 경찰서에 끌려가서 처벌도 받아봤다. 마약 역시 나한테 구라까지 마라. 그런거 가지고 창피해 할거 같나! 창녀랑도 자봤다고!  내가 만났던 성매매자들은 최고의 사람들이었어,  지랄 같은 지식인들의 검은 마음보다야 백배는 깨끗하고 착해!” – 완전 내맘대로 의역라라라-_

 

 

중국 네티즌들은 일들로 인하여 말들이 많다. “왕슈어는 미쳤다””왕슈어야 말로 시대에 제대로 지식인이다””아이들에게 영향을 생각해야 것이 아닌가!””저런 비합법적인 일을 했다고 방송에서 말했는데, 창녀와 것은 6개월 안에 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처벌이 안되고, 마약의 경우는 일정량 이상을 복용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으면 역시 처벌하기가 힘들다등등등

 

한국이었으면 당장에 퇴출될 수도 있는 이런 발언에 이런 논쟁이 붙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최소한 방송에서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한다. 방송이라는 이유로, 공적이라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숨기고 거짓된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방송에서 가면을 인형들의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왕슈어의 말이 문제가 수도 있지만, 친구와 술자리에서 하면서 저런 이야기 정도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방송하고 술자리하고 다른가 같은가?

 

일을 생각하다 보면, 한국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이 난다. 물론 무한도전에도 설정과 같은 어느 정도의 가면이 있다. 하지만 설정을 했다는 자체를 속이지 않고 당당하게 장난처럼 이야기 하는 그들. 그러기에 3% 열악했던 시청률이 지금의 빛나는 20% 넘는 시청률로 변한 것이 아닐까? 중국 땅에서 느린 인터넷 속도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무한 도전을 최단 시간내에 다운 받아서 밤을 새며 번이고 다시 보는 이유가 아닐까? 솔직함.

 

 

자기 자신을 미친개라고 말하는 왕슈어. 그리고 그의 솔직함에 이끌리는 팬들.

자기 지신을 리얼버라이어티라고 말하는 무한도전. 그리고 그에 열광하는 팬들.

본질 속에는 모두 솔직함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 원문으로 보고 싶은 분은 http://vip.bokee.com/249158.html 에서.....

사람들은 누구나가 각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설령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연인에게도 자신의 마지막 남은 가면은 벗지 못하고 본인의 모습을 감추는 겁쟁이들이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대리만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본연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가면벗기기를 소설, 영화, 연극등을 통해서 대리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었던 것은 아닐까?


출처 : <a href='http://blog.naver.com/gemini71/80001379661' target=_blank>호이의 있는그대로 </a>



1) 무한 카타리시스...
인터넷이라는 한 가지의 도구가 등장함으로서 우리의 대리만족의 범위가 극한으로 넓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가면벗기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서 가면벗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에 인간이 처음으로 접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가면벗기"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그 가면 벗기는 완전히 자신을 공개하고 행하는 가면 벗기가 아닌 익명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곧 다른 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관음증(다른 사람의 가면벗기를 관찰)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2) 아날로그로의 향수...
사람들은 이제 가면벗기를 시도하지만, 예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영웅과 바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며 거부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익명성과 반대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싸이월드의 일촌과 네이버 이웃이라는 개념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실명성제도이다. 간단히 생각하여, 싸이월드에서는 서로가 실제 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온라인에서 재접촉을 하게 된다. 즉, 이미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기에 그들은 결코 자신의 가면을 벗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면벗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전통의 편안함에 행복할 수 있다.



3) 민족의 가면...
민족성 논란만큼이나 복잡하고 애매하며 혼란스러운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국이라는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만을 가지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출처 : <a href=' http://www.mask.org/' target=_blank>하회동 탈박물관 </a><br />



한국이라는 곳의 전통문화는 효도와 충성으로 구성되어있고, 군대와 같이 계층적통치구조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보조기구이다. 이런 전통문화 속에서 서민들은 "하회탈 마당"이라고 하는 놀이 형식으로 양반들의 부조리를 비웃으며 희화적으로 표현했었던 것이다.

물론 한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가면들도 어느 정도의 사회비판의 기능이 있었던 것들도 있지만, 서양의 가면은 스스로 즐기기 위함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중국의 가면도 그 사람으로 분장시킨다는 기능이 더 많을 뿐, 사회비판적 측면에서는 가면의 역활이 뛰어나게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가면이라고 함은 샤먼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귀신 혹은 영혼과의 대화를 위한 보조도구의 기능이 있으며, 우리는 가면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특수한 문화양태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동시에 하회탈과 같이 생활같이 익숙하게도 받아들이는 모순적인 부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도 인터넷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하회탈이 그러하였듯이 자신을 감춤으로 해서 더욱 강력하고 개방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비평하고 있다.


4) 자유와 책임의 경계에서...
문제는 익명성을 악용함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펌이라는 형식을 빌린 저작권 도단도용행위, 아무렇게나 내뱉은 욕설과 비방,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마구잡이의 행동들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다.

익명성을 발언의 자유를 극대화 시키는 도구라고 정의했을 때,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동등하게 지불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자유와 책임에 관한 오래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자유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 라는 애매모호한 정의로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익명성의 특성상 그에 따른 책임자를 색별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런 이유로 책임을 강조하기 전의 책임자의 색별자체가 상당히 힘들고, 각각의 사용자들의 스스로 익명성의 책임을 지키고, 다른 사용자에게 전파해야된다라는 애매모호하고 책임성이 없는 대안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대안은 네티켓을 지키라는 말로서 그 생명력을 얻어왔고, 그 네티켓의 책임범위는 각각의 사용자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현재에 이것에 대한 유일한 대안을 골라내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특히 인터넷처럼 성문법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공공적 처벌이 관습법(...)에 의해서 시행되는 곳에서는 대안을 찾아내기가 더욱 힘들다.그렇다고 성문화 된 법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처음 시도된 스스로에 의한 가면벗기에 반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기본 원칙 속에서 그 어두운 면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지금 현재로서는 필요악의 개념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5) 진정한 자유를 향해서...
인간은 인터넷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가면벗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행위의 결과로 인류가 더욱 안 좋은 쪽으로 향할지, 아니면 자신의 가면벗기를 완료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가 힘들다.

사람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자신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사람은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자신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자신과 대등한 상대를 죽여요.
- 이영도님의 <피를 마시는 새>중에서...

끝까지 확신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은 인간이 악의보다 선의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 조그마한 차이를 믿고 언젠가 대등한 존재를 자신처럼 받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필수요소이며, 가면 벗기를 그 과정의 일부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지막 부끄러움이자 방패인 가면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나 자신조차도 많이 의심스럽다. 지구의 시계에서 고작 4초만은 차지하고 있다는 인류는 아직은 변화를 위한 활기와 용기가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바로의 중얼중얼
익명성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정리했습니다. 조금 산만한 기운이 없지 않지만, 그냥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봐도 논리적인 헛점은 미루어두고, 일단 제대로 된 대안제시조차 못하고 얼버무린 것이 많군요. 죄송합니다.

이넘의 라틴어를 끝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집중해서 끝맺음을 하기 힘들군요. 다음주에는 삽질하러(알바하러) 가야 되서 조금은 괴롭습니다. 하루에 최소 한편은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30일까지는 다 적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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