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2일,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 전환 확정 발표를 하였다. 고시된 대로 진행될 경우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017년부터 국정교과서로 전환되게 된다. 


역사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학교 역사학 개론만 배웠어도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현대 역사학의 기본도 모르는 작태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군생활에서 겪었던 일화가 생각났다. 나이 30에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하여 일반 사병으로 입대하였다. "늙은이"여서 간부하고도 자주 이야기를 한 편이였고, 정보과에서 일을 하다보니 기무쪽과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당시 민간인 사찰에 대해서 기무의 간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기무의 간부의 주장대로 대북 간첩에 대한 감시에서 현행법을 모두 지키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은 중국에서 오래 유학한 입장에서 한국이 북한이나 중국 수준으로 언론자유와 사상자유가 억압되기를 원하지 않기에, 현행 법에 어긋나는 순간 가차없이 처벌되어야 된다고 이야기 하였다. 아무리 안보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보다 더 우선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국을 북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빨갱이의 농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한국의 사상자유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국정화 찬성자들의 말 중에서 가장 한심한 말이 "국민들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역사학. 아니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조차 없는 한심한 말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인류의 역사에서 현재까지 존재했던 정치체계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가 전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공동체를 이룸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같은 생각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다른 생각을 "조화"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도, 현대 역사학은 사료를 기반으로 한 토대가 분명하다면, 서로 다른 역사관을 긍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근거도 없는 헛소리가 아닌 바에야, 서로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으며, 마땅히 서로 다른 해석을 해야된다.


그렇기에 역사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석을 설명해주고, 이에 따른 피교육자 스스로가 각각의 해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제대로 역사를 교육할려면 당연히 서로 다른 해석이 충돌해야되는 것이다. 생각의 충돌은 당연하며 권장되어야 된다. 문제는 충돌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이다.


혹자는 국정화가 진행된다면, 소위 말하는 뉴라이트계열의 역사관으로 통일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상적인 충돌이 있는 모든 역사적 내용을 축약하거나 없애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더욱 두렵다. 역사 교육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아...정말 대학교 수준의 역사학개론만 들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잡담을 굳이 해야되는 현실이니 답답할 뿐이다. 하아...정말 진심으로 한국이 북한 수준으로 추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체..하아...한국아. 한국아...힘내자. 


한국은 출판대국이다. 정확히는 참고서 출판대국이다. 한국에서 출판되고 유통되는 대다수의 서적은 사실 중고등학교 참고서이다. 씁쓸한 현실에 대한 비판은 뒤로 하고, 참고서의 미래를 생각해보자.


맞춤형 교육은 한국 교육의 미래이다. 보편적인 지식의 전달을 넘어서 개개인이 더욱 알고 싶어하는 사항에 대한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맞춤형 교육의 미래이다. 역사 시간에 난중일기가 언급이 되었는데, 만약 난중일기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지금으로서는 난중일기를 찾아서 읽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교육에서는 그 자리에서 곧장 난중일기의 해석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더 관심을 가진다면 한자로 된 원문과 주석을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수학시간에 함수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함수에 대한 추가적인 교육내용을 제공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보충하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교육은 단순히 암기력만을 강조하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 단순한 검색으로 알 수 있는 "년도"나 "고유명사"보다 사건에 대한 이해를 중점으로 하는 교육으로 이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능시험에서도 단순한 계산이나 암기문제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실전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책으로 출판된 교과서와 참고서는 그 매체의 특성상 보편적인 지식을 밀어넣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다. 맞춤형 교육은 망상이며, 무조건적인 암기만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 결국 한국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는 디지털 교과서와 참고서의 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디지털 교육을 위한 한국의 환경은 상당히 뛰어나다. 한국의 어느 곳에서도 초고속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며, 청소년들도 디지털 매체의 조작을 호흡처럼 생각하고 있다. 다만 제대로 된 디지털 교육 콘텐츠가 부재할 뿐이다. 이러한 디지털 교육 콘텐츠의 부재는 기존 학교선생들의 나태나 출판계 거대권력 참고서 출판사들의 방해 등 다양한 요인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교육을 위한 콘텐츠 부재의 본질적인 핵심은 정부의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서는 어디까지나 교과서의 부산물일 뿐이다. 만약 정부가 앞장서서 "디지털 교과서 표준안"을 마련하고 디지털 교과서로의 이행을 준비한다면, 디지털 교육으로의 이행에 충분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디지털 교과서 표준안은 단순히 과거의 교과서 표준안을 복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내용의 무한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에 합당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령 합리적인 디지털 교과서 표준안이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이를 보충하는 다양한 디지털 참고서가 탄생할 것이다. 정부가 해야되는 일의 핵심은 "디지털 교과서 표준안"을 시작하는 것 뿐이다. 잘하면 좋겠지만, 굳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시작 자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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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이라서 아직 정리가 안된 글 ~.~

그냥 아이디어를 배출해서 나열할 뿐~~~

언젠가~ 먼 훗날에...


최근 노신의 글이 중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문체가 평범하고 시대에 뒤쳐져 있다는 황당하기까지한 이야기이다. 중국인들도 이 일에 대해서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반박을 하고 있다.

노신의 가치가 과연 문체에 있었던가? 사실 노신의 문장은 너무나 간단하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중학교교과서에도 나오고, 외국인의 중국어 초중급교재에 그 글이 나올 정도이다. HSK 6급만 되어도 해석자체는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심심풀이로 온갖 글을 번역하는 본인도 감히 노신의 글만은 감히 손대지 못하고 있다. 노신의 글은 매우 쉽지만,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정신을 번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자 한단어에도 수 많은 의미가 내포가 되어 있기에 허투루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시대에 뒤쳐져 있다는 이유는 반박할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섹스피어의 희곡들은 이미 지하 3000M에 매장되어야 하며, 톨스토이의 글들은 낡은 종이쪼가리일 뿐이다. 그리고 논어나 맹자 같은 것은 구시대의 잔재로 불태워버려야 마땅한 것이다. 지금 현재 마르크스의 주장자체는 시대에 뒤쳐진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르크스의 저서들은 어찌 할 것인가?

중국인터넷에는 "한국인이 노신도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라는 유언비어가 있다. 그런데 만약 노신을 중국교과서에서 이렇게 내팽겨친다면 노신의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혹은 "일본인"이라고 하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한국교과서에는 노신의 아Q정전이 있다.  정작 중국에서 당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정신에게 이런 모멸적인 취급을 하면서 어찌 감히 그 후예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루쉰 선생님이 지금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말을 하실까? 그의 애정이 가득 담겨있으면서도 매서운 글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오늘은 돌아오지 않던 <공이지孔乙己> 너무나 그립다.



* 노파심에 말합니다. 이 글을 보는 중국분들은 제 글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 어느 형님의 요청으로 노신 선생님의 몇마디만 "발번역"해보겠습니다.
- 나는 마치 한마리의 소와 같다. 먹는 것은 풀이오. 짜내는 것은 젖과 피다[각주:1].
- 자유는 분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위해서 팔 수는 있다[각주:2].
- 영웅이 없는 민족은 구슬프다. 그러나 영웅은 있지만 소중히 여길지 모르는 민족은 절망적이다[각주:3].(실제로 중국네티즌들이 노신의 글이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가장 자주 인용하는 노신의 말.)

제 눈에만 현재의 한국과 중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들이라고 느껴지는 겁니다. 암요.암요.

  1. 我好像是一只牛,吃的是草,挤出的是奶 、血。 [본문으로]
  2. 自由固不是钱所买到的,但能够为钱而卖掉 [본문으로]
  3. 一个没有英雄的民族,是悲哀的;但一个有了英雄而不知道珍惜的民族,则是绝望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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