邑落有豪民民下户皆為奴僕(宋本-殿本)
邑落有豪民名下户皆為奴僕(汲古阁本)
(《三国志》卷30 魏书30 列传30 东夷传 扶余条)

위의 내용은 부여의 지배구조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표점을 찍을 것인가인데, 개인적인 의견을 밝혀본다.

기존의 학설은 王-诸加-豪民-民=下户-奴僕로 파악한다. 하지만 이는 皆為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皆為은 "앞의 사항이 모두 뒤와 같다"라는 의미로서 민이나 하호를 모두 노예로 파악해야 정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 박경철은 당시의 자유민으로서의 민의 존재여부를 고도의 군사수행능력과 소정의 외교-행정능력은 물론 사법제도까지 운용하고 있는 국가로서 엄존하고 있었다는 이유로서 민의 존재여부를 강조한다. 그래서..

邑落有豪民, 民, 下户皆為奴僕

본인은 박경철의 견해에 대해서 심히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이 역시 皆為와 연관시켜 보면 이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皆為은 "앞의 다양한 항목들을" 통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철이와 순이는 모두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나는 모두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은 어디까지나 단수이고 복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송호정의 의견이 더욱 사실에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송호정은

汲古阁本판은 취해서 邑落有豪民, 名下户皆為奴僕 로 분석한다. 개인적으로 民은 어디까지나 名의 오기가 아닐까 생각된다.(이에 대해서는 차후 더욱 구체적으로 봐야겠지만.....名인 편이 더욱 문법에 맞는다고 할까?;;; 느낌;;;)

만약 이와 같을 시 박경철이 제시하는 부여 5만병력설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사실 간단하다고 본다. 비록 당시의 노예들은 어디까지나 전쟁지원만을 하였지만, 군대병력수는 때로는 전쟁지원분야의 병력까지 포함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사료에서의 병력은 쉽게 부풀려지거나 축소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영찬이 고고학적인 논증을 통하여 위의 사항을 논증하였으니 만큼 개인적으로 비록 부여전시기에 걸쳐서 송호정의 식대로의 분석이 효과적일지는 일말의 의심을 남겨둘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王-(诸加)-豪民-民=下户=奴僕 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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