把路(바로)
바로의 요약정리
본인이 쓴것을 번역할 생각을 하니, 정말 싫습니다!! 그냥 요약하겠습니다.^^::
이 레포트는 陈来(질래)선생님의 선진철학을 들으면서 작성했습니다. 질래선생님은 고대의 점복술이나 자연숭배, 샤먼등에서 유가가 생겨났다는 논지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김백현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질래라는 사람은 분명히 실력이 있지만, 화사족(华夏族)의 입장에서만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인과는 다르게 샤먼을 모르기 때문에(한국인들이야 무당의 굿판을 자주 보지만, 중국은 그런것이 미신탈피라는 공산주의이념으로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명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 철학교수님이 한국인이고, 거기에 유가쪽이 아닌 도가쪽이라는 것은 염두에 두시고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김백현교수님이 시도하고 있는 "신명에 대한 고찰"을 올리도록 하죠.)
이 레포트의 결론은 위에 다 나와있습니다.-_-;;
고대의 샤머니즘(종교)가 어떻게 철학으로 변했느냐라는 것을 설명하며 논증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쓴것을 번역할 생각을 하니, 정말 싫습니다!! 그냥 요약하겠습니다.^^::
이 레포트는 陈来(질래)선생님의 선진철학을 들으면서 작성했습니다. 질래선생님은 고대의 점복술이나 자연숭배, 샤먼등에서 유가가 생겨났다는 논지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김백현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질래라는 사람은 분명히 실력이 있지만, 화사족(华夏族)의 입장에서만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인과는 다르게 샤먼을 모르기 때문에(한국인들이야 무당의 굿판을 자주 보지만, 중국은 그런것이 미신탈피라는 공산주의이념으로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명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 철학교수님이 한국인이고, 거기에 유가쪽이 아닌 도가쪽이라는 것은 염두에 두시고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김백현교수님이 시도하고 있는 "신명에 대한 고찰"을 올리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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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샤머니즘(종교)가 어떻게 철학으로 변했느냐라는 것을 설명하며 논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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把路
中国古代传统政治文化赖以滋生和成长的文化土壤,其显著的特征就是对人与自然、人与社会关系主体地位的倒置。它没有在原始文化向现代文化的转变中,把人作为主体逐渐地从原始混沌体中解放出来,没有把人作为个体从原始的群体中分离出来,而是始终将人的主体性淹没在中国文化进化路途的泥淖之中,一直使作为个体的人消失在群体的阴影背后。臣服型政治文化,作为一种文化形态已经深深浸透于国民的灵魂,浸透于国民灵魂深层的思维、意识、认知和情感。 一般来讲,中国文化和西方文化赖以产生和推进的一个主观基础——思维水平是相同的。它们都是原始社会物质生活基础之上的精神产物,即原始思维。但是,自原始社会进入文明社会之后,古希腊开始,一批百科全书式的智者将原始思维改造成逻辑思维(包括形式逻辑和辩证逻辑),经过漫长的中世纪的发展,到近代,由启蒙学者开拓并一直延续到今天,形成为日渐完善的科学思维。这一思维进化过程,对于一种文化由地区性走向世界性,对世界文明及人类理性的弘扬,有着十分重要的意义。但是,中国古代文化尽管已经成为一种高度发达的文化形态,可将它与世界文化的主流相比,存在许多格格不入的地方,甚至在许多方面与其他先进文化没有对话的共同前提和语言。对此,我们不能不从中国古代文化内在的思维进程上寻找原因。
一、巫术通天神稽疑
人类一直有稽疑的需要,先民更因其生产力低下而采取巫术通神向其求问的方法。巫术本是人神交通之术,巫为“神的代言人” ,其证颇多。仅从文字上看,甲骨文的“巫”字表现的就是灵魂在天地之间往来的形象,张光直先生说:“天地之间,或祖灵及其余神与生者之间的沟通,要仰仗巫祝和巫术” ;我国高山族的“人”、“鬼”、“巫”字的字形,同样表明巫往来于人鬼之间 ;先秦文献中也有丰富的材料说明我国上古宗教确曾经历过巫术通天神稽疑阶段。
《国语•楚语下》有一段著名的“楚昭王问观射父”,记载了我国上古巫术的发展史,据之可知上古通神的宗教的演进大体经历了三个时期:一是民神不杂时期,由少数有巫术才能的人(觋、巫)主持宗教事务;二是家为巫史时期,人人都可通神,代神宣旨;三是绝地天通时期,不准一般人通天,只由“重”等少数几个大巫掌管通神事务。这里第一个时期泛称“古者”,表明其是来之传闻推测的,后两时期,即从“家为巫史”到“绝地天通”,确实合乎我们现在所见的民族学、人类学材料。
中国文化、政治最初的格局是东西对峙和融合的,东夷和西夏构成中华民族、中国文化的最初来源,而南方的九黎、三苗却来自东方。东夷和西夏在中原交会,经过各部族人民的共同努力,中原社会政治经济有了很大的进步,宗教也发展到了一个新的阶段,即《楚语下》所称的“有天地神民类物之官,是谓五官,各司其序,不相乱也”的阶段。但南方的各部族生活在泽地之中,由于种种条件的限制,发展迟缓,处于相对落后的状况(一直到楚国兴起后,南方才逐渐赶上中原各地的发展),就宗教方面而言,它仍保存着东方各族古老的“家为巫史”宗教传统。
在此之前,中原的宗教到底是经过强制,还是经自然进化而达到“民神异业”呢?因为没有足够的资料,我们无法断定,但是有一件事需要说明:据《山海经》记载,在帝颛顼以前,已经形成了很少的几处固定的可以通天的“名山”及几个有名的“大巫”来垄断宗教事务 。颛顼帝在南方所做的,就是要实现如中原地区一样的官方宗教垄断,古人称之为“绝地天通”。
“绝地天通”在宗教上的含义就是“封天下之名山”,不准普通人随便登山与神相通往来,而将通天(神)作为颛顼、重等少数大巫的特权。
不过官方的通神宗教毕竟因垄断而丧失了人民的基础,它的命运就取决于巫师集团与世俗首领们之间的斗争结果,经过夏商两代,随着世俗贵族的得势,它就渐渐衰落了。而在民间仍存在着许多其他的求问神意的稽疑术,其中的卜筮法竟渐渐走入上层,且挤走通神术,成为官方稽疑术的主要形式。
二、龟卜问祖先神
通神的道路既被封起来,而民众又普遍地有求问神意的要求,于是另一些古老的稽疑术(如龟卜)就被民间巫师广泛地使用,且最后进入统治阶级的殿堂,成为一代风气,宗教稽疑术就到了龟卜问神阶段。
卜法的起原甚古。据考古发掘,在一些新石器时代的遗址中,如在内蒙古乌达盟巴林左旗富河沟门、辽宁羊头洼、唐山大城山、山东曹县莘家集、内蒙古赤峰、蜘蛛山夏家店下层、赤峰药王庙、宁城南山根等遗址均发现了一些无字卜骨,以鹿、猪、牛、羊肩胛骨为原料 。据民族学材料,现在在一些原始民族中还流行着各种占卜法,如蚂蚁卜、青蛙卜、鸡卜等, 这些卜法和中国后来流行的龟卜术显然不是一个系统,当是远古卜法的残留。
在中国大陆,最流行的占卜法当然是龟卜和筮占。《尚书•大禹谟》载,舜在禅位于禹时,“禹曰:‘枚卜功臣,惟吉之从。’帝曰:‘禹!官占惟先蔽志,昆命于元龟。朕志先定,询谋佥同,鬼神其依,龟筮协从,卜不习吉。’……”可见在舜禹时龟筮之法已在社会上有了很高的地位。不过从舜语中还可看出,此时之“鬼神其依”的通神术与龟筮之法是并行的,这种情况,由夏代的禹一直到殷商的盘庚时都还存在。
殷商代夏,宗教乃有一个重大的转折,这表现在:第一,问神术由问天神变成问祖先神;第二,盘庚前后,稽疑术由巫舞形式的通神问神阶段进入龟卜形式的问神阶段。
对卜法进行垄断的方法不外是:一、对卜龟材料的高要求,要“宝龟”、“元龟”,使一般民众难以获得。二、对卜龟的复杂处理,甲骨经过修治以后,要钻出圆窝,即“钻”,并在圆窝旁边凿成凹槽,即“凿”,最后用火烧灼钻穴以得裂纹即卜兆,钻、凿皆用是晚商才有的,早商则只用钻,而民间的处理则更为简单,如彝族的骨卜所用材料为羊、牛或猪的肩胛骨,不经钻凿,直接烧灼 。三、对卜兆的繁琐分类,《周礼•春官•宗伯》谓“其经兆之体,皆百有二十,其颂皆千有二百”,而民间对卜兆吉凶的判定却很简单,如上述彝族把灼处分为四个方向,上为外方,下为内方,左为自己,右为鬼神,如果左或下方裂纹既直又长,属吉兆,否则为凶兆 。四、规定只由少数人集中在少数地点进行龟卜,《宗伯》谓“太卜掌三兆之法”,从今天的甲骨发掘看,甲骨的存放也是比较集中的。
既经许多限制,民间便难行此种卜法,同为卜法,其简单之法也渐渐不能得到正统的承认。但此时另一种古老的稽疑术——筮占法却在民间大行其道,并在殷周交潜之际进入庙堂,融入了“郁郁乎文哉”的周文化,成为中国思想文化的一个重要源泉。
三、易占人谋鬼谋
王国维说:“夏殷间政治与文物之变革,不似殷周间之剧烈矣。” 就宗教稽疑术之变革言,此语亦不虚。夏殷之稽疑方式虽有差异,但皆不出“鬼谋”一途,而殷周之际则有两个剧烈变化:一是形式上以筮占取代龟卜,二是内涵上以易占的“人谋鬼谋”取代龟卜的纯粹“鬼谋”。下面我们就分析这两种取代的过程。
易占乃是筮法的一种,是藉蓍草以一定的方法得出数目,然后根据其奇偶性等而得出卦画,再对照卦爻辞由一定的规则来解释吉凶悔吝等。这种方法起源很早,传统说“人更三世”《汉书•艺文志》,最早上推到伏羲,从考古看,早在新石器时代晚期的淞泽文化遗物上,就有由数构成的数字卦,殷墟卜骨也有类似卦画。 《太平御览》卷八十二引古书云“昔夏后启筮,乘龙以登于天”,《吕氏春秋•勿躬》及《世本•作篇》都记“巫咸作筮”,《路史》载“神农使巫咸作筮”,则筮法是夏商都有的。而古人所谓“三易”之说也主张神农、黄帝或至少夏商各有其易占之法,可见筮法起源甚古。
易占与龟卜,除去形式上的蓍数占与甲骨灼兆的不同外,更重要的是在释卦、兆时的解释体例的不同。龟卜是问神稽疑,得出卜兆后,直接查对图书,对号入座,吉凶立判,因而纯粹是“鬼谋”;而易占在得出卦画以后,还区别变与不变之爻,讲究在变化中见吉凶,且又强调人在事态发展中的主体作用,这种体例显然不仅是稽神断疑,而且更体现出人的理智运作及能动实践,前人谓之“人谋”。
有很多证据表明周人宗教稽疑术处于“人谋鬼谋”阶段。“鬼谋”还是有的,事实上周人有很深的神鬼观念,从稽疑术上讲,问神的卜法仍在使用,《周礼•春官》说:“凡国之大事,先筮而后卜”,《左传》僖公四年载卜人的话说:“筮短龟长,不如从长。”即使《易》本身,到《易传》时代,《说卦》也还称“幽赞于神明而生蓍”,将易占的有效性归之于神灵。王夫之《周易内传•系辞上传》论此最明确:“大衍五十而用四十有九,……分而为二,多寡成于无心,不测之神,鬼谋也。”
但是易占之变革在于“人谋”,王夫之说:“大衍五十而用四十有九,分二,挂一,……审七八九六之变,以求肖乎理,人谋也。”“若龟之见兆,但有鬼谋,而无人谋。”“人谋”之关键,一在提倡变中见理,二在主张吉凶由人。
所谓变中见理,可由易占体例之“变卦说”看出。《左传》庄公二十二年载“周史有以周易见陈侯者,陈侯使筮之,遇《观》之《否》,曰:‘是谓“观国之光,利用宾于王。”此其代陈有国乎!”“观国之光,利用宾于王”乃《周易》《观》卦六四爻辞,而由《观》之《否》即是《观》卦之六四爻由阴爻变为阳爻,可见是以变爻辞占断的。此种例子,《左传》、《国语》屡见,朱熹《易学启蒙》曾据之定七条体例。这种强调变化中见理的释筮法,大不同于龟卜之视兆对册,它是人的理智的安排。
所谓吉凶由人,是说易占虽然可以推测出未来的变化,但人事的吉凶,归根到底还是取决于人的德行。
易占在周取代卜法,是有一个过程的。卜、筮的异途虽古已有之,但此次取代却有其直接的时代原因,那就是周人克商取得了统治地位,在制度、宗教上当然要有大变革。
“人谋鬼谋”取代纯粹“鬼谋”,与周人思想的整体发展相吻合。“以周公为卓越代表的西周思想,以宗教观念和政治思想为主要内容,取得了殷商所不能比的积极进展,这些进展就宗教观念的角度来说,可以概括为:第一,天命无常;第二,天命惟德;第三,天意在民。” 这种对命运的不可捉摸性的认识以及对人参与历史创造过程的觉悟,促使整个西周宗教转向了伦理宗教,易占作为稽疑术,虽免不了含有神鬼迷信的成分,但也不能不“唯变所适”,顺应世风。
这种“人谋”观念的进一步发展及在逻辑上彻底化以后,必然要将易占中尚存的“鬼谋”思想清除掉,如果这样,易占也就失去了稽神问疑的功能,而成为劝诫之学了。这个过程,在历史上,是与掌握神权的整个祭司阶层的衰落相连的。
从逻辑上讲,宗教稽疑术虽意存问神,但其目的却是为解决人事的,在最初就存在着为了人的目的不惜违卜、违筮的事,《尚书•大诰》记载周武王逝世后,“三监及淮夷叛,周公相成王,将黜殷”,当时占卜是吉兆,故成王说:“予得吉卜,予惟以尔庶邦于伐殷逋播臣。”而群臣却反对说:“艰大,民不静,亦惟在王宫邦君室。越予小子考,翼不可征,王害不违卜?”这表明当时已有用现实政治的理由来“违卜”的观念了。以后随着科学文化的进步,宗教作为一种颠倒的世界观的面目愈来愈为人们所认识,就出现了“天道远,人道迩”(《左传•昭公十八年》)的说法,出现了西门豹镇压巫婆的事件(《史记•西门豹传》),出现了“假于鬼神时日卜筮以疑众,杀”(《礼记•王制》)的禁令。儒家更从社会政治的角度,系统提出了“神道设教”(《周易•观•彖》)的观点。
《论语•八佾》“祭如在,祭神如神在”,用一“如”字暗示了对宗教的怀疑,到《荀子•天论》则明确说:“君子以为文,百姓以为神,以为文则吉,以为神则凶。”宗教只是作为一种政治统治的手段而被保存下来。对于稽疑术,知识阶层还提出“复其祝卜”、“观其德义”、 “善为易者不占”(《荀子•大略》)等观点,从而和统治者的“以为文”及民众的“以为神”区别开来,发扬了“人道”的精神,滋润了几千年的民族文化。
先秦宗教稽疑术经历了由巫术通天神稽疑到龟卜问祖先神再到易占人谋鬼谋的演化,这个过程的每一个环节都是非常明确的。从中我们还可以看出:民间是宗教发展的肥沃土壤,在一个时代的公共生活中占主导地位的官方宗教往往是对民间宗教以某种方式加以改造、垄断的结果,民间宗教虽不为正统社会所认可,但却一直不绝如缕,还保留了大量的宗教原生态的遗存。先秦宗教从非理性的情绪体验向理性化、从纯粹神灵宗教向伦理宗教发展,从最初的巫术通神到易传哲学,中国哲学终于“消灭宗教本身”,从宗教母胎中孕育出来,进入了辉煌的诸子时代。
1)宋兆麟.《巫与巫术》p33 四川民族出版社,1989.
2)弗雷泽.《金枝:上卷》p17 中国民间出版社,1987.
3)宋兆麟.《巫与巫术》p32 四川民族出版社,1989.
4)徐旭生.《中国古史的传说时代》(修订本)p80-82 文物出版社,1985.
5)宋兆麟.《巫与巫术》p5 四川民族出版社,1989.
6)宋兆麟.《巫与巫术》p154-160 四川民族出版社,1989.
7)宋兆麟.《巫与巫术》p162 四川民族出版社,1989
8)宋兆麟.《巫与巫术》p162 四川民族出版社,1989
9)王国维.《殷周制度论》王国维遗书:第二册 上海古籍出版社,1983.
10)张立文.《白话帛书周易》 中州出版社,1992
11)陈来:《古代宗教与伦理:儒家思想的根源》p191 三联书店,1996.
12)邓球柏.《白话帛书周易》p340 岳麓出版社,1995.
바로의 중얼중얼
질래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심히 짜증났던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연구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마져 없고, 단지 연구만 하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과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으니 수업방식이 너무 엽기적이었습니다. 분명 본인이 쓴 책을 가지고, 토씨하나 안 뺴고 읽고 있는 모습은 저를 경악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유명하신 분이라서 일부러 무리해가면서 선택했건만...ㅠㅠ
마침 그 선생님 밑에서 박사를 마친 형님이 중국에 놀러오셨길래 물어보았습니다. 그 선생님 대체 왜 그러냐고!!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원.래.그.래." -_-;; 어찌하오리까..ㅠㅠ
질래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심히 짜증났던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연구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마져 없고, 단지 연구만 하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과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으니 수업방식이 너무 엽기적이었습니다. 분명 본인이 쓴 책을 가지고, 토씨하나 안 뺴고 읽고 있는 모습은 저를 경악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유명하신 분이라서 일부러 무리해가면서 선택했건만...ㅠㅠ
마침 그 선생님 밑에서 박사를 마친 형님이 중국에 놀러오셨길래 물어보았습니다. 그 선생님 대체 왜 그러냐고!!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원.래.그.래." -_-;; 어찌하오리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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