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개인적으로 한의학전공이 아니다. 다만 고문을 기본적으로 독해를 해야되는 역사학을 공부하였기에 감히 이 번역문을 비판을 하려고 한다. 아니. 한 명의 번역쟁이로서 "번역"이 "반역"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분노를 보여줄듯 하다.


1) 번역이란?
번역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각주:1]을 지칭한다. 이것은 번역을 해석한 것이다. 그럼 번역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언어"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다른 언어"로 옮겨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문 번역을 잘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조선왕조실록의 원문은 일반인들은 알아볼 수 없는 고문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깔금하게 현대 한국사람들이 쓰는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 "엉터리" 번역문 예시
그런데 위의 책은 본인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일단 "번역되었다는 문장"을 보도록 하자.

"伤寒의 发热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发热이란 皮와 膚 사이에서 끊어오르듯(怫怫然) 发하여 세찬 불이 타오르듯熇熇然 흩어지면서 생기는 热이다.[각주:2]"

혹시 이 문장을 보고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시는가? 본인의 첫반응은 "뭔 소리야"였다. 그리고 원문을 찾아보고서야. "아~!!"라고 했었다. 고문보다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장이 제대로 된 번역인가?

더 황당했던 것은 해당 책의 제목이 "지하철에서 읽는 상한론 시리즈"였다는 점이었다. 대체 어떤 일반인들이 해당 책을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작가는 해당 책이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상한론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등하교 시간 동안이라도 상한 관련 책들을 항상 손에서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여 목표대상이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원문을 직접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설사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볼 용도로 "번역"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정확한 주석을 달아주거나 구체적으로 "가장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3)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더 맞다고 본다.
본인이라면 위의 같은 문장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할 것이다.

"상한론伤寒 에서는 열이 나는 것发热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열이 난다는 것发热는 피부의 겉표면 껍질皮과 피부 아래부분인 피하지방이나 땀선등과 같은 부膚사이(주리腠理 라고도 함)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듯怫怫然 시작发하여 세찬 불이 타오르듯熇熇然 흩어지면서散 생기는 열热이다.[각주:3]

물론 이런 방식으로 번역을 하면 번역가는 매우 고달파진다. 해당 단어에 합당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찾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해야된다. 사실 본인은 일단 发热을 열이 난다라고 풀어서 해석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글을 올리는 지금도 고민스러울 정도이다.  发热에는 열이 난다는 것만으로 번역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원문의 뜻을 완전히 이해를 해야지만 제대로 번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문의 경우 한자 한자의 뜻을 이해해야 하기에 더욱 더 피곤해진다. 그러나 그런 전제조건이 있고서야 "제대로 된 번역"이 있을 수 있다.

본인이 엉터리 번역이라고 말한 번역방식으로 번역을 한다면 상한명리론伤寒明理论의 경우는 일주일에서 이주일 사이에 번역을 완료할 수 있다[각주:4]. 불분명하거나 모르는 단어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이미 일정한 고정된 틀이 있는 부사들만 번역하니 쉽고 빠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번역이 아닌 반역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4)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다.
번역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문을 옮기는 것뿐인데 얼마나 어렵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원문을 완전히 이해해야될 뿐만이 아니라[각주:5], 그것을 분명히 다른 문화에서 생겨난 원래 언어와는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각주:6].그렇기에 번역을 제 2의 창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번역가 수준도 아닌 번역쟁이이지만 번역의 이름을 망치는 "이따위"에 분명 화가 난다.

번역은 장난이 아니란 말이다!!!

  1. 표준국어대사전 [본문으로]
  2. 伤寒发热,何以明之,发热者,谓怫怫然发于皮肤之间,熇熇然散而成热者是也 [본문으로]
  3. 伤寒发热,何以明之,发热者,谓怫怫然发于皮肤之间,熇熇然散而成热者是也 [본문으로]
  4. 조금 과장이 들어가기는 했다. 하지만 한달내로는 충분히 번역완료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심지어는 원작자 자신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쓴 단어활용과 문장사용까지도 잡아내야된다. 그런 이유로 번역 한번 해보면 원작자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보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6. 단어 하나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单位이라는 중국어가 있다. 한국어로는 간단한게 회사정도로 쓰일 수 있지만, 중국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단순히 회사로 말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본문으로]
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论语·述而》
3명이 길을 가다보면, 그곳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 글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은 "3명이서 길을 가다보면 어떤이는 훌륭하여, 그것을 본받아서 자신을 발전시키니 나의 스승이고, 어떤 이는 쓰레기이니,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고치므로 나의 스승이다." 이다. 여기까지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모두가 아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최근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며 트위터에 위의 글을 올리자 @bujiwibuji 님이 완전히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문 번역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나, 기존의 해석각도을 완전히 반대로 해버린 이 해석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각주:1].


3인이 길을 가면, 한 명은 훌륭하고, 다른 이는 쓰레기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명은 무엇일까? 공자 자신일까? 그러나 해당 고문은 "3명이서 같이"와 "3명과 같이"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공자 자신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각주:2].

그렇다면 잘하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도 아닌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될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bujiwibuji님은 이에 대해서 "잘한다고 뻐기기에는 민망하고, 못한다고 빠지기에는 억울한... 그러니까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 이들은 본받기엔 만만하고, 개선하기에는 큰 하자가 없어서, 투명인간으로 처리."라고 해석하였다.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잘하지도 못하고, 못하지도 못한 언급되지 않은 존재와도 같다. 우리네들에게는 그렇게 잘난 사람도 없고, 그렇게 못난 사람도 없고, 그 중간에 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을 나눌 줄 알고, 타인과 기쁨을 같이한다. 비록 거창한 "배움"이나 "가르침"은 없지만, 그런 모습이야 말로 인생이며, 배워야될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공자 자신이 그런 사람들을 투명인간으로 처리했다기 보다는 그런 평범한 모습도 가능하다는 것을 후대의 해석자들이 무시한 것이 아닐까?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해석을 하자면 : "3명과 같이 길을 가다보면, 어떤 이는 훌륭하여, 그것을 본받아서 자신을 발전시키니 나의 스승이고, 어떤 이는 쓰레기여서,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여 고치므로 나의 스승이다. 또한 어떤 이는 그리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지만, 그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기며, 우리네 이웃이기에 나와 함께 해주는 친구와 같은 스승이다."



* 고문의 즐거움.
고문은 표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변하고, 단어 하나에도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고, 무엇보다 글자수를 최대한 압축을 해놓았기에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가 풍부하다. 그것이 고문의 매력이자 저주이다. (저주라고 여길때 고문이 고문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을 하고는 한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기존의 고문을 다르게 해석한 내용을 보면 참 재미있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문 독해능력이 없음을 생각하면, 변태스러운 자위행위라고도 생각된다. 쿨럭;;;

* 트위터의 즐거움.
평소에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와 더욱 쉽게 교류를 하며 자극을 줄 수가 있다. 비록 140자의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런 제약성은 최대 압축의 고문처럼 그 나름의 매력으로 다가오기에 자주는 못 올리지만, 생각의 단편들을 오늘도 트위터에 올리고 흘려보내어 다시 돌아온다.

* 焉 : 어조사 언을 뺴면 안돼요 -0-
가끔 마지막의 "焉"을 빼놓는 분이 있다. 고대한어에서 한자 한자는 결코 그냥 쓰이지 않는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컴퓨터 타자도 없었고, 인쇄도 불가능했고, 복사도 불가능했다.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 없는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焉은 한국에서 어조사 언이며 별 의미가 없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焉은 감정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 혹은 "이 곳에"(此地)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의 문장으로 예를 들면, 3명이서 길을 가는 (바로) "그곳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시기 바란다. 이는 철학논문이 아니다. -_-;;; [본문으로]
  2. 또한 공자 스스로가 이미 성인에 근접한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보다 훌륭해서 배울 자가 많아야 얼마나 많을까? 이 말을 주석 처리한 이유는 감정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하여^^;; [본문으로]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역사 사료를 해석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에서 나오는 문장을 기본으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똥을 싸고, 어떤 정책을 통과시키려고 어떻게 싸움박질을 했는지 알아보는 학문이다. 한국은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유교사상이라는 모든 사항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정신을 가진 이념과 한자라는 문자가 전래된 덕분에 일찍부터 국가차원에서 역사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사료는 믿기가 힘들다. 왜곡과 과장은 기본이고 삭제도 심심하면 일어나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남자들이 허풍을 치는 것 중에 한때 10대 1로 싸웠냐느니. 100대 1로 싸웠냐느니. 내가 툭 치니까 옥수수가 우르르 쏟아진다는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가 생각나시는가? 아니면 군대에서 북한에 넘어갔다 왔냐느니, 태권V가 국회의사당이 열리며 출동한다느니 하는 이러한 헛소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신라가 만반의 준비를 해서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처절하게 깨지고 돌아왔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허벌나게 쪽팔리는 일이다. 그럼 "우리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깨지고 돌아왔다."라고는 절대 기록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1000명을 사로잡아서 돌아왔다."와 같이 서술해 버리는거다. 참~~~ 쉽죠?~~잉~

삭제도 비일비재하다. 당신이 피임을 잘못 해서 임신을 해버렸다. 혹은 임신을 시켜버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정말 친한 주위의 사람들 외에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낙태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물론 속도위반 소리를 들으며 결혼할 수도 있다.) 물론 먼 훗날에 자서전에 한 줄 정도 언급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평생동안 마음 속 깊이 묻어두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서 만약 고구려가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시도때도 없이 공물과 여자들을 요구했다고 하자. 모두가 알다 싶이 나중에 신라만이 살아남아서 신라 사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게 된다. 김부식이 볼 때 위의 사실은 무지막지 쪽팔리다. 해결방법은? 그냥 해당 사실을 삼국사기에 쓰지 않으면 된다. 참~~~ 쉽죠?~~잉~

이렇게 문제가 많은 역사사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타임머신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료와의 교차분석과 고고학 및 다양한 학과의 방법론을 동원해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괴로움이다. 역사자료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을 믿을 수가 없으니 짜증나지 않겠는가? 그나마 A라는 나라가 있었고, B라는 나라가 있었다 정도는 불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그 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기에 그런 "분명한" 사실들을 늘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과학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인문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이 분석이 아닌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역사사료조차 쓰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소설을 쓰는 분들이 계시다. 이미 근대에 작성되었다고 "확정"된 환단고기를 기반으로 온갖 판타지를 쓰시는 분들이다. 본인 얼마 전 발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가 우연히 이병화의 "발해강역고(渤海疆域考)"을 다운받게 되었다. 그리고 주화입마에 빠져버렸다. 대체 어떤 고대사 역사논문에 역사사료를 하나도 인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체 그의 말이 어떻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증거도 없이 그냥 그 사람이 써 놓은 것을 진리라고 생각해야되나? 그냥 자신의 말이 진리다라는 과대망상에 불과하다.

사료는 분명히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그런 사료조차 쓰지 않는 사이비들아.
................그만해라. 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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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 본인의 주변이 역사학도들이다보니 공자가 한국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바보들은 없다. 그런데...본인과 친하지는 않지만, 알기는 아는 한 사람이 이런 바보였다. 더 문제는 그 사람의 선배가 선진사(공자가 살던 시대) 전공이라는 것이다....그 사람은 대체 멀까?

덧2 : 여전히 논문주제발표 준비중.....핵심은 욕심을 버리는 것인데, 욕심에 나를 맡기고 있다.

自遺咎也. 자유구야. - 노자 9장.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기게遺 되니,  (임채우)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긴다遺.         (이현주)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길遺 뿐이다.  (김용옥)
스스로自 허물이咎 될 뿐이니(遺?), (이경숙)

  “咎(허물 구)”자를 모두 현대의 대표적인 훈(의미)인 “허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번역이 틀렸다고 크게외치던 사람들의 번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표적인 오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렇게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遺. 

   허신의 《설문해자》를 보면 “咎, 災也.- 구咎는 재앙災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咎”자를 후대에 파생된 의미(현재의 의미)인 “허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뜻이 통하지 않게 되는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어(어휘)”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의미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소하님의 고대한어1 사어詞語(어휘)의 개념.라는 글. 중의 일부이다.

개인적으로 그렇지! 이러다가... 마지막에 헉! 했다. 돌아오네遺라니??!!

遺:《說文》亡也。《集韻》餘也。《正韻》失也。 소하님이 언급한 설문은 亡이라고 하고 있다. 그럼 亡은 무엇인가? 우리도 잘 아는 없앨 망자이다. 기본적인 뜻은 "없다" "도망가다" "잃어버리다" "죽다" "멸망하다"등이며, 망자는 같은 설문에서는  逃也。라고 하여 "도망친다"는 의미가 강하다. 참고로 후대의 뜻인 집운은 "남음"이다. 정운은 "잃어버림" 대체 遺의 어디에 "돌아오네"라는 뜻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고문의 해석은 앞뒤도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문장의 앞부분은 貴富而驕 "부귀로 교만해지면"으로 해석이 된다. 그 뒷문장을 보면, 功述身芮,天之道也 (솔직히 여러가지 이유로;; 해석하기 곤란하지만, 억지로 해석을 하면) "지속적으로 수련을 하여서 몸에 양의 기운(芮)을 늘리는 것이 곧 하늘의 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경우 아래와 같이 해석할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면 재앙이니

스스로를 잃으면 재앙이니

혹 융통성있게 한다면 :

스스로 길을 잃어 재앙이 될지어니

이 문장 자체는 "포기하지 말라는 경고이다."전체문맥으로 연결을 해보면, "귀하고 부자가 되었다고 교만하게 되어서, 스스로 길을 잃으면 재앙이 있을지니. 열심히 계속 수련을 하여 양의 기운을 쌓는 것이 천하의 도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하님이 지적하신대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닌 해석 자체의 문제로 생각해보면 "遺"을 돌아오네라고 하는 것은 역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는 분의 제보에 따르면, 혹시 遺을 還과 혼동하신것은 아닌지....

해당 내용을 유머를 위한 막가파 고문 해석입니다.
엄격한 해석이 아니라는 점 염두해주셨으면 합니다.


후조의 왕 석호는 강에 다리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사석을 던지지만 돌이 급류때문에 계속 흘러내려갔다. 500여만을 동원해도 다리를 만들지 못하자 열받아서 건설자를 죽여버렸다.

赵王虎作河桥于灵昌津,采石为中济,石下,辄随流,用功五百余万而桥不成,虎怒,斩匠而罢。


웃기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같이 미얀마에서는 해일,중국에서는 지진이라는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 나타나는 때에는 더욱 자연에 경배하게 됩니다.인간은 자연을 정복했다고 주장하지만,강은 여전히 유유히 흘러 가서 바다와 만나는군요.

지금에 와서 보면 그정도 다리도 못 만드냐라는 석호의 행동이나 조금 더 발전했다는 우리네들의 과학이나 자연 앞에서는 똑같아 보입니다.앞으로는 지진같은 재해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이 있게 주장하시는 분들은 더욱 더 석호와 닮아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중국기본고적고 中国基本古籍库>는 북경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교들이 참가해서 만들어낸 중국 중점 전자출판 사업중에 하나입니다. 선진시대부터 중화민국시대까지 (기원전 11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의 역대 서적 1만여종, 총합 16만여권을 전산화시켰습니다. 사실상 현재 나온 모든 고적의 전문과 1~2개의 영인을 제공합니다. 총 합쳐서 17억이 넘는 자이고, 판본이 1만2천여개, 영인이 1천여만항목에 이르며, 용량만 320G에 달합니다. 이 분량은 <사고전서 四库全书>의 3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입니다. 다양한 검색으로 편안하고 쉽게 원하는 항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image 기존의 사고전서와 또다른 점은 한국어를 지원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에서 한국어 지원이라고 해도 메뉴 몇개 한국어로 만든것 뿐이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그냥 중국어판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은 안해봤습니다.) 앞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서양권에 판매할 목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중국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필수라고 해도 될 프로그램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용해본 느낌은 기존의 사고전서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데이타량만 늘린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팍팍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래 사고전서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졌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물론 문제점이 있습니다. 실제 사고전사든 전자 사고전서든 오탈자의 천국이라는 명성을 휘날렸다싶이, 이런 방대한 분량은 아무리 감수를 하여도 분명히 수 많은 오탈자가 존재합니다. 정확한 학술논문에서는 무조건 제대로 된 원문을 찾아보아야합니다. (이거 귀찮다고 안했다가  딱 걸려서 죽어라 욕먹은 어떤 사람도 있습니다.-_) 하지만 너무나 방대한 중국 고적들에서 원하는 항목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 북경대 내부에서는 접속이 되며, 몇몇 wn대학교에서도 서비스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절대 결코 접속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불법 해적판이 생겨날듯 합니다. 하지만 320기가라는 놀라운 용량이 해적판을 막는 가장 큰 변수가 될듯 합니다. 왠만한 하드디스크로는 설치도 못하겠군요. DVD로 설치하다가는 어느 세월에나 설치가 될런지....

 

개인적으로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현대 한국어의 번역 버젼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도 전자화되지 못한 수많은 한국의 고적들도 위와 같이 일단 데이타화하고 천천히 번역작업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수 많은 고적을 체계적으로 정리는 해놓았지만 데이타 작업 소식이 안 들리는 일본. 일단 밀어붙여서 오탈자가 많지만 데이타화해버린 중국. 그리고 천천히 데이타화하고 있지만 진척이 느린 한국. 하지만 일본처럼 기존의 고적들도 제대로 발굴이 안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데이타화하랴 고적 발굴하랴 많이 힘드실듯 합니다.

百度国学

http://guoxue.baidu.com/

 

바이두 국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얼마나 많은 고문들이 있습니까? 철학쪽으로는 도덕경, 논어, 시경...역사쪽으로는 25사로 시작되어서 다양하게 분화되는 여러가지 고문들. 이러한 고문들에서 무엇인가를 찾을때 너무 불편하지 않았나요? 이제는 쉽게 검색하세요^^

바이두 국학은 2006년 1월부터 공개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완벽한 정확도는 바랄 수 없습니다. 검색을 하다보면 고문들의 오타가 보입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번체자가 아닌 간자체로 되어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냥 번자체로 검색창에 입력해도 간자체로 자동 번역되니 간자체를 모르신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사고전서"와 같은 곳에 접속하기 상황이 힘든 분들은, 특히 한국에 계셔서 중국의 서비스를 사용하기 힘드신 분들에게는 방대한 중국의 한문서적에서 원하는 단어를 쉽게 찾아내는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보통 학교의 사고전서나 요즘 나온 중국기본고적을 이용하지만 학교 밖에서 이용이 힘들때에는 바이두 국학에서 찾고는 합니다.

 

해당 사항은 중국관련 학문을 하시는 분들에게 매우 유용한 싸이트가 되리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북경대학교에서 최근 개발한 "중국기본고적"이라는 사고전서 3배에 달하는 무식한 데이타베이스가 한국으로 수출이 되기 전까지 매우 유용한 싸이트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 중국기본고적의 인스톨과정에서 "한국어" 선택항목이 있더군요. 아마 수출할 마음이 있거나, 이미 수출 계약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중국기본고적은 이제 막 북경대학교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데이타베이스만 301G 였던가요-_ 상당히 괜찮은 시스템 같아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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