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 열심히 공부 하지 않으면, 좋은 중학교에 갈 수 없어."
중학생 : "열심히 공부 하지 않으면,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없어."
고등학생 :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없어."
대학생 :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취업을 할 수 없어."

사회인 : "왜 이렇게 사회생활을 몰라.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했냐?"

小学:“你要是不好好学习,将来就考不上初中。” 初中:“你要是不好好学习,将来就考不上高中。” 高中:“你要是不好好学习,将来就考不上大学。” 大学:“你要是不好好学习,将来就找不着工作。” 工作:“你在学校的时候是不是光顾着学习了?
요즘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뜨겁다. 그러나 해당 드라마의 원작의 이름은 어디까지나 드레곤사쿠라(ドラゴン桜)이며 감히 "공부의 신"이라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제가 되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당 드라마는 공부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명문대 입학 테크닉"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의 뜻을 너무나 왜곡시키고 뭉개 버렸다.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다. 그런데 같은 한자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의 공부하다는 뜻의 한자가 완전히 다르다. 일본에서 공부를 한다는 말은 한자로 勉彊라고 적는다. 힘이 모자라는데 억지로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인에게 공부란 바로 힘들고 부족하지만 억지로 노력해야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보통 学习라는 말을 쓴다. 이론적으로 배우고 다시 그것을 실습한다라는 뜻이다. 중국인에게 공부는 배우고 또 배워야되는 것이다.

그럼 한국어의 공부는 어떤 한자를 쓰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의 공부는 한자로 工夫[각주:1]라고 쓴다. 그 고대한어에서의 뜻은 "어떤 일을 하는데 소모되는 힘[각주:2]"이나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서 익힌 능력[각주:3]"을 말한다. 우리가 "공부가 부족하다"라고 할 때의 공부는 바로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서 익힌 능력이나 어떤일을 해낼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일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일까? 그냥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일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일까? 공부(工夫)을 한자 한자 뜯어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공부의 공(工)은 잘하는 다는 뜻이며 사람이 규칙이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만약 어떤 일을 잘하려면 우선 규칙과 법도를 지켜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잘할 뿐이며 이는 매우 경계해야된다고 생각했다[각주:4]. 단지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공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뛰어나다(巧)라고 할 뿐이다. 공을 이루려면 인간의 도리와 규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부(夫)는 고대에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말한다. 정리하자면 : 공부는 인간의 도리를 기본으로 어떤 일을 잘하는 성인을 의미한다. 단순히 어떤 일을 잘한다고 공부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요즘 인기가 있다는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의 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명문대에 어떻게 입학을 하느냐일뿐이다.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다. 인간에 대한 성찰도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수 천년전의 사람들이 걱정했던 바로 그 폐단과 문제를 충실히 실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공부(工夫)와 중국의 무술 쿵푸(功夫)는 비록 한자가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쿵푸는 자기 수련을 위한 육체단련이라는 의미를 잊어버리고, 화려함만을 추구하고 있다. 마치 한국에서 공부가 명문대입학테크닉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공부는 한중일 3국의 공부에 대한 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단어이다. 그리고 그 만큼 다양한 함의가 농축되어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수 천년전의 사람들조차 걱정했던 기술로만 빠져드는 실수를 범하는 이상 한국의 공부에는 희망이 없다.



* 정말 이 글은 몇 번을 날려먹는지. 처음 쓴 것..정말 느낌 제대로 받고 잘 나왔었는데....ㅠㅠ 모르겠다. 기왕 쓴 글이니 아래부분을 다시 써서 올리긴 하지만............크어어어!!! 솔직히 새로 쓴 문장들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차라리 공부의 신의 원작인 드레곤사쿠라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출신학교라고 망하지 않게 한다는 어이없는 설정은 없다. 어디까지나 학교를 살려서 대박이 나려고 하는 것 뿐이다. 그 외에도 거의 모든 면에서 공부의 신은 위선덩어리다.


  1. 한중일 삼국 중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 그 정신의 좋은 쪽을 잘 이어 받아야 되는데 오히려 고대인들이 걱정한 일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 [본문으로]
  2. 逢人便请送杯盏,著尽功夫人不知(元稹 《琵琶歌》); 艺文不贵,徒消工夫(葛洪《抱朴子·遐览》); 重行整理,又须费一番新工夫(鲁迅《书信集》) [본문으로]
  3. 艺文不贵,徒消工夫(葛洪《抱朴子·遐览》); 重行整理,又须费一番新工夫(鲁迅《书信集》) [본문으로]
  4. 설문해자 원문을 넣으면 계속 아래부분이 저장이 안된다. 알아서 찾아보시도록...머지..젠장-_- [본문으로]
북경대학교 역사과에 올라온 글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연구는....아니! 모든 학문 연구는 타인의 피를 먹고 산다. 누구보다 피와 멀어보이는 학문쪽에서 무슨 넘의 피냐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는 것이냐고? 아니다.

본인 고대사를 공부한다. 그리고 현재 논문 주제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탄을 한다. "아! 진짜 왜이리 자료가 없어, 좀 서로 죽이고 그러라고!" "전쟁이 왜이리 없어. 더 있을터인데 거참...!" 냉정하게 돌아보면 상당히 무서운 말이다.

전쟁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서로 암살을 하고 격투를 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시대에서 괴로웠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런 내용을 연구하기가 힘들다고? 어차피 과거인데 뭐가 어떠냐고?
 
이는 블로그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뉴스는 누군가의 피눈물이 묻어있다. 대부분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은 개인의 일상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관심이 주목되는 것은 보통 "누가 어떤일을 당했다느니..." "쌀직불금을 못 받은 농민들의 분노"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까?

모르겠다. 쓸데 없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쓴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위에서 말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글을 찾고 있다는 원래의...혹은 가식적인 마음을 잊지 말자...

"연대기 작가라고 자칭할 때가 더 많지. 연대기 작가가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역사와 현실 중 현실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에선 야심가와 같지만, 관찰하고 해석할 뿐 참여할 수는 없다는 점에선 역사가와 같은 사람을 말하네."

"왜 참여하시지는 않습니까?"
바탈리언 남작은 잉크병을 열었다.
"관찰자로 우수한 이가 있고 행동가로 우수한 이가 있네. 난 전자야.내겐 재능과 행운이 있거든. 내 행운이야 오늘 일어난 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겠지. 이 굉장한 사건 속에 휩쓸리지는 않지만, 관찰하고 있네. 그리고 이렇게 기록도 남길 수 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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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님께서 죽은 과거보다 살아있는 현실을 더 사랑하시는 것은 짐작합니다. 역사가가 아니라 연대기 작가가 되시기로 결심하셨으니까요. 그리고 남작님께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하신 것도 압니다. 예. 언어는 말해진 순간부터 고정되겠지요. 어떻게든 이 아름다운 지금을 표현해 보려 해도, 그것은 표현된 순간부터 죽은 과거가 되겠지요."
남작은 졸음에 취하여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은 어쩌면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오스발의 목소리는 이제 산들바람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남작님은 훌륭한 연대기 작가이십니다."
"어째서-?"
"지금을 사랑하시니까요."

-- 이영도의 폴라리스 랩소디 중에서...


요즘 자주 생각나는 문장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한다. 관찰하고 해석할 뿐 과거에는 내가 참여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나는 "지금"을 너무나 사랑하나보다.  그렇다고 나는 행동하는데 필요한 능력이 없다. 그리고 용기도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아련하다.


관찰하자.
그리고 운이 좋으면 나의 조그마한 관찰로 현실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겠지.
관찰하는 능력부터 제대로 기르자.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니까! 괜히 공부가 안된다면서 이렇게 떠들지 말고 책이나 더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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