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강단은 2001년 7월 9일 부터 CCTV-10에서 방영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강좌프로그램이다. 보통 강좌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예능에서 2위라는 막강한 시청율과 문화, 생물, 의학, 경제, 역사를 넘나드는 폭넓은 주제 선정과 수준 높은 강의[각주:1]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곧 10년이 되어가는 백가강단은 수 많은 학자스타를 만들었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삼국연의 전문가 이중텐(易中天)이라던지 일반인으로서 논어해석을 한 위딴(于丹)과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백가강단은 기본적으로 강의를 잘 하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게 한다. 그래서 전문성 시비가 일어나지만 그래도 일반 대중에게는 "어렵고 복잡한 말을 쉽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스타 학자라고 해봐야 김용옥씨 정도이다. 그 외에 스타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던가? 인기가 있는 강의프로그램이 있는가? 미안하지만 본인으로서는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태가 본인으로서는 한국학계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용옥씨의 강의 내용은 어느 정도 깊이가 없다[각주:2].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학술토론회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한국학계에서는 김용옥씨를 이단아로 취급을 한다. 그리고는 상아탑에 움크리고는 인문학이 죽었다고 중얼거린다.

문제는 소위 말하는 지식인이자 학자로서의 책임이자 의무을 생각하면 대중을 내팽겨치는 이런 행동은 어이가 없는 것이다. 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하는 것만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나누었을 때 비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문학계는 대중과 함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일어날 때가 되었다.


인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면서 상아탑에 움크리지 마라! 나와서 대중과 얼굴을 마주하라!
한국 대중은 지식에 굶주렸다. 강의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서 스타로 만들어라! 시청율 보장!
마지막으로 스타 강사의 학문수준에 대해서 꿍시렁 거리지 말고 공개강의로 진검승부 하라!


* 역시 아까 글을 쓸 때도 느껴지만...오늘은 정말 글을 쓸 날이 아닌듯...글이 마음에 안 들어...그리고 이로서 하루에 글 우르르 써 놓고 천천히 올린다는 것을 은근히 말하고 있음.하루에 글 하나 올린다는 것이 스스로의 약속인지라 이런 편법을^^::: 원래는 후다닥 한 일주일분을 만드는데 오늘은 두편에서 끝. 아무래도 느낌이...느낌이;;;


반재봉님을 위한 易中天品三国全集

  1. 수준 높은 강의에서는 사실 이견이 좀 많이 있습니다. 강의자체는 잘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깊이가 별로 없는 사람들도 좀 많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사실 본인으로서도 잡을 수 있는 오류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건 비전공자들에게는 별 의미도 없고, 말의 맥락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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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madism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대학원 과정을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면 한국의 대학원 교육 과정에서는 사실상 '교육자'로서의 훈련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연구자로서의 훈련만 (이마저도 얼만큼 철저하게?) 시키다보니 학위를 가지고 나가보면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하고 어떤 식으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할 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죠...

    P.S. 넥서스원 질렀습니다 :-P

    2010.01.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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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말을 하면 보통 "니 공부부터 제대로 해라"라는 소리를 듣더군요. 그런데 "가르치는 것"도 해야될 공부가 아닌가 싶답니다. 쩝-_

      P.S을 보면 .....대체 누가 nomadism님의 전공을 추측할 수 있을까요?...못할 겁니다.-_-;;;;;;;;; 사용기 올려주셔요ㅠㅠ

      2010.01.08 18:36 신고
  2. Favicon of http://jayb4show.egloos.com BlogIcon 반재봉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가강단 아직도 하는 군요 !!!!!!!!!!!!!!!!!!!!!!!!
    이중톈 선생의 핀인루를 원서로 구했는데.. 국내에선 영상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쩝

    오늘도 트랙백 슬쩍 해보고 갑니다 (_ _ ) 항상 감사드립니다 :]

    2010.01.08 15:22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수정/삭제

      흐음..........아래분도 말했지만 몇몇 개는 케이블에서 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언제 할지 모르는 것을 기다리긴 힘들겠죠? ^^::

      아래 주소들은 당나귀나 프루나 혹은 VeryCD에 직접 입력하여 다운받으면 됩니다. 易中天的品三国입니다.

      -- 덧글에서는 에러가 나는군요. 본문 아래쪽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전 이중텐 교수을 상당히 비판합니다. 그의 학문적인 수준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그는 중문과출신으로 스스로는 역사학적 방법론을 도입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인 것을-_-;; 머..그래도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적당한 수준으로 쉽게 전달하는 능력자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박수를 보냅니다.

      2010.01.08 18:44 신고
    • Favicon of https://tali.tistory.com BlogIcon 타리  수정/삭제

      헐 중문과 출신이었군요
      그런데 보통화 발음이 영....

      2017.10.28 13:58 신고
  3. 흔들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가강단, 최근에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것을 시청한 적 있습니다. 이중톈 님께서 삼국지 강의하는 것을 더빙을 해서 자막과 함께 풀어나가는 식으로요. 우연히 채널 돌리다 보게 되었는데 평소 삼국지에 흥미가 있던터라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어요. 케이블에서 가끔 인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는데 법률방송에서 하는 인문학 방송은 저같은 문외한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더군요. 하지만 확실히 보급되긴 힘든 주제가 많았던지라.

    2010.01.08 17:50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수정/삭제

      보급되기 힘들것을 걱정해야될 것은 "지식인"들이죠. 스스로 연구한 것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지를 고민해야지요.

      제 대학 1학년 1학기 중국고대사수업은 阎步克선생님이 맡으셨었답니다. 학문적으로도 유명한 분이시지만, 그 당시 수업은 정말 쉽고도 재미있었습니다.(시험은 심히 그지 같았으니까요. 문제 중에 하나는 아직도 기억나는군요 "동한시대 외척과 환관간의 권력투쟁을 서술하시오"....그냥 동한 정치사를 다 쓰라고 하시지-_)

      각설하고 이 분의 수업은 쉽고 재미있었을 뿐만이 아닙니다. 그분이 하셨던 수업 내용들은 지금에 와서 "아! 그때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라고 계속 떠오르더군요. 사실 그 수업은 저희 학교뿐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精品课程"으로 뽑히는 수업이긴 합니다;; 하하;;;

      그런 수업이 공중파에 많이 생기길 바랄 뿐입니다.

      2010.01.08 18:56 신고
  4. 찌아무마르셀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백가강단은 하고 있나보군요.

    근데 백가강단이 현 중국인문학계의 바로미터라면 그게 바로 중국학계가 세계에서 홀대받는 이유겠죠. 위에서도 잠깐 회의 섞인 언급을 하셨지만 말입니다.

    한국도 8,90년대 공중파에서 도올 뿐 아니라 홍수관, 구성애씨 등 사회적 사안별로 스타강사를 탄생시켜가며 강연 열풍이 불었었지만 다 사그라들었죠. 하지만 이걸 단순히 방송사의 상업성추구로의 문제로만 치환하신다면 그건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일이겠죠.

    유럽 역시 공중파에서의 강연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찾아보기가 힘들죠. 저는 그 이유를 쟝 보들리야르가 주장한 바 있는 사회적 경제학에서의 교환가치의 함열로 전치된 기호가치로 소비되는 시물라ㅋ르를 언급하고 싶네요. 대중이 소비하길 원하는 지식 역시 상품화가 가능하지만 그 지식상품 자체만을 사는게 아니라 그 지식상품의 환상 역시 같이 구매한다는 겁니다.
    곧 남들이 다같이 공유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는거죠. 언제나 그렇듯이 중국인문학교수 분들이 미국사회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소스 중의 하나가 바로 knowledge gap 이론이거든요. (중국말로는 기억이 안나네요) 문젠 중국사회야 말로 knowlegde gap은 교묘하게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백가강단 같은 프로그램을 통한 불순한 '계몽'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죠. 과연 중국공민들이 원하는 '교양'이란게 중국고대사 아님 홍루몽 해석 같은 것들일까요?

    진정한 공중의 교양의식의 함양은 그 교양의 목표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입니다. 백가강단 같은건 단지 교묘한 저지전략에 불과한것이거든요.

    2010.01.09 13:20
    • Favicon of https://www.ddokbaro.com BlogIcon 바로바로  수정/삭제

      1) 백가강단은 중국학문의 표준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백가강단은 학술목적인 아닌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님처럼 분명히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중국학계의 바로미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한국학계의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래쪽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2) 언급하신대로 진정한 공공교육은 그 양과 질 뿐만이 아니라, 그 선택의 자유까지도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제한된 양과 질조차 없는 한국에 비한다면 과연 마냥 비판할 수 있을 수는 없군요.(90년대의 도올등의 인물과 같은 단발식과 동등한 비교를 하시면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문은 깊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대중성도 추구하여야 합니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소위 한국의 학계는 대중성을 무시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학문적으로 알아주느냐? 글쎄요.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한국학계에는 골동품상과 보따리상만이 있다. 골동품을 질리도록 우려먹거나 해외의 지식을 그냥 보따리로 싸들고 와서 풀어버릴 뿐이다."

      이 한마디로 현재 한국학계의 전반적인 사정이 정리가 된다고 봅니다. 대중성도 없고, 전문성도 없이 다만 자신들만의 리그 속에서 도토리 키재기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누구도 감히 공중파에 참가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 대단한 실력도 없고, 실력이 어느정도 있어도 윗어른으로부터 "날뛴다"라는 소리나 "공부나 열심히 해라"정도의 소리나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중을 위한 강좌나 프로그램이나는 개념자체가 희박하거나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처음에 언급한대로 분명히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이며, 학술포럼이 아닌 프로그램으로 중국학문 수준을 이야기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공공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선택할 것 자체가 없는 것보다는 더 좋기 때문에 한국학계는 정신 좀 차려야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저의 결론이고, 제가 학문에 관심을 잃어가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2010.01.09 16:02 신고
  5. 찌아무마르셀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제말을 잘못 이해하신듯한데(아마 오해를 하시게하 저의 책임이겠죠.) 백가강단에 등장하는 텍스트가 중국인문학의 표상이란게 아니라 백가강단으로 인민의 지적 요구를 '계몽'화하려는 촌스러운 시도를 비판한거랍니다. 위에서 말씀하신대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온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라는 거지요. 미디어 사상사 내에서 보여지는 레닌주의의 흔적이랄까요? 과연 이 백가강단에서 사과연의 범위를 벗어난 담론의 창출이 가능해보이지는 않는군요.

    저도 학부는 한국에서 졸업했읍니다만 유럽에서 다른 전공으로 도전을 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한국교수분들이라든지 덕 볼일은 없어보입니다만 한국학계 비판이 너무 나가셨네요. 어짜피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에 비하면 수십년은 낙후된게 인문학환경이고 그나마 넉넉한 출판물과 다양한 베이스 인프라를 지닌 일본보단 못하다지만 과연 한국학계가 중국학계에 비교당할 레벨일까요? 양과 질에서 빵점 수준이라고 열심히 강변하신 한국학계에서 예를 들어 전남대 김상봉 교수 정도로 칸트 강의하시는 중국교수분은 본적이 없네요.

    그리고 유럽, 특히 한국학계의 모체라고 불릴만한 독일학계에서는 '날뛴다',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는 소리 안할까요? 오히려 한국보다 더욱더 가혹하게 세세한 방법론까지 통제하는게 이쪽 영감님들 교수법인데요. (한가지 확실한건 적어도 중국처럼 모순론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거 같군요.중국 있을때 중국학계 덕분에 모순론이랑 양명학과 모더니즘 비교 같이 '아주' 유용한 것들 잘 배웠습니다.)

    학문에 국경이 없고 이런 식의 비교가 부적절하다는거 알면서 열을 올린 이유를 정리해보면

    1) 기본적으로 학문의 목적성 자체를 강조하는 비상식적인 중국학계와 한국학계의 비교.

    2)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맨땅에 헤딩하며 이룩한 한국의 학문적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가치절하

    이 정도라고 볼 수 있을거 같군요.

    PS. 학문의 대중성이라는거 단순히 공중파 출연만으로 증명되는 가치가 아닙니다. 시중서점에 출판된 텍스트를 비교해보시죠.

    2010.01.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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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해가 아닌 오해.
      죄송하지만 제가 오해를 한것은 아닌듯하군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백가강단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 한국학계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계몽은 차라리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 계몽조차 안하는 "나태한 지식인"들인것입니다. 한국의

      그리고 위에서 말한 "고물상과 보따리상"은 위에서도 언급하였짐나 제가 말 한 것이 아닌 한국학계에 있는 그것도 원로급인물이 한 이야기입니다. 또 모든 학자가 다 쓰레기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별로 많이 나갔다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 다음을 바라보아야됩니다. 물론 저는 기본적으로 중국학과 관련된 부분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님과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볼때 님은 서양철학전공이신듯 하군요. (그러나 간트가 주류가 아닌 중국에서 간트 강의라는 특정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부터 서양철학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은근히 묻어나는듯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


      2) 님의 생각에 대한 저만의 망상
      님의 생각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한국학계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왜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한국학계는 중국학계와 충분히 비교당할만 합니다. 아니 기본적으로 동양철학의 경우 현재의 대륙이 아닌 타이완에 대스승들이 있었고, 현재 한국의 중국학계열 모두가 이곳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학의 주류는 중국대륙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현재 흐름에 대한 기본적이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저는 한국학계가 양과 질에서 빵점이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대중을 위한 지식인들의 노력은 양과 질에서 빵점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반세기 맨땅 헤딩이면 중국은 대충따져도 100년이 넘는 헤딩과정입니다. 몇 년이 걸렸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확실한 시스템이고 현재의 모습이 어떤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중국시스템이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시스템은 중국시스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차라리 중국에서는 낡아빠진 계몽의식이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것 조차 없는 것입니다.



      3) 출판계 간략비교
      마지막으로 출판계으로 가면 한국은 더 한심해진답니다. 시중서점텍스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의 역사관련의 최소 1/4은 이른바 환빠로 종교단체와 연합을 하여서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인문학도 실질적으로 자비출판이 기본이 되어가는 추세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중국의 경우 中华书局와 上海古籍등등 비록 요즘 비판을 많이 받지만 아직 죽지 않은 전통의 명문출판사들을 거느리며 고서적의 정리출판뿐만이 아니라 대중서적들까지 설렵하고 있습니다. 이런 출판사들은 중국의 학자들이 평생에 한번만이라도 해당 출판사을 통해 출판하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출판사들입니다. 이런것들을 제외하고 그냥 출판부수나 출판종류로 따져도 한국시장과 상대가 안됩니다. 양은 제외하고 질로 가보도록 하죠.

      간단한 예로 중화서국의 고적주석본은 기본적으로 세계학계의 기준입니다. 더 극단적인 비교로 가면 최치원의 계원필경주석정리본은 중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한국은 아직도 없습니다.-_) 기본적인 서양권서적은 이미 사실상 번역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화도 UI부분 빼고는 내용과 질에서는 한국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반칙입니다. 기본적인 인구가 다르다보니 출판시장 자체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러나 님이 출판시장을 언급을 하시기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결례가 될 수 있는 말이지만, 님의 경우 중국에서 어느 정도 있기는 하신듯하지만 중국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시지 못하였다고 봅니다. 아마 중국어실력이 어느 정도 모자라신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어느 학교에 있으셨는지 궁금하군요. 단순히 학계에만 참가한 것이라면....중국의 학계에서 하는 말, 특히 국제학회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이 천편일률적인 말입니다(언급하신 중국정부에서 강요하는 목적성 덕분에...) "학문"을 알려면 석박사수업을 들어야됩니다.


      4) 계몽이라도 했으면...
      결론적으로 계몽이라도 하라는게 제 의견입니다. 그리고 같은 의견을 한국교수님들 앞에서도 그대로 말했었고, 앞으로도 말을 할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술토론이 아닌 "재미있는 지식"인 것입니다. 이 점을 까먹은 한국학계가 죽어나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2010.01.09 20:37 신고
  6. 찌아무마르셀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아, 어짜피 바로님은 중국유학파이시고 중국에 대한 의견은 제가 얘기한다고 바뀌어질리가 만무하지만 제가 중국에서 들고 공부하던 교재들, 예를 들어 PR 같은 경우 가장 널리 사용되어지는 인민대 츨판본 텍스트가 한국에서 78년도에 발간된 이화여대 출판본인 <PR론>보다 양과 질에서 떨어지더군요. 미디어 사상사, 미술사, 국제커뮤니케이션 등의 기타 교재등은 말할 것도 없더군요. 이거 쓴 사람의 피상적인 이해도와 편협된(상당한 내셔널리즘이 양념된) 시각으로는 과연 저자가 교수인지 연구생인지 학부생 리포트 발췌작인지 도저히 감이 안 올 정도로요.

    실제로 (저는 바로님의 P대학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의 Q대학을 다녔읍니다만) 석사연구생들과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말이죠, 아주 심각한 결함을 발견했거든요. 교수고 학생이고 간에 아주 심각한 로컬리제이션의 덫에 꽁꽁 묶여있더군요. 호환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어보이더군요. 신문전공에서 보편적인 소통이론 및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보다 루쉰,후쓰에 중점을 두는 교수방침이 아직도 이해가 안가거든요. 위에서 말씀드린 모순론은 정말 농담이 아닙니다. 한국학계도 그닥 할말은 없지만서도 적어도 철학사의 흐름이라도 파악하신다면 칸트가 중국 인문학계의 주류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는 없으실거 같네요. 비유해보자면 칸트의 연구수준은 전세계 공통의 각 인문학계의 맥도날드 빅맥지수입니다.

    각설하고 시중에 출판된 중국의 텍스트가 질과 양에서 한국의 것을 능가한다라 ... 좀 어폐가 있으신거 같네요. 하긴 역사서, 특히 고대역사서는 쏟아져 내리게 많았습니다만 제가 찾던 미학 및 현대사상 관련 인문서적은 중국에서 코빼기도 안보이더군요. (물론 한국에서는 쉽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계몽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을 말씀하셨지만 이 계몽이란거 아주 위험한 물건이란거 아시지 않나요? 공산당 산하 사과연이라도 없으면 그래도 굳이 용인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제가 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공중파를 타는 계몽의 시도는 이미 한국시장에서 시장원리에 의해 퇴출당한 매커니즘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적어도 시장경제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중이 원하면 그 망부석 교수님들이 얼마든지 쉽고 재미있는 대중을 위한 텍스트 발간에 매진할겁니다. 대중이 원하는 학구적 욕망의 실체가 모호한 단계에서 백가강단으로 수요를 조작할 수 없는게 한국의 오늘이거든요. 적어도 두번의 민주화 혁명과 정권교체를 이룬 한국의 사회적 시스템을 중화인민공화국의 그것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면 어폐가 있겠죠?

    그리고 바로님께서 기분이 좀 나쁘실수 있으시겠지만 중국 밖의 세상은 아직 파악하신게 미흡하시진 않을까요?

    2010.01.10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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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야? 독선?
      서로 전공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니 현실파악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일단 저는 대학교부터 해외에 있었던 해외파입니다. 그러나 저의 특수한 사정으로 한국학계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에 오래 있어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가 말한 내용은 지금 저는 현재 한국학계원로급의 말을 인용하였고, 위쪽의 덧글에는 한국에서 석사까지 현재는 미국에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 외에 제가 만나는 많은 국적의 학자와 학도들의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수결이 언제나 맞지는 않지만, 오히려 님이야 말로 독선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청화대의 인문학???;;
      그리고 청화대에서 인문학 수업이라니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하였지만 청화대의 인문학 수준은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비록 공과대에서 종합대학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며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잇지만, 인문학과가 그런 석으로 쉽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시리라 봅니다. 또한 언급하신 신문전공은 더 심합니다. 현재 청화대 신문전공에 있는 친구녀석이 북경대 수업과 비교하면서 "공산당 신방일꾼 세뇌소"라고 했습니다. 이 한마디로 이해되시리라 봅니다.

      결론적으로 청화대을 기준으로 인문학이야기를 전개하시는 것 자체가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시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혹시나 해서 계셨던 학교를 물어보았는데 역시나군요.....)


      3) 칸트가 맥도널드?
      죄송하지만 전 모르겠군요.물론 칸트는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칸트연구수준을 가지고 맥도널드지수라고 하며 서양철학기준으로 전체 철학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현재 철학의 흐름은 과거의 서양철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이라고 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서양철학과는 "다른 사유과정"을 보이는 동양철학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누가 더 위대하다느니 대단하다느니가 아니고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위의 덧글에서도 밝혔다 싶이 서양철학이 당연히 기본이라고만 보고 있습니다. 사유의 시작과 과정 자체가 다른 동양철학을 서양철학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칸트가 맥도널드지수이며 세계인문학의 지표라는 것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비유를 하자면 "맥도널드는 그냥 패스트푸드일 뿐이며, 각국의 전통음식은 그것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역사학계에 있는 저로서는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군요.


      4) 출판계
      역시나 중국어 실력이나 출판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듯합니다. 현재 중국에 쏟아져 나오는 서양서적의 번역판의 양과 질은 한국을 훌쩍 뛰어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인구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학의 경우는 제대로 책을 못 찾으신 것이겠고, 현대사상에서는 아직도 마르크스에 얾매어 있어서 일정한 한계가 있어 자체적인 연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서양쪽의 관련 서적의 번역들은 거의 실시간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의 경우 어디까지나 철학. 그 중에서도 자신의 전공에 한정되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인문학의 기본인 문사철을 중심으로 넓게 생각하여야 되는 것이 기본이라고 봅니다.그리고 바로 문사철의 기본 중에서 중문학과 역사가 강력하게 남아 있으며, 철학에서는 타이완이 가지고 있던 동양철학 주도권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기본중에 기본인 고문들을 그냥 많았다라고 묘사하시는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헌정리작업과 같은 것은 언어와 역사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하 작업인 것입니다.

      (오히려 중국에서 어느 정도 철학을 접하셨으면서 고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 아쉽군요. 고문에 대한 이해 없이 중국철학을 왜 어떻게 공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중국철학을 배울 생각이 없이 왜 중국에 오셨는지부터가 사실 이해가 안됩니다.)


      5) 계몽과 대중
      저와는 분석이 다릅니다. 한국시장은 시장원리로 "대중을 위한 교육자"가 부족하였기에 공중파강의가 지속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계몽은 위험합니다. 이 부분은 계속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님의 경우 정치적 민주화와 학문적 민주화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두가지는 크게는 같은 흐름으로 가지만 분명히 다른 부분입니다.

      현재 한국의 학문적 민주화. 다시 말해서 일반 대중의 학문에 대한 접근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한가지 묻겠습니다. 대중이 학문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현재 한국에 무엇이 있습니까? 출판계는 고사직전이고, 방송쪽에서도 이렇다할 강좌가 없습니다. 다만 지방대학에서 돈벌이 용으로 만든 인터넷강좌 몇 개만이 유일한 길일뿐입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시장경제논리를 그대로 학문에 투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일단 시장경제에 의해서 대중이 원하면 출판을 하겠다는 생각자체가 학문이 존재이유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합니다. 시장경제에 의해서 유행에 따라서 출판을 하는 것이 학문입니까? 그렇게 유행에 따라서 출판을 한 결과 실제로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하여서 인문학출판계는 고사되고 있고, 시장경제논리에 충실하게 "대중을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을 하는 학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환빠계가 역사쪽 출판계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또한 동북공정으로 고구려가 화제가 되면 비전공자들까지 우르르 몰려들어서 함량미달인 책을 출판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도 시장경제여서 학문도 유행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언급은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한국학계에서는 학문의 "연구적 목적"과 "공공지식으로의 목적"이라는 두가지 중요목적에서 연구적 목적만을 강요하는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중국의 "계몽"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한국학계가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아무래도 오해를 하시는듯 한데, 저는 중국학계의 "계몽"식 패러다임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만 "계몽"이라는 구시대적 "공공지식으로서의 학문"패러다임조차 없는 한국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2010.01.10 11:14 신고
  7. 찌아무마르셀라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아 ... 제가 중국어 전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로님이 중국으로 넘어오신 연도에 저도 중국어를 시작했고 지금은 만료된 상황이지만 수평고시급수도 공부한만큼은 나왔더랬죠. 무엇보다 중국어로 수업듣고 고문을 제외한 원서텍스트 해독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은 없었던 기억입니다. 물론 중국이란 나라에 인생을 거신 바로님에 비기기야 하겠읍닊만은 말ㅇ죠.

    뭐 차근차근 하나씩 반론을 제기해보자면,

    1. 아무리 부인하려해도 칸트라는 거대한 뿌리가 이루어낸 서구의 모더니즘에 발을 뺄 수 없는게 현재 우리의 사유체계입니다. 동양철학의 독자성을 강조하시지만 글쎄요 ... 동양철학은 원초적 미메시스의 복원을 위한 하나의 대안에 불과하달까요? 공리주의, 공화정, 진보에의 믿음 등 칸트에 베이스를 둔 이성적 합리주의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대안은 동양철학은 이와 같은 수준으로 드러내 보인적이 없습니다. 내적인 완결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칸트주의에 비할 윤리적 베이스 역시 부재하지요.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일본,중국의 동양철학도들은 더 이상 오백년전 그들의 선조가 보았던 그 시선으로 고전의 텍스트를 보지 않는단거겠죠. 과연 그들의 사유구조는 어떠한 방법으로 구축되었을까요?

    신림동 모대학에서 성리학 연구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이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영역본으로 학부 때 다 정리했었더군요. 합리주의든 실존주의든 구조주의든 청학동 댕기동자가 아닌 이상 어떠한 경우에도 서구철학적 사유에 기반한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칸트라는 큰 줄기로부터의 반론과 재반론으로 이룩된 사유의 시스템이란 점입니다. 헤겔왕국 한국학계도 면구스럽긴 마찬가지이지만 칸트연구의 부족함은 해당학계의 철학적 베이스의 결핍을 드러내는 하나의 인덱스로 기능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2. 중국에 있을 당시 제가 찾던 출판물들입니다. (대충 생각나는 것들만 ... )

    중심의 힘 ............ 루돌프 아른하임
    이마쥬 .............. 쟈크 오몽
    에끄랑 토탈 ....... 쟝 보들리야르
    중성 ................ 롤랑 바르뜨
    이미지 기호 ........ 끄리스띠앙 메츠

    마지막 한 권은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아 불어판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나머진 종로 교보문고서가에서 구입했네요. 신화서점에 지금 나와있을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3. 학문적 계몽의 시도는 정치적인 해석자의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수요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학문적인 계몽의 시도가 과연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바로님 말씀처럼 KBS에서 대중교양을 위한 강좌로 주5일, 각 90분씩 통크게 편성을 했다고 가정하자궈요. 여기서 무엇을 주제로 선정할 것인가 누구를 강연자로 초빙할것인가 강의방향은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의 5W 1H의 모든 문제가 엄밀히 말해보자면 정치적 신화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미 민주화가 상당부분 진전되고 그만큼 수요의 다양성으로 연결된 한국사회에서 이런 일방적인 하향식 계몽이 먹힐 단계는 이미 지나간걸로 보입니다. 이미 군대에서 주1일 정신교육 경험해 보시지 않았나요?

    반면 대중이 원하는 지식에의 욕구는 단순히 환빠역사서적 정도로만 치환할 일이 아니거든요. 물론 환빠역사로망스도 문제지만 이런 과도기를 지나 진정한 학문습득적인 욕구에 불타오르는 매니아층이 자발적으로 생깁니다. 이 기제는 제가 위의 댓글에서 말씀드린 지식의 기호가치상품으로의 시물라르크란겁니다. 이 때, 이들이 원하는 방향은 물론 미디어의 게이트키퍼가 작용하겠지만 적어도 사과연으로부터 조작된 수요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이 될걸로 확신합ㄴ다. 지금까지 이게 앞서간 민주공화국에서의 발전패턴이었고 한국 역시 이 궤도에서 벗어날거같아보이진 않네요. 대중들이 이런 상황 하에서 각 테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지는 추후의 문제겠지요.

    바로님이 지적하시는 공공재로서의 학문개념은 피하론적 관점으로 해결될일이 아닙니다. 쁠랑들의 유기적인 흐름 안에서 자연히 극복될 문제이고 단지 이를 지연시키는 외적요인들에 대하 비판이면 모를까 대중계몽에 대한 미흡한 인식을 문제로 한국학계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건 언어도단이라 생각하거든요.

    2010.01.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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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전 중국이라는 나라에 인생은 건 적 없습니다. 위의 덧글에서도 계속 비슷한 뉘앙스를 말씀하시는데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국어 수업을 듣고 고문외의 원서텍스트 해독에 어려움이 없었다니...참고로 11급도 그 같은 수준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평준적으로 일정이상의 실력이지만 수업을 완전 이해하는건 힘듭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를 다시 해주시기 바랍니다.


      1) 칸트와 서구 모더니즘.
      저는 서양철학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어린 시절부터 칸트를 비롯한 서양철학책을 읽었습니다. 현재의 기본철학기류는 분명 서양철학입니다. 그러나 님처럼 서양철학만을 기반으로 동양철학을 단순한 보충물로 보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현재 서양철학은 막다른 골목에 말려들었습니다. 합리주의든 실존주의든 구조주의든 서구철학은 그 특유의 "이분법"으로 인하여 한계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서양철학사를 공부하며 지금까지의 발전을 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설정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동양철학은 그 나름의 행동규칙이 있고, 그것은 현재시점에서 재해석할 필요는 있지만, 그 자체로 뒤떨어진다거나 서양철학의 일개 도구로 판단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와 님은 기본적으로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기에 더 이야기해보았자 소용은 없을 듯 합니다. 다만 고문을 보지 못하시면서 중국철학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려고 하거나 이해를 하셨다고 생각하신다면 추후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서양철학을 하시니 이 문제는 크게 없을듯 하지만 걱정이 되어서 조언을 해봅니다.



      2) 출판물은 원문제목을 적어주셨으면 좋겠군요. 한국식제목을 적어두시면 곤란합니다. 귀찮아서 맨 위에 있는 "중심의 힘"만 검색했습니다. 중국에서는 1991년에 이미 나온 책입니다. 님을 무시할 의도는 아니지만, 그냥 님이 책을 못 찾으신 겁니다. 참고로 중국제목은 "中心的力量--视觉艺术构图研究 "이며, 스캔버젼까지 있습니다.

      조언을 해드리면 중국에서 오프라인에서 책을 구하실려면 신화서점보다는 中关村의 서점가로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북경대 내부에는 따로 전공서전문서점들이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몇 군데가 있지만, 孔夫子http://www.kongfz.com/ 을 추천해드립니다.


      3) 한국에서의 지식의 민주화.
      3.1. 수요는 이미 충분하다.
      일단 수요에 대한 판단부터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저는 수요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합니다. 문제는 수요자가 요구하는 요구치를 학계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몇 번을 반복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은 학술토론이 아닌 "쉽고 간단하며 재미있으면서 유익한 내용"입니다.

      3.2. 정치성은 어차피 배제할 수 없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제선택부터 강연자초빙까지 정치적인 판단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두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3.2.1.한국의 학계는 정치적인 편향성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비성숙해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저도 이미 한국의 학계는 정치적인 편향성을 극복할 정도의 성숙도는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 판단은 계속 개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정치적 판단을 학문적으로 최대한 중립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3.2.2.지식 습득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가? 현재 님이 말씀하시는것은 지식에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투영되어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 단계이자 사전적인 고민은 바로 "기회"자체입니다. 현재 한국에 대중적인 "지식 획득 기회"자체가 있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획득기회에 대한 학계의 생각이 부정적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님만 해도 "진정한 학문습득적인 욕구에 불타오르는 매니아층"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 자체가 이미 "대중"을 떠났다는 소리가 됩니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목적대상은 매니아층이 아닌 일반 대중입니다. 님과 같은 인식자체를 겨냥하는 것은 결코 언어도단이 아니라고 보며, 정확한 현실분석이라고 봅니다.


      3.3. 일방적인 계몽은 이미 불가능하다.
      방송매체를 통한 강의에 피드백이 불가능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충분한 피드백이 가능합니다. 강의가 단방향이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공공매체를 통한 강의와 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형성되고,인터넷을 통한 토론의 장이 마련됩니다.

      심지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계몽성이 강한 중국에서조차 위의 과정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습니다.(아직 한참 멀었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한국에서는 공공매체를 통한 강의로 사회적인 인식을 형성조차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공매체가 아닌 다른 방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3.4. 대안
      그래서 제가 내놓은 실천대안 대안은 방송매체를 통한 공공강좌의 확대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 대안의 실현을 위한 대전재는 대중을 위한 학문으로의 한국학계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학계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요를 만족시켜줄 공급처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제외한 외적요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그렇기에 한국 학계에 그만 상아탑에서 벗어나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010.01.10 14:50 신고
  8. 甜橙树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글만 봐도 재밌네요. ^^;

    두분 다 말씀에 일리가 있어요. ㅎㅎ

    일단 근본적으로 두분의 영역이 달라서 접점 찾기가 쉽지 않네요.

    출판 상황, 백가강단의 시도에 대한 바로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한편, 찌아무마르셀라님의 철학사상측면에 대한 견해에도 공감가네요.

    서양철학의 자체 반성과 동양철학으로의 집중이 이뤄진다해도 그 베이스는 철저히 서양철학 안에서 이뤄지며, 칸트라는 존재 자체가 사실 빅맥지수 만큼이나 바로미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빅맥지수 언급이 상업성측면이 아닌 보편적 중요성을 말하는 만큼.)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ㅎㅎ

    2010.12.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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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IT의 융합을 추구하는 디지털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취미생활을 통하여 박학을 추구하는 잡학입니다. 개인적인 문의는 제 메일(ddokbaro@g메일.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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