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전을 현대의 화폐와 동일하게 취급해야되는가? 본인은 부정적이다. 명도전은 어디까지나 물물교환이라는 법칙 속에서 좀 더 편하게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뿐이 아닐까? 혹은..단순한 부장품용 단검모형일수도...명도전에 영향을 주었다는 북방민족의 첨수도(尖首刀)을 보아도 명도전을 현대의 화폐라고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결국 당시의 물물교환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그 모양이 된 것은 단순히 만들어왔고, 보관이 편하다는 이유가 아닐까?최치원은 아찬이 아니었다. 증거1)承务郎 (从八品下) -> 殿中侍御史(从七品下)-> 侍御史(从六品下)->(阿湌-從三品)-> 守兵部侍郞(正四品下)-> 朝請大夫(从五品上) 그의 글에 남아있는 직관과 품계. 딱봐도 확 튀는 아찬의 종삼품.최치원은 아찬이 아니었다. 증거 2) 承務郞侍御史內供奉 賜紫金魚袋 --> 그의 당나라시기에 绯银鱼袋였음. 留爲侍讀兼翰林學士 守兵部侍郞 知瑞書監--> 그는 먼 훗날에나 守兵部侍郞를 받음. 그외의 다양한 이유로 삼국사기 최치원전을 못믿겠음.최원은 아찬이 아니었다. 증거3) 그가 스스로 쓴 비문들에 아찬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음. 유일하게 아찬이라고 알려진 삼국사기는 爲致遠密贊祖業 따위의 헛소리나 하고 있음으로 믿을 수가 없음. 그런 이유로 그가 아찬을 받았다는 것은 가능성이 낮아보임."최치원은 아찬이 아니었다"를 대충 휘갈리면서 느낀건데..트워터는 정말 장문에 안 어울리고, 본인 습관은 장문이라는것. 140자의 제약은 어떻게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최우선인 상당한 수준의 도전;;최치원이 아찬이 아니었다. 반박) 품계는 당제를 참고하였다. 만약 당시의 신라의 품계가 당제와 많이 달랐다면 증거1)는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증거2)의 경우도 어디까지나 방증일뿐이다....본인이 논하고 본인이 반박하고;;;; 레폿 써야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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