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종교"라고 불리는 것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진다. 1) 숭배대상, 2) 교리(바이블), 3) 신자 및 교단, 4) 교단의 의식, 5) 행복조건과 충족에 대한 믿음이 있을 경우 이를 종교 혹은 종교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1) 숭배할 대상은 불교의 부처, 기독교의 예수, 유교의 공자. 2) 교리로서는 불교의 불경, 기독교의 성경, 유교의 사서삼경. 2) 신자 및 교단은 불교의 스님과 보살, 기독교의 목사와 신도, 유교의 양반과 양민 4) 교단 의식은 불교의 예불과 법회, 기독교의 예배, 유교의 제사 5) 행복의 충족에 대한 믿음이나 내세관은 불교는 해탈과 윤회, 기독교의 영혼구제와 천국, 유교의 정명 혹은 군자 및 "조상신"이 있다. (유교의 경우 내세관이 약한 것이 특히 문제가 되기는 한다.)

부끄럽게도 얼마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가"도 "종교"잖아?!

1) 국가는 국가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가가 어디까지나 국민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불과한 것임에도 말이다.

2) 국가는 헌법과 다양한 법률 및 세뇌교육을 통하여서 자신만의 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그 교리 속에 있는 것이다. 진정한 모태신앙인 것이다. 국가를 바꿀 수 있다고? 물론이다. 종교도 바꿀 수 있다.

3) 국가는 국민이라는 신자와 정부라는 교단을 운영한다. 신자들은 정부의 통치체계에 지배받는다. 공무원들은 목사나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처럼 신자(양)을 이끄는 양치기 노릇을 한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양치기는 별로 없다.

4) 국가는 국기에 대한 의례라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주민등록발급등과 같은 일련의 의식을 진행한다. 국민은 그 신도로 남아 있기 위하여 위에서 규정하는 의식을 충실히 따라야 하며,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신도로 남아 있을 수 없다.

5) 국가는 역사를 이용하여 행복을 충족시킨다. 그들은 과거 국가를 지킨 인물들을 부곽시키면서, 당신도 이리 하면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가 칭송할 것이라고 암묵적인 암시를 걸고 있다.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된다는 달콤한 유혹을 누가 그리 쉽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국가도 종교다. 지금 현재의 국민국가와 중세유럽의 천주교는 기본적으로 같은 성질의 것이다. 언제인가 국가체계가 사라진다면, 그 때의 역사가들은 지금의 국민국가 체계에 대해서 어떠한 평가를 내릴까? 혹시 우리가 지금 중세유럽을 평가하듯이 암흑기라고 하지는 않을까?

"무슨 소린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포기하지 않았는가! 상식이 있는 인간 장수였다면 비록 적이라도 그들을 수습하여 장례도 치러줬을 것이다. 제기랄. 이런 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제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천생 짐승이란 말인가?"

"너희들의 빈곤한 정신이 만들어낸 그 혼란스럽고 자기파멸적인 논리 말이군. 너희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만들지. 너희들을 보호해야 하므로 국가는 강하고 위대해야 하지. 그런 국가에 비하면 너희들은 약하고 초라하지. 그래서 너희들은 국가를 위해 죽지. 보모를 사형집행자로 바꾸는 그 묘기에 내가 경탄해야 하나?"

"보모는 사형집행자가 된 것이 아니야. 내가 된 것이다! 나는 단수가 아니야!"

드래곤 레이디는 입을 닫았습니다. 말도 하기 싫은 것 같았어요.

"우리는 자신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할 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진 이들 덕분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그들은 자신을 초라한 것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확장시키고 더 위대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아일페사스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뻗었습니다.

-- 이영도의 "그림자 자국" 중에서...


감기와 몸살로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잡담으로 올린 글에 덧글이 주르륵 달려서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와중에 문득 생각난 문장이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상당히 많은 생각이 밀려와서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본인도 아일페사스처럼 신경질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은 같을 듯 하다.. 물론 이유는 좀 다른듯 하지만....라고 하면서 마구 갈겨본다.

하하하....젠장.........확장이라고?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고? 그래. 자원의 고갈의 가장 쉬운 수단인 인류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할 것이다. 민간인은 상관없다고? 왜? 국가는 이미 당신이지 않은가? 당신의 일부가 피를 흘려서 다른 일부가 행복한 것이다. 쿡...

물론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자기보존욕구를 벗어던진건 대단하지. 그런데 그것을 모든 인류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나? 아~~ 맞다. 적용시켜도 그 방법이 엉터리일 수도 있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인류의 자원고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를 대량 학살할 수도 있고 말야. 쿡쿡...

....................이상.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의 헛소리였다. 휴...

".... 신부를 죽였다면… 신부님은 죽일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 신부 살해라면, 본인이 기억하기로도 꽤 되는걸?"

  오스발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 분들은 모두 순교자로 추서되었죠."

  데스필드와 파킨슨 신부가 동시에 이채로운 눈빛으로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스발은 모닥불 끝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랭이에 눈을 고정시킨 채 조용히 말했다.

  "살해자의 목적이 한 인간의 말살이라면 신부의 경우는 살해할 수 없 습니다. 미개인이나 이교도들이 신부님의 육신을 죽일 수 있을진 모르 지만, 그 분들은 모두 순교자가 되지요. 이 경우 살해자는  오히려 신부님들에게 영생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파킨슨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논법이군."

  "아, 죄송합니다.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파킨슨 신부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데스필드는 정수리를 벅벅 긁어 대다가 말했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군. 하지만 본인에게 물어본다면, 죽고나서 무덤에 금칠해줄 바엔 살아서 금화 한 닢 받는 것이 훨씬 행복하겠다고 말하겠어."

  오스발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라도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경우와 다른 분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신부님들은 그것을 원하시지 않습니까."

  "원한다고?"

  "예. 죽기를 원하는 자를 죽이는 것이 살해가 될 수 있을까요."



-- 이영도의 폴라리스랩소디 중에서...



요즘 샘물교회의 선교단의 피랍사건으로 난리가 아닙니다. 마치 기독교와 반기독교세력의 싸움으로 발전되어가는 양상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1) 생명의 논리.
저 도 그들의 무사 귀환을 빌고 있습니다. 어떤 생명이든 소중합니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상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말해지고 있는 경구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형제와 같이 어깨 동무를 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죠.

자 신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는 인간의 논리와 도덕구조로서, 이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으려고 미리 도움을 준다는 식의 선악설도 가능하겠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기 위해서 계란바구니를 내던지고 달려가는 처녀의 성선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편적으로 생명의 존귀함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 지만 인간들이 전쟁을 시작할 때면,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을 하고, 전쟁을 끝날 때면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모순적인 말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많은 종교에서도 스스로의 교인끼리의 생명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와 반대로 "이교도"의 생명은 매우 낮게 평가하는 면이 많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행동은 기독교의 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겠다.


2) 선교와 순교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선교는 "그 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는 교회의 활동"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또한 순교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 넓은 뜻으로는 주의나 사상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쓴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샘물교회 분들에게 더 이상 목숨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천국이 약속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울 수 있을까요? 죽기를 윈하는 자에게 죽음을 줄 수 있나요?

그들에게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생명 보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어째서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위의 이영도님의 폴라리스 랩소디의 한 부분을 읽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글이 저의 생각의 대부분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너무 간략하게 해 놔서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세부 설명하겠습니다.
1) 전개될 논리는 기독교의 가치관과 논리에 입각하여 전개됩니다.

2)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3) 선교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예수가 유언으로까지 남긴 중요한 사역입니다.(사역이란 기독교에서 성스러운 일을 말합니다. 비기독교인 제가 교회일을 도와주어도 사역이라고 하지 않죠)

4) 선교중에 목숨을 바치는 일을 순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순교는 기독교에서 영광된 일중에서도 으뜸으로 취급합니다. 순교자는 하나님의 나라, 흔히 천당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부언으로 한국은 이탈리아 다음으로 교황청이 인정한 성자가 많은 나라입니다. 이탈리아야 교황청의 본거지니 그렇다고 치고, 외국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동방의 소국에서 가장 많은 성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한국에 있는지 말해주는 근거입니다. 개신교는 성자제도가 없지만 이런 면에서는 세계에서 알아주답니다.)

5) 위의 논리를 종합해 보면 순교는 기독교 신자가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그리고 같은 논리를 그대로 대입하면, 지금 현재 피납된 선교단이 살해를 당한다면 순교를 한 것이고, 그들은 기독교의 논리에서 가장 영광된 죽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순교일 수도 있습니다.



3) 김선일씨와의 비교.
어떤 기독교 신자분은 김선일씨와 비교를 하는데, 이는 매우 틀린 비교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오로지 이슬람세력에서 피랍되었다는 사실밖에 없습니다. 김선일씨는 어디까지나 중동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중동 친우들을 보아도, 그가 강제적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확해 집니다. 그런 사실은 그가 남긴 글들이나 유서에서 쉽게 접하게 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한국 정부에서 해당 지역을 금지지역으로 해 놓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샘물교회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였고요. 그런 사실들을 국민들이 알고 있고, 그로 인하여 이 번일에 김선일씨와는 다른 회의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물론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 단체가 그동안 해 왔던 모순적인 행동들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온 점도 있다. 이 부분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본인도 기독교 단체의 모순적인 행동에 분개하는 사람이지만 과거의 일을 끌어 들여서 해당 사건을 파악하기에는 그동안 꼬여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해결하기 힘들어 질 뿐이고, 감정 싸움만 될 뿐이 아니겠는가?



4) 시민의 권리와 책임.
현대 시민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책임과 권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초국가적 단체(특히 종교단체)에 의해서 국가가 점차 국민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더 스스로의 자각이 중요해 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국가에서 금지했던 행위를 스스로의 종교적 이유로 강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에는 저는 박수를 보냅니다. 국가의 권고보다 시민 스스로의 판단이 더 강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피랍이후의 행동에서는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일에 어째서 국가의 도움을 바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위해서 국가의 권고를 무시했으니,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념입니다. 죄송스럽지만 어떤분은 어떻게 그들을 욕할 수 있느냐고 하셨는데, 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현대 시민의 권리를 충분히 이용하면서, 스스로 불리해지는 입장에서 다시 국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는 매우 모순적인 행동으로서 분명 욕먹어도 할말이 없는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국가의 권고를 듣던가? 국가를 무시할 생각이면 끝까지 무시하던가? 방해되면 무시하고 필요하면 쓴다??


5) 개인으로 돌아와서...
만약 본인의 가족중에 위의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사건의 대외자로서 말하는 것이니 객관성은 보증되지만, 주관성은 완벽하게 배제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무기인 상상력으로 생각해보았다.

동일한 상황에서 절대 국가의 도움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 가족이 스스로 국가의 경고를 무시했는데 어떻게 국가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본인은 해당 종교단체와 넓은 의미의 해당 종교단체, 다시 말해서 샘물교회측과 한국 기독교 단체에 그들의 무사 생환을 위한 방법을 요청할 것이다. 그것이 정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논거와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면 :

본 인은 샘물교회 선교단이 무사 귀환하기를 바란다. 본인은 누구보다 내 생명이 소중하고 다른이도 그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식에서 어떠한 국가적인 행동이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스스로가 국가의 권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해서 행한 일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 필요한 듯 하다.

무엇보다 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논리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 논리는 본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기독교의 교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논리이다.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자도 구해야 되는게 생명의 존귀함이지만, 왠일인지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혹시나 이 길고 재미없는 글을 다 보신분은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기독교 본연의 논리로 보면, 설령 그 선교단이 죽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말리는 것은 자살방조일까요? 아니면 그들을 위한 일일까요?

위의 질문을 꽃수염님이 간략하게 풀어놓으셨네요.

그들을 살려주세요 -> 교리에 어긋난다.
그들을 순교하게 해주세요 -> 생명을 경시한다

특히 기독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추가 :기독교인들 회개합시다  라 는 글을 보시면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이분은 기독교 교리에 맞게 선교에서의 순교를 각오해야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기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서 설명된 훌륭한 글이기에 한번씩 보셨으면 좋겠군요.

이제 필요한것은 교리보다는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의 글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이번 일로 믿음과 생명사이의 교리적 해석에 대해서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처에서 글을 쓰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딴 분이 제 글을 보고 적은 글입니다.

두 분의 말씀에서 나름대로 지향점이 다르다고요. 죄송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선조의 피와 땀으로 만든 역사를 지금에 와서 그냥 넘어가려구 하다니요. 현 정책과 이념을 언급한다고요. 국가가 해준것이 없다고 자신의 국가를 부정하십니까? 그럼 이시간 부터 자신의 부모는 부정하여 보시지요. 무엇이 다른가요.

역사가 없는 국가가 존재하나요?  부모가 없는 자식이 존재하나요? 님 같은 분이 왜 우물안 개구리가 되시려고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똑바로 현 사태를 보고 그것에 대하여 논하기를 바랍니다.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제가 격하여 쓴 글은 잘 이해하여 읽었으면 합니다.

케네디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냐고 생각하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상은 최소한 미국, 일본, 한국, 중국에서는 진실로 통한다. 특히나 일본, 한국, 중국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된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국가예찬은 끝이 없다. 국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교과서의 앞에서는 "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을 세뇌시킨다. 그래서 심지어 국가를 부모와 동일시하여 생각하는 위의 님같은 분이 생겨나게 된다. 본인 이 생각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간단한 예로 "사람이 없는 국가는 존재하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가 없어도 사람은 존재한다." 또한, 사회계약론에 의하여 "국가는 국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치집단"일 뿐이다. 만약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것이 없다면 나는 그 국가를 부정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국가로 이민을 떠날 것이다. 위의 님의 논리대로 라면 이민은 "부모를 버리는 행위"이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이민이 부모를 버리는 행위라는 생각에는 도무지 동감할 수 없다.



이 블로그에서 미약한 힘이나마 한국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저런 중국 소식을 올리는 이유를 한국에 대한 충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 한정해서 이야기 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이 나에게 준 것들(교육과정이나  물질적인 직접적인 도움 외에도 아니면 그외에 지금의 본인의 사상을 형성하게한 포괄적인 사회문화)에 대해서 보답을 하는 의미에서 써내려가는 것이다. 단지 그 뿐인 것이다.

또 아직 국방의 의무를 하지 못하였지만, 반드시 군대에 갈 생각이다. 그 이유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본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삶을 향유하고 있을 때, 다른 분들이 국가의 의무로 군대에 갔고, 그로 인하여 본인이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였지만, 어떤 분이 목숨을 담보로 본인의 안전을 지켜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생각으로 군대는 꼭 가겠다는 것이다.


인간이 먼저인가? 아니면 국가가 먼저인가?
본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먼저이다. 국가는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저분의 생각도 인정은 한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여서 남을 비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생각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안목이 넓어지는 길이 아닐까? 물론 그 생각을 이해하는 것과 본인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름을 긍정하는 것. 본인도 잘 못하는 것이지만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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