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전은 북경대에 오셨을 때 崔金柱가 찍은 생전 마지막 사진입니다.



2014년 12월 25일 06시 09분. 역사학자 田余庆(티엔위칭) 선생님이 서거하셨습니다. 田余庆(티엔위칭) 선생님은 위진남북조을 중심으로 중국고대사를 탐구하셨으며, 《东晋门阀政治》,《秦汉魏晋史探微》,《拓跋史探》등의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조사가 되시는 분이시군요.


얼마전에 90을 넘으셨는데...하아......애도를 표합니다.






본 내용은 項潔 編,《數位人文研究與技藝》,國立台灣大學出版中心, 2014年의 王汎森,數位人文學之可能性及限制 – 一個歷史學者的觀察을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리한 내용이며, 왕판션 논문의 내용과 상이할 수도 있다.

 

왕판션은 디지털인문학의 장점을 디지털화와 데이터 처리 효율성, 교류와 교육 방법의 혁신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가능성으로 1) 데이터의 정량화를 통한 “무의 역사” 연구방법론의 확대 2) 인문 빅데이터 활용 3) GIS(지리정보시스템)을 통한 공간 사고력 향상을 거론하였다.


1. “무의 역사” 연구방법론은 방대한 사료의 공백을 통한 연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곽말약(郭沫若)는 고문헌 진위 판별법에서 금문에 해당 고문헌 내용 출현하지 않는다면 위서로 판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문제는 방대한 금문을 모두 살펴보고 해당 내용이 없다고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디지털인문학에서는 간단하게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소수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2. 인문 빅데이터는 방대한 사료와 빠른 데이터 처리를 기반으로 기존에 연구가 힘들었던 다점접 연구방법을 손쉽게 활용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서 유럽의 Mapping the Republic of Letters는 유럽 개몽시기의 문인들 간의 편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GIS 기술을 활용하여 프랑스의 사상이 영국으로 유입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었다.


3. GIS(지리정보시스템)는 기존의 인문학자들이 사료에 매몰되어서 쉽게 간과하던 공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왕판션이 생각하는 디지털인문학의 한계는 무엇인가?

1) 사료의 단편화로 시야가 좁아진다.

디지털인문학으로 인하여 그 동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읽어야 되는 사료를 간단한 검색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4사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결코 24사를 통독하는 것을 대체할 수 없다. 수 많은 사료 데이터에 대해서 단순한 검색어로 접근할 경우, 사료들의 특성을 간과하거나 선후관계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질 염려가 높다.


가장 좋은 것은 해당 사료들에 대해서 통독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방대한 사료를 모두 통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역사적 시야를 좁히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양자를 어떻게 “적당히” 활용하느냐는 지속적인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2) 발산과 수렴의 본질적 차이

인문학은 보통 특정 사건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당 문제의식에 대한 외연을 넓혀간다. 그런데 디지털인문학은 수 많은 데이터를 우선적으로 구축하고, 데이터를 활용하여 데이터를 구조화한다. 이 둘은 서로 상생할 수도 있지만, 상극이 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왕판션은 이기론(理氣論)을 거론하며, 인문학은 이(理)로서 사물의 본질이고, 디지털인문학은 기(氣)로써 사물을 담는 그릇으로 비유한다. 이와 기는 서로 다르면서 서로 같은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바로 : 왕판션이 지적한 디지털인문학의 한계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디지털인문학을 주장하는 본인도 원래 역사학도였고, 대충이나마 춘추삼전과 자치통감을 통독하였다. 이건 당연히 전통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시켜야되는 영역이며, 넓은 역사적 시각을 갖는 것은 역사 교육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결국 방대한 사료의 바다에서 25사도 조그마한 일부분일 뿐이다. 결국 모든 사료를 읽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인문학과 디지털인문학을 이기론과 비유한 부분이다. 정말 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정반합...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안녕하세요. 역사학회 사무국입니다.

2014년 하반기 역사학회 학술대회를 안내해드립니다.


일시: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오후 1시 ~ 6시

장소: 서울역 앞 대우재단 빌딩 7층 세미나 1실

주제: 역사학과 ICT의 융합 모색 -한국 역사학의 미래 탐색-

    

일정:

13:00 ~ 13:10 - 개화사 (역사학회 회장)

      

제 1부 (13:10~14:40)

 

주제 1 - 역사연구와  디지털 결합 실제 사례

세부 주제 : < Case Study: 역사학·ICT의 융합교육과정 현황과 문제점 >

발표자 : 임승휘 (선문대학교)

 

주제 2 - GIS 활용 역사 연구 방법론 

세부 주제 : < GIS 기법의 활용을 통한 조선시대 월경지의 복원 >

발표자 : 정요근 (덕성여자대학교)

 

주제 3 - ICT와 역사 콘텐츠

세부 주제 : < ICT를 활용한 역사콘텐츠의 기획과 개발 >

발표자 : 최희수 (상명대학교)

 

 

제 2부 (14:50~16:40)


주제 4 - Visualization

세부 주제 : < 시각적 인문학 >

발표자 : 김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제 5 - 문화콘텐츠 차원의 역사학

세부 주제 : < 문화콘텐츠의 핵심원천으로서의 역사학 >

발표자 : 김기덕 (건국대학교)

 

주제 6 - 인문학에 대한 ICT 전문가의 제언

세부 주제 : < 디지털 시대의 기록하는 역사와 '잊혀질 권리' >

발표자 : 정혜승 (Daum 커뮤니케이션 정책 실장)


제 3부 (16:50~18:00)

종합토론

토론자 : 문종현 (한양대학교) /  김종혁 (고려대학교) / 홍성덕 (전주대학교)

            유동환 (건국대학교) /  김   호 (경인교육대학교)


18:10 ~ 20:00 - 만 찬

 

* 더욱 자세한 일정 및 내용은 첨부된 안내문을 참고하십시오.  


2014년 역사학회 학술대회 안내.hwp



출처 : 역사학회 2014년 하반기 역사학회 학술대회 안내


바로 : 역사학도였던 입장에서 역사학의 디지털인문학 모색에 대해서 환영한다. 역사학자의 능력이 자료수집이 아니라 자료해석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자료수집이 반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디지털인문학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학자의 의무 중에 하나인 성과의 사회반환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디지털인문학만이 현재의 가장 합리적인 답안이라는 것을 말해 무엇하리오. 


귀찮다고? 무섭다고? 내가 할일이 아니라고? 핑계다. 워드나 한글을 하지 못해서 원고지에 논문을 쓰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새로운 역사학 연구 방법론의 세계로 가보자.


이글루스쪽에서는 최근 다시 한번 "환빠대전"이 발생한듯 하다. 솔직히 과거에는 이 블로그에서도 심심풀이 땅콩으로 소위 "환빠"들의 헛소리를 반박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역사학도로서의 사견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대한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 역사학도로서의 부담감.
차라리 본인이 역사전공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관련 글을 써내려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인은 공개적으로 역사전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영역에 대해서 일반인보다 비교적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보지도 않고, 볼 필요도 없는 증거자료들을 레포트 작성하듯이 일일이 찾아서 나열해야한다. 물론 관련 논문이나 저작을 비롯한 학계의 흐름도 나열해주어야 한다.

만약 본인의 전공분야라면 비교적 쉽게?! 쓰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소 수십편에 이르는 관련 논문과 저작을 읽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겨난다. 부담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럼 본인의 전공만 쓰면 되지 않냐고? 그쪽이야 말로 민감함의 극치를 달리는 지점이기에 부담스럽다. 본인의 전공은 북방민족사이며, 한중간의 민감한 사안인 고구려나 발해도 다룬다. 본인은 지도교수님의 생각에 동의하며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로 보며, 고구려사는 어디까지나 고구려인들의 역사"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짱깨로 매도되기 쉽상이다. 이런 부담감에 석사졸업논문도 중국인들에게도 생소한 소그드의 한반도 유입이라는 주제를 채택했다.


2) 환빠들의 사료적 문제.
흔히 "환빠"라고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료"이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역사 연구에서 사료는 기본이다. 그 뼈대이다. 그 정수이다. 그런데 "환빠"라는 사람들은 이 사료부터가 엉터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료 반박은 어렵다고 그보다 어려운 것이 없고, 쉽다면 쉬운 부분이다. 물론 대부분의 환빠들의 헛소리는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고문 소양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고문을 모른다는 것은 마치 더하기와 빼기를 못하면서 수학을 하겠다는 것과 그다지 다를바가 없다. 최근에는 수 많은 현대 한국어 번역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접근성을 높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역사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연구자가 고문의 원문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나는 병신이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한자가 나오고, 해석이 나오면 그냥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환빠들의 근본적인 문제인 사료를 비판을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환빠들이 "식민사관에 의해서 해석한 결과"라고 하면 그것을 믿어 버린다.  식민사관조차도 그나마 사료라는 기초라도 있었다. 환빠들은 고문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소설을 전개하거나, 고문을 언급하더라도 원래 고문을 마음대로 변조한다.

원문 : "갑은 을나라를 침략하였다"
환빠식1 : "갑은 을나라에게 침공당하였다"
환빠식2 : "갑은 을나라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대체 어떤 "학문"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허용하느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백날 설명해도 기본적으로 고문을 볼 수 없는 일반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결코 일반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무지를 이용해 먹는 환빠들의 문제이다.


3) 환빠들의 논리적 문제.
환빠의 논리는 언제나 결국 "한국 만세!"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은 "식민사학에 세뇌당한 병신들"이다.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반박을 해주지만, 솔직히 이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다.

과거에는 분명히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거일 뿐이다. 오히려 박정희 독재시절을 정점으로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민족"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선전하였다. 그 결과 어떠한 역사학적 증거도 없는 고조선의 세력범위가 당당하게 중고등학교 "국사"강의에 사용되고 있다. 아니 역사학적으로 엄격하게 따져서 "국사"라면 "대한민국사"를 공부해야지 그 이전을 공부하는 것은 합당하지도 않다.

역사학의 방법론은 이제는 세계 공통이다. 기본적으로 사료를 보고, 사료를 비판하고, 사료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없이 마냥 무조건 "식민사관"이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하다 못해서 본인 스스로 "탈민족주의자" 혹은 "인간사관"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식민사관"이라고 근거 없이 매도하니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간략하게 말하면, 과거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싶다는 역사학도로서의 열정과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니 맘대로 사세요~"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에휴...싸워서 머하랴. 사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박정희식 우민정치의 희생량인걸.....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어떻게 보면 아직 정열이 살아 있다는 것이겠지.......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설명해드립니다. 환빠에 대한 비꼼이 좀 더 많아 지기는 하겠지만 말이죠.


본 글은 오마이 뉴스의 편견타파 릴레이로서 본인은 하민혁님의 편견타파 릴레이,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2를 받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편견타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기를...



 "중국 유학중인 역사학도"라는 짦은 단어 속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들이 깊숙히 스며 들어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중국이라는 키워드도 그렇고, 유학이라는 키워드도 그러하며, 역사학도라는 키워드도 심각하다. 그리고 중국과 역사학이 합쳐지면 더 골치가 아파진다.  최대한 간단하게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1) 역사학도
1- 역사학도가 모든 것을 알것이라는 착각을 버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역사학도들은 "모든" 역사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본인의 경우 북방민족사를 전공으로 하고 있다. 그럼 모든 북방민족에 대해서 잘 아느냐? 그것도 아니다. 본인의 시대는 기본적으로 위진남북조시대이다. 그럼 위진남북조시대의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잘 아느냐? 본인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소그드이다. 결론적으로 본인의 경우 위진남북조시기의 북방민족 중에서 소그드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본인에게 남방민족을 물어보거나 몽골족에 대해서 물어보면 솔직히 곤란하다. 물론 이에 대한 지식이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역사매니아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수준이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해당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역사 매니아들 보다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 일반적인 역사 매니아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그렇다.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단지 고대사 전공의 역사학도들은 "사료"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는다. 사료를 찾고, 사료를 분석하는 행위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역사적인 분석시 사료를 인용함하여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설령 본인이 잘 모르던 부분이라도 이미 역사학의 방법론을 숙지하였기에 비교적 빠르게 접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사 중에서도 변두리 학문인 북방민족을 하는 본인에게 중국현대사를 물어보시면 참 곤란하다. 물론 개인적인 흥미로 이것저것 잡다하게 알고야 있지만, 역사적인 분석 수준을 원하신다면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2- 동북공정이 중국 전체 일이라는 착각을 버려!
한국에서는 마치 모든 중국의 역사가들이 동북공정에 찬성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런 중국에서 북방민족사를 한다고 하면 "짱깨한테 배워봐야 뭐가 있겠어." 정도의 소리를 대놓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상대를 분석하려면 일단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현재 한국의 역사학계를 보라. 거칠게 묘사를 하자면 : 일단 정통이라고 하는 강단사학이 있다. 그리고 한민족 만세라면서 온갖 날조를 하는 엉터리 역사매니아들이 있고, 최근에는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외국 사람들이 뉴라이트의 주장이 한국 역사학의 대표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신가?

예를 들어서 본인의 지도교수님 같은 경우는 "그러나 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학자는진리만 다룰 뿐이다. 나의 역사인식에도 중국은 없다. 민족이라는 것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모든 역사에 나오는 민족은모두 ‘정치체’다. 모두 정치구조이자 이익집단이다. 민족관계를 다루면서 낭만적인 관계를 도출해내기는 어렵다. 핵심은 진상을밝히는 것이다. 진상을 밝혀야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대 놓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동북공정을 지지하는 사람의 말로 보이는가?

물론 본인이 공부하는 북경대 역사과에도 동북공정의 이론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그것도 대부분 학문적인 접근에서 그에 동의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동북공정을 한국에서는 온갖 음모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도록 미디어에서 "지랄"을 했는데, 사실 동북공정은 90년대에도 많은 한국 학자들이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난리가 났을까? 별거 없다. 싸가지 없게 말해서  몇몇 "학자"분들이 밥그릇을 늘리려고 한 것이다.

비록 역사학도에 불과한 본인이지만, 역사학자들을 쉽게 보지 마셨으면 한다. 어느 집단에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듯이 역사학계에도 한국이든 중국이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사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바보들이다.


3- 역사학도가 컴퓨터에 무지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
사실 역사 말고 전체 문과에 대해서 컴퓨터에 약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물론 컴퓨터 공학과에 비해서는 평균적으로 컴퓨터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본인의 경우에도 나름 중국의 IT계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역사학도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중문과와 같은 언어학쪽 계열들은 경제학과 만큼이나 통계와 싸운다. 보고 있으면 정말 불쌍할 정도로 싸운다. 그쪽의 논문은 자료만 다 모으고 입력만 하면 끝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통계에 토를 한다.

역사학쪽도 이제 컴퓨터를 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온갖 고문들을 쌓아놓고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필요한 것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탈화 된 사료에서 검색어 입력만 하면 주르르륵~~~ 사료들이 쏟아져 나온다. 또한 중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사료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열람하고 분석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어 질 것이다.

사실 인문학도가 IT관련 분야에 빠지는 것은 위에서 말한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고대사를 하면서 고문을 쏘아보고 있다보면 저도 모르게 그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신중에 최신인 것들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 유학
1- 유학하면 다 동거한다는 착각을 버려!
실제로 결혼중개회사에서 유학을 갔다 온 여자는 점수가 대폭 감점이 된다. 유학을 하면 당연히 동거를 했고, "깨끗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를 잘도 지꺼리고 있다. 본인으로서는 웃기지도 않아 보인다.

일단 한국에 있으면 동거를 하지 않는가? 본인의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잘들 동거하고 살아간다. 오히려 타지에서 학교를 다닐 경우 자취방을 얻어서 동거를 하는 경우를 참 많이도 보았다. 그에 반하여 해외에서는 해외라는 이유로 부모님들의 감독이 삼엄하다. 자신의 방이 없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놓고 이야기 해서 같이 살면 집 전화는 못 쓰는것이 된다. 부모님이 언제 전화를 할 줄 알고 집전화를 쓸 수 있겠는가?

물론 동거는 아니지만, 해외에 나왔고 잠시 즐기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모르겠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단기 유학생들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기 유학생들은 워낙에 사회가 좁다보니 잘못하면 베이징 전체가 다 알 수 있는 경우까지 생기기에 오히려 자제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2- 돈이 많아서 유학한다는 착각을 버려!
유학이라고 하면 다들 집에 돈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은 중국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별로 없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유학을 한다고 하면 돈이 많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 착각을 처절하게 깨주겠다.

본인도 일본 유학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본인은 3개월 동안 총 30만엔(한국돈 400만원정도?)을 사용하였다. 숙소비와 밥값 그리고 학원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이다.  일본 유학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면 경악을 금하지 못할 액수일 것이다. 30만엔으로 어떻게 3개월을 살았다는거냐라고 시비를 거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 중 10만엔은 돌아오는 길에 책을 구매하려고 별 수 없이 집에 손을 벌린 돈이었고, 실제로는 20만엔으로 3개월을 살았던 것이다. 물가가 말도 안되게 비싼 곳이라도 본인이 아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 본인은 단기여서 눈물을 머금으며 알바를 하지 못하였지만, 알바를 한다면 최소 시간당 900엔정도로 하루에 2시간씩 일하면 일주일에 14시간. 그렇다면 만이천엔이다. 한달이면 대략 5만엔 정도(밥값을 생각하면 최소 7만엔정도-_)이다. 스스로의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한 돈으로 보인다. 본인은 어디까지나 단기여서 그렇지. 장기간 거주를 하면 쓸데 없는 잡비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사정은 오히려 다르다. 이 곳에서 식당 알바를 한다는 것은 바보짓에 불과하다. 식당 한달 월급이 대략 1000위엔(이것도 안됌-_)이다. 한국돈으로 20만원 정도이다. 여행 가이드 알바를 하면 하루에 최소 500위엔(10만원)을 버는 상황에서 식당 알바를 하는 것은 바보짓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행 가이드나 통번역의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안정적으로 알바를 할 수가 없다.

학비도 선진국들에는 장학금제도가 튼튼하게 마련되어 있고, 외국인에게도 거의 차별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외국인을 "지갑"으로 생각을 해서 처절하게 뽑아 먹는다. 그래서 차라리 중국에서 유학을 하는 것이 돈이 더 든다.ㅠ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집은 한국에서 중산층은 되는 집이다. 나름 안정적이라고 자부해도 될 정도이다. 그러나 집안 마다 교육 방침이라는 것이 있다. 본인 중국에 처음 왔을 때 300달러만 주시더라. 기숙사 비로 180달러를 지불하고 남은 120달러로 남은 3개월을 보내는 기분은 참 아름다웠다. (일본에 갈 때는 나름 사치를 한 것이다.-_-;; 그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거든...ㅠㅠ)

유학이라고 돈 많은 녀석들이라는 착각은 버려라. 오늘도 스스로 요리해서 먹고,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으며, 맥주 한 캔에 행복해 하는 불우한 유학생이 있다.ㅠㅠ


3- 졸업장을 돈으로 산다는 착각을 버려!
유학을 하면 졸업장을 돈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분명히 그런 "병신"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사람들일 뿐이다. 마치 한국의 SKY도 돈을 주고 졸업장을 살 수 있고, 그러는 사람이 조금 있듯이 해외 역시 그러하다. 오히려 해외이기에 외국어로 논문을 쓰는 삽질을 해야되는 고통이 뒤 따른다.

이 부분은 길게 이야기할 게 없으니 짦게^^::


3) 중국
1- 중국의 물가가 싸다는 편견은 버려
중국의 물가가 싸다는 것은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중국에서 식료품 가격은 분명히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이곳에서는 삼겹살을 죽도록 먹어도 얼마 나오지도 않는다. 소고기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식료품 가격일 뿐이다.

중국의 공산품 가격은 이미 한국과 동일한 수준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식료품 가격이야 중국의 대부분 못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중국정부차원에서 강력하게 관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가격이나 담배 가격 혹은 식료품 가격이 매우 싼 것이다. 그러나 공산품은 다르다. 중국의 상위 10%들의 소비 수준은 한국의 고위층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상위 3%는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들인 것이다.

비록 10%이지만, 그 10%가 1억 3천만명이다. 한국의 인구의 3배 이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소비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그렇기에 전자제품을 비롯한 상당히 많은 상품과 고급 레스토랑의 가격은 한국과 같거나 심지어 더 비싸기까지 하다. 단지 여행으로 와서 싼 음식을 먹고 싼 교통수단을 접했다고 중국의 물가가 싸다고 하는 것은 정말 몰라도 멀 모르는 것이다.


2- 몇 년전에 중국에서 본 것으로 중국을 판단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
중국에서 유학을 한다고 하면 "내가 3년전에 중국에 갔었는데 그 때는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심히 어이가 없다. 장기간 중국에 있는 유학생들도 방학 기간 잠시 한국에 갔다 오면 그 변화에 깜짝 깜짝 놀라고는 한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와서 경험한 것을 가지고 중국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본인이 처음 중국에 왔던 98년도에 북경대 주변은 그야 말로 시골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 정식으로 유학을 왔을 때에 그곳은 이미 중관촌이라는 중국의 최대 IT 산업의 매카로 변해 있었다. 딱 3년이다. 그 3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변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몇 년전에 갔던 일을 가지고 중국을 논하고 싶은가? 허허...


3- 중국은 넓어. 정말 넓다고!!! 한국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
한국인들이 해외로 나와야 되는 절대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초고속 열차로 2시간도 안되어서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보다 빠른 초고속 열차가 있는 베이징부터 홍콩까지 걸리는 시간이 10시간이다. 아직도 그 크기가 짐작이 안되시나 보다. 비행기로 가보자. 인천에서 베이징까지 채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이번에 위구르 사태가 일어난 우루무치까지 대충 4시간. 국내에서 비행하는 것이 국외 비행보다 더 오래 걸리는 이런 사태는 중국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고속을 말하는 것이고, 베이징에서 우루무치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면 44시간(약 2일)이 소비된다. 이것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빨라진 것이다. 2001년도만 하더라도 4박 5일이 걸렸다. 기차 안에서 2일 넘게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이해가 되시는가? 이것이 중국이다.

이처럼 땅이 넓다보니 각각의 지방마다 너무나 다르다. 상하이가 다르고 베이징이 다르다. 신장이 다르고 동북이 다르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곳만 다녀오고 나서 마치 중국 전문가라도 되는 양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도 나름 쓸데 없이 많이 돌아다녔다고 하지만, 어디에 가서 감히 "중국"을 안다고 말을 하지 못하겠다. 다만 중국의 몇몇 곳을 적당히 알 뿐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그러나 중국의 크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한국에서 서울이나 부산이나 크게 다르지 않냐는 것처럼 중국을 논한다. 그 가까운 서울과 부산도 지역색이 있는데, 중국은 얼마나 더 심하겠는가?


4- 중국은 지방마다 말이 달라서 표준어를 공부해도 소용없다.
성용의 이번 영화 신주쿠사건에서조차 방언을 사용해서 모른다는 대사가 나왔다. 어차피 중국의 지방마다 말이 다르다면 중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만약 100년 전이라면 얼마든지 긍정을 해주었겠지만, 지금의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표준어만 사용하면 사실상 어느 지방을 가던지 문제가 없다. 물론 60이 넘은 늙은 층의 사람들은 표준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아래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상 표준어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사투리처럼 각자 독특한 성조와 발음이 있다. "니하오"을 어떤 지방에서는 "니홍"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사투리를 들어도 이상하다고 느끼며 가끔은 웃기기는 하지만 그 뜻은 알아들을 수 있다. 더구나 상대가 고의적으로 사투리를 쓰는 것도 아니고 표준어를 구사한다면.....사투리 발음이 좀 있다고 듣지 못하는 당신의 중국어 실력을 반성하라. "그거시 아니랑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릴레이 바통을 다음 분들에게 넘기겠습니다.
1) 湘來's 空間의 상래님.
현재 블로그코리아에서 일하고 있으며, 타이완 유학파 출신. 블로그바닥에 대한 편견보다는 타이완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에 대해서 서술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며 은근히 압박-0-)

2) 골빈해커닷넷의 골빈해커님.
올블로그 부사장을 가장한 한량으로서 평소에 저와 중얼거리던 "독한" 말들이나, 당당하게 애플빠를 주장하시는 분이니 애플빠나 애플제품(아이폰?!)에 대한 편견들에 대한 글을 기대해봅니다.

3) 깜보's Story... (성인용품전문블로그) 의 깜보님.
이미 블로그 이름에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깜보님에게 성인용품 업계에 대한 편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 연구의 방향 - 6점
이성규 외 지음/학연문화사


해당 책은 한권의 책이라기 보다는 각기 서로 다른 필자들의 시대가 비스무리한 글을 모아놓은 잡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법론이나 주제들이 상호간에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막말을 하면, 당시에 불던 "동북공정"로 인한 강렬한 돈벌기 기회를 위하여 급조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권의 책이라는 통일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 전체를 도매금으로 깍아버려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논문들은 그 동안의 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 연구를 잘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제대로 책 전부를 정독해야겠지만, 본인이 관심있는 부분만 야금야금 파먹었다. 그래도 책 값 자체가 (예전 책이어서 그런지-_) 만원도 안되는 9000원이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 한두개를 위해서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본인의 경우 아버지의 책을 낼름해서 가지고 왔다....-_;;;)


목록 :
중국 고문헌에 나타난 동북관 - 이성규
단군신화 연구의 여러 문제 - 신종원
부여사 연구의 제문제 - 박경철
고구려사 연구의 제문제 - 임기환
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와 지역간 교류관계 - 오장원
철기시대 전기의 중국 동북과 한반도의 금속기문화 - 이청규


낙랑군 연구 - 8점
오영찬 지음/사계절출판사


모두가 말한다. 이제는 학문분야끼리의 교류가 중요한 시기라고...역사학의 예를 들면, 고고학과의 연구교류는 빠질 수 없는 항목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떠한가? 고고학자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이론이나 고문들을 역사학자들이 보면 "이건 뭐꼬?"라고 하고, 반대로 역사학자들이 고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서 고고학자들은 "머냐-_?"라고 한다. 연구교류를 통해서 타학문분과의 성과를 인용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낙랑군 연구는 개인적으로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역사학과 고고학이 제대로 버무려져서 체계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저자인 오영찬 학예연구관은 원래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서는 고고학계에서 일을 하였다. 그리고 그 경험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박수~~!!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이미 책의 부제를 통해서 명시되어있다. 바로 고조선계와 한계의 종족융합을 통한 낙랑인의 형성이다. 낙랑군은 그 위치적 특성과 시대변화의 물결속에서 고조선계와 토착한계 및 새로운 한계간의 교류 속에서 독특한 단위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 결론은 사료가 부족한 해당 시기의 문제를 고고학 성과의 대폭적인 수용으로서 해결하고 있다.

해당 시기의 전공자뿐만이 아니라, 전체 역사학도 혹은 고고학도들이 읽어보고, 그 방법론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북경대에서 민족사를 공부한다고 하면, 그것도 첨여하게 대립하고 있는 위진남북조부터 몽고까지 내려오는 시대의 북방소수민족사를 공부하면 가장 쉽게 받는 질문은 "중국의 패권주의적 생각에 매몰된 녀석이다"라던지 심하게 말하면 "중국만의 사학에 빠져있는 넘"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사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수님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지도교수는 분명히 무섭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를 상당히 싫어하신다. 국가주의도 싫어하신다. 당연히 본인은 너무나 행복하다. 문제는 본인 능력이 떨어지는다는 점이겠지만....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뤄신(羅新) 베이징대 교수
이번에 한국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고구려와 동북아관계사가 전공인 탓에 근대 이후의 지식은 부족하다. 처음에 전공을 정할 때 주위 학자들이 중국의 북방문제를 다룰 때 한국과관계있는 부분은 연구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나 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학자는진리만 다룰 뿐이다. 나의 역사인식에도 중국은 없다. 민족이라는 것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모든 역사에 나오는 민족은모두 ‘정치체’다. 모두 정치구조이자 이익집단이다. 민족관계를 다루면서 낭만적인 관계를 도출해내기는 어렵다. 핵심은 진상을밝히는 것이다. 진상을 밝혀야 문제가 해결된다.

“실사구시와 역지사지 태도로 인식의 간극 메워야”

본인은 정말 불민한 제자이기는 하다. 본인 먹고 살기 위해서 알바하겠다고, 선생님이 한국왔는데 중국으로 몰래 날라와서 알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무지막지 혼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_-;;; 에휴..나도 이쁨 받는 제자가 되어야될터인데 말이다. 이건 애물단지이니....




참고로 임지현 교수는 요동사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요동사도 변경사주장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중세에 형성된 상황을 그대로 고대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즉 고대에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이 한 문화권이었음에도 이를 억지로 분류해, '요동과 한국은 미분화상태였다'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거나6세기에 형성되 대신라 이후 많이 쓰기기 시작한 '삼한(고구려, 백제, 신라를 의미하는, 한국인을 상징하는 말로서의 삼한)'이란 단어가 고대 삼한시대에서 부터 형성된것 처럼 착각하거나.고구려 이전과 이후에 상황이 너무 다른 것을 자세히 살피지 않아 '요동의 미약한 문화적 정체성은 한중문화교류에서 차지하는 요동의 역할을 도관이나 통로의 그것에 머무르게 했다'(요동사 p. 615)는 말을 하는등 중세에 형성된 시각을 그대로 고대에 투영해버렸다.

역사문의 밸틴님의 글 중에서...http://cafe.daum.net/alhc

본인 실력이 매우 떨어져서 당 카페같은 곳에서 감히 토론 같은 것을 못하고, 이렇게 뒷구멍에서 중얼중얼해보련다. 이렇게 조용한 변경의 글이 퍼질리도 없고 말이다^^

일단 본인도 요동사라는 개념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 만연해 있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로서 주입된 국사개념의 고구려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냉철한 역사적 의미로의 전환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김한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요동사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 역시 허구의 개념이고 아직은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했으며, 현실적인 정치와 외교 논리에서 무시당할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밸틴님이 지적하신 문제를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억측과 가정 속에서 요동사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논쟁을 할때 지양하여야 할 방법이지만!! 반문을 해보자면

"고대에 한반도와 만주지역이 한 "문화권"이었다는 증거는 대체 무엇인가?"

문화권이었다는 개념은 말 그대로 만들어진 개념이고, 개개인의 정의에 따라서 얼마던지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다. 기존의 국사에서야 "민족"이라는 허황되고 개념적일수밖에 없는 것을 절대적인 진리로서 이야기 했다. 이것도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요동사를 비판하는 그 방법 그대로라면 역시나 비판받아야 되는 방법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한국호랑이라는 분이 임지현씨의 인터뷰를 올리고 이런 덧글을 달았군요. "임지현교수 인터뷰 내용입니다 한번 만나면 물어보고 싶군요 1000년전에 삼국사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하나로 보았는데 1000년후의 당신이 갑자기 1980년대생긴 변경사라는 개념을 적용하는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는지요" 해당 인터뷰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그럼 제대로 개념이 형성된지가 300년도 안된다고 할 수 있고,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100년도 안된 "민족"이라는 잣대로 마음대로 모.든. 과거를 재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비꼬는 듯한 반문이지만....무엇보다 1000년. 아니 훨씬 전의 중국 사서들은 천하를 모두 중국의 아래로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역사는 모두 어쩔 수 없는 현대사이기에 현대 개념을 적용시킬 수도 있습니다. 단지 그 개념이 절대적이지 않고, 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당 글은.....예전에 쓰다가 중간에 다른 일이 있어서 남겨둔 것인데.....으음...그냥 공개해버리겠습니다. 갑자기 완성하기 싫어진 글이라고 할까요? 사실 이런글은 공개하면 안되겠지만....


일 단 해당 글을 번역한 분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본인 이 책의 원문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중톈을 알기에 감히 단정해서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분명히 가치가 없거나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본인 왠만하면 책도 보지 않고 이렇게 악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중톈은 우한대학교에서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하문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리고 "백년강단"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여서 마치 삼국시대의 권위자처럼 불려지고 있다. 하지만 다 헛소리이다.


역사학계에서 본인이 들은 가장 이중톈에 대한 가장 우호적인 발언은 "원래 너무 많이 알아도 말을 못하고, 너무 몰르면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데, 이중톈은 적당히 알아서 그렇게 말을 잘 할 수 있다니까."라는 발언이었고, 그나마 중립적인 발언이 "이중톈? 연예인이잖아." 이다. 보편적인 반응인 나쁜 반응은 말해 무엇하랴?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스스로를 "학자"라고 말한다. 그것도 "역사 학자"라고 말한다. 역사학에서 보면 웃기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문학을 연구한 사람이다. "삼국연의"라는 소.설.책.을 연구?!한 사람이다. 스스로는 정사 삼국지를 이용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그 시대를 파해치려고 한다지만, 역사학을 하는 입장에서는...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이중톈은 그냥 티비의 상업성이 만들어 낸 "사기꾼"이다.

오 해가 없도록 말해두겠다. 본인 도올 김용옥씨를 존경한다. 그가 티비에서 강연하는 것을 손들고 환영한다. 티비에 자주 비친다고 학자가 아니라고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용옥씨는 학계에서 이단아라는 소리를 듣지만, 최소한 학자가 아니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그런데 이넘의 이중톈은 학자소리도 못듣는다.


남에게 들은 소리로만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 박물관에 관련된 티비프로그램을 녹화한다는 공문을 받은 역사과 주임선생님의 명령으로 중국친구들(역사과 석사들)과 녹화에 가게 된다. 역사학과 석사들 반은 미쳐가고, 반은 포기했던 그 모습이 머리에 아른거린다. 본인도 그 당시의 시간을 잊고 싶다. 그래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들이 있다.

"삼국시대를 제외하고는 중국은 진한부터 지금까지 통일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삼국시대는 그만큼 중국의 역사에서 특별하다."

님아...남북조는 어디로 날라가고, 요금원도 어디론가 떠나보내는군요.


(문학쪽 관계자가 나왔을 때의 발언)"우리는 정사를 가지고 이야기 해야지. 왜 자꾸 삼국연의를 말합니까?"

...그래 말은 맞다. 근데 계속 삼국연의 이야기를 하십니까? 네???


좋다. 한 발 양보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사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중톈이 중국 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라는 생각은 제발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는 그냥 일반인보다 조금 더 역사에 취.미.가. 있는 문학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 글의 번역자 분도 분명히 钱穆《中国历史政治得失》이라는 책을 아시리라 본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결국 钱穆의 짝퉁일뿐이라는 사실도 아실 것이라고 믿는다. 왜 이 책을 번역하였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말들이 있다. “책을 고를 다른 것을 필요가 없고, 중화서국의 책을 사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혹은 명색이 중국 최고의 대학교 북경대학교의 역사학과 선생님이 중화서국으로 책을 권을 냈다라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중화서국.

 

예를 들어서 역사학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24사를 구매할 생각이라면, 무조건 중화서국이라고 적혀 있는 책을 사면 된다. 그것이 가장 좋은 판본이라고 인정 받는 것이고, 석박사 논문에서도 위의 책에서 인용한 것을 기본으로 한다.

 

중화서국이 최근 24사의 교주본을 다시 개편해서 놓을 생각이어서, 북대 역사과의 교수님들 중에서 몇분이 차출?!되서 일을 하고 있다. 중화서국의 원칙은 “校异同,不校是非”라는 원칙으로 최대한 원본의 모습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당대 최고의 해당 역사학자, 한학자등을 총동원하는 중화서국을 어찌 믿을 수 없지 않은가?

 

본인도 책을 고를 자기도 모르게 출판사를 보게 된다. 중화서국에서 출판을 했다면, 자금 문제로 끙끙 거리면서도, 일단 사고 본다. 최소한 후회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괜찮은 출판사가 없을까? 아니, 괜찮은 출판사는 있다. 하지만 출판사 이름만으로 독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믿고 책을 사게 만드는 출판사는 없는 것일까? 물론 중국은 거대한 인구로 인한 시장으로 인하여, 돈이 드럽게 안되는 전공 중에서도 전공 책을 출판하여도 기본적인 본전을 뽑는다지만, 왠지 모르게 많이 아쉽기만 하다.

 

본인에게 현재 한국의 괜찮은 출판사를 꼽으라면, 을유문화사와 대우학술총서시리즈밖에 거론할게 없다. 아쉽고도 아쉬운 일이다. 아마 본인의 지식이 짦은 이유일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국가 기구 동북아역사재단이 정식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더하면 상기 역사재단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연구회 주최 토론회에서 '요,금,원,청은 중국사가 아니며 여진,만주,한민족사로 보아야한다'는 주장이 큰 목소리로 불거져 나왔다는 것이다.

--- 다음 대한신보의 인문학의 위기중에서...
http://blog.daum.net/hanmauom/9966874

이 말은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말이다. 본인도 다음 대한신보의 글이 일정부분 옭다고 생각한다. 학자는 어디까지나 "참"으로 향하여야 한다. 설사 그 참이 지평선과 같이 다가가도 다가갈 수 없다 할지라도 끝까지 미친듯이 바보처럼 지평선으로 향해 가는 것이 학자라는 종자들이다.

본인도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고, 개인 사정으로 어릴때부터 한국 인문학의 꼬라지도 잘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에도 동감한다. (일자리 정말 없다. 후... )문제는 진정 참이라는 것을 추구하신다는 위의 글에서 위험한 편견과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이 말하는 동북공청, 간단히 말해서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라는 것은, 중국의 기본 역사관인 다민족 일국가설에 의하면 분명한 "참"이다. 참말로님도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현대 역사학은 각각의 역사관에 대해서 인정한다. 각각의 역사관 마다 각각의 이론과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고, 모든 역사는 이미 해석자(역사학자나 기타등등)의 역사관에 따라서 변하는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주류 역사관으로 보면, 곧 민족설으로 보면 고구려는 분명한 한국사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요,금,원,청은 중국사가 아니며 여진,만주,한민족사로 보아야한다'가 너무나 당연한 참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당한 문제가 된다. 그럼 중국은 자신의 역사관으로 한국의 역사는 "삼한, 신라, 백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다. 고조선! 고구려! 부여!는 한국사가 아니며 중국사! 중국사! 중국사!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해도 된다. 왜냐하면 똑같은 논리이기 때문이다.(이래서 현대 역사학이 서로의 역사관은 터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그 자체에만 터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냥 각각의 참을 인정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중국이 현재 전가의 보도인 역사관을 들이밀지 않고, 고구려는 속국이고 독립국이 아니었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중국의 역사관으로 보아도 분명한 오류이다. 그건 그렇게 대응하면 되는 문제일 뿐이다. 고구려가 독립국이어도 고구려가 중국사에 편입되는 것은 중국의 역사관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중국에 관한 것은 중국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금 이 글은 한국어로 적혀져 있고, 이 글을 보는 사람이 한국인이기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인이 동북동정에서 어떠한 애국심이나 적개심이 생긴다면,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세뇌교육, 반공사상을 통한 지도층에 대한 불만 완화와 수단 확보,이 아닌가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동북공정과 같은 문제가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하는 말이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자는 말이다. 살짝 빈정대면, 평소에 얼마나 역사책을 보시는지 궁금할 뿐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글의 쪼가리로 동북공정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문학의 위기다. 이 기회에 역사책 한권 사서 동북공정에 대해서 공부하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학자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고 성과일 것이며, 경제적인 지지도 될 것이다.

추천하는 책 : 김한규 <천하국가>
개인적으로 이 동북공정에 대해서 한국과 중국 양측의 생각을 중심을 잡고 조명하고 있다. 책이 좀 두꺼운데...만사 귀찮고 동북공정만 보실 분들은 서론부분만 읽어도 대략의 동북공정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실 수 있으리라 본다.

부언하면 김한규교수님의 <천하국가>의 역사공동체이론이 가장 나의 생각에 근접한 학설일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금의 동북지방에는 그 동안 하나의 역사적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던 (한국이나 중국과는 독립된) 역사 공동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석하면 양쪽에서 싸움이 날 일이 없겠지만...이 이론은 한국과 중국의 양측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그러니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공동체론 같은것은 먼 훗날의 꿈일 뿐이다. 예수님이 꿈꾸던 네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조차 멀어져 가는 마당에 세계 인류 모두의 역사는 개꿈일 뿐이겠지.


민족주의로 철저하게 뭉쳐서 외쳐대는 한국...
신중화주의로 달려가는 고집의 중국...



유목사회의 구조 - 서울대학교동양학강의총서 10
하자노프 (지은이) / 김호동 (옮긴이) / 지식 산업사

출간일 : 1990-03-01 | ISBN : 8942329446
양장본 | 484쪽 | 210*148mm (A5)
정   가 : 15,000원


1. 서론:유목, 그 신화의 문제점
2. 식량생산 경제의 독특한 형태로서의 유목
3. 유목의 기원
4. 유목민과 외부세계와의 관계의 사회적 전제조건들
5. 외부세계에 대한 유목민의 적응양식
6. 유목민과 국가
7. 외부세계와 유목민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인류학자가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연구방법을 빌려서 만든 인류학책이다. 많은 부분에서 사료의 인용과 적용의 흔적이 보이지만 그 기본적인 개념은 인류학에 기인하였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역대 유목에 대한 저작들을 망라하고 그 주요 논점들을 설명 비교 해 주어서 유목에 대한 입문서로는 최고라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에반스 프릿차드가 말했다 싶이. "결국 인류학은 역사학이 되느냐 아니면 무가 되느냐는 선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명언이 새삼 생각이 난다. 인류학은 종합적인 학문이라고 스스로 자랑하지만 그 속에는 중심이 되는 연구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숨겨져 있다. 현지 조사라는 것 자체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그럼 역사학자는 현지 조사를 아예 안한다는 말인가?!

또한 역사학-인류학-민속학-사회학은 각기 너무나 중첩되는 부분들이 많다. 그 뿌리가 과거에 대한 분석를 통한 미래 제시라는 점이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는 듯하다. 이미 이 학문은 서로간의 연구 대상, 연구 방법, 연구 목표등에서 매우 유사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간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서로 모두 흡수하였다. 이제 앞으로 이 학문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스스로의 자리를 찾을 것인가는......나와는 상관없다. ㅋㅋㅋ -_-;;

그리고 이 책의 번역자인 김호동씨는 머랄까...한국 중앙아시아학에서 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나 유목사회에 대한 책을 구하고 싶다면 다 필요 없이 김호동이라고만 검색을 하여도 양질의 책들이 있다. 대단한 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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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낯선 나라다.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1985)

데이비드 로웬덜 지음
김종원, 한명숙 옮김 
개마고원

출간일 : 2006-06-20 | ISBN : 8957690441
양장본 | 877쪽 | 223*152mm (A5신)

정   가 : 38,000원





역사는 더이상 진실이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해석일 뿐이다.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면 공부 할수록 마치 "오언절구"와 같이 일정한 규격속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는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해 질 수도 없다. 마치 지금의 우리 현재도 완전히 구현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로웬덜은 완벽한 역사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런것은 환상이며 오만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되도록 완벽한 역사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제시한다. 신이 죽고, 더이상 절대적인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시대에 영원히 닿지 않을 지평선을 향해서 나아가나는 것이 옮은 것일까?

또한 일반인이 역사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역사에 대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인 존재가치를 너무나 귀중하게 생각하는 로웬덜 자신도 말했던 역사학의 치명적인 단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야 된다는 말인가? 역사가 역사 이상의 것이 되었을 때, 민중을 선동하는 도구가 될 뿐인데 말이다.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서 접근을 금지하고 있는 듯한 책. 그러나 역사학도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우리의 애국적인 국민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환단고기를 즐겨 보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으나, 역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이론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다시 한번 환단고기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진실이라는것은 있긴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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