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西汉)의 성제(成帝)시대의 공광(孔光)은 황제의 전속비서까지 하면서 고위관직에 십여 년이 넘게 앉아 있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매일 황궁으로 출근을 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황궁은 신비로운 곳이 아니라 산책을 가는 뒷동산과 같이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그가 휴가를 얻어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것인지 마눌님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마눌님이 황궁에는 어떤 나무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공광은 매우 당황하며 좌불안석의 상태가 되었다가 한참의 정적이 지난 이후에나 "오늘 날씨가 좋지?!"라는 엉뚱한 말을 꺼낼 뿐이었다.


군사기밀도 아니고, 황궁의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 단지 황궁에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냐는 마눌님의 질문에 이렇게 긴장하고 대답을 회피할 필요가 있을까?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공광의 행동을 배워야 한다.



황제는 변태이다. 그는 신하의 온갖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신하의 발꼬랑내부터 여자취향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에 반하여 자신에 관한 사항은 그 어떤 것도 비밀로 하려고 한다.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황제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


황제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성스러운 존재이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서 천하를 운영하는 최고 권력자이다. 황제의 소소한 일들이 외부로 전해진다면 황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권위가 사라질 수도 있다. 권력 유지수단으로서의 황제라는 가면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황제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공간인 황궁의 출입을 금지한다. 하상주(夏商周) 시대에는 악사나 사관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을 고용해야 될 때에는 맹인만을 고용하였다. 역사가 흘러갈수록 황궁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 인력이 필요하였고, 환관이나 궁녀와 같이 평생을 궁에서 사는 사람들을 늘린다. 설령 어쩔 수 없이 출입을 해야 되는 고관들에게는 강도 높은 비밀유지를 강요하였다.


당조의 지방정권인 사천왕(四川王) 위고(韦皋)는 자신의 수족과 같은 수하들도 결코 중앙관직으로 불러오지 않고, 어디까지나 인접 지역을 담당하는 관직으로만 배정한다. 만약 더 이상 승진을 할 수 없다면, 명예퇴직을 시키고 원로로 대접을 할 뿐이었다.


당조의 만수공주(万寿公主)는 당대의 천재라는 정호(郑颢)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정호에게 자신이 데리고 온 궁녀들을 첩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였다. 이는 자신이 데리고 온 궁녀들이 다른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황실의 비밀이 새어나갈까 우려를 하였기 때문이다.



황제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황제의 자리는 속 편한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는 곧 천하를 빼앗기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하느냐로 정해진다.


만약 자신과 매우 가까운 신하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 암살과 같은 신변상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황제로서의 신성함도 사라져버리게 된다. 황궁에 심어진 나무가 무엇인지는 정말 조그마한 일이다. 그러나 설령 조그마한 일이라도 새어나간다는 것을 황제가 알게 된다면 그 외에 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하다고 생각되는가?! 남한(南汉)의 황제는 자신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환관과 궁녀만이 황궁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정한다. 태평천국(太平天国)의 천왕(天王) 홍수전(洪秀全)은 비밀 유지를 위하여 황궁화원을 고칠 때 오직 궁녀들로만 공사를 하도록 하였다.


황제에게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한 그루의 나무도 황실에 있는 나무라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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