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냐를 떠나, 그 이름을 가지고 떠올리는 대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답변은 아마도 수십 가지 이상으로 다양하게 나올 것이다.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음원 사업자는 대중음악, 모바일 서비스 프로바이더는 스마트폰 상에서 동작하는 게임 프로그램을 우선 연상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콘텐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여러 해 전부터 일관되게 유지해 온 나의 답변은 “인문지식이 곧 문화콘텐츠”라는 것이다[각주:1]부연하자면, 인문지식은 문화콘텐츠의 ‘소재’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문화콘텐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소비 현장을 들여다보자. 


  모바일 기기의 이용자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물을 보면서 그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새로운 즐길 거리를 발견한다.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역사를 배우고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의 양상도 예전과는 다르다. 방문자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그것을 안내판의 한 구석이나 안내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QR 코드 이미지에 비출 때마다 방문지에 관한 풍부한 정보가 쏟아진다. 


  인터넷, 모바일, IPTV 등 오늘날의 정보기술이 만들어낸 정보 통신 플랫폼은 지식이 곧 문화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학술과 창작, 전문성과 대중성,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향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놀이와 학습을 구분할 필요없이 그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현상이 지식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의 ‘문화’이다.


  인문학을 배경으로 하는 문화콘텐츠학과의 교육 커리큘럼에서는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고 하는 것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듯하다. 나 역시 스토리텔링의 인문콘텐츠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스토리텔링을 영화나 드라마,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장르의 이야기 소재로만 보는 듯한 사고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노비의 도망’을 다루는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가 호기심에 이끌려 ‘노비’라고 하는 키워드로 인터넷 상의 정보를 검색하고, 조선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노비 신분의 사람들과 도망 노비의 추쇄(推刷)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드라마의 줄거리도 역사적 소재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이지만, ‘노비’라는 키워드를 출발점으로 하여 노비의 생활, 노비의 도망, 노비의 신분 세탁, 노비의 추쇄의 실상 등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을 단계적인 마우스 클릭으로 얻어낼 수 있도록 조직화화 하는 것 역시 스토리텔링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즐길거리로 만들어지는 ‘허구적 스토리텔링’과 지식을 조직화 하는 ‘사실적 스토리텔링’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뿌리와 열매가 되는 상보적 순환관계에 있다.  사실적 스토리텔링의 폭과 깊이가 더해질수록 그것을 응용한 허구적 스토리텔링의 수준이 높이질 것이고, 허구적 스토리텔링의 흥미와 인기는 다시 사실적 스토리텔링에 대한 수요를 촉발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지털 인문학에 대해 갖는 비전은 그것이 인문학과 문화산업의 사이에서 부가가치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펌프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기초적인 인문학 연구의 산물을 지식 콘텐츠로 조직화하고 이를 통해  문화산업적 콘텐츠의 생산을 돕는 것, 그렇게 해서 인문지식의 사회적 수요를 제고하고 인문학 연구가 더욱 활성화 되도록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본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정보학 김현 교수의 "디지털 인문학: 인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상생 구도에 관한 구상"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바로 : 세속적으로 말하면...앞으로 이 전공은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할 것은 많거든...하지만 잘못하면 단순한 "지식노동자"가 될 가능성도 많다.


  1. 김현, 「문화콘텐츠, 정보기술 플랫폼, 그곳에서의 인문지식」, 『철학연구』 90, 2010. 8. [본문으로]

+ Recent posts