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교다. 인간적으로 싫어하지만, 이념적으로는 너무나 비슷한 곳이 많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모든 종교를 믿는다. 하지만 종교단체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말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지향해 나가야 될 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성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종교단체는 그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모순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종교단체를 유지하려면 사람과 그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 교회를 예로 들면, 일단 교회라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직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면, 마르크스가 이미 주장한 대로, 어떠한 물질적인 후원이나 지원 혹은 경영이 필요할 수 밖에 없게 되는지라, 종교단체는 그 속성적으로 기업이다. 기업과 같이 그 자원은 사람과 돈이며, 그것을 통해서 영리를 얻는다. 물론 그 영리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이 명예라고 하는 사회적으로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해지는 것과의 차이는 과연 있는 것일까?
각설하고, 19세기 (그 전에 기독교의 초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활발하게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한반도 전파의 과정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을 하였고, 나라의 압박 속에서 믿음의 자유를 외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헌법, 아니 세계의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21세기로 넘어가는 한반도에서는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그네들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네들이 맞는지도 모른다. 내가 틀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주관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절대자의 존재를 믿지만, 예수는 단지 유능한 종교지도자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 주관이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들만의 자유이다. 문제는 나에게 영향을 미칠 때이다. 나에게 강요를 할 때 이다. 나의 자유를 침해했을 때 이다.
믿음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종교를 가질 수 있다. 이미 몇 세기 전에 받아들여진 그 단순한 진리가 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난 자유롭고 싶다. 절대적인 진리가 이미 살아진 이 세상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고 싶다. 그럴 수 없는 이 현실이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강제로 송구영신예배에 갔다 와서 쓰는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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