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곳에 한 그루 교목(喬木)이 있었는데, 그 나무 아래에는 항상 천상의 선녀(仙女) 한 사람이 내려와 있었다. 선녀는 그 목신(木神)의 정기로 잉태하여 한 미남자를 낳았다. 목신의 아들이므로 그를 목(木) 도령이라고 불렀다.

 목 도령이 칠팔 세 되었을 때, 선녀가 천상으로 돌아가 버리자, 큰 비가 몇 달 동안 계속 내려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다. 교목이 넘어지면서 목 도령에게,

 "어서 내 등에 올라타거라."

하였다. 목 도령은 그 나무를 타고 정처 없이 표류(漂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목 도령은 목신에게 부탁하여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 떼와 모기의 떼를 구출해 주었다. 개미 떼와 모기 떼를 싣고 지향 없이 가는 교목을 향하여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 도령과 같은 연배의 남자였다. 목 도령이 이 사람을 구해 주려고 하였지만 교목은 반대하였다.

 "사람은 구하지 말아라."

고 하였다. 그러나 목 도령은 아버지인 교목에게 애원하여 그 남자를 구해 주었다. 그때에 교목은 말했다.

 "너의 애원을 못 이겨 구해 주었지만, 다음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으리라."

 교목은 마침내 어느 조그만 섬에 표착(漂着)하게 되었다. 홍수로 인하여 모든 세상이 물에 잠겼으나 오직 이 높은 봉우리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두 아이는 그 섬에 내렸다. 개미와 모기들은 목 도령에게 치사(致謝)하고 각각 제 갈 곳으로 가 버렸다.

두 아이는 그 섬에 단 하나 있는 일간 두옥(一間斗屋)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한 노파와 두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 처녀는 또한 두 아이와 동년배였는데, 한 처녀는 노파의 친딸이었고 다른 처녀는 그 집의 수양딸이었다.

 비가 그치고 홍수는 물러갔으나, 산 아래 세상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노파의 집에서 사는 동안 두 쌍의 소년 소녀는 성년기에 이르렀다. 노파는 이들을 부부로 하여 세상에 인종(人種)을 퍼뜨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두 청년이 서로 수양딸을 취함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파는 고심하였다.

 하루는 구조된 청년이 친딸을 차지하기 위한 모략으로 노파에게 가만히 말하였다.

 "목 도령은 한 섬의 좁쌀을 모래밭에 흘리더라도, 순식간에 그 좁쌀을 모래 하나 섞이지 않게 도로 주워 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주는 좀처럼 친한 사람이 아니면 보이지 아니합니다."

 노파는 그 신기한 재주를 보고 싶어 목 도령에게 청하였다. 목 도령은 그런 재주가 없다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다른 청년의 말을 믿고 목 도령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며 크게 노(怒)하였다. 그래서 그 재주를 보여 주지 않으면 딸을 주지 않겠다고 하였다.

목 도령은 할 수 없이 한 섬의 좁쌀을 모래밭에 흩어 놓고 그것을 들여다 보며 탄식만 하고 있었다. 그 때 난데없이 개미 떼가 와서 좁쌀을 하나씩 입에 물어다가 원래의 섬에 넣었다. 순식간에 좁쌀은 모래 한 알 섞이지 않고 원래의 한 섬이 되었다.

 개미 떼는 저희 갈 곳으로 가고 저녁때가 되어 노파는 다른 청년을 데리고 모래밭에 나타났다. 노파는 감탄하면서 친딸을 목 도령에게 시집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다른 청년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노파는 한 계책을 세웠다. 어느 어두운 밤에 노파는 두 청년을 밖으로 내보내고 두 처녀를 동쪽과 서쪽의 두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리고 두 청년에게 서로 들어가고 싶은 방에 들어가서 배필을 취하라고 하였다.

 그때 한 마리의 모기가 목 도령의 귀 옆으로 지나가면서, '동쪽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목 도령은 그 말대로 하여 노파의 친딸을 얻게 되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 두 쌍의 부부의 자손이라고 한다.

출처 : http://www.ojirap.com/technote/read.cgi?board=sulhwa&y_number=9


해당 이야기는 손진태(孙晋泰)의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 동경 東京 향토연구사 鄕土硏究社, 1930에 수록되어 있다 손진태의 연구에 따르면 해당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삼국시대 오나라 三国时代 吴】강증회 康僧会가 집필한  <육도집경六度集經>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이야기에서는 나무가 모체로 등장하지 앟는 것으로 보았을 때, 나무 숭배 사상이 한반도에 존재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일정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인다.

사실 본인도 본과졸업논문으로 솟대(神竿)에 대해서 쓴 것과 같이 한반도에는 오래전 부터 우주나무에 대한 숭배가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우주나무 숭배가 중국대륙에서 유입이 되었느냐. 아니면 북방계열을 통해서 유입이 되었느냐. 혹은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일단 나무도령(목도령)의 이야기는 육도집경의 이야기가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한국의 토착문화에 녹아든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해당 불경이 이야기가 오나라에서 먼저 나무숭배사상이 있어서 변형이 된 후에 유입되었을 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나라 사람이 집필을 하였다면 변형된 것을 집필했을 가능성이 높고, 중국대륙에서의 나무숭배는 하늘에 대한 숭배측면이 약하다는 것(본인 본과졸업논문에서 언급) 그러나 귀찮아서 구제적인 사례는 패스....어차피 이건 내 잡담인걸....하하하;;;)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솟대나 나무숭배가 북방민족을 통해서 전래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중앙아시아 일대에 더 오래된 나무숭배 사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유입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목도령(나무도령)설화는 북방유목민족의 나무숭배사상의 영향 속에 있었던 한반도에 육도집경에 포함되어 있는 인도계(혹은 중국계)설화가 전래되면서 기존의 나무숭배사상과 융합이 되어서 만들어진 설화이다.


사실 여기서 글이 끝나야 정상이지만...
위의 글로서 말하고 싶은 것을 대놓고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한반도의 문화는 중국대륙의 문화외에도 북방유목계열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한마디로 다문화라는 소리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에 쓸데 없는 단일민족주의로 외부의 문화에 대한 탄력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중국의 어떤 논문을 보다가 목도령 설화라는 것을 보고서야. 서둘러 위의 내용을 찾아보았다. 본인이 어릴 때에 저런 설화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혹시 어린 시절 목도령(나무도령) 설화를 들어보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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