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이루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보수는 언론을 통제하는 것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보수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유가에서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유가에서 중시하는 여러 문헌 중에서 춘추 좌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각주:1]


노양공 31년(기원전 542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정나라 사람들이 마을 공터에 모여 놀면서 정책을 평했다. 사람들이 모여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염려가 된 연명이 자산에게 건의했다.


"마을 공터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자산이 대답하였다.


"무슨 이유로 그리한단 말이오?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놀면서 정책을 평하게 되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실행하고 싫어하는 것은 개혁하면 되오. 그들의 논평이 곧 나의 스승인 셈인데 어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는단 말이오?

나는 최선을 다하여 원망의 목소리를 줄인다는 말은 들었어도, 권력으로 원망을 억누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권력으로 어찌 사람들의 말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이는 개울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소. 개울물을 억지로 막다가 방죽이 크게 터져 한꺼번에 흐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오. 그리되면 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소. 그러니 방죽을 조금 터 놓아 물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것만 못하오.

사람들이 정책을 논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보다 그들의 논평을 받아들여 약으로 삼는 것이 더 현명하오"


이런 자산의 대답에 듣고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체 누가 자산을 두고 어질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회의 보수 중에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유가조차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긍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 대다수는 청소년보호법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언론을 통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스스로를 보수라 말하는 분들이여! 언론을 막다가 많은 이가 다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1. 일반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고문내용을 현대에 적합하도록 자의적으로 수정하였다. 원문이 알고 싶은 분은 검색을 활용하길 바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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